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1. 들어가며
2. 일본 한류 붐의 흐름 ─<겨울연가>에서 『82년생, 김지영』까지
3. 일본 문단의 페미니즘 담론 ─90년대 여성작가 붐, 그 이후
4. 현대 한국 여성 문학 ─일상성의 직설적 표현
5. 맺으며
1. 들어가며
최근 한국 작가 손원평의 소설 『서른의 반격』 일본어판이 일본 제19회 서 점대상 번역소설 부문 1위를 차지했다. 2012년부터 실시된 번역소설 부문에서, 송원편은 2020년 소설『아몬드』로 아시아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수상한데 이 어 이번에 2번째로 수상하게 되었다. 이로써 현재 일본에서 한국문학 작품의 위상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불과 2016년만 하더라도 일본에서 출간된 한국 소설은 20편도 채 안 되었고, 출판업계에서 한국문학을 둘러싼 상황은 비교적 메이저인 미국문학이 나 프랑스문학에 비해 훨씬 어려웠다. 이러한 상황은 2018년 12월,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지쿠마 쇼보, 사이토 마리코 역, 이하 『김지영』으로 표기)의 번역판이 출판되고 대히트를 기록하며 바뀌게 된다. 4000부에 불과했 던 초판 부수는 인기를 얻으며 현재까지 일본에서 18만부 이상이 판매되었고, 정유미와 공유의 출연으로 영화화되어 일본에서도 2020년 10월 9일부터 전국 로드쇼가 진행되는 등 이른바 ‘김지영 현상’을 불러일으키며 『김지영』은 한 국문학의 인기의 선봉에 서고 있다. 『김지영』을 필두로『현남오빠에게』(조 남주 외, 하쿠스이샤),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이민경, 타바 북스), 『피프 티 피플』(정세랑, 아키 쇼보) 등 한국의 소설, 에세이가 잇달아 번역되며 소비 되고 있는데, 그 특징 중 하나가 현대의 한국 여성 작가들의 작품이 두드러지 고 있다는 것이다. “극히 평범한 여성의 이야기. 여성으로 태어나 가부장제 아래 살아온 모두의 이야기. 이 책을 읽고 공감 못할 여자는 없을 것이다. 꼭 읽어보시길”, “나라 가, 언어가, 문화가 달라도 많은 나라는 남성을 중심으로 세워졌다. 그래서 세 계 여성들은 이 책을 읽고 공감대를 얻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아마존 재팬의 『김지영』 감상평1)에서 알 수 있듯이 많은 일본인이, 특히 여성들이 인생에 서 만나는 어려움, 차별을 그리는 현대 한국 여성 문학에 절대적인 공감하면서 김지영이라는 사회현상에 동조하고 있으며, 일본의 영화 예고편에서도 사회현 상을 낳은 작품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우에타니 가요(上谷香陽)는 『김지영』의 인기와 관련하여 이는 한국사회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세계 어디서든 공통하는 세계성을 갖고 있다고 말하며 한 국의 남권사회, 남존여비 사상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며, 임신한 여성이 자리 를 양보받는 것이 ‘특권’으로 비추는 일본에서도 동일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고 말한다2).
1) 아마존 재팬 리뷰 https://www.amazon.co.jp/82%E5%B9%B4%E7%94%9F%E3%81%BE%E3%82% 8C%E3%80%81%E3%82%AD%E3%83%A0%E3%83%BB%E3%82%B8%E3%83%A8%E3%83%B3 -%E5%8D%98%E8%A1%8C%E6%9C%AC-%E3%83%81%E3%83%A7%E3%83%BB%E3%83%8 A%E3%83%A0%E3%82%B8%E3%83%A5/product-reviews/4480832114/ref=cm_cr_dp_d_show_all_ btm?ie=UTF8&reviewerType=all_reviews(검색일: 2022.12.28.)
2) 上谷香陽(2021)「「女性の経験」と知識の社会的組織化─ドロシー・スミスのIEに依拠した『82年生まれ、キ ム・ジヨン』の読解(1)」『文教大学国際学部紀要』32(1)、文教大学、pp.1-19.
박재영은 『김지영』이 그리는 여성들이 겪는 일상의 평범한 고 통이야말로 현대사회에서 신음하는 여성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고 보고 있 다. 주인공의 남편을 제외한 남성 등장인물에 이름을 부여하지 않는─이는 남 성사회에서 주로 사용해온 수법으로 여성의 이름을 제시하는 대신 누구의 부 인 누구의 엄마로서 서술되는 경우가 많았다─ 작가의 의도에서 통렬한 비판을 구사하는 유연한 아이디어에 주목한다3). 또한, 도요자키 유미(豊崎由美)는 한국문학에서 여성들의 절실한 목소리가 전해진다고 말하며 『김지영』은 특 히 공감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나도 나의 경험을 말해야겠다는 능동적인 공 감을 하게 하는 작품이라고 분석하며 김지영 현상을 논하며, 그 수용 양상에 주목한다4). 여성문제를 그리고 있는 작품인 만큼 『김지영』과 관련된 연구는 젠더적 관점에서 논하는 것이 대부분으로 현대 한국문학 붐과 함께 페미니즘 운동의 실용서로서 『김지영』을 위치시킨다5)
3) 朴才暎(2019)「小説『82年生まれ、キム・ジヨン』現象が見せた、女性解放の新時代」『抗路』6、抗路舎、 pp.108-113.
4) 豊崎由美(2019)「切実な声を届ける、韓国文学の潮流─チョ・ナムジュ著、斎藤真理子訳『82年生まれ、キム・ ジヨン』」『こころ』48、平凡社、pp.146-149.
5) 江南亜美子(2019)「覚醒せよ、と小説は言った─現代韓国文学のブームに寄せて」『すばる』41(5)、集英 社、pp.176-186; 金ヨンロン(2020)「現代韓国文学とフェミニズム」『昭和文学研究』81、日本近代文学 会、 pp. 222-225; 福島みのり(2020)「日本社会における『82年生まれ、キム・ジヨン』の受容―日本の女性 は自らの生をどう言語化したのか」『常葉大学外国語学部紀要』36、常葉大学外国語学部、pp.1-18 등이 있다.
. 일본에서 현대의 한국문학, 특히 페미니즘 문학이 이처럼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의문에서 출발한 본 연구는 일본에서 현대 한국 여성 문학의 인기 요인을 한류 붐의 흐름 속에서, 일본 문단의 페미니즘 담론 속에서, 그리 고 현대 한국 여성 문학의 특징 속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이는 일본 내 한국문 학에 대한 인기는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축적된 여러 담론 속에 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나타난 현상이기 때문이다.
2. 일본 한류 붐의 흐름 ─<겨울연가>에서『82년생, 김지영』까지
먼저, 일본의 한류 붐의 흐름 속에서 한국문학의 인기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 다. 연일 한일관계가 사상 최악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악화일로를 달리지만, 전례 없는 한류 붐이 일본에 부는 것 또한 사실이다. 2001년쯤부터 등장하기 시작하는 ‘한류(韓流, Hallyu, the Korean Wave)’라는 용어는, 중국, 일본, 대 만, 필리핀, 베트남 등 아시아 현지인들이 한국의 가요, TV 드라마, 영화 등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과 선호가 증가하는 사회문화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대중문화의 선호 단계를 넘어 한국의 음식, 패션, 스포츠 등 한국인의 생활양식 전반의 선호로 확대되어 왔다6). 일본에서의 한류 현상은 2003년 드라마 <겨울연가>의 인기와 함께 한국의 대중문화가 일본 내에서 문화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얻으면서 발생한 문화적 현 상이다. 이른바 1차 한류 붐이 이것으로 당시의 한류 붐은 중장년층 여성들이 주축이었고 한국 여행이 인기였다. <겨울연가>가 이렇듯 한류 붐을 일으킨 근 본적인 배경에는 노스텔지어의 감성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는 데7), 중장년층 여성을 주축으로 드라마 속 순수한 사랑을 노스텔지어의 감성 으로 치환함으로써 한류드라마를 높이 평가하는 것이었다.
6) 강철근(2006)『(한류 전문가 강철근의) 한류 이야기』이채, p.102; 이규현·김경진(2014)「한국 문화 와 행동경제학 연구」『문화산업연구』14(1), 한국문화산업학회, pp.91-100.
7) 조규헌(2019)「3, 4차 일본 한류 현상의 특수성 고찰」『일본문화연구』77, 동아시아일본학회, pp.3 01-302.
<겨울연가>는 남자 주인공 배용준을 한류스타로 등극시켰으며, 일본의 주부들을 대중문화의 소비 주체로 만들었다. 2010년 초, 보아를 시작으로 동방신기, 소녀시대 등 한국 아이돌 그룹이 일 본에 진출하면서 2차 한류 붐이 시작된다. 이들은 모두 한국에서의 인기를 배 경으로 한 것이 아니라, 일본 대형 음반사의 협력을 얻어 현지화 전략으로 성 공한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를 계기로 한국과 한국문화에 대한 관 심이 높아지며 일본 도쿄의 한인 타운 신오쿠보(新大久保)는 아이돌 굿즈 판 매점이나 한국음식점이 늘어나 1, 2차 한류 붐과 함께 일본인들이 찾는 곳이 되었다. 2017년경부터 시작된 일본의 3차 한류는 특히 ‘일본의 젊은 세대들이 주 소 비층’으로 떠올랐다는 점이 특징인데, 10∼20대 여성을 중심으로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SNS를 통해 K-Pop, 뷰티 콘텐츠, 먹방 등의 한류 정보를 습득하고 공유하면서 인기가 확장되어 간다. 특히 BTS(방탄소년단)의 인기가 한류 열풍 을 이끌었다고 할 수 있다. 해외 음반 수출, 해외 공연, 굿즈 판매 등을 포함한 K-Pop의 해외 매출 대부분을 일본이 차지하고 있는데, 트와이스나 블랙핑크 의 노래를 듣고 ‘우울증이 나았다’, BTS의 노랫말을 인용하며 ‘내 자신을 소중 히 해야겠다’라고 말하는 SNS에 등장하는 글귀에서 이들의 영향력을 엿볼 수있다. 일본 4차 한류는 넷플릭스, 틱톡, V-Live, 트위터 등 다양한 미디어가 한류 확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그중에서도 넷플릭스에서 한국 드라마가 폭발적 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2021년 11월 일본 넷플릭스 Top10에는 한국 드라마 가 다수 올라와 있고, <사랑의 불시착>(2019∼2020), <이태원 클라스>(2020) 가 여전히 상위에 랭크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한국의 인기 드라마 속에서 여성 캐릭터는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태도로 묘사되는데, 특히 <사랑의 불시착>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윤세리)가 자수성가한 CEO이고 북한이라는 이질적인 곳에서도 전혀 무서워하는 기색 없이 당당하게 행동하는 모습과 자 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태도에 일본(의 특히 여성) 시청자들은 상당한 충격 과 신선함을 느꼈다고 한다8). 실제로 이러한 설정에 착목한 논문들도 많이 등 장했다. 일본 근대문학 연구자 하세가와 게이(長谷川啓)는 ‘한류와 페미니즘’, ‘한류 서브컬쳐와 여성’이라는 주제로 연구를 진행하는데, 그는 2000년대 초기 부터 지금까지의 한국 드라마의 흐름을 보면 한국사회의 변화와 정확히 일치 한다며 나날이 높아지고 있는 여권 신장의 움직임에 콘텐츠 창작자들이 민감 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지적한다9). 이러한 한류10)의 연장선상으로 한국문학이 일본에서 큰 관심을 받게 되는 데, 그동안 한국 드라마와 K-Pop을 접하면서 한국 문화에 자연스레 스며들어 한국문학을 찾는 일본인이 는 것이다.
8) 梅田恵子(2022)「2年間トップ10入り「愛の不時着」日本のドラマにない4つの魅力/ダメ推し解説」『日刊 スポーツ』2022.03.27. https://www.nikkansports.com/entertainment/column/umeda/news/202203260 000483.html (검색일: 2023.01.07.), modelpress編集部(2020)「「愛の不時着」人気爆発はなぜ?心鷲掴 まれる“5つのポイント”とは」『モデルプレス』2020.04.29. https://mdpr.jp/k-enta/detail/2051430 (검색일: 2023.01.05.) 등. 9) 長谷川啓(2013)「韓流とフェミニズム」『城西短期大学紀要』30(1)、城西短期大学、pp.1-17. 그 외에도 西森路代(2020)「ジェンダーから見る韓流ドラマの女性たち」『女性のひろば』499、日本共産党中央委員 会、pp110-113 등의 논문에서 여성 캐릭터에 주목하고 있다.
10) 한류를 5,6차 혹은 11차까지로 세분화하여 논하는 연구가 있지만, 이는 정태일, 김연회(2022)「글 로벌 사회에서 K-콘텐츠의 분석: 호감도와 접촉경로를 중심으로」(『한국과 세계』4(5), 한국국회 학회, pp.37-66)와 같이 주로 콘텐츠 분석을 그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본 논문에서는 본 문에서 언급한 선행논문에서 주로 따르는 4차로 한류를 구분하여 서술하였다.
대표적인 예로, 『나는 나로 살기로 했 다』는 BTS의 멤버 정국이 읽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본에서 인기를 얻 었고 2019년 7월 아마존 재팬에서 에세이 분야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으며, 20 20년에까지 인기가 지속되어 연속 2년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한류의 중심인 BTS가 읽었다는 사실이 판매 증가로 이어져 한국문학 또한 자연스레 소비되고 있는 것이다. 즉, 드라마, 아이돌 등 한국의 콘텐츠, 대중문화 영역에서의 한류 의 인기가 한국문학의 인기로 이어져 그 영향력이 출판업계에까지 미치며, 이 제는 오히려 한국문학이 한류의 새로운 시장을 선도하며 문학 한류를 입증하 고 있다. 2016년에는 한강의 『채식주의자』(2007)가 영국 맨 부커상을, 2021년에는 윤고은의 『밤의 여행자들』(2013)이 영국 대거상을 수상하였으며, 앞서 서술 한 손원평 작품의 일본 번역상 수상 등 한국문학은 세계의 귄위적인 문학상을 잇달아 수상하며 신한류의 길을 열고 있으며, 일본에서 한국문학은 앞다투어 번역되어 소개된다. 그리하여 2015년, 박민규의 소설 『카스테라』(2005)가 제 1회 일본번역대상을 수상하였고, 2018년에는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20 13)이 제4회, 2022년에는 김소연 시인의 『한 글자 사전』(2008)이 제8회 일본 번역대상을 수상한다. 오랫동안 일본에서 외면받아온 외국문학 중 하나였던 한 국문학이 잇따라 번역대상을 수상하며 소비되는 것은 한국문학 붐으로 이어진 한류의 영향력이 지대함은 부정할 수 없음이다. 최근 5년간 해외에서 가장 많 이 팔린 『김지영』은 문학 한류에서 중요한 작품으로 일본에서도 영화 <김지 영>과 함께 여전히 큰 인기를 얻고 있는데, 드라마, 영화 등 한국의 문화 콘텐 츠의 인기와 함께 한국문학의 소비는 상호작용하며 한류의 인기를 이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 일본 문단의 페미니즘 담론 ─90년대 여성작가 붐, 그 이후
앞에서 한국문학의 인기를 일본 내 한류의 흐름 속에서 알아보았다. <겨울 연가>로 시작된 한류는 K-pop, 한국 드라마에 이어 한국문학에까지 그 인기 가 이어지고 있는데, 일본 계간지 『문예(文藝)』는 2019년 가을호에 한・일 작가 10명의 이야기를 담은 「한국・페미니즘・일본」특집을 냈다. 이 책은 창 간 86년 만에 처음으로 3쇄를 찍는 기록을 세우며 일본에서 한국문학에 대한 열기를 보여준다. 김지영 현상을 주도한 『김지영』의 히트에 더불어 일본에서는 조남주 작가를 초청하여 토크 이벤트를 열거나 각종 뉴스, 신문 등의 미디 어에서 대대적으로 한국문학의 인기에 대해 보도하고, 한국의 페미니즘 현상에 주목한다. 2019년 2월 열린 토크 이벤트에서 조남주가 “일본에선 남편을 주인님(ご主 人)이라고 부른다고요? 지금도 그렇다고요?”라고 하자,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고 한다. 함께 했던 여성 작가 가와가미 미에코(川上未映子)는 “주인님 이라는 호칭 대신 남편의 이름을 부르자는 칼럼을 썼다가 많은 공격을 받았 다”는 일화를 털어놓으며, “남편을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건 전통도 아니고 단 지 여성과 남성을 주종관계로 보는 것인데, 이런 호칭들이 일본 사회의식을 컨 트롤 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일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현재까지도 만연한 가부장적 분위기 속에서 살아가는 일본 여성들이 남녀의 비대칭적인 관계에 이 의를 제기하는 한국문학에 주목하는 것이다. 일본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김지영』,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최근 수상한 『서른의 반격』의 주인공은 모두 여성이다. 이들 작품은 주인공인 여 성을 내세워 지금까지 사회에 퍼져있는 남녀의 성 역할에 의문을 제기한다. 『김지영』은 주인공 김지영을 통해 여자라서 당한 부당함을 드러내고,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서른의 반격』 역시 부조리한 현실에서 여성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보여준다는 면에서 페미니즘 문학으로 볼 수 있다. 『김지 영』의 아마존 재팬 리뷰 중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여성이 인생에서 조금씩 느껴 온 위화감을 저자가 정리해 주는 것으로, 그래요, 사실은 참지 않아도 괜 찮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그것은 향후의 자신에게도, 아이에게도 새로 운 가능성을 느끼게 해줍니다11).” 이렇듯 한국문학은 국경을 넘어 일본의 많은 이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한국 여성 문학의 인기에 대해 동양경제(東洋経済)는 “일본에는 유감스럽게 도 페미니즘 문학이라고 이름 붙인 작품들이 없었다”며 “최근 일어난 성차별 과 성희롱 문제로 일본에서도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남녀 문제 에 대한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한국문학을 찾고 있다”12)고 분석했다.
11) 아마존 재팬 리뷰 https://www.amazon.co.jp/82%E5%B9%B4%E7%94%9F%E3%81%BE%E3%8 2%8C%E3%80%81%E3%82%AD%E3%83%A0%E3%83%BB%E3%82%B8%E3%83%A8%E3%83% B3-%E5%8D%98%E8%A1%8C%E6%9C%AC-%E3%83%81%E3%83%A7%E3%83%BB%E3%83% 8A%E3%83%A0%E3%82%B8%E3%83%A5/product-reviews/4480832114/ref=cm_cr_arp_d_viewopt _srt?ie=UTF8&reviewerType=all_reviews&sortBy=recent&pageNumber=1(검색일: 2022.12.08.)
12)『東洋経済』、2019.12.30.
특히, 2018년 여름에 문제가 된 도쿄의대 여성 응시자에 대한 점수 조작 문제를 한 국 여성 문학 붐의 가장 큰 배경으로 지적한다. 『김지영』이 나올 무렵 도쿄 의대와 관련해 준텐도의 기자회견이 겹쳐져 SNS가 시끄러워졌고, 『김지영』 을 편집해서 간행하는 동안 자꾸 일본의 성차별 문제가 노출되었다고 말한 다13). 앞에서 언급된 일본의 여성문제 사건에 대해 간략히 서술하면, 먼저 2017년 이토 시오리(伊藤詩織) 성폭력 피해 고발 사건을 들 수 있다. 저널리스트 이토 시오리는 전 TBS 워싱턴 지국장 야마구치 다카유키(山口敬之)에게 당한 성폭 력 피해와 그 형사고발의 불기소처분 사실을 공표하며 일본의 ‘Me Too’ 운동 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 후 많은 여성들이 목소리를 높이면서 성폭력에 대한 사회의 의식이 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2018년 의학부 부정 입시 사건이 바 로 『김지영』의 번역본이 나올 무렵의 사건이다. 2018년 8월 도쿄의과대학(東 京医科大学)이 여성에 대해 일률적으로 감점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내부 조 사하여 결과를 공표하였는데, 그 후 후생노동성이 전국 81개 대학을 조사한 결 과 복수의 대학이 부적절한 득점 조정을 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일본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정치가의 성차별 발언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데, 「젠더에 관련된 문제 있는 공적 발언 워스트 투표 2021」14)에 따르면, 워스트 1위의 발언은 스기타 미오(杉田水脈, 중의원의원) 의 “여성은 얼마든지 거짓말을 한다(女性はいくらで もウソをつける)”였다. 이는 성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허용할 수 없다는 점, 고통받는 당사자들이 더욱 목소리를 내기 어려워진다는 점 등 성 피해 당사자 나 사회에 미칠 파장을 우려하는 이유 때문이다. 이렇게 끊임없이 여성문제가 언론을 장식하는 때에 본인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김지영』에 많은 여성들은 관심을 가지며 한국문학을 일본 페미니즘 담론에 끌어들이고 있다15).
13) 상동.
14)「ジェンダーに関する問題ある公的発言ワースト投票 2021」(公的発言におけるジェンダー差別を許さない会、2 021.2.26.∼3.5.) https://yurusanai-seisabetsuhatsugen.jimdofree.com (검색일:2022.12.08.)
15) 『김지영』과 관련된 연구는 朴才暎의「小説『82年生まれ、キム・ジヨン』現象が見せた、女性解放の 新時代」(『抗路』6、抗路舎、2019、pp.108-113), 福島みのり의「日本社会における『82年生まれ、キ ム・ジヨン』の受容─日本の女性は自らの生をどう言語化したのか─」(『常葉大学外国語学部紀要』36、常 葉大学外国語学部、2020、pp.1-18)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의 페미니즘 담론과 결부지어 논의되 는 경우가 많다.
현대 한국문학의 인기를 지탱하고 있는 작가들의 대부분은 비교적 젊은 세 대의 여성들이다. 조남주는 1978년생이고 한강도 1970년생, 정세랑은 1984년생 이다. 『김지영』을 번역한 사이토 마리코(斎藤真理子)에 의하면, 70년대 이후 에 태어난 그녀들의 작품의 특징 중 하나는,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를 문학 표 현에 도입하는 교묘함이라고 한다16).
16) 『フォーブス ジャパン』、2020.7.18.
엔터테인먼트나 서브컬쳐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공적인 문제와 대면하고 정치적인 갈등을 통해서 사회로 열어 가는 것을 한국의 페미니즘 문학의 특징으로 주목한다. 한강은 『채식주의자』에서 나무가 되려는 주인공을 그린다. 터무니없는 내용, 트랜디한 제목과 함께 작가 는 가족이라는 굴레 속에서 행해지는 가부장의 폭력에 대한 비판을 그린다. 조 남주는 『사하맨션』(2019)에서 SF적인 요소를 가져와 상상의 도시국가에서 버려진 자들을 그리고, 『김지영』에서는 마치 웹소설이나 장르소설처럼 거칠 면서도 친근한 필체로 독자들이 주인공에게 이입할 수 있게 한다. 외계인과의 러브스토리(『지구에서 한아뿐』, 2012)를 그리는 등 SF를 많이 그리는 정세 랑은 『옥상에서 만나요』(2018)에서 정체불명의 이(異)세계 존재를 남편으로 둔 여성이 직장에서 겪는 부조리한 노동과 성희롱 등을 그린다. 이러한 엔터테 인먼트적인 요소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으며 많은 일본 여성들이 한국문학에 공감하며 사회에 퍼져있는 남녀의 성 역할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듯 여성문제를 그리는 풍조가 일본 문학계에 없었던 것은 아니 다. 이 점과 관련하여 이하에서 여성 작가가 활발히 활동하기 시작한 90년대의 일본 문단의 분위기와 페미니즘 담론에 대해서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1990년대는 세계적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난 시기로 동유럽에 있던 모든 공산 독재 정권들이 몰락하며 40년 이상 지속되었던 냉전체제는 끝을 맺는다. 일본에 서는 1989년에 쇼와(昭和, 1926∼1989) 천황이 죽고 원호가 헤이세이(平成, 1989 ∼2019)로 바뀌며 90년대를 맞이한다. 1960년대 이후 30년간 고도경제성장이라 는 시기를 거치며 급격하게 성장한 일본은 1980년대 오일쇼크 이후 부동산과 주식 투기 열풍이 불게 되었고, 이러한 버블경제는 1985년 엔화 가치가 올라가 면서 경기가 갑작스럽게 침체되며 붕괴되어 1990년부터 하락세로 돌아서며 ‘잃 어버린 10년’이 시작된다. 심각한 경제 불황은 출판계에도 영향을 주어 출판물의 판매량은 1996년을 정점으로 1997년부터 하락하기 시작하여 이후 장기하락이 계속된다. 여성작가들은 이 시기부터 중심 조류를 형성하며 활약하기 시작한다. 그 이유는 먼저 문학계 에서 여성파워의 증가를 들 것이다. 아쿠타가와상17)과 나오키상18)에 처음으로 여성들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것 은 남녀고용기회균등법(1985년 제정, 1986년 시행)이 시행된 이듬해인 1987년으 로, 오랫동안 남성 사회였던 문단에 여성작가들이 각종 문학상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고 문예지의 편집자와 신문의 문예 담당 기자 중에서도 여성의 수가 늘 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여성작가의 수상도 늘어나게 된다. 1996년에는 아쿠타가 와상과 나오키상을 처음으로 여성작가가 모두 독점한다19). 아쿠타가와상 수상 만 보더라도 90년대는 오가와 요코(小川洋子), 다와다 요코(多和田葉子), 가와 카미 히로미(川上弘美) 등 현재도 일선에서 활약하는 작가가 잇따라 수상하고, 2003년 하반기에 와타야 리사(綿矢りさ)와 가네하라 히토미(金原ひとみ)의 최연소 여성작가 동시 수상은 문학사적으로도 사건이었다20). 또한, 이 시기에 문학계에서는 더 이상 쓸 것이 없다고 일컬어져 원래 여성 의 이슈로 치부되었던, 차별과 편견 속에 있었던 가족이나 결혼, 출산을 테마 로 한 소설이 성립해 간다. 유미리(柳美里)가 『풀하우스』21)로 노마 문예 신인 상을 수상한 것이 1996년, 『가족 시네마』22)로 아쿠타가와상 수상은 이듬해인 1997년이다.
두 작품 모두 폭력적이고 지배적인 아버지와 거기에서 벗어난 딸의 관계가 그려진다. 또, 가쿠타 미쓰요(角田光代)는 가족을 테마로 한 소설을 다수 발표하고, 2002년의 『공중정원』23)에서는 이상적인 가족상과 현실의 어느 평범 한 일가를, 남편의 애인까지 포함하는 다(多)시점으로 그려 화제를 모았다.
17)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賞) 상, 통칭 아쿠타가와(芥川) 상은, 예술성에 입각한 한 편의 단편 또는 중편 작품에 주어지는 문학상이다. 문예춘추(文藝春秋) 사내의 일본 문학 진흥회(日本文学振興会)가 전형을 해 상이 수여된다.
18) 나오키 산주고(直木三十五) 상, 통칭 나오키(直木) 상은, 대중성을 억제한 장편소설 작 품 혹은 단편집에 주어지는 문학상이다.
19) 1996년 상반기의 아쿠타가와상은 가와카미 히로미(川上弘美)의 『뱀을 밟다(蹴りたい背中)』(115 회), 나오키상은 노나마 아사(乃南アサ)가 『얼어붙은 송곳니(凍える牙)』(115회)로 수상했다.
20) 2003년 하반기의 아쿠타가와상(130회)은 와타야 리사(綿矢りさ)의 『발로 차주고 싶은 등 짝(蛇を踏む)』, 가네하라 히토미(金原ひとみ)의 『뱀에게 피어싱(蛇にピアス)』이 수상했다.
21) 柳美里(1996)『フルハウス』文藝春秋. 븡괴된 가족의 가장인 아버지가 이상적인 가족을 꿈꾸며 새 집을 짓지만 결국 노숙자 가족을 초대해 함께 살기 시작하는 내용이다.
22) 柳美里(1997)『家族シネマ』講談社.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를 넘는 영화 〈가족 시네마〉에 출 연하게 되어 버린 「나」와 헤어져 있던 가족들의 이야기이다.
23) 角田光代(2002)『空中庭園』文藝春秋. 여럿의 애인을 둔 남편, 계획적으로 임신·결혼한 아내, 얼핏 보기에는 밝고 평범하게 보이는 일가의 빛과 그림자를 그린다.
그때 까지 여성에게 ‘결혼’ 즉, 가족을 이룬다는 것은 파트너 남성과 동거, 상호간의 성 충족, 생식/육아를 의미하였으나, 그녀들은 이러한 가족이라는 체제, 특히 현 재까지도 만연한 가부장적 분위기 속에서 여성들이 직면하는 문제를 그렸다. 하지만 이다 유코(飯田祐子)가 지적하듯이 오랫동안 여성작가는 마이너리티 로서 중심을 지탱하도록 배치되어 왔으며, 문학계에서 여성의 투쟁은 결국 헤 게모니를 탈취하기 위한 투쟁이 될 수 없었고, 단지 동참할 자리를 얻을 수 있 을 뿐이었다24). 즉, 유미리 등의 작품에서 그려진 여성문제는 독자에게 전달될 수 없었고, 전달되었다 하더라도 공감을 얻어 사회문제로서 확산될 기회를 얻 지 못했다. 이는 여성작가들이 처한 현실에서도 그렇지만, 그녀들이 그리는 작 풍이 사실적이지만 현실적이지는 않아 보편성을 얻기 어렵고, 여성이 이야기의 주체로서 드러나지 않음에 기인할 것이다25).
24) 飯田祐子(2020)「文学場における女性作家」『アジア・ジェンダー文化学研究』4、奈良女子大 学アジア・ジェンダー文化学研究センター、pp.11-22.
25) 内藤千珠子(2005)「ほころびる秘密─角田光代『空中庭園』の世界」『文芸』第44巻1号、河出書房新社、 pp.102-105, 康潤伊(2015)「家族の陰に佇む<少女>─柳美里作品における少女表象に関する試論」『早稲田 大学大学院教育学研究科紀要』第23巻1号、早稲田大学大学院教育学研究科、pp.1-13 등 참고.
예를 들면, 유미리의 『가족 시네 마』는 가족의 붕괴를 다루는데, 뿔뿔이 흩어진 가족들이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기 위해 비로소 20년 만에 다시 만난다는 설정 자체에서 대중들에게 보편성 을 얻기는 어려워 보인다. 가쿠다 미쓰요의 『공중정원』 역시 불륜을 일상적 인 것으로 그리고 있어 사실적이지만 현실에 천착한 묘사라고 할 수 없다. 앞 에서 언급한 “일본에는 유감스럽게도 페미니즘 문학이라고 이름 붙인 작품들 이 없었다”는 동양경제의 지적은 바로 이런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 여성문제를 둘러싼 연구는 우에노 치즈코(上野千鶴子)의『내셔널 리즘과 젠더(ナショナリズムとジェンダー)』(青土社、1998)나 『가부장제와 자본주 의(家父長制と資本制)』(昭和堂、2000), 오구라 치카코(小倉千加子)의『젠더의 심리학(ジェンダーの心理学)』(東清和共編 早稲田大学出版部、2000)이나 『페미니 즘(ザ・フェミニズム)』(筑摩書房、2003), 미즈다 노리코(水田宗子)의『21세기의 여성표현(二十世紀の女性表現 ジェンダー文化の外部へ)』(學藝書林、2003) 등 그 상당한 축적이 있고, 앞에서 살펴본 대로 90년대 이후 수많은 여성 작가들에 의해 여성문제가 그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18년 세계 젠더(성) 격차 보고서에서 한국이 전체 149개국 중 115위, 일본이 110위를 기록하였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번역된 『김지영』을 비롯한 한국 여 성 문학은 작품 번역이라는 차원을 넘어서 페미니즘 운동의 실용서로서 작용 하며 현상의 번역으로 의미가 확산된다. 이는 앞에서 언급한 현대 한국문학의 특징, 즉 엔터테인먼트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개인이 겪는 문제를 공적인 문 제로, 사회로 확장해 가는 것과 같은 맥락이며, 일본에서 한국의 페미니즘 문 학에 주목하는 이유일 것이다.
4. 현대 한국 여성 문학 ─일상성의 직설적 표현
앞에서 한국문학의 인기를 일본 문단의 페미니즘 담론 속에서 알아보았다. 현대 한국문학은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를 도입하여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일 본에서 많은 공감을 얻고 있지만, 민주화선언이 발표된 1987년 이전까지 한국 문학은 식민지배나 군사독재 등 민족 이데올로기가 체현된, 이른바 무거운 주 제를 다루는 작품이 많았다. 개인의 삶보다는 민족적, 국가적 이념이 우선시 되어 그려졌고, 역사 소설 또한 주요 부분을 차지하며 우리의 역사와 민중의 삶을 다루는 것이 주된 소재였다. 이러한 경향은 1990년대 이후 자본주의 산업 사회로 오며 크게 바뀌어 개개인의 삶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개인의 주체적 삶 을 중시하는 과정에서 각 개인의 삶의 여러 상황과 관계를 그리는 이야기에 관심이 향하며, 젊은 작가들은 개인이 겪는 불안, 격차사회, 여성차별 등을 구 체적이고 사실적으로, 하지만 무겁지만은 않도록 대중용으로 그려낸다. 대중미 디어의 발달로 종래의 고전적 의미의 문학과는 또 다른 분위기의 작품들이 탄 생하였고, 수용 방식이 변화됨에 따라 수용자와의 관계도 변화되며 현대 한국 의 작가들은 때로는 리얼리티 쇼처럼 때로는 웹소설처럼 일상의 파편들로부터 개인의 일상을 그려낸다. 조남주는 『김지영』을 구상한 계기로 여성혐오 현상을 미디어에서 접하다 가 대한민국에서 여성의 삶이 어떤가를 정리해보고 싶었다, 보편적인 삶을 정 리하고 싶어 보고서 형식을 차용했다고 말한다26).
26) 엄지혜(2016)「예스 인터뷰 조남주 “김지영 씨에게 발언권을 줬으면 해요”」『채널예스』, 2016.1 1.16. http://ch.yes24.com/Article/View/32091(검색일: 2022.12.04.)
이러한 작가의 의도대로 『김지영』은 사실적인 묘사가 특징이다. 어린 시절부터 학창 시절, 회사 생활, 결혼 생활에 이르는 모든 연령대의 여성들이 한 번쯤은, 대개는 늘 겪고 있는 경험의 나열이 주인공 김지영의 목소리로 담담하게 그려진다. 박민정은 『아내 들의 학교』(문학동네, 2017)에서 ‘살인’과 같은 극단적인 사건에서부터 ‘몰래카 메라’와 같은 은밀한 폭력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 덜 중요한 것으로 취급되어 온 여성문제를 왜곡이나 미화 없이 피해자의 목소리로 담담하게 그린다. 또, 강화길은 『다른 사람』(한겨례출판, 2017)에서 학교폭력을 비롯하여 빈부 격 차, 데이트 폭력, 인터넷 여론 등 최근 이슈가 되는 실로 다양한 소재들을 다 룬다. 인물에 공감하기 어려울 수 있겠지만 내 작품이 모두를 설득하거나 어떤 이론을 전달하려는 건 아니라는 작가의 말27)처럼 신문 기사를 보는 듯 타인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서술된다. 피해자 개인이 겪는 성차의 문제를 다양한 사회 이슈들과 결부시켜 사회적, 구조적 문제로 인식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최 근 한국의 여성 작가들은 작품 속에서 사회적 메시지를 문학적인 묘사를 통한 감정이입보다 마치 르포처럼 직설적으로 그려내는 것이 특징이다. 이하에서 『김지영』의 예를 보고자 한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1500원짜리 커피를 마시던 김지영은 한 남성으로부 터 “맘충 팔자가 상팔자야”28)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해충 같은 엄마’를 뜻하 는 속어가 여과 없이 그대로 사용되는데, 개인 여성이 일상에서 겪는 크고 작 은, 위와 같은 사건들이 그대로 보고된다. “무상 보육이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요즘 젊은 엄마들이 아이는 어린이집에 보내 놓고 커피를 마시고, 손톱 관리를 받고, 백화점에서 쇼핑이나 하고 다닌다”29)는 ‘맘충’에 대한 표현이 대표적인 예이다.
27) 이윤주(2017)「페미니즘, 인문학 너머 소설에서도 대세몰이」『한국일보』, 2017.8.31. https://ww w.hankookilbo.com/News/Read/201708310418079902(검색일: 2022.12.04.)
28) 조남주(2016)『82년생, 김지영』민음사, p.164.
29) 앞의 책, 조남주(2016) p.159.
2013년부터 실시된 만 0∼5세 영유아에 대한 전면 무상 보육은 위의 인용에 서도 알 수 있듯이 오히려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는 전업주부를 비난받게 하 는 정책이 되었다. 이는 아동수당과 같은 형태가 아니라 어린이집에 정부 지원 금을 주는 형태였기 때문에 가정 보육을 하는 것보다 어린이집에 보낼 때 훨 씬 이득이 되도록 설계되었는데, 이로 인해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는 것을 선택하는 전업주부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긴다고 하더라도 아침 10시부터 1시까지 약 3시간 남짓으로, ‘맘충’이라고 비난받는 이 유인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커피나 마시면서 돌아다니”30)는 여유를 부 릴 수는 없다. “실제로 0∼2세 자녀를 돌보는 전업주부의 여가 시간은 하루 4 시간 10분 정도고, 아이를 기관에 보내는 주부의 여가 시간은 4시간 25분으로 하루 15분 차이밖에 나지 않”31)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업주부에게 만 비난의 화살이 돌아가게 된 것은 전업주부가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는 선 택을 하도록 만든 영유아 무상보육 정책, 그리고 그녀들에게 독박육아를 떠맡 긴 사회 시스템에 기인한다고 할 것이다. 즉, 사회와 국가가 여성을, 모성을 혐 오하는 분위기를 조장하고 있으며, 혐오의 핵심에 있는 ‘엄마가 엄마답게 아이 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는 비난은 사실 국가 정책에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맘(mom)+충(蟲) 32)’이라는 단어는 과거 가부장제 신화 속에서 숭배받던 ‘모 성’조차도 혐오의 대상이 되는, 시대적 차이를 집약하고 있는 표현이며, 여성들 에게 지금 처한 현실을 매우 명징하게 자각하게 하는 표현33)이다.
이러한 직 접적인 단어를 그대로 차용하며 보고서와 같은 자세한 육아 정책 시스템의 서 술은, 독자─주로 여성, 특히 육아를 담당하는 주부─ 개인, 집단을 대변하여 여성혐오를 조장하는 사회, 국가에 대한 비판으로 볼 수 있다. “내가 많이 도와줄게. 기저귀도 갈고, 분유도 먹이고, 내복도 삶고 그럴게”34) 라는 김지영 남편의 대사에서도 드러나듯이 아빠들은 육아를 조금 돕는 것만으로 굉장히 자부심을 느끼고 격려를 받는다.
30) 앞의 책, 조남주(2016) p.164.
31) 앞의 책, 조남주(2016) p.157.
32) '맘충'이라는 단어는 2015년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백종원이 인기를 끌자 입소문을 듣고 몰려 든 가정 주부들이 채팅창에서 자기 아이 이름 읽어달라고 부탁하는 채팅으로 도배하는 바람에 여 기에 분통이 터진 마리텔 시청자들 사이에서 나온 말이다. 처음에는 변질된 모성애로 인해 자녀의 잘못에 대해 제지나 훈계를 하지 않고 방치, 협조하거나, 또는 '자기 아이를 위해서'라는 이유로 생판 모르는 제3자에게까지 무한한 희생과 이해를 강요하는 일부 개념 없는 행동을 일삼는 어머 니들을 일컫는 인터넷 신조어로 시작되었다. 이기적인 중장년 여성, 혹은 자녀가 소리지르거나 주 변에 민폐를 끼치는데도 제지하지 않는 주부에 대한 혐오와 멸시의 의미로 등장했다. 일본의 경우 몬스터 패런츠(モンスターペアレント)를 사용한다. 성별을 국한시키지 않고 몰상식한 부모 모두에 게 적용되는 용어이다. 『82년생, 김지영』의 번역자 사이토 마리코는 ‘맘충’을 ‘ママ虫(育児をろ くにせず遊びまわる、害虫のような母親という意味のネットスラング)’ 즉, ‘엄마벌레(육아를 제대 로 하지 않고 놀러 다니는, 해충 같은 엄마라는 뜻의 인터넷 은어)’로 번역하였다(チョ・ナムジュ (2019)『82年生まれ、キム・ジヨン』斎藤真理子訳、筑摩書房、p.126.).
33) 권김현영(2019)『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휴머니스트, pp.102-103.
34) 앞의 책, 조남주(2016) p.136.
반면 엄마는, 맞벌이 부부인 경 우에도, 회사와 집안 양쪽에서 아무리 많은 일을 하더라도 “배불러까지 지하철 타고 돈 벌러 다니는 사람이 애는 어쩌자고 낳아?”35)라는 비난을 받아야 하며, 이러한 비난을 피해─실제로는 임신한 경우 회사에서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경 우가 많지만─ 독박육아를 할 때에도 ‘맘충’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음은 앞 에서 확인한 바이다. 부부가 공동으로 책임져야 할 육아에서 아빠가 없는 것에 대한 이해는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생략되고 있으며 언제나 비난의 대상이 여성임을 위의 인용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여성혐오는 앞에서도 살펴본 대로 ‘맘충’이라는 표현에서 집약적으로 드러나는데,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식당이나 카페 등에서 어린아이들이 시끄럽게 하거나 주변에 민폐를 끼쳐도 내버려 두는 부모를 비하하는 뜻으로 쓰이기 시작한 사회적인 조어는 독박육아를 하는 전업주부를 향하는 말이 되었 다. ‘된장녀’, ‘맘충’ 등 사회에서 여성을 공격할 언어를 얻게 되자, 모성에 대한 신성시도 침탈되어 대중들의 인식에 여성혐오는 당연한 것으로 자리해 왔다. “사람들이 나보고 맘충이래”36)라고 김지영이 남편에게 말하자, 남편은 “그런 말 인터넷에나 나오지 실제로 쓰는 사람 없어”37)라고 대답한다. “아니야. 아까 내가 직접 들었어. 저기 길 건너 공원에서 서른쯤 된 양복 입고 회사 다니는 멀쩡한 남자들이 그랬어”38)라는 김지영의 대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독박육아, 가사노동에 이르는 한국의 여성들이 겪고 있는 현실의 성차별은 여전히 존재 한다. 다만, ‘요즘 무슨 성차별이야’, ‘요즘은 여성 상위시대야’와 같은 성차별이 존재한다는 말이 사라졌을 뿐이며, 위의 남편의 말이 이를 집약적으로 보여준 다. 요즘의 여성은 오히려 자신이 겪은 피해를 성차별이라고 호소할 권리조차 없으며, 국경을 넘어 세계 여성들의 공감조차 박탈당하고 있음을 『김지영』은 가감 없이 전달한다. 즉, 작품으로 독자나 사회를 설득하거나 어떠한 주장을 펼치는 형태가 아닌, 누구와도 싸우거나 항변하지 않는 페미니스트 서사인 것 이다39).
35) 앞의 책, 조남주(2016) pp.140-141.
36) 앞의 책, 조남주(2016) p.164.
37) 앞의 책, 조남주(2016) p.164.
38) 앞의 책, 조남주(2016) pp.164-165.
39) 허윤(2018)「로맨스 대신 페미니즘을!─김지영 현상과 읽는 여성의 욕망」『문학과 사회』31(2), 문학과 지성사, pp.38-55 참조.
『김지영』이 그리는 진학, 취업, 결혼, 육아에서 한국의 여성들이 겪고 있는 차별과 혐오는 앞에서 언급한 아마존 재팬 리뷰에서처럼 일본의 여성들도 경 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대에 따라 남성의 역할은 점점 여성과 나누게 되 어, 남편의 몫으로 여겨졌던 가족 부양의 의무는 어느덧 부부 공동의 몫이 된 반면, 여성의 몫이라 여겨졌던 가사, 육아는 여전히 여성의 몫이며, 이에 대한 비난 역시 온전히 여성의 몫이다. 이러한 일상적인 사회의 모습이 일체의 과장 이나 왜곡 없이 담담하게 그려지는 문체 속에서 여성 자신이 경험하는 ‘맘충’ 의 원인이 개인이 아닌 성차별, 여성혐오에 있음을, 구조적인 문제로 연결시키 는 『김지영』의 스토리텔링은 단순한 문학 작품을 벗어나 문화콘텐츠로서 기 능하며, 남성 가장(家長) 중심의 사회가 뿌리 깊은 일본에서도 공감과 지지를 얻고 있다40).
40) 江南亜美子(2019)「覚醒せよ、と小説は言った─現代韓国文学のブームに寄せて」『すばる』41 (5)、集英社、pp.176-186 참조.
성차별 문제는 한국과 일본이라는 국가의 장벽을 뛰어넘어 정치 적 갈등 속에서도 공통의 문제로 연결되어 있으며, 여전히 가부장제의 부권적 지배가 남아있는 공동체에서 배제되고 차별받는 여성들의 공감을 얻고 있는 것이다.
5. 맺으며
이상, 일본에서 현대 한국 여성 문학의 인기 요인을 한류 붐의 흐름 속에서, 일본 문단의 페미니즘 담론 속에서, 그리고 현대 한국 여성 문학의 특징 속에 서 살펴보았다. 화제작 『김지영』을 중심으로 일본내의 수용 양상에 주목한 결과, 최근 일본에서의 한국문학 인기는 한류의 한 부분임을 확인하였다. 오랫 동안 제3세계 문학 중 하나에 불과했던 한국문학이 페미니즘 담론을 중심으로 K-팝, K-뷰티에 이어 신한류 K-문학으로 인기를 이어가고 있으며, 그 중심에 축적된 한류의 영향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는 앞 에서 언급한 대로 방탄소년단(BTS) 멤버 정국이 읽고 추천했다는 소문에 일 본에서는 출간 전부터 화제가 되었고,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다이아 몬드사, 오카자키 노부코 역)는 동방신기의 유노윤호가 읽은 책으로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탔다. 『김지영』은 소녀시대의 수영, 레드벨벳의 아이린뿐 아니라, BTS의 RM 등 남성 아이돌까지 소감을 밝혀 일본의 한류 팬들의 인기를 얻은 것인데, 한류의 인기로 시작된 한국문학 붐이 글로벌 출판시장에서 인정받으며, 2020년 타임지가 선정한 반드시 읽어야 할 도서 100에 등재되는 등, 다양한 언 어권에서 동시대 독자들의 지지를 받으며 일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일본의 여성 담론을 둘러싼 연구와 문단의 분위기에 주목한 결과, 현 재까지 여성문제를 둘러싼 연구의 상당한 축적이 있고, 특히 90년대 이후 여성 작가들의 활약으로 가부장제하에서 어려움에 직면하는 여성의 모습을 그린 작 품도 수없이 탄생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그려진 여성문제는 사 회문제로서 확산될 수 없었고, 여전히 공공연히 성차별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발표된 『김지영』에 일본 여성들은 열광하였는데, 이는 개인의 일상을 그리면 서도, 자연스레 사회문제를 투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지적한 대로 과거 의 한국문학은 시대상을 반영하는 이른바 무거운 담론을 다뤄 세계적인, 특히 일본의 공감을 얻기 힘들었지만, 최근 현대의 한국 작가들은 개인의 일상과 내 면을 사실적으로 이야기하면서, 여성차별, 사회격차 등의 사회문제와 같은 심 각한 주제를 때로는 가볍게 그린다. 『김지영』에서 드러나는 일상성의 직설적 인 표현은 개인을 대변하여 여성혐오를 조장하는 사회, 국가에 대한 비판임을 분석하였고, 현대 한국문학이 가지는 이러한 비평적 시선과 대중성이 『김지 영』 등이 일본에서 인기를 얻는 인기 요인임을 확인하였다.
일본에서 한국 페미니즘의 인기는 여성을 둘러싼 사회문제, 즉 젠더의식으로 인해 발생하는 정 치ㆍ경제ㆍ사회문화적 차별이 국경을 초월하여 이해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 는 것인데, 현대 한국문학의 위와 같은 인기 요인을 검토함으로써, 부(父혹은 夫)권 중심 이데올로기를 공통으로 하는 한·일 양국의 여성 서사 연구가 가능 하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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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투고 일자 : 2023. 01. 08. 논문 심사 일자 : 2023. 01. 27. 게재 확정 일자 : 2023. 02.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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