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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그리스인 조르바>에 나타난 카잔차키스와 장자(莊子)의 삶에 대한 고찰: 소요유(逍遙遊)의 자유정신을 중심으로/김지희.경북대

I. 서론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 1883-1957)는 20세기 초 유럽전역에전쟁과 파시즘의 광풍이 몰아쳐 문명의 위기가 고조될 때 새로운 희망을찾기위해 노력했던 현대 그리스 작가이다. 그는 동서양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삶의자유와 행복에 대해 끝없는 갈망을 탐구했다. 카잔차키스에게 여행은 수동적이아닌능동적인 관점으로 엄밀하고 촘촘하게 관찰하며 경험한 것의 정수만을소재로삼아 글을 쓸 수 있는 자양분이었다. 카잔차키스는 어린 시절 독립운동을하던크레타1인들이 공개 처형을 당하는 광경을 보면서 독립 투쟁과 희생, 자유를향한간절함이 전 생애에 걸쳐 깊은 흔적으로 남게 되었다.

1 크레타 전투(1941): 제2차 세계 대전 초기 독일군이 그리스 공방전에서 그리스 본토를점령하고 남은 동부전선 지역의 근거지인 크레타섬을 공략해 발칸 반도 지역을 완전히 점령한전투.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1천만 명 미만인 언어의 작가가 세계적문호가되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노벨 문학상을 받기 위한 필수조건인수준높은 번역을 통한 문학작품의 해외보급이 수월했던 시기가 아님에도 언어의장벽을넘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본 논문은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화자인 ‘바실’로 명명된 카잔차키스의삶과 철학을 소설 속 인물이자 실존 인물인 ‘조르바’를 통하여 동양의고전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遊)’에 대한 철학적 의미와 비교하는 것에 목적이있다.특히, 장자2의 「내편(內篇)」 중 「제물론(齊物論)」을 중심으로 조르바의‘자유관’에 대해 정리하였다.

2 장자(莊子)는 전국시대에 살았던 장주(莊周, 기원전 300년경)라는 사람이 쓴 책이다. 본래그내용과 분량이 조금씩 차이가 있는 여러 가지 장자본이 있었으나, 현대에 전하고 있는책은진(晉)나라 곽상(郭象)이 본문에 주(註)를 달아 편찬한 장자로서 내편(7), 외편(15), 잡편(11) 총33편으로 되어있다.

비교 철학적인 입장에서 서양의 이성적인 측면과동양의직관적인 측면을 관망하는 것은 문학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장자라는 고전을 통하여 새로운 의미의 자유와 그러한 자유를 획득하기위한 방법을 찾고자 동양에서 ‘자유’를 의미하는 다양한 용어와 번역어‘자유’와의관계에 대하여 살펴보았고, ‘자유’라는 의미가 가진 말의 어원과 철학적의미를간략하게 설명하였다. 이처럼 동서양의 ‘자유’에 대한 다양한 의미를 살펴보는것은장자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제시하는 ‘자유’를 이해하기 위함이다. 다음으로 그리스인 조르바(1946) 에 나타난 ‘조르바’의 자유와 장자의제5편 「덕충부(德充符)」에 나오는 위나라 ‘애태타(哀駘它)’의 자유정신, 즉소요유(逍遙遊)를 비교하여 두 사람의 이상향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이들은 불가에서 말하는 비유비무(非有非無)라는 중도관을 공통으로추구한다. 따라서 비유비무의 관점으로 그리스인 조르바에 나타난 카잔차키스와장자의 시간관념에 대해 논한다. 이를 위해 카잔차키스의 관점, 즉 “지금 여기있는나는, 무한의 과거와 미래 시간의 출발점이다.”라는 시각을 중심으로 기술한다. 마지막으로 자의식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조르바와애태타가삶을 마주하는 자세를 살펴보았다. 절망 앞에서도 춤을 추는 조르바처럼애태타도조건에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 세상의 이치를 상대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며세계를포용하는 그들은 물 같고 바람 같았으니, 이 두 사람은 장자와 카잔차키스의페르소나이다.

II. 서양과 동양의 ‘자유’의 의미분석

E. 코레트는 “자유라는 말은 인간의 ‘자기 이해’가 밖으로 표현되고있는근본개념이라고 했다. 자유는 인간다운 삶, 즉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킬 수있는삶을위해서는 근본적인 요구(신승환 166)”라고 했다. 서양적 의미의 ‘자유’는 대체로 두 가지로 사용된다. 우선 ‘freedom’은 주로“구속이나 속박이 없는 자연생활 상태”를 뜻하는 개념이고, 나머지 하나는 ‘liberty’로 주체성을 반영한 “권리”라는 의미로 법적, 정치적 개념으로사용된다(서경 24). 또한, 학자에 따라서는 ‘liberty’를 다시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자유’3 로 나누기도 한다.

3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라는 용어는 벌린(Isaish Berlin)이 ‘두 가지 자유의 개념(Two Concepts of Liberty)’이라는 강연에서 처음 사용하였다. [Gray, J., 손철성 역, 자유주의(이후출판사, 2007), 106)]

‘liberty’는 사회적인 통념 아래 용인할 수 있는 한정된범위내에서의 개념이자, 자신의 행동에 책임이 따르는 ‘자유’라고 할 수 있다. 반면‘freedom’은 내가 원하는 것을 자신의 의지대로 하는 ‘자유’의 개념이라고볼수있다. 이러한 ‘자유’의 철학적 의미는 필연성, 운명, 자연법칙 등과 같이어떤원리가 존재하고, 이러한 원리와 법칙에 순응하는 삶이 진정한 자유라고 생각한다. 또다른 입장은 필연성이나 법칙의 구속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결정하는 것이 자유라고 여긴다. ‘자유(自由)’라는 단어 자체가 현대에와서‘freedom’의 번역어로 처음 쓰이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오늘날의 정치적자유에해당하는 개념은 옛날에는 없었던 것으로, 현대에 와서 ‘자유’라는 단어의의미가과거보다 좀 더 정치적으로 확장되었다고 볼 수 있다. 동양적 의미의 ‘자유(自由)’의 한자어는 “스스로 따른다”는 의미가기원이며, 개별적 행위자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고 행동하는 상태를 말한다. 중국에서는 이러한 ‘자유(自由)’라는 개념을 대신하는 용어를 여러 고전에서 볼수있으나, 근대에 이르기까지 ‘liberty’나 ‘freedom’을 번역하는 의미의 ‘자유’는 존재하지않았으며 대체로 ‘제멋대로’, ‘임의’라는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었다(서경 24). 그러나서양적 의미로서 “바깥에서 권력의 쟁취를 위하는 것”이라는 자유와는 달리 중국인들의 전통적인 자유는 각 개인의 내면인 심성에 존재한다고 보았으며, 이러한자유 개념은 도가의 ‘자연(自然)’ 개념과 관련이 깊다. ‘자유’가 맹자, 후한서 등에서 인용되었다는 논문과 글이 많음에도불구하고시경, 논어, 맹자, 장자 등에서 ‘자유’라는 단어는 실제로 나오지 않는다. 특히장자 내편의 첫 장 제목인 소요유(逍遙遊)에서 ‘자유(自由)’라는 의미의‘소요(逍遙)’란 특별한 목적 없이 이리저리 어슬렁거린다는 의미이고, 유(遊)는‘노닐다’라는 훈을 가진다. 이러한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장자의 사상은 카잔차키스의‘자유’를 향한 의지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또 동양에서는 ‘자득(自得)’, ‘자생(自生)’, ‘해(解)’, ‘화(化)’ 등과 같이 자유에 해당하는 다양한 용어가 있었는데, 이를‘freedom’과 ‘liberty’로 번역할 수도 있었지만, 어떤 이유로 ‘자유(自由)’라는용어로 그 의미가 나타나게 되었는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III.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의 자유: 그리스인 조르바에 투영된 ‘조르바’의 삶의 철학

현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20세기 문학의 구도자로 불리는니코스 카잔차키스는 1883년 크레타4 이라클리온에서 태어났다.

4 크레타는 지중해 동부, 에게해 남부에 있는 그리스에서 가장 큰 섬이다. 에게해를 끼고북동쪽 아시아를 잇는 터키와는 고대로부터 문명과 문화가 혼재되어 전통 복장과 전통춤 또한유사하다. 크레타의 이야기만으로 장서를 만들어 낼 만큼 기원전부터 수많은 역사 이야기가담긴섬이다. 크레타에 있는 공항의 이름은 ‘니코스 카잔차키스 공항’이다.

터키의 지배하에기독교인 박해 사건과 독립전쟁을 겪으며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이런 경험으로부터동서양 사이에 위치한 그리스의 역사적, 사상적 특이성을 체감하였다. 또한, 이러한 배경을 통해 자유를 찾으려는 투쟁으로 연결시킨다. 이제는 크레타와 터키의 싸움이 아니라 선과 악이, 빛과 어둠이, 신과 악마가싸웠다. 싸움은 항상 영구했으며, 선과 빛과 신의 뒤에는 언제나 크레타가 섰고, 악과어둠과 악마의 뒤에는 터키가 있었다. 그리하여 크레타가 자유를 위해 싸우는결정적인 시기에 크레타인으로 태어났다는 우연을 통해 나는 이미 어린 시절부터세상에는 삶보다도 더 고귀하고, 행복보다도 감미로운 선인 자유가 존재함을깨달았다. (영혼의 자서전 1권 85) 카잔차키스의 내면에 자리한 공포와 악의는 터키인들에 의한 것이었다. 그의영혼을 뒤흔든 것은 공포나 고통이 아닌 자유를 찾으려는 투쟁이었다. 그러한투쟁의 첫 단계는 터키인들로부터 찾아야 하는 자유였고, 두 번째는 악의와시기, 공포로부터의 자유, 마지막 단계는 가장 사랑받는 대상들까지 포함한 우상들로부터자유를 찾는 것이었다. 이런 관점으로 그의 마음은 점점 더 넓어졌고 투쟁의대상은 그리스와 터키의 범주를 넘어 더 확대되었다. 카잔차키스는 호메로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 관능적이면서도 균형 잡힌정신을가진 천재이자 논리와 도취를 하나로 섞어 거대한 비극적 비전을 만들어낸최초의 인물인 오디세우스의 정신을 그대로 계승했다. “모든 고난의 끝에 도달하고도 앞으로도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노고가있을것이고, 그것이 아무리 많고 힘들더라도, 나는 그것을 모두 완수해야만 하오.” (호메로스, 오디세이아 23권 247-50절) 그는 오름 길을 향해 하나하나 임무를 완수해 나간다. 그리스 정교의성지인아토스산의 수도원을 순례하였고, 이스라엘과 시나이반도를 여행하며 자아를찾는고난의 여행을 하였다. 그리고 독일, 러시아, 이탈리아, 스페인, 일본 중국을여행하면서 빼놓지 않고 직접 체득한 경험을 토대로 기행문과 소설을 남겼다. 1917년에는 그가 고용한 친구, 알렉시스 조르바(Alexis Zorbas)와 갈탄 광산 사업을벌였지만, 사업은 망하게 된다. 하지만 조르바와 함께 했던 시간을 기억하며쓴그리스인 조르바는 인류 최초의 시인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에이어그리스인뿐 아니라 전 인류에 또 하나의 성체, 성화(Metoisono)를 만들어낸다. 카잔차키스는 직접 체득하지 않은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스스로증명이라도 하듯 자신의 유년부터 죽기 직전까지 모든 기록을 남겨 자신의철학과사상으로 승화시켰고, 자신의 비문에 그것을 그대로 새겨놓았다.

Δεν ελπίζω τίποτα. Δε φοβούμαι τίποτα. Είμαι λέφτερος. I hope for nothing. I fear nothing. I am free.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카잔차키스 묘비명 1957)

1908년 파리로 건너간 그는 베르그송과 니체5를 접하면서 인간의 한계를극복하려는 부정적 인간상을 부르짖게 된다. 니체와 베르그송은 카잔차키스문학의바탕을 이루는 양대 산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인 조르바와 관련하여어느비평가는 “만약 베르그송이 없었더라면 카잔차키스의 조르바는 무미건조한독단주의자나 광신적 냉소주의가 되었을 것이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김욱동 93). 카잔차키스의 인생관과 세계관에 큰 영향을 끼친 조르바의 삶은 얼핏보기에는 방종한 모습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조르바의 지향은 분명했다. 관습에따라등에 진 무거운 짐을 견디는 낙타처럼 수동적인 태도로 살기를 거부하고, 기존의가치를 부정하는 자유 정신을 상징하는 사자와도 같았다. 또한, 어린아이상태에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능동적인 자세로 받아들이고 거기에서 의미를찾아초인(Übermensch)처럼 끝없는 변신으로 자신의 판단 아래 치열하게 삶을 꾸려나간다.6 이러한 무한 긍정 정신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니체가 말하는 ‘아모르파티’이다.7

5 카잔차키스는 1908년 파리에서 베르그송의 지도를 받은 후 니체의 철학 사상으로박사학위를 받았다.

6 니체의 즐거운 학문은 니체 최초의 시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철학적해설서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의 저술 노트로 알려진 「유고」로 구성되었다. 도덕적, 인식론적편견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니체의 근본 사상이기도 한 신의 죽음, 위버멘쉬, 그리고영원회귀사상 등 이후 전개될 니체 사상의 단초들이 집약되어 있다.

7 아모르 파티(라틴어: amor fati): ‘운명애(運命愛), 운명의 사랑, 운명에 대한 사랑’으로번역할 수 있는 라틴어 어구이다. 인간에게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운명을 감수하는 것으로 그치는것이 아니라, 이것을 오히려 긍정하고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사랑하는 것이 인간 본래의창조성을 키울 수 있다는 사상이다. 따라서 자신의 운명은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개척해 나가야한다는 것이 이 사상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조르바에게 ‘인간’이란 그런 존재, 곧 ‘자유인’인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을방금고용한 사장에게도 일은 노예처럼 하겠으나, 산투리는 자신이 원할 때만치겠노라고선언한다. 그런 그에게는 하느님도 악마도 두려운 대상이 아니다. 보통사람들이‘조르바’의 삶에 관심과 흥미를 느끼는 이유는 그렇게 살고는 싶어도 현실의 소소한 욕망에서 벗어나기가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자유에 대한 갈망 외에도 카잔차키스의 삶과 작품에 큰 영향을 준것은여행이었다. 1907년부터 유럽과 아시아 지역을 두루 다녔고, 이때 쓴 글은현대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준 여행기로 출간되었다. 1922년 베를린에서 조국 그리스가터키와의 전쟁에서 참패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 카잔차키스는 민족주의를버리고공산주의적인 행동주의와 불교적인 체념을 조화시키려 시도했고, 이를구체화하기위해 붓다와 대서사시 오디세이아를 집필했다. 이후 이탈리아, 이집트, 시나이, 카프카스 등지의 여행을 통해 다수의 소설과 희곡, 여행기, 논문, 번역작품을남겼다.

대표작의 하나인 마할리스 대장과 최후의 유혹은 신성을모독했다는이유로 교회로부터 맹렬히 비난받고 1954년 금서가 되기도 했다. 두 차례노벨문학상 후보로 지명된 바 있는 카잔차키스는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에비견될만큼 위대한 작가로 추앙받고 있다. 거의 50년 동안 여러 곳을 여행했던 카잔차키스는 자신의 여행을‘순례’라고부르며 ‘내 삶을 풍요롭게 해준 것은 여행과 꿈이다’라고 표현한다(영혼의자서전8).

8 영혼의 자서전에서 카잔차키스는 “내 삶을 풍요롭게 해준 것은 여행과 꿈이었다. 내영혼에 깊은 골을 남긴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호메로스, 베르그송, 니체, 조르바를 꼽을것이다. 여행이 지상의 길을 탐사하는 것이라면, 꿈은 존재의 심연에 대한 탐사이다. 육체와 영혼, 구체와 추상, 지상과 심해의 경계를 넘나드는 경계의 여정에서 만난 이들이 ‘호메로스, 베르그송, 니체, 그리고 조르바’다. 세 사람은 인류 지성사의 별들이고 실존 인물이지만 조르바는 그저무명의 존재일 뿐이다. 오직 카잔차키스에 의해서만 인류의 무대에 출현한 ‘운석’ 같은 존재다. 그운석에 대한 탐사의 여정이 그리스인 조르바다.”라고 말한다.

그는 삶 자체가 길 위의 삶이었고, 길을 걸어가면서 심연 깊숙한곳에묻혀있는 자신을 탐구하며 끊임없는 질문을 던졌다.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안락한 주택 소유에 대한 갈망이 삶의 중요한목표였다. 20세기가 집의 시대(손세관 10)였다면 21세기는 삶의 중심이 집에서 길로 변화되고 있다.

길 위에서 세상과 소통하고 자연과 교감하며 진정한 앎의세계에접속한다고 볼 수 있다. 현대인이 길 위의 삶을 구현한다고 볼 때 카잔차키스는이미 100여 년 앞서 세상의 모든 것이 텍스트임을 알고 있었고, 자연과 깊은교감을위해 자신이 구도자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카잔차키스는 여행과 삶의 철학을 보여준다. 카잔차키스는 길 위에서 낯선 떠돌이 조르바를 만나 동행하고 우정을 나누며 자유, 인간의삶, 자연, 신, 전쟁 그리고 죽음에 대해서 서로 묻고, 대답하고, 먹고, 마시고, 걸어간다. 그리고 “자유를 원하는 자만이 인간”이라고 말한다. 카잔차키스와 조르바가 여행의 시작점에서 동요하는 시그널은 미국의자연기문학의 깊이에 한층 더 비중을 실어 완성한 소설 Wild에서도 살펴볼수있다. 와일드를 쓴 작가, 셰릴 스트레이드(Cheryl Strayed)는 자연으로부터얻는삶이우리에게 얼마나 큰 회복의 의미를 가져다주는지 섬세하게 고찰하였다.

그녀가PCT9를 홀로 걷겠다는 강렬한 충동에 사로잡혔을 때 느끼던 순간의 감정은카잔차키스와 조르바가 모든 것이 어긋나 외적으로 참패했을 때 오히려 내적으로는긍지와 환희를 느끼던 순간과 흡사했다고 볼 수 있다.

9 PCT(Pacific Crest Trail)는 멕시코 국경에서 캐나다 국경까지 미대륙 서부지역을종단하는대표적인 장거리 트레일의 하나이다. 전세계 하이커들에게는 평생의 버킷 리스트이며 해마다수백 명의 하이커들이 PCT 종주를 목표로 길 위에서의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104 김 지 희

아래 문단은 다른두작품속에서 유사하게 느껴지는 부분을 서술하였다.

나는 새벽에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해변을 따라 마을로 향했다. 내 심장은가슴속에서 벌렁거리고 있었다. 내 생애 그 같은 기쁨은 누려 본 적이 없었다. 예사기쁨이 아닌, 숭고하면서도 이상야릇한, 설명할 수 없는 즐거움 같은 것이었다. 설명할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 설명할 수 있는 모든 것과 극을 이루는 그것이었다. (그리스인 조르바 416)

표지에 놓여있던, 푸른 하늘을 뒤로 거대한 바위산들에 감싸 안긴 호수의사진이떠오르면서 마치 주먹으로 얼굴을 강하게 맞은 듯 무언가 정신이 번쩍 드는기분이었다. 줄을 서서 계산대에서 기다리는 동안 그 책을 볼 때는 그저 시간을보내기위해 그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이 아닌 어떠한 징조처럼느껴졌다. 내가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닌 바로 내가 해야만 할 일이었다. (Wild 56)

그리스인 조르바는 현대 그리스 문학의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고있다. 알렉시스 조르바라는 실존 인물을 처음 만난 것은 소설의 시작에 나오는부두선창가가 아니라 아토스산이었다. 조르바는 실제로 크레타섬을 방문한 적은없다. 조르바는 1865년 마케도니아의 피에리아현 리바디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성인이되어고향을 떠나 ‘팔레오초리’라는 마을에 정착하면서 12명의 자녀를 두었지만그중7명 정도만 살아남았다. 그의 직업은 나무꾼, 대장장이, 마부, 광부 등 매우다양했다. 그러던 그가 1915년 아토스산으로 향하면서 카잔차키스를 만나게 된다. 조르바는 친절한 마음, 열린 마음, 여유로운 태도, 활기찬 성격과 거침없는행동, 그리고 삶과 사랑과 음식과 춤을 사랑하며 존중했다. 카잔차키스는조르바로부터 깊은 인상을 받았고 그들은 우정을 쌓으며 친구가 되었다. 두 남자는칼로그리아 해변에서 매일 몇 시간씩 삶에 대해 담론을 나누며 사랑, 삶, 삶의 의미에대한심오한 소크라테스식 문답을 주고받는다. 카잔차키스는 조르바의 생각과인생을바라보는 관점에서 영감을 얻고 삶에 대한 욕망을 바탕으로 신화에 가까운알렉시스 조르바를 탄생시켰다. 다음과 같은 내용은 조르바가 카잔차키스의 인생관과세계관에 얼마나 큰 영향을 받았는지를 뒷받침해준다. 조르바야말로 내가 오랜 시간 찾아다녔으나 쉽게 만나기 힘들었던 바로그런사람이었다. 그는 살아 숨 쉬는 가슴과 크고 풍성한 언어를 쏟아 내는 입, 위대하고근사한 야성의 영혼이 깃든 사나이, 아직 모태(母胎)인 대지의 탯줄조차 떨어지지않은 그런 사나이였다. (그리스인 조르바 22) 그와 함께 있으면 일은 포도주가 되고 여자가 되고 노래가 되어 인부들을취하게했다. 그의 손에서 대지는 생명을 되찾았고 돌과 석탄과 나무와 인부들은그의리듬으로 빨려 들어갔다. 보라, 조르바는 사업체 하나를 춤으로 변화시켰다. 이것이바로 메토이소노10다.

10 카잔차키스 작품의 핵심개념인 ‘메토이소노(Metoisono 성화)’란 ‘거룩하게 되기’라는의미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육체와 영혼, 그리고 물질과 정신 등 모순되는 반대개념에서하나의 조화를 창조하려는 끊임없는 투쟁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뜻한다. 카잔차키스는평생스스로 갈망했던 ‘메토이소노’와 가장 닮은 자유인 조르바를 통해 소설 속에 이런 핵심 사상을녹여낸다. “보라! 조르바는 사업체 하나를 ‘춤’으로 변화시켰다. 이것이 바로 ‘메토이소노’, ‘거룩하게 만들기’이다.

“거룩하게 만들기”이다. 나는 조르바라고 하는 위대한자유인을 겨우 책 한 권으로 변화시켰을 뿐이다. (그리스인 조르바 282)

조르바와의 생활은 내 가슴을 넓혀주었고, 그의 말 몇 마디는 복잡하기 이를데없는 내 고민에 절대적인 해법을 제시해줌으로써 내 정신을 평화롭게 만들어주었다. 이 사람은 절대로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직감과 매의 눈 같은 원초적인눈으로힘들이지 않고 지름길을 달려 노력의 정상에 우뚝 서는 ‘무위의 경지’를 보여주었다. (그리스인 조르바 507)

동양철학과 불교의 영향을 받은 카잔차키스는 위의 내용에서 불 수있는것처럼 조르바를 통해 노자와 장자의 ‘무위의 경지’까지 담아내고 있다. 이는다음장에 소개되는 장자의 소요유(逍遙遊)와 자유 정신에서 상세히 다루고있다. 특히, 카잔차키스는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으로 삶을 잘 영위하는가’에 대한명제를조르바의 삶을 통해 대변하고 있다. 인간이 진정으로 원하는 인간다운 삶이란 목적에 의해 삶이 지배 당하지 않고 자유의지에 의해 선택된 인간 자신이 충분히만족할 수 있는 삶이라 말할 수 있다(안남연 181). 소설 속 화자 바질에게 일종의 열등감을 심어준 조르바는 원초적인 인간의 순환 질서에 맞서 자유의지에 삶을 맡긴 채 자신의 본능적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율법에 따라 살아가며 행복을 추구하였다. 또한, 카잔차키스가 말하는‘자유와행복의 진정한 의미는 여행하며 깨닫고 통찰된다’라는 것을 다음과 같은내용에서살펴볼 수 있다.

우리는 밤이 깊도록 화덕 옆에 묵묵히 앉아 있었다. 행복이란 얼마나 단순하고소박한 것인지 다시금 느꼈다. 포도주 한 잔, 군밤 한 알, 허름한 화덕, 바다소리단지 그뿐이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 행복이 있음을 느끼기 위해 단순하고소박한마음만 있으면 된다. (그리스인 조르바 118)

단순하고 소박한 삶에서도 자유와 행복과 같은 추상적이고 상대적인언어는구체적 개념과 절대적 의미를 갖게 된다. 아래 내용 또한 같은 맥락의 표현이다.

나는 행복했고, 그 사실을 깨달았다. 행복을 경험하는 순간 그것을 인식하기란쉽지않다. 오히려 그 순간이 다 지나가 버린 뒤에야 비로소 뒤돌아보며 때로는갑자기, 때로는 흠칫 놀라며 그때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깨닫곤 한다. 그러나 이곳크레타섬해변에서 나는 행복을 경험하면서 동시에 행복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127) 바다, 가을의 따사로움, 빛에 씻긴 섬, 영원한 나신 그리스 위에 투명한너울처럼 내리는 상쾌한 비, 나는 생각했다. 죽기 전에 에게해를 여행할 행운을 누리는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36)

아래 내용은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카잔차키스가 진정한 행복을표현할때장자의 「제물론(齊物論)」 제1절부터 7절의 내용을 인용한 것처럼 인생관점이매우 유사한 대목이다. 그의 여러 작품에서 알 수 있듯이 카잔차키스는유가및불가 사상과 철학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1930년대에 프랑스어로 쓴 돌의정원11 이라는 소설에서

11 전쟁 상태로 돌입하기 직전의 일본과 중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아시아를 지배하려는일본인과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중국인의 위태로운 만남을 통해 정신적 소생을 꿈꿨던한유럽인의 힘든 싸움의 기록을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은 카잔차키스가 인생 철학을 대담하게풀어내었던 초기 저작들과 원숙한 작가적 기량을 보여주는 후기 저작들의 가교 역할을 하는작품이다.

‘쿵리양기’라는 인물이 다른 작중 인물에게 불교 신자인지묻자

“네, 조금은 불교 신자라 할 수 있죠. 하지만 나는 또한 공자님을 존경합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활동적이든 관조적이든 붓다나 공자를 같은 얼굴을감춘두 가면, 즉 도(道)라고 늘 간주해 왔죠..”라고 덧붙여 말한다(김욱동 105-106). 진정한 행복이란 이런 것인가. 야망이 없으면서도 세상의 야망은 다 품은듯이말처럼 뼈가 휘도록 일하는 것, 사람들에게서 멀리 떠나, 사람을 필요로 하지않되사람을 사랑하며 사는 것, 성탄절 잔치에 들러 진탕 먹고 마신 다음, 잠든 사람들에서홀로 떨어져 별을 머리에 이고 뭍은 왼쪽, 바다를 오른쪽에 끼고 해변을걷는것, 그러다 문득, 가슴 속에서 인생이 마지막 기적을 완성했다는 것, 곧 인생이한편의동화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 (그리스인 조르바 174)

사유하기보다 행동하는 인물이었던 조르바, 카잔차키스가 평생에 걸쳐배움과사색을 통하여 얻으려 했던 깨우침의 길을 조르바는 이렇듯 행동으로보여준다. 위선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그 어느 것에도, 그 누구에게도 구속받지 않으며진정한 자유를 구가했다.

IV. 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遊)와 비유비무(非有非無)12

본 논문은 소요유(逍遙遊)의 자유정신을 중심으로 그리스인 조르바에나타난 카잔차키스와 장자에 나타난 장주(莊周)의 삶에 대한 고찰을 비교하는것이다. 누구나 머물고 싶은 곳, 살고 싶은 곳에 대해 계획하고 꿈을 꾼다. 우리는그곳을 ‘이상향’이라고 부른다. 이상향은 현실에 대한 인식과 비판에서 출발한보다나은 삶에 대한 희망이자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향은 괴로운현실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환상의 공간으로, 때로는 현실의 상황을 개선한대안적인세계로 나타난다. 사람들은 휴식의 공간에 대한 욕구와 심리적 환기의방안으로자신만의 이상향을 꿈꾸고 상상한다. 현실을 초월한 이상향은 상상 속공간이지만, 그 상상은 삶의 활력과 위로가 될 수 있다. 장자는 ‘초월적 피세’, ‘호방한 상징’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지만, 사실과는다르다. 장자는 오히려 카오스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세상이아무리한심하고, 구질구질하고, 역겹고, 난감하더라도 그것을 피할 방법은 없으며어떤운명이라도 사랑하면서 그 운명을 껴안고 한바탕 노는 능력을 터득하는것이낫다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세상의 어떤 운명이라도 사랑할 수 있다면, 세상의어떤삶이라도 다시 살아낼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절대 자유의 삶’이라고 말한다(낭송장자 이희경 72). ‘소요유’는 장주(莊周)가 시대적 혼란 상황을 극복하고자 자유로운정신경계를 체득한 초월적 경지를 의미한다. 소요유란 몸은 현실에 있더라도 마음(정신)을통해 자유로운 정신세계, 즉 이상향을 추구하는 것을 뜻한다. 소요유는어디에도구속되지 않는 절대 자유의 경지에서 자유로이 노닒을 뜻하고 정신초월(해탈)을의미한다(장자 3313).

12 비유비무(非有非無)는 붓다 당시, 전형적인 외도의 논법으로 비판되었다. 한편 사구는잡아함경(雜阿含經)[제288, 302, 303, 343경] 등에서 무기의 문제를 논의하는 경우와 같이초기경전에서부터 사용된다.

13 장자의 제물론에는 다음과 같은 표현이 있다. “彼是莫 得其偶 謂之道樞. 樞始得其環中以應無窮. 是亦一無窮 非亦一無窮也.”[저것과 이것이 상대를 얻지 못하는 것을 도의 지도리라고한다. 지도리가 고리 가운데에서 쓰임을 얻게 되면 무궁한 변화에 응할 것이다. ‘옳음’(是)도한 무궁한 무궁이다.]: 金呑虛(2004 106)

인간의 삶을 고달프게 하고 온갖 정신의 억압과 마음의 압박을 가져오게하는것은 바로 이러한 옳고 그름의 판단(사고)에 매달리는 집착에 있다. 이러한집착(구속)으로부터의 탈출을 좌망(坐忘)14이라 하였고 탈출하여 완전한 자유로움이있는 세계를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15, 그리고 거기에서 노니는 삶의 세계를 소요유라고 했다(송항룡 297). 사람이란 이 세상에 한 번 태어났으면 자연스럽게 살다가 죽으면 된다. 자기의육체를 위하여 외부 세계와 항상 마찰을 일삼거나, 평생을 고달프게 살아가는자들처럼 가련한 사람들은 없다. 또 몸이 늙는다고 해서 마음까지도 이를 따라근심하며함께 늙어 갈 필요는 없다. 자연스러우면 그뿐이라는 것이다(장자16) 一受其成形 不亡以待盡 與物相刃相靡 其行盡如馳 而莫之能止 不亦悲乎終身役役而不見其成功 苶然疲役而不知其所歸 可不哀邪 人謂之不死奚益其形化其心與之然 可不謂大哀乎 人之生也 固若是芒乎 其我獨芒而人亦有不芒者乎 (장자 제1-7절)

14 유교에서 말하는 심재좌망(心齋坐忘)의 줄임말로 잡념을 버리고 무아(無我)의 경지에들어가는 것을 뜻한다. 마음을 가다듬고 잡념을 버리고 현실 세계와 나를 잊고서 고요히 앉아절대무차별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가만히 앉은 채 마음을 평온하게 가져 무위의 경지에이르는 것이다.

15 장자(莊子)에서 말하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이상향(理想鄕)을 말한다.

16 본 논문에 인용된 장자(莊子) 번역본은 김학주의 글을 인용하였다.

‘소요유(逍遙遊)’란 자기중심적인 견해에 있는 소아(小我)를 버리고, 대아(大我)적인 정신 주체가 자유롭게 노니는 정신상의 경지 즉, 도의 관점에위치하여우주 전체의 변화를 모두 볼 수 있어서 만물 그 자체의 본성을 인정하여만물을제일(齊一)하는 경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경지는 “인간이 정신적으로누릴수있는 최고 경지로서 모든 시비나 구속, 차별을 전체적으로 바라보고 그자체를편안하게 관조하는 개방의 경지”이다(조경현 99). 장자는 자연(自然)을 자연환경뿐만 아니라 더 넓은 의미로도 사용하는데, 이는카잔차키스가 자연을 벗 삼아 행복을 느끼며 집필하는 자세와 닮아있다. 이러한 가치관은 대상적 자연인 천(天)과 주체적 자연인 천연(天然)의 두 가지로볼수이고, ‘아님’(非)도 있다. 천(天)은 땅의 반대인 천공(天空)과 자연계의 천지(天地)로 구분되고천연(天然)은 ‘스스로 그러함’, 즉 자연(自然)이다. 인간이 이러한 만물의본성을그자체로 인정하게 되면 비로소 모든 대립이 파편화되고 정신적인 자유를얻을수있게 된다. 소요유를 요약하면 “인위(人爲)가 없는 자연(自然) 그대로의 내면과 외면의 일체된 만물의 근원인 도(道)를 통해 내재된 의지”를 말한다(서경28). 장자의 도(道)는 우주의 기원과 본질이 만물의 원인이 되지만 이는 인지할 수 없는 것으로 만물에 내재하고 있으며 만물을 통해 드러나는 하나의 질서라고본다.17 이러한 도는 만물이 자기 원인으로 자생(自生), 자화(自化)하는 것을뜻하는데, 만물이 스스로 생겨나고 변화한다고 해서 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18

17 박원재, 「道家의 理想的 人間像에 대한 硏究 - ‘자아의 완성’을 중심으로」.79-80

18 장자(莊子)2005. 이강수. 노자와 장자. 203-204, 이 책에서 이강수는 곽상의 독화(獨化)설이 장자의 본래 의도와 다른 설명이라고 한다. 곽상의 독화설은 만물이 자생, 자조, 자족한다는 것으로 이러한 주장은 만물이 어떤 원인이나 근거 없이 홀로 생겨나서 홀로 변화한다고보는 반면 장자는 진군, 진재에 대해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고 완곡하게 반문하는 형식으로그존재 가능성을 유보한다.

또한, 도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것으로 인간의 인식 이전에 존재한 것으로 도의 작용은 무궁하며 영원히 소멸하지 않는다(이강수 192-93). 인간의 행동이 시간에 매여 있고 매 순간 변하므로 시간 속에 머무는동안은자신의 행동에서 벗어나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러나 그 결과에 그다지집착하지않고 살아가는 우리는 무시간의 상태, 즉 영원에 도달하게 된다. 현상계(現象界) 에 머무는 우리 인간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상계 그 너머에 존재하는무시간의영원을 노력없이 인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상계는 절대세계(絶對世界)가있어서 존재할 수 있고, 절대세계 역시 현상계가 있어서 존재할 수 있다고 할수있다. 현상계에서 구분된 시간개념이라 할 수 있는 과거와 미래의 속박에서 벗어나는것은 힌두교 비슈누 신의 화신, 크리슈나(Krishna)가 했던 말을 연상시키며 불교적인 해탈에 접근한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김지희 78). ‘시간’이라는 개념은 불교와 노장사상에서 찾을 수 있는 비유비무(非有非無) 로 설명할 수 있다. 비유비무(非有非無)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없는 것도아니며 실체가 없다’는 뜻으로 마음을 나타낸다. ‘현재, 과거, 미래’라는 시간의 개념은 인간의 일반적인 분류에 불과하다. 시간은 현재, 과거, 미래로 구분하기보다 현재성의 원칙에서 인식되어야 한다. 현재는 과거에도 있었을 뿐 아니라, 미래에도 그대로 존재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현상의 모든경험은 매순간 현재에 존재하는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김양수 278). 비유비무(非有非無)에 대한 이와 같은 철학적 관점은 장자의 ‘애태타’19뿐만아니라, 카잔차키스가 그려낸 실존 인물 ‘조르바’의 대화에서도 종종 드러난다. 즉, 카잔차키스의 작품 대부분에서 불가 사상과 유가 사상이 담긴 구절과 작중인물의대화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카잔차키스는 공자의 계사전(繫辭傳) 상을 통해 언어의 힘이 강조된포스트모더니즘을, 순자의 「권학편(勸學篇)」을 통해 청출어람(靑出於藍)을, 맹자의「공손추(公孫丑)」 상을 통해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각각 보여주고 있다. 특히, 장자의 「지락편(至樂篇)」에서 장주(莊周)가 죽은 아내의 시체 앞에서흥겹게노래를 부르는 이야기는 조르바가 아들의 죽음 앞에서 춤을 춘 장면과 흡사하다. 장주의 아내가 죽어 혜자가 문상 갔을 때 장주는 다리를 쭉 뻗은 채 질그릇을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를 본 혜자가 나무라자 장주는 본래 삶이란게없었을 뿐만 아니라, 형체도 없었으며 형체만 없었던 게 아니라 본래 기(氣)도없었던 것이라고 말한다. 기가 변하여 형체가 되었고, 형체가 변하여 삶이 되고죽음이되는 것이니 이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철의 흐름과 비슷한 일이어서자신의아내는 편안히 누워 있을 뿐이라고 덧붙인다. 조르바도 아들의 죽음 앞에서 춤20을 추었다.

19 본 논문 V장에 조르바와 애태타의 자유 의식에 대한 공통점을 설명하는 내용이 상세히기술되어 있다.

20 소설의 마지막에서도 조르바의 춤이 다시 등장한다. 이때 추었던 춤은희랍인 조르바라는영화에서 산투르 연주와 함께 매우 인상적으로 표현되어 전 세계적으로 플래시몹(flash mob)의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조르바는 인간 구원의 열쇠를 ‘춤’이라고 한다. 조르바에게 춤은 ‘불가능을 성취하려는 악전고투의 하나’였다. 세살된 아들의 죽음 장면에서도 춤을 춘 조르바는 너무나 괴로웠기 때문에절망을극복하는 에너지로 ‘춤’ 추는 행위를 작동하기도 한다. 아들의 죽음을 애도하기위해 온몸으로 슬픔을 췄다는 조르바(248), 그에게 죽음은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장주가 질그릇을 두드리며 노래하는 행위와 조르바의 춤이 조금은 다른 행위일 지라도 두 가지 일화는 사회적 관습이나 상식에서 어긋난 행동을 한점에서근본적으로는 비슷하다(김욱동 112). 죽음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궁극적으로는계절의 순환처럼 자연의 변화 과정이라 여기는 것은 두 인물의 공통점이라할수있다.

죽음을 인식한다는 것은 인간의 불완전한 실존과 마주하는 것이고, 사람들에게주어진 삶은 단지 죽음으로 향하는 발걸음에 불과할지도 모른다고 두 사람은생각했을 것이다. 어느 날 ‘두목’이라 칭해지는 바실의 꿈에 조르바가 나타난다. 그때부터알수없는 열정에 휩싸여 두목은 미친 듯이 글쓰기에 몰입한다. 그것은 이전에마주했던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온몸에서 솟구치는 기(氣)와 같은 에너지의유동적흐름이었다. 조르바에 대한 글이 마무리될 무렵 조르바의 죽음을 알리는엽서가도착한다. 두 개의 포물선, 즉 조르바의 육신과 두목의 정신이 마침내 하나로융합된것이다. 육신이 말이 되고 텍스트가 되는 과정, 그것이 그리스인 조르바의기본줄거리였다. 텍스트의 탄생 과정이 ‘텍스트’가 된 셈이다. 장자의 「내편」에 나오는 우화 중에 조르바의 ‘죽음’에 대한 고찰을잘나타내는 부분이 있다. 조르바가 두목이 된 것인가, 두목이 조르바가 된 것인가! 이대목은 장주가 꿈속에서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꿈속에서 장주가 된것인지알수가 없다는 부분과 묘하게 중첩된다. 장자와 그리스인 조르바에 각각나타난‘나비의 꿈’과 ‘나비의 죽음’에 관한 교차점을 ‘만물의 조화’와 ‘원초적자연’으로접근하여 아래와 같이 기술하였다.

옛날에 장주(莊周)가 꿈에 나비가 되었다. 나비가 된 그는 훨훨 날아다녔다. 장주 자신은 즐겁게 느꼈어도 자신이 장주임을 알지 못하였다. 갑자기 꿈에서 깨어나니 분명 자신은 장주였다. 그러니 장주가 꿈속에서 나비가 되었던 것인지 나비가 꿈속에서 장주가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장주와 나비는 필시 분별이 있으며 이러한 것을 칭하여 ‘만물의 조화’라 한다. (장자 제2편 「제물론」 제6장98-99)昔者莊周夢爲胡蝶, 栩栩然胡蝶也. 自喩適志與, 不知周也. 俄然覺, 則蘧蘧然周也. 不知周之夢爲胡蝶與, 胡蝶之夢爲周與. 周與胡蝶, 則必有分矣. 此之謂物化. (장자 제2편 「제물론」 제6장)

자연을 거스르면 혼돈과 죽음을 맞이한다. 혼돈에 인위적인 구멍을 뚫는 것은 분별심을 가져와 자연 그대로의 원초적인 하나가 깨지게 된다. 번데기에서나비가되는 것조차 우주의 변수가 맞아야 가능한 일이고 태양, 온도, 습도, 양분, 바람등대자연의 법칙을 따라야 한다. 카잔차키스는 ‘나비의 죽음’을 지켜보며자연의섭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통찰하고 있다.

나는 어느 날 아침에 본, 나뭇등걸에 붙어있던 나비의 번데기를 떠올렸다. 나비는번데기에다 구멍을 뚫고 나올 채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잠시 기다렸지만오래걸릴 것 같아 견딜 수 없었다. 나는 몸을 굽혀 입김으로 데워 주었다. 열심히데워준 덕분에 기적은 일어나야 할 속도보다 빠른 속도로 내 눈앞에서 일어나기시작했다. 집이 열리면서 나비가 천천히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이어진 순간의공포는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나비의 날개가 도로 접히더니 쪼그라들고 말았다. 가엾은 나비는 그 날개를 펴려고 안간힘을 썼다. 나는 내 입김으로 나비를 도우려고했으나 허사였다. 번데기에서 나오는 과정은 참을성 있게 이루어져야 했고, 날개를펴는 과정은 햇빛을 받으며 서서히 진행되어야 했다. 그러나 때늦은 다음이었다. 내입김은 때가 되기도 전에 나비를 날개가 온통 구겨진 채 집을 나서게 강요한것이었다. 나비는 필사적으로 몸을 떨었으나 몇 초 뒤 내 손바닥 위에서 죽고말았다. 나는 나비의 가녀린 시체만큼 내 양심을 무겁게 짓누른 것은 없었다고생각한다. 오늘날에야 나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죄악인가를깨닫는다. 서둘지 말고, 안달을 부리지도 말고, 이 영원한 리듬에 충실하게 따라야한다는것을 안다. 나는 바위 위에 앉아 새해 아침의 생각에 빠져들었다. 아, 그 작은 나비가항상내앞에서 퍼득이며 나의 길을 깨닫게 해줄 수 있기를. (그리스인 조르바 177-78)

V. “겉이 부족한 애태타의 현명한 속귀”를 닮은 조르바

말을 들어주는 귀란, 화이불창(和而不唱)21하는 애태타(哀駘它)의 귀를의미한다.

21 화합은 하나 주장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남의 주장에는 찬성하나 자기의 의견은 적극적으로주장하지 않는 태도를 의미한다. 이는 조화롭게 살면서도 자기를 고집하지 않음을 이르는말이다.

장자의 「덕충부(德充符)」 편에서 애태타를 소개하며 다음과 같이기술하고 있다.

애태타(哀駘它)라는 이름은 슬플 정도로 등이 낙타처럼 구부러진 사내라는뜻이다. 애태타는 천하의 추남이다. 말을 잘하는 것도 아니다. 권세가 있는 것도아니고부자도 아니다. 그런데 이 사람 곁에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떠나지 않는다. (……) 애태타는 자기 뜻을 내세워 표나게 주장하는 일이 없고, 그저 사람들에게동조할뿐이라고 했다. 애태타는 마치 빈 배와 같이 흐르는 물을 타고 흘러가는 사람이다. 자기를 비우니 마음이 평화롭고 그 곁에 가면 고요와 평화가 연꽃이나 된듯그윽한향기를 뿜어내는 것이다. (장석주 258)

장자는 세속 인간들의 형해(形骸), 즉 육체적 조건에 대한 집착을 타파하고참다운 덕(德)은 형상(形象)을 초월한 높은 내면성(內面性)에 있음을직언한다. 제4장에서는 곱사등이 애태타를 ‘절대자’로 묘사하고 그의 입을 빌어 다음과같이통찰한다.

혹은 생(生)하고 혹은 사(死)하고 혹은 길이 존재하고 혹은 망(亡)하는인간사회의 천변만화가 모두 ‘事之變(사지변), 命之行(명지행)’ 곧 만상의 끊임없는변화, 운명의 유전에 지나지 않는다. (장자의 「덕충부(德充符)」 제4장)

장자는 이와같이 시시각각 멈춤이 없는 일체만상(一切萬象)의 변화, 운명의유전(流轉)은 밤낮으로 나타나 멈춤이 없고, 인간의 인식능력으로는 그것을규명하기가 어려워서 그러한 현상은 변화 그대로에 맡겨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장자가 말하는 ‘절대자’는 형상을 초월하여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실재에 자신을맡겨 그것과 일체가 되는 이유로 만상의 변화와 유전조차 마음의 평안을 어지럽히지못한다고 통찰한다. 또한, 장자는 일반적으로 여기는 합리적인 사고의 틀을 깨는 우화로수많은교훈을 준다.

턱이 배꼽에 붙어있고, 어깨가 정수리보다 높이 올라가 붙은 지리소(支離疏), 절름발이, 언청이, 앉은뱅이, 곱사등이 등 쓸모없는 사람은 성인이요, 요(堯) 임금이나 순(舜) 임금, 그리고 공자와 같은 성인은 모두 쓸모없는인간이어서옳고 그름을 따지며 선악을 구분하고 인(仁)과 의(義)를 가르치며 온갖괴상한속임수로 명성을 얻으려는 무리라고 말한다(송항룡 295).

「덕충부」 제4장의 절대자인 애태타는 권세가 없고, 이익이나 재산이 없으며매력적인 외모가 없고, 뛰어난 언변과 지적인 능력조차 없다(一無權勢二無利祿三無色貌 四無言說 五無知慮). 그러나 이러한 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수많은 남녀들이 그에게 모여들 정도로 감화력(感化力)과 덕화력(德化力)은위대하다. 심지어 그를 본 여자들은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느니 그의 첩이라도 되겠다고부모를 졸랐다고 한다. 애태타는 ‘나’라는 자의식에서 온전히 벗어난 상태, 즉 물같은 사람이었다. 밥그릇에 담기면 밥그릇 모양, 접시에 담기면 접시 모양, 추운 날이면 얼음이되고더운 날이면 수증기가 되는 그런 사람이었다. 「제물론」에서 말하는 애태타는양행(兩行), 즉 양방향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으로 묘사된다. 이것도, 저것도 모두 포용해 감싸 안는 그런 사람이다. 그렇다고 해서 애태타가매사에우유부단하고 결단력이 없는 사람은 아니다. 노(魯)나라의 군주 애공(哀公)이애태타를 신임하여 재상 자리를 맡겼을 때는 곧장 떠나 실행에 옮기는 인물이다. 또한, 애태타는 ‘자신의 재질을 온전히 하면서도 그 덕이 밖으로 드러나지않는 사람’이어서 안팎으로 시원하게 트인, 조화로우면서도 언제나 평정을지키는현명한 사람이다. 그러면서 봄날처럼 따뜻하고 부드러워 마음마저 고요해가볍게흔들리지 않았고 그 깊이와 넓이를 헤아릴 수 없었던 에게해의 조르바 같았던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자의식에서 벗어난 물같은 사람, 애태타는 바로 조르바를 떠올릴 수있게한 다.

카잔차키스가 묘사하는 애태타를 닮은 조르바는 그의 작품 곳곳의대화와독백에서, 혼자만의 사유에서 인간의 욕망을 드러낸다. 아래 기술하는 대목은자의식에서 벗어난 애태타와 닮은 조르바의 일면을 극명하게 잘 보여주고 있다. 화이불창, 절대자, 초월, 에로스, 로고스 등의 이미지 형성은 조르바를 통해 카잔차키스의내면에서 이미 오래전에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식욕과 성욕과 같은원초적욕망이 부정적으로만 치부되어서는 안된다.

이 두 가지는 삶을 이어가고지속시켜나가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동력이며 그것이야말로 인간 본연의 에로스이다. 이욕망이 과잉으로 치닫지 않고, 진정한 삶의 동력으로 작용하고 자유로 이어지기위해서는 내면의 로고스를 만나야 한다. 진정한 욕망의 대면은 에로스와로고스의향연이 되어 나타난다.

한 번에 한 가지씩만 생각하자고요. 밥이 앞에 있으면 밥에 정신을 쏟고내일우리앞에 우리들의 갈탄이 있을 땐 갈탄에 정신을 쏟읍시다, 일을 어정쩡하게하지맙시다. 알겠죠? (그리스인 조르바: 알렉시스 조르바의 삶과 행적22 70)

22 V장의 인용은 그리스인 조르바: 알렉시스 조르바의 삶과 행적. 2010 문학과 지성사. 유재원 역. 으로부터 옮겨왔다.

나는 늦게까지 잠을 잘 수 없었다. 내 삶은 실패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펀지하나를들고 그동안 읽어왔던 모든 것을, 보고 들어왔던 모든 것을 비워버리고조르바의학교로 돌아가 위대하고 진정한 알파벳을 다시 배울 수만 있다면! 그렇다면나는전혀 다른 길로 걸었을 것이다! ⋯ 나는 그가 부러웠다. 나는 생각했다. ‘저사람은진리를 발견했다. 저 사람이 바로 길이다! 먼 옛날 창세기 시절 조르바는앞장서서도끼로 길을 열던 부족장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영주들의 성을 돌아다니며영주와하인, 귀부인들까지 모두 자신의 두꺼운 입술에 목매게 하는 유명한 음유시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스인 조르바: 알렉시스 조르바의 삶과 행적 138-39)

카잔차키스가 그리스인 조르바를 집필할 무렵, 만약 장자를 읽어본적이있었다면 위 대목에서 분명히 애태타를 떠올리며 조르바를 묘사했을 것이다. 앞서언급한 장자의 「덕충부(德充符)」 편에 등장하는 애태타의 모습과 아주흡사한비유라고 할 수 있다.

“비가 오면 마음이 우울해지죠.” 조르바가 말했다. “그러니 비에 신경 쓰지말아야해요.” 그는 담장 아래쪽으로 몸을 굽혀 갓 피어난 야생 수선화를 꺾어서는마치수선화를 처음 보는 것처럼 한참 동안이나 탐욕스럽게 살펴봤다. 그러고는눈을지그시 감고 냄새를 맡다가 한숨을 쉬더니, 내게 그 수선화를 건넸다. “대장, 사람들이 돌과 꽃, 그리고 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소? 아마도 모든 자연이 우리에게 소리를 치는데도 우리가 알아듣지 못하는 게아닐까요? (171)

대장, 내가 대장한테 한번 이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죠? 각자가 자기만의천국을가지고 있다고요. 대장의 천국에는 수많은 책과 아주 커다란 꿀단지가 있을거고, 다른 사람의 천국에는 포도주와 우조, 코냑 통들이 있을 테고, 또 다른 사람의천국에는 영국 금화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겠죠. 내 천국은, 색 색깔의 치마와 향수비누, 스프링 박힌 더블 침대, 그리고 내 옆에 암컷 하나가 있는 이 향수 냄새가물씬나는 조그만 방, 바로 여기죠. (267)

“모든 건 생각하기 나름이죠.” 그가 말했다. “믿음이 있다면 다 망가진 문짝의나뭇조각이 성스러운 십자가 조각이 되죠. 믿음이 없으면 성스러운 십자가 전체라도망가진 문짝이 되고요.” (287)

장자에서 애태타는 밥그릇에 담기면 밥그릇 모양, 접시에 담기면접시모양이 되는 물같은 사람이며 봄날처럼 따뜻하고 부드러워 마음마저 고요해가볍게흔들리지 않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위의 세 대목 역시 조르바와 애태타가겹치고있음을 알 수 있다. 수선화, 돌, 꽃, 그리고 비를 느끼는 봄날 같은 조르바의마음과자기만의 천국은 저마다 다르다는 판단은 물같은 사람을 비유하기에 적절한대목이다. 조르바와의 생활은 내 가슴을 넓혀주었고, 그의 말 몇 마디는 복잡하기 이를데없는 내 고민에 절대적인 해법을 제시해줌으로써 내 정신을 평화롭게 만들어주었다. 이 사람은 절대로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직감과 매의 눈 같은 원초적인눈으로힘들이지 않고 지름길을 달려 노력의 정상에 우뚝 서는 ‘무위의 경지’를 보여주었다. (507)

이 대목은 장자가 말하는 ‘이상적 인간상’이 현현된 것을 보여준다. 형상을초월하여 변화하는 실재와 하나가 되어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는 절대자로서의애태타를 표현한 부분이다.

VI. 결론

인간의 자유와 행복에 대한 고찰을 한 작품이라는 평가가 우세한카잔차키스의 문학세계를 본 연구는 유가사상 특히 장자에 나오는 우화와 철학을바탕으로 그리스인 조르바를 심층적으로 분석하였다. 본 논문은 소요유(逍遙遊)의 자유정신을 중심으로 그리스인 조르바에나타난 조르바와 장자가 말하는 애태타가 삶을 마주하는 자세를 비교하는것에의의를 두고자 한다. 카잔차키스의 인생관과 세계관에 위대한 영향을 끼친조르바의삶은 방종한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조르바의 지향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는 ‘이상향’이라고 생각하는 누구나 머물고 싶은 곳, 살고 싶은곳을전생애에 걸쳐 계획하고 꿈을 꾼다. 이상향은 현실에 대한 인식과 비판에서출발한보다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이자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조르바에게‘인간’이란 그런 존재, 곧 ‘자유인’인 것이다.

끝으로 자의식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조르바와 애태타가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덧붙인다.

절망 앞에서도 춤을 추는 조르바처럼 애태타도 조건에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

세상의 이치를 상대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며 세계를포용하는 그들은 물 같고 바람 같았으니, 이 두 사람은 장자와 카잔차키스의 페르소나였다.

주제어: 자유, 소요유(逍遙遊),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장자, 애태타(哀駘它), 페르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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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A Study of the Life of Kazantzakis and Chuangzi in Zorba the Greek: with Particular Reference to the Liberal Spirits of Soyoyu(逍遙遊)

Jihee Kim (Kyungpook National U)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compare the philosophical meanings of ‘liberty’ and ‘Soyoyu(逍遙遊)’ mentioned in the novel Zorba the Greek and the Chinese writer of classical literature, Zhuangzi. The life and philosophy of Nikos Kazantzakis are explained in the novel through the central figure of Zorba. First of all, through the classic work of Zhuangzi, this paper examines the meaning of liberty in the oriental sense. Then it looks at the various other meanings and terms for ‘liberty’ in Eastern and Western contexts. Next, the meaning of liberty of Zorba in Zorba the Greek and the free spirit of ‘Eteta(哀駘它)’ in Zhuangzi, that is, ‘Soyoyu(逍遙遊), are compared, with a robust explanation of the two. In addition, in order to fully examine the sense of time, Biyubimu(非有非無), which is the philosophical understanding that there is neither existence nor nonexistence is briefly discussed. Along with this philosophical point of view, Kazantzakis’ perspective, that is, “I am the starting point of an infinite past and future, only the present is here” is looked at. Finally, Zorba and Eteta, owners of liberal spirits who are free from self-consciousness, constitute a posture of facing life. Like Zorba, who dances in the face of despair, Eteta is never swayed by external conditions. Looking at the reason of the world from a relative perspective and embracing the world, they were all like water and wind, so these two elements represent Zhuangzi and Kazantzakis’ personae.

 

Key Words: liberty, Soyoyu(逍遙遊), Zorba the Greek, Nikos Kazantzakis, Zhuangzi, Eteta(哀駘它), persona

 

Reviewed: Dec 06, 2022 / Accepted: Dec 08,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