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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박찬욱의 <헤어질 결심>에 나타난 영화의 자기반영성/심은진.청주대

국문초록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은 사랑 이야기를 추리 이야기와 연결한 혼종 서사 (hybrid narrative)이다. 1부와 2부로 나누어진 이야기의 대칭적 구조는 거짓과 진 실의 관계를 함축한다. 서래는 이야기의 변화를 이끄는 인물이다. 여러 영화장르 의 인물처럼 변신하며 영화 대사를 자신의 말처럼 인용하는 서래는 영화를 은유 한다. 이 영화에는 자기반영적인 영화 장치들이 있다. 시선의 주체가 불분명한 시점 을 통해 영화 스크린을 표현한다. 숨소리, 전화 목소리, 폰에 녹음된 소리는 해 준의 정서에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관객의 동일시를 만들어 내는 장치이다. 관 객은 해준의 욕망이 투사된 상상의 이미지, 영화 속 영화와 같은 이미지를 본다. 숨겨진 진실을 찾는 해준은 시간을 탐색하고 분석하는 자이다. 해준의 시선은 한 프레임에서 현재와 과거의 시간을 연결한다. 그는 프레임 안의 프레임, 영화 속의 영화와 같은 시간의 지층을 만든다. <헤어질 결심>에서 박찬욱 감독은 자신의 영화 미학과 예술관을 알려준다. 모 호함은 이 영화를 이해하는 열쇠이다. ‘바다 깊은 곳에 던져진 폰’처럼 훌륭한 영화는 하나의 설명으로 혹은 하나의 진실로 해석될 수 없다. 관객 수 만큼의 울림이, 관람 횟수만큼의 감동이 있는 영화는 바닷속에 감추어진 진실과 같은 것이다. <헤어질 결심>은 영화와 스크린, 그리고 관객을 정의하는 영화에 대한 영화이다.

주제어: 박찬욱, <헤어질 결심>, 자기반영성, 질 들뢰즈, 미셀 시옹, 청점, 서 스펜스

I. 들어가는 말: 사랑 이야기, 거짓 이야기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은 대중적 흥미와 예술적 완성도가 뛰어 나다는 격찬을 받은 작품이다. 1)

1) 『씨네 21스페셜』 의 「2022 올해의 한국영화 감독, ‘헤어질 결심’ 박찬욱 감 독」이라는 제목의 기획 특집 기사에서 “‘시네마’의 언어, 표현 특성을 다루는 능력이 경지에 올랐다”, “멜로드라마, 코미디, 스릴러, 추리를 커버하는 온갖 대중적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라는 평을 한다. 『씨네 21스페셜』, 2022, 12, 22.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101696 (2023년 1월 5 일 접근)

이 영화는 대중적 장르를 대표하는 탐정 서사로 사랑을 이야기한다. 혼종 플롯(hybrid plot)이 만들어 내는 복잡 한 이야기 구조와 영화 속에 숨겨진 여러 인용 장치들(고전 음악과 대중 음악, 탐정 소설, 히치콕, 비스콘티 등의 영화...) 그리고 산과 바다, 안개 의 은유가 지닌 복합적인 요소는 다양한 해석을 만든다. 인물을 극단적 인 상황 속에 몰아넣는 박찬욱 영화의 특징은 <헤어질 결심>에서도 예 외는 아니다. 박찬욱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물을 극단 적인 상황에 몰아넣어야 질문이 분명하게 떠오르는 거죠. 딜레마를 다루 려 한다면 그 딜레마를 뚜렷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모든 질문은 자극적 이고 과장되고 극단적일 때 더욱 분명해진다고 생각해요. 제 영화들은 모든 면에서 자극을 주고 싶어서 만든 거고, 그런 자극을 통해서 특정 질문이 던져지게 하고 싶은 거니까요.” 2)

2) 이동진, 『이동진의 부메랑 인터뷰』, 고양: 위즈덤하우스, 2020, 137쪽.

유능한 경찰인 해준과 살인 용의자인 서래의 만남과 사랑은 서로에게 극단적인 상황을 만든다. 서래는 세 번 살인을 한다. 유능하고 명석한 경 찰인 해준은 서래에게 매혹되어 수사를 망치고 삶이 붕괴된다. 그러나 여전히 서래를 잊지 못한다. 살인자와 경찰의 사랑은 피할 수 없는 운명 처럼 보인다. 박찬욱 감독은 두 사람의 사랑을 통해 관객에게 무엇을 알 려주고 싶었을까? 관객에게 어떤 질문을 던진 것일까? 영화에 대한 여러 리뷰와 평론의 글은 해준과 서래의 사랑에 중심을 맞춘다. 박찬욱 감독 역시 이 영화를 통해 관객이 사랑의 정서를 느끼길 바란다고 말한다. 이 영화는 단지 사랑을 정의하고 사랑을 이야기하는 가? 해준과 서래의 사랑은 진실일까? <헤어질 결심>의 이야기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1부는 살인사건 의 피의자인 송서래와 유능한 경찰인 박해준의 만남과 사랑, 헤어짐을 이야기한다. 1부의 이야기는 사랑이 시작되는 감정을 전달하고 헤어짐의 슬픔을 보여준다. 2부의 이야기는 해준과 서래의 재회와 사랑의 파국, 비 극적 결말을 담고 있다. 만남과 헤어짐, 사랑의 파국이라는 모티브는 멜 로 영화에 익숙한 서사이다. 여기에 스릴과 서스펜스의 플롯으로 전개되 는 범죄이야기, 서래의 살인, 홍산호와 사철성의 살인 사건을 연결시킨 다. 사랑 이야기와 범죄 이야기가 뒤섞이고 코믹한 요소가 혼합되어 새 롭고 놀라운 서사가 만들어진다. 장르의 경계가 모호해지며 장르의 전형 적인 장치들은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 기승전결로 구성된 1부와 2부는 각각이 독립적인 이야기라해도 무방 하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1부와 2부의 여러 요소는 대칭의 구조 로 되어있다. 1부가 서래에 대한 해준의 사랑 이야기라면 2부는 해준에 대한 서래의 사랑 이야기이다. 1부에서 해준은 잠복근무를 핑계로 서래 를 훔쳐본다. 2부에서 서래는 해준이 있는 이포라는 도시로 가 해준을 훔쳐본다. 1부에서는 해준이 적극적으로 서래에게 관심을 보인다면 2부 에서는 서래가 해준에게 감정을 표현한다. 1부에서 해준은 서래의 행동 을 보며 자기 생각을 녹음한다. 2부에서는 서래가 해준을 보며 생각을 녹음한다. 인물 관계도 대칭적이다. 남자 형사는 여자 형사로 바뀐다. 1 부에서 수완은 해준에게 서래가 연루된 살인사건을 계속 수사하라고 하지만 2부의 연수는 수사를 그만하라고 한다. 여러 사건과 행동은 반복되 지만 다르다. 대칭의 구조처럼 반대의 위치에 있다. 박찬욱 감독은 왜 대칭의 구조를 사용했을까? 반복은 관객을 영화의 이야기에 끌어들이기 위한 장치이다. 반복적인 것은 관객의 기억을 강요 한다. 관객은 이미 알고 있던 물건을 발견하고 같은 행동을 보면서 차이 를 찾아낸다. 대칭은 차이를 지닌 반복이다. 관객은 반복을 통해 차이를 발견하는 지적인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다. 대칭 구조는 관객을 영화 속 에 포함 시키는 작업, 관객의 지적인 활동을 자극하며 사유의 능력을 끌 어낼 수 있는 장치이다. 또한 대칭의 구조는 영화의 서사를 관통하는 주 제, 진실과 거짓의 문제를 함축한다. 선과 악, 참과 거짓은 대칭의 관계 이다. 이러한 대칭 관계가 해준과 서래의 사랑 이야기를 끌고 가는 모티 브이다. 누구보다도 서래는 이러한 대칭 구조의 이야기에서 변화를 만드 는 인물이다. 1부와 2부가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는 중심에 서래가 있다. 1부와 2부의 서래는 전혀 다르다. 서래는 변신이 탁월하다. 서래는 책 임감이 투철한 간병인에서 명품으로 사치를 부리는 관광 가이드로 변한 다. 외조부가 독립군이었다는 사실에 자부심이 강하지만, 건달 사철성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포크로 그의 팔을 찌를 때는 조폭 여두목 같다. 서래 의 말은 믿을 수 없다. 남편의 살인을 숨기기 위해 위조편지를 만든다. 두 번째 남편 임호신이 살해되어 해준이 서래를 취조할 때도 서래는 진 실을 다 알고 있는 해준에게 첫 번째 남편은 자살이라고 말한다. 해준에 게 하는 많은 말, ‘마침내’, ‘독한 것’, ‘당신 만날 방법이 이것밖에 없으니’ 와 같은 말은 드라마나 영화 속 인물의 대사를 따라 한 것이다. 해준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거나 사실을 말할 때, 서래는 영화나 드라마의 대 사를 빌려온다. 빌려온 말로 자신을 채우는 서래는 거짓 존재이다. 다소 촌스러운 원색의 옷을 입고 해준과 순수한 사랑을 나누던 간병인 서래는 멜로영화의 주인공이다. 야한 붉은 색 옷을 입고 가발을 벗으며 사철성을 협박하는 서래는 홍콩 누와르 영화의 주인공 같다. 해준이 싫 어하는 피냄새를 없애려 살해당한 남편을 물로 씻겨내는 서래는 스릴러 드라마의 주인공같다. 서래는 동일한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이다. 서래에게는 다양한 장르의 영화 속 인물이 있다. 송서래는 변신과 거짓의 존재 이다. 해준에 대한 서래의 사랑은 진심이었을까? 여러 모습의 서래가 존재 한다. 진짜 서래는 누구일까? 여러 장르의 이야기만큼 존재하는 서래는 실은 존재하지 않는 존재, 자신은 비어있는 무(無)의 존재이다. 서래는 허구의 존재, 모방한 것을 진짜처럼 표현하는 존재, 이야기를 꾸며내는 존재이다.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이행하며 “생성의 무구함”을 보여주 는 서래는 들뢰즈(Deleuze)가 말하는 “거짓의 역량” 3) , 예술 혹은 영화를 은유한다. 호미산에서 해준의 얼굴에 빛을 내뿜던 서래의 모습은 영화에 대한 탁 월한 은유이다. 영화의 아우라는 밤이다. 4) 어두움 속에서 얼굴은 감춘 채 빛으로만 존재하는 서래는 해준에게 밤마다 자신을 생각하라고 말한 다. 영화를 보는 동안 관객은 서래의 거짓말과 살인이라는 악행은 잊은 채 해준과의 사랑을 애달파 한다. 자신의 운명이 파멸에 이를지라도 서 래에게 매혹된 해준처럼,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은 영화가 거짓인 줄 알 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5) 허구를 믿으려 한다.

3) 들뢰즈의 ‘거짓 역량’은 예술의 창조와 생성을 힘을 의미한다. 폴스태프와 돈 키호테를 예로 들고 있다. “이들은 생의 변형에 대한 전문가로 이들은 역사 에 생성을 대립시킨다. 모든 판단과 어떤 공통분모도 갖지 않은 공약 불가능 한 이들은 생성의 무구함을 소지하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생성이란 범죄에 서조차, 혹은 그것이 여전히 생성이기만 하다면 지쳐 고갈된 삶에서조차 항 상 무구함을 가질 것이다.” (질 들뢰즈. 『시간-이미지』, 이정하 옮김, 서울: 시각과 언어, 2006, 282쪽. ‘거짓 역량’ 에 대한 설명은 255-303쪽을 참고.)

4) 자크 오몽, 『멈추지 않는 눈』, 심은진, 박지회 옮김, 파주: 아카넷, 2019, 141 쪽. 오몽은 또 이렇게 설명한다. “영화 상영의 신비와 투영을 물질화하는 것 은 어듬이다. 스크린 위에 유령들을 존재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어둠이다.” (같은 책.)

5)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산타클로스에 대한 아이들의 믿음을 정신분석학적으 로 설명한 옥타브 마노니Octave Mannoni의 분석에 토대를 두어 영화의 허 구에 대한 관객의 믿음을 설명하는 표현이다. (크리스티앙 메츠, 『상상적 기 표』, 이수진 옮김, 서울: 문학과지성사, 2009, <믿음의 구조>, 112-115쪽을 참고.)

거짓이 참을 잊게 하는 것, 허구가 사실을 망각하게 만드는 힘, ‘거짓의 역량’은 예술의 본질이 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에는 영화에 대한 여러 은유가 있다. <헤어질 결심>에는 자기반영적인 여러 장치들, 영화에 대한 박찬욱 감독의 생각이 담겨있다. 박찬욱은 관객을 영화에 몰입시키며, 영화를 이야기한다. 영화의 스크린이 무엇인지, 관객은 영화라는 허구의 세계에 어떻게 들어가게 되는지, 영화 이미지는 시간을 어떻게 다루는지를 표현 한다. 그리고 훌륭한 영화란 어떤 것인지를 이야기한다.

II. 시선의 경계, 스크린

스크린은 영화와 관객이 만나는 경계이다. 현실과 허구가 만나는 곳, 관객의 시선과 카메라의 시선이 교차하는 곳이다. <헤어질 결심>에는 스 크린을 암시하고 상징하는 이미지가 도처에 있다. 시선의 주체가 불분명 한 시점, 가능하지 않은 시선이 만드는 이미지가 그러하다. 클로즈업으 로 포착된 죽은 기도수의 핏발선 부릅뜬 눈 위로 개미가 돌아다닌다. 이 어 기도수의 눈 안쪽에서 본 시선으로 멀리 산 위에 있는 해준이 보인다. 죽은 자가 바라본 시선이라니! 남편에게 폭행을 당한 흔적이 있는 서래 몸의 X레이 사진을 해준이 병원에서 볼 때도 주체가 모호한 시선이 등 장한다. 서래의 몸에 새긴 기도수 이름 이니셜 문신을 해준이 자세히 보 려 하자 이 영상 안쪽의 시선으로 해준의 모습을 보여주는 쇼트가 등장 한다. 컴퓨터 스크린 안쪽에서 바라본 시선이다. 인물의 시선으로는 불 가능한 시점이다. <헤어질 결심>에는 이처럼 가능하지 않은 시점, 주체를 알 수 없는 시 선이 자주 등장한다. 해준 부부와 서래 부부가 우연히 시장에서 만나는 장면에는 죽은 생선의 눈을 통해 정안을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해준과 서래가 스마트 폰으로 문자를 교환할 때 스마트 폰 안쪽에서 해준을 바 라보는 시선, 해준이 서래의 살인을 알게 된 스마트 폰 앱의 138이라는 숫자를 볼 때 안쪽에서 울먹이는 해준을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이러한 쇼트는 표면과 이면, 안과 밖의 관계를 언급한다.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의 관계, 드러난 것과 숨겨진 것의 관계를 보여주는 쇼트들은 영화의 아무 곳에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쇼트들은 감춰진 진실과 연관이 있다. 기도 수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었으며, 임호신의 죽음은 서래의 살인 으로 일어난다. 이포 수산시장에서의 만남으로 해준의 아내 정안은 남편 의 불륜을 알게 된다. 스마트폰은 결국 서래의 살인을 밝히고, 또 서래의 자살 이유를 알려준다. 영화의 이야기는 진실과 거짓의 관계, 감춰진 것을 밝히는 과정으로 전개된다. 육체를 벗어난 누군가가 투명한 존재가 되어 기괴한 시선으로 보여준 불명료한 이미지들은 밝혀질 또 다른 이면의 모습, 드러날 진실, 미래의 시간을 암시한다. 이 이미지들은 참과 거짓의 관계, 대칭의 구조 에 대한 은유이다.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진실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쇼트는 관계를 알려주고 경계를 표현한다. 흐릿하거나 굴절된 방식으로 저편의 모습을, 즉 허구의 이야기가 펼쳐 지는 세계를 보고 있는, 이편에 있는 시선은 누구의 것인가? 허구의 인물 을 통한 시선은 ‘주관적 쇼트’라고 부른다. 주관적 쇼트는 관객이 인물과 동일시하게 하는 중요한 장치이다. 관객은 한 등장인물의 눈을 통해 대 상을 바라본다. 관객이 영화의 허구 세계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드는 장치 이다. 그러나 <헤어질 결심>에서의 이런 불명료한 시선들은 주관적 쇼트 가 아니다. 죽은 자의 눈을 통해, 혹은 죽은 생선이나 스마트 폰 스크린 안쪽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이러한 쇼트는 인물이 존재할 수 없는 공간에서 본 시선이다. 이 시선은 허구에 속한 시선이 아니다. 누군 가가 바라보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쇼트, 카메라의 응시만 있는 쇼트 이다. 카메라는 위치하지만, 이야기의 공간에서 벗어난 곳에서 포착한 이 시선은 카메라의 존재를 알려주는 시선이다. ‘주관과 객관을 넘어서서 그 내용의 자율적 관점으로 드러나는 순수한 형식’, 카메라를 느끼게 하 는 것, 카메라의 자의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6)

6) Marc Vernet, Figures de L’absence, Paris: Cahiers du cinéma, 1988, p.57. 스크린 앞쪽의 시선, 카메라의 시선이 지닌 자의성에 대해서는 <L'en-deca> pp.49~57를 참고.

기도수의 눈을 통해 본 저편, 산 위의 해준은 허구에 속해 있지만 그 리고 기도수의 죽은 몸도 허구에 속해 있지만, 죽은 그의 눈을 통해 바라 보는 시선은 허구에 속한 것은 아니다. 이 시선은 이야기가 펼쳐지는 허 구와 영화를 보는 현실의 중간, 경계에 위치한다. 흐릿하거나 왜곡된 분 명하지 않은 영상은 영화 이야기의 세계와 관객이 있는 현실을 나누는 막을 보여준다. 허구과 현실을 나누는 경계이다. 이 경계는 “이질적이면 서 한 체계 안에서 상관적인 두 주체 간의 차별화만이 존재하는 곳이다.”7) 영화의 투명성을 방해하는 흐릿한 이미지들은 막, 표면, 현실과 허구가 만나는 접면, 바로 스크린이라는 경계이다. 이 쇼트들은 관객을 허구의 세계와 거리를 두게 만드는 장치이다. 프레임 안의 프레임처럼, 영화 속 의 영화처럼 이것은 “반성적 의식, 순수하게 영화적인 코기토Cogito” 8) 를 만든다.

7) 질 들뢰즈, 『운동-이미지』, 유진상 옮김, 서울: 시각과 언어, 2002, 142쪽.

8) 위의 책, 145쪽.

관객은 스크린이라는 경계를 넘어야 한다. 관객이 이 경계를 넘어 인물의 시선으로 허구 세계를 바라볼 때, 허구를 믿을 때 영화 보기 의 즐거움이 시작된다.

III. 가까이, 더 가까이

관객은 어떻게 허구를 믿는가? 인물의 정서를 어떻게 느끼는가?

살인 을 둘러싼 잔혹한 이야기라 해도 <헤어질 결심>이 아름답고 매혹적인 영화로 여겨지는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의 정서를 전달하기 때문이다9) .

9) 들뢰즈는 예술이 지닌 ‘거짓 역량’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초월적인 가치로 서의 판단이 아닌, 내재적인 평가로서의 정서가 문제인 것이다. 나는 판단한 다 대신 나는 사랑한다 혹은 증오한다. 판단을 정서로 대체시켜버린 니체는 ‘선과 악을 넘어’는 그러나 좋음과 나쁨을 넘어를 의미하지 않는다.” (질 들 뢰즈. 『시간-이미지』, 281쪽.)

관객은 어떻게 잔인함을 잊은 채 사랑의 정서를 즐기는가? 해준의 감정에 어떻게 몰입하는가? 살인자 서래를 매혹적인 여자로 생각할 수 있는 가? 감정의 전이를 만드는 영화적 장치는 무엇인가? 서래에게 매혹된 해준이 잠복하며 서래를 관찰하는 장면은 훌륭한 연 출을 통해 해준의 정서로 관객을 끌어들인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사랑 하는 사람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한다. 해준의 잠복근무는 관음증과 유 사하다. 해준은 자신은 숨긴 채 바라보는 대상에 욕망을 투사한다. 차 안에서 망원경으로 서래를 보는 해준의 모습이 보인다. 이어 멀리 창문을 통해 노인을 돌보는 서래의 모습이 등장한다. 해준과 서래의 모 습이 여러 번 쇼트-역쇼트로 반복된다. 이러한 편집은 해준의 주관적인 시점을 전달하며 관객을 해준의 시점에 동일시시킨다. 관객은 해준의 눈 을 통해 서래를 관찰한다. 해준은 서래를 자세히 보기 위해 몸을 앞으로 내민다. 가까이 더 가까이. 이어 망원경을 내리는 해준 얼굴의 클로즈업 숏이 연결된다. 카메라는 빠르게 줌아웃하며 해준이 서래와 같은 공간에 있음을 알려준다. 보는 주체와 보이는 대상의 경계가 사라지고 해준은 스스로 보이는 대상이 된다. 그러나 외화면에서 소리는 여전히 서래를 지켜보는 해준의 숨소리가 들린다. 한 화면에서 이미지와 소리는 독립적 으로 존재한다. 앵무새에게 말을 걸며 모이를 주는 서래, 할머니에게 책을 읽어주는 서래. 무성 영화처럼 서래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외화면에서 해준 의 깊은 숨소리는 더 크게, 더 가까이 관객에게 들린다. 숨소리는 바라보 는 해준을 대신하는 장치, 관객이 인물과 동일하게 느낄 수 있는 장치이 다. 숨소리는 일종의 ‘자아의 목소리’이다. 깊은 숨소리는 대사보다 더 강 하게 관객을 인물의 내면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미셸 시옹(Michel Chion)은 이렇게 말한다. “목소리가 우리의 몸 안에서 다른 사람, 즉 동 일시를 전달하는 등장인물의 몸의 떨림을 느끼게 하는 데에만 쓰일 때 관객의 투사와 신제척인 내포의 효과의 극단을 우리는 대화나 대사 또는 말에서가 아니라 근접한 숨소리나 거친 숨, 한숨 속에서 찾을 수 있다.” 10) 10) 미셸 시옹, 『영화의 목소리』, 박선주 옮김, 서울: 동문선, 2005, 82쪽. 98 비교문학 제89집 (2023년 2월) 깊은 숨소리는 청각적 차원의 클로즈업이다. 해준이 서래를 관찰하는 장 면의 숨소리는 보는 자-보이는 대상이라는 시점 샷의 일반적인 편집을 따르지 않으면서도 관객을 해준과 계속 동일시하게 만드는 장치이다. 카메라는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서래의 입술과 눈을 보여준다. 서래 에게 더 가까이 가고 싶은 해준의 욕망이다. 서래에게 다가간다. 깊은 숨 을 쉬며 서래의 냄새를 맡는다. 해준의 욕망은 상상 속에서 서래 옆으로 가까이 간다. 해준은 서래 옆에 있지만 서래는 해준의 존재를 모른다. 몰 래 서래를 탐색하는 해준의 시선이다. 훔쳐보는 시선은 유령처럼 자신을 감춘다. 해준은 바라보는 주체이지만 동시에 대상이 된다. 서래에게 매 혹된 해준은 자신의 욕망을 감춰야 한다. 이미지 속의 해준과 숨소리를 들려주는 해준은 같은가? 시각적인 것 과 청각적인 것은 다른 층위에 있다. 관객은 해준을 관찰하듯 보지만 그 의 숨소리를 통해 그가 보고,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전달받는다. 소리는 관객을 계속 해준의 육체에 머물게 한다. 해준의 숨소리가 관객 안에서 울린다. 숨소리는 시각의 관점인 ‘시점’처럼 소리의 관점, ‘청점’ 11)을 만 든다.

11) 청점(point d’écoute)은 음향적 시점이다. 이에 대한 설명은 (미셸 시옹, 『영화와 소리』, 지명혁 옮김, 서울: 민음사, 2000, <3장. 청점>, 61-70쪽을 참고.)

전화나 스마트 워치의 녹음된 목소리도 청점을 통해 해준과 관객의 동 일시를 연출하는 또 다른 장치이다. 간병하는 서래에게 해준이 전화하는 장면도 유사하다. 서래의 목소리는 전화기를 통해 들리는 소리이지만 해 준의 목소리는 일상의 소리이다. 전화기를 통한 소리는 듣는 사람을 강 조하는, 즉 관객을 듣는 사람에게 동일시시키는 사운드 연출이다. 관객 은 해준을 통해 서래의 목소리를 듣는다. 서래가 해준의 전화를 받는다. 해준은 전화를 받는 서래 옆에서 말을 한다. 그러나 소리는 두 사람이 같은 공간에 실제로는 있지 않다는 것을 알려 준다. 해준의 소리는 일상적인 소리이지만 서래의 목소리는 전화기 에서 나오는 소리이다. 이어 차안에서 망원경을 들고 전화하는 해준의 모습이 보이고 다시 전화를 받는 서래의 모습이 이어진다. 밤에 해준이 서래를 관찰할 때 스마트 워치에 녹음하는 소리도 같은 효과를 전달한 다. 관객을 해준과 동일시시키는 청점의 사용이다. 이 장면에서 청점의 사용이 흥미로운 것은 이미지와의 관계에서이다. 해준의 숨소리는 주관적인 것, 서래를 관찰하는 주체와 연결되지만, 이 미지 속의 해준은 관객에게는 관람의 대상이 된다. 파졸리니가 말하는 ‘자유간접화법’ 12)과 같은 형식이다. “그 자체로 이질적인 한 체계 내에서 상호연관 된 두 주체의 분화 또는 분열의 과정을 지시한다.” 13) 이제 청각적인 것은 시각적인 것의 연장이기를 멈추고 소리와 이미지 는 각각 자족적인 프레임을 만든다. 이미지와 소리는 서로 다른 층위에 속한다. 소리는 외화면에서 이미지를 감싸며 프레임 안의 프레임을 만든 다. 마치 영화 속 영화처럼. 관객은 외화면에 있는 소리, 해준의 숨소리 나 전화 혹은 스마트 워치를 통한 소리에 자신을 동일시하지만 해준의 상상을, 해준의 욕망이 투사된 이미지를 관람한다. 해준은 관객과 함께 있지만 또 관객이 바라보는 대상이 된다. 해준은 주체이면서 동시에 대 상이 된다. “자아에 대한 두 관점 간에 일어나는 한 인간의 동요, 정신의 여기-와-저기이다.” 14)

12) 자유간접화법은 다른 사람의 담화에서 이해하고 거기에서 받은 인상을 직 접적인 형태로 재현하는 것이다. 말을 전하는 사람은 발언권을 양도하지 않고도 인물들 스스로 말하게 내버려 둠으로 그 말에 담긴 생생한 인상을 그대로 살리며 전달할 수 있게 된다. 파솔리니는 자유간접화법을 영화에 표현한다. 카메라가 등장인물의 의식 속에 들어가 인물의 눈으로 본 세상, 인물의 내적 지각에 따른 세계의 모습을 표현하는 형식이다.

13) 질 들뢰즈. 『시간-이미지』, 128쪽.

14) 같은 책.

분화된 것을, 주체이자 대상인 해준을 연결하는 것 은 관객의 사유, 이미지에 대한 관객의 독해이다. 주관적 소리와 객관적 이미지의 만남, 상상과 현실의 공존, 두 경계에 관객이 위치한다. 관객만이 이미지와 사운드를 연결하는 존재이기 때문 이다. 이미지는 해준의 상상을 보여준다. 서래가 있는 공간에 함께 있고 싶어 하는 해준의 욕망, 서래의 냄새를 맡고, 서래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서래를 온 감각으로 느끼고 싶어하는 해준의 욕망이 만든 상상의 이미지이다. 상상의 이미지는 영화와 같은 것, 관객은 해준의 머릿속에 서 펼쳐지는 영화를, 영화 속 영화를 본다.

IV. 시간의 소용돌이

허구의 인물에게 매혹당한 관객은 또한 시간 속으로 잠겨 들어야 한 다. 영화는 시간을 조작하고 변형해 이야기를 만든다. “영화는 시간이 지 각으로 주어지는 유일한 경험이다.” 15) 장 루이 셰페르(Jean Louis Schefer)는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은 특별한 시간성을 즐기기 위한 것이라 고 말한다. <헤어질 결심>에는 시간의 미로가 도처에 있다. 길을 잘 찾 아야 한다. 서래가 거짓의 편에 있다면 해준은 진실을 추구하는 인물이다. 시체가 마지막으로 보았을 범인을 찾는 것이 해준의 일이다. 감춰진 진실을 찾 는 것은 시간과 관련된 일이다. 거짓이 만들어진 시간, 진실을 감추는 시 간을 찾는 일이다. <헤어질 결심>에서 진실이 밝혀지는 장면의 시간 표 현은 흥미롭다. 서래와의 사랑 이야기가 미래를 향하는 선조적 형식으로 진행된다면 범죄 수사와 관련된 이야기는 과거를 향하며 복잡한 시간의 미로를 만든다. “탐정들의 수사 플롯은 서사의 시작부터 그 안에 삽입되 어 있던 다른 층위의 이야기, 범죄 이야기가 아닌 범죄에 대해서 말하는 이야기로 끝은 맺는다.” 16) <헤어질 결심>에서 해준은 홍산호가 저지른 살인 사건과 서래가 저지른 살인 사건, 즉 첫 남편인 기도수를 죽인 일과 두 번째 남편인 임호신의 살인 사건을 수사한다. “사건 수사 이야기의 시선은 지나온 과거를 향한다.” 17)

15) 장 루이 셰페르, 『영화를 보러다니는 평범한 남자』, 김이석 옮김, 서울: 이 모션 북스, 2020, 326쪽.

16) 로라 멀비, 『1초에 24번의 죽음』, 이기형, 이찬욱 옮김, 서울: 현실문화연구, 2007, 118쪽.

17) 같은 책.

해준은 시간을 탐색하고 분석하는 사람이다. <헤어질 결심>의 추리 장면은 시간의 소용돌이처럼 빠르고, 혼란스럽 다. 서래가 남편을 죽인 사실을 해준이 알아내는 장면은 여러 갈래의 시 간이 합쳐지고 흩어지며 편집된 흥미로운 장면이다. 해준은 서래가 지나 간 길과 등산로를 동일한 동선으로 지나가며 서래의 행적을 추적하고 추 측한다. 추적은 ‘현재’에, 추측은 ‘과거’에 속한 것이다. 스마트 워치에 녹 음하는 해준의 보이스 오버 소리가 내래이션처럼 서래의 행적을 설명한 다. 할머니의 스마트폰을 자신의 것과 바꾸는 서래의 모습과 이를 엿보 는 해준의 모습을 차례로 보여준다. 해준과 서래의 모습이 차례로 편집 되며 현재와 과거가 자유롭게 오간다. 등산로 입구로 가는 버스를 탄 해준의 모습은 차가 멈추고 사람들이 내릴 때는 서래의 모습으로 편집된다. 이 장면에서는 보이스오버로 등산 루트를 설명하는 죽은 서래의 남편 기도수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어 목 소리의 기원이 밝혀진다. 스마트폰으로 기도수의 방송을 보고 있는 해준 의 모습이 등장한다. 현재의 해준에서 과거의 서래로, 그 이전인 기도수 의 과거 시간까지 끼어든다. 순차적으로 전개되던 이야기의 시간은 멈추 고 현재, 과거, 혹은 미래가 마치 시간의 소용돌이처럼 뒤섞인다. 하나의 프레임 안에 현재와 과거가 함께 있기도 하다. 간병하는 할머 니 집에 출근한 것처럼 사무실에 전화를 하는 서래는 해준의 옆을 지난 다. 소리의 차원에서도 현재와 과거가 구분 없이 이어진다. 서래의 행적 을 추측하며 워치에 녹음한 해준의 목소리와 전화하는 서래의 목소리가 한 쇼트 안에 공존한다. 해준과 서래가 산을 오르는 모습에서는 보이스 오버로 기도수의 방송 목소리가 들린다. 보이스 오버의 소리는 힘들게 산을 오르는 해준의 신 음, 서래의 비명 소리가 뒤섞인다. 해준이 미끄러지자 기도수는 미끄러 운 산이라고 설명한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서래가 높은 곳에서 비명을 지르자, 기도수는 풍경이 멋지다고 말한다. 기도수는 마치 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서로 다른 시간이 한곳에서 중층적으로 모 여 시간의 지층이 펼쳐진다. 홍산호가 범인임을 밝혀내고 추격하는 장면에는 시간의 비약이 담겨 있다. 해준과 서래는 홍산호가 범인임을 추리한다. 이미지는 살인한 홍 산호, 과거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외화면에서 두 사람의 현재 대화가 이 미지를 감싼다. 해준과 서래의 현재와, 홍산호의 과거 시간이 교차되며 편집된다. 이어 총을 든 수완이 홍산호를 잡으러 오가인의 집으로 간 쇼 트로 이어진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던 시간은 해준과 수완이 홍산호를 추격하는 모습, 현재 이후의 모습, 미래의 모습으로 연결된다. 그러나 소 리는 여전히 외화면에서 ‘오가인 먼데 사는데’라는 해준의 목소리가 들린 다. 해준의 소리가 현재라면, 이미지는 미래의 것이다. 이처럼 현재가 과 거로, 그다음 미래로 이어진 후, 홍산오의 자살로 추격전이 끝나자 미래 처럼 제시되던 이야기의 시간은 현재가 된다. 관객은 현재가 과거가 되 는, 미래가 현재가 되는 ‘시간의 소용돌이’를 목격한다. 해준의 시선이 시간의 경계를 없애기도 한다. 산 정상에서 서래가 남 편을 죽이는 장면은 시선의 기능이 흥미롭다. 하나의 쇼트 속에서 시선 을 통해 현재에서 과거로 연결된다. 정상에 올라 기지개를 켜는 기도수 뒤로 다른 루트로 정상에 오른 해준이 등장한다. 쇼트는 바뀌지 않았지 만 기도수는 사라지고 현재가 과거를 밀어내는 것처럼 그 자리에 해준이 앉는다. 앉아있는 해준이 뒤를 돌아보자 빠른 패닝으로 기도수를 산 아 래로 밀려고 달려오는 서래를 보여준다. 해준의 ‘시선’이 현재와 과거를 연결한 것이다. 해준의 시선은 시간의 경계를 해체한다. 이 영화에서 시선은 중요한 주제이자, 연출 장치이다. 해준의 시선을 통해 시간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여러 장면이 등장한다. 해준이 서래에게 기도수의 자살로 위장한 편지를 물어 볼 때도, 수완이 서래집에 와서 폭 력을 썼다는 거짓말을 설명할 때도 해준이 시선을 던지자 한 프레임 안 에 과거의 이미지가 연결된다. 해준이 뒤를 돌아보자 뒤편에서 협박편지 를 만드는 서래의 모습이 보인다.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기도수가 거실문을 닫는 모습이 한 프레임 안에 표현된다.

수완이 폭력을 썼다는 서래의 거짓말을 물어볼 때에도 해준의 시선은 과거를 연결한다. 해준이 왼쪽으로 시선을 던지자 소파에 누워 잠을 자는 수완의 모습, 거실을 난 장판으로 만드는 서래의 모습이 이어진다. 시선을 통해 현재와 과거의 경계를 없애는 것은 해준의 회상에서만 등장한다. 패닝으로 촬영된 이 쇼트들은 화면을 평면적으로 만들면서 마치 두루마리 그림을 펼친 것처 럼 시간을 나열한다. 해준의 시선을 통해 다른 시간이 한 프레임 안에서 연결될 때, 시간은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는다. 해준은 뒤를 돌아보지만 보이는 대상과 해준 은 함께 있다. 해준의 주관적인 시점이 아니다. 관객은 해준을 통해 바라 보는 것이 아니라 바라보는 해준도, 보이는 대상도 모두 객관적인 시점, 관람의 시점이 된다. 마치 해준의 시간이 과거의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 가고 그 가장자리에 관객의 시간, 관람의 시간이 있는 것과 같은 시간의 소용돌이가 생겨난다. 시간 속에 또 다른 시간이 있는 것과 같은. 프레임 안의 프레임과 같은 시간의 지층이 만들어진다. 해체되고 재조립된 시간, 한 프레임 안에 담긴 시간의 지층을 이해해 야 하는 것은 관객 몫이다. 관객은 기억과 상상력으로 시간의 이미지를 해석해야 한다. 관객의 시선은 이미지의 독서가 되어야 한다. 이미지의 독서, 이미지를 읽는다는 것은 “겉면의 한 방향을 따르는 대신 뒤집고 다시 뒤집어 보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지에 대한 새로운 분석이다.”18)

18) 질 들뢰즈. 『시간-이미지』, 472쪽.

V. 나가는 말: ‘저 폰은 바다에 버려요, 아무도 못 찾게 해요’

영화의 마지막, 해준이 서래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폰에 녹음된 말을 듣는 장면은 흥미롭다. 스마트 폰에 녹음된 목소리이지만 마치 영화의 장면처럼 과거의 이미지와 소리가 등장한다. 해준이 폰의 소리를 정지하 고 플레이하는 장면은 영화를 정지시키고 다시 플레이하는 것과 같다.

이미 관객이 본 1부의 이야기가 영화 속 영화처럼 표현된다. 해준이 녹 음을 듣는 순간 시간은 복잡하게 갈라진다. 해준이 플레이 버튼을 누르 자 서래가 자신의 목소리를 몰래 녹음할 때의 장면, 과거의 시간이 이어 진다. 모래 구덩이에 들어간 현재의 서래가 사철성에게 맞고 이 폰에 녹 음된 소리를 듣는 과거의 서래로 편집된다. 이어 장면은 교차 편집으로 만조가 되는 바닷가에 구덩이를 파고 들어간 서래의 모습에서 서래를 찾 는 해준으로, 녹음된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해준으로, 그리고 녹음된 말 을 다시 따라하는 해준으로 바뀐다. “저 폰을 바다에 버려요, 아무도 못 찾게 해요.” 동일한 대사가 과거, 전과거, 현재로 메아리처럼 이어진다. 시간의 소용돌이처럼 이어진다. 서래가 들어간 물웅덩이의 소용돌이는 시간의 소용돌이와 같다. 만조 로 빠르게 차오르는 바닷물이 서래가 있는 웅덩이에 소용돌이를 만들다 웅덩이의 흔적을 지운다. 서래의 존재를 지운다. 서래는 무의 존재가 되 었다. 시간이 무화되는 것은 영원성을 얻는 것이다. 서래는 진실을 담고 있는 폰처럼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해준이 찾을 수 없도록. 영원히 존재하고 싶어서. 서래가 영화를 은유한다면 해준은 ‘똑바로 보려고 애쓰는 자’, 시간의 미로를 보는 자, 관객의 은유이다. 해준은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 ‘밤에 잠도 못자고’ 영상을 찾아 헤매는 불면증 환자와 같다. 호미산에서 서래 는 해준에게 “밤에 잠도 못자고 벽에 내 사진 붙여놓고 내 생각만 해요” 라고 말한다. 서래는 사건이 미결로 남아 해준이 늘 바라보며 생각하는 시선의 대상이 되고 싶어 한다. 서래를 사라지게 한 소용돌이는 관객만 알고 있다. 관객은 모래 웅덩 이에 물이 차오를 때 서래의 숨소리를 들은 유일한 증인이다. 관객은 서 래가 있는 곳을 아는 유일한 목격자이다. 박찬욱 감독은 영화의 마지막 에 관객만의 시간을 위해 서스펜스를 사용한다. 인물은 정보를 모르고 관객만이 알고 있는 때 서스펜스는 시작된다. 19)

19) 히치콕적인 서스펜스의 출발은 관객에게 인물보다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해 관객을 영화에 끌어들이는 장치이다. 트뤼포는 히치콕 영화의 서스펜스를 이렇게 설명한다. “서스펜스를 만들어 내는 기술은 관객을 끌어들이는, 그 래서 관객이 실제로 영화에 참여하도록 하는 기술이다. 서스펜스 영화에서 영화 창작은 감독과 영화 사이의 양자만의 상호 작용이 아니라 관객 또한 참여를 요구받는 3자 간의 게임이 된다.” (프랑수아 트뤼포, 『히치콕과의 대화』, 곽한주, 이채훈 옮김, 한나래, 1994, p.20.)

해준은 모르고 관객만이 서래의 흔적을 알고 있다. 관객을 유일한 증인으로 만드는 시간이다. 서스펜스의 시간은 관객에게 고뇌의 시간을 만든다. 관객은 서래의 죽 음을 목격한 유일한 증인이지만, 해준에게 서래가 있는 곳을 알려주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 장 두셰(Jean Douchet)는 이렇게 말한다. “인물은 움직일 수 있지만 서스펜스 영화의 관객은 도망칠 수 없다. 그 는 의자에 묶여있다. 관객은 바라보고 있는 인물의 고뇌를 공유할 뿐 아 니라 자신의 고뇌도 받아들여야 한다. 관객은 자신이 매혹된 것의 희생 자이다.” 20)

20) Jean Douchet, Hitchcock, Paris: Cahiers du cinéma, 1999, p.7.

<헤어질 결심>은 관객의 상상을, 고뇌와 사유를 요구한다.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감독이 생각하는 영화를 이야기한다. 훌륭한 영화란 깊은 바다에 빠진 폰과 같은 것, 진실을 아무도 못 찾게 하는 것. <헤어질 결심>에는 장르가 뒤섞이고, 플롯과 서브플롯이 엉켜있다. 여러 상징과 은유가 숨은 그림처럼 배치되어 있다. 모호함은 이 영화를 이해 하는 열쇠이다. 훌륭한 영화는 하나의 설명으로 혹은 하나의 진실로 해 석될 수 없다는 것이 박찬욱의 생각이다.

관객 수 만큼의 울림이, 관람 횟수만큼의 감동이 있는 영화, 그런 영화는 바다 깊은 곳에 빠트린 진실 과 같은 것이다. 박찬욱의 <헤어질 결심>은 영화와 스크린, 그리고 관객 을 정의하는 영화에 대한 영화이다.

◈ 참 고 문 헌

들뢰즈, 질. 『운동-이미지』, 유진상 옮김, 서울: 시각과 언어, 2002. _____. 『시간-이미지』, 이정하 옮김, 서울: 시각과 언어, 2006. 멀비, 로라. 『1초에 24번의 죽음』, 이기형, 이찬욱 옮김, 서울: 현실문화연구, 2007. 메츠, 크리스티앙. 『상상적 기표』, 이수진 옮김, 서울: 문학과지성사, 2009. 셰페르, 장 루이. 『영화를 보러다니는 평범한 남자』, 김이석 옮김, 서울: 이모션 북스, 2020 시옹, 미셸. 『영화와 소리』, 지명혁 옮김, 서울: 민음사, 2000. _____. 『영화의 목소리』, 박선주 옮김, 서울: 동문선, 2005. 오몽, 자크. 『멈추지 않는 눈』, 심은진, 박지회 옮김, 파주: 아카넷, 2019. 이동진. 『이동진의 부메랑 인터뷰』, 고양: 위즈덤하우스, 2020. 트뤼포, 프랑수와. 『히치콕과의 대화』, 곽한주, 이채훈 옮김, 한나래, 1994. Douchet, Jean. Hitchcock, Paris: Cahiers du cinéma, 1999. Vernet, Marc. Figures de L’absence, Paris: Cahiers du cinéma, 1988. 『씨네 21 스페셜』 , 「2022 올해의 한국영화 감독, ‘헤어질 결심’ 박찬욱 감독」 2022, 12, 22,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101696 (마 지막 방문: 2023년 1월 5일).

◈ ABSTRACT

Self-rerlexivity in Park Chan-wook’s

Eun Jin Shim

Director Park Chan-wook’s is a hybrid narrative that connects a love story to a mystery story. The symmetrical structure of the story, divided into parts 1 and 2, implies the relationship between truth and lies. Seorae is the one who leads the change in the story. Seorae transforms like a character in different movie genres and quotes movie lines as if they were her own words, which shows how she is a metaphor for movies. There are self-reflective forms in this film. The screen is expressed through a point of view where the subject of the gaze is unclear. The sound of breathing, the voice on the phone, and the sound recorded on the phone are devices that make the audience identify with Hae-jun’s emotions. The audience views an imaginary image in which Hae-jun’s desire is projected; it is an image like a movie within a movie. Hae-jun, who seeks the hidden truth, is a person who searches and analyzes time. Hae-jun’s gaze connects the present and the past in one frame. He makes the strata of time like a frame within a frame, or a movie within a movie. is a film that depicts director Park Chan-wook’s cinematic aesthetics and art. Ambiguity is the key to understanding this film. Like a “phone thrown into the depths of the sea”, a great movie cannot be interpreted as an explanation or as a single truth. A movie that resonates with the audience and connects with many viewers is like the truth hidden in the sea is a movie about cinema, the screen, and film as it is defined by its audience.

☞Key words: Park Chan-wook, , self-reflexivity, Gilles Deleuze, Michel Chion, point of listening,

suspense

논문접수일 : 2023. 2. 6. 논문심사일 : 2023. 2. 19. 게재확정일 : 2023. 2. 19

KCI_FI002935287.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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