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공적 예배의 진정한 회복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본 연구를 시작하게 된 동기이다.
우리는 Covid19 팬데믹 현상을 겪으면서 예배를 둘러싼 갈등들 을 경험했다: 대면 예배와 비대면 예배, 1 종교의 자유와 윤리, 2 목회자와 성도 간의 인식차이, 3 팬데믹에 대한 신학적 갈등. 4 포스트 코로나 시대로 접 어들면서 이런 경험들은 공적 예배의 회복 문제로 귀결되었다.
1 김지찬, 『성경과 팬데믹: 하나님, 우리의 유일한 위로와 피난처』 (서울: 생명의말씀사, 2020), 9. 그는 코로나19 상황에서 내려진 대면 예배와 비대면 예배에 대한 갈등은 신학적 이고 목회적으로 나타났다고 본다. 신학적 갈등은 비대면 예배가 성경적으로 신학적으로 옳은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고, 목회적 갈등은 목회자와 성도들 간의 입장 차이에서 드러난 다고 주장한다.
2 명재진, “코로나 사태와 종교의 자유,” 「교회와 법」 7권 1호 (2020): 11-38. 그는 정부 대책이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보았고, 반면에 고재길은 “코로나19 시대와 교회 공동체 의 윤리,” 「신학과 사회」 35/1 (2021)에서 교회는 타자와 공동체를 위한 자유를 실천해야 한 다고 주장했다.
3 이상철, “코로나19 시대 종교현상학의 이슈와 기독교 사회윤리학적 테제들,” 「기독교 사회윤리」 제49집 (2021): 76-78. 그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개신교인 인식조사 결과 대면 예배 중단과 비대면 예배에 대한 찬성이 증가 추세와 개신교인들이 코로나19 이후 교 회가 온라인시스템 구축과 온라인 컨텐츠 개발을 1위로 선정한 것을 주목하고 이런 현상은 개신교 목회자들에게 큰 위기감이라고 주장한다.
4 김지찬, 『성경과 팬데믹: 하나님, 우리의 유일한 위로와 피난처』, 30-31. 그는 코로나 19 팬데믹에 대한 해석학적 이슈는 코로나19가 (1) 하나님의 형벌인가, 자연적 전염병인 가? (2) 만약 형벌이라면 무엇에 대한 누구의 죄인가? (3) 만약 형벌이라면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4) 자연적 현상이라면 하나님은 개입할 수 있는가? (5) 자연 현상이라면 인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일에 하나님은 아무런 관련이 없는가?라는 문제에 대 한 갈등이 나타났다고 정리한다.
그렇다면 공적 예배의 진정한 회복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생긴다.
1.1 연구 목적 및 절차
본 연구 목적은 구약의 관점에서 제의적 예배5 와 토라6 실천의 상관관계 를 연구하여 위에서 제기한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을 제안하는 것이다.
5 제의적 예배란 제사와 공적 예배를 함축하는 의미로 표현한 필자의 선택어이다. 삶의 예배와는 달리 의식과 절차를 갖추어 드리는 예배를 의미한다. 그러나 필자는 독자의 혼란 을 막기 위해 구약 본문과 관련해서 ‘제사’로 표현할 것이다. 공적 예배는 주일예배, 수요예 배 등 현대 교회에서 진행되는 공식적인 예배를 지칭한다.
6 ‘토라’는 한글개역개정판에서 ‘율법’으로 번역한 히브리어 음역이다. ‘토라’는 하나님 이 그의 백성에게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 지시하는 것을 가리킨다. ‘율법’이란 용어는 ‘토라’ 의 포괄적인 개념을 모두 담아내지 못하므로 ‘토라’라는 음역을 그대로 사용하려고 한다.
구 약은 예배를 표현하는 여러 단어들을 사용한다.
예배를 의미하는 ‘히쉬타 하바’(hw"x;>T:v.hi), ‘아바드’(db;c'), ‘야레’(arEy")라는 어휘가 있고, 제의적 예배 즉 제사로서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가 있다.
전자들은 예배의 의 미를 표현한다면, 후자들은 그 의미를 형식을 통해 표현한다.
전자가 본질 적이라면 후자는 그 본질을 형식에 담은 것이다.
구약 예배를 연구할 때 간 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토라’(hr"wOT)이다.
그것은 구약의 저자들이 제사 혹 은 예배를 독립적으로 다루지 않고 토라의 실천 여부와 관계하여 다루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약의 제사와 토라 실천의 상관관계를 주목할 때 하나의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본 연구는 구약의 정경배열 순서를 따라 진 행하되 독자의 이해를 위해 때로는 주제별로 묶어 연구를 진행하려고 하 려고 한다.
1.2 최근 연구 동향
최근 예배 회복과 관련된 연구들7 이 있다.
그러나 구약의 예배와 관련된 최근 연구들을 주목하려고 한다.
민장배와 김진명은 제사와 삶의 관계를 주목하여 연구했다.
민장배는 현대 예배가 선지자들이 비판했던 예배로 전락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5대 제사의 의미를 통해 예배가 회복과 삶을 실 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8
7 주종훈, “with코로나 시대의 한국교회 미래세대 小考,” 「개혁논총」 제65권(2023): 119-147; “성령과 공동예배의 기도: 개혁주의 예배 회복을 위한 제언,” 「개혁논총」 제63권 (2023): 9-43. 이신열, “예배 회복을 위한 칼진의 창조론적 제언,” 「개혁논총」 제60권(2022): 60-77. 홍주현, “도르트 총회가 제시하는 목회 세움 방안과 예배회복,” 「개혁논총」 제60권 (2023): 191-224.
8 민장배, “구약 제사의 의미에 따른 현대 예배 방안,” 「신학과 실천」 제44권(2015년 05): 39-62.
김진명은 제사와 삶이 분리 가 아닌 일치되어야 한다고 구약 본문을 근거로 제시한다.
좀 더 나아가 구 약의 관점에서 예배를 연구한 학자들이 있다.
장세훈은 구약 예배를 의미 하는 용어, 주요 특징으로서 특별한 공간, 특별한 방식으로서 제사, 특별한 시간, 예배 변질과 비판, 회복될 종말의 예배를 연구하여 구약 예배를 위한 종합적 이해를 제시한다. 9
박유미는 예배와 관련된 구약 본문 주해를 통해 거룩성이 예배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고 그 거룩성은 제사 제도와 하나님 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이 이스라엘의 거룩성을 유지하는 방법이었다고 말한다. 10
최근 안석일은 역대기에 기록된 예배에 대한 연구를 통해 하나 의 예배 모델을 제시한다.
그는 바벨론 포로 후 유다 사람들이 언약 공동체 를 재건하는 일은 성전과 예배가 중심이라고 보고 역대기 기자는 역대기 예배가 성막과 성전, 하나님의 임재의 연속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주장한 다. 11
또한 그는 역대기에 나타난 예배는 여호와를 기억하는 것과 찬양과 감사라는 패러다임을 제공하기 때문에 언약 공동체인 교회가 예배갱신을 통해 교회 갱신과 회복을 제안한다.
그후 그는 솔로몬의 성전 봉헌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과 관련된 역대기 본문 고찰을 통해 겸비함, 회개, 여호와의 얼굴을 찾는 것이 성전과 관련된 것으로 하나님의 사죄와 회복으로 이끈 다고 주장한다. 12
9 장세훈, “구약의 예배,” 「헤르메네이아 투데이」 47호(2009 여름), 55-81.
10 박유미, “구약의 예배 본문들과 주해,”「헤르메네이아 투데이」 47호(2009 여름), 101- 117.
11 안석일, “역대기를 통해 본 예배의 연속성과 중요성: 다윗의 감사 찬양시(대상 16:8- 36)를 중심으로,” 「개혁논총」 제64권(2023): 39-66.
12 안석일, “역대기 솔로몬 성전봉헌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대하 7:12-22): 그 신학 적 중요성을 상고함,” 「개혁논총」 제66권(2023): 267-290.
이런 연구들은 예배의 회복이 하나님의 말씀 실천과 매우 밀접하게 관 련되어 있음을 일관되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연구들은 구약의 일부분 을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어 좀 더 전체적인 면에서 구약의 예배와 토라 실 천의 관계를 고찰할 필요가 있다.
2 예배에 대한 ‘토라’(오경)의 가르침
구약 정경배열은 삼분법과 사분법에 따라 각 책들의 배열이 다르나 ‘토 라’(오경)는 동일하게 맨 앞에 위치한다.
‘토라’는 ‘지시하다, 안내하다, 가 르치다’라는 의미로 구약의 서론일 뿐 아니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 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가르침이다. 13
13 Paul R. House & Eric Michell, Old Testament Survey (Nashville: B&H Academic, 2007), 13.
따라서 토라는 이스라엘 에게 예배에 대한 기본적 방향을 설정해 줄 것이라고 본다.
2.1 사람의 사명으로서 예배와 순종
2.1.1 에덴에서 첫 사람 아담의 사명(창 2:15-17)
필자가 우선적으로 다룰 본문은 창세기 2:15-17이다.
이 본문은 여호와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규명하는 본문들 중에 하나이다. 특별히 이 본문 은 여호와 하나님이 건설한 “거룩한 공간”14 에덴에서 사람이 해야 할 일 을 규정한다.
14 Tremper Longman III, Immanuel in our place, 권대영 역,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 님: 이스라엘의 예배가운데 계시는 그리스도』(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03), 13. 그는 에 덴 동산을 거룩한 공간으로 규정하고 그 공간 안에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성을 주목한다. 그 관계성은 사람에게 위임된 자연을 돌보는 일과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말씀과 연관성이 있 다고 본다.
그것은 예배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다.
창세기 2:15은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을 에덴에 두신 목적을 설명한다.
그 목적은 하나의 동사와 두개의 부정사를 통해 드러난다.
저자는 창세기 2:15에서 2:8(~yfi)과 다르게 ‘누아흐’(x;Wn)의 히필형 ‘바야니헤후’(WhxåENIY:w:)를 사용한다.
개역개정판과 영어역본들은 ‘두다’(put)로 번역하여 ‘누아흐’의 의미를 충분하게 드러내지 못했다.
‘누아흐’는 기본적으로 ‘쉬다’ 15 는 의미 에 사역형 뉘앙스를 첨가하면 ‘쉬게 하다’는 의미이다.
매튜스(KennethA. Mathews)는 ‘쉬다’가 “특별한 의미”16 를 드러낸다고 보았고 세일해머 (John H Sailhamer)는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장소에서 쉴 수 있다[17]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사람이 하나님의 존전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안식하는 방식은 무엇인가? 그것은 두 개의 부정사 hr*m'>v"l.W HdÜ"b.["l. 가 말해준다. ‘아바드’(db;[')는 기본적으로 ‘일하다, 섬기다, 예배하다’ 18 는 의미이다.
또한 ‘솨마르’(rm:v')는 무엇인가를 지켜 보존하는 의미이다. 19
15 Francis Brown, Samuel Rolles Driver, and Charles Augustus Briggs, Enhanced BrownDriver-Briggs Hebrew and English Lexicon (Oxford: Clarendon Press, 1977), 628.
16 K. A. Mathews, Genesis 1-11:26, vol. 1A, NAC.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6), 208–209. 매튜스는 ‘누아흐’가 노아 홍수에서 구원을 묘사하는 중요한 의미를 전달한다고 말한다.
17 John H Sailhamer, Genesis~Leviticus, vol. 1, The Expositor’s Bible Commentary, Tremper Longman III & David E. Garland, ed. (Grand Rapids: Zondervan, 2008), 79. 그는 이 단 어는 ‘하나님의 쉼 혹은 안전’과 ‘하나님의 존전에서 어떤 헌신을 드러내려는 저자의 의도 가 담겨있다고 본다.
18 Abraham Even-Shoshan, A New Concordance of the Bible (Jerusalem: ‘Kiryat sefer’ Publishing House LTD., 1989), 817; Ludwig Koehler & Walter Baumgartner, The Hebrew and Aramaic lexicon of the Old Testament, vol. IV. (Leiden Boston Koln: Brill, 1999), 773; Wilhelm Gesenius, 『게제니우스 히브리어 아람어 사전』, 이정의 역 (서울: 생명의말씀사, 2007), 557; Walter C. Kaiser, “עָבַד, “in Theological Wordbook of the Old Testament, vol. 2. Ed. R. Laird Harris (Chicago: Moody Press, 1980), 639.
19 Francis Brown, Samuel Rolles Driver, and Charles Augustus Briggs, Enhanced BrownDriver-Briggs Hebrew and English Lexicon, 1036.
이 것은 첫 사람 아담의 사명이 기본적으로 에덴에서 일하여 그것을 보존하 는 일이라고 알려준다.
이것이 사람이 에덴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교제하 므로 쉼에 이르는 방식이다. ‘아바드’와 ‘솨마르’가 제사장이 성막에서 하 나님을 섬기고 성막을 보호하는 역할을 표현할 때 사용된 것을 볼 때(민 3:7-8; 대상 23:22; 겔 44:14; 사 56:6) 20 최초 사람 아담이 에덴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역할을 부여받았음을 알 수 있다.
20 Gordon J. Wenham, Genesis 1-15, WBC, vol, 1 (Dallas: Word, Incorporated, 1987), 67; William J. Dumbrell, The Faith of Israel, A Theological Survey of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Baker Academic, 2002), 21-22. 덤브렐은 아담이 왕/제사장으로서 다스리 는 기능을 부여받았고 말하고 또한 그는 이스라엘의 성막의 섬김과 보호 역할을 아담과의 유비관계를 통해 설명한다.
스텍(John H. Stek)은 아담이 에덴에서 일하는 행위를 “창조주에 대한 봉사,”21 세일해머(John H. SailHamer)는 “하나님의 대한 예배와 순종”22 으로 보았다.
따라서 창세기 2:15은 첫 사람 아담이 에덴에서 경작하고 돌보는 행위가 창조주를 섬기 고 예배하는 행위임을 분명히 한다. 또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창조주를 예배하는 사명과 나란히 첫 사람 아 담이 지켜야 할 명령이 제시된다는 점이다.
창세기 2:16-17은 “여호와 하 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령하셨다”는 간접화법과 하나님의 확고한 명령을 직접화법으로 전달한다.
특별히 저자는 부정사+동사 구문형식을 사용해 서 긍정과 부정 명령23 을 사용한다.
긍정 명령은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이고 부정명령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는 먹지 말라 는 것이다. 부정명령의 엄중함은 사람이 그 명령에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 삶과 죽음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콜린스(C. John Collins)는 이 명령을 하나의 언약24 이라고 보았다.
매튜스(K.A. Mathews)는 “아담에 게 충성된 헌신(Royal devotion)을 통해 하나님을 예배하는 기회를 주셨 다”25 라고 말한다.
21 John H. Stek, 『구약신학-본문과 해석』, 류호준 편역 (서울: 솔로몬, 2000), 277.
22 John H. SailHamer, Genesis-Leviticus, The Expositor’s Bible Commentary, 79.
23 K. A. Mathews, Genesis 1-4:26, NAC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6), 211. 그는 이 부정명령, 즉 금기명령 형식이 십계명과 모세 율법에서 흔하게 발생하 는 형식이라고 말한다.
24 C. John Collins, Genesis 1-4, A linguistic, literary, and theological commentary (New Jersey: P & R, 2006), 112-114.
25 K.A. Mathews, Genesis 1-11:26, NAC, vol. 1A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6), 210-211.
에덴에서 사람의 사명은 에덴을 경작하여 보존하고 창조주의 명령을 지키므로 창조주를 예배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과 창조주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 동시적으로 주어졌다는 것은 예배와 토라 실천이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알려준다.
이것은 앞으로 우 리가 제사와 토라의 실천관계를 살피는 좋은 기준을 제공한다.
2.1.2 위험: 거룩한 공간에서 추방(창 3-4장)
첫 사람 아담은 거룩한 공간 에덴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의 명령을 지키는 사명을 부여받았다.
이 사명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복과 위 험을 동시적으로 가진다.
그 위험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을 때 주 어지는 궁극적인 죽음과 거룩한 공간 에덴에서의 추방이다.
이 위험이 어 떻게 실현되었는지 저자는 설명한다.
첫째, 아담과 하와의 반역은 거룩한 공간 에덴에서 추방으로 이어진다(창 3장).
아담과 하와의 반역 내러티브 에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아담은 창조주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후 상황과 환경에 집착(창 3:7-10) 26
하지만 저자는 직접 화법을 통해 아담이 창조주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음을 강하게 비판한다(창 3:11).
아담과 하나님의 반 역은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하던 장소 거룩한 공간 에덴에서 추방당하는 것으로 귀결된다(창 3:22-24).27
추방 이야기는 아담의 아들 가인의 이야기에서 다시 등장한다.
사람들 은 왜 하나님은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는가에 대한 답을 얻으려고 노 력했다. 28
26 아담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은 후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다는 점에 주목 하지 못하고 자신이 벗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27 John E, Hartley, Genesis, 김진선 역, 『창세기』(서울: 성서유니온, 2019), 121. 그는 아 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추방되는 장면이 하나님이 아담을 에덴에 두셨던 것과 큰 대비를 보 여준다고 말한다.
28 그동안 제기된 해석들에 대해서는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1-17, NICOT (Grand Rapids: Will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91), 224. C. John Collins, Genesis 1-4, 199-200을 보라. 그동안 제시된 해석들은 1) 피의 제사가 아니기 때문 2)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 3) 첫 열매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해석 등이 있다.
그러나 본문은 “아벨과 그의 예물(‘민하’, hx'n>mi)에 주목하셨으나 가인과 그의 예물(‘민하’, hx'n>m)에 주목하지 않으셨다(창 3:4-5, 사역)”라고 표현한다. 여기서 “아벨과 그의 예물”, “가인과 그의 예물”은 사람과 예물 이 동격임을 알려준다. 하나님의 초점은 예물보다 가인에게 초점이 있고 가인의 예물이 예배자 가인을 거부하신 것이다. 매튜스는 하나님의 반응 은 예물의 본질에 있지 않고 예배자의 온전함(the integrity of the giver) 29 에 대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더 나아가 “사람의 관찰과는 다르게 하나 님은 사람 마음의 상태와 예배자의 동기에 무게를 둔다”30 라고 말한다.
29 K. A. Mathews, Genesis 1-4:26, 268.
30 K. A. Mathews, Genesis 1-4:26, 268.
그 렇다면 가인의 문제는 무엇인가?
우리는 그 단서를 “가인이 매우 분노하 여 그의 얼굴을 떨구었다”(창 4:5b)는 표현에서 찾을 수 있다.
여호와는 이 런 가인의 행위를 선을 행하지 않음(byjêiyte aOlå)과 죄(창 4:7b)와 연결하신다.
우리는 가인의 선하지 않은 행위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문맥적 해석에 근거할 때 선(bwOj)은 창조주의 명령과 연관이 있다(창 2:16-17)는 것을 추 론할 수 있다.
이 추론에 근거하면 저자는 가인의 행위가 창조주 하나님께 서 가인과 그 예배를 거부할 만한 가인의 삶의 문제를 은근히 드러내고 있 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가인의 행위는 동생 아벨을 살해하는 행위로 발전되었다.
결국 가인은 여호와 앞에서 추방되었다(창 4:13-15).
요약하면 첫 사람 아담의 사명은 거룩한 공간 에덴에서 창조주를 예배 하며 그의 명령을 따라 살아야 하는 사명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그는 창조 주 하나님의 명령에 반역하므로 에덴에서 추방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 의 아들 가인 또한 여호와 앞에서 선을 행하지 않으므로 그와 그의 예배가 거부되고 여호와 앞에서 추방되었다.
우리는 예배가 여호와 명령에 대한 예배자의 행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2.2 이스라엘의 사명으로서 예배와 언약에 대한 순종
2.2.1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사명으로서 예배와 언약에 순종 첫 사람 아담의 사명이 창조주를 예배하는 것이라면 이스라엘의 사명 또한 이스라엘을 구속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 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속하신 목적과 성막의 기능과 레위인의 직무에서 나타난다.
첫째,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구속하신 목적이다.
하나님은 모 세에게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온 후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길 것이 다”(출 3:12)라고 말한다.
‘섬기다’는 동사 ‘아바드’(db;[')는 창세기 2:15에 서 아담의 사명을 언급할 때 사용되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파라오에 게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다(db;[')”(출 7:16; 8:1, 20; 9:1, 13)라고 지속적으로 명령한다.
그러나 파라오는 이 명령을 완강하게 거부 하여 열 가지 재앙의 전개를 돕는 기능을 한다. 하나님의 구속은 이스라엘 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 즉 예배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둘째, 성막의 매우 중요한 기능은 제사이다.
이스라엘의 제사 번제, 소 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는 성막에서 드려진다.
특히 하나님은 이스라엘 을 대표하는 레위인들을 구별하여 성소에서 봉사(db;[') 하도록 했다(민 4:43, 47).
이것은 이스라엘이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선택된 제 사장의 나라(출 19:5-6)라는 것을 잘 보여 준다.
첫 아담의 사명이 창조주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라면 이 사명은 이스라 엘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이스라엘의 사명이 구속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라는 것은 몇 가지 사건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첫째, 이 스라엘의 존재방식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의 백성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면서 그 언약을 지킬 때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소유, 거룩한 백성, 제사 장의 나라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출 19:5-6).
이것은 이스라엘의 구원 조건이 아니라 “언약 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조건”31 일 뿐 아니 라 이집트에서 벗어난 독립된 국가(출 12:1) 이스라엘이 거룩한 백성으로 존재하는 방식이다.
둘째, 성막 건축과 특징에서 이스라엘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드러난다.
출애굽기 25-40장에 기록된 성막 건축 지시는 안식일을 지 키라는 것으로 마감하고 성막 건축의 시작 또한 안식일을 지키라는 이야 기로 시작된다. 특히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자에 대한 죽음 선포(출 31:14, 15; 35:2)는 첫 사람 아담에게 했던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을 때 주어 질 심판을 연상하게 한다.
창조주 하나님의 임재는 언약을 지키는 것과 밀 접한 관련이 있다. 32
저자는 이스라엘이 성막을 건축하는 중이라도 언약의 표징 안식일을 지키라는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33
또한 저자는 성막 휘장에 새겨진 그룹을 통해 성막과 에덴을 연결하고 여 호와께서 속죄소 증거궤 위 두 그룹 사이에서 모세를 만나고 이스라엘에 게 명령할 모든 일을 말하실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성막 기능 중 하나가 이스라엘에 대한 여호와의 통치를 보여주는 것임을 알려준다.
성막은 예 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에게 명령하고 다스리는 장소이다.
셋째, 제사의 규례이다.
성막의 중요한 기능은 제사34 이다.
31 박철현, 『출애굽기 산책』(서울: 목양, 2011), 175.
32 William J. Dumbrell, The Faith of Israel, A Theological Survey of the Old Testament, 39. 그는 이 이야기를 창세기 2장과 연계하여 하나님의 임재 장소로서 성막은 언약의 중요 성을 설명한다고 말한다.
33 박철현, 『출애굽기 산책』, 227-228.
34 Tremper Longman III, Immanuel in our place, 권대영 역,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 님: 이스라엘의 예배가운데 계시는 그리스도』82-83. 그는 제사의 기능으로 속죄와 선물과 교제 혹은 연합을 제시한다.
번제, 소제, 화목제는 이스라엘 가운에 임재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가까이 하기 위한 제사이고35 속죄제와 속건제는 범죄했을 때 드리는 제사이다.
전자가 자발 적인 제사라면 후자는 의무적인 제사로36 여호와의 명령을 어긴 것과 관련 이 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제사의 대상이 거룩하신 하나님이시기에 그 가 기쁘게 받으시도록 명령하신 예물과 규례를 따라 드려야 한다는 점이 다. 37
우리는 레위기가 시내산 언약이라는 큰 범주 아래서 “예배와 거룩한 삶을 위한 하나님의 지시사항”38 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35 Leonard J. Coppes, “2065 קָרַב, “ed. R. Laird Harris, Gleason L. Archer Jr., and Bruce K. Waltke, Theological Wordbook of the Old Testament (Chicago: Moody Press, 1999), 811– 812. “누구든지 예물을 드리려거든”에서 명사 예물과 동사 드리다는 동일 어근 ‘카레 브’(קָרֵב(에서 온 것으로 어떤 물건을 가지고 어떤 대상과 실제적인 접촉을 위해 가까이 다 가가는 것을 의미한다.
36 김근주, 『오늘을 위한 레위기』(서울: IVP, 2011), 119.
37 김근주, 『오늘을 위한 레위기』, 44.
38 Gary E. Schnittjer, Torah Story, 박철현 역, 『토라 스토리』(서울: 솔로몬, 2015), 351.
따라서 이스 라엘의 예배는 임의적이거나 자의적이 아닌 여호와의 지시, 명령을 따라 드려야 한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예배할 때 하나님을 가까 이하여 그와 교제할 수 있다.
첫 사람 아담이 창조주를 예배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는 것이 그의 사명이었다면 이스라엘 또한 그들을 구속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의 명령 즉 언약을 지켜 거룩한 백성으로 살도록 부름을 받았다.
2.2.2 이스라엘의 위험과 온전한 예배
창조주 하나님의 구속은 이스라엘에게 은혜이며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들 가운데 거하셨다는 것은 이스라엘에게 영광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가까이할 때 위험이 존재한다.
첫 째, 그 위험은 금송아지 사건에서 발견된다(출 32-34장).
금송아지 사건은 성막 건축 이야기 중앙에 위치하여 언약파기가 하나님의 임재와 이스라엘 의 생존에 위험을 미친다는 것을 알려준다. 39
이스라엘은 출애굽이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모세가 주도한 것으로 인식하고 자신들을 인도할 신을 요구한다(출 32:1). 그러자 아론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애굽에서 올라오게 한 신”(출 32:2-6)이라고 선포한다. 40
이 사건은 1계명과 2계명에 대한 언 약파기로 구속하신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을 “내 백성” 이라고 부르신 여호와는 그 백성을 부패한 백성(출 32:7-8), “목이 뻣뻣한 백성”(출 32:9-10)으로 규정하고 심판의 대상으로 분류한다.
저자가 성막 건축 지시를 하는 도중 이 이야기를 배열한 것은41 “성막 제조 자체보다 언 약의 주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하는 것”42 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39 Gary E. Schnittjer, Torah Story, 박철현 역, 『토라 스토리』, 312.
40 Gary E. Schnittjer, Torah Story, 박철현 역, 『토라 스토리』, 312-313. 그는 금송아지 이야기는 반역 이야기로 저자가 거울 이미지 기법을 통해서 이 반역 사건이 얼마나 가증스 러운 일인지를 드러내고 있다고 본다. 또한 그는 이스라엘의 상태를 바로의 완악한 성품에 비유한다.
41 박철현, 『출애굽기 산책』, 248. 그는 성막과 금송아지 사이의 유비점과 유사성을 검 토한다. 그는 “나를 위하여 만들라”(출 25:8)와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출 32:1)가 대비되 고, 성막은 철저한 계획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데 금송아지는 즉흥적이라는 점, 성막에 다 양하고 귀한 재료가 사용된 반면 금송아지는 금고리만 사용된 점등을 검토한다.
결과적으 로 그는 하나님이 자신의 방식으로 지은 성막을 통해 이스라엘과 함께 있으려 하나 이스라 엘은 자신의 방식으로 자신을 위하여 하나님을 자신들 속에 있게 하려고 했다고 말한다.
42 강규성, 『출애굽기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서울: 예영 B&P, 2014), 363-367.
둘째, 아론의 아들들, 나답과 아비후 그리고 엘르아살과 이다말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성막에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의 위험을 알려준 다. 나답과 아비후는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레 10:1) 로 분향하다가 여호와 앞에서 죽는다. 해석자들은 “다른 불”에 대해 해석 하려고 하지만 본문의 강조는 “여호와께서 명령하지 아니한”이라는 문구 에 초점이 있다. 이것은 출애굽기 30:7-10에 대한 위반이다.
또한 엘르아살과 이다말은 속죄제물을 거룩한 장소에서 먹으라는 여호와의 명령을 어 긴 일로 책망을 받는다.
이 두 사건은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위반할 때 하나님의 거룩함을 훼손하여 얼마나 큰 위험에 처하는지를 알려준다.
셋째, 이스라엘의 위험은 언약적 저주에도 나타난다. 이스라엘이 언약 에 충성할 때 주어지는 복도 있지만 이스라엘이 언약을 위반하여 반역했 을 때 주어질 저주를 예고한다(레 26장). 그 언약적 저주의 최종성은 약속 의 땅에서 추방이다.
넷째,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가장 큰 위협은 이방 종교이다.
모세는 이스 라엘에게 이방신을 섬기는 장소를 파괴하고 그 신들의 이름을 제거하라고 강하게 명령한다(신 12:2-3).
우즈(Edward J. Woods)는 이 명령이 “신들의 실제적 기능이 무효화”43 되도록 요구한다고 말한다.
43 Edward J. Woods, Deuteronomy, 김정훈 역, 『신명기』 틴데일구약주석시리즈 5 (서 울: CLC, 2016), 253.
모세는 온전한 예배 를 위해 가나안 땅에서 악 즉 가나안 신들을 탐구하는 일과 그들을 섬기자 는 유혹을 제거하라고 명령한다(신 12:28-32).
특별히 그 악의 한 예로 자 녀를 불살라 신에게 드리는 가증한 행위를 제시한다(신 12:30).
그뿐만 아 니라 모세는 온전한 예배를 위해 적극적으로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 시려고 택한 장소에서 제물을 드리고 가족과 레위인과 과부와 고아와 나 그네와 함께 먹고 즐거워하라고 말한다.
이것은 예배를 통해서 공동체를 통합하는 기능이 있음을 알려준다.
토라는 첫 사람 아담처럼 이스라엘도 창조주를 예배하고 그의 명령을 지키도록 부름을 받았다고 가르친다.
그들은 이 언약에 충실할 때 거룩한 백성 제사장의 나라로 존재한다.
그러나 그들이 언약을 파기하고 반역했 을 때 그들은 아담처럼 추방의 위험을 안고 있다.
이스라엘은 예배할 때 예 배의 대상 하나님께서 제시한 규례를 따라 드려야 한다.
온전한 예배를 위해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서 이방신과 그 이름을 제거해야만 한다.
그리 고 적극적으로 이스라엘은 예배를 통해 기쁨의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3 역사서에 나타난 예배에 대한 고찰
세터트웨트와 맥콘빌(Philip Satterthwaite & Gordon MacConville)은 “정 경적인 위치에서 역사서는 모세오경에서 시작된 내러티브의 연장이다”44 라고 말한다.
구약 역사서는 ‘토라’를 가지고 약속의 땅에 들어간 사람들 이 그 땅에서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기록45 이다.
44 Philip Satterthwaite & Gordon MacConville, Historical Books, 『역사서』, 성경이해 2, 김덕중 역 (서울: 성서유니온선교회, 2008), 27.
45 Paul R. House & Eric Mitchell, Old Testament Survey, 89. 그들은 여호수아-열왕기는 “역사에서 무엇이 일어났고 그것이 왜 발생했는지를 말한다. 그 책들은 그 사건들에 대해 보고하고 이스라엘의 역사에 포함된 신학적 요소들을 말한다”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앞에서 이스라 엘의 사명이 여호와를 예배하고 그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다고 했다. 그렇 다면 역사서는 이스라엘이 이 사명을 어떻게 수행했으며 그 결과는 무엇 이라고 보고하는가?
3.1 가나안 정복과 정착에서 나타난 이스라엘의 예배: 여호수아~사무엘상 1-7장
가나안 정복과 정착을 다룬 본문은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1~7장이다.
이 본문들은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예배를 어떻게 평가하 는지 살피려고 한다.
첫째, 여호수아서이다.
여호수아서에 나타난 첫 제사 는 아이성을 점령하고 에발산에서 드려진다.
본문은 여호수아가 모세의 ‘토라’를 따라 제단을 만들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고 기록한다.
여호수 아는 에발산과 그리심산에서 모세의 명령을 따라 토라에 기록된 복과 저 주를 읽는다(수 8:30-35). 우리가 주목할 또 한 부분은 여호수아의 연설이 다(수 22-24장). 그 연설의 핵심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예배하고(수 23:6-8) 하나님을 사랑하여 모세의 ‘토라’에 충성하라(수 22:5; 23:6; 24:14) 는 것이다. 46
역사서는 여호수아가 모세의 ‘토라’를 따라 예배했다는 보고 와 하나님만을 예배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토라에 충성하라는 여호수 아의 소리로 시작한다. 둘째, 가나안 정착에서 나타나는 예배이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온전히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이방신과 그 이름을 제거하라고 명령했다.
사사 기는 이스라엘이 이 명령을 지키는 데 실패했다는 보고(삿 1장)로 시작한 다.
특히 여호와의 사자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주민과 언약을 맺고 그들의 제단을 파괴하지 않은 것에 대해 책망한다(삿 2:1-5). 더 나아가 사사기 저 자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그가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그 일도 알지 못하 는 세대가 일어났다”(삿 2:7-10)고 보고한다.
그후 이스라엘은 그들을 구 속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 즉 바알들을 섬겼고 그것은 여호 와의 진노의 원인이 되었다.
이스라엘은 예배의 대상 구속하신 하나님을 버리고 파괴의 대상 이방신을 택했다.
여호와에 대한 무지는 아이러니하게 이스라엘에게서 제사장에게까지 발전한다.
제사장 홉니와 비느하스에 대한 평가는 ‘벨리알의 아들들’ (l[= ;Y"liBiyneB.), 47 “여호와를 알지 못함”(삼상 2:12),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 함”(삼상 2:17)으로 나타난다. 그들이 여호와께 드리는 제물을 갈취하는 46 William J. Dumbrell, The Faith of Israel, A theological Survey of the Old Testament, 75. 47 ‘벨리알의 아들들’은 ‘무가치한 아들들’이란 의미로 이것은 한나가 제사장 엘리에게 자신을 “악한 여자” 즉 ‘벨리알의 딸’(l[;=Y"liBI-xB:)로 여기 말라는 말과 대조를 이룬다. 강규성 | 구약의 관점에서 본 제의적 예배와 토라 실천의 상관관계 연구 129 행위는 한 번의 실수가 아니라 관습이었다.
이것은 그들이 제사를 멸시했 음을 보고한다.
베르겐(Robert D. Bergen)은 엘리가 ‘벨리알’이었다고 지 적하며 실로의 관습이 여호와를 멸시하고 여호와의 이름이 있는 그곳을 위협했다48 고 지적한다.
48 Robert D. Bergen, 1, 2 Samuel, vol. 7, NAC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6), 78.
본문은 제사장들이 제사보다 제물에 집착한 폭군 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은 심지어 언약궤 마저도 도구화 한다(삼상 4:4-11).
결국 그들의 마지막은 죽음과 가문에서 제사장이 중단되는 심판 이었다.
그러나 이런 절망의 상황에서 희망을 제시한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회 개이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자손에 이방신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오직 여호와 만을 섬기라(db;[')고 말한다.
이스라엘은 바알과 아스다롯을 제거 하고 여호와만을 섬긴다(삼상 7:3-4).
그 후 사무엘과 이스라엘은 미스바 에서 그들의 죄를 자복하고 “온전한 번제”를 드린다.
가나안 정복과 정착 시대 예배는 토라에 근거한 예배로 시작해서 “온전 한 번제,” 즉 예배 회복으로 마감한다.
그러나 그 시대는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신을 예배하는 시대였고 제사장이 제사를 멸시하고 언약궤를 도구화 하는 시대였다.
3.2 통일 왕국 시대의 예배: 사울, 다윗, 솔로몬
신명기 17:14-20에 기록된 이스라엘 왕의 규례 중 하나는 왕이 토라를 필사하여 평생 읽어 여호와를 경외하기를 배우고 토라를 지키는 것이다 (신 17:18-19).
이스라엘 왕정의 시작은 마음을 다해 여호와를 섬기라(db;[') 는 권면과 만일 여호와를 소리를 듣지 않고 악을 행하면 이스라엘과 왕이 함께 망할 것이다는 경고로 시작된다.
그렇다면, 사울과 다윗 그리고 솔로 몬의 통치시대 이스라엘의 예배는 어떻게 묘사되는가?
3.2.1 사울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불행하게도 그의 죄가 제사와 관련되어 시 작하고 마감된다.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백성들이 흩어지는 것을 보고 번제와 화목제물을 가져오게 하고 번제를 드린다(삼상 13:9-10).
사 무엘은 사울의 행동을 망령되고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은 행동으로 평가하고 사울의 나라가 오래가지 못할 것을 선포한다.
일부 학자들은 사 울의 행동을 옹호하려고 하지만49 그의 행동은 제사를 정치적 도구로 이용 하려는 망령된 행동이었다.
49 Walter Brueggmann, First and second Samuel, Interpretation (Atlanta: John Knox, 1990), 99; D. M Gunn, The Fate of King Saul: An Interpretation of a Biblical Story, Jsots 12(Seffield: Sheffield Academic Press, 1980), 124.
제사와 관련된 사울의 불순종은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나타난다.
사울은 아멜렉을 진멸하지 않고 가장 좋은 양과 소를 취한다. 이에 대해 사무엘이 책망하자 사울은 여호와께 제사하기 위한 행동이라고 정당화한다.
그러나 사무엘은 이 행동을 사울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린 사건이며 이것은 점치 거나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다고 평가한다(삼상 15:23, 26).
사울은 백성 의 소리를 두려워하여(삼상 15:24) 여호와의 소리에 민감하지 못했다. 이 사건을 통해 사무엘은 제사와 순종의 관계를 명확히 한다.
그것은 제사와 제물보다 여호와의 소리를 듣고 따르는 순종이 낫다는 것이다.
이것은 예 배와 토라의 관계에 대한 지금까지 구약의 입장을 명료하게 정리한다.
브뤼그만과 건은 이 사건을 함정이거나 기술적인 문제로 보려고 한다.
3.2.2 다윗
그렇다면 다윗 왕 이야기에서 예배는 어떻게 묘사되는가?
다윗과 관련 된 제사는 크게 언약궤를 다윗성으로 모시는 일과 성전 예배 체계화와 관 련해서 나타난다.
다윗은 언약궤를 모시는 일과 관련하여 두 가지 모습을 보인다.
첫째,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모습이다.
다윗은 바알레유다에 있는 ‘하나님의 궤’를 다윗 성으로 모시기 위해 새 수레에 언약궤를 싣고 여러 가지 악기를 연주한다.
그러나 웃사가 하나님의 궤를 잡으려 하다가 죽자 다윗은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하나님의 궤를 모시는 것을 중지한다(삼하 6:1-11). 이 모습은 홉니와 비느하스가 언약궤를 도구화했던 모습과는 매 우 대조적이다.
둘째, 잠시 오벧에돔의 집에 모셨던 하나님의 궤를 모시는 장면에서 다윗은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을 따르는 모습이다(대하 15:1- 16:7).
다윗은 레위 사람만이 하나님의 궤를 메고 섬기게 한 규례를 지키지 않았다고 고백한다(대상 15:1-13).
따라서 다윗은 레위인을 성결하게 하고 하나님의 궤를 여호와의 명령대로 어깨에 메도록 한다.
또한 각종 악기와 노래로 여호와를 섬기고 감사와 찬양을 하게 한다.
특별히 다윗은 아삽과 그의 형제들을 세워 여호와를 찬양하게 했다.
이 다윗의 찬양시(대상 16:7- 38)의 핵심은 여호와를 기억하고 감사하며 찬양하는 것이다.
안석일은 이 것을 다윗이 드린 “예배의 예”50 라고 말한다.
50 안석일, “역대기를 통해 본 예배의 연속성과 중요성: 다윗의 감사 찬양시(대상 16:8- 36)를 중심으로,” 45. 그는 역대기에 나타난 예배 특징을 “온 이스라엘”로 표현된 확장된 그 룹, 은혜로우신 하나님을 고백, 기쁨의 예배, 여호와를 찾는 것이라고 말한다(58-59).
또한 다윗은 여호와의 토라 즉 여호와의 명령대로 번제를 드리고 여호와를 섬기게 했다.
이것은 여호 와의 명령 즉 토라를 따라 여호와를 예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예배와 관련된 다윗의 중요성은 성전 예배의 체계화에서 나타난다.
다 윗 언약(삼하 7:1-17)의 핵심 중 하나가 성전 건축이다.
성전에 대한 다윗의 계획은 거절되지만 역대기 기자는 성전 건축을 위한 준비를 상세히 기 록한다(대상 22:1-29:25).
그 준비 중 하나가 레위인과 제사장 직무의 체계 화를 통해 “여호와의 명령하신 규례대로”(대상 23:31) 51 여호와를 섬기게 한 것이다.
다윗은 게르손과 그핫과 므라리 자손들에게 성전을 섬기는 일 과 찬양하는 일 그리고 여호와의 성전에서 수종 드는 직무를 수행하게 했 다.
이것은 다윗이 레위인의 직무를 출애굽 당시 성막과 관련된 레위인의 역할과 연계하여 직무를 부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다윗은 사독과 아히멜렉에게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도록 하되 성전의 일을 각각 나누어 차등없이 하도록 하였고 특별히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하게 하였다.
또 한 그는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 자손 중 구별된 자들에게 수금과 비파와 제 금으로 신령한 노래를 하게 하였다.
이런 체계화는 예배의 중요성을 보여 주며 동시에 여호와의 명령을 따르는 통일성과 공평함52 그리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 있어서 다양성을 보여준다.
51 J. A. Thompson, 1,2 Chronicles, NAC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4), 176. 그는 찬양 직무의 기초가 민수기 10:10, 신명기 10:8, 18:5에 두고 있다고 본다.
52 이종록, 『예배하라! 다윗처럼, 솔로몬처럼-역대기와 신앙공동체』(서울: 한국성서학 연구소, 2012), 250.
3.2.3 솔로몬
솔로몬 이야기에서 예배는 긍정과 부정적인 면으로 나타난다.
왕위 계 승 이야기(왕하 1-2장)에서 솔로몬에 남긴 다윗의 유언의 핵심은 솔로몬 의 임무가 모세의 토라를 지키는 것이다는 것을 알려준다(왕상 2:2).
토라 를 지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솔로몬이 기브온 산당에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릴 때(왕상 3:14),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는 도중에(왕상 6:12), 솔로몬 의 성전 봉헌 기도에 대한 응답(왕상 9:6)에서 반복된다.
특히 성전 봉헌은 제사와 기도로 이루어졌다.
기도의 핵심은 성전에서 드리는 간구와 기도이다.
그 내용은 자신을 비롯한 이스라엘과 이방인까 지 성전에서 죄를 자백하고 돌이키면 용서해 달라는 것이다.
솔로몬의 기 도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성 전에 있을 것이다는 긍정적 반응이다.
그러나 다른 하나는 솔로몬이 여호 와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지 않고 다른 신들을 섬기면 약속의 땅에서 추방 할 것과 성전도 파괴하겠다고 선포한다(왕상 9:1-9; 대하 7:11-22).
솔로몬 의 마지막 장면은 그가 “여호와를 사랑”(왕상 3:3)하는 데서 돌이켜 “이방 여자를 사랑”(왕상 11:1)하여 여호와께서 명령한 말씀을 따르지 않고 이방 신들 섬기는 악을 행하였다.
이것은 분열왕국의 원인이 되었다.
3.3 분열왕국에 이야기에서 나타나는 예배
3.3.1 북방 이스라엘의 예배: 여로보암의 악을 따르는 왕조들
분열왕국의 왕들은 다윗의 길과 여로보암의 길을 기준으로 선한 왕과 악한 왕으로 평가된다.
북방 이스라엘의 모든 왕조와 왕들은 여로보암의 길을 따라 악한 왕으로 평가된다. 여로보암의 악은 북방 이스라엘의 멸망 의 원인이 되었다(왕하 17:21-23).
여로보암의 악은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 를 만들어 이스라엘을 구속한 하나님으로 둔갑시키고, 일반인을 제사장으 로 삼고 8월 15일로 절기를 변경한 것이다(왕상 12:28-33).
이것은 여로보 암이 자신의 왕권 유지를 위해 토라의 가르침(신 9:8-21; 18:1-8; 12:5-7) 거 부하고 의도적으로 악을 행하여 거짓된 하나님을 예배하게 한 것이다.
강 정주는 “여로보암의 죄에 대한 반복적인 언급은 이스라엘의 멸망의 불가 피성”53 을 말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53 강정주, 『열왕기 어떻게 읽을 것인가』(서울: 킹덤북스, 2013), 106.
여로보암의 악을 따르는 북방 이스라엘의 왕들 중 열왕기 저자가 주목하는 왕은 오므리 왕가의 아합이다.
그는 “그 전의 모든 사람들보다 더욱 악을 행했다”(왕상 16:25)고 평가된 아버지 오므리보다 더 악한 왕으로 평 가된다.
그것은 그가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겼기”(왕상 16:30-31) 때문이다.
특별히 그는 시돈 왕 엣바알의 딸 이세 벨과 결혼하여 북방 이스라엘을 바알 종교화 한 자이다.
이때 북방 이스라 엘에서 여호와를 위한 예배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아합은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죽였고 살아남은 선지자는 굴에 숨어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왕상 18:4).
아합의 바알종교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아 합은 남방 유다의 여호사밧과 혼인 동맹을 맺어 그 영역을 확장한다.
그 위 험성은 아합과 이세벨의 딸 아달랴가 남방 유다의 왕 여호람의 아내가 되 어 “다윗의 씨를 진멸”(왕하 11:1)한데서 나타난다.
“이 아합의 딸(왕하 8:18, 27)은 확실히 이세벨의 결단력과 잔인함, 순전한 용기를 본받고 있 다.”54 라고 말한다.
54 Paul R. House, 1, 2 Kings, vol. 8, NAC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5), 297.
이것은 바알종교가 남방 유다까지 퍼져 여호와를 예배 하는 자들을 제거할 수 있는 위험성을 보여준다.
그것은 이미 남방 유다에 바알의 집과 제사장이 있었기 때문이다(왕하 11:18).
그러나 그 위험성은 여호야다와 여호세바를 통해 제거된다.
북방 이스라엘의 왕들은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악을 행하여 결국 북방 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게 멸망하여 약속의 땅에서 추방된다.
열왕기 저자 는 그 이유를 하나님의 언약과 토라를 버리고 그들을 구속하신 여호와 하 나님을 예배하지 않고 모세가 경고했던(신 12:2-3) 이방신을 제거하지 않 고 만들어 예배했기 때문이다.
3.3.2 남방 유다의 예배: 성전예배의 혼합주의와 언약갱신
남방 유다의 왕은 “이스라엘 왕 아합의 소위를 본 받아”(왕하 21:2)라고 평가받은 므낫세를 제외하고 다윗을 기준으로 선하고 악한 왕으로 구분된 다.
유다 왕들과 관련된 예배는 성전과 관련하여 혼합주의 형태를 보인다. 르호보암은 여호와의 토라를 버리고 여호와께서 쫓아낸 민족의 가증한 일 을 행했다(왕상 14:24).
결국 여호와의 전은 이집트 시삭의 수탈의 대상이 되었다(왕상 14:25-28).
여호람과 아하시야는 이스라엘의 왕들의 길을 따 라(대하 21:6; 22:3) 악을 행하였다. 여호람은 예루살렘에서 유다 사람을 미혹하여 음란하게 우상을 섬기게 했다(대하 21:11). 웃시야는 교만하고 악하여 성전 향단에 분향했다가 나병 환자가 되었다(대하 26:21).
아하스 는 오히려 성전 문을 닫고 성전 기구를 부수었고 성전의 기구를 임의대로 옮겼다. 그는 성전에 다메섹의 제단을 두고 그 곳에서 번제물과 소제물 드 리는 소위 예배를 드렸다.
특별히 “오직 놋제단은 내가 주께 여쭐 때에만 쓰게 하라”는 아하스의 말은 그의 이중성을 보여준다. 그의 시대 성전 예 배는 있었으나 예배의 대상과 목적은 달랐다.
그는 성전과 성전 예배를 유 린했고 여호와마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용했다.
므낫세가 여호와의 이 름을 두 기로 한전즉 성전에 자신이 일월성신을 위한 제단과 아로새긴 목 상을 세웠다(대하 33:1-6).
역대기 기자는 그가 다윗과 솔로몬에게 하신 여 호와의 말씀 즉 여호와의 율법과 규례를 지키지 않을 경우 경고했던 약속 의 땅에서 추방되었다(대하 33:7-11)고 보고한다.
또한 요시야가 성전에 있는 아세라를 위한 휘장을 짜는 남창의 집을 헐었다는 언급은 얼마나 성 전 예배가 이방의 요소들과 혼합되어 철저하게 유린당했는지를 보여준다.
성전과 성전 예배는 언약 갱신과 성전 수리와 관련하여 다루어진다.
여 호야다는 왕과 백성이 여호와의 백성이 되기로 언약을 세운다(대하 23:16).
그 후 그는 바알 신당과 제단을 제거하고 다윗이 모세의 율법대로 번제를 드리고 다윗의 규례대로 찬송했던 자들 즉 레위인과 제사장들 에 136 개혁논총 게 맡긴다(대하 23:18).
이것은 그가 성전 예배의 회복을 추구했음을 드러 낸다. 요아스 또한 성전을 수리하고 번제를 드리는 성전 예배를 회복 시켰 다(대하 24:4-7, 14).
그러나 불행하게도 요아스는 여호야다가 죽은 후 성 전 예배를 포기하고 이방신을 예배한다(대하 24:18). 그 결과 요아스는 여 호와의 진노의 대상이 된다. 55
스가랴는 이런 행동에 대해 요아스가 여호 와를 버렸 기에 여호와께서 요아스를 버렸다고 선포한다(대하 24:20).
히스기야는 레위인들을 통해 성전을 청결하게 하고 제단에서 번제와 속 죄제를 드려 성전 예배를 회복했고 제금과 비파와 수금으로 여호와를 찬 송하게 했다(대하 29:1-35).
역대기 기자는 이것이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예비하심(대하 29:36) 56 이라고 말한다.
요시야는 성전을 정결하게 하고 토 라 책을 발견하여 언약갱신을 한다.
열왕기 기자는 요시야 개혁에 대해 “요 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모세의 토라를 따라 여호와께 돌 이킨 왕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왕하 23:25)고 평가한다.
그리고 그는 유월절을 지키며 번제를 여호와의 제단에 드리므 로 성전 예배를 회복한다.
그러나 이런 회복 운동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은 멸망하고 약속의 땅에서 추방된다.
역대기 기자는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서 추방된 이유는 성전을 더럽히고 여호와의 말씀을 멸시했기 때문이 라고 말한다. 안석일은 “역대기에서 ‘마알,’ 즉 성전과 예배에 대한 불충실 함은 땅의 상실과 왕위를 이을 적합한 후계자의 부재를 가져왔다”57 고 주 장한다.
55 김지찬, 『여호와의 날개 아래 약속의 땅을 향하여: 구약 역사서 이해- 문예적 신학적 서론』(서울: 생명의말씀사, 2016), 1111. 그는 진노로 번역한 ‘케체프’가 역대기에 모두 7번 나오는 단어로 하나님의 즉각적 보응의 주제를 강조하는 단어라고 말한다.
56 J. A. Thompson, 1,2 Chronicles, NAC, 350.
57 안석일, “역대기에 나타난 ‘마알’의 의미와 기능,” 「성경원문연구」 45(2019): 64.
요약하면, 역사서는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그의 토라를 지키지 않으므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 실패했다고 서술한다.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이 경고한 이방신에게 예배했으며 성전을 건축하고 예배를 체계화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성전 예배를 폐하거나 혹은 예배를 혼 잡하게 하므로 예배의 순수성을 상실하게 했다.
히스기야 요시야 등 일부 왕들에 의한 언약 갱신 운동과 더불어 예배개혁이 시도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언약에 대한 불순종은 약속의 땅에서 추방이란 결론에 이르렀다.
이것은 이스라엘 여전히 첫 사람 아담의 길을 걸었음을 보여준 다.
그러면서 예배의 회복은 이스라엘이 여호와 앞에 겸손히 행하여 여호 와를 찾을 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4 선지서에 나타난 예배에 대한 평가와 비전58
선지자는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그가 살았던 시대를 평가하고 그 평가 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을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특별히 선지 자들은 그들이 살았던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른 메시지들이 선포되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통일된 관점이 있었다.
그것은 토라 즉 하나님 의 말씀이라는 관점에서 시대를 평가한다. 59
58 시가서에 나타난 예배에 대한 부분은 지면의 한계상 다음 기회에 다루도록 하겠다.
59 Willem VanGemeren, Interpreting the Prophetic word, 김의원, 이명철 역, 『예언서 연 구』(서울: 도서출판 엠마오, 1993), 66-71. 그는 선지자를 고대 근동의 예언자들의 관점에 서 보려는 시도를 거부하고 계시와 종교의 차이점 즉 순종과 조작의 관점에서 선지자들을 구별하여 바라본다. 그는 선지자의 직무가 하나님의 대언자로서 선지자 전통의 일원으로 서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을 선포하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그 평가에는 이스라엘의 예배 와 성전, 제사장에 대한 부분도 차지한다.
따라서 필자는 선지자들이 이스 라엘 역사에서 드러난 예배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바라보는지 살피고자 한다.
예배에 대한 선지자들의 평가는 그가 살았던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 르게 나타나지만 일관된 관점이 나타나는 주제를 중심으로 통합적으로 고찰하려고 한다.
제사와 관련된 일관된 관점은, 제사와 제물에 대한 입장, 성전과 예배, 제사장에 대한 평가, 안식일에 대한 입장, 우상에 대한 것이 다.
4.1 제사와 제물에 대한 일반적 평가
역사서는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명령을 버리고 이방신을 섬겼다고 서술 한다.
선지자들은 그런 행위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신랄한 평가를 전달 한다.
제사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평가는 제사 무용론을 제기하는 것처 럼 매우 강경한 입장을 취한다.
이사야는 유다 사람들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유하며 유다의 제사를 거부한다.
그는 노골적으로 그들의 번제, 제물, 절 기를 싫어한다. 심지어 그들의 제사 행위가 가증하며 우상을 찬송하는 행 위와 같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 악을 행하고 정의를 구하지 않으며 고아와 과부를 억압하므로 사회적 정의를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 라서 그들의 제물을 헛된 제물이며 그들의 제사행위는 마당만 밟는 헛된 제사로 평가되었다(사 1:10-17).
예레미야 또한 유다의 제사에 대한 입장 다르지 않다.
그는 유다의 금식 과 소제와 번제를 여호와께서 거부하신다고 말한다(렘 14:12). 유다는 금 식과 종교행위를 통해 하나님에게 다가갔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소리를 듣 지 않고 그들을 거부하면서 칼과 기근과 전염병 심판 즉 언약의 저주를 선 포한다. 이것은 유다의 제사가 언약을 파기한 이방 종교행위와 다름이 없 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아모스는 이스라엘의 제사 즉 희생제물과 십일조, 그리고 수은제와 낙 헌제를 매일 드린다고 해도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제사라고 말 한다(암 4:4-5).
특별히 본문은 “매일 아침”이라고 언급하므로 그들의 종교 적 열심을 부각시킨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의 예배가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예배가 아니라 “너희가 기뻐하는 것”이라고 규정하므로 본질적으 로 예배의 대상이 여호와에게서 자신들에게로 변했음을 지적한다.
스미스 와 페이지(Billy K. Smith & Franklin S. Page)는 이스라엘이 그들의 관대 한 희생과 헌물을 자랑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는 것이 아닌 그들의 행위를 과시한다고 말한다. 60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의 제사를 거부한 이유 는 그들이 여호와의 법을 무시하고 정의와 공의를 훼손했기 때문이다.
이 것은 이스라엘 삶이 여호와의 명령에 부합하지 않는 삶으로 예배가 무가 치하다는 평가이다.
미가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가 무엇인지 질문한다.
그는 이 질문에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예배는 제물이 아니라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이며 인자를 사랑하고 겸손이 하나님과 행하는 것이다고 답을 한다.
보드 (Lawrence Boadt)는 이 질문과 대답은 구약 모든 율법을 한 줄로 요약한다 고 말한다. 61
60 Billy K. Smith and Franklin S. Page, Amos, Obadiah, Jonah, vol. 19B, NAC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5), 88.
61 Lawrence Boadt, Reading the Old Testament (New York: Paulist, 1984), 336.
미가는 더 나아가 이스라엘의 제물이 불의한 것이며 폭력과 거짓으로 일구어 낸 제물이며 이것은 마치 오므리와 아합의 율례를 따라 행한 행동이므로 심판을 선포한다(미 6:8-16).
말라기는 이런 이스라엘의 제사행위가 여호와의 이름을 멸시하는 것이 며 여호와의 식탁을 더럽히는 것으로 차라리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으면 좋겠다고 비난한다(말 1:6-12).
그뿐 아니라 그는 제사에 대한 백성들과 제 사장의 오해를 지적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고 더러운 떡을 제 단에 드리며 희생제물을 드리며 그것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라고 생각 했다.
또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가 번거롭지 않게 하기 위해 훔친 물건과 병든 제물을 여호와께 드렸다(말 1:13).
여호와는 이런 자들의 제사가 여 호와의 이름을 멸시하는 것으로 저주를 선포한다.
여기서 말라기 시대 예배자의 편의를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등한히 여기며 그 제사가 정당하다 고 생각하는 자들을 보게 된다.
4.2 제사장과 성전에 대한 평가
위와 같은 제사가 집행된 곳은 성전이다. 그 성전의 봉사자는 제사장들 이다.
제사장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구별된 자들이다.
그들에게는 예 레미야 시대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토라가 있었다(렘 18:18).
그들은 제사장이기도 했지만 그들은 토라의 선생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제사가 하나님에게 거부된 근저에는 제사장이 있다.
이사야는 제사장들이 독주로 비틀거리는 자들(사 28:7)로 평가하고 예 레미야는 그들은 토라를 가지고 있으나 여호와를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자 신의 권력을 사용해 백성들을 억압하는 자들(렘 2:8; 5:30)로 평가한다. 그 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백성의 태도이다.
선지자들은 거짓 예언을 제사장 들은 권력을 앞세우고 행동하는데 백성들은 그것을 좋아한다(렘 5:30)고 평가한다.
예레미야는 제사장이 오히려 토라를 범하고 성물을 더럽혔다고 지적하고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더럽힘을 당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호세아는 토라를 버리고 속죄제물을 먹음으로 범죄하는 것은 여호와에 대한 무지 때문이라고 지적한다(호 4:6-8). 미가는 더 나아가 제사장은 삯 을 위해 교훈을 한다(미 3:11)고 비판한다.
또한 스바냐는 제사장이 성소를 더럽히고 토라를 범했다고 지적(습 3:4)하고 말라기는 여호와께서 멸시와 천대를 받았다(말 2:9)고 평가한다.
그러면서도 말라기는 레위와 맺은 여 호와의 언약 생명과 평강의 언약을 상기시키며 제사장은 지식을 지키고 사람들은 그의 입에서 나오는 토라를 구해야 한다(레 2:4-7)고 가르친다.
제사장이 있는 곳은 성전이다. 예레미야 시대 사람들은 “여호와의 성전” 이라고 부르며 그 장소에 집착한다(렘 7:4).
그러나 예레미야는 가증한 행위가 있는 곳(렘 7:30)이며 도둑의 소굴(렘 7:11)이라고 강하게 비판한다.
그곳은 압제가 있고 무죄한 피를 흘리는 곳이며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 있 는 곳으로 바알에게 분향하는 곳이다고 지적한다. 에스겔은 성전에서 있는 가증한 일을 폭로한다.
그 가증한 일은 성전에 서 행해진 종교 혼합 제사이다.
성전으로 들어가는 북문에서 담무스를 위 해 애곡하고 성전 안뜰에서 동쪽 태양에게 예배한다(겔 8:1-16).
이것은 여 호와를 그곳에서 떠나게 하는 원인이다.
그뿐만 아니라 우상에게 자식을 드린 날 그들은 성소에 들어와 제사한다.
이런 이중적 혼합 예배행위는 성 소를 더럽히는 행동이고 여호와께서 그 성전을 떠나게 하는 행동이다.
그 래서 여호와의 영광은 성전에서 떠남을 선포한다(겔 10:19) 그래서 선지 자들은 그 성소에서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고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토라 를 따라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전이 파괴될 것을 선포한다.
하나님의 영 광이 임재하는 곳이며 창조된 인간이 창조주를 만나는 영광스러운 장소가 그들을 파멸로 이끄는 장소가 되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들이 자신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가증한 일을 행할 때 성전은 무가치한 곳이며 파멸의 대상임을 알려준다.
4.3 예배의 회복
선지자들은 심판을 선포할 뿐 아니라 구원과 회복을 선포한다.
선지자 들은 이스라엘의 예배와 제사장들과 성전에 대한 심판을 선포했지만 회복 또한 선포한다.
이사야서는 장세훈이 주목한 것처럼 “예배라는 주제로 시 작되어 예배라는 주제로 마무리된다.”62
62 장세훈, “구약의 예배,” 75.
이사야는 고레스가 여호와의 목 자로 성전 재건의 기초가 될 것을 바라보고 이방인이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하게 될 날이 도래하여 성전이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될 것을 선포한다 (사 56:6-7). 또한 그는 사방에서 여호와께 드릴 예물을 가지고 올 것이며 이방인이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하나님의 봉사자로 세움을 입을 것을 선포 한다(사 60:4-9; 61:6; 66:20-21). 이것은 성전 예배 회복이 이방인에게 까 지 열릴 것임을 선포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온 우 주의 통치자로서 모든 백성들에게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다.
예레미야는 성전 제사의 회복(렘 33:11)을 바라보며 공의와 정의의 실 현, 속죄를 선포한다. 그는 여호와의 성전에서 기쁨의 찬송과 감사제를 드 리게 될 것(렘 33:10-11)이라고 선포한다.
에스겔은 그 예배의 회복이 하나 님의 주권적 행위를 통해서 이루어질 것을 선포한다.
여호와는 그의 백성 에게 부드러운 마음을 주고 죄를 정결하게 하고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게 함으로 예배의 회복이 이루어질 것을 선포한다(겔 36:22-38).
또한 그는 여 호와께서 화평의 언약으로 성소에 거하게 될 것이며(겔 37:26-27), 여호와 의 영광이 성전에 돌아오므로 성전의 가증한 것을 제거하고 여호와의 법 도와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을 바라본다(겔 43:11), 종말에 그는 제사장 직분 이 회복되어 성전에서 여호와를 섬기고 성소에서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 물을 먹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겔 43:13).
스바냐는 종말에 이루어질 예배 회복에 각처에 남은 자 이방인들이 여 호와에게 경배(습 2:8-11)할 것을 선포하고 스가랴는 이방인들이 초막절 을 지키게 될 것을 선포한다(슥 14:21).
이 때 성전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 한 도구가 아니라 누구든지 여호와를 예배하기 원하는 자들이 초막절 제 사에 참여할 것을 선포한다.
그는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표현을 말에 사 용하고 솥과 요리 기구들에 거룩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부정한 것이 정 결하고 거룩한 것이 될 것을 선포한다. 63
63 장세훈, 『스가랴: 스가랴서 주해와 현대적 적용』(서울: SFC, 2021), 414-415.
역사서가 이스라엘 제사와 제사장과 성전의 타락을 보여준다면 선지자 들은 이스라엘 제사가 헛되고 가증스럽다고 비판한다.
그것은 제사장들의 무지에서 비롯되었고 그래서 성전은 성전으로서 기능을 상실했음을 선포 한다.
그 이유는 모든 선지자들이 공통적으로 이스라엘과 제사장들이 여 호와의 토라를 버렸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이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예 배하도록 사명을 부여받은 첫 사람 아담에게 여호와께서 왜 내 명령을 지 키지 않았느냐고 책망하시고 에덴에 추방하시는 것과 같다.
구약에서 말 하는 제사는 반드시 여호와의 명령을 따르는 삶을 전제로 한다.
제사와 성 전 자체보다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사는 것이 우선한다.
따라서 구약의 맨 마지막 책 말라기 맨 마지막 장면에서 “너희는 내가 호렙산에서 온 이스라 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령한 법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는 마감하 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5 결론
필자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구약은 예배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 이 사람의 본질적 사명이며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토라를 실천하는 것을 담보로 한다고 일관되게 말한다.
본 연구의 목적은 제의적 예배와 토 라의 실천관계에 관한 연구를 통해 공적 예배 회복을 위한 제언을 하는 것 이다.
필자는 본 연구 결과를 토대로 오늘날 우리가 드리는 공적 예배의 회 복을 위한 몇 가지 제언을 하므로 본 연구를 마치려 한다.
첫째, 우리가 드리는 공적 예배 회복을 위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회복 이 필요하다.
창세기에서 말라기까지 일관되게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우리의 사명이 우리를 구속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고 그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다고 말한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우리의 사명이 온전 하게 실행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가르침에 관심을두어야 한다.
히스기야와 요시야가 토라에 근거해 성전 예배와 삶의 개혁 을 했던 것처럼 우리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개혁이 필요하다. 그것 은 우리의 정체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된다.
둘째, 우리는 공적 예배 회복을 위해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대한 냉철한 비판과 숙고를 통한 개혁이 필요하다.
이스라엘은 성소와 성전에서 제사 를 지속적으로 드렸고 그것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그 제사를 헛된 것이며 가증하다고 평가했다.
그것은 그들이 제사 자체에만 주목하고 그들의 삶이 여호와의 명령에 부합한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별히 구약은 제사장의 무지와 억압이 하나 님께 드리는 예배를 멸시하는 행위라고 말한다.
혹시 우리가 드리는 예배 가 하나님에게 무거운 짐이 되거나 분노를 야기하는 예배가 아닌지 질문 해야 한다.
셋째, 우리는 공적 예배 회복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숙고해야 한다.
구약은 예배의 회복을 위해 이스라엘의 악한 행위를 고치고 여호와의 명 령을 따라 공의와 정의를 행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말했다.
우리가 예배 회복을 원한다면, 우리의 뜻과 목적을 내려 놓고 우리가 추구하는 것을 아 닌 하나님의 뜻을 추구해야 한다.
넷째, 우리 공적 예배가 회복되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 해야 할 사회적 책임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우 리는 구약 선지자들이 선포했던 종말의 이루어질 예배의 회복에 참여하도 록 부름 받은 자들이다.
우리 뜻을 위해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 라 하나님이 우리로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부르신 것이다.
신명기는 하나 님이 택하신 장소에서 예배하고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함께 먹고 기뻐 하라고 말한다.
과연 우리는 우리의 예배가 공동체를 통합하고 우리의 기 쁨을 사회적 약자들과 공유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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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초록
본 연구는 구약의 관점에서 제의적 예배와 토라 실천의 상관관계 연구를 통해 공 적 예배 회복을 위한 제언을 하는 것이 목적이다.
필자는 이 목적을 위해 구약 정경 배열을 따라 구약의 예배가 어떻게 다루어지는지 연구했다.
그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구약은 첫 사람 아담과 이스라엘의 사명이 동일하게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라고 일관되게 말한다.
둘째, 구약은 제사보다 순종이 낫다는 사무엘의 평가처럼, 토라의 실천이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는 예배의 근간이 된다.
셋째, 구약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멸시하는 행위로 이방의 신을 섬기는 방식을 따라 예배를 도구화 하거나 제사장의 무지와 악한 행동을 제시한다.
넷째,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명령을 버리고 이방신들을 따라 그들을 예배하는 삶은 여호와께 가증한 것이 되어 약속의 땅에서 추방되는 원인이 되었다.
다섯째, 성전 자체보다 여호와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중요하며 구약은 예배 회복이 하나님의 주 도권 속에 용서와 자비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며 이방인들이 종말론적인 예배에 참 여하게 될 것이다.
이런 토대로 필자는 공적예배 회복을 위해, 그리스도인의 정체 성 회복과 우리 예배에 대한 냉철한 비판과 숙고를 통한 개혁, 예배를 통한 공동체 통합과 사회적 책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주제어: 토라, 예배, 성전, 언약, 이방예배
Abstract
A study on the correlation between ritual worship and Torah practice in the perspective oftheOldTestament Kyusung Kang Professor of Old Testament, Korean Bible University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make suggestions for the restoration of public worship through a study of the correlation between ritual worship and Torah practice in the perspective of the Old Testament. For this purpose, I studied how Old Testament worship was treated according to the Old Testament canonical arrangement. The research results are as follows. First, the Old Testament consistently states that the mission of the first man, Adam, and Israel was to worship the Creator God and keep his commands. Second, as like Samuel's assessment that obedience is better than sacrifice in the Old Testament, the practice of Torah becomes the basis of worship that pleases Jehovah. Third, the Old Testament is to criticize an act of contempt for the worship of God, and it either instrumentalizes worship by following the method of serving foreign gods or presents the ignorance and evil behavior of the priests. Fourth, Israel's abandonment of Jehovah's commands and worship of foreign gods became an abomination to Jehovah and led to their expulsion from the Promised Land. Fifth, following the word of Jehovah is more important than the temple itself, and according to the Old Testament, restoration of worship will be accomplished through forgiveness and mercy under God's initiative, and Gentiles will participate in eschatological worship. Based on this, the author argued that in order to restore public worship, recovery of Christian identity, reform through a closed criticism and reflection on our worship, and community integration and social responsibility through worship are necessary.
Key Words: Torah, Worship, Holy Temple, Covenant, Foreign worship
개혁논총 69권
논문투고일: 2024.08.05. 논문수정일: 2024.09.12. 게재확정일: 2024.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