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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야기

21세기 중국 신유가의 정세인식과 시진핑체제의 역사 정당성 -중화제국체제의 데자뷰와 타자성의 문제- /조경란.연세대

Ⅰ. 경로의존성과 복원력

Ⅱ. 중국 신유가 담론의 핵심적 내용

Ⅲ. 중국 신유가 담론의 한계

Ⅳ. 시진핑 체제의 ‘역사 정당성’ 다시 세우기

Ⅴ. 중국 지식인의 타자성과 한국 유학의 방향

<국문초록>

경로의존성과 복원력으로 중국의 전 역사를 해석하자면 거기서 불가피하게 중국의 20세기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의 문제와 부딪친다.

이에 대해서 는 신유가와 공산당의 입장이 미묘하게 갈리기도 한다.

중국의 신유가는 전 통시기 사대부의 존재방식과 그리 멀지 않다.

국가와 지식인은 끊임없이 서 로를 이용하려 한다. 중국의 지식인은 과거 전통시기에 그랬던 것처럼 각기 중국의 미래를 주도할 수 있는 위치에 서기 위해 정부의 지지를 얻으려 한다.

또 이들은 정권의 지지자이자 동시에 비판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은 중국의 신유학이 보여주는 국가에 대한 우환의식의 과잉으 로 인해 그들의 유학이 보편성으로부터 이탈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주장한 다.

이는 신유학 담론주체의 20세기에 대한 인식의 결락과도 밀접하게 관련 이 있다.

이 결과 ‘국가에 포획된 유학’의 출현을 허용했다고 보았다.

이는 그 들의 유학에 대한 ‘점유자의 태도’로부터 기인한다.

이런 태도의 유지는 그들 에게 유교문화와 중국의 유학을 대상화시킬 수 없게 만들고 거리두기를 할 수 없게 만든다.

이 결과는 그들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유교의 왜소화를 초래 했으며 유교의 탈보편주의와 민족주의화를 초래했다. 하지만 장칭 이하 신유가들이 인식하지 못한 것이 공산당에게 통치의 정당 성은 공산당이 살아 있는 한에서는 공식적으로 맑스주의에서 나온다는 사실 이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것은 마오쩌둥이 세운 당관료, 맑스주의, 인민해방 군이라는 철의 삼각의 한 부분인 통치 이데올로기가 무너지는 것이 된다.

시 진핑 정부는 맑스주의라는 이념에 의해 공산당 통치가 지속되어야 한다고 본 다. 2017년 중국공산당은 ‘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사상’을 제기 하면서 ‘맑스주의의 중국화’를 가지고 서구와 이념경쟁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100년 전의 5.4의 문제의식을 다시 문제화한다는 전제 아래 그것과 함께 천하를 다시 사유해야 한다.

그랬을 때 중국의 타자성와 윤리성은 확보 될 수 있다.

타자성과 윤리성의 부재는 목하 구성되고 있는 신중화제국체제 의 재구성 과정에서 다시 목적론적이고 전체주의적 방향의 가능성을 허용하 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19세기 말 중화제국체제가 무너지고 나서 20세기 내내 중화제 국체제의 이데올로기였던 중화주의에 대해 ‘의식적’ 성찰을 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전통시대부터 이어져온 지배와 차별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청산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21세기의 대등하고 다원적 협력관계의 수립이 가능하다.

이런 전제 하에서 한국과 중국의 유학은 이제 서로 장소성은 존중하되 평등 성과 다양성을 전제한 위에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는 그들은 그 들이고 우리는 우리인 것이다.

중국의 유학담론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것인가, 정면교사로 삼을 것인가, 반면교사로삼을 것인가, 참고만 할 것인가. 여러 가 능성을 열어놓고 어떤 점에 협력하고 또 경쟁할 것인가를 논의해야 한다.

전 통의 계승에서 한국과 중국은 엄청난 차이를보인다.

중국은 긍정적이든 부정 적이든 ‘어쩔 수 없이’ 전통을 잘 계승하는 나라이며 한국은 그 반대인 것처 럼 보인다.

한국의 경우 ‘고와 금의 호환적 연대’가 더욱 필요하며 오래된 것 의 자각적, 현대적 재구성을 여러 차원에서 고민해볼 때이다.

주제어 : 우환의식의 과잉, 점유자의 태도, 경로의존성, 유교의 민족주의화, 탈보편주의화, 타자성과 윤리성

Ⅰ. 경로의존성과 복원력 - 중국의 20세기는 무엇이었는가 -

시진핑(習近平) 정부 들어와 중국몽과 일대일로(一帶一路, One Belt and One Road)의 의도가 확인되고 또 사상통제가 강화되면서 명확해진 것은 다 름 아닌 중국 전통 중화제국체제의 데자뷰이다.

이 데자뷰를 통해 적지 않은 사람들의 바람이었던 ‘서양과는 다른 근대’와 ‘소련과 차별화된 사회주의’는 우리의 시야에서 점점 멀어지는 듯하다.

역사를 소급해보면 이 데자뷰는 마오쩌둥의 사회주의로부터 시작된 것 같 다.

청제국을 마감하고 공화제를 지향한 신해혁명은 미완성의 혁명이었으며 미완성을 완성으로 이끌고자 일어난 것이 1915년 신문화운동이며 1919년의 5.4운동이었다.

이 운동을 바탕으로 창당된 중국공산당은 국민당, 군벌과 30-40년간 항쟁했다.

이를 이데올로기로 표현하면 공산주의와 자유주의 유 교사상의 사상투쟁이었다고 하겠다.

결과적으로 공산주의가 승리했고 중화인 민공화국이 성립했다.

이 통치체제는 겉으로는 공산주의를 표방했으나 실제 로는 또 다른 ‘근대 중화제국체제’로의 ‘복원’이었다.

결과론적으로 요약하면 청제국이 끝나고 여러 정치 세력이 치고받고 싸우다가 결국은 또 다시 제국 의 형태로 되돌아가는 형국이었던 셈이다.1)

제국체제가 끝이 나고 잠깐의 혼란기를 거쳐 다시 제국으로 되돌아가려는 복원력(resilience)의 현현, 우리는 이런 형태의 반복을 전통시기에 적지 않 게 보아왔다. 이 복원력이 신해혁명 이후에도 작동했다면 이를 어떻게 설명 할 것인가.

여기서 중국 고대역사의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2)

1) 청화대학의 秦暉 교수가 낸 책 ‘제국에서 벗어나자’는 의미의 走出帝制(群言出版 社, 2015)가 금서가 된 것은 이를 역으로 증명해준 셈이다. 최근 드라마 ‘공화로 나 아가자’라는 의미의 “走向共和”가 대중들에게 인기가 있었음에도 방영이 금지된 것 도 이와 비슷한 논리로 설명이 가능하다.

2) 경로 의존성은 사회심리학에 해당하는 개념이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폴 데이비드 교수와 브라이언 아서 교수가 주창한 개념으로, 한 번 일정한 경로에 의존하기 시작 하면 나중에 그 경로가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여전히 그 경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성을 뜻한다. 위키백과 참조

에 주목 할 필요성이 생기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시카고대 사회학과의 Dingxin Zhao의 연구는 참고할 만하다.

그는 서한 이후 유법 국가가 형성되었다는 전 제 하에 아래의 두 질문을 던진다.

첫째, 중국이 진나라라는 하나의 국가 체 제 아래서 어떻게, 통일을 이루었으며 왜 관료적인 제국으로 발전해갔는가.

둘째, 긴 역사 기간 동안 여러 다양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서한시기에 제도화 된 정치 문화구조가 19세기까지 어떻게 지속적으로 복원될 수 있었는가.3)

장기 지속(long term)의 관점에서 경로의존성과 복원력이라는 두가지 키 워드를 가지고 19세기까지만이 아니고 현재까지 설명하려는 분위기가 강하 게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이 왜 일어나는 것일까. 의도한 결과인가. 아니면 어떤 특정 세력 집단의 의지로 제도와 문화를 변화시키려 노력했지만 역사의 관성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이전의 형태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는가. 전자는 아닐 것이다.

중국과 같은 거대한 규모에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후자라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경로의존성과 복원력이 현재의 중국까지 지배하고 있다면 중국의 20세기는 무엇이었는가.

이 질문은 구체적 으로 다음 질문으로 이어져야 한다.

5.4신문화운동과 5.4운동을 중국의 장기 (長期) 역사 속에서 또는 20세기 역사 속에서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중국의 20세기 5.4운동은 진정 지식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져왔는가.

다시 말해 5.4 를 ‘사건’으로 하여 중국은 자기변화의 계기를 만들었는가.

아니면 찻잔 속의 태풍에 불과했는가.

최근 중국 학계의 관심사가 ‘민족-국가’(nation-state)의 논리를 초월한 문명-국가(civilization-state)의 틀로 회귀하려는 것에 모아져 있다.4)

3) Dingxin Zhao, The Confucian-Legalist State : A New Theory of Chinese Histo ry, Oxford University Press, Oxford, 2015, p 6.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요약하면 경쟁과 제도화의 변증법이 역사변화의 엔진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Dingxin Zhao, p 29)

4) 甘陽, 文明 ․ 國家 ․ 大學, (生活,讀書,新知 三聯書店, 2012년 출판). 이 책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대학’은 ‘문명’과 더불어 학문보다는 국가의 패권과 이데올로기로 회수 될 가능성이 더 많아 보인다. 이런 목적을 가진 글들은 최근 汗牛充棟이다.

100 년전 레벤슨(Joseph R. Levenson)은 “중국의 ‘문명’ 또는 ‘천하’는 현대국가 를 건설하는 데에 장애가 되기 때문에 ‘국가’로 변화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다.5)

이러한 주장은 당시 100년 후의 강국몽의 실현을 꿈꾸고 있던 사대 부들에게도 이른바 ‘公理’로 통했다.

하지만 지금의 지식인들에게는 단순한 강국몽이 아니라 그것과 차별화한 ‘중국몽’ 즉 ‘문명중국’을 담지한 신중화제 국체제의 재구성이 새로운 공리가 되었다.6)

이런 분위기에서 중국 20세기 패러다임을 발원시킨 ‘사건’이라 할 수 있는 5.4운동을 언급하는 것은 어느새 ‘서구 추종 프레임’에 갇힌 뒤쳐진 문제의식이요, 천하를 말하는 것은 앞서가 는 ‘서구 극복 프레임’의 문제의식이 되었다.

이러한 주류적 문제의식에 부응하여 21세기 중국의 신유가도 보편주의를 강조하려 한다.

하지만 결과부터 말하면 자신들의 의도와는 반대로 이들은 ‘유교의 민족주의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중국의 21세기 유교는 간양(甘陽) 이 앞에서 말한 문명-국가의 논리보다는 민족-국가의 논리로 전환해가고 있 는 것이다.

왜 이런 경향을 보여주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각도에서 논의가 필 요하다.

이 중에서도 특히 중국의 신유가에게는 지식의 윤리성과 타자성의 부재의 측면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지식의 윤리성과 타자성의 부재는 중국 전통에 대한 ‘점유자의 태도’7)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태도의 유지는 그들에게 유교문화와 중국의 전통에 거리두기를 할 수 없게 만들고 대상화시킬 수 없게 만든다. 이 결과는 그들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유교의 왜 소화로 결과하기 십상이다.

국가를 향한 우환의식의 과잉이 낳은 역설이라 할만하다.8)

5) Joseph R. Levenson, Confucian China and Its Modern Fate: The Problem of H istorical Significance,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65

6) 이런 중국 학계의 분위기에 대해 최근 유행하는 ‘중국의 현대성 개념’들을 집권당의 학술찬가에 불과하다고 혹평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들은 이러한 작업들이 마오 시대 에 겪었던 여러 폐해적 문제들을 미화시키거나 누락시키면서 진행되고 있으며 학술 이 또 다시 학술 본연의 역할을 떠나 ‘중국만들기’에 여념이 없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 것이다. 耿占春, 「學術 : 中國製造」, 二十一世紀 2010 12월호 총제122기, 103 쪽. 이런 성격의 글로 다음의 글도 참조 刘擎, 「中国语境下的自由主义:潜力与困境 , 開放時代, 2013년 제4기

7) 전통문화를 중국인의 사유재산으로 보는 태도이다. 천핑위안, 「학술, 사상, 정치」,  고뇌하는 중국, 길, 2003, 175쪽

8) 나는 시진핑 정부 들어 사상 통제가 심해지는 것은 전세계적으로 중국학의 질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내 잡지에는 중국에 대한 실오라기만한 비판이 있어도 글을 실을 수가 없다. 더구나 이런 분위기는 중국내부 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중국관련 외국의 잡지가 만일 중국의 재정적 지원을 받는 것이라면 중국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사상 통제는 세계의 ‘중국학 길들이기’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조금 심하게 표현하면 중국의 신유가는 공산당 정권이라는 녹녹 치 않은 조건 아래서 우환의식의 과잉으로 인해 ‘국가에 포획된 유학’을 만들 어냄으로써 유학의 탈 보편화를 초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한나 라 이후 유학의 존재방식은 송나라 주자학의 시대를 제외하곤 거의가 국가 또는 제국에 내속된 유학이기는 하였다.

이 글은 중국 유교의 위와 같은 경향을 파악한 위에서 21세기 중국 신유가 의 한계는 무엇인가.

이에 비추어 한국유학이 나아갈 길은 무엇이어야 하는 가, 또 그에 따른 전략을 어떻게 짜야 하는지에 대해 매우 기초적이고 시론적 으로 논의하고자 한다.

한국과 중국의 유학은 이제 서로 장소성은 존중하되 평등성과 다양성을 전제한 위에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는 그들은 그들이고 우리는 우리인 것이다.

중국의 유학담론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것인 가, 정면교사로 삼을 것인가, 반면교사로 삼을 것인가, 참고만 할 것인가. 공 존을 위해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고 어떤 점에 협력하고 또 경쟁할 것인가를 논의해야 한다.

단, 이 글에서 필자는 한국에 대해 아는 바가 없기에, 주로 중 국 신유가의 주장과 한계를 알아보고 한국에 대한 논의는 일단의 방향만을 제시하는 것으로 할 것이다.

Ⅱ. 중국 신유가 담론의 핵심적 내용 - ‘우환의식의 과잉’과 ‘국가에 포획된 유학’ -

현재 중국의 신유가는 19세기는 영국의 세기였고 20세기는 미국의 세기이 며 21세기는 중국의 세기가 될 것이라는 확신에 차 있다.

그렇다면 이들의 입장에서 21세기의 중국은 어떤 중국이 되어야 하는가.

그것은 다름 아닌 바 로 유교의 역할이 큰 중국이다.

이런 ‘자신감 있는 상상’을 하게 한 데는 몇 가지 정치 판단의 근거가 있다.

가장 먼저 살필 것은 2013년부터 몇년동안 보여준 시진핑(習近平)의 몇 가지 행보들이다.

중국의 국가주석 시진핑은 2013년 11월 산둥성 취푸에 있는 공자묘를 참배했다.

2014년 5월에는 베이 징대학의 대 유학자 탕이제(湯一介) 교수를 특별히 예방했다.

2014년 9월에 는 공자 탄생 2,565주기를 기념하는 회의에 몸소 참석해 직접 담화를 발표했 다.

이 세가지 ‘사건’만으로 중국의 신유가는 고무되기에 충분했다.

자신들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공산당으로서도 이제 전통을 부정하는 혁 명당의 이미지에서 전통을 계승하는 집권당으로서 변화된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했다.

통치의 지속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작업이었다.

신유가가 보기에 이제 중국은 마르크스주의만으로 통치되기는 어렵다.

중 국을 지탱해왔던 강력한 카리스마의 마오쩌둥도 사라졌고 공산주의의 이념도 중국 대중들에게 이전같이 먹혀들어가지 않게 된 상태에서 국가를 이끌어 갈 이데올로기가 텅 비어 있다.

거기에다 몇 년 전부터 경제성장 수치도 낮아지 고 있다.

여느 왕조처럼 지속적 통치가 최대의 목표가 될 수밖에 없는 중국 공산당으로서도 자신을 중국 전통의 계승자로서도 자리매김해야 한다.

더구 나 유교는 질서유지의 철학이 아니던가.9)

최근 중국의 신유가 대부분은 장칭(蔣慶)에게서 큰 영감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으로 구성되어 있기에 먼저 장칭이 무엇을 주장했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집권정당인 중국공산당이 미래에 ‘통치의 정당성’을 가지려면 중국을 반드시 재유학화해야 한다.”10)

9) 본장의 이 부분까지는 다음을 참조. 조경란․양차오밍․간춘송 편, 대륙신유가-21세기 중국의 유학담론(조경란․오현중․장윤정․태정희․홍린 역), 도서출판 b, 2020 편자 조 경란 서문 “중국 지식인과 ‘대륙신유가’”. 이하의 부분은 졸문, 「대륙신유가, 그들과 대화가 가능한가」, 대학지성 IN&OUT 2020년 4월 참조

10) 이 주장은 얼핏 董仲舒의 주장과 동일해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동중서는 유학을 내 러티브로 한 거대한 통치의 사이클을 만들었고 그 통치의 싸이클의 적용대상은 한 족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동중서의 업적이라면 오히려 유교를 한 족만의 것이 아닌 모든 민족에게 적용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데 있을 것이다. 유교는 국가나 제국에 내속되는 것이지 어느 하나의 민족에 내속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 기다.

“중국 대륙은 이미 전반적으로 서구화되었고 중국성 (中國性, chineseness)이 상실되었다.”11)

“민족 생명은 그 어디에도 설 자리가 없다”, “민족정신을 철저히 상실했다.” 따라서 “오늘의 중국은 두 가지 큰 문제에 직면해 있다.

하나는 중국인 개인 생명이 귀의할 곳이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예법 제도가 진공 상태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12)

장칭의 이러 한 ‘국수주의적’ 언어는 마음 붙일 곳 없는 중국인들에게는 중독성 있는 메시 지였다.

여기서 재유학화란 유학의 정치와 제도에 근거한 국가설계를 의미한 다.

곧 정교합일의 유교국가 건설이다.

장칭이 보수적 전통 패러다임을 제시하기 위해 발견한 인물이 캉유웨이(康 有爲)이다.

왜 캉유웨이인가.

거칠게 설명하면 청말 캉유웨이에게 최대 문제 는 유교를 베이스로 한 청대 강역(疆域)의 유지였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지 배의 정당성’을 가지려면 ‘대일통’을 구현해야 한다.

“중국에서 ‘지배의 정당 성’은 지배자의 민족적 출신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고 ‘대일통’을 실현한 왕 조여야만 ‘정통’의 중화왕조가 된다.”13)

‘대일통’은 천하통일이며 이는 중국정 치에서 안정을 의미한다.

대륙신유가에 의하면 캉유웨이가 입헌군주제를 수 호한 것도 어떻게 하면 ‘대일통’의 중화국을 위해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할 것 인지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공산당도 결국 ‘대일통’의 강력한 통합성을 지 닌 국가 이념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캉유웨이의 목적의식과 상통한다고 보고 있다.

캉유웨이에게 공교는 19세기말 유교가 제도로부터 이탈하면서 다시 종 교의 형식을 빌려 균질적 국민을 만들어 강력한 통합성을 가진 ‘제국적 국민 국가’를 재구성하려는 마지막 수단이었다.

나는 이것을 캉유웨이의 ‘문명모델’ 이라 부른다.14)

11) 蔣慶, 政治儒學, 北京: 三聯書店, 2003, 4쪽.

12) 陳明, 「大陸新儒學略說」, 儒家網,2012年5月

13) 몽골 지역, 준가르 지역, 타이완 지역을 포함한 실제적 지배의 강역을 가장 넓게 정 복하고 지배한 황제는 청나라의 건륭제였다. 건륭제가 이뤄낸 영토는 명나라의 두 배 이상이 된다. 2012년 The Economist가 시진핑에 청황제의 복장을 입혀 등장시 킨 것은 이 부분을 암시코자 했을 것이다.

14) 이 용어는 田島英一, 「中國ナショナリズム分析の枠組みと實踐」(加加美光行, 中國 の新たな發見, 日本評論社, 2008)에서 따 왔다. 20세기는 ‘문명모델’과 더불어 孫 文의 ‘혈통모델’과 毛澤東의 ‘계급모델’이 경쟁했다.

장칭의 이러한 ‘원대한 기획’이 나오게 된 계기는 역설적이게도 1989년 5월 민주화운동이다.

당시 학생들의 민주화운동과 부정부패와 빈부격차의 수 정 요구는 문화보수주의자들을 긴장시켰다.

중국은 1989년 천안문 6.4사태 이후 모든 것이 보수화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1980년대의 10년은 결과적으 로 보면 ‘반동으로 가는 10년’이었던 셈이 된다.

이 10년은 보수주의의 1990 년대를 잉태한 것이고 이후 30년은 그렇게 탄생한 보수를 발육시킨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장칭은 1989년 천안문사건이 일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중국대 륙의 유학부흥의 현실적 의의 및 그것이 직면한 문제」라는 장문의 글을 발표 했다.

이는 문혁을 경험한 문화보수주의자로서 느낀 위기의식의 발로였다.

이 글은 대륙 유교사상사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대륙신유가 최초의 입장표명으 로 기록될 것이다.

당시로서는 공산당의 주류이데올로기를 훨씬 능가하는 중 국정치의 유학화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리저허우(李澤厚)는 장칭의 주장을 서태후보다 훨씬 보수적이라고 비판했다.15)

15) 李澤厚, 「我一直是孤獨的」, 中國新聞週刊2005년 10월 31일, 57쪽

중국의 1990년대는 민족주의와 국학이 창궐한 시기였다.

장칭은 신유가의 입장에서 중국의 미래가 지향해야 할 큰 방향을 제시한다.

대신 신유가 개개인 은 장칭이 제시하는 총론에 각론을 붙여주는 역할을 자임한다.

각론은 몇가지 로 나누어볼 수 있다.

첫째, 대륙신유가에게 문명국가의 건설이라는 중책이 주 어져 있다고 본다.

정치국가로서의 중국의 기본틀은 이미 확립되었지만 문명 국가의 건국과정은 여전히 진행중이며 여전히 완성되지 않았다.

5.4신문화운 동 시기보다 청말학술로 올라가 거기서 여러 가능성을 찾으려고 하는 이유 또 한 여기에 있다.

캉유웨이에 주목하는 것도 그가 서양과의 대면과정에서 경학 사상과 정교이론으로 대응하려 했으며 경학, 공교론과 군주제의 재건을 목표 로 했기 때문이다.

대륙신유가에게 문명국가의 건설은 청말의 학술의 재발견 을 통해 좌우논쟁을 뛰어넘는 문화보수주의의 길을 열어가는 것이기도 하다.

경학을 중심으로 중국의 이론체계를 재건하여 중국다움을 보여줄 수 있는 문 명체로서의 중국을 완성하는 것이 대륙신유가에게 주어진 중요한 소명이다.

둘째, 대륙신유가는 문혁의 기원을 5.4 신문화운동에서 찾으려고 한다.

문 혁은 신좌파를 제외하고는 부정적 상징으로 통하기에 신문화운동을 문혁과 연결시키는 즉시 신문화운동의 계몽기획의 정당성은 사라져버린다.

신문화운 동의 급진적 계몽 기획을 철저히 청산하지 못한다면 문혁에 대한 성찰도 철 저하게 이루어질 수 없다는 논리로 이어진다.16)

참고로 중국의 세 사상유파 는 각각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다르다.

대륙신유가는 앞에서 본 것처럼 5.4신 문화운동과 중국의 사회주의 전통 즉 계몽서사와 혁명서사를 부정한다.

신좌파는 최근 입장이 모호해졌는데, 그 중 어떤 인물은 유가사회주의공화국을 주장하는 것으로 보아 그들의 목록에서 5.4신문화운동을 배제하려는 것 같 다.

자유주의자들은 공자의 전통문화, 5.4 신문화, 신중국의 사회주의 전통, 개혁개방 이후의 사회실천, 등 이 네 종류의 전통이 현대 중국인의 의식을 주 조하고 있다고 본다.17)

셋째, 대륙신유가는 계몽서사와 혁명서사로는 이제 더이상 중국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니 그것이 사라진 자리를 유교가 대신해야 한다고 믿는다.18)

16) 탕원밍, 「중국 혁명의 역정과 현대 유가사상의 전개」, 대륙신유가, 도서출판 b, 2 020, 61쪽

17) 劉擎, 「公共文化与思想界的新趋势」, 東方早報(2011.08.22.)

18) 이에 대해서는 조경란, 「대륙신유가 1 : 캉유웨이로 5.4를 비판하는 천밍-대륙신유 학․원도․공민종교로서의 유학」, 서강인문논총 2018. 8. 참조

 

이 두 서사는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를 의미한다.

이는 곧 서구사상의 근원적 배척이기도 하다.

“이전에는 서양의 가치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서양이라는 강대한 곳에서 발원했기 때문에 불가피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 서양과 힘이 비슷해진 상황에서 서양의 가치를 받아들이는 것을 자신을 이적 화(夷狄化)하는 것이다.” 이들의 이 발언을 근거로 하면 동과 서를 아직도 화 와 이라는 틀로 인식하는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에게 화와 이는 아직도 힘의 논리이지 문화의 논리가 아님을 이들 자신의 입으로 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점에서 이들의 상상력은 신좌파나 자유주의자들에 비하면 매우 제한적이다. 특히 콜로니얼리즘과 포스트 콜로니얼리즘, 모더니 티와 포스트 모더니티에 대한 인식 자체가, 아니 관심 자체가 없어 보인다.

동서의 복잡한 역사를 단순화해서 강약의 문제로만 인식한 결과이다.

20세기 의 시대성에 대한 인식의 결락을 보여주고 있다.

Ⅲ. 중국 신유가 담론의 한계 - 보편성의 이탈과 20세기 역사 인식의 결락 -

‘민족-국가’의 논리를 초월한 문명-국가로의 귀환은 중국으로서는 중요할 수 있다.

최근 중국에서 개최된 5.4운동 100주년 토론회에서도 이러한 방향 의 연구가 나왔다.

경제적 조건의 변화에 따라 유예되었던 논의가 다른 시각 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중국의 유명 자유주의자 뤄즈텐(羅 志田)은 “국가와 사회라는 개념이 ‘천하’의 붕괴로 인해 출현했지만 5.4를 전 후하여 비국가와 초국가라는 사고의 방향도 동시에 출현하고 있다고 보았다 .”19)

유파를 불문하고 문명-국가의 방향은 보편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중국이 보여주고 있는 여러 모습은 문명-국가의 외피를 쓴 민족-국가 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웃국가를 향해 보여주고 있는 국가와 거기에 이론을 제공하고 있는 브레인들의 최근의 여러 양태 또한 그들이 절대로 민족주의에 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준다.20)

19) 羅志田, 「把‘天下’帶回歷史敍述-換個視角看五四」, 五四與現代中國 2019. 03.30 北 京大學 5.4運動 100周年 學術會議, 14쪽

20) 중국에서 국가와 지식인의 관계는 거의 영속적인 중심-주변 구도이다. 공산당 통치 가 지속되는 한 이 구도는 변치 않을 것이라는 것은 누구보다 지식인이 잘 알고 있 다. 중심부에 유착한 주변부 지식인의 존재방식은 그래서 고착화되고 폐쇄적일 가 능성이 높다.

심지어 중국의 전가의 보도격인 유교조차도 민족주의화하고 있는 형국이 아닌가.

유교의 탈보편주의화와 민 족주의화하는 경우의 예로 나는 다음의 두가지 사례에 주목한다.

첫째, 신보수주의 원로학자 샤오공취안(蕭公權)은 “중국의 유교문화는 평 화, 온화, 관용, 용인, 중용의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21세기의 중국인에 게 심각한 영향을 줄 것”이라 주장한다.

그는 21세기에 이어 22세기를 다음 과 같이 예측하는 대범함을 보여준다.

“유가의 가치를 기초로 하는 민족주의 는 가장 민족주의적이지 않은 민족주의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모 든 민족주의 중 유가의 민족주의는 가장 협애성을 띠지 않은 민족주의이다. 유가의 ‘천하일체관’과 유가가 말하는 바의 ‘사해 안은 모두 형제다’라는 이상 은 아마도 인류가 후식민지시대로 들어가야 비로소 진정으로 그 의의를 체현 할 수 있을 것이다.”21)

이 주장을 기준으로 하면 샤오공취안 역시 유학에 대 해 자기 대상화가 안되는 한 사람에 불과하다.

신유가 전반에 강한 영향을 주 고 있는 그 또한 유학에 대한 ‘점유자의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아닌 가 하는 강한 의구심이 든다.

유가사상만이 천연적 이데올로기 바이러스에서 면역되어 있다는 몇몇 신유가의 주장과 다를 것이 없다.22)

그가 진정 유학의 보편주의를 주장하려면 유교를 포함한 모든 사상은 그것이 제도와 결합하는 순간 타락을 전제해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그리고 그 타락은 사상의 이데올 로기화의 과정이다.

그리고 사상의 이데올로기화가 반드시 나뿐 것만은 아니 다.

문제는 사상의 유토피아를 현실이 되게 하려는 데에 있는 것이다.

맑스주 의로 완전한 평등사회, 즉 유토피아를 현실에서 구현하려 했다는 것을 문혁 을 통해 확인하지 않았는가.

따라서 우리는 사상의 두측면을 인정해야 한다.

사상은 사상으로 남아 현실을 비판해야 하는 측면과 또 같은 사상이 이데올 로기화하여 현실에 개입할 가능성 말이다.

이는 맑스주의도 유학도 마찬가지 이다.

샤오꽁취안이 유교를 정당하게 주시했다면 유교의 이데올로기적 측면 도 인정하되, 유가 본연의 비판성을 가지고 있는 선진유가도 말해야 한다.

유 교만이 이데올로기에서 면역되어 있다는 것은 그 또한 학문적 거리두기가 안 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족주의를 부정하기 위해 유교를 끌어들이지만 그 결과는 유교의 민족주의화를 초래하는 역설이 만들어지고 있다.

둘째, 신유가 중에는 –일부인긴 하지만- 오로지 중국의 화이(華夷)사상에 근거한 역사적인 중화(中華)의 회복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학자도 적지 않다.

이들에 의하면 제국주의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의 이론적 근거가 ‘춘추’ 의 화이론이며 동아시아의 동문동종(同文同種)의 주장은 왕징웨이(汪精衛) 쑨원(孫文), 캉유웨이(康有爲)도 주장했고 따라서 그 주장은 매국노의 이론 이 아니다.

그 본래 의미는 중일연합을 이끌어내 서양 오랑캐에 대항하는 것 이다.23)

21) 蕭公權, 與政治浪漫主義告別, 湖北敎育出版社, 2001, 238쪽

22) 이는 秋風의 주장이다.

23) 曾亦․郭曉東 編著, 何爲普世? 誰之價値, 華東師範大學出版社, 2014. pp. 147-148. 이런 과도한 주장 때문인지 몰라도 현재 ‘대륙신유가’는 중국정부에 의해 제지당하고 있다. 성도(成都)에서 출판되는 天府新論이 반년간 정간당한 것이 그 증거이 다.

이 주장은 전쟁이 한창 진행될 때 일본의 주장과도 너무도 닮아있다.들은 중국에 대한 반(半)식민의 역사뿐 아니라 20세기 동아시아 식민지 압 박의 역사에 대해서도 분명한 의식이 없어 보인다.

탈식민의 역사의식이 없 다는 의구심을 넘어 서양을 이길 수만 있다면 20세기 일본 육해군의 침략이 데올로기도 활용할 태세이다.24)

대륙신유가 중에는 –일부인긴 하지만- 오로 지 중국의 화이(華夷)사상에 근거한 역사적인 중화(中華)의 회복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듯하다.

이 두가지 사례를 통해 우리는 신유가의 유교의 보편성에서의 이탈과 20세 기의 인식에 대한 부재를 엿볼 수 있다. 유교 담론 주체의 우환의식의 과잉과 그로 인한 유학의 왜소화라 할 수 있다.

그 결과 국가에 포획된 유학의 모습 을 목도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신유가의 관심은 오직 유교문화를 베이 스로 한, 또는 유교로 교화된 인민들로 구성된 중화제국, 청대의 강역을 유지 하는 부강한 국가인 중화제국으로의 복귀에 있어 보인다.

이러한 과도한 주 장에 대해 거자오광(葛兆光)은 대륙신유가를 향해 “중국의 대륙신유학은 ‘혼 이 신체에서 떠난 것’에 만족하지 않고 ‘시신에 혼을 돌려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고 일갈했던 것이다.25)

24) 육군의 이데올로기는 대동아공영권 논리이고, 해군의 이데올로기는 근대초극론이 다.

25) 거자오꽝 교수가 유학과 천하논의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읽기에는 통쾌하긴 하지만 대안이 없는 것이기에 공허한 감이 없지 않다. 葛兆光, 「對‘天下’的想像-一個烏托邦 想像背後的政治, 思想與學術」, 思想제29기. 거자오꽝(葛兆光)(2018), 「기상천외 : 최근 대륙신유가의 정치적 요구」,양일모 옮김. 동양철학 48집

중국정부 또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성도 (成都)에서 출판되는 대륙신유가 잡지 천부신론(天府新論)이 반년동안 정 간당했다.

1990년대 전략과 관리라는 잡지도 과도한 대중 민족주의를 표출 했다는 이유로 중국정부에 의해 정간당한 적이 있다.

물론 중국공산당도 문 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공산당은 자신들의 통치의 정당성의 필요성에 따라 유학이든 민족주의든 어느 정도까지는 담론화를 부추기다가 자기들의 ‘기준’을 넘어가면 가차없이 개입한다.

허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공산당의 사 상통제의 기준이 없듯이 개입의 원칙 또한 일정치가 않다.

중국에서 현재 신좌파가 곤란함을 겪고 있는 것처럼26) 신유가 또한 매우 복잡한 상황에 처해 있다.

자유주의자인 류쥔닝(劉軍寧)은 이미 중국에서 유 학이 처한 딜레마를 아주 잘 표현한 적이 있다.

“중국의 전통에서 유가사상이 생명력이 있었던 때는 바로 유학이 관방의 정통 이데올로기가 되었을 때이다.

다시 말하면 유학이 정통지위를 획득하게 되는 것은 정권과 결합된 덕분이다.

일단 유학은 정치권력과 관계가 완전히 끊어지면 그것이 아무리 합리적이고 깊이가 있다 하더라도 다시 정통이 될 수는 없다.

따라서 신유학의 모순은 유 학으로 하여금 정통이 되게 하려 하면서도 권력과 결합하는 것에 반대하려 한다는 데 있다.

이렇게 유학은 일종의 프랑크프르트 학파처럼 순수한 비판 적 지위로 돌아가는 것도 불가능하고 또 고전 자유주의처럼 정통에 충실한 구사상의 옹호자가 될 수도 없는 것이다."27)

26) 왕후이에 의하면 신좌파에 속하는 지식인들은 잡지에 글을 발표하는 것조차 힘들다 고 말한다.

27) 劉軍寧, 「自由主義與儒敎社會」, 2010년 1월 20일, 公法網, 中國社會科學季刊 199 3년 8월호.

필자도 다른 글에서 유학은 중국이라는 문명제국의 재구축이라는 프로젝트 속에서 ‘재발견’된 것이며 이 또한 국가통합 이데올로기로서의 맑스주의가 위 기를 맞고 있는 상황과 딱 맞물려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필자는 중국에서 유 학 부흥 현상을 경제성장을 기초로 한 자기 전통의 귀환이라는 측면 외에 국 가 통합의 필요성에 의한 중국공산당의 ‘재발견’으로 보았고 이 재발견된 유 학을 ‘국가-자본-미디어-지식 복합체로서의 유학’이라고 명명하였다.

그리 고 이에 대응하여 필자는 ‘비판담론으로서 유학’의 재건을 제시한 바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비판담론으로서의 유학’이란 무엇일까.

지금의 중국의 맥 락에서 유학을 개혁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이다.

유학을 국가와 자본과 분리시 켜 이것들을 견제하고 비판함으로써 기득권을 제한하는 사회이념, 21세기적 대동사상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다.

이는 전통시기 사 계층이 망천하亡天下 와 망국亡國을 분리하여 인식했던 그 접근방식과도 관련이 있다.

즉 천하를 문화적 주체로 하는 중국적 질서를 강력하게 환기하는 것이다.

그랬을 때 오 히려 유학은 비판담론으로서 지속적 생명력을 유지할 수가 있다.

그랬을 때 비로소 국가와 자본 그리고 미디어에 의해 쓰여지고 버려지는 유학이 아닌 ‘지속가능한 유학’이 될 수 있으며 거기서는 ‘인민유학’의 가능성도 타진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인민유학’은 타자성과 책임을 내함한 것이며 그 럴 때 유학 안에서도 서구 근대성을 극복할 가능성을 말할 수 있다고 본 다.28)

유학은 본래 엘리트 계급의 질서유지의 문화이고 역사적으로 이에 기여해 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21세기라는 중국의 시공간에 재맥락화하기 위해서 는 기존의 혈연의 범주를 뛰어넘는 ‘대담한 기획’이 있어야 한다.29)

그렇지 않고서 유학은 중국에서조차 수용되기 힘든 분위기이다.

또한 유학이 현실과 호흡을 함께 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광범한 인민을 교화의 대상으로만 볼 것 이 아니라 이들 속으로 들어가 이들이 처한 현실상황과 그들의 욕망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현재 중국의 통치연합에서 배제된 계층이 노동자, 농민, 자영 업자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식기구가 없다.

유학의 범주 안에서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중국의 신좌파나 자유주의자들 중에는 중국의 저층 인민들을 찾아서 그들의 목소리 를 듣는 이들이 있다.

중국의 신유가는 중국모델론에 소환된 유학’30)에 머물 지 말고 유가 본원의 비판성을 회복해야 한다.

유가의 비판성의 회복은 바로 유가의 보편주의를 지켜내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31)

28) 졸고, 「현대중국의 유학부흥과 ‘문명제국’의 재구축」, 시대와철학 2012년 가을호 참조.

29) 물론 이러한 ‘대담한 기획’ 이후의 유학을 유학이라고 명명해야 될지에 대해서는 별 개의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30) 조경란, 국가, 유학, 지식인, 책세상, 2016, 44쪽, 52쪽

31) 그러나 시각을 달리하여 본다면 공산당의 입장에서는 이 비판성의 회복은 반가운 일은 아닐 것이다. 앞에서 류쥔닝이 지적한 유교의 딜레마가 이 지점에서 존재한다 고 해야 할 것이다.

Ⅳ. 시진핑 체제의 ‘역사 정당성’ 다시 세우기 - 철의 삼각(the Iron Triangle)의 재건 -

앞에서 말한 것 처럼 시진핑 정부 들어와 신유가는 유교의 ‘새로운 통치이념’화와 그것의 ‘재제도화’의 방향이 다시 제시될 가능성에 대해 낙관적이었 다.

특히 앞에서 소개한 2013년부터 있었던 시진핑의 일련의 행보가 그 가능 성을 높여주었다.

또 학자들 사이에서 중국의 도로(道路), 제도, 이론에 대한 자신(三個自信)이라는 말이 통용되고 있었고.32)

여기에 최근에는 ‘문화’가 추가되었다.

신유가는 문화가 추가된 것을 유교의 통치 이념화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이제 중국에서 유교는 사회주의와 더불어 공식적 시민권을 얻 은 것으로 해석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장칭 이하 신유가들이 인식하지 못한 것이 하나 있다.

공산당에게 통치의 정당성은 공산당이 살아 있는 한에서는 공식적으로 맑스주의에서 나 온다는 사실이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것은 마오저둥이 세운 당관료, 맑스주 의, 인민해방군이라는 철의 삼각의 한 부분인 통치 이데올로기가 무너지는 것이 된다.

시진핑 정부는 맑스주의라는 이념에 의해 공산당 통치가 지속되 어야 한다고 본다.

여기서 시진핑체제가 등장하면서 당관료들에게 지시한 첫번째 임무가 무엇 인지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소련의 공산당이 왜 무너졌는가 그 원인을 분석하라는 것이었다. 그 분석 결과는 당원들의 맑스주의에 대한 이 념의 해이였다. 그리고 그 시기 또한 소련체제가 만들어진지 70여년 후였다. 사실 중국의 역사에서도 왕조의 평균 존속기간은 70년이었다.33)

시진핑 체 제가 등장하기 전부터 이 체제는 이중의 임무를 부여받았다고 할 수 있다.34)

하나는 앞에서 말한 전통적 ‘지배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즉 중국영토 의 ‘보전’ 또는 확대이다.35)

32) 李向平 ․ 郭珵, 「面目模糊的 ‘中國人’-當代中國的文化信仰與國家認同」, 文化縱橫 2016. 6, 70쪽 33) 위화 왕, 「중국 역대 왕조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을 것인가」, 하버드대학 중국특강 (이은주 옮김), 미래의 창, 2018, 89쪽

34) 2007년부터 시진핑이 다음 주자로 선택된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원로 간부의 자제라는 점 즉 태자당 출신이라는 점도 전임자인 후진타오에게는 없는 카 리스마로 작용할 것이다.

35) 홍콩문제와 기타 소수민족 문제에 대해 시진핑체제에서 더욱더 강력하게 나오는 것 은 ‘지배의 정당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최종 목적은 타이완의 통일이다.

다른 하나는 바로 마오의 중화인민공화국 성립으 로 만들어졌던 철의 삼각의 재건이다.

시진핑체제의 고민은 사회주의 30년, 개혁개방 40년이 된 지금, 빈부격차의 딜레마에서 오는 ‘정치 통합성’ 또는 ‘국가적 일체성’의 약화이다.

현재의 위정자들은 ‘정치 통합성’이 약화되면 ‘지 배의 정당성’을 상실한다는 점을 중국의 긴 역사를 통해 너무나 잘 알고 있 다.

이 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두가지 프로젝트가 중국몽와 일대 일로인 것이다.36)

일대일로는 경제와 외교 무역 등 종합적인 대외관계전략의 일환이며 중국정부는 지난 5년간 이미 전방위적인 외교배치를 전개하여 국제 적으로 영향력, 감화력, 창조력을 향상시켜 세계의 평화와 발전에 기여하게 되었다고 2017년에 평가한 바 있다.37)

신유가의 정세인식에서 결정적 문제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래 철의 삼각38)이 바뀌었다는 사실-그것이 정당하건 아니건 그 문제를 떠나- 을 중요하게 인지하지 못한 것이다.

시진핑은 2017년 19차 당대회를 통해 2050년까지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내부적으로는 격차를 해소하고 공동부유 를 통해 사회주의성을 회복하고 부패와의 전쟁을 통해 당의 역할을 강화하여 밑으로부터 지지를 얻겠다는 것이다.

외부적으로는 일대일로의 이니셔티브를 통해 인류공동운명체라는 새로운 국제관계 노선을 제시했고 전면적 대외개방 을 통해 국제협력의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어 중국식 세계화를 만들겠다고 선 언하였다.39)

36) 일대일로에 대해서는 이미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가 자본의 공간이동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데이비드 하비(2017). 데이비드 하비의 세계를 보는 눈. 최병두 옮김. 창비, 18쪽

37) 성균중국연구소 엮고 옮김, 신시대-제19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보고, 지식공 작소, 2018, 25쪽 38) 이 주제에 대해서는 Roderick MacFarquhar, The Trauma from the Great Prole tarian Cultural Revolution: Can the Iron Triangle Be Saved?, Modern China Studies 2016 Issue 2 참조

39) 성균중국연구소 엮고 옮김, 신시대-제19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보고, 지식공 작소, 2018, 이희옥의 서문 참고

 

중국 정부의 고민은 ‘먼저 부자가 되라’는 구호 아래 시작된 덩샤오핑의 개 혁개방 40년 동안 부는 괄목상대하게 성공했지만 그 부작용이 국가적 차원의 통합성을 해칠 정도까지 이르렀다는 점이다.40)

이 과정에서 철의 삼각 중 한 부분인 맑스주의가 무너졌다고 판단한 것이다.

경제성장과 맞바꾼 통치이데 올로기인 맑스주의, 이것을 놓아버리면 중국공산당을 구할 대책이 없다.

시진 핑 정부가 반부패운동에 그렇게 열을 올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12년 시 진핑의 등장은 위와 같이 국가 통합성의 강화(强)라는 필요성에 의해 공산당 지도체제 내부, 즉 원로 정치인과 파워엘리트 사이의 모종의 ‘합의’와 ‘선택’ 에 의한 결과라는 설이 있다.

물론 중국공산당도 맑스주의만으로 이제 더 이상 중국 통합이 불가능하다 고 – 실제로 맑스주의는 레토릭만 남은 상황이기에 더욱더 – 판단하고 있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교연구가 활발해지는 것은 공산당으로서도 불감청 이언정 고소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이 생각하는 유교에 대한 비 중은 사회주의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41)

그것은 아마도 현재의 시진핑체제에 떠맡겨진 ‘중차대한 임무’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더구나 시진핑은 대중이 서 구민주주의 사상에 물들지 않도록 ‘중국 예외주의’의 방패막이로서 공산주의 사상의 부활이 필요하다고 본다.42)

시진핑은 이 증거로 2015년 베이징대학 에서 ‘세계 마르크스주의자 회의’를 연 것을 비롯해43) 2016년 철학과 사회과 학분야의 학술토론회를 주재했다.44)

40) Roderick MacFarquhar, The Trauma from the Great Proletarian Cultural Re volution: Can the Iron Triangle Be Saved?, Modern China Studies 2016 Issue 2, 13쪽

41) 하지만 당교 내부에서는 外馬內儒라는 말이 유행하게 된지 오래되었다고 한다. 이 는 추측이긴 한데 주로 신유가들이 퍼트린 소문일 가능성도 없지 않을 것이다. 각 대학의 철학과에 맑스레닌 이론 전공자가 중국의 전통철학전공자들보다 그 수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이를 말해준다.

42) 로더릭 맥파커, 「왜 아직도 마오쩌둥이 중요한가」, 하버드대학 중국특강(이은주 옮김), 미래의 창, 2018, 49쪽

43) 로더릭 맥파커, 「왜 아직도 마오쩌둥이 중요한가」, 하버드대학 중국특강(이은주 옮김), 미래의 창, 2018, 49쪽

44) 엘리자베스 페리, 「중국공산 정권은 정당성이 있는가」, 하버드대학 중국특강(이 은주 옮김), 미래의 창, 2018, 29쪽. 각대학의 철학과에는 아직도 중국의 전통철학 자들보다 수적으로 맑스 레닌주의를 전공하는 학자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 다.

중국공산당의 입장에서도 통치의 정당성과 지속성 유지를 위해서는 전통적 유교보다는 마오쩌둥으로 상징되는 강 력한 중앙집권 국가의 일체성의 구비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G2가 된 중국은 2019년 5.4 100주년을 형식적으로만 기념했다.

중국공산 당의 영향력이 압도하는 상황에서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5.4 논의는 어느새 서론에서 말한 것처럼 ‘시대에 뒤떨어진 문제의식’으로 보이게 된 것 같다.

G2가 된 이후 전통의 재인식 문제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될수록 5.4신문화운 동과 5.4운동은 서구라는 부호 그 이상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45)

45) 자칭 자유주의 좌파라 칭하는 어떤 학자는 ‘유가사회주의공화국’을 주장하기도 한 다. 인물로 말하면 공자와 모택동 그리고 등소평이다. 반면 자유주의파는 몇천년래 의 전통문화, 5.4이래의 신문화, 신중국의 사회주의 전통, 개혁개방 이래의 사회실 천 등 네 종류의 전통이 중국인의 의식을 주조했다고 주장한다. 이 두 유파 내에서 5.4에 대한 위상은 동일하지 않다. 여기서 확인해야 하는 것은 2019년 중국공산당 이 5.4 100주년을 성대히 기념하지 않는 것은 자기를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 없는 행위라는 점이다.

2017 년 중국공산당은 ‘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사상’을 제기하면서 ‘맑스주의의 중국화’를 가지고 서구와 이념경쟁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이제 중국에서 사회주의, 중국공산당, 5.4는 상호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단어 가 된 듯하다.

5.4를 이미 서구의 급진으로 위치시켜놓은 이상 당분간은 중국 에서 심급 높은 논의 대상이 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허나 중국공산당의 입 장에서도 역사성이 소거된 상태에서의 상상력은 과거로의 회귀만을 부추길 뿐 20세기 지난한 역사에 대한 창조적 재인식의 기회와 가능성을 모두 없애 버릴 가능성이 있다.

경로의존성과 복원력이 어쩔 수 없는 결과라 해도 그 안 에서 작은 변화라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100년 전의 5.4의 문제의식을 다시 문제 화한다는 전제 아래 그것과 함께 천하를 다시 사유해야 한다.

중국이라는 위 치는 일국적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밖을 의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시 중국의 안과 밖을 사고하기 위해 한 인물을 소환하자면 5.4 신문화운동의 국 면에서 철학적 질문을 가장 적극적으로 제기한 량수밍(梁漱溟)이다.

그는 서 방이라는 ‘우월한 타자’를 통해 중국문화의 자기중심적 질서를 문제 삼았고 그것을 새롭게 전환시키려 했다.

량수밍은 ‘나’, 중국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남’, 즉 ‘서양’의 시각이 아니라 ‘나’ 자신의 시각에 의존해 판단을 내리려 한 인물이다.

즉 타자성과 윤리성에 대해 강하게 의식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지 금은 이제 ‘나’란 무엇인가에 대해 더이상 묻지 않는 분위기이다.

이런 분위기 에서는 타자성과 윤리성의 부재를 초래하기 십상이다.

타자성과 윤리성의 부 재는 목하 재구성되고 있는 신중화제국체제의 재구성 과정에서 다시 목적론 적이고 전체주의적 방향의 가능성을 허용하게 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46)

46) 이에 대해서는 조경란, 「중국공산당의 ‘통치의 정당성’과 ‘유교중국’의 재구축-Ⅱ- ‘대륙신유가’와 ‘유가전통’ 그리고 ‘성찰적 유학’」, 사회와철학 제39집, 2020.4. 참조

양수명의 논의에서 우리가 흔히 목격했던 중국 사회주의가 서양보다 나은 근대라든가 근대극복이라는 의식은 특별히 없는 것 같다.

다만 중국이라는 현실에 충실해야 하고 자본주의 사회의 무한 욕망에 대한 근원적 반성을 촉 구할 뿐이다.

그는 종교나 철학에서 자신의 답을 구하려 했다. 그는 당시 흔 히 보여주었던 중국지식인들의 서양과의 경쟁의식, 또는 중국에 대한 우월의 식같은 것이 없었다.

문명의식의 ‘사사로움’이 없는 이러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을 때 “좋은 것은 좋다고 하고 나쁜 것은 나쁘다”고 할 수 있다.

누구를 비 판하든, 무엇을 비판하든 그 비판의 힘은 자기인식이 철저할 때 힘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비단 중국의 인문학과 지식인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리 라.

동아시아 지식인이라면 국적을 불문하고 자기를 대상화하고 자기를 비판 할 수 있어야 한다.

Ⅴ. 중국 지식인의 타자성과 한국 유학의 방향

이상에서 중국의 신유가가 보여주는 국가에 대한 우환의식의 과잉으로 인 해 그들의 유학이 보편성으로부터 이탈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이 는 신유학 담론주체의 20세기에 대한 인식의 결락과도 밀접하게 관련이 있 다.

이 결과 국가(nation-state)에 포획된 유학의 출현, 즉 민족주의적 유교 의 출현을 허용했다고 보았다.

그 근원에는 유교에 대한 ‘점유자의 태도’가 존 재한다.

결과적으로 현재 중국의 유학은 동중서의 유학보다 더 왜소화된 모 양새를 보여준다.

동중서는 그래도 한족을 뛰어넘는 국가 또는 제국에 내속 된 유교를 주장했고 그럼으로써 유교의 보편화를 추구했다.

중국의 지식인은 과거 전통시기에 그랬던 것처럼 각기 중국의 미래를 주도 할 수 있는 위치에 서기 위해 정부의 지지를 얻으려 한다. 또 이들은 정권의 지지자이자 동시에 비판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47)

굳이 피터볼(Peter K. Bol)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중국의 신유가 또한 전통시기 사대부의 존재 방식과 그리 멀지 않다. 국가와 지식인은 끊임없이 서로를 이용하고 경쟁하 려 한다는 것은 다 아는 이야기다.

그러나 중국이 G2로 부상한 21세기는 ‘불 행히도’ 세계가 20세기를 경험한 이후의 시기이다.

지난 세기는 인류가 종적 으로도 큰 변화를 겼었지만 횡적으로도 가장 많은 교류가 있었던 시기이다.

사상적으로 인류는 전에 없던 민주와 자유도 경험했고 사회주의의 이상을 추 구하기도 했으며 무시무시한 전체주의의 폐해도 겪었다.

이처럼 20세기는 과 학기술 뿐 아니라 가치의 측면에서도 다양한 경험을 하였다.

따라서 중국의 외부를 의식한다면 유교를 근간으로 한 통치의 정당성을 강 조하는 것만으로는 자칫 ‘19세기적 21세기로의 회귀’로 보일 공산이 크다.

중 국은 유교를 통한 ‘중화제국체제의 재구성’은 이제 불가능하다.

중국문화의 단순한 자기 긍정을 넘어 trans-civilization에 버금가는 ‘대담한 기획’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들이 비판해왔던 서구의 ‘보편’을 거부만 할 것이 아니라 aufheben(극복과 보존)하는 관대한 태도가 필요하다.48)

47) 피터 볼, 「중국 정치에서 지식인의 역할을 무엇인가」, 하버드대학 중국특강(이은 주 옮김), 미래의 창, 2018, 341쪽

48) 졸고, 「중국공산당 통치의 정당성과 ‘유교중국’의 재구축-유교의 ‘통치이념화’와 20 세기 역사경험의 문제」, 철학 132집, 2017 가을호, 23쪽 참조

더 나아가 동아시아 다른 나라의 변모한 유학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허나 이 러한 ‘대담한 기획’ 또한 앞서 말했던 ‘점유자의 태도’에 대한 ‘태도의 변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는 윤리적, 분석적 노력이 뒤따를 때 가능한 일이다.

중화제국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중’과 ‘외’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구성은 두 가지의 신화, 즉 ‘중화제국이라는 통일체’와 ‘제국의 밖에 대한 우월성’에 의거해 있었다.49)

하지만 이제 ‘외’는 더 이상 중화제국이라는 중심의 우월성을 돋보이게 하는 주변으로서의 존재가 아니라 중화제국 내부의 동일성을 깨트 리는 타자로서 존재한다.50)

더구나 인접한 한국이라는 장소만 하더라도 유교 500년에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모두 경험한 곳이다. 더 이상 전통적인 ‘외’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19세기 말 중화제국체제가 무너지고 나서 20세기 이전까지 중화제국체제를 떠받쳤던 이데올로기인 중화주의를 해체해 야 한다는 ‘의식적’이고 ‘자각적’ 성찰을 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나는 다른 글 에서 일본의 침략이 오히려 중국의 중화주의 해체를 도운 것이 아니라 중화+ 민족주의로 강화시켰다고 주장했고 이를 ‘일본 침략의 역설’이라고 불렀다.51)

전통시대부터 이어져온 지배와 차별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청산하는 작업이 선행되지 않고는 21세기의 대등하고 다원적 협력관계의 수립은 가능하지 않 다.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의 지식인들의 심리학적 상호인정과 연대가 힘 든 이유는

첫째, 이러한 청산의 작업이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며,

둘째, 21 세기의 타국의 변화에 대한 무지 또는 무시 때문이다.

우리도 중국의 변화에 대해 잘 모르며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처럼 중국과 일본 또한 한국의 변화에 대해 잘 모른다. 특히 한국의 2000년대 경제성장과 과학기술의 발전이 정치 민주화와 문화 상상력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를 잘 모른다.

동아시아에서 유교문화는 중국을 기점으로 동심원적으로 확산되고 각 나라 의 시공간을 거치면서 그 양태가 다양해지고 풍부해졌다.

미조구찌 유우조 (溝口雄三)는 동아시아 각국으로 퍼져나간 아시아의 유학을 중국의 ‘外傳’으 로만 봐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52)

49) 王柯, 「帝國と民族―中國における支配正當性の視線」, 帝國の硏究, 名古屋大學出版 會, 2003, 219~220쪽

50) 졸고, 「중국공산당 통치의 정당성과 ‘유교중국’의 재구축-유교의 ‘통치이념화’와 20 세기 역사경험의 문제」, 철학 132집, 2017 가을호, 24쪽 참조

51) 그리고 어떤 중심주의가 해체된다는 것은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담 지한 주체들의 자각적이고 자발적인 의지,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부친살해’라고 표 현할 정도의 자기부정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 오히려 그 때까지 존재했던 중화주의 는 일본의 침략이라는 현실 앞에서 20세기의 민족주의와 결합하여 중국굴기의 동력 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각국의 논의과정에서 각각의 특성을 가진유학으로 변모했음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이 논리에 의하면 중국의 유학 도 중국의 장소성과 특수성이 반영된 중국의 유학일 뿐이다.

하지만 ‘점유자 의 태도’로 인해 동아시아 유학의 차이와 다양성 그리고 타자성을 인정하는 데로 나아가지 못한다. 이제 동아시아는 공통성을 말한다거나 문명 본원의 모습을 강조하는 것보다 유교문명이 각국으로 퍼져나간 이후 각기 다른 장소 에서 어떤 차이를 만들어냈는가를 설명하려는 노력이 더욱 가치가 있다.

이 차이의 비교 속에서 동아시아의 유교의 특징과 異同이 새로이 추출될 수 있 어야 한다.

그리고 이 바탕 위에서 19세기 말부터 시작하여 20세기의 한중일 이 어떻게 서로 불화와 침략, 격절의 세월을 거치면서 100년을 보냈는지를 비평적으로 말해야 한다.53)

그런 토대 위에서만 동아시아 21세기의 새로운 관계 정립이 가능하다.

20세기 100년 동안 동아시아 각국은 공히 서방의 영향을 압도적으로 받았 다. 이제 사유양식에서 전통문화를 떠날 수 없다고 인정하는 사람들조차도 서양에서 발원했으나 모두가 공유하게 된 자유, 평등, 민주, 인권 등의 가치 를 떠나서는 아시아의 일상은 상상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이는 마치 현재 중 국에서 사회주의적인 것이 무엇인지 자본주의적인 것이 무엇인지 구분 자체 가 힘들어진 것과 비슷한 것처럼 어느 것이 동양적인 것인지, 또 서양적인 것 인지를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진 것이나 다름 없는 것과도 같다.

물론 이 문제에 관한 감수성은 중국의 경우와 한국의 경우가 다르고 세대별로 차 이가 있다.

20세기에 대한 경험과 그 해석의 방식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즉 20세기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가 여기서 관건적인 문제가 될 수밖에 없 다.

더 나아가 서양에서 발원한 여러 가치들이 일상화하는 과정에서 아시아 문화와 결합하여 어떤 부분이 엎그레이드되었고 또 어떤 부분이 다운그레이 드되었는가를 검토해야 한다.

중국의 문제는 고금의 문제만 남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54), 이렇게 말하는 것은 더이상 서양에서 배울 것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서 론에서 말한 바 경로의존성과 복원력이 그만큼 중국을 지배한다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52) 1997년 汪暉와 미조구치의 대담

53) 중국과 한국은 2차대전 후 냉전시기 40여년 동안 적성국가로서 왕래가 없다가 외교 관계를 맺은지 이제 30년도 되지 않았다.

54) 대표적으로 陳明은 중국의 문제는 더 이상 중서의 문제가 아니라 고금의 문제라고 잘라 말한다.

서한 이후에 만들어진 유법체제55)가 청말까지만이 아니라 현 재까지의 역사를 설명하는 프레임이라 할 수 있다면 서두에서 말한 20세기만 이 아니라 중국역사 전체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의 문제가 대두된다.

그 렇다면 경론의존성은 일단 만들어진 유법체제가 비효율적이라는 것을 알면서 도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계속 복원된다는 것인데, “중국이 전통을 잘 계승하는 나라”라는 의미는 지식인들이나 민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어쩔 수 없이’ 정해진 경로가 준비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서는 루쉰(魯 迅)이 지적했던 ‘국민성’의 문제와는 다른 버전업된 21세기 방식의 문제제기 가 이루어져야 한다.

중국과 여러 부분에서 다른 한국은 그 반대인 것처럼 보인다.

한국의 경우 이봉규 교수가 지적하고 있듯이 ‘고와 금의 호환적 연대’가 더욱 필요할 수 도 있다.56)

한국은 오래된 것의 자각적, 현대적 재구성을 여러 차원에서 고 민해볼 때이다.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발전할수록 한국의 전통에서 공화주의 또는 민주주의 요소를 찾으려는 시도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한국 문화발전 의 토대가 되고 있는 민주주의가 서양과는 무엇이 다른가, 또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과는 어떻게 다른가에 대한 설명을 끊임없이 요구받을 것이기 때문이 다.57)

55) 유법체제는 유가와 법가체제를 의미한다. 趙鼎新, 東周戰爭和儒法國家的誕生, 華 東師範大學出版社, 2011, 159-164쪽. 이후 이 유법체제는 중국 역사의 장기적 패턴 을 설명하는 프레임이 되었다.

56) 이봉규, 「21세기 실학연구의 문법」, 한국실학사상연구 1, 혜안, 2005, 40쪽

57) 이런 시도를 하는 한국의 여러 학자가 있다. 아직은 옥석을 가릴 여유와 안목이 없 다. 그러나 언젠가는 잘 가려서 중국에 소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바람이었던 ‘서양과는 다른 근대’와 ‘소련과 차별화된 사회 주의’은 진정 점점 더 멀어지는 것일까.

적지 않은 중국인들과 이에 동조하는 외국학자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 바람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더 기다려 야 한다고.

그러나 결과가 아무리 좋은들 과정이 불공정하고 정당하지 못하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나는 학자로서 거기에 동의할 수 없다.

아버지가 반우파투쟁과 문혁에서 상처를 입고 자살을 했는데 중국이 세계 최고가 된들 그들의 아들 딸에게 중국의 영광은 온전한 영광일까.58)

의도가 아무리 위대 한들, 결과가 아무리 좋은들 과정이 정당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학문은 막스 베버에 의하며 오늘날에는 ‘자기성찰’과 사실관계의 인식에 기 여하기 위해 전문적으로 행해지는 ‘직업’이지 구원재(救援財)와 계시를 喜捨 하는 심령가나 예언자의 은총의 선물이 아니며 또한 세계의 의미에 대한 현 인과 철학자의 사색의 일부분도 아니다.59)

중국에서 타자성 문제는 결코 쉬 운 문제가 아니다.

자신에 대한 정당한 인식이 가능할 때만이 타자성을 사고 의 대상으로 올려놓을 수가 있다.

그러한 지식인의 공통점은 주체의 문제를 문제로 삼는다는 점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결코 문명론자가 아니라는 데 있 다.

그들은 자기 문명에 자부심을 갖더라도 문명의 우열을 믿지 않는다.

20세 기처럼 21세기에도 중국의 밖을 사유할 수 있는 사상의 거장을 만날 수 있을 까.

앞서 ‘점유자의 태도’를 지적한 천핑위안(陳平原)이 말한 것처럼 전통문 화를 중국의 사유재산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중국인이 공헌한 인류의 문화자 원으로 보는 태도를 가진 자라면60) 자격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58) 이런 느낌을 절절하게 보여준 책은 반우파투쟁을 다룬 다음의 자료이다. 장이허(박 주은 옮김), 나의 중국 현대사-반우파 투쟁과 중국 지식인의 내면의 역사, 글항아 리, 2015

59) 막스 베버(전성우 옮김), 직업으로서의 학문, 나남, 2006(2017년 1쇄), 96쪽

60) 천핑위안, 「학술, 사상, 정치」, 고뇌하는 중국, 길, 2003, 175쪽 참조

그런 지식인이라면 중국문화만이 아니라 다른 문화도 대등하게 볼 수 있으며 이성적인 비판정신을 지니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라면 중국의 타자성을 운위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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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atract>

The political perception of the Chinese Neo-Confucianist and the ‘legitimacy of history’ of the Xi Jinping regime - The déjàvu of the Chinese Empire and Problems of otherness Keong-ran Cho To interpret China's entire history with its dependence on the path and resilience, it inevitably conflicts with the question of how to view China's 20th century. On this issue, the neo-Confucianists and the Communist Party are subtly divided. The Neo-Confucianism in China is not too far from the way the noblemen of the traditional period exist. The state and the intellectuals are constantly trying to exploit each other. Chinese intellectuals seek to win the support of the government to stand in a position to lead the future of China, as they did in the past traditional times. They are also supporters and critics of the administration. Nevertheless, the article argues that the excess of anxiety consciousness toward the state shown by the Chinese neo-Confucianism have resulted in their departure from universality. This is also closely related to the conclusion of the neo-Confucian discourse's perception of the 20th century. As a result, it was believed to have allowed the appearance of "study abroad captured by the state." This is due to their 'occupant attitude' toward Confucianism. This retention of attitudes makes it impossible for them to object to Confucian culture and Chinese studies and make them unable to distance themselves. This result, which they did not intend, resulted in the dwarfing of Confucianism and the de-universalization and nationalization of Confucianism. What the neo-Confucian school did not recognize, however, is that the legitimacy of rule for the Communist Party officially comes from clarity as long as the Communist Party is alive. To get out of here would be the collapse of the ruling ideology, which is part of the iron triangle of Party officials, Marxism and the People's Liberation Army established by Mao Zedong. The Xi Jinping administration believes that Communist rule should be sustained by the ideology of Marxism. In 2017, the Communist Party of China declared that it would compete with the West with the "Chineseization of Marxism," raising the "socialist idea of Chinese characteristics in the new era of Xi Jinping." However, Tianxia(天下) should be reconsidered with it on the premise that the problem consciousness of the 5.4 movement 100 years ago will be raised again. When that happens, China's otherness and ethics can be acquired. The absence of otherness and ethics could result in allowing the possibility of a more purposeful and totalitarian direction in the course of the reconstruction of the system of the New-Chinese Empire, which is now being constructed. In China, after the collapse of the Chinese Empire in the late 19th century, there has never been a "conscious" reflection on Sino-centrism, which had been the ideology of the Chinese Empire throughout the 20th century. Only when the work of fundamentally liquidating the relationship between domination and discrimination that has been going on since the traditional era is preceded can the establishment of equal and pluralistic cooperative relations in the 21st century. Under this premise, studying abroad in Korea and China now needs to be discussed on the premise of equality and diversity, while respecting the locality of each other. Basically they're them and we're us. Will he use China's talk of studying abroad as a lesson, a head-on teacher, a teacher on the other hand, or just a reference? We must open up various possibilities and discuss what points to cooperate and compete in. In the succession of tradition, Korea and China make a huge difference. China, positive or negative, is a country that "cannot help" inherits tradition, and Korea seems to be the opposite. In Korea, "compatible solidarity between the past and the present" is more necessary, and it is time to consider the awakening and modern reconstruction of the old.

Keywords : the excess of anxiety consciousness toward the state, occupant attitude, the de-universalization, nationalization of Confucianism. otherness and ethics

儒敎思想文化硏究第81輯 / 2020年 9月

* 투 고 일 : 2020년 9월 2일 / 심사완료일 : 2020년 9월 25일 / 게 재 확 정 일 : 2020년 9월 29일

21세기 중국 신유가의 정세인식과 시진핑체제의 역사 정당성-중화제국체제의 데자뷰와 타자성의 문제-.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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