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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흔들리는 종교적․문학적 유토피아-1970~1980년대 기독교 사회운동의 맥락에서 살펴 본 노동자 장편 수기 연구/배하은.백석대

목차

1. 구원과 낙원을 열망한 시대의 문학

2. 산업선교와 크리스챤아카데미 중간집단 교육

3. 어느 돌멩이의 외침과 문학적 패러다임의 전환

4. 메시아 없는 해방과 헤테로토피아

-1980년대 전반기 여성 노동자 장편 수기의 지평

5. 결론

-기독교 사회운동 담론으로부터의 탈맥락화

1. 구원과 낙원을 열망한 시대의 문학

유신정권 말기인 1979년 소설 부문 베스트셀러 목록에는 1978년 출

판 시장에 신드롬을 일으켰던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문

학과지성사, 1978), 그리고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민음사, 1979)과 김성동의

만다라(한국문학사, 1979)가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1 이 세 작품은

1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1978년 베스트셀러에 가장 많이 오른 소설 2

위로 집계되었으며(30회). 이후 1979년 상반기에도 그 인기가 지속돼 베스트셀러 1위 자

리를 지켰다(「스케체 지난해 最多베스트셀러 소설은 「초대받은…」」, 동아일보,

1979.1.10; 「趙世熙作 「난장이…」 다시 1위」, 매일경제, 1979.6.6). 한편 이문열과 김

성동의 작품 역시 1979년부터 1980년에 이르기까지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1․2위를 다

투기도 하며 상위권에 머물러 있었다. 관련해서 매일경제의 「금주의 베스트셀러」란을

참조.

비단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뿐만 아니라 평단에서도 주목을 받아 조

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1979년 제12회 동인문학상 수

상작으로 선정되었고, 이문열은 중편 「사람의 아들」로 ‘오늘의 작가상’

을 수상했으며, 김성동은 ‘한국문학신인상’ 수상작인 중편 「만다라」를

개작해 장편 소설 만다라를 새롭게 출간했다. 그런데 당시 널리 읽히

고 사랑 받았던 이 세 작품과 관련해서 무엇보다도 눈여겨 봐야할 지점

은 이들 작품이 공통적으로 구원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실 사람의 아들은 사회 모순이 만연한 현실 속에서 참된 구원과

해방을 찾던 신학도 민요섭이 점차 신을 부정하는 이단적인 사상에 빠져

들다 그의 수제자 조동팔에게 살해당하고, 조동팔 역시 죽음으로 삶을

마무리하는 내용의 소설이다. 이 땅에 참된 구원을 주지 못하는 히브리

신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아들인 예수를 부정하는 대신 스스로 신을 자

처하며 우상을 만든 이들의 죽음으로 끝나는 결말은 이 소설이 인간의

구원에 대한 강렬한 열망과 함께 그 구원이 이 땅에서는 실현될 수 없다

는 회의를 드러내고 있음을 시사한다. 불교를 소재로 삼고 있다는 점에

서만 차이를 보일 뿐 마찬가지로 만다라 역시 진정한 구원과 성불의

길을 찾는 과정에서 비롯되는 종교적 고뇌와 번민을 그리고 있다. 한편

으로 이들 작품의 흥행은 일종의 종교소설이 유행하는 현상을 불러일으

키기도 했는데, 가령 김성동이 수상했던 한국문학신인상의 1981년 수상

작인 이승우의 「에리직톤의 초상」은 사람의 아들과 만다라의 세례

를 받은 경향이 강하게 드러난다. 교황을 저격한 신학도를 내세워 신과

인간의 폭력적인 관계와 종교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이승

리를 지켰다(「스케체 지난해 最多베스트셀러 소설은 「초대받은…」」, 동아일보,

1979.1.10; 「趙世熙作 「난장이…」 다시 1위」, 매일경제, 1979.6.6). 한편 이문열과 김

성동의 작품 역시 1979년부터 1980년에 이르기까지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1․2위를 다

투기도 하며 상위권에 머물러 있었다. 관련해서 매일경제의 「금주의 베스트셀러」란을

참조.

흔들리는 종교적․문학적 유토피아 403

우의 소설 역시 인간 구원의 본질에 대한 탐구로 수렴된다.

이처럼 이 시기 소설에서 종교적 구원에 대한 관심이 두드러지게 나타

남과 동시에 그러한 소설이 널리 읽혔던 현상을 반영론적, 혹은 문학사

회학적 측면에서 해석한다면 구원을 향한 시대의 열망이 그 어느 때보다

도 강렬해진 징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비극적으로 비추었듯, 때는 바야흐로 무수히 많은 ‘난장이’들이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던 시대였다.2 개발독재와 유신체제 하에

서 정치적 억압, 경제적 불평등, 그리고 사회적 차별로 신음하는 사람들

이 삶을 견뎌나가기 위해 필요했던 것은 이곳 현실과는 정반대의 낙원,

곧 유토피아를 꿈꿀 수 있게 하는 종교적․문학적 상상력이었다. 그러나

‘낙원구 행복동’에서 살아가는 난장이에게 낙원은 ‘달나라’에 있는 장소,

다시 말해, 이 세계 어디에도 없는 곳이며, 그곳에 갈 수 있는 유일한 방

법은 죽음뿐이다. 구원을 향한 열망은 강렬했으나 그에 반해 문학적 상

상력은 현실의 한계를 돌파할 수 없었고, 그러한 까닭에 구원을 추구하

는 소설 속 인물들의 행로는 언제나 죽음을 향해 있었다.

한편 이 무렵 주류 문단과 출판 시장 바깥에서 또 다른 베스트셀러가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대학가와 노동 현장,

그리고 재야 세력 가운데 프린트물의 형태로 돌고 있었던 노동자 수기가

바로 그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노동자 장편 수기의 시초와도 같은 유동

우의 어느 돌멩이의 외침(1978, 1983)은, 비록 공식적인 집계는 이루어

지지 않았지만, 가히 음지의 베스트셀러로 일컬을 수 있을 만큼 널리 읽

히며 가공할 만한 파급력을 보였다. 유동우의 술회에 따르면 1977년 월

간 대화(月刊 對話)에 연재 이후 출간된 단행본 어느 돌멩이의 외침은

초판 2,000부가 금세 매진되었고, 중앙정보부에 의해 출판과 판매가 금

2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문학과지성사, 1978, 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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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된 이후에는 출판사가 몰래 찍은 1만여 부와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만

들어서 팔았던 복사본이 널리 유통되었다.3

그러나 여기서 보다 주목해야할 점은 이 또 다른 세계의 베스트셀러

역시 동일하게 구원과 해방, 낙원과 유토피아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만 전혀 다른 차원의 구원을, 즉 노동자 그들 자신의 해방과

새로운 사회 공동체를 추구했던 이들의 체험을 문자화한 것이라는 차이

점이 훨씬 더 중요하게 거론될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 세 편의 소설 속

주요 인물들은 죽음을 통해 현실을 초월할 때에야 비로소 구원 받는 역

설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면, 노동자들의 글쓰기는 결코 현실에서 완성될

수 없는 미완태이기에 가능한 구원과 해방이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역

설을 보여준다. 비록 현실 속 노동자들의 투쟁은 언제나 실패로 끝나지

만, 노동자 수기는 그 실패의 결말로 수렴되지 않는 구원과 해방의 가능

성을 포착한다. 그것은, 조화순 목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노동자들이 노

동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고, 굴레를 벗고서 창조적인 일에 자신의 열

정을 쏟아 넣게 되는” 실로 “완전히 해방된 사람들의 모습”에서다.4

‘문학’이 죽음을 매개로 현실 속에 부재하는 유토피아를 고통스럽게

상상하고 있을 때, 그와 대조적으로 이른바 ‘비문학적’ 글쓰기는 어디에

나 존재하는 헤테로피아(hétérotopie․heterotopia)를 발견해 나가고 있었다.5

즉 노동자들의 자취방과 기숙사, 노동조합 사무실, 허름한 중국집과 산

업선교의 소그룹 모임 장소 등지에서 노동자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사회

현실, 곧 착취와 억압이 만연한 현실의 장소인 공장, 그리고 차별과 폭력

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는 강요된 장소(topia)로서의 노동자의 몸을

3 유동우․김원, 「[대담] 돌멩이는 아직도 외친다」, 실천문학 110, 2013 여름, 87~88쪽.

4 한국여신학자협의회 여신학자연구반 엮음, 고난의 현장에서 사랑의 불꽃으로-조화

순 목사의 삶과 신학, 대한기독교서회, 1992, 93쪽.

5 이 글에서 사용하는 헤테로피아의 개념은 미셸 푸코의 이론적 작업에 근거하고 있다. 미

셸 푸코, 이상길 옮김, 헤테로피아, 문학과지성사, 2014.

극복하고 그러한 장소들에 맞서는 ‘다른 장소’, ‘다른 공간’에 대한 사유

를 발전시켜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비문학적’ 글쓰기에 담긴 사회적 상

상력은 실로 문학이 추구해온 초월적인 유토피아에 대한 관념을 뒤흔들

며, 문학적 상상력이 도달하지 못한 차원의 구원과 해방에 접근했다.

나아가 이러한 차이는 바로 1980년대에 이르러 민족․민중문학의 중

심추가 노동자 수기로 대변되는 노동자 문학으로 옮겨간 주요한 요인 중

하나였다. 임헌영은 노동자 문학을 노동 문제를 다룬 작품과 노동자가

체험을 바탕으로 직접 노동자의 세계를 그린 작품으로 정의하며, 1970

년대 이후 노동자가 소외된 계층의 전형으로 떠오르면서 노동자 문학이

“민족문학의 핵심”이자 “1980년대 문학을 더욱 풍성하게 해줄” 열매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6 김종철 역시 1980년대를 내다보기 위해 마련된 지

면에서 노동자들이 직접 쓴 체험 수기가 “문학작품들이 도달하고 있지

못한 심각한 통찰을 드러내고 있”다고 평가했는데, 이와 관련해서 그는

노동자 수기가 기록하는 현실 속 체험을 당시 주류 ‘문학’작품의 관념적

인 경향과 대비시키며 그로부터 어떤 변혁의 양상과 가능성을 짚어낸다.7

제도권 문학의 한 축인 민족․민중문학이 노동자 수기를 문학장 내부

로 호명하는 과정에서 주목했던 측면은 그것이 기록하고 있는 노동 현장

과 노동운동의 체험이었다. 그런데 주지하다시피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전반기 문학장 내에서 널리 유통되었던 노동자 장편 수기가

기록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노조 투쟁 체험은 이 시기 활발히 전개되었던

기독교 사회운동과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었다. 가령 송효순의 서울로

가는 길(형성사, 1982)은 대일화학 여성 노동자들이 도시산업선교회에서

노동자 교육을 받고 소모임 활동을 하며 의식화된 과정과 이후 사측 및

사측과 결탁한 남성 노동자들에 대항해 자신들의 권리를 되찾는 투쟁의

6 임헌영, 「轉換期의 文學-勞動者文學의 地平」, 창작과비평 50, 1978 겨울, 53쪽.

7 김종철, 「산업화와 문학-70년대 문학을 보는 한 관점」, 창작과비평 55, 1980 봄, 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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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을 기록한 수기다. 마찬가지로 장남수가 빼앗긴 일터(창작과비평사,

1984)에서 기록하고 있는 원풍모방 민주노조 투쟁운동 역시 영등포도시

산업선교회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러한 까닭에 이들 여성 노

동자들의 장편 수기에는 산업선교 활동이나 신앙적인 체험에 관한 서술

이 곳곳에 기록돼 있다.

한편 노동자 수기가 1980년대 문학장의 지배적인 서사 양식으로 부상

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던 석정남의 「인간답게 살고 싶다」(월간 대화

71, 1976), 「불타는 눈물」(월간 대화 73, 1976)와 유동우의 「어느 돌멩이의

외침」(월간 대화 74~76, 1977)은 잘 알려진 대로 크리스챤아카데미에서

발행했던 월간 대화에 연재되었다. 이 두 수기가 연재 당시 불러일으

켰던 뜨거운 반응이 1980년대에 활발히 이루어졌던 노동자 장편 수기와

노동자 수기집의 출판, 그리고 노동자 시인 박노해의 등장을 예비했다.

아울러 석정남의 장편 수기 공장의 불빛(일월서각, 1984) 서사를 구성하

는 주요 사건인 동일방직의 노동조합운동에는 인천도시산업선교회(인천

산선)와 그곳의 실무자였던 조화순 목사가 깊게 관여하고 있었던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요컨대 노동자 수기가 ‘비문학적’ 글쓰기의 테두리를 벗어나 문학장

안으로 소환되면서 새로운 서사문학 양식으로 재탄생되고, 그 글쓰기의

바탕이 된 노동운동․투쟁 체험에 영향을 주는 동시에 그 주제 의식이

형성되는 과정의 일정 부분은 1970~1980년대 기독교 사회운동의 두

중심축이었던 산업선교와 크리스챤아카데미에 의해 전개되었던 민주화

운동 및 노동운동의 맥락에 접해있다. 아울러 노동자 수기가 앞서 서술

한 대로 이 시기 소설 작품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던 종교적․문학적 유

토피아의 관념을 뒤흔들며 새로운 차원의 구원과 해방, 그리고 그것을

실현해나가는 장소에 대한 사유를 발전시켜 나간 그 근저에 기독교 사회

운동의 전개를 둘러싼 기독교적 구원관 및 유토피아관의 변화가 자리하

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이는 이 글에서 규명하고자 하는 가설이기도

한데, 곧 1970년대 후반기에서 1980년대 전반기 사이에 노동자 수기가

기독교 사회운동과 접점을 이루면서 초월적인 차원의 자기(개인) 구원의

완성을 추구해온 기존의 종교적․문학적 유토피아의 관념을 해체하며

문학장 안으로 진입했다는 것이다.8 바꿔 말해 이 글의 목표는 노동자 수

기의 중요한 주제 의식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으로서 노

동자의 완전한 해방을 완성하는 유토피아 대신, 그러한 유토피아를 실현

하고자 하는 시도와 열망을 좌절시키는 모든 종류의 힘에 대항하는 지금

-이곳의 현실 속 장소‘들’ ―곧 헤테로토피아―과 그곳에서 서로에 대

한 의무를 지고 각자의 권리를 충분히 보장하는 연대감으로 연결된 노동

자 개인‘들’의 공동체를 추구하는 데 있음을 밝히는 것이다.9

8 일찍이 김건우의 연구는 1970년대 기독교사회운동 흐름 중 한신 계열이 1970년대 민주

화운동과 지식․운동사에 미친 영향을 상세하게 고찰한 바 있다(김건우, 「한국 현대지성

사에서 ‘한신(韓神)’이 가지는 의미」, 상허학보 42, 상허학회, 2014.10). 이 글은 대상을

보다 좁혀 기독교사회운동의 흐름이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전반기에 걸친 시기에

노동자 수기가 문학장 내로 진입한 과정과 겹쳐지는 접점, 그리하여 이후 1980년대 문학

운동에 미친 영향을 고찰하고자 한다.

9 근래에 양적․질적으로 비약적인 성취를 이룬 노동자 수기 연구는 민족․민중문학의 이

념과 논리에서 벗어나 노동자들의 글쓰기가 갖는 자기재현의 의미와 정치적 주체화의

양상을 규명하였다. 이와 관련해서 대표적으로 다음의 논문을 참조. 천정환, 「서발턴은

쓸 수 있는가-1970~80년대 민중의 자기재현과 ‘민중문학’의 재평가를 위한 일고」, 민

족문학사연구 47, 민족문학사학회, 2011; 한영인, 「글 쓰는 노동자들의 시대-1980년

대 노동자 “생활글” 다시 읽기」, 대동문화연구 86,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2014; 김

양선, 「70년대 노동현실을 여성의 목소리로 기억/기록하기-여성문학(사)의 외연 확장

과 70년대 여성 노동자 수기」, 여성문학연구 37, 여성문학학회, 2016; 안지영, 「‘여공’

의 대표 (불)가능성과 민주주의의 임계점: 1970~1980년대 여성-노동자들의 수기를 중

심으로」, 상허학보 55, 상허학회, 2019.

이러한 선행 연구의 성과를 바탕으로 이 글은

이 시기 노동자 수기가 노동자의 정치적 주체화와 노동자 해방에 대한 사유와 글쓰기의

실천을 수행할 수 있었던 그 배경으로 기독교 사회운동과의 관계와 유토피아적 관념 변

화의 양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2. 산업선교와 크리스챤아카데미 중간집단 교육

1960년대 후반 무렵 한국 기독교는 근본주의 신학에서 벗어나 본격적

으로 사회운동의 영역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4․19혁명을 계기로 이승

만 독재정권과 유착했던 기독교 보수주의에 대한 반성이 이루어졌고,

5․16쿠데타와 그 뒤를 이은 박정희 독재정권의 부정선거 및 삼선개헌

등을 거치면서 점차 교회의 정치․사회적인 참여에 대한 신학적인 성찰

과 논쟁, 실천적인 운동이 다각도로 전개되었다.10 그 중에서도 이 글의

논의 대상인 노동자 수기와 밀접한 연관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은 산업

선교, 그리고 크리스챤아카데미의 중간집단 교육이었다. 도시산업선교

회와 크리스챤아카데미는 1960년대 후반 이후 노동 문제에 직접적으로

개입했던 대표적인 기독교 기관․단체였다. 이들 단체에 속해있던 진보

적이고 현실참여적인 기독교 지식인들은 산업화로 인해 ‘비인간화’된 사

회 속에서 가장 크게 고통 받는 노동자와 도시빈민 문제에 집중해 종교

적․신학적 논의와 함께 사회운동론을 생산하고, 또 노동자 교육과 작업

장 내 노동조합 조직 지원 등의 활동에 뛰어들었다.11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두 가지 사건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 중 하

나는 신학적 패러다임의 전환이었다. 1960년대에 들어서 전 세계 개신

교 교계에 퍼져나가고 있었던 ‘하나님의 선교’라는 개념은 개인 구원 중

심의 선교 방식에서 탈피해 “하나님의 피조물인 사회 전체에 걸친 정치,

경제, 사회 영역에서의 총체적인 구원”을 선교의 핵심 목표로 삼는 선교

신학을 제시했다.12 한국교회에서도 1969년 ‘제2회 전국 교회지도자 협

10 1970년대 기독교 사회운동이 전개된 신학적․교회사적 배경과 관련해서는 다음을 참고

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1970年代 民主化運動-기독교 인권운동을

중심으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1987, 42~53쪽.

11 홍현영, 「도시산업선교회와 1970년대 노동운동」, 차성환 외, 1970년대 민중운동 연

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5, 402쪽.

의회’에서 ‘하나님의 선교’ 신학에 관해 교회적 차원의 논의를 시도함으

로써 ‘하나님의 선교’ 개념을 받아들이고 표방하며 기독교 사회운동의

기반을 마련해 나갔다.13

그런데 이러한 변화는 당시 기독교 신학계를 관통하고 있던 세속화의

흐름과 나란히 놓이는 것이었다. 세속화는 기독교 신앙에서 말하는 구원

의 개념을 개인의 죽음 이후 내생(來生)에서 이루어지는 부활과 영생, 그

리하여 영원히 지속되는 고통 없는 낙원에서의 삶이라는 종교․초월적인

의미 맥락으로부터 탈구시켜 현재의 삶 속에서 이루어가는 것, 곧 이 땅

에 바로 그 낙원을 임하게 하는 사회․현실적인 것으로 재맥락화했다. 기

독교 지식인들이 정치․사회운동, 특별히 1970년대 산업화가 가속화되

고 있는 한국사회의 가장 큰 사회 문제였던 노동운동에 깊숙이 관여하게

된 배경에는 이와 같이 구원, 그리고 천국 낙원이라는 종교적 유토피아의

관념이 해체되기 시작한 신학적 패러다임의 전환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는 특별히 1970년대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운동과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았던 산업선교의 형성․전개 과정에서 분명하게 확인된

다. 감리교단 소속으로 인천산선의 총무를 맡았던 조승혁 목사는 YH사

건 이후 유신정권(그리고 곧 그 뒤를 이었던 신군부정권)과 언론에 의해 용공 세

력으로 매도당하고 있던 산업선교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산업

선교의 활동을 당시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던 신학적 패러다임

의 전환이라는 맥락 속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또 동 협의회(인용자 주: WCC 세계교회협의회를 말함)에서는 하나님의

선교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가 가져온, 그리고 그 안에

우리가 동참하는 구원은 이 분열된 삶속에 하나의 포괄적인 전체성을 부여한

12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앞의 책, 52쪽.

13 위의 책, 52~53쪽.

다. 우리는 구원을 삶의 새로와 짐-삶속에 하나님의 충만하심이 거하는 것

(골2 : 9)으로 이해한다. 그것은 영혼과 육체의 구원이며, 개인과 사회 인류와

함께 탄식하는 모든 피조물의 구원이다.

악마는 개인의 생활과 인간성을 짓밟는 착취적 사회구조 안에서 같이 역사

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정의도 죄인의 의로와 짐과, 사회적 정치적 정의 안에

서 같이 그 스스로를 나타내신다. 죄가 개인적이듯이 하나님의 해방하시는 능

력도 개인과 사회를 함께 변화시킨다. 우리는 영혼과 육체, 개인과 사회, 인류

와 다른 피조물 등으로 나누어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극복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경제적 정의, 정치적 자유, 문화의 혁신을 위한 투쟁도 하나님의 선교

를 통해 이 세계를 자유케 하는 전체 해방의 사업 가운데 몇 가지 요소로서 보

는 것이다.

14

조승혁 목사는 1973년 세계교회협의회에서 “오늘의 구원”이라는 주

제로 논의되었던 내용을 거론하며, 영혼과 육신, 종교와 정치․사회의

이분법적 구분이 사라지면서 구원과 해방은 더 이상 한 개인의 영혼에

국한된 일이 아님을 강조한다. 이제 기독교에서 구원은 “포괄적인 전체

성을 부여”받아 “경제적 정의, 정치적 자유, 문화의 혁신을 위한 투쟁” 역

시도 “이 세계를 자유케 하는 전체 해방의 사업”으로 간주되기 시작한 것

이다. 동시에 이러한 구원 개념 하에서 노동 문제에 개입하는 산업선교

의 활동은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에 동참하는 가장 적극적인 방식으로 여

겨졌다. 이 시기 기독교 사회운동에 참여했던 이들이 자주 인용했던 다

음과 같은 누가복음의 한 구절은 종종 가난과 억압, 착취와 차별로부터

노동자들이 해방될 때 곧 그리스도의 구원이 성취된다는 의미로 읽히곤

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였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14 조승혁, 都市産業宣敎의 認識, 민중사, 1981, 10쪽.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시고 주의 은

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15

그런데 이때 노동자의 해방이 단순히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경제적 빈

곤과 사회적 차별을 해결하는 차원으로 귀결되는 문제는 아니었다. 핵심

은 노동자들 각자가 자신의 삶과 관련된 문제를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

는 주체의 위치를 확보하고, 그와 동시에 서로 연대감을 형성하여 그들

에게 정당하게 주어지는 노동과 삶을 지탱해나갈 수 있는 자유롭고 평등

한 공동체적 연대의 장소를 마련하는 데 있었다. 1970년대 여성 노동자

들의 노동조합 운동이 갖는 의미에 대해 조화순 목사가 남긴 다음과 같

은 평가는 그것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임금 문제는 사장의 문제로 알았는데 사장이 아니라 경찰들이 나타

나서 때리고 잡아가고 개 취급을 하는 거였어요. 그러니 결국은 정부당국을 향

한 싸움이 돼버리는 것이었어요. 노동자들이 문제의 근원을 발견하고 맞부딪

치게 된 거예요. 그러니까 그들의 요구조건이 임금은 적어도 좋다, 월급은 적

어도 좋으니 사람대접을 해달라는 쪽으로 바뀌게 된 거예요.

결국 요구하는 것은 인간을 수단으로 보지 말고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해 달

라는 거였어요. 누구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듯이, 이웃사람을 내 몸과 같이 여

기고 사랑해 달라는 이야기예요. 이는 여성과 남성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

지일 거예요. 그래서 경제적인 문제로부터 출발하는 노동운동이 이처럼 정치

투쟁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고, 요즘은 인간해방을 말하게 되는 것이라고 봐요.

15 누가복음서 4장 18~19절. 뒤에서도 살펴보겠지만 누가복음서의 이 구절은 유동우의 수

기에서도 인용된다. 특별히 공장의 ‘복음화’를 위해 노동자들을 열성적으로 전도하던 그

가 노동자들의 ‘해방’을 위해 노동조합 결성을 위한 투쟁에 뛰어드는 변화 과정에서 그가

획득한 각성과 사명감을 대변하는 선언문처럼 제시된다.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인간으로서의 존엄성뿐임을 스스로 체험하고 쟁

취하고자 나선 것이지요. (…중략…) 인간은 자기 존엄성을 깨달으면 주체적

으로 살아나간다는 것을 노동운동에서 볼 수 있어요. 그들은 말해요. “우리끼

리 하자. 우리를 도와주지 말고 우리와 같은 위치에서 같이 하자. 함께 싸우자.

같은 입장에서 서로 보완하고 협력하고 보충해서 같이 하자.” 해산의 고통으

로 깨달은 자기 존엄성이 생기면 이렇게 말하게 돼요. 대단히 완강한 태도로

말예요. 지식인과 노동자, 남과 여, 지부장과 평조합원. 이런 관계가 주종의 관

계가 아닌 주체적이고 동등한 관계가 되도록 일해야 한다고요. 이것은 새로운

세계를 향한 출발이지요.

16

조화순 목사는 1970년대 노동운동을 경제적 조합주의로 평가절하했

던 1980년대적인 시각과는 정반대편에서 바라본다. 곧 1970년대 노동

조합 운동이 단순히 임금을 둘러싼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 아

닌, 인간해방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목표를 지향하는 정치 투쟁이었다는

것이다. “우리끼리 하자”와 “같은 입장에서 서로 보완하고 협력하고 보

충해서 같이 하자”와 같은 구호에서 드러나듯, 노동자들 각자의 주체적

인 권리 행사와 의무 수행이 이루어질 수 있는 민주주의와 공동체적 연

대의 실천 장소로서 노동조합은 실로 “새로운 세계를 향한 출발”로 간주

되었다. 1970년대의 산업선교가 노동자 의식화 교육과 노동조합 조직

활동에 뛰어든 것은 이 때문이었다. 노동자들이 “주체로서 자신들의 위

치”와 장소를 확보하는 일이 산업과 사회의 “민주화”라는, 곧 1970년대

의 상황 속에서는 지극히 유토피아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거대한 혁

명을 향해 가는 변화의 시작이라는 인식이 형성되고 있었다.17

1970년대에 전개되었던 노동운동 가운데 가장 큰 파급력을 불러일으

16 한국여신학자협의회 여신학자연구반 엮음, 앞의 책, 84~86쪽.

17 조승혁, 앞의 책, 151쪽.

켰던 동일방직노동조합운동은 그러한 기치를 내세운 산업선교, 그리고

그 중에서도 특별히 인천산선과 긴밀히 연계되어 있었다. 본래 인천산선

은 동일방직공업주식회사에서 기숙사에 거주하는 여성근로자들을 위해

예배를 드리는 선교 활동으로부터 출발한 내력을 지니고 있었다.18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운동사상 단위 노조로는 최초 여성 지부장인 주길자를

섬유노조 동일방직 지부 제22대 지부장으로 당선시키는 과정에서 인천

산선 회원이었던 여성 대의원들과 그들의 조직 활동을 근거리에서 지원

한 인천산선 조화순 목사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19 동일방직

노동조합과 산업선교 사이의 이처럼 긴밀한 관계는 동일방직 노동운동

의 이념이 종교적 성격을 강하게 띠는 요인이었다.20 이후 보다 상세하게

논의하겠지만 송효순, 석정남, 장남수 등이 쓴 여성 노동자 장편 수기에

서 기존의 종교적․문학적 유토피아 관념을 해체하면서 제시하고 있는

새로운 차원의 구원, 그리고 해방의 장소에 대한 사유와 글쓰기는 이들

여성 노동자들이 산업선교의 지원을 받아 꾸려나갔던 여러 소모임 활동

체험으로부터 자양분을 얻었다.

한편 1970~1980년대 기독교 사회운동의 역량이 노동 문제에 집중

되기 시작한 변화의 또 다른 배경은 1970년에 일어난 전태일 열사의 분

신 사건이었다. 물론 주지하다시피 전태일의 분신은 비단 기독교계뿐만

아니라 진보적인 지식인과 청년․학생 운동 진영을 포함한 사회운동 세

력 전반이 노동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노동운동을 전개해 나가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그렇지만 특별히 전태일이 기독교 신자였다는 점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그의 외침이 산업사회의 비인간적인 노동

착취에 대한 직접적인 고발로 여겨졌다는 점은 진보적인 기독교 지식인

18 위의 책, 27쪽.

19 한국여신학자협의회 여신학자연구반 엮음, 앞의 책, 100쪽.

20 김무용, 「1970년대 동일방직 노동운동의 젠더화와 저항의 정치」, 차성환 외, 앞의 책,

285쪽.

들이 노동 문제에 적극 개입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당시 경동교회 목사

이자 크리스챤아카데미를 이끌고 있었던 강원용 목사는 다음과 같이 술

회하고 있다.

전태일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고 그가 분신자살한 평화시장은 우리 경동교

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게다가 나는 그때 인간화의 문제에 주력하고

있었으므로 비인간화의 극명한 고발인 그의 죽음은 내게 그만큼 더 충격적이

고 의미심장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21

강원용 목사가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이 시기 크리스챤아카데미의 구

호이자 목표는 ‘인간화’였다.22 당시 산업사회의 비인간화는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할 문제로 논의되었고 비인간화 문제를 초래하는 가장 근본적

인 원인으로는 양극화가 거론되었다.23 다시 이 양극화 문제의 해결책으

로는 민주화가 제시되었는데, 곧 한국 사회가 “양극화를 초극해서 인간

화의 이상을 실현하는 길은 이 양극 사이에 매개적인 역할을 하게 하는

집단을 현존케 하는 것과, 양극이 피차 그 깊은 데서 소통하면서 존중과

이해로 민주적 질서를 성취하는 민주화의 생활을 구축하는 길”로 나아가

야 한다는 것이었다.24 이 해결책을 구체적인 실천 방안으로 옮긴 것이

바로 크리스챤아카데미 중간집단 교육이었다. 1974년 1월부터 5개년

21 강원용, 빈 들에서-나의 삶, 한국현대사의 소용돌이 2, 대화출판사, 1998, 312쪽.

22 “「아카데미의 70년도 목표는 인간화(人間化)이다. 기독교인들이건 일반 사회인들이건

간에 공동 과제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크리스챤아카데미 엮음, 韓國아카데미叢書

10: 對話의 歷史, 삼성출판사, 1975, 196쪽.

23 “1970년 10월에 열렸던 <인간화>의 대화에서는 비인간화의 가장 근원적인 원인이 <양

극화(兩極化)>에 있다고 결론을 내린 일이 있었고, 사실 그같은 확인이 그 모임의 수확 가

운데 가장 큰 것이었다. 양극화란 빈(貧)과 부(富), 치자(治者)와 피치자(被治者), 도시와

농촌, 노동자와 자본가 등으로 형성된 단절을 의미했다.” 위의 책, 206쪽.

24 위의 책, 210쪽.

계획으로 추진된 이 프로젝트는 양극화의 원인이 “건전한 민주적 압력

세력으로서의 중간집단이 약한 데” 있다는 판단 하에 중간집단을 육성․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획․실행되었다.25 강원용은 당대 한국 사회

에서 가장 많은 잠재능력을 지닌 중간집단으로 종교 단체(특히 기독교 단

체), 여성 단체, 노동조합 단체, 농촌운동 단체, 학생 단체를 거론하는데,

이에 따라 중간집단 교육은 이 5개 분야를 대상으로 실시되었다.26

중간집단 교육 중 가장 많은 역량이 집중되었던 분야는 노동 분야인

산업사회 교육 부문이었다. 강원용은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노동조합

육성강화 교육”의 성과를 특별히 언급하며, 각 노동조합에서 아카데미

교육 출신 노동자들이 위원장으로 선출되는 사례가 많았고 1970년대 노

동운동사를 수놓은 원풍모방, 동일방직, 콘트롤데이타, 반도상사, YH무

역의 노동운동을 주도했던 이들이 모두 크리스챤아카데미 중간집단 교

육에 참가한 이력을 지녔음을 밝힌 바 있다.27 이는 한편으로 노동 분야

의 중간집단 교육이 노동조합의 지도자를 양성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

었음을 확인시켜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한완상의 글에서도 언급되고 있

는 것처럼 중간집단 교육의 입안자들은 산업화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의지와 힘이 노동자들에게, 그리고 그들이 모인 단체로서의 노동조합의

결집에 있다고 판단했다.28 그리하여 노동 분야 중간집단 교육의 가장 중

요한 목표는 “노조(勞組)의 조직내에서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으로

설정되었다.29

실제 산업사회 교육 과정의 세목은 그러한 목표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25 강원용, 「中間集團이란 무엇인가」, 크리스챤아카데미 엮음, 韓國아카데미叢書2 : 兩極

化時代와 中間集團, 삼성출판사, 1975, 219~223쪽.

26 위의 글, 229쪽.

27 강원용, 빈 들에서-나의 삶, 한국현대사의 소용돌이 3, 대화문화사, 1998, 53쪽.

28 한완상, 「中間集團의 現況과 그 意義」, 크리스챤아카데미 엮음, 韓國아카데미叢書2 :兩

極化時代와 中間集團, 삼성출판사, 1975, 250쪽.

29 위의 글, 252쪽.

있다. 총 3단계로 이루어지는 교육 과정 가운데 실제로 시행되었던 1․2

단계 교육은 대체로 강의에 이은 분반․전체 토의, 사례 연구, 공동 과제

작업 등 교육에 참여한 노동자들이 주체적으로 이끌어가는 대화와 토론

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여기에 “민주적인 토론과 의사결정과정을 경험하

며 대안적인 공동체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설계”하려 한

의도가 깔려 있음을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30 교육 과정 중에

서도 가장 핵심적인 프로그램은 각자가 자신의 노조 활동 경험 혹은 노

동운동에 대한 의견을 발표하는 ‘5분 발언’이었다.31 이를 통해 노동자들

은 각자 자신의 삶과 노조 활동의 경험에 대해 말하고 또 그것을 서로 듣

고 공유하는 일을 체험할 수 있었다. 이와 함께 특별히 주목을 요하는 지

점은 노동자들이 간에 공유한 경험, 공동체 의식과 결의를 내면화하기

위한 과정으로 글쓰기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었다는 사실이다. 구체적으

로는 ‘비문 쓰기’와 ‘자기에게 쓰는 편지’의 형태로 이루어졌는데, 노동

자들이 교육 기간 동안 경험했던 교육 내용과 감정을 정리하고 실천을

다짐하는 내용을 편지 형식으로 작성하는 프로그램이었다.32

이러한 교육의 연장선상에서 월간 대화에 실린 유동우의 「어느 돌

멩이의 외침」이 탄생했다. 유동우의 술회에 따르면 그는 1976년 크리스

챤아카데미 중간집단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당시 스태프였던 김세

균의 권유로 월간 대화에 연재된 글을 쓰게 되었다. 책 제목은 출판사

측에서 신약성서 누가복음 19장 40절의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

들이 소리 지르리라”라는 구절을 따와 제안한 것이라고 한다. 사회적으

로 천시 당하던 노동자를 돌멩이에 비유해 노동자가 세상을 향해 던지는

외침이라는 의미를 담은 것이었다.33 뒤에서 상술하겠지만 당시 이 외침

30 박혜경․이광석․노광표, 산별노조 현장활동가 교육체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2004,

74쪽. 교육 과정의 주요 내용은 이 저서의 75쪽과 77쪽을 참조.

31 이임하, 「1970년대 크리스챤아카데미 사건 연구」, 차성환 외, 앞의 책, 553쪽.

32 박혜경․이광석․노광표, 앞의 책, 79쪽.

33 이 문단의 내용은 유동우와 김원의 대담 내용을 정리해 서술했다. 유동우․김원, 앞의 글,

87쪽.

의 반향은 실로 대단했다.

이처럼 중간집단 교육에서 노동자들 스스로 이끌어가는 대화와 토론,

그리고 글쓰기를 독려했으며, 이에 대한 노동자들의 호응 또한 상당했다

는 사실은 노동자가 자신의 말과 언어의 몫을 갖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일이 산업사회의 인간화와 노동조합 내 민주주의 실현

을 위한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자 핵심 운동 방략으로 간주되었다는 점

이다. 달리 말하면 이는 노동자 해방과 노동 현실의 모순 해결이 피지배

계층으로서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지배, 억압, 차별, 착취가 완전히 극

복․청산된 정치적경제적 유토피아적인 상태의 도래, 혹은 그것을 위한

정치적 행동 강령의 수립 및 실천으로 단순하게 등치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의 결과물로 해석될 수 있다. 본질은 노동자가 주체가 되

어 각 개인이 속한 노동조합,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더 큰 범주의 사회 안

에서 각자의 권리를 주장하고 존중받으며, 동시에 동료 노동자와 시민에

대한 의무를 충분히 수행하는 행위들로써 성취되고 거듭 갱신되어가는

사회적인 경험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동우의 어느 돌멩이의 외침 같은 한 편의 노동자 수기는

그러한 사회적인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글쓰기 실천이자 결과물, 그리고

그러한 경험을 확대 공유할 수 있게 하는 언어적(그리고 문학적) 양식으로

서 중요하게 취급되었다. 이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유동우의 수기가

월간 대화을 매개로 지식장과 문학장 내부로 호명되면서 노동자들의

말과 언어가 상징적인 권력을 획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노동자들의 의

무와 권리를 수행하는 효력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동시에 이는 문

학장의 재편과 문학 개념의 탈구축을 초래하는 사건이기도 했다.

3. 어느 돌멩이의 외침과 문학적 패러다임의 전환

유동우의 어느 돌멩이의 외침은 신학도를 꿈꾸던 한 청년이 노동조

합을 설립해 노동자들과 연대하면서 자신들이 속한 노동 현장을 바꾸어

나간 과정을 써내려간 수기다. 서사의 진행 과정에서 유동우 개인의 종

교적 신념과 가치관의 변화는 매우 중요한 변곡점으로 작용하는데, 그

변화의 양상은 앞서 설명한 1970~1980년대 기독교 사회운동의 배경이

었던 종교적 패러다임의 전환과 일맥상통한다. 실로 유동우가 삼원섬유

의 노동자들과 소모임을 만들고 노동조합 설립을 본격적으로 시도하기

시작한 배경에는 “새로운 종교이념에 의한 신앙의 바탕을 정립”한 다음

과 같은 변화가 자리하고 있었다.34

그때 내가 알게 된 것은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이란 내가 그를 믿음으로

써 나중에 천당에 간다는 소극적․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주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심은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주께서 나를 부르심은 눈먼 자에

게 눈 뜨임을 선포하고 눌린 자에게 자유를, 포로된 자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고 주의 은혜를 선포하게 하심이라”는 것이다. 이 말

은 누가복음 4장 18~19절에 나타나는 것으로 그리스도의 출현이란 바로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억눌리고 포로가 되고 억울하게 학대받는 이들의 가장 구

체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오신 것이며, 우리는 그의 제자로

서 그의 뒤를 따라 그가 하신 일을 본받아 지금의 우리의 현실 상황 속에서 고

통받고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35

34 유동우, 어느 돌멩이의 외침, 청년사, 1984, 55쪽.

35 위의 책, 55~56쪽.

유동우가 겪은 일차적인 변화는 곧 유대-기독교 사상에 기반을 둔 유

토피아 관념과 초월적 구원관으로부터의 탈피였다. 유토피아 관념은 유

대-기독교의 오래된 종교적 이념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이는 모든 죄악

과 고통이 사라진 완전한 세계의 완성에 대한 기대와 열망, 그리고 그러

한 세계는 지상의 현실 너머에 자리한다는 인식으로 이루어져있다.36 그

는 윤이라는 한 여공으로부터 “우리는 가난하니까 먹고 살기 위해서 직

장에 온종일 매달려야 하고 그러자니까 시간이 없어 교회에 못나가고 결

국 우리는 가난하기 때문에 지옥으로밖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충

격적인 발언을 듣고 나서 그러한 관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37 그가

고백하길 이전의 그는 공단 노동자들의 성적인 타락은 죄악이고, 그들을

전도해 그러한 죄악에서 구원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여겨 공단 복

음화에 열성을 기울였다. 그러나 윤의 뼈아픈 지적은 “이제까지 비록 이

세상에서는 가난하고 고통스럽게 살지마는 죽어서나마 천국으로 가 영

원한 평안을 얻기 위해서라도 종교를 믿어야 한다고 생각해온 [그]에게

오히려 현실에서는 구원의 대상이 되어야 할 그들에게 지옥의 문만이 열

려 있고 천국에는 도저히 갈 수 없다는 역설적인 진리가 통한다는 사실

을 냉엄하게” 일깨워 주었다.38

이러한 그의 인식 변화는 그가 수기에서 ‘황 선생님’이라고 지칭한, 인

천산선의 카프링클럽 노동운동 지도자격이었던 황영환과 함께 평신도

지도자 훈련 모임을 통해 “새로운 신앙관과 신앙인의 자세를 접하게 된

계기”와 맞물려 있었다.39 또한 앞서 언급한 대로 기독교 사회운동의 테

36 욜렌 딜라스-로셰리 외, 김휘석 옮김, 미래의 기억 유토피아, 서해문집, 2007, 9쪽.

37 유동우, 앞의 책, 50쪽.

38 위의 책, 50쪽.

39 위의 책, 54쪽. 한편 인천산선이 부평 지역으로 활동 반경을 넓히고 그 과정에서 유동우

가 언급한 것처럼 황영환 등의 실무자들과 함께 소그룹 모임에서 노동법과 노동문제, 노

동조합 관련 교육과 훈련을 받으며 신앙관 및 노동운동에 대한 의식화 변화를 겪게 된 저

간의 사정은 다음을 참조. 장숙경, 산업선교, 그리고 70년대 노동운동, 선인, 2013, 21

제가 산업사회의 ‘복음화’와 선교에서 ‘인간화’와 ‘민주화’로 전환된 결

과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후 유동우는 ‘동력회’, ‘폭포회’와 같은

소모임에서 함께 근로기준법을 공부하며 노동조합 설립에 본격적으로

착수해 들어갔다. 그에게 이제 해방과 구원은 모든 죄악과 고통, 절망이

일소된 낙원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종교적인 약속이 아니라, 곧 그 고통

과 절망을 겪고 있는 그의 동료 노동자들과 연대감으로 연결된 공동체를

꾸려 나가는 사회적 행위를 의미했다.

사실 우리 분회는 그 대표자가 모든 일을 좌지우지 하는 그런 분회가 아니

라 조합원 전체의 뜻이 무엇보다 존중시되는 민주적 조직체로 발전하고 있었

다. 조합원들은 자기의 문제를 대표자에게만 일임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

었고 자기의 문제를 동료와 함께 해결해 나간다는 강한 책임의식을 지니고 있

었다. 물론 나 개인에 대한 신뢰도 있겠지만 공적인 일에 대한 감시는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분회는 대표자가 생각하는 대로 좌우되는 하

향식 조직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함께 참석하는 공동체적인 조

직체로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40

이러는 사이 우리들 사이에는 무언가 새로운 인간적․사회적 관계가 싹트

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어느새 우리는 어느 누구도 뗄래야 뗄 수 없는 우애

와 신뢰로 뭉쳐진 하나의 견고한 운명 공동체로 발전하고 있었다. 하루라도 동

료를 보지 못하면 아쉽기만 하고 만나면 친형제보다 더 반가운 관계가 맺어졌

고 같이 자고 같이 고락을 나누며 함께 공동으로 운명에 대처해 나간다는 연대

감을 서로 나눌 수 있었던 것이다. (…중략…) 이렇게 몰라보게 변모하는 우리

들의 관계는 실로 우리 모두가 한결같이 갈망하면서도 포기하여 오기만 한 새

7~219쪽.

40 위의 책, 150~151쪽.

로운 사회건설의 참다운 내용들이 아닌가.41

유동우는 노동조합 내의 노동자들 간의 “새로운 인간적․사회적 관

계”, 즉 노동자들이 “자기의 문제를 동료와 함께 해결해 나간다는 강한

책임의식” 하에 “구성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함께 참석하는” 민주적․공

동체적 관계가 바로 “새로운 사회 건설의 참다운 내용들”이라고 말한다.

이 “새로운 사회 건설”이 노동자들 스스로 해방과 자유, 연대와 평등을

실현하는 장소(topia)에 대한 기획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실로 유토피아

(utopia)의 본질적 가치가 결코 새로운 이상사회의 완성에 있지 않고 그것

에 근접해가기 위한 구성원들의 주체적인 행위와 그들 사이의 관계, 그

리고 그것들을 지속시킬 수 있는 공동체성에 있다는 점을 주장하고 증명

하는 것이 유동우의 수기가 내세우는 주제 의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주류 문단의 민족․민중문학 진영 비평가들이 유동우의 수기를 ‘문학’

으로 호명한 데는 그와 같은 주제 의식이 상당 부분 작용했다. 김종철의

경우 어느 돌멩이의 외침을 “하나의 당당한 문학작품으로 대접받을 만

한 것”이자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가장 높은 형태의

성장소설의 하나”로 상찬했는데, 여기에는 유동우의 수기가 노동운동 과

정에서 일어나는 “인간적 변화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 작용했다.42 노동자 수기는 노동자가 노동 현장과 노동운동을 직접

체험한 것에 관한 글쓰기라는 단순한 이유에서, 다시 말해 노동자 글쓴

이의 신원과 노동자 글쓰기의 즉물적 특성 때문에 문학장 내로 호명된

것이 아니었다. 김종철의 언급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듯, (민족․민중문

학 진영의) 비평가들에 의해 이 ‘비문학적’ 글쓰기가 ‘문학 작품’의 위상을

부여받은 데는 기성 문학, 특히 당대 주류 문단에서 생산되고 있었던 소

41 위의 책, 156~157쪽.

42 김종철, 앞의 글, 95쪽.

설 작품들과는 다른 차원의 문학적 지평을 노동자 수기가 열어가고 있다

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종철은 유동우의 수기가 “공동적 연대의 체험”을 문자화(문학화)했다

는 점에 주목했다.43 김종철 역시 앞서 살펴본 크리스챤아카데미의 문제

의식과 마찬가지로 당대 한국 사회의 병폐를 해결하는 길은 “사회의 근

본적인 인간화”에 있으며, 그 인간화의 근본적인 지향점은 “사회관계의

민주화”에 있다고 보았다.44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건이 바로 공동체적 연대라는 것이었다. 유동우의 수기를 통해 문자화

된 노동자들의 투쟁의 체험이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인간관계와 인

간성에 근본적인 변혁을 가져온” 것은 그것이 곧 ‘인간화’를 가능하게 하

는 공동체적 연대의 체험인 까닭이다.45 요컨대 이러한 공동체적 연대의

주제 의식을 충분하게 구현하지 못하고 있던 당대 기성 문학의 상상력을

노동자 수기가 실제 노동자들이 노동운동 과정에서 겪은 체험에 관한 글

쓰기로써 넘어서고 있다는 점에서 노동자 수기가 문학에 대한 상당한 도

전이자 ‘일종의 문학’으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1980년대에 이르러 노동자 수기의 문학장 내 생산․

유통․소비는 보편화된다. 그리고 노동자 수기와 르포 같은 비문학적 글

쓰기를 문학 양식으로 자리매김 시키려는 논의 또한 활발히 이루어진

다.46 이러한 변화의 출발점에는 앞서 언급한 월간 대화가 자리하고 있

다. 종래에 크리스챤아카데미의 기관지 격이었던 월간 대화는 1976년

11월 혁신호를 발행하면서 사회․문화 종합지를 표방하고 나섰다.47 여

43 위의 글, 96쪽.

44 위의 글, 96쪽.

45 위의 글, 96쪽.

46 대표적인 예로 김도연의 ‘장르확산론’을 거론할 수 있겠다. 김도연, 「장르 확산을 위하

여」, 백낙청․염무웅 엮음, 韓國文學의 現段階 III, 창작과비평사, 1984.

47 증면 혁신호로 발간된 1976년 11월호에서 “오늘의 歷史와 社會를 투시하는 社會 文化 綜

合誌”를 표방했다. 月刊 對話 72, 1976.11 참조.

기에 실렸던 석정남의 일기 「인간답게 살고 싶다」를 필두로 석정남의

「불타는 눈물」, 이듬해 유동우의 「어느 돌멩이의 외침」, 평화시장 미싱

사 민종숙의 「인간시장」(월간 대화77, 1977.4), 이경만의 「광산촌」(월간 대

화 79․81~82, 1977.7․9~10)이 연이어 게재되었다. 당시 월간 대화의

편집장이었던 시인 임정남은 현장의 목소리를 발굴한다는 일념 하에 이

러한 기획을 주도했는데, 첫 선을 보였던 석정남의 일기가 독자들로부터

열렬한 반응을 얻자 이에 고무돼 그 뒤를 이어 유동우의 수기를 연재했

다.48 유동우의 수기는 한층 더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는데, 이는 「편집

후기」와 월간 대화 편집부로 보낸 독자들의 독자평에 고스란히 나타

나 있다.

■노동자의 생활체험수기 「어느 돌멩이의 외침」을 읽고 감동했다는 글과

말이 편집실에 끊임없이 전해져 온다. 光州의 한 애독자는 「서로가 서로를 알

고 서로를 위하며 생각하고 사는 세상을 위해 앞으로도 인간을 이야기하는

「對話」를 가꾸어 달라」고 말했다.

49

■그동안 본지에 연재되었던 유동우씨의 「어느 돌멩이의 외침」을 이번 호

로 마치게 된다. 각계각층의 독자로부터 감동적인 성원을 받았던 이 노동자의

수기가 왜 그토록 많은 사람을 놀라게 하고 반성하게 하였는지 편집자는 어안

이 벙벙할 뿐이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수기나 일기를 본지는 과감하게 게재할

것을 약속한다.

50

48 기획 의도는 월간 대화 1976년 11월호 「편집 후기」 참조. 「編輯 後記」, 월간 대화 72,

1976.11, 300쪽. 한편 석정남은 그녀의 일기를 잡지에 싣기 위해 찾아온 임정남과의 에피소

드를 공장의 불빛에 기록해 두었다. 석정남, 공장의 불빛, 일월서각, 1984, 54~55쪽.

49 「編輯 後記」, 月刊 對話 75, 1977.2.

50 「編輯 後記」, 月刊 對話 76, 1977.3.

柳東佑씨의 수기 <어느 돌멩이의 외침>을 시종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읽었다.

전편 가득히 흐르고 있는 불굴의 의지와 신념, 사회의 부조리에 맨몸으로 맞서

는 조합원들, 그들의 인간애, 인간 회복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 등은 조금씩 썩

어가고 있던 나의 머리에 새로운 의식을 불어넣어 주기에 충분하였다.

평소 그런 문제에 관심이 없던 바도 아니어서 나름대로 공부도 해봤고 생각

도 해봤었지만 지식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오류 속

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 직접 체험해 보지도 않았으면서 그저 간접적인 지식 몇

가지만으로 모든 것을 다 알았다는 듯이 몇몇 동료들과 더불어 찧고 까불다가

종국에 가서는 심한 회의와 환멸 속에 빠져 자포자기 속에 스스로를 동결시켜

버리는 것이다. 이러든 차에 이 수기는 나에게 새로운 의욕을 북돋아 주었다.

51

각계각층의 독자들이 보인 예상 밖의 관심과 호응은 노동자들이 쓴 이

른바 ‘생활체험수기’라는 글쓰기 양식에 내재된 잠재력에 주목하게 했

다. 지식인 비평가들이 노동자 수기를 문학으로 호명한 것은 그 잠재력

을 극대화하고, 그것을 통해 문학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월

간 대화의 편집자는 유동우의 수기를 소개하는 지면을 통해 근래에 노

동자 수기만큼 독자들에게 큰 감명을 준 글이 없었음을 지적하며 “단순

한 이야기를 넘어선 하나의 증언으로서, 또는 문학의 새로운 형태로서

우리를 압도하고 있다”고 말한다.52 실로 노동자들이 쓴 ‘생활체험수기’

라는 글쓰기를 “문학의 새로운 형태”로 정립시키려는 의도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당시 월간 대화는 사회․문화 종합지로 개편되면서 이른바

민족․민중문학 진영을 형성하게 되는 문학인들 다수―가령 고은, 염

무웅, 신경림, 이시영, 양성우, 송기원, 조태일, 김준태 등―가 글을 발

51 양재흥, 「그 불굴의 意志와 執念에-柳東佑의 <어느 돌멩이의 외침>을 읽고」, 月刊 對

話 78, 1977.5~6, 327쪽.

52 「어느 돌멩이의 외침」, 月刊 對話 74, 1977.1, 210쪽.

표하고 좌담에 참여하는 장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월간 대

화를 통해 연재된 노동자 수기의 잠재력을 근거리에서 접하고 문제의

식을 공유하면서 노동자 수기를 문학장 안으로 매개했다. 요컨대 ‘비문

학적’ 글쓰기가 문학으로 호명되면서 이루어진 1970년대 후반~1980

년대 문학의 패러다임 전환은 이와 같이 노동자들과 기독교 사회운동 계

열의 크리스챤아카데미, 그리고 민족․민중문학 진영의 문학인들이 교

차하는 지점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앞서 유동우의 수기에 대한 분석을 통해 상술했듯 이러한 문학적 패러

다임 전환의 심급은 노동자 수기가 노동자들의 자기 해방과 공동체적 연

대의 체험을 언어화․문자화하는 데 있었다. 바로 그것으로부터 당대 진

보적인 문학인․지식인들은 죽음 혹은 종교적 초월을 통해 유토피아를

상상하는 문학의 한계를 돌파할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 가능성에 주목해

노동자 수기를 문학의 한 형식으로 받아들이려는 움직임이 문학장 내에

광범위하게 일어나면서 기성의 문학적 유토피아관이 흔들리기 시작했

다. 이제 바야흐로 문학은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불완전한 현실 사회를

초월한 공간을 열망하는 유토피아적 관념과 상징을 ‘문학적’․예술적으

로 형상화하는 일보다, 지금-이곳에서 그러한 유토피아를 만들어가기

위해 수행되는 말과 행위들의 과정과 체험을 기록하는 일을 요청받기 시

작한 것이다.

4. 메시아 없는 해방과 헤테로피아

-1980년대 전반기 여성 노동자 장편 수기의 지평

1980년대 전반기에는 송효순의 서울로 가는 길, 순점순의 8시간

노동을 위하여(풀빛, 1984), 석정남의 공장의 불빛, 장남수의 빼앗긴

일터 등 여성 노동자들이 쓴 장편 수기가 잇달아 출간되었다. 이들 장편

수기의 큰 틀과 서사 전개 방식은 물론 먼저 출간된 어느 돌멩이의 외

침과 유사한 패턴―어린 시절의 가난과 곤경, 상경하여 공장에 취직,

열악한 노동 조건과 고된 삶, 소모임 활동과 노동법 교육을 통한 의식화,

노동조합 운동에 참여, 역경과 실패, 노동운동에 대한 의지의 재확인―

을 보이지만, 그 서술 방식과 수기에 나타난 노동자들의 공동체적 연대

체험의 양상은 사뭇 큰 차이를 드러낸다. 이는 유동우와 여성 노동자들

의 상이한 위치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유동우가 삼원섬유의 노

동조합을 설립하고 분회장을 맡았던 지도자격 노동자였던 데 반해, 송효

순과 순점순, 석정남, 그리고 장남수는 노조 활동에 적극적이고 일정한

역할을 맡기도 했던 의식화된 노동자이긴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평범한

여성 노동자들에 가까웠다.

기실 유동우의 경우 깊은 신앙심에서 비롯된 사명 의식으로 노동운동

에 앞장서서 다른 노동자들을 의식화 및 계도하려는 인물이었다. 그의

수기 곳곳에는 수난 당하는 그리스도 예수의 형상과 자신의 모습을 병치

시키는 대목들이 등장한다. 그러한 서술을 통해 그는 무지하고 무죄한

노동자들을 착취와 억압으로부터 구원할 특별한 사명을 받은 지도자이

자 구원자로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수립한다.53 때문에 어느 돌멩이의

외침의 서사는 대체로 유동우라는 인물과 그의 체험 및 시각에 초점화

되어 있으며 그의 영웅적인 희생정신과 사명감이 부각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여성 노동자들의 수기의 경우 한 개인의 글쓰기인 것

은 분명하지만 중심 서사가 다양한 동료 노동자들의 목소리와 에피소드

로 구성되어 있어 훨씬 더 수평적인 노동자들의 집단적인 체험에 관한

53 신형기, 「전태일의 죽음과 대화적 정체성 형성의 동학」, 현대문학의 연구 52, 현대문학

연구학회, 2014, 115~118쪽.

글쓰기라는 인상을 준다. 가령 송효순의 수기는 종종 산업선교 수련회나

자치회에서 동료들이 공유한 그들의 어린 시절과 인생 이야기를 서사의

전면에 배치한다. 또한 석정남의 공장의 불빛에는 복직투쟁 중 어려움

에 봉착해 투쟁에 참여한 동료 노동자들과 작은 모임을 가졌던 에피소드

가 등장하는데, 이때 석정남은 거기에 참석했던 동료들의 토론과 대화

내용을 간추려 그들의 목소리를 고스란히 전한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점

은 노동운동을 바라보는 석정남의 관점과 일맥상통한다.

요즈음 나는 나 자신에게서 놀라운 변화를 발견하게 돼. 어떻게 나같이 맹

하고 답답하던 사람이 이런 것에까지 생각이 미치고 극복할 수 있을까 하고 말

이야. 그 중 하나를 얘기한다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의 싸움은 지부장이나

간부들이 알아서 하는 것이고, 그 구성원인 나는 그들이 하는 대로 충실히 따

라주기만 하는 것이 조합원으로서 가장 모범적인 태도라고 생각했어.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지부장․총무․너․나할 것 없이 개개인이 중

요하다고 생각해. 상집간부가 안하고 있을 때 내가 할 수도 있고 선배가 안하

면 후배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 그동안 내가 느끼고 깨달은 것이 어쩐지 말로

는 다 표현이 안되는구나. 아뭏든 우리의 복직은 우리의 행동여하에 달렸다고

생각해.

54

석정남은 노동운동이 노동조합의 지부장이나 간부들에 의해 주도되

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 ‘개개인’의 행동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임을 강

조한다. 곧 노동운동은 노동자 각자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서로에게

부여된 의무를 수행하는 행위들로써 수행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

운동의 최종 목표인 노동자 해방은 결코 메시아의 구원에 의해 성취․완

54 석정남, 앞의 책, 144~145쪽.

성되는 유토피아적인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반복된 노조 투쟁 가운데

노동자들은 해방의 상태가 결코 그대로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거

듭 갱신되고 되찾아야 하는 것이며, 한 사람의 지도자, 영웅, 혹은 구원자

에 의해 성취된 것들은 결국 권력 관계 안에 재배치되고 만다는 깨달음

을 체득했다. 노조 설립을 위해 힘껏 싸우고 나면 다시 그 노조를 지키고

위한 싸움과 무너진 노조를 다시 세워가기 위한 투쟁이 재개되기 마련이

었다. 게다가 투쟁에 나선 그들을 막아선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는 언제

나 노총 간부들이었다.

수행적이고 과정적인 것으로서의 노동자 해방을 이루어 가기 위해 전

제되어야 할 것은 개별 노동자들의 말과 언어, 행위의 자율성이 발휘되

는 가운데 그 각각을 통합된 전체로 연결할 수 있는 관계맺음, 곧 공동체

적 연대다. 복직투쟁이 점차 동력을 잃고 와해되어가는 가운데 석정남이

“결혼한 사람이나 직장에 다니고 있는 사람 등을 찾아다니며 살아가는

모습을 확인하고, 그들의 고민을 함께 나누며 그동안 소식이 끊어졌던

해고자들을 애써 찾아다니며 새로운 연결작업을 하는 일”에 뛰어든 것은

그 관계맺음을 회복하기 위함이었다.55 그 구체적인 실천으로 석정남과

동료 노동자들은 동지회보를 만들어 흩어졌던 해고 노동자들 사이의

이음새로 삼는다. 동지회보에는 주로 동일방직 노조 투쟁으로 해고된 노

동자들의 소식과 함께 그녀들이 서로에게 전하는 이야기를 담은 시나 짤

막한 글, 그리고 동지회보와 함께 편지를 써서 보낸 석정남에게 동료 노

동자들이 쓴 답장 형식의 편지글들이 함께 실려 있다. 나아가 같은 시기

투쟁을 이어 나가고 있었던 YH무역지부와 청계피복 노조, 원풍모방 노

조 등의 농성과 재판 소식, 그리고 원풍모방의 장남수가 동일방직 ‘식구

들’에게 쓴 편지글 등을 실어 지역과 공단, 개별 조합의 경계를 넘어서

55 위의 책, 229쪽.

노동자들이 서로 연대하는 장 그 자체의 면모를 보여준다.56

동지회보의 이러한 특징적인 양상은 노동자들의 읽고 쓰는 행위가 투

쟁과 연대의 실천임을 고스란히 증명해준다. 또한 동일한 맥락에서

1980년대 문학장의 노동자 수기는 그러한 투쟁과 연대의 문학적 실천으

로 간주될 수 있었다.57 개별 노동자들 (그리고 노동자와 노동자가 아닌 이들) 사

이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객관적인 상황은 물론이거니와 주관적인 인식

과 감정의 편차를 넘어서 서로의 체험을 공유하는 장의 역할은 실로 노

동자 수기의 몫이었던 까닭이다. 공장의 불빛과 빼앗긴 일터을 쓴

것은 각각 석정남과 장남수이지만, 그 수기 안에 고스란히 옮겨져 있는

동료 노동자들의 말과 글―투쟁의 과정에서 외친 말과 모든 선언문, 고

발장, 재판정에서의 증언과 진술 등―은 그것이 ‘그들 모두의’ 투쟁으

로 읽히도록 만들며, ‘그들 공통의’ 경험을 읽는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서로 연결됨을 다시 체험한다. 요컨대 1980년대 여성 노동자 수기에 이

르러 문학은 모순적인 사회 현실로부터의 해방과 구원에 대한 상상력과

지평을 확장시켰다고 말할 수 있다. 종교적 구도나 죽음의 행위로 해방

과 구원을 표상하는 ‘문학적 재현’에서 벗어나, 읽기와 쓰기의 ‘문학적

수행’ 그 자체가 해방과 구원을 향한 도정으로서의 투쟁과 연대의 실천

이 된 것이다. 문학적 유토피아의 관념이 결정적으로 해체되는 순간이

여기 있다.

한편으로 여성 노동자 장편 수기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관계맺음

의 양상은 그들이 추구하는 세계가 종교적 유토피아 관념에서 완전히 탈

56 동지회보는 1979년 1월호부터 1981년 7월호까지 동일방직 노동조합 운동사에 수

록되어 있다. 노동자 수기와 시로 이름이 알려진 석정남, 장남수, 정명자와 같은 이들만

이 아니라 다수의 동일방직 노동조합원들이 쓴 다양한 내용의 글을 확인할 수 있다. 동일

방직복직투쟁위원회 엮음, 동일방직 노동조합 운동사, 돌베개, 1985, 309~367쪽.

57 이에 대해서는 다음의 논문 4장을 참조. 배하은, 「1980년대 문학의 수행성 연구-양식과

미학을 중심으로」, 서울대 박사논문, 2017.

피한 것임을 시사한다. 산업선교와 노동조합 활동에 참여하고 그 안에

깊이 연루될수록 여성 노동자들은 더욱 심각한 차별과 억압, 폭력을 겪

어야 했다. 동일방직 대의원 선거 과정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남자 노동

자들에게 당했던 폭력과 오물 세례는 그중에서도 극단적인 사례였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수기는 한결같이 여성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안

에서 자유와 해방을 누리는 역설적인 풍경을 보여준다. 석정남은 사측의

노조탄압에 맞선 노동조합의 시위 현장에서 외부와 차단된 채 단식 농성

을 하면서도 오히려 그간의 망설임과 주저함, 친구들의 비난에 대한 두

려움, 양심의 가책에서 벗어나 새로운 힘과 자신감이 생겨나는 것을 느

낀다. 그리고 노동조합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이유로 반장과 담임

의 괴롭힘을 당하게 되자 오히려 노동조합원 친구들과 더욱 뜨겁게 결속

하며 노동조합에 보란 듯이 드나드는 “자유인”이 되었음을 기뻐한다.58

장남수 역시 노동조합 교육에서 노동자들끼리 서로 고통과 아픔을 함께

나눌 때 “노동자라는 사실이 행복하다”라고 고백한다.59 고통과 슬픔이

없는, 풍요와 안식을 거느린 낙원 대신 이들이 택한 것은 고통과 슬픔의

공유를 통해 연결된 노동 현장이었다. 그리고 나아가 그들의 연대가 이

세상을 바꾸리라는 믿음을 품었다. 수감된 동료들과 산업선교에서 곧잘

부르던 찬송가 「부름 받아 나선 이 몸」과 「환난과 핍박 중에도」를 부르

며 장남수는 말한다. “이렇게 간절한 기원, 우리들의 사랑, 서로 제각기

58 석정남, 앞의 책, 48~53쪽.

59 ““우라질, 어째 이리도 비슷하냐.” 누군가 불쑥 한마디 내뱉는다. 엊말 어쩜 이리도 환경

들이 비슷하고 한결같이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 농촌 출신들인지…… /그러나 이렇게 같

이 있는 것이 행복하다. 내가 노동자라는 사실이 행복하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른 채 부모님들이 주신 돈으로 책가방이나 들고 다니며 연극 구경이니, 미팅이니, 축제

니 하는 사람들보다 고생스러워도 나는 행복하다.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 울며, 가족들의

생활을 어깨에 짊어지고 굳굳하게 살아가는, 가난하고 못 배운 우리들의 고통과 아픔을

같이 나누며 이렇게 살리라. 같이 고민하고, 아파하며, 현장의 고통 속에서 쌓여지고 익

혀가는 사랑으로, 뜨겁게 부둥켜안은 동료애로 진지하게 살자. 고독하고 외로울 땐 이렇

게 손 맞잡고 울기라도 하자.” 장남수, 빼앗긴 일터, 창작과비평사, 1984, 144쪽.

다른 곳에서 살아왔지만 깊게 연결되어 같이 흐르는 젊은 우리들의 숨결

이 있는 한 세상은 결코 이대로일 순 없으리라.”60

이처럼 여성 노동자 장편 수기가 유토피아적인 열망과 환상에서 비껴

나 있는 것은 반대로 말해 그것이 헤테로토피아적이기 때문이다. 이때

헤테로토피아적이라는 것은 두 가지 함의를 갖는데, 첫째는 여성 노동자

수기가 지금-이곳에 위치 지을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장소이면

서 “일종의 반배치”이자 “현실화된 유토피아 장소들”로서의 헤테로토피

아와 헤테로토피아적 공간에 관한 체험을 재현하고 있음을 의미한다.61

푸코에 따르면 헤테로토피아 속에서 공간의 실제 배치들은 재현되는 동

시에 전도된다는 점에서 거울의 경험처럼 작동한다. 그것은 주체가 차지

하고 있는 현실 속의 장소를 비현실적인 것으로 만듦으로써 주체를 위치

짓는 현실 속의 공간 배치―그러므로 질서와 위계―에 대해 이의를 제

기한다. 푸코는 특별히 사회적인 규범의 요구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개인들의 헤테로토피아를 오늘날 보편화된 유형인 ‘일탈의 헤테로토피

아’라고 말한다.62

1970~1980년대 여성 노동자들의 ‘일탈의 헤테로피아’는 산업선교

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조직․활성화되었던 각종 소그룹 모임과 클럽,

기도회, 야학 등의 활동이 이루어졌던 기숙사나 교회의 모임 장소, 월미

도 휴양지 같은 곳이었다. 당시 산업선교에서는 여성 노동자들을 위한

꽃꽂이, 수예, 조리 등의 생활 실기 교육, 그리고 한문, 독서 등의 교양 교

육 및 노동법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소그룹 모임을 지원하고 있었다.63

60 위의 책, 115쪽.

61 미셸 푸코, 「다른 공간들」, 미셸 푸코, 이상길 옮김, 헤테로피아, 문학과지성사, 2014,

47쪽.

62 위의 글, 48~50쪽.

63 조승혁, 앞의 책, 151쪽; 영등포산업선교회 40년사 기획위원회 엮음, 영등포산업선교회

40년사, 대한예수교장로회 영등포산업선교회, 1998, 134~177쪽.

여성 노동자 장편 수기는 이 산업선교 소그룹 활동을 서술하는 데 상당

한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데, 대체로 그곳에서의 활동이 그들 삶의 작은

일탈로부터 시작돼 의식화되고 노동운동에 투신하는 계기로 그려진다.64

여성 노동자들은 호기심으로 혹은 공부나 취미 활동을 하고 싶어 찾은

산업선교 소모임이나 클럽, 야학, 기도회 활동에서 점차 진정한 일탈과

해방을 경험한다. 왜냐하면 여성 노동자들에게 그곳은 공장이라는 규율

과 질서, 억압, 폭력의 장소에 맞서는 일종의 “반공간”이었기 때문이다.65

송효순의 서울로 가는 길에서는 송효순과 동료 노동자들이 휴일 출근

을 거부하고 산업선교 소모임 야유회를 갔던 사건이 결과적으로 임금 인

상과 노동 조건 개선, 법정 휴일 보장 등을 주장하는 서명 운동의 불씨로

그려진다.66 야유회는 그들에게 노동자들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관리하기

위한 질서와 규율, 억압이 지배하는 장소로서의 공장의 규율 권력에 의

해 그들이 통제당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것에서 벗어났을 때의 해방감을

알려준 계기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들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임금 지

급 방식과 휴일 출근 의무화 제도, 작업장 내 폭력과 열악한 환경 등을 고

64 석정남의 경우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말에 호기심이 생겨 친구 홍자를 따라 인

천산선에 갔다가 노동조합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시작한 클럽

활동을 통하여 연봉과 나는 다른 부서의 분위기도 알게 되었고 우리회사에 노동조합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중략…) 노동조합의 힘은 다름아닌 노동자들 즉 우리를 한

사람 한 사람의 참여와 힘으로 움직여진다고 한다. 그런데 다른 부서는 단결이 잘 되어 있

는데 우리 직포과에는 노조에 참여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

직포과도 정방이나 와인다처럼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서로 믿고 서

로 돕는 분위기로 바꾸어 놓을 수 있을까?” 석정남, 앞의 책, 27면. 송효순 역시 산업선교

에서 공부를 가르쳐 주고 은행 갈 처지가 못 되는 노동자들의 돈을 저축할 수 있게 해 준

다고 해서 클럽에 가입한 뒤 조지송 목사와 인명진 목사에게서 노동조합법을 배웠다고

말한다. 송효순, 서울로 가는 길, 형성사, 1982, 57~58쪽.

65 미셸 푸코, 「헤테로토피아」, 미셸 푸코, 이상길 옮김, 헤테로피아, 문학과지성사, 2014,

13쪽. 미셸 푸코에 따르면 헤테로토피아는 사회 속에 자리하는 제도화된 공간이지만,

“자기 이외의 모든 장소들에 맞서서, 어떤 의미로는 그것들을 지우고 중화시키고 혹은 정

화시키기 위해 마련된 장소들”인 “일종의 반공간contre-espaces”이다.

66 송효순,서울로 가는 길, 형성사, 1982, 61~72쪽.

발하며 그것들에 맞서 자신들의 권리를 쟁취해 나가기 시작한다.

이와 동시에 산업선교는 작업장의 빈번한 (성)폭력과 각종 질병에 무

방비 상태로 노출되는 장소로서의 몸을 벗을 수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송효순의 수기에는 여성 노동자들이 산업선교 수련회에서 각자 자신이

공장 생활로 인해 겪은 (성)폭력과 모욕, 차별, 질병으로 인한 고통과 슬

픔을 공유하며 서로를 위로하는 장면이 여러 차례 중요하게 등장한다.

산업선교 ◯◯자치회는 회관주최로 그룹유대를 위한 수련회를 가졌다. 5월

17일 회원전체가 세검정에 있는 임마누엘 수도원에 모였다. (…중략…) 수도

원에 도착하여 “목사님, 선생님, 안녕하세요. 회관에서 만나는 것보다 더 반갑

네요.” 인사하며 서로 얼싸 안았다. 누가 이런 사람들을 떼어놓을 수 있겠는가,

너무도 행복했다. 이곳이 천국인가, 수련회 때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준비찬송

하고 예배를 보고 저녁먹는 시간 어느 하나 즐겁지 않은 시간이 없다. 저녁시

간을 이용하여 카세트에서 나오는 노래소리를 듣다가 누군가가 흐느끼기 시작

한다. /우리 부모 병들어/누우신지 삼년에/뒷산의 약초뿌리/모두 캐어 드

렸지/나 떠나면 누가 할까/늙으신 부모 모실까/서울로 가는 길이/왜 이리

도 멀으냐/명춘이는 이 노래를 듣고 어머니가 몸이 불편하여 움직이기가 힘

들다고 항상 걱정하더니만 우는구나, 아주 슬프게도 우는구나. 명춘이는 공장

에서 받는 월급이 너무나 적어 생활하기가 힘들다며 전에 배우던 미용기술을

배우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자격증을 따려면 건강진단서가 필요하여 보건소

에 가서 진찰을 해보니 몸이 좋지 않아 진단서를 떼어줄 수 없다는 소리를 듣고

그때도 저렇게 엉엉 울었었다. (…중략…) 목사님의 강의를 듣고 촛불예배를

보면서 서로 잔을 나누고 떡을 먹여 주고 서로가 서로를 얼싸안았다. 노래를 부

르고 마음껏 웃어보기도 하고 그동안 외로웠던 일 다잊고 즐겁기만 했다.”67

67 위의 책, 128~129쪽.

피정을 떠난 수도원에서 촛불을 들고 찬송가를 부르는 수련회 의식을

행하는 가운데 그들은 마치 눈물로 정화하듯 공장에서 겪은 폭력과 질병

으로 얼룩진 몸에서 그 흔적을 지워 나가고, 몸으로부터의 해방을 맛본

다.68 이곳에서 그들은 서로 잔과 떡, 포옹을 나누는 행위를 통해 그들의

몸을 폭력과 학대, 질병에 연결된 배치에서 떼어내 동료 노동자들과 연

결된 배치로 바꾸어 놓는다. 요컨대 이들 여성 노동자들의 몸에 공장의

공간적 질서와 규율을 통해 가해지는 통제는 소모임이나 기도회, 수련회

등이 이루어지는 공장 바깥의(그러나 공장과 면해 있는) 헤테로토피아적인

공간에서 해체되는 것이다.

한편 푸코가 헤테로토피아를 현실 속의 물리적인 장소일 뿐만 아니라,

언어적 무질서와 말과 사물 사이의 배치를 해체하는 언어-상징적인 장

소로도 개념화했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 여성 노동자 수기는 기존 문학

체계 하의 담론의 질서를 해체하는 이종(異種) 또는 이형(異形)의 텍스트적

인 공간으로서의 헤테로토피아 그 자체이기도 하다.69 이것이 바로 여성

노동자 수기의 헤테로토피아적인 것이 갖는 두 번째 함의다. 앞서 서론

에서 언급했듯 전통적인 문학의 담론적 질서에 의해 구축되어 있었던 문

학적 유토피아의 관념은, 노동자 수기가 문학장 내로 편입됨으로써 노동

68 푸코는 불완전하고 결함 많은 “내 몸”은 “나에게 강요된, 어찌할 수 없는 장소”이며, 이

“장소에 맞서고, 이 장소를 잊게 만들기 위해” 유토피아들이 탄생되었다고 말한다. 가령

그러한 강요된 장소로서의 몸을 잊기 위한 방편이었던 이집트의 미라나 고대문명의 환

상적인 제의에서부터 제복 입기, 가면 쓰기와 문신, 화장 같은 의식 행위는 몸을 그것이

처한 공간으로부터 떼어내 다른 공간으로 던져 넣는다. 미셸 푸코, 이상길 옮김, 앞의 책,

27~39쪽.

69 푸코는 말과 사물에서 헤테로토피아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는데, 다니엘 드페르에

따르면 유토피아와 대립되는 장소이자 “가능한 질서의 수많은 조각들을 반짝거리게 만

드는 무질서”로서의 헤테로토피아는 언어와 공간이 얽혀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말과 사

물을 함께 붙어 있게 하는 덜 명백한 통사법까지도 무너뜨”린다. 다니엘 드페르, 「[해제]

「헤테로토피아」-베니스, 베를린, 로스앤젤레스 사이, 어떤 개념의 행로」, 미셸 푸코, 이

상길 옮김, 앞의 책, 문학과지성사, 2014, 99쪽. 관련해서 다음을 참조. 미셸 푸코, 이규현

옮김, 말과 사물, 민음사, 2012, 11~13쪽.

자의 언어와 글쓰기를 문학과 나란히 배치될 수 없는 것으로 규정했던

바로 그 문학의 담론적 질서를 해체하면서 결정적으로 흔들리게 된다.70

이는 기존 문학의 유토피아적 관념이 노동자 수기, 특별히 1980년대에

문학장 내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점하는 여성 노동자 장편 수기의 서사

구조 내에서는 구현될 수 없었던 까닭이다. 노동자들의 현재진행형 투쟁

과 해방의 서사에서 메시아적인 구원에 의해 도래할 (미래의) 유토피아적

상태가 해방으로 재현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기존 문학의 문법

을 따르지 않는 노동자의 언어와 글쓰기 양식은 유토피아적 관념을 떠받

드는 기존 사회 질서와 체계를 근본적으로 거부하는 헤테로토피아적 글

쓰기인 것이다.

70 1980년대 전반기에 발표된 석정남과 장남수의 장편 수기는 비평가들에 의해 다른 어떤

리얼리즘 문학 못지않은 “사회적 총체적 인식을 가능케 하는 탁월한 문학적 양식”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현준만, 「노동문학의 현재적 의미」, 백낙청․염무웅 옮김, 한국문

학의 현단계 IV, 창작과비평사, 1985, 297~298쪽.

5. 결론

-기독교 사회운동 담론으로부터의 탈맥락화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전반기 사이

에 등장한 노동자 수기는 1970~1980년대 기독교 사회운동의 변화된

테제를 전유하면서 구원과 해방에 관한 기존의 종교적․문학적 유토피

아적인 관념을 뒤흔들고 해체했다. 지금-여기에 없는 지복(至福)의 장소

(유토피아)에 대한 전통적인 문학의 상상력과 그 열망은 ‘사람의 아들’을,

‘난장이’를 그리고 구원을 기다리는 많은 ‘중생’들을 죽음으로, 현실 저

편의 낙원으로, 열반과 해탈, 초월의 세계로 이끌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노동자 수기는 사회적인 현실 공간을 점유하고 구성하는 장소들 속에서

그들 개개인의 존재를 충만한 연대감으로 묶어주는 동시에, 그들에게 가

해지는 폭력과 억압에 대항하는 반공간으로서의 헤테로토피아를 포착․

구획한다. 역설적이게도 유토피아에 이의제기하고 반대하는 이 헤테로

토피아적인 글쓰기는 오히려 유토피아의 실현을 좌절시키려는 지배 권

력과 자본의 힘에 맞서는 현실 속 장소들과 그 장소를 점유해 나가는 노

동자들의 해방에 관한 체험과 사유, 상상력의 지평을 열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 수기, 그리고 노동운동의 기독교 사회운동 담론의 전유

는 노동자가 정치적 주체로 호명되는 시점에 이르면 그 시효를 다하게

된다. 이는 여러 여성 노동자들의 수기에 공통적으로 나타나 있는 것처

럼, 기독교 사회운동의 종교적 성격과 산업선교와의 연결 고리는 종종

그들의 투쟁과 저항의 주체성을 부정하는 요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산업선교의 지원을 받아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투쟁을 가장 활발하게 전

개해 나갔던 1970년대 말, 그리고 노동계 정화 조치가 시행되기 시작했

던 1980년대 초에 걸친 시기에 지배 권력의 담론은 노동자들의 투쟁을

언제나 용공 세력인 도시산업선교회의 지시와 선동에 의한 것으로 규정

했다.71 그러한 지배 담론의 규정 방식에는 노동자들의 정치적 역량과 주

71 순점순의 수기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등장한다. “여기서 분명히 밝히고 싶은 것이 있다

면 산업선교회에 다니는 노동자들은 아무것도 모르는데 인목사가 조종을 한다느니 산업

선교회의 꼭두각시가 된다느니 하는 말들을 하는 것은 이 땅의 노동자들, 이 땅의 가난의

후예들을 더없이 바보로 만드는 말이며 그렇게 바보처럼 살아주길 바라는 그런 ◯◯◯

◯들이 하는 상투적인 용어에 지나지 않는 말이라는 것이다.” 순점순, 8시간 노동을 위

하여, 풀빛, 1984, 79쪽. 장남수도 자신과 동료들의 주체적인 행동이었던 부활절 기도회

사건을 인명진 목사의 사주로 몰아가려는 형사들의 행태에 분노와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약오르는 건 누가 시켰느냐고 물어볼 때였다. 계속해서 “산업선교에서

시켰지?” “인목사가 시켰지?”였다. 우리들은, 아니 노동자들은 무엇 하나 주체적으로 하

지 못하는 꼭두각시란 말인가? 누가 시키면 감옥도 가는 그런 사람들이란 말인가? 너무

체성을 탈취하고 제거하는 효과가 내재해 있었다. 때문에 노동자들이 그

들 자신을 정치적 주체로 재현하는 것이 긴요해지는 1980년대 전반기

이후에 이르면 자연스럽게, 그리고 필연적으로 기독교 사회운동 담론으

로부터의 탈맥락화가 이루어진다. 노동자 수기의 문학적 등재 과정을 둘

러싼 기독교 사회운동의 맥락은 이러한 변화 과정을 거쳐 후경화되었던

것이다.

신경질나고 분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답을 숫제 안 해버리면 그들은 소리를 지

른다. 어쩌란 말이냐, 단상에 뛰어올라간 것도 우리 의지였고 소리지른 내용도 우리 얘기

인데. 우리를 꼭두각시처럼, 작대기에 꿰어져 너풀거리는 허수아비처럼 취급하는 것이

너무 억울했다.” 장남수, 앞의 책, 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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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초록

이 글은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전반기 사이에 노동자 수기가 기

독교 사회운동과 접점을 이루면서, 초월적인 자기(개인) 구원의 완성을

추구해온 기존의 종교적․문학적 유토피아의 관념을 해체하며 문학장

안으로 진입한 과정과 양상을 살펴본다. 또한 노동자 수기의 중요한 주

제 의식이 노동자의 완전한 해방을 완성하는 유토피아 대신, 그러한 유

토피아를 실현하고자 하는 시도와 열망을 좌절시키는 모든 종류의 힘에

대항하는 헤테로토피아와 그곳에서 서로에 대한 의무를 지고 각자의 권

리를 충분히 보장하는 연대감으로 연결된 노동자 개인들의 공동체를 추

구하는 데 있음을 규명한다.

한국 기독교 사회운동 가운데 도시산업선교와 크리스챤아카데미 중

간집단 교육은 노동 문제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며 노동자 문제와 관련해

종교적․신학적 논의를 바탕으로 한 사회운동론을 생산하는 한편으로,

노동자 교육과 작업장 내 노동조합 조직 지원 등의 활동에 뛰어들었다.

당시 구원과 천국에 대한 종교적 유토피아 관념이 해체되기 시작한 신학

적 패러다임의 전환은 노동자들이 주체로서 자신들의 사회적 위치를 확

보하는 민주적인 변화를 통해 노동자 해방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인식을

형성시켰다. 특별히 크리스챤아카데미는 노동자들이 스스로 이끌어가는

대화와 토론, 글쓰기를 독려하며, 노동자가 자신의 말과 언어의 몫을 갖

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일을 산업사회의 인간화와 민주

주의 실현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이자 핵심 운동 방략으로 내세웠다.

이 시기 월간 대화에 실렸던 노동자 수기는 그러한 운동의 실천적 결

과물이자 그것을 공유하게 하는 언어적(문학적) 양식으로 중요하게 취급

되었다.

유동우의 어느 돌멩이의 외침은 노동자들 간의 인간적․민주적인

관계에 정초한 새로운 사회 건설의 기획이 구성원들의 주체적인 행위와

그들 사이의 평등한 관계, 그리고 그것을 지속시키는 공동체성에 있음을

주제의식으로 내세우고 있다. 여기서 당대 진보적인 문학인․지식인들

은 노동자들의 자기 해방과 공동체적 연대의 체험을 언어화․문자화한

노동자 수기로부터 당대 문학이 찾지 못한 돌파구와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 결과 노동자 수기를 문학의 한 형식으로 받아들이려는 움직임이 문학

장 내에 광범위하게 일어나면서 노동자 수기가 문학으로 호명되고 기성

의 문학적 유토피아관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한편 여성 노동자 수기에서는 노동자 해방이 메시아적인 구원에 의해

성취·완성되는 유토피아적인 상태가 아니라, 소모임, 클럽활동, 기도회

와 수련회 등의 체험을 통해 여성 노동자들 스스로 지금-이곳에 위치 지

을 수 있는 구체적이고 현실화된 헤테로토피아를 이룩해 가는 것임을 드

러낸다. 역설적이게도 유토피아에 이의제기하고 반댛는 이 헤테로토피

아적인 글쓰기로써 여성 노동자 수기는 오히려 유토피아의 실현을 좌절

시키려는 지배 권력과 자본의 힘에 맞서는 현실 속 장소들과 그 장소를

점유해 나가는 노동자들의 해방에 관한 체험과 사유, 상상력의 지평을

열어갔다. 한편 노동자들이 그들 자신을 정치적 주체로 재현하는 일이

긴요해지기 시작하는 1980년대 중반에 이르면 자연스럽게, 그리고 필연

적으로 기독교 사회운동 담론으로부터의 탈맥락화가 이루어진다. 노동

자 수기의 문학적 등재 과정을 둘러싼 기독교 사회운동의 맥락은 그러한

변화를 거치며 서서히 후경화되었다.

핵심어: 노동자 수기, 기독교 사회운동, 유토피아, 헤테로토피아, 산업선교, 크리스챤아카데미,

월간 대화, 노동자 소모임, 여성 노동자

:: Summary

Dismantling Religious and Literary Utopia

Christian Social Movement and the Writing of Working Class People

in the 1970s and 1980s

Bae, Ha-eun

Encountering Christian Social Movement in the 1970s and 1980s, the writing of

working class people dismantled the notion of religious and literary utopia as well as penetrated

into the boundary of literature. Their autobiographical writing has a connotation

of representing and pursuing the heterotopia, in which working class people

struggle against the power of interrupting the progress of their liberation. Heterotopia

― utopia existing in the real world ― in the writing of working class people is the place

of community where they keep their own liberation movement based on the strong

sense of solidarity.

The organizations of Industrial Mission and Christian Academy social education

programs were deeply involved in the labor movement of the time and producing the

discourse of christian social movement based on religious and theological discussions.

In particular, the theological paradigm shift of dismantling the utopian notion of redemption

illuminated the insight of the liberation for working class people through

constructing the democratic society “here, now.” In Christian Academy social education

programs, working class people were encouraged to have a dialogue, discuss, and

write their own words; and it was a fundamental strategy of the labor and the social

movement for building a true humanitarian and democratic society. Indeed, the writings

of working class people, which was published in The Dialogue, were considered the

linguistic and literary practice and performance of democracy.

The Crying Out of the Stones written by Yoo, Dong-woo, which is the most renowned

autobiography of working class people of the time indicates that the project of building

a new society is based on the democratic relationship and community of workers, their

own independent actions, and equality. Literary critics and intellectuals discovered in

the writings of working class people the potentials and the possibility which they were

not able to find in literature. As a result, the writings of working class people become included

in literature.

On the other hands, the writings of working class women cast light upon the notion

of heterotipia; that is, the true liberation of working class people is not completed by a

messiah-like figure, nor found in the utopia. Rather, it is the place that they find, situate,

and realize ‘here, now’. Therefore, this heterotopian writings of working class

women fight against the hegemonic and capitalist power of interrupting the utopia,

making a new prospect of the experience, thinking, and imagination of the true

liberation.

Keywords : worker’s memoir, Christian social movement, utopia, heterotopia, Christian

Academy, Industirial Mission, female workers

 

 

 2019년 3월 31일 접수   2019년 5월 10일 심사   2019년 6월 10일 게재 확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