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문학이야기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의 󰡔충의(忠義)󰡕론 -‘충’을 둘러싼 군신 간의 삼각구도, 그 비극의 실체를 중심으로-/송현순.우석대

* 目 次

1. 서론

2. 선행연구 검토

3. 이타쿠라 슈리(板倉修理)의 지옥 현실 및 전작과의 연계성

4. 마에지마 린에몬(前島林右衛門)의 자유선언

5. 다나카 우자에몬(田中宇左衛門)의 온정주의와 비극의 심화

6. 결론

1. 서론

아쿠타가와의 역사소설은 모리 오가이(森鷗外)의 역사소설과 자주 비교가 된 다.

모리 오가이의 역사소설은 실지로 있었던 역사적 ‘사건’, ‘인물’ 등을 소재로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역사 속에 내재되어 있는 진실을 손상시키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제시하기 위해 작가 개인의 주관을 가능한 개입 시키지 않는 특징1)이 있다.

이에 비해 아쿠타가와의 역사소설은 “역사 재현”을 목적2)으로 하는 소설은 아니었다.

1) 모리 오가이는 1915년에 발표한 역사 그대로와 역사 멀어짐(歷史其儘と歷史離れ) 에 서 자신이 집필하는 역사소설의 경우 “역사 속의 자연을 변경”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2) 芥川龍之介(1922) 澄江堂雜記 昔 󰡔芥川龍之介全集󰡕第4巻, 筑摩書房, p. 148. https://doi.org/10.47563/KJMC.38.4

역사란 아무리 정확하게 기록했다 하더라도 “집필자의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어떤 역사 기록도 객관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보았 다.3)

이런 시각의 차이가 각각의 역사소설의 특징을 결정지었다고 본다.

따라서 모리 오가이가 사료 그 자체를 존중하는 태도로 󰡔아베일족(阿部一族)󰡕, 󰡔사카이 사건(堺事件)󰡕, 󰡔최후의 일구(最後の一句)󰡕 등을 집필했다면 아쿠타가와 는 역사소설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나생문(羅生門)󰡕, 󰡔코(鼻)󰡕, 󰡔지옥변(地獄變)󰡕 등 말하자면 옛 설화물 속 이야기를 소재로 하여 아쿠타가와 특유의 역사소설을 집필해왔다고 할 수 있다.

적어도 아쿠타가와의 역사소설의 주류는 이와 같은 것으로 오가이의 그것과는 소재면에서 차별화되어 있다 하겠다.

그런데 아쿠타가와의 역사소설을 좀 더 확장하여 소재라는 키워드로 분류를 해보면 일본의 옛 설화물에서 소재를 취한 것 외에도 실지로 있었던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소재로 한 전기물(傳記物), 중국 고전 등 실로 그 소재의 다양함 에 놀라게 된다.

즉 󰡔코(鼻)󰡕, 󰡔감자죽(芋粥)󰡕, 󰡔투도(偸盜)󰡕 등의 집필에 매진하던 비슷한 시기에 에도(江戶) 시대에 실지로 일어났던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소재로 하여 설화물과는 다른 역사소설을 집필했다는 점이다.

47인의 아코(赤穗) 낭인사건을 소재로 쓴 󰡔어느 날의 오이시 구라노스케(或日 の大石內藏助)󰡕 그리고 봉건 무사사회의 ‘주군과 신하의 주종관계’를 묻고 있는 󰡔충의(忠義)󰡕 등이 그것이다.

특히 󰡔충의󰡕는 주인공 이타쿠라 슈리(板倉修理, 이 후 슈리로 표기)가 중증의 신경쇠약으로 끝내 발광하는 자로 설정이 되어, 아쿠타 가와 문학에서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신경쇠약, 불안, 초조, 발광을 사건 발생의 주요 요인으로 삼았다는 점에서도 주목을 끈다.

주지하다시피 아쿠타가와는 생후 7개월4) 즈음에 어머니 후쿠(フク)의 발광으 로 외가인 아쿠타가와 집안의 ‘양자’로 보내졌다.

어머니의 발광이 아쿠타가와 개인은 물론 그의 문학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뿐만 아니라 예술가의 길에 들어선 이후에도 창작에 대한 ‘뼈를 깎는 고통’5)도 널리 알려져 있다.

3) 芥川龍之介(1917)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 󰡔芥川龍之介全集󰡕 第1巻, 筑摩書房, pp. 238-247.

4) 생모 후쿠의 발광 시기에 대해서는 생후 7개월, 8개월 등 일정하지 않다.

5) 宇野浩二(1953) 󰡔芥川龍之介 文藝春秋新社, p. 279.

또 평론가와 독자의 차가운 시선에도 무신경할 수 없는 아픔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아쿠타가와의 개인적 아픔과 고독이 놀랍게도 󰡔충의󰡕의 슈리의 모습 속에는 일정 부분 겹쳐져 제시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충의󰡕는 객관적 서술이 우선되어야 할 ‘역사소설’6)이면서도 아쿠타가와가 안고 있는 여러 고뇌 가 처절하게 반영되어 있는 작품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6) 역사소설이라고 해도 그 작법(作法) 면에서는 아쿠타가와의 일반소설의 작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것은 그의 창작태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아쿠타가와는 초기부터 예술성을 무엇보다 강조했던 작가였다. 만년 문학관이라고 할 수 있는 ‘시적정신’은 예외로 하고 그의 문학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예술의 극대화”였고, “어떤 주제를 강하 게 표현”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이었다. 역사소설도 예외가 아니다. 따라서 아쿠타가와가 역사소설 집필에 자주 사용한 것은 ‘원전의 개변’이었다. 자신이 제시하고자 하는 테마를 강렬하게 제시하기 위해서 그에 맞춰 원전을 개변하는 것이다. 그의 역사소설에 객관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은 이런 개변을 통해 그의 주관이 많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본 연구에서는 이런 󰡔충의󰡕에 주목하여 주인공 슈리를 비롯한 그의 가신 등 주요 인물 3명의 삼각구도를 살펴봄으로써 주인공 슈리가 맞이하는 비극의 양상 이 과연 어떤 모습으로 제시되는지 그 실체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 연구에서는 우선 󰡔충의󰡕가 발표되기 전인 1916년 전후를 살펴봄 으로써 아쿠타가와의 일상이 어떻게 󰡔충의󰡕에 내재되어 있는지를 고찰해 볼 것이다.

특히 󰡔충의󰡕에 앞서 발표된 전작 󰡔고독지옥󰡕과의 연계성을 살펴봄으로 써 슈리의 고독과 불안 초조 고립감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파악해 볼 것이다.

그리고 다시 슈리와 그를 보좌하는 2명의 가신과 대비시킴으로써 그의 고립감이 끝내 어떤 방향으로 변용되어 파국을 맞이하게 되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본 연구 를 통해 비록 엄격한 규칙과 윤리가 존재하는 봉건 무사사회라 할지라도 그 내부에는 여러 꿈틀거리는 강한 자아가 존재하여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개연 성이 충분히 내재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2. 선행연구 검토

󰡔충의󰡕는 1917년 󰡔구로시오(黑潮)󰡕 3월호에 발표된 작품이다.

작품은 마에지마 린에몬(前島林右衛門, 이후 린에몬으로 표기), 다나카 우자에몬(田中右左衛門, 이후 우자에몬으로 표기), 유혈(流血) 등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린에몬과 우자에몬은 성주 슈리를 보좌하는 인물이다.

충이 무엇보다 중요시 되는 봉건 무사사회라는 점을 감안할 때 린에몬과 우자에몬 역시 자신의 역할에 충직한 봉건시대의 가신으로 등장하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더욱 이 두 사람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가 어디에 우선점이 있는가를 결코 잊지 않는 인물로, 주군 슈리의 운명을 좌우할 정도의 무게감 있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즉 충직한 가신이면서도 충이 지향해야 할 궁극점이 주군이 속해 있는 가문(家 門)인가 아니면 사람인가로 린에몬은 개인보다는 ‘가문의 명예’가 더 소중하다는 인식의 소유자이다.

처음부터 신경쇠약에 시달리는 슈리와는 대척점에 설 수밖 에 없는 인물이다.

이에 비해 우자에몬은 가문의 명예보다는 자신이 모시고 있는 주군에 더 가치 를 두고 있는 인물이다.

두 사람 모두 나름대로 명확한 지향점이 있었다 하겠다.

따라서 주요인물 슈리, 린에몬, 우자에몬 등 세 사람은 복잡하게 얽혀있으면서 도 동 무게감을 가진 인물로 누구에게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작품론의 방향은 달라질 수 있다.

그만큼 세 사람은 따로 독립되어 있다기보다 서로 뒤엉켜 서로에 게 밀접하게 작용하고 있다.

이런 󰡔충의󰡕에 대한 연구는 그동안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진행되어 왔다.

첫 번째는 ‘충’의 대상에 관한 문제로 가신(家臣) 린에몬과 우자에몬에 초점을 맞춘 경우이다.

두 번째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이해를 받지 못하고 고립되어 가다 마침내는 파멸로 접어드는 성주 슈리에게 초점을 맞춘 경우이다.

우선 가신 린에몬과 우자에몬에 초점을 맞춘 대표적인 연구로는 요시다 세이 치(吉田精一)의 연구를 들 수 있다.

요시다 세이치는 󰡔충의󰡕에 대해 “가문이 중심 이고 사람이 부수적이라는 봉건사상을 역전시키려고 한 휴머니즘이 도리어 가문 의 멸망을 초래했다.”고 평가했다.

더욱 󰡔나생문(羅生門)󰡕, 󰡔코(鼻)󰡕 등 왕조물에 비해서는 서술방식이 객관적이기는 해도 여전히 아쿠타가와의 주관이 반영된 결과 단순한 이야기로 끝나버렸다고 악평도 하고 있다.7)

세키구치 야스요시(關口安義)의 경우는 “역사에서 옷을 빌려 근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고뇌”를 그렸다고 평가하면서도 가신 린에몬에 주목하여 그의 반역을 ‘충의’라는 “봉건 윤리로부터의 해방의 외침”8)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에 비해 신토 준코(進藤純孝)는 슈리의 “발광의 예고 같은 불길한 불안”을 당시 아쿠타가와가 안고 있는 문제로 치환시킴으로써 󰡔충의󰡕를 “아쿠타가와 자 신의 내면을 그대로 투영한 작품”9)으로 보았다.

더욱 야스하라 가오리(安原可保 里)는 슈리의 불안한 심리상태를 아쿠타가와 집안의 생모 후쿠(フク), 이모 후유 (フユ), 이복동생 도쿠지(得二)와의 관계로까지 그 범위를 확장하여 그 근원에는 유전에 의한 발광의 두려움, 강자에 대한 피해의식, 약자에 대한 동정심이 자리잡 고 있다고 보았다.10)

7) 吉田精一(1979) 󰡔芥川龍之介I󰡕, 櫻楓社, p. 99.

8) 關口安義(2006) 芥川龍之介󰡔忠義󰡕論 : 近代的人間の模索 󰡔日本文學誌要󰡕 74卷, 法政 大學國文學會, pp. 13-22.

9) 進藤純孝(1978) 󰡔傳記芥川龍之介󰡕 六興出版, pp. 283-284.

10) 安原可保里(1994) 芥川龍之介 肉親への愛憎 󰡔岡大國文論稿󰡕2 2號, 岡山大學文學部 國語國文學硏究室, pp. 286-294.

이렇게 󰡔충의󰡕에 대한 연구는 그동안 크게 봉건사회의 윤리 규범이라 할 수 있는 ‘충’의 대상이 가문인가 사람인가 하는 문제와 슈리의 불안한 심리에 초점 이 맞춰져 진행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초점의 연구 방향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함’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두 가지 초점 은 결과적으로는 슈리의 불안한 심리가 린에몬과 우자에몬과 상호작용함으로써 제시되는 것으로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니고 하나의 뿌리에서 파생되어 나오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본 연구에서도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슈리의 비극이 두 명의 가신 린에몬과 우자에몬과 유기적으로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 세 명의 관계 역할, 이른바 삼각구도를 주요 논점으로 삼고자 한다.

3. 이타쿠라 슈리(板倉修理)의 지옥 현실 및 전작과의 연계성

그렇다면 과연 슈리는 어떤 인물인가?

슈리는 도쿠가와(德川) 에도 막부시절 아무런 원한 관계도 없는 구마모토 성주 호소카와 엣추노가미 무네노리(細川越中守宗敎)를 살해한 죄로 할복을 명받은 자이다.

1747년 8월 22일 집행되어 사망하였다.

이 역사 속 인물이 󰡔충의󰡕의 주인공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작품 첫 시작부터 “병후(病後) 피로가 조금씩 회복되어 감과 동시에 극심한 신경쇠약에 시달렸다.”

라고 하여, 병약하면서도 중증의 신경쇠약에 고통받는 자로 등장하고 있다.

신경 쇠약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는 증상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미 슈리의 증상은 이전부터 상당 부분 진행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도입부의 ‘신경쇠약’이라는 설정은 향후 슈리가 어떤 과정을 거치며 변용되어 갈지 미리 짐작해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 될 수밖에 없다.

우선 슈리는 자신의 증상을 “복도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소리라든가 집안사 람들의 대화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으로도 견딜 수 없으며 또 “담배상자에 그려 져 있는 나무 덩굴이나 잎사귀만 보아도 신경”이 쓰여 견딜 수 없다고 하고 있다.

이것만이 아니다.

“상아로 된 젓가락이나 청동으로 만든 부젓가락 같은 끝이 뾰쪽한 것만 보아도 불안”하며 “다다미의 가장자리가 교차하는 모서리나 천정의 네 귀퉁이마저 칼날을 보고 있을 때처럼 견딜 수 없는 긴장감으로 느껴진다.”고 하고 있다. 이런 슈리의 증상을 종합해 볼 때 “끝이 뾰쪽한 것, 칼날, 가장자리가 교차하는 모서리, 천정의 네 귀퉁이” 등 뭔가 가늘고 날카롭고 각진 것에 더욱 그의 신경이 예민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전형적인 신경쇠약의 증세로 누군가로부터 공격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 두려움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그것은 또 위험으 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된다는 강박관념이기도 하다.

당연히 그 근저에는 살고 자 하는 강한 본능, 자기애가 자리 잡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언술에서도 분명하다.

그는 개미지옥에 떨어진 개미처럼 초조한 마음으로 그의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럼에도 그곳에 있는 자들은 그의 마음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는 쓸데없이 만일의 사태를 두려워 하는 후다이의 신(譜代の臣)11)들뿐이었다. (중략) 그 누구도 나의 고통을 헤아려 주는 자가 없다. - 그렇게 생각하는 게 이미 그에게는 더욱 큰 고통이었다. 슈리의 신경쇠약은 이 주위 사람들의 몰이해 때문에 더욱 악화일로로 치달았다.12) (󰡔전집󰡕제1권, p. 113.)

살기 위해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하소연처럼도 보인다.

일상생활이 불 가능할 정도의 사사로운 자극에도 끊임없이 신경을 괴롭혀야만 하는 그로서는 현재의 불안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관심과 도움이 절실히 필요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조한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보”아도 아무도 그의 불안 과 두려움에 관심을 기울이고 도와주려는 자는 없다.

그것이 신경쇠약의 증상보 다 더 괴롭다고 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고통은 첫째 그 누구와도 교류할 수 없는 ‘고립감’, 둘째 홀로 그 고통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외로움, 고독감’에 그 근원이 있다.

그의 신경쇠약이 치유의 길로 가지 못하고 날로 깊어질 수밖에 없는 ‘당연성’이 여기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개미지옥”이라는 표현은 슈리의 불안과 초조, 고통의 극점을 표현한 말로 해석해도 무방할 것이다. “개미지옥”이란 “개미귀신이 파놓은 조그 만 깔때기 모양의 구멍”13)으로 그 속에 떨어지는 한 살아 나올 수 없다.

11) 대를 이어 계속 그 주인집을 섬기어 온 신하.

12) 본 연구에서 인용하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문장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전집(芥川 龍之介全集)󰡕(전 8권, 1958년, 筑摩書房)을 사용하고 표기는 󰡔전집󰡕으로 한다.

13) 강건희 외(1994) 󰡔學園大百科事典󰡕 제1권, 학원출판공사, p. 554.

누군가 꺼내주지 않는 이상 아무리 살아나오기 위해 발버둥 쳐도 숨 막히는 고통만 계속될 뿐 끝내는 개미귀신에게 먹히고 만다.

그런데 이 “개미지옥”이라는 말을 사용하기 전에도 아쿠타카와는 이와 비슷한 ‘고독지옥’이라는 말을 사용한 적이 있다.

바로 1916년 4월에 발표된 전작(前作) 󰡔고독지옥(孤獨地獄)󰡕의 방탕승 젠초(禪超)를 통해서이다.

‘고독지옥’이란 어디에서든 홀연히 나타나 눈앞의 경계가 그대로 지옥의 고통으로 탈바꿈하는 것을 말한다.

지옥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 눈앞의 경계를 바꾸어 도 다시 그 눈앞의 경계는 지옥의 고통으로 바뀌기 때문에 이곳저곳 경계를 바꾼다 한들 지옥의 고통에서 벗어날 길은 없다.

결국 누구와도 고통을 나눠 가질 수 없는 상태에서 마침내 홀로 고립되어 버리는 ‘절대고독’, 그리고 누구에 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홀로 떠다닐 수밖에 없는 ‘극한 외로움’을 아쿠타가와는 이 “고독지옥”이라는 말로 표현했다고 본다. 그러므로 ‘고독지옥’이란 지옥으로 변해버리는 그 자체보다 오히려 홀로 고립 되어 느끼는 공포감 너머의 ‘절대고독’, ‘극한 외로움’에 방점이 찍힐 수밖에 없다.

이 ‘고독지옥’이 ‘개미지옥’으로 바뀌어 홀로 고립된 “신경쇠약”의 슈리 앞에 다시 제시된 것은 그런 맥락에서 의미심장하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아쿠타가와가 자신도 “어떤 의미에서는 고독지옥에서 고통받고 있는 한 사람”이라고 직접 고백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시 아쿠타가와는 ‘인기작가’로 부상하면서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하던 작가였다.

󰡔신사조(新思潮)󰡕 동인(同人) 중에서도 가장 먼저 두각을 나타내던 작가이기도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부러움을 받을 만한 위치에 있었다.

그럼에도 자신의 삶 속에 ‘고독지옥’이 내재되어 있다고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점이 아쿠타가와로 하여금 극한 고통 속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시킬 수밖에 없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창작’에 대한 ‘고통’이다.

일찍이 문학 동료이면서 친구이기도 했던 우노 고지(宇野浩二)는 아쿠타가와 의 창작태도에 대해

“22, 3세 때부터 치밀하고 세련된 문장”을 쓰기 위해 얼마나 고심하며 애를 썼는지 그것은 “과장해서 말한다면 뼈를 깎는 고통이었다.”14)고 언급한 적이 있다.

14) 宇野浩二(1953) 󰡔芥川龍之介󰡕 文藝春秋新社, pp. 279-280.

“과장”이라는 단서가 달렸다 해도 가까이서 지켜본 자의 ‘생생 한 증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쿠타가와의 ‘창작의 고통’은 그만큼 남달랐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비슷한 평가는 나츠메 소세키(夏目漱石)의 언급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나츠메 소세키는 아쿠타가와의 문장을 “요령을 터득하여 잘 정돈되어 있다”거 나 결코 “어느 정도 이하로는 쓰려고 해도 쓸 수 없다.”고 평가15)한 적이 있다.

물론 칭찬의 말이다.

그러나 이 말속에는 “요령을 터득”하고 문장을 “잘 정돈”하 기까지 청년 아쿠타가와의 끊임없는 노력과 “뼈를 깎는 고통”이 전제로 되어 있음도 잊어서는 안 된다.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문장표현’에 많은 힘을 쏟았던 아쿠타가와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것에 동반되는 고통도 그만큼 컸을 것이다.

수없이 연습하지 않고 어떻게 “요령”을 터득하며 문장을 “잘 정돈”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일반독자들이나 평론가들의 반응은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친구나 지인들에게

“앞으로 문예비평은 완전히 인연을 끊고 읽지 않을 생각이다. 그것을 읽고 어느 정도 영향을 받지 않기에는 너무도 나는 약하니까”16)

라고 한 것도 주변의 평가에 민감했고 상처입기 쉬었다는 반증의 하나이다.

겉으로 화려하게 보여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창작의 고통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불쾌감과 외로움이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첫사랑의 좌절’에서 느끼는 인간의 에고이즘, ‘인간불신’도 대단한 것이었다.

아쿠타가와 문학을 하나의 선상에서 고찰해 보았을 때 만년으 로 갈수록 첫사랑이 크게 부각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젊은 시절 경험한 첫사랑의 좌절이 인간에 대한 어두운 인식, 에고이즘을 더욱 각인시키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아쿠타가와 문학 연구에 중요한 사건임은 부인할 수 없다.

아쿠타가와와 요시다 야요이(吉田彌生)와의 관계가 남녀의 관계로 부상하는 것은 그녀에게 “혼담이 오간다는 사실을 아쿠타가와가 알고부터이다.

이때 아쿠 타가와는 그녀에 대한 그동안의 감정이 사랑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녀의 혼담 이 아직 많이 진행된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서둘러 결혼할 것”17)을 결심하 고 집안에 그 사실을 알린다.

15) 1916년 2월 19일, 아쿠타가와에게 보낸 서간. 夏目漱石(1967) 󰡔漱石全集󰡕 第15巻, 岩波書 店, p. 536.

16) 마츠오카 유즈루(松岡讓) 앞 서간. 1917년 10월 30일, 󰡔전집󰡕 제7권, p. 158.

17) 1915년 2월 28일 아쿠타가와가 쓰네토 교(恒藤恭) 앞으로 보낸 서간. 󰡔전집󰡕 제7권, p. 81.

그러나 집안의 반대 특히 이모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그 혼담이 좌절되고 만다.

젊은 열정으로 순수하게 열중해 있던 만큼 아쿠타가 와가 입은 상처는 클 수밖에 없었다.

“주위는 추하다. 나도 추하다.”18)는 어두운 인간 인식, “왜 이렇게까지 하면서 생존을 계속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어두운 인생관을 보다 깊이 각인 시키게 된 것이 바로 이 첫사랑의 좌절에 의해서이다. 19)

그 외 아쿠타가와의 현실을 어둡게 한 요인으로 ‘양자라는 위치’도 크게 작용 했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아쿠타가와는 생모(生母)의 발광으로 친가에서 성장하지 못하고 외가에 양자로 보내져 성장한 인물이다.

그러나 이 양자라는 위치는 ‘도화인형(道化人形)’20)이라는 다소 ‘어두운 자조적 태도’를 낳기에 충분했다.

강요받지는 않았으나 효도해야 된다는 잠재된 의식, 또 어른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된다는 강박관념과 의무감21)이 그의 내면에 어두 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18) 1918년 3월 9일 아쿠타가와가 친구 쓰네토 교 앞으로 보낸 서간. 󰡔전집󰡕 제7권, p. 82.

19) 송현순(2013)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의 󰡔고독지옥(孤独地獄)󰡕론: 그 상징하 는 것을 중심으로 󰡔일본문화연구󰡕 제45집, 동아시아일본학회, pp. 263-264.

20) 芥川龍之介(1926) 󰡔或阿呆の一生󰡕 道化人形 , 󰡔전집󰡕 제4권, p. 61.

21) 후미(文) 부인의 증언에 의하면 아쿠타가와가 외출에서 돌아올 때면 아이들의 선물보다 는 언제나 이모 후키(フキ)를 위한 선물을 사들고 왔다고 한다. 또 집에 돌아와서도 이모의 어깨를 30분 혹은 1시간 정도를 매일 같이 주물렀다는 내용도 언급하고 있다. 어린 자식들보다 이모 후키를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런 아쿠타가와의 행동을 ‘효’ 라는 말만으로 치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芥川文述 中野妙子記(1975) 󰡔追想 芥川龍之 介󰡕 筑摩書房, pp. 68-71.

이렇게 1916년을 전후한 시기는 젊은 신진작가로서 아쿠타가와가 느끼는 현실은 꼭 화려한 것만은 아니었다.

‘고독지옥’ 속에 자신의 외로운 자화상을 투영시킬 수밖에 없는 고단함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고독지옥’이 다시 ‘개미지옥’으로 바뀌어 신경쇠약의 슈리 앞에 제시된 것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의미심장’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고독지옥 속의 젠초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발광에 대한 두려움까지 더해져 슈리에게는 설정되 어 있다.

따라서 󰡔충의󰡕는 일정 부분 아쿠타가와 문학의 맥을 잇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고 슈리 역시 아쿠타가와 문학의 맥을 잇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아쿠타가와가 안고 있는 문제를 온몸으로 생생하게 떠안고 있는 인물이 바로 슈리이다.

그렇다면 슈리의 신경쇠약은 어떤 양상으로 변용, 전개되어 갈까?

슈리의 신경쇠약의 주 근원은 자신의 고통을 알아주는 자가 아무도 없다는 고립감, 외로움에서 비롯되고 있음은 앞에서 살펴본 대로이다.

만약 이 고립감, 외로움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 주변과 조화로울 수 있는 능력이 그에게 있었다면 애초부터 신경쇠약에 시달릴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당연히 누군가 따뜻한 시선으로 그를 돕고자 하는 조력자가 나오지 않는 한 신경쇠약이라는 ‘마음의 병’을 치유할 길은 차단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지로 슈리의 신경쇠약의 증세는 “악화일로”로 치닫는다.

“사사건건 흥분”하 였고 자신의 머리털을 쥐어뜯으며 급기야 칼까지 뽑아 들게 된다.

얼굴에는 ‘경 련’이 일고 눈에는 ‘살기’가 가득하다.

위험을 느낀 주변 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더욱 그를 멀리할 수밖에 없다.

악순환의 연속이라고 할까, 좋아질 기미도 없이 마침내 발광의 두려움 앞에 슈리가 서 있다.

발광 이러한 두려움은 슈리 자신에게도 있었다.

주위 사람들이 그것을 느끼고 있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중략) ‘발광하면 어찌하나.’ 그렇게 생각하면 그는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이 두려움은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외부의 자극에서 오는 조바심 때문에 사라지기 도 했다. 그러나 그 조바심이 또 다른 한편에서는 쉽게 이 두려움을 일깨우게 하였다. 말하자면 슈리의 마음은 자신의 꼬리를 쫓는 고양이처럼 끊임없이 불안에서 불안으로 돌고 있었다. (󰡔전집󰡕제1권, pp. 113-114.)

이렇게 치유의 길이 차단된 슈리에게 나타난 것이 ‘발광에 대한 두려움’이었 다.

이런 전개 양상은 예상했던 대로라고는 할 수 있으나 발광에 대한 슈리의 인식이 피상적이지 않고 매우 생생하다는 게 주의를 끈다.

즉 슈리는 발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심각성을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발광하면 어찌하나.” 그 생각을 할 때마다 “눈앞이 깜깜해져” 오는 것은 발광이 자신과 주변에 어떤 폐해와 악영향을 주는지 그 심각성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로서는 발광만큼은 피해가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방법을 모르는 그로서는 피해 갈 길이 없다.

사실 아쿠타가와에게 ‘발광’이란 하나의 ‘금기어’라고 할 수 있겠으나 그의 문학에서는 종종 등장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점귀부(点鬼簿)󰡕의 “나의 어머니는 광인이었다.”는 강렬한 첫 문장도 아쿠타가와 문학 연구에서는 너무도 많이 알려 진 문장으로 새삼 언급할 필요도 없다.

아쿠타가와의 만년작품 󰡔톱니바퀴(齒車)󰡕 에서는 “미치광이의 아들”로 발광에 대한 불안한 심리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했고, 히데 시게코(秀しげ子)22)의 “동물적인 본능”에 대한 어두운 이미지 역시 “광인의 딸23)”로 형상화되기도 했다.

“광기”에 대한 인식이 마이너스적인 이미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비교적 이른 시기에 발표된 작품들을 보면 ‘발광’에 대한 인식 은 이와는 다르다.

그것은 타인의 몰이해, 그 결과 고립될 수밖에 없는 외로움, 불안감, 고독감에서 비롯되는 것들이었다.

본 연구의 텍스트인 󰡔충의󰡕의 슈리가 그렇고 󰡔습지(濕地)24)󰡕나 󰡔의혹(疑惑)󰡕25) 󰡔기이한 재회󰡕26)가 그렇다.

22) 1890년 8월 20일 도쿄 출신으로, 일본여자대학 가정학부를 졸업한 후 가인(歌人)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아쿠타가와가 히데 시게코를 처음 만난 것은 1919년 6월 10일의 ‘십일 회’에서였다. 잠시 연정을 품기도 하였으나 곧 그녀에게 실망하여 혐오감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23) 芥川龍之介(1926) 󰡔或阿呆の一生󰡕 狂人の娘 , 󰡔전집󰡕 제4권, pp. 57-58. 24) 1919년 4월 작품으로 어느 그림 전시회의 한쪽 구석에 걸려있는 ‘늪지’라는 그림에 얽힌 이야기. 발을 디디면 그대로 빨려들 것 같은 예술성 짙은 그림은 어느 죽은 미치광 이 여자의 그림이었다. 예술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이 그만큼 치열한 것으로, 짧은 소품이나 아쿠타가와의 예술성을 엿볼 수 있는 수작이다. 25) 1919년 6월 작품. 1891년 일어난 대지진 참사 때 무너진 집 대들보에 깔려 신음하는 아내가 화염에까지 휩싸이자 불에 타 죽는 것보다는 차라리 자신이 죽여 고통을 줄이는 게 낫다고 생각하여 기왓장으로 아내를 때려죽인다. 그러나 과연 그 행동이 진정 아내를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아내의 육체적 결함을 의심하여 죽이고 싶은 잠재된 살해 욕구 때문이었는지 알 수 없는 의혹에 사로잡힌다. 이후 그는 미치광이 취급을 받는데 “나를 광인으로 만든 것은 우리 인간의 마음속에 잠재된 괴물 탓이 아닌가?”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광기, 발광에 초점을 맞출 때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26) 1921년 1월 작품. 청일전쟁 때 중국에 주둔했던 일본군 마키노(牧野)의 첩이 되어 일본으 로 오게 된 중국 기녀 오렌(お蓮)의 슬픈 이야기. 그녀는 일찍이 사랑하는 긴(金)이라는 연인이 있었으나 마키노가 그녀를 좋아할 무렵 갑자기 그녀 앞에서 사라진다. 혹시 마키노가 그를 살해한 것은 아닌가 의심하지만 확인할 길은 없다. 일본에 거주하면서도 늘 고향과 연인을 그리워하는 그녀는 끝내 환각 속으로 빠져드는데 이제 환각과 현실조차 구분하지 못한다.

누구에게도 이해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홀로 고립되어 있다 맞이하는 발광, 거기에는 아쿠타가와의 애처로운 동정의 시선이 담겨있다.

따라서 󰡔충의󰡕는 “아쿠타가와가 안고 있는 현실 문제를 슈리의 불안으로 투 영”27)시킨 작품일 뿐만 아니라 아쿠타가와 문학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발광’, ‘광기’에 대한 초기 인식이 어떠했고 어떤 양상으로 변용되어 가는지를 연구하는 데 하나의 지침이 되는 데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다.

27) 進藤純孝(1978) 󰡔傳記芥川龍之介󰡕 六興出版, pp. 283-284. 28) 에도 시대의 만 석 이하의 녹봉을 받는 무사.

슈리가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변모되어 가는지 그 과정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성도 여기에 있다.

4. 마에지마 린에몬(前島林右衛門)의 자유선언

이 문제와 관련하여 중요한 인물로 부상하는 것이 앞에서 언급한 가신(家臣) 린에몬과 우자에몬이다.

특히 린에몬은 홀로 고립되어 발광의 두려움에 떨고 있는 슈리를 향해 비극의 방아쇠를 직접 당기는 인물이다.

린에몬은 가신이라고 해도 본가인 이타쿠라 시키부(板倉式部)에서 “슈리를 감독하기 위해 보내진 자”로 슈리가 함부로 대할 수도 없는 자이다.

더구나 평소 병이라고는 걸려본 적이 없는 “커다란 몸집에 문무(文武)를 통달한 자”이기도 했다.

슈리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데 있어 서도 주저함이 없다.

이런 린에몬이 발광의 징조까지 보이는 슈리에 대해 근심 어린 얼굴로 지켜보 고 있다.

슈리의 증세가 심해질수록 밤잠도 잘 수 없을 만큼 그의 근심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나 그의 근심 어린 시선이나 마음은 슈리 개인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몸의 건강이 회복된 이상 슈리는 “감사의 예로서 성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될 터인데 지금처럼 발광한 상태로 들어간다면 무슨 일을 일으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동석한 다이묘(大名)나 하타모토(旗本)28) 앞에서 무례를 범하거나 더 나아가 유혈(流血) 사태라도 일으킨다면 “이타쿠라 가문의 칠천 석”은 그대로 사라지고 만다.

지금의 이타쿠라 가문이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는 가?

“선조의 이타쿠라시로자에몬 가츠시게(板倉四郞左衛門勝重)29)” 이후 쇼시다 이(所司代)30)로서, 사이코쿠(西國) 군의 선두 대장으로서 영광을 거듭 쌓아온 집 안이 아닌가?

29) 板倉勝重(1545-1624), 에도 마치부교(町奉行)를 거쳐 교토(京都)에서 정무를 보았다. 그 의 근무는 엄정하고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집󰡕 제1권, p. 115).

30) 에도 시대, 교토의 경호, 정무를 맡았던 직책.

그런 영광스런 가문이 슈리의 발광으로 하루아침에 나락에 떨어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당연히 린에몬은 가문을 지키기 위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슈리의 신경쇠약에 대해서 “충고”하였고 “고언”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충고하면 충고할수록 슈리 의 증상은 더욱 악화되었고 급기야 린에몬을 죽이려고까지 했다.

“주군을 주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놈이다. 본가의 체면만 아니라면 베어 없애버릴 것을” - 그렇게 말하는 슈리의 눈 속에 있던 것은 이미 분노만은 아니었다. 린에몬은 그곳에서 꺼지기 어려운 증오의 빛까지 발견했다. 그 속에 주군과 신하 간의 끈끈한 정은 린에몬의 고언이 거듭됨에 따라 어느샌가 삭막 해져만 갔다. (󰡔전집󰡕제1권, pp. 114-115.)

린에몬이 슈리에게 했던 충고와 고언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린에몬의 충고와 고언을 슈리가 어떻게 받아들였나이다.

상기 예문에서 보듯 슈리는 그것을 따뜻한 마음에서 나온 애정 어린 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주군을 주군으로 생각하지 않는” 말하자면 신하의 도리를 다하지 않는 ‘놈’이 내뱉는 말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 결과 린에몬을 향한 “분노” 에 더욱 “증오”까지 더해져 마침내 “주군과 신하 간의 끈끈한 정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두 사람의 관계는 끊어지고 만다.

만약 신경쇠약이나 발광의 증세가 오늘날 일어났다면 치료되고 치유될 방법은 여러 가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봉건 무사사회에서 일어난 일이고, 또 가문의 명예를 무엇보다 소중히 하는 린에몬과 발광의 두려움 앞에 서있는 병약한 슈리와의 일이다 보니 사건의 진행은 예상 밖으로 흘러가게 된다.

바로 린에몬이 “마지막 수단”을 실행하고자 한 것이다. “마지막 수단”이란 “슈리를 억지로 유폐시키고 양자를 추대하는” 일이었다.

가문을 지키기 위해서 는 설사 섬기는 주군이라고 할지라도 희생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실지로 그는 와카도시요리(若年奇)에서 근무하는 이타쿠라 사도노카미(板倉佐渡守)의 “세 자식” 중 한 명을 후계자로 내정하기까지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과연 그에게 주군을 유폐시키고 새로운 후계자를 은밀히 내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가 하는 일이다.

반역이 아닌가?

만약 슈리의 발광으로 주군의 역할을 다할 수 없다면 신하로서 또 감독자로서 상부에 보고할 의무가 있다.

또 상부의 결정을 기다릴 의무가 있다.

그런 의미에 서 린에몬의 행동은 분명히 반역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따라서 린에몬이란 인물이 구체적으로 어떤 작용을 할 수 있는 인물로 텍스트 안에서 자리 잡고 있는지 파악해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단순히 모시는 주군보다 가문의 명예가 소중하다는 인식의 소유자라는 정의만으로는 그의 처신 이 옹색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다음 예문을 보자.

슈리를 유폐시키고 양자를 추대하고자 할 때의 린에몬 의 심리상태를 좀 더 구체적으로 형상화 시킨 부분이다.

그는 어디까지나 신하로서 지켜야 할 절조를 다하려고 했다. 그러나 고언이 소용없다는 것은 이미 쓰라린 경험을 통해 충분히 맛보았다. 그래서 그는 지금까지 마음속에 품고 있던 “마지막 수단”을 쓰고자 각오하였다. (중략) 이타쿠라 사도노카미에게는 아직 가독(家督)을 상속하지 않은 자식이 3명 있었다. 그 자식 중 한 명을 상속자로 해서 양자로 삼으면 막부의 처리는 어떻게든 될 것이다. (중략) 그는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비로소 밝은 곳으로 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지금까지 알 수 없었던 어떤 슬픔이 저절로 그 밝아진 마음을 어둡게 하려는 게 느껴졌다. (󰡔전집󰡕제1권, p. 115.)

즉 슈리를 폐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신경쇠약이나 발광의 징후 같은, 눈에 보이는 슈리의 즉좌적인 현상 때문이 아니라 “쓰라린 경험”을 통해 그 증상들이 더 이상 개선될 수 없다는 막다른 길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막무가내식의 사적인 욕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가문을 지키고자 하는 충정의 결과라는 말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바로 안도감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린에몬이 느끼는 감정은 이것만이 아니다.

이와는 별도로 아쿠 타가와는 안도감 이면에 내재 되어 있는 또 다른 감정도 제시했다.

그것은 “지금 까지 알 수 없었던 어떤 슬픔”이 “어둡게” 드리워지는 감정이었다.

린에몬은 어디까지나 슈리를 모시는 가신이기도 했던 것이다.

동시에 봉건무사사회의 엄 격한 주종관계라는 ‘윤리’에 여전히 속박되어 있는 인물이기도 했던 것이다.

밝 은 안도감과 어두운 슬픔을 동시에 안고 있었던 것은 주군에 대한 충성과 가문에 대한 충성 속에서 끊임없이 양쪽을 오가며 고뇌한 흔적이며 설사 가문을 선택했 다 하더라도 그의 내면에는 여전히 슈리에 대해 신하의 도리를 다하지 못했다는 ‘죄의식’과 희생될 수밖에 없는 슈리에 대한 ‘편치 않음’이 가볍지 않은 무게로 공존해 있음을 의미한다. 또 그것은 그가 봉건 무사사회에 존재하는 “주종관계의 틀”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린에몬의 행동을 단순히 ‘반역’이라고 치부해버릴 수만도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런 계획이 실행되기도 전에 슈리에게 발각되고 만다.

아무리 “가문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해도 현재 모시고 있는 주군을 유폐”하면서까지 가문을 위할 필요가 있는지 슈리에게는 그것이 ‘책략, 술수’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린에몬에게 어떠한 벌을 내려도 가볍다고 생각한 슈리는 마침내 린에몬에게 ‘참수형’이라는 불명예스런 명을 내린다. 무사답게 ‘할복’시킬 것을 주변에서 권해도 “사람 같지 않은 놈에게 할복을 명할 이유가 없다” 하여 참수형을 고집한 다. 그러자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린에몬은 뜻밖의 반응을 보인다.

“좋아. 이렇게 된 바에는 린에몬도 고집이 있지. 순순히 참수형을 당하지는 않을 것이야.”

그는 의기양양하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항상 그에게 달라붙어 있던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이 그 주군의 명령을 듣는 것과 동시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을 알았다. 지금 그의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은 슈리에 대한 명백한 증오였다.이제 더 이상 슈리는 그에게 주인이 아니다. 그 슈리를 미워하는 것에 어떠한 꺼릴 것이 있겠는가? - 그의 마음이 밝아진 것은 무의식이지만 이러한 논리를 찰나의 순간에 인정했기 때문이다. (󰡔전집󰡕제1권, p.116.)

이것은 앞에서 기쁨과 어두움을 동시에 안고서 고뇌할 수밖에 없었던 린에몬 의 모습이 아니다.

더구나 “순순히 참수형을 당하지는 않을 것”이라고도 한다.

모시던 주군을 유폐시키고자 한 당사자로서 발각된 이상 결코 그 죄목이 가볍 지 않을 터인데도 “순순히 참수형을 당하지는 않을 것”이라니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과적으로는 자신에게는 “순순히” 참수형을 당할만한 죄목이 없다는 선언일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이타쿠라 가문의 명예와 자신의 존재 의미는 동일한 것이기 때문에 비록 발각되었다 해도 이타쿠라 가문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자의 명을 받을 수 없다는 논리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이기주의적 발상’에서 나온 행동이라고 해도 기존의 규율, 틀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자유 선언’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항상 그에게 달라붙어 있던 정체를 알 수 없던 불안”은 그가 속해 있는 ‘봉건사회의 윤리’까지 무시할 수 없었던 것에 기인한 것이었고 그 결과 슈리와의 주종관계에서도 완전 자유로울 수 없는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그것이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 다.

막다른 길에서 사람보다는 가문을 택하면서도 신하로서 주군 슈리에 대한 도리와 연민까지를 완전히 던져버릴 수는 없었던 린에몬이 이제는 그 중압감을 완전히 벗어던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린에몬의 이런 행동을 “해방의 외 침”31)이라고 할 수 있다.

31) 關口安義(2006) 芥川龍之介󰡔忠義󰡕論 : 近代的人間の模索 󰡔日本文學誌要󰡕 74卷, 法政 大學國文學會, p. 17.

이제 린에몬은 떠날 곳을 적어 슈리의 집 벽에 붙여두고 선두에 서서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자신을 따르는 일행과 함께 당당하게 슈리의 집을 떠난다.

이후 린에몬은 직접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아쿠타가와는 봉건무사사회의 규율 속에서 자신의 철학을 직접 행동으로 관철시키는 ‘자유인’ 린에몬을 조형해 냈다.

“참수형에 처하라”는 명을 받고도 순순히 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의 정체 모를 불안에서 “해방”되며 더 나아가 마음의 평정까지 얻게 되는 린에몬 은 분명 “새로운 인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 린에몬이 떠난 후 슈리의 일상은 어떻게 변해 갔을까?

이와 관련해서 살펴볼 인물이 바로 린에몬을 대신해서 등장하는 우자에몬이다.

이후는 이 우자에몬이 어떤 인물이며 󰡔충의󰡕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린에몬과 슈리와도 비교하면서 살펴보기로 하자.

5. 다나카 우자에몬(田中宇左衛門)의 온정주의와 비극의 심화

우자에몬은 삼각구도의 세 개의 축 중 하나를 담당하고 있으면서도 린에몬과 는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른 성향의 인물이다.

우선 가장 큰 차이는 린에몬이 가문 과 주군 사이에서 가문을 더 중요시했던 것에 비해 그는 가문보다는 사람, 즉 주군에 더 우선점을 두는 사람이었다.

더욱 그는 과거 슈리의 유모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당연히 “부모와 같은 심정”으로 병약한 슈리를 정성껏 보살핀다.

슈리 역시 이런 우자에몬에게 만큼은 날 선 반응을 보이지 않아 린에몬이 가신으로 근무했을 때보다 일상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간다.

그러나 우자에몬은 만약 주군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되는지 린에몬처럼 확실한 의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슈리를 위해서 “신명(神明)의 가호와 자신의 극진한 정성으로 슈리의 발광이 전정 되도록 기도하는” 것뿐이라 고 스스로도 피상적으로 말하고 있다.

실지로 린에몬이 떠난 후 우려했던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이른바 “도쿠가 와 막부에서 핫사쿠(八朔)32) 행사를 하는 날” 성안에서 그만 불상사가 일어난 것이다.

32) 음력 8월 1일 햇곡식을 추수하는 일에 감사하면서 행하는 의식

사건의 발단은 성안에서 근무하는 사도노카미가 슈리에게 린에몬의 안부를 묻는 것으로 시작된다.

슈리에게 린에몬은 어떤 인물인가?

자신을 유폐시키고자 한 반역자가 아닌가?

자신의 신경쇠약이나 발광의 징조를 더욱 악화시킨 자이며 “참수형”의 명령에도 응하지 않고 떠난 자이다.

이에 슈리는 발끈하며 “며칠 전 달아났다.”라는 취지로 거친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누구보다 린에 몬이란 인물의 성향을 잘 알고 있던 사도노카미는 “뭔가 사정이 없고서야” 그런 분별 없는 행동을 할 리가 없다며 오히려 본가에 보고도 하지 않고 단독으로 행동한 것에 대해 충고를 한다.

슈리의 입장에서 본다면 린에몬은 봉건무사사회 의 규율을 어긴 자이다.

자신의 “체면”을 위해서 그리고 가문의 명예를 위해서 주군까지도 유폐시키려는 극도의 ‘이기주의적 발상’을 가진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인물을 두둔하면서 자신에게 충고까지 하다니 슈리로서는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갑자기 “눈빛이 변하면서” 칼자루에 손을 댄 채 다음처럼 외친다.

사도노카미는 특별하게 린에몬 녀석을 두둔하시는 것 같은데 제 가신에 대한 조치는 불초(不肖)하나마 저 혼자서 처리하겠습니다. (중략) 쓸데없는 참견은 그만 두십시오. (󰡔전집󰡕제1권, p. 118)

이타쿠라 집안사람들끼리 주고받은 대화에서 나온 행동들이지만 여기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슈리의 대처 능력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쉽게 “눈빛 이 변”할 만큼 흥분을 잘하고 칼자루에 손에 댈 만큼 위협적이기까지 하다.

이런 행동은 돌발적이기 때문에 그의 행동을 예측할 수 없다는 데 ‘위험성’까지 내포 되어 있다.

일촉즉발 자칫 큰일로 번질 상황에서 급한 일로 사도노카미가 그 자리를 떠나는 바람에 위험한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 일이 있고 난 후 문책을 받은 것은 다름 아닌 우자에몬이다.

첫째 린에몬에 대해 본가에 알리지 않은 것과

둘째 “신경쇠약”을 넘어 “발광”의 증세 가 있는 슈리를 성안으로 들여보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향후 이런 일이 없도록 슈리의 외출을 삼가며 특히 ‘성안 출입’을 철저히 금하라는 명을 내린다.

이 명령에 대해 우자에몬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지키겠다고 굳은 결심으로 약속 을 하지만 그 굳은 결심의 내용은 린에몬과는 다른 극히 ‘우자에몬스런 충정’의 것이었다.

즉 그것은 슈리의 성안 출입을 막겠다는 결심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슈리의 성안 출입을 막지 못했을 때 자신이 “어찌할 것인가”에 대한 결심 이었다.

가문보다는 주군이 우선인 우자에몬으로서는 당연히 취할 수밖에 없는 결심이지만 바로 여기에서 우자에몬의 ‘비극’, 더 나아가 슈리의 ‘비극’이 잉태되 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충의󰡕의 비극을 잉태시키는 ‘우자에몬스런 충정’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좀 더 살펴보기로 하자.

‘주군’의 뜻에 따르면 ‘가문’이 위험해진다. ‘가문’을 세우려고 한다면 ‘주군’의 뜻을 거스르게 된다. 일찍이 린에몬도 이러한 곤란한 경우에 처해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가문’을 위해서 ‘주군’을 버릴 용기가 있었다. (중략) 그러나 자신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 다. 자신은 ‘가문’의 이해만을 도모하기에는 너무도 ‘주군’과 친숙해 있다. ‘가문’을 위해, 단지 ‘가문’이라는 명예를 위해 어찌 현재의 ‘주군’을 억지로 유폐시킬 수 있겠는가, 자신 의 눈으로 보면 지금의 슈리 역시 비록 하마(破魔) 활33)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어릴 적 슈리와 다름이 없다. (중략) 그렇다고 해서 ‘주군’을 그대로 둔다면 단지 ‘가문’만 망하는 게 아니었다. ‘주군’ 자신 에게도 나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전집󰡕제1권, p. 119)

33) 설에 잡신을 쫓아내기 위해 남자아이가 가지고 놀던 활. 어린 시절부터 보살펴 온 슈리에 게 부모와 같은 애정이 있음을 나타내고자 한 이야기이다.

상기 예문에서 보듯 우자에몬은 “주군을 따르면 가문이 위험해지고 가문을 세우려고 하면 주군”을 거스르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린에몬의 입장도 잘 이해하여 그에게는 “주군을 버릴 용기”가 있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린에몬의 그것을 결단력 있는 “용기”로 본 것이 눈에 띈다. 이것만이 아니다.

우자에몬은 명석한 논리 분석가로 슈리를 “그대로 둔다면 가문만 망하는” 게 아니라는 것까 지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 “가문만 망하는” 게 아니라는 것은 더 큰 불상사, 그토 록 섬기는 주군에게도 불행이 닥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그가 주군을 위해 어떤 행동을 해야 되는지는 그 ‘방향성’이 명백해졌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예전 그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주군의 뜻”에 거역할 수 없는 것은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부모의 심정으로 슈리를 보고 있기 때문이라 고 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게 아니다.

자신에게는 린에몬과 같은 결단력,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어떤 부모가 자식의 불행을 예견하면서 그것을 방치한단 말인가. 그것은 직무유기이다.

그러므로 ‘우자에몬의 충정’이란 앞뒤 맞지 않는 “모순”된 것으로, 결단력이 없는 것이고 우유부단한 것이다. 우자에몬은 지금까 지 그런 태도로 큰 오차 없이 살아왔을 것이다.

‘슈리와 린에몬’의 문제, ‘슈리와 사도노카미’의 문제, 슈리의 정신적 문제에 봉착하기 전까지는 주군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것이 봉건 무사사회의 신하된 최고의 도리라고 생각하며 살아왔 을 것이다.

그러나 린에몬이 떠난 후 슈리의 정신적인 문제까지 더해져 당면한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슈리에 대한 충정은 변함없다 해도 이제 그 충정의 내용이 변해야 할 때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우자에몬은 애써 그것을 외면한다.

극이 심화될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렇게 아쿠타가와는 린에몬에 이어서 우자에몬에 대한 성향도 명확히 하였 다.

봉건무사사회 기존의 틀에서 린에몬처럼 확고한 신념으로 두터운 틀을 깨고 나와 당당히 떠나는 린에몬과 동질의 무게감으로 기존의 틀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수많은 ‘우자에몬’을 대표하는 인물로 그를 조형해 냈다.

이제 우자에몬 으로서는 자신의 방식대로 ‘성안 출입을 금하라’는 사도노카미의 말을 슈리에게 그대로 전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것을 기점으로 해서 슈리의 태도에는 일대 큰 변화가 보이기 시작한 다.

우선 화를 내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그리고 말수가 줄었고 우울한 얼굴로 멍하니 사심에 빠져있거나 얼굴에 감정의 변화도 보이지 않는다.

이전의 슈리는 사사건건 소리를 지르고 자신의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눈에 살기”를 품고 주변 사람에게 칼을 휘둘렀던 인물이었다.

따라서 이런 갑작스런 태도 변화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 또 어떤 요인에 의해서 이런 변화가 초래되 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주목하고 싶은 것은 슈리가 직접 “두견새”에 대해서 언급 하고 있는 대목이다.

어느 가랑비가 내리던 날 “두견새 우는 소리”를 듣더니 슈리는 “저것은 휘파람새 둥지를 훔치려고 한다는군.”이라고 말한다.

뜬금없는 말이었기 때문에 누구도 그 말의 의미를 알아차리는 자는 없었다.

슈리도 그뿐 부연 설명은 없었다.

당시 슈리의 “발광”에 대해 말들이 많던 시기이기 때문에 그 말을 들은 주변 사람들은 슈리의 정신상태를 의심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뚜렷한 정신상태에서 나온 말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두견새는 새끼를 기르지 않는 새로 유명하다.

휘바람새 둥지에 알을 낳아 휘바람새로 하여금 자신의 새끼를 기르게 하는 것이다.

이 두견새우는 소리를 듣고 슈리가 바로 휘바람새 이야기를 한 것은 남의 것을 ‘강탈’하는 것에 대한 ‘비유’이며 ‘비난’이다.

신하된 자가 주군을 유폐시키고 다른 자를 주군으로 옹호하고자 한 것은 두견새의 행위와 다르지 않다.

이것은 슈리의 의식 속에 끊임없이 자신의 자리를 강탈하고자 한 “린에몬”이 약탈자로 ‘상대화’되어 내재 되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용서할 수 없는 반역자, 남의 것을 강탈하는 자로 린에몬에 대한 ‘증오’가 슈리의 의식 속에 한 ‘축’으로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성안에서 사도노카미를 만났을 때 칼자루에 손은 얹고 “특별하게 린에몬 녀석을 두둔”하시는 것 같은데 외람되지만 “제 가신에 대한 조치”는 혼자 처리하겠다, “불필요한 참견은” 필요 없다고 한 것도 그만큼 린에몬에 대한 증오 가 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런 린에몬을 두둔하는 사도노카미 역시 용서 할 수 없는 ‘동질의 인물’로 보였을 것이다.

그 반역이 성공한다면 자신의 자리를 꿰찰 자가 바로 사도노카미의 자식이 아닌가?

사도노카미 역시 남의 둥지를 빼앗 는 두견새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따라서 우자에몬으로부터 “향후 이런 일이 없도록 슈리의 외출을 삼가며 특히 ‘성안 출입’을 철저히 금하라”는 사도노카미의 전언을 듣고 그동안 막연하게 품고 있던 어떤 일을 은밀히 계획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말수가 적어졌고 화를 내는 일이 없으며 얼굴의 감정 변화도 없이 “벙어리처럼” 입을 다무는 일련의 행동은 뭔가 조심스럽게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그것을 실행할 준비가 되었음은 다음과 같은 언술로 확인할 수 있다.

“요전에 사도 님도 말씀하신 대로 이 병든 몸으로는 도저히 조정 일을 잘할 것 같지 않아. 그래서 이참에 차라리 나도 물러날까 생각하네.” 우자에몬은 잠시 주저했다. 이것이 본심이라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겠지만 어째서 슈리가 그처럼 쉽게 집안의 상속자로서 장남 자리를 양보할 마음이 생겼단 말인가?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중략) 하지만 일단 먼저 문중 사람들에게도 …” “아니, 아니, 물러나는 일이라면 (중략) 상담하지 않더라도 모든 문중이 동의할 것이네” (󰡔전집󰡕제1권, p. 120.)

그것은 다름 아닌 성주의 자리를 스스로 내려놓는 것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로 우자에몬 역시 왜 “집안의 상속자로서 장남의 자리”를 그렇게 쉽게 양보하고자 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마치 허를 찌르듯 슈리가 먼저 말을 꺼내고 있다.

그리고 호소하듯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이어간다. “그런데 말일세, 물러나면 성에 나가려고 해도 나갈 수가 없다네. 그렇다면…” (중략) “그 전에 지금 한 번 성안에 들어가서 니시마루(西丸) 요시무네(吉宗) 님을 알현하고 싶다네. 어떤가? 15일에 성안에 들어가게 해주지 않겠는가?” (중략) “아뢰옵기 황송합니다만 그 일만은…” “안 되겠는가?” 두 사람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말이 없었다. (중략) “세상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받고 있지. 집안의 재산은 남의 손에 넘겨주어야 하네. 하늘의 태양 빛조차 슈리에게는 비춰줄 것 같지 않아. 그 슈리가 이번 생의 소원으로 단 한 번 성에 들어가고 싶다고 하는 것일세. 그것을 거절할 우자에몬이 아닐 게야. 우자에 몬이라면 이 슈리를 정말이지 불쌍하게 여기고 미워하지 않을 것이야. 슈리는 우자에몬을 부모라고 생각하네. 형제라고 생각한다네. (중략) 오직 이번 한 번뿐일세. 우자에몬, 부디 이 심정을 헤아려 주게나.” (󰡔전집󰡕제1권, p. 120.)

우선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슈리가 반복해서 언급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출입금지령이 내려졌던 성안으로 들어가는 일이었다.

슈리는 필사적으로 성안 출입을 허락받고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있다.

이것은 성안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무엇인지 아쿠타가와는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 단계에서는 추정해볼 수밖에 없으나 아마도 그것은 ‘응징’, ‘복수’로 추정된다.

자신의 처지를 난처하게 만든 자, 그 반역자를 오히려 두둔하는 자를 스스로 응징하여 복수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런 철두철미한 계획을 세워서 단계적으로 실행하고 있는 슈리를 어찌 “발 광”이라는 말만으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슈리는 성안 출입을 허락받기 위해서 집요하게 “태양의 빛”에게 조차 버림받은 가련한 슈리임을 우자에몬 앞에서 강 조를 한다.

그리고 슈리에게는 부모 형제와 다름없는 자비로운 우자에몬임을 또 강조한다.

그런 우자에몬이 슈리의 일생일대의 부탁을 거절할 리가 없다는 사적인 감정을 자극하며 성안의 출입을 허락해 줄 것을 거듭 호소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을 쟁취해 낸다.

“잘 알겠습니다. 사도노카미 님이 뭐라고 말씀하셔도 만일의 경우에는 우자에몬의 주름진 배를 바치면 끝날 일입니다. 저 한 사람이 어떻게 해서라도 반드시 성에 들어가게 해 드리지요.” (󰡔전집󰡕제1권, p. 121.)

이 허락을 받고 난 후 기쁨에 겨워 어찌할 줄 모르는 슈리의 모습에 대해 아쿠타가와는 마치 “배우와 같은 기교”가 있었다고 하고 있다.

그만큼 슈리에게 는 사도노카미의 살해가 반드시 달성해야 할 지상 목표였다.

우자에몬 역시 사사로운 감정을 자극하며 눈물을 머금고 애원하는 주군 슈리 의 간청을 뿌리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미 그에게는 슈리의 성안 출입을 막을 만한 린에몬과 같은 결단력이 없었고 더욱 결단력을 발휘해야 할 그 긴박한 순간을 그동안의 주종관계라는 ‘미의식’으로 애써 외면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만일의 경우에는 우자에몬의 주름진 배를 바치면 끝날 일입니다.”라는 언술은 스스로 감격에 겨워 내뱉는 블랙 코메디를 연상시킨다.

이제 남은 것은 슈리와 우자에몬 모두 불구덩이를 향해 달려가는 것뿐이다.

그들 을 멈추게 하는 장치는 그 어디에도 설치되어 있지 않다. 실지로 8월 15일 성안에서는 피가 낭자한 “유혈” 사태가 일어난다. 슈리가 범인으로 사람을 살해한 것이다.

그러나 성안에서 슈리에게 살해당한 자는 사도 노카미가 아니었다.

구마모토 성주인 호소카와 엣추노가미 무네노리(細川越中守 宗敎)였다.

호소카와 무네노리는 슈리와 그 어떤 원한 관계도 없는 인물이다.

더구나 호소카와 가문은 “모든 다이묘들 중에서도 뛰어난 군비를 갖춘” 집안으 로 무네노리 역시 무예에 뛰어난 자이다.

이런 자가 슈리에게 살해당했다.

우선 살해당한 장소가 ‘어두침침한 화장실’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상대방을 뚜렷하게 구분할 수 없는 곳, 더구나 손을 씻는 뒤에서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칼을 내려쳤고 무네노리가 뒤돌아보는 순간 다시 한번 “양미간” 쪽으로 칼을 내리치는 바람에 상대방이 누군지도 모르고 속수무책 무네노리로서는 당하 고 말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로 슈리 역시 피범벅이 된 상대방의 얼굴을 확인할 시간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아무런 원한 관계도 없는 무네노리를 칼로 살해했을까를 생각해 볼 때 ‘이타쿠라 가문의 문양’과 ‘호소카와 가문의 문양’이 매우 닮아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에도 시대 화장실의 “어두침침한 곳”이라면 더욱 그 문양의 차이를 바로 인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진행자도 󰡔충의󰡕에서 다음처럼 말하고 있다.

슈리의 살인은 아마도 과실이었을 것이다. 호소카와 가의 구요성(九曜星)과 이타쿠라 가의 구요파(九曜巴) 그리고 옷의 가문(家紋)이 서로 닮아있기 때문에 슈리는 사도노카미 를 찌르려고 한 것이 잘못해서 엣추노카미를 해친 것이었다. (중략) 특히 화장실 같은 어두침침한 곳에서는 이러한 실수도 일어나기 쉽다. - 이것이 당시 정평이었다. (󰡔전집󰡕제1권, p. 124.)

“이것이 당시 정평이었다.”는 것으로 살해당할 사람이 호소카와 무네노리가 아니라 사도노카미였음을 우회적으로 밝히고 있다.

범인은 “예복입은 남자”로만 알려져 있었으나 도망가 숨어있던 슈리는 발각되었을 때 스스로 “나는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머리털을 자르고 있다.”로 숨기지 않고 자신이 범인임을 밝힌다.

그러나 그는 그 어떤 취조에도 대답을 하지 않고 오로지 횡설수설 “두견새에 관한 이야기”만 할 뿐이었다.

앞에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두견새”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남의 것을 강탈하는 두견새로, 따로 부연 설명은 없었지만 자신의 자리를 빼앗고자 한 린에몬과 그를 옹호하는 사도노카미를 지칭하는 것은 의심 의 여지가 없다.

“살인을 저지른 이유”에 대해 그가 계속 “두견새”에 대한 이야기 만 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 ‘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내막을 과연 누가 알 것인가?

살아남은 사도노카미 조차 “미친 놈의 소행이다, 사람을 잘못 봤다는 것 따위는 매우 성가신 억측이다, 슈리는 아마 두견새라고 생각하고” 엣추노카미 무네노리를 “벤 것인지도 모른다.”라고 빈정거린다.

슈리에게 “두견새”가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고 내뱉는 말에 슈리는 여전히 홀로 고립되어 있는 ‘이방인’으로밖에 존재할 수 없다. 바로 여기에 슈리의 비극이 있다.

홀로 고립되어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자의 절대고독, “개미지옥” 속의 슈리는 끝내 두견새와 휘바람새로밖에 자신과 타인을 구분 지을 수 없는 인물로 변용되어 있는 것이다.

참사가 일어난 후 7일째 되는 날 슈리에게는 “할복”의 명이 내려지고 우자에몬에게는 “참수형”이 내려진다.

우자에몬에게는 “본인의 주선으로 성에 입성시킨 결과 이러한 참상이 발생하여 칠천 석을 몰수당했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패덕한 놈”이라는 죄목이었다.

우자에몬으로서는 슈리의 간청을 외면할 수 없는 애정과 충정에서 나온 결정이었으나 결과적으로 본다면 슈리는 슈리대 로 ‘파멸의 길’로 인도한 것이 되고 이타쿠라 가문은 가문대로 ‘멸족’으로 내모는 참모 역할을 했다 할 수 있다.

이것은 일찍이 그가 예견했던 일이었다.

‘할복형’이 아니고 ‘참수형’이라는 것이 우자에몬으로서는 억울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똑같은 일이 다시 반복된다 해도 그는 같은 길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그는 주군과 신하 사이에 가로놓인 ‘충정의 모순’을 스스로 타파할 힘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슈리도 이런 우자에몬과 린에몬과 함께 같은 길을 밟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슈리의 진정한 비극은 “칠천 석을 몰수당하는” 멸족에 있지 않다.

더더 욱 사도노카미를 살해하지도 못한 채, “할복”의 명을 받은 것에도 있지 않다.

그것은 오히려 “머리털을 쥐어뜯으며 두견새” 운운하는 ‘정신이상자’로밖에, 그 것도 슬픈 ‘정신이상자’로밖에 그의 삶을 마감할 수 없다는 곳에 있다.

이것은 신경쇠약의 슈리를 중심축으로 하면서도 봉건무사사회의 틀에 얽매이 지 않겠다는 린에몬과 자신의 모순을 인지하면서도 결코 그 틀에서 나올 수 없었던 우자에몬의 서로 뗄 수 없는 하나의 유기적 관계에서 빚어진 비극이다.

6. 결론

지금까지 󰡔충의󰡕의 주인공 슈리를 비롯한 주요 인물 3명의 삼각구도를 살펴봄 으로써 주인공 슈리가 맞이하는 비극이 과연 어떤 모습으로 제시되는지 그 실체 를 고찰해 보았다.

이를 위해 본 연구에서는 먼저 󰡔충의󰡕가 발표되기 전인 1916년 전후를 살펴보 면서 아쿠타가와의 일상이 어떻게 󰡔충의󰡕에 내재되어 있는지를 고찰해 보았다.

특히 󰡔충의󰡕에 앞서 발표된 전작 󰡔고독지옥󰡕과의 연계성을 살펴봄으로써 슈리의 고독과 불안 초조 고립감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구체적으로 파악해 보았다.

그리 고 다시 슈리와 그를 보좌하는 2명의 가신 린에몬과 우자에몬을 대비시켜봄으로 써 그의 고립감이 끝내 어떤 방향으로 변용되어 파국을 맞이하게 되는지를 살펴 보았다.

슈리가 끝내 파멸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첫째 성주로서 그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상황에, 둘째 가신들의 ‘충’의 지향점에 대한 서로 다른 차이가 맞물려 작용했기 때문이다.

아쿠타가와는 발광의 두려움 앞에 서있는 슈리 옆에 가문의 명예를 소중히 하면서도 맹렬하게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고자 하는 린에몬을 배치하였다.

엄격 한 규율이 적용되는 봉건 무사사회라는 것을 감안할 때 자신의 철학을 끝내 관철시키는 이런 린에몬은 ‘의지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참수형”의 명을 받고 도 오히려 그동안의 정체 모를 불안에서 “해방”되며 마음의 평정까지 얻게 되는 린에몬은 분명 주변 인물과는 다른 ‘새로운 인물’이다.

더욱 우자에몬 역시 우유부단한 성격이라 해도 린에몬과 동무게감을 지닌 인물로 배치되어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가문보다는 주군 슈리에 더 주안점을 두고 있는 우자에몬은 자신의 ‘충’에 모순점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다.

린에몬과 같은 용기와 결단력이 없기 때문이고 주군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를 최고의 ‘충’으로 믿고 살아온 인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로 상충하는 린에몬과 우자에몬 속에서 슈리의 비극은 이미 예견되 어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신경쇠약, 불안, 초조, 발광의 두려움을 거쳐 끝내는 “두견새” 운운하는 발광자로밖에 생을 마감할 수 없었던 것이다.

바로 여기에 슈리의 비극이 있다.

【참고문헌】

강건희 외(1994) 󰡔學園大百科事典󰡕 제1권, 학원출판공사 송현순(2013)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의 󰡔고독지옥(孤独地獄)󰡕론: 그 상징하는 것을 중심으로 󰡔일본문화연구󰡕 제45집, 동아시아일본학회 靑木和夫 外(1995) 󰡔日本史大事典󰡕第2巻, 平凡社 芥川龍之介(1958) 󰡔芥川龍之介全集󰡕 筑摩書房 芥川文述 中野妙子記(1975) 󰡔追想 芥川龍之介󰡕 筑摩書房 上野万季(2014) 芥川龍之介󰡔或日の大石内蔵之助󰡕 󰡔日本文學文化󰡕 13号 宇野浩二(1953) 󰡔芥川龍之介󰡕 文藝春秋新社 進藤純孝(1978) 󰡔傳記芥川龍之介󰡕 六興出版 關口安義(2006) 芥川龍之介󰡔忠義󰡕論: 近代的人間の模索 󰡔日本文學誌要󰡕 74卷, 法政大學 國文學會 夏目漱石(1967) 󰡔漱石全集󰡕 第15巻, 岩波書店 安原可保里(1994) 芥川龍之介 肉親への愛憎 󰡔岡大國文論稿󰡕 22號, 岡山大學文學部國語 國文學硏究室 吉田精一(1979) 󰡔芥川龍之介I󰡕 櫻楓社 저자명 : 송현순(Song, Hyunsoon) 이메일 : hssong@woosuk.ac.kr

Abstract

A study on Akutagawa Ryunosuke’s “Chugi” ― Focusing on the triangular situations between the rulers and servants surrounding ‘loyalty’, the true nature of the tragedy ― Song, Hyunsoon In this study, by examining the triangular composition of the principal character, Shuri, and two other main characters, Rinemon Maejima, and Uzaemon Tanaka, who are the three main characters of ‘Chugi’. I reviewed the reality of how the tragedy that the main character Shuri encounters is presented. To this end, I first examined how Akutagawa’s daily life was inherent in ‘Chugi’ by examining the period before and after 1916, before ‘Chugi’ was announced. In particular, by examining the connection with the previous work ‘Kodokujigoku’, which was announced prior to ‘Chugi’, I specifically identified where Shuri’s loneliness, being nervous, and isolation came from. And again, by comparing Shuri and his two vassals, Rinemon and Uzaemon, I looked at how his sense of isolation was transformed and ended up facing a catastrophe. It is needless to say that Shuri’s nervous breakdown and fear of going insane stemmed from a sense of isolation that no one understood Shuri’s pain. However, the reason Shuri had no choice but to go down the path of ruin was because each of the vassals had the different way of exercising “Loyalty” for the lord Shuri. Akutagawa placed Rinemon, who cherishes the honor of his family above all else, but sticks firmly to his own will, next to Shuri, who is full of the fear of madness. Considering that it is a samurai society where strict rules are applied, Rinemon who finally implements his philosophy should be called a ‘free man’. Furthermore, even if Uzaemon has an indecisive personality, it goes without saying that he appears as a person with a similar weight to Rinemon. Uzaemon, who puts more emphasis on lord Shuri than family honor, does not try to change his attitude even though he is well aware that there is a contradiction in his ‘loyalty’. It’s because he doesn’t have the courage and determination like Rinemon. Therefore, it should be said that the tragedy of Shuri was already foreseen in the conflicting two characters of Rinemon and Uzaemon.

Key Words : Itakura Syuri, Maezima Rinemon, Danaka Uzaemon, loyalty, madness, loneliness

초록

본 연구에서는 󰡔충의󰡕의 주인공 슈리를 비롯한 마에지마 린에몬, 다나카 우자에몬 등 주요 인물 3명의 삼각구도를 살펴봄으로써 주인공 슈리가 맞이하는 비극이 과연 어떤 모습으로 제시되는지 그 실체를 고찰해 보았다.

이를 위해 먼저 󰡔충의󰡕가 발표되기 전인 1916년 전후를 살펴보면서 아쿠타가와의 일상이 어떻게 󰡔충의󰡕에 내재되어 있는지를 고찰해 보았다.

특히 󰡔충의󰡕에 앞서 발표된 전작 󰡔고독지옥󰡕과의 연계성을 살펴봄으로써 슈리의 고독과 불안 초조 고립감이 어디 에서 오는지를 구체적으로 파악해 보았다.

그리고 다시 슈리와 그를 보좌하는 2명의 가신 린에몬과 우자에몬을 대비시켜봄으로써 그의 고립감이 끝내 어떤 방향으로 변용되 어 파국을 맞이하게 되는지를 살펴보았다.

슈리의 신경쇠약과 발광에 대한 두려움은 아무도 그의 고통을 이해하려는 자가 없다 는 고립감에서 비롯되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이런 슈리가 끝내 파멸의 길로 갈 수밖에 없 없었던 것은 가신들의 ‘충’의 지향점에 대한 차이가 서로 맞물려 작용했기 때문이다.

아쿠타가와는 발광의 두려움 앞에 서있는 슈리 옆에 무엇보다 가문의 명예를 소중히 하면서도 맹렬하게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고자 하는 린에몬을 배치하였다.

엄격한 규율 이 적용되는 무사사회라는 것을 감안할 때 자신의 철학을 끝내 관철시키는 이런 린에몬 은 ‘자유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더욱 우자에몬 역시 우유부단한 성격이라 해도 린에몬과 동무게감을 지닌 인물로 등장하고 있음은 주지하는 대로이다.

가문의 명예보다는 주군 슈리에 더 주안점을 두고 있는 우자에몬은 자신의 ‘충’에 모순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태도변화를 시도 하지 않는다.

린에몬과 같은 용기와 결단력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로 상충하는 린에몬과 우자에몬 속에서 슈리의 비극은 이미 예견되어 있었 다고 해야 할 것이다.

키워드 : 이타쿠라 슈리, 마에지마 린에몬, 다나카 우자에몬, 충, 발광, 고독

韓日軍事文化硏究第38輯

◆접 수: 2023. 07. 10. ◆수 정: 2023. 08. 18. ◆게재확정: 2023. 08. 25.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의 『충의(忠義)』론 -‘충’을 둘러싼 군신 간의 삼각구도, 그 비극의 실체를 중심으로-.pdf
0.99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