<목 차>
1. 들어가며
2. 공간의 수직 분석
1) 상하 공간의 긍정적 연결
2) 상하 공간의 부정적 단절
3) 술을 통한 단절의 일시적 극복
3. 공간의 수평 분석
1) 내공간의 편안함
2) 외공간의 지향
3) 내외 공간 연결 매개의 부재
4. 공간의 총체적 분석
5. 나오며
1. 들어가며
이백은 기존에 세속의 규범과 질서체계에 구속되지 않고 유유자적하는 삶을 산 것으로 널리 알려져 왔다. 하지만 이러한 이백의 호방한 모습 속에는 고독과 비애 라는 감정이 짙게 깔려 있다. 이백의 별칭은 謫仙人 즉 폄적당한 신선인데, 이는 그의 정체성을 가장 잘 대변해주며 나아가 고독과 비애의 원인이 무엇인지 시사해 준다. ‘신선’의 몸을 하고 있지만 인간 세상에 머물고 있는 이백은 항상 ‘신선세계’ 로 다시 돌아가고자 하는 원초적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세상에서 자신은 뭇 인간들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항상 부각시키고자 하였으며 이를 입증하 는 방법은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자신이 ‘신선’임을 보여주기 위해 이백이 이루고자 한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역사에 길이 남을 정치적 공명을 세운 뒤 자연에 은일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도가수련을 통해 신선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었다.1) 하지만 이러한 이상은 결국 실현되지 못하였 다. 이상을 실현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백이 ‘신선’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방법 은 세속의 규범을 뛰어넘는 호방표일함을 보여주는 것이었고 이는 주로 술을 마시 며 유유자적하게 사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러한 생활 속에서 이백은 정신 적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 채 항상 ‘하늘’로 올라갈 기회를 엿보고 있었으며, ‘하늘’ 로 올라가지 못하는 것을 홀로 안타까워하고 슬퍼했다. 필자는 이러한 모습을 다원적 이상 추구의 실패로 인한 비애와 고독으로 설명 한 바 있는데,2) 본 논문에서는 그 구체적인 양상을 기호론적 공간 분석을 통해 보 다 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 입증하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시인은 시상을 전개할 때 적절한 사물을 선택하여 적절하게 배치하 게 된다. 이를 위해 시인에게는 여러 사물을 포착하여 그 사물들을 자신의 인식 속 에서 통일시키고 하나의 지평 위에 모아낼 수 있는 의식적 능력이 필요하다. 그 결 과 시에 사용된 언어는 일차적인 자연 언어와는 다른, 공간적인 이차적 언어 체계 를 통해 하나의 세계상(의미)을 구축한다. 시 자체가 어떤 비유나 우의적인 구조를 갖지 않고 단순한 서경성을 나타낼지라도, 사물 간의 공간적 관계에 의해서 비유 체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리고 공간적 배치와 공간적 이동이 무언가를 지시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서 이미 하나의 의미작용을 지니고 있다.3)
1) 이백에게 있어 도가 수련은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한 가지는 終南捷徑을 노린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영생불사의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었다. 전자는 앞에서 언급한 공명의 실현과 연결 된 것이며, 후자는 현재의 과학지식에 따르면 비현실적인 것이지만 당시 이백은 실현 가능하 다고 믿었으며 실질적으로 추구하였다.
2) 졸고, <이백의 자아 추구 양상과 문학적 반영>, 제3장과 제4장 참조.
3) 이어령, 《공간의 시학》, 22쪽.
이러한 공간적 기 호체계를 분석함으로써 독자는 시인의 정신세계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 해석활동은 기호라는 용기 속에 담겨있는 내용물을 펼쳐내는 것인데, 그 내용물 은 용기의 모습과는 어떠한 공통점도 가지지 않는다. 용기 속에 차곡차곡 접혀져 있는 내용물의 주름을 펼쳐내고 전개하는 것이다.4) 하지만 그 기호들은 우연성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불명확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독자는 시인의 다양한 작품에 나타나는 다양한 기호의 조합에 대한 통일된 해석을 통해 시인의 진정성에 다가서 야 한다. 문학작품에 대한 개별적 분석은 그 자체로 한계를 가지며, 한 작가의 작 품집단에 대한 통일적 분석이 요구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기호론적 분석을 통해 한 작가에 대한 전반적인 문학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편 어떤 문학작품이든 묘사적인 언어 속에는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地形的 (topography) 一體感이 있는데, 그것은 공간에 대한 지각과 체험이다. 그리고 그 묘 사적 언어는 독자에게 동일한 공간적 의미를 불러일으키는 체계를 가지고 있다. 예 컨대 독자들이 어떤 시를 읽었을 때 개별 독자의 이미지에 있어 계절, 시간, 사람 의 형상 그리고 주위 광경 등은 다르겠지만 그것들이 놓여 있는 공간적 관계는 대 개 동일하며, 상하 좌우의 分節된 공간 속에 사물들이 비슷한 모습으로 배치된다. 아무리 상상력이 떨어지는 사람이라도 전체 공간을 분절하여 공간의 離散的 단위 를 식별하는 반응은 모두가 같다. 그것은 시인 자신이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연 속적이고 등질적인 공간을 하나의 기호 체계로서 코드화하고 작품 전체의 공간을 구조화하고 있기 때문이다.5) 이러한 특징은 중국 고전 한시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象形이나 指事를 기본 원리로 하는 한자는 그 制字原理에서부터 공간성을 바탕에 두고 있으며, 이러 한 문자를 가지고 문학작품을 창작한 중국 전통시기 문인들의 사유체계는 이미 공 간개념을 근간으로 한다.6)
4) 들뢰즈, 서동욱 외 옮김, 《프루스트와 기호》, 177쪽.
5) 이어령, 앞의 책, 18쪽.
6) 鄧偉龍, <中國古代詩學的空間問題硏究>, 81~107쪽.
그래서 많은 문인들은 이러한 공간성에 입각한 작품들을 많이 남겼으며 또한 이를 훌륭하게 평가하였다. 중국 전통시기 시인들은 자신의 뜻 을 시 속에 그대로 드러내기 보다는 경물묘사를 통해 자신의 뜻을 기탁하는 방법 을 주로 사용하였다. 격률과 자수의 제한을 받는 고전 시가의 창작에서는 언어의 밀도를 높이는 과정에서 이러한 기탁이 보다 고도의 수준에서 발휘되었다. 중국 한시의 높은 공간성은 시를 비평함에 있어서 회화를 도입하는 것에서도 그 단면을 찾아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그림은 공간성이 강한 예술이고 시를 포함 한 문학작품은 시간성이 강한 예술로 인식되지만 중국의 고대 시가작품들은 생동 감 있는 예술적 공간을 창출하려고 노력하였다. 즉 공간적 경물 묘사에 치중하지만 그 속에 작자의 감정을 혼연히 녹여서 그려내는 것을 우수한 작품으로 여겼으며, 시인들 또한 이를 위해 노력하였다. 그래서 옛 중국 비평가들은 시를 소리가 있는 그림이라고 하면서 그 심미적 공간 창출이 뛰어난 문학작품을 우수하게 여겼다.7) 이로 인해 예로부터 비평가들은 意象, 意境, 情景交融 등의 용어를 도입하면서 경물 묘사 속에 기탁된 작가의 시 세계를 분석하려고 하였다.8) 이는 중국 고전 시 가에 고도의 공간성이 내재되어 있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며, 또한 작품 속에 내재 된 공간적인 구조 분석을 통할 때 작품의 의미가 보다 명확해져서 그 시인의 시 세계를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이러한 시의 공간성은 이백의 시에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이는 그의 경 계적 성격 때문이다. 이백은 자기중심적 가치관을 가지고 남다른 자신의 존재를 영 원히 남기고자 하는 이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정치적 공명을 추구 하기 위해서 평생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간알하며 관직에 진출하고자 노력하였 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속세의 욕망을 버리고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면서 지내고 자 하였다. 그리고 신선술을 추구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하였다. 당시 이백이 활동했던 당 제국은 정치 체제 내의 관원들에게 체제중심적인 가치관을 강제하였 지만 이백 자신은 이를 초월하려는 자기중심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다. 관직 진출 을 위해 당 제국의 체제 내부로 편입하고자 하는 노력과 자연 속에서 탈속적인 삶 을 살고자 하는 노력은 모순된 것이며 항상 충돌하였다. 이렇게 당 제국 체제와 자 연 사이를 계속 진자운동하면서 그 경계에서 양쪽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이백 의 시에는 이러한 두 세계의 공간이 함께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러한 공간 속에 여러 경물을 배치함으로써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었다. 따라서 이백의 시에 나 타난 공간을 분할하고 그 공간 속에 배치된 여러 경물의 관계를 살펴봄으로써 그 의 지향과 감정 상태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기호론적 공간 분석은 이미 국내 현대 시 연구에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기 법으로서 특정 작가의 다양한 시를 내재적으로 분석하여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작가의 시 세계를 설명하였다.9)
7) 소식은 <왕유의 ‘남전 안개비 그림’ 뒤에 쓰다(書摩詰藍田烟雨圖後)>에서 왕유의 시에 대해 “왕유의 시를 맛보면 시 속에 그림이 있고, 왕유의 그림을 보면 그림 속에 시가 있다.(味摩詰 之詩, 詩中有畵, 觀摩詰之畵, 畵中有詩.)”라고 하면서 詩畵一律의 비평론을 주장하였다.
8) 이러한 용어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서 다양한 비평가들에 의해 사용되어 온 것으로 하나의 문 장으로 정의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체로 공간적인 경물 묘사를 통해서 작가의 감 정을 표현하는 것을 그 바탕으로 하고 있음에는 틀림없다. 이에 관해서는 鄧偉龍, 위 논문, 제 5장, 제7장, 제8장 참조.
9) 기호론적 공간 분석으로 한국 현대시를 분석한 사례로는 이어령이 유치환의 시를 분석한 <문 학공간의 기호론적 연구>를 필두로 정지용, 박목월, 윤동주, 이육사, 김광균, 김영랑 등 수십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이백 시를 분석하고자 한다. 기호론적 공간 분석에서는 현상학적으로 체험된 공간을 기저로 삼고 있으며 수 직과 수평을 중요한 공간 단위로 설정한다. 공간의 수직분석에서는 상방의 공간과 하방의 공간으로 나눈 뒤 두 공간이 의미하는 바를 파악하고, 두 공간 사이에 존재 하는 여러 매개를 분석함으로써 두 공간이 연결되거나 단절되는 양상을 파악하며, 공간의 수평분석에서는 화자를 중심으로 內공간과 外공간으로 나눈 뒤 수직분석의 경우와 동일한 방법으로 분석한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시인이 처해있는 공간과 지 향하는 공간의 관계를 파악함으로써 시인의 심리 상태를 분석하게 된다. 나아가 공 간의 수직분석과 수평분석을 총체적으로 파악함으로써 이러한 분석은 더욱 효과적 으로 수행될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분석방법을 이용하여 이백이 가졌던 비애와 고독의 근원과 발현 양상을 추적하고 기존 이백 시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도출하고자 한다.
2. 공간의 수직분석
1) 상하 공간의 긍정적 연결
공간을 수직방향으로 보면 상방과 하방으로 나눌 수 있는데, 상방은 주로 하늘 을 비롯하여 태양, 달, 별 등의 천체를 통해 나타나며, 하방은 땅을 비롯하여 땅에 근거를 두고 있는 여러 경물로 대별된다. 대체로 상방은 자신이 지향하는 긍정적인 공간이며 하방은 자신이 처한 현실세계를 나타낸다. 그리고 그 중간에는 새, 구름, 안개, 눈, 비와 같이 이 두 공간을 매개하는 여러 경물이 존재한다. 우선 상방의 긍정적인 기운이 하방으로 내려옴으로써 하방이 긍정적인 공간으 로 변화하는 경우를 살펴보자. 명의 작가들을 분석한 것을 들 수 있다. 또한 근래에 이러한 연구방법론을 한국 고전 한시에 도 적용하였는데, 임두정의 <해동강서시파 한시의 공간이미지 연구>가 그것이다. 이 논문은 기 호론적 공간 분석을 통해 이행, 박은, 정사룡, 노수신 등 네 명의 한국 한시 작가의 시 세계를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살펴보았다.
日照香爐生紫煙, 해가 향로봉을 비추어 자줏빛 안개가 피어나는데
遙看瀑布挂前川. 멀리서 폭포를 보니 앞 시내가 걸려있는 듯하네.
飛流直下三千尺, 날며 흘러 곧장 아래로 내리꽂히는 것이 삼천 척이니
疑是銀河落九天. 은하수가 높은 하늘에서 떨어졌나 의심하네.
이 시는 <여산 폭포를 바라보다 2수(望廬山瀑布二首)> 중 제2수이다.
여기서 수 직축은 태양(은하수) - 향로봉(폭포) - 땅으로 구성되어 있다. 태양과 은하수로 나타 나는 상방의 긍정적인 기운이 아무런 장애를 받지 않고 하방으로 쏟아지고 있으며, 그것은 폭포수의 물줄기로 형상화되어 있다. 이렇게 폭포는 상방의 기운을 하방에 있는 화자에게 전달해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그 기운을 받은 화자가 위치한 하방은 상방과 동일한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게 된다. 이를 통해 화자는 하방에서 상방으로 이동할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하게 된다. 하지만 대체로 이러한 상황에서는 상방의 기운이 일방향적으로만 이동하고 있 어서 하방의 화자가 상방으로 이동할 수는 없다. 하방의 화자가 상방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이동을 도와주는 매개가 필요한데, 그러한 매개로는 지상에서 높이 솟은 산이나 나무 또는 공중에 있는 새, 바람, 구름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매개를 통해 상방으로 올라가는 시를 살펴보자.
西上太白峰, 서쪽으로 태백봉에 오르는데
夕陽窮登攀. 석양 무렵에 다 올랐네.
太白與我語, 태백봉이 내게 말하기를
爲我開天關. 나를 위해 하늘 관문을 열어준다네.
願乘泠風去, 경쾌한 바람을 타고 떠나서
直出浮雲間. 곧장 뜬구름 사이로 나가고 싶네.
擧手可近月, 손을 들면 달을 잡을 수 있고
前行若無山. 앞으로 나아가니 다른 산은 없는 듯하네.
一別武功去, 태백봉이 있는 이 무공을 한번 떠나면
何時復更還. 언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이 시는 <태백봉에 오르다(登太白峰)>인데, 이백이 태백봉에 오른 감회를 쓴 것 이다.
산이라는 것은 지상으로부터 하늘 높이 솟아 있어서 하방에 있는 화자를 상 방으로 연결시켜주는 매개로 작용한다. 하지만 하늘과 연결되지 않아서 궁극적으로 상방의 하늘로 이동시켜주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여 상방의 하늘로 이동시켜주는 매개가 바로 바람이나 구름이다. 이 시에서 이백이 태 기호론적 공간 분석을 통한 李白 시에 대한 새로운 접근 7 백봉에 오른 시기는 이미 해가 떨어진 저녁이다. 하늘을 대표하는 해가 사라지기는 했지만 달이 떠있기 때문에 여전히 하늘은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이백이 올라가고자 하는 곳이다. 태백봉에 오른 이백에게 태백봉은 하늘의 관문을 열어준 다고 하여 하늘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을 제공해준다. 태백봉은 실제 하늘에 있는 태 백성(금성)의 정기가 변한 것이기 때문에, 어찌 보면 태백봉에 오른 것 자체가 하늘 에 오른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태백봉이란 산은 다른 산보다 상방으로 의 이동을 훨씬 더 용이하게 해준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하늘 관문을 통과한 이 백은 시원한 바람을 타고 구름 사이로 나아가 하늘로 올라갈 수 있다. 이러한 여러 매개를 통해 이백은 하방에서 상방으로 이동하였으며, 이로써 신선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2) 상하 공간의 부정적 단절
하지만 상하 공간이 항상 순조롭게 연결되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두 공간이 단절되는 경우가 더 많은데, 이러한 단절을 통해 자신이 이상을 성취하지 못한 상 황을 표현하였다. 이 경우 상방의 기운이 하방으로 전달되지 못하며, 하방의 의미 는 부정적인 것으로 바뀌게 된다. 그러한 예로 <해질녘에 산중을 그리워하다(落日 憶山中)>를 살펴보자.
雨後煙景綠, 비온 뒤에 안개 낀 풍경이 푸릇하고
晴天散餘霞. 맑게 갠 하늘에 남은 노을이 흩어지는데,
東風隨春歸, 동풍이 봄을 따라 돌아와서
發我枝上花. 우리 나무 위의 꽃을 피웠네.
花落時欲暮, 꽃잎 떨어지고 해도 저물려 하는데
見此令人嗟. 이를 보고 있자니 탄식이 절로 나네.
願遊名山去, 이름난 산으로 가서
學道飛丹砂. 도를 배우고 단약을 이뤄 날아가고 싶다네.
이 시에서 전반의 네 구절은 상하 공간이 연결되어 상방의 긍정적인 기운이 하 방으로 전달된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비가 온 뒤의 하늘은 맑게 개어있으며, 산은 푸르고 노을도 사라지고 있다. 여기서 동풍이 매개가 되어 상방의 긍정적인 기운을 하방으로 전달해주는데, 그 기운을 받은 나무는 푸름을 더하고 꽃을 피운다. 나무 역시 산과 마찬가지로 하방에 있는 존재이지만 상방을 향해 솟아 있어서 상방과 8 中國文學 第79輯 연결할 수 있는 긍정적인 매개로 작용한다. 이 나무에 꽃이 피었다는 것은 상방의 긍정적인 기운이 하방에서 만들어낸 결과물이며, 이 꽃을 향유함으로써 작자는 상 방의 기운을 만끽할 수 있다. 하지만 제5구에서 그러한 기운의 연결이 단절되는데, 이는 꽃이 떨어지고 해가 저무는 것에서 나타난다. 하늘의 태양이 서쪽으로 지는 순간 그 긍정적인 기운이 더 이상 하방으로 전달되지 않으며 그 결과 꽃잎도 떨어지고 만다.10)
10) <태백봉에 오르다(登太白峰)>에서는 태양이 졌지만 달이라는 천체가 여전히 남아있어 상방이 여전히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이 시에서는 태양을 대체할만한 존재가 없어 더 이상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이는 나아가 서 작자 자신의 쇠락을 의미하게 된다. 이백이 탄식하게 된 이유는 바로 이러한 쇠 락이며, 이는 상하 공간이 단절되어 상방의 기운이 하방으로 더 이상 전달되지 않 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자신이 직접 상방으로 올라가는 것인데, 이백 은 앞서 살펴본 시에서와 같이 산에 올라가 단약을 통해 날아 올라가고자 한다. 하지만 산이나 나무와 같은 매개가 상방 공간과의 연결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상방을 향해 높이 솟아 있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 상방까지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방까지 이동시켜줄 다른 매개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는 결국 나무와 산의 언저리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예로 <정 이 깊은 나무에 관해 써서 상공에게 부치다(題情深樹寄象公)>를 들 수 있자.
腸斷枝上猿, 가지 위의 원숭이는 창자가 끊어지고
淚添山下樽. 산 아래 술잔에는 눈물을 더하네.
白雲見我去, 흰 구름은 내가 떠나는 것을 보고서
亦爲我飛翻. 또 나를 위해 날아가네.
이 시는 “정이 깊은 나무[情深樹]”라는 나무에 관해 써서 상공이라는 사람에게 부치는 것이다. “정이 깊은 나무”와 “상공”에 대해서 알려진 것이 없어서 이백이 어떤 상황에서 이 시를 지었으며 무엇을 의도하려고 했는지도 파악하기 어렵다. 하 지만 시의 내용으로 보아 자신의 고달픈 처지를 서술하여 도움을 청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11)
11) 이백의 다른 시인 <눈을 마주하고 친척 형님인 우성현령에게 바치다(對雪獻從兄虞城宰)>에서 비슷한 정조를 확인할 수 있다. “지난 밤 양원에서 이 동생이 추위에 떨었던 것을 형님은 모 르실 것입니다. 정원 앞에서 옥같이 하얀 나무를 바라보다가 애 끊게 연리지를 그리워합니다. (昨夜梁園裏, 弟寒兄不知. 庭前看玉樹, 腸斷憶連枝.)”
제1구의 가지는 “정이 깊은 나무”의 가지를 뜻하며, 그 나무는 제 2구의 산 아래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원숭이의 창자가 끊어지고 이백의 술잔에는 눈물이 떨어진다. 상방의 하늘로 올라가고자 나무 위로 올라가고 산에 올랐 지만, 결국 상방으로 이동시켜줄 매개를 찾을 수 없어서, 그 아래에서 눈물을 흘리 며 애달파하고 있다. 제3구의 흰 구름이 상방의 하늘로 이동시켜줄 매개이지만 지 금 이백은 그 구름에 닿을 수 없다. 그 구름은 이백이 떠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고, 그 구름 속에 이백을 태우고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거리를 유지하며 홀로 날아가고 있을 따름이다. 여기서 구름은 제목에 나오는 상공을 비유하는 것으로 보 인다. 이백은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써 역사에 이름을 남길 정 치적 공명을 세우고자 하였는데, 이를 위해 그는 평생 고위 관료나 권력자를 찾아 다니며 간알을 하였다. 이 시 역시 그러한 간알의 일종으로 볼 수 있는데,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토로하면서 상공의 도움을 받고자 했을 것이다. 하늘로 대별되는 상 방에 도달하는 것을 자신의 이상을 실현할 관직에 오르는 것에 비유한다면, 그 도 달을 매개하는 구름은 자신에게 관직을 알선해 줄 상공을 비유한다. 그러한 매개를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나무나 산은 그저 구름에 가까이 가기 위한 장소일 뿐 구 름 자체를 담보하지는 못한다. 그리고 구름에 오르지 못했다는 것은 간알의 실패를 암시하기도 한다.12)
12) 제3∼4구에 나타난 구름의 모습이 마치 실의에 빠진 이백을 위로하는 존재로 볼 수도 있는데, 본 논문에서는 공간기호학적 배치 구도에 입각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다.
이 경우 제1~2구의 애달픔은 더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이백은 하늘에 오르기 위해 나무와 산에 올라 구름을 타고자 하였지만, 이백에 게 구름을 부릴 수 있는 능력은 없다. 구름을 부릴 수 있는 능력은 앞의 시에서 보 았듯이 단약을 제조해 신선이 됨으로써 확보할 수 있는 것인데, 그런 능력이 없는 상황에서는 구름을 제공해줄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도움을 구하지 못 했을 때, 이백은 나무와 산 아래서 계속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3) 술을 통한 단절의 일시적 극복
이백의 생애는 줄곧 이러한 좌절로 인한 슬픔으로 점철되었는데, 이는 그의 시 에서 상방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하방에 머물러 있는 상황으로 표현되었다. 하지만 이백은 詩仙이라 불리며 하늘에 오른 신선적 풍모로 유명한데, 이는 이러한 슬픔을 술로 극복했기 때문이다. 술은 액체로 되어 있지만 대체로 발효와 가열이라는 상방 의 기운을 통해 제조되며, 또한 술을 마신 사람의 기운을 상승시키는 효과를 가지 고 있다. 따라서 술은 상방으로의 상승을 이끌어줄 수 있는 매개로 작용하며, 실제 이백은 이를 통해 신선의 경지에 이르기도 하였다.13)
13) 술이 기호론적 공간 분석에서는 공간적 의미가 약하기 때문에 하방과 상방을 직접적으로 이어 주는 매개가 되지는 못하지만, 본 논문에서는 하방의 존재를 상방으로 심리적으로 이동시켜 줄 수 있는 매개로 상정하였다. 이백의 시에 있어 술의 기능은 상당히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데, 이러한 시도를 통해 술의 의미를 기호론적인 시각에서 분석해보고자 하였다.
遊山誰可遊, 산을 노니는데 누가 같이 노닐 수 있을까?
子明與浮丘. 능양자명과 부구공뿐이라네.
疊嶺礙河漢, 첩첩한 고개는 은하수를 가로막고
連峰橫斗牛. 연이은 봉우리는 북두와 견우성을 가로지르는데,
汪生面北阜, 왕윤의 별장은 북쪽 언덕을 마주하고 있고
池館淸且幽. 연못 있는 관사는 맑고 그윽하네.
我來感意氣, 내가 와보니 의기를 느낄 수 있는데
搥炰列珍羞. 돼지잡고 양을 구워 산해진미 늘어놓았으며,
掃石待歸月, 돌을 쓸어 돌아오는 달을 기다리고
開池漲寒流. 연못을 파서 차가운 물길이 가득한데,
酒酣益爽氣, 술이 얼큰하고 상쾌한 기운이 더해지니
爲樂不知秋. 즐거운 가운데 가을인지도 모르겠네.
이 시는 <왕윤의 별장에 들르다 2수(過汪氏別業二首)> 중 제1수이다.
여기서 상 방의 “은하수”, “북두”, “견우성”은 “첩첩한 고개[疊嶺]” 및 “연이은 봉우리[連峰]”와 교차하면서 하방과 연결되어 있는데, 그 매개 역할을 하는 이는 능양자명과 부구공 과 같은 신선들이다. 이 신선들은 자유자재로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상방과 하방을 연결하여 상방의 기운을 하방으로 전달할 수 있다. 그러한 연결지점 중 한 곳인 북 쪽 언덕에 왕윤의 별장이 있다. 그곳에는 달빛이 상방에서 하방으로 쏟아지고 있으 며 상방의 긍정적 기운을 받은 하방의 물은 그 수위가 한껏 높아져있다. 이때 마시 는 술은 그 자체로 상승적 기운을 가지고 있어서 사람을 하방에서 상방으로 이동 시키도록 도와준다. 이렇게 상방과 하방은 연결되며, 상방과 하방은 동일한 공간으 로 통일된다.
이러한 경지는 <달 아래서 홀로 술을 마시다 4수(月下獨酌四首)> 중 제2수에서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天若不愛酒, 하늘이 만일 술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酒星不在天. 주성이 하늘에 있지 않았고,
地若不愛酒, 땅이 만일 술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地應無酒泉. 주천이 땅에 있지 않았을 터,
天地旣愛酒, 하늘과 땅이 이미 술을 사랑했으니
愛酒不愧天. 술을 사랑해도 하늘에 부끄럽지 않네.
已聞淸比聖, 청주를 성인에 비한다고 이미 들었고
復道濁如賢. 탁주를 현인과 같다고 또 말하는데,
賢聖旣已飮, 현인과 성인들이 이미 술을 마셨으니
何必求神仙. 어찌 반드시 신선을 추구하겠는가?
三杯通大道, 석 잔이면 큰 도에 통하고
一斗合自然. 한 말이면 자연과 합쳐지니,
但得酒中趣, 다만 술 속의 흥취를 얻을 뿐
勿爲醒者傳. 깨어있는 자들에게 전하지 말아야지.
우선 하늘에 있는 주성과 땅에 있는 주천을 언급함으로써, 술을 매개로 하늘과 땅을 연결하였다. 이러한 매개를 통해 하늘로 대표되는 상방과 땅으로 대표되는 하 방은 술을 아끼는 존재로서 연결되었으며, 비록 몸은 하방에 있더라도 술을 통해 상방으로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술을 마신다면 비록 신선을 추구하지 않 아도 된다. 왜냐하면 술을 마시면 “큰 도에 통하고” “자연과 합쳐지”며 지금 자신 이 술을 마시고 있는 이곳이 바로 상방의 하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술을 통한 상방 공간의 경험은 일시적이라는 한계가 있다. 술에서 깨어 나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자신은 여전히 하방에 있다. 술을 통해서는 잠시 상방을 몽환적으로 느낄 뿐 상방으로의 궁극적인 이동은 결코 실현되지 않는다. 이렇게 자 신의 몸까지 상승시켜주지 못하는 한계가 있어서 음주를 하더라도 때로는 상방과 하방이 분리되기도 한다.
我有紫霞想, 나는 자줏빛 노을을 그리워하여
緬懷滄洲間. 푸른 물가에서 살고 싶었는데,
且對一壺酒, 잠시 술 한 병을 앞에 두니
澹然萬事閑. 담담히 세상만사가 한가해지네.
橫琴倚高松, 금을 가로로 놓고 높은 소나무에 기대어
把酒望遠山. 술잔을 쥐고 먼 산을 바라보는데,
長空去鳥沒, 넓은 하늘에는 새도 날아가 사라졌고
落日孤雲還. 해지는 저녁에 외로운 구름도 돌아가네.
但恐光景晩, 다만 두려운 것은 세월이 너무 지나가,
宿昔成秋顔. 조만간에 가을빛 얼굴이 될까 하는 것이네.
이 시는 <봄날 홀로 술을 마시다 2수(春日獨酌二首)> 중 제2수이다.
여기서 상방은 자줏빛 노을로 대별되는 신선세계이다.14)
14) 제2구의 푸른 물가는 이러한 상방이 하방에서 재현된 곳인데, 그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상방으 로 올라가는 것과 같은 형태의 수평이동이 필요하다. 즉 수직거리가 수평거리로 대체된 것이 라고 할 수 있다.
술을 마시니 자신이 마치 자줏빛 노을 에 오른 듯한 느낌이 들어 담담히 세상사가 한가로워지는 경지에 도달한다. 하지만 이러한 경지는 오래 유지되지 못한다. 지금 이백이 위치하고 있는 하방과 그가 가 고자 하는 상방을 매개하는 것으로는 소나무, 새, 구름, 산 등이 있다. 하지만 ‘멀다 [遠]’, ‘사라지다[沒]’, ‘돌아가다[還]’ 등의 기표로 인해 이러한 매개는 모두 부정성 을 띠고 있다. 그리고 태양도 ‘떨어지고[落]’ 말았다. 이러한 부정적인 기표로 인해 술은 실질적인 상승 기능을 하지 못하며 그 효력도 금방 사라져 상방과 하방의 단 절을 초래한다. 그 결과 이백은 부정적인 하방에서 쇠락함을 안타까워하게 된 것이 다. 이백이 호방함과 표일함을 드러내며 ‘신선’적 풍모를 드러내는 것은 주로 음주 를 경험했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이는 음주속의 일시적 몽환일 뿐 궁극적인 것은 아니었다. 음주가 끝나고 다시 현실로 돌아왔을 때 안타까움과 근심은 더욱더 커졌 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음주가 반복되었다.
3. 공간의 수평분석
공간의 수직분석에서는 상하축 밖에 없는 반면에 수평분석은 여러 가지의 축을 상정할 수 있다. 예컨대 동서남북이나 좌우전후를 기준으로 공간을 나눌 수 있다. 하지만 기호론적 분석에서는 이러한 기준보다는 중심인물을 기준으로 한 경계를 더욱 본질적인 것으로 파악한다.15)
15) 이어령, 앞의 책, 262~278쪽 참조.
즉 중심인물의 신체가 위치한 신체 공간을 內공 간으로 규정하고 그 바깥에 있는 공간을 外공간으로 규정한다. 수직분석에서 상방 과 하방이 이상과 현실을 각각 상징하는 것이 불변적인 반면에, 수평분석에서 내공 간과 외공간이 상징하는 바는 중심인물의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가변적인 것이다. 하방에서 상방으로의 상승이 극히 제한되어 있으며 추상적이고 비일상적인 데 반 해, 수평으로의 이동은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물의 지향 이 때로는 내공간이 될 수도 있고 때로는 외공간이 될 수도 있으며, 이는 내공간에 대한 인물의 인식과 지향에 따라 달라진다.
1) 내공간의 편안함
내공간이 안정감과 편안함을 주는 경우에는 긍정적인 공간으로 기능한다. 대개 집이나 고향 같은 공간이 그러한 긍정적인 공간으로 작용하며, 때로는 마음의 평안 함을 주는 사찰도 그러하다. 그러한 예로 <여산 동림사에서 밤에 생각하다(廬山東 林寺夜懷)>를 들 수 있다.
我尋靑蓮宇, 내가 푸른 연꽃이 있는 사찰을 찾아서
獨往謝城闕. 성궐을 떠나 홀로 오니,
霜淸東林鐘, 서리는 동림사 종을 맑게 하고
水白虎溪月. 물에는 호계의 달이 환하며,
天香生虛空, 하늘의 향기가 허공에서 피어나고
天樂鳴不歇. 하늘의 음악이 울려 그치지 않네.
宴坐寂不動, 편안히 앉아 조용히 움직이지 않으니
大千入毫髮. 대천세계가 모발로 들어와,
湛然冥眞心, 고요히 참마음을 깨달으니
曠劫斷出沒. 억겁의 출몰이 끊어지네.
이백이 불교에 정진하거나 심취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가끔 절을 방문했을 때 세속의 번뇌를 잊고 고요한 참마음을 얻기도 하였는데, 여산의 동림사를 방문하고 그 느낌을 적은 이 시에서도 그러한 상황을 표현하였다. 서리가 내리고 연못이 있 는 동림사에 종이 맑게 울리고 달이 환히 밝은 경물을 그렸는데, 이를 통해 동림사 의 그윽한 정취를 표현하였다. 하늘의 향기와 음악을 즐기면서 참선하노라니 진심 을 얻게 되었다는 표현을 통해 이곳에서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외공간은 이백이 떠나온 성궐이며 내공간은 동림사이다. 성궐은 세속 의 욕망과 번뇌가 집약된 공간으로 부정적인 공간이며, 이로 인해 내공간인 동림사 의 긍정적인 성격은 부각된다. 게다가 지금 이 내공간에는 상방의 기운이 하방의 내공간으로 전달되고 있는데, 하늘에서 내리는 서리, 물에 비치는 달빛, 하늘에서 퍼져 내려오는 향기와 음악 등이 매개하고 있다.16)
16) 여기서 대천세계가 이백의 모발 끝 하나하나에까지 다 들어와 있기 때문에 상방이동을 위한 별도의 매개가 필요하지 않으며, 상방과 하방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상방의 기운이 하방으로 전달되어 내공간이 긍정적인 공간이 되는 상황은 <벗 과 모여서 묵다(友人會宿)>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滌蕩千古愁, 천고의 시름을 씻어내려고
留連百壺飮. 백 병의 술에 빠져드네.
良宵宜淸談, 좋은 밤이 청담을 나누기에 알맞고
皓月未能寢. 밝은 달빛에 잠을 이룰 수 없는데,
醉來臥空山, 취해서 빈산에 누우니
天地卽衾枕. 하늘과 땅이 바로 이불이고 베개로다.
이 시는 객지에서 친구와 만나 술을 마시고 하룻밤을 묵으면서 쓴 것인데, 그 구체적인 장소나 친구에 관해서는 알 수 없다. 이 시에서 밝은 달빛은 상방의 기운 을 하방으로 전달해주는 매개이며, 이백과 친구가 마시는 술은 이들을 상방으로 이 동시켜줄 수 있는 매개이다. 친구와의 만남 역시 이러한 상승 기운을 더욱 강화시 키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이 지금 위치하고 있는 내공간은 상방과 하방이 교통하는 긍정적인 공간이 된다. 따라서 그 내공간에 하늘과 땅 나 아가 우주 전체가 들어와 있는 것이며, 이들은 그 하늘을 이불로 삼고 땅을 베개로 삼듯이 자연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것이다.
2) 외공간의 지향
하지만 하나의 공간에 머물지 못하고 자신의 이상을 추구하기 위해 평생 떠돌 아다닌 이백에게 있어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상황은 안정적으로 오랜 기간 동안 제공되지 않았다. 나그넷길에서 이백이 접하는 내공간은 목적지를 향해 가다가 잠 시 머물다가 떠나야하는 공간으로 모두 불안정한 공간이었다. 그가 진정으로 가고 싶어 하며 안식을 얻을 수 있는 공간, 그의 이상을 실현시켜줄 공간은 내공간이 아 니라 외공간이었다. 그가 비록 자연 속에서의 은일을 추구하기는 했으나 이는 남다 른 존재로서의 자신을 드러내주기에는 부족하였으며, 오히려 정치적 공명을 이루고 자하는 욕망을 더 우선시하였다.17)
17) 이백에게 있어 은일은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데, 대체로 자연 속에서의 유유자적한 생 활을 즐기며 세속으로부터 초월함을 즐기는 상황과 은자적 명망을 쌓아 관직으로 나아가려는 기회로 여기는 상황으로 나눌 수 있다. 하지만 전자의 경우는 결국 관직 진출의 욕망에 의해 지속적으로 유지되지 못하였다. 졸고, 앞 논문, 151~155쪽 참조.
그래서 그는 적극적으로 세상으로 나와서 자신 의 존재를 다른 사람에게 과시하고 이름을 드날리고자 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자신이 있는 내공간에서 평온함을 느끼기 보다는 외공간을 지향하는 경우가 많았 다.
久臥靑山雲, 오랫동안 청산의 구름 속에 누워
遂爲靑山客. 마침내 청산의 나그네가 되었는데,
山深雲更好, 산이 깊어 구름이 더욱 좋으니
賞弄終日夕. 감상하느라고 하루가 다 가네.
月銜樓間峰, 달은 누각 사이의 봉우리를 머금었고
泉漱階下石. 샘물은 계단 아래 돌을 씻는데,
素心自此得, 깨끗한 마음을 이로부터 얻었으니
眞趣非外借. 진정한 흥취는 외물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네.
鼯啼桂方秋, 날다람쥐가 우니 계수나무는 바야흐로 가을이고
風滅籟歸寂. 바람이 사라지니 만물이 적막한데,
緬思洪崖術, 홍애의 신선술을 멀리서 그리워하여
欲往滄海隔. 푸른 바다 너머로 가고자하지만,
雲車來何遲, 구름수레는 왜 이리 늦는가?
撫己空嘆息. 가슴을 어루만지며 괜스레 탄식하네.
이 시는 <해저물녘에 산에서 갑자기 생각이 나다(日夕山中忽然有懷)>이다. 제1~8 구까지는 이백이 산중에서 은일하면서 깨끗한 마음을 얻은 것을 기뻐하였다. 깊은 산 속의 구름 속에 누워서 하루 종일 이를 감상하며 달빛과 맑은 샘물을 통해 아 무런 욕심도 없는 상태를 획득했음을 말하였다. 하지만 가을이 되고 만물이 적막해 지자 이백의 심사는 바뀌는데, 신선술을 연마하기 위해 이곳을 떠나 푸른 바다 너 머로 가고자 한다. 여기서 이백의 목적지는 푸른 바다가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三 神山과 같은 선경일 터인데, 그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구름수레가 필요하다. 이 구 름은 지금까지 자신이 즐기고 있던 구름과는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산 속에서 완상하던 구름은 세속과의 단절을 통해 유유자적한 은일을 담보하는 구름이라면, 후자의 구름수레는 자신을 신선세계로 데려다주어 신선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구 름이다. 이 시에서 이백은 지금 자신이 처해있는 내공간에 만족하지 못하고 또 다 른 이상을 추구할 수 있는 외공간을 향해 가고자 하며, 이 외공간으로의 이동을 담 보할 매개가 없음을 애달파하고 있다. 여기서 지적해야 할 것은 이백이 내공간에서 자신의 이상을 완전히 실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비록 시의 앞부분에서 자신의 생활에 대해 만족감을 표현하고 세속의 욕망으로부터 초월한 상태에 있는 것처럼 그렸지만, 날다람쥐가 우는 가을에 바람이 불지 않자 적막함을 느끼는 것은 자연 속에서의 유유자적함이 자신의 모든 번뇌를 극복시키지 못했음을 말해준다. 봄이 가고 가을이 오는 자연의 순환원리를 완전히 깨치지 못하고, 좋은 시절이 가고 쇠 락한 시절이 오는 것에 대한 불안함을 느낀 것이며, 이러한 상황에서 다른 대안을 찾아가고자 하였다. 그 대안으로 이 시에서는 신선세계를 말하였다. 결국 그는 자 신이 처한 내공간의 상황에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고 외공간을 지향했다. 이렇게 외공간을 지향하는 그의 심리 속에는 자신이 내공간에 고립되어 있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남다른 존재로서 자신을 인정받아야 하는 그이기에 자신의 존 재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어야만 했다. 그러므로 타인과 관계를 맺지 못하는 상황 을 적극적으로 피하고자 하였으며, 타인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외공간을 끊임없이 추구했다.
<도망가는 도중에서 5수(奔亡道中五首)> 중 제1수에서 그가 외부와 단절 된 내공간에 처해있음을 안타까워하고 이를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을 볼 수 있다.
蘇武天山上, 소무는 흉노에게 잡혀 천산 위에 있었고
田橫海島邊. 전횡은 나라를 못 구하고 바닷가 섬으로 피했네.
萬重關塞斷, 만 겹의 변새 관문으로 길이 끊어졌으니
何日是歸年. 언제나 돌아갈 수 있을까?
이 시는 안록산의 난이 발발해 중원이 어지러워지자 난리를 피해 남쪽으로 가 면서 쓴 시이다. 여기서 이백은 자신을 소무와 전횡에 비유하였는데, 소무는 흉노 족에게 사신으로 갔다가 19년 동안 억류당해 고초를 겪었고 전횡은 전국시기 제나 라 부흥을 위해 군사를 일으켰지만 결국 실패하고 한나라 유방을 피해 섬으로 피 신했다. 이들은 중원과 멀리 떨어진 천산에 있거나 절해고도에 있었는데, 이백이 중원과 떨어진 심리적 거리감은 이보다 더했으리라 생각된다. 당시 세상은 안록산 의 난으로 인해 어지러웠는데, 이 상황은 이백으로서는 정치적 공명을 세울 수 있 는 절호의 기회였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는 난리를 구제할 기회를 얻지 못했으 며 오히려 난리를 피해 도망갔다. 자신의 능력을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아서 난리 를 구제할 기회를 얻지 못했던 상황이 바로 그에게 중원으로부터 멀리 고립되었다 는 느낌을 가지도록 하였다. 이런 고립감이 내공간을 부정적으로 만들게 하고 끊임 없이 외공간을 지향하도록 하였다.
3) 내외공간 연결 매개의 부재
이렇게 이백은 부정적인 내공간을 벗어나 긍정적인 외공간으로 나아가고자 하 였는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그 이동을 실현시켜줄 매개가 필요했다. 하방에서 상방으로 상승할 때 매개가 필요했듯이 내공간에서 외공간으로 이동할 때도 매개가 필요한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강과 길이다. 강이나 길은 모두 사람의 이동 통 로이며, 이러한 통로를 통해 자신이 원하고자 하는 곳으로 갈 수 있다. 강과 길이 그나마 순탄하게 연결되어 있으면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는 외공간으로의 이동이 쉽겠지만 단절되어 있는 경우는 이동에 어려움을 겪게 되고 결국 좌절하게 된다.
우선 강이 수평적 이동을 매개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秋浦長似秋, 추포는 늘 가을과 같아
蕭條使人愁. 쓸쓸하여 사람을 시름겹게 하는데,
客愁不可度, 나그네의 근심을 풀 수 없어
行上東大樓. 동쪽의 대루산에 오르네.
正西望長安, 서쪽으로 장안을 바라보고
下見江水流. 아래로 흘러가는 강물을 보고는,
寄言向江水, 강물을 향해 말을 띄워 보내니
汝意憶儂不. “네가 날 기억하는가?
遙傳一掬淚, 눈물 한 움큼 멀리 전하여
爲我達揚州. 날 위해 양주에 닿게 해주게.”
위의 시는 <추포가 17수(秋浦歌十七首)> 중 제1수이다. 이백은 지금의 안휘성 貴 池縣인 추포에 머물고 있으면서 대루산에 올랐다. 산에 올랐지만 상방으로 이동하 지 못한 이백은 아래의 강을 보고 자신의 바람을 전해달라고 하였다. 그 강물은 양 주로 가기 때문에 이백이 지향하는 외공간은 양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백의 궁 극적인 목적지는 제5구에서 말한 장안이다. 양주까지 뻗은 물길이 이백의 마음속에 서는 장안까지 확장되어 있다. 외공간인 장안으로 강물을 따라 가고자 하지만 이를 이룰 수 없는 상태에서 그 마음을 강물에 띄워 보내는 것이다. 여기서 장안이라는 외공간은 상방과 동질적인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백이 대루산을 통해 상방으로 올라가려는 시도는 구름과 같은 매개가 없어서 실패하였는데, 수평 공간에서 강물 을 이용하여 이를 실현하고자한 것이다. 강물이나 길은 자신이 원하는 외공간까지 직접적으로 닿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매개를 구할 필요가 없다. 다만 그 길을 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에서는 그 길을 따라 갈 수 있는 처지가 아 니었기 때문에 외공간으로 이동하지 못하고 지금 여기서 애달파하였다.
이러한 예 는 <행로난 3수(行路難三首)> 중 제 1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金樽淸酒斗十千, 금 술 단지의 맑은 술은 한 말에 만 냥이고
玉盤珍羞直萬錢. 옥쟁반의 진귀한 안주는 만 전짜리이지만,
停杯投筯不能食, 잔을 멈추고 젓가락 던진 채 먹지 못하고
拔劍四顧心茫然. 칼을 빼들고 사방을 바라보니 마음이 아득하네.
欲渡黃河冰塞川, 황하를 건너려 하나 얼음이 강을 막았고
將登太行雪滿山. 태항산을 오르려 하나 눈이 산에 가득한데,
閑來垂釣碧溪上, 한가로이 푸른 시내에서 낚시 드리우다가
忽復乘舟夢日邊. 홀연 다시 배를 타고 태양 가를 꿈꿔보네.
行路難, 갈 길 험난하구나,
行路難, 갈 길 험난하구나.
多歧路, 갈림길은 많은데
今安在. 지금 나는 어디에 있는가?
長風破浪會有時, 긴 바람 타고 파도를 깨는 날은 반드시 오리니
直挂雲帆濟滄海. 곧장 구름 돛 달고 푸른 바다를 건너리.
이 시에서 이백은 어느 화려한 연회에 참석하고 있다. 하지만 내공간이 제공하 는 물질적 풍요는 그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에게 마음의 평 온함을 주지 못한다. 그래서 바깥의 외공간을 바라보며 그곳으로 가고자 하는데 황 하는 얼음으로 막혀있고 태항산에는 눈이 가득하다. 태항산을 통해 상방으로 가고 자 하지만 눈이 쌓여 길이 보이지 않으며, 황하는 얼음이 얼어 배가 다니질 못한 다. 길이 보이더라도 갈림길이 많아서 어디로 가야할 지를 모른다. 분명 그 많은 길 중에 자신의 외공간으로 이끌어줄 길이 있을 터이지만 지금은 막혀있다. 여기서 외공간은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켜줄 긍정적인 공간이다.18)
18) 제8구의 환상에서 볼 수 있듯이 이백은 배를 타고 하늘을 날아간다. 배는 수로를 통해 수평적 으로 외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는 도구이지만 상방의 하늘로 날아가기 때문에, 여기서 외공간 은 상방과 연결되어 있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자세히 살펴보겠다.
하지만 이 외공간으로 갈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음으로 해서 이백은 좌절하며 슬퍼했던 것이다.
4. 공간의 총체적 분석
이상에서 살펴본 수직분석과 수평분석은 하나의 시에서 종합적으로 고찰될 필 요가 있다. 실제 하나의 작품에는 여러 공간이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하지 만 그 공간 사이에 존재하는 매개 역시 많을 뿐만 아니라 그 기능도 다양하기 때문에 이러한 종합적 고찰은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다.
그래서 본 연구에서는 우선 짧은 시를 대상으로 총체적인 공간 분석을 행하고자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짧은 시가 이백의 전반적인 이상 추구 양상을 전혀 보여줄 수 없는 것은 아니며, 총체적 공간 분석을 통해 여태 발견되지 않았던 해석이 드러날 가능성도 있을 것 이다. 아래에서는 그러한 예를 두 가지 들어보고자 한다.19)
우선 <고요한 밤의 그리움(靜夜思)>을 살펴보자.
牀前看月光, 침상 앞에서 달빛을 바라보니
疑是地上霜. 마치 땅에 서리가 내린 듯하네.
擧頭望山月, 고개 들어 산 위에 뜬 달을 바라보고
低頭思故鄕. 고개 숙여 고향을 그리워하네.
이 시에서 상하 공간은 달이 뜬 하늘 - 이백이 잠시 머무는 집으로 배치되어 있 는데, 달빛이 지상으로 쏟아져 그 기운이 하방으로 내려오고 있지만, 하방의 이백 을 상방으로 올라가게 할 수 있는 매개는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 상하공간은 절 대적으로 분리되어 있어서 상방으로의 이동은 실현되지 못한 채, 이백은 상방을 바 라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다. 또한 상방/하방의 수직 공간을 가로로 눕히면 내공간/ 외공간으로 나누어지는 수평 공간이 되는데, 그러면 현재 이백이 존재하고 있는 내 공간은 하방이 되며, 이백이 그리워하며 가고자하는 고향인 외공간은 상방이 된다. 애초에 이백은 자신의 방에 있는 침대에 누워있었을 것이다.20) 침대는 자신만의 내 공간을 형성하고 있으며 누워 있음으로 해서 안락함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백 이 상방과 외공간을 그리워한다는 사실에서 현재 내공간(하방)에서의 안락함은 일 시적인 것이다. 이 때 방의 바깥에서 안쪽으로 달빛이 들어와서 자신의 안락함이 방해를 받게 되고 잠에서 깨어나 서성인다. 그는 창밖을 바라보거나 마당으로 나왔 을 수가 있는데, 창이나 마당은 집의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는 경계이고 내공간과 외공간의 경계이다. 그는 상방으로 이동하지 못한 상태에서 수평적으로도 경계를 뚫고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마당에서 서성이고 있다. 이백의 시문에 나타나는 달은 대개 고독이나 이상세계를 나타낸다.21)
19) 이하의 논의는 필자의 박사학위논문의 내용을 수정 보완한 것이다. 졸고, 앞 논문, 167~169쪽, 204~206쪽 참조.
20) 이 시에 나오는 “牀”의 뜻에 대해 침대, 우물 난간, 胡牀, 간이의자인 马扎 등 의견이 분분하 다. 필자는 이 시에서 중요한 것은 “牀”이 무엇이냐가 아니라, 시적 화자가 달밤에 방에서 자 지 않고 밖을 서성인다는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필자의 분석에 있어서는 그 어느 것이 라고 해도 상관은 없지만, 한국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침대를 선택했다.
21) 崔玲의 <“與爾同銷萬古愁”的浪漫情懷 - 談李白詩歌中的月意象內涵>과 金榮의 <簡析李白的咏月 詩> 참고.
우선 고독 은 단지 고향에 대한 그리움만을 의미하는 것이라 자신의 고독 일반을 의미한다. 자신을 알아주는 이가 없이 홀로 있을 때 그는 달을 불러오고, 그는 그 달과 함께 노닐면서 세속을 떠나 유유자적하는 생활을 하고자 한다. 또한 달은 이상세계를 나 타내는데, 때로는 황제가 있는 곳을 의미하여 자신의 재능을 발휘해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고, 때로는 신선이 되어 장생불사를 이룩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지금 이백은 이 모든 것을 이루지 못한 채 서성이면서 달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그는 또 고향을 그리워하는데, 그에게 있어 고향은 출생지나 가족이 있는 곳이 라기보다는 현실세계에서 실패와 좌절로 인한 슬픔과 외로움을 위로받을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자아 성취 욕망이 강했던 그가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곳은 결국 자 신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장소이다. 따라서 상방의 달과 외공간의 고향은 동전 의 양면과 같은 것으로, 둘 다 그가 평생 실현하고자 했던 이상을 말한다. 하지만 이상을 실현하지 못한 그는 이러한 상념 속에 경계공간인 마당에 있을 수밖에 없 었다. 그는 다시 침대로 돌아와 눕지도 못하고 하늘의 달로 올라가지도 못한 채, 하늘과 땅 양쪽을 번갈아 보았던 것이며, 자신의 고향을 그리워하기만 할 뿐 고향 길을 나서지 못한 채 자신의 이상을 이루지 못한 안타까움에 잠겼다. 이러한 상황은 그가 자연 속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로 드러난다.
衆鳥高飛盡, 뭇 새들은 높이 날아가 버리고
孤雲獨去閑. 외로운 구름은 홀로 한가롭네.
相看兩不厭, 서로 바라보며 둘 다 질리지 않는 것은
只有敬亭山. 오직 경정산뿐이로구나.
이 시는 <경정산에 홀로 앉다(獨坐敬亭山)>이다.
이 시는 기존에는 대체로 자연 속에서 세상의 물욕을 버린 채 유유자적하는 모습으로 해석되었는데, 이 시에서도 이상을 실현하지 못한 채 경계에 앉아 외로워하는 이백의 모습은 발견된다. 우선 제목을 보면 그는 ‘홀로[獨]’ 있다. 홀로 남아 있다는 것은 자신과 같이 있는 사람 이 없다는 것이며, 누군가가 모두 떠나갔다는 뜻이다. 이러한 고독감이 이 시 전체 를 아우르는 감정이다. 그리고 ‘경정산’의 ‘산’이라는 존재는 상방과 하방을 이어주 는 매개인데, 산을 통해 하늘에 보다 가까이 갈 수 있으며 자신의 상승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산은 궁극적으로 하늘로 이동시켜주지는 못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어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다른 매개가 필요한데, 그 매개가 새와 구름이 다. 산은 구름과 새들의 원천지로서 구름은 산에서 생겨나며, 새들은 산에서 산 다.22) 그들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산을 떠나지만 언젠가는 다시 산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 산은 이들의 내공간으로서 새들과 구름의 고향이며 이백의 안식처이기 도 하다. 따라서 이백이 바라보고 있는 산은 이백의 상승 이동을 도와줄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새와 구름은 이백의 상방에 위치하고 있지만 이백 과 거리를 두고 있어서 상방으로 이동시켜주지 못한다. 새들은 이백으로부터 멀어 지는 존재로서 무리를 지어서 어느 한 곳을 향하여 목적성을 가지고 상당히 빠른 속도로 떠나가고 있다. 이에 반해 구름은 혼자서 아무런 목적성도 없이 주위를 서 성이고 있다. 땅(산)에 고정되어 있는 이백과는 달리 새들과 구름은 하늘에 떠있는 존재로서 모두 운동성을 가지고 이동하고 있지만, 이백의 통제를 받고 있지는 않 다. 이를 통해 이들에 대한 이백의 ‘불안감’과 ‘무력감’을 추측할 수 있다. 여기서 산을 떠나 무리를 지어 목적지로 날아가고 있는 새는 세속적 성공과 명망을 달성 하기 위해 한없이 상승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대변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새들은 이백으로부터 멀어지는 존재로서 이백의 상승 이동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구름은 방향성을 상실한 채 홀로 떠다니는데 목적지향성을 가진 새무리와는 달리 목적지향성이 없는 초연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구름은 이백과 일정한 거 리를 유지한 채 방황하고 있어서 불안한 준안정적(meta-stable)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구름 또한 이백의 상승 이동을 담보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상방과 연결되지 못한 상태에서 이백 역시 준안정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이는 ‘앉아 있는[坐]’ 동작에서 드러난다. ‘앉아 있다’는 ‘누워 있다’와 ‘서 있다’의 경계적 동작으로서 ‘머무르다’와 ‘이동하다’의 중간 형태이고, 내공간과 외 공간의 경계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이는 현재 자신이 있는 공간에 만족하며 머무 르지도 못하고 또 완전히 외공간을 향해 떠나지도 못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이는 현재 이백이 처한 상태의 준안정성을 보여주며 궁극적으로 그가 이 공간을 언젠가 는 떠날 것임을 암시한다.23)
22)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에서 나오고, 새들은 날기 지쳐서 돌아올 줄 안다(雲無心以出岫, 鳥倦飛而知還)”라고 하였다.
23) 이백의 시에서 ‘坐’가 앉아 있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는 56군데에서 보이는데 그 중 불안 한 상태를 의미하는 경우가 43군데였으며 나머지는 대체로 중립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안정 을 의미하는 경우도 소수 있다. 이에 반해 ‘臥’는 거의 모두 안식과 평온을 의미하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이렇게 새, 구름, 산은 각각 이백을 상방과 연결시킬 수 있는 매개이기는 하지 만,24) 상승 이동을 실현시키지는 못한다.
24) 한 폭의 그림같이 보여서 마치 한 순간에 발생하는 사건으로 인식될 수 있는 이 시의 내용들 은 이백을 중심으로 해석해보면 하나의 시계열을 가진 여러 사건의 시리즈로 나타나는데, 각 각 그의 과거, 현재, 미래를 구성하고 있다. 과거 그는 겸제천하의 이상을 가지고 관직에 올라 자기 실력을 발휘하여 공을 세우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러한 욕망이 지금 새들 과의 만남으로 재현되고 있다. 세속정치에 환멸을 느껴 궁중에서 나와 권력의 무상함 속에서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는 자신의 현재 모습은 외로운 구름과의 만남에서 재현되고 있다. 모든 세속적 미련을 버리고 유유자적하고 편안한 생활 속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지향은 산과의 만남 에서 암시되고 있다. 하지만 산과의 만남은 상승으로의 이동을 담보하기는 하지만, 새와 구름 이 모두 산으로 돌아와야 실현되는데, 그런 궁극적인 만남(마주보기)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는 자연 속에 있을 때조차도 공명을 추 구하지 못한 것을 애달파하였으며 유유자적하는 삶을 즐기지도 못했다. 비록 지금 은 산 속에서 은일을 지향하고자 하지만, 그 상태는 언제라도 변화 가능하며, 그는 경계에 앉아서 외로워하였고 서성이고 있었다.
5. 나오며
이상과 같이 이백의 시를 대상으로 기호론적 방법을 통해 공간을 분석해 보았 다. 대체로 수직축과 수평축을 중심으로 상하공간과 내외공간을 나누었으며, 각 공 간과의 연결이나 단절 양상을 위주로 살펴보았다. 이백의 시에 있어 자신이 처해 있는 하방이나 내공간은 부정적인 현실을 반영하였으며 이러한 공간을 벗어나 상 방이나 외공간으로 나가고자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이동의 매개가 존재하지 않은 상황에서 두 공간은 단절되어 이동은 실현되지 못하였으며, 이로 인해 이백은 슬퍼 하고 외로워하였다. 실제 상방과 외공간은 하나의 공간으로 자신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이백은 그곳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얻지 못했으며, 평생 그 방법을 찾아다니다가 인생을 마무리했다. 그의 존재는 원래 신선이었으며 상방 에 있어야 할 인물이다. 하지만 하방으로 쫓겨난 그로서는 다시 상방으로 올라갈 길을 찾지 못했다. 이것이 그가 슬퍼하고 외로워했던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분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간 이동을 실현해줄 매개물을 정밀하게 분석하는 것이다. 이백이 실제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가장 주안점을 둔 것 이 바로 자신의 재능을 인정하고 그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사람을 찾는 것이었다. 그 사람이 바로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켜줄 매개인 것이다. 따라서 이백의 시에는 이러한 공간 이동을 실현시켜줄 매개물이 많이 등장한다. 하지만 본 논문에서는 구름, 새, 나무, 산, 강, 길과 같은 몇몇 매개만을 분석했을 따름이다. 기 존의 기호론적 공간 분석을 이용한 연구결과에서는 아주 다양한 매개물을 통해 장 편 시를 분석하여 특정 작가의 작품 세계를 분석하였는데, 이에 비하면 본 연구는 아직 많이 미흡하다. 보다 많은 매개물을 통해 장편시를 총체적으로 분석할 때 이 백 시의 이상 추구 양상에 대한 보다 풍부하고 정확한 자료가 제시될 것이며, 이에 따라 새로운 해석도 가능하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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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文摘要 】 New approach to LiBai's poetry by Semiotic space analysis
李白的詩文旣豪放飄逸又充滿浪漫色彩,但在其字裏行間卻流露着無限的悲哀與孤 獨。無疑是他在所追求理想的過程中屢遭挫折的緣故。他懷着以自我爲中心的價値觀, 試圖使自己成爲一個‘與衆不同的存在’,但結果還是以失敗而告終, 只能在孤獨傷心中度 日。這種情行可以通過符號論的空間分析來作以更科學性地、羅輯性地說明。本文將把 他的詩文擬定爲上/下和內/外的空間,借此來探究其布置關係。 上方空間由太陽、月亮、星辰等組成來構成。下方空間則由大地以及大地上存在着 的各種物體來構成。上方空間是詩人所憧憬的具有積極意義的空間,下方空間則是詩人 所處的眞實世界。上方空間的氣韻如果能順利地與下方空間連接起來的話,處在下方空 間的李白就會順勢昇到上方。但如果這股氣勢受阻的話,就會分隔成爲上下兩個空間。 這種情況下的李白往往企圖通過飮酒來克服,但是酒只能讓他在夢幻中實現暫時地上 昇,而最終幷不能使他夢想成眞。 內空間是作中中心人物處在的空間, 外空間是內空間外部的空間。在李白的詩裏面, 這兩個空間之間的關係就似於上方空間和下方空間的關係。對李白來說內空間是不願意 留處的, 所以他每次想脫出內空間到外空間。可是他究竟找不到引導外空間的媒體只好 留在內空間流淚。 <靜夜思>裏月光存在於上方空間而與詩人自己所在的下方空間是斷絶的。上方空間 與象徵故鄕的外空間是互相連接的。所以在他的詩裏故鄕幷不單單是指自己家人所在的 空間,而是代表能實現自己理想的空間。<獨坐敬亭山>裏連接上方空間與下方空間的媒 介是鳥、雲與山,但是這種連接媒介作用是失敗的,所以只好留下了李白自己一個人孤 獨地坐在山上。‘坐'這個行爲也是作爲在‘留'與‘動'中間境界的一個動作, 來表現出李白 的準安定性,卽暗喩着李白隨時會離開此山而向其他地方移動。
關鍵詞 : 李白, 空間分析, 符號論, 上方空間, 下方空間, 內空間, 外空間, 理想追求, 悲 哀, 孤獨
투 고 일 : 2014. 4. 15 심 사 일 : 2014. 4. 23 ~ 5. 12 게재확정일 : 2014. 5.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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