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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야기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의 신학적 성경적 타당성 고찰 /김찬영.대신대

[한글초록]

죄인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 받는다는 교리는 복음적 교회

의 서고 넘어짐을 결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인에게 전가되는 그리 스도의 의(義)의 원인인 그리스도의 순종의 정확한 성격과 범위에 대해서는 이견이 역사적으로 없지 않았고, 오늘날에도 국내외 교회에서 논쟁이 적지 않다.

상황에서 본 논문은 능동적 순종 교리의 신학적이고 성경 적인 타당성을 고찰해보았다.

이를 위해서 먼저,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 과 능동적 순종을 정의하고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의 쟁점을 드러 내었다.

둘째,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관련 있는 장 칼뱅의 이해와 웨 스트민스터 표준문서의 진술과 회의를 살펴봄으로써 능동적 순종 교리가 개혁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인지 검토했다.

끝으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가 성경적으로 뒷받침되는지 살펴보았다.

그 결과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을 포함하는 그리스도의 전체 순종이 칭의의 근거가 된다는 가르침이 성경적이고 개혁주의적인 교리로 타당하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주제어: 칭의, 전가,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그리스도의 전체 순종, 장 칼뱅,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

I. 들어가는 말

이신칭의 교리는 참 교회의 존립을 좌우하는 복음적인 교리로서 종교 개혁의 내용적 원리로 간주되었다.

비록 죄인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영화 롭게 하고 즐거워할 수 있도록 죄와 심판에서 해방되는 구원이 칭의보다 범위가 넓지만, 칭의는 구원에 필수적이고 복음의 핵심 내용이다.

죄인의 칭의란 무엇인가?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에서 칭의에 대한 좋은 정의를 발견할 수 있다.

 

칭의는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값없이 베풀어주시는 은혜의 행위입니다.

하 나님께서 은혜 가운데 그들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그들을 받아들여 하나 님이 보시기에 의롭다고 여겨 주십니다.

이것은 그들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났 기 때문도 아니고, 그들이 무엇을 이루었기 때문도 아닙니다.

다만 그리스도 께서 이루신 완전한 순종과 온전한 속죄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전가시켜 주시고, 그들은 오직 이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1)

1) 김학모, 『개혁주의 신앙고백』, 김학모 편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4), 619. 이후부터 웨스트민스 터 대요리문답은 LC로 표기한다.

이 정의에 따르면, 칭의의 유익은 모든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께 의로운 자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죄인이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인정받으려 면 완벽한 죄 사함과 완전한 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은 죄인의 어떤 자질이나 행함 때문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의” 2)가 그리스도를 믿는 죄인에게 전가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죄인이 의롭다 함 받는 유일한 근거는 그리스도께서 죽기까지 순종함으로 말미암는 그분의 완전한 의(義)이다.

그런데 칭의의 근거로서 그리스도의 순종이 어떻게 정의되어야 하는 지, 그 정확한 범위에 대한 물음이 역사적으로 제기되어 왔다.3)

특히 칭의의 토대로서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 전체의 어떤 측면을 묘사하기 위한 용어인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이 국내외 교회 안에서 적잖은 논쟁이 되 어 왔다.4)

2)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33문답은 칭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한다. “의롭다 칭함을 받는 것은 하 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은혜에서 나오는 것으로서, 우리에게 주시는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가 오직 믿음으로 받으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의롭게 보고 영접해 주시는 것입니다”(김학모, 『개혁주의 신앙고백』, 878).

3) 능동적 순종과 관련된 주된 교리사적 논쟁에 대해서는, 김재성,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능동순 종, 과연 논쟁의 대상인가? 구원의 본질인가?』 (서울: 언약, 2021), 171-211; 김병훈, 박상봉, 안상 혁, 이남규, 이승구, 『그리스도의 순종과 의의 전가』, 김병훈 편 (수원: 합신대학원출판부, 2022), 15-26을 보라.

4)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을 부정하는 현대 외국 학자들의 견해에 대해서는, 이승구, “최근에는 그리 스도의 능동적 순종을 부인하는 것이 대세인가?”, 『그리스도의 순종과 의의 전가』, 516-30을 보라.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을 부인하는 한국 교회의 목소리로는, 서철원, “능동적 순종과 관련한 문제 점들”, 「이단(사이비)피해대책조사연구위원회 세미나 발표 논문」 (2021.02.16.): 1-15; 서철원, “[특 별기고] 능동적 순종, 개혁신학적인가?”, 「기독신문」 (2021.04.19.): 이창모, “김병훈 교수의 능동순 종 주장은 무지인가, 경거망동인가?”, 「교회와이단」 (2021.06.08.); 정이철,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허무는 교수들”, 「바른믿음」 (2021.11.06.); 정이철, “정승원 교수(총신 신대 원장)의 박형룡의 능동순종에 대한 연구 발표”, 「바른믿음」 (2022.05.21.); 정이철,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 (서울: 도서출판다움, 2022)를 보라.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는 성경적 가르침인가?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은 역사적 개혁주의 교리인가?

아니면 성경에서 벗어난 비성경적인 주장이고, 전통적 개혁주의로부터의 이탈인가?

이런 질문에 답하는 것은 복음의 핵심 내용에 속한 칭의의 신학적 토대에 대한 탐구로서 복음주의 신학에도 대단히 중요하다.

본 연구는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첫째,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 에 대한 불필요한 논쟁이나 혼동을 줄이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 종 교리를 정의하고 그 교리가 실제로 가르치는 내용을 설명하고 쟁점을 분명히 할 것이다.

둘째, 바르게 정의된 능동적 순종 교리가 개혁주의의 전통적 가르침인지 살펴볼 것이다.

여기서는 개혁교회의 중요한 교사 가 운데 한 명인 장 칼뱅(Jean Calvin, 1509~1564)의 이해를 살피고, 개혁교 회의 공식적인 합의 가운데 하나인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5)의 진술이 능 동적 순종 교리와 일치하는지 검토할 것이다.

5)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는 회의의 모든 문서를 지칭할 때가 있지만, 통상적으로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을 가리킨다. Cf. Alan D. Strange, The Imputation of the Active Obedience of Christ in the Westminster Standards, 윤석인 역,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에 있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전가』 (서울: 부흥과개혁사, 2022), 16 n. 2.

그리고 끝으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가 성경적인 가르침인지 검토할 것이다.

이를 통해서 그 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을 포함하는 그리스도의 전체 순종이 칭의의 유일 한 근거가 된다는 가르침이 성경적이고 개혁주의적인 교리로 타당한지 확인할 것이다.

II.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는 무엇을 가르치는가?

1. 용어정의

로마서 5:19이 가르치는 것처럼,6) 칭의의 근거는 그리스도의 순종이 다.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이라는 말은 그리스도께서 죄인의 구원을 위해 행하신 통합된 전체 순종의 두 측면을 묘사하는 전통 적인 신학 용어이다.7)

6)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7) 박형룡 박사는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능동적 순종과 피동적 순종”으로 묘사하는 것이 “신학계의 관례”라고 평한다(박형룡, 『교의신학 IV, 기독론』 [서울: 한국기독교 교육연구원, 1983], 350).

리처드 멀러가 진술하는 것처럼, 이 용어에 대한 기 본적인 정의는 다음과 같다.

능동적 순종(obedientia activa)은 그리스도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특히 그분 의 [공적] 사역동안, 그리스도께서 무죄하고 하나님의 뜻에 완벽하게 순종한 그의 삶을 묘사하는 것이다.

수동적 순종(obedientia passiva)은 그리스도께 서 죗값을 지불하기 위해서 아무 저항 없이 당하고 받아들인 고난과 죽음을 가리킨다.8)

이 구별은 그리스도의 순종을 종류가 다른 순종으로 구별하거나 전체 순종의 두 측면을 단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다.

수동적 순종이 그리스도의 생애의 한 기간이나 특정한 사건이나 행위나 십자 가의 죽음에 한정되지 않는 것처럼, 능동적 순종도 마찬가지이다.

순종의 양 측면은 그리스도의 생애 전체에 하나로 얽혀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율 법의 형벌적이고 이행적인 요구에 응답하는, 그리스도의 전(全) 생애의 순종에 대한 신학적 구별이다.9)

먼저,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은 그리스도께서 죄에 대한 율법의 형벌적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고난 받 으신 것을 가리킨다.

십자가에서의 죽음이 수동적 순종의 절정일 수 있지 만, 수동적 순종은 특정한 사건이나 고난에 한정되지 않는다. 십자가에 달 리는 것을 포함하는, 전 생애 동안 죄인을 위해 고난 당하심이 수동적 순 종이다.

그런데 “수동적 순종(passive obedience)”은 그리스도께서 비자 발적으로 고난을 겪으셨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10)

8) Richard A. Muller, Dictionary of Latin and Greek Theological Terms: Drawn Principally from Protestant Scholastic Theology, 2nd ed (1986; Grand Rapids: Baker, 2017), 237. [필자 의 번역].

9) 박형룡, 『교의신학 IV, 기독론』, 350: “그리스도의 능동적 피동적 순종은 유기적 총전의 보충적 부분 들로 봄이 가하다.”

10) “수동적”이라고 번역된 라틴어 passiva는 고난받는다는 의미를 갖는 patior에서 유래했다. 김재 성은 “수동적 순종”이라는 용어에 대한 오해를 줄이기 위해서 “희생적 순종”이라는 말을 제안하기 도 한다(김재성,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48).

비자발적이라면 참된 순종일 수 없다.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율법의 형벌과 저주를 자발적으로 담당하셨다는 점에서 참으로 능 동적인 고난이었다.11)

그러면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은 무엇인가?

능동적 순종도 그리스 도의 죽음을 배제함 없이, 우리 주님의 전체 순종에 대한 묘사이다.

능동 적 순종이란, 그리스도께서 전 생애 동안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요약되는) 율법의 적극적인 모든 요구를 만족시킨 삶을 가리킨다.

참으 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을 완전하게 사랑하시고 하나님의 명령 에 다 순종하셨다.

능동적 순종 교리는 그리스도께서 죄인의 구원에 필요 한 의(義)를 얻기 위해서 대리적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적극적으로 성취하 셨다고 가르친다.

흔히 그리스도의 순종의 절정인 십자가의 죽음을 수동 적 순종에 돌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의 죽음은 능동적 순종의 최고 표현 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죽기까지 복종 한 사랑이면서 동시에 죄인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린 이웃 사랑의 절정 으로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명령에 대한 순종의 극치이다.12)

죽산 박형룡 박사(1897-1978)가 표현한 것처럼, 수동적 순종이 “대리적 수난” 으로서 그리스도의 “전 생애와 특별히 제사적 죽음을 포함”하는 것처럼, “능동적 순종도 그의 대리적 수행”으로서 “생애와 죽음의 전부를 포함”한 다.13)

그리스도는 말구유에서 무덤까지 율법의 형벌을 자발적으로 감당하 셨을 뿐 아니라,14)

11) Cf.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요 10:18). Cf. Muller, Dictionary of Latin and Greek Theological Terms, 238: “능동적 고난(passio activa)은 그의 삶과 죽음이 참된 순종임을 가리킨다.”

12)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 15:13).

13) 박형룡, 『교의신학 IV, 기독론』, 350. 한국 장로교 신학의 정체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박형룡의 신학 전반과 그의 정통신학 규명에 대해서는, 이상웅, “한국 장로교회의 신학적 전통에 대한 죽산 박형룡의 이해”, 「조직신학연구」 38 (2021): 28-64를 보라.

14) 게르할더스 보스(1862-1949)가 멋지게 표현한 것처럼, 우리 “구주의 할례의 피”는 “골고다에서 흘린 피”만큼이나 대속적이다(Geerhardus Vos, Reformed Dogmatics, vol. 3: Christology, trans. and ed. Richard B. Gaffin Jr. [Bellingham, WA: Lexham, 2014], 3:192).

능동적 순종 교리에 따르면, 생애 내내 우리 대신 율법 을 지키고 우리를 위해 사셨음을 가르친다.

2. 능동적 순종 교리의 쟁점

그리스도께서는 일평생 완전한 삶을 영위한 흠 없는 어린양으로서 죄 인을 위해서 보배로운 피를 흘렸다.

그런데 단지 그리스도의 무죄한 순종 의 삶을 긍정하는 것은 능동적 순종 교리가 아니다.

게다가 흠 없고 무죄 한 삶이 우리 대신 죗값을 지불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는 데 필수적이라는 것(을 포함하지만)도 능동적 순종이 의미하는 전부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의 삶이 하나님의 공의를 만 족시키는 희생제물이 되는 조건이 될 뿐 아니라, 완전한 순종의 삶이 죄인 을 대신해 율법 준수의 적극적 요구를 성취하는 대리적 순종이라고 가르 친다.

칭의는 죄 사함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영생의 권리를 얻는 것을 포함 한다.15)

15) LC 70.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이 율법의 형벌적 요구를 만족시킴으로 써 죄 사함을 얻는 것에 관한 것이라면, 능동적 순종은 율법 이행의 요구 를 성취함으로 영생의 권리로서 적극적인 의를 얻는데 초점이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과 능동적 순종이 분리되지 않는 것처럼, 칭의의 유익인 죄 사함과 영생의 자격도 분리되지 않는다.

하나 없이는 다른 하나도 없다.

그래서 능동적 순종 교리에 따르면, 중보자 그리스도의 순종의 수동적 측면만 신자에게 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순종이 전가되어 야 한다.

요컨대, 능동적 순종 교리의 참된 쟁점은 죄인에게 전가되는 그리스도 의 완전한 의(義)의 내용으로서 순종의 범위에 대한 문제이다.

천국의 자 격을 얻는 의(義)의 원인으로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도 포함되느냐는 것이다.

프란시스 튜레틴(Francis Turretin, 1623-1687)이 능동적 순종의 쟁점을 잘 포착한 것처럼, 자기 백성의 구원을 위해서 율법의 모든 요구를 만족시키는 그리스도의 순종이 그분의 죽음에 한정되는가?

또는 죽음과 함께 고난에 한정되는가?

아니면 그리스도의 지상 생애 시작부터 마지막 까지 우리를 위해 행하시고 당하신 모든 순종이 영생에 필요한 의를 성취 하는가?16)

16) Francis Turretin, Institutes of Elenctic Theology, ed. James T. Dennison, Jr., trans. George Musgrave Giger (Phillipsburg, NJ: P&R, 1994), 2:446. 이신열이 말하는 것처럼, 프란 시스 튜레틴의 『변증신학강요』는 “종교개혁 이후 개혁파 스콜라신학의 정점”이다(이신열, “프란 시스 튜레틴[1623-1687]의 창조론”, 「조직신학연구」 38 (2021): 148).

능동적 순종 교리는 후자를 긍정한다.

그렇다면 이런 교리는 개 혁주의의 전통적인 가르침인가?

III.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은 역사적 개혁파 교리인가?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의 분명한 구별은 칼뱅의 사후 1570년대에 비로소 등장한다.

게다가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이라는 용어 자체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요리문답에 등장하지 않는다.17)

17) 하지만 아래에서 살펴볼 웨스트민스터 총회 회의록에서는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이라는 용 어와 구별이 명시적으로 나타난다. 이에 비해, 루터파의 일치신조(1577)는 능동적 순종과 수동 적 순종이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을지라도, 그리스도의 전체 순종이 칭의의 근거를 구성한다고 분 명히 고백한다. 3항 14조: “그러므로 순수한 은혜로 믿음에 또는 신자에게 전가되는 의(義)는 그 리스도의 순종, 고난, 그리고 부활이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를 위해서 율법을 만족시켰고, 우리 의 죗값을 지불하셨기 때문이다”; 3항 15조: “~고난과 죽으심에서만 아니라, 우리 대신 자발적으 로 율법 아래 있으셔서 자신의 순종으로 율법을 성취하시기도 한 그분의 순종이 의를 위해서 우 리에게 전가된다. 그래서 그분의 삶과 죽으심에서 행하고 고난 당하심으로써 우리를 위해 그분 의 하늘 아버지께 드린 이 완전한 순종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경건하 고 의롭다고 여기시고, 영원히 구원하신다”(Formula of Concord: Solid Declaration, https:// thebookofconcord.org/formula-of-concord-solid-declaration/article-iii/ [2023.10.06. 접속]). Cf. 김재성,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149-150.

그러나 해당 교 리가 전문적인 용어로 표현되기 이전이나 동일한 신학 용어로 정확히 고 백 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교리의 내용이 가르쳐졌을(또는 부정되었을) 수 있다.

그렇다면 고난과 죽음에 한정되지 않는 그리스도의 율법의 완전 한 준수가 신자에게 전가된다는 가르침이 칼뱅이나 웨스트민스터 표준문 서에서 발견되는가?

1. 장 칼뱅

칭의에 대한 칼뱅의 정의에 따르면,18) 칭의는 죄 사함(또는 죄책을 전 가하지 않음)과 그리스도의 의(義)의 전가로 구성된다.

이런 정의에서 칼 뱅은 칭의의 서로 연관되는 두 유익을 말한다.

그런데 칼뱅은 죄 사함을 다음과 같이 칭의와 동일시하기도 한다.

“믿음의 의는 오직 죄 사함에 존 재하는, 하나님과의 화목”이고,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죄 사함에 의해서 그들의 더러운 것들이 씻겨나가 정결하게 될 때뿐이다. 이것이 마땅하므 로, 우리는 이러한 의를 한 마디로 ‘죄 사함’이라고 부를 수 있다.” 19)

“사도 는 여기에서 죄 사함과 의를 긴밀하게 연결시키는 가운데 그것들이 완전 히 동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20)

18) John Calvin, 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 문병호 역, 『1559년 라틴어 최종판 직역 기독교 강요』 (서울: 생명의말씀사, 2020), 3. 11. 2=3:343: “~우리는 칭의를, 하나님이 우리를 의로운 자 들이라 여기시고 맞아 주셔서 자기의 은혜 속에 거하게 하시는 그 받아들이심이라고 단순하게 설 명하고, 죄 사함과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이후부터 『기독교강요』로 표기 한다. Cf. John Calvin, Ioannis Calvini Commentarii, 박문재 역, 『칼빈주석 21: 고린도전후서』 (파주: 크리스천다이제스트, 2016), 82(고전 1:30에 대한 주석):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의로움’ (iustitia)이 되셨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죽으심을 통해서 우리의 죄를 대속 하셨고, 그의 순종이 우리의 ‘의로움’으로 전가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게 되었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죄 사함과 하나님이 우리를 값없이 받아주시는 것에 있고,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둘을 얻기 때문이다.”

19) Calvin, 『기독교강요』, 3. 11. 21=3:384.

20) Calvin, 『기독교강요』, 3. 11. 22=3:386. 윌리엄 커닝엄(1805-1861)이 지적한 것처럼, 영단번 의 죄 사함이 아니라, 내적 갱신과 도덕적 변화를 칭의에 포함시키는 로마교의 의화(義化)를 고려 할 때, 죄 사함으로서의 칭의에 대한 칼뱅의 강조는 시의적절해 보인다(William Cunningham, Historical Theology [Carlisle, PA: Banner of Truth, 1960], 2:14-15). 로마교의 의화(義化)에 대해서는, 이윤석, “트렌트, 제2차 바티칸, 『가톨릭교회 교리서』의 칭의와 성화 교리에 대한 개혁 신학 관점의 비판적 고찰, 「조직신학연구」 37 (2021): 132-138을 보라. 또한 칼뱅은 특징이나 일 부분으로 전체를 표현하는 제유법에 익숙했다. 십자가는 부활을 포함하는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익숙한 제유법적 표현이고(『기독교강요』, 2. 16. 13), 회개와 믿음이 한 동전의 양 측면인 것처럼 (『기독교강요』, 3. 3. 5), 죄 사함과 의의 전가를 포함하는 칭의 전체를 죄 사함으로 표현할 수 있었 을 것이다.

만약 이런 진술이 칼뱅이 칭의의 유익에 대해서 말하는 전부라면, 그래서 칭의가 죄 사함에 불과하고,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가 죄 사함의 설명적 보충에 불과하다면, 칼뱅이 능동적 순종 교리를 부정한다고 판단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판단은, 영생의 보상과 율법 준수와 의로움의 관계, 죄인 에게 있어 완전한 율법 준수의 불가능함, 그리고 그리스도의 완전한 율법 준수로 획득된 의(義)에 대한 칼뱅의 주장을 고려할 때 타당해 보이지 않 는다.

그에 따르면, “의의 완전함”을 가르치는 “율법에 대한 완전한 준수 가 하나님 앞에서의 의”이고, 따라서 “그렇게[율법을 완전하게 준수] 해야 사람은 하늘 심판좌 앞에서 의롭다고 여겨”지고, “율법에 대한 의로운 순 종에는 구원의 영원한 보상이 기다린다.” 21)

그러나 비록 “영생의 상급”이 율법 준수에 부여된다고 할지라도,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율법을 온전 히 준수한 자가 발견되지 않”는다.22)

그렇다면 칼뱅은 죄인의 소망을 어디 서 발견하는가?

오직 그리스도에게서 발견된다.

왜냐하면 그분이 우리 대 신 율법 준수의 책임을 지신 분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율법의 요구를 다 지킬 수 있을 때에 비로소 그 율법이 제공할 수 있 는 것을 우리는 그리스도에게서 찾아야 한다......만약 의가 율법의 준수에 있다면, 그리스도가 친히 그 짐을 지심으로 하나님의 호의를 취하셔서 마치 우리가 율법의 준수자라도 되었던 양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다는 사실을 누가 부인할 것인가?23)

21) Calvin, 『기독교강요』, 2. 7. 3=2:203. Cf. 『기독교강요』, 2. 7. 8=2:212 n. 403: 하나님은 “오직 완 전한 의에만”(nonnisi perfectae iustitiae) 상급을 베푸신다.

22) Calvin, 『기독교강요』, 2. 7. 3=2:204.

23) Calvin, 『기독교강요』, 2. 17. 5=2:506.

칼뱅에 따르면, 율법의 완전한 순종이 의(義)이고 완전한 의에 대한 보 상이 영생이지만, 죄인에게 불가능한 이 요구를 그리스도께서 대신 감당 함으로써 죄인이 율법의 준수자로 간주된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의 내용을 발견한다.

그런데 칼뱅에게서 율법에 대한 그리스도의 순종의 전가에 대한 가르 침이 가장 분명하게 나타나는 곳은, 그가 1556년 새해 첫날 전한 신명기 21장 설교에서 갈라디아서 내용을 해설하는 부분이다.

그에 따르면, 율법 의 명령에 순종해 율법을 성취하지 않고는 의(義)에 이를 수 없기에, 그리 스도께서 율법 아래 나신 것은 “그분의 순종이 우리에게 전가”되어 “마치 우리가 그 같은 순종을 가지고 온 것처럼”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기 위해서 다.24)

죄인은 아무도 이런 순종을 할 수 없기에 그리스도 안에서만 의로워 진다.

어떻게 그러한가?

주권적인 하나님으로서 율법 아래 있지 않는 분 이 “자발적으로 율법에 스스로를 복종시키시고 우리를 위해 율법의 멍에 를 지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모든 점에서 완전하게 이행함”으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고 간주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순종하셨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는 마치 우리가 “완전한 순종”을 행한 것처럼 인정하신다.25)

24) John Calvin, The Sermons of Master John Calvin Upon the First Book of Moses Called Deuteronomy, iBooks, 1535. https://www.monergism.com/thethreshold/sdg/calvin/ Sermons%20on%20Deuteronomy%20-%20John%20Calvin.pdf (2023.10.10. 접속): “He[Paul] says that because we cannot attain to righteousness, but by fulfilling the Law in all points, and by being discharged before GOD: it behooved our Lord Jesus Christ to be subject to the Law to the intent that his obedience might now be imputed unto us, and God accept thereof as though we brought the like obedience of our own. When we speak of being justified before God, how is that to be understood? Verily that we should obey the things that God commands us in his Law”.

25) Calvin, The Sermons of Deuteronomy, 1535. Cf. John Calvin, Ioannis Calvini Commentarii, 박문재 역, 『칼빈주석 20: 로마서』 (파주: 크리스천다이제스트, 2013), 171(롬 5:19 에 대한 주석): “아울러, 사도는 이 의를 ‘순종하심’이라고 부름으로써 이 의가 어떤 종류의 의인지 를 보여준다. 여기에서 우리가 특히 주목할 것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기 위해서 행위로 의롭다 하 심을 받고자 한다면 율법의 일부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 전체를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요구를 모두 만족시키신 순종의 범위를 칼뱅은 어떻게 이해하는가?

그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 을 그리스도의 죽음이나 특정한 사건이나 시기에 한정하지 않는다.

그리 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제거하고 의를 획득하기 위해 어떻게 하셨는가?

라는 물음에, 칼뱅은 그리스도의 순종의 전(全) 과정을 통해 이것을 획득하셨다고 분명히 답한다.26)

칼뱅에 따르면, 구원을 위한 순종의 정점이 십자 가이지만, “그분이 자기 삶에서 나타낸 나머지 순종도 배제되지 않”고 시 작부터 끝까지 전부 포함한다.27)

결론적으로, 비록 칼뱅이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이라는 말을 사용 하지 않고, 이후 개혁신학자들만큼 분명하게 구별하지 않는다고 할지라 도, 그리스도의 완전한 율법 준수, 영생, 그리고 의의 전가에 대한 그의 이 해를 생각할 때, 믿는 죄인에게 전가된 그리스도의 전체 순종에 기초해서 의롭다 간주되고 영생의 자격을 얻는다는 가르침이 그에게서 발견된다.28)

26) Calvin, 『기독교강요』, 2. 16. 5=2:462-463: “그런데 어떤 사람은 묻기를, 어떻게 그리스도가 죄를 물리치신 후에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반목을 걷어 내셨는지, 그리고 어떻게 의를 획득하셔서 하나 님을 우리에게 호의를 베푸시고 자비로운 분이 되게 하셨느냐고 한다. 이에 대해 우리는 그가 자신 의 순종의 역정(歷程)을 통해 우리를 위하여 이 일을 성취하셨다는 일반적인 대답을 할 수 있다. 이 것은 바울의 증언에 의해서 확정된다.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 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 5:19). 과연 다른 곳에서 사도는 우리를 율법의 저주로부터 구출해 내는 은총의 원인이 그리스도의 전체 삶에 미치는 것으로 여긴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려 하심이라’(적용. 갈 4:4-5)”.

27) Calvin, 『기독교강요』, 2. 16. 5=2:463: “그곳[사도신경]에는 구원의 완전한 요체가 존재한다. 그렇 다고 해서 그리스도가 일생 동안 수행하신 나머지 부분의 순종을 제외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칼 뱅은 자신의 제네바 요리문답(1541) 55에서, 구원과 직접적으로 관계있는 그리스도의 순종을 십자 가의 죽음에 한정하는 것처럼 말한 바 있다. 칼뱅의 해당 견해에 변화가 있느냐는 물음은 흥미로울 수 있지만, 제네바 요리문답 한 해 일찍 나온 그의 로마서 주석(특히, 5:19, 8:4)에서 그리스도의 순 종이 죄인에게 주어짐으로 말미암아 율법이 만족되어 의롭다 함 받는다고 이미 가르치고 있다.

28) 비록 용어에 있어서는 시대착오적일지라도, 능동적 순종에 대한 칼뱅의 이해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이해와 유사하다.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에 대한 에드워즈의 견해에 대해서는, 이윤석, “조나단 에드워즈의 『이신칭의』에 나타난 칭의 교리 이해에 대한 고찰”, 「조직신학연구」 41 (2022): 98-99 를 보라. 이윤석에 따르면, 에드워즈는 “수동적 순종뿐 아니라 능동적 순종의 측면을 함게 강조한 다. 그러나 그것을 굳이 능동적 순종, 수동적 순종으로 엄격하게 구분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순종이 라는 표현으로 그 두 가지를 모두 포괄적으로 지칭하자고 하는 입장을 갖고 있다”(이윤석, “조나단 에드워즈의 『이신칭의』에 나타난 칭의 교리 이해에 대한 고찰”, 99).

2.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

전통적인 개혁교회는 성경이 신앙과 본분의 무오한 유일의 규범임을 인정하면서도 고대신조와 개혁교회 신앙고백서를 크게 존중해왔다.

개혁교회가 실제로 믿어온 역사적 개혁신앙을 포착할 수 있는 역사적 기록이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이다.

만약 이 신앙고백문이 능동적 순종 교리의 내용을 긍정하고 가르친다면, 능동적 순종은 역사적 개혁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으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는 능동적 순 종 교리를 긍정하는가?

아니면 부정하는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1장(cf. LC 70, SC 33)이 칭의를 다룬다.

우 리의 연구 주제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부분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1 장 1절과 11장 3절이다.

11장 1절에 따르면, 칭의는 하나님이 효과적으 로 부르신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들의 인격을 의롭게 여기시고 영 접”하시는 은혜인데, “그리스도의 순종과 속죄를 그들에게 돌리심으로 (by imputing the obedience and satisfaction of Christ)” 말미암는다.29)

그 리고 11장 3절에 따르면,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순종과 죽으심으로 의롭 게 된 모든 사람들의 빚을 온전히 갚아 주셨”고, “그들을 대신한 그리스도 의 순종과 속죄를 받으셨다.” 30)

일단 우리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자체 에서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하나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는 “능동적 순종”이라는 전문용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함께 그리스도의 순종을 칭의의 근거로써 분명히 말 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신자에게 전가되는 그리스도의 “순종”의 구 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 순종의 정확한 범위에 대해 상술하지 않는다.

그 런데 당시 웨스트민스터 총회 회의 기록에 따르면, 회의는 제47차 회의 (1643년 9월 6일)에서 제52차 회의(1643년 9월 12일)까지 그리스도의 능 동적 순종 교리와 직접 관련이 있는 열띤 논쟁이 이어졌다.31)

29) 김학모, 『개혁주의 신앙고백』, 417.

30) 김학모, 『개혁주의 신앙고백』, 419.

31) The Minutes and Papers of the Westminster Assembly, 1643-1652, ed. Chad Van Dixhoorn (Oxford University Press, 2012), 2:48-107. 게다가 기존의 39개 신조 11항 개정을 위해서 칭의의 “형상인”으로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the active and passive obedience of Christ)”을 가하자는 개정안 제안에 대한 위원회의 보고는 1643년 9월 5일 제46 차 회의 때 이미 이루어졌고(Minutes and Papers of the Westminster, 2:39), 9월 18일 열린 제 57차 회의에서는 이 교리의 증거 구절에 대한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Minutes and Papers of the Westminster, 2:130-135를 보라).

 

따라서 신앙고백 작성에 관여한 자들이 그리스도의 순종의 성격에 대해서 어떻게 이 해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열띤 논쟁 이후 최종 투표에서 “능동적 순종 과 수동적 순종”에 상응하는 “전체 순종(whole obedience)” 32)이라는 말을 신앙고백서에 포함시킨다는 입장이 압도적으로 우세했고, 반대표는 50명 가운데 토마스 가테이커(Thomas Gataker)를 포함해서 서너 표에 불과했 다.33)

다시 말해서, 웨스트민스터 회의 신학자들은 칭의의 근거를 그리스 도의 고난과 죽음에 제한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을 긍정했다.

능동적 순종 교리를 거부한 작성자들은 소수였고, 능동적 순종 교리를 명 시적으로 고백하는 신앙고백서 작성이 결의되었다.

그러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1장의 최종 형태(1645-46)와 실제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에는 “전체 순종”이라는 말 대신에, 그냥 “순종”이 라는 말이 사용되었다.

회의에서 압도적인 찬성을 받은 “전체적”이라는 형용사가 빠진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능동적 순종 교리가 개혁교회 정 통 신앙의 시금석이 아니기 때문에, 능동적 순종 교리를 부정하는 소수파 를 허용하는 양보나 절충인가?34)

32) Minutes and Papers of the Westminster, 2:74.

33) 총회 회의록에는 반대가 “3 ”라고 기록되어 있다(Minutes and Papers of the Westminster, 2:107). 그러나 반대투표자 가운데 실명에 대한 언급은 가테이커뿐이고, 결국 반대 자로 기록된 그의 이름도 삭제되었다. “가테이커 씨 삭제됨(‘Mr. Gataker’ deleted)”이라는 기록이 회의록 각주에 남아 있다(Minutes and Papers of the Westminster, 2:107 n. c.). Cf. Strange,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에 있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전가』, 81-82.

34) 반 딕스혼에 앞서 웨스트민스터 회의록을 편집한 밋첼은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가 능동적 순종을 긍정하지 않거나, 적어도 능동적 순종을 부정하는 사람들을 수용했다고 추정한다(Alex F. Mitchell and John Struthers, Minutes of the Sessions of the Assembly of Divines [Edinburgh: William Blackwood and Sons, 1874], lxv-lxvii; Alex F. Mitcell, The Westminster Assembly; Its History and Standards [London, 1883; reprint, Edmonton, Alberta: Still Water Revival Books, 1992], 155-156을 보라).

비록 총회 회의록은 이 누락 자체에 대해 서 역사적으로 분명하게 판단할 수 있는 더 이상의 정보를 제공해주지 않 는다.

하지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요리문답들의 해당 주제와 관련된 내용들과 진술들을 아래와 같이 고려할 때,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가 능동적 순종 교리를 내용적으로 여전히 긍정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데 무 리가 없어 보인다.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는 사람이 생명을 얻는데 율법을 성취하는 완 전한 순종의 필요성을 말한다.

하나님은 “완전하고 인격적인 순종을 조건 으로” 아담에게 생명을 약속한 “행위언약”을 맺으셨다(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 7.2).

그러나 아담은 불순종하여 타락했고, “타락한 이후 그 누구도 도덕법(또는 행위언약[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7.3])으로 의와 생명에 이 를 수는 없”다(LC 94)35).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의 독생자 주 예수를 하나 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로 정하기를 기뻐하셨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8.1).

그리스도는 “이 직분을 이행하기 위하여 율법 아래 나셨고, 그것[율 법]을 완벽하게 성취”하셨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8.4).36)

“주 예수께서 는 완전히 순종하시고 영원한 성령을 통해 자신을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단번에 바치심으로” 하나님 아버지가 요구하는 의를 성취하고 영원한 기 업을 획득하셨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8.5).37)

그리고 그리스도의 비하에 대해서 가르치는 LC 48에 따르면, 그리스도 의 완전한 순종은 무죄한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 라, 율법에 자신을 복종시켜 율법을 완전하게 성취한 평생을 가리킨다.38)

하나님 아버지의 공의를 만족시키고 의와 영생을 획득하는 것은 그리스 도의 수동적 순종에 한정되지 않고, 율법을 완벽하게 성취한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이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9.6)39)

35) 김학모, 『개혁주의 신앙고백』, 650.

36) 김학모, 『개혁주의 신앙고백』, 400.

37) 김학모, 『개혁주의 신앙고백』, 403.

38)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율법에 복종시켜 이를 완전히 이행하셨으며......삶 속에서 자기를 낮추셨 습니다”(김학모, 『개혁주의 신앙고백』, 595).

39) 김학모, 『개혁주의 신앙고백』, 463.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에 대한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의 내 용적 긍정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으로는, Micah J. McCormick, “The Active Obedience of Jesus Christ,” (Ph.D. Dissertation, The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2010),59-67을 보라.

역사적으로 볼 때, 웨스트민스터 회의 구성원들 가운데 그리스도의 능 동적 순종 교리에 대한 반대가 없지 않았지만,40) 대다수가 능동적 순종 교 리를 신앙고백 문서화하기로 찬성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비록 능 동적 순종 교리를 명시적으로 긍정하는 “전체”라는 용어가 결국 빠지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는 칭의의 근거를 그리스도 의 고난이나 죽음에 제한하지 않고, 완전한 순종에 둔다.

그리고 칭의의 근거로서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과 능동적 순종을 함께 긍정하는 “전체” 라는 말이 빠진 것은, 아마도 수동적 순종만을 칭의의 근거로 주장하는 경 건한 소수파 형제들을 신앙고백으로 배제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 일 수 있다.41)

그래서 보다 일반적이고 덜 명시적인 표현을 통해서 그리스 도의 전체 순종이 칭의의 근거라는 내용적 진리가 문서화 된 것 같다.42)

40) 투표로 결정된 이후에도, 카테이커는 해당 조항의 증빙구절을 논의하는 회의에서도 능동적 순종 교리에 대해서 재차 반대했다(Minutes and Papers of the Westminster, 2:132).

41) 실제로 소수파 가테이커는 이 표현이 신앙고백서 조항에 허용되면 의견이 다른 형제들을 배제시 키고 사역을 가로막을 수 있다고 호소했다(Minutes and Papers of the Westminster, 2:91). 또 한, 앨런 스트레인지가 말한 것처럼, 웨스트민스터 회의는 총회나 교회의 치리회와 같은 권위가 없 었고,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는 교회 치리회의 산물이 아니다(Strange,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 에 있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전가』, 96-97, 153; cf. Alan D. Strange, “The Imputation of the Active Obedience of Christ at the Westminster Assembly,” in Drawn into Controversie: Reformed Theological Diversity and Debates Within Seventeenth-Century British Puritanism, eds. Michael A. G. Haykin and Mark Jones [Goe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2011], 50). 오히려, 총회 회의록에 따르면, 능동적 순종 교리를 주장한 헐리(Herle) 는 논쟁에서 존경받는 형제들에게 “이단”이라고 일컬은 것에 대해 사과했다(Minutes and Papers of the Westminster, 2:58). 42) 능동적 순종에 대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원래 의도에 대한 교회의 해석(아니무스 임포넨띠 스[animus imponentis])에 대해서는 이 논문의 범위를 넘어가는 것이지만, 이후 교회의 해석은 능동적 순종 교리가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와 일치하는 가르침으로 판단하는 쪽으로 기운다. 이 와 관련해서는, Strange,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에 있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전가』, 155- 156; 안상혁, “그리스도인의 순종과 의의 전가 논쟁 도표”, 『그리스도의 순종과 의의 전가』, 12-13 을 참고하라.

IV.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는 성경적인가?

신앙고백서는 정통신앙에 대해 존중받아 마땅한 역사적 정의를 제공 한다.

그러나 교리적 논쟁의 궁극적 재판관은 칼뱅과 같은 훌륭한 교사, 교회의 결정이나 신앙고백 전통이 아니라 하나님의 무오한 말씀인 성경 이다.43)

그렇다면 성경은 능동적 순종 교리를 명시적으로 또는 선하고 필 연적인 귀결로서 가르치는가?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죄인은 믿 음을 통해서 의롭게 되고 생명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순종의 절정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또는 고난을 포함하는 수동적 순종)만을 토대로 의롭 게 되고 구원받는가?

아니면 칭의와 구원의 근거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 종을 포함하는 순종 전체인가?

성경은 죄인을 구원하는 그리스도의 순종 의 범위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는가?

지면의 한계를 고려하여, 필자는 웨 스트민스터 회의에서 그리스도의 전체 순종과 이 교리의 증거 구절에 대 한 열띤 토론이 벌어졌을 때 자주 언급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순종을 직 접적으로 언급하는 바울 서신 두 곳44)과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을 가르 치는 복음서 내용을 시험사례로 검토하고자 한다.

43) 박형룡 박사가 말한 것처럼, 신앙고백서에 비성경적인 가르침이 있다면 “순성경화”가 필요할 것이 다(박형룡, 『기독교 현대 신학 난제 선평』 [서울: 은성문화사, 1975], 38). 장로교 신앙고백서의 중 요성에 대한 죽산 박형룡의 견해에 대해서는, 이상웅, “한국 장로교회의 신학적 전통에 대한 죽산 박형룡의 이해”, 37-39를 보라.

44) 1643년 9월 18일, 제57차 회의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성경의 장은 로마서 5장이다(Minutes and Papers of the Westminster, 2:131-134를 보라).

1. 로마서 5:18-19

이 구절은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에서 칭의에 관한 고백의 대표적인 증빙 구절이다.

이 말씀이 속해 있는 롬 5:12-21에서 바울은 아담과 그리 스도를 비교한다.

첫 사람의 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죄와 죽음에 이르렀다(롬 5:12, 18).

그러나 다른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의와 생명에 이른다(롬 5:18-19).

즉, 아담의 불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처럼 그리스도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된다(롬 5:19).

죄 는 죽음 안에서 왕 노릇 하지만 은혜가 의(義) 안에서 왕 노릇 하여 영생 에 이르게 한다(롬 5:21).

두 대표자 아담과 그리스도의 행위가 결정적이 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초래된 보편적인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될 수 있 는 단 하나의 길은 유일한 중보자 그리스도의 순종이다.

그렇다면 의(義) 와 영생을 가져오는 그리스도의 “의로운 행위”(롬 5:18)와 “순종”(롬 5:19) 이 십자가에 죽으시는 순종에 한정되는가?

아니면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 종을 포함하는 통합된 전체 순종인가?

그리스도의 “의로운 행위”(롬 5:18)와45) “순종”(롬 5:19)은 둘 다 단수 (單數)다.

단수인 이 의로운 행위와 순종은 그리스도의 죽음만 가리키는 가?

물론, 이 순종에 십자가가 포함되고, 십자가가 바울에게 중심적이라 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바울은 롬 5:10에서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 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고 말씀한 바 있다.

그렇다면 바 울은 단지 죽음으로만 말미암는 구원을 말하는가?

그런 것 같지 않다.

바울은 같은 롬 5:10에서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다고 가르 친다.

그리고 앞서 바울은 롬 4:25에서, 우리의 범죄 때문에 그리스도는 죽음에 넘겨지고,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 다고 말씀한다.

분명히 바울은 죽음과 부활을 함께 칭의의 근거로 말씀한 다.

부활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을 증명하고,46) 완전한 순종은 나머지 모든 순종과 분리된 십자가의 죽으심이라는 단일한 행위의 완전함보다는 전체 순종의 완전함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

45) 롬 5:18에서 “한 의로운 행위”에서 “한”(ἑνός)은 형용사적으로 중성 속격으로 해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남성 속격으로, 즉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로도 읽을 수 있다.

46) Geerhardus Vos, The Pauline Eschatology (Grand Rapids, MI: Eerdmans, 1961), 151; cf. Richard B. Gaffin Jr., Resurrection And Redemption: A Study in Paul’s Soteriology, 2nd ed. (Phillipsburg, NJ: P&R Publishing Company, 1987), 122. Cf. Brandon Crowe, “The Passive and Active Obedience of Christ: Retrieving a Biblical Distinction,” in The Doctrine on Which the Church Stands or Falls: Justification in Biblical, Theological, Historical, and Pastoral Perspective, ed. Matthew Barrett (Wheaton, IIlinois: Crossway, 2017), 449.

그리고 바울은 여기서 “의로운 행위(δικαίωμα)”라는 말을 특정한 한 정 없이 사용한다.

󰡔바우어 헬라어 사전󰡕(BDAG)에 따르면, 디카이오마 (δικαίωμα)의 용례 범주는 크게 세 가지,

첫째는 의로운 계명(롬 2:26; 8:4),

둘째는 의로운 행위(롬 5:18),

셋째는 의롭다 하심(롬 5:16)이다.47)

의로운 행위의 자연스러운 의미는 단지 형벌을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적 극적인 순종이다.48)

예를 들어, 동일한 단어가 사용된 요한계시록 19:8에 서, “옳은 행실”은 성도의 죽음과 고난의 인내를 포함하겠지만, 죽음과 고 난만 가리킨다고 해석하는 것은 타당해 보이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순종 이 십자가에서 최고로 나타났지만, 그리스도의 다른 순종을 그리스도의 의로운 행위에서 제외시키는 것은 부적절하다.

아담은 선악과를 먹지 말 라는 특별한 명령을 어겨 순종의 규칙인 도덕법에 불순종함으로써 죄와 죽음을 가져왔고, 타락 이후에는 아무도 도덕법을 지켜 의와 생명에 이를 수 없다.

왜냐하면, 칼뱅이 말한 것처럼,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자 한 다면 율법의 일부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 전체를 순종해야 하”기 때문이다.49)

47) Walter Bauer, Frederick W. Danker, William F. Arndt, and F. Wilbur Gingerich,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revised and ed. Frederick W. Danker. 3rd ed.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0), 249.

48) 웨스트민스터 총회 신학자 팔머(Palmer)는 이 단어는 성경에서 고난을 가리키는 경우가 없고 능동 적 의로움을 가리킨다고 주장했다(Minutes and Papers of the Westminster, 2:67). 또한 피틀리 (Featly)도 롬 5장의 의로운 행위가 성경에서 수동적 순종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없다고 해석했다 (Minutes and Papers of the Westminster, 2:94).

49) Calvin, 『칼빈주석 20: 로마서』, 171.

의(義)를 위한 이런 율법의 철저한 요구를 만족시키는 그리스도의 완 전한 순종을 특정한 순종 행위에 제한하는 것이 타당한가?

사람에 대한 도덕법의 요구가 전 생애의 완전한 순종이라면, 이런 율법의 요구를 만족 시키는 그리스도의 의로운 행위도 특정한 하나의 순종 행위로 간주하기보다는 그리스도의 생애 전체의 순종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50)

그런데 금지된 선악과를 먹은 아담의 “한 범죄”가 그리스도의 “한 의 로운 행위”와 짝을 이룬다면, “한 의로운 행위”가 십자가에 한정되는 것이 타당한 해석이 아니냐는 반론이 가능할지 모른다.

아담의 특정한 한 범죄 와 짝을 이루는 것이 그리스도의 특정한 하나의 순종인 그분의 죽으심이 라는 식이다.

게다가 둘 다 나무와 관련 있지 않는가?

이에 대해서, 크로우가 지적한 것처럼, “한”(ἑνός)은 중성 명사인 “범 죄”와 “의로운 행위”를 수식하는 것으로만 해석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 다.51)

남성 속격으로 “한 사람의” 범죄와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로 해석 하는 것도 문법적으로 가능하다.

실제로 롬 5:19에서의 ἑνός는 “한 사람” 을 가리킨다.

설령 롬 5:18의 더 일반적인 문법적인 독법이 “한 의로운 행 위”라고 하더라도, “한 의로운 행위”를 그리스도의 단일한 전체 순종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다.

십자가의 죽음으로 완성되는 그리스도의 전 생 애의 순종을 통합된 전체로서 이해 가능하다면, 그리스도의 전체 순종을 “한” 의로운 행위라고 일컫는 것에 무리(無理)가 없다.

심지어 로마서 5장 에서 그리스도의 순종이 십자가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가리킨다고 할지라 도,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이 배제될 필요가 없다.

수동적 순종과 능동적 순종은 그리스도의 통합된 순종에 대한 논리적인 구별이고,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다름 아닌 능동적 순종의 정점이고 완성이기 때문이다.52)

50) 칼뱅이 말한 것처럼, 구원의 원인이 되는 순종은 그리스도의 고난이나 죽음에 그치지 않고 “그리스 도가 일생 동안 수행하신” 모든 순종을 포함한다(Calvin, 『기독교강요』, 2. 16. 5=2:463).

51) Crowe, “The Passive and Active Obedience of Christ,” 451.

52) Crowe, “The Passive and Active Obedience of Christ,” 451-452. 맥코믹은 에덴동산의 선악 과와 함께 시작된 역사적 타락이 골고다의 십자가로 종결되는 구속사의 수미쌍관 구조로 읽기를 제안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대리적 고난으로만 아니라 최고의 사랑이 표현된 적극적인 순종의 극치라고 타당하게 주장한다(McCormick, “The Active Obedience of Jesus Christ,” 262).

2. 빌립보서 2:8-9

빌립보서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순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8).

여기서 그리스도의 순종은 십자가의 죽음 을 지칭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염두에 두고 있는 순종이 그리스도의 죽음뿐인가?

아니면 그리스도의 순종의 삶 전체를 포함하는가?53)

다음의 몇 가지 이유에서 그리스도의 순종 전체를 고려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이 타당해 보인다.

첫째, 이 구절의 보다 넓은 맥락을 고려할 때, 그리스도의 순종을 한정 적으로 말고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바울은 성육신하신 그리 스도의 자기를 낮춘 마음을 빌립보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고 섬겨야 하는 동기와 모범으로 제시하고 있다.54)

빌립보 성도들은 특정한 일이나 행동 에서만 아니라 모든 일에서 그리스도의 겸비한 마음과 순종을 본받으라 고 권면 받는다.

따라서 성도들에게 모범으로 제시되는 그리스도의 자기 겸비적인 순종은 십자가의 죽음만이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그분의 비하의 생애 전체를 가리킨다고 이해하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

그리스도는 일 평생 겸손히 순종하셨다.55)

53) 해당 구절은 웨스트민스터 총회 회의에서도 해석적 쟁점이었는데, 능동적 순종 교리 반대자 바인 즈(Vines)는 이 구절에서 그리스도의 순종을 십자가의 죽음에 한정하기 원한 반면(Minutes and Papers of the Westminster, 2:61), 윌슨(Wilson)은 그리스도께서 죽기까지 행한 모든 것을 가리 키는 것으로(Minutes and Papers of the Westminster, 2:75), 프라이스(Price)는 순종의 전 기간 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했다(Minutes and Papers of the Westminster, 2:106).

54)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는 말씀은 빌 2:14(“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의 권면에도 적 용될 것이다.

55) Crowe, “The Passive and Active Obedience of Christ,” 460.

둘째, “죽기까지(μέχρι Θανάτου)” 순종하셨다는 표현은 다른 순종을 제외하고 죽음의 순종만을 가리키는 표현이 아니라, 십자가의 죽음을 정 점으로 하는 전 생애의 순종을 포함한다고 이해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죽기까지”라는 표현의 유사한 용법에 비추어볼 때, 그리스도의 죽기까지 의 순종은 죽음에 못 미치는 순종을 배제하지 않는다.56)

빌 2:30에서57) “죽 기까지[죽기에]”가 또 등장한다.

에바브로디도가 죽을 지경까지 자기를 아 끼지 않고 바울을 섬겼다고 말씀한다.

죽음을 아직 경험하지 않은 에바브로디도의 경우, “죽기까지”는 죽음 자체를 제외한 모든 섬김을 포함하는 것임에 틀림없다.58)

그리고 크로우가 잘 지적한 것처럼, 빌 2:30의 에바브로디도의 죽기까지의 섬김은 빌 2:8의 십자가에 죽기까지의 순종의 모범 을 반영한다.

에바브로디도의 섬김이 모든 섬김을 포함하는 것처럼, 그리 스도의 죽기까지의 순종도 십자가의 죽으심에 한정되지 않는다(단, 그리 스도의 죽기까지의 섬김은 죽음까지 포함한다).59)

셋째, 해당 구절에서 그리스도의 비하가 그리스도의 승귀와 대조되고, 그리스도의 죽기까지의 순종은 그리스도의 비하의 삶의 정점으로서, 그 리스도의 승귀(즉, 부활, 승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좌정하심)의 원인이 다.60)

맥코믹이 잘 지적한 것처럼, 성육신이 겸비의 시작이고, “겸비의 수 단은 순종이다.” 61)

56) McCormick, “The Active Obedience of Jesus Christ,” 278.

57)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μέχρι Θανάτου)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58) 유사한 용법이 딤전 6:14(“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에서도 발견된다(강조는 필자가 첨가한 것). 이 명령을 지키라는 바울의 권 면은,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는 그 순간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의 전 기간에 적용된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59) Crowe, “The Passive and Active Obedience of Christ,” 460-461. 게다가 설령 “μέχρι”가 그 리스도의 죽음을 배타적으로 지칭한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죽음은 통합된 전체 순종을 가리키는 제유로 이해가능하다. 웨스트민스터 총회 신학자들 가운데 능동적 순종 교리 반대자들은 성경의 분명한 표현에 이해를 한정하고 제유를 거부한 반면, 찬성파들은 제유에 자주 호소했다(대표적으 로 호일[Hoyle], Minutes and Papers of the Westminster, 2:53, 104).

60)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빌 2:9).

61) McCormick, “The Active Obedience of Jesus Christ,” 278.

순종의 정점은 십자가이지만, 순종의 시작은 십자가가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높임 받는 것은 성육신할 때부터 죽기까지 일평생 완전하게 순종하셨기 때문이다.

3.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에 대한 복음서의 가르침

복음서가 예수님을 온전히 순종하시는 하나님의 아들로 강조한다는 것은 틀림없다.

복음서는 그리스도의 완전히 거룩한 삶을 반복해서 묘사 한다.

하나님의 독생자는 동정녀 마리아에게 날 때부터 “거룩한 이”였고 (눅 1:35), 모든 점에서 율법에 일치하셨다.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눅 2:24)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장자로서 하나님께 드려졌고, 부모에게 “순종”했고(눅 2:51), 성전세금을 내셨고, 유월절과 다른 절기들을 지키셨 다.

그리스도는 첫째 계명을 포함해서(마 4:10) 십계명을 모두 지키셨다.

그분은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죄인을 섬기는 사랑 의 법을 지키는 데 모든 생애를 바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율법 준 수의 완전한 삶을 사셨음을 친히 강조하셨다.62)

복음서는 예수님의 순종 이 죄인의 구원에 필요하다는 것을 여러모로 강조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연구 주제와 관련하여, 복음서가 긍정하고 구원에 필요하다고 가르치는 예수님의 순종의 범위는 어떠한가?

능동적인 측면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순종인가?

아니면 죽음이나 고난에 제한된 것인가?

복음서에는 의의 전가의 분명한 용어는 발견되지 않지만, 복음서의 그 리스도는 자기 백성을 위해서 구약성경과 의를 대리적으로 성취하는 분 이다.

예수님은 회개도, 회개의 세례도 개인적으로는 아예 필요 없는 분이 지만, 죄인의 구원을 위해서 “모든 의”를 이룬다.63)

죄에서 완전히 자유로 운 분으로서 예수님은 요한의 세례를 결국 받으셨다.64)

62) 예를 들어, 요 8:46: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요 15: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63) 마 3:1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 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64)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관련해서 예수님의 수세에 대한 분석으로는 McCormick, “The Active Obedience of Jesus Christ,” 232-237을 보라.

무죄한 예수님이 회개의 세례를 받은 이유에는, 죄 사함이 필요한 자기 백성의 대표로서 죄 인의 자리에서 그들 대신 형벌을 담당하시는 것이 포함된다.

그러나 모든 의를 이루는 그리스도의 순종이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에 한정되는가?

모든 의를 이룬다고 할 때의 “의(義)”라는 용어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공의로운 형벌적 요구에 제한되지 않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와 거 기 일치하는 것을 가리킨다.65)

마태복음에서 하나님의 종의 주된 특징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다.66)

또한 여기서 사용된 “이룬다(πληρόω)”는 동사는 마태복음에서 구원자에 대한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는 그리스도의 전 생애와 사역을 가리키는 데 자주 사용되었다.67)

물론 여기에는 그리스 도의 수동적 순종이 포함되지만,68) 예수님의 삶의 모든 측면이 제한 없이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되었다.

복음서는 구원의 성취를 위해 예수님의 포괄적인 순종이 필요함을 말 한다. 특히 누가복음의 “~[해]야 한다”(δει)는 표현은 구원의 성취에 그리 스도께서 반드시 해야 하는 순종의 폭넓은 범위를 보여준다.69)

65)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마 5:6);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 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마 5: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 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5:20);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마 6:1);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마 21:32).

66) McCormick, “The Active Obedience of Jesus Christ,” 237.

67) 마 1:22-23; 2:15, 17-18, 23; 4:14-16; 8:17; 12:17-21; 13:35; 21:4-5; 27:9-10.

68) 마 8:17(“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 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은 사 53:4을 언급하는데, 마태복음 8장은 예수님의 적극적 인 치유 사역을 고난 받는 종이 담당할 저주에 대한 예언의 성취로 간주한다.

69) Crowe, “The Passive and Active Obedience of Christ,” 466.

예수님은 죽고 부활하셔야 하고(눅 9:22; 17:25; 24:7, 26), 죄인으로 취급당해야 한 다(눅 22:37).

그뿐만 아니라, 사탄에게 묶인 불쌍한 여인을 풀어야 하고 (눅 13:16), 그분은 모든 사역을 끝마치기 전에 “오늘과 내일과 모레 내가 갈 길을 가야 하”고(눅 13:33), 삭개오의 집에 머무르셔야 하고(눅 19:5), 예수님에 대해서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한다(눅 24:44).

구원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그리스도의 사역에는 죽음과 부활, 제 삼일의 마무리와 그 이전의 진행, 그분의 사역 전체와 죽음 간의 분리가 없다.

구원을 위해서 이 모두를 그리스도께서 행해야 한다.70)

70) 복음서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을 포함한 생애 전체가 구원에 필수적인 대리적 순종이라는 것에 대한 상세한 연구로는, Brandon D. Crowe, The Last Adam: A Theology of the Obedient Life of Jesus in the Gospel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17)을 참조하라.

결론적으로 성경의 가르침에 따르면, 부활로 증명된 그리스도의 통합 된 완전한 순종이 구원에 필수적이고 칭의에 근거를 제공한다.

그 리스도의 순종의 어떤 측면을 다른 측면을 배제하는 식으로, 어떤 측면만 구원에 필수적인 것처럼 구분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불가능하고 불필요하 고 타당하지 않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그리스도의 전 생애의 순종과 분리 될 수 없고,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전체 순종의 정점이고 면류관이지만 죄 인을 의롭다하는 근거로서 홀로 있지 않다.

V. 나가는 말

구원의 중요한 유익인 칭의에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오직 은혜로, 그리 스도께서 나를 위해 순종하신 것을 마치 내가 완전하게 순종하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로움을 내 것으로 간주해주신다.

우리는 유일한 중 보자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완전한 순종의 짐에서, 그 무거운 짐의 저주에 서 해방되고 영생의 자격을 얻었다.

그리스도의 대리적인 순종은 십자가 의 죽음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일평생의 완전한 순종이 죄인 의 구원에 필요하다.

율법 아래의 그리스도의 모든 삶이 우리를 위한 고난 의 삶이고 그 전체가 능동적 수난이며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완전한 요구의 이행이시다.

그리스도의 통합된 전체 순종이 능동적이면서 수동 적이다.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려는 시도가 아니다.

Edwards, 1703-1758)가 잘 표현한 것처럼, 그리스 도께서 칭의를 위해서 행하는 “모든 것이 단지 고난을 당함으로 우리를 위해 속죄하는 것뿐”이라면 “구주로서의 영광의 절반”을 상실하게 될 것 이다.71)

그 본래의 의미대로 바르게 이해된 능동적 순종 교리는 칼뱅의 주 장이나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의 내용과 일치하는 개혁교회의 전통적 가 르침이고, 성경의 필연적이고 선한 추론으로 뒷받침되는 복음적 가르침으 로 생각된다.

능동적 순종 교리의 내용에 대한 강조는 자신의 순종의 생사 (生死) 전체로 구원의 근거를 홀로 완전하게 마련하신 그리스도의 구주로 서의 영광을 보존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72)

71) Jonathan Edwards, “Justification by Faith Alone,” in The Works of Jonathan Edwards, vol. 19, ed. M. S. Lesser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2002), 192, in 이윤석, “조나단 에드 워즈의 『이신칭의』에 나타난 칭의 교리 이해에 대한 고찰”, 99에서 재인용.

72) 능동적 순종 교리가 전달하는 진리의 내용이 무사하다면 용어에 대해서는 재고가 가능할 것이 다(cf. Herman Bavinck, Reformed Dogmatics, ed. John Bolt, trans. John Vriend [Grand Rapids: Baker Academic, 2003-2008], 2:569: “one may doubt the word, provided the matter is safe [de vocabulo dubitetur, re salva]”).

Absdtract

An Examination of the Theological and Biblical Validity of the Doctrine of Christ’s Active Obedience Chan Young Kim (Daeshin University, Assistant Professor) The doctrine that sinners are justified by faith in Christ alone has determined whether for evangelical churches to live or die. Nevertheless, there has historically been disagreement regarding the precise nature and scope of Christ’s obedience, which is the basis for the righteousness imputed to sinners. Even today, this topic remains a subject of debate in churches. In light of this situation, this paper examines the theological and biblical validity of the doctrine of Christ’s active obedience. First of all, I defined passive obedience and active obedience of Christ and highlighted the key issue of the doctrine of Christ’s active obedience. Secondly, I examined John Calvin’s understanding and the statements and deliberations of the Westminster Standards to determine whether the doctrine of active obedience is the traditional teachings of the Reformed Church. Finally, I explored whether the doctrine of Christ’s active obedience is supported by holy scripture. As a result, It was confirmed that the teaching that Christ’s entire obedience, including His active obedience serves as the basis for justification of sinner is both scriptural and valid within Reformed theology.

[Key words: Justification, Imputation, Christ’s passive obedience, Christ’s active obedience, Christ’s entire obedience, John Calvin, Westminster Standa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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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신학연구 제45권 (2023년)

논문 투고일: 2023.10.11. 수정 투고일: 2023.11.02. 게재 확정일: 2023.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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