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보들레르가 삶을 영위했던 19세기 중반의 파리는 이미 중세이후로 지속 되어오던 신의 존재에 대한 관념이 흔들리기 시작한 사회였다. 사실 청교도 주의로 대표되는 개신교의 등장은 물질적 풍요를 신의 축복인양 여기게 했 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신에 대한 믿음은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띠게 되었 다. 물질적 풍요가 신의 축복이라는 개신교의 시각은 그 이전까지 서구 사 회를 지탱해오던 “신(Dieu)”과 “예수(Christ)”에 대한 믿음을 인간 자신이 일구어내는 물질적 풍요와 그 기반으로서의 인간 이성에 대한 믿음으로 방 향을 트는 계기를 만들었다. 다시 말해, 신에 대해 인간이 가지고 있던 전폭 적인 믿음이 인간 이성에 대한 믿음에 여지를 남겨두거나 심지어는 인간 이성에 대한 믿음으로 대체되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인간이 그에 고유한 이성 의 작용으로 자연을 굴복시키고 개발하여 인간세계를 진보시킨다는 믿음이 바로 그러한 사고의 예가 된다. 이런 믿음은 실제로 산업화를 촉진했고, 그 결과 인간세계는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편안한 곳으로 변모했다. 예를 들어, 기차의 발명은 인간생활의 리듬을 가속화했고, 건축 기술의 발달은 파리의 마천루를 변화시켰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인간 스스로 이루어 낸 결과물 로서의 안락함이었다. 결국 진보와 새로움에 대한 믿음, 문명과 개선가능성 (perfectibiliteˊ)에 대한 환상들이 19세기 순응주의자들(les conformistes)에게 거의 절대적인 가치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나 일각에서 새로움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보들레르1)는 정작 진보나 새로움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았다.
1) 앙리 메쇼닉은 20세기 초반의 아방가르드 운동이 보들레르가 모더니티 정의에서 사용했던 용어인 “덧없음(l’eˊpheˊmeˋre)”을 새로움과 연결지음으로 인해 보들레르를 오해했다고 아방가르드 이론을 비판한다. 뿐만 아니라 메쇼닉은 해롤드 로젠버그 (Harold Rosenberg)를 강한 어조로 비판하는데, 그 이유는 로젠버그가 보들레르를 새 로움의 시조로 옹립했기 때문이다. : H. MESCHONNIC, Moderniteˊ Moderniteˊ, Gallimard, Paris, 1988, p. 80.
사실 보들레르는 진보에 입각한 단선적 인 역사관에 부정적이었으며, 물질적 풍요를 뒷받침하는 인간의 이성 작용 에 회의적이었다. 보들레르에게 있어, 신이 부재하는 세계 속의 인간이라는 존재는 구원에 대한 일말의 가능성도 없이 끝없이 삶을 이어가야 하는 불쌍 한 존재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산업사회에서 소비되기 위해 존재 하는 상품들의 속성인 새로움은 그것이 기술의 진보를 담보로 한다는 점에 서 옹호될 수 없는 것이었다. 새로움이라는 사탕발림으로 세계가 진보하고 있다고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당대의 현실 속에서 보들레르는 인간에게 늘 비참한 현실만 있을 뿐, 어떠한 형태의 진보도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런 입장을 가진 보들레르가 보기에 물질적 풍요로움은 인간의 이성을 그 모태로 하는 진보나 새로움에 대한 헛된 믿음의 산물이었다. 이 물질적 풍 요로움을 등에 업고 산업사회에서 새로운 지배세력으로 등장한 것이 부르 주아지였는데, 보들레르는 물질적 진보로 이루어진 문명을 옹호하는 이 “비속한” 계급에 대해 늘 비판적이었다. 이처럼 부르주아지에 대한 보들레르의 경멸은 그들이 권력의 표면으로 부상하는 데 원동력으로 작용했던 이성주 의에 대한 비판과 그들이 이루어낸 사회의 정신적 기반이 되었던 청교도주 의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이성주의와 청교도주의에 대한 비판이라는 점에 주목할 때, 우리는 보들레 르와 한국 선불교 사이의 공통된 시각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이성주의 비판 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보들레르가 “정신(esprit)”을 옹호하기 위해 비판했던 “사고(penseˊe)”와 선불교가 “깨달음(eˊveil)”을 얻기 위해 타파해야 할 대상이 라고 규정했던 인간의 “합리적 지성작용(intellection rationnelle)” 모두가 같 은 흐름 속에 있다. 다음으로, 이성주의에 대한 비판은 데카르트 이래로 그것 을 뒷받침해온 이원론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청교도주의 비판에서 보이 는 이분법적 구조에 대한 비판은 신에 대한 믿음의 이분법적 구조를 비판하 는 대목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지점이 선불교, 특히 한국 선불교가 비판하 는 믿음에 대한 이분법적 구조와 맥을 같이하는 지점이 된다. 그러나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여지껏 진행되어온 보들레르 연구의 대부 분이 이원론을 비판하는 보들레르의 입장과는 달리 이원론에 입각한 것이 었음을 언급해야 할 필요가 있겠다. 요컨대, 이원론적 입장을 택한 연구자가 그의 입장에 부합하는 보들레르 이미지만을 취하는 바람에 그 입장에 벗어 나는 부분들을 버려야만 했고, 그 결과 입체적인 보들레르 연구가 불가능했 는데, 바로 이러한 사실이 지금까지의 보들레르 연구의 한계가 된다. 예를 들어, 그의 에로틱한 성향에 대한 분석에 초점을 맞춘 이론, 사회주의적 성 향에 초점을 맞춘 현실주의자(le reˊaliste)로서의 보들레르에 대한 이론, 또한 상징주의자, 탐미주의자, 무신론자 혹은 카톨릭 신자로서의 보들레르를 주 장하는 논의뿐 아니라, 모던한 예술가, 고전적인 예술가로서의 보들레르를 그리는 입장 모두가 단편적인 보들레르의 이미지에 불과하다. 더 나아가, 보 들레르를 반동주의자로 보는 장-폴 사르트르나 로만 야콥슨, 끌로드 레비스 트로스같은 이들이나, 보들레르를 성인으로 다루는 이브 본푸아와 그의 학 파 및 보들레르를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로 논하는 미국의 네오-막스주의자인 프레데릭 제임슨에 이르기까지, 보들레르를 해석해 내고자하는 이 모든 다양한 시각은 이원론적 사고에서 보자면 서로 위배되어 양립불가능 한 것이 되고 만다. 이에 대해, 한국 선불교가 제시하는 “둘인 동시에 둘이 아님을 역설하는 불이론(不二論)”은 우선 보들레르 이미지의 다양성이 서로 대치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이 드러나는 여러 양상들로 읽어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특히 보들레르 예술론에서 보이는 역설2)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 있어서는 불이론이 매우 유용한 설명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 다.
2) 이와 관련해서는 보들레르 예술론의 근본을 이루는 그의 모더니티 정의를 예로 들 어볼 수 있겠다. 보들레르는 모더니티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모더니티, 그것은 일시적이고 덧없으며 우연한 것으로서 예술의 절반을 이루는 것, 그 나머지 절반은 영원하고 불변한 것.” ; Oeuvres Compleˋtes II. texte eˊtabli et preˊsenteˊ par Claude Pichois, Paris, Pleˊiade, Éditions Gallimard, 1975-1976, Le peintre de la vie moderne , p. 695.
서로 달라 보이지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주장하는 불이론적 관점에서는 서로 상반되는 것들이 공존함에 따라 생겨나는 역설이란 애초부터 불가능 하기 때문이다. 다시 본래의 논의로 돌아가서, 이 글에서 필자는 위에서 제기된 보들레르 와 한국 선불교의 불이론 사이의 두 가지 공통된 시각들 가운데 믿음의 이 분법적 체계에 대한 비판에만 논점을 맞추고자 한다. 청교도주의에 대한 보 들레르의 비판을 살펴보자면, 믿음의 대상으로서의 신과 그 신에 의한 구원 을 부인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믿음의 대상과 그 대상에 의한 구원을 부인 하고 자신 속에서 스스로 구원의 길을 여는, 따라서 그 자신을 구원의 주체 인 동시에 대상으로 보는 보들레르의 입장이 필자에게는 동아시아 선불교, 그 중에서도 특히 한국 선불교의 논의와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신과 이성 을 부정하고 자기 자신을 구원의 주체인 동시에 대상으로 삼는 보들레르의 입장은 지눌의 “돈오점수론(頓悟漸修論)”이나 성철의 “돈오돈수론(頓悟頓 修論)” 모두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불이론과 같은 흐름에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3)
3) 1980년대부터 한국 불교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소위 돈점논쟁의 언어들이 무엇이었 든 간에, 그것은 오히려 이후 지눌과 성철을 따르는 이들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며, 지눌이나 성철 모두가 불이론에 충실했다고 박성배는 말한다. 이에 대해서는 박성 배, Buddhist Faith and Sudden Enlightenment,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1983 ; 깨달 음과 깨침, 윤원철 역, 예문서원, 2002, pp. 16-31을 참고하라. 또한 지눌의 “돈오점 수론”과 불이론에 대해서는, 비록 그의 논의가 박성배에 의해 비판받고 있긴 하지만, R. Buswell, Jr.의 “Chinul’s Alternative Vision of Kanwha Son and Its Implication for Sudden Awakening/Sudden Cultivation”, Bozosasang, No. 4, 1990 과 The Korean approach to Zen: The collected works of Chinul, Trans. with an introd. by Robert E. Buswell Jr., Honolulu, University of Hawaii, 1983를 참고하라. 그리고 성철의 “돈오돈수론”과 불이론에 대해서는 윤원철, “The Non-Duality Doctrine of Songch’ol’s Radical Subitisme : A comparison with Shen-hsui, Shen-hui, and Tao-i”, 백련불교논집, 1996, pp. 447-472를 참고하라.
물론 보들레르가 선불교, 그 중에서도 한국의 선불교를 알고 있었을 리가 만무하지만, 필자는 위에서 기술된 유사성을 바탕으로 하 여 한국 선불교의 불이론을 보들레르의 예술론에 대한 논의의 틀로 삼으려 한다. 그러나 한국 선불교의 불이론 논의 전체와 보들레르 예술론 전반을 다 다루는 것은 이 한 편의 논문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일이므로, 이 글에서 는 보들레르의 예술론 가운데 주요 개념인 “댄디”와 “예술가” 개념을 불이 론에 의거하여 살펴보는 것으로만 논의를 한정하고자 한다.
1.1. 청교도주의의 믿음과 한국 선불교(禪佛敎)의 믿음
보들레르에게 신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으며, 신의 부재로 인해 특 권을 잃게 된 시인은 실존의 나락으로 추락한 채 보통의 사람들처럼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을 살아내야만 하는 존재가 되었다.4)
4)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논의는 R. Chambers, “« Je » dans les Tableaux parisiens de Baudelaire”, Nineteenth Century French Studies, Vol. IX, no. 1&2, fall winter 1980-1981. pp. 59-68을 참고하라.
이제 시인은 신을 통해 서가 아니라 스스로, 그리고 직접 진실에 대면해야만 하는 존재가 되어 버 렸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신과 믿음에 대한 보들레르의 독특한 시각이 잘 드 러나는데, 당시 산업사회의 정신적 기반인 청교도주의에 대한 거부가 바로 그것이다. 기독교 종교개혁가인 루터와 칼뱅의 논의에서 신에 대한 믿음이란 전지 전능한 신이 은총으로 인간에게 내리는 선물일 뿐, 인간이 노력해서 갖게 되는 게 아니다. 이처럼 믿음을 신의 선물이라고 보는 개신 기독교의 시각 을 불교에서는 “타력신앙(他力信仰)”이라고 부른다.
구원이 전적으로 외부 에서 온다고 믿는 신앙이라는 뜻이다. 구원이 전적으로 외부의 대상, 즉 신 에게 귀속되는 청교도주의에는 이미 이원론적 구도, 즉 믿음의 대상으로서 의 신의 존재와 그 믿음을 행하는 인간의 존재가 함축되어 있다. 하지만 청교도주의에서의 믿음과는 달리, 보들레르는 인간이 스스로 진실 에 대면하는 믿음을 강조한다. 보들레르는 신에게 버림받은 시인, 즉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시인이 그가 속해 있는 현실 속에서 진실을 찾아야만 한다고 말한다. 신의 부재를 깨닫는 순간 진실 또한 신의 세계에서 인간의 세계로 떨어져 “바로 여기(ici et maintenant)”, 우리 삶의 현실 속에, 더 나아가 그 것을 깨닫는 우리 안에 있게 된다는 것이다.5)
5) 이런 논의에 대해서는 M. Covin, L’homme de la rue : essai sur la poeˊtique baudelairienne, L’harmattan, 2000, pp. 87-93을 참고하라.
이런 입장에서 보자면, 보들 레르가 말하는 바의 믿음은 오히려 “자력신앙(自力信仰)”에 해당하는데, 바 로 이러한 점이 보들레르와 한국 선불교를 잇는 지점이 된다. 왜냐하면, 한 국 선불교에서 말하는 믿음이란 “자기 자신의 마음이라는 몸(體)이 일으키 는 자연스러운 몸짓(用)으로 외부의 무엇을 향한 것도, 외부의 무엇으로부터 오는 것도 아니”6)기 때문이다.
6) 박성배, 앞의 책(2002), p. 118.
따라서 보들레르와 한국 선불교가 말하는 믿 음은 양자 공히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 는 변화를 깨닫는 것이 중요해진다. 보들레르가 시인에게 끝없이 거리를 떠 돌며 타자와의 합일을 통해 자아와 타자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을 경험하 도록 종용하는 것과 선승들이 선수행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관찰하도록 하 는 것 모두가 이에 해당한다.
유일신(唯一神) 종교에서 믿음이 “무엇에 대한 신앙”으로 주객이 분명한 이원론적 구도를 가지고 있다면, 한국 선불교에서의 믿음은 불이적(不二的) 인 체용(體用)의 구도를 바탕으로 삼는다는 차이가 있다. 믿음이라고 해서 꼭 바깥의 어떤 대상을 신앙한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결과, 한국 선불교에서 말하는 종교적 신앙이란 “무엇에 대한 신앙”이라는 이원론적 관 념을 벗어나게 된다. 그것을 보다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 한국 선불교는 체 와 용이 둘이 아니라는 “체용불이(體用不二)”의 불이론을 정련한다. “체용 불이”의 논의는 원래 불이적인, 즉 모든 분별을 여읜 깨달음의 체험을 설명 하기 위해 동아시아 불교인들이 사용했던 것으로, 체용은 언뜻 보기에는 별 개인 듯 보이는 체와 용의 두 면이 실제로는 불가분의 불이적 관계에 있다 는 것을 말하고자 고안된 것이다. 이렇듯 불이론에 입각하여 선수행론을 집대성한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지눌이다.7)
7) 이 부분에 관해서는 R. Buswell Jr., 앞의 글(1990)을 참고하라.
지눌(1158-1210)은 중국 선불교 전통에서 경시되어왔던 불교 경전에 대한 공부를 재해석하여 그것에 선수행과 동일한 가치를 부여하기 에 이른다. 더 나아가 지눌은 선수행을 통한 깨달음과 그를 뒤따르는 자비 의 실천이라는 이중적인 수행론을 주장하며, 지눌의 수행론은 삼라만상에 내재되어 있는 불변성(immutabiliteˊ)과 상대성(relativiteˊ)의 공존을 인정하기 에 이른다. 불변성과 상대성이 공존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은 곧 성(聖)과 속(俗) 이 다르지 않음을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 결과 궁극적인 진실(veˊriteˊ ultime)이 인습적인 진실(veˊriteˊ convetionnelle) 속에 이미 있다는 것을 뜻한 다. 이것이 바로 초월적 내재(immanence transcendante)가 뜻하는 바이다. 불이론에 충실한 지눌의 가르침을 따르자면, 선수행을 통한 깨달음과 그를 뒤따르는 자비의 실천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며, 선수행과 점진적 수행으로 서의 경전공부의 병행은 당연한 것이 된다. 깨달음 없는 경전공부는 진실을 구하는 이를 타성에 젖게 하기 쉽고, 꾸준한 경전공부 없이는 깨달음을 역 동적인 상태로 붙잡아 둘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실천적 자비가 없는 깨달 음은 순수하게 이론적 상태에 머물 뿐이다. 결국, 지눌은 자신의 본성에 대 한 깨달음과 자비의 실천을 통한 점진적 수행을 통해서만 완전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서로 다르면서 다르지 않음“을 강조하는 불이론에 충실한 지눌의 수행론은 한국 선불교를 동아시아 다른 나라의 선불교, 즉 중국 선불교나 일본 선불교와 다른 성격을 가진 것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불이론을 더욱 근본적인 차원에서 살피려는 불교학자 박성배에게 는 지눌의 불이론도 그 근원적인 모습에 도달한 것은 아니다. 이제 믿음과 닦음 또한 다르지 않음을 주장하는 박성배의 불이론을 따라가 보자.
1.2. “체용불이(體用不二)”로서의 불이론(不二論)
우리는 앞에서 체용이란 모든 이분법적 분별을 넘어선 체험을 일컫는다 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체”와 “용”은 무엇인가? 박성배는 그의 책, 깨달음과 깨침에서 체용을 “몸”과 “몸짓”이라는 말로 바꾸어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몸이 움직여 일을 하며 드러나는 것이 몸짓이다. 그러므로 생 명이 있는 몸이라면 반드시 몸짓이 나온다. 우리가 보는 것은 몸짓뿐이다. 그러나 몸짓이 몸과 별개로 벌어지고 존재할 수는 없다. 몸이 있으면 반드시 몸짓이 있고, 몸짓이 있으면 그것은 반드시 몸으로부터 나온다. 따라서 몸과 몸짓은 일단 구별할 수 있지만 원래 하나이다.”8)
8) 박성배, 앞의 책, p. 101.
이에 덧붙여, 저자는 이황의 예를 들어 체용론이 성리학자들에 의해서도 즐겨 사용되었다고 말 한다. 수학이나 논리학이 사람의 생각을 정리해 주듯이, 자기의 눈에 보이는 것을 안 보이는 것과 연결시켜 주는 지적 훈련, 혹은 전혀 별개의 이질적인 것처럼 보이는 어떤 두 개의 사실이 알고 보면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존재라 는 것을 깨닫게 해 주는 사색의 훈련이 바로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체용론이 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성리학자들의 체용론이 어떤 교육적 노력을 위해 사용됨으로 인해 체용론이 원래 가지고 있던 종교적 성격이 증발됨으 로써 변질이 일어나게 되었고, 그 결과 말장난으로 치부되기에 이르렀다고 본다.9)
9) 이 점에 관해서는 박성배의 앞의 책, pp. 13-14를 참고하라.
그리하여, 박성배는 체용론이 잃어버린 종교적 성격을 다시 되찾으 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되고, 그 결과 한국 선불교에서의 믿음에 대한 논의 를 통해 종교적 성격을 바탕으로 한 “체용불이” 사상을 설명하기에 이른다.
그는 깨달음을 그 성격에 따라 “깨달음(connaissance profonde)”과 “깨침 (eˊveil subit)”으로 나눈다. 우선 “깨달음”에 대한 그의 정의를 살펴보자. “체 용불이” 사상이 사색의 도구로 전락하게 되면 그 본연의 종교적 성격을 결 여하게 되고, 따라서 “깨달음”은 성리학자들의 경우에서처럼 “지적 세계에 서 이전에 몰랐던 것에 대해 이제 좀 알게 되었음”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만다.
반면, 믿음이 곧 닦음이라는 종교적 성격을 바탕으로 하는 “체용불이” 사상에 입각하면, 이때의 깨달음은 합리적 지성작용(intellection rationnelle) 이 지배하는 세계 자체가 와해되어 버리는 경지를 일컫는 것이 된다.
요컨 대, “깨달음”이 일종의 보태는 행위에 해당한다면, “깨침”은 무언가를 보탤 자리 자체가 없어짐을 의미한다. 달리 말하면, “깨달음”에서는 여전히 깨닫는 주체 ― 환영적 자아로서의 주체 ― 가 남아있는 데 반해, “깨침”에서는 그것을 느끼는 주체 자체가 파괴되고 만다는 것이다. 선불교에서의 “깨침”은 본래 연기적 존재인 인간이 연기성(緣起性), 즉 세상 만물의 공성(空性/le vide)을 알지 못한 채 비연기적으로 살다가 그 삶 이 송두리째 깨지면서 다시 본래의 연기적인 삶으로 되살아나는 것을 의미 한다.
따라서 “깨침”이란 이분법이 지배하는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 귀속되어 긍정과 부정, 파괴와 건설의 공존을 불가능한 것으로 여기던 인간에게 그 세계의 깨짐을 경험하도록 하여 긍정과 부정, 파괴와 건설이 공존하는 세계인 연기의 세계를 직접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다.
연기의 세계를 경험하고 나면, 인간은 “환영적 분별(discernement illusoire)”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렇게 환영적 분별에서 놓여나게 된 인간은 사물을 그것에 습관적으로 부 여되었던 정체성으로부터 떼어놓게 되고 그 결과 모든 사물들은 무차별적 인 동일성을 획득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하나”이면서 “여럿”이고 “여럿” 이면서 “하나”인 연기의 세계에서 이질적인 것들이 공존할 수 있다는 말이 의미하는 바이며, “깨침”의 결과이다.
이제 필자는 박성배가 제시하는 “깨달음”과 “깨침”이라는 개념을 따라 보들레르 예술론 중 예술가와 관련된 두 개념, “댄디”와 “예술가”를 살펴보 려 한다. “깨달음”과 “깨침”이 깨닫는 주체의 문제와 결부된다는 것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깨달음”과 “깨침”이 보들레르의 “댄디”와 “예술가”에게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다 음의 과제라 하겠다.
그러나 “깨달음”과 “깨침”으로 보들레르의 “댄디”와 “예술가” 개념을 짚 어보기에 앞서, 보들레르가 “댄디” 개념을 끌어들이게 되는 맥락을 우선적 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국 선불교에서 “자력신앙(自力信仰)”의 입장, 즉 이분법을 벗어난 “체용불이” 사상이라는 시각에서 볼 때, 합리적 지성에 입각한 인간의 사고는 한낱 환영적 분별에 근거를 둔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 유사한 입장에서 보들레르 또한 진실의 가치를 갖는 진정한 미적 경험은 서구의 합리적 사유의 전통을 벗어날 때에만 가능하다고 본다.
그리하여 보들레르는 그의 글, 이교도 학파(l’eˊcole païenne) 에서 전통적인 미 개념이 교육에 의해 부과된 합리적 지성작용에 의거한다고 비판하고 자신만의 고유한 미 개념을 제시하기에 이른다.10)
10) 보들레르의 고유한 미 개념에 대해서는 이후 자연주의와 청교도주의에 대한 보들레 르의 비판을 다루는 부분에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이런 시각에서 보자면, 진 보를 가능하게 하여 물질적 풍요를 이룩하는 인간의 이성과 물질적 풍요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끔 만드는 부르주아지의 자연에 대한 인식, 그리고 물질적 풍요가 신의 축복의 징표라고 주장하는 청교도주의적 사고 모두가 보들레르에게는 비판의 대상이 된다. 게다가, 물질적 풍요와 청교도주의에 힘입어 산업사회의 지배계층으로 이미 자리매김해버린 부르주아지의 천박 함 또한 보아 넘기기 어려운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이제 부르주아지 부상의 경제적․도덕적 기반이 되는 자연주의와 청교도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보들 레르는 “댄디” 개념을 도입한다.
2. 댄디(dandy)
보들레르는 댄디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부유하고 빈둥거리며 모든 것에 흥미를 잃은 자, 그래서 행복의 뒤를 쫓는 것 말고는 아무런 할 일이 없 는 자. 그는 부유함 속에서 자라나 어린 시절부터 다른 이들의 복종에 익숙 해져 있으며, 우아함 외에 다른 일거리가 없는 이 사람은 언제나, 어떤 때에 나 독특하고 완전히 독자적인 외관을 향유할 것이다.”11) 댄디에 대한 이런 정의로부터 우리는 다음의 함의를 끌어낼 수 있다. 우선, 보들레르는 댄디가 되기 위한 우선적 필수 조건으로 부유함을 들고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댄디가 사유에만 전념하여 미에 대한 이념을 가꾸어나가기 위해서는 우선 적으로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이런 여가를 갖기 위해서는 삶을 영위하기 위한 목적으로 노동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덧붙여, “댄디가 데카당스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영웅적 행위(heˊroïsme)의 최후의 발현”12)이기 위해 서는 귀족이 향유했던 예술적 감각이 필요한데, 이 귀족적 취향이 댄디가 되기 위한 나머지 하나의 필수적 조건이 된다.
11) “l’homme riche, oisif, et qui, même blaseˊ, n’a pas d’autre occupation que de courir à la piste du bonheur ; l’homme eˊleveˊ dans le luxe et accoutumeˊ deˋs sa jeunesse à l’obeˊissance des autres hommes, celui enfin qui n’a pas d’autre profession que l’eˊleˊgance, jouira toujours, dans tous les temps, d’une physionomie distincte, tout à fait à part.” ; Œuvres Compleˋtes II., Le peintre de la vie moderne , “Le Dandy”, p. 709.
12) “le dandysme est le dernier eˊclat d’heˊroïsme dans les deˊcadences.” ; 같은글, p. 711.
보들레르가 댄디에 부여한 이러한 특징적 요소의 기저에는 당시 모던 사회(socieˊteˊ moderne)를 구성하 고 있던 두 축에 대한 반동이 깔려 있는데, 이는 반-자연주의(antinaturalisme)와 반-청교도주의(anti-protestantisme)이다.
2.1. 반-자연주의(anti-naturalisme)와 반-청교도주의 (anti-protestantisme)
우선 반-자연주의에 대해 살펴보자. 보들레르에 있어 자연에 대한 혐오는 차가움에 대한 열광(culte de la froideur)으로 이어진다. 이런 입장은 아마도 산업혁명으로 인한 기계 출현의 영향 때문인 듯하다. 기계라는 놀라운 발명 품에 대해 동경과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던 동시대 다른 지식인들처럼 아마 보들레르도 이러한 흐름에 휩쓸렸던 것이리라. 또한, 당대 사회 하층민들의 비참한 현실에 대한 직시 또한 보들레르를 자연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비판 적 입장으로 내몰았음에 틀림없다. 보들레르가 혐오하는 자연은 생물학적 삶이다. 그는 생명의 잉태로 대물 림되는 생명의 영속성(perpeˊtuiteˊ)13)을 견딜 수 없어 했다. 그런 까닭에 보통 의 인간이 다산을 염원하는 데 반해, 보들레르는 다작을 기피한다. 게다가 그의 시작의 결과물인 시는 그것이 인간의 몸이 아니라 정신(esprit)의 산물 이라는 점에 의해서만 인간이 생산해낸 다른 산물들보다 더욱 생생할 수 있 다.14)
13) A. Compagnon은 보들레르에 있어서의 영원성을 두 가지로 구분한다. 그 하나는 “l’eˊterniteˊ”로, 그것은 무시간적인 영원성, 즉 일종의 상승의 논리로 이해될 수 있을, 불변성를 체득한 그 순간에 해당한다. 반면, 나머지 하나는 “la perpeˊtuiteˊ”인데, 이는 신의 부재로 인해 구원의 가능성을 빼앗긴 우리 인간을 땅으로 짓누르는, 말하자면 수평적 움직임으로 간주될 수 있을 어떤 것이다. 꽁빠뇽은 보들레르의 “la perpeˊtuiteˊ” 를 설명하는 가운데, 이 고통스러운 세상에 끊임없이 다시 태어나야 하는 인간의 운명을 이야기하며 그것을 “동일한 것으로의 영원 회귀(un eˊternel retour du même)”, 즉 일종의 천형으로 묘사한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논의를 위해서는 A. Compagnon, Baudelaire devant l’innombrable, Presse de l’Universiteˊ de Paris-Sorbonne, 2003, p. 91-93을 참고하라.
14) “Ce qui est creˊeˊ par l’esprit est plus vivant que la matieˋre.” : “[인간의] 정신에 의해 창조된 것은 물질보다 더욱 생생하다.” ; Œuvres Compleˋtes I., Fuseˊes , p. 649.
이를 통해 우리는 보들레르가 평생에 걸쳐 해왔던 작업이 자신의 생 식불능성(infeˊconditeˊ)을 입증하려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생식불능성 은 당시 보들레르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에서 볼 수 있던 부동성(immobiliteˊ) 혹은 무생물의 특성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생물학적 삶이나 몸에 반대되 는 정신의 이미지는 주로 금속이나 광물과 연관되는데, 무생물적 이미지로 보이기 위해서는 빛, 차가움, 투명성, 생식불능 같은 무생물의 특성이 필요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들레르는 가장 빛나는 금속을 자신의 정신의 현현 으로 여기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보들레르의 자연에 대한 혐오는 차가움과 결합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보들레르는 자연을 우리 모두에 공통된 어떤 것으로 여긴다. 모든 생명체는 공통적으로 먹고, 자고, 짝짓기를 한다. 이런 견지에서 보자 면, 자연은 귀하고 섬세한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이 된다. 따라서 자연은 보들 레르에게 혐오의 대상이 되고 마는 것이다. 자연이 되지 않기 위해서, 자연 적인 것을 끝없이 거부하기 위해서, 보들레르는 스스로를 감독하여 자신의 몸으로부터 자연적인 모든 것을 떼어 낸다. 두꺼운 옷으로 신체를 감싸고 인공적인 것들로 자신의 동물적 욕망을 숨긴다. 보들레르가 인공적인 것에 열광하고 화장을 예찬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그러나, 열광의 대상이 되는 인공적인 것에 인간 노동의 산물 모두가 해 당되는 것은 아니다. 보들레르가 말하는 인공적인 것은 이윤을 추구하지 않 는 무상의 것이어야 한다. 이런 시각에서 보자면, 청교도주의에 대한 보들레 르의 혐오는 바로 저속한 경제제도와 합리성에 입각한 청교도 윤리 때문인 것이다.15) 앎의 대상을 신으로부터 세계로 옮기게 된 인간은 이제 인간 고 유의 이성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인간 이성에 기반을 둔 기술의 발달은 인간이 자연보다 우수한 존재라는 신념을 낳았고, 이 신 념은 진보에 대한 믿음으로 이어졌다. 기술의 진보는 끝없는 경제적 이윤을 가능하게 했고, 이는 경제에서의 진보를 보증하는 것이었다. 더 나아가 청교 도주의는 이러한 이윤추구를 신이 주신 소명으로 합리화하기까지 하였다. 이에 대해 보들레르는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진보에 대한 신념은 게으른 사람들, 즉 벨기에 인들의 주의주장이다. 이는 자신의 할 일을 하는 데 이웃 들에게 의지하는 개인을 가리킨다. 개인의 내부에서 그리고 개인 자신에 의 해서만이 (진정한, 즉 정신적인) 진보가 있을 수 있겠다.”16)
15) 청교도 윤리를 비판하는 보들레르의 이런 관점은 Fuseˊe 와 Morale du joujou 의 결 론부분에서 잘 드러난다.
16) “La croyance au progreˋs est une doctrine de paresseux, une doctrine de Belges. C’est l’individu qui compte sur ses voisins pour faire sa besogne. Il ne peut y avoir de progreˋs (vrai, c’est-aˋ-dire moral) que dans l’individu et par l’individu lui-meˆme.” ; Œuvres Compleˋtes I., Mon coeur mis aˋ nu , p. 681.
보들레르가 보 기에 청교도주의자들의 문제는 우선 그들이 합리적인 지성작용이 만들어내 는 환영적인 분별에 의거한다는 점에 있다. 게다가 실증주의에 천착한 그들은 지나치게 현실적이고, 물질에 집착한 나머지 정신의 작용인 시적인 방법 들을 알지도 허용하지도 않는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인해 보들레르는 청교도 윤리를 비판하게 된다. 벌거 벗은 내 마음(Mon coeur mis aˉ nu) 에서 보들레르는 다음과 같이 쓴다.
“상 거래는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러므로 수치스럽다.”17) 이런 행위를 하는 이들 또한 혐오의 대상이 된다. “모든 상인의 정신은 완전히 오염되어 있다. [...] 상거래는 악마적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이기주의의 형태 중 하나로서 가장 저속하며 가장 비천한 것이기에.”18)
이에 덧붙여, 보들레르는 청교도주의자 들이 도덕과 미를 연결 짓는 18세기의 잘못된 개념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에 서도 그들을 비판한다.
“청교도주의 나라들은 교양 있는 사람의 행복에 필 수불가결한 두 요소인 여성에 대한 달콤한 수작과 종교적 경건함을 결여하 고 있다.”19)
보들레르에게 미란 앎과도 도덕과도 무관한 자율적인 것이다. 그리하여 보들레르는 합리적 이성작용의 원리가 되는 동일성의 원리를 벗 어나 개별성을 그 특성으로 하는 진정한 미를 제시한다.20)
17) “le commerce est naturel, donc il est infaˆme.” ; 같은 글, p. 703.
18) 같은 글, p. 704.
19) “Les pays protestants manquent de deux eˊleˊments indispensables au bonheur d’un homme bien eˊleveˊ, la galanterie et la deˊvotion.”; Œuvres Compleˋtes I., Fuseˊes , p. 661.
20) 보들레르는 서구의 전통적인 미가 지성을 담보로 하여 철학과 종교를 포함하는 “일 반적인” 미, 즉 앎에 불과한 것이라고 본다. 보들레르가 보기에 전통적인 미학은 실제로 아주 오랫동안 감성(sensibiliteˊ)을 이성작용의 일부로 치부해왔다. 하지만 우 리가 이런 “일반적인” 미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다 하더라도 이러한 성격의 미를 진정한 미라고 간주할 수는 없다고 보들레르는 주장한다. 적어도 예술이나 미와 관 련하여, 인간 사유활동이 해야 할 일은 철학이나 종교를 최상위의 판단기관인 것으 로 제시하여 사람들에게 그것을 미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선택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에 대한 대안으로 보들레르는 기존의 모든 체계, 즉 서구 사유 전통의 바탕인 이성주의를 완전히 벗어날 것을 주장한다. “기독교적이고 철학적인 이전 사회가 했던 노력들을 부인하는 것, 그것은 바로 자살이며, [또한] 개선하려는 힘과 방법들을 거부하는 것이다.”(Œuvres Compleˋtes II,, L’École païenne , p. 47) 이처럼, 이성주의에 기반을 둔 “일반적인” 미에 반대하는 보들레르는 이제 그 자신의 미 개념인 “제한적인(restreint)” 미를 제시한다. 사실 보들레르가 이미지들을 “미”로 규 정할 수 있게끔 했던 기존의 속성들, 즉 미적 확실성을 담보하는 모든 이성적 수단을 거부함에 따라 보들레르의 미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하여 보들레르의 미는 즉흥적이고 알려지지 않은 것(inconnu)이 된다.(Covin, 2000, p. 19-25) 보들레르가 “일반적인” 미를 비판함으로써 진정으로 하고자 했던 바는 그의 “제한적인” 미 개념 으로 미에 대한 지성적인 이론을 대체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부르주아 사회는 여전히 실증적 가치에 사로잡혀 이성주의에 입 각한 예술관을 고수했을 뿐 아니라, 예술작품을 이윤추구의 수단으로 여기 는 지경에 이르게 되고 만다. 보들레르는 이제 이성주의와 청교도주의로 무 장한 부르주아 사회를 비판하기 위해 댄디에게 “무용성(inutiliteˊ)”을 사용할 것을 명한다.
2.2. 거리두기 : 스스로 대상(objet) 되기
보들레르가 댄디에게 주문하는 무용성의 정체는 괴상함(extravagance)이 다. 댄디가 즐겨하는 괴상한 차림새는 모든 이의 주목을 끌거나 신문지면의 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사회체제 전복이라는 불순한 의도를 가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부르주아지들은 댄디를 혁명주의자보다는 훨씬 무해 한 존재로 여겼다. 하지만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댄디의 괴상한 차림새는 사실 “무용성”을 빌미로 하여 청교도주의 미덕의 하나인 “유용성”을 비판 하기 위한 기제로 작용한다. 뿐만 아니라, 이 괴상함은 보들레르의 미의 기 준이 되는 기이함(bizarrerie)이나 독특함(particulariteˊ)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 되는 것으로서, 우리가 앞서 살펴보았던 자연에 대한 혐오 가운데 “공통된 것이 대한 거부”와도 맞닿는다. 보들레르가 무용성과 괴상함으로 무장한 댄 디의 임무로 여겼던 것은 바로 부르주아 사회 비판이다. 우선 보들레르가 말하는 괴상함 혹은 기이함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보 들레르는 사물을 “새롭게 보(voir tout en nouveauteˊ)”21)도록 요청한다.
21) Œuvres Compleˋtes II., Le peintre de la vie moderne , “L’artiste, homme du monde, hommes des foules et Enfant” p. 692.
일 상의 기저에 숨겨진 기이함을 발견하기 위해 예술가는 그의 일상을 달리 보아야 하고, 일상을 달리 본다 함은 “도취한 어린아이(enfant ivre)”나 “회복 기 환자(convalescent)”가 그러하듯 일상을 난생 처음으로 보듯이 관찰해야 한다는 것이다.22) 하지만, 일상을 난생 처음 보듯이 본다는 것은 무엇을 뜻 하는가? 그것은 어떤 형상을 그것에 부여된 일상적인 컨텍스트, 즉 부르디 외의 용어로 “아비투스(habitus)”에서 떼어놓는 것을 말한다. 일상이 부과하 는 정체성(identiteˊ)에서 벗어난 이 형상은 그것을 어떤 것으로 규정하는 성 질을 상실함에 따라 다른 것들과의 차별성을 갖지 않게 된다. 그 형상들 사 이에는 “무차별적 동일성(identiteˊ indiffeˊrenciable)”만이 있을 뿐이다. 이때 의 동일성은 “닮음” 혹은 “같음”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이 형상들은 서로 서로 다르게 보이긴 하지만, 그 형상들이 이미 그것들에 부여된 어법이나 정체성을 벗어남으로 인해 그것들 간의 다름 혹은 차이를 입증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무차별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이다.23)
22) 이 부분에 관해 보들레르는 C. 기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 “je vous priais tout à l’heure de consideˊrer M. G. comme un eˊternel convalescent pour compleˊter votre conception, prenez-le aussi pour un homme-enfant, pour un homme posseˊdant à chaque minute le geˊnie de l’enfance, c’est-à-dire un geˊnie pour lequel aucun aspect de la vie n’est eˊmousseˊ.”; “나는 조금 전 여러분에게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M. G를 영원한 회복기 환자로 여겨 주기를 부탁했습니다. 그를 또한 매순간 어린아이의 특성, 즉 삶의 어떠한 측면에 대해서도 호기심의 끈을 놓지 않는 그런 특성을 지닌 어른-아이로 여겨주셨으면 합니다.” : 같은 글.
23) 이에 대한 논의는 M Covin, L’homme de la rue : essai sur la poeˊtique baudelairienne, L’harmattan, 2000과 P. Ricoeur의 Soi-meˆme comme un autre, Seuil, Paris, 1990을 참고하라.
보들레르가 말하는, “새롭 게 보기”로 깨닫게 된 형상의 “무차별적 동일성”은 선불교의 입장에서 보자 면, 분별하는 망념(妄念)이 없는 “깨침”의 상태에 해당한다. 다시 말해, 무차 별하게 동일한 모든 형상은 나와 타자의 형상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결국 “나”라는 존재로 하여금 나와 타자를 가르는 이분법, 즉 환영적인 분별을 벗어나도록 한다는 것이다. 환영적인 분별을 벗어나는 깨달음이 곧 “깨침” 이라는 박성배의 주장을 따르자면, 보들레르가 주장하는 일상의 기저에 있 는 기이함과의 조우(遭遇) 또한 ”깨침“에 해당한다. 그렇지만, 댄디는 스스로 볼거리가 되는 데에만 그칠 뿐, 다시 말해 스스로 하나의 대상이 되어 군중을 끌어들일 뿐 군중과 하나가 되지는 않는다. 계속해서 볼거리가 되어 군중의 주의를 끌기 위해서 댄디는 끊임없이 새로 운 이미지를 만들어내야 하고, 그 결과 그는 자신 속에 침잠하게 된다. 말하 자면, 댄디는 동일성이 규제하는 세계가 부과하는 차이(diffeˊrence)을 추구하 는 자인 것이다. 따라서 비록 댄디가 스스로를 대상화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자기애에 근거한 것24)이므로 결국 자아(moi)와 타자(Autrui)를 구별하는 이 원론을 벗어나는 데는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보들레르는 다음과 같 이 쓴다. “우롱하기 위해서를 제외하고 군중에게 말을 거는 댄디를 당신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25) 더욱이, 보들레르에 대한 사르트르의 해석을 따르자면 창조적인 예술가상 으로서의 댄디는 진정 자기애에 사로잡힌 인물로 남게 된다. 사실 사르트르 는 보들레르를 진정한 창조적 예술가로 보며 그의 자의식적 측면을 높이 산 다. 사르트르는 보들레르가 스스로를 대상화하여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그가 타인들 앞에 대상으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자기 자신 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였다고 본다. “그[보들레르]는 보고 있는 자신을 주시 한다. 그는 주시하고 있는 자신을 보기 위해 주시한다.”26)
24) 보들레르는 댄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쓴다. “그는 거울 앞에서 살고, 자야한다.” ; Œuvres Compleˋtes I., Mon coeur mis à nu , p. 679.
25) 같은 글, p. 681.
26) “Il se regarde voir ; il regarde pour se voir regarder” ; J.-P. Sartre, Baudelaire, Gallimard, 1994, p. 23.
사르트르가 보기 에 보들레르가 주체인 동시에 대상으로 존재하는 이중적 입장을 취하는 것 은 결국 자기 자신에 의한 자신의 궁극적 소유(possession finale du Moi par Moi)를 성취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이때는 시선이 중요한 문제로 작용하게 된다. 왜냐하면 시선이야말로 거리를 둔 소유의 문제와 결 부되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에 의해 소유되도록 내버려두면서 보들레르는 스스로 하나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동시에 보들레르는 그 자신이 하나의 대상으로 존재함을 본다.
여기서, 사르트르의 고유한 해석이 개입되는데, 하 나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보들레르가 그의 자유의지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매우 창조적이라는 것이다.
또한, 대상으로서의 존재는 세상과의 중립적인 관계로 인해 실존적인 존재(existence)가 아닌 하나의 있음(eˆtre)에 머물 뿐임 으로, 다시 실존적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 대상, 즉 대상화된 자신 을 자유의지로써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논의 속에서 사르트 르의 보들레르는 자신을 회수하기 위해 자신만의 고독 속에 머물러야 한다. 스스로를 대상으로 만든 다음 그것을 회수하는 작업은 결국 자신을 타자로 부터 철저히 소외시키는 일일 뿐이다. 이와 같은 사르트르의 주장은 보들레르의 예술론과는 크게 거리가 있다.
사르트르의 예술가는 보들레르가 주장하는 예술가상, 즉 “채워지지 않는 무 아로서의 자아(moi insatiable du non-moi)”27)와 크게 어긋나기 때문이다.
27) “le moi insatiable du non-moi”의 번역에 대해서는 이론이 있을 수 있겠다. 따라서 필자 가 “non-moi”를 “비아(非我)”가 아닌 “무아(無我)”라고 번역하는 근거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필자가 보기에 “non-moi”를 “비아”라고 해석하려는 시각은 매 우 이원론적이다. 이런 시각은 자아(moi)와 타자(Autrui)의 구분을 상정하고 있기 때 문이다. 필자는 타자와 합일을 이루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 플라뇌르-예술가가 초월 적 내재, 즉 불이에 대해 눈뜨게 되고, 이것이 바로 “깨침”에 해당한다고 본다. 불이 를 경험한 플라뇌르-예술가에게는 더 이상 동일성의 원리에 입각한 “자아”와 “타자” 사이의 구분이 있을 수 없으며, 이런 구분은 환영적 분별에 근거한 것으로서 타파의 대상이 된다. 탈-로고스 중심주의적 입장에서 예술가 주체를 다루려는 필자는 선불 교의 “무아” 개념과 보들레르의 주체 개념을 비교해서 다룬 바 있다. 이에 대해서는 조희원(H-W. CHO), Le theˋme du flaˆneur chez Baudelaire et le dualisme non-dualiste du Son bouddhisme coreˊen, Paris I 대학 박사학위논문, 2008, pp. 223-252를 참고하라.
설령 관찰을 통해 일상의 기저에 있는 기이함을 발견함으로써 무차별적인 동일성을 깨달았다고 하더라도, 댄디는 여전히 타자로부터의 거리두기, 혹 은 주/객 분리에 집착하는 단계, 요컨대 환영적인 분별을 벗어던지지 못하는 단계에 머물 뿐이다. 바로 이 점에서 댄디는 “깨침”이 아닌 “깨달음”의 차 원에 갇히게 되고 만다. 이것이 댄디가 보들레르의 예술가상에 부합할 수 없는 이유가 된다.
3. 예술가 : 플라뇌르-예술가(flâneur-artiste)
어떤 계기에 의해 하나의 사물에 고유한 것으로 여겨졌던 정체성을 그 사 물로부터 떼어내게 될 때, 우리는 인간들 사이의 차이뿐 아니라 인간을 포 함한 모든 사물들 사이의 차이를 규정하고 자아와 타자를 갈라놓던 이원론으 로부터 놓여나게 된다. 선불교 용어로 “깨침”에 해당하는 이 경험은, 보들레 르에게서는 플라뇌르(flaˆneur)가 도시의 거리에서 경험하는 “군중과의 합일” 에 의해 실현된다. 이런 경험을 통해 환영적 분별, 즉 합리적 지성작용을 넘 어선 무차별적 동일성의 세계로 들어서게 되면, 모든 것들이 그 고유한 정체 성을 상실하게 되고 결국 모든 것들 사이에 역전가능성(reˊversibiliteˊ)28)이 성 립하게 된다.
28) 역전가능성에 관한 논의에 대해서는 J. Pellegrin, Reˊversibiliteˊ de Baudelaire, Lille III 대학 박사학위논문, 1988을 참고하라.
모든 것들 사이의 역전이 가능해진다는 것은 자아/타자의 구별 도 사라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예술가 개인이 타자로서의 군중과 합 일을 이루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된다. 이제, 불이론적 입장에서 예 술가와 군중, 그리고 예술과 삶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자.
3.1. 플라뇌르-예술가(flâneur-artiste) : 채워지지 않는 무아로서의 자 아(moi insatiable du non-moi)
보들레르에 있어 자아 개념은 합리적 지성작용의 주체나 그 대상이 아닐 뿐더러 감정의 주체나 대상 또한 아니다.29)
29)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논의를 위해서는 조희원, 앞의 글, 같은 부분을 참고하라. 이 논문에서 합리적 지성작용의 주체에 대한 비판은 J.-P. 사르트르의 보들레르 읽 기, 즉 Baudelaire, Gallimard, Paris, 1947 에 대한 비판을 통해 이루어지고, 감정의 주체 로서의 보들레르 자아에 대한 비판은 R. 챔버스의 글, “‘Je’ dans les Tableaux Parisiens de Baudelaire”, Nineteenth-Century French Studies, Vol. IX., no. 1&2, Fall-Winter 1980-1981 에 대한 해석을 통해 행해진다.
“새롭게 보기”를 통해 무차별적 동일성의 세계로 들어서게 된 플라뇌르-예술가는 “자아”와 “타자” 사이의 역전가능성에 자신을 내맡긴다. 이 때 플라뇌르-예술가 개인의 자아는 타자 로서의 군중 속에서 일순간일지언정 완전히 용해되는데, 보들레르는 꽁스땅 뗑 기(Constantin Guys)에 대한 논의에서 이 부분을 예술가의 이상적인 상 황으로 이야기하며 그것을 “채워지지 않는 무아로서의 자아”30)라 명명한다. 타자 속 자아의 용해를 성적 결합으로 읽어내는 보들레르에게 신과 종교와 예술이 매음31)인 것처럼 예술가 또한 “성스러운 매음(prostitution sacreˊe)” 을 일삼는 자이다. 매음이 순간적인 합일이며 또한 불특정 다수에게 늘 개 방되어 있다는 점에서, 자아와 타자의 합일은 플라뇌르-예술가로 하여금 스 스로를 다수에 끊임없이 개방하도록 만든다. 그리하여 매춘부들이 고객을 만나기 위해 길거리를 서성이듯이, 플라뇌르-예술가는 도시의 거리를 서성 여야만 한다. 실제로 보들레르는 그의 글 현대적 삶의 화가 (1863)에서 “완벽한 플라 뇌르”로서의 화가 혹은 “고독한 산책자”로서의 화가의 목적이 “군중과 결 혼하는” 것이라고 언명한 바 있다.32)
30) Œuvres Compleˋtes II., Le peintre de la vie moderne , “L’artiste, homme du monde, hommes des foules et Enfant”, p. 692.
31) 보들레르는 그의 글 내면일기 의 여러 곳에서 신과 종교, 그리고 예술을 매음이라 칭한다.
32) Œuvres Compleˋtes II., Le peintre de la vie moderne , “L’artiste, homme du monde, hommes des foules et Enfant”, p. 691.
여기서 말하는 화가와 군중의 결혼은 물론 신체적 층위가 아닌 정신적 층위의 결합이다. 이 결혼이 비록 한시적 인 결합, 즉 매음과 유사한 성격을 가질지라도, 정신이 행하는 이 성스러운 매음은 결국 단 한순간만이라도 플라뇌르-예술가가 타자에게 최대한을 줄 것을 요구한다. 이것이 바로 화가가 타자 속에서 완전히 용해되어 사라지는 경지, 즉 타자에 대한 최대한의 개방을 의미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자면, 다수에 대한 최대한의 개방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자아” 개념을 벗어던지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하면, 자신을 타자 속에 내던짐으로써 얻게 되는 합일의 순간 바로 “깨침” 의 순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깨침”의 차원에서 볼 때, 자아를 희생함으로써 “타자 속의 자아”를 경험하게 되는 그 순간의 경험이야말로 보들레르가 말하는 “채워지지 않는 무아로서의 자아”를 경험하는 것이요, 더 나아가 환 영적인 분별을 벗어던지게 되는 바로 그 계기가 되는 것이다. 이런 경지에 이르게 되면, 예술가가 군중에게 행하는 최대한의 개방으로서의 “채워지지 않는 무아로서의 자아” 경험은 곧 관람자를 형성하는 군중과의 의사소통을 매개하는 하나의 장으로 자리 잡기에 이른다. “채워지지 않는 무아로서의 자아”에 대한 경험을 통해 불이론을 체득하게 된 예술가에게 현재는 영원에 다름 아니며 상대성 또한 불변성과 다르지 않기에, 깨친 예술가와 군중 사 이의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보들레르는 예술이 삶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보들레르의 예술 가 ― 시인 혹은 화가 ― 는 낭만주의 예술가와는 달리 특별한 능력을 가진 천재가 아니다. 보들레르에게 있어 예술가는 유한한 자들과 스스로를 구별 하지 않는 자이다. 보들레르의 예술가가 특별한 구석이 있다면 그것은 “끊 임없이 샘솟는 그의 독특함(sa particulariteˊ ineˊpuisable)”의 징표들에 의해 드러나는 것일 뿐이다.33)
33)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논의를 위해서는 Covin의 앞의 책, pp. 91-95를 참고하라.
결국 보들레르의 예술가는 우리가 길에서 마주치 는 보통의 사람과 다르지 않다. 보들레르의 시인은 이름도 얼굴도 없는, 정 체성을 상실한 자에 불과하지만, 정체성을 벗어던짐으로써 그가 “깨치”게 된 불이는 그로 하여금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말할 수 있게 해준다. 합리적인 지성주의를 벗어난, 즉 불이를 체득한 화가의 예술은 이제 기존 의 미술과는 다르다. 자신에 부여되었던 일상의 정체성을 벗어던진 인간은 누구나 무차별적으로 동일하다. 범상한 인간과는 다른, 특별한 재능을 부여 받은 천재로 여겨졌던 예술가 또한 그들에게 부여되었던 어법을 벗어던짐 으로써 길에서 부딪히게 되는 누구와도 구별되지 않는 하나의 존재에 불과 한 것이 되었다. 자아와 타자 사이의 구별을 벗어던진 인간은 이제 사물과 도 구별 불가능하게 된다. 인간과 사물 사이에는 외관상의 차이만 있을 뿐 이다. 이는 불이에 대한 체득에 근거하는데, 그 까닭은 “깨침”으로 인해 인 간과 사물을 포함한 모든 것들의 본래적 차이를 보증해주는 이성적 시스템 이 완전히 와해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모든 것은 역전가능하며, 역전가능성 에 근거한 예술은 이성적 시스템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기 때문에 자율적 이 된다. 이제 이 자율적 예술의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보자.
3.2. 자비(慈悲/compassion)의 실천
한국 선불교에서 “깨침”을 얻은 이는 그 “깨침”을 실행해야 하는데, 그 또한 불이의 차원에서이다. 즉, “깨침”과 그 “깨침”의 실행이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깨침”의 실행에는 명상과 같은 내면적 수행뿐 아니라 공동체 차원 에서의 여러 활동이 포함된다. 사실 불이를 깨친 이는 자아와 타자가 다르 지 않음 또한 깨친 이이다. 따라서 남의 고통이 곧 나의 고통이며 남의 즐거 움이 곧 나의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깨침”으로부터 모든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보살의 서원이 나오게 된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깨치도록 돕 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보살행이다. 이 세상의 만물이 공(空)이라는 “깨 침”을 얻었으되 이 세상의 모든 중생이 다 해탈의 경지에 이를 때까지 이들 을 보살피고 가르치기 위해 세상을 떠나 열반에 들 수 없는 것이 바로 보살 의 운명이며, 이것이 바로 보살행, 즉 자비의 실천이다. 그렇다면, “채워지지 않는 무아로서의 자아”를 경험하고 자아/타자의 경 계가 해체됨을 “깨친” 보들레르의 화가는 어떻게 자비를 실천하는가? 그에 대해 알아보자. “채워지지 않는 무아로서의 자아”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 우 리는 불이를 체득한 플라뇌르-예술가가 역전가능성을 통해 한 순간일 뿐이 라도 타자의 지위를 점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제로 이 같은 논의 는 보들레르 자신의 글을 통해서도 드러나는데, 보들레르는 매음과 다르지 않은 “사랑”이 희생적인 성격을 가진 것이라고 말한다.
“사랑이란 무엇인 가? 자신에게서 벗어나려는 욕구. [...]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을 희생하고 매 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랑은 매음이다.”34)
34) “Qu‘est-ce que l’amour? Le besoin de sortir de soi. [...] Adorer, c’est se sacrifier et se prostituer. Aussi tout amour est-il prostitution.” ; Œuvres Compleˋtes I., Mon coeur mis aˋ nu , p. 692.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플라뇌르-예술가는 타자와 희생적 성격을 가진 자리바꿈을 함으로써 매음 을 하는 것이고, 그와 군중의 관계에서 보자면, 그가 희생자의 자리를 기꺼 이 맡아주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보들레르에게 “희생과 기원(祈 願)은 교환의 최상의 방식이며 상징”35)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플라뇌르-예 술가가 군중과 이루는 합일은 희생적인 자리바꿈에 해당한다. 이런 희생적 인 자리바꿈을 통해 플라뇌르-예술가는 군중에게 일상적으로 주어진 정체 성이 환영적인 분별의 산물에 불과함을 일깨워줌으로써 “깨침”의 기회를 주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플라뇌르-예술가는 희생적인 자리바꿈만으로 군중에게 “깨침”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 여전히 환영적인 분별의 세계에 집착하는 군중을 위해 보들레르는 정신적인 동시에 물질적인 방식을 통해 불이를 알리려 하는 데,36) 그것이 바로 플라뇌르-예술가의 상상력(imagination)으로 만들어진 예 술작품이다.
35) “le sacrifice et le voeu sont les formules supreˆmes et les symboles de l’eˊchange” ; Œuvres Compleˋtes I., Fuseˊes , p. 658.
36) 플라뇌르-예술가가 군중에게 불이를 알리는 방식은 계몽주의적 교육과는 다르다. 그가 이성주의, 불교식 용어로 환영적 분별을 벗어난 탈시스템적 의사소통을 시도 한다는 점에서, 이런 의사소통 방식은 오히려 선승들이 제자들이 깨치도록 하기 위 해 사용하는 공안(公案)과 유사하다. 왜냐하면, 인간의 언어는 그것이 가진 이원론적 성격으로 인해 내재적 초월성을 표현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지만 인간끼리의 의사 소통을 위한 다른 방법도 없기 때문에, 선사들이 창안해낸 대안적 언어가 바로 공안 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공안과 유사한 보들레르의 소통방식이 그의 독특한 시작(詩 作)과 미술론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본다.
플라뇌르-예술가는 낮동안의 어슬렁거림을 통해 찾아낸 일상의 기이한 이미지들을 가지고 혼자만의 공간인 작업실로 돌아온다. 물론 “깨 침”을 얻은 그에게 혼자란 다수와 함께하는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지만, 그 가 그의 정신의 능력인 상상력을 온전히 발휘하기 위해서는 홀로 있음이 강 조될 수밖에 없다. 고독 속으로 침잠하는 동시에 합리적 지성작용으로부터 벗어나면서, 플라뇌르-예술가는 일상에서 조우하게 된 진실한 이미지들에 시적인 영감을 덧붙인다. 이것이 바로 상상력의 임무이다. 그러나 보들레르 에게 있어 상상력은 늘 물질적인 것을 통해 발현된다. 군중이 그것을 알아 볼 수 있기 위해서는 각 예술이 가진 매체의 특성이 무시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외견상 군중과 다를 바 없는 플라뇌르-예술가는 대도시를 어슬렁거리며 조우한, 일상의 기저에 있는 기이한 이미지들을 합리적 이성작용이 아닌 상 상력을 통해 물질로 발현함으로써 작품을 만들어낸다. 이런 특성을 가진 플 라뇌르-예술가의 작품은 과거의 영광이나 영웅의 행적을 묘사하는 공식적 인 공공예술과는 구별된다. 플라뇌르-예술가의 작품은 관람자로 하여금 물 질적인 것 ― 순간성, 상대성 ― 속에서 정신적인 것 ― 영원성, 불변성 ― 을 보도록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들레르는 순수예술과 철학 적인 예술을 구분하기를 원했고, 순수예술을 옹호했다. 따라서 보들레르가 말하는 순수예술이란 자기 충족적인 닫힌 예술이 아니라 관람자와의 소통 의 장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예술가와 군중과의 관계에서도 뚜렷이 나타 나고 있다. 자비의 실천이라는 점에 주목해 볼 때, 플라뇌르-예술가가 작품 활동에 임하기 위해 취했던 고독은 더 이상 고독이 아니다. 우선 그가 취했던 고독 이 자기애의 발현이나 자신의 내면으로의 침잠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에 서 그러하고, 또한 그 고독이 군중과의 소통을 염두에 두고 취해졌다는 점 에서도 우리가 떠올리는 일반적인 고독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플라뇌르-예 술가의 고독(solitude)은 오히려 연대(solidariteˊ)와 닮아있다. 이미 불이를 깨 친 플라뇌르-예술가에게 고독과 연대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니며, 고독이 연 대로 뚜렷하게 역전되는 지점은 바로 자비의 실천을 통해서이다.
4. 맺으며
자비의 실천이라는 지점에서 우리는 댄디와 예술가의 차이를 명확히 알 수 있다. 불이를 경험했다고 할지라도 댄디는 단지 냉소어린 얼굴로 세상을 관조할 뿐이며, 여전히 환영적 자아 속에 침잠해 있다. 바로 이 점으로 미루 어 불이에 대한 댄디의 경험은 “깨침”이 아니라 “깨달음”이라 볼 수 있다.
댄디는 “깨침”에 장애가 되는 앎의 지평을 넓혔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 플라뇌르-예술가는 자비를 실천함으로써 “깨침”의 길을 밟아가고 있 다. 사실 자비의 실천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보들레르는 “깨달은 자”에 불 과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보들레르는 댄디가 되기 위한 조건으로 노동하지 않아도 사치스런 삶을 영위할 정도의 재산과 고상 한 취향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질 높은 교육을 언급한 바 있는데, 정작 보들레르 본인은 이 두 조건 가운데 단 하나도 만족시키지 못했으며, 그로 인해 고통스러워했기 때문이다. 보들레르는 댄디로 남고 싶었던 것일까? 그러나 그의 고유한 시작(詩作)이나 예술론을 볼 때, 보들레르가 정작 세 상에 알리려고 했던 것은 “깨침”으로서의 불이이다. 환영적 분별을 넘어서 서 무차별적인 동일성을 가진 이미지들로서의 세계를 재현하는 것이 그의 미술론의 주된 논지였다는 점을 간과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보들레르가 그 의 예술론을 통해 주장하고자 했던 것이 결국 자아/타자의 이분법을 벗어난 세계,37) 즉 불이에 대한 “깨침”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37) 바따이유도 보들레르의 자아/타자에 대해 비슷한 견해를 보인 바 있다. “대상과 주 체의 융합(la fusion de l’objet et le sujet)”이 바로 그것이다. 바따이유는 “대상과 주체의 융합은 상호 영향 하에서 각각의 부분을 넘어서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이에 대한 논의는 G. Bataille, La litteˊrature et le mal, «Baudelaire», Éditions Gallimard, Collection «Folio/Essais», Paris, p. 34를 참고하라.
보들레르가 그의 예술론에서 예술가들의 소명이 불이를 알려 모든 중생을 환영적인 분 별에서 놓여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면, 이는 바로 보살 행에 해당하는 것이다. 불이를 깨친 보들레르에게 자아와 타자가 다름이 없 는 것처럼, “깨침”을 체득한 예술가들에 있어 또한 고독과 연대는 다른 것 이 아니다. 예술가와 그의 작품은 이미 군중들에게 불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화의 장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보들레르는 군중과 고독 사이의 무차별 적인 동일함을 말하기에 이른다. “군중, 고독, 능동적이고 왕성한 시인에게 그것은 동의어이다. 자신의 고독을 풍요롭게 할 줄 모르는 이는 분주한 군중 속에서 혼자가 될 줄도 모른다.”38)
38) “Multitude, solitude: termes eˊgaux et convertibles pour le poeˋte actif et feˊconde. Qui ne sait pas peupler sa solitude, ne sait pas non plus être seul dans une foule affaireˊe.” ; Œuvres Compleˋtes I., Le Spleen de Paris , XII, p. 291.
실제로 보들레르가 댄디로 남길 바랐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가 무엇을 원했던 간에, 보들레르가 대도시에서 이름 없는 누군가로 살아 가고 있는 이들, 즉 군중에게 불이를 전하려 했다면, 보들레르는 보살행을 행하고 있는 플라뇌르-예술가이다. 보들레르는 태생적으로 댄디가 아니라 플라뇌르-예술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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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reˊsumeˊ Le dandy et l’artiste chez Baudelaire : dans la perspective du dualisme non-dualiste du Son bouddhisme coreˊen
CHO Hee-Won
Cette eˊtude a pour but d’aborder la notion de dandy et d’artiste chez Baudelaire dans la perspective du dualisme non-dualiste de Son bouddhisme coreˊen. D’apreˋs Park Sung-Bae, bouddhologue coreˊen, qui distingue de la connaissance profonde l’eˊveil subit, la vraie foi est d’obtenir l’eˊveil subit. Car ce dernier correspond aˋ l’expeˊrience de la non-dualiteˊ, celle de la deˊstruction du “moi”, alors que la connaissance profonde ne fait qu’ajouter une conception aˋ ce qui est deˊjaˋ eˊtabli en tant que discernement illusoire. De ce point de vue, la connaissance profonde est un obstacle sur le chemin menant aˋ l’eˊveil subit, parce qu’elle renvoie aˋ un incessant discernement du “moi” illusoire d’avec l’Autrui. Partant de cette ideˊe de l’eˊveil subit, nous avons remis en cause le fait que le dandy ne se dissipe jamais dans les autres, tant qu’il se referme dans sa solitude, dans son “moi” illusoire, pour garder sa consience de la creˊativiteˊ. Il garde toujours ses distances par rapport aux autres, meˆme lorsqu’il avoue se complaire aˋ une espeˋce d’osmose avec le plus grand nombre. Neˊanmoins, si le dandysme dont Baudelaire parle peut se reˊsumer aˋ une sorte de culte du “moi-meˆme”, cela pose probleˋme au niveau de la participation. Autrement dit, du fait que la concentration du “moi-meˆme” signifie qu’elle garde bien la distance aˋ l’eˊgard des autres, la distance empeˆche le dandy de participer aux autres. Pour cette raison, le dandy correspond aˋ la connaissance profonde. Pourtant, comme tout est censeˊ eˆtre reˊversible dans le monde baudelairien, le dandysme portant sur le travail du “moi” va eˆtre renverseˊ et se dissiper dans la foule. Cela signifie que l’homme ayant eu l’eˊveil subit correspond au flaˆneur-artiste. Etant donneˊ que le flaˆneur eˊveilleˊ prend la place de la victime et connait la douleur causeˊe par la substitution avec les autres, ce flaˆneur-artiste peut se caracteˊriser par ce que l’on appelle le “Bodhisattva”. Dans cette perspective, c’est par la compassion que le flaˆneur-artiste se met aˋ la place sacrificielle, bien qu’il sache que tout est illusoire. Il est donc chez le flaˆneur-artiste que se produit la reˊversibiliteˊ entre la solitude et le solidaire. Voilaˋ ce que signifie le dualisme non-dualiste dans la notion de flaˆneur-artiste.
주 제 어: 보들레르, 댄디, 예술가, 한국선불교의 불이론, 깨달음, 깨침 Bandelaire, dandy, artiste, dualisme non-dualiste du Son bonddhisme, connaissance profonde, eˊ veil subit
원고 접수일: 2008년 10월 10일 심사 완료일: 2008년 11월 27일 게재 확정일: 2008년 12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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