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본연구는그리스도교신앙을중심으로서구의지적전통은물론 유교, 불교, 도가사상, 근대한국종교를수용하고융합하여창조적으로 발전시킨그리스도교사상가인다석류영모(多夕 柳永模, 1890~1981) 와플라톤을계승하여신플라톤주의로발전시켜그리스도교에지대한 영향을준3세기헬레니즘시대의사상가인플로티노스(Plotinus, 205~ 270)에게서나타나는신비적합일(unio mystica)에관한내용을비교연구하고, 이를신학적으로고찰함으로써오늘날한국신학을위한제언 을 시도하고자 한다. 일부종교적명상이제시하는신비적합일에이르는방식과내용은 종교엘리트들만의체험적전유물이거나일자의전체성과목적안으로 존재의다양성을제거해버리는전체주의적이고파시즘적인폭력과공 모한다는혐의를받기도한다. 1)
하지만신비적합일의담론은전체생명 을파괴하는분리와분열, 대립과소외라는이세계의존재론적이고실존 적문제를해결하기위한대안으로제시되기도한다. 분리와대립의문제 를극복하여신과세계그리고인간이전체생명안에서‘하나’가되는 친교의비전을구현하는것이본연구가상정하는신비적합일이다.
이처 럼신비적합일은분열과대립의사회를치유하는구원을향해인간이 걸어가야할‘신비적행로’라말할수있다. 이“신비적행로는합일로 돌아가는것이다. 하느님과의합일, 모든인간과의합일, 우주와의합일, 우리 자신 안에서의 합일로 돌아가는 것이다.”2)
1) 브라이언다이젠빅토리아는2차세계대전당시일본의선불교가군국주의에동원되 었음을역사적사례를통해증명하고, 선불교의종교적수행이전체주의와파시즘 그리고전쟁이데올로기와어떻게공모하고 작동하였는지에대한비판적연구를 수행했다. 일제군국주의하에서선불교의무아(selfessness) 개념이작동한사례를 살펴보기위해서는Brian Daizen Victoria, Zen War Stories (NewYork: RoutledgeCur zon, 2004), 106-148, 제국주의적 선불교와 전쟁 속에서의 역할에 대해서는 Brian Daizen Victoria, Zen at War (Lanham: Rowman & Littlefield Publishers, Inc., 2006), 79-145에서 그 내용을 참조하라.
2) 윌리엄 존스턴/이봉우 옮김, 뺷신비신학: 사랑학뺸 (서울: 분도출판사, 2012), 345.
본연구는동․ 서양종교전통에있어서신비적합일의삶과사유를 뚜렷하게보여준사상가인다석류영모와플로티노스의신비적합일을 비교함으로써그구체적내용을파악한다.
또한본연구는분리와분열, 차별과대립이라는폭력의담론에대응하는합일적구원을초월적내재 의그리스도론과존재론적변화의미학적수행론의범주로정리하고, 이를수행-미학적(Performative-aesthetical) 한국신학이라는전망으로 종합하여 제시할 것이다.
II. 귀일(歸一): 다석과 플로티노스의 신비적 합일의 역학
다석과플로티노스, 두사상가에게신비적합일의대상인‘하나’는 구체적으로무엇을의미했으며, 그차이는무엇인가?
이들이가진‘하나’ (一) 혹은‘일자’(一者, the One)를향한추동의근원은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발생하는가?
이러한추동이가리키는신학적함의는무엇일까?
이질문들과관련하여두사상가의신비적합일에서공통으로나타나는 역학을 설명하는 개념은 바로 귀일이다.
다석류영모에게신은‘하나’로언표되며, 신과세계의관계는양자 간에존재론적차이에서발생하는‘그리움’을통해합일을추동하는귀일 의관계다.
다석사상의밑바탕에는“하나”3)라표현된궁극적실재와의 만남과이를위해철저한자기비움의수행(修行)으로주어진종교체험 인신비적합일이자리하고있다.
3) 다석은 신, 곧 절대자를 여러 명칭으로 표현하는데, 그중 대표적 명칭이 ‘하나’다. “하느님은절대요전체인하나(一)이다.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이라오직하느님 뿐이다. ⋯ 절대요전체요하나인진리(하느님)를깨치는것이가장급선무(急先務) 이다.” 류영모/박영호엮음, 뺷多夕 柳永模 어록뺸 (서울: 도서출판두레, 2002), 64-65.
다석이평생추구했던것이이합일이 다. 다석은신의절대성과전체성을가리키는명칭으로‘하나’를제시한 다. 다석은“모든것이절대인‘하나’에서나와서, 마침내‘하나’를찾아 하나로돌아가야한다는긴박한요구가우리에게있다”4)고주장했다.
다석에게“하느님은절대요전체인하나(一)이다. 무극이태극(無極而 太極)이라오직하느님뿐이다.”5)
다석의‘하나’에관한이해의중요한 특징은신과세계의합일적관계이다.
이합일적관계를설명하는다석의 개념이바로모든것이‘하나’에게서나와다시‘하나’로돌아간다는귀일 이다.
본연구가파악한다석의귀일과정이가진핵심은존재론적차이에 서발생하는변증법적역동성이다.
다석은신의절대적거룩함과전체성 이유한한피조물, 특히인간안에서‘하나’를향한‘그리움’을일깨우고 귀일하도록하는원동력이된다고보았다.
다석은이렇게말한다.
“‘하나’ 입니다. 본래하나(전체)입니다. 본래‘하나’, 이것이‘성명자성’입니다. 하느님의존재는스스로거룩합니다. ‘하나’라야거룩하고, 거룩해야그 리운 것입니다.”6)
이처럼 다석은 신과 합일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을 그리움이라 규정한다. 다석은 “맨첨이고참 되시는 아버지 하느님을 그리워함은 어쩔수없는사람의본성(本性)”7)이라이해했다.
4) 류영모/다석학회 엮음, 뺷다석 강의뺸 (서울: 교양인, 2017), 763.
5) 류영모, 뺷多夕 柳永模 어록뺸, 64.
6) 류영모, 뺷다석 강의뺸, 401.
7) 류영모, 뺷多夕 柳永模 어록뺸, 59.
피조물의피조성, 곧 절대적타자로서‘하나’를대하는유한한피조물로서자기에관한인식이야말로자신이‘하나’에서나왔기에전체안에있다는연속성과‘하나’로 부터떨어져나온일부라는불연속성을깨달음이다.
이변증법적관계성 안에서 발생하는 ‘하나’를 향하는 추동의 본질이자 이유가 되는 것이 그리움이다.
요약하자면, 유한한피조물은신의전체성과거룩성때문에 ‘하나’를 ‘그리워’한다.
피조물이 본래 지닌 ‘하나’를 향한 이 그리움이 곧 귀일의 추동이다.
플로티노스 역시 신비적 합일의 대상인 궁극적 실재를 일자(the One, 一者) 혹은‘하나’라명칭하고, 일자에게서나오는유출(流出)과 일자로돌아가는회귀(回歸) 그리고이과정의추동이되는에로스의 개념으로신과세계의귀일관계를설명한다.
또한“‘신비한’(말로표현 할수없는) 근원으로서의일자(一者), 이근원과의‘합일’, 타락할수도 있고상승할수도있는‘영혼’의가능성, ‘구원’의갈구”8) 등이그특징으로 제시된다.
플라톤의영육이원론을거부한플로티노스의사유는일원론 적이다.
플로티노스의일원론적사유는“세계의모든것을일자의‘유 출’(emantipatio)로보는관점그리고유출의관계에따라모든것이‘하 이어라키’를형성하는구도그리고무엇보다도물질을실재로보지않는 입장”9)으로요약된다.
특히“플로티노스의사유는일자로부터의유출 을사유하는이론적측면과일자와합일하기위해상승하는실천적측면 으로 구성되어 있다.”10)
8) 이정우, 뺷세계철학사 1 ― 지중해세계의 철학뺸 (서울: 도서출판 길, 2019), 591.
9) 앞의 책, 592-593.
10) 앞의 책, 593.
플로티노스는유출을근거로모든피조물이일자안에있음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어떤 것에 의해서 생겨난 모든 것은, 만약 그것을 만든그무엇이있다면, 그것을만든것안에있든지아니면다른어떤 것안에있게된다. 그이유는, 유출되고존재하기위해서는다른어떤 것이필요하고, 어디서나그어떤것을필요로하기때문이다.”11)
플로티 노스에게있어일자는절대성과근원성으로그특징을설명할수있다.
플로티노스는모든것이일자로부터유출되고, 일자는자신과다른것, 덜완전한것을낳는다고생각했다.
이러한유출의과정을통해서일종의 순차적이고위계적인질서인‘거대한존재의사슬’이구성된다.
이위계 의시작은일자이고, 다음은지성, 그다음은영혼이다.
만물은이위계 안에서 일자로 회귀하려고 노력하고, 인간 역시 신이라 말할 수 있는 일자를향해이끌린다.
이이끌림을추동하는것을플로티노스는신에게 상승하고자하는열망이자사랑인에로스라보았다.12)
플로티노스는 “영혼은신과는다르지만신으로부터나왔기때문에필연적으로신을 열망하고, ⋯ 천상적인열망을소유하고있다”13)고주장한다.
11) Enn. V 5, 9. 1-3. 본 논문에서는 플로티노스의 뺷엔네아데스뺸에 해당하는 자료로 로이드 거슨(Lloyd P. Gerson)이 편집한 번역본인 Plotinus, John M. Dillon and George Boys, trans., Lloyd P. Gerson, ed., The Ennead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9)를 사용하고, 이후로 The Enneads의 출처는 1957년에 제정 된 플로티노스학회의 국제학술 표기 약정에 따라다음과 같이 약어로 표시한다. 예를 들어 Enn. V 5, 3. 10은 Plotinus, The Enneads의 5권 5, 3장, 10절을 말한다.
12) 존 쿠퍼/김재영 옮김, 뺷철학자들의 신과 성서의 하나님뺸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6), 67.
13) Enn. VI 9, 9. 27-30.
이런플로 티노스의존재론적위계의사슬은절대자이자신이라할일자와세계와 의 유기적 관계를 강조한다는 점을 그 주요한 특징으로 들 수 있다.
종합하자면, ‘하나’와합일하고자하는추동을표현하는다석의용 어는‘그리움’이고, 플로티노스의용어는‘에로스’(Ἔρως, 열망혹은사랑) 다.
다석은인간실존을 탐(耽, 탐욕), 진(嗔, 분냄), 치(恥, 어리석음)를 쫓는타락한‘제나’로이해함으로써이세계와‘하나’와의관계에있어 존재론적차이를강조하는변증법적이해를보여준다.
다석의변증법적 존재이해는식색(食色, 식욕과성욕)을끊는금욕적수행으로구체화된 다.
이금욕적수행을통해참나를깨달음으로써‘하나’에게다시돌아가 는귀일의강렬한추동이바로그리움이다.
플로티노스는다석처럼‘하 나’와이세계의관계가갖는역동을유출(혹은발출)과회귀로설명하지 만, 귀일의과정에서아름다움이합일에대한열망을일으키고덕을발생 시켜구원에이르는상승의존재론적참여를부각시킨다.
플로티노스에게신, 곧‘하나’는에로스의대상이다.
그러므로신과합일하기위해서는 에로스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
III. 다석 류영모의 ‘하나’와 ‘그리움’
1. 그리움의 대상으로서 ‘하나’
다석이사용한신에관한중요한명칭은‘하나’(一)다.
다석의‘하나’ 가가진신학적함의는다음과같다. 첫째, ‘하나’는초월적타자로서의 신이다.
다석은“이름이없는것이신”14)이라말하면서신의이름없음을 주장한다.
다석은이름없는신을가리키기위한언표로서“‘하나’라면 신을말하는것”15)이라주장한다.
이름없는신인‘하나’는인간의언어로 포획할수없고, 인간의인식으로완전히대상화할수없는무규정적인 신이가진초월적타자성을함의한다.
이름지어진존재는자신의기원을 스스로에게 두지 않고 그 이름을 지어준 대상에게 둔다.
따라서 이름 없는 신은 그 기원이 신에게 이름을 붙이는 인간이나 이 세계에 있지 않다.
이런 맥락에서 다석은 신이 ‘어디 있다’라고 말할 수 없다 했다. 다석은이렇게말한다. “신이라는것이어디있다면신이아닙니다.”16)
이렇게다석이생각했던‘하나’는이세계에그기원을두지않는, 이세계 와 질적으로 다른 차원을 지닌 초월적 타자였다.
둘째, 존재의근원이자원리이며, 절대이자전체인동시에무규정적 인(indefinite)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으로서 ‘하나’다.
다석에 따르 면, “하느님은절대요전체인하나(一)이다.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 이라오직하느님뿐이다. ⋯ 절대요전체요하나인진리(하느님)를깨치 는것이가장급선무(急先務)이다.”17)
다석은절대이자전체로서‘하나’ 를무극이태극18)이라는성리학의개념과연결해서제시한다.
14) 류영모, 뺷다석 강의뺸, 332.
15) 앞의 책, 332.
16) 앞의 책, 332.
17) 류영모, 뺷多夕 柳永模 어록뺸, 64-65.
18) 다석은두번에걸쳐(1960년11월7일, 1966년2월11일) 뺷태극도설뺸(太極圖說)을 순우리말로 번역하면서,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을 1960년에는 “없극겆이오 커극겆이다”로, 1966년에는 “없서 ”으로 번역했다. 안규식, 뺷비움 과 숨: 한국적 영성을 위한 다석 류영모 신학 연구뺸 (서울: 도서출판 동연, 2024), 157-158.
무극이태 극은중국송대유학자인주돈이(周惇頤, 1017~1073)가저술한뺷태극도설뺸(太極圖說)19)에등장하는용어다.
주희(朱熹, 1130~1200)의해석 을빌리자면, 무극이태극이란태극이시간과공간을초월하여형체가 없기에리(理)만있음을의미하는말이다.
즉, 존재의근원이자원리인 리는전체인태극이다.20)
따라서다석이말한태극은존재의원리이자 절대이면서전체인리라고말할수있다.
그러나유념해야할것은무극과 태극을개별적인두개의본원으로이해해서는안된다는사실이다.
주희 는주돈이가뺷태극도설뺸에서무극을태극이라함은만물의생성과구조 그리고원리에있어지극한궁극적실재라할태극이장소와형상, 냄새와 소리도없음을밝히기위해서라주장한다.
이는뺷중용뺸에서이르듯하늘 의작용이무성무취하고일정한모양도없어지극하면서파악할수없다 는뜻에서무극이라함과같다.
다만모양이없고파악할수없다고하여 그것이존재하지않음은아니며, 오히려확실히존재한다고하여이를 다시태극이라하는것이다.
다시말해궁극적실재는오직태극하나이 며, 그태극을가리켜무극이라하는것이다.
따라서무극에서태극이 나온것이아니라태극이곧무극이고, 무극이곧태극이다. “무극과태극 을둘로보지않고, 동일한존재의양면”이라해석해야하는것이다.21)
19) 뺷太極圖說뺸: 無極而太極 太極動而生陽 動極而靜 靜而生陰 靜極復動 一動一靜 互爲其根 分陰分陽 兩儀立焉 陽變陰合 而生水火木金土 五氣順布 四時行焉 五 行一陰陽也 陰陽一太極也 太極本無極也.
20) 풍우란/박성규 옮김, 뺷중국철학사 하뺸 (서울: 까치, 1999), 531-533.
21) 유현주, “朱熹의「太極圖說」 해설의관점으로본21세기생명가치연구,” 「동양철 학연구」 109 (2022), 239.
이처럼무극이태극이라함은무극과태극이동일한궁극적실재의서로 다른양태임을말한다. 이세계의모든만물의근원이자존재의원리가 되는태극은동시에현상계를초월하여있어초경험적인것으로서규정 될 수 없는 무규정자인 무극에 다름 아니다.22)
셋째, 다석이말한‘하나’는존재(Being)와비존재(Non-being)를포 괄하는통전적인궁극적실재를말한다.
다석은“무극이태극을통해무 (無), 곧‘없음’으로간주할수있는이혼돈과허무가사실상존재와둘이 아닌‘하나’”23)임을알았다. 다석에따르면, “혼돈(우주)은언제나하나 인태극”24)이다. 다시말해인간인식으로규정될수없는“허무는무극 (無極), 고유는태극(太極)”25)이다. 하지만“태극․ 무극이하나니까하나 는신”26)이다.
다석은1956년11월18일에기록한일지에서무극(无極)/ 태극(太極) →양의(兩儀) →사상(四象) →팔괘(八卦)의순서로이어 지는우주창생의과정을기록하였고, 여기서무극(无極)을“모르는하 나”,27) 태극(太極)을“한하나”28)로표기한다.
22) 안규식, 뺷비움과 숨뺸, 160.
23) 앞의 책, 161.
24) 류영모, 뺷多夕 柳永模 어록뺸, 122.
25) 앞의 책, 122.
26) 앞의 책, 122.
27) 류영모, 뺷多夕日誌뺸 1 (서울: 홍익재, 1990), 284.
28) 앞의 책, 284.
무극과태극은존재론적 으로는동일한‘하나’이지만, 그양태에있어서는다르다.
무극이모름의 ‘하나’라면, 태극은 앎의 ‘하나’다.
이처럼다석이이해한무극이태극의신은이세계에모름과앎을 모두허용하는‘하나’의신으로서이두가지모두를통해자신을드러낸 다.
우주 창생의 근원적 존재이자 모든 존재자를 관통하여 모든 곳에 충만한초월적존재인태극으로서신은이런의미에서분명존재의신이 다.
동시에태극으로서존재의신은인간인식과감각에결코포획되지 않는 무극의 신이다.
어쩌면 무극의 신은 인간의 신 인식이 고정되지 않고끊임없이‘미끄러져서’ 오히려인간의앎이필연적으로모름을만들 어내기에존재의신이면서언제나비존재의신이다.
따라서신에대한 인간의앎뿐만아니라모름역시신의계시가된다. 신은인간인식에 역설적으로‘없이계심’으로드러난다. 다석은오직한분인없이계신 하나님만확실히존재한다고보았다.29)
다석은존재와비존재가‘하나’ 인신을한없이(無極) 큰(太極) 없이계신님이라불렀다. 지극한존재이 기에없음으로드러난다. 그래서없이계신다.
다석은이‘하나’, 곧없이 계신하느님에게도달해야함을주장한다.
그리고하느님에게도달함의 방향은‘내속’이다.
“우리가하느님아버지라고하지만아버지는우리가 따질수없는크고참된존재이시라없이계신다. ⋯ 하느님은내속에 있다. 하느님의 말씀을 알면 그것이 하느님에게 다다른 것이다.”30)
29) “이 사람은 모든 상대적 존재의 근원인 전체 하나(一)가 얼로 없이 계심을 느낀다. 이 하나밖에 다른 것은 없다. 모든 상대적 존재는 이 하나(一) 속에 들어 있다.” 류영모, 뺷多夕 柳永模 어록뺸, 163. 강조는 필자의 표기.
30) 류영모, 뺷多夕 柳永模 어록뺸, 344. 강조는 필자의 표기.
결국이세계의존재론적근원과변화의원리로경험되는신은인간 에게‘한하나’, 곧태극에대한앎으로인식되지만, 그앎은다시앎을 넘어서는혼돈과무규정으로경험되는신인‘모르는하나’, 곧무극에 대한모름의영역을끊임없이만들어낸다.
이로써인간은앎을존재로 경험하지만, 모름은비존재로경험한다.
다석의무극이태극은이앎과 모름, 곧존재와비존재가모두통전적으로‘하나’임을주장한다.
신에 대한인간인식의이런앎과모름, 존재와비존재의역설적일치는인간 인식을끊임없이넘어서는신그리고그신이세계와맺는관계가통전적 이라는 사실에 주목하게 만든다.
이 통전성의 핵심은 모름을 또 다른 차원의앎으로이해하고, 앎을또다른차원의모름으로이해함으로써 더 큰 궁극적 실재를 향한 개방적 앎으로 나아가는 역설에 있다.
그렇다면앎과모름중무엇이먼저일까?
분명히앎이전에모름이 있다.
규정되기이전에규정되지않음이전제되어야하기때문이다. 따 라서무극이태극의신은혼돈에서질서로, 무규정에서규정으로, 무(無) 에서유(有)로인간인식에드러난다.
그래서일반적으로신비주의자들 이주장하는신비적합일의길은신에대한인간언어와앎을소거하는 방식으로서신에대해‘무엇인가’ 아니라‘무엇이아닌가’를묻는부정의 방식으로진행된다.
이런맥락에서오히려“한낮의밝음은우주의신비 와영혼의속삭임을방해하는것이다.”31)
따라서신에대한진정한앎이 란근본적으로무지(無知)로향하는앎이되어야한다. 낮보다밤이영원 함을 알았고, 영원한 ‘저녁’을 그리워한 다석이 자신의 호를 많은(多) 저녁(夕)을뜻하는다석(多夕)으로정했던것은바로이런맥락이있었 다.32)
31) 박영호, 뺷다석 전기뺸 (서울: 교양인, 2012), 416-417.
32) “저녁은영원하다. 낮이란만년(萬年)을깜박거려도하루살이의 빛이다. 이영원 한 저녁이 그립도소이다.” 앞의 책, 417.
마지막으로다석의‘하나’는곧절대무(絶對無)이자절대공(絶對 空)이다.
다석은‘하나’란마주봄으로서로나누어지지않은상태인둘 (二)이아니라하여‘불이’(不二)라했고, 이둘이아닌상태인‘하나’가 곧무라는뜻에서“불이즉무”(不二卽無)라불렀다.
다석은인간이자기 존재의근원과귀결이‘하나’인무라는것을알면이세계의종노릇에서 벗어날 수 있다 보았다.33)
다석에게 이 세계는 마주 봄의 상대(相對) 세계다.
이상대세계의존재자들은자기존재의근거가자기에게있지 않다. 이존재자들의근거는불교에서말하는연기(緣起)의상호주체성 으로설명되는무아(無我)다.
눈에보이는감각세계인상대세계는결국 나누어지지않은절대(絶對) 세계인‘하나’, 곧절대무와절대공으로되 돌아간다.
이사실을깨닫지못하고이세계의존재자들을소유하고집착 하려 할 때, 탐, 진, 치의 삼독에 빠지는 종살이가 시작된다.
그렇다면‘하나’에어떻게도달하는가? 다석은절대무라할‘하나’를 원래부터있는‘하나’라하여‘원일물’(元一物)이라했다.
원일물은불이 즉무(不二卽無)한 것이기에 소유나 인식으로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
원일물이란“소유한것이도무지없고, 있었던소유도잊어야하는‘원일’ 이다.”34)
33) 류영모, 뺷다석 강의뺸, 766.
34) 앞의 책, 768.
따라서‘하나’에이르는귀일의길은감각적인것들로본래존재 인무를감추고공을채움으로써허무한것들을존재한다고믿도록기만 하는존재자들의환영을부정(否定)하는것이며, 자신안에있는‘하나’ 인 무와 공으로 향하는 자기 비움의 길이다.
2. 그리움을 통해 ‘그리스도록’
다석에게절대무와절대공인‘하나’로되돌아가는자기비움의수 행적원동력은무엇일까?
그것은바로‘하나’를향한그리움이다.
인간은 자기존재의근원이자귀결인‘하나’를그리워한다. 다석은“맨첨이고 참되시는아버지하느님을그리워함은어쩔수없는사람의본성(本 性)”35)이라보았다.
그리움은무(븬탕)와공(허심)에도달하는자기비 움의금욕적수행을통해서구체화된다.
다석은‘몸성히, 비히, 바탈 히’ 36)의단식(斷食)과단색(斷色)하는자기비움의금욕적수행을통해 서븬탕(虛空)과허심(虛心)에도달하고자했다.37)
35) 류영모, 뺷多夕 柳永模 어록뺸, 59.
36) ‘몸성히, 비히, 바탈히’는 몸성히, 맘놓여, 뜻태우로 표현할 수 있다. 다석이 말한몸성히는탐욕을버려많이먹지않는 ‘점심’(석가가대낮에 한끼먹었다는 뜻) 수행이고, 맘놓이는 정조를 지키기 위해 치정(癡情)을 끊어 버리는 것이며, 뜻태우는 몸성히와 맘놓이를 통해서 지혜의 광명을 얻는 것을 말한다. 류영모, 뺷多夕日誌뺸 4 (서울: 홍익재, 1990), 411-412. 37) 김흡영은 다석의 ‘몸성히’, ‘비히’, ‘바탈히’를 “‘한 나신 아들’인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은 ‘참몸’, ‘참맘’, ‘참바탈’을 성취하기 위한 다석의 수양법” 으로 규정하고 이를 그리스도교 신학의 성화론과 연결시킨다. 김흡영, 뺷가온찍 기: 다석 유영모의 글로벌 한국 신학 서설뺸 (서울: 도서출판 동연, 2016), 198.
다석은‘하나’에이 르는길을자기비움의금욕적수행이라보았고, 그런수행의원동력을 그리움으로 표현했다.
하지만본연구가특히주목하는것은다석이자기비움의수행과 그리움을자신의그리스도론의지평안에서종합시켰다는점이다. 다석 은인간본성으로서그리움이자기비움의수행을통해인간영혼안에서 그리스도를탄생시킨다고보았다.
다석은인간이가진‘하나’를향한그 리움이‘하나’와신비적합일을이룰수행적동력을주고, 인간영혼안에 서독생자, 곧그리스도가태어나도록한다고본것이다. “하나님을향한 다석에게그리스도는하나님을향한그리움을통해비워진인간영혼 안에서태어나는하나님의아들이었다.”38) 이처럼‘하나’를향한그리움 으로추동되는수행을통해인간영혼안에서그리스도가태어나‘하나’ 가 되는 신비적 합일을 다석은 ‘그리스도록’이라 표현한다.39)
“우리는 세상에나와서올라가고 다시 나오고, 먼 빛을바라보며 그 (하느님)를그리워하고, 그가그리워나왔으니그리스도록(立) 살아 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입니다.”40)
38) 안규식, 뺷비움과 숨뺸, 325.
39) 인간영혼안에서태어나는독생자에대한사유는중세독일의신비주의신학자에 크하르트(Meister Eckhart, 1260~1328)에게서도 동일하게 찾아볼 수 있다. 다석 은자신의독생자론에서인간안에태어나는독생자를“한나신아들”이라표현했 다. 다석 류영모와 에크하르트의 사상적 연관성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을 참조하라. 앞의 책, 308-326.
40) 류영모, 뺷다석 강의뺸, 184.
‘하나’를향한그리움과자기비움의수행을통한그리스도됨, 곧 신비적합일은두가지조건때문에가능하다.
첫째, 존재론적동일성이 다.
다석의관점에서볼때, 모든인간은‘독생자’, 곧그리스도가될가능성 을이미가지고있다고보았다. 왜냐하면마이스터에크하르트의주장처 럼인간의근저(Grund)와하나님의근저가동일하기때문이다.
인간은 그근저의순수성을회복하는깨달음의사건을통해인간영혼안에서 독생자가탄생하는경험을할수있다.
다석은이렇게말했다.
“그런데 예수만‘외아들’입니까?
하느님의씨(요일3:9)를타고나, 로고스성령이 ‘나’라는것을깨닫고아는사람은다하느님의독생자(獨生子)입니다.
독생자는비할수없는존신(尊身)을가집니다.”41)
비록그리움은절대 적 ‘하나’와 유한한 인간 사이의 존재론적 차이에 의해서 발생하지만, 역설적으로인간이‘하나’와신비적합일을이루는것은‘하나’와인간 사이의동일한근저때문이다.
둘째, 존재론적차이를해소하는매개인 사건이다.
다석이모든인간이그리스도가될수있는가능성을생각할 수있었던것은그리스도를인성과신성이라는실체론적관점이아닌 탄생이라는사건의관점에서이해했기때문이다.
다석에게독생자란 “오직‘하나’의아들임을깨닫는관계”,42) 곧깨달음을통한탄생의사건 을의미했다.
다석에게‘하나’와신비적합일은독생자가자기영혼에서 탄생하는사건으로실현된다.
사건의관점에서보면나사렛예수사건은 이천년전에일회적으로끝난사건이아니라지금여기서시공을초월해 계속해서일어나고있는사건이다.
민중신학자안병무가“예수가곧민 중이다”라고말할수있었던것은예수사건이역사속에서민중사건으 로계속해서일어나고있다고보았기때문이다.43)
41) 앞의 책, 874.
42) 앞의 책, 473.
43) 안병무, 뺷민중신학을말한다뺸 안병무전집2 (서울: 도서출판한길사, 1993), 32-33.
민중이곧예수라는 말은실체적동일성이아니라사건적동일성속에서예수가민중사건을 통해재현됨을뜻한다.
다석이말한독생자역시그리움으로추동된자기비움의수행으로‘하나’와신비적합일에이른인간영혼안에서그리스 도가태어나는사건을통해그리스도가이세계에재현되는것을의미한 다.
다석은 이 사건을 ‘그리스도록’이라 불렀다.
3. 수행적이고 미학적인 예수의 희생, 고디 대속론
인간은감각적세계를포함하면서초월하는근원적인‘하나’의절대 세계의형상인무와공을‘그리워하며’ 자기의근원으로되돌아가고자 한다.
이그리움은자기비움의수행적방식으로무와공의진리에주체를 변형시키도록이끈다.
다석에게자기비움은식욕과색욕을끊는‘고디’ (곧음)의금욕적이고대항-문화적인삶으로구체화되었다.
‘고디’라는 용어는곧음을뜻하는말로다석이식색(食色)의만족을추구하는삶을 거부하고곧음의정의와생명살림의삶을추구한대항-문화적인그의 정신과삶을압축적으로설명한다석의용어다.
다석은그리스도교를 고디정신에가장투철한가르침이라하여곧음을뜻하는한자인정(貞) 자를붙여‘정교’(貞敎)라불렀다.
다석은고디정신을통해그리스도교 의대속을새롭게이해하는데, 이세계의전체생명을위해끝까지고디 정신을가지고살다십자가의고난을당한예수처럼예수를따르는자들 역시“피로서, 맘의고디(貞)로서대속하는정신”44)을가지고살아야 할 것을 촉구했다.
44) 류영모, 뺷다석 강의뺸, 759.
이런다석의고디대속론은예수십자가죽음에관한“형벌대속적이해”(penal substitutionary understanding)가가진한계를수행적이고 미학적인관점에서보완하고, 더나아가이를극복하는설명으로제시된 다.
예수 십자가에 대한 형벌대속적 이해는 세 가지 측면에서 비판이 제기된다.
첫째는하나님의만족이예수십자가죽음이라는폭력을통해 이루어졌다고봄으로써아들을죽여자신의명예를회복한가학적성부 라는왜곡된이해와폭력의정당화를가져온다는것이다.
둘째는예수 십자가고난을개인적구속으로만이해함으로써구원이가진사회적이 고현실변혁적인차원을잃어버린다는것이다.
셋째는구원을죄와용서 의수용으로만이해하여신앙적실천을간과한다는것이다.45)
45) 박만, “속죄론적 십자가 죽음 이해에 대한 비판적 논고,” 「한국조직신학논총」 39 (2014): 310-311.
따라서 예수십자가죽음과희생에관한형벌대속적이해는개인의구원에만 치중함과성부에대한왜곡된이해로인해사회적변혁의원동력을주는 수행적차원과도덕적감화를이끌어내는미학적차원이약화된다는 한계를 지닌다.
하지만다석은예수의삶과십자가죽음을형벌대속적이해가아닌 사회변혁적수행과도덕적감화의미학적관점을결합시킨고디대속론 을제시한다.
다석의고디와대속의개념그리고그리스도이해는동양 전통에서말하는효(孝)에근거하고있다.
효는인간본성을기르고(養 性, 양성) 자신에게주어진일에정성을다하는(存心, 존심) 수행적삶이 육신의부모에대한도리를다하는사회적효도일뿐아니라천지(天地), 곧우주라할‘아버지’에대한우주적효도임을상정한다.
그런데부모에 대한자식의철저한효행은기계적이고위계적인순응이아니라이를“전사회적으로확산시키는것, 그리하여그시너지효과로서아름다운 풍속과조화로운사회그리고튼튼한나라를이룩”하는도덕적이고사회 적이며무엇보다미학적인감화를그본질적요소로갖고있다. 46)
이처럼 동양에서효는부모에대한도리를다하는것을넘어서그철저함을통해 이를지켜보는자들에게미학적인감화를주어사회변혁으로이어져야 하는것이었다.
다석에게철저한정직과희생의삶, 곧예수의고디는 성부를만족시키기위한가학적수행이나기계적인복종이아니라성부 에대한절대적신뢰와사랑에기초한성자의효, 곧‘하느님의아들노릇’ 이었다.
다석에따르면예수는“하느님아들노릇을하는데아주몸까지 희생했다.”47)
십자가에달린예수는“천직에매달린모범을통해우리를 위한대속(代贖)”48)을보여주었고, 예수를믿고따르는자들에게“자기 의천직에임무를다하는것이십자가에매달린예수와같은독생자(獨 生子)가되는길”임을알려주었다. 49)
46) 퇴계이황편집/한형조독해, 뺷성학십도, 자기구원의가이드맵뺸 (성남: 한국학중 앙연구원, 2018), 157-160.
47) 류영모, 뺷多夕 柳永模 어록뺸, 146.
48) 류영모, 뺷다석 강의뺸, 754.
49) 앞의 책, 754.
이처럼다석은예수가보여준고디 의삶과십자가의희생을성부에대한도덕적이고사회적인변혁의모범 이되는효로이해했으며, 예수를따르는우리로하여금도덕적완성의 구원으로 나아가도록 추동하는 미학으로 보았던 것이다.
결론적으로다석의그리움과신비적합일의사건은인간영혼안에 서탄생으로나타나는독생자, 곧그리스도의현존을가져오는매개다.
이렇게그리움은무와공의수행주체를그리스도로‘탄생’시키는추동이 다.
이러한다석의‘하나’와그리움은인간영혼안에서일어나는독생자 의탄생사건을통해이세계에현존하는그리스도를설명하는한국신학 의가능성을제시한다. 역사적예수와신앙의그리스도라는실체론적이 고이원론적인간극사이에서다석의그리움은‘하나’를그리워하는사람 을통해인간안에서, 인간밑에서, 인간위에서, 인간과함께이세계에 무와공그리고‘고디’로현존하는초월적내재라할그리스도가어떻게 이세계에서수행적이고미학적인방식으로우리의구원을이루는지를 설명해 준다.
IV. 플로티노스의 ‘하나’와 에로스
1. 하나
플로티노스의‘하나’는다음네가지특징으로설명된다.
첫째, 차별 화되기이전의절대적‘하나’다.
‘하나’는단순히숫자를의미하지않는다. 플로티노스에게‘하나’는“단일성과다수성의차별화가진행되는원천” 이며모든존재의부정이자불가해한그무엇이다.
플로티노스는‘하나’- 정신–영혼–물질의존재론적위계에서정신위에혹은정신이전에존재 하는어떤원리를‘하나’라부른다.
사유는사유의대상이없이는존재할 수없기에정신이사유와사유되는것이되는이중성이전에존재하는 것을플로티노스는‘하나’라본것이다.
이런맥락에서‘하나’는“‘사유’와 ‘사유되는것’이동시에이루어지게하는원천”이자모든차별화를넘어 서는절대적이고완전한단순성이다.
따라서둘로존재함으로써상대화 되는인식가능한것이라면“‘하나’라는이름은우리가감각으로는이해 할수없는절대적인것의본성”을가리키며, 인간의감각으로파악될 수 없는 그 무엇을 의미한다.50)
둘째, 존재 너머에 있는 ‘하나’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가 신성 (Godhead)과신(God)을구별하기이전에플로티노스역시알수없는 절대자와알수있는신을구분하였다.
에크하르트에게신성이영원한 잠재성(potentiality)으로서존재이전에신자체가지닌모든차이를가 지고있는상태에서아직이를전개하지않은상태라면, 플로티노스의 절대자, 곧‘하나’는존재너머에, 현실태너머에, 정신과사유의너머에 존재하는“정신과감각과생명너머의[완전한] 현실태”다.
‘하나’는“그 자신[존재]의장본인”이며, “모든의지이다.
그래서그에게는그의의지 보다앞선것이란아무것도없다.” 절대자인‘하나’는스스로존재하기 원하는바로그것이며, 모든필연성이다.
존재너머에있는‘하나’는자신 이뒤쫓아야할필연성이없기에절대적으로자유롭다는점에서자유의 원인이자“자유를선사하는자”다.
따라서‘하나’는존재너머에있으면 서 모든 세계를 빠짐없이 다스린다.51)
50) 윌리엄 랄프 잉에/조규홍 옮김, 뺷플로티노스의 신비철학뺸 (서울: 누멘, 2011), 515-518.
51) 앞의 책, 518-528.
셋째, 근원적으로무한하여시공간으로한정불가능한‘하나’다.
여 기서무한성은절대적충만함이다. 앎은시공간으로한정하는행위다. 무한을아는것, 곧무한을한정한다는것은불가능하다. 플로티노스의 ‘하나’에적용될무한성은시공간의차원을넘어서는것이다.
이런의미 에서‘하나’는모든곳에머무르지만, 어디에도존재하지않는다고생각 할 수 있다.52)
넷째, 최초의원인이자최종의목적으로서‘하나’다.
플로티노스의 ‘하나’는자신의절대성을결코포기하지않으면서자신에게전적으로 의존하는세상을창조한절대자다.
다른원인에의해생겨난것들은그것 을만든원리나존재안에머무르게된다.
이런원리아래에가장낮은 단계의존재자들은바로위의단계에그리고더높은단계에, 더나아가 가장높은단계에머무름으로써최초의원리까지나아간다. 그러나가장 높은단계의최초원리는자기위에아무것도존재하지않기에다른것 안에머무를수없다. 이최초의원인, 곧‘하나’는“‘하나’의흘러넘침”으로 세계를창조한다.
따라서‘하나’는모든존재단계에서현존하며모든 것을관통하는힘을가지고있다.
그러나플로티노스의‘하나’는절대자 와세계가서로필연적이라는헤겔식설명이아니라“완전한무의존성” (독립성)으로설명되어야한다.
플로티노스의사유에서는절대자가세 상에필연적이지만, 세상이절대자에게필연적이지않다.
말하자면‘하 나’, 곧선(the Good)은모든존재자가의존하고열망하며필요로하는 원리이지만, “선그자체로는아무것도결핍되어있지않다.”
마치신이 원인과결과로세상을창조한것이아니라자기의영광을위해창조한 것과 같은 원리다.53)
52) 앞의 책, 528-530.
53) 앞의 책, 530-535.
2. 하강과 상승의 신비적 합일
플로티노스는뺷엔네아데스뺸 IV, 8에서영혼이신적존재와하나가 되고, 영혼이육체에떨어져버리는“상승과하강의길”에관해언급한다.
플로티노스는영혼이육체와결합한나머지감각세계라는‘동굴’에갇혀 죽는비극에서벗어나기위해감각세계에서정신세계로향하는여정을 설명한다.
플로티노스는인간영혼이육체에갇히거나관여하지않는다 면, 세계영혼과함께“높은곳을걸으면서온세계를다스리게될것이다” 라고주장한다.
중요한것은영혼과육체의분리가아니라육체에대한 영혼의우위다.
플로티노스에의하면, 영혼은육체안에존재하지도육 체 아래에 놓이지도 않는다.
영혼의 역할은 더 높고 복된 관조로부터 몸을 끌어내리지도 않고 늘 이 우주를 운영한다.54)
54) Enn. IV 8, 1-2.
그러나‘하나’-정신-영혼-물질의위계적구조하에서인간영혼은한 편으로는물질의감옥에갇히지않고고무되어자신보다우위에있는 정신을바라보고사유하며, 다른한편으로는자신의자아나자기뒤를 따르는것을명령하고관리하고다스린다.
여기서개별영혼은자신이 생겨난그것을향해서되돌아감에있어지성적열망(desire)을사용한 다.
그러나 동시에 개별 영혼은 전체에서 떨어져 나와 각자 고유하게 존재하기위해분화하려한다.
플로티노스는이러한분화와갈라섬은 정신적인것을바라보지못하게한다고보았다.
그래서분화된영혼은 전체에서떨어져나온부분혹은개체가되어분리, 병약함, 부산함을 겪게된다고주장한다.
이렇게인간영혼은그‘타락’의결과, 자기육체 안에사로잡히고육체의감옥에갇혀있게됨으로써감각-지각의수준에 서만활동하게된다.
이는무덤이나동굴에갇혀있는것이라말할수 있다.
하지만인간영혼이정신을향해다시돌이킨다면, 그속박에서 벗어나해방되어‘상승하는것’이된다.
이러한해방과상승은상기혹은 회상의활동을통해존재들을관조함에서시작되는데, 그이유는개별 영혼들이타락후에도어느정도초월적인특성을늘지니고있기때문이 다.55)
영혼의하강과상승의구도에있어중요한특징은하강과상승의 가능성자체다.
“모든영혼은육체를향한하강하는성향과정신을향해 상승하는성향을가지고있다.”56)
다시말해인간개별영혼은언제든 육체의동굴에갇힐수있고, 언제든그동굴에서빠져나올수있는것이 다.
타락의능력도상승의능력도모두영혼에있으며, 이는구원을위한 상승의자기-초월능력이라표현할수있다.
플로티노스는인간의타락 에도불구하고여전히사라지지않고남아있는인간이가진상승의자기초월능력을시종강조한다.
그렇다면상승하는능력, 곧자기-초월능력 의중요한동력은무엇이며, 어디서발원하는것일까?
여기서플로티노 스의중요한문제가제기된다.
우리는 “어떻게 개별적 사물들을 다시 인식할수있으며, 어떻게의식을되찾고, 성찰하고, 합리적으로사유하 고, 우리몸을지각할수있는가?
다시말해우리는어떻게다시인간이 될수있는가?”57)
55) Enn. IV 8, 4.
56) Enn. IV 8, 8.
57) Pierre Hadot, Plotinus or The Simplicity of Vision, trans. Michael Chase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8), 64.
플로티노스에따르면, “정화(purifications), 덕(virtues), 질서(orderings) 는우리가선(the Good)으로향하는길로인도하고, 정신적인것을향하 여가는‘사다리발판’(rungs of the ladder)은우리가선에견고히뿌리내 리고 선을 향유하는 길로 우리를 인도한다.”58)
이처럼 플로티노스는 신비적합일의필수적선행조건으로서덕을제시한다.
만약덕의실천이 선행되지않는다면, 영혼의변화는없는것이다.
그렇다면영혼의변화 를불러오는덕은어디서발생하는가?
플로티노스에의하면, 덕은관조 (contemplation)에서나온다. 피에르아도는플로티노스의설명에나오 는관조와덕사이에서일어나는“영혼의여정”을설명한다.
일자의자비 로운운동으로상승한영혼은다시밑으로떨어지는데, 일상의삶과성찰 그리고의식으로돌아온그는자기내면에서, 삶에서자신을신과비슷하 게만드는덕을발견한다.
영혼은덕을실천함으로써다시정신에까지, 곧 순수한 영적 삶까지 자신을 상승시킨다.
이렇게 되면 덕은 지혜가 되고, 영혼이다시한번신비적합일을준비할수있는안정된상태에 이른다.
말하자면 영혼이 관조의 상태에서 밑으로 떨어졌을 때, 덕이 그영혼안에서다시활동하는것이다.
그러나인간을신에게안내하는 덕은 오로지 신과의 최초의 합일 이후에야 영혼 안에서 탄생한다.59)
58) Enn. IV 7, 36.
59) Pierre Hadot, Plotinus or The Simplicity of Vision, 68.
그렇다면신비적합일의무엇이영혼안에서덕을낳는것일까?
플로 티노스에게있어덕을탄생시키는최초원인은바로“지성의아름다움” 이다.
그리고지성의아름다움은신비적합일을통해서최초로주어진다.
지성의아름다움이주는기쁨을맛보기전에는영혼안에서덕이탄생할 수없다.
영혼은스스로충분히정화되지못했기에최초의신비적합일을 지속하지못한다.
그러나덕이탄생함으로써그덕이신비적합일을유지 하는것이다.
다시말해신적현존속에서신비적합일을경험한인간 안에서는자신의신적변화를위한열망(desire)이생긴다.
영혼이정신 안에있는선의빛, 곧아름다움의빛을보고사랑에빠져다시금합일하기 를열망하고, 이합일을위해덕을탄생시키는것이다. 60)
그런데플로티 노스에게덕을탄생시키는아름다움은곧선이다.
“선과아름다움은동 일하다.”61) 모든영혼이열망하는신비적합일에서선은사랑을불러일 으킨다.
하지만동시에“우리는모든영혼이열망하는선을향해상승해 야한다.”62)
60) Ibid., 68-69.
61) Enn. I 6, 6.
62) Enn. I 6, 7.
신비적합일에서영혼을향해하강하여‘하나’를향한사랑을 발생시키는선의아름다움과다시그선의아름다움이불러일으키는‘하 나’를향한상승의열망으로인한덕의실천은‘하나’와세계사이의하강하고상승하는사랑의역동이라말할수있다.
따라서이런사랑의역동이 플로티노스가 제시하는 에로스의 구원이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3. 에로스의 구원
플로티노스는에로스63)를아름다움(κάλος)과연관시킨다.
플로티 노스가전유한플라톤적에로스는아름다움과결합하기를열망하는영 혼안에서발생하는감정이다.
플라톤의에로스는아름다움의형상, 곧 이데아를최종적인목표로삼는다.
하지만플로티노스에게는아름다움 그자체가에로스의궁극적대상은아니다.
플로티노스의에로스가추구 하는 궁극적 대상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좋음’, 곧 선(the Good)이다.
이‘좋음’이“가장아름다운것이자첫번째아름다움”이며, 아름다움의 원천이자원리다.
플로티노스의아름다움은개체가형상에참여할때 깃드는것으로서, 여기서아름다움은“형상들의총체인신적정신”이 된다.
다시말해플로티노스에게아름다움은형상에의해결정되는것으 로서이형상이부여하는통일성이아름다움을가져다주는것이다.
이로 써아름다움의원천은‘하나’, 곧‘좋음’이라말할수있다.
존재론적위계 에서‘좋음’은가장상위에자리하고있는‘하나’(一者)와동일시되는데, 이‘좋음’의‘하나’가바로아름다움의원천이고원리이자궁극적아름다 움이며, 에로스의 최종적 대상이 된다.64)
63) 플로티노스는En. III 5, 50에서사랑, 곧에로스(Eros)를세가지로구분한다. 첫째, 육체적인것과는아무런관련없이아름다움을추구하는순수한에로스(καθαρός), 둘째, 불멸을향하는하나의길로서자손을낳는것을목적으로하여성적인관계 를 통해 아름다움에 대한 숭배를 구현하는 사랑이라 할 혼합된 에로스(μικτός), 셋째, 본성에 반하는 욕망으로서의 에로스(παρὰφύσιν)다. 이 에로스는 본성에 반한다는 점에서 앞의 두 에로스의 범주에서는 벗어난다. 플로티노스는 에로스 와관련한두가지전통, 곧에로스는천상의여신아프로디테의아들이자추종자 라는 전통과 플라톤의 뺷향연뺸에서 제시된 것처럼 에로스의 반신반인(daimonic) 의 본성을 주장하는 전통을 조화시켜 에로스에 관한 신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플로티노스는 마치 영혼이 지성과는 다르지만 그로부터 생성된 것처럼, 에로스 역시 그 존재의 원천인 영혼에 의존하지만 영혼의 외부에서 존재하는 실체로 이해한다. Dimitrios A. Vasilakis, Eros in Neoplatonism and Its Reception in Christian Philosophy: Exploring Love in Plotinus, Proclus and Dionysius the Areopatite (London: Bloomsbury Academic, 2022), 13-15.
64) 송유레, “신(神)을 향한 에로스 ― 플로티누스의 철학적 신비주의,” 「서양고전학 연구」 51 (2013): 77-79.
그렇다면‘좋음’은어떻게에로스를불러일으키는가?
플로티노스는 뺷엔네아데스뺸에서‘좋음’, ‘아름다움’, ‘에로스’의관계를상세히논하면 서, 아름다운 것 그 자체가 에로스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형상은 그 자체로아름다울지라도형상만으로는에로스를불러일으킬수없다고 주장한다.
플로티노스는아름다운것이에로스를불러일으키기위한 조건으로서‘좋음의빛’을이야기한다.
아름다운것은이‘좋음의빛’으로 조명되어야그것을보는자에게에로스를불러일으킨다.
여기서‘좋음의 빛’은아름다운것을아름다움으로드러내는조명의빛으로서‘좋음’은 사랑의원천이된다.
따라서“‘좋음의빛’은아름다운것을사랑의대상으 로만들어주고, 그것을바라보는영혼을사랑의주체로만들어준다는 점에서사랑의조건이자원인이며, 그빛의원천인‘좋음’은사랑의원천” 이라고 할 수 있다.65)
65) 앞의 논문, 79-80.
송유레는플로티노스가구체적으로설명하지않은‘좋음의빛’에 대해서피에르아도의‘카리스’(χάρις), 곧은총에대한설명을빌려이를 “‘좋음’의절대적무상성(無償性: gratuité)”으로부연설명한다.
피에르 아도는플로티노스에게있어‘좋음’이란“만물에어떤좋음을선사하는, 다시말해은총을베푸는넉넉한신”이라설명한다. 또한‘좋음’이란아무 런대가없이자신을무상으로내어주는방식으로우리에게현전한다.
송유레는이와같은‘좋음’의무상성을우아함, 곧부드러움과섬세함으로연결하고, 여기에생명이라는요소를추가함으로써‘좋음’을아름다 움으로설명한다. 생명을가진것이그렇지않은것보다사랑스럽고아름 다운것이다.
따라서아름다움은그자체로사랑스러울수없고, 다만 ‘좋음의빛’, 곧무상성, 우아함, 생명력을통해서사랑, 곧에로스를불러 일으켜야 한다.66)
그렇다면아름다움의원천인‘좋음’으로가는방법은무엇인가?
플 로티노스는‘좋음’에이르기위해필요한여러요소를제시한다. 이요소 들에는비유, 부정, ‘좋음’에서유래한것들에관한인식이있으며, “특정 한단계들”(anabasmoi tines)을통해“정화와덕과질서그리고정신계로 올라가서정착하여그곳의양식을만끽함”이있다.
특히이‘특정한단계 들’은플라톤의뺷향연뺸에등장하는“에로스의사다리”를말하는것으로 감각적아름다움으로부터시작하여상위의아름다움을상기시켜주는 역할을한다.
플로티노스에따르면, 감각적아름다움에머물지않고보 이지않는보다높은단계인정신적아름다움을볼수있으려면그리고 더나아가최고신의“위대한아름다움”(to mega kallos)을볼수있으려 면, 무엇보다먼저아름다운영혼이되어야한다.
플로티노스는“어떤 영혼도아름다워지지않고서아름다움(to kalon)을볼수없다.
누군가 신과아름다움을보려한다면, 실로먼저온통신을닮고온통아름답게 되도록 하라”고 말한다.67)
66) 앞의 논문, 81-83.
67) 앞의 논문, 85-87.
플로티노스가말하는에로스가가진중요한함의는‘닮음’이불러일 으키는아름다움의‘상향식’ 구원이다.
플로티노스의에로스는‘더높은’아름다움으로끊임없이이끄는힘이며, 무엇보다아름다움을볼수있도 록우리를아름답게만드는힘이다.
아름다운영혼이아름다움을발견하 며, 아름다움을발견하기위해서는아름다워져야한다.
왜냐하면닮음을 통해서닮은것을인식하기때문이다.
또다른중요한함의가있다면, 그것은덕의실천을통해서오는존재의변화가가져다주는구원의‘향유’ 다.
아름다움의구원을이루는길은선을향한덕의실천으로포장되어 있다.
‘하나’, 곧아름다움을향한에로스는선함과진리에대한사랑의 열망을불러일으키고덕을실천하게함으로써우리를아름답게하여 아름다움을 향유하도록 하는 수행적이고 미학적인 구원을 의미한다.
하지만아름다움의구원을도덕적실천정도로환원해서는안된다.
분명 덕 이전에 아름다움이 먼저 선의 빛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져야 한다.
신비적합일이선과아름다움의빛으로영혼안에닮음을향한열망을 낳고, 그것이덕으로주어지듯, 아름다움의구원은그최초의아름다움 인‘하나’와의신비적합일에서탄생한다.
결국인간은선을향해덕으로 포장된아름다움의길을걸으면서아름다움을닮아가고, 아름다움을 닮아간인간이다시스스로의아름다움, 세계의아름다움, 궁극적으로는 ‘하나’의아름다움의발견하고, 더나아가존재론적으로그것을취함으 로써 그 구원을 향유하는 것이다.
V. 결론: 수행-미학적 한국 신학을 향하여
오구라기조(小倉紀蔵)는한국사상사전체를이해하는중요한 요소중 하나로“조선적영성”을제시한다.
그가말한조선적영성이란한국 인의역사속에서분출되어온것으로서하늘과사람이같음을말하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영성이자 대립하는 것들이 회통하는 영성이 다.68)
이런조선적영성, 곧한국적영성의관점에서김상봉은오늘날 한국사회의병리적현상, 곧극단적개인주의, 타자혐오, 무관심, 특히 분열과대립만일삼는“한국민주주의위기의근저에영성의부재”가 놓여있다고주장한다.
김상봉은한국사회의분열과분리라는근본적인 문제가결국영성, 곧“내가전체와하나라는믿음”의부재, 특히타인의 고통에무관심하고자신의욕망에만몰두하는퇴행에있다는것을밝히 면서이렇게묻는다.
“이처럼나와세계가고통으로연결되어있지않은 데, 어떻게나와세계가하나라고말할수있겠는가?”69)
68) 오구라기조/이신철옮김, 뺷조선사상사―단군신화부터21세기거리의철학까지뺸 (서울: 도서출판 길, 2022), 20-21. 69) 김상봉, 뺷영성 없는 진보뺸 (서울: 온뜰, 2024), 11-13.
타인의고통을 나의고통으로받아들일수없는것, 나와세계가전체생명안에하나임을 받아들이지못하는것은이성의한계때문이다.
하지만나와전체생명을 하나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영성의 영역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분리와분열의문제와대결하는한국신학의가능성은바로이영성의 영역에서설명되는신비적합일의담론이다.
본 연구는 다석과 플로티노 스의 신비적 합일의 내용을 종합해 다음 두 가지를 우리 시대의 한국 신학을 위한 담론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그리움과자기비움의고난을통해그리스도가초월적으로 내재하는수행적그리스도론이다.
지극히거룩한‘하나’와유한한인간 사이의존재론적차이는인간에게그리움을불러일으키고, 결국‘하나’ 를향한‘그리움’을가지고그리스도의자리에곧게‘스도록’ 자기-비움과 고디(곧음)의수행에천착한인간영혼안에서‘한나신아들’인그리스도 가탄생하는것이다.
다석은신비적합일을통해주어진구원, 곧인간 영혼안에서얼생명으로태어나는‘한나신아들’인‘독생자’를‘그리스도 록’이라는초월적내재의그리스도론으로표현한다.
무엇보다다석의 독생자론과 고디대속론은 개인차원의 구원에 머물지않고, 민중의자발 적고난과비자발적고난모두에서이루어지는전체생명을위한도덕적 완성의구원으로구체화된다.
전체생명의자리에서모든고난은고디의 수행이다.
민중이라 할 씨알이 그리스도라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바로 고난의사건이다.
자기-비움의고난의사건, 곧나의고난혹은타자의 고난에참여함으로써나와그리스도가하나가되고, 나와세계가하나가 된다. 따라서고난의사건에참여하는자가예수처럼구원하는자가된 다.
정의로운자를통해이세계에정의가존재하듯, 고난당하는자를 통해 이 세계에 구원이 존재한다.
결국 다석의 그리움의 구원은 무와 공의‘하나’를그리워하여자기-비움의수행을통해서무아(無我)가되 는초월적신비적합일이이세계에서그리스도를현실화하는초월적 내재의구원이라말할수있다.
둘째, 에로스를통한덕의실천으로존재 론적변화를추구하는상승의미학적수행론이다.
신비적합일은아름다 움이불러일으킨에로스를통해서덕의실천으로나아가는구조를갖는 다.
이합일이보여주는에로스의구원은아름다움의대상을향한근원적 열망이추동하는사랑의구원이자아름다움으로태어난덕의실천으로 아름다운존재가됨으로써이루어지는미학적구원이다.
이런맥락에서 아름다움은 자신과 세계의 구원을 위한 상승의 힘이다.
다석과플로티노스모두신비적합일의구원에있어수행적측면 과 미학적 측면을 동시에 보여준다.
다만두사상가의신비적합일의 차이가있다면, 다석의그리움은인간과이세계안에서독생자가태어 나는하향식구원의수행적그리스도론으로, 플로티노스의에로스는 ‘하나’와합일하기위해이세계의아름다운것들을발판삼아높은차원 의아름다움으로고양하는상향식구원의미학적관조로귀결된다는 것이다.
다석과플로티노스의신비적합일이가져오는그리움과에로스의 구원은한국신학에어떤가능성을제시할수있을까?
다석의그리움의 구원이수행을통한그리스도의현실화를강조한다면, 플로티노스의 에로스의구원은선의아름다움을통해존재의변화를가져와다시그 아름다움을향유하는구원을강조한다.
따라서본연구는다석류영모와 플로티노스의신비적합일의구원에관한내용을종합하여수행-미학적 구원(Performative-aesthetical salvation)으로결론내린다.
분열과대립 으로인해전체생명의자리를상실한오늘날세계는나와세계를‘하나’ 안에서보고, 타자의고통을나의고통을받아들일수있는초월적영성의 담론을요청한다.
하지만그합일을이루고이세계안에서전체생명으로 현실화하기위해서는자기비움과영혼을고양시키는자기-초월의수행미학적힘을필요로한다.
다석과플로티노스는이힘을그리움과에로스 라주장한다. 신은그리움과에로스를통해이세계와하나가된다.
그리 움과에로스의신이이세계에보여주는가장아름다운형상은가시관을 쓴예수의십자가다.
십자가는자기비움의수행적동력과아름다움의 고양을불러일으키고, 자신안에서그리고이세계안에서소외로인한 고난에동참하도록이끈다.
이로써그리스도의현존, 곧양쪽으로갈라 진것을하나로만들고사람사이를가르는담을허물어“자기안에서 하나의새사람”70)을만드는그리스도의화해와평화의사역이완성되 는것이다.
70) 에베소서 2:15, 새번역.
이처럼다석과플로티노스의대화를통해보여준수행-미학 적구원은구원의내용을넘어그방법과동력까지제공한다는점에서 오늘날한국신학이열어갈수있는하나의새로운가능성이될수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뺷太極圖說뺸. 기조, 오구라/이신철옮김. 뺷조선사상사― 단군신화부터21세기거리의철학까지뺸. 서울: 도서출판 길, 2022. 김상봉. 뺷영성 없는 진보뺸. 서울: 온뜰, 2024. 김흡영. 뺷가온찍기: 다석유영모의글로벌한국신학서설뺸. 서울: 도서출판동연, 2016. 박만. “속죄론적십자가죽음이해에대한비판적논고.” 「한국조직신학논총」 39 (2014). 류영모/다석학회 엮음. 뺷다석 강의뺸. 서울: 교양인, 2017. ______/박영호 엮음. 뺷多夕 柳永模 어록뺸. 서울: 도서출판 두레, 2002. ______. 뺷多夕日誌뺸 1. 서울: 홍익재, 1990. ______. 뺷多夕日誌뺸 4. 서울: 홍익재, 1990. 박영호. 뺷다석 전기뺸. 서울: 교양인, 2012. 송유레. “신(神)을향한에로스― 플로티누스의철학적신비주의.” 「서양고전학연구」 51 (2013). 안규식. 뺷비움과숨: 한국적영성을위한다석류영모신학연구뺸. 서울: 도서출판동연, 2024. 안병무. 뺷민중신학을 말한다뺸. 안병무전집2. 서울: 도서출판 한길사, 1993. 유현주. “朱熹의「太極圖說」 해설의관점으로본21세기생명가치연구.” 「동양철학연 구」 109 (2022). 이정우. 뺷세계철학사 1 ― 지중해세계의 철학뺸. 서울: 도서출판 길, 2019. 잉에, 윌리엄 랄프/조규홍 옮김. 뺷플로티노스의 신비철학뺸. 서울: 누멘, 2011. 존스턴, 윌리엄/이봉우 옮김. 뺷신비신학: 사랑학뺸. 서울: 분도출판사, 2012. 쿠퍼, 존/김재영옮김. 뺷철학자들의신과성서의하나님뺸.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6. 퇴계이황편집/한형조독해. 뺷성학십도, 자기구원의가이드맵뺸. 성남: 한국학중앙연구 원, 2018. 풍우란/박성규 옮김. 뺷중국철학사뺸하. 서울: 까치, 1999. Hadot, Pierre. Plotinus or The Simplicity of Vision. trans. Michael Chase.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8. Plotinus. The Enneads. trans. George Boys and John M. Dillon, ed. by Lloyd P. Gerson.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9. Vasilakis, Dimitrios A. Eros in Neoplatonism and Its Reception in Christian Philosophy: Exploring Love in Plotinus, Proclus and Dionysius the Areopatite. London: Bloomsbury Academic, 2022. Victoria, Brian Daizen. Zen at War. Lanham: Rowman & Littlefield Publishers, Inc., 2006. Victoria, Brian Daizen. Zen War Stories. NewYork: RoutledgeCurzon, 2004.
<한글 초록>
그리움과 에로스의 구원 ― 다석 류영모와 플로티노스의 신비적 합일에 관한 신학적 고찰
본 논문은 갈수록 심각해지는 현대 사회의 분리와 대립의 문제를 극복 하기 위해 신과 세계 그리고 인간이 전체 생명 안에서 하나가 되는 친교 의 비전을 제시하는 한국 신학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이를 위해 본 논문 은 한국의 그리스도교 사상가인 다석 류영모(多夕 柳永模, 1890~1981) 와 3세기 헬레니즘 시대의 사상가인 플로티노스(Plotinus, 205~270)에 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신비적 합일을 비교 연구한다.
본 논문의 비 교 연구 대상은 신비적 합일의 대상인 ‘하나’와 ‘하나’를 향한 신비적 합 일의추동인 다석의 그리움과 플로티노스의 에로스(Ἔρως)다.
신비적합 일을 중심으로 두 사상가 사이에서 나타나는 공통점과 차이점은 본 논 문에서 수행-미학적 구원의 한국 신학이라는 내용으로 제시된다.
본 논 문에서 수행-미학적 구원은 자기 비움의 수행, 곧 고난에 참여함을 통해 인간 영혼 안에서 그리스도가 탄생하여 이 세계 안에서 그리스도가 현 실화되는 초월적 내재의 구원으로, 에로스가 안내하는 덕의 실천으로 존재론적 변화를 추구하는 상승의 미학적 구원으로 각각 제시된다.
이 로써 본 논문은 어떻게 나와 세계가 하나가 될 수 있으며, 나와 타자의 고통이하나가 될수 있는가를 묻는 질문에 답하기위해, 전체생명안에 서 나와 세계를 하나로보고, 나의고통과 타자의 고통이하나가 되는 자 기-초월의 수행-미학적 힘이 무엇인지를 제시한다.
‖ 주제어 ‖ 다석류영모, 플로티노스, 신비적합일, 그리움, 에로스, 한국신학, 수행-미학적 구원
Abstract
The Salvation of Longing and Eros: A Theological Reflection on the Mystical Unity of Daseok Ryu Young-Mo and Plotinus Ahn, Kyu-Sik. (Ph.D. Lecturer, Institute of Christianity and Korean Culture Yonsei University Seoul, Korea)
This paper explores the potential of Korean theology to offer a vision of communion in which God, the world, and human beings are united in the totality of life in order to overcome the growing problems of separation and opposition in contemporary society. To this end, this paper makes a comparative study of the mystical unity that is common to the Korean Christian thinker Daseok Ryu Young-mo(1890~1981) and the third-century Hellenistic thinker Plotinus(205~270). The object of comparative study in this paper is the One(or 一者), the object of mystical unity, and the drive of mystical unity toward the One, which is Daseok’s longing and Plotinus' eros(Ἔρως). The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between the two thinkers centered on mystical unity are presented in this paper as a Korean theology of performative-aesthetic salvation. In this paper, performative-aesthetic salvation is presented as transcendent immanent salvation, in which Christ is born in the human soul through the practice of self-emptying, or participation in suffering, and Christ is realized in this world, and ascending aesthetic salvation, which seeks ontological transformation through the practice of virtue guided by Eros. Thus, in order to answer the question of how I and the world can become one, and how my suffering and the suffering of others can become one, this paper proposes a performative-aesthetic power of self-transcendence that sees me and the world as one in the whole of life, and in which my suffering and the suffering of others become one.
Keywords : Daseok Ryu Young-Mo, Plotinus, mystical unity, longing, eros, Korean theology, performative-aesthetic salvation
투고접수일: 2024년 7월 27일 ∙ 심사(수정)일: 2024년 8월 24일 ∙ 게재확정일: 2024년 8월 26일
한국조직신학논총 제76집(2024년 9월)
'신학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찰스 피니의 부흥신학과 방법론에 대한 분석과 평가/유창형.칼빈대 (0) | 2024.11.12 |
---|---|
생태학적 정치신학에 관한 연구: 생태 위기 극복을 위한 그리스도인의 정치 참여/박성철.경희대 (0) | 2024.11.12 |
로마서 12장 6절 ‘προφητεια κατα την ἀναλογίαν της πίστεως’(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에 대한 조직신학적 연구/강응섭.예명대학원대 (0) | 2024.11.10 |
일반계시의 실제와 복음과의 관계성: 개혁주의적 관점에서/박승찬.웨스트민스트신학大 (0) | 2024.11.08 |
마가복음은 βίος인가? 헬렌 본드(H. K. Bond)의 The First Biography of Jesus에 대한 분석과 평가 /김선용 .독립연구자 (0) | 2024.1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