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
<춘향전>이 한국 고전소설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특별하다. 민중연행예 술인 판소리에서 출발해서 소설로 바뀌고, 창극․연극․영화․드라마․시 등 거의 대부분의 문학․예술 장르로 변환되면서 한국인에게 가장 대중적 이면서도 고전적인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편 <춘향전>은 다른 작품 들에 비해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외국인들의 관심을 받게 되어 ‘그들’의 시각이 반영된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을 하기도 하였다. 20세기 이후에는 한국의 고전들이 일본어․영어를 비롯한 다양한 외국어로 활발하게 번역 되지만, 20세기 이전 한국의 고전소설이 외국어로 번역된 예는 <춘향전> 이 월등히 많다. 우선 1882년 일본인 나카라이 도스이(半井桃水)가 오사 카 아사히신문(大阪朝日新聞) 에 연재(6.25~7.23)한 鷄林情話春香傳 이 있고, 1889년 미국의 선교사 알렌(H.N. Allen)이 Korean Tales라는 책 에 수록한 ‘Chun Yang, the faithful dancing-girl wife’라는 제목의 영어 판 춘향전이 뒤를 잇는다. 이어 1892년에 프랑스 소설가 로니(J.-H. Rosny)의 번역으로 프랑스판 춘향전 Printemps Parfumé이 나오게 되고, 1895년에는 독일인 아르노우스(H.G. Arnous)가 앞의 알렌의 영어판을 거 의 그대로 번역한 ‘Chun Yang Ye, die treue Tänzerin’이라는 제목의 독일 어판 춘향전이 나온다. 1) 이러한 외국어판 춘향전은 19세기 말 당시 조선에 서의 춘향전 유통상황을 가늠하는 데 일정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우리에게는 너무 익숙한 <춘향전>의 내용을 외국인들이 어떻게 이해했는가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이 논문은 이상의 외국인들에 의해 번역된 춘향전 가운데 프랑스판 춘 향전에 논의를 집중하고자 한다. 프랑스판 춘향전은 광복 이전 김영건에 의해, 광복 이후 이옥에 의하여 번역과 출판사실이 알려졌다.2) 프랑스판 춘향전의 구체적인 내용이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김윤식과 유 석호에 의해서이다. 김윤식은 파리에 유학했던 홍종우에 대한 일련의 관련 문헌을 발굴하면서 프랑스판 춘향전의 일부를 번역해서 소개하였다. 그 후 유석호에 의해 보다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게 되었다.3) 이 논문에서는 이상의 성과를 바탕으로 하는 한편, 그동안 소개되지 않은 내용까지 아울 러 살펴봄으로써 프랑스판 춘향전의 개작양상을 가늠해 보고자 한다.4) 또 한 최근 발굴된 프랑스판 춘향전과 관련되는 새로운 자료들을 중심으로, 프랑스판 춘향전이 출판된 이후 또 어떻게 변모했는지에 대해서도 논의하 고자 한다.
1) 전상욱, 방각본 춘향전의 성립과 변모에 대한 연구 , 연세대 박사학위논문, 2006, 166쪽.
2) 김영건, 해외에 소개된 춘향전 , 춘추 3-8, 조선춘추사, 1942.8, 131쪽. ; 이옥, 한말의 자유주의자 홍종우 , 신동아 , 동아일보사, 1968.1, 301쪽.
3) 김윤식, 홍종우와 춘향전의 프랑스어 번역 , 한국학보 40, 1985, 170-196쪽. ; 김근택․유석호, 한국 고전의 불역 , 한불연구 8, 연세대 한불문화연구소, 1990, 79-101쪽. ; 유석호, 홍종우의 춘향전 불역의 문제점 , 번역문학 창간호, 연세대 번역문학연구소, 1996, 74-95쪽. 4) 필자는 불어학을 전공한 이현주 교수(서울과학종합대학원)의 도움을 받아 프랑스판 춘향전 Printemps Parfumé의 번역을 최근 끝마치고 출판을 준비 중이다. 본고는 이 번역의 결과를 적극 활용한 것이다. 이 자리를 빌려 이현주 교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2. 프랑스판 춘향전 개관
1892년 프랑스 파리에서 발행된 프랑스판 춘향전 Printemps Parfumé의 번역자는 로니(J.-H. Rosny)로 되어 있다. ‘J.-H. Rosny’는 19세기 말~20 세기 초 프랑스에서 활동한 벨기에 태생의 소설가 보엑스 형제가 사용했던 필명이다. 형은 Joseph Henri Honoré Boex(1856~1940)이고, 동생은 Séraphin Justin François Boex(1859~1948)인데, 이들은 1909년경까지 같 은 필명을 사용하며 자연, 역사이전시대, 판타지 등을 주제로 소설을 썼고, 불의 전쟁(La Guerre du feu) (1909)과 같은 유명 작품을 남겼다. 이후 형은 J.-H. Rosny ainé, 동생은 J.-H. Rosny jeune라는 필명을 사용하였다. 이들 형제는 근대 과학소설의 선구자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프랑스판 춘향전은 번역된 시기가 1892년이기 때문에 이들 형제 중 누가 번역을 담당 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형인 Joseph Boex가 더 잘 알려져 있고 작품활동도 활발하게 했기 때문에 그가 번역했으리라고 추정하고 있다.5) 번역자가 보엑스 형제의 형이든 동생이든 로니는 한글도 모르고 한국어 도 구사할 수 없는 사람이었을 것이므로, 이 번역에는 조력자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 조력자가 바로 홍종우(洪鍾宇, 1854~?)이다. 프랑스판 춘향전 의 로니 서문에 “우리는 프랑스에 온 이 나라의 유일한 지식인의 도움을 받아 한국어 원전에 의한 번역을 독자에게 소개할 수 있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하고서 그 각주에 “우리가 이 작업 중에 지적인 호의를 경험 할 수 있었던 조선의 양반 홍종우 씨”6)라고 밝혔다.
5) 프레데릭 불레스텍스, 착한 미개인 동양의 현자 , 청년사, 2001, 134쪽 및 조재곤, 그래서 나는 김윤식을 쏘았다 , 푸른역사, 2005, 73쪽에서 그렇게 보았다. 한편 김 윤식 교수는 프랑스판 춘향전의 번역자를 당시 파리 동양어학교(L.O.V) 교수인 레 옹 드 로니(Léon de Rosny)로 잘못 알고 있었다. 김윤식, 다시 꽃이 핀 마른나무에 대하여 , 한국학보 22, 1981, 138쪽 및 김윤식, 앞의 논문(1985), 192쪽.
그리고 1893년 7월 8일자 라 르뷔 블루 라는 잡지에 기고한 (한국의 문인이 본) 한국의 풍 속 이라는 글에서도 이 사실을 언급했다.7) 또한 1895년에 홍종우의 번역 으로 출간된 고목에 핀 꽃(Le Bois sec Refleuri) 의 서문(1893.1.15)에서 도 “몇 달 전에 나는 프랑스 작가인 로니 씨와 공동으로 <춘향전>을 번역 했다.”고 그 사실을 드러냈다. 홍종우가 파리에 머무는 동안 든든한 후원자 역학을 했던 화가 펠릭스 레가미(Félix Régamey)도 홍종우가 로니의 번역 을 도와주었다는 사실을 정치적 암살자(Un Assassin Politique) ( 通報 제5권 잡보란, 1894)라는 글에서 언급하고 있다. 홍종우는 프랑스에 유학한 최초의 한국인이다. 프랑스에 오기 전 2년여 를 일본에 머물며 유학자금을 마련한 후, 요코하마에서 배를 타고 출발해 프랑스 파리에 도착한 것은 1890년 12월 24일이었다. 얼마 후 화가 펠릭스 레가미를 만나게 되고 레가미의 주선으로 파리의 정계․문화계 인사들을 만나 조선에 대해 알리고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표출하는 한편, 그들의 문 화를 흡수하는 데에도 노력했다. 또한 2년여 동안 파리의 기메(Guimet)박 물관에서 조선․일본․중국의 책들을 분류하고 번역하는 일을 하였다. 당 시 기메박물관에는 샤를 바라(Charles Varat, 1842~1893)가 1888~1889 년 조선의 제물포-한양-부산을 여행하면서 수집한 많은 미술공예품과 서 적이 소장되어 있었다. 홍종우가 기메박물관에서 먼저 손을 댄 것은 이 책 들이었을 것이다. 이 가운데 <춘향전> 경판 23장본이 포함되어 있다. 물론 홍종우는 프랑스어에 능숙하지 못했다. 레가미와 처음 만날 때에도 일본인 통역을 대동한 채였고, 프랑스를 떠날 때까지도 ‘서투르게’ 프랑스어를 구 사했다고 한다. 따라서 기메박물관에서 처음 일하면서, 로니의 춘향전 번 역을 도와줄 때에는 일본어 통역을 거치지 않고는 의사소통이 자유롭지는 못했을 것이다.
6) Printemps Parfumé, pp.2-3.
7) 프레데릭 불레스텍스, 앞의 책, 135-136쪽.
프랑스판 춘향전이 발행된 이후 홍종우는 다른 번역 작업 에도 착수하여 1893년 1월까지 고목에 핀 꽃(Le Bois sec Refleuri) 의 원고와 서문을 완성하고, 프랑스를 떠나기 전까지 직성행년편람(直星行 年便覽) 의 불역본인 개인의 수호성을 순조롭게 이끌고 한 해의 운세를 알기 위한 지침서(Guide pour rendre propice létoile qui garde chaque homme) 의 번역에 매달렸다.8) 홍종우가 파리를 떠나 일본으로 출발한 것 은 1893년 7월 22일이었으므로, 파리에 머문 기간은 2년 7개월 정도가 된 다. 일본에서 김옥균을 만나 중국 상해까지 동행했다가 그를 암살한 것은 1894년 3월 28일이었다. 홍종우가 돕고, 로니가 번역한 것으로 되어 있는 프랑스판 춘향전은 1892년 9월 25일 ‘기욤소총서(Petite Collection Guillaume)’의 하나로 파리 의 당뛰(E.Dentu)출판사에서 발행되었다. 크기는 8×14㎝ 정도의 아주 작 은 문고판 크기9)이고, 표지에는 ‘Printemps Parfumé’이라는 제목과 함께 조선 소설(Roman Coréen)이라는 것을 밝혔다. 번역자는 J.-H. Rosny로, 삽화는 Marold와 Mittis가 그린 것으로 되어 있다. 본문 앞에 11페이지 분 량의 로니의 서문이 실려있고, 본문은 128페이지 분량이다. 본문 뒤에 삽화 의 목차가 붙어있다. 삽화에 그려진 인물의 얼굴이나 복장 등은 전혀 조선 적이지 않고, 서구적이거나 중국적인 모습으로 나타나 있다. 프랑스판 춘향전 Printemps Parfumé의 내용을 살펴보기로 한다. 작품 은 이도령에 대한 소개로부터 시작된다.
8) 이 두 책은 홍종우가 번역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 출판된 것은 홍종우가 파리를 떠난 이후인 1895년, 1897년으로 각각 나타난다.
9) 김윤식, 앞의 논문(1985), 194쪽에 의하면 프랑스판 춘향전은 가격이 3프랑과 2프랑 의 두 종류로 출판되었던 것 같다. 필자도 한 오프라인 경매장에서 8×14㎝보다 작은 크기의 책을 본 적이 있다.
옛날 전라도 남형(Nam-Hyong)이란 고을에 ‘이등(I-Teung)’이라고 불 리는 관리(사또)가 있었는데, 그에게는 이도령(I-Toreng)이란 16살 된 아 들이 하나 있었다. 이도령은 그 지방에서 가장 뛰어난 문장가 중의 한 사 람이었고, 매일 공부를 하면서 성장해 나갔다. (13-14)10)
10) Printemps Parfumé 원문 13-14쪽의 번역. 이하 번역문도 원문의 쪽수만 표시한다.
이도령은 봄날의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다가, 길어봐야 100년 정도밖 에 살지 못하는 인생에서 공부만 한다는 것에 허무함을 느끼고, 방자가 추 천한 광화루(Couang-hoa-lou)로 산책을 나간다. 그곳에서 그네를 타는 젊 은 여성을 발견하고 방자를 통해 그녀가 평민의 딸이고,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으며, 이름은 춘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도령은 춘향을 만나고 불러오게 하고 싶었지만, 그녀의 정숙함 때문에 오지 않을 것이라는 방자 의 반대에 부딪쳐 그네를 타는 춘향의 근처까지 다가가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만 훔쳐보고 사랑에 빠진다. 집으로 돌아온 이도령은 방자에게 춘향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부탁을 하고, 방자는 이도령을 여장(女裝) 을 시켜야겠다고 생각한다.
방자가 저녁인사를 하고 나오면서 이렇게 혼자 말했다. “돈을 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왔군. 하지만 쉽지는 않겠어.” 그는 좀 곤혹스러운 생각에 잠 겼다가 갑자기 말했다. “아하! 찾았다. 노파에게 돈을 주어서, 춘향이에게 산책을 하러 같이 가자고 하여 적당한 장소로 불러내게 하고, 이도령에게 여장을 하게 한 다음 그를 같은 장소로 데려가면 그 젊은 여자와 얘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이만하면 됐다. 자러 가자.” (29-30)
이도령은 쉽게 잠들지 못하다가 춘향을 만나는 꿈을 꾸게 되고, 이튿날 새벽 방자에게 춘향과 만날 수 있는 방법을 듣게 된다.
방자는 춘향과의 만남을 주선해 줄 노파를 물색해 그녀에게 자신의 계획을 알려 준다. 노파 가 춘향을 찾아가 집안에서 공부만 하지 말고 자기와 함께 숲으로 산책을 나가자고 제안한다. 다음날 춘향은 노파를 따라 광화루로 산책을 나가고, 같은 시각에 이도령은 방자의 계획에 따라 여장을 하고 광화루 근처를 배 회한다. 춘향이 여장을 한 이도령의 아름다운 모습에 호감을 느껴 다가가 고, 드디어 춘향을 만난 이도령은 기뻐하며 둘은 우정을 쌓아 나간다.
춘향이 말했다. “아! 우리가 좀더 일찍 알지 못한 것이 유감입니다. 그 랬으면 오늘처럼 우리는 함께 산책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는 동안 노 파는 조금씩 멀어져서, 그들만 단둘이 남겨 놓았다. 그러자 이도령이 춘향 에게 말했다. “내가 지은 시를 당신에게 읊어주고 싶어요.” 그리고 주의 깊게 들으려는 춘향을 보고 시를 읊었다. “인생은 흘러가는 강물과 같아 서, 물을 바라보는 것은 나를 우울하게 하네. 그러나 바람에 기울어지는 버드나무의 인사가 나를 위로해 주네.” 춘향이 듣고 슬퍼져서 거닐면서 응 답했다. “세상만사는 일장춘몽이고, 우리의 젊음은 한 번뿐입니다. 즐기지 도 못하고 외출하지도 못하는 것은 슬픈 일이에요. 젊음은 한 번뿐이니 우 리의 젊음을 만끽해야 합니다.” (48-51)
어머니의 책망이 두려워 자주 산책을 나올 수 없는 춘향은 이도령을 자 기의 집으로 초대하겠다고 한다. 각자 집으로 돌아온 이도령은 방자에게 돈을 주고, 춘향은 노파에게 고마움을 표시한다. 춘향은 그날 밤 용이 자기 몸을 휘감는 꿈을 꾼다. 이도령은 날이 밝자마자 춘향에게 찾아가겠다는 편지를 노파를 통해 전달하고, 춘향이 승락하는 답장을 받고는 저녁식사 후 다시 여장을 하고 춘향집으로 찾아간다. 춘향은 이도령을 어머니에게 소개한 후 함께 그네를 타러 나가서, 서로 상대방이 남성이었으면 결혼을 했을 것이라는 얘기를 한다.
이도령이 말했다. “당신이 젊은 남자가 아니어서 참 유감이에요. 만약 그랬다면 나는 당신을 한없이 사랑하고, 우리는 결혼할 테니까요.” “저도 아가씨 생각과 같습니다.” 춘향이 대답했다. “저도 또한 아가씨가 젊은 남 자여서, 당신과 결혼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60)
이도령은 춘향에게 이 말에 대해 약속을 하는 하는 글을 써서 서명을 해 달라고 하고, 춘향은 이것을 장난으로 생각하고 서명을 해 준다. 이도령 은 자기가 사또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옷을 벗어 남성임을 밝힌다. 당황한 춘향을 향해 이도령은 맹세의 글이 있으니 책임을 지라고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부드럽게 설득하기도 한다. 이에 춘향은 이도령에게 결혼한 후 자기를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글을 써 달라고 하여 받는다.
“제가 양반의 딸이라면,” 그녀가 반박했다. “어떤 약속도 당신에게 요구 하지 않을 거예요. 그렇지만 평민과 양반 사이에는 결혼이 성사되지 않으 니까, 제가 이렇게 대비를 해두는 것이 공평합니다. 당신이 그렇게 하지 않으시겠다면 그 문서를 제게 돌려주세요.” (69)
그날 밤 두 사람은 사랑을 나누게 되고, 이도령은 밤만 되면 춘향을 찾아 간다. 춘향은 이도령과의 사랑이 기쁘면서도 한편으로 그가 자기를 버려두 고 고향으로 돌아갈까봐, 다른 한편으로는 이도령이 자기 때문에 학업을 게을리 할까봐 걱정을 한다. 그러던 어느날 이도령은 아버지가 서울의 높 은 관직에 임명되어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춘향에 게 이 소식을 슬픈 마음으로 전한다. 춘향은 이도령을 기다리고 있겠다고 말한다. 이도령이 말했다.
“아버지께서 임금 곁의 장관직으로 발령을 받으셨어요. 그래서 나는 떠날 수밖에 없어요.” 이 말을 하며 그가 울자, 그녀는 위 로하며 그가 자기를 데려가는 것이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울지 마 세요. 저를 떠나가신다면, 절 찾아오실 수 있도록 기다리겠습니다.” “당신 이 옳아요. 하지만 나는 멀리 가고 당신 혼자 여기에 1시간, 아니 15분이 라도 남겨둔다는 생각에 고통스러워요. 당신을 너무 그리워할 거예요. 이 것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에요.” 그녀는 두 팔로 그의 목을 감싸고 아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그러나 약간은 아이러니하게 자기의 뺨을 그 의 뺨에 갖다 대며 말했다. (90-91)
어머니를 모시고 서울로 빨리 올라가라는 독촉을 받은 이도령은 마지막 으로 춘향을 찾아가 이별의 슬픔을 나누고, 춘향은 이도령을 멀리까지 전 송한다. 집으로 돌아온 춘향은 초라한 옷을 입고 지내고, 이도령은 남형으 로 다시 돌아가는 방자편에 춘향에게 돈을 보낸다. 새로 부임한 사또는 춘향이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다짜고짜 그녀 에게 청혼을 하고, 이러한 처사를 비판하는 춘향을 옥에 가둔다. 서울로 올라 간 이도령은 과거에 합격하고 왕의 밀사(어사)가 되어 민정 을 염탐하며 남형 고을 근처에 당도한다. 그곳에서 농부들을 만나 신관 사 또의 악정과 춘향의 수난, 그리고 무정한 이도령에 대한 비난의 소리를 듣 는다. 또한 시를 짓는 학생들을 만나 춘향이 며칠 후 처형될 것이라는 소식 도 알게 된다. 옥에 갇힌 춘향은 어느날 파경몽(破鏡夢)을 꾸고 불길해 하지만, 봉사의 해몽을 통해 일말의 기대를 품는다.
어느 날 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다. 그녀는 자기 집을 보았는데, 정원에 는 그녀가 심고 그렇게 좋아하던 꽃들이 시들어 꽃잎을 떨구고 있었다. 그 녀의 방 안에 있는 거울은 깨져 있었고, 그녀의 신발은 문고리에 걸려있었 다. 너무 놀라서 그녀는 깨어났다. “너무 끔찍한 악몽이야! 틀림없이 곧 죽 겠구나. 내 삶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그 전에 이도령을 보지 못하는 것이 슬프구나.” 그녀는, 그때 길을 지나가던 장님을 멈추게 해서 자기 꿈의 의 미를 물었다. 그는 잠시 생각했다. “오!” 드디어 그가 말했다. “참으로 상 서로운 꿈이오.” “어떻게 제게 그런 말을 하십니까?” 괴로워하며 그녀가 말했다. “나는 감옥에 있고 곧 사형을 받을 텐데요. 당신은 나를 속이고 있군요!” “왜 그런 말을 하오?” 장님이 반박했다. “지금 당신은 정말 옥 안에 있지만, 당신은 죽지 않을 것이고, 얼마 있지 않아 행복하게 될 거 요!” 춘향이 말했다. “그러나 시들고 있는 꽃들, 깨진 거울, 문에 매달린 신발, 이 모두는 아주 이상하고 나쁜 징조예요.” “잘 들어요. 내가 그것이 뜻하는 바를 말해 주겠소. 시들고 있는 꽃들은 열매를 맺을 것이고, 거울 이 깨지는 소리는 온 세상에 들리게 될 것이며, 문에 걸린 신발은 다가올 행복을 축하하러 올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오.” 춘향이 말했다. “감사합니 다. 내게 그런 일이 모두 닥친다면 얼마나 기쁘겠어요!” 그리고 그녀는 장 님에게 돈을 내밀었다. 그는 오른손으로는 완강하게 거절하는 한편, 왼손 은 사례를 받으려고 내밀고 있었다. (109-114)
신관 사또는 3일 후 잔치자리에서 춘향을 처형할 결심을 하고, 거지차림 의 어사는 춘향의 집을 찾아가 춘향 모친을 만나 그녀와 함께 춘향을 만나 러 옥으로 간다. 춘향은 거지차림의 이도령을 보고서도 사랑의 마음을 바 꾸지 않고, 모친에게 이도령을 잘 대접해 주라고 말하며, 이도령에게는 내 일 자기가 죽기 전에 다시 만나러 와 달라고 부탁한다. 춘향집에서 하루 밤을 잔 어사는 이튿날 신관 사또의 잔치에 몰래 들어가 운봉영장의 호의 로 음식을 얻어먹는다. 어사는 감사의 표시로 그에게 <금준미주(金樽美 酒)> 시를 써 주고, 이를 읽어본 운봉영장과 나머지 초대 받은 관리들은 두려움을 느끼고 잔치자리를 빠져나가다가 어사의 부하들에게 붙잡힌다.
이도령은 먹고 나서, 계속해서 영장에게 말을 붙였다. “나를 위해 수고 해 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짧은 시를 하나 지어 당신에게 보답하고 싶 습니다.” 그는 종이를 한 장 내밀며 말했다. 영장이 읽었다. “금동이 속의 이 훌륭한 과일주, 이것은 천 사람의 피다. 호화로운 대리석 상 위의 이 기막힌 고기, 이것은 만 사람의 살과 연골이다. 촛물이 흐르고 있는 빛나 는 초들, 이것은 고통받는 모든 백성의 눈물이다. 기생들에게서 울려퍼지 는 이 노래들은, 극도로 압박받는 백성의 신음과 원망의 외침보다 높지 않 다.” (127)
신관 사또를 하옥시킨 어사는 죄인 춘향을 불러오라고 한다. 춘향은 자 기가 죽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 모친과 눈물로 이별하고 이도령을 찾는 다. 어사는 춘향에게 신관 대신 자기와 결혼하자고 거짓 협박을 하고, 춘향 은 이를 거부한다. 어사가 춘향과 이별할 때 주고받았던 반지를 보여줌으 로써 자기의 정체를 밝히고 두 사람은 감격적인 재회를 한다. 어사는 춘향 과 춘향 모친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와 임금께 그동안의 사연을 아뢴다. 임 금은 춘향을 정렬부인으로 봉하고, 춘향은 이도령과 정식으로 결혼을 하여 행복하게 지내는 것으로 작품이 마무리된다.
모든 일이 모두가 만족할 만하게 정리되자, 그는 춘향과 춘향의 어머니 와 함께 서울로 올라갔다. 그는 자기가 겪었던 일을 기록하여 왕에게 바쳤 다. 왕은 그것을 읽고 춘향의 정절에 놀라고 매혹되어서 그녀를 정렬부인 (공작부인)으로 봉했다. 그래서 그녀는 이도령의 부모에게 정식으로 소개 되었고, 호화롭게 결혼식을 올렸다.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고, 그녀는 세 아들과 두 딸을 낳았다. 왕은 평민의 딸인 춘향의 정절은 귀족 딸들의 정 절보다 더 찬양할 만하다고 말했다. 그는 그 정절이 이후로 다른 여자들의 모범이 되고, 남자들은 그들의 주인인 왕에게 바쳐야 할 충성의 상징으로 서 이를 본받기를 바랐다. (139-140)
3. 프랑스판 춘향전의 개작양상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프랑스판 춘향전은, 기존의 <춘향전>에 근거 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상당히 많은 부분(특히 만남-사랑대목) 이 바뀌었기 때문에 엄밀하게 보자면 ‘번역’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번안’에 가깝고, ‘개작’을 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렇게 변화의 폭이 넓기 때문에 홍종우가 로니에게 어떤 텍스트에 근거해 <춘향전>에 대한 정보를 주어 서 프랑스판 춘향전이 완성되었는지를 밝히는 일은 쉽지가 않다. 더구나 홍종우가 파리로 떠나 오기 전에 <춘향전>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지식이 영향을 미쳤는지도 알 수 없기 때문에 번역․번안․개작의 모본을 밝혀내 는 일은 매우 어렵다. 다만 홍종우가 기메박물관에서 일을 했고, 당시 그곳 에는 샤를 바라가 기증한 경판 23장본 <춘향전>이 소장되어 있었으므로 정황상 이 판본을 참고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11) 작품의 시작이 춘향의 탄생이 아닌 이도령에 대한 인물정보를 서술하는 것으로 되어있다는 점, 이도령의 부친이 ‘이등’으로 나타나는 점, 이도령과 춘향이 만나는 시점이 계절적으로 봄이라는 점, 이도령과 춘향의 만남과 사랑, 이별의 과정에서 춘향 모친의 역할 비중이 높지 않다는 점, 춘향이 이도령에게 사랑을 확인 받기 위하여 서명된 문서를 받는 점, 춘향이 이도령과 이별할 때 집밖으로 전송을 나간다는 점, 춘향이 황릉묘에 가는 꿈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
11) 프랑스에는 기메박물관 외에 프랑스 국립동양어대학교(INALCO)에도 <춘향전>이 소장되어 있다. 이 곳에는 프랑스 외교관 빅토르 꼴랭 드 쁠랑시(Victor Collin de Plancy)가 수집해서 1891년 기증한 <남원고사>와 경판 30장본 <춘향전>이 소장 되어 있다. (전상욱, 앞의 학위논문, 21-22쪽 참조)
따라서 홍종우가 프랑스판 춘향 전의 번역에 참여할 무렵 <남원고사>와 경판 30장본 <춘향전>은 이미 프랑스 파리 에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홍종우가 이 책들을 실제로 검토했는지에 대한 증거를 아직 찾지 못했다. 따라서 이 논문에서는 우선 경판 23장본을 근거로 프랑스 판 춘향전의 개작양상을 검토해 보고, 추후 다른 작품의 소장 기록에 따라 논의를 확장해 나가도록 하겠다.
암행어사 출도 후 기생들에게 춘향이 묶인 끈을 이빨로 끊으라고 한 점 등은 프랑스판 춘향전이 경판 23장본을 비롯한 경판계열의 춘향전과 밀접 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예가 된다. 적어도 완판계열의 춘향전과는 많 은 차이를 보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구체적으로 경판계열의 이본 중 어느 판본과 관련성이 더 높은지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이 논문 에서는 구체적인 개작 모본을 상정하지 않고 일반적인 의미의 <춘향전> 과 비교했을 때 발견되는 프랑스판 춘향전의 개작양상에 대해서 집중적으 로 살펴보기로 하겠다. 프랑스판 춘향전에서는 주인공 춘향의 신분을 기생의 딸이 아닌 ‘평민의 딸(fille du peuple)’로 바꾸었다. <춘향전>에서 춘향의 출신을 ‘퇴기 월매 의 딸’로 설정하는 것은 바뀌지 않는 불변요소였다. 그래야 양반인 남원부 사의 아들 이도령과의 신분상의 격차가 최대한 크게 벌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춘향전의 한 이본인 <열녀춘향수절가> 등에서 보이는 것처럼 춘향 부친의 신분을 양반으로 상승시키고, 이에 따라 춘향도 양가집 규수의 의 식을 가지려고 하는 변화를 추구한 경우도 있었지만, 그래도 춘향 모친 월 매가 기생이라는 것은 바뀌지 않았고, 신분상 종모법(從母法)에 따라 춘향 의 신분은 원칙적으로 천민 ‘기생’이었다. 이러한 상태에서 이후 사건이 진 행되는 것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춘향전>이다. 그런데 프랑스 판 춘향전은 이러한 기본적인 전제를 변화시켰다. 춘향의 신분을 평민으로 바꾸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변화될 수밖에 없 는 화소들이 있다. 춘향과 이도령의 만남의 방식이 대표적이다. ‘양반’ 이도 령이 ‘기생’ 춘향의 그네 타는 모습을 보고 광한루로 부담없이 불러와서 만나는 내용12)은, ‘양반’ 이도령이 ‘평민’ 춘향의 그네 타는 모습을 보고서 도 차마 부르지 못하고 애태우다가 몰래 근처까지 다가가 그녀의 자태를 훔쳐보기만 하고 아쉽게 돌아오는 것으로 바뀌었다.
12) <춘향전> 이본 가운데는 이도령의 부름에 춘향이 따르지 않고 그냥 돌아가거나 나 중에 집으로 찾아오라는 은근한 편지를 춘향이 보내는 것으로 설정한 것도 있지만, 이러한 이본에서도 이도령이 춘향을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는 일반 여염집 여자를 대하는 것과는 분명 차이가 존재한다
이도령이 춘향을 만나 지 못했기 때문에 동원된 화소가 여장(女裝)화소이다.13) 이 여장화소를 이 끌어가기 위해 방자의 역할이 증대되었고, 원래 <춘향전>에는 없던 노파 가 등장하게 된다. 방자는 사랑에 빠진 이도령을 위해서, 그러면서도 자신 도 그 기회에 한몫을 챙겨볼 속셈으로 이도령에게 여성의 옷을 입고 춘향 에게 접근할 것을 권하고 돈을 받아낸다. 기존 <춘향전>에서의 방자가 사 랑에 빠진 이도령의 신분적 권위를 희화화시키는 역할을 수행하는 인물이 었다면, 프랑스판 춘향전에서의 방자는 치밀한 계산을 바탕으로 금전적인 이득을 취하려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용의주도한 인물로 형상화된다. 방자 에 의해 섭외된 노파는 춘향에게 자연스럽게 접근하여 야외로 산책을 나가 게 하고, 또 여장한 이도령과 춘향 사이를 왕래하며 두 사람의 우정(또는 사랑)의 편지를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도 수행한다. 이 노파 역시 방자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행동이 탄로났을 경우에 대한 보상의 대가로 방자에게 돈을 요구하는 현실적인 인물이다.14) 이렇게 해서 이도령과 만나게 된 춘 향은 처음 여장한 이도령에게 동성적(同性的)인 호감과 사랑을 느끼게 되 고, 바로 그 시점에 이도령이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두 사람은 서약서를 써서 교환한 이후에 비로소 이성적(異性的)인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이본에서도 이도령이 춘향을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는 일반 여염집 여자를 대하는 것과는 분명 차이가 존재한다.
13) 우리 고전소설에서 여성이 남장(男裝)을 하는 이야기는 자주 등장하지만, 반대로 여 장화소는 그렇게 일반적이지 않다. <구운몽>, <창선감의록> 등 일부 작품에서 남 성이 여성에게 자연스럽게 접근하기 위하여 여장을 하는 경우가 보일 뿐이다. 따라서 프랑스판 춘향전의 여장화소는 로니의 개작의식이 반영된 결과로 추정된다.
14) 프랑스판 춘향전에는 원래 <춘향전>에는 없는 ‘돈’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방자와 노파의 경우 외에도 서울로 올라간 이도령이 다시 남형으로 돌아가는 방자편 에 춘향에게 돈을 전해주는 이야기(pp.97-98)가 나온다.
원래 <춘향전>의 사랑 장면은 매우 경쾌하고 즐거우며, 경우에 따라 음 란하고 난잡하기까지하다. 춘향의 집과 방의 화려한 모습이 세밀한 묘사로 그려지고, 온갖 진귀한 음식과 술이 등장하며, 춘향과 이도령의 순진하면 서도 과감한 말과 노래와 행위들의 향연이 이어진다. 이에 비해 프랑스판 춘향전의 사랑 장면은 차분하면서 애틋하다. 이도령은 조금이라도 더 춘향 집에 있으려고 애걸복걸 하지만, 춘향은 이도령이 자신에게 너무 빠져 몸 이 상하거나 글공부를 등한시할까봐 걱정스러워 너무 자주 찾아오지는 말 라는 얘기까지 한다. 이러한 분위기가 조성된 것은 원래 <춘향전>의 사랑 대목에서 보이는 화려한 묘사와 노래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수용하지 못했 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기생이 아닌 평민 춘향 의 현숙하고 사려깊음을 형상화하는 데 번역․개작의 초점을 맞추었기 때 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프랑스판 춘향전의 만남과 사랑 대목 이후부터는 원래의 <춘향전>과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판소리 <춘향가>나 소설 <춘향전>에서 나타나는 많은 수의 노래나 묘사 등이 대부분 탈락되었기 때문에 줄거리 중심으로 요약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랑 장면에서 즐거움의 높이가 높지 않았던 것처럼 이별과 고난 장면에서 슬픔과 아픔의 깊이 또한 상대 적으로 그리 깊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신관 사또의 수청15) 요구를 거절 하고 옥에 갇히기까지, 그리고 옥중에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장면은 <춘향전>에서 가장 비통하게 읽히는 부분이고, 이러한 슬픔의 정조를 극 대화하는 것이 ‘십장가’와 ‘옥중자탄가’이다.
15) 프랑스판 춘향전에서는 춘향의 신분을 ‘기생’이 아닌 ‘평민’으로 설정했기 때문에 신 관은 ‘수청’이 아닌 ‘결혼’을 요구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평민 여성인 춘향의 얘기를 서울에서부터 많이 들었다고 하면서 부임하자마자 춘향에게 결혼을 요청하 는 신관의 행위(pp.98-99)는 프랑스판 춘향전에서의 개작 의도와 원작의 의도가 충 돌하는 대표적인 지점이다.
그러나 프랑스판 춘향전에는 이러한 노래를 탈락시키고 심지어는 춘향이 매를 맞는 내용도 없앴다.
춘 향은 신관에게 백성을 돌보는 책무를 방기하고 있으며, 이미 결혼한 자기 에게 결혼을 강요하는 것은 임금을 배반하는 것과 같다는 비판을 하다가 옥에 갇히게 된다. 옥에 갇힌 춘향에 대해서도 “그녀는 감옥에서 깊은 슬픔 에 잠겨 식음을 전폐하고 이도령만을 그리워하며 오랜 나날을 보냈 다.”(p.101)는 서술만을 할애하고 있다. <춘향전>에서 과거 급제 후 어사가 된 이도령이 거지차림으로 남원과 인근 고을의 민정을 살피는 내용은, 어사가 신관의 악정을 확인하는 데에 목적이 있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춘향의 슬픔과 춘향에 대한 미안 함을 이도령이 느끼게 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도령이 춘향의 처지를 확 인하고 슬퍼하는 감정의 정점은 춘향이 이도령에게 보내는 편지의 내용을 확인하는 장면에서 실현된다. 그런데 프랑스판 춘향전에서는 이 ‘춘향 편 지’ 대목을 아예 탈락시켜 버렸다. 슬픔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장면을 삭제했 기 때문에, 이 대목에서 상대적으로 신관의 악정에 대한 백성들의 비판적 목소리와 춘향을 찾지 않는 무심한 이도령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졌 다. 특히 어사가 학생들이 놀이를 하면서 시를 짓는 광경을 목격하는 장면 은 기존의 <춘향전>에서는 보이지 않는 독특한 화소이다.16) <춘향전>의 종반부에 해당하는 신관의 잔치와 어사 출도 대목은 이 작 품이 행복한 결말로 마무리되는 대단히 유쾌하고 통쾌한 장면이다.
16) 물론 이 장면을 통해서 이도령이 신관의 악정과 춘향의 처형 예정 소식, 그리고 이도 령에 대한 비난 등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일반적인 <춘향전>의 민정염탐 화소와 다르지 않지만, 학생들이 ‘백성의 생활’이라는 주제로 신관을 비판․풍자하는 시를 짓고, 그 시를 지은 학생의 이름을 ‘정완종(Tchong-Wan-Jong)’이라고 구체 적으로 밝히고 있다는 점(pp.106-108), 그리고 작품의 대단원에서 다시 그 학생을 불러 돈과 음식을 주고 학업을 격려하는 내용이 나타난다는 점(p.139)에서 프랑스판 춘향전에서 의식적으로 첨가한 화소로 보인다.
특히 잔치자리에서 수모를 당하며 분노를 눌러 참고 있던 어사가 ‘금준미주(金 樽美酒)’ 시를 짓고, 출도를 외침으로써 잔치자리가 아수라장이 되는 장면 은 역동적이면서 흥겨운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프랑스판 춘향전에 서는 어사 출도 장면을 약화시켜 평면적인 서술로 대체했기 때문에 통쾌한 감흥을 제대로 살렸다고 볼 수 없다. 대신 춘향과 이도령의 감격적인 재회 를 그리는 데에 상대적으로 관심을 집중했다. 이상에서 프랑스판 춘향전의 특성을 기존의 <춘향전>에 비해 달라진 점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100여 종이 넘는 다양한 이본을 가지고 있는 <춘향전>은 내용상 몇 개의 계열로 나눌 수 있고, 그러한 분류는 춘향의 신분을 어떻게 설정하느냐 또는 춘향이 자기의 신분을 어떻게 인식하느냐 에 따라 결정된다고 볼 수도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춘향전>의 의미를 결정하는 최초의 출발점은 춘향의 신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프랑스 판 춘향전은 춘향의 신분을 기생이 아닌 평민으로 설정하고 작품을 전개했 다. 그랬기에 여장(女裝)화소가 가능했다. 춘향의 신분을 기생과는 전혀 관 계가 없는 평민으로 설정하는 모험은 적어도 조선에서는 시도하지 못했던 일이다. 기생과 관련이 없는 춘향은 더이상 <춘향전>의 주인공으로 어울 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프랑스판 춘향전에서의 변화는 전체 <춘향전>을 놓고 볼 때 신선한 또 하나의 시각을 제공해 준 다. 프랑스판 춘향전의 개작양상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은 단 지 19세기 말 프랑스 독서대중의 취향에 맞추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또 한 그러한 새로운 시각이 제공한 긴장감을 프랑스판 춘향전에서 끝까지 제대로 유지하지 못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시에 조선 안에서는 생 각하지 못했던, <춘향전>에 대한 밖의 시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가 있다고 생각한다. 프랑스판 춘향전의 만남과 사랑 대목 이후에서 보이는 가장 두드러진 326 洌上古典硏究 제32집 특성은 극단적인 감정의 표출을 자제하고 대체로 줄거리를 전달하는 수준 으로 번역이 이루어졌다는 데 있다. 슬픔과 괴로움, 기쁨과 통쾌함을 마음 껏 드러내지 못한 것은 홍종우가 로니에게 제공한 정보가 그러했던 것인 지, 아니면 로니가 나름대로의 의도(또는 능력)에 따라 결정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로니는 프랑스판 춘향전이 발행된 지 10개월 쯤 지나서 홍종우 의 도움을 받아 춘향전을 번역하던 때를 회상하면서 “그랑 오귀스탱 거리 의 작은 호텔방에서 홍종우 씨는 춘향이의 감미로운 노래를 들려주었다(한 국어는 10음절씩 끊어서 읽는다). 그의 노래와 번역에서는 묘한 매력이 느 껴졌다.”17)고 언급하고 있다.
17) 로니, (한국의 문인이 본) 한국의 풍속 , 라 르뷔 블루 , 1893.7.8. (프레데릭 불레스 텍스, 앞의 책, 136쪽에서 재인용)
여기서 ‘노래’라는 것이 율독(律讀)을 의미하 는 것인지 아니면 판소리 창으로 불렀다는 것인지는 정확히 판단할 수 없 지만, 원래 <춘향전>에 비하여 프랑스판 춘향전에 노래로 불릴 만한 부분 들이 대거 탈락되어 있다는 점에서, 로니의 개작 의도나 번역 능력이 원인 이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홍종우의 의도가 로니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부분이 있음은 다음과 같은 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프랑스판 춘향전에는 모두 17개의 각주가 나타나는데, 이 각주는 프랑스 인들에게는 생소한 조선의 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거나 또는 부족한 번역의 문맥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조선의 풍습과 사정 을 잘 알고 있는 조력자 홍종우의 견해가 반영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단오(端午)날의 풍습(p.17), 까마귀나 기러기의 상징(p.30․p.71), 방자의 역할(p.16․p.97), 어사의 의미와 역할(p.102․p.131) 등에 대해서 효과적인 설명을 달았다.18) 그런데 그 중에는 홍종우의 생각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 한 것도 있다.
18) 한편, 사랑에 빠진 이도령이 잠을 들지 못하다가 창문을 열고 바라보는 밖의 풍경묘 사 중에 “달은 밝았고 별은 드물었으며, 까마귀들은 남쪽으로 날아가고 있었 다.”(p.30)는 표현은 조조(曹操) <단가행(短歌行)> 중 “月明星稀, 烏鵲南飛”라는 구절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 확실하다. 이러한 정보는 홍종우가 로니에게 주었을 것 이다.
‘이도령’에 대한 설명으로, “이도령. 아버지에게서 이어받은 이름은 이(I)이다. 아들이 여럿 있었다면 ‘이등’의 아들은 모두 ‘이도령’이라 불렸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경우에는 구별하기 위하여 제3의 이름이 필요 했을 것이다. 예를 들면, 그들 중 한 명이 이도령-우(I-Toreng-Ou)라고 불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p.13)라는 각주를 붙였다. ‘도령’이 ‘결혼하지 않 은 남자’라는 간단한 의미라는 것을 홍종우가 몰랐를 리 없다. 그러나 각주 의 설명은 ‘도령’을 마치 서양의 미들네임(middle name)처럼 인식하고 있 고, 따라서 형제들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제3의 이름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프랑스판 춘향전에는 호칭과 관련된 이와 비슷한 오류가 몇 군데 더 나 타난다. 이도령의 아버지를 지칭하는 ‘이등 사또’에서 ‘등’은 이름이 아니라 등내(等內), 즉 현재 벼슬을 맡고 있다는 의미의 말이다. 따라서 ‘이등 사 또’라고 하면 ‘이씨 성을 가진 현직 사또’라는 뜻이 된다. 그런데 프랑스어 춘향전에서는 ‘등’을 이름으로 생각하여 ‘이등이라는 이름의 관리(un mandarin nommé I-Teung)’(p.13)라고 번역하였다. 또한 ‘운봉영장’에 대 해서도 ‘영장이라는 이름의 운봉의 관리(le mandarin de Oun-Pong, nommé Yong-Tchang)’(p.126)라고 번역함으로써 ‘영장(營將)’의 의미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였다. 홍종우가 이러한 용어의 의미를 몰랐을 리는 없다. 따라서 그의 생각과 견해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부분도 상당히 있 으며, 이는 근본적으로 일본어 통역을 사이에 두고 의견을 교환해야만 하 는 번역상황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구절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 확실하다. 이러한 정보는 홍종우가 로니에게 주었을 것 이다.
4. 프랑스판 춘향전의 후대적 변모
1892년 파리에서 번역된 프랑스판 춘향전이 프랑스에서 얼마나 많이, 어 떻게 그들에게 읽혔는지, 그리고 번역에 동참했던 홍종우가 바라던 조선에 대해서 인식이 바뀌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최근 발굴된 몇몇 자 료는 프랑스판 춘향전이 이후 다른 국가로까지 전파된 사실을 설명해 주고 있다. 전신이 러시아 왕립 발레단이었던 모나코 소재 몬테카를로 러시아발레 단(現모나코왕립발레단)은 1936년 4월 4일 <사랑의 시련(L’Epreuve d’Amour)>이란 제목의 작품을 공연하는데, 당시의 공연안내책자에는 이 작품의 제목 아래에 부제(副題)가 ‘충양과 욕심에 찬 관리(Chung-Yang et le Mandarin Cupide)’라고 되어 있다. 내용은 발레 스타일에 맞게 변형 된 부분이 많지만, 등장인물의 장식이나 무대배경 그림 등은 동양적인 모 습을 하고 있다. <사랑의 시련>의 안무 및 연출은 러시아의 유명한 안무가 미하힐 포킨(Michel Fokine, 1880~1942)이, 무대 및 의상은 프랑스의 야 수파 화가 앙드레 드랭(André Derain, 1880~1954)이 맡았다. 이 작품은 유럽지역에서 인기가 높았던 레퍼토리로, 모나코 외에도 파리․런던․뉴 욕 등에서 여러 차례 공연되다가 제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 발레단이 해체 되면서 더 이상 공연되지 못했다. 그 후 1956년 핀란드국립발레단에 의해 서 헬싱키에서 다시 공연을 이어갔고 최근에도 공연을 한 적이 있다고 한 다. <사랑의 시련>은 그 부제가 말해주듯이 <춘향전>이 그 바탕이 되었 던 것은 분명하고, 옥스퍼드 발레사전 에는 <사랑과 시련>이 한국의 이 야기에 기초하고 있다(based on a Korean fairy-tale)고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이 방면의 연구자들은 <사랑의 시련>의 성립에 절대적인 영 향을 미칠 수 있었던 미하힐 포킨과 앙드레 드랭이 프랑스판 춘향전을 접 하고 이를 변형하여 완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19) <사랑의 시련>은 발레 스타일에 맞게 <춘향전>의 서사를 상당히 변형 했기 때문에 프랑스판 춘향전의 직접적인 영향이라고 아직 확정할 수는 없지만, 다음의 베트남판 춘향전은 이와는 사정이 다르다. 베트남판 춘향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현재 두 종류가 전하고 있다. 응웬 동 찌(Nguyen Dong Chi, 1914~1984) 교수가 1982년 베트남 민담 집 (全5권, 베트남사회과학출판사)을 발행하는데, 제5권에 <춘향낭자전> 이라는 제목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 응웬 동 찌 교수는 이 <춘향 낭자전>의 출처로 1910년 티쏘(H. Tissot)의 글을 인용했다고 밝혀두었다. 이 티쏘의 글은 북부베트남 총독부에서 프랑스인을 상대로 베트남어를 강 의하는 교재에 수록되어 있다. 이 교재가 만들어진 시기가 1910년이고, 베 트남어를 프랑스어로 번역하는 총27과 중 제21과에 ‘춘향낭자(Nang Xuan Houng)’라는 제목의 글이 실려 있다. 따라서 베트남 민담집 (1982)에 수 록된 <춘향낭자전>은 이 1910년 티쏘의 <춘향낭자>를 참고해서 부연한 것으로 볼 수 있다.20) 베트남판 춘향전을 발굴해서 연구했던 배양수 교수는 20세기 초 일본 등에서 조선인으로부터 이 이야기를 직접 듣고 들여와 티쏘가 교재에 수록 했을 가능성을 들어 한국 춘향전의 이식이라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다.21) 그러나 베트남판 춘향전은 한국의 춘향전과 직접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프랑스판 춘향전의 영향으로 보는 것이 올바르다.
19) 이상 전주MBC 창사42주년 특집다큐 <춘향>(1부: 1936 춤추는 춘향) 참조.
20) 이상 배양수, 배트남판 춘향전의 근원 , 한국공연문화학회 편, 춘향예술의 양식적 분화와 세계성 , 박이정, 2004, 283-303쪽 참조.
21) 배양수, 위의 논문, 291-293쪽.
1910년 티쏘에 의해 정착된 베트남판 춘향전 <춘향낭자(Nang Xuan Houng)>의 대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주 옛날 북부지역에 춘향(Xuan Houng)이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여인 이 살고 있었는데, 단오날 그네를 타고 있었다. 같은 마을에 사는 관리의 자제 똥느라이(Tong Nhu Lai)가 그녀의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진다. 똥 느라이의 하인이 돈을 벌 욕심으로 똥느라이에게 여장(女裝)을 하여 춘향 과 만나게 한다. 똥느라이와 춘향은 의자매를 맺는 등 친하게 지내며 공부 도 하고 놀기도 했다. 춘향이 “언니가 남자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말하 자 똥느라이는 이 말을 믿을 수 있도록 서약서를 써 달라고 하고, 춘향은 농담으로 알고 서약서를 쓰고 서명까지 하였다. 똥느라이가 옷을 벗고 남 자의 모습으로 변해버리자 춘향이 놀라 자신은 평민의 딸이니 버리라고 말한다. 똥느라이가 춘향을 버리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써 주고 나서 두 사 람은 사랑을 확인하고 합방을 한다. 그로부터 사흘 후 똥느라이의 부친이 왕을 곁에서 모시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게 되어 두 사람은 슬픈 마음으로 이별을 한다. 똥느라이는 과거시험에서 장원급제를 하여 암행어사를 제수 받고 거지차림으로 춘향이 사는 고을에 도착한다. 어사는 신관 사또의 희 롱에도 불구하고 춘향이 자신을 위해 수절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감옥에 갇혀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또한 유생들로부터 춘향의 고난과 똥느라이의 무정함 그리고 신관 사또의 악행 사실을 알게 된다. 사또가 큰 잔치를 열 어 즐기는 자리에서 춘향을 처형하려고 하는 순간 암행어사가 출현한다. 사또는 포박당하고 춘향은 영문을 몰라 겁에 질려 있었지만, 춘향의 모친 은 너무 기뻐했다.22)
22) 전문을 번역한 것은 배양수, 위의 논문, 296-298쪽에 실려 있다. 이 인용문은 번역본 을 참고해서 요약한 것이다.
티쏘의 베트남판 춘향전은 그 길이가 길지 않다. 번역문을 기준으로 원 고지 10장 정도밖에 되지 않는 소략한 분량이다. 따라서 대화나 묘사는 거의 없고, 문맥이 연결되지 않는 부분도 있어 마치 줄거리를 아주 간략하게 요약해 놓은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텍스트 자체가 문학적인 감상이 목 적이 아니라 번역 연습을 위한 교재의 예문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소략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베트남판 춘향전에서 프랑스판 춘향 전과 유사한 부분을 굉장히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남주인공 똥느라이가 여장(女裝)을 하고 춘향을 만나며 나중에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설정이 대표적인데, 현재 한글본을 포함해서 국내외에 남 아있는 <춘향전> 가운데 이러한 화소를 가지고 있는 이본은 프랑스판 춘 향전과 이 베트남판 춘향전밖에 없다.23) 또한 방자가 돈을 받고 이러한 계 략을 꾸미는 것24)이라든지, 여주인공 춘향의 신분을 평민으로 설정한 것25), 그리고 향단이 등장하지 않고, 춘향 모친의 역할이 미미하다는 것 등을 통해 베트남판 춘향전이 로니가 번역한 프랑스판 춘향전과 매우 밀접 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베트남판 춘향전의 춘향이야기가 끝나고, 마지막에 붙어 있는 다음 과 같은 발문(跋文) 성격의 글도 주목할 만하다. 삼천 년이 지났지만 북부지역에서는 여전히 춘향 아씨 얘기를 들을 수 있다. 북부지역 사람들은 이 얘기가 사실이라고 믿고 있다. 서양을 여행한 트엉썬(Thuong Son)의 비서가 이 얘기를 번역해 주었다. 그러나 이 얘기 를 만든 사람이 누군지는 모른다.26)
23) 배양수, 위의 논문에서 “남성이 여성으로 가장하여 여주인공에게 접근하는 방식은 베트남의 ‘쭈엔놈’에서 흔히 있는 일로, ‘호앙 쯔우’라는 작품에서도 나타난 다.”(286-287쪽)고 하였으나, 베트남판 춘향전의 여장(女裝) 모티프는 프랑스 춘향 전의 것을 그대로 가져온 것으로 보는 것이 온당하다.
24) “그 하인은 작심하고 ‘이제 큰 돈을 벌 때가 되었어.’라고 말했다. 하인은 똥느라이에 게 ‘도령께서 사천 동을 나에게 준다면 춘향 아씨를 만나게 해 주겠소.’라고 약속했다. 배양수, 위의 논문, 296쪽.
25) “똥느라이는 그녀를 달랠 수 없었다. 그녀는 ‘저를 버리세요. 저는 평민의 자식이에 요.’라고 말했다.” 배양수, 위의 논문, 297쪽.
26) 배양수, 위의 논문, 297-298쪽.
여기서 말하는 ‘북부지역’은 조선(한국)을, ‘서양’은 프랑스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조선에서 춘향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또한 사실이라고 믿고 있다는 것, 이 이야기를 만든 사람이 누군지 모른다는 것 등은 프랑스 판 춘향전의 로니의 <서문> 중 “이도령과 춘향의 모험담은 허구가 아닌 것으로 전해진다. 이도령의 후손들은 지금도 이 반도의 수도인 서울 (Seoul)에 살고 있다. 조선(Coree)에서 너무 유명한 이 이야기는 작자를 알 수 없는데, 조선의 소설은 반정부적인 비판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27)라는 구절에서 연유한 것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프랑스를 여행했던 트엉썬이라 는 사람의 비서가 로니 번역의 프랑스판 춘향전을 읽고, 이를 티쏘에게 번 역해 주었으며, 이 번역에 근거하여 티쏘는 베트남어 교재에 춘향전을 수 록할 수 있었던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베트남은 1884~1945년에 프랑스의 식민지였고, 프랑스판 춘향전이 발 행된 것은 1892년이다. 결국 프랑스판 춘향전이 발행된 1892년 이후에서 티쏘의 베트남판 춘향전이 나오는 1910년 이전에 트엉썬의 비서가 프랑스 판 춘향전을 접한 셈이 된다. 또한 이러한 사실을 통해 프랑스판 춘향전이 어느 정도 인기도 있었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홍종우 자신도 고목에 핀 꽃 의 서문을 통해 프랑스판 춘향전이 성공을 거두었다고 밝힌 바 있고28),
27) Printemps Parfumé, p.3.
28) “몇 달 전에 나는 프랑스 작가인 로니 씨와 공동으로 <춘향전>을 번역했다. 이 책은 꽤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 이 책이 출판된 후로 프랑스의 몇몇 식자들이 우리나라의 고대문학 중에 번역할 만한 것이 없는지 내게 물어왔다.” Le Bois sec refleuri, pp.3-4. (조재곤, 앞의 책, 297쪽에서 재인용)
프랑스판 춘향전이 포함된 기욤소총서(Petite Collection Guillaume)가 대 중적이면서도 권위가 있는 문고판전집이었다는 사실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5. 맺음말
19세기 조선에서 프랑스로 건너간 <춘향전>이 그곳에서 어떻게 변화했 고, 그 변화된 프랑스판 춘향전이 이후 또 어떻게 다른 모습으로 변모했는 지를 살펴보고자 했다.
그 결과 프랑스판 춘향전은 경판 23장본 <춘향전> 을 비롯한 경판계열 춘향전과 친연성을 보임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일반적 인 <춘향전>과 달리 춘향의 신분을 기생이 아닌 평민으로 설정하는 변화 를 시도함으로써, 여장(女裝)화소가 나타나게 되었고 이에 따라 방자와 노 파의 역할이 커지게 되었다. 그리고 번역의 한계로 말미암아 기쁨과 슬픔 을 극대화하는 노래나 사설이 생략되고, 줄거리 중심으로 서사가 진행되는 양상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프랑스판 춘향전은 1892년 출판된 이래, 모나코에서 발레 <사랑의 시련>으로, 베트남에서 <춘향낭자> 등으 로 또다시 변모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프랑스판 춘향전은 <춘향전> 이 우리의 손을 떠나 외국으로 전파되면서 어떠한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었 고, 바뀔 수 있는지에 대한 좋은 모델을 제시해 준다고 하겠다.
이 논문에서 충분히 논의되지 못한 과제를 드러내고 후고를 통해 보충 할 것을 약속하는 것으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우선 프랑스판 춘향전의 출 판 및 유통상황을 보다 자세하게 알 수 있는 자료가 보충되고, 1895년과 1897년에 출판된 홍종우의 다른 번역서들의 번역양상과 특성까지 파악할 수 있게 된다면, 프랑스판 춘향전의 번역 의도에 대해 보다 합리적인 결론 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 춘향전의 후대적 변모에서 다루었던 발레 <사랑의 시련>에 대해서는 보다 신뢰할 수 있는 관련자료를 수집하여, 프랑스판 춘향전 외에 다른 텍스트가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은 없는지를 따져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발레 텍스트이기는 하지만, <사랑의 시련>에서 변화된 서사적 내용에 대한 문학적 평가 또한 필요하다. 베트남판 춘향전 은 필자가 아직 베트남어 원문을 입수하지 못했기 때문에, 기존의 번역본 을 토대로 프랑스판 춘향전과의 비교를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 보다 정확 한 번역이 필요하다. 프랑스판 춘향전에 대한 연구는 궁극적으로 외국어 번역본 춘향전 전체로 범위가 확장되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안에서만 바 라보던 시각을 넘어서 밖의 시각을 확인할 수 있으며, 그것을 통해 고전 <춘향전>의 의미를 다시 되돌아보고, 현대 <춘향전>의 방향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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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초록】
<춘향전>은 조선후기 이후 지금까지 한국의 고전소설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인 식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외국인들의 관심을 받아왔고, 19세기 말에 벌써 많은 외국어로 번역된 작품들이 출판되었다. 1882년 일본인 나 카라이 도스이(半井桃水)가 오사카 아사히신문(大阪朝日新聞) 에 연재한 일 본어판 鷄林情話春香傳 , 1889년 미국의 선교사 알렌(H.N. Allen)이 Korean Tales라는 책에 수록한 영어판 ‘Chun Yang, the faithful dancinggirl wife’, 1892년 프랑스 소설가 로니(J.-H. Rosny)가 번역한 프랑스판 Printemps Parfumé, 1895년 독일인 아르노우스(H.G. Arnous)가 번역한 독일어판 ‘Chun Yang Ye, die treue Tänzerin’ 같은 번역본이 19세기에 번역 된 춘향전 외국어본들이다.
본고에서는 이 가운데 프랑스판 춘향전 Printemps Parfumé에 논의를 집중해서, 19세기 조선에서 프랑스로 건너간 <춘향전>이 그 곳에서 어떻게 변화했고, 그 변화된 프랑스판 춘향전이 이후 또 어떻게 다른 모습 으로 변모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했다.
그 결과 프랑스판 춘향전은 한국 최초의 프 랑스 유학생 홍종우의 도움을 받아 프랑스 소설가 로니에 의해 번역되었는데, 번 역의 모본이 된 텍스트는 경판 23장본 <춘향전>을 비롯한 경판계열 춘향전에 가 까울 것으로 추정했다.
또한 일반적인 <춘향전>과 달리 춘향의 신분을 기생이 아닌 평민으로 설정하는 변화를 시도함으로써, 여장(女裝)화소가 나타나게 되었고 이에 따라 방자와 노파의 역할이 커지게 되었다.
그리고 번역의 한계로 말미암아 기쁨과 슬픔을 극대화하는 노래나 사설이 생략되고, 줄거리 중심으로 서사가 진행 되는 양상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프랑스판 춘향전은 1892년 출판된 이 래, 모나코에서 발레 <사랑의 시련>으로, 베트남에서 <춘향낭자> 등으로 또다시 변모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프랑스판 춘향전은 <춘향전>이 우리의 손을 떠 나 외국으로 전파되면서 어떠한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었고, 바뀔 수 있는지에 대 한 좋은 모델을 제시해 준다고 하겠다.
핵심어 : <춘향전>, 번역본, 외국어본, 프랑스판 춘향전, 로니, 홍종우, 춘향의 신 분, 여장(女裝) 화소, <사랑의 시련(L'Epreuve d'Amour)>, <춘향낭자 (Nang Xuan Houng)>
Abstract
The Aspect of Adaption and Later Transformation of French edition Chunhyang-jeon Printemps Parfumé(1892) Jeon, Sang-uk* 29) Chunhyang-jeon is the most famous and representative work in the Korean old novels from the late Choseon period to now. Therefore not only Korean but also foreigners have shown an interest in this story. As this reason, Chunhyang-jeon has already been translated into foreign languages in the late 19th century. For example, There are Japanese edition 鷄林情話春香傳 (1882, 半井桃水), English edition ‘Chun Yang, the faithful dancing-girl wife’(1889, H.N. Allen), French edition Printemps Parfumé(1892, J.-H. Rosny), Deutsche edition ‘Chun Yang Ye, die treue Tänzerin’(1895, H.G. Arnous). Among these translations, this essay focused on the French edition. French edition Chunhyang-jeon Printemps Parfumé was translated by J.-H. Rosny who is a French famous novelist in its day. He recieved help from Hong Jong-u(洪鍾宇) who is a first Korean student in France. Printemps Parfumé was adapted for the French style, so heroine Chunhyang's social position was set to not Gisaeng(妓生) but the common people. As a result, hero Lee(李道令) had no choice to dress up as a woman for the meeting. For this distinctive motif, Bangja(房 子) and the old woman's role grew in the work. Finally, Printemps Parfumé is translated the Korean old novel Chunhyang-jeon into French language, in the process of translation the original work is tansformed into French style partially. Since Printemps Parfumé is publicated in France Paris 1892, this work is spread to another countries. Printemps Parfumé is based on the Ballet de Monte Carlo's in Monaco 1936, and the Tissot's textbook version in Vietnam 1910.
key words Chunhyang-jeon, translation, foreign language version, French edition, Printemps Parfumé, J.-H. Rosny, Hong Jong-u(洪鍾宇), Chunhyang's social position, dressing up as a woman motif, ,
논문투고일: 2010. 10. 31 심사완료일: 2010. 12. 7 게재확정일: 2010. 12. 8 336
洌上古典硏究 제3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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