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1. 머리말
2. 기동전의 정의와 수행개념
3. 기동전 사상과 미국의 전략문화 : 기동전과 소모전의 역학관계를 중심으로
4. 기동전 사상의 교리 반영과 의의 : 공지전투 교리형성을 중심으로
5. 맺음말
초 록
전간기 형성된 기동전 사상은 제2차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효용성이 증명되었고, 전쟁 종료 후 새로운 전쟁 수행 패러다임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에서는 기동전의 가치 와 효용성이 주목받지 못하였고, 대규모 물량을 중심으로 형성된 화 력소모전을 중시하는 전략문화가 형성되었다. 더욱이 2차세계대전 이후 핵무기의 출현에 따른 핵전쟁을 중시하는 경향은 작전술의 발 달을 상당 기간 저해했으며, 기동전의 필요성을 경시하게 하였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 이후 상대적으로 감소하는 국방예산과 상대적 으로 증가하는 소련의 기계화 전력에 대비하기 위한 새로운 교리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더불어 베트남전쟁 이후 급속도록 이루어진 RMA로 인해 부족한 전력을 보완하기 위한 최신식 무기체계와 기동 전력을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기동전의 효용성에 대한 담론이 미군 내에서 형성되었고, 1976년 적극방어 교리를 거쳐 1982년 공지전 교리가 탄생하게 되었다. 다만, 공지전 교리의 등장이 화력소모전 사상에서 기동전 사상으 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즉, 화력소모전과 기동전을 상호보완적으로 수행하는 절충적인 형태의 전쟁 수행 양상이 나타 났다.
주제어 : 기동전, 소모전, 군사사상, 공지전 교리, 적극방어교리
1. 머리말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한다. 인류 역사에 있어서 전쟁 은 인류의 생존 과정과 맥을 같이 해왔으며, 전쟁의 승패는 국가의 존망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고, 전쟁의 승패 요인은 군사부문 혁신 의 성공 여부에 따라 결정되어 왔다.
따라서 성공적인 전쟁 수행을 위한 각종 무기체계와 같은 유형적 전쟁수단과 전략․전술, 교리 및 전장 리더십과 같은 무형적 전쟁수단의 발전은 인류 문명의 발전과 비례하여 성장해왔으며, 이러한 맥락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쟁 수행에 관한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가 기동 또는 기동전 (Maneuver Warfare)이다.
대규모 기동을 통해 적군을 포위 섬멸하여 승리를 거두는 장엄한 전투장면부터 걸프전 이후 최첨단 무기체계 및 기동장비를 활용한 새로운 전쟁 수행 패러다임 변화의 근간에는 기동전 사상이 존재해 왔다.
그만큼 기동전은 전쟁의 역사와 궤를 함께하고 있으며, 전쟁 사 및 군사사상사 연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분야이다.
전간기 기간 제1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군사사상가들은 고속기동 전(전격전, Blitzkrieg), 공지작전, 공군에 의한 제공권 장악과 같은 다양한 전투수행 교리를 발전시켰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현대 기동전 사상의 근간이 되었던 풀러(J.F.C Fuller)의 마비전 사상, 리 델하트(Sir Basil Henry Liddell Hart)의 간접접근사상이 정립되었 고, 러시아의 군사사상가 스베친(Александр Андрее вич Свечин)에 의해 전략과 전술의 중간단계에 있는 작전 술 개념이 등장하였다. 1)
1) Guderian, Heinz., trans by Fitzgibon., Panzer Leader (New York : E. P. Dutton, 1957) ; Douhet, Giuli., The Command of the Air : Being an Essay on the Art of Aerial Warfare, with an Appendix Containing Elementary Notions of Aeronautics (Printing-Office for the use of the War Department, 1921) ; Fuller, J.F.C., The Foundations of Science of War (London: Hurchison & Co, LTD, 1926) ; Fuller, J.F.C., Tanks in the Great War, 1914-1918 (New York : E. P. Dutton and Company, 1920) ; Mitchell, William., Our Air Force: The Keystone to National Defense (New York : E. P. Dutton and Company, 1921) ; Sir Liddell Hart, Basil Henry., Strategy (New York : Meridian Book, 1991) ; Свечин, Александр Андр еевич, Эволюция военного искусства(М.-Л.: Во енгиз, 1928).
이처럼 전간기 기간 제1차 세계대전의 대량 소모전에 대한 성찰 과 새로운 신무기(전차, 비행기)의 미래전 수행 방안 등에 관한 다 양한 담론이 등장하였고, 이를 통해 기동전 수행을 위한 사상적 기 반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클라우제비츠의 “과거를 통해 미래를 명확 히 볼 수 있다는 것은 완전한 허구”라는 격언처럼2) 역사는 혁명적 인 발전으로 나아가는 분명하고 명백한 미래군사부문의 방향을 명 확하게 제시할 수 없었다. 3)
전간기 기동전에 대한 사상 및 교리적 발전은 이루어졌으나,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미국은 화력소모전에 의존하였고, 기동전 수행 의 중요성에 대해 비교적 낮게 평가하였다. 4)
2) Clausewitz, Carl Von, On War, Michael Howard and Peter Paret, eds. and trans.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84), p. 141.
3) MacGregor Knox, Williamson Murray, 김칠주, 배달형 역, 『강대국의 선택 : 군 혁명과 군사혁신의 다이내믹스』(서울 : 한국국방연구원, 2014), p. 276.
4) Aubin Stephen P and kells Jr., Robert E., Airland Battle Doctrine, Military Review(Washington, DC : Headquarters, Department of the Army, Oct. 1985), p. 52.
후술하겠으나, 이는 미국이 가지고 있는 국가적 특수성과 기동전 수행개념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인해 발생하였다.
한편 미국 기동전 사상에 관한 연구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최 근 미국의 군사문제에 관한 주요 연구 방향은 크게 두 가지의 흐름 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 방향은 전략 차원에서 미국의 안보 및 국방정책에 대한 고찰을 통해 한국의 군사안보에 미치는 영향 또는 함의를 도출하고 있다.5)
두 번째 방향은 미국의 군사혁신에 관한 연구로써, 군사혁신(RMA : Revolution in Military Affairs) 이후 미국의 군사·교리적 변화를 분석하거나, 새로운 전쟁수행 양상(모 자이크전, 4세대 전쟁 등) 연구를 통해 한국의 군사부문 발전에 관 한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6)
더불어 탈냉전 이후 걸프전과 이라크전에서 미군이 수행했던 전 쟁 수행 방식을 기동전 측면에서 분석한 정용주의 연구가 있으나, 7)미국의 기동전 사상의 흐름과 역사적 실체에 접근하는 연구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5) 조홍제, 「미국의 우주전략과 정책 : 우주의 군사적 이용에 관한 이론을 중심으로」, 『한국항공우주정책·법학』, vol 34-2 (2019) ; 김대성,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과 중국의 군사적 분쟁 가능성에 대한 연구 : 군사전략 분석을 중심으로」, 『한국과 국 제정치』, vol 32-4 (2016) ; 김태현, 「트럼프 시대 미국의 대중국 군사전략 : ‘경쟁 전략’과 ‘비용부과」,『국가전략』, Vol 26-2 (2020) ; 김태형,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미군의 군사전략 변화」, 『국방연구』, Vol 63-1 (2020) ; 강석율, 「트럼프 행 정부의 군사전략과 정책적 함의 : 합동군 능력의 통합성 강화와 다전장영역전투의 수행」, 『국방정책연구』, Vol 34-3 (2018) ; 김성한,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對 중 국전략 : 봉쇄에서 변환으로」, 『신아세아』, Vol 28-2 (2021).
6) 양욱, 「미국 군사혁신의 변천사 : 군사변환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군사혁신 과정」, 『세계 역사와 문화 연구』, Vol 58 (2021) ; 조한승, 「탈냉전기 미국 군사혁신 (RMA)의 문제점과 교훈」, 『평화연구』, Vol 18-1 (2010) ; 박상연, 「미국의 군사부 문 혁신(1977-1991)에 대한 RMA적 사후해석 극복 : 카터 행정부의 ‘상쇄전략’에 대한 기술 기회론적 분석을 중심으로」, 『국가안보와 전략』, Vol 19-1 (2019) ; 남 두현,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모자이크 전쟁」, 『국방연구』, Vol 63-3 (2020) ; 정연 봉, 「베트남전 이후 미 육군의 군사혁신(RMA)이 한국 육군의 군사혁신에 주는 함 의」, 『군사연구』, Vol 147 (2019) ; 이병구, 「이라크 전쟁 중 미국의 군사혁신 : 내 부적 그리고 외부적 군사혁신 이론의 적실성 검증을 중심으로」, 『군사』 Vol 91 (2014). 7) 정용주, 「기동전의 현대적 적용에 관한 연구 : 미국의 이라크전 초기 군사작전을 중 심으로」(국민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12).
본 연구는 전간기 기동전 사상이 체계화되는 이론적 배경을 살펴 본 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 기동전 대신 화력소모전이 전 략문화로 자리 잡게 된 이유에 대해 고찰하였다.
다음으로 1976년 및 1982년에 발행된 작전교범인 『FM 100-5 Operations』와 해당 기간 교리 변화 과정을 남기기 위해 미 육군교 육사령부(TRADOC)에서 발행한 『Historical Monograph Series』의 분석을 통해 미국의 군사교리 변화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미국식 기 동전 사상인 공지전투(AirLand Battle) 교리가 어떠한 과정으로 형 성되었는지 분석하였다.
본 연구는 문헌분석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연구의 객관성을 담보 할 것이며, 주로 교리가 형성되는 과정을 내러티브(narrative) 방식 을 사용하여 미군 내부에서 기동전 사상이 교리로 나타나는 과정을 서술하였다.
2. 기동전의 정의와 수행개념
1982년 공지전투 교리를 최초로 명시한 「FM 100-5 Operations」 에서 정의한 기동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8)
8) FM 100-5 Operations (Washington, DC : Headquarters, Department of the Army, 1982), p. 2-4.
Maneuver is the dynamic element of combat, the means of concentrating forces in critical areas to gain and to use the advantages of surprise, psychological shock, position, and momentum which enable smaller forces to defeat larger ones.
(기동은 전투의 역동적인 요소로 중요한 지역에 병력을 집중시 켜 적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세한 전력으로 우세한 적을 격퇴하기 위하여 기습, 심리적 충격, 위치 및 기세의 이점을 얻고 이용하는 수단이다.)
여기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기동전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적 보다 적은 전력으로 적을 격퇴하기 위해 ‘적의 군사력’이 아닌 ‘적의 심리적 붕괴’에 있다는 사실이다.
적의 심리적 붕괴를 지향했던 기동전의 원칙은 고대 군사사상가 였던 손자에 의해 최초로 형상화되었다.
일찍이 손자는 그의 병법서 『손자병법』을 통해 적과 싸우지 않고 이기는 ‘부전승(不戰勝)’ 9), 적 의 강점을 피하고, 약점을 공격하는 ‘피실이격허(避實而擊虛)’ 10)를 강조하였다.
아울러 원칙적인 공격으로 적의 전투력 격멸을 지향하 는 정공(正攻)과 변칙적이며 적의 허점과 심리적인 붕괴를 지향하는 기공(奇攻)의 개념을 제시하면서 원칙에 입각한 전투수행과 함께 전 장 상황에 따른 변칙적인 전투수행을 강조하였다. 11)
현대적 의미의 기동전 수행개념은 전간기(戰間期) 풀러(John Frederick Charles Fuller)와 리델하트(Sir Basil Henry Liddell Hart)에 의해 이론적으로 집대성되었다.
두 군사사상가의 사상은 제1차 세계대전 기간 가혹했던 소모전에 대한 철저한 비판과 성찰 에서 출발하였다. 12) 먼저 풀러는 1918년 5월 24일 연합군 사령부에 제출한 ‘Plan 1919’라는 보고서에서 ‘마비(Paralysis)’라는 용어를 최초로 언급했 다.
풀러는 “인간의 잠재적인 힘은 조직에 있으며, 결과적으로 조직을 파괴할 수 있다면 전쟁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라고 주장하면 서13) 사단급 이상의 지휘조직을 인체의 뇌와 중추신경으로 비유하고 이곳에 대한 결정적인 타격으로 적을 무력화시키는 ‘정신적 공격 (moral attack)’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4)
9) 원문 : 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손자병법 제3장 謀攻)
10) 원문 : 兵之形, 避實而擊虛, 水因地而制流 兵應敵而制勝(손자병법 제6장 虛實)
11) 원문 : 三軍之衆, 可使必受敵而無敗者, 奇正是也, 兵之所加, 如以碫投卵者, 虛實 是也(손자병법 제5장 兵勢)
12) 풀러와 리델하트는 영국군 장교 신분으로 제1차 세계대전에 직접 참전하여, 수없 이 많은 인명이 살상되는 전장의 실상을 직접 목격했다. 특히 리델하트는 독일군 의 독가스 공격으로 인해 심각한 부상을 입고 퇴역했다. 따라서 제1차 세계대전 의 참전 경험은 전간기 그들의 군사사상 발현에 중요한 경험적 요소가 되었을 것이다.
13) Brian Holden, Reid., J.F.C. Fuller : Military Thinker (London: MacMillan Press LTD, 1987), p.49.
14) Fuller, J.F.C., Machine Warfare (Washington D.C. : Infantry Journal, 1943), p.88
비록 풀러가 작성한 “Plan 1919”는 실제 발효되지 못한 채 제1차 세계대전이 종식되었지만, 풀러의 마비전 사상은 적 전투력 격멸을 위한 불필요한 물리적 소모전을 지양하는 대신 적의 핵심 지휘통제 시스템과 적대국의 전쟁 수행 의지를 마비시키는 방향으로 군사력 운용의 지향점을 제시하였다.
풀러와 함께 전간기 기동전 수행에 대한 사상적 지향점을 제시한 또 다른 군사사상가인 리델하트는 1916년 솜(Somme) 전투에 참여 하여 독일 및 영국군 수뇌부가 수행했던 창의력이 결여되고, 소모전 에 기반한 작전수행으로 수많은 병력이 살상되는 현장을 직접 목격 하였다.
그로 인해 그는 클라우제비츠의 ‘절대전쟁(absolute war)’ 에 기반한 결전(decisive battle)을 중시하는 섬멸전 사상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품게되었다. 15)
심지어 리델하트는 클라우제비츠를 ‘상호 간 대량 살육의 교주 (the Mahdi of mass and mutual massacre)’로 지칭하면서 절대 전쟁이 정치 행위에 예속되어야 하는 전쟁의 본질을 왜곡하여 정치를 전략의 노예로 만들었다고 혹평하였다. 16)
더불어 제1차 세계대 전 동안 클라우제비츠의 절대전쟁에 대한 지휘관들의 맹종이 자칫 미래 전쟁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발현될 수 있다고 우려했으며, 영국 전략문화가 변화되어야 할 필요성을 깊이 인식하였다. 17)
15) 이내주, 「근대 영국의 전쟁방식과 전략문화」, 『영국 연구』 제30호(2013), pp. 247-248.
16) Liddell Hart, Basil Henry., The Ghost of Napoleon(London : FABER & FABER LIMITED, 1933), pp. 120-121.
17) 이내주(2013), p. 249.
이러한 필요성을 바탕으로 리델하트는 1924년 ‘나폴레옹의 오류’ 라는 기고문을 통해 절대전쟁의 오류에 빠지게 만드는 나폴레옹식 전쟁수행 방식을 비판하였다.
그는 상대국을 섬멸하기 위해 국가의 총력을 소모하는 나폴레옹과 클라우제비츠식 전쟁 수행 방식은 전 쟁의 정치적 속성을 무시하고, 국가의 정책과 미래를 파괴하는 자멸 행위로 규정했다. 18)
반면 리델하트는 제2차 포에니 전쟁 기간 이탈리아에서 활약하던 한니발 부대와의 직접 교전을 회피하고, 카르타고 본국을 공격하여 한니발 부대를 이탈리아에서 스스로 물러나게 했던 스키피오 아프 카누스(Scipio Africanus)의 자마전투(Battle of Zama, BC 202 년)에 주목했다.19)
자마전투의 교훈을 통해 그는 미래 영국군이 지 향해야 할 군사사상 핵심 개념으로 적 부대와 직접적인 교전을 회 피하고, 적의 취약점을 돌파하여 전쟁 수행 의지 자체를 말살하는 ‘간접접근(indirect approach)’ 개념을 주창하게 되었다.20)
18) Alex Danchev, Alchemist of War : The life of Basil Liddell Hart (London : Weidenfeld & Nicolsen, 1993), pp. 161-162.
19) Liddell Hart, Basil Henry., Scipio Africanus : Greater Than Napoleon (New York : Da Capo Press, 2004).
20) 다만 리델하트의 군사사상이 기동전 사상의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기 존의 통념에 대해 미어샤이머(John Mearsheimer)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저서와 논문을 참고하기 바란다. Mearsheimer, John., Liddell Hart and the Weight of History (Ithaca, New York : Cornell University Press, 1988) ; 류한수, 「“결백한 독일국방군” 신화 의 산파 바실 리델 하트 : 한 군사학 구루의 명예와 제2차 세계대전의 진실」, 『大丘史學』 제130호(2018. 2).
지금까지 살펴본 손자와 풀러, 리델하트의 군사사상의 특징을 살 펴보면 크게 4가지로 압축될 수 있다.
첫째, 대규모의 병력이 직접 부딪혀서 시행하는 결전(decisive battle)을 회피하고,
둘째, 적의 핵심 지휘통제시스템과 상대국의 전쟁수행 의지의 붕괴를 전쟁 수 행 지향점으로 설정하며,
셋째, 전장의 마찰(friction) 요소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지휘관 및 참모의 지휘통솔 능력 즉, 임무형 지휘를 중시했다.
마지막으로 앞에서 언급한 3가지의 조건을 달성 하기 위해 보다 신속한 작전템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때 신속한 작전템포를 갖추기 위해서는 전투부대를 기동화시켜 기동력을 갖추고(Hardware), 상대국의 허를 찔러 심리적 붕괴가 가능하도록 지휘부의 신속한 의사결정과 지휘체계 구현을 위한 지 휘 및 정보시스템을 구축하는 소프트웨어(Software)가 절묘하게 결 합해야만 한다.
전간기 풀러와 리델하트의 군사사상은 나폴레옹과 클라우제비츠 식 결전 및 섬멸전 사상과 장기간 지속되는 물리적 소모전에 대한 비판과 반성에서 출발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단 한 번의 전투에서 수십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참호전을 경험한 전간기 군사사상가들은 큰 심리적 충격을 받았으며, 최소의 희생과 소모로 단기간의 전투를 통해 전쟁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했다.21)
21) 본 연구에서는 다루지 않았으나, 현대 기동전 사상을 체계화했던 또 다른 사상가 로 소련의 트리안다필로프(Vladimir Kiriakovitch Triandafillov)와 투하체프스 키(Mikhail Nikolayevich Tukhachevsky)가 있다. 이들의 기동전 사상 역시 제1 차 세계대전의 소모전과 진지전 사상에 대한 비판과 반성에서 출발하였으며, 기동 전력을 바탕으로 한 상대국의 심리적 파괴와 전차 및 기계화부대의 충격력을 활용 한 종심기동을 강조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서적을 참고하기 바란다. V. K. Triandafillov., trans by Kent E. Lee., The Nature of the Operations of Modern Armies (New York: Routledge, 1994) ; Harrison, Richard W., Architect of Soviet Victory In World War Ⅱ : The Life and Theories of G.S. Isserson (North Carolina : McFarland & Company, Inc., 2010) ; Simpkin, Richard E., Deep Battle : The Brainchild of Marshal Tukhachevskii (London : Brassey's Defence, 1987) ; Glantz, David M., Soviet Military Operational Art : In Pursuit of Deep Battle (New York : Frank Cass, 1991).
더불어 제1차 세계대전 중반 이후 전장에 등장한 전차와 항공기 라는 당시의 첨단 기동 전력과 임무형 지휘체계 및 효율적인 통신 시스템 구축으로 ‘기동전’이라는 구체적인 작전술 형태로 형상화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영국의 사상가들이 정립했던 기동전 사상은 독일 군사지도자 그룹에 의해 적극적으로 수용되었다.
이들의 사상은 전간기 젝트(Hans von Seeckt)와 구데리안(Heinz Günther Guderian)에 의해 전격전(Blitzkrieg)이라는 작전술로 구 현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초기 독일의 군사적 승리의 원동력이 되었다. 이후 기동전은 현대 군사사상 분야에서 가장 큰 가치로 등 장하게 되었다.
3. 기동전 사상과 미국의 전략문화 : 기동전과 소모전의 역학관계를 중심으로
가. 기동전과 소모전의 역학관계에 관한 고찰
기동전에 대한 일반적인 통념은 단순한 적 전투력의 격멸이 아니 라 기동력, 지형, 화력 등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초기 기선을 제압한 후 전략 및 작전적으로 중요하거나 취약한 지점, 즉 중심 (Center of Gravity)을 타격하여 적의 전투 의지를 말살시키는 전 쟁수행방식이다.
따라서 기동전을 심리전 또는 마비전으로 표현하기 도 한다.
한편 속도를 강조하는 의미에서는 속전속결전, 운동전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기동전 사상이 작전술 및 교리적 차원으로 형상화 되어 전격전(blitzkrieg), 입체고속기동전, 공지전투(AirLand Battle) 등으로 표현된다.
소모전은 기동전과는 상반된 전쟁수행 방식으로 상호 모순적인 대립관계에 있으면서도 상호보완적인 원칙을 이루고 수행되는 관계 이다.
일반적인 알려진 기동전은 적의 공세를 정면에서 견제 및 고착시키고, 기동부대가 입체적으로 우회 기동하여 적의 측면 또는 후 방을 공격하여 적의 중심(Center of Gravity)을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수행된다. 22)
반면 소모전(Attrition Warfare)은 적 전투력의 격멸(destruction of enemy's mass)을 통해 승리를 추구하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적을 먼저 전투에 끌어들인 후 현 전투 또는 차기 전투에서 적을 격멸하기 위해 상향식(bottoms-up)으로 작전을 구상한다.
아울러 실제 또는 예상되는 수적·물질적 우위를 나타내는 ‘초기 전투력 비 율(initial-force ratios)’과 전투에 따른 인적 및 물질적 ‘손실률 (loss ratios)’과 초기 전투력의 비율에 대한 손실률의 ‘교환비율 (fractional exchange ratios)’을 중시한다.
따라서 소모전은 적보다 적은 손실률을 유지하면서 전투력의 비율을 향상하기 위한 ‘대수학(algebra) 논리’를 중시하며,23)
상대 전투력의 지속적인 소모를 강요함에 따라 더는 전쟁을 수행할 수 없도록 만들어 승리를 쟁취 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심킨(Richard E. Simpkin)의 주장처럼 소모전을 통한 군사적 승리의 의미는 적의 전투력(병력, 전투차량, 화기 등)을 격멸하는 것이며, 무형적 요소(사기, 주도권, 리더십 등)는 소모전 수행을 위한 ‘전투력 상승효과(force multipliers)’에 불과하며, 기동은 ‘전투를 위한 이동’ 정도로 고려되었다. 24)
22) 유재갑, 「군사전략·전술의 이론과 실제 : 작전술·작전수준의 전쟁·대전략」, (월 간국방 제3월호, 1993), p. 123.
23) Robert Leonhard (1994), p. 19.
24) Robert Leonhard (1994), p. 19 ; Simpkin, Richard E., Race to the Swift: Thoughts on Twenty First Century Warfare Vol. 1 of Future Warfare Series, 3 vols (London: Brassey's Defence Publishers, 1985), p. 20.
심킨이 주장한 화력소모전(firepower-attrition)의 가장 단적인 예가 1916년 8월 29일 발생한 베르됭전역(Campaign at Verdun) 이었다.
당시 독일 육군참모총장이었던 팔켄하인(Erich von Falkenhayn)은 전역의 목적을 ‘프랑스인들을 피 흘리게 하는 것(to bleed France white)’으로 정하였다.
그는 베르됭의 지형을 이용하여 프랑스 예비전력을 유인한 후 월등한 화력으로 섬멸하고자 하였 지만, 독일의 자원 부족과 프랑스군이 입은 피해 만큼 독일군에게도 많은 사상자가 발생함에 따라 결국 실패하였다. 25)
베르됭전역은 슐리펜계획 실패 후 독일군이 시행한 유일한 공세 전이었지만, 대규모 소모전 시행 결과 독일군은 33만 6,000명, 프 랑스군은 30만 2,000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으며, 전역 이후 연합 군이 전장 주도권을 차지한 반면 독일은 수세에 몰리게 되었다.
더 불어 동부전선에서는 전년도 손실을 회복한 러시아군이 공세로 전환하여 독일의 동맹국인 오스트리아-헝가리를 상대로 진격하기 시 작했다. 26)
이러한 소모전의 국면에서 전반적인 전쟁 수행 양상은 기동성과 융통성을 포기함에 따라 발생하는 공백을 화력에 의존하는 모습으 로 나타났다.
소모전에서 의미하는 군사적 승리는 적의 전투력을 누진적인 화력으로 격파하여 적이 더는 전쟁 수행이 불가피한 상황이 되어 후퇴 또는 항복을 하거나, 화력에 의해 적 전투력이 완전히 격멸될 때 승리를 거두는 것으로 정의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기간 소모전 수행의 중심에는 포병이 존재하였 고, 포병은 곧 지루한 소모전과 밀접하게 동일시되었다. 27)
25) Stokesbury, James L., A Short History of World War I (New York: William Morrow and Company, Inc., 1981), pp. 142, 145, 147-48.
26) Maj. Chamberlain, Robert., U.S. Army, The Mud of Verdun Falkenhayn and the Future of American Land-power, Military Review, July-August 2016, pp. 83-84.
27) Mearsheimer, John., Liddel Hart and the Weight of History (Ithaca, New York : Cornell University Press, 1988), p. 30 ; 정용주, 「기동전의 현대적 적 용에 관한 연구 : 미국의 이라크전 초기 군사작전을 중심으로」, (국민대학교 석사 학위 논문, 2011), p. 6.
즉, 제1차 세계대전 기간 소모전 수행의 핵심 개념은 강력한 화력으로 적의 출혈을 강요하는 ‘화력전(Fire Combat)’이었다.
풀러(J.F.C. Fuller)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각 군이 시행했던 전술의 양상이 B.C. 15세기 스파르타군 수준으로 회귀했다고 주장하 면서, 상대의 참호를 돌파하기 위해 대규모의 화력이 활용되었던 참 호전을 소모전으로 규정하였다.
그는 화력에 의한 거대한 인명 및 경제적 손실과 비교 시 미비한 군사적 성과를 가져오는 소모전에 대한 두려움이 결국 전쟁지도부들과 정치집단을 매우 소극적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하였다. 28)
이처럼 화력을 주요 수단으로 활용하는 소모전은 전술 및 작전술 의 후퇴와 함께 전략적 위축을 가져오게 했다.
따라서 전간기에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자연스럽게 기동전이 주목받게 되었 다.
종합하면 현대 기동전 사상의 배경은 소모전의 비합리성을 극복 하기 위해 상호 모순된 기동전의 ‘기동’과 소모전의 ‘화력’을 상호보 완하는 과정이었다.
사실 기동과 화력은 서로 배치되면서도 상호보 완되어야만 시너지 효과가 발생하는 관계이다.
같은 맥락에서 초대 미 육군교육사령관을 역임하고, 공지전투 (AirLand Battle) 교리 정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드푸이 (William Eugene DePuy)는 전장에서 기동과 화력의 우선순위를 둘러싼 논쟁은 불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전장에서 시행되는 기동전은 지휘관의 교리적 선택이 아닌 전투 결과 발생하는 획득된 이익(earned benefit)이라고 주장했다. 29)
28) Fuller, J.F.C., The Conduct of War : 1789~1961 (New York : Da Capo Press, Inc, 1961), p. 166,
29) Colonel Swain, Richard M., Selected Papers of General William E. DePuy (Fort Leavenworth, Kansas : Combat Studies Institute. U.S. Army Command and General Staff College, Jan 1995), p. 452.
그는 기동전(기동)과 소모전(화력)은 상호 독립된 별개의 영역이 아니라 전장의 다양한 상황에 따라서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는 양 면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으며, 우선순위를 논하여 작전에 적용해야 할 모순된 요소가 아닌 상호보완적인 요소라고 보았다.
그의 주장처럼 전장의 핵심 요소인 기동과 화력은 순수한 형태로 존재하지 않 고, 각각의 독립적인 영역 안에서 상호 영향을 주는 형태로 전쟁의 승패에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미 육군지휘참모대학(The United States Army Command and General Staff College)의 고등군사학교(The School of Advanced Military Studies, SAMS) 초대 교장이었던 후바 와스 드 체게 (Huba Wass de Czege)는 화력과 기동에 대해 실제 전장에서는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지만, 학문적 편의성을 위해 만들어놓은 극 단으로 치우친 개념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30)
심킨(Richard E. Simpkin)의 경우 기동전과 소모전의 관계를 전투력의 이분법 측면에서 설명하고 있다.
전투력 이분법은 손자병 법 제5장 병세(兵勢)편에 나온 개념과 유사한데, 대규모 병력이 동 원된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병력을 분리하여 기정(奇正)의 전 술을 사용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여기에서 정공(正攻)의 의미는 적 의 정면에서 일반적인 공격을 감행하는 행위를 의미하고, 기공(奇 攻)의 의미는 측면 및 후방에서 기습공격을 하는 행위를 의미한 다.31)
심킨은 이러한 이분법을 기동전의 필수요소로 보았다.32)
30) Major Anastas, Kevin P., The American Way of Operational Art : Attrition or Maneuver? (Fort Leavenworth, Kansas : School of Advanced Military Studies United States Army Command and General Staff College, 1992), p. 6.
31) 손무, 유동환 옮김 『손자병법』(서울 : ㈜ 홍익출판사, 2013), pp. 102-103. 32) Simpkin, Richard E., Race to the Swift: Thoughts on Twenty First Century Warfare Vol. 1 of Future Warfare Series, 3 vols (London: Brassey's Defence Publishers, 1985) p. 37.
그는 기동전 수행부대가 작전 성공을 위해 적의 정면에서 적을 고착 및 견제하기 위한 정공(正攻)부대와 적의 측면 및 후방으로 기 동하여 결정적 작전을 시행하는 기공(奇功)부대의 조화가 이루어져 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동부대가 기동전 이론에 따라 작전을 수행하는 동안 고착 및 견제부대는 전통적인 소모전 개념에 따라 전투를 수행해야 한다고 보았다.33)
부연하면 기동과 소모의 절묘한 조화는 기동전 수행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실제 전쟁에서 발현되는 기동과 화력 은 각각 독립적으로 발현되지 않을 뿐 아니라, 정치적인 상황, 지휘 관의 결심 등의 이유로 동시에 발현되기도 한다.
따라서 기동과 화 력은 전쟁 수행 간 독립적이면서 상호보완적으로 수행해야만 하는 모순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기동전을 수행하는 동안 동시에 적용되 어야만 한다.
결과적으로 현대 기동전 사상과 기동전 수행 개념은 각각 상반된 요소인 기동과 화력이라는 정명제(테제, thesis)와 반명제(안티테제, antithesis)가 변증법적으로 합치되어 합명제(진테제, synthesis)로 나타나게 된 결과이다.
나. 미국의 소모전 중심의 전략문화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전 세계적으로 기동력과 화력을 통해 적을 물리칠 수 있는 부대구조 개편과 제1차 세계대전 기간 참호전으로 인해 상실한 기동성을 회복하기 위한 다양한 실험이 이루어졌으며, 전간기 미국에서도 기동과 화력의 조화를 위하여 전술 및 교리의 타당성에 관한 다양한 군사적 실험이 시행되었다. 34)
이 실험을 통해 미국의 전쟁기획자들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기동성이 뛰어나도록 설계된 지상군을 구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때 형성된 기동 기반 전력구조를 바탕으로 제2차 세계대전 후반이었던 1944년 미군은 유럽 전역에서 추축국에 맞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기동전 기반의 소멸전략(strategy of annihilation)을 수 립하였다.35) 하지만 유럽 전역에서 이 전략을 수행하기 위해 행해 진 미군의 실질적인 작전술 양상은 제1차 세계대전 기간 시행된 소모전 모델과 매우 흡사하게 발현되었다.
한 예로 연합군이 유럽대륙에 상륙하여 독일 진격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해 시행하였던 노르망디 상륙작전(Operation Overlord) 은 당시 연합군 사령관이었던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 에 의해 대규모 기동전을 통한 포위작전 형태로 계획되었다고 알려 졌지만, 실제로는 기동전 양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저명한 군사사학자인 러셜 웨이글리(Russell Weigley)는 노르망 디에서 행해졌던 연합군의 작전 행태를 “독일군을 기동전을 통해 섬멸하는 것이 아니라 센강(The Seine)과 르와르강(The Loire) 사이의 진출선까지 독일군을 밀어내는 것”이었다고 주장하였다.
그에 따르면 작전 시행 전 계획된 전략과 실제 행해진 작전 시행 간에 불일치가 발생했다. 36)
35) Weigley, Russell F., Ejsenhower's Lieutenants : The Campaign of France and Germany 1944-45 (Bloomington In: Indiana University Press, 1981), pp. 8-10, 359.
36) Russell F. Weigley (1981), p. 70.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연합군은 독일군을 포위하고 파괴하는 전략적 목표를 시행하지 못한 결과 독일군 지휘관들은 연합군 공세가 이루어질 때 그들의 전력을 온전히 빼내어 후방지역으로 후퇴할 수 있었다.
실례로 당시 노르망디 지역에 배치되었던 독일 제346보병 사단장은 “사단이 포위될 위기에 처했지만, 연합군의 소극적인 기동 으로 인해 야간 철수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라고 회고하였다. 37)
아울러 연합군이 수행한 작전형태를 살펴보면 소극적인 작전 수 행 모습이 나타난다.
실례로 노르망디 해안을 지나 아브랑슈 (Avranches)를 통해 프랑스 내륙지역으로 진군하던 패튼(George S. Patton)장군의 제3군 예하 제4기갑사단장 존 셜리 우드 장군 (John S. Wood)은 동쪽으로 종심기동을 통해 독일군을 포위할 수 있었으나, 포기해야만 했다고 회상하였다. 38)
그 이유는 기동전의 상징과 같았던 패튼이 아이러니하게도 기동을 통해 적의 주력을 포위섬멸하는 대신 서부로 돌아가라고 명령했기 때문이었다. 39)
결과적으로 노르망디에서 미군은 기동전 수행을 위한 준비가 미 흡했으며, 결정적으로 기동전에 적합한 교리가 부재하였다.
아울러 연합군 수뇌부의 지나친 정치적 고려가 군사적 효율성에 입각한 지 휘관들의 결정과 실행을 막았다.
즉, 아이젠하워는 기동전을 통한 적 주력에 대한 포위섬멸이 아니라 광범위한 전선을 차근차근 점령해 나가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리고 기동전 사상의 핵심 수행 원리인 적의 심리와 중심 파괴를 무시하고, 적 전투력에 대한 물리적 파괴 및 지역 점령에 집착하면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소모전 모델 에 부합한 전쟁 수행 양상이 재현되었다. 40)
37) Major Kevin P. Anastas(1992), pp. 13-14.
38) Russell F. Weigley (1981), p. 180.
39) Baldwin, Hanson W., Tiger Jack (Fort Colins, CO : The Old Army Press, 1979), p. 42.
40) Major Kevin P. Anastas (1992), pp. 17-20.
소모전 중심의 작전술 양상이 미군에게 나타난 이유를 살펴보면 기동전의 개념에 대한 오해와 함께 미국의 국가적 특성에서 비롯되 었다.
전투 결과 발생하는 ‘적 전투력의 섬멸’에는 적의 전투력 자체 에 대한 ‘물리적 파괴(Destruction)’와 적의 전투 의지에 대한 ‘심리 적 파괴(Dislocation)’가 있는데, 기동전은 후자인 심리적 파괴를지향하고 있다.
심리적 파괴는 현대 기동전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던 리델하트의 간접접근 전략과 풀러의 마비전 사상에 근거하고 있으며, 전략적 목 적을 달성하기 위해 짧은 시간 동안 적의 측방 및 후방으로 종심 깊게 기동하여 적의 심리적 저항을 무너뜨려야만 한다.41)
그러나 미국은 섬멸의 개념을 오해함에 따라 ‘소모전’ 중심의 전 략문화를 만들어냈다.
심킨에 따르면 클라우제비츠의 섬멸 (Vernichtung)의 개념은 적 전투력에 대한 ‘파괴(Destruction)’와 적 지휘체계에 대한 ‘교란(Dislocation)’을 모두 포함한다.
그러나 미국의 군사학파는 섬멸(Vernichtung)을 파괴(Destruction) 그 자체로 이해하였으며, ‘화력’을 적의 전투 의지를 꺾기 위한 핵심 수단 으로 인식하는 경향을 보이게 되었다.
반면 독일과 러시아 군사학파는 섬멸(Vernichtung)을 교란(Dislocation)으로 인식하는 경향을 보였다.
아울러 미국은 거대한 영토에서 생산되는 물량과 풍부한 국내 인적·물적 자원으로 잠재전력(潛在戰力)을 현존전력으로 여유 있게 전환할 수 있는 국가적 특성이 있었다.
그 결과 미국은 풍부한 인력과 물량에서 발현되는 압도적인 기술 및 무기체계를 바탕으로 화력을 주요 수단으로 하는 소모전을 통해 제1·2차 세계대전에서 승 리할 수 있었으며,42)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고유한 전략문화 로 자리 잡게 되었다.
41) Swain, Richard M., "B. H. Liddell Hart and the Creation of a Theory of War, 1919-1933," Armed Forces & Society, Vol. 17, No. 1, Fall 1990, p. 43.
42) 육군교육사령부, 『한국전의 기동전 분석』(계룡 : 육군 인쇄창, 1996), pp. 53-55
4. 기동전 사상의 교리 반영과 의의 : 공지전투 교리형성을 중심으로
가. 미 작전 교리(FM 100-5 ‘Operations’)의 변천 과정
냉전기 들어서 기동전 사상은 대량의 재래식 무기를 갖춘 기동화 된 대부대를 격파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교리의 성립에 활용되 었다.
1970년대 들어 미국은 국방예산의 제한, 소련의 재래식 전력 증강,43) 1975년 소련을 대리한 쿠바의 앙골라(Angola) 개입을 시작으로 본격화된 아프리카, 중동, 중남미에서의 소련 영향력 증대와 베트남전의 패배와 철수에 따른 정치적 영향 등 국내외적인 정치 및 안보 상황의 변화에 따른 위기의식이 팽배했다.
이뿐만 아니라 미국은 베트남전쟁 기간 군의 규모 확대에 국방예산의 많은 부분을 지출함에 따라 무기체계 개발에 큰 차질을 빚게 되었다.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소련은 상대적으로 전투 장비의 질적 향상을 가져올 수 있었다.
더불어 1973년 발생한 욤 키푸르(Yom Kippur War) 전쟁 결과 도출된 교훈은 전술 및 훈련체제의 개혁에 큰 영향을 미쳤다.44)
43) 1970년대 유럽에서 전쟁이 발발 시 미국은 나토군 1개 사단 정면으로 후속 제대 까지 포함하여 약 1,200대의 바르샤바조약기구군의 전차가 투입될 것으로 추산하 였다. 따라서 당시 미국은 적극적인 방어(Active Defence)를 위해 가용전력을 활 용하여 적 1제대를 무력화시키는 초전(First Battle)에서의 승리를 강조했다. FM 100-5 Operations(Washington, DC : Headquarters, Department of the Army, 1976), pp. 5-2, i and I-I.
44) Romjue, John L., TRADOC Historical Monograph Series : From Active Defense to AirLand Battle: The Development of Army Doctrine, 1973-1982 (Fort Monroe, Virginia : United States Army Training and Doctrine Command, JUNE 1984), pp. 1-2 ; Romjue, John L., TRADOC Historical Monograph Series : The Army Of Excellence - The Development Of The 1980s Army, (Fort Monroe, Virginia : United States Army Training and Doctrine Command, JUNE 1997), pp. 1-3.
이러한 안보정세와 전쟁 수행교리의 변화는 미 육군 야전교범 ‘FM 100-5 Operations’에 반영되었으며, 공지전투교리 형성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FM 100-5의 변천 과정에 대해 살펴보아야 한다.
미 육군 야전교범 ‘FM 100-5 Operations’은 「야전복무령」부터 「작전요무령」에 이르기까지 미 육군의 작전, 전투에 관한 기본적인 교리를 기술하고 있다.
이 교범은 1950년대부터 안보환경의 변화에 맞추어서 핵심 교리를 중심으로 개정하였는데 1963년대부터 1982년 공지전투 교리가 반영되기까지 총 4회의 개정이 있었다.45)
<표 1> 미 육군 야전교범(FM) 100-5 Operations 개정 현황
시 기 핵심 교리 의제
1963년 야전복무령(Field Service Regulation : FSR)
1968년 야전에서의 육군부대 작전(Operation of Army Forces in the Field)
1978년 적극방어(Active Defence)
1982년 공지전투(AirLand Battle : ALB)
1982년 공지전투 교리가 처음 반영된 ‘FM 100-5 Operations’를 살펴보면 70년대의 정치 및 안보환경의 변화는 미군의 지상전 수행 방향에 대한 대대적인 재검토가 이루어지면서 지상군 교리의 획기 적인 변화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교리 변화는 베트남전쟁의 상징과도 같았던 헬기에 의한 보병의 공중기동전(infantry-airmobile warfare)의 종식에 따른 새로운 보병 기동방안 모색에서부터 미국의 전략적 이익 지역과 서유럽에서의 재래식 전쟁 수행 범위 안에 서 이루어졌다.46)
45) 조상태, 「미 육군의 FM 100-5에 있어서의 공지전」, 『國防과 技術(Defense and Technology)』(1985), p. 31.
46) John L. Romjue(JUNE 1984), p. 3.
아울러 1973년 발생한 욤 키푸르 전쟁 분석을 통해 현대무기체계 의 치명성, 제압전술(suppressive tactics)의 본질, 지형지물의 활 용, 위장, 진격로, 제병협동부대 사이의 협조체계가 강조되었다.
미 육군교육사령부(TRADOC)는 각 병과학교의 의견을 수렴하는 한편 1974년 10월 1일부터 2일까지 미 전력사령부(FORSCOM)와 합동으 로 교리 세미나가 개최되었다(Octoberfest briefings).
1975년에는 전년도 10월에 열렸던 교리 세미나에서 다소 의미가 퇴색하였던 공중기동(airmobile)과 기갑 및 기계화전에 대한 편협한 인식이 반영되었다는 우려를 종식 시키기 위해 1975년 10월 8일부 터 9일까지 미 육군교육사령부와 전력사령부는 텍사스주 포트후드 (Fort Hood)에서 지휘관 회의를 개최하였다.
이때 미 전술공군사령관(the Tactical Air Command) 딕슨(Robert J. Dixon)과 미 육군교육사령관 드푸이(William E. Depuy)는 공역관리절차 등 공지 전투에서 전술공군에 의해 수행되는 핵심 역할들을 새로운 교리의 핵심 주제로 선정하였다.
더불어 교리 작성 책임이 미 제병협동본부 (the Combined Arms Center at Fort Leavenworth)에서 미 육군교육사령부 교리부로 이전되면서, 당시 미 육군교육사령관이었던 드푸이의 주관으로 작성될 수 있었다.
이 새로운 교리는 독일로부터 자문받았고, 나토 동맹국은 물론 퇴역한 장성들의 다양한 의견이 반영되었으며, 1975년 말 초안이 완성되어 동년 12월 10일 개최된 육군 지휘관 회의에서 주요 지휘 관들에게 공개되었다.
이후 최종 수정과정을 거친 뒤 1968년 발행 되었던 ‘FM 100-5’를 대신하여 ‘How-To-Fight’ 에 중점을 둔 개 정된 ‘FM 100-5’가 1976년 7월 발행되었고, 미 육군의 기본 작전 교리가 되었다. 47)
47) ibid, pp. 3-5.
1976년 발행된 ‘FM 100-5’의 교리적 특징을 살펴보면 무기체계 치명성의 증가, 소련이라는 현실적인 위협과 안보 및 정치적 흐름의 변화에 따른 현실적인 교리 도입의 필요성으로 인한 화력 중시 교 리와 맞춤형 기동교리의 결합으로 볼 수 있다.
즉, 본 교리에서 기 동의 의미는 적절한 시간과 장소에 집중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 었고, 전반적으로 방어적 개념에 충실하였다.48)
전통적인 기동전 사상의 지향점은 방어보다는 공격을 지향하고 있다.
하지만 소련의 압도적인 기갑전력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열세한 기갑전력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FM 100-5(1976)는 적극방어 (Active Defence)를 강조하면서 공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엄격하게 제한하였다. 49)
Commander should attack “only if he expects the outcome to result in decisively greater enemy losses than his own, or result in the capture of objectives crucial to the outcome of the larger battle."
(지휘관들은 결정적으로 아군의 손실보다 적군의 손실이 더 클 것으로 예상하거나, 결정적인 작전 목표를 획득할 수 있다고 판 단할 때에만 공격을 감행해야 한다.)
반면 방어 측면에서는 1개 사단 축선으로 약 25개 대대로 구성된 바르샤바조약기구군의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6∼8개 대대를 전선의 1/5에 집중하고, 남은 전선은 항공 및 기갑전력, 공격형 헬기부대로 방어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더불어 주 전투지역 전방에서 적의 공세 기도 및 방향, 전력을 파악하기 위한 엄호부대(covering force)50) 운용개념을 제시하였다. 51)
48) ibid, p. 11.
49) FM 100-5 Operations (Washington, DC : Headquarters, Department of the Army, 1976), pp. 4-3.
50) 엄호부대(Covering Force)의 군사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① 적이 피 엄호부대 본대를 공격하기 전에 적을 차단, 교전, 지연, 와해 및 기만 할 목적으로 본대로부터 떨어져서 독립적으로 작전을 수행하는 경계부대
② 공격작전형태 중 접적전진의 경우 최선두에서 정찰을 통해 적을 찾아 접촉을 유지하고, 상황을 발전시킴으로써 본대가 가능한 최적의 조건하에 전개하여 전 투를 수행할 수 있도록 경계를 제동하는 경계부대 출처 : 합동참모본부, 『합동교범 10-2, 합동・연합작전 군사용어사전』, 2014.
51) FM 100-5 Operations(Washington, DC : Headquarters, Department of the Army, 1976), pp. 5-1 ~ 5-4.
1976년 성립된 적극방어(Active Defence) 교리는 적의 대규모 기계화 부대가 공격할 때 압도적인 화력을 활용한 적극적인 방어전 투를 통해 적의 손실을 강요한 후, 기동전력을 활용한 역공을 감행 하여 전쟁 주도권을 장악한 다음 결정적 성과를 거두는 개념의 교 리로 평가할 수 있다.
요컨대 이 새로운 교리는 화력소모전을 중시 하는 미국의 전략문화와 중동전과 베트남전쟁을 통해 도출된 기동 전 개념이 역동적으로 반영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나. 적극방어 교리 비판과 공지전투(ALB) 교리 성립
1976년 개정된 교범은 기존 교리와 비교 시 적(敵) - 소련군과 바르샤바조약기구군-을 명시하고, 소련군의 군사 능력과 무기체계 에 대해 비교적 명확하게 명시하는 등52) 당시로써는 매우 획기적인 교범이었다.
그러나 1976년 교범의 핵심 교리였던 ‘적극방어(Active Defence)’교리에 대한 여러 가지 비판이 제기되었다. 1979년 6월 미 육군성 작전기획참모부장(Deputy Chief of Staff for Operations and Plans in the Department of the Army) 메이어(Edward C. Meyer)53)는 교범 개정 당시 미 육군교육사령관 스태리(Donn A. Starry)에게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문제점을 제 기했다.
52) 조상태(1985), p. 31.
53) 당시 메이어는 제29대 미 육군참모총장으로 내정되어 있었다.
첫째, 중부유럽에서 바르샤바조약기구 군과의 전쟁을 상정하여 만들어진 교범이다 보니 유럽 이외의 지역 즉 전 세계적으로 적용 할 수 있는 보편적인 교리로서 제한된다는 점이다.
마이어는 중부 유럽에서의 전쟁이 미국의 핵심이익에 영향을 미치지만, 유럽 이외 의 지역에서 전쟁 발생 가능성이 더욱 크다고 보았다.
둘째, 적극방어는 바르샤바조약기구군의 1제대 공격 격퇴에 중점 을 두다 보니, 2제대 공격의 격퇴에 대한 교리 준비가 부족하였다 는 점이다. 54)
54) 새롭게 육군참모총장으로 취임한 메이어 장군은 1976년 교리에 대한 재검토를 육 군교육사령부, 포병학교 및 각 병과학교 등에 지시하였다. 이때 교리 검토의 핵심 은 압도적인 바르샤바조약기구 군의 제2제대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그들이 보 유한 막강한 화력과 압도적인 숫자의 병력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작전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종심차단작전(deep interdicting operations)이 교리 연구의 핵심의제가 되었으며, 이를 위해 화력(firepower), 기동(maneuver), 그리고 공지전투력의 관계(the air-land forces relationship)가 이슈화되었다. John L. Romjue(June 1984), p. 32.
특히 바르샤바조약기구 군의 재래식 전력은 물론 전 술핵과 화학전 감행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1979년 10월 11일 미 교 육사령부에서 개최한 ‘twenty-star meeting’에서 이에 대한 대응 책이 심도 있게 논의되었다.
이 회의의 주요 핵심 의제 중 하나가 바로 공지전투에 대한 교리적 검토였다.
이 회의에는 육군참모총장 메이어(Edward C. Meyer), 교육사령관 스태리(Donn A. Starry)와 공군 참모총장 알렌(Lew Allen, Jr), 전술항공사령관 크리취(Tactical Air Command Commander, Wilbur L. Creech)를 비롯한 육군과 공군본부 핵심 지휘관 및 참 모들이 대거 참석하여 공지합동교리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 했다. 1979년 12월 18일부터 19일까지 미 육군포병학교(Fort Sill)에서 열린 제3차 ‘the Nuclear Systems Program Review’에서 전술핵 옵션을 포함한 ‘통합전장(integrated battlefield)’ 개념을 제시하여 유럽 전장에서 재래식 및 비 재래식 수단에 의한 전쟁 수행방안이 제시되었다.
이러한 문제점에 대한 개선책이 논의되던 시기 미 육군교육사령 부는 바르샤바조약기구 군이 나토군 방어 전면에 다양한 형태의 작 전 기동의 가능성과 신속한 공격 제대의 전개 능력을 강조하면서 항공기에 의한 공중 차단의 중요성을 부각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소 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1979년)과 이란 대사관 인질극 사태(1979 년∼1981년) 등 일련의 국제 안보위협으로 인해 미 카터 행정부는 전 세계적 차원에서 신속한 전력 배치와 군사준비태세에 대한 급격 한 인식의 변화가 있었고, 이러한 대외 안보 상황은 미 육군 교리 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55)
이러한 배경에서 1982년 등장한 공지전투(ALB) 교리는 기존 화 력소모전 위주의 미국 전략문화가 기동전과 화력소모전의 합리적인 교리적 보완관계로 전환된 결과로 평가할 수 있다.
1976년 ‘FM 100-5’는 교리의 부재라는 비판을 받았기 때문에 1980년 들어서 교리에 대한 재검토가 이루어졌으며, 이때 기동전 사상이 방어 및 공격작전 수행의 핵심 개념으로 적용되었다.
이처럼 적을 저지할 수 있는 핵심 개념으로 재평가를 받았던 기 동전은 1980년 들어서 미 육군지휘참모대학(United States Army Command and General Staff College, CGSC) 교육과정과 재발 행되는 FM 100-5 초안에 반영되었다.56)
55) John L. Romjue(JUNE 1984), pp. 30-33.
56) Ibid, pp. 55-56.
아울러 이 시기에 미 육군교육사령관 스태리(Donn A. Starry)는 상대적으로 열세한 전력으로 강력한 적에 대해 승리하기 위한 방안 으로 기동전 수행을 강조하였으며, 화력전과의 적절한 교리적인 관계가 주목받게 되었다.
더불어 리델하트(Basil H. Liddell Hart)와 풀러(J.F.C. Fuller)의 사상이 재조명받게 되었는데, 새로운 FM 100-5 교범에는 재래식 전장 및 핵·화학전 하 전장에서 공격작전 에 적용할 4가지의 원칙이 다음과 같이 제시되었다.57) ① 간접접근 작전 수행 전력을 집중하라(use of the indirect approach)
② 전력의 집중(concentration of forces)
③ 공격 속도(speed of attack)
④ 심사숙고한 실현 가능한 계획(well-conceived feasible plan)
이러한 교리 검토를 통해 1980년 말 새로운 FM 100-5에 명 시될 공지전투 수행을 위한 두 가지의 핵심 요소가 추가로 검토 되었다.58)
① 주도권(initiative) : 공세적 기질, 예하 지휘관에 의한 독립 작전 시행
② 기동(maneuver) : 종심(Depth), 통합성(synchronization), 민첩성(agility)
1981년 미 육군교육사령부는 새로운 교리에 대하여 각 군 및 국 방부, 의회를 대상으로 공청회를 실시하였으며, 1982년 3월에는 당 시 부통령이었던 조지 부시(George Bush)에게 보고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1982년 8월 새로 발간된 ‘FM 100-5, Operations’에 교육사에서 연구한 공지전투 교리가 공식적으로 채택되었다. 59)
57) DTAC Draft, Tactical Precepts for the Attack on the Nuclear-Chemical Conventional Battlefield, February 1981.
58) John L. Romjue(JUNE 1984), p. 57.
59) John L. Romjue(JUNE 1984), p. 66 ; 박기련, 『기동전이란 무엇인가?』 (서울: 일조각, 1988), pp. 102-103. 246 | 軍史 第123號(2022. 6.)
다. 미국의 공지전투(ALB) 교리 등장의 의미
1982년 FM 100-5에 기술된 공지전투 교리는 다섯 가지 의미가 있다.
첫 번째 의미는 기동전 수행의 고전적 개념 즉, 적의 심리적 마비를 위한 기동을 통한 전투수행이라는 고전적 개념에 더하여 최 첨단 무기체계 또는 비대칭 무기체계를 활용하여 양적 우위를 질적 우위로 상쇄한다는 사상적 의미가 추가되었다는 점이다.
두 번째 의미는 화력과 기동을 통합한 공세적 기동전을 추구하였 으며, 이러한 교리적 변화가 공지전투의 형태로 반영되었다는 점이 다.
개정된 교범에서는 공세적인 기세를 강조하는 미국의 공지전투 교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60)
60) FM 100-5, Operations, 1982, p. 2-1.
공지전투 교리는 전장주도권을 확보 또는 유지한 뒤 이를 공격 적으로 행사하여 적을 격퇴하는 것을 기본 취지로 하고 있다. 적 이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초전에 강력한 공격을 통해 적의 균형 을 깨뜨린 후 적의 전투력 회복을 막기 위해 빠르게 추격하는 방 식으로 적을 격퇴한다. 육군부대가 화력과 기동력으로 적을 종심 깊게 공격하고, 목표 달성을 위한 모든 노력을 병행한다. 육군부 대는 적의 취약지점으로 병력과 화력을 이동시키기 위한 민첩성 을 유지할 것이다. 우리의 작전은 신속하고 예측할 수 없고 맹렬 해야 하며 적을 혼란에 빠뜨릴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교범에서는 공지전투 교리 시행 목적을 전장에서 주도권 을 확보하거나 유지하고, 적을 격퇴하기 위해 공세적 기세를 유지하 기 위함으로 명시하고 있다.
또한, 기존 수세적인 방어 논리에서 벗 어나 적 전투력을 파괴하기 위하여 초기 기동전 사상 즉, 마비전 및 간접접근 개념을 적용하여 전장 지배권을 장악하는 적극적인 공 세적 교리를 채택하였다.
아울러 사격과 기동을 각각 별개로 시행되 는 공세 행위로 구분하지 않고, 전술 및 작전적 목표를 획득하기 위해 시행해야 하는 통합 행위로 규정하였으며, 모든 작전요소의 통 합성(synchronization)을 강조하였다.
세 번째 의미는 독일의 교리를 반영하여 1976년 교리의 키워드였 던 적극방어(active defense)라는 고정된 방어 프레임 대신 임무 (mission), 적(enemy), 지형(terrain), 병력(troops), 가용시간 (time available)이라는 諸전장 상황과 환경에서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전술적 고려요소(METT-T)에 따라 적절하고 유연한 방어 수단을 강구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이상적인 방어는 대담하고, 유연하며, 공세적이어야 한다는 클라우제비츠의 ‘Shield of blows’ 개념을 충실히 이행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61)
네 번째 의미는 독일식 교리 내용을 적극 수용하여 임무형 지휘 (Auftragstaktik), 중심(Schwerpunkt, Center of Gravity)62)의 개념을 신 교범에 반영했다는 사실이다.
61) John L. Romjue(JUNE 1984), p. 59.
62) 중심(Schwerpunkt, Center of Gravity) : 정신적 또는 물리적인 힘, 행동의 자 유 또는 전투의지를 제공하는 능력 또는 힘의 원천. 파괴 시 전체적인 구조가 균 형을 잃고 붕괴될 수 있는 물리적 또는 정신적 요소. 전략적 수준의 중심과 작전 적 수준의 중심으로 구분됨.
① 전략적 수준의 중심 : 동맹관계, 정치 또는 군사 지도자의 통치력, 특정능력이나 기능, 국가의지 등 무형적인 요소에서 식별되나, 지도자의 통치력이나 국가의지 등이 군사력에 의존할 경우에는 군사력 자체가 전략적 중심이 될 수 있다.
② 작전적 수준의 중심 : 통상 특정 무기체계, 강력한 부대 등과 같이 군사분야의 유 형적인 요소에서 식별되나, 전체적인 군사적 능력이 특정 무기체계나 부대에 의 존하지 않을 경우에는 작전템포를 유지하는 능력이나 작전지속능력과 같이 무형 적인 능력에서도 식별될 수 있다. 출처 : 합동참모본부, 『합동교범 10-2, 합동・연합작전 군사용어사전』, 2014. 한편 중심을 군사력을 포함한 전쟁수행을 위한 힘의 원천이 아닌 결정적 취약점 (critical vulnerability)으로 봐야 하는 의견도 있다. 클라우제비츠는 중심이란 전투력이 가장 강력하게 집중되는 곳에서 항상 발견되며, 일격을 가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표적으로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중심의 의미를 힘의 원천이 아닌 적의 전투력 또는 전쟁 수행 의지를 마비시키고, 붕괴시킬 수 있는 결정적인 취 약점으로 봐야 할 것이다. 출처 : Robert Leonhard (1994), p. 21.
위의 교리는 일찍부터 미 육군교육사령부(TRADOC), 미 육군 제 병협동본부(USACAC)에서 관심을 가지고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으 나, 연구수준에만 머물러 있었다.
그러던 것을 미 육군전력사령부 (FORSCOM) 사령관이었던 슈메이커(Robert M. Shoemaker)의 적극적인 의지로 교리 반영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는 미래 전장 범위의 확장 및 복잡성으로 인해 중앙집권적인 지휘통제가 제한된 다고 예측하면서, 예하 지휘관들이 상급지휘관의 의도대로 각자 임무를 수행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1981년 4월 포트 리븐워스(Fort Leavenworth)에서 개최된 미 육군전력사령부 주관 지휘관 회의에서 임무형 지휘에 대한 필요성 이 제기되었고, 미 육군교육사령관 스태리(Donn A. Starry)가 적 극적인 공감을 표하면서 ‘FM 100-5’에 반영되었다.
더불어 주요 공격을 위한 전력이 집중되는 중심(Schwerpunkt)에 대한 교리적 개념을 강조함으로써63) 적의 취약점을 탐색 및 판단하여 타격하는 간접접근 및 마비전 사상이 교리에 반영되었다.
63) John L. Romjue(JUNE 1984), pp. 58-59.
다섯 번째로 미래전의 양상을 예측하고, 대비하기 위한 포석으로 서 의미가 있다.
사실 육군과 공군이 수행하는 합동공지전투 개념은 1982년 교범에서 새롭게 제시된 것은 아니었다.
일찍이 미군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태평양에서 이루어진 상륙작전을 통해 합동공지 전투를 수행한 경험이 있었으며, 6·25전쟁 기간 항공지원작전센터 (ASOC, Air Support Operations Center)와 베트남전쟁 기간 직접항공지원센터(DASC, Direct Air Support Center)를 운용하는 등 ‘공지합동전’에 대한 전술적 개념을 이해하고 있었다. 다만, 이러한 전술적 개념이 미 지상군 정식 교리로 채택되었다는 사실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더불어 C4I 시스템 도입으로 전군의 작전조직과 교리가 일체화되었기 때문에 통합교리의 필요성을 만족하기 위한 공지전투 개념이 등장했다.64)
공지전투에서 한 단계 발전한 개념으로 1989년 등장한 ‘미래 공 지전투(AirLand Battle-Future)’ 교리는 4단계 전투방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제시하면서 공지전투 수행 방법을 좀 더 세부적으로 규정하였다. 65)
<표 2> 미래 공지전투(AirLand Battle-Future) 수행 개념
① 적의 활동에 대한 조기 탐지 및 공격 전력에 대한 평가
(the early detection and assessment of attacking force)
② 군단 포병여단과 다른 공격무기를 활용한 대규모 간접사격에 의한 파괴 공격
(destructive strikes by massing indirect fires, primarily by corps artillery brigades and other strike weapons)
③ 적 부대의 완전 파괴를 위한 신속한 기동
(rapid maneuver to complete destruction of enemy units)
④ 후방에서 전투력 복원을 통한 미군의 전투력 회복
(the recovery of U.S. forces to the rear for regeneration)
결론적으로 공지전투 교리는 현재까지 미 육군의 기본 전투 교리 이며, 나토 방위, 주요 지역 분쟁 및 중·고강도 분쟁 등 諸 분쟁에 관한 보편성을 지향하고 있다.
그리고 현대전의 구조와 전투의 역동 성과 고전적인 기동전의 원리를 현대적으로 적용하였다.
즉, 현대전의 입체적, 복합적, 제병협동적 성격을 인식하고, 모든 지상 작전이 공중작전에 의해 강하게 영향을 받을 것을 강력하게 시사하였다. 66)
64) 조상태(1985), p. 32.
65) Vincent H. Demma, “Chapter 4 Doctrine and Concepts,” Department of the Army Historical Summary Fiscal Year 1989 : (Washington, D.C.: Center of Military History United States Army, 1998), pp. 49-50.
66) Vincent H. Demma(1998), p. 46 ; Brower, Kenneth S and Candy, Steven L., Air Power and Maneuver Warfare (Alabama : Air University Press, July 1994), p. 193.
1982년 공지전투 교리 형성 이후 미국이 수행한 주요 전쟁인 걸 프전, 이라크전, 아프가니스탄전의 사례를 살펴보면 기동전 사상에 입각한 공지전투 교리가 중심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은 전쟁 초기 스텔스 전투기와 PGM(Precision-Guided Munition), ISR(Intelligence Surveillance and Reconnaissance)에 기반한 막강한 항공전력으로 적대국의 전쟁지휘시스템을 마비시킨 후 기동 화된 지상군을 투입하여 적대국을 순식간에 붕괴시켰다.
이는 과거 제2차 세계대전, 6·25전쟁, 베트남전쟁에서 끊임없는 재래식 화력 을 쏟아붓는 소모전의 양상과는 대조적으로 1980년대 이후 미국이 수행한 전면전은 기동전 사상에 기반하였으며, 현대전의 새로운 기 준을 제시하였다.
이처럼 공지전투 교리 성립 후 기동전 사상에 기반한 미국의 전 쟁 수행 양상을 통해 전간기에 형성된 기동전 사상이 현대전 양상 에도 적용할 수 있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음을 인정함은 물론 화력 을 주요 수단으로 하는 소모전 중심의 미국 전략문화에 있어서 대 전환을 가져왔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었다.
5. 맺음말
1982년 새로운 미군 지상전 교리로 등장한 공지전투 교리는 제2 차 세계대전 이래 소모전 중심으로 행해졌던 미군의 지상전 수행방 식에 기동전 사상이 반영하여 탄생하였다.
전간기 형성되었던 기동 전 사상은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효용성이 증명되었으며, 전 쟁 종료 후 새로운 전쟁 수행 패러다임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미국 내에서는 기동전의 가치와 효 용성이 주목받지 못했다.
당시 미군 스스로 작전술 분야에서는 냉전기 적대국이었던 소련에 비해 20여 년이 뒤떨어졌다고 평가하였으 며, 미국의 교리는 ‘물량 위주’, ‘화력 중심의 소모전’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더욱이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핵무기의 출현으로 핵전쟁을 중시하는 경향은 작전술 발전을 상당 기간 저해하였고, 기동전의 필 요성을 경시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67)
이러한 미군의 전략문화는 지상전 수행교리에 영향을 끼치면서 냉전기 미군이 수행했던 전면전 예컨대 6·25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천문학적인 재래식 무기와 인력 및 예산이 투입되는 대규모 소 모전의 양상을 띠게 했다.
하지만 감소하는 국방예산과 상대적으로 증가하는 소련의 기계화 전력에 대비하기 위한 새로운 교리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더불어 베트남전쟁 이후 급속도로 이루어진 군사부문의 기술혁신을 통해 부족한 전력을 보완하기 위한 첨단 무기체계와 기동전력을 활용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
이때 기동전의 효용성에 대한 담론이 미군 내에서 형성되면서 적극방어 교리를 거쳐 공지전투 교리가 등장하게 되었다.
다만 미국의 새로운 공지전투 교리 등장이 미국의 소모전 중시 사상을 기동전 사상으로 완벽하게 전환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걸프전 이후 미국의 전쟁 수행방식은 초기 대규모 공습과 정밀유 도무기를 활용한 물량전 즉, 소모전을 중시하는 양상을 보였고, 이 후 이루어진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위 사례는 미국이 여전히 대규모 공습과 정밀유도무기를 활용한 적 중심에 대한 파괴를 전쟁 수행의 중요한 과정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68)
67) 육군교육사령부(1996), pp. 54-55.
68) 걸프전 이후 미국이 시행하는 전쟁수행 방식에서 초기 정밀무기체계와 항공기를 활용하여 적의 지휘통제시설과 주요 군사시설을 공격하는 행위를 소모전이 아닌 여건조성작전(Shaping Operations)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여건조성작전은 결정적작전(Deceive Operations)의 성공을 보장하기 위하여 유리 한 여건을 조성하기 위한 작전이다.
여기에서 언급하는 유리한 여건조성이라 함은 아군이 작전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것인데 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가용 화 력을 통해 적 핵심 전력을 파괴 및 무력화하기 위하여 적의 중심을 집중공격하 는 한편 기동로 개척 및 적 기동부대를 고착시키는 제반 작전 활동을 의미한다. <출처 : 박용득,「21세기 정보화시대 지상전장 운영개념」,『국방과 기술』, 98년 10월 호, p. 27.> 그러나 화력을 통한 여건조성작전도 소모전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제1차 세계대 전 당시 시행되었던 주요 전역들도 참호를 벗어나 상대의 참호를 향해 보병이 돌 격하면서 발생하는 인명손실뿐만 아니라 보병 돌격 시행 전·중·후 시행되었던 여건조성작전 즉, 대규모 화력으로 적의 전투력을 소모시킨다는 점에서 소모전으 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걸프전 이후 미군이 시행하는 주요 전쟁의 양상의 공통적인 특징은 지상 전력을 투입하기 전 대규모 공습과 고가의 첨단유도무기 를 통한 적 핵심시설과 전투력 파괴였다. 이는 적 전투력을 파괴하여 소모를 강 요함은 물론 미국 측의 전쟁 수행 비용을 천문학적으로 증가시킨다는 점에서 소 모전의 성격을 지녔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처럼 공지전투 교리 등장 이후에도 미국은 전쟁 초중반 대규모 의 화력을 동원하여 적의 지휘통제시설을 포함한 핵심 군사시설을 파괴하고, 주력부대에 심각한 피해를 준 이후 기계화부대를 활용한 신속한 기동전 수행으로 전쟁을 마무리하는 양상을 보인다.
부연하 면 공지전투 교리 도입 이후 소모전(화력전)과 기동전을 상호보완적 으로 수행하는 ‘절충적 기동전’의 형태를 보이며, 현재까지 미국 전 쟁 수행 양상의 중요한 특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더불어 미국의 공지전투 교리는 미래 한국군이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함의를 가지고 있다.
첫째, 기존 한국군의 작전 수행 개념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먼저 전략 및 작전적 측면에서 살펴보면 현 한국군의 전면전 수행개념은 북한 남침시 일단 GOP~FEBA 작전을 통해 북한군 전연 군단의 공격을 돈좌시키고 군단 예비 기동부대로 역습을 가하여 실지 회복 후 신속하게 공세 이전하는 방식이다.
공세 이전이 이루어진 후에는 전략기동부대인 제7기동군단으로 하여금 북한군 방어 전면의 취약점을 돌파하여 북진하도록 되어 있다.
이때 역공작전의 중점이 북한군 전투력의 격멸인지, 북한군 지도 부가 있는 평양을 신속히 점령함으로써 기동전의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하는 것인지에 대한 심도 있는 전략 및 작전적 검토가 필요하 다.
만약 북한군의 전투력을 목표로 기동한다면 전쟁의 장기화를 가 져올 수 있기 때문에 신속하게 전쟁지도부를 제거하기 위한 계획을 모색해야 하며, 상륙작전부대와의 유기적인 협조 체계도 구축해야 할 것이다.
둘째, 공지전투 수행을 위하여 충분한 공중자산을 확보해야 하고, 평소부터 철저한 제병협동훈련을 통해 기동전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 본격적인 인구절벽으로 인한 병력감축 과 부대구조 개편에 대비하기 위하여 한국군의 질적 향상이 이루어 짐은 물론 북한에 비해 양적으로 열세한 전력을 만회하기 위하여 소모전을 지양하고, ‘마비’와 ‘간접접근’에 입각한 기동전 수행을 위 하여 한반도 상황에 부합한 ‘한국형 기동전 교리’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을 해야 한다.
상술했듯이 기동은 상대적으로 열세한 전력으로 우세한 전력을 갖춘 적을 제압하기 위한 전략적 사고에서 출발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며, 한반도의 산악지형을 극복하고, 기동의 본질에 충실한 ‘한 국형 기동전 교리’를 형성해야만 한다.
<참고문헌>
강석율, 「트럼프 행정부의 군사전략과 정책적 함의 : 합동군 능력의 통합성 강 화와 다전장영역전투의 수행」, 『국방정책연구』, Vol 34-3 (2018). http://uci.or.kr//I410-ECN-0102-2019-300-001169053@N2M 김대성,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과 중국의 군사적 분쟁 가능성에 대한 연구 : 군사전략 분석을 중심으로」, 『한국과 국제정치』, vol 32-4 (2016). http://uci.or.kr//I410-ECN-0102-2018-300-000504652@N2M 김성한,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對중국전략: 봉쇄에서 변환으로」, 『신아세아』, Vol 28-2 (2021). 김태현, 「트럼프 시대 미국의대중국군사전략 : ‘경쟁전략’과 ‘비용부과」,『국가 전략』, Vol 26-2 (2020). 김태형,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과 미군의 군사전략변화」, 『국방연구』, Vol 63-1 (2020). http://uci.or.kr//I410-ECN-0102-2021-300-000964615@N2M 남두현, 「4차산업혁명시대의 모자이크 전쟁」, 『국방연구』, Vol 63-3 (2020). http://uci.or.kr//I410-ECN-0102-2021-300-001318819@N2M 류한수, 「“결백한 독일국방군” 신화의 산파 바실 리델 하트 : 한 군사학 구루 의 명예와 제2차 세계대전의 진실」, 『大丘史學』 제130호(2018. 2). http://uci.or.kr//I410-ECN-0102-2018-900-003691301@N2M 박기련, 『기동전이란 무엇인가?』 (서울: 일조각, 1988). http://uci.or.kr//G701:B-00093048761@N2M 박상연, 「“미국의 군사부문 혁신(1977-1991)에 대한 RMA적 사후해석 극복 : 카터 행정부의 ‘상쇄전략’에 대한 기술 기회론적 분석을 중심으로,」, 『국가안보와 전략』, Vol 19-1, 2019. 박용득, 「21세기정보화시대지상전장운영개념」,『국방과 기술』, 98년 10월 호. http://uci.or.kr//G701:A-00107106739@N2M 손무, 유동환 옮김, 『손자병법』(서울 : ㈜ 홍익출판사, 2013). 양욱, 「미국 군사혁신의 변천사 : 군사변환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군사혁신 과 미국 기동전 사상의 형성에 관한 연구 | 255 정」, 『세계 역사와 문화 연구』, Vol 58 (2021). 유재갑, 「군사전략·전술의 이론과 실제 : 작전술·작전수준의 전쟁·대전략」, 『월간국방 제3월호』 (1993). 육군교육사령부, 『한국전의 기동전 분석』(계룡 : 육군인쇄창, 1996). 이내주, 「근대 영국의 전쟁방식과 전략문화」, 『영국 연구』 제30호(2013). http://uci.or.kr//G701:A-00092671403@N2M 이병구, 「이라크 전쟁 중 미국의 군사혁신 : 내부적 그리고 외부적 군사혁신 이론의 적실성 검증을 중심으로」, 『군사』, Vol 91 (2014). 정연봉, 「베트남전 이후 미 육군의 군사혁신(RMA)이 한국 육군의 군사혁신에 주는 함의」, 『군사연구』, Vol 147 (2019). 정용주, 「기동전의 현대적 적용에 관한 연구 : 미국의 이라크전 초기 군사작전 을 중심으로」, (국민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11). http://uci.or.kr//G901:A-0005674397@N2M 조상태, 「미 육군의 FM 100-5에 있어서의 공지전」, 『國防과 技術(Defense and Technology)』(1985). http://uci.or.kr//G701:A-00106292523@N2M 조한승, 「탈냉전기 미국 군사혁신(RMA)의 문제점과 교훈」, 『평화연구』, Vol 18-1 (2010). http://uci.or.kr//G901:A-0002775674@N2M 조홍제, 「미국의 우주전략과 정책 : 우주의 군사적 이용에 관한 이론을 중심으 로」 『한국항공우주정책·법학회지』, vol 34-2 (2019). http://uci.or.kr//I410-ECN-0102-2021-300-001000323@N2M Danchev, Alex., Alchemist of War : The life of Basil Liddell Hart (London : Weidenfeld & Nicolsen, 1993). Aubin, Stephen P., Kells and Robert E., Jr., Airland Battle Doctrine, Military Review(Headquarters, Department of the Army, Oct. 1985). Baldwin, Hanson W., Tiger Jack (Fort Coiins, CO : Thne Old Army Press, 1979). Reid, Holden Brian., J.F.C. Fuller : Military Thinker (London: MacMillan Press LTD, 1987). Brower, Kenneth S., Candy and Steven L., Air Power and Maneuver Warfare (Alabama : Air University Press, July 1994). Clausewitz, Carl Von., On War, Michael Howard and Peter Paret, eds. and trans.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84). Demma, Vincent H., Department of the Army Historical Summary Fiscal Year 1989 : Chapter 4 Doctrine and Concepts (Washington, D.C : Center Of Military History United States Army, 1998). Douhet, Giuli., The Command of the Air : Being an Essay on the Art of Aerial Warfare, with an Appendix Containing Elementary Notions of Aeronautics (Printing-Office for the use of the War Department, 1921). DTAC Draft, Tactical Precepts for the Attack on the Nuclear-Chemical Conventional Battlefield, February 1981. FM 3-0 Operations (Washington, DC : Headquarters, Department of the Army, October 2017). FM 100-5 Operations(Washington, DC : Headquarters, Department of the Army, 1976). FM 100-5 Operations(Washington, DC : Headquarters, Department of the Army, 1982). Fuller, J.F.C., Machine Warfare (Washington D.C. : Infantry Journal, 1943). ____________, The Foundations of Science of War (London: Hurchison & Co, LTD, 1926). ____________, Tanks in the Great War, 1914-1918 (New York : E. P. Dutton and Company, 1920). ____________, The Conduct of War : 1789~1961 (New York : Da Capo Press, Inc, 1961). 미국 기동전 사상의 형성에 관한 연구 | 257 Guderian, Heinz., Panzer Leader, trans. Fitzgibon (New York : E. P. Dutton, 1957) Harrison, Richard W., Architect of Soviet Victory In World War Ⅱ : The Life and Theories of G.S. Isserson (North Carolina : McFarland & Company, Inc., 2010). http://uci.or.kr//G901:A-0006732414@N2M Leonhard, Robert., The Art of Maneuver: Maneuver Warfare Theory and Airland Battle (New York : Presidio Press, June 1, 1994). Liddell Hart, Basil Henry., The Ghost of Napoleon (London : FABER & FABER LIMITED, 1933). ____________, Scipio Africanus : Greater Than Napoleon (New York : Da Capo Press, 2004). ____________, Strategy (New York : Meridian Book, 1991). Maj. Chamberlain, Robert., U.S. Army, The Mud of Verdun Falkenhayn and the Future of American Land-power, MILITARY REVIEW, July-August 2016. Major Anastas, Kevin P., The American Way of Operational Art : Attrition or Maneuver? (Fort Leavenworth, Kansas : School of Advanced Military Studies United States Army Command and General Staff College, 1992). Mearsheimer, John., Liddel Hart and the Weight of History (Ithaca, New York : Cornell University Press, 1988). Mitchell, William., Our Air Force: The Keystone to National Defense (New York : E. P. Dutton and Company, 1921). Romjue, John L., TRADOC Historical Monograph Series : From Active Defense to AirLand Battle: The Development of Army Doctrine, 1973-1982 (Fort Monroe, Virginia : United States Army Training and Doctrine Command, JUNE 1984). ____________, TRADOC Historical Monograph Series : The Army Of Excellence - The Development Of The 1980s Army, (Fort Monroe, Virginia : United States Army Training and Doctrine Command, JUNE 1997). Simpkin, Richard E., Race to the Swift: Thoughts on Twenty First Century Warfare Vol. 1 of Future Warfare Series, 3 vols (London: Brassey's Defence Publishers, 1985). , Deep Battle : The Brainchild of Marshal Tukhachevskii (London : Brassey's Defence, 1987) ; Glantz, David M., Soviet Military Operational Art : In Pursuit of Deep Battle (New York : Frank Cass, 1991). Swain, Richard M., "B. H. Liddell Hart and the Creation of a Theory of War, 1919-1933," Armed Forces & Society, Vol. 17, No. 1, Fall 1990, p. 43. , Selected Papers of General William E. DePuy (Fort Leavenworth, Kansas : Combat Studies Institute U.S. Army Command and General Staff College, Jan 1995). Stokesbury, James L., A Short History of World War I (New York: William Morrow and Company, Inc., 1981). Triandafillov, V. K., The Nature of the Operations of Modern Armies (New York: Routledge, 1994).trans by Kent E. Lee., Weigley, Russell F., Eisenhower's Lieutenants : The Campaign of France and Germany 1944-45 (Bloomington In: Indiana University Press, 1981). Wilson, John B., “Chapter 5. A return to the past : a look to the future,” Army Lineage Series : Maneuver and Firepower - The Evolution of Divisions and Separate Brigades (Washington, D.C : Center of Military History United States Army, 1998). Свечин, Александр Андреевич, Эволюция военно го искусства(М.-Л.: Военгиз, 1928).
(Abstract)
A Study of the Establishment of the U.S. Maneuver Warfare - Focusing on the Formation of the U.S. AirLand Battle(ALB) Doctrine -
Kim, Young-hwan
The thought of maneuver warfare formed during the interwar period was proven to be effective through the World War II, and after the war, it attracted attention as a new paradigm for carrying out the war. Nevertheless, the value and effectiveness of maneuver warfare in the United States did not receive attention, and a strategic culture that emphasized the firepower-attrition warfare centered on large quantities was formed. Moreover, the tendency to value nuclear warfare following the emergence of nuclear weapons after World War II had hindered the development of operation art for a considerable period of time and had neglected the need for maneuver warfare. However, after the Vietnam War, the need for a new doctrine was raised to prepare for the decreasing defense budget and the relatively increasing mechanized power of the Soviet Union. In addition, due to RMA(Revolution of Military Affairs) after the Vietnam War, the latest weapon systems and maneuver force can be utilized to compensate for the insufficient force. As a result, a discourse on the effectiveness of maneuver warfare was formed in the U.S. military, and after the doctrine of the Active defense in 1976, the doctrine of AirLand Battle(ALB) was formed in 1982. However, the emergence of the doctrine of AirLand Battle did not mean a transition from the thought of the firepower-attrition warfare to the thought of maneuver warfare. In other words, an eclectic form of conduct of warfare that the firepower-attrition warfare and the maneuver warfare carried out complementarily emerged.
Keywords : maneuver warfare, attrition warfare, military thought, the AirLand Battle(ALB) doctrine, the Active Defense doctrine
軍史 第123號(2022. 6.)
(원고투고일 : 2021. 10. 7, 심사수정일 : 2022. 5. 19, 게재확정일 : 2022. 6. 2.)
'전쟁군사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말 의병부대의 의료실태와 한의사의 의병전쟁 참여양상/김성민.국민대 (0) | 2024.11.15 |
---|---|
인천상륙작전 초기 구상과 좌절-블루하츠 작전에서 레드하츠 작전으로-/이상호(李相昊).군사편찬연구소 (0) | 2024.11.15 |
이순신(李舜臣)의 행적과 전쟁에 나타난 군사사상(軍事思想) 고찰/배일수(육군대).정희태(서경대) (0) | 2024.11.15 |
중국의 한국전쟁 인식,서술, 활용/한상준.아주대 (0) | 2024.11.15 |
고구려(高句麗)최후(最後)의 戰爭/서영교.중원대 (0) | 2024.1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