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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야기

종말론적 언어 속에 암시된 미래 몸의 부활 사상 고린도전서 1-4장을 중심으로/오현정.Nepal New Covenant College

I. 서론

 

이 연구의 목적은 교회의 연합을 촉구하는 바울의 윤리적 권면(고전 1-4장)을 형성하는 종말론적 언어들을 살펴보고, 종말론적 언어들 속에 몸의 부활 사상(15장)이 암시되어 있음을 밝히는 것이다.

고린도전서는 바울 윤리학의 기본 이론이나 핵심 사상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자주 주목을 받아 왔다.

신론, 기독론, 그리고 종말론은 고린도전서에 나타난 바울 윤리학의 중심 사상으로 대두되었다.1)

 

    1) John G. Lewis, Looking for Life (London: T&T Clark, 2005); Michael Wolter, “Let No One Seek His Own, But Each One the Other’s (1 Corinthians 10, 24): Pauline Ethics according to 1 Corinthians,” Identity, Ethics, and Ethos in the New Testament, ed. by Jan G. van der Watt (New York: Walter de Gruyter, 2006); N. T. Wright, The Resurrection of the Son of God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03); Mariusz Rosik, “In Christ All Will Be Made Alive” (1 Cor 15:12-58), ESTPHR (New York: Peter Lang, 2013); Felipe De Jesus Legarreta-Castillo, The Figure of Adam in Romans 5 and 1 Corinthians 15: The New Creation and Its Ethical and Social Reconfigurations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14). 

 

그 가운데 바울의 몸의 부활 사상은 종말론의 한 부분이며, 고린도전서 15 장에는 이 사상이 전면적으로 등장한다.

폴 브라운(Paul J. Brown)은 고린도전서 15장에 나타난 몸의 부활 사상과 윤리의 상관관계를 논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의 미래 몸의 부활과 윤리의 관계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를 제출하였다.2)

다만 그의 연구는 15장에 국한되며, 1-4장에서 윤리적인 권면을 형성하는 데 바울의 미래 몸의 부활 사상이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는지에 관한 연구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고린도전서 1-4장의 교회 연합의 문제와 몸의 부활 사이의 관계를 연구할 때 가장 큰 난제는 십자가 사건이 윤리적 권면의 전면에 드러난 구절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이다(고전 1:17, 23; 2:2, 8).

하나님의 지혜인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세상의 지혜와 대조되며, 바울이 교회의 연합을 호소할 때 그의 권면을 형성하는 분명한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앤서니 C. 티슬턴(Anthony C. Thiselton)은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정체성에 근거해서 윤리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에 주목했다.

그는 바울이 교회의 연합에 관한 문제를 다룰 때,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과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문제 해결의 열쇠로 사용한다고 주장한다.3)

티슬턴의 주장처럼 지금까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고린도 교회 분열 문제 해결의 전방에 있었다.

특히, 고린도전서 2:2의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고린도 교회 내의 분열 문제를 해결하는 중심 사상으로 자주 인용된다.4)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개역개정)5)

 

     2) Paul J. Brown, Bodily Resurrection and Ethics in 1 Cor 15: Connecting Faith and Morality in the Context of Greco-Roman Mythology, WUNT 360 (Tübingen: Mohr Siebeck, 2014).

     3) Anthony C. Thiselton, The First Epistle to the Corinthians, NIGTC (Grand Rapids: Eerdmans, 2000), 53.

     4) Matthew R. Malcolm, Paul and the Rhetoric of Reversal in 1 Corinthians: The Impact of Paul’s Gospel on His Macro-Rhetoric, SNTSMS 155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3), 131; N. T. Wright, The Resurrection of the Son of God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03), 281.

     5) 별다른 표시가 없는 한, 성경의 한글 번역은 개역개정을 따른다.

 

그럼에도 명시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언급 때문에, 십자가 사건만 분열 문제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이라든지, 바울이 교회 연합을 논할 때 복음의 내용 중에서 부활을 제거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는 교회 연합에 대한 바울의 권면에서 미래 부활과 관련된 종말론적 표현들이 종종 나타나기 때문이다(참조. 1:7-8, 10; 3:12-15).

바울 복음의 내용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그의 부활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고린도전서 15장에 나타나는 바와 같이, 믿는 자들의 미래 몸의 부활을 보증한다(23절).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 갖는 의미가 그리스도인들의 미래 몸의 부활을 확증한다고 주장하는데(12-19절), 이는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파한 복음의 내용에 근거해서 그리스도인들의 미래 몸의 부활은 필연적인 요소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바울은 서신의 처음 네 장에서 복음을 바탕으로 교회 분열의 문제를 다룬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에 대한 강조는 상황에 따른 바울의 목양적 이유 때문이다.6)

바울은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그리스도의 부활이 함의하는 믿는 자의 몸의 부활을 이해하면서, 상황에 따라 권면의 바탕이 되는 주제를 선택한다.

비록 고린도전서 1-4장에서 미래 몸의 부활 사상이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교회 연합을 위한 권면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 바울이 종말론적 언어들을 사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고린도전서 1-4장에 나타난 바울의 종말론적 언어들은 교회의 연합을 권면하는 중요한 해결책이 된다.7)

 

    6) Wright, The Resurrection of the Son of God, 281.

   7) David C. Kuck, Judgment and Community Conflict: Paul’s Use of Apocalyptic Judgement Language in 1 Corinthians 3:5-4:5 (Leiden: Brill, 1991), 234-35. David C. Kuck 은 “종말론적 심판의 언어가 해결책을 만드는 도구로써 바울의 논의에서 중요하 다”고 지적한다. 

 

나아가 리차드 미들턴(J. Richard Middleton)이 “우리가 구원의 정점으로 바라고 기대하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방식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 바와 같이, 구원의 정점이 그리스도인의 구원의 종말론적 완성, 즉 그리스도인의 미래 몸의 부활이라면, 미래 몸의 부활에 대한 믿음은 그리스도인의 현재 윤리적인 삶에 영향을 준다.8)

고린도전서 15장은 이러한 관계를 잘 보여주는데, 구원의 정점인 믿는 자의 몸의 부활 사상과 윤리의 관계가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58절).

특히, 바울 자신이 위험을 무릅쓰고 복음을 위해 수고한 이유가 미래 몸의 부활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은, 바울의 미래 몸의 부활 사상이 그의 현재 윤리적 삶에 영향을 주고 있음을 잘 드러내 준다(30-32절).9)

만약 15장에 사용된 바울의 종말론적 표현들이 1-4장에도 나타난다면, 바울이 교회 연합을 위해 권면할 때 미래 몸의 부활 사상을 전제하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본고는 고린도전서 1-4장에 명시된 바울의 종말론적 언어들, 그리고 1-4장과 15장과의 사이에 나타나는 동일한 어휘나 문구를 신학적, 주석적, 개념적으로 비교 연구함으로, 교회 연합을 위한 바울의 권면에 사용된 종말론적 언어 속에 그의 미래 몸의 부활 사상이 암시되어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10)

 

      8) J. Richard Middleton, A New Heaven and a New Earth: Reclaiming Biblical Eschatology (Grand Rapids: Baker, 2014), 22.

     9) 미래 몸의 부활 사상이 윤리적 삶에 동기를 부여한다는 주장이 이행칭의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10) Richard B. Hays, The Conversion of the Imagination: Paul as Interpreter of Israel’s Scripture (Grand Rapids: Eerdmans, 2005), 6-7.

 

II. 바울의 종말론적 언어와 미래 몸의 부활 사상

 

고대 서신에서 감사의 말에는 서신 전반에 걸친 주제를 담곤 했다.11)

 

    11) Raymond F. Collins, First Corinthians, SP (Collegeville: Liturgical Press, 1999), 59. 

 

서신의 본체로 들어가기에 앞서, 감사의 말에 나타난 종말론적 표현을 살펴보는 것은, 이어지는 서신의 본체에 등장하는 교회 연합의 문제에 대한 권면을 형성하는 명시되거나 암시된 주제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1. 기다리는 사람들(고전 1:7)

 

다른 바울 서신과 비교할 때, 고린도전서의 감사의 말은 상대적으로 종말론적인 표현을 더 담고 있다.12)

 

   12) Collins, First Corinthians, 59; Thiselton, The First Epistle to the Corinthians, 108. 종말론적 주제에서 서신의 본체로 전환되는 본문으로 고전 1:7-8; 빌 1:10; 살전 1:10; 살후 1:6-10가 있다. 

 

종말론적인 표현 가운데, 미래 몸의 부활 사상과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것은 바울이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리는 자들이라고 묘사한 부분이다.

 

ὥστε ὑμᾶς μὴ ὑστερεῖσθαι ἐν μηδενὶ χαρίσματι ἀπεκδεχομένους τὴν ἀποκά- λυψιν τοῦ κυρίου ἡμῶν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저자 강조]

 

현재 분사 형태인 ἀπεκδεχομένους는 간절히 기다리는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상태를 나타낸다.

이 단어는 다른 서신에 다섯 번 더 나온다(롬 8:19, 23, 25; 갈 5:5; 빌 3:20).

다섯 번의 쓰임에서 동사 “간절히 기다리다”(ἀπεκδέχομαι)는 목적어와 함께 종말론적 기대를 나타내는 의미로 쓰였다.

빌립보서 3:20, ἐξ οὗ καὶ σωτῆρα ἀπεκδεχόμεθα κύριον Ἰησοῦν Χριστόν에서 기다리는 대상인 구원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는,흥미롭게도 “우리의 미천한 몸을 그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이 변화시키실 분”(ὃς μετασχηματίσει τὸ σῶμα τῆς ταπεινώσεως ἡμῶν σύμμορφον τῷ σώματι τῆς δόξης αὐτοῦ, 빌 3:21)이라고 소개된다.

즉, 기다리는 대상인,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로 말미암아 일어나게 될 믿는 자의 몸의 부활은, 동시적일 뿐만 아니라, 다시 오실 그리스도와 그가 하시는 사역이라는 점에서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로마서 8:19는 “하나님의 아들딸들이 나타나는 것”을, 25절은 “아직 보지 못하는 희망,” 다시 말해, 미래에 일어날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린다”(8:23)고 기록하는데, 몸의 속량은 곧 몸의 부활을 의미한다.13)

살펴본 바와 같이, 동사 “간절히 기다린다”(ἀπεκδέχομαι)는 다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와 믿는 자의 미래 몸의 부활을 직접적인 목적어로 취하며, 그리스도의 오심과 몸의 부활 사이에 모종의 긴밀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14)

서신의 감사의 말에 등장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들이라는 표현 속에는 동시적으로 일어날, 그리고 오실 그리스도가 행하실 미래 몸의 부활을 간절히 기다린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서신의 서두에 등장하는 감사의 말은 이어지는 본문 전반에 걸쳐서 앞으로 말하게 될 것을 “요약적으로 리허설”을 하는 것과 같은 기능을 한다.15)

이를 증명하듯 바울의 감사의 말에 나타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과 관련된 주제는 고린도전서 곳곳에 나타난다(3:13; 4:3; 5:5; 7:29; 11:26; 15:23, 52).16)

 

     13) James D. G. Dunn, Romans 1-8, WBC 38A (Waco: Thomas Nelson, 1988), 491. Dunn은 “몸의 속량”을 “몸의 부활”로 해석한다. 그는 부활한 몸은 “영적인 몸”으 로(고전 15:44-46)  “현재의 몸이 사람의 혼에 의해 움직이는 것처럼, 부활의 몸은 성령에 의해 움직이는 몸”으로 설명한다.

     14) Campbell, Paul and the Hope of Glory, 132, 351.

     15) Collins, First Corinthians, 59.

     16) Ciampa and Rosner, The First Letter to the Corinthians, 66.

 

이는 해당 주제가, 이어지는 고린도 교회에 일어난 문제들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과 권면을 형성하는 데 밑받침이 된다는 것을 시사한다.

레이몬드 콜린스(Raymond F. Collins)도 마지막 때에 그리스도의 오심(1:7; cf. 10:11; 15:24)과 주님의 날(1:8; cf. 3:13; 4:3; 5:5)을 지칭하는 종말론적 표현을 바탕으로, 바울이 서신의 본체 전반에 걸쳐서 말하게 될 것을 예견하는 것으로서 감사의 말의 기능을 강조한다.17)

더욱이 콜린스는 “바울이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논의를 마무리하면서 외치듯 터져나오는 감사(15:57)는 서신 본체를 실질적으로 마무리하며, 바울의 감사의 말(1:4-9)과 함께 문학적 완결성을 이룬다”고 본다.18)

그는 감사의 말은 부활을 다루는 15 장과 문학적으로 수미상관 구조를 이룬다고 주장한다.19)

감사의 말의 기능적인 측면과 문학적 수미상관 구조로 보자면,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라는 표현은 감사의 말을 전하는 바울의 의식 저변에 15장에 나타나는 그리스도인의 미래 몸의 부활 사상이 함께 자리하고 있음을 추정할 수 있게 해 준다.

또한 이어지는 교회 분열 문제를 다룰 때도 그의 권면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예상할 수 있다.20)

 

     17) Fitzmyer, First Corinthians, 571.

    18) Collins, First Corinthians, 59; Fitzmyer, First Corinthians, 571. 예를 들어, ἕως τέλους (1:8)는 마지막을 뜻하는 τὸ τέλος(15:24)와 짝을 이루는 수미상관 구조의 한 요소 이다.

    19) Collins, First Corinthians, 59.

    20) J. A. T. Robinson, “Resurrection of Christ,” NDT, 52-53; Campbell, Paul and the Hope of Glory, 132, 351.

 

2. 그 이름 주 예수 그리스도(고전 1:10)

 

1:10은 교회의 연합을 권면하는 바울 논증의 “주제 진술”이며, 이어지는 1:11에서 4:21까지는 이 구절의 내용을 자세히 설명한다.21)

 

Παρακαλῶδὲ ὑμᾶς, ἀδελφοί, διὰ τοῦ ὀνόματος τοῦ κυρίου ἡμῶν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ινα τὸ αὐτὸ λέγητε πάντες καὶ μὴ ῃἐν ὑμῖν σχίσματα, ητε δὲ κατηρτισμένοι ἐν τῷ αὐτῷ νοι καὶ ἐν τῇ αὐτῇ γνώμῃ.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 희는 모두 같은 말을 하고 너희 안에 분열이 없도록 하며, 같은 마음과 같은 판단으로 하나가 되라[저자 번역 강조]

 

전치사구 διὰ τοῦ ὀνόματος τοῦ κυρίου ἡμῶν ἸησοῦΧριστοῦ는 동사παρακαλῶ에 연결되어, 바울이 윤리적인 권면을 하는 데 있어 수단의역할을 한다.

이것은 고린도교회 그리스도들의 연합을 바울이 공식적으로 요청하는 모양을 띠게 한다.

바울의 교회 연합을 위한 공식적 요청에 권위를 실어주는 그 이름은 바울과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공개적으로 알려진 주 예수 그리스도이다.22)

 

    21) 앤서니 C. 티슬턴, 고린도전서(상권), 신지철 역, NIGTC (서울: 새물결플러스, 2022), 218; 데이비드 갈런드, 고린도전서, 조호영 역, BECNT (서울: 부흥과 개혁사, 2003), 70; Un Chan Jung, A Tale of Two Churches: Distinctive Social and Economic Dynamics at Thessalonica and Corinth, BZNW 252 (Boston: De Gruyter, 2021), 214; Margaret M. Mitchell, Paul and the Rhetoric of Reconciliation: An Exegetical Investigation of the Language and Composition of 1 Corinthians (Louisville: John Knox Press, 1991), 198-200. Mitchell은 이 구절을 고린도전서 전체 담론의 주요 진술로 여기는 반면, Garland는 1-4장의 주제 진술로 본다.

     22) Thiselton, The First Epistle to the Corinthians, 116.

 

고든 피(Gordon D. Fee)는 그 이름이 세례를 둘러싼 논쟁에 앞서 나오는 것에 주목하여, 이것은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속해 있음을 함의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이 전치사 구문이 데살로니가후서 3:6(“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규모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에서처럼, 바울이 연합에 관한 윤리적 권면을 형성하는데 기초가 된다고 주장한다.

피는 그 이름이 서신을 받는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바울의 가르침에 대한 권위를 부여하는 기능을 하는 것으로 보았다.23)

기능상 교회 연합을 촉구하는 바울 논증의 주제 진술문을 공식적 요청의 모양으로 만들고, 바울의 말에 권위를 실어주는 그 이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종말론적 기대를 표현하고 있는 앞의 문맥과 연결되어 있다.

감사의 말이 9절에서 마무리되면서 서신의 본체가 10절부터 시작되는데, 10절에 나오는 그 이름은 바로 앞서 나온 종말론적 비전의 맥락 속에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24)

감사의 말에 등장하는 종말론적 비전에는 두 번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나타난다.

그 두 번의 쓰임은 τὴν ἀποκάλυψιν τοῦ κυρίου ἡμῶν Ἰησοῦ Χριστοῦ(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 7 절)와 ἐν τῇ ἡμέρᾳ τοῦ κυρίου ἡμῶν Ἰησοῦ [Χριστοῦ](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8절)이다.25)

 

    23) Gordon D. Fee, The First Epistle to the Corinthians, NICNT (Grand Rapids: Eerdmans, 2014), 53.

    24) Thiselton, The First Epistle to the Corinthians, 108; Larry W. Hurtado, Lord Jesus Christ: Devotion to Jesus in Earliest Christianity (Grand Rapids: Eerdmans, 2003), 115- 17; Euichang Kim, The Fear of God in 2 Corinthians 7:1: Its Meaning, Function, and Eschatological Context, LNTS 605 (London: T&T Clark, 2019), 44-53.

    25) P 46 사본은 Χριστοῦ를 생략하지만 시내 사본은 Χριστοῦ를 본문에 포함한다. 

 

바울이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들로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을 묘사했을 때, 바울과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이 공개적으로 알고 있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은 종말론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그 이름은 하늘에서 나타나실 분을 가리키고, 능력 있는 천사들과 함께 불꽃에 휩싸여 오실 분의 이름이다(살후 1:7-8a).

그 이름은 바울이 죽은 자의 부활을 노래하는 고린도전서 15:57에도 동일하게 사용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죄와 죽음에 대한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의 대리자로 묘사된다. 그를 통하여 믿는 자에게 주시는 승리는 썩을 것이 썩지 않을 것을 입고, 죽을 것이 죽지 않을 것을 입는 몸의 부활을 의미한다(15:57).

바울은 파벌과 경쟁이 난무한 고린도 교회를 향해 공식적이면서도 권위 있게, 종말론적인 성격을 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분열이 없도록 하고, 같은 마음과 같은 판단을 하여 하나가 되라고 권면하는 것이다.26)

 

    26) 요한 칼빈, 고린도전후서, 박문재 역, 칼빈주석 (파주: 크리스천다이제스트, 2016), 46. 

 

3. 종말론적 심판 비유(고전 3:12-15)

 

종말론적 심판 비유는 바울이 고린도 교회가 연합하도록 촉구하는 경고의 근거가 된다.

분열 문제는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의 거룩함을 유지하지 않고, 세상의 지혜를 따르며 세속화되었기 때문에 발생했다(1:20).

세속화된 그리스도인들은 연약했으며(3:1-4), 목회자들과 그들의 사역에 대해 세속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3:5-11).

종말론적 심판 비유를 통해, 바울은 심판의 미래적 실제를 강조하면서 분열된 고린도 교회의 연합을 촉구한다(3:12~15).27)

 

    27) Fee, The First Epistle to the Corinthians, 150-57.

 

종말론적 심판 비유에 등장하는 ἡ ἡμέρα(그 날), μισθός(보상), κόπος(수고)의 의미를 파악하고, 15:58의 “너희의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다”는 구절과 개념적 연결점을 찾아봄으로써 몸의 부활 개념이 종말론적 심판 비유에 나타나는지 살펴보자.

 

가. 그 날(Ἡ ἡμέρα)

 

바울은 열여섯 번에 걸쳐 ἡμέρα(날)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롬 2:5, 16; 고전 1:8; 5:5; 고후 1:14; 엡 4:30; 빌 1:6, 10; 2:16; 살전 5:2, 4; 살후 1:10; 2:2; 딤후 1:12, 18; 4:8).28)

구약 성경의 예언서에서 “날”은 종종 “여호와의 날”을 의미하며, 하나님이 역사에 개입하시는 심판의 때를 말한다(사 10:20, 13:6, 9; 암 9:11; 슥 1:14-16, 18; 2:3; 슥 12:3-4; 말 4:1-6).29)

이는 때로는 과거 사건을 가리키기도 하지만(렘 2:22), 주로는 미래의 심판을 말한다(욜 2:1-11, 3:14-21; 말 4:5).30)

여호와의 날은 두려움의 시간일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에게는 회복과 축복의 시간이기도 하다(욜 3:18-21).31)

구약 선지자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경고하며, “그 날”의 선포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다운 윤리적 삶을 살 것을 촉구한다.

“여호와의 날”은 LXX에서 “주의 날”로 번역되고,32) 신약에서는 τῇ ἡμέρᾳ τοῦ κυρίου ἡμῶν Ἰησοῦ [Χριστοῦ](고전 1:8), τῇ ἡμέρᾳ τοῦ κυρίου [ἡμῶν] Ἰησοῦ(고후 1:14), ἡμέρας Χριστοῦ Ἰησοῦ(빌 1:6), τῇ ἡμέρᾳ τοῦ κυρίου(고전 5:5; 살전 2:2), ἡμέραν Χριστοῦ(빌 1:10; 2:16)로 나타나며,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을 의미한다.

그리스도 재림의 “그 날”은 종말론적 심판의 날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구원의 날이요 불신자들에게는 멸망의 날을 뜻한다.33)

주의 날은 의인과 악인을 구별하는 최후 심판의 날이지만 바울서신에서는 불신자보다 그리스도인(살전 5:9-10)과 더욱 관련 있는 날로 묘사된다.34)

 

    28) 롬 2:5, 16; 8:36; 10:21; 11:8; 13:12-13; 14:5-6; 고전 1:8; 3:13; 4:3; 5:5; 10:8; 15:4, 31; 고후 1:14; 3:14; 4:16; 6:2; 11:28; 갈 1:18; 4:10; 엡 4:30; 5:16; 6:13; 빌 1:5-6, 10; 2:16; 골 1:6, 9; 살전 2:9; 3:10; 5:2, 4-5, 8; 살후 1:10; 2:2; 3:8; 딤전 5:5; 딤후 1:3, 12, 18; 3:1; 4:8.

   29) Gregory J. Lockwood, 1 Corinthians (Saint Louis: Concordia, 2000), 115; Walter A. Elwell and Barry J. Beitzel, “Day of the Lord,” BEB (Grand Rapids: Baker Academic, 1988), 588. 30) Elwell and Beitzel, “Day of the Lord,” 588. 31) Elwell and Beitzel, “Day of the Lord,” 588.

   32) Richard H. Hiers, “Day of the Lord,” ABD, vol. 2, ed. by David Noel Freedman (New York: Doubleday, 1992), 83.

   33) Collins, First Corinthians, 158.

   34) Elwell and Beitzel, “Day of the Lord,” 588; Elmer A. Martens, “Day of the Lord,  God,” BEDBT, 146. 

 

리온 모리스(Leon Morris)는 그리스도인과 관련된 “그 날”의 두 가지 측면을 바르게 언급하는데, 하나는 행위에 대한 심판의 날이고, 다른 하나는 주님과 연합하는 날이라는 것이다(살전 4:17).35)

바울은 “그 날”에 죽은 자들이 몸의 부활을 입고 나서 구세주와 영원히 함께 할 것을 이야기한다(4:13-17).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행위 심판의 날, 그리고 주님과 연합하는 날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지닌 “그 날”은 몸의 부활이 일어나는 날임을 알 수 있다.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을 간절히 기다리는데, 그 날은 그리스도인들의 구속의 완성, 즉 몸의 부활이 있는 날이다(고전 1:8).36)

“그 날”은 환난 중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인내할 힘을 주지만, 그릇된 행동을 하는 자들은 부끄러움을 당하리라는 경고가 되기도 한다.37)

이렇듯 “그 날”이라는 바울의 종말론적 언어 속에는 미래 몸의 부활 사상이 전제되어 있다.38)

 

    35) Leon Morris, 1 Corinthians: An Introduction and Commentary, TNTC 7 (Downers Grove: IVP Academic, 1985), 70.      36) L. Joseph Kreitzer, Jesus and God in Paul’s Eschatology (Sheffield: UNKNO, 1994), 112. Kreitzer는 그리스도인들은 “그 날”을 간절히 기다리는데, “그 날”은 그리스도 인들의 구속의 완성, 즉 몸의 부활이 있는 날이라고 설명한다. 보상의 개념으로 쓰였다.  

    37) Martens, “Day of the Lord, God,” 148.

    38) Ben Witherington, Conflict and Community in Corinth: A Socio-Rhetorical Commentary on 1 and 2 Corinthians (Grand Rapids: Eerdmans, 1995), 134; Delling, “ἡμέρα,” TDNT 2:952. 

 

나. 보상(Μισθός)

 

바울은 μισθός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종말론적 보상을 가리키기도 하지만(3:8, 14), 다른 경우에는 일한 대가로 받는 임금을 의미하기도 한다(롬 4:4, 고전 9:17-18, 딤전 5:18).39)

아무튼 둘 모두는 수고에 대한 Μισθός와 유사한 의미로 ἔπαινος(고전 4:5)가 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는 아무도 아무것도 판단하지 않으시리니, 그는 또한 어둠에 감추어진 것을 밝히시고 마음의 동기를 밝히시리니, 그때 하나님으로부터 각 사람에게 칭찬이 있을 것입니다”(4:5, 저자 번역 강조).

칭찬으로 번역된 ἔπαινος는 찬양, 승인, 또는 박수를 의미한다.

찬양을 받는 것은 고대 그리스에서 종종 개인의 목표로 여겨졌다.

LXX에서 ἔπαινος는 공동체가 의로운 개인에게 주는 칭찬을 의미하며, 신약성경에서도 같은 칭찬의 의미로 쓰였다.

서로 다른 것은, LXX에서는 칭찬의 수여자가 공동체이지만, 신약에서는 하나님이시라는 점이다(롬 2:29, 고전 4:5).40) Μισθός의 정확한 의미에 대한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보상이 구원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는 견해에 반해, 고린도전서 3:15에서는 “어떤 사람이 해 놓은 일의 결과가 싹 타 버리면, 손해를 입을 겁니다.

그 자신은 구원을 받을 테지만 불 속을 거쳐나온 것과 같을 겁니다”(새한글성경)라고 명시하며, 건축자는 최소한 구원을 얻을 것임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보상이 구원을 의미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41)

마크 테일러(Mark Taylor) 역시 “일꾼은 구원받지만 그의 일은 불에 타 버리기 때문”에 “일꾼의 구원 대 멸망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바르게 설명한다.42)

이에 따라 모리스가 “잃어버린 자와 구원받은 자의 구별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 중에서도 잘 지은 자와 잘못 지은 자의 구별”이39) Collins, First Corinthians, 159. 40) Preisker, “ἔπαινος,” TDNT 2:587. 41) Ciampa and Rosner, The First Letter to the Corinthians, 156; Richard B. Hays, First Corinthians, Interpretation: A Bible Commentary for Teaching and Preaching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Press, 1997), 56. 바울의 사도적 사역에 대한 종말론적 보상에 대해서 언급하는 내용은 고전 9:15-18, 23, 27; 빌 2:16 참조. 42) Mark Taylor, 1 Corinthians, ed. by E. Ray Clendenen, NAC 28 (Nashville: B&H Publishing Group, 2014), 107. 오현정 _종말론적 언어 속에 암시된 미래 몸의 부활 사상❙443 라고 해석한 것이 적절해 보인다.43)

나아가 보상을 결정하는 기준은 어디까지나 일꾼이 아니라 수고의 결과이다.

실제로 고린도전서 3:8은 각자 수고한 대로 상받을 것이라고 말한다(ἕκαστος δὲ τὸν ἴδιον μισθὸν λήμψεται κατὰ τὸν ἴδιον κόπον). 이것은 일꾼과 보상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수고(τὸ κόπος) 와 보상(τὸ μισθός) 사이에 연관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보상의 평가 기준인 작품의 질은 일꾼의 수고가 세상의 지혜를 따른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일했는지 여부에 달려 있을 것이다.44)

허버트 프리스커(Herbert Preisker)와 에른스트 뷔르트바인(Ernst Würthwein)은 바울의 보상 개념을 이해하기 위한 두 가지 다른 접근 방식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바울서신에는 겉으로 보기에 모순되는 두 줄기가 있다. 하나는 유대교의 율법 종교에서 비롯된 보상과 심판에 대한 개념이고, 다른 하나는 칭의 에 대한 믿음과 성령의 부여에 대한 확신에서 비롯된 초기 기독교의 개 념이다. 이 둘은 모두 종말론적 지향의 결과물이다.45)

프리스커와 뷔르트바인에 따르면, 보상에 대한 초기 기독교적 이해는 성령에 의한 삶에 기반한다.

그리스도인의 사역의 열매는 성령으로 부터 유인하는 결과이다.

바울은 종종 유대 율법 종교의 보상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행위를 ‘하나님의 은혜’(κατὰ τὴν χάριν τοῦ θεοῦ τὴν δοθεῖσάν μοι)와 연결함으로써 보상 개념에 대한 유대 전통적 해석을 배제한다(3:10).46)

 

    43) Morris, 1 Corinthians: An Introduction and Commentary, 70.

    44) Ciampa and Rosner, The First Letter to the Corinthians, 156; John Calvin, Commentary on the Epistles of Paul the Apostle to the Corinthians (Grand Rapids: Baker Books, 2003), 2:66; Garland, 1 Corinthians, 119, 747.

    45) Preisker and Würthwein, “μισθός,” TDNT 4:721. 

    46) Preisker and Würthwein, “μισθός,” TDNT 4:722. 바울은 “χάρις, πίστις, παρρησία, εἰρήνη”라는 용어를 유대적 보상 개념에 더하면서, 초기 기독교적 보상 개념을 차별화한다. 

 

다가올 미래의 종말론적 보상 개념은 세상의 지혜를 따라 지도자들의 사역을 평가하는 교만한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의 태도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앨런 존슨(Alan Johnson)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칭찬의 어떤 형태로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3:14, 4:5).

이것은 일꾼들과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르신 사역을 돌아 보고 책임지게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이고 여러분은 하나님의 밭 이며 하나님의 건물이다.

일꾼과 밭 둘 다에게 미래 심판의 날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이 실질적인 관점을 통해 여러분이 좋아하는 그리스도인 리더들에게 교만스럽게 집착하는 태도를 바꾸라.47)

  

    47) Johnson, 1 Corinthians, IVPNT 7 (Downers Grove: IVP, 2004), 73. 

 

존슨은 종말론적 보상에 대한 깨달음이 지도자들과 성도 모두로 하여금 각자의 사역을 주의 깊게 살피게 한다는 점을 간과하지 않는다.

지도자들의 사역에 대한 종말론적 보상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경종의 메시지가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린도 교회는 거만하고 교만한 교인들로 인해 분열되어 있었고, 각자 세속적인 기준에 따라 지도자들의 업적을 평가하고 비교했다.

바울은 종말에 하나님이 지도자들의 수고에 보상하신다는 경고를 통해, 지도자들은 물론이고,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도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심을 갖기를 원했다.

이는 고린도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지혜로 지도자와 그들의 일을 판단하던, 왕의 위치(4:8)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위치(3:23)로 돌아갈 수 있는 동기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다. 수고(Κόπος)

 

Κόπος는 고린도전서에서 두 번 등장한다.

수고한 대로 상급이 주어지며(3:8), 수고가 헛되지 않음을 안다는 표현(15:58)에도 한 번 더 등장한다.

이 수고는 교회를 세우는 수고를 의미한다(4:10-13, 15:30-32). 수고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헛된 수고와 헛되지 않은 수고이다.

고린도전서 3:12-15에서 불에 타는 수고는 헛되고, 불로 시험한 후에 남는 수고는 헛되지 않다고 했다(참조. 15:58).

즉, 세상 지혜를 따르는 수고는 헛되고,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교회를 세우는 수고는 불시험에도 타지 않고 남아 있는 수고다.

불에 타지 않고 남는 수고가 있음을 통해, 현재의 수고와 종말 사이에는 연속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서 살핀 보상과 수고의 개념과 미래 몸의 부활 사이의 관계가 고린도전서 15:58에 나타난다.

 

Ὥστε, ἀδελφοί μου ἀγαπητοί,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형제들아 ἑδραῖοι γίνεσθε, ἀμετακίνητοι, 견고하고 흔들리지 말라 περισσεύοντες ἐν τῷεργῳ 그 결과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고 τοῦ κυρίου πάντοτε, εἰδότες οτι ὁ κόπος ὑμῶν 주 안에서 너희의 수고가 헛되지 않다는 것을 οὐκ εστιν κενὸς ἐν κυρίῳ. 알아라 [사역]

 

58절과 골로새서 1:23에 쓰인 같은 단어(ἑδραῖοι, μετακινούμενοι)를 고려한다면, 58a은 바울이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너희가 들은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말고 굳건히 서라”고 명령하는 것임을 알수 있다[저자 강조].48)

 

    48) Fee, The First Epistle to the Corinthians, 893; Garland, 1 Corinthians, 747. 

 

실제로 ὥστε는 앞에 나온 고린도전서 15장 전체의 내용을 받으며, 개념적 수미상관 구조에 따라 “복음 안에서 굳건하고 흔들리지 말라”고 번역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참조. 골 1:23).

중요한 것은 이 복음의 내용이다.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이 흔들리지 말고 굳건히 서야 할 복음의 내용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으며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의 부활을 보장하는 첫 열매가 되셨다는 것이다(고전 15:3-4).

나아가 접속사 ὥστε가 받는, 앞의 본문을 조금더 구체적으로 살펴본다면, 미래 몸의 부활에 무게의 중심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고린도전서 15장은 몸의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에 관한 문제를 다루며, 바울이 믿는 자들의 미래 몸의 부활이 실재함을 논증하는 장이기 때문이다.

현재 분사 “더욱 힘쓰면서”(περισσεύοντες)와 완료 분사 “알면서”(εἰ- δότες)는 명령 동사 “되라”(γίνεσθε)와 시간상 동시적이며, 명령 동사“되라”(γίνεσθε)의 결과를 나타낸다.49)

 

    49) Daniel B. Wallace, Greek Grammar Beyond the Basics (Grand Rapids: Zondervan Publishing House, 1996), 638. 

 

그러므로 미래 몸의 부활에 대한 확신은,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이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동기와 원인이 됨을 알 수 있다. “너희의 수고가 헛되지 않다는 것”을 아는 것 또한 미래 몸의 부활에 대한 확신이 동기와 원인이 되어 그에따르는 결과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린도전서 15:58의 κόπος(수고)와 οὐκ εστιν κενός(헛되지 않다)는3:8에 나타난 εκαστος δὲ τὸν ιδιον μισθὸν λήμψεται κατὰ τὸν ιδιον κόπον (각자의 수고에 따라 자신의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과 개념적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개념적인 연결은 비록, 15장과 3장에 등장하는 고린도교회의 문제는 상이하지만, 각 문제를 다루는 바울의 의식 저변에는보상, 수고, 몸의 부활 개념이 동시적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개념들은 상이한 문맥에 따라 어떤 요소가 전면에 나타나기도하고 암시되기도 한다.

종말론적 심판 비유(3:12-16)에서 수고와 보상 개념은 전면에, 몸의 부활 사상은 암시되어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라. 종말론적 심판 비유의 기능과 몸의 부활

 

바울이 종말론적 비유를 기록한 목적은,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이 지도자와 그들의 사역을 세상의 지혜에 따라 판단하는 것을 막고, 지도자들을 추종하는 것으로부터 하나님께로 시선을 옮기기 위함이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교회의 연합에 영향을 준다. 바울의 종말론적 심판의 이미지(13-15절)는 교회를 분열시키는 사람들에게 생생하고도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이기 때문이다.50)

종말론적 심판 비유는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이 지도자들과 그들의 사역에 대해 바른 시각을 갖도록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교회의 연합을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파벌주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울은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주목하고 그들의 정체성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콜린스는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의 그리스도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바울이 서신의 시작부터 그들과 소통하는 데 초점을 맞춘 주제다”고 지적한다.51)

브라이언 터커(J. Brian Tucker)도 종말론적 비유의 기능이 정체성을 교정하는 것임을 인정한다.52)

 

    50) Fee, The First Epistle to the Corinthians, 157.

    51) Collins, First Corinthians, 164.

    52) J. Brian Tucker, You Belong to Christ: Paul and the Formation of Social Identity in 1 Corinthians 1-4 (Eugene: Pickwick Publications, 2010), 220, 223; Tucker, Remain in Your Calling, 222. Tucker은 정체성 형성에 관심을 가질 경우 바울의 기독론이 부활을 강조한다는 점을 받아들인다. 

 

종말론적 심판 비유로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에 대한 생각을 일깨운 후, 이어서 바울은 하나님의 성전으로서의 그들의 정체성을 제시한다(3:16).

종말론적 심판 비유는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정체성 전환의 순간을 마련하며, 분열된 교회의 연합을 위한 바울의 윤리적 권면을 제시하는데 충격을 가하는 역할을 한다. 종말론적 심판 비유의 기능은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종말론적 심판 비유는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이 지도자들과 그들의 사역을 참된 종말론적 관점으로 이해하게 한다.53)

각 지도자의 사역은 하나님의 지혜에 따라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54)

 

    53) Bart D. Ehrman, ed., The Apostolic Fathers, trans. by Bart D. Ehrman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2003), 411. 흥미롭게도 A.D. 100년경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디다케는 선지자에 대한 올바른 태도에 대한 지침을 제시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인들이 종말론적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을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승 인을 받고 진실하며 교회의 지상적 신비를 위해 일하는 선지자는 비록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하는 일을 하라고 가르치지 않더라도 하나님이 그를 판단하시 기 때문에 여러분이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고대 선지자들도 이런 식으로 행동했 습니다.”(디다케 11:11).

   54) Hays, First Corinthians, 55. Hays는 바울이 “불에 의한 심판의 이미지를 개인의 운명이 아니라 서로 다른 교회 지도자들이 수행하는 교회론적 건축 작업에 적용하 고 있다”고 말한다. 

 

바울은 이 종말론적 심판의 이미지를 사용함으로써 고린도 교회 회중의 시선을 뛰어난 교회 지도자들과 그들의 위대한 업적에서 교회의 참된 주인이신 하나님 한 분에게로 돌리고 있다.

  둘째, 이 짧은 비유는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진정한 심판자가 누구인지, 즉 판단하는 주체는 그들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심판자이시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깨닫는 것은 개인의 정체성 변화에 영향을 미친다. 종말론적 심판 비유는 고린도 그리스도인들에게 종말론적 정체성을 깨닫게 함으로, 심판자이신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자연스럽게 상기시켰을 것이다.

종말론적 심판 비유는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바울이나 아볼로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속하고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속한다는 종말론적 내러티브에 근거한 자기 정체성을 갖도록 한다.

이를 통해 이어지는 “너희는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주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인식 전환의 순간을 마련한다(16절).

  셋째, 종말론적 비유는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지도자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수고에 대해서도 종말론적 보상(품삯)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바울이 이 비유를 통해 기대하는 것은, 그들이 지도자들의 행위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행위도 종말론의 관점에서 바르게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다. 행위에 대한 바른 종말론적 인식은 분열을 멈추고 연합하여 살아가는 데 영향을 주게 된다.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첫 번째 서신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두 가지 시대가 관통하고 있다. 두 가지 시대는 현재 시대와 다가올 미래 시대를 의미한다. 이 두 시대에 대한 바른 이해는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윤리적 질문에 해답을 줄 수 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현재 시대에 다가올 미래 시대를 열었다.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이 두 시대를 동시에 살아가는 존재로,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 그 날에 일어날 몸의 부활을 기다리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고린도전서 1-4장에 나타난 분열 문제에 대한 바울의 권면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에 근거함에도 불구하고(1:17, 23; 2:2), 바울이 사용한 종말론적 언어는, 그의 권면이 미래 몸의 부활을 전제한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재림)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것을 배제하지 않는다. 종말론적 심판 비유에 나타난 “그 날,” “보상,” “수고”에 담긴 초기 기독교적 개념은 1-4장에서 연합에 대한 바울의 윤리적 권면을 형성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이러한 종말론적 언어들은 바울의 미래 몸의 부활 사상과 개념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몸의 부활 사상은 고린도 교회의 연합을 촉구하는 바울의 종말론적 언어들 안에 암시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4. 하나님의 성전(고전 3:16)

 

성전(ναός)이라는 단어는 바울 서신에 여섯 번 등장한다(고전 3:16, 17, 6:19, 고후 6:16, 엡 2:21, 살후 2:4).

명사 ναός는 그리스어로 “신들의 거처” 또는 “신전”을 의미한다.

사원을 의미하는 또 다른 단어는 ἱερόν 이 있는데, ναός는 “실제 집”을 의미하는 반면, ἱερόν은 “성전 전체”를 의미한다.

명사 ναός는 “거하다”, “거주하다”라는 뜻의 ναίω에서 유래했다.

Ναός는 히브리어 ~l'yae(대상 28:11, 대하 8:12, 29:7, 17)를 번역한 단어이다.55)

바울이 사용한 ναός는 종말론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유대인의 종말론적 희망을 보여주는 자료들(사 28:16; 겔 40-48; 욥 1:17; 에녹 91:13; 4QFlor)과, 예수께서 사흘 안에 성전을 일으키시겠다고 하신 말씀(막 14:58, 요 2:19)에서 ναός의 종말론적 의미가 나타난다.56)

바울은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을 하나님의 성전(ναός) 으로 명시한다(ναὸς θεοῦ ἐστε, 고전 3:16; τὸ σῶμα ὑμῶν ναὸς τοῦ ἐν ὑμῖν ἁγίου πνεύματός, 고전 6:19).

개인의 몸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보는 생각은, 영혼을 하나님의 집이라고 보는, 필로(Philo)에게도 나타난다. 반면에 스토아 사상은 몸을 영혼의 감옥으로 여기므로, 몸은 신이 거하는 곳이 될 수 없다.57)

몸에 대한 스토아 사상은 개인에게 집중하는 반면, 바울이 말하는 몸은 공동체성을 띤다.

3:16에서 성전은 너희라는 복수 주어와 함께 공동체성을 가진다.

6:19에서는 단수인 몸(σῶμα) 과 대등하게 단수 ναός로 표시되었으나, 속격 ὑμῶν을 고려할 때 역시 공동체성을 함의하고 있다고 보인다.58)

 

    55) Michel, “ναός,” TDNT 4:882.

    56) Fee, The First Epistle to the Corinthians, 159; Michel, “ναός,” TDNT 4:886.

    57) Michel, “ναός,” TDNT 4:886.

    58) τὸ σῶμα와 관련된 이문 τὰ σώματα(Α c L Ψ 33 외)는 필사자가 복수 속격 ὑμῶν에 맞춰, σῶμα의 복수 읽기를 선택했음을 보여준다. 

 

종말론적 심판 비유에는 지도자를 지칭하는 단수 주어가 쓰이다가, 이어지는 16절에는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을 나타내는 2인칭 복수로 바뀌는데, 바울은 이제 지도자들에 대한 진술에서 그들을 향한 경고로 전환한다.59)

의문문을 도입하는 οὐκ οἴδατε는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인 ναὸς θεοῦ ἐστε(3:16)를 각성시키는 기능을 한다.

바꾸어 말하면,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의 분열 문제는, 하나님의 성전된 그들의 정체성에 대한 무지와 오해에서 비롯된 것임을 보여준다.60)

바울이 분열 가운데 있는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명명하는 것은 그들의 참된 정체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성령을 따라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은 미래 몸의 부활의 현재적 의미에서 기인한다(참조. 롬 6:4).

몸의 부활의 현재적 의미로서 “성전” 주제는 고린도 서신에서 핵심적인 주제 중의 하나이다(고전 3:16-17; 6:19; 고후 6:16).61)

바울은 이전 구절에서 종말론적 심판 이미지로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지도자와 그들의 행위에 대한 잘못된 판단을 바로잡는다면(3:12-15), 이제는 성전을 주제로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의 현재적 정체성을 인식시킨다(3:16-17).

종말론적 심판 비유가 미래적 정체성을 각성시켰다면,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 주제는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그들의 현재적 정체성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62)

 

    59) 갈런드, 고린도전서, 171.

   60) Fee, The First Epistle to the Corinthians, 158; Michel, “ναός,” TDNT 4:882.

   61) Ciampa and Rosner, The First Letter to the Corinthians, 158.

   62) Tucker, You Belong to Christ, 227. 

 

바울의 성전 주제는 유대적 종말론의 전통과 상이점을 드러낸다.

유대적 종말론은 다가올 시대와 현 시대를 구분하지만, 성령의 전으로서의 정체성은 다가올 시대의 현재적 적용으로, 현 시대 안에서 다가올 시대의 존재로 살아가는 이미지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성령의  역할은 몸의 부활과 관련이 있다(롬 8:9-11).63)

성령은 다가올 시대에서 현 시대로 오셔서 종말의 “그 날”을 위해 그리스도인들을 지키고 준비시킨다.64)

 

     63)“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 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 8:9-11).

    64) Wright, The Resurrection of the Son of God, 285. 

 

성령은 공동체 안에 거하시면서 믿는 자들이 “그 날”까지 흠이 없고 강건하도록 견인하는 역할을 한다(고전 1:8; 3:16).

또한 성령은 그리스도인의 미래 몸의 부활을 보증해 준다.

로마서 8:9의 πνεῦμα θεοῦ οἰκεῖ ἐν ὑμῖν은 고린도전서 3:16에서와 같은 의미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영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며, 믿는 자 안에 거한다고 묘사한다(롬 8:11).

바울은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성전으로서의 정체성을 상기시킨 후, 스스로 속이는 것을 멈추고, 그들이 따르는 지도자들을 자랑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그들에게 속했고 그들은 그리스도의 것이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고전 3:23; 15:23, 28). 바울은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하는 어떤 것도 두지 말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멸하실 것이라고 경고한다.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으로서의 정체성 회복은 분열된 공동체를 연합으로 이끄는 중요한 동기가 되며, 성령이 그리스도인들의 미래 몸의 부활을 보증하고 성도의 삶을 견인하는 역할을 한다는 의미에서, 성전 주제는 바울의 미래 몸의 부활 사상과 연결되어 있다.

 

5. 고린도전서 1-4장과 15장 사이의 동일한 주제

 

고린도전서 1-4장과 15장에는 개념적으로나 주제적으로 같은 어휘나 구나 나타난다.65)

  첫째, 3:23(ὑμεῖς Χριστοῦ)과 15:23(οἱ τοῦ Χριστοῦ) 에서 “그리스도에게 속한다”는 문구가 나란히 사용되었다.

전자의 그리스도에게 속한다는 말은 1:12의 고린도 슬로건과는 내용상 대조적이다.66)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로서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성전으로 살아야 했다.67)

 

      65) M. R. Malcolm,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in 1 Corinthians,” Resurrection of the Dead: Biblical Traditions in Dialogue, ed. by T. Shepherd, BETL (Leuven: Peeters, 2012), 280.

     66) Ciampa and Rosner, The First Letter to the Corinthians, 168.

     67) Rosik, In Christ All Will Be Made Alive, 113. Rosik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을 “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자들”로 본다(고전 3:22b-23; 롬 8:9).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 다시 살아날 것이며(15:23), 부활을 부인하는 자들의 종말론과는 대조가 된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에게 속하고 그리스도는 하나님께 속한다고 말함으로써 그들이 확장된 종말론적 세계관을 갖도록 깨우치고 있다.

바울은 그들이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자신들이 몸을 입고 부활한다는 것을 깨닫기를 원했다(15장).

“그리스도께 속한”이라는 주제는 교회 연합을 위한 윤리적 삶에 대한 권면(1:1-4)과 부활을 부인하는 자들의 믿음을 바로잡을 때(15:23), 바울의 의식 속에 공통으로 자리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둘째로 동일한 개념은 “때”(καιρός)인데, 주님이 언제 다시 오실 것인지를 나타낸다.

바울은 지도자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고린도교회그리스도인들에게 미리 판단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주님은 인간의 모든 사적인 동기를 드러내실 것이기 때문이다(4:5).

주님이 재림하시는이 시간은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 안에 보장된 죽은 자의 부활이 일어나는 때(ἐν τῇπαρουσίᾳ αὐτοῦ, 15:23)와 같은 때이다.

바울의 “때”의 개념은 자랑하는 자들과, 부활을 부인하는 자들(15:23)에 대한 윤리적 가르침을 줄 때 공통으로 사용되었다.

   셋째, ἐβασιλεύατε(왕노릇하다[4:8])는 죽은 자의 부활 논증의 맥락에서 사용된 그리스도의 통치(15:25)를 반영한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의 현재 교만한 태도를 마치 부활 후 이미 주님과 함께 통치하는 것처럼 착각하는 것에 비유한다(4:8).

교회 내 분열을 일으키는 자들을 이미 “왕노릇한다”고 표현한 것은 미래 몸의 부활을 부인하는 자들을 바로잡기 위한 15장의 설명에 쓰인 “다스림”이라는 단어를 반영한다.

1-4장에서 교회의 연합을 바로잡기 위한 바울의 권면을 형성하는 데 사용된 ἐβασιλεύατε는 미래 몸의 부활로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 할 것을 염두에 둔 것임을 짐작하게 하는 단어이다.

  넷째, 바울은 4:9-13과 15:19에서 주님을 위해 수고한 자신의 모습을 묘사한다.

1-4장에서는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왕처럼 교만함을 버리고 자신을 본받아 주님을 섬기라고 도전하기 위해 수고하는 모습을 기록했다. 또한 바울은 죽은 자의 부활의 진실성을 주장하는 데에도 자신의 수고를 예로 들었다(15:19).

바울의 의도는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죽은 자의 부활이 있기 때문에 복음을 위한 어떤 고난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울의 수고는 이미 교만하게 왕노릇하는 자들과 부활을 부인하는 자들을 바로잡기 위한 각각의 맥락에서 동일하게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1-4장과 15장 사이의 동일한 단어와 개념인 “그리스도에게 속한,” “때,” 왕노릇하다,” 그리고 바울의 수고는 교회 연합에 관해 윤리적 권면을 할 때, 바울의 의식 속에 미래 몸의 부활 사상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IV. 결론

 

바울의 몸의 부활 사상이 교회의 연합을 촉구하는 윤리적 권면(1-4 장)을 형성하는 데 드러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1-4장에 나오는 바울의 종말론적 언어와 15장과의 사이에서 나타나는 동일한 어휘나 문구를 신학적, 주석적, 개념적으로 비교해 보았다.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라는 표현에서는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은 몸의 부활을 전제로 함을 알았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간절히 기다림이 함의하는 바는 곧 미래 몸의 부활을 간절히 기다린다는 것이기도 함을 밝혔다.

또한 감사의 말의 기능상, 그곳에 제시된 종말론적 개념이, 이어지는 교회 분열 문제를 다룰 때도 나타난다는 것을 추론했다.

교회 연합을 위한 권면의 주제 진술인 1:10에 쓰인 “그 이름 주 예수 그리스도”는 앞 문맥의 감사의 말에 나타난 종말론적 비전에 맞춰 종말론적 성격을 띠고 있음을 보았다.

그 이름은 몸의 부활을 노래하는 15:57에도 동일하게 사용된 것으로 보아, 그 이름이 몸의 부활 사상을 은연중에 암시한다고 보았다.

감사의 말과 15장이 내용 면에서 수미상관 구조를 이룸에 따라, 명시된 종말론적 표현 속에 암시된 몸의 부활 사상이 있음을 주장했다.

종말론적 심판 비유에서는 “그 날,” “보상,” “수고”에 대한 단어를 연구하고 각각의 어휘가 몸의 부활을 전제로 한다는 연결고리를 찾았다.

바울이 사용한 보상과 수고의 개념, 그리고 미래 몸의 부활 사상과의 관계는 고린도전서 15:58과의 연계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너희의 수고가 헛되지 않다”는 말에 암시된 보상의 개념과, 3:8에 나타난 각자의 수고에 따른 보상이 개념적으로 연결이 된다는 것을 살폈다.

이러한 개념적 연결의 구조 속에서 각각의 상이한 문맥에 따라 어떤  요소가 전면에 드러나거나 암시된다는 것을 보았다. 이에 따라 종말론적 심판 비유에서 보상과 수고의 개념은 전면에 부각되는 반면, 몸의 부활 사상은 배면에 암시되었다는 것을 살폈다.

하나님의 성전 주제에서는 성령이 거하시는 전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몸의 부활의 현재적 의미임을 밝혔다.

이는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이며, 이러한 하나님의 성전으로서의 정체성 회복은 분열된 공동체를 연합으로 이끈다는 것을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1-4장과 15장 사이의 동일한 어휘, 개념, 그리고 문구를 살펴보았는데, “그리스도께 속한,” “때,” “왕노릇하다,” 그리고 바울의 수고는 서신의 처음 네 장과 마지막 15장 사이에 나타난 동일 주제로, 교회 연합과 몸의 부활에 대한 윤리적 권면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바울의 의식 속에 내재된 공통 개념임을 논증했다.

십자가 사건이 고린도 교회의 분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전면에 나타나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이 부활을 완전히 배제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살펴본 바와 같이 몸의 부활 사상은 명시된 종말론적 표현과 개념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교회 연합을 위한 바울의 권면을 형성하는데 전제되거나 암시되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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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초록

고린도전서는 바울 윤리학의 기본 이론이나 핵심 사상을 담고 있다. 바울의 미래 몸의 부활 사상은 고린도전서 15장에 전면적으로 등장하며, 몸의 부활 사상이 그리스도인의 윤리적 삶의 중요한 동기나 원인이 됨을 보여준다. 이를 바탕으로 본 연구는 고린도전 서 1-4장에서 교회 연합을 촉구하는 윤리적 권면 속에 바울의 미래 몸의 부활 사상(고 전 15장)이 전제되거나 암시되어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고린도전서 1-4장에 명시된 바울의 종말론적 표현들인 기다리는 사람들, 그 이름 주 예수 그리스도, 종말론적 심판 비유에 등장하는 그 날, 보상, 수고의 개념, 하나님의 성전 주제는, 바울의 미래 몸의 부활 사상과 개념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1-4장과 15장과의 사이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주제인, 그리스도께 속한 것, 때, 왕노릇 함, 주를 위한 바울의 수고가 함의하 는 바는, 고린도전서 1-4장에 나타나는 교회 연합에 대한 바울의 권면에서 미래 몸의 부활 사상이 전제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고린도 교회의 연합을 촉구할 때, 바울의 미래 몸의 부활 사상은 명시된 종말론적 언어 속에 암시되어 있다.

 

주제어  종말론적 언어, 미래 몸의 부활, 윤리, 종말론적 심판 비유, 하나님의 성전

 

 

Abstract

The Future Bodily Resurrection Implied in Paul’s Eschatological Language in 1 Corinthians 1-4

Oh, Hyun Jung (Nepal New Covenant Collage, Lecturer)

1 Corinthians expresses the basic theories or core ideas of Paul’s ethics. Paul’s idea of the future bodily resurrection appears fully in 1 Corinthians 15, showing that the idea of the resurrection of the body is an important motivation or cause of the Christian ethical life. Based on this, this study aims to show that Paul’s idea of the future bodily resurrection (1 Corinthians 15) is presupposed or implied in his ethical exhortations for church unity in 1 Corinthians 1-4. Paul’s eschatological language in 1 Corinthians 1-4, the waiting people, the name Lord Jesus Christ, the day in the eschatological judgment parable, the concepts of reward, labor, and the temple of God-are conceptually linked to Paul’s future bodily resurrection idea. The recurring themes of belonging to Christ, timing, kingship, and the implications of Paul’s labor for the Lord in chapters 1-4 and 15 show that Paul’s exhortation to church unity in 1 Corinthians 1-4 presupposes the idea of the future bodily resurrection. In calling for the unity of the Corinthian church, Paul’s future bodily resurrection idea is implicit in his explicit eschatological language. 

 

Keywords eschatological language, future bodily resurrection, ethics, eschatological judgment parable, temple of God

 

신약논단 제31권 제3호∙2024년 가을

투고일: 2024. 8. 20. 최종심사일: 2024. 8. 30. 게재확정일: 2024. 9. 25 

 

종말론적 언어 속에 암시된 미래 몸의 부활 사상 - 고린도전서 1-4장을 중심으로.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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