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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야기

로마서 12장 6절 ‘προφητεια κατα την ἀναλογίαν της πίστεως’(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에 대한 조직신학적 연구/강응섭.예명대학원대

 I. 서론

 

본논문은로마서12장6절에제시된“προφητεια κατα την ἀναλογία ν της πίστεως”(“예언이면믿음의분수대로”)를조직신학적관점에서 다룬다.

로마서12장6절이하에서바울은일곱가지의은사와은사를 행하는방법을집약하여기술하면서, “예언의은사는믿음의분수대로 한다”고말한다.

‘믿음의분수’라는표현은조직신학에서보통‘신앙의 유비’라고표현한다.

한글성서가‘믿음의분수’라고표기하였기때문에, ‘믿음의분수’를‘신앙의유비’라고번역하여소개하는설교나글을접하 기는쉽지않다. 국내조직신학연구를조사해봐도이표현을‘신앙의 유비’와 연결하여 연구한 것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1)

성서원문에따를때, “예언은믿음의분수대로한다”는말은“예언은 신앙의유비로한다”고말하는것과동일하다.

‘믿음의분수’를‘신앙의 유비’로번역하여읽고이해할경우, 로마서12장6절은조직신학자에게 큰울림이있을것으로보인다.

왜냐하면사도바울이로마에있는신앙인 들에게보낸편지에명시된내용이기에, 이구절이라틴어를사용하는 교부들과스콜라학자들에게어떻게이해되고전승되었는지연구할기 회를제공하고, 서방중세시대이후오늘에이르기까지‘신앙의유비’와 ‘존재의유비’ 간의논쟁을로마서12장6절에근거하여연구할수있기 때문이다. 본연구의연구사는크게두부분으로나눌수있다.

첫번째부분은 앞서밝혔듯이한글번역상의이유로파생된믿음의분수와신앙의유비 를비교한연구를찾을수없다는것이다.

두번째부분은예언에관한 연구사2) 및‘신앙의유비’와‘존재의유비’에관한연구사3)이다.

 

         1) 한국조직신학회2024년월례포럼“K-Theology & K-Church” 5월포럼에서발표한 이정배교수의“공(空) 공(公) 공(共) ―소위개벽신학의세토대로서―”는존재의 유비와신앙의유비이외에‘역사의유비’를제시하면서K-신학으로서개벽신학을 위한 유비 개념을 소개한다.

         2) Cf. 예언에관한논문의다수는구약학에서발견된다. 여기서는몇가지만제시한다. 가령, 박준서, “구약예언자의중재자역할에관한연구,” 「신학논단」 17 (1987): 19-33; 민영진, “예언자에있어서의 ‘하나님의영’과‘하나님의 말씀’,” 「연신목회자 신학 세미나자료집」 4회(1989): 162-166; 김명호, “선지직의기원,” 「광신논단」 5 (1993): 231-246; 노세영, “예언의기원과예언자직무의시작,” 뺷박준서헌정논문집뺸 (도서 출판한들, 2001), 30-51; 임상국, “초기페르시아의대외정책과제2이사야의예언자 적직무,” 「신학과세계」 46 (2003 봄): 180-204. 그리고신약학에서는김형동, “Q공동 체에나타난하나님의나라와예언자의관점의중요성,” 「신약논단」 7 (2001): 104-121; 실천신학에서는허도화, “설교본문과청중에충실한설교: 예언적설교에대한새로 운이해,” 「신학과실천」 2 (1998 겨울): 105-124; 조직신학에서는 김선권, “칼뱅의 그리스도 삼중직의 구원론적 의미 고찰,” 「한국기독교신학논총」 Vol. 124 (2022): 49-84 등의관련논문이있다. 이외에도본문에서루터, 칼뱅, 칼바르트등을통해 이 주제에 관한 문헌을 소개하면서 연구사를 제시한다.

     3) Cf. 개신교에서유비에관한논문은흔하지않은데, 황덕형의“바르트의유비의신학,” 「호서신학」 4 (1995): 273-288을 참조할 수 있다. 가톨릭 신학자 중에 유비를 다룬 이로는박승찬을들수있다. 그는이주제로박사학위논문을작성한이후이주제에 관하여 여러 편의 논문을 게재했다. 박승찬, “유비 개념 발전에 관한 역사적 고찰 ―토마스아퀴나스유비이론입문,” 「가톨릭신학과사상」 제26호(1998 겨울): 139- 165; 박승찬, “유비개념의신학적적용,” 「가톨릭신학과사상」 제28호(1999 여름): 181-208; 박승찬, “토마스아퀴나스의유비개념에대한재조명,” 「신학과철학」 창간 호(1999): 177-219; 박승찬, “유비개념의다양한분류에대한비판적성찰―토마스 아퀴나스에대한카예타누스의해석을중심으로,” 「중세철학」 11권(2005): 115-170. 이외에도본문에서루터, 칼뱅, 칼바르트등을통해이주제에관한문헌을소개하면 서 연구사를 제시한다. 

 

 

이둘을 각각살펴볼수있고, 이둘을연결한연구를살펴볼수있는데, 간단한 연구사는본논문의각주에서살펴볼수있고, 본문을전개하면서도제시 한다.

본논문은믿음의분수대로예언하기, 즉신앙의유비로예언하기에 관한연구를하기위하여‘κατα την ἀναλογίαν της πίστεως’(믿음의 분수대로, 신앙의유비에따라)와‘προφητεια’(예언)의관계를살펴본 다. 글의 순서는 우선 기독교의 역사에서 그것을 간략하게 살펴보고, 둘째로루터, 칼뱅, 바르트의저서를통해좀더구체적으로다루고, 마지 막으로믿음의분수대로의예언, 신앙의유비로의예언을‘초과된예언, 삭제된예언, 누락된예언’ 등세가지형태로분류하여분석하고, 로마서 12장 6절에 대한 조직신학적 의미를 끌어낸다. 

 

II. 기독교의 역사에 따른 ‘προφητεια’와 ‘κατα την ἀναλογίαν της πίστεως’

 

기독교는“주예수그리스도”라는신앙고백에서시작한다. 이신앙 고백을중심으로교부시대에는예수그리스도의위격이정립되었다. 이위격에대한논쟁으로인해초기의그리스도교회는내부적으로역경 의시간을보내야했다.

예수그리스도의인성과신성, 위로부터의그리 스도론과아래로부터의그리스도론, 성부와성자의관계및성자와성령 의관계등이제기되고정립되었다.4)

그중일부는제4차보편공의회인 칼케돈공의회신조(451년)를통해일단락지어졌다.

이신조는그이후 성상화, 영성체논의등을푸는해법역할을했다.

이런과정에서위격에 따른직무는왕직무와대제사장직무로한정되었다.

학자에따라서는 예언자(선지자) 직무를그리스도론에포함하기도한다. 종교개혁시기 에이르러주기도문, 사도신조를해설하거나요리문답이나신조를작성 하면서 예수의 삼중직무론이 정착된다.5)

 

     4) Cf. 바티스타몬딘/조규만․ 박규흠․ 유승록․ 이건역, 뺷신학사1뺸 (서울: 가톨릭출판사, 2012); 윤철호, 뺷너희는나를누구라하느냐: 통전적예수그리스도론뺸 (서울: 대한기 독교서회, 2013); 이브콩가르/윤주현역, 뺷나는성령을믿나이다3뺸 (서울: 가톨릭출 판사, 2018).

    5) 특히칼뱅을들수있다. 최근의칼뱅에게서그리스도의삼직무론에관한논문으로는 최성렬, “이민 신학의 그 중심 속에 있는 기독론 ― 존 칼빈의 그리스도와의 연합 사상관점으로본성육신론과그리스도의삼중직론을중심으로,” 「한국조직신학논 총」, Vol. 71 (2023. 6.): 181-217을 참조할 수 있다. 

 

중세교회에서아퀴노의토마스(Tommaso d’Aquino, Thomas de Aquino, Thomas d'Aquin, Thomas Aquinas, 1225~1274?)는플라톤전통 과아리스토텔레스전통을집대성한인물로알려져있다.

그가집대성을 위해사용한것은유비(analogia)의방법이다.6)

그가사용한용어‘유비’ 는proportion, assimilation 등을포함한다.

유비의토대는‘닮음’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뺷범주론뺸에기초하여작성된토마스의Les principes de la réalité naturelle (뺷자연의 원리들뺸, 1254년)에는 ‘유비적’(analogice, analogue)이라는의미를“본성과정의를달리하지만, 공통되는 관계를상정하는실재들에게동일한낱말을응용하는것”7)이라고말한 다.

 

    6) 국내에서아퀴노의토마스유비개념을잘정리한학자로박승찬을들수있다. 앞서 제시한 각주 2에서 명시한 것을 참조할 수 있다.

    7) Saint Thomas d'Aquin, Les principes de la réalité naturelle (1254) (Paris: Nouvelles Editions Latines, 1963), Chapître 5. 29, 97-99.

 

여기서‘유비적’은‘일의적’(univoce, univoque)인것과‘다의적’(aequivoce, équivoque)인것의관계에서이해할수있다.

‘일의적’은“‘하나 이고동일한’ 의미에따라‘하나이고동일한’ 낱말에사용하는것”을지칭 하는것이고‘일사일의’(一詞一意)이다. ‘다의적’은“다른의미로사용된 동일한이름을주는것”을지칭하는것이고‘일사다의’(一詞多意)이다.

즉, 하나의낱말이하나의뜻을갖는것과하나의낱말(이름)이여러뜻을 갖는경우가있는것이다.

의사소통이되려면사용된단어(낱말, 이름)가 어떤의미를지니는것인지파악해야하는데, 그단어가하나의의미를 갖는지,

여러의미를갖는다면어떤의미로사용되는지를알아야의사소 통이된다.

‘일의적’과‘다의적’은피조물에한정하거나동일한종에제한 적으로 사용된다.

이것은 신과 인간, 인간과 다른 피조물에는 사용될 수없다.

그래서토마스는세번째범주인‘유비적’을도입한다.

그래서  그는본성과정의를달리하는실재들(= 공통되는관계를상정하는실재 들)에게사용하는낱말을고려한다.

신과인간은본성과정의를달리하 는실재들이다.

인간과다른피조물도본성과정의를달리하는실재들이 다.

또한신과인간, 인간과피조물은공통되는관계를상정하는실재들 이다.

‘유비적’이라는방법은다른종(種)과류(類)의관계에사용하는 방법이다.8)

 

     8) 강응섭, 뺷교리와세계관입문뺸 (화성: 예일신학대학원대학교출판사, 2005), 39-58.

 

13세기유럽은(신)플라톤적세계관과기독교적세계관이결합되 는 사회였다.

십자군 전쟁이 진행되고 있었고, 이슬람 세력과 기독교 세력의알력이있었던시기였다.

이런과정에서아리스토텔레스의책과 이것에토대를둔세계관이이슬람권을통해서방세계에전해졌다.

토마 스는아리스토텔레스의뺷범주론뺸을통해세범주를인식하고, 이에근거 하여하나의명칭이세가지방식으로사용되는것을방법론적으로정리 한다.

이것은보편개념을종합하여정립하는일환인데, 스콜라학의보 나벤투라와같은학자는일사일의(一詞一意)에기반하는보편실재론 을주장하였고, 토마스는일사다의(一詞多一)에기반하는온건실재론 을주장하면서‘유비적’인방법도사용하였다.

이런흐름에반하여‘사’ (詞)와‘의’(意) 간에는아무런연결점이없다는유명론(唯名論, nominalisme)도나오게된다.

서방교회는‘믿음의분수’라고번역되고있는, 그러나조직신학에서는‘신앙의유비’(κατα την ἀναλογίαν της πίστεως) 로번역되는이것에‘존재의유비’(κατα την αναλογιαν του όντος)를탑승 시켜야하는과제를안고있었다.

이문제를해결하고자했던이가아퀴노 의토마스이고, 그의작업은‘집대성’으로이해되었다.

아퀴노의토마스 는유비의문제를아주깊이다뤘다.

신앙의유비와존재의유비는예언으 로서믿음의분수에관한것이고, 예수그리스도의제3직무인예언자 직무에관한것이다.

표면적으로볼때, 중세시기의서방사회(교회)에서 예언자직무는구체적으로드러나지않는것처럼보이지만, 토마스의 신학작업은신앙의유비(믿음의분수, 믿음의정도등번역이어떠하든) 에따른예언직무에관한것으로볼수있다.

로마서12장6절에서말씀하 는“προφητεια κατα την ἀναλογίαν της πίστεως”(믿음의분수에따른 예언, 신앙의유비에따른예언)를그리스도의제3직무인예언자직무로 이해한다면, 아퀴노의토마스가집대성하고자할때사용한도구는예언 을위한도구인‘유비’이다.

그가집대성하고자한것은계시와자연의 연결, 신앙과 이성의 화해 등에 관한 것이다.

즉, 그는 하나님의 편에 속하는 계시와 자연의 편에 속하는 이성을 연결하고자 했다.

이 말은 곧앞서언급한‘신앙의유비’와‘존재의유비’를연결하는것이다.

토마스 는뺷신학대전뺸(2a2æ. 171-178) 제45권, “예언과은사” 부분에서예언과 믿음의분수(신앙의유비)를다룬로마서12장6절을다루지는않는다. 9)

 

     9) St. Thomas Aquinas, “Prophecy and other Charisms,” Summa Theologiæ, Volume 45 (2a2æ): 171-178. English translation, Introduction, Notes, Appendices & Glossary by Roland Potter O.P. (Manchester: Blackfriars, 1970). 

 

토마스가로마서12장6절을설명하면서예언과신앙의유비를설명하 지는않지만, 뺷신학대전뺸을저술하는자신의신학방법론으로‘신앙의 유비’를사용한다. 이말을다르게표현하면, 중세에이미‘믿음의분수’ 또는‘신앙의유비’에따른예언또는예언자사상이아주분명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연구가들은 초대교회 이후 중세 교회에 이르는 과정에서 예수그리스도의직무는왕의직무, 대제사장의직무에머물러있었다고 말한다. 종교개혁 시기에 칼뱅에 이르러서야 제3의 직무로서 예언자 직무가확립되었다고평가한다.

그렇다면토마스가제시한유비개념에 따른신학작업을예언적직무와연결할수없는것인가?

연구자가볼 때, 예언자직무는초대교회이후에중세시기를거치면서도아주강력하 게전개되고있었다.

연구자가그렇게주장하는이유는로마서12장6절 에서바울이제시한은사로서“예언”(προφητεια)과예언을행하는방식인 “믿음의분수대로/신앙의유비대로”(κατα την ἀναλογίαν της πίστεως)10) 때문이다.

라틴어성경은로마서12장6절을“secundum rationem fidei ”(신앙 의유비대로)11)로번역한다.

 

     10) Nestle-Aland, Novum Testamentum Graece, 28th Reserved Edition, edited by Barbara and Kunt Aland, Johannes Karavidopoulos, Carlo M. Martini, and Bruce M. Metzger (Stuttgart: Deutsche Bibelgesellschaft, 1898/2013), 431.

     11) Nestle-Aland, Novum Testamentum Latine (Stuttgart: Deutsche Bibelgesellschaft, 1906/1984), 431. 

 

헬라어와라틴어를비교해보면, 당시헬라 교부와라틴교부가이해한예언을행하는방법에관해이해할수있다.

κατα와 secundum은전치사(according to)이고, αναλογιαν은rationem으로번역되었고, πιστεως는fidei로번역되었다.

여기서주목할부분 은헬라어αναλογιαν에해당하는라틴어번역이다.

라틴교부는이단어 를rationem(ratio)으로번역했다.

라틴어에analogia가있음에도ratio 를사용한이유는무엇일까?

ratio는라틴어에서‘산식’(算式)에사용되는여성명사이다.

즉, 셈하기, 셈한것을기록하는장부, 장부에기록된 액수 등을 의미한다. 물리적인 의미를 드러내는 명사이다.

이 단어가 믿음이라는단어와결합되면서만들어진‘rationem fidei’는어떤의미 를 갖게 되는가?

이 관형구는 수량화할 수 없는 믿음을 수량화한다는 의미를담고있다.

즉, 예언은믿음을셈하는것, 믿음을셈하여장부에 기록하는 것, 믿음을 셈하여 획득한 액수 등으로 이해된다. 이런의미에서한글번역(개역한글, 개역개정)인“믿음의분수대 로”가나온듯하다. 한글에서‘분수’는다양한뜻을지니는데, 한자分數 로표기할경우, ‘자기신분에맞는한도’ 또는‘사물을분별하는지혜의 의미’로볼수있다. 즉, 믿음의분수는자신의믿음에맞는한도, 자신의 믿음으로사물을분별하기등으로이해할수있다.

믿음은적은믿음이 있고, 큰믿음이있다.

이것은예수께서“믿음이적은자들아”라고하신 표현에서도볼수있고(마6:30, 8:26, 14:31, 16:8, 17:20; 눅12:28) 또한 “이만한믿음을만나보지못하였노라”고하신표현에서도볼수있다(마 8:10; 눅7:9).

새번역과표준새번역은“믿음의정도에맞게”로, 공동번역 과공동번역개정판은“믿음의정도에따라서”로번역하고있다.

새번역 과표준새번역, 공동번역과공동번역개정판에서사용한“정도”에는한 자표기가되어있지않다.

사전에보면‘정도’는다양한한자로표기된 다.12)

 

     12) 正度(바른규칙), 正道(올바른길, 정당한도리), 程度(우열따위에서본수량이나 수준), 定道(자연적으로 정하여진 도리), 定度(이미 정하여진 제도나 법도). 

 

이런의미중새번역과표준새번역, 공동번역과공동번역개정판 은어떤한자를염두에두고번역하였는지궁금하다.

이와같이로마서 12장6절의관형구중“αναλογια”를분석하다보니, 예수께서누가복음 14장27-28절, 31-32절에서하신말씀을상기하게된다.

이런본문은예수 께서제시한제자도이다.

이도에따르면, 제자가되고자하는이는부모, 처자, 형제, 자매, 심지어목숨까지내어놓아야한다.

그리고제자가되고 자하는이는어떤건축물을짓고자할때건축비용을계산하듯, 전쟁을 할때적군의전세를파악하듯, 무엇인가를얻기전에자신의것을내어야 한다.

제자는이러한계산법에따라셈을한후결단이되는것이다.

제자 도와건축비계산이어떤연관이있는지예수께서직접하신말씀이다.

또한예수께서는제자들내부에문제가생기자, 이들을구제하기위해 제자들안에서구제의배낭을마련해야한다고도말씀하신다(눅12:22- 34; 마6:19-34).

이와같이예언, 믿음, 제자도는셈하기, 비용계산하기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상에서보듯κατα την ἀναλογίαν της πίστεως는서방교회의 중세시기에라틴어secundum rationem fidei로번역되었고, 이런흐름 은영어로to the proportion of Faith(KJV), according to the amount of faith(CEV), 프랑스어로selon la proportion de la foi(L. Second)로번역되 었다.

헬라어αναλογια이불가타성경에서ratio로번역되었기에, 영어 번역, 프랑스어번역, 한글번역에도영향을준것으로보인다.

신약성경 의용어가그리스어에서라틴어로바뀌면서형태가바뀌었다.

라틴어에 analogia가있음에도헬라어αναλογια의의미를더잘나타내는용어로 선택된것이ratio였고, 그에따라proportion, amount 등이선택되었다.

번역은수용자입장에서용이하고의미있는것으로채워진다.

라틴어 ratio는한끼분량을의미하기도하고, 그분배가합리적이어야하기에 합리성, 이성이라는 의미도 갖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믿음의 분수와  신앙의유비를이해하는것이필요해보인다.

이런이해를기반으로조직 신학에서 통용되는 ‘신앙의 유비’를 잘 숙고하는 것이 필요하다.

 

III. 루터, 칼뱅, 바르트에 따른 ‘προφητεια’와 ‘κατα την ἀναλογίαν της πίστεως’

 

1. 루터에 따른 로마서 12장 6절 분석

 

루터는이신칭의에근거한율법과복음간의강력한구분을통해 종교개혁을주도한다.

그는중세가톨릭교회의사제였고, 중세가톨릭 신학교육, 즉스콜라신학교육을받았다.

특히그가받은교육은‘실재 론’(Realism)에항거한교육이었고, 이를‘유명론’(Nominalism, 唯名論) 이라부른다.

실재론은‘보편’(universalia)이‘개체’(res)를앞선다는보 편실재론과‘보편’(universalia)과‘개체’(res)가유비적인관계라고주 장하는온건실재론으로구분된다.

전자를대표하는이는보나벤투라, 후자를대표하는이는아퀴노의토마스이다.

‘유명론’에따르면, 보편은 ‘단지(唯) 이름(名)일 뿐이라는 주장(論)’이고, 개체는 보편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오캄(Ockham)의 윌리엄이 주장한 ‘유명론’은 가브리엘 비엘(G. Biel)을통해루터에게전해진다.

에르푸르트대학교에서수학 한루터는스승인비엘을통해실재론에대항한유명론을받아들인다.

즉, 보편실재론은존재의유비보다우위에있는신앙의유비(믿음의분 수)를, 온건실재론은 신앙의 유비와 존재의 유비의 균등을, 유명론은 신앙의 유비와 존재의 유비의 분리를 말한다.

오캄에서시작하는유명론은신앙의유비(믿음의분수)와존재의 유비의연결을반대한다.

유명론은오히려존재의유비에속한다.

루터 는 이런 관점에 따라 교육을 받고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존재의 유비는 그에게 평안을 제공해 주지 못했다.

그는 강력한 신앙 체험을 통해신앙의유비로귀의한다.

이러한동력을통해그는가톨릭교회를 개혁하고자하는열정을갖게되었고, 개신(reformed)교회(Church)를 만든다.

그가주장한이신칭의는믿음의분수에따른예언에해당한다.

유명론에서실재론으로이행한루터는믿음/신앙이라는용어를사용할 때, 이용어를유비적으로본다.

‘믿음’이라는명칭은‘일의적’ 의미로사용 될수도, ‘다의적’ 의미로사용될수도, ‘유비적’ 의미로사용될수도있다.

1516년의 글에서 루터는 예수 그리스도의 경우에는 ‘그리스도의 믿음/신앙’(Fides Christi)13)으로표현하고, 인간의경우에는‘인간의믿 음/신앙’(Fides hominis)으로표현하였다.

 

    13) Martin Luther, “Commentaire de l’Epître aux Romains(t.II. 1516년),” Œuvres 12 (Genève: Labor at Fides, 1983), 118(ch. 8, v. 3), W. A., 56권, 360. “왜냐하면 만약 우리가자신을증오한다면, 만약우리가지금육욕을버리고자비를선택한다면, 이것은 우리가 한 일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 이유로 사도 바울은 육의 죄를 파괴하고, 그리스도의 신앙이 우리 가슴에 퍼지도록 성령으로 죄를 짓부순다.” 

 

1522년루터는자신이번역한 독일신약성경(Das Newe Testament Deutzsch)에서로마서12장6절을 이렇게번역한다: “Hat jemand weissagung, so sei dem glauben gemäß” (누구든지 예언을 한다면, 믿음에 따라).

그는 원문 “προφητεια κατα την ἀναλογίαν της πίστεως”에서‘την ἀναλογίαν’을번역하지않는다.

그러나 1516년에 저술한 뺷로마서 강해뺸에서는 “la prophétie selon la  règle de la foi”라고번역하고, ἀναλογία를명시하면서설명한바있다.

우선루터가이해한ἀναλογία를1516년에행한그의로마서주석을통해 살펴보자.

 

인간의경험이나추리에근거한예언은진실이아니다.

사도들은믿 음/신앙의규칙에따라(la règle[de la foi]) 말하기때문이다. 그리스 어단어“유비”(analogie)는실제로몇사람[원주: Lefèvre d’Étaples, Érasme]에의해“규칙”(règle), “비교”(comparaison), “비율”(proportion), “대조”(mise en parallèle), “유사성”(similitude)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사도는 “예언하고 싶다면, 믿음의 경계를 벗어나지 말고 예언하라”고 말한다. 독일어로는 Es ellicht ym. Es sihet ym gleich, 즉 이것은 그것과 [같은] 소유지(propriété), 유사함(ressemblance), 일치(convenance)를 가진다.14)

 

    14) 앞의 책, 453. 

 

그는그리스어‘유비’(analogie)에대한인문학자들의번역을제시 한다.

여기서인문학자는르페브르, 에라스무스이다.

그리고사도바울 의 말을 연결한다.

예언이 믿음의 경계(limites)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예언이 믿음과 ‘소유지(propriété), 유사함(ressemblance), 일치 (convenance)’의관계를갖는다는의미라고말한다.

예언과믿음의관계 가‘소유지(propriété), 유사함(ressemblance), 일치(convenance)’의관 계라는것이다.

이런설명을한뒤, 루터는또다른비유를그의로마서 주석에서 이렇게 제시한다.

만약 사람들이 성(château)과 유사해 보이는 수도원(monastère)을 식별한다고할때, 사람들은그수도원이한성의비율(proportion), 성의소유지(propriété), 성의지형(site)을가진다고말할것이다.

이 처럼사도가말하고자하는것은, 우리가보지못하는것을예언하는 방식으로, 예언이믿음과합치해야만하고, 결과나원인에의해보이 는 것에 속하는 세상의 지혜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15)

 

    15) 앞의 책, 453. 

 

그는 성과 수도원을 비교한다.

겉으로 보면 ‘성’인지 ‘수도원’인지 분명하게 분간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이때 분간하는 규칙은 비율(proportion), 소유지(propriété), 지형(site)이다.

예언은 이런 규칙에 따라 하는것이다.

건물의비율을비교하고, 땅의소유지를비교하고, 토지의 지형을비교한다.

좁게는건물그리고땅모양, 넓게는그건물과땅이 속한지형을보면서성과수도원을비교하는것이다.

이렇게성과수도원 을 비교하다 보면, 이 둘을 유비로 보다 보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알 수있다.

로마서주석을한지20년이지난1535년에행한그의갈라디아 서 주석을 보자.

 

이 유비(cette analogie)는 동화(assimilation)이다. 이것은 (지성으 로부터오는) 능동적인것도아니고(사물로부터오는) 수동적인것 도 아니고 이 둘 모두도 아니다. 왜냐하면 고유한 특성과 그 안에서 동화되기위해다른것과겹치는것이문제시되기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예언을 하는 것은 합법적이지만, 믿음/신앙의 고유한 특성  밖에서 하는 것은 합법적이지 않다. 즉, 예언된 것들은 경험에 의존 하지않고단지우리가기호나다른단서에의해볼수없는것의표 시일 뿐이다. 믿음/신앙(la foi)이 예언에 의해 소멸되지 않고, 통찰 력이있는사람이라면이해할수있고알수있는그지혜(la Sagesse) 를무용지물로만들지못한다. 이지혜덕분에유사한예언을세울수 있다. 이경우예언은하나가아니라구체적인것의전시이자경험의 지식이다.16)

 

여기서보듯갈라디아서를주석한1535년의글에서루터는유비를 ‘고유한특성의동화와겹침’이라고말한다.

그는믿음의고유한특성 안에서 하는 합법적 예언을 말한다.

이때 예언은 기호나 단서를 통해 볼수없는것이다. 비록우리가사용하는기호나단서를통해표시할 수없는것을예언한다고해도, 그예언이믿음/신앙의고유한특성을 없앨수는없다.

예언은하나가아니라경험한것을전하는지식, 믿음/신 앙의고유한특성을드러내는범위에있어야한다.

루터는믿음/신앙은 동일한본성이아니기에“항상믿음/신앙을간직하고, 항상희망하고, 항상우리의의시작과근원인그리스도를간직해야된다”17)고말했다.

 

       16) Martin Luther, “Commentaire de l’Epître aux Galates(t.II. 1535년),” Œuvres 16 (Genève: Labor at Fides, 1972), 250(ch. 5, v. 17), W. A., 40-42권, 453.

       17) 앞의 책, 90. 

 

즉, 인간의‘믿음’과그리스도의‘믿음’은동일한의미의‘믿음’이아니다.

이처럼루터가믿음/신앙은그리스도께서갖고계신믿음/신앙과인간 이 갖고 있는 믿음/신앙을 구분한 것은 유비의 방법에 따른 것이다.

 

2. 칼뱅에 따른 로마서 12장 6절 분석

 

칼뱅은뺷기독교강요뺸 초판(1536년)의헌사에서로마서12장6절을 언급한다.

“헌사. 프란시스1세에게드리는글”에서그는“폐하께서그것 을읽으실길을닦기위해서”18) 이글을쓴다고말한다.

여기서‘그것’은 한편으로는칼뱅진영의고백이고, 다른한편으로는칼뱅을반대하는 자들의비방서이다.

칼뱅이제시하는‘길’은뺷기독교강요뺸 초판전체일 수있지만, 바로이어지는문장에서제시된다.

 

“바울이모든예언이‘믿음 의분수대로’(롬12:6) 행해지기를원한다고말했을때그는이를성경 해석을시험하는가장확실한잣대로삼았습니다. 따라서우리가이러한 믿음의규율대로성경을해석한다면승리는우리의손에있습니다.”19)

 

즉, 칼뱅이제시하는길은성경을해석하는잣대이다.

이잣대는‘믿음의 분수대로(ad fidei analogiam)의예언’, ‘믿음의규율(fidei regulam)대 로의성경해석’이다.

칼뱅은이부분을“제4장성례들”에서이렇게설명 한다.

 

“바울은성경의해석을‘신앙의유비에따라서’ 할것을명령한다 (롬 12). 이 교리를 다룸에 있어서 신앙의 유비의 원리는 의심의 여지 없이명백하게나의입장을지지한다. 어떤신앙의자에맞추어당신이 당신 자신을 형성시켜 가고 있는지 볼 일이다. 실로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것을고백하지않는사람은하나님으로부터난 자가아니다.”20)

 

    18) 존 칼빈/문병호 역, 뺷기독교 강요뺸(라틴어 초판 직역, 1536년) (서울: 생명의말씀 사, 2009), 9. 연구자가 강조함.          19) 앞의 책, 9.

    20) 앞의책, 361. 번역자문병호는“헌사”에서는한글번역성경에따라“믿음의분수대 로”라고번역하고, “제4장 성례들”에서는 “신앙의유비에 따라서”라고번역한다. 

 

이 맥락에서 칼뱅이 말하는 ‘믿음의 분수’와 ‘신앙의 유비’(fidei analogiam), ‘믿음의자’(fidei amussim)는육체로오신예수에관한것이다.

가현설주의자들은육체로오신예수를부정하기때문이다.

‘믿음의분수 에따른’ 그리고‘신앙의유비에따른’(ad fidei analogiam) 예언은육체 로오신예수를인정하는데있다는의미이다. 여기서우리는뺷기독교강 요뺸 초판에서보이고자했던칼뱅에따른예언이무엇인지, ‘믿음의분수 에따른’ 그리고‘신앙의유비에따른’ 예언이무엇인지알수있다.

이런 잣대에근거하여성경을해석하는것이바로예언이다.

이런칼뱅의의견 은뺷기독교강요뺸 개정판(1539년)의프랑스번역본(1541년)에서도이어 진다.

이 개정판도 맨 앞부분에 “헌정 서한”을 두고 있다.

 

그럼에도불구하고폐하께이고백을읽는방법에대해말씀드리려 합니다.

성 바울은 모든예언이 신앙의 유추와 유비[l’analogie et similitude de la Foy _ 연구자주]에부합되기를원했을때(롬12:6), 성경 의 모든 해석을 검증하는 매우 확실한 규칙[une tres certaine reigle _ 연구자 주]을 말합니다. 만일 우리의 교리가 이 신앙의 규칙에 따라 검증받는다면, 승리는 우리 손에 있을 것입니다.21)

 

       21) Jean Calvin, Institution de la religion chrétienne (1541년), tom I. Edition critique par Olivier Millet (Genève: Droz, 2008), 147-148, 박건택 역, 뺷기독교 강요뺸(프랑 스어초판, 1541) (용인: 크리스천 르네상스, 2015), 38. 박건택은analogie를 유추, similitude를 유비로 번역한다. 연구자가 강조함. 

 

칼뱅이초판에서fidei analogiam(신앙의유비), fidei regulam(믿음의규율)으로표기한것을, 개정판프랑스어본에서는l’analogie et similitude de la Foy(신앙의유추와유비), une très certaine reigle(매우확실 한규칙)라고번역한다.

그리고그는뺷기독교강요뺸 초판본(“제4장성례 들”)에서로마서12장6절을단한번언급하지만, 개정판에서는다섯 군데에서이구절을언급한다.

이다섯구절을아래와같이살펴본다.

우선 첫 번째 대목은 다음과 같다.

 

성바울이고린도교인들과에베소교인들에게훈계하듯이(고전12: 11; 엡4:12), 각자가무슨은혜를받았든지그것은교회의공동의유 익으로돌려져야하는바, 이는우리주님이그런식의분배를원하시 기때문이다. 또한다른곳에서, 성바울은우리가나누는교제가다 양한은사에따라세워지기때문에소명도다양하다고논증한다.22)

 

이문장은“제4장믿음: 사도신경해설”의“제4부나는거룩한공교회 와성도의교제를믿습니다”에포함되어있다.

여기서는‘분배’는프랑스 어로dispensation이고, 이용어는라틴어ratio가함축하고있는의미 이다.

그리고두번째대목은로마서12장과직접적으로연결되지는않지 만성찬과관련하여사용된analogie이다.

 

“믿는사람은성례를보면서 외면성에 머물지 않고, 영적인 것과 육적인 비유 사이의 유추에 따라 거기에숨겨진숭고한신비를통찰하는데로이끌린다.”23)

 

    22) 앞의 책, 347.

    23) 앞의 책, 684. 연구자가 강조함.

 

이문장에서  “유추”로번역된프랑스어는la convenance인데, 적절함, 적합함, 일치, 조화등의의미를갖는다.

1541년판을편집한Olivier Millet는이용어를 라틴어analogiae gradibus에해당한다고각주에설명했다.

또한그는 이각주에서이용어를아퀴노의토마스에따른존재에근거하는것(la convenance, analogiae gradibus)이아니라고말한다.

토마스는‘존재’ 에근거하는성례를말한다.

즉, ‘빵’이라는존재안에그리스도의몸이 실재로임재한다는것이다.

이것을‘실재적개념’(conception réaliste)이 라고부른다.

반면에칼뱅이사용하는용어(la convenance)는라틴어로 analogiae gradibus에해당하는데, 이용어는존재에대비되는것이다. 그리스도의몸은‘빵’이라는존재에있는것이아니라인간의‘영’에있다.

인간의영은인간의신앙/믿음에해당한다.

빵에그리스도의몸이임재 하는것이아니라인간의영에그리스도의몸이임재한다는것이다.

인간 의영(믿음/신앙)은표징(signe, 빵)과의미(signifié, 성례전의의미) 이 둘을내체화할때성령의개입으로하게되는데, 이것을설명하는용어가 la convenance(analogiae gradibus)이다.

이와같이인간의영에임하시 는그리스도의몸이라는의미에서‘영적임재설’이다.

여기에서뒤에서 볼 바르트의 존재의 유비에 대립되는 신앙의 유비가 나온다.

세 번째 대목은 다음과 같다.

 

그러므로우리는그가진실하고확실하게이모든일을우리영혼의 내부에서행하신다고믿고확신해야한다. 마치우리의몸이물로씻 기고물에잠기며둘러싸이는것을밖에서확실하게보듯이말이다. 육적인것을통해영적인것을응시하고생각한다는이유추내지유 비[ceste ou analogie ou similitude _ 연구자주]는성례의매우확실) 한규범이다. 왜냐하면그런육적상징으로영적인것을재현하는것 을 주님이 기뻐하셨기 때문이다.24)

 

    24) 앞의책, 709. 박건택은analogie를유추, similitude를유비로번역하지만, 연구자 는 analogie를 유비, similitude를 유사로 번역한다. 

 

이문장의번역은원문을잘전달하지못하고있다.

칼뱅은이렇게 표현했다. “ceste ou analogie ou similitude est une très certaine reigle des Sacremens”.

이문장을번역하면“이것또는유비또는유사는성례 전의매우확실한규칙이다.”

이문장은앞서인용한, 칼뱅이“헌정서한” 에담았던표현과유사하다.

여기서‘이것’은물세례, 즉표징(signe)이 다.

이런의미를담아위문장을다시번역하면다음과같다.

 

“물세례 또는유비(유추) 또는유사(유비)는성례전의매우확실한규칙이된다.”

 

이와같이칼뱅은성례전에이어세례에도이용어(analogie)를사용한 다.

로마서12장6절에관련된네번째대목은유아세례에대한부분에서 나온다.

 

하나님의말씀에매우잘기초한이제도를인간전통이라고부르면 서이런비방을그들이잘못부당하게강요한다는것을우리가명백 하게입증한다면, 그들이헛되게주장하는이핑계가연기처럼사라 지는 것 외에 뭐가 더 남겠는가?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성경의 바른 이해를갖기위해성바울이우리에게주는규범을상기할필요가있 다. 즉 우리가 성경을 풀어갈 때 언제나 믿음의 규모와 분수를 따라야 한다(la proportion et conformité de la Foy)는것이다(롬12:6). 이것은마치그가성경이우리를가르치는모든것이믿음에대한교훈(la doctrine de la Foy)과연결되어야하며, 모든영적인교훈(toute doctrine spirituelle)에대한설명을참된근원인이것[믿음]에서추론해 야한다는이목적을향해눈을들어올리라고명령하는것과같다.25)

 

칼뱅은유아세례를부정하는이들, 유아세례를행한다고공격하는 이들에게주장의근거를증명하라고말하면서위의인용문을이어간다.

즉, 자신은유아세례가하나님의말씀에기초한다는사실을증명하겠다 는것이다.

이때칼뱅이사용하는증명방법이“믿음의규모와분수를 따라야한다”는것이다.

결국믿음이그근원이다.

이믿음에서추론하면 유아세례의합당성이증명된다는것이다.

이처럼칼뱅은로마서12장 6절을 활용하여 유아세례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마지막, 다섯번째대목은할례와세례간의유사점과차이에대한 부분에서나온다.

 

“그러므로우리는외적이고보이는차이를제외하고, 할례에속한모든것이세례에도공통적이라고결론지을수있다. 우리가 전제한규범-전성경은언제나약속을바라보는믿음의규모와분수를 따라(selon la proportion et similitude de la Foy) 측정되어야한다는것 (롬 12:6)이 우리로 이런 추론을 하게 했다.”26)

 

    25) 앞의 책, 713-714.

    26) 앞의 책, 717-718. 연구자가 강조함.

 

이상과같이뺷기독교강요뺸 개정판(1539년)의프랑스번역본(1541 년)에는로마서12장6절과관련한내용이다섯번나온다.

칼뱅은로마서 12장6절을성경해석의원리라고말하면서, 자신의논쟁상대를대할 때성경해석원칙으로제시한다.

이원칙에따라자신의책을읽도록 헌정대상자인프란시스1세에게도말하고, 대응자들에게도말한다.

그 는성례전, 세례, 유아세례등의논쟁에서이원리를적용하면서, 그원리 가곧‘믿음’이라고말한다.

칼뱅은뺷기독교강요뺸를1559년에개정하여 총4권으로구성하고, 이책을1560년프랑스어로번역한다.

칼뱅은로마 서12장6절의‘믿음의분수에따른예언’을뺷기독교강요뺸 제4권제17장 32절에 담는다.

32절은 성찬과 신앙의 유비에 관한 칼뱅의 고백이다.

 

나는그리스도의살이우리의영혼에섞인다거나우리의영혼속으 로들어온다거나하면서이둘의혼합이나주입을말하는그들의교 리를거부한다고솔직하게고백한다. 왜냐하면우리에게는비록그 리스도의 살 자체가 우리 속으로 들어오지는 않더라도 그가 자기의 살의 실체로부터(Iesus Christ inspire vie à noz âmes de la substance de la chair) 우리의영혼속으로생명을불어넣어주시는것으로, 실 로 그의 고유한 생명을 부어주시는 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뿐아니라의심의여지없이바울이모든성경해석이순응하도록 요구하고있는“신앙의 유비”(la reigle de la Foy)(롬12:3, 6) 또한본 사안에있어서우리의입장을두드러지게지지한다. 그러므로우리 는분명한진리를거역하며목소리를높이는자들로하여금어떤믿 음의잣대(reigle ou mesure de la Foy)에그들자신을맞추고있는지 돌아보게 하자.27)

 

   27) Jean Calvin. Institution de la religion chrétienne (1560년). Edition critique avec Introduction, notes et variantes publiée par Jean-Daniel Benoît, volume 4 (Paris:  Vrin, 1961), 421, 문병호 역. 뺷기독교강요(4권 1-20장)뺸(라틴어최종판직역) (서 울: 생명의말씀사, 2020), 688-689. 연구자가 강조함.

 

위의인용문에서“신앙의유비”로번역된부분은번역본각주1391 번에서“fidei analogiam”으로표기되어있는데, 프랑스어원문에따르 면“la reigle de la Foy”, 즉“신앙의규범”으로되어있다.

이인용문은 앞서설명한‘영적임재설’에관한대목이다.

칼뱅은우리입으로들어올 수있는‘빵’이라는‘존재’가아니라우리의‘영’이라는‘믿음/신앙’에들어 올 수 있는 생명을 말한다.

이상칼뱅의로마서12장6절에대한이해는성찬, 세례, 유아세례 등에대한그의견해에서보듯, 아퀴노의토마스가주장한화체설과다르 게이해하게되는근거가된다.

그는믿음의분수(신앙의유비로서의)대 로의예언을그리스도론의예언자직무와연결하고, 난해한성경구절을 해석하는원리, 규범, 측도(reigle ou mesure)로사용한다. 28)

 

    28) 김선권, “칼뱅의그리스도삼중직의구원론적의미고찰,” 「한국기독교신학논총」 Vol. 124 (2022).

 

그가기준으 로삼는‘믿음’은루터가그리스도의믿음과인간의믿음으로구분하는 것과는달리, 인간의영에임재하는/부어주는그리스도의생명/그리스 도의 믿음이다.

 

3. 바르트에 따른 로마서 12장 6절 분석

 

칼뱅의신학전통을이은바르트는그의조직신학대작뺷교회교의학뺸 제4부에서그리스도의삼중직무를다룬다.

4-1권은‘그리스도의제사장 직무’(1953년), 4-2권은‘그리스도의왕직무’(1959년), 4-3-1권과4-3-2권 은‘그리스도의예언자직무’, 4-4권은‘화해에관한교의’를서술한다.29)

각부의소제목을보면바르트가그리스도론의위격과사역중‘사역’에 중점을두는것같지만, 내용을보면위격과사역을‘조화’시키려고노력 하고있다.

이는쿨만이지적했듯이위격위주로전개된그리스도론전통 을다시금재고한결과로평가된다.

바르트는신앙의유비로서예언을 뺷교회교의학뺸 제1부서론에서다루고, 뺷교회교의학뺸 4-3-2권에서는신 앙의유비와예언을연결하여설명하지는않는다.

이것은앞서본루터의 경우처럼, 바르트는1919년(1922년제2판)에저술한뺷로마서강해뺸30) 의12장6절에서유비의문제를가져오지는않았다.

하지만1932년뺷교회 교의학뺸 제1권을저술하기시작하면서로마서12장6절을참조하기시 작한다.

그는뺷교회교의학뺸 제1/1권의‘서론’에서다음과같이말한다.

 

“하나님에 관한 진술은 교의학이 교회의 존재에, 즉예수 그리스도에 적합할 때에 ‘⋯ 신앙의유비에의한예언이든’(롬 12:6) 올바른 내용을 가진다. 이러한적합성에대한물음으로써교의학은그리스도교의진술 을탐구한다.”31)

 

    29) Cf. 윤철호, “교회교의학에나타난칼바르트의그리스도중심적신학과기독론,” 「장신논단」 8 (1992), 211.

    30) 칼 바르트/조남홍 역, 뺷로마서 강해(1919/1922)뺸 (서울: 한들출판사, 1997), 683- 687.

    31) 칼 바르트/박순경 역, 뺷교회교의학 I/1뺸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3), 37.

 

즉, 바르트는비록신앙의유비에따른예언이라고할지 라도, 교의학의올바른내용은예수그리스도에적합한것일때적합하다 고말한다. 이것은지금까지우리가논의하면서본것처럼도구로서신앙 의유비에따른예언만으로는적합하지않고, 이도구가완수해야하는  예수그리스도그자체가중요함을말한다.

본논문에서연구자가주제로 삼는로마서12장6절의“신앙의유비에의한예언”도예수그리스도를 우선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즉, 바로인간예수그리스도가전적으로그에게만고유한방식으로 우리에게주어져있는바와같이, 하나님이그의계시에서신앙에자 신을부여하는바와같이, 주어져있다는것은실로자체적으로완전 하고이에선행하는토론이없이도정당하게존립하고확실성을가 진다는것을뜻하며, 이것이기준 척도일수밖에없으니, 이에비추어 서 측정될 수 있고 또 되어야 하는 기준 척도일 수밖에 없다.32)

그렇다면바르트는신앙의유비가필요없다고말하는것일까?

그렇 지는 않다. 신앙의 유비에 따른 예언이 올바른 내용을 갖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예수그리스도에적합해야한다는것이다.

도구로서신앙의 유비에따른예언은“하나님이[인간을_ 연구자주] 향해오심으로써 [인간이_ 연구자주] 신앙함”33)을통해확립할수있다.

 

     32) 앞의 책, 37. 연구자가 강조함.

     33) 앞의 책, 37.

 

그는존재의유비 와비교하면서신앙의유비로만하나님에대한인간의인식과하나님을 통해 인간이 인식됨이 이뤄진다고 말한다.

따라서우리는analogia entis (존재의 유비)에관한가톨릭교의에대 하여유비개념의부정을대립시키지않는다.

그러나우리는우리가 묻는유비론이analogia entis가아니라로마서12장6절에의한ἀνα λογία της πίστεως(신앙의 유비)를, 즉인식함에서의인식된자의상응, 사고함에서의대상의상응, 사고된또말해진인간의말에서의하나 님의 말씀의 상응을 말한다. 이 신앙의 유비는 참된, 신앙에서 일어 나는그리스도교예언을모든참되지않은예언들과구별한다.

이러 한 analogia fidei(신앙의 유비)는 실로 주목할 만한 바울의 구절들 의의미인데, 이구절들에서하나님에관한인간적인식이하나님을 통해서의 인간이 인식됨에로 바뀌어질 수 있다는 의미가 드러난 다.34)

 

        34) 앞의 책, 320. 연구자가 강조함.

 

바르트가로마서12장6절을‘존재의유비’가아니라‘신앙의유비’로 서받아들이듯이, 개신교신학자들은대부분이런견해를수용한다.

그 리고바르트가안셀무스의사유를‘신앙의유비’로받아들이는것도개신 교신학자들에의해인정되고있다고볼수있다.

개신교신학자중정미현 의 글을 통해 이 점을 확인해 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알고 긍정하는 받아들임이 없으면 그것은 신앙이아니다. 하나님은인간에의하여인식되어지게되어있다. 그 러나그것은단지하나님스스로자신을인식되도록내어줄때해당 된다. 이것은 존재의 유비(analogia entis)로부터의 하나님 인식이 아니라은혜의인식을뜻한다. 이은혜의인식이란은혜의행위안에 서 신앙의 유비(analogia fidei)를 통하여 가능해진다.35)

 

     35) 정미연, “안셀름신학의 현대신학적 수용,” 「조직신학논총」 3 (1998. 5.), 239.

 

이와같이정미현은바르트처럼하나님의은혜의행위로‘신앙의 유비’를받아들이고, 안셀무스가이런연장선에있고, 안셀무스의신학 을현대에서수용하는방식도그러하다고이해한다.

하지만안셀무스를 다르게보는시각도있다.

독일의중세철학자K. 플라시는교회의신학자 칼바르트가안셀무스를‘신앙수호자-이성배척자’로일방통행시킨것 에대하여지나친신학화라고비판한다.

플라시의말을들어보자.

 

“이런 식으로신학화시켜나가는외도는20세기의일이지, 11세기의일이아니 었다. 이런신학화는신학자카를바르트(Karl Barth)에의한이성의포기 를드러내고있으며, 안셀무스가베렌가리우스와함께펴던이성의신뢰 와는모순된다.”36)

 

      36) K. 플라시/신창석 역, 뺷중세 철학 이야기뺸 (서울: 서광사, 1998), 109. 연구자가 강조함.

 

이문장에서보듯플라시는칼바르트의주장을반박 한다. 플라시와같은철학자에따르면, 안셀무스는신앙하기위해이성 의 중요성을 역설한 학자로 간주된다.

즉, 안셀무스는 이성과 신앙의 함께 함을 말했지 이 둘 간의 모순이나 대립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플라시의주장처럼안셀무스의신학이‘존재의유비와신앙의 유비의공존’이라면, 바르트의신학전제로서의안셀무스에따른‘존재 의유비를삭제한신앙의유비수용’은어떻게되는가질문이제기된다.

캔터베리의주교였던안셀무스의사유가그당시어떠했으며, 오늘날 어떠한지에대해서는제IV장의“2. 삭제된예언에관하여”에서안셀무 스를 언급하면서 다뤄볼 것이다.

정리해보면, 13세기에서방교회가신앙의유비와존재의유비를 엮어가톨릭교회를집대성하고자했고(보편실재론, 온건실재론), 14세 기이후유명론은신앙의유비와존재의유비간의단절(오캄의면도칼) 을통해부패한가톨릭교회를개혁하고자했고, 16세기에프로테스탄트 교회는이신칭의의관점으로다시금새로운교회를만들고자했다.

하지 만중세가시작되면서서방교회및프로테스탄트가시작되었고, 종교개 혁 당사자들이 제시한 믿음의 분수 적용 문제는 일치를 보지 못했다.

지금까지논의한것처럼초대교회이후교회의신앙의유비(믿음의분 수)를통해 이뤄진 예언 활동은 교회의 머리되시는예수 그리스도의 위격을중심으로이뤄졌고, 그에기반하여직무가이뤄졌다.

‘신앙의유 비’에따라행하던교회는‘존재의유비’도검토하였다.

교회는줄곧이 두유비(‘신앙의유비’, ‘존재의유비’) 간의관계를운영했다.

되찾은신앙 의유비를우위에두면서율법과복음의관계를제시하는것이프로테스 탄트교회의임무였다면, 가톨릭교회는이두관계를균등하게다루면서 로고스와노모스, 복음과율법의관계를이어가고있다.

이처럼예언은 두 공동체에서 다르게 운영되고 있다.

 

IV. 믿음의 분수(또는 신앙의 유비)에 따른 예언의 세 가지 형태

 

이상과같이연구자는프로테스탄트교회와가톨릭교회가예언을 운영하는방식을정리하면서, 이예언에서초과되거나삭제되거나누락 된 셈은 없는지 살펴본다

 

1. 예언의 첫 번째 형태: 초과된 예언

 

이상에서본로마서12장6절에대한이해는존재의유비대(vs) 신앙 의유비로귀결되었다.

이두관점에서기독교는복음(믿음)과율법(행 함)의관계를다루었다.

그관계는아주복잡했고반복적이었다.

그래서 이관계를‘초과된예언’이라고부를수있다.

자세한내용을살펴보자.

루터의경우를보면, 바울의이신칭의에기초하여율법과복음의 관계를정리했고, 루터는율법과복음을잇는방법에서칼뱅과의견을 달리했다.

루터와칼뱅간의다름은매우첨예한것이었고, 복음을이해 하거나공동체를구성하거나신앙인의삶에서도매우다른결과를낳았 다.

논의가과잉된만큼그결과도큰파장을낳았다.

루터에게서이신칭 의에따른신앙의유비(믿음의분수)는‘율법과복음’ 간의유비, ‘율법과 복음’ 간의분수이지존재의유비와의관계는아니었다.

유명론을주장 하던루터가신앙의유비를신학의주요기능으로고려하지않았다면, 유명론을반대하던루터는신앙의유비를신학의주요기능으로받아들 인다.

이것을뒷받침하는자료는1517년9월에제시한“스콜라신학을 논박한논제” 97개항목에담겨있다.

이논문에서루터는존재의유비(유 명론)를반박하고, 신앙의유비로귀결한다.

그가정반대의주장을하고, 개혁된삶을살게된것은하나님을만나는경험을통해서다.

이경험 이후그는성경을해석(예언)하는고전적인관점인신앙의유비(믿음의 분수)를 개혁의 원리로 삼는다.

루터가 내세우는 고전적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그자체를기반으로한다.

그는무엇이성경인지를구분하는 기준으로예수그리스도를둔다.

구약성경에서예수그리스도가나온다면그것은복음이었고, 신약성경에서예수그리스도가나오지않는다면 그것은 율법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옴에도 율법인 것은 없고, 예수 그리스도가나오지않음에도복음인것은없다.

즉, 복음이면서율법인 것은 없고, 율법이면서 복음인 것은 없다.

죄의 깨달음만으로는 법의 제2기능에속하고, 그깨달음은복음으로채워지는것과는다르다.

율법 은 복음과 접촉점을 갖지 못한다.

칼뱅은법의제3기능을인정하고복음에율법을다시담는다.

루터 에게칼뱅의이런시도는복음자체를모호하게만드는것이었다.

이런 견해차이는서방교회(로만가톨릭교회)로부터거리를두고탈피하여 새로운교회를만들고자했던당사자들에게뼈아픈흔적을남긴다.

그 결과오늘날다양한교파의프로테스탄트교회가형성되었다.

이런결과 가도출된것은구약성경과신약성경을붙이고떼어내는신앙의유비(믿 음의분수)에따른예언에있을것이다.

율법과복음의관계를논하는 것또한신앙의유비(믿음의분수)로이뤄지는데, 그결과는상이하게 나타난다.

루터와칼뱅은이후에오는개신교공동체에게율법과복음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갈등을 안겨다 주었다.

이것은바울신학에서지속적으로논의되어왔다.

그런데1977년 이후바울신학의동향에변화가있었다. 37)

 

    37) E. P. Sanders, Paul and Palestinian Judaism ― A Comparison of Patterns of Religion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77); E. P. 샌더스/박규태 역, 뺷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뺸 (서울: 알맹e, 2018). 

 

새로운관점으로바울신학이 대두된것이다.

이관점에따르면, ‘이전관점’은유대교를일방적인율법 주의종교로보았다.

즉, 일정한공로를쌓아야만구원을받는다는것이 다.

이런 사상을 중세 교회가 제시했었고, 루터는 이것에 대항하면서 칭의론을강조하였다.

하지만‘새로운관점’은유대교를‘언약적율법주 의’로 규정한다.

언약 자체의 성격이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쌍방적인 것이라고강조한다.

그래서율법(행함)을폐기하고복음(믿음)으로새 롭게되는것에강조점을둔‘이전관점’(루터식이신칭의론을포함하여) 은유대교를오해한것이라고말한다.

‘새로운관점’은신인동형론적인 차원의율법-복음의관계, 언약을두고신과인간이교류한다고말한다.

바울이유대교를일방적인율법주의로이해했다고하는것이‘이전관점’ 이었다면, ‘새로운관점’은‘이전관점’을비판한다.

이비판은언약행함 을폐기하는것이아니라언약행함을성취하는데있다.

예수그리스도의 성취와 함께 신앙인도 그것을 성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주장은신앙인의윤리를요청하는시기에는필요하다.

이런 요청은신앙인이단지믿음에만치중하고삶에열매가맺히지못하는 상황에서제기될수있다.

이런상황에서믿음을강조할것이냐행함을 강조할것이냐하는두주장이반복된다.

이런반복은믿음(복음)과행함 (율법)이라는구도에서설명되었다.

이런논의는너무지나칠정도로 많이 제기되었다.

결론은 분열이었다.

종교개혁 때 루터 진영과 칼뱅 진영간의논쟁이그것이고, 그이후칼뱅주의와알미니안주의의논쟁이 대표적이다.

오늘날에이단체들은그당시의주장이곧자신들의정체성 이되어살고있다.

이런주장의배경에는바울신학에대한이해가있다.

‘이전관점’에따르면바울이율법(행함, 인간의제사)을폐기하고복음 (믿음, 그리스도의성취)을받아들였다는것이고, ‘새로운관점’에따르 면바울이말하고자한것은유대인들의율법행함을폐기하는것에있지 않고선민사상에대한비판이다.

특히유대-기독교인(팔레스타인유대 교인)에 대한 비판이다.

연구자는‘새로운관점’의근거를‘이사야서종결부(사66:18-24)와 사도행전종결부(행28:23-31)’를비교하면서찾는다.38)

선민사상에근 거한유대인과유대-기독교인(팔레스타인유대교인)의세계관이예루 살렘중심의세계관, 구심적세계관이라면, 예수그리스도에근거한기 독교인의세계관은예루살렘-로마, 유대와열방(뭇나라), 택한족속과 이방인 등을 두 축으로 하는 쌍심적 세계관, 대응적 세계관이라고 볼 수있다.

바울은이러한주장을유대인, 유대-기독교인(팔레스타인유대 교인)에게하였고, 이런맥락에서유대교의율법(언약)과기독교의복음 (새언약)을소개하고자했다.

그러나바울의이러한이해는“이것은취하 고저것은버린다”로이해되었고, “이것도취하고저것도취한다”는방식 이어떻게가능한지(가령로마서8장) 설명하는계기를마련한다.39)

 

    38) 강응섭, 뺷언약전승과 복음뺸 (서울: 예명대학원대학교, 미출판 간행물 강의노트), 125-141.

    39) Cf. 발트 아이히로트, 뺷구약성서신학 I뺸 (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4).

 

구 약성서신학자인아이히로트에따르면, 언약전승의두발전경로는이스 라엘을위한언약과열방을위한언약으로이중화된다. 이것은예수께서 말씀하신하나님나라에대한이중성, 즉하나님나라가현재적실체를 가리키느냐, 미래의실체를가리키느냐하는논쟁과연결된다.

이런견 해는초대교회와중세교회를지나면서거대담론(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 루터의두왕국론등)으로진행된다.

종교개혁을시작하면서는 다시 미세 담론(이때 율법과 복음은 중요한 주제였다)으로 등장한다.

프로테스탄트최초의조직신학저서로불리는멜란히톤의책(1521년) 이나칼뱅의뺷기독교강요뺸(1536년)는율법과복음의구도에서작성되 었다.

이구도는종교개혁시기에형성된프로테스탄트진영들에서작성 한 신조의 틀이 된다.

프로테스탄트진영의신학은또다시언약전승의이중성에기반한 미세담론과거대담론을이어가고있다.

이런과정은샌더스, 던등바울 신학을전공하는학자들에의해미세담론을비판하고거대담론을제시 하는가운데‘새로운관점’으로제기되었다.

연구자가보기에구약성서 에서부터오늘날에이르는언약전승에관한이런담론들은반복되고 과잉되고 초과된 예언이다.40)

 

     40) 티모 라토/김명일 역, 뺷바울에 관한 새로운 탐구. 샌더스, 던, 라이트, 바클레이 비평적 읽기뺸 (서울: 이레서원, 2020). 

 

2. 예언의 두 번째 형태: 삭제된 예언

 

연구자가볼때, 그리스도론의직무와믿음의분수(또는신앙의유 비)에따른예언에서삭제된항목이있는데, 그것은11세기중세의서방 교회에서일어난다.

우리가교회의역사를통해볼때, 선지자(예언자)로 서의직무가무엇이며, 대제사장직무와왕의직무가무엇인지살펴볼 수 있다.

초대교회와 중세 교회의 시기에 각 지역에서 다양한 교회의 모습이보여주는것은우선적으로왕의직무와대제사장직무이다. 11세 기에이르러예수의직무는분기점을맞는다.

캔터베리의대주교안셀무 스(1033~1109년)는그리스도의직무에분명한분기점을마련한인물이다.

그는Cur Deus Homo(뺷인간이되신하나님뺸)41)에분기점이되는 내용을명시하였다.

이책은안셀무스와보소(Boso) 간의대화형식으로 이루어져있다.

이책의저술의도는제목에서보듯, 왜하나님이인간이 되어서죽으셨는가에대한답으로“구속”(redemption)42)을제시한다.

 

     41) 캔터베리의안셀무스/이은재역, 뺷인간이되신하나님뺸 (서울: 한들출판사, 2001/ 2007).

     42) 앞의 책, 52(라틴어), 53(한글).

 

이글은하나님이전능하시다면사람이나천사를통해그뜻을이룰수 있었는데왜하나님이인간으로오셔서‘구속’하는가질문하면서시작한 다.

보소는불신자의관점에서이의를제기하고안셀무스는여기에답한 다.

연구자가인용하는아래의내용은보소가불신자들의의견을안셀무 스에게 전한 것이다.

 

그들[불신자 _ 연구자 주]은 우리에게 묻기를, “도대체 당신[보소 _ 연구자]이어떠한포로상태나감옥또는권세에게붙잡혀있었길래 하나님께서그토록많은수고와마침내그분자신의피를흘리시지 않고는당신을그곳에서구원하실수없었단말입니까? 아마도우리 는이렇게답할것입니다. [⋯] 우리스스로그것을할수없었기때문 입니다. [⋯] 당신의 말대로 하나님께서 그분의 명령으로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면, 이모든일들을단순히명령으로써만성취할수는없 습니까? [⋯] 만약 하나님께서 인류의 죄들을 벌하시려는 의지를 갖 지않으시려한다면사람은죄들로부터, 하나님의진노로부터, 지옥 과악마의권세로부터, 죄때문에고통당했던모든것으로부터자유케될 것이며, 그 죄들로 인하여 빼앗겼던 모든 것을 되찾을 겁니 다.43)

 

불신자들은“다른방식으로”도‘구속’이가능하다는주장을거듭한 다.

특히하나님께서‘인류의죄들을벌하시려는의지’만갖는다면모든 것이제자리로돌아갈것이라고말한다.

그렇게되면하나님께서“사람 들을위해서악마를정복하러오셨다”는주장은당연히폐기될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위해서 악마를 정복하러 오셨다고 하는 말을 감히주장하는것은무슨의도입니까? 하나님의전능하심이모든곳 을다스리지않습니까? 그렇다면하나님이악마를무찌르기위해서 천상에서내려오셔야한다는말이어째서필요하다는것입니까? 불 신자들은 우리―신자―들에 반대해서 이러한 종류의 반박들을 늘 어놓곤 합니다.44)

 

     43) 앞의 책, 55-57. 한글번역본은 이 문장에서 인용문 표시(“)로 시작한다.

    44) 앞의 책, 55-57. 한글번역본은 이 문장에서 인용문 표시(”)로 종결한다. 

 

보소의입을통해불신자의말을전해들은안셀무스는“사람들을 위해서악마를정복하러오셨다”는말을반박하기보다오히려그것을 받아들인다.

즉, 안셀무스는속죄와악마(사탄)의연관성을삭제한다.

이런그의입장이신앙의유비를강조하고존재의유비를제거하기위한 것이었다고볼수있을까?

앞서IV장의“3. 바르트에따른로마서12장 6절이해”에서안셀무스를다루었는데, 바르트와정미연은신앙의유비를주장한안셀무스를, 플라시는신앙의유비와존재의유비의공존을 주장한안셀무스를다루었다.

신앙의유비와존재의유비의관계가속죄 와악마(사탄)의문제를다루는데어떤작용을할까?

이글에서본바로는 속죄와악마(사탄)의문제는신앙의유비에서도삭제된예언의적용을 받는다고 볼 수 있다.

미국프린스턴신학교에서박사학위를취득하고, 1930년부터웨스 터민스터신학교의조직신학교수로활동한존머레이는뺷구속론뺸45)에 서안셀무스가인간이되신하나님의직무를대제사장의직무로만제한 하였다고비판한다.

 

     45) 존 머레이는 뺷구속뺸에서 안셀무스가 인간이 되신 하나님의 직무를 대제사장의 직무로만 제한하였다고비판한다. 머레이에 따르면, 오르겐 이후교회는 인간이 되신하나님의직무, 즉그리스도론의직무를구속과아울러마귀심판으로두었 는데, 안셀무스의 이 책 이후 한쪽 직무가 삭제되고 한쪽 직무만 남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 책의 원본은 다음과 같다. John Murray, Redemption. Accomplished and Applied (Guildford: Wm. B. Eedmans Publishing Company, 1955; London: the Banner of Truth Trust, 1961). 이책의번역서는두출판사에서나왔다. 하문호 역, 뺷구속론뺸 (서울: 성광문화사, 1994); 장호준 역, 뺷구속뺸 (서울: 복있는사람, 2011). 와일리와컬벗슨은다음의책에서교부시기에서현대에이르는속죄론을 개괄하는데, 이레네우스, 오리겐, 아우구스티누스, 아타나시우스, 안셀무스등에 따른 사탄 이해를 간단하게 제시한다. Cf. H. Orton Wiley, Paul T. Culbertson, Introduction to Christian Theology (Kansas: Beacon Hill Press, 1946). 오톤 와일 리 ․ 폴 컬벗슨/전성용 역, “속죄론,” 뺷웨슬리안 조직신학뺸 (서울: 세복, 2002).

 

머레이에따르면, 초대교회교부들은인간이되신 하나님의직무, 즉그리스도론의직무를왕직무, 대제사장직무와아울 러 예언자적 직무라고 여겼다.

하지만 안셀무스는 이 직무 중 하나를 강조하고하나를삭제했다.

강조한직무는대제사장이고, 삭제한직무는 바로사단(마귀)심판에관한것이다.

이것은그리스도의직무에서볼 때 예언자 직무에 넣을 수 있다.

우리가 구속(救贖)받았음을 사단에게 적절히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이사실에서이다.

이것이구속(救贖)이보여주는승리적면이다.

初 代敎會 敎父들은구속(救贖)의이면에특별한의미를부여하여마 귀에게 배상(賠償)을 지불했다는 의미로 해석하였다.

이런 理論은 공상적이고 우스꽝스러운 설명이다. 이런 이론이 잘못되었음은 안 셀무스(Anselm)의 획기적 저작인 뺷왜 하나님은 인간이 되셨는가?

뺸 (Cur Deus Homo)라는책에서잘지적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이론 을 공상적이라고 반대한 나머지 이 敎父들이 표현하고자 했던 하나의 큰 眞 理를 놓쳐버려서는 안 된다.

그 진리는 그리스도의 구속사역(救贖事 役)이사단의세력과활동에대한것이며하늘에있는악의영들에대 한 것이라는 사실이다(참조. 엡 6:12).46)

위와같이머레이가서술한내용은구약성경레위기16장6-10절에 나오는아사셀에게바친어린양과성전에바친어린양에대한이해를 요청한다. 안셀무스는이아사셀을삭제한것으로볼수있다.

교회와 신학이사단에관한부분을삭제하였다면, 머레이가말하였듯이죄로부 터의구속을완전히이해하였다고할수없다.

또한우리는사망의세력을 잡은마귀로인한죄와악을보고있다.

그렇기에머레이는“이어두움의 세력을완전히깨뜨리는구속완성(救贖完成)이있기전에는죄의세력 으로부터의구속이란말은사용할수없을것”47)이라고말한다.

 

    46) 존 머레이/하문호 역, 뺷구속론뺸 (서울: 성광문화사, 1994), 62-63. Cf. 장호준 역, 뺷구속뺸 (서울: 복있는사람, 2011), 77. 연구자가 ‘안셈’을 ‘안셀무스’로 수정함.

    47) 앞의 책, 64. Cf. 장호준 역, 뺷구속뺸 (서울: 복있는사람, 2011); 79. John Murray, Redemption. Accomplished and Applied (London: the Banner of Truth Trust, 1961), 50. 

 

우리가 사단의정체를삭제하지않아도사단은계속해서자기의일을하는데, 우리가신학에서사단의존재를삭제한이후사단이어떤자세로자신의 일에 임했을지 우리는 돌이켜봐야 한다.

이렇게삭제된예언자직무는또한번의기독교역사천년을이어간 다.

그천년의끝자락에서칼바르트는1931년8월에안셀무스의다른 책뺷프로슬로기온: 신존재증명뺸48)을주석한연구서적을펴냈다.49)

 

     48) 이책은1077~1078년Anselm of Canterbury가저술했다. 한국어번역판은캔터베 리의 안셀무스/공성철 역, 뺷프로슬로기온뺸 (서울: 한들, 1997); 캔터베리의 안셀 무스/박승찬 역, 뺷모놀로기온 & 프로슬로기온뺸 (서울: 아카넷, 2002).

    49) 칼바르트/김장생역, 뺷이해를 추구하는믿음. 안셀무스의신학적 체계와연관한 신 존재증명』 (서울: 한국문화사, 2013).  

 

그는1958년8월에 재발간한서문에서 “안셀무스를 중요하게다루는 이책속에안셀무스의신학그자체가아닌나의뺷교회교의학뺸을이해할 열쇠가 들어있다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은 보지 못한다”50)고 말한다.

바르트가참조한안셀무스는뺷프로슬로기온뺸에서다음의문장을남긴 다.

 

“내가마음으로믿고사랑하고있는당신의진리를얼마든지이해하 고싶다. 왜냐하면나는믿기위해서이해하려하지아니하고이해하기 위해서믿기때문이다.”51)

 

 바르트는“이해하기위해믿는다”라는안셀 무스의말을‘신앙의유비’로이해했다.

그는총26장으로구성된뺷프로슬 로기온뺸의2~4장에기초하여자신의뺷교회교의학뺸을세웠다. 52)

 

    50) 앞의 책, xii.

    51) 캔터베리의 안셀무스/공성철 역, 뺷프로슬로기온뺸 (서울: 한들, 1997), 17.

    52) 칼바르트/김장생역, 뺷이해를 추구하는믿음. 안셀무스의신학적 체계와연관한 신 존재 증명뺸, ⅻ 참조. 

 

바르트가신앙의유비로서의예언을강조하여자신의신학을구축했다고해도, 그는안셀무스가삭제한그것을살려내지않은채자신의교의학작업을 수행했다.

앞서보았듯이그가말한“주목할만한바울의구절들의의미”, 즉 로마서 12장 6절의 예언자 직무에는 악한 영, 사단에 대한 예언자 직무는포함되지않았었을까?

1931년펴낸그의책은제1부신학의체계, 제2부하나님의존재증명인데, 이중후자의“01. 증명의전제들, 1. 하나 님의 이름”에는 그가 말하는 하나님의 이름에 관해 알 수 있다.

그가 다루는하나님의이름은연구자가본논문에서논하는것과는직접적 인관계가없어여기서는다루지않는다.

즉, 칼뱅계열의신학노선에 속하는바르트는안셀무스가말한하나님의이름에격찬을보내면서 줄곧이를따른다.

바르트가읽은안셀무스의책뺷프로슬로기온뺸 2장에 나오는대목을보자.

“보다더큰것이존재한다고생각될수없는것이 참되게존재하기때문에그것은존재하지않는다고생각될수없는것이 다. 이분이바로당신이옵니다.”53)

 

     53) 캔터베리의 안셀무스/공성철 역, 뺷프로슬로기온뺸, 21. 

 

바르트는안셀무스가2장에서언급 한‘보다더큰것이존재한다고생각될수없는것’을교의(Theologumenon)나 깨달음이 아닌 신조(Glaubensatz)로 받아들인다.

그(안셀무스_ 연구자주)에게신조는자신의생각에서나온것이아 니라주어진것이라고분명하게말한다. 다시말해그(안셀무스_ 연 구자주)가하나님의이름을지었을때, 그것은한사람이다른사람 의개념을형성하는것이아닌, 창조자앞에선피조물과같은것이었 다. 하나님의계시의능력에의해현실화되는이관계속에서안셀무스는하나님에대해생각하는데에다음과같은한계가있다는것을 알고 있다.

오류에 빠지지 않고서는, 믿음 없이 자신을 하나님보다 더 위에 위치시키지 않고서는, 그는 하나님보다 더 큰 것을, 정확히 말해더나은것을상상할수없다.

더큰것을생각할수없는이(Quo maius cogitari nequit)는오직자기스스로를형상화하는개념으로 만나타난다.

이것은하나님에게서계시된이름과관련되는한에서 사실이다.

따라서안셀무스가하나님의존재에대한증명에착수했 을때, 그가완전히신학적기획을드러냄을알게된다.

그에게하나 님의존재는당연히신조로주어진것이다. 믿음으로수용한하나님 의존재를인식해야만하고, 하나님의이름이라는전제를토대로증 명하고 나아가 하나님이 존재는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사유를 위한 필수 사항으로 이해해야만 한다.54)

 

    54) 칼바르트/김장생역, 뺷이해를 추구하는믿음. 안셀무스의신학적 체계와연관한 신 존재 증명뺸, 117-119. 

 

이런방식으로바르트는안셀무스를이해하는데, 이책뺷이해를추 구하는믿음. 안셀무스의신학적체계와연관한신존재증명뺸에서바르 트는안셀무스가저술한De casu diaboli(뺷사탄의타락에대하여뺸)를 이런방식으로다룬다.

즉, 하나님의이름을계시의차원, 신조의차원에 서다룬다.

연구자는머레이의주장을인용하면서안셀무스가대속(구 속)에서사단의존재를지웠다고말했다.

즉, 안셀무스가예수의피흘림 을사단에게배상한것이아니라고말했다.

이런맥락이라면, 안셀무스 가De casu diaboli를어떤방식으로다루었을지짐작할수있다.

그는  오직예수의피흘림은하나님께드려진것이고사단에게지불된속전은 아니라는것이다.

그이유는그가사용한글의제목De casu diaboli(뺷사 탄의 타락에 대하여뺸)에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연구자는 이책을읽어보지못했기에정확하게말할수는없지만, 안셀무스가예수 의피를하나님에게만지불하고사탄에게는지불하지않았다는내용을 이런 맥락에서 추정한다.

1975년제임스칼라스(James Kallas)는The Real Satan에성경시대 부터오늘날에이르는사단에대하여말한다.

칼라스에따르면, 구약성 경에 나타난 사탄은 대수롭지 않은 존재, 중심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 존재, 하나님의종으로규정한다(대상21:1; 슥3:1, 2; 욥1장). 신구약 중간시대에는사탄이종에서원수로바뀐다고말한다.

이시기에유대인 들은엄청난고난을당하는데, 그들은이고난의원인을하나님께돌리지 않고, “하나님의원수의장난”(the work of God’s enemy)55)으로이해했 다.

또한“세상에악마가있다는것, 하나님보다도더크게나타나는악마 가있다는것”56)을점점명확하게인식한다.

 

    55) James Kallas, The Real Satan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75), 45, 제임스 칼라 스/박창환 역, 뺷사탄의 생태뺸 (서울: 컨콜디아사, 1979/1995 개정판), 50.

    56) 앞의 책, 49. 

 

즉, 칼라스에따르면, 구약성 경과신구약중간시기의사탄론은하나님의종에서하나님의원수로 전개되는데, 본격적인사탄론은신약성서에서발견된다고말한다. 칼라 스는우리가바로위에서살펴본, 아사셀에게바친어린양에관해서는 언급하지않는다. 그는예수께서공생애기간에하신유일한목적에관하 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쟁이벌어지고있다. 우주전쟁이다. 사탄의세력을쳐부수기위해 서 하나님이보내신 신적침공자(侵攻者)가 바로 예수이시다. 그런 관점에서볼때예수의전(全) 사역의의미가풀려나간다. 예수는사 탄을패배케하는일을유일한목적으로삼으셨다. 그는그원수의힘 을 중대하게 여겼다. 그리고 이 사실은 예수께서 왜 어떤 당파 또는 종파와제휴하였는가를해명해준다. 마귀론을심각하게다룰때, 갑 자기우리는예수께서왜사두개인들과는상관하지않고, 반면에바 리새인들과는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기 시작하였다가 얼마 후에 비로소 그들과의 관계를 끊게 되었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다.57)

 

   57) 앞의 책, 71. 

 

칼라스는안셀무스가삭제한사탄의정체를드러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보내신목적그리고예수께서삼으신공생애사역의목적은사탄 의세력을쳐부수는것, 사탄을패배케하는것이라고말한다. 그리고 앞서살펴본마가복음7장에서예수께서바리새인을맞이하여예언에 관하여논의한이유도바로사탄에관계된다.

이장에서예수께서이사야 서29장을인용한것또한에리엘(예루살렘)을사로잡은세력에관계된 다.

예언은 사탄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바울신학에서‘이전관점’과‘새로운관점’을논하더라도, 유대인과 유대-기독교인(팔레스타인유대교인)의언약전승의미를논하더라도 그런논의를골인지점과연결하려고했던바울의의도를살리지못한다 면, 오늘날우리의방향성에도혼돈이있게된다.

성전에서제물로피를 뿌렸음에도아사셀에게제물을보낸것에서, 더러운영들에사로잡힌 그사람을예수자신이한마디말로도온전케하실수있었음에도더러운 영들에게돼지떼로들어가게하신것에서우리는예수의예언직무를 본다.

그직무는우리가합리적이라고말하는것과는달리악한영들을 고려한그리스도의믿음에근거한것이다.

사탄을다루지않는예언은 믿음의분수(신앙의유비)에따른예언과는거리가있다. 중세시기의 보편논쟁끝지점에서유명론진영에서있던루터가예수그리스도에 초점을맞출때사탄에관한부분에주목한점은유념해야할부분이다. 58)

 

     58) 강응섭, “4. 루터에 따른 성령,” 뺷성령론뺸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7), 97-124. 

 

3. 예언의 세 번째 형태: 누락된 예언

 

믿음의분수(또는신앙의유비)에따른그리스도의예언직무에서 초과되고삭제된것이외에누락된항목이있는데, 그것은사도행전18장 15절에서찾을수있다.

그항목은유대인이아가야법정에제기한것이 고, 로마총독갈리오가판결문에기록한것이다.

이판결문은‘로고스(λο γός, 말씀), 오노마타(ὀvόματα, 이름들), 노모스(νόμος, 법, 율법)’ 세항목에 관한것이다. 59)

 

     59) Adelheid Ruck-Schröder, Der Name Gottes und der Name Jesu: Eine neutestamentliche Studie (Neukirchen-Vluyn: Neukirchener Verlag, 1999), 168f.; 강응섭, “언 약 전승에서 본 아가야의 총독 ‘갈리오 판결문: λόγος, ὀνοματα, νόμος’ 연구,” 제15회예명콜로키움(2021년12월6일); 강응섭․ 유복곤․ 조남신, “언약전승에서 본 아가야의 총독 ‘갈리오 판결문: λόγος, ὀνοματα, νόμος’ 연구,” 뺷예명신학 1. 예명콜로키움 13회~16회(2020. 6.~2022. 4.)뺸 (서울: 레마출판사, 2023), 417-472.

 

개역한글과개역개정에는“언어와명칭과법”으로번역 되고있다.

사도행전18장15절과로마서12장6절을연결하면서, 예수그리스도의공생애사역(예언직무)을살피고, 초대교회이후의그리스 도의직무인예언자직무와믿음의분수(또는신앙의유비)를검토하고, 종교개혁시기이후개신교에따른그리스도의직무로서예언(예언자) 과믿음의분수(또는신앙의유비)를검토할수있다.

즉, 위에서본믿음의 분수(신앙의유비)에따른예언이갈리오판결문의세항목인로고스, 오노마타, 노모스를 어떻게 다뤄왔는지 비교 ․ 검토할 수 있다.

루터, 칼뱅, 바르트의논의에서보듯, 성경이성경인이유는그곳에 예수그리스도의있음때문이다.

그곳에예수그리스도가없다면정경에 포함될수있을지재검토사항이된다.

종교개혁가들과그를이은정통주 의에서는정경문제를다루면서복음의진의를다뤘다.

그결과로고스와 노모스를극명하게하는신학작업을실행한다.

이것이바로복음과율법 의구도이다. 60)

 

    60) 한국에 루터교를 정착시키는 데 공헌한 지원용은 뺷루터 선집뺸(총12권) (서울: 컨콜디아사, 1993)을발간(번역, 감수편집)했고, 루터의뺷율법과 복음뺸도편찬했 다. Cf. C. F. W. Walther/지원용 역편, 뺷율법과 복음뺸 (서울: 컨콜디아사, 1993). 

 

바르트의주장은더강화된다.

앞서보았듯이그는신앙 의 유비에 따른 예언 이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기준 척도로 제시한다.

이것은로고스에모든것을두는신학구도이다.

여기에는노모스마저 자리하거나토론할자리가없을정도이다.

이처럼교의학의기준척도가 로고스와노모스가되기도하고, 로고스자체, 예수그리스도로서로고 스가 되기도 한다.

연구자는루터, 칼뱅, 바르트의관점을갈리오판결문과비교해본 다.

이 갈리오 판결문은 세 개의 항을 나열하는데, 첫 번째와 세 번째 항은‘로고스’와‘노모스’이고, 중간항은‘오노마타’이다. ‘로고스’와‘노모 스’가단수라면‘오노마타’는복수이다. 사도행전18장은야훼의이름(야 훼이름)을신앙하는유대인들이예수의이름(예수이름)을전파하는바 울을고소하고, 그에대해판결한갈리오의입장이담겨있다. 루터와 칼뱅에게서 이름에 관한 부분은 서술된 것이 적다.

하지만 바르트의 경우, 앞서뺷이해를 추구하는 믿음. 안셀무스의 신학적체계와연관한신존재증명뺸에서보았듯이,

“더큰것을생각할 수없는이”(Quo maius cogitari nequit)와같은하나님의이름에대한 연구를탁월하게전개했다.

그럼에도그는성서의계시에따른직접적인 하나님의이름에대해서는언급하지않았다.

그는사도신경을강해한 뺷교의학개요뺸(Dogmatik im Grundriß)에서예수그리스도의이름과 칭호를다룬다. 61)

그는이책의“제11장구주요하나님의종”을시작하면 서이렇게말한다.

 

“예수란이름과그리스도란칭호는이사람의피선택 성, 인격(위격), 사역을일컬으며, 그에게서이스라엘민족의예언자적, 제사장적, 왕적사명이계시되고실현되었다.”62)

 

     61) Cf. 바르트/전경연역, 뺷교의학개요뺸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89); 칼바르트/신 준호역, 뺷교의학개요―사도신경에담긴기독교진리뺸 (서울: 복있는사람, 2015).

    62) 바르트/전경연 역, 뺷교의학개요뺸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89), 104. 

 

이대목은연구자가 다루는예수의삼중직무론과오노마와관련된다.

이어지는문장에서 그는인명예수와직명그리스도를주목한다.

사도신경의둘째항은

“‘예 수그리스도’라는말에서한인물의이름과칭호, 특정한인간의이름과 직명에관계”하고있는데, “예수라는인명은히브리어의권내에속하고 있다. 즉, 예수라는이름은구약성서에자주나오며벌써한번은매우 강조되어불렸던‘요수아’라는이름과같은것이다. 그러나그그리스도라는직명은비록히브리어에있는‘기름부음받은자’라는‘메시아’란 말의 그리스어 번역이지만 그리스적이다”

라고 말한다.63)

바르트는히브리어요수아와메시아가히브리어예수와그리스어 그리스도로번역되면서전세계로확장된다고말한다.

의미상으로보면, “‘인명예수’는원래번역하면여호와, 곧이스라엘의하나님이도우신다 [구원한다]는뜻[⋯] ‘직명그리스도’, 곧메시아는예수시대에유대교에 서는이스라엘이기대하는종말시에강림할사람, 하나님의영광을즉 그때까지감추어있었으나약속되어진영광을나타내야할사람”64)을 지칭한다고설명한다.

당시유대에는인명예수가많았지만,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라고불리는“이사람이하나님의약속을완성시킬유일한 사람이되기를원하고그같이만들었다.이완성은동시에이스라엘에게 주어진것의완성을의미하며또이민족이전세계와모든민족과전 인류의역사를위하여사명받은것을완성함과계시함을의미한다”65)고 바르트는설명한다.

 

     63) 앞의 책, 104. 이 대목에서 번역자 전경연이 ‘그리시아’로 번역한 것을 연구자가 ‘그리스’로 수정하였다.

     64) 앞의 책, 105.

     65) 앞의 책, 105-106.

 

이문장에는위에서아래로의그리스도론과아래에 서위로의그리스도론이포함되어있다.

바르트는초대교회의상황에서 인명과 직명을 구분하면서 예수의 이름을 다룬다.

그는 좀 더 상세한 설명을덧붙인다.

초대교회는인명예수는히브리어그대로이고직명 메시아는그리스도로번역되어사용했다.

“초대교회는‘예수메시아’라 고부르지않고‘예수그리스도’라고하였다. 여기에세상을향하여한문이나타나있고열려있다.

그런데예수라는유대이름은그대로남아 있다.”66)

그는번역된직명이번역되지않은인명보다덜귀중하다고 말하지않고, 예수그리스도와관련된직명과인명, 이름과칭호는“계시 다. 그것들은그지목받은자가그이름을가지거나아니가질수있는 기호나명명이나장식이아니”67)라고말한다.

직명과인명, 이름과칭호 가분리되지않을뿐아니라직명과인명, 이름과칭호에인격을덧붙인 구세주요하나님의종인예수그리스도를“이스라엘민족의사명을수행 하고계시한분, [⋯] 하나님과아브라함사이에맺은계약을완성한분”이 라고말한다.

단지그는인명과직명으로구분하고, 이를현재적관점에 서어떻게이해해야하는지설명한다.

지금연구자가다루는책은1946년 제2차세계대전직후본(Bonn)대학교에서강의한내용을엮은것인데, 당시의관점에서어떻게그리스도의인명과직명을이해하고, 적용할지 말한다.

이런 바르트의 입장은 유대 민족이 “하나님의 위탁을 받은 자다. 그위탁이란하나님의말씀을선교해야하는것이다.

이것이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한그리스도의직무이자유대민족의직무로갈수있는 가능성이다.

그리고성자하나님께서“자신을희생하셨다는것을이민 족의존재를들어증거하는자가되어야한다.

이것이제사장적사명”이 고또한“정치적무력중에서도하나님이인간을지배하신다는것을다른 제민족중에증언하는자로서고지하여야했는데, 이것이왕적사명”68) 인데, 이또한그리스도직무로향할수있는가능성으로유대민족에게 주어졌다고이해할수있다.

 

    66) 앞의 책, 106.

    67) 앞의 책, 106.

    68) Cf. 이 문단의 세 인용문의 출처는 앞의 책, 112. 

 

연구자가바르트의말을이렇게이해한다면, 즉바르트가세가지유대인의사명으로제시한것이세가지그리스도의 직무를대행하는것이되려면, 고난당한유대인이그리스도의왕적직 무, 제사장적직무, 예언자적직무를받아들여야한다.

아직이런변화가 없기에바르트는직무가아닌‘사명’이라고말을한것으로보인다. 그러 나유대인이아닌예수그리스도의이름으로의직무를믿고아는자는 이 삼중직무론 또한 사명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같이바르트는예언자직무등예수의삼중직무론을설명하기 위해‘예수그리스도’라는인명과직명에서시작한다. 바르트는갈리오 판결문에서제시한요소들인‘로고스, 오노마타, 노모스’를믿음의분수 로서의예언에따라, 신앙의유비로서의예언에따라보면서삼중직무론 을사명으로제시한다.

바르트는그리스도의직무와믿음의분수(또는 신앙의 유비)에 따른 예언에서 누락된 것을 찾았다. 바르트는 갈리오 판결문에서제시된오노마타,

즉야웨와예수를다루지만로고스와노모 스와의관계속에서그이름들을다루지는않았다.

그런점에서아쉬움을 남긴다.

바울이제시한‘믿음의분수대로의예언’은교회의역사가운데계속 논의되어왔다.

바울이말한‘믿음’(πίστις)과‘예언’(προφητεια)은주로 삼위일체의제2격에국한되어해석되고적용되었다.

이런의미에서사 용된‘분수/유비’(ἀναλογία)는본성과정의를달리하거나공통된관계 를 상정하는 실재와의 분수/유비의 범위를 축소하고 있다. 

 

V. 결론

 

이상에서본논문은바울이로마서12장6절에서제시한내용중 ‘προφητεια κατα την ἀναλογίαν της πίστεως’(예언이면믿음의분수 대로)를세부분으로설명하였다.

첫째부분은기독교역사에따른그리 스도의직무로서예언(예언자)과믿음의분수(또는신앙의유비)이고, 둘째부분은루터, 칼뱅, 바르트의경우에서본종교개혁시기와개신교 에따른그리스도의직무로서예언(예언자)과믿음의분수(또는신앙의 유비)이고, 셋째부분은그리스도의직무와믿음의분수(또는신앙의 유비)에따른세가지형태(초과된예언, 삭제된예언, 누락된예언)이다.

‘초과된예언’에서는바울에따른구약성서의율법과신약성서의 복음의관계에대한지난한과정을언급했다.

‘삭제된예언’에서는안셀 무스가대속의범위를제한한이후부터오늘에이르는과정에서발생한 사탄의문제를다뤘다.

‘누락된예언’에서는사도행전18장에나오는갈 리오판결문(로고스, 오노마타, 노모스)의관점중‘오노마타’에관한내 용을 살펴보았다.

바울이제시한믿음의분수대로의예언, 신앙의유비에따른예언은 예수그리스도의법으로서작용한다.

이런내용은신학의역사에서제시 된긍정의방법, 부정의방법, 유비(적)의방법, 상관(적)의방법, 역설(적) 의방법69) 등으로구조화되는전통적인신학방법론에스며있다.

 

     69) 강응섭, 뺷동일시와 노예의지뺸 (서울: 백의출판사, 1999), 13-40; 강응섭, 뺷자크 라캉과 성서 해석뺸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4), 31-45. 

 

이것은 갈리오판결문을탐독한바울이유대-기독교인(팔레스타인유대인)에게하고자했던예언의방법이자구약성서를관통하고신약성경으로 귀결하는하나님의방법이고, 예수께서사용하신방법이고, 오고오는 믿음의세대들에게제시하고자보혜사성령하나님의방법으로볼수 있다.

바울이로마서에제시한믿음의분수대로의예언, 신앙의유비대 로의예언은중세교회에서유비(적)의방법으로정교화되고, 예수그리 스도의세번째직무로부각되어, 오늘날삼위일체하나님을믿는자들과 사역자들에게말씀을이해하고선포하는데있어서귀중한기준이되고 있다.

한글성서번역에서“예언이면믿음의분수대로”라고표현된것을 조직신학용어인“예언이면신앙의유비대로”라고읽을경우, 그리스도 의직무로서예언(예언자)이더용이하게이해되고, 이예언이기독교 역사에서신앙의유비와존재의유비로논의되고있다는것그리고지금 도 이 논의는 조직신학에서 주요한 주제라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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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초록

 

로마서 12장 6절 ‘προφητεια κατα την ἀναλογίαν της πίστεως’(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에 대한 조직신학적 연구 본 논문은 로마서 12장 6절에 제시된 ‘προφητεια κατα την ἀναλογία ν της πίστεως’(“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를 조직신학적 관점에서 다룬다. ‘믿음의 분수’라는 한글 번역 표현은 조직신학에서 보통 ‘신앙의 유비’라고 사용된다. 즉, 믿음의 분수와 신앙의 유비는 ‘την ἀναλογίαν της πίστεως’에 대한 번역이다. 한글성서 언어인 ‘믿음의 분수’라는 표 현으로 복음서를 보면,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과 행하신 사역을 잘 이 해할 수 있다. 조직신학 언어인 ‘신앙의 유비’라는 표현으로 기독교 역사 를보면, 교회가‘존재의유비’와의관계에서취한입장을확인하게된다. 믿음의 분수와 신앙의 유비가 동일한 바울의 용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우리는 예언과 믿음의 분수, 예언과 신앙의 유비를 연결하여 묵상하고 설교하고 실천하게 된다. 본 논문은 믿음의 분수대로 예언하기(신앙의 유비로 예언하기)를 살펴 보기 위해 첫째로 기독교의 역사에서 그리스도의 직무로서 예언(예언 자)과 믿음의 분수(또는 신앙의 유비)를 다루고, 둘째로 루터, 칼뱅, 바 르트의 경우에서 본 그리스도의 직무로서 예언(예언자)과 믿음의 분수 (또는 신앙의 유비)를 다루고,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직무로서 예언과 믿음의 분수(또는 신앙의 유비)에 따른 세 가지 형태(초과된 예언, 삭제 62 한국조직신학논총 제76집(2024년 9월) 된 예언, 누락된 예언)를 다룬다. 이 세 가지 형태 중 첫 번째는 바울이 제시한 구약성서의 율법과 신약성서의 복음의 관계, 그 이후 기독교 역 사에서 전개된 둘 간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두 번째는 안셀무스가 대속 의 범위를 제한한 이후부터 오늘에 이르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탄에 관 한 것이다. 세 번째는 사도행전 18장에 나오는 갈리오 판결문(로고스, 오 노마타, 노모스)의 관점 중 ‘오노마타’(이름들, 오노마의 복수)에 관한 것 이다. 바울이 제시한 믿음의 분수대로(신앙의 유비대로)의 예언은 기독교의 역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법과 직무로서 작용한다. 이런 내용은 신학 의 역사에서 제시된 긍정의 방법, 부정의 방법, 유비(적)의 방법, 상관 (적)의 방법, 역설(적)의 방법 등으로 구조화되는 전통적인 신학방법론 에스며있다. 한글성서번역에서“예언이면믿음의분수대로할것이니 라”라고 표현된 것을 조직신학 용어인 “예언이면 신앙의 유비대로 할 것 이니라”라고읽을경우, 그리스도의직무로서 예언(예언자)이더 용이하 게 이해되고, 이 예언이 기독교 역사에서 신앙의 유비와 존재의 유비로 논의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지금도 이 논의는 조직신학에서 주요한 주 제라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본 논문은 이런 논의를 통해 그리스도의 직 무를 맡은 기독교 교회가 어떤 예언을 수행해야 할지 다시금 숙고할 수 있게 한다. 

 

‖ 주제어‖ 예언, 믿음의분수, 신앙의유비, 존재의유비, 그리스도의직무, 토마스아퀴나스

 

Abstract

A Systematic Theological Study on the ‘προφητεια κατα την ἀναλογίαν της πίστεως’(the Prophesy to the Analogy of Faith) in Rome 12:6

Kang, Eung-Seob. (Dr. en Théol. Professor, Dept. of Systematic Theology/Psychoanalysis Yemyung Graduate University Seoul, Korea)

 

This Paper deals with the ‘προφητεια κατα την ἀναλογίαν της πίστεως’ presented in Rome 12:6 from the Systematic Theology Perspective. The translated Expression in Korean, ‘the Prophesy to the Proportion of Faith(KJV), the Prophesy according to the Amount of Faith(CEV)’ is commonly used as ‘the Prophesy to the Analogy of Faith’ in the Systematic Theology. In other words, the Prophesy to the Proportion of Faith and the Prophesy to the Analogy of Faith are the Translations of ‘προφητεια κατα την ἀναλογίαν της πίστεως’. If we look at the Gospel with the Expression of the Prophesy to the Proportion of Faith, which is the Korean Bible Language, we can understand well what Christ said and the Ministry he did. Looking at Christian History with the Expression the Prophesy to the Analogy of Faith, which is the Systematic Theology Language, we confirm the Position the Church took in Relation to the ‘the Analogy of Being'. When we find out that the Proportion of Faith and the Analogy of Faith are the same terms of Paul, we meditate, preach, and practice by connecting the Prophesy and the Proportion of Faith, the Prophesy and the Analogy of Faith. This Paper deals with the following three subjects to look at the Prophesy to the Proportion of Faith(the Prophesy to the Analogy of Faith). First, in the History of Christianity, it deals with the Prophesy (Prophet) as Christ's Work and the Proportion of Faith(the Analogy of Faith). Second, in the cases of Luther, Calvin, and Barth, it deals with the Prophesy(Prophet) as Christ's Work and the Proportion of Faith(the Analogy of Faith). Finally, as Christ's Work, it deals with three Forms (excessive Prophesy, deleted Prophesy, and missing Prophesy) according to the Prophesy(Prophet) as Christ's Work and the Proportion of Faith(the Analogy of Faith). Paul's the Prophesy to the Proportion of Faith(the Prophesy to the Analogy of Faith) serves as the Law and Work of Jesus Christ in the History of Christianity. This content permeates the traditional theological Methodology, which is structured by the positive Method, negative Method, the Method of Analogy, the Method of Correlation, and the Method of Paradox, presented in the History of Theology. If the Translation of the Korean Bible, which is expressed as “If it is a Prophecy, it will be a Proportion of Faith,” reads the term “If it is a Prophecy, it will be done according to the Analogy of Faith,” which is the Systematic Theology term, it confirms that the Prophecy(Prophet) as the Work of Christ is more easily understood,  that this Prophecy is discussed as the Analogy of Faith and the Analogy of Being in Christian History, and that this Discussion is still a major Topic in the Systematic Theology. Through this Discussion, this Paper allows the Christian Church in charge of Christ's Work to reconsider what Prophecy should be carried out.

 

 Keywords : prophecy, the proportion of faith, the analogy of faith, the analogy of being, Christ's work, Thomas Aquinas ∙

 

투고접수일: 2024년 7월 25일 ∙ 심사(수정)일: 2024년 8월 21일 ∙ 게재확정일: 2024년 8월 24일

 한국조직신학논총 제76집(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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