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제제기
본고의 목적은 마왕퇴백서오행편(이하 ‘백서오행’)의 ‘천도(天道)’와 ‘인도(人道)’의 의미를 고찰하는데 있다.
백서오행편의 경우 1장에서부터 ‘천도’와 ‘인도’에 대해 정의하며, ‘오행(五行)’과 ‘사행(四行)’, ‘형어내(形於 內)’와 ‘불형어내(不形於內), ‘덕지행(德之行)’과 ‘행(行)’, ‘덕(德)’과 ‘선(善)’ 등의 개념들과 함께, 전편에 걸쳐 하나의 심성론을 구성하고 있다. 물론 그 속 에는 인식론,1) 정치사상 등의 여러 철학 사상들도 내포되어 있지만,2) 본고에 서는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심성론, 특히 심성론의 구조분석을 중심으로 논의하고자 한다.
백서오행편에 대한 연구가 대략 50년에 가까운 만큼 중국과 일본에서 많 은 성과가 도출되었으나, 국내에서는 여전히 몇 편의 소논문에 그치고 있다.3)
필자가 보기에는 중국 및 일본 학자들의 선행연구에서도 ‘오행’과 ‘사행’, ‘덕 지행’과 ‘행’ 등의 개념과, 그것에 연결되는 ‘천도’와 ‘인도’의 개념에 대한 설 명이 충분치 않은 부분들이 있다.
선행연구의 문제를 언급하기에 앞서, 백서 오행편의 가장 중심이 되는 1장을 먼저 살펴보자. 1장 경: ‘인(仁)’이 내면에 드러나는 것을 ‘덕지행’이라고 하며, 내면에서 드러나지 않은 것을 ‘행’이라고 한다.
‘지(智)’가 내면에 드러나는 것을 ‘덕 지행’이라고 하며, 내면에 드러나지 않은 것을 ‘행’이라고 한다.
의(義)’가 내면에 드러나는 것을 ‘덕지행’이라고 하며, 내면에 드러나지 않은 것을 ‘행’이라고 한다.
‘예(禮)’가 내면에 드러나는 것을 ‘덕지행’이라고 하며, 내 면에 드러나지 않은 것을 ‘행’이라고 한다.
‘성(聖)’이 내면에 드러나는 것 을 ‘덕지행’이라고 하며, 내면에 드러나지 않은 것을 ‘덕지행’4)이라고 한다.
1) 劉信芳의 경우에는 오행편을 치밀하게 구상하여 체계완비를 거친 인식론 학설이라고 보기도 한다(2000, p. 284).
2) 이케다 도모히사(池田知久)는 백서오행편에 ‘五行과 四行의 사상’, ‘德과 善의 사상’, ‘天道와 人道의 사상’, ‘愼獨의 사상’ 등 기본사상들이 있으며, 그 속에 포함되어 있는 ‘君 子’, ‘志士’, ‘有德者’의 인간유형 구별의 사상, 형벌·법률 사상, 존현사상, 천하·국가를 일 으키는 정치사상, 욕망사상 등이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1993, p. 85).
3) 강신석의 「郭店楚簡 君子論 五行 譯註(Ⅰ)」와 「郭店楚簡 君子論 五行 譯註(Ⅱ)」, 백종 석의 「곽점초간 오행편의 천도, 인도의 문제와 수양의 문제」, 박봉주의 「郭店楚簡의 君臣 論과 그 楚國史的 意味], 원용준의 「곽점초간 오행(五行)을 통해 본 고대 유가사상의 전 개 양상」, 석미현의 「역위에 나타나는 오행과 오상의 관계」 등이 있으며, 번역서로는 최 남규가 역주한 곽점초묘죽간이 있다.
4) 帛書 五行의 원문에는 ‘行’으로만 되어 있지만, 郭店楚墓에서 출토된 竹簡五行에는 ‘德之行’으로 되어 있다. 죽간오행뿐 아니라, 백서오행편의 「經」과 「說」 전체에서 ‘聖’을 ‘天’ 또는 ‘天道’로만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德之行’의 ‘德之’가 누락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다섯 가지 ‘덕지행’이 조화된 것을 ‘덕(德)’이라고 하고, 네 가지 ‘행’ 이 조화된 것을 ‘선(善)’이라고 한다.
선은 ‘인도’이고, 덕은 ‘천도’이다.5)
이를 간단히 도표화하면, 다음과 같다.6)
<표 1> 오행과 사행의 기본구조 오행 인·지·의·례·성 형어내 덕지행 덕 천도 사행 인·지·의·례 불형어내 행 선 인도
<표 1>에서 보듯, 오행과 사행 또는 천도와 인도를 구분하는 가장 큰 차이점 은 ‘성(聖)’의 유무이고, 그 다음은 ‘형어내’와 ‘불형어내’의 구분일 것이다.
물 론 본고에서도 ‘성(聖)’을 조금 다루겠지만, 그것보다 ‘형어내’와 ‘불형어내’, ‘덕지행’과 ‘행’, ‘덕’과 ‘선’, ‘심(心)’과 ‘신(身)’ 등에 포커스를 맞추어 천도와 인도를 논의할 것이다.7)
5) 帛書 五行, 1章 經, “仁形於內謂之德之行, 不形於內謂之行. 智形於內謂之德之行, 不形 於內謂之行. 義形於內謂之德之行, 不形於內謂之行. 禮形於內謂之德之行, 不形於內謂之 行. 聖形於內謂之德之行, 不形於內謂之行. 德之行五, 和謂之德; 四行, 和謂之善. 善, 人道 也. 德, 天道也.” 馬王堆帛書 五行편의 원문은 裘錫圭 主編의 長沙馬王堆漢墓簡帛集 成·肆(2014, pp. 8-95)를 저본으로 하며, 오탈자 표시 및 고대 한자 등은 모두 생략하고 현 대식 한자로만 원문을 옮겨둔다. 分章의 방식은 방박의 것을 참고한 池田知久 (1993)의 「第 二部 譯注編」을 따랐으며, 번역도 池田知久의 것이 가장 세밀하기 때문에 그의 번역을 많 이 참고였다. 다만 池田知久의 번역에 동의하지 못하는 경우는 裘錫圭의 釋文에 따라 필자 가 번역하였다.
6) 이 도식은 원용준 논문 (2022, p.136)의 ‘<표 1> 오행 제1장 인·의·예·지의 이중구조’를 참고하여, 인·의·예·지·성의 오행과 사행 전체를 포함한 도표이다.
7) 필자는 백서오행편에 깔린 구조와 그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 총 2편의 논문을 구상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오행편의 심성론 구조에 대한 재고찰로 시작하고, 지면상의 한계 때문 에 후속논문에서 聖과 그 정치사상을 주제로 삼아 자세히 논의할 예정이다.
왜냐하면 백서오행편 전체에 걸쳐 천도와 인도를 파악하는데 심성론의 구조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며, 그 구조는 ‘형어내’와 ‘불형어내’ 등에 포커스를 맞출 때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제 관련된 선행연구의 문제를 살펴보자. 먼저 오행편 연구에 있어서 중 국의 대표적인 학자 방박은 ‘삼중도덕론(三重道德論)’을 내세우며, 곽점죽간 육덕과 오행8) 및 백서오행 편들을 전체적으로 설명하고자 하였다.
그 중에서 그는 오행편의 ‘사행’을 “사회구성원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하는 사 회도덕”, ‘오행’을 “천지의 자식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하는 천지도덕”으로 규 정하였고,9) 그에 맞춰 사회적 존재로서는 사행이 있어야 하고, 정신적 존재로 서는 천도인 오행을 닦고 익혀야 하는 것으로 인간을 설명했다.10)
그는 ‘천도’ 를 ‘형이상’으로 간주하며, 사람이 천도를 깨닫기만 하면 인심(人心)의 내면에 형체를 이루어, ‘형어내’가 된다고 하였다.11)
또한 ‘인도’는 “사람의 도(道) 혹 은 사회도덕, 인성 내면의 직분, 사행 범위 안의 일” 등으로 규정하면서,12) “내 면의 깨달음 없이 단지 행동으로만 나타나는 행위”라고 보았다.13)
8) 오행편은 지금까지 곽점죽간과 마왕퇴백서 두 가지가 출토되었다. 곽점죽간의 경우 「經」 만 있으며, 백서에는 「經」과 그것을 설명하는 「說」이 추가되어 있다.
9) 龐樸은 五行편과 유사한 성격을 가진 곽점죽간 六德편까지 합하여, ‘三重道德論’을 내세웠다. 六德편은 夫婦간의 智信, 父子간의 聖仁, 君臣간의 義忠의 여섯 덕목을 논한 출토문헌으로, 이를 ‘사람이 가정의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하는 인륜도덕’으로 규정 하면서, ‘오행’의 천지도덕과 ‘사행’의 사회도덕까지 합해 ‘삼중도덕론’이라고 한 것이 다(2000, p. 105). 그러면서 거기에 맞춰 인간을 감성적 자연존재(육덕), 이성적인 사회적 존재(사행), 정신적 존재(오행)으로 분석했다. 六德편에 대한 필자의 연구가 미진하지만, 육덕은 가정뿐 아니라 군신관계도 포함하고 있어서 ‘가정의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하는 인륜도덕’이라는 방박의 설명에 의문을 갖게 된다.
10) 龐樸 (2000), p. 114.
11) 龐樸 (2000), p. 111.
12) 龐樸 (2000), p. 115.
13) 龐樸 (2000), p. 30.
‘사행’을 사 회적 인간관계의 외면적 측면으로 바라보고, ‘오행’을 천(天)으로부터 부여받 은 인간 내면의 도덕성으로 설명했다는 점에서 방박의 규정은 일면 수용할 만 하나, 백서오행편에서는 <10장~17장>을 통해 인간 내면의 도덕성이 외부의 행위로 실천됨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오행과 사행 즉 천도와 인도의 내적 연속성을 간과하였다는데 문제가 있다.
이는 ‘형어내’와 ‘불형어내’의 구분 때 문일 것이다. 그는 “오행의 ‘형어내’와 ‘불형어내’는 역전의 ‘형이상’과 ‘형이하’를 ‘내·외’에 형성되는 것으로 바꾸었다.”며 “‘불형어내’는 심(心)에서 형성되지 않았으나 안색·용모로 형성되는 기(氣), 이른바 인기(仁氣), 의기(義 氣), 예기(禮氣)가 있고, 그리고 그것에서 파생되어 나오는 모든 행위이다.
‘불 형어내’이니 덕이라고 칭할 수 없고, 행동거지에 형성되었으니 ‘인도’라고 불 러도 무방하며, 간략히 ‘선(善)’이라고 하였다. 이는 사람의 도덕적 실천이다.” 라고 하였다.14)
그러나 ‘형어내’와 ‘불형어내’의 관계가 천인합일이라고 설명 하면서, 그것은 “‘형어내’의 덕의 내용(인·의·예·지·성)과 ‘불형어내’의 선의 내용(인·의·예·지)이 중복되는 것에서 드러나며, 다만 그 차이는 전자의 경우 지(知)에 치중하고, 후자의 경우는 행(行)에 치중했을 뿐”이라고 하였다.
하지 만 ‘형어내’와 ‘불형어내’의 내적 연속성을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오행의 ‘인· 지·의·례·성’과 사행의 ‘인·지·의·례’의 중복을 근거로 ‘천인합일’의 관계를 언 급하는 것은 일면 모순적으로 느껴진다.
이에 필자는 내적 연속성 하에서 ‘형 어내’와 ‘불형어내’ 등을 재고찰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15)
큰 틀에서 오행 이 맹자의 성선설에 기반하고 있는데다, 오행 즉 ‘인·의·예·지·성’의 단서16)를 확충해가는 과정을 중요하게 다룬다는 점에서 사행의 ‘인·의·예·지’가 온전히 내면의 깨달음이 결여된 외부적 행위 내지는 외부적 학습에 의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14) 龐樸 (2000), pp. 158-159.
15) 방박 외에도 오행과 사행의 내적 연속성을 인정하지 않는 학자들이 있다. 郭沂는 ‘형어내’ 의 덕행 즉 오행은 자연스레 내재심성에서 형성된 行이고, ‘불형어내’의 행 즉 사행은 외재 적 도덕규범 학습을 통하여 형성된 行으로 규정하였다. 따라서 ‘불형어내’의 ‘行’은 인위적 으로 외재적 숙련을 통하여 도달하는 것이며, 덕성 또는 천도의 직접적인 체현이 아니라고 하였다(2001, pp. 147-150). 이는 오행이 선천적으로 발생하고, 사행은 후천적·인위적인 측 면의 것으로 이해한다는 점에서 이케다 도모히사의 천도와 인도에 대한 관점과 유사하나 가장 큰 차이는 오행과 사행에 내적 연속성이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陳來는 오행의 덕성이 내면에서 발동하여 외면으로 발현되는 관점을 취한다고 분석하면 서, 德之行과 行의 차이를 덕성으로부터 나온 도덕적 행위와 일반적인 덕행으로 구분하였 는데, 이 경우 行은 도덕원칙에 부합하는 행위라고 하였다(2009, pp. 120-121). 즉 사행은 덕성으로부터 나오지는 않았지만 도덕원칙에 부합하는 일반적 행위라는 것이다. 진래 역 시 곽기와 방박처럼 오행의 ‘형어내’와 사행의 ‘불형어내’를 내적 연속성이 결여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필자 역시 수년 전 발표한 「역위에 나타나는 오행과 오상의 관계」(2021, p. 48)라는 논문 에서 마왕퇴백서 오행편의 오행과 사행을 내적 연속성이 없는 것으로 이해하였으나, 본 고를 통해 관점을 수정하는 바이다.
16) 주지하듯이 端이라는 용어는 맹자 성선설의 용어이다. 곽점죽간이나 백서 오행에는 端 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仁·知·義·禮·聖을 완성해 나가는 시작 단계이자 필요조건으로서의 變·明·直·遠·聰을 오행의 단서로 명명하는 것은 맹자의 학설을 빌리는 격이 되지만, ‘단서’ 라는 용어 외에 달리 적합한 개념을 아직 찾지 못하였기에 ‘단서’를 차용한다.
반면에 오행편 연구에 있어서 일본의 대표학자인 이케다 도모히사(池田 知久)는 천도는 “‘인·지·의·례·성’의 ‘오행’이나 그 조화·통일로서의 ‘덕’이 인 간의 내면에 부여되어 있는 것의 선천성·자연성”이며, 인도는 “‘사행’의 조화· 통일로서의 ‘선’을 완성하기 위한 인간의 목적의식적인 후천적·인위적인 노 력”이라고 규정하였다.17)
그러나 그는 “이 양자는 결코 서로 모순되지 않으며, ‘오행’ 또는 ‘사행’이 인간 내면에 (그것들의 단서적인 형태로) 선천적·자연적 으로 부여되어 있는 것이면서, 또한 인간이 목적의식적으로 후천적·인위적인 노력을 쌓아 완성시켜 나가야 할 것도 있다고 하는 사상”이라며,18) “인간의 내 면에 선천적·자연적으로 부여된 단서의 단계에서는 오행과 사행이 구별되지 않음을 주의해야 한다.”고 하였다.19)
즉 천도와 인도 사이에 내적 연속성이 있 다고 보고 있으며, 필자 역시 여기에 동의하나,20) 그의 논의에서 발견할 수 있 는 문제는 인간의 본성[性] 즉 ‘심(心)의 본성[性]’과 ‘이목구비수족(耳目口鼻 手足)의 본성[性]’에 대한 논의를 천도와 인도의 프레임 속으로 온전히 끌어들 이지 못했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는 ‘심(心)’을 세 계정신 혹은 절대이상으로 논의를 전개해 나가며, 그것이 ‘덕’의 최종 완성단 계에 있는 것으로 분석하여, 결국 절대이상으로서의 ‘심(心)’을 천도에 귀결시 켰다.21)
이러한 그의 분석은 매우 탁월하다.
다만 ‘이목구비수족’의 감각기관 의 본성 즉 욕망의 발생 역시 선천적·자연적인 것인데, 오행편에서는 그 감 각기관의 욕망이 인의(仁義)와 조화를 이루어 일체가 되면 그것은 ‘선(善)’이 라고 하였고,22) 그에 따라 감각기관의 본성은 선천적인 천도이자, ‘선’의 영역 즉 후천적인 인도에 모두 해당하게 된다.
17) 池田知久 (1993), p. 119.
18) 池田知久 (1993), p. 120.
19) 池田知久 (1993), p. 99.
20) 중국에서는 黃俊傑이 “인·의·예·지·성 등의 5가지 미덕이 모두 사람의 마음에 있는 것(즉 ‘形於內’)을 ‘德之行’이라 하고, 그것이 외재행위에서 표현되는 것을 ‘行’이라고 한다.” (1991, p. 6)며 ‘형어내’와 ‘불형어내’를 연속적으로 생각했다.
21) 池田知久 (1993), pp. 142-149.
22) 帛書 五行 22장 說, “和則同. 和也者, 小體便便然不違於心也, 和於仁義. 仁義, 心. 同者, 與心若一也, □約也, 同於仁義. 仁義, 心也. 同則善耳.”
따라서 이케다 도모히사의 천도·인도 에 대한 규정은 부족한 측면이 있다고 하겠다.
이 역시 ‘형어내’와 ‘불형어내’ 에 대한 분석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케다 도모히사는 오행과 사 행이 연속성을 가진다는 전제 하에서, ‘덕지행’과 ‘행’에 대해서도, 전자는 인 간 내면에 선천적·자연적으로 부여된 행위이고, 후자는 그렇지 않은 후천적·인 위적인 행위로 구분하면서,23) 오행편의 저자가 굳이 왜 ‘형어내’와 ‘불형어 내’라고 표현하였나에 대해서는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이 외에 양도(梁涛)는 ‘형어내’와 ‘불형어내’를 내적 연속성을 가진 것으로 보는 관점과 그렇지 않다고 보는 관점을 모두 비판하면서, “오행의 ‘행’은 타인과 나의 사이, 인륜관계를 규정하는 ‘행’이고, 이러한 ‘행’은 아직 사람들 이 복종하고 실천하지 않을 때는 그것은 분명 ‘아직 의식화 또는 내재화 되지 않은 것’이지만, 일단 도덕주체와 관계되어 사람들의 실천대상이 되었을 때는 이미 ‘의식화’와 ‘내재화’를 시작하여, ‘형어내’의 ‘덕지행’과 연결된다.”고 주 장한다.
그는 ‘형어내’의 ‘덕지행’과 ‘불형어내’의 ‘행’을 ‘이중도덕률(二重道 德律)’로 규정하며 “전자는 내재도덕률이자 주체자각이고 후자는 외재도덕률 이자 객관규범”이라고 하였다.24)
즉 “덕과 선을 도덕주체의 자주·자율과 외재 적 타율의 2가지 다른 실천활동”으로 설명하며25) ‘이원론’이라고 규정한다.26)
23) 池田知久 (1993), p. 165, 10번 각주.
24) 梁涛 (2002), p. 41.
25) 梁涛 (2002), p. 44.
26) 梁涛 (2002), p. 49. 국내의 홍성민·유흔우는 梁涛의 견해가 합리적이라고 보았다(2017, p. 95).
주목할 만한 관점이기는 하나, 이 역시 ‘형어내’와 ‘불형어내’를 온전히 내적 연관성이 있다고 보지는 않고 있으며, 특히 이원론이라는 관점에 동의할 수 없 다.
필자는 오행의 심성론이 상부구조와 하부구조로 구성된 일원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백서오행편에 대한 선행 연구들의 논 의들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며, 내적 연속성 상에서 형성된 오행과 사행, ‘형어 내’와 ‘불형어내’, ‘덕지행’과 ‘행’, 천도와 인도, 덕과 선 등의 관계를 고찰함과 동시에 심(心)과 6가지 감각기관의 본성론 전체를 아울러 논의함으로써 천도 와 인도의 의미를 재고찰하고자 한다.
2. 단서의 발생
주지하듯이 심성론에서 ‘단서[端]’라는 용어는 맹자에서 처음 나타난다.
맹자는 측은지심·수오지심·사양지심·시비지심의 사단을 통해 인간의 내면에 인·의·예·지의 사덕이 내재함을 주장하였다.
곽점죽간 오행이나 백서오행 편을 자사나 맹자 학파의 저술이라고 보는 학자들이 많지만, 오행에서는 ‘단 서[端]’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맹자의 사단설도 나타나지 않는 것만 보더 라도 맹자 학파의 저술이라고 단언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이케다 도모히사의 고증에 따르면 오행편에는 중용·맹자·순자 등의 유가뿐 아니라 도 가·묵가·법가의 사상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27) 특히 오행편의 심 성론은 중용·맹자·순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7) 池田知久 (1993), pp. 54-82. 池田知久는 백서오행은 맹·순을 절충하고 여러 제자백가 사 상을 도입하려는 유가의 절충학파에 의해 쓰여진 저작으로 추정하였다.
그러면 오행편에서 제시하는 인·의·예·지·성의 단서를 하나씩 살펴 보자.
첫째 인(仁)의 단서는 변( /變)이다.
10장 경: 마음에 인하고자 하는 느낌을 느낄 수 없다면, 기쁨을 느낄 수 없다. 기쁨을 느낄 수 없다면, 사이좋을 수 없다. 사이좋을 수 없다면, 친밀 해질 수 없다. 친밀해질 수 없다면, 사랑할 수 없다. 사랑할 수 없다면, 인 (仁)을 실현할 수 없다.28)
28) 帛書 五行, 10章 經, “不 不悅, 不悅不戚, 不戚不親, 不親不愛, 不愛不仁.” ‘ ’은 백서 오행 「說」에서 ‘變’으로 되어 있고, 초간 오행에는 (弁)으로 되어 있다. 裘錫圭는 陳 偉와 李家浩 등의 학설을 종합하여, ·變· (弁)에 喜樂의 의미가 있다고 하였다(2014, p. 63). 방박은 ‘ ’을 ‘順從·思慕·柔好의 모습’이라고 하였고(2000, p. 166), 이케다 도모히사 는 ‘그리워하는(思い慕う) 기분’으로 번역하였다(1993, p. 250). 또한 백서오행 「說」에 “變也者, 勉也, 仁氣也.”라고 되어 있으므로, 즉 變은 仁을 지향하고 좋아하는 긍정적인 마음 정도의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처럼 인(仁)은 처음부터 인간의 내면에 부여된 완성태로서의 덕목이 아니 라, 그 시작은 인하고자 하는 마음속의 느낌, 감정, 기분이며, 그러한 변(變)이 바로 인(仁)의 단서가 된다.
또한 「설」에서는
“변이라는 것은 힘쓰는 것이고, 인한 기운이다.[變也者, 勉也, 仁氣也.]”라고 하여,
인(仁)의 단서를 인기(仁氣) 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그것을 확충했을 때 인(仁)이 실현된다고 보았기 때 문에, 인의 단서가 인간의 내면에 선천적·자연적으로 부여되어 있지만, 미완성 의 형태임을 알 수 있다.
10장의 경문에서 ‘형어내(形於內)’라는 표현은 없지만, 이 인(仁)은 인하고 자 하는 느낌[變/仁氣]→기쁨[悅]→사이좋음[戚]→친밀함[親]→사랑[愛]으로 연결되는 내면의 감정이나 기분 등 심리적 상태를 통해 실현되는 것이므로, 이 인(仁)은 ‘형어내’의 오행에 속한다고 하겠다.
10장 「설」에서 “마음에 인하고 자 하는 기분[變]을 품은 이후에야 인(仁)을 기뻐할 수 있고, 인(仁)과 사이좋을 수 있으며, 인(仁)과 친밀해질 수 있고, 인(仁)을 사랑할 수 있다.”29)고 하였으 므로, 내면의 변(變)·열(悅)·척(戚)·친(親)·애(愛)는 모두 인(仁)을 그 대상으로 하는 도덕감정 내지는 도덕법칙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측은지심과는 다 른 감정들의 나열로, 맹자의 사단설보다 훨씬 세밀하다.
11장 경: 정직한 마음을 품지 못한다면, 마음이 평온해질 수 없다. 평온 하지 않다면, 망설이지 않고 과단성 있게 판단할 수 없다. 과단성 있게 판단 하지 않는다면, (나쁜 일을) 정확하게 가려낼 수 없다. (나쁜 일을) 가려내지 않으면, 실제로 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행하고자 하는 마음 이 생기지 않으면, 의(義)를 실현할 수 없다.30)
의(義)의 단서는 내면에 부여된 ‘정직한 마음[直]’이다.
11장 「설」에서 “직 (直)이라는 것은 그 마음속에 정직한 것이며, 의로운 기운이다.”31)라고 하여,
인(仁)과 인기간의 관계처럼 의(義)로 실현될 수 있는 내면의 ‘의기(義氣)’라고 표현하였다.
29) 帛書 五行, 10章 說, “言變者而後能悅仁,戚仁, 親仁, 愛仁.”
30) 帛書 五行, 11章 經, “不直不肆, 不肆不果, 不果不簡, 不簡不行, 不行不義.”
31) 帛書 五行, 11章 說, “直也者, 直其中心也, 義氣.”
즉 의(義)는 그 단서인 정직한 마음[直]에서 시작해서 평온한 마음 [肆]→과단성 있게 판단함[果]→가려냄[簡]→행하고자 하는 마음[行]으로 점 층적으로 내면의 확충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12장 경: 남에게 거리를 두는 마음을 품지 못한다면, 남을 공경하는 마음 을 가지지 못한다.
남을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지 못하면 위엄을 갖추지 못 한다. 위엄을 갖추지 못하면 존엄할 수 없다.
존엄할 수 없으면, 남을 공손 하게 대하려는 마음가짐이 생기지 않는다. 남을 공손하게 대하려는 마음가 짐이 생기지 않으면 예(禮)를 실현할 수 없다.32)
예(禮)의 단서는 ‘남에게 거리를 두는 마음[遠]’이다.
12장 「설」에서는 그러 한 마음을 ‘예기(禮氣)’라고도 하였다.33)
마치 맹자의 ‘사양지심’이 가능하 려면 ‘남과 거리를 두는’ 심리적 요인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이러한 원 (遠)의 단서에서 경(敬)→엄(嚴)→존(尊)→공(恭)→예(禮)로 발전되어 간다.
이 케다 도모히사는 이 장을
“사람으로부터 멀어지는 사양의 마음이 없으면, 자신 이 타인에게 존경받을 수 없다. 존경받지 않으면, 위엄이 몸에 배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위엄이 몸에 배지 않으면, 존엄이 몸에 갖추어질 수 없다. 존엄이 몸에 갖춰지지 않으면, 공손하게 행동할 수 없다. 공손하게 행동하지 않으면, 예(禮) 를 실현할 수 없다.”고 번역하였다.34)
필자가 특히 12장에서 그의 번역을 따르지 않은 이유는 ‘형어내’의 오행은 모두 내면에서 일어나는 변화 즉 도덕감정이나 도덕법칙의 확충과정이며, 최 종적으로 도덕자아의 완성을 추구하는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35)
그는 경 (敬)과 공(恭)을 외면적 행위로 해석하였고, 게다가 경(敬)의 주체가 자신이 아 니라 상대방이라고 하였다.36)
32) 帛書 五行, 12章 經, “不遠不敬, 不敬不嚴, 不嚴不尊, 不尊不恭, 不恭无禮.”
33) 帛書 五行, 12章 說, “遠心也者, 禮氣.”
34) 池田知久 (1993), pp. 273-274.
35) 자세한 설명은 다음 장을 보라.
36) 池田知久 (1993), p. 277.
하지만 백서오행의 「설」에서 “위엄이 갖춰진 이후에 자신이 존엄해진다.[嚴而後己尊]”는 구절과 함께, “공손함이라는 것은 □□ 아랫사람을 공경하는 것이다.[恭也者, □□ 敬下也.]”라고 하였기 때문에,
경(敬)도 자신의 도덕적 자아를 길러 타인에 대한 공경심을 가지는 것, 공(恭) 도 타인에게 공손하게 대하려는 마음가짐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13장 경: 귀가 밝지 못하고 눈이 밝지 못하면, (군자도를 듣는) 성(聖)을 실현할 수 없고 (군자도를 보는) 지(智)를 실현할 수 없다. 성과 지를 실현 하지 못하면, 인(仁)을 실현할 수 없다. 인을 실현하지 못하면 평온한 기분 이 될 수 없다. 평온한 기분이 되지 못하면, 즐거워할 수 없다. 즐거워하지 않으면 덕을 완성시킬 수 없다.37)
여기에서 ‘귀의 총명함[聰]’이 ‘성(聖)’의 단서이고, ‘눈의 밝음[明]’이 ‘지(智)’ 의 단서임을 알 수 있다.
총(聰)과 명(明)은 단순히 귀와 눈의 듣고 보는 구체적 인 감각기관의 기능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천도인 군자도를 들어서 알고, 군자도를 체득한 현인을 보고서 그 군자도를 알아채는 지각능력을 말한다.38)
이상의 5가지 단서 즉 변(變)·직(直)·원(遠)·명(明)·총(聰)은 인간이라면 누 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선천적으로 부여받는 것이므로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 다는 맹자와 순자의 성인관과 같은 맥락에 있다.
그러나 오행편은 5가지 단 서를 인·의·예·지·성의 각각의 덕목으로 실현시키고 다시 그 오행이 조화를 이 루는 최종적인 ‘덕(德)’으로 완성시킬 수 있는 것은 아무나 가능한 것이 아니 라, 도덕자아를 완성하려고 하는 의지를 가지고 후천적으로 노력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도달할 수 있으며, 그러한 사람을 ‘군자(君子)’라고 칭한다.
즉 백서 오행편의 작자는 5가지 단서가 생겨나면서부터 100% 최종적으로 완성된 형태로 부여되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반대로 실현이나 완성을 위해 후천 적·인위적인 노력을 필요로 하는 단서의 형태로 부여되어 있다고 생각한 것이 다.39)
37) 帛書 五行, 13章 經, “□□□□□, 不聖, 不聖不智, 不智不仁, 不仁不安, 不安不樂, 不樂 无德.” 13장의 빈칸에 대해 곽점죽간오행편에는 “不聰不明, 不明不聖”으로 되어 있고, 백서오행 「說」에는 “不聰明則不聖智”로 인용되어 있다. 이에 裘錫圭는 “不聰不明, 不明 不聖”이 가장 적합하나,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설명했다(2014, p. 64). 곽점죽간오행과 백서오행의 「설」이 다르기 때문에, 필자는 이케다 도모히사처럼 백서오행 「설」대로 “不聰明則不聖智”로 해석하였고(1993, pp. 287-288), 이는 龐樸이 “不聰不明, 不聰明則不 聖智”로 본 것(2000, pp. 50-51)과 크게 다르지 않다.
38) 帛書 五行, 6章 經, “智之思也長. 長則得, 得則不忘, 不忘則明, 明則見賢人, 見賢人則玉 色, 玉色則形, 形則智. 聖之思也輕. 輕則形, 形則不忘, 不忘則聰, 聰則聞君子道, 聞君子道 則玉音, 玉音則形, 形則聖.”
39) 池田知久 (1993), p. 89.
이는 모든 인간이 선천적으로 도덕적 자율성을 가지고 태어난, 도덕자아 를 가지는 도덕적 주체임을 의미한다.
3. 단서의 확충 및 오행과 사행의 완성
1) ‘형어내’와 ‘불형어내’
오행편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가장 많은 논의 중의 하나가 바로 ‘형어내’ 와 ‘불형어내’의 구분이다. 그도 그럴 것이 1장에서부터 등장하는 개념이자, 오행과 사행, 덕과 선, 천도와 인도를 구분하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형어내’ 와 ‘불형어내’의 ‘내’가 사람의 마음[心]을 가리킨다는 것은 더 이상 논의할 필 요가 없을 정도로 많은 논의가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 ‘형어내’의 오행을 설 명하는 여러 구절들 특히 <10장~17장>에서 오행과 사행을 상세하게 구분하지 않거나40) 또는 오행과 사행의 내적 연속성을 간과한다는 것이다.41)
40) 대표적으로 池田知久는 10장~13장은 오행의 추상적 원리론이고, 14장~17장은 그 개념들 을 더욱 구체적으로 상론한 것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인·의·예·지의 사행을 오행의 그것과 구분하지 않는다(1993, pp. 362-363, 각주 25번).
41) 龐樸과 梁涛 등 중국 학자들의 경우, 오행과 사행을 내외로 구분한다. 사행을 사회구성원 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하는 사회도덕이나 인간관계로 본다는 점에서 내면적 측면의 오행 과 구분하면서도 10장~17장에 나타나는 오행과 사행간의 내적 연속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서론을 참고하라.
특히 전자 의 경우, <10장~17장>을 인간 내면의 덕성으로부터 도덕적 행위까지 전체를 아우르는 것으로 이해하며, 오로지 ‘오행’으로만 해석한다.
물론 오행편이 지향하는 바가 바로 덕(德)을 완성하는 경지, 즉 군자도를 체득한 경지이기 때 문에, 결과적으로는 내면과 외면의 합일이라는 차원에서는 틀린 이해도 아니 지만, 그렇다면 굳이 왜 ‘형어내’와 ‘불형어내’를 구분했을까? 라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이에 본 장에서는 <10장~17장>의 「경」·「설」을 통해 의문의 실타 래를 한 올씩 풀어볼 것이다. 앞 장에서 우리는 이미 <10장~13장>에서 나타나 는 인·의·예·지·성의 오행을 살펴보았는데, 그 내용들은 ‘형어내’에 걸맞게 모 두 선천적·자연적으로 부여받은 변·직·원·명·총의 단서들로부터 인·의·예·지· 성의 완성에 이르는 내면적 과정 즉 도덕자아의 형성을 향한 과정이었다.
그러 나 도덕자아가 완성된 단계는 아니다.
왜냐하면 오행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서 덕(德)을 완성하는 것이 최종이자 최고의 단계이며, 바로 천도이기 때문이다.
이에 이케다 도모히사는 오행의 덕·선의 실천과정을 3가지 과정으로 구분하였다.
첫째는 ‘오행’ 또는 ‘사행’의 실현에 이르기 이전의 단계, 둘째는 실현된 ‘오행’ 또는 ‘사행’의 단계, 셋째는 ‘오행’·‘사행’이 각각 조화를 이루어 완성된 ‘덕’·‘선’이다.42)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표 2> 이케다 도모히사가 설명한 오행편 덕·선의 실천과정 ①단계 ②단계 ③단계 단서 오행 또는 사행 德 또는 善 變 → 悅 → 戚 → 親 → 愛 仁 直 → 肆 → 果 → 簡 → 行 義 遠 → 敬 → 嚴 → 尊 → 恭 禮 明 智 聰 聖
이케다 도모히사는 인간의 내면에 선천적 자연적으로 부여된 ① 단계는 ‘오 행’과 ‘사행’의 차이나 구별이 없다고 하면서, “‘오행’의 단서는 모든 인간에게 태어나면서부터 부여되어 있고, ‘사행’의 단서만 부여된 인간은 없다.
즉 ‘성 (聖)’의 단서인 ‘총(聰)’이 결여된 자의 존재는 상정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라 고 하였다. 따라서 오행과 사행의 구분은 ②와 ③단계에서 구별된다.43)
① 단 계에서 오행과 사행이 구분되지 않는다면, 오행편의 저자는 왜 ‘형어내’와 ‘불형어내’라고 표현했을까?
이것이 오행과 사행의 내적 연속성을 인정하지 않는 학자들의 물음이다.
‘형어내’와 ‘불형어내’가 결국 같은 것이라면 굳이 구 분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이러한 해석을 취할 수 없다는 것이다.44)
42) 池田知久 (1993), pp. 98-99.
43) 池田知久 (1993), p. 99.
44) 梁涛 (2000), p. 40.
이러한 문 제에 대해 이케다 도모히사는 세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지만,
필자가 보기에 그 답은 <14장~17장>에 있는 것 같다.
14장 경: 안색이나 용모가 온화한 것이 마음속에 인하고자 하는 기분을 품고 있는 것이다[ /變]. 마음속에 그런 기분을 품고서 타인과 교제하는 것이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悅]. 마음속에 깊이 느낀 그러한 기쁨이 형제에 게 미치는 것이 (형제끼리 서로)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다[戚]. (형제의) 사 이좋음을 굳건하게 하는 것이 (형제의) 친밀함이다[親]. (형제의) 친밀함이 한층 철저하게 되는 것이 사랑하는 것이다[愛]. 먼저 자신의 아버지를 사랑 하고, 이어서 널리 세상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 인(仁)의 실현이다.45)
14장은 10장과 마찬가지로 인(仁)의 단서인 ‘변(變)’으로부터 ‘열(悅)→척 (戚)→친(親)→애(愛)’의 확충과정을 거쳐 인(仁)을 실현할 수 있음을 더욱 자 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10장에서의 ‘열(悅)→척(戚)→친(親)→애(愛)’는 모두 인(仁)을 그 대상으로 하여 인(仁)의 완성까지 도달한다면, 14장은 타인과 의 교제, 형제간의 사이좋음[戚]과 친밀함[親], 아버지와 세상 사람들에 대한 사랑[愛]의 과정을 통해 인(仁)을 완성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14장 「설」에서 는 “먼저 자신의 아버지를 사랑하고, 이어서 널리 세상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 이 인(仁)의 실현이다.”는 구절에 대해 “자신의 아버지를 사랑해도 이웃의 아 이를 죽인다면 인(仁)이라고 할 수 없다.”46)고 덧붙였다.
이에 이케다 도모히 사는 10장 경설(仁), 11장 경설(義), 12장 경설(禮), 13장 경설의 앞부분(聖知) 에서는 원리론을 제시했고, 14장 경설(仁), 15장 경설(義), 16장 경설(禮), 17장 경설(聖知)에서는 <10장~13장> 경설 전반에 등장하는 하나하나의 개념을 보 다 구체적으로 상세히 논한 것이라면서, 그에 따라 ‘오행’의 확충프로세스를 아래와 같이 도시화하였다.47)
45) 帛書 五行, 14章 經, “顔色容貌溫, 也. 以其中心與人交, 悅也. 中心悅焉, 遷于兄弟, 戚 也. 戚而信之, 親也. 親而篤之, 愛也. 愛父, 其繼愛人, 仁也.”
46) 帛書 五行, 14章 說, “愛父而殺其鄰子, 未可謂仁也.” 47) 池田知久 (1993), pp. 94-95.
變 → 悅 → 慼 → 親 → 愛 → 仁(10장 경설, 14장 경설) 直 → 泄 → 果 → 閒 → 行 → 義(11장 경설, 15장 경설) 遠 → 敬 → 嚴 → 尊 → 恭 → 禮(12장 경설, 16장 경설) 悤 → 聖(13장 경설의 앞부분, 17장 경설) 明 → 知(13장 경설의 앞부분, 17장 경설)
17장에 뒤이은 18장에서는 오행의 화(和), 19장에서는 사행의 화(和)를 말하 고 있는데, 이케다 도모히사는 <10장~17장>에서는 오행과 사행을 구분하지 않는다.
필자가 보기에, <10장~13장>과 <14장~17장>은 인간의 내(內)·외(外) 의 도덕성 확충과정을 설명하는 것 같다. 자세히 말해, <10장~13장>이 인간에 게 선천적으로 부여된 도덕적 단서를 인간 내면에서 발전시켜 가는 도덕자아 의 확충과정이라면, <14장~17장>은 인간의 외면적인 부분 특히 인간관계를 통해 실천되는 도덕적 행위로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10장~17장>은 인간 내 면의 도덕자아를 확충해 나가는데 있어서 오행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인간관계 를 통한 도덕행위의 실천이 필요하며 그러한 ‘사행’의 실천적 행위가 다시 내 재화되어 오행의 5가지 미덕이 실현될 수 있음을 주장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서, 오행과 사행의 인(仁)은 모두 ‘변(變)’의 단서에서 출발하지만 ‘열(悅)→척 (戚)→친(親)→애(愛)’로의 도덕자아의 확충은 외면의 인간관계를 통한 ‘열 (悅)→척(戚)→친(親)→애(愛)’를 동반하면서 완전한 인(仁)을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즉 내면의 ‘변(變)’의 단서를 잘 유지하여 ‘열(悅)’로 나아갈 때 외면적 인간관계의 경험을 통해 그 ‘열(悅)’을 ‘체득’하며, 그 도덕실천행위가 점차 내 재화되면서 도덕자아는 ‘척(戚)’ 등으로 나아가고 마침내 ‘인(仁)’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는 오행과 사행이 주역의 ‘일음일양(一陰一陽)’과 유사한 상보적 확충관계에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면 나머지 장들도 마저 살펴보도록 하자.
15장 경: 마음속에서 사물의 일을 판단하고, 그것을 올바르게 행하는 것 이 정직한 마음을 품는 것이다[直]. 정직한 마음을 근본으로 하여 그것을 최종적인 단계로까지 완성해 나가는 것이, 마음이 평온하게 되는 것이다 [肆]. 마음이 평온하게 되어 굉장한 힘이 있는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 이, 망설이지 않고 과단성 있게 행동하는 것이다[果]. 작은 도(道)에 구애되 어서 큰 도(道)를 해치지 않는 것이, (나쁜 일을) 정확하게 가려내는 것이다 [簡]. 대죄를 범한 자가 있다면 크게 그것을 벌하는 것이, 행위이다[行]. 귀 한 지위에 있는 자를 존경하고, 그 다음에 능력이 있는 현인을 높여서 (윗자 리에 등용하는 것이) 의(義)의 실현이다.48)
48) 帛書 五行, 15章 經, “中心辨焉而正行之, 直也. 直而遂之, 肆也. 肆而不畏强禦, 果也. 不 以小道害大道, 簡也. 有大罪而大誅之, 行也. 貴貴, 其等尊賢, 義.”
15장은 11장과 함께 의(義)의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장이다.
직(直)을 단서 로 삼아 사(肆)→과(果)→간(簡)→행(行)의 확충을 거쳐 의(義)에 도달한다.
15 장 「경」에서도 과(果)·행(行)·의(義)를 외면적 측면에서 논하고 있으며, 여기에 더해 「설」에서는 직(直)을 “지금 여기에 천하제일의 맛있는 음료·음식이 있었 다고 해서, 이것을 자꾸 먹으라고 호통치며 줄 경우,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호 통치며 주는 것을 싫어해서 그 음식물을 받지 않는 것이다.”49)라고 하고, 간 (簡)을 “살아있는 가축을 본 경우, 그것을 죽여서 먹는 것은 참을 수 없을 것이 다.
그러나 (그러한 애정이 깊은 사람이라도) 몸소 죄인의 사형을 집행하는 것 은 (나쁜 일을) 정확하게 가려내는 간이다.”50)
등으로 설명하였다.
11장에서는 의(義)의 확충과정을 온전히 내면의 확충으로 본다면, 15장에서는 내면의 차 원에 더하여 외면의 차원 즉 인간관계나 인간사회에서 실천하는 도덕적 행위 를 논하며, 이러한 내·외간의 상보적 확충을 통해 의(義)를 완성하게 된다.
16장 경: 밖으로 향하는 마음에 의해서 타인과 교제하는 것이 남에게 거 리를 두는 것이다. 남에게 거리를 둠을 장중하게 하는 것이 남을 공경하는 것이다. 남을 공경함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 위엄이 몸에 배는 것이다. 위 엄이 몸에 배게 되어서 사람들을 두려워하게 하는 것이 존엄이 몸에 갖추어 지는 것이다. 존엄이 몸에 갖추어져도 교만하게 굴지 않는 것이 남을 공손 하게 대하는 것이다. 남을 공손하게 대하며 폭넓게 남들과 교제를 맺는 것 이 예(禮)의 실현이다.51)
16장은 12장과 함께 예(禮)를 확충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12장이 예(禮)의 내면적 확충이라면 16장은 12장처럼 남과 교제할 때 거리를 두는 마음[遠]을 단서로 출발하지만 폭넓게 남들과 교제 맺는 것을 끝으로 삼았다.
또한 16장 「설」에서는 공(恭)을 “군주와 스승과 윗사람을 섬기는 것을 ‘공손하다’고는 말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종복을 부리는 사람의 도(道)를 □□ ‘공손하다’고 한다.”고 하였다.52)
49) 帛書 五行, 15章 說, “有天下美飮食於此, 吁嗟而予之, 中心弗屑也. 惡吁嗟而不受吁嗟.”
50) 帛書 五行, 15章 說, “見其生也, 不食其死也. 然親執誅, 簡也.”
51) 帛書 五行, 16章 經, “以其外心與人交, 遠也. 遠而莊之, 敬也. 敬而不懈, 嚴. 嚴而威之, 尊 也. 尊而不驕, 恭也. 恭而博交, 禮也.”
52) 帛書 五行, 16章 說, “事君與師長者, 弗謂恭矣, 故廝役人之道□□恭焉.”
이처럼 16장도 외면의 도덕실천을 통해 예(禮)를 확충해나갈 것을 주문한다.
17장 경: 군자도를 들은 적이 없는 것을 귀가 밝지[聰] 않다고 한다. 현인 을 본 적이 없는 것을 눈이 밝지[明] 않다고 한다. 군자도를 들어도 그것이 군자도임을 모르는 것을 성(聖)이 아니라고 한다. 현인을 보고도 그의 유덕 함을 모르는 것을 지(智)가 아니라고 한다. 현인을 보고서 그 유덕함을 아 는 것이 지(智)이고, 군자도를 듣고서 그것이 군자도임을 아는 것이 성(聖) 이다. (시의) ‘명명(明明)’이란, 지(智)인 것이고, ‘혁혁(赫赫)’이란 성(聖) 인 것이다. (시에) “명명(明明)한 자가 아래에 있고, 혁혁(赫赫)한 자가 위에 있다.”고 하는 것은 이러한 의미이다.53)
13장과 함께 17장에서는 성(聖)과 지(智)를 설명한다.
성(聖)은 군자도를 들 어서 아는 ‘선험적·형이상학적인 인식’인 반면, 지(智)는 현인을 보고서 그 유 덕함을 아는 ‘경험적·형이하학적인 인식’에 해당한다.54)
17장에서 성(聖)의 외 면적 인간관계에서의 도덕실천은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6장과 9장에서 성 (聖)의 완성이 옥음(玉音)으로 드러난다고 한 것,55) 18장에서 성(聖)이 의(義) 를 통해서 행해진다고56) 간주한 구절들을 통해, 성(聖) 역시 내면의 확충을 통 한 외면으로의 드러남이라는 차원에서 ‘형어내’와 ‘불형어내’를 거쳐 성(聖)을 완성하는 것으로 이해되며, 이러한 성(聖)은 오로지 천(天) 또는 천도(天道)로 만 규정된다.
여기에 필자는 ‘내성외왕’의 사상을 계승·발전시키고자 하는 오 행 저자의 의도가 있다고 생각하며,57) 성(聖)은 ‘형어내’의 내면적 측면을 주로 다루지만 결국 ‘불형어내’는 ‘외왕’의 정치사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 로 보인다.
지(智) 역시 6장에서 “눈이 밝으면 현인을 볼 수 있고, 현인을 볼 수 있으면 용모가 옥같이 빛난다.
용모가 옥같이 빛나면 드러나고, 드러나는 것이 바로 지(智)이다.”58)라고 하여 외면적 측면을 언급한다.
53) 帛書 五行, 17章 經, “未嘗聞君子道, 謂之不聰. 未嘗見賢人, 謂之不明. 聞君子道而不知 其君子道也, 謂之不聖. 見賢人而不知其有德也, 謂之不智. 見而知之, 智也. 聞而知之, 聖也. 明明, 智也. 赫赫, 聖. 明明在下, 赫赫在上, 此之謂也.”
54) 池田知久 (1993), p. 111.
55) 帛書 五行, 6章 經, “聖之思也輕, 輕則形, 形則不忘, 不忘則聰, 聰則聞君子道, 聞君子道 則玉音, 玉音則形, 形則聖.” / 9장 經, “玉音, 聖也.” 玉音이 도판에서는 王言으로 되어 있 다. 裘錫圭는 王言이 玉音을 잘못 쓴 것이라고 하였으나(2014, p. 63, 각주 23번), 王言은 종종 玉音에 비유되기도 하였다.
56) 帛書 五行, 18章 經, “聞君子道, 聰也. 聞而知之, 聖也. 聖人知天道. 知而行之, 義也.”
57) 魏啓鵬은 오행편이 ‘내성외왕의 도’의 진실한 면모를 드러냈다고 평가했다(1991, p. 97)..
58) 帛書 五行, 6章 經, “明則見賢人, 見賢人則玉色, 玉色則形, 形則智.”
위의 17장에서도 “현인을 보고서 그 유덕함을 아는 것”으로 규정하는 것에서, 현인을 만난다는 실체적 대상과 외부적 경험을 통해 지(智)를 완성한다는 측면에서 ‘불형어내’를 이해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상의 논의를 통해 오행과 사행은 모두 내면의 단서에서 출발하는 것은 같 으므로, 천(天)에서 부여받은 천도(天道)에 근원하나, 확충과정에 있어서 오행 은 인간 내면의 도덕자아의 확충에 해당하므로 ‘형어내’라고 한 것이고, 사행 은 그 도덕자아의 외면적 실천이므로 ‘불형어내’라고 한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여기서 ‘형(形)’을 존재하지 않던 것의 ‘형성(形成)’내지 ‘생성(生成)’의 의미로만 본다면 ‘형어내’와 ‘불형어내’는 존재와 비존재의 모순관계로 해석 되므로, 어떤 학자들은 양자를 완전히 분리된 것으로 보거나, 양자를 서로 다 른 내적도덕률·외적도덕률 등으로 칭하며 이원론으로 간주하였을 것이다.
전 국시대에서 양한시대에 형성된 문헌들 중에 ‘형어내(形於內)’의 용례를 찾아보 면 문자「정성」편,59) 관자「군신하」편60) 등에서 내면의 덕성이나 마음이 외면으로 발현되는, 즉 내외가 서로 연결성을 갖는 것으로 여겼다.
이는 ‘형어 외(形於外)’의 용례에서도 마찬가지다.
대학,61) 회남자「무칭훈」62) 등에 서 내면적인 것이 외면으로 표출된 경우를 ‘형어외’라고 표현한다.
마지막으로 ‘불형어내’의 용례를 찾아보면, 회남자「설림훈」의 “그림자를 붙잡는다는 생각은 마음에서 일어날 수 없다.”63)는 구절에서 외면의 행위내지 외면으로의 연결성은 언급되지 않고 끝나버린다.
59) 文子, 「精誠」, “忠信形於內, 感動應乎外, 賢聖之化”
60) 管子, 「君臣下」, “戒心形於內, 則容貌動於外矣”
61) 大學, “此謂誠於中, 形於外, 故君子必慎其獨也”
62) 劉安 (2010), 「繆稱訓」, “情繫於中, 行形於外”, p. 562.
63) 劉安 (2010), 「說林訓」, “捕景之說不形於心.”, p. 400
내면에서 어떠한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행위로 이어지기 힘들다. 따라서 사행의 ‘불형어내’가 내면에서 형성되지 않은 비존재의 개념이라면, 당시 사람들의 사유로는 인·의·예·지라는 사행의 외면 적 행위가 이어지기 힘들고, 더군다나 그것을 인간의 도리[人道]라고 할 수 없 다. 이에 전국시대나 양한시대 문헌 가운데 인·의·예·지를 내면의 도덕적 감정 이 결여된 빈껍데기의 행위로만 인식하는 구절은 찾기 힘들다. 따라서 필자는 사행의 ‘불형어내’를 ‘형어외’의 다른 표현으로 보고,64) 오행의 ‘형어내’의 ‘형’을 존재하지 않던 것의 ‘형성(形成)’내지 ‘생성(生成)’의 의미가 아니라, 잠 재되어 있던 것의 발현 즉 인간에 부여되어 있던 천도의 ‘드러남[顯現]’으로 해 석하였다.
64) 黃帝內經素問「八正神明論」, “觀於冥冥者, 言形氣榮衛之不形於外, 而工獨知之, 以日之 寒溫, 月之虛盛, 四時氣之浮沈, 參伍相合而調之, 工常先見之, 然而不形於外, 故曰觀於冥 冥焉.”, pp. 424-425. 이것은 황제의 물음에 대한 岐伯의 대답이다. 여기에서 ‘不形於外’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형기와 영위(동맥의 피와 정맥의 피)를 가리키며, 뛰어난 의사라면 형기와 영위가 밖으로는 보이지 않더라도 알 수 있는 것이기에 “어둡고 어두운 명명을 살 핀다[觀於冥冥]”고 하였다. 황제내경이 醫書이므로 ‘不形於外’는 신체의 내면 혹은 속 성 등을 의미한다. 오행처럼 인간의 덕성이나 내심은 아니라 하더라도, ‘不形於外’를 ‘形 於內’의 다른 표현으로 볼 수 있다면, 오행의 ‘不形於內’ 역시 ‘形於外’의 다른 표현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면에서 드러남[形於內]’과, ‘내면에서 드러나지 않음 [不形於內]’ 즉 ‘외면에서 드러남[形於外]’은 천도(天道)라는 동일한 근원을 둔 일원론, 곧 내적 연속성을 갖춘 것으로 이해하기 쉬워진다.
이처럼 사행과 오 행은 내적 연속성을 가지지만 ‘형어내’와 ‘불형어내’로 구분되며, 이러한 차이 를 발견함으로써 이케다 도모히사의 논의를 좀 더 보충할 수 있을 것이다.
2) ‘덕지행’과 ‘행’
필자와 같이 ‘형어내’와 ‘불형어내’를 내·외의 관계로 보는 학자들은 꽤 있 다.65)
65) 다만 대부분 ‘形於內’와 ‘不形於內’를 내적 연속성이 없는 것으로서의 내·외로 간주한다. 龐樸 (2000), pp. 158-159. / 梁濤 (2002), pp. 40-45. / 朱小明은 오행의 聖에 대해 “‘形於 內’이든 ‘形於外’이든 모두 ‘德之行’이다. 왜냐하면 聖은 仁義禮智와 다르고, 그것은 모든 선행보다 높으며 행위의 방식이 아니라 구체적 사물과 대응하는 것이 아니며, 내면에서 형 성되지 않고서 행위로 실천함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에서 그가 聖을 제외한 나머지 인의예지의 ‘不形於內’는 내면적 도덕성과 분리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13, p. 29).
그 중에서 황준걸은 “인·의·예·지·성 등의 5가지 미덕이 모두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것(즉 ‘形於內’)을 ‘덕지행(德之行)’이라 하고, 그것이 외재행위에 서 표현되는 것을 ‘행(行)’이다.”라고 하면서66) 그 내적 연속성을 인정한다.
이 는 18장과 19장에서도 잘 드러난다.
18장 경: 군자도를 들을 수 있는 것이 총(聰)이다. 그것을 들어서 아는 것 이 성(聖)이다. 성인(聖人)은 천도를 알 수 있다. 그것을 알아서 행하는 것 이 의(義)이다. 그것을 때에 맞게 적절하게 행하는 것이 덕(德)의 완성이다. 현인을 볼 수 있는 것이 눈의 명(明)이다. 그 현인을 보고서 (그 군자도를) 아는 것이 지(智)이다. 그것(군자도)을 알고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 인(仁) 이다. 편안함을 느껴서 그 현인을 공경하는 것이 예(禮)이다. 인의는 예악 이 생겨나오는 원천이다. 오행이 만약 하나로 조화된다면, (사람은 그것에 의해) 즐거울 수 있다. 즐거울 수 있다면 그것이 덕의 완성이다. 덕이 있으 면 국가는 부흥하기에 이를 것이다.67)
19장 경: 그 현인을 보고서 (그 군자도를) 아는 것이 지(智)이다. 그것(군 자도)을 알고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 인(仁)이다. 편안함을 느끼며 그것 (군자도)을 행하는 것이 의(義)이다. 행하여 그것(군자도)을 공경하는 것이 예(禮)이다. 인의는 예(禮)가 생겨나오는 원천이며, 사행이 조화를 이루는 바이다. 사행이 조화된다면 그것들은 자신의 마음과 하나가 되고, 마음과 하나가 된다면 그것이 선의 완성이다.68)
66) 黃俊傑 (1991), p. 6.
67) 帛書 五行, 18章 經, “聞君子道, 聰也. 聞而知之, 聖也. 聖人知天道. 知而行之, 義也. 行之 而時, 德也. 見賢人, 明也. 見而知之, 智也. 知而安之, 仁也. 安而敬之, 禮也. 仁義, 禮樂之所 由生也, 五行之所和也. 和則樂, 樂則有德, 有德則國家擧.”
68) 帛書 五行, 19章 經, “見而知之, 智也. 知而安之, 仁也. 安而行之, 義也. 行而敬之, 禮. 仁 義, 禮智之所由生也, 四行之所和. 和則同, 同則善.” “禮智”중의 ‘智’는 연문이다(裘錫圭, 2014, p. 67, 75번 각주참고).
18장은 오행이 조화를 거쳐 완성된 덕(德)을 말하고, 19장은 사행이 조화되 어 완성된 선(善)을 설명하는 글이다.
백서오행에서 단서의 확충은 2가지 타 입으로 구분된다.
앞서 ①단계의 단서에서 ②단계를 거쳐 ③단계의 덕·선이 완성되는 전체 과정을 고려하면 그 확충의 과정은 ①과 ②단계의 사이, ②와 ③단계의 사이에 해당한다.
즉 전자는 각각의 단서에서 출발해 오행의 인·의· 예·지·성의 실현을 향해 가는 확충으로, 10장에서 17장이 여기에 속한다.
후자 는 실현된 ‘오행’을 다시 출발점으로 삼아, 그 ‘조화[和]’에 의해서 ‘선(善)’이 나 ‘덕(德)’을 완성해가는 확충으로, 18장 이하의 거의 모든 장이 여기에 속한 다.69)
그러나 18장은 오행, 19장은 사행을 언급하고 있지만 그것들의 ‘형어내’ 와 ‘불형어내’는 전혀 구분하고 있지 않다.
즉 사행의 ‘불형어내’가 오행의 ‘형 어내’와 다른 근원을 가진다고 볼만한 근거가 하나도 없다.
오히려 18장의 오 행에서는 ‘형어내’와 ‘불형어내’가 섞여 있는 듯하다.
“현인을 보고서 아는 것 이 지(智)”라고 한 것이나, “현인을 공경하는 것이 예(禮)”라고 한 것이 그렇다.
게다가 11장 「설」에서는 “직(直)이라는 것은 그 마음속에 정직한 것이며, 의로 운 기운이다.”70)라고 하여, 의(義)로 실현될 수 있는 내면의 ‘의기(義氣)’를 표 현했었는데, 18장의 「설」에서는 의(義)에 대해 “군자가 가야하는 길을 알고서 통솔하여 그것을 행하는 것이 의기(義氣)이다.”71)라고 하면서 군자의 깨달음 을 통한 외면적 행위 자체를 의기라고 표현한 것이다.
즉 18장에서는 오행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그 내면의 도덕감정과 외면의 도덕적 행위를 모두 통틀어 말하고 있다.
이는 19장에서도 마찬가지다.
19장의 「설」에서는 ‘편안함을 느 끼는 것[安]’, ‘행하는 것[行]’, ‘공경하는 것[敬]’을 ‘인도(人道)’라고 칭하면서, 사행이 조화를 이루어 선심(善心)과 같아지기를 요구하며 그것이 선(善)이라 고 규정한다.72)
69) 池田知久 (1993), pp. 94-95.
70) 帛書 五行, 11章 說, “直也者, 直其中心也, 義氣.”
71) 帛書 五行, 18章 說, “知君子之所道而率然行之, 義氣也.”
72) 帛書 五行, 19章 說, “所安, 所行, 所敬, 人道也. ……而四者同於善心也. ……同則善矣.”
그렇다면 <10장~17장>의 ‘형어내’와 ‘불형어내’를 도덕자아 와 실천행위의 내·외로 구분한 것이 오류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앞서 언급했듯이 18장과 19장은 단서 확충의 2번째 타입에 속하며, 여기서의 오행과 사행은 완성태로서의 인·의·예·지·성이기 때문이다.
즉 19장의 사행은 오행과 동일한 인·의·예·지로 내면적으로나 외면적으로나 결여된 바 없는 완 성된 각각의 덕목이며, 다만 오행에서 성(聖)만 제외되었을 뿐이다.
이처럼 오행의 ‘형어내’와 사행의 ‘불형어내’는 인·의·예·지·성의 각 덕목이 완성되기 이전의 확충과정에서 구분될 수 있는 것이며, 각 덕목의 단서가 ‘형어내’와 ‘불형어내’ 모두 같다는 점에서 내적 연속성을 가지므로, 결국 오행 의 작자는 도덕자아와 도덕실천의 행위가 합일되는 ‘천인합일’을 추구했던 것 이다.
이에 오행 1장에서 ‘형어내’를 ‘덕지행’이라고 한 것은 인간 내면에 부여 된 오행 각각의 ①단계의 도덕적 단서가 ②단계의 인·의·예·지·성으로 완성된 후, 서로 조화를 이루어 ③단계의 덕(德) 즉 도덕자아73)의 완성을 향해가는 내 면적 흐름[行]’을 칭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며, 동시에 사행의 도덕실 천 행위인 행(行)이 다시 내재화되는 수렴의 과정도 ‘덕지행’에 포함된다.
이는 설문해자에서 덕(悳)을 “밖으로는 타인에게서 얻고, 안으로는 자기 자신에 게서 얻는다.”74)라고 한 것과도 상통한다.
그렇다면 오행편의 ‘덕지행’의 ‘행’은 정현이 주례의 「지관」·「사씨」에 서 주석한 ‘덕행(德行)’의 ‘행(行)’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밖[外]의 ‘시지위행 (施之爲行)’은 적어도 오행편에서는 사행의 ‘행(行)’으로 이해되기 때문이 다.
한편 ‘덕지행(德之行)’은 맹자 「공손추」 상편의 ‘덕지유행(德之流行)’75) 과 표현형태가 유사한데, ‘덕지유행(德之流行)’이 천하에 유행하는 즉 ‘밖으로 표출되는 덕’을 의미한다면, 오행편의 ‘덕지행(德之行)’은 도덕자아, 내면적 도덕성의 발전과 확충의 측면에 포커스를 맞추고, 외면의 사행마저도 ‘내면으 로 수렴되는 덕’ 즉 ‘덕의 완성 과정’의 일부임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오행편 저자가 심성론에 대한 세밀한 분석을 가했다는 점이 분명히 드러난다.
73) 필자는 ‘도덕자아의 완성태’라는 의미에서 백서오행편의 德을 표현했다. 鄭玄이 周禮 「地官」·「師氏」에서 “德行, 內外之稱. 在心爲德, 施之爲行.”(鄭玄 注, 賈公彦 疏, 2000, p. 411)으로 주석한 것처럼, 德은 인간 내면에 내재화된 것이며, <4-1>장에서 논의한대로 도 덕적 주체성과 연관된다. 게다가 여기에서 다루지는 않지만 오행편 5장에서 仁·智·聖의 실현을 위해서는 ‘思’가 불가결하고, 6장에서 ‘思’의 주도적인 의의를 논하고 있다는 점에 서 도덕실천의 주체이자 가치자각의 주체인 도덕자아가 완성된 것이 德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고 보았다.
74) 許愼, 段玉裁 注 (1981), “外得於人, 內得於己也.”, p. 895. ‘德’자는 說文解字뿐 아니라 곽점초간의 五行편에서도 ‘悳’으로 쓰여져 있다(荊門市博物館, 1998, p. 149).
75) 孟子, 「公孫丑」 上, “孔子曰, 德之流行, 速於置郵而傳命.”
대부분 의 학자들이 오행의 ‘덕지행’을 정현이 설명한 보편적인 ‘덕행’으로 해석한 다.
그러나 사행의 ‘행(行)’도 결국 내면의 도덕적 단서로부터 시작하는 도덕적 행위(즉, 德行)를 의미하는데, ‘덕지행’이 ‘덕행’과 같다면 굳이 ‘행’과 ‘덕지행’ 을 구분할 필요가 있었을까?
또한 ‘덕행’에 ‘지(之)’를 추가하여 강조할 필요가 있었을까?
주례의 「대사도」편에서는 지(智)·인(仁)·성(聖)·의(義)·충(忠)·화 (和)를 ‘육덕(六德)’으로, 효(孝)·우(友)·목(睦)·인(婣)·임(任)·휼(恤)을 ‘육행(六 行)’으로 칭하였고,76) 신서「육술」에서는 도(道)·덕(德)·성(性)·신(神)·명(明)· 명(命)을 ‘덕지리(德之理)’ 즉 ‘육리(六理)’라고 하고, 그것이 외면적으로 발현 되어 사람에게 인(仁)·의(義)·예(禮)·지(智)·성(聖)·악(樂)이 있음을 ‘육행(六行)’ 이라고 칭한 것처럼77), 문헌마다 ‘인·의·예·지·성’에 대한 명칭이 덕 또는 행으 로 다르게 칭해졌다.
76) 鄭玄 注, 賈公彦 疏 (2000), “以鄕三物敎萬民而賓興之: 一曰六德, 智, 仁, 聖, 義, 忠, 和. 二 曰六行, 孝, 友, 睦, 婣, 任, 恤.”, p. 314.
77) 賈誼, 박미라 옮김 (2007), “德有六理, 何謂六理? 道, 德, 性, 神, 明, 命, 此六者, 德之理也. 六理無不生也, 已生而六理存乎所生之內, ……內度成業, 故謂之六法. 六法藏內, 變流而外 遂, 外遂六術, 故謂之六行. ……人有仁義禮智聖之行. 行和則樂興, 樂興則六, 此之謂六 行.” 新書의 판본에 따라 六行 중에 ‘信’은 ‘聖’으로 되어 있기도 하다(文淵閣四庫全書 판본의 新書에는 聖으로 되어 있다. 695冊, p. 441 참조).
따라서 필자는 ‘덕지행’과 ‘행’을 구분한 오행편만의 의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사행의 행과 달리 ‘덕지행’은 도덕성의 내면 적 확충과 발전 및 그것을 보완하는 실천행위의 내재화까지 포괄한 ‘수심(修 心)’의 측면에 해당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마지막으로 ‘불형어내’를 ‘행’이라고 한 것은 ①단계의 단서로부터 ③단계 의 덕을 완성할 때까지 실제적인 도덕실천행위가 기여하는 바, 그 외면적·실 천적 행위를 칭한 것이며, 수신(修身)의 측면에 가깝다고 하겠다.
이러한 수심과 수신은 결국 내면과 외면의 동시적인 상호보완성을 띠는 구조로 전개되고 있다.
4. 덕과 선의 완성 및 복귀
1) 덕과 선의 완성
우리는 앞 장에서 ①단계에서 ②단계까지의 확충과정을 살펴보았고, ②단계의 사행과 오행이 완성된 후에는 성(聖)의 유무로 양자가 구분됨을 확인하였 다.
또한 마지막 ③단계의 덕과 선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오행이 서로 조화되 고”, “사행이 서로 조화되는”78)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오행의 조화를 통 한 덕의 완성과 사행의 조화를 통한 선의 완성은 그 확충 과정에 차이가 있다.
먼저 18장에서는 완성된 오행의 각 덕목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은 “마치 궁상각치우의 오성이 조화를 이루는 것과 같다.”79)고 보충하였다.
그러나 덕 은 오행의 조화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오행이 만약 하나로 조화된다면, (사 람은 그것에 의해) 즐거울 수 있다. 즐거울 수 있다면 그것이 유덕함이다.”80)라 고 하였고, 여기서 ‘즐거움[樂]’은 “몸을 씻어내고, 들뜬 기분으로 지금까지 (몸에) 갇혀 있던 상태였던 것을 잊어버리는 경지를 의미한다. 갇혀있던 상태 를 잊어버리는 것은 덕의 극치에 다름없다.”81)
라고 하였다.
즉 육체에서 벗어 난 정신적 즐거움이나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상태를 통해 덕이 완성된다 는 것이다.
좌망의 경지를 추구했던 장자의 사상과 상통하는 측면을 엿볼 수 있다.
즉 덕을 완성하는 조건으로서의 ‘즐거움[樂]’은 내면적·정신적인 것으로, 오행편 전체에 걸쳐 ‘즐거움[樂]’은 덕(德)에만 연결된다.82)
선천적 단서를 바탕으로 외면의 도덕적 행위를 실천하여 그 사행이 다시 내재화되고, 내면 과 외면의 모든 도덕적인 것은 내적·정신적 즐거움을 거쳐 덕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19장에서도 사행의 조화는 “마치 궁상각치우의 오성이 조화를 이루 는 것과 같다.”83)고 오행의 조화와 마찬가지 비유를 하였지만, ‘즐거움[樂]’과 선(善)을 연결한 곳은 하나도 없다.
다만 사행이 조화되면 선심(善心)과 같아지고 그것이 바로 선(善)이라고 하면서84), 도덕심과의 합일된 경지를 말할 뿐이 다.
78) 帛書 五行, 1章 經, “德之行五和, 謂之德, 四行和, 謂之善.”
79) 帛書 五行, 18章 說, “和者, 又猶五聲之和也.”
80) 帛書 五行, 18章 經, “和則樂, 樂則有德.”
81) 帛書 五行, 18章 說, “樂者, 言其流體也, 機然忘寒也. 忘寒, 德之至也. 樂而後有德.” 이케 다 도모히사는 寒을 塞으로 번역하였고 필자도 여기에 따랐다. 왜냐하면 13장 「說」에 동일 한 문장이 있는데 거기에는 ‘塞’으로 표기되어 있고, 구석규는 13장의 ‘塞’도 ‘寒’으로 보았 지만, 오행편 전체의 맥락에서 德은 정신세계 또는 도덕자아의 완성을 의미하므로, ‘추 위’의 의미보다는 신체적 속박에서 벗어나는 의미로의 해석이 저자의 의도에 부합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에 방박은 ‘忘寒’이 모두 ‘忘塞’의 誤字라고 하였다.
82) 2章·4章 經의 “不樂則无德.”, 13章 經의 “不樂无德.”, 18章 經의 “樂則有德”이 그것이다.
83) 帛書 五行, 19章 說, “和者, 又猶五聲之和也.”
84) 帛書 五行, 19章 說, “言舍夫四也, 而四者同於善心也, 同, 善之至也. 同則善矣.”
결국 사행에 성(聖)이 제외되어 있지만 사행의 모든 실천행위들은 도덕심 에 부합되어야 함을 추구하는 것이며, 그것이 인도(人道)이다.
따라서 오행의 덕은 하늘로부터 도덕감정의 단서를 부여받아 그것을 확충하여 완성하고 조화 를 이룬 도덕자아의 완성태로서 정신적 차원의 주체성에 연관된다면, 사행의 선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도덕감정의 단서에서 출발해 외면적으로 실천하는 행위가 도덕자아의 정신적 차원에 부합되어야 하는 객체성과 연관된다고 하겠 다.
이는 ‘형어내’의 ‘덕지행’과 ‘불형어내’의 ‘행’으로 구분되는 ①단계의 확 충과정이 수심과 수신의 영역으로 구분되는 것과 상통하며, 심신(心身)의 관계 로도 논의된다.
2) 심(心)과 감각기관의 본성
백서오행편은 초목·금수와 달리 인간의 본성에만 인의(仁義)를 좋아하는 욕망과 인의(仁義)의 덕이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인간의 본성을 좀 더 구체적 으로 심(心)의 본성[性]과 이·목·구·비·수·족(耳·目·口·鼻·手·足)의 본성[性]으 로 나누면서, 마음의 본성은 인의를 좋아하고, 귀·눈의 본성은 소리와 색을 좋 아하며, 입·코의 본성은 냄새와 맛을 좋아하고, 손·발의 본성은 안일함을 좋아 한다고 한다.
그 중에서 인의보다 귀한 것이 없다고 명시하였다.85)
즉 도덕성 과 그것에 대한 욕망이 마음에 내재된 인간의 본성이고, 나머지 감각기관의 욕 망 역시 인간의 본성에 해당한다. 본성이란 만물이 생겨나면서부터 선천적이 고 자연발생적인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천(天)의 영역에 내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섯 감각기관의 욕망이 인의(仁義)와 조화를 이루어 일체가 되면 그것은 ‘선(善)의 완성’이라고 하였고,86) 그에 따라 이케다 도모히사 식으로 말하자면 감각기관의 본성은 ‘선천적인 천도’이자, ‘선’의 영역 즉 ‘후천적인 인도’에 모두 해당하게 된다.
85) 帛書 五行, 23章 說, “循草木之性則有生焉, 而无好惡焉. 循禽獸之性則有好惡焉, 而无禮 義焉. 循人之性則巍然知其好仁義也. ……故目萬物之性而□□獨有仁義也, 進耳. ……文 王原耳目之性而知其好聲色也, 原口鼻之性而知其好臭味也, 原手足之性而知其好逸豫也, 原心之性則巍然知其好仁義也. ……目人體而知其莫貴於仁義也”. 이케다 도모히사와 龐 樸 등은 □□를 ‘知人’으로 보충하였고, ‘目’을 ‘나란히 비교하다’는 뜻으로 새겼다.
86) 帛書 五行 22장 說, “和則同. 和也者, 小體便便然不違於心也, 和於仁義. 仁義, 心. 同者, 與心若一也, □約也, 同於仁義. 仁義, 心也. 同則善耳.”
그러나 이케다 도모히사는 심(心)을 천도에 귀결 시키면서도, 이·목·구·비·수·족의 본성[性]에 대한 논의를 천도와 인도의 프레 임 속으로 온전히 끌어들이지 못했다.
백서오행에서 감각기관의 본성이 천도임에도 불구하고 ‘덕’의 완성이라 고 하지 않은 것은 도덕성이 욕망보다 가치우위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는 22장에서 마음[心]과 여섯 감각기관을 상하관계로 간주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22장 경: 인간 신체의 이·목·구·비·수·족 6가지는 심(心)이 부리는 하인 이다. 심이 복종하라고 하면 감히 복종하지 않을 수 없다. 심이 나아가라고 하면, 감히 나아가지 않을 수 없다. 심이 얕게 하라고 하면, 얕게 하지 않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이·목·구·비·수·족 6가지와 심이 조화·통일된다면, 곧 그 것들은 인의와 하나가 되고, 인의와 하나 된다면, 그것이 선의 완성이다.87)
이처럼 백서오행편에서는 6가지 감각기관이 심(心)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것으로 간주하였고, 「설」의 저자는 심이 다른 감각기관보다 귀하기 때문 이며,88) 심이 감각기관을 다스리는 군주이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한 다.89)
그리고 그 심이 바로 ‘인의(仁義)’라고 보았다.90)
87) 帛書 五行 22장 經, “耳目口鼻手足六者, 心之役也. 心曰唯, 莫敢不唯. 心曰諾, 莫敢不諾. 心曰進, 莫敢不進. 心曰淺, 莫敢不淺. 和則同, 同則善.” 唯와 諾은 누군가의 말에 동의하는 대답을 의미하므로, 이케다 도모히사는 “心曰唯”와 “心曰諾”으로 시작하는 두 문장을 합 해서 마음이 복종을 요구하는 의미로 번역하였고, 이에 따른다. 그는 “心曰進”은 退을 추가 하여 번역하였고, “心曰淺”은 深을 추가하여 번역하였으나, 본고에서는 원문대로 進과 淺 의 경우만 번역해 둔다.
88) 帛書 五行 22장 說, “而六者爲心役, 何居? 曰; 心貴也.”
89) 帛書 五行 22장 說, “耳目口鼻手足六者, 人□也, 人體之小者也. 心, 人□也, 人體之大者 也. 故曰君也.” 대체와 소체는 맹자에 등장하지만, 맹자에는 아직 心이 감각기관을 부 리는 군주의 기능을 한다는 사상까지는 발전하지 못했고, 이것은 순자의 영향을 받은 것 이다.
90) 帛書 五行 22장 說, “仁義, 心也.”
즉 심은 6가지 감각기 관에 명령을 내리는 군주이자, 인의의 도덕성이 내재된 것으로서 인간이 주체적으로 도덕적 행위를 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심신(心身)의 관계로 보자면 심 이 도덕적 주체가 되는 반면, 6가지 감각기관은 그 명령을 받아 수행해야 하는 하인으로서의 객체가 된다.
따라서 심과 6가지 감각기관은 주체와 객체의 도 덕적 교화 관계를 가지는 것이기 때문에 둘 다 선천적인 본성을 부여받았지만, 감각기관의 도덕적 교화의 완성은 선(善)의 영역에 속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백서오행의 심(心)은 2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째는 ‘인의를 좋아하 는 심(心)’이다. 이는 ‘이목·구비·수족’ 등의 신체 모든 기관과 동렬로 나란하고 신체 모든 기관과 같은 성질의 감정·욕망을 가진 ‘심(心)’이지만, 다만 신체적· 물질적인 욕망이 아닌 ‘인의’를 향한 정신적·윤리적 욕망을 가지는 것이다.
둘 째는 신체 모든 기관의 상위에 군림해서 그것들의 ‘감정·욕망 등을 지배하는 심(心)’으로 이것이 위의 22장의 심(心)이다.91)
8장 경: 군자의 선은 더불어 시작하는 바가 있고, 더불어 마치는 바가 있 다. 군자의 덕은 더불어 시작하는 바는 있으나, 더불어 마치는 바는 없다.92)
이케다의 경우 ‘더불어 시작하는 바’, ‘더불어 마치는 바’ 등을 ‘시작하는 장 (場)으로서의 신체’, ‘끝내는 장(場)으로서의 신체’로 해석하는데,93) 오행편 에서 덕과 선을 심(心)과 신(身)의 관계로 구분하기 때문이다.
이에 원용준은 “선과 덕은 모두 몸을 지닌 인간으로서 그 실현을 시작하는데, 선은 몸의 끝(죽 음)과 함께 그 실현이 끝이 나는 반면, 덕은 몸의 사멸과 관련 없이 끝없이 실현 된다.”고 하였다.94)
91) 池田知久 (1993), p. 143 참고.
92) 帛書 五行 8장 經, “君子之爲善也, 有與始也, 有與終也. 君子之爲德也, 有與始也, 无與 終也.”
93) 池田知久 (1993), p. 234.
94) 원용준 (2022). p. ᆞ139.
필자가 보기에 선과 덕이 시작되는 장으로서의 신체는 좀 더 자세히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오행편의 기본구조를 상기하면, 덕의 시작은 변(變)·직(直)·원(遠)· 명(明)·총(聰)이며, 그것은 내면에서 드러나므로[形於內] ‘인의를 좋아하는 심 (心)’을 장으로 한다.
그러나 8장 「설」에는 덕의 끝마침은 “그 신체를 버리고 그 심(心)만을 홀로 존재시키는 것”95)이라고 하였으므로, 이는 객체인 감각기 관의 ‘감정·욕망을 지배하는 도덕적 주체로서의 심(心)’이다.
이에 이케다 도 모히사는 “인간에게서 신체적·물질적인 성질을 불식 또는 발무하고, ‘육체’로 부터 받고 있는 속박에서 해방됨에 의해, 일종의 세계정신 혹은 절대이성이 되 는 데까지로 승화시켜, 인간으로서의 진정한 주체성을 획득하려고 하는, 그 주 체성을 높이 노래한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96)고 평가했다.
덕의 시작이 단서 가 발생하는 장소 즉 신체기관으로서의 심(心)이라면, 덕의 끝마침은 그 신체 적 심(心)을 초월한 군자의 정신세계이자 천하 사람들이 우러르는 덕성으로 남 는다.
그 반면, 선의 시작은 오행의 단서와 연속성을 가지지만 주로 ‘내면에서 드 러나지 않는[不形於內]’ 외면의 도덕적 실천행위를 실행하는 신체이고, 수신 (修身)의 과정이므로 ‘시작하는 장’으로서의 신체는 구체적으로 심(心)의 지배 를 받는 6가지 감각기관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그 끝마침 역시 신체적·물질적 한계를 초월하지 못한다. 따라서 덕과 선은 심(心)과 신(身)의 관계로 구분할 수 있다.
즉 외면적 실천행위와 감각기관의 욕망이 인의의 심(心)에 부합하는 선(善)은 될 수 있으나, 신체적·물질적 조건하에서 실현되는 한계가 있으며, 그 러한 선은 덕(德)을 완성하는 하나의 필요조건으로 기능하기 때문에 덕에 귀속 된다.97)
9장 경 : (맹자에) “음악을 연주하는데 종을 울려서 시작하고, 옥기를 쳐서 끝맺는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유덕자의 일을 말한 것이다. ‘종을 울 리는 것’은 선(善)의 일이고, ‘옥기를 치는 것’은 성(聖)의 일이다. 선(善)은 인도이고, 덕(德)은 천도이다. 오직 유덕자가 있어야 비로소 종을 울려 음 악을 연주하기 시작하고, 옥기를 쳐서 그것을 끝맺을 수 있다.98)
95) 帛書 五行 8장 說, “言舍其體而獨其心也.”
96) 池田知久 (1993), p. 145.
97) 이처럼 선이 덕에 귀속되는 것을 이케다 도모히사는 오행의 ‘복귀사상’이라고 칭하였다 (池田知久, 1993, p. 129).
98) 帛書 五行 9장 經, “金聲而玉振之, 有德者也. 金聲, 善也. 玉音, 聖也. 善, 人道也. 德, 天 道也. 唯有德者, 然後能金聲而玉振之.”
백서오행에서 유덕자는 바로 군자를 말하고, 군자도가 천도이자 덕이다.
종으로 시작해서 옥기로 완성되는 음악은 군자도·천도·덕을 비유한 것이다.
그 러므로 오행편에서는 ‘금성옥진’의 비유를 통해 덕(德)은 ‘선(善)+성(聖)’으 로 완성됨을 표현했다.
이에 선이 신체적·물질적 조건하에서 실현되는 한계가 있으며, 심을 통해 신체적 활동이나 욕망을 절제할 수 있어야 덕을 완성할 수 있는 것이다.
군자의 죽음으로 그의 선행은 더 이상 볼 수 없더라도 그의 덕은 시공을 초월하여 천하의 모범이 되는 것은 오행이 조화를 이루는 ‘선+성’으로 덕이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기에는 덕 즉 도덕자아의 완성이 내면의 추상적 사유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실천, 그를 위한 후천적 노력을 강조하는 의도가 깔려있다고 볼 수 있겠다.
이상의 논의들을 정리하면, 오행과 사행은 형어내의 덕지행과 불형어내의 행, 내면과 외면, 심과 신, 덕과 선, 천도와 인도, 도덕적 주체와 객체 등의 관계 로서 상·하부 구조로 나누어진다.
이 모든 것은 군자도라고 하는 덕의 완성이 목표이므로, 그 하부구조의 선이 덕에 귀속하는 천인합일의 사상이라고 하겠 다.
이를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그림 1> 백서오행편 심성론의 상·하부 구조: 생략(첨부논문 파일참조)
이를 통해 천도는 단순히 “오행이나 덕이 인간의 내면에 부여되어 있는 것 의 선천성·자연성”을 의미한다기 보다는, ‘인간내면에 선천적으로 부여된 도 덕감정이자 도덕법칙이고, 자율적이고 주체적으로 도덕자아의 완성을 이룩할 수 있는 근거이자 완성태로서의 정신세계’라고 할 수 있겠다.
인도 역시 “사행 의 조화·통일로서의 ‘선’을 완성하기 위한 인간의 목적의식적인 후천적 인위 적인 노력”으로 국한되지 않고,99) ‘인간내면에 선천적으로 부여된 도덕감정이자 도덕법칙을 후천적 노력을 통해 외면으로 발출하는 도덕실천행위이며, 감 각기관의 욕망이 도덕성에 부합되어야 하는 객체로서의 신체적 측면’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99) 池田知久 (1993), p. 119.
이러한 상·하부 구조는 서로 내적 연속성 하에서 인도가 천 도로 귀결되는 복귀사상 뿐만 아니라, 수심과 수신의 확충과정 속에서 상호 보 완적 관계를 가진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5. 결론
본고의 목적은 백서오행편에 나타나는 심성론의 구조분석을 통해서 ‘천 도’와 ‘인도’의 의미를 재고찰하는데 있었다.
심성론의 구조는 크게 ‘오행’과 ‘사행’으로 구분되는데, 그것은 다시 ‘형어내’와 ‘불형어내’, ‘덕지행’과 ‘행’, ‘덕’과 ‘선’, ‘천도’와 ‘인도’로 나누어진다.
일부 선행연구자들은 오행과 사행 의 관계를 분리된 이원론적 관점에서 보았고, 이에 반해 오행과 사행이 연속성 을 가지는 것으로 보는 연구자들의 관점은 일원론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본고에서는 각 선행연구를 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오행과 사행은 내적 연속성을 가지는 일원론임에 힘을 실으며 부족한 논의를 보충하였다.
우선 백서오행편은 3단계를 거쳐 덕과 선을 완성한다.
①단계는 인간이 천(天)으로부터 인·의·예·지·성의 단서를 부여받아 확충하는 단계이며,
②단계 는 오행과 사행이 완성된 단계이다. 오행이 서로 조화되고 사행이 서로 조화되 어
③단계인 덕과 선의 완성을 이룩한다.
따라서 확충의 과정은 ①에서 ②단계 사이, ②에서 ③단계 사이에 두 가지 타입이 있다.
먼저 ①단계의 오행과 사행의 단서는 모두 천(天)으로 부여받은 미완성의 것 으로 동일하며, 오행은 사행보다 ‘성(聖)’과 그 단서인 ‘총(聰)’이 하나 더 많을 뿐이다.
즉 오행과 사행의 단서는 모든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부여받는 선천 적인 것으로,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후천적·인위적인 노력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선천적으로 도덕적 자율성을 가지고 태어난 도덕적 주체 이다.
이처럼 오행과 사행은 성(聖)을 제외한 단서는 동일하므로 내적 연속성을 가지는데, ‘형어내’와 ‘불형어내’로서 양자를 구분하기도 한다.
일원론과 이 원론적 관점 모두 두 개념에 대해 논의가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이에 필자는 ‘형(形)’을 ‘드러남[顯現]’으로 해석하며, ‘내면에서 드러남[形於內]’과, ‘내면에 서 드러나지 않음[不形於內]’ 즉 ‘외면에서 드러남[形於外]은 천도(天道)라는 동일한 근원을 둔 일원론으로서, 곧 내적 연속성을 갖춘 것임을 밝혔다.
양자를 인간의 내면적 측면과 외면적 측면으로 본다면 ‘덕지행’과 ‘행’의 개 념도 구분할 수 있다.
‘덕지행’은 인간 내면에 부여된 오행 각각의 도덕적 단서 가 덕(德) 즉 도덕자아의 완성을 향해가는 내면적 흐름[行]’을 칭한 것이자, 동 시에 사행의 도덕실천 행위인 행(行)이 다시 내재화되는 수렴의 과정을 포함하 므로, 수심(修心)의 측면에 대한 논의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사행의 행은 도덕 적 단서로부터 덕을 완성할 때까지 실제적인 도덕실천행위로서 기여하는 바, 그 외면적·실천적 행위를 칭한 것이며, 수신(修身)의 측면에 가깝다.
이러한 수 심과 수신은 결국 내면과 외면의 동시적인 상호보완성을 띠는 구조로 전개되 는 것이다.
마지막 ③단계의 덕과 선은, 오행의 덕이 하늘로부터 도덕감정내지 도덕법 칙의 단서를 부여받아 오행의 완성과 조화를 이룬 도덕자아의 완성태로서 정 신적 차원의 도덕적 주체성과 연결된다면, 사행의 선은 마찬가지로 부여받은 단서에서 출발해, 외면에서 도덕행위의 실천을 거쳐 사행의 완성과 조화를 이 루어 도덕자아의 정신적 차원에 부합되어야 하는 객체성과 연결된다.
이는 심 신(心身)의 관계로도 논의되었다.
덕의 시작은 단서가 발생하는 장소 즉 신체 기관으로서의 심(心)이라면, 덕의 끝마침은 그 신체적 심(心)을 초월한 군자의 정신세계이자 천하 사람들이 우러르는 덕으로 완성된다.
반면에 선의 시작은 ‘내면에서 드러나지 않는[不形於內]’ 외면의 도덕적 실천행위이자, 심(心)의 지배를 받는 6가지 감각기관으로서의 신체이며, 선의 끝마침은 그 신체적·물 질적 한계를 초월하지 못한다.
그러나 백서오행편에서는 외면적 실천행위 와 감각기관의 욕망이 궁극적으로 인의(仁義)의 심(心)에 부합하는 선(善)을 추구하고, 덕(德)은 ‘선(善)+성(聖)’으로 완성된다고 간주한다는 점에서, 선은 덕(德)을 완성하는 하나의 필요조건으로서 덕에 귀속되는 복귀의 사상을 함축 한다.
이상의 논의들을 정리하면, 백서오행편의 오행과 사행으로 시작된 천도와 인도는 상부구조와 하부구조로 구성된 일원론으로, 천도는 ‘인간내면에 선 천적으로 부여된 도덕감정이자 도덕법칙이며, 자율적이고 주체적으로 도덕자 아의 완성을 이룩할 수 있는 근거이자 완성태로서의 정신세계’라면, 인도는 ‘인간내면에 선천적으로 부여된 도덕감정이자 도덕법칙을 후천적 노력을 통 해 외면으로 발출하는 도덕실천행위이며, 감각기관의 욕망이 도덕성에 부합되 어야 하는 객체로서의 신체적 측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두 가지 영역은 서 로 내적 연속성 하에서 인도가 천도로 귀결되는 천인합일사상일 뿐만 아니라, 수심과 수신의 확충과정 속에서 상호 보완적 관계를 가진다.
참고문헌
大學 孟子 周易 文子 管子 鄭玄 注. 賈公彦 疏. 2000. 周禮注疏. 北京: 北京大學出版社. 許愼. 段玉裁 注. 1981. 說文解字. 上海: 上海古籍出版社. 賈誼. 1983. 新書. 文淵閣四庫全書. 子部 一. 儒家類. 695冊. 臺北: 臺灣商務 印書館. 강신석. 2013. 「郭店楚簡 君子論 五行 譯註(I)」. 중국어문학논집 78호: 523- 549. 강신석. 2013. 「郭店楚簡 君子論 五行 譯註(II)」. 중국어문학논집 80호: 329- 353. 박봉주. 2005. 「郭店楚簡의 君臣論과 그 楚國史的 意味」. 東洋史學硏究 78집: 1-49. 백종석. 2005. 「곽점초간 오행편의 천도, 인도의 문제와 수양의 문제」. 철학논 집 11집: 180-206. 석미현. 2021. 「역위에 나타나는 오행과 오상의 관계」. 철학연구 64집: 39-70. 원용준. 2022. 「곽점초간 오행(五行)을 통해 본 고대 유가사상의 전개 양상」. 유교사상문화연구 90집: 129-160. 홍성민·유흔우. 2017. 「竹帛五行의 聖智觀 연구」. 儒敎思想文化硏究 68집: 85-116. 梁涛. 2002. 「简帛五行新探——兼论五行在思想史中的地位」. 孔子研究. 第5期. 朱小明. 2013. 「从竹帛五行的“圣”字解读先秦儒家思想的内在化走向」, 中原 文化硏究. 第4期. 34 철학(제161집) 黃俊傑. 1991. 「孟子後學對身心關系的看法-以馬王堆漢墓帛書五行篇為中心」. 思想與學術. 臺北: 東大圖書. 賈誼. 2007. 신서, 박미라 옮김. 서울: 소명출판. 1999. 黃帝內經素問 上, 李慶雨 번역, 鄭載求 외 감수. 서울: 여강. 劉安. 2010. 회남자 1·2, 이석명 옮김. 서울: 소명출판. 2016. 곽점초묘죽간, 최남규 역주. 고양: 학고방. 裘錫圭 主編. 2014. 長沙馬王堆漢墓簡帛集成·肆. 北京: 中華書局. 郭沂. 2001. 郭店竹簡與先秦學術思想. 上海: 上海敎育出版社 龐樸. 2000. 竹帛五行篇校注及研究. 臺北: 萬卷樓圖書由限公司. 劉信芳. 2000. 簡帛五行解詁, 臺北: 藝文印書館. 魏啓鵬. 1991. 德行校釋. 四川: 巴蜀書社. 陳來. 2009. 竹帛五行與簡帛硏究. 北京: 生活·讀書·新知三聯書店. 池田知久. 1993. 馬王堆漢墓帛書五行篇硏究, 東京: 汲古書院. 荊門市博物館. 1998. 郭店楚墓竹简. 北京: 文物出版社.
【요약문】
본고의 목적은 마왕퇴백서오행편에 나타나는 심성론의 구조분석을 통 해서 ‘천도’와 ‘인도’의 의미를 재고찰하는데 있었다.
백서오행편의 ‘오행’과 ‘사 행’은 3단계를 거쳐 최종적으로 천도와 인도를 완성한다.
먼저 ‘내면에서 드러남[形 於內]’과, ‘내면에서 드러나지 않음[不形於內]’은 천도라는 동일한 근원을 둔 일원론으로서, 곧 내적 연속성을 갖춘 것이다.
이에 따라 ‘덕지행’은 도덕자아를 완성 [德]해가는 내면적 흐름[行]이자 사행의 도덕실천행위인 행(行)이 다시 내재화되는 수렴의 과정도 포함되므로 수심(修心)의 측면을 논한 것이다.
사행의 ‘행’은 덕을 완 성해나가는 과정에서의 도덕실천행위로서, 수신(修身)의 측면에 가깝다.
덕이 도덕 자아로서 정신적 차원의 도덕적 주체성의 의미를 내포한다면, 선은 도덕자아의 정신적 차원에 부합되어야 하는 객체성의 의미를 가지며 궁극적으로는 덕으로 복귀한 다.
결국 천도와 인도는 상부구조와 하부구조로 구성된 일원론에 해당한다.
상부구조인 천도는 ‘인간내면에 선천적으로 부여된 도덕감정이자 도덕법칙으로, 자율적 이고 주체적으로 도덕자아의 완성을 이룩할 수 있는 근거이자 완성태로서의 정신세 계’이다.
하부구조인 인도는 ‘인간내면에 선천적으로 부여된 도덕감정이자 도덕법 칙을 후천적 노력을 통해 외면으로 발출하는 도덕실천행위이며, 감각기관의 욕망이 도덕성에 부합되어야 하는 객체로서의 신체적 측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양자는 서로 내적 연속성 하에서 인도가 천도로 귀결되는 천인합일사상일 뿐만 아니 라, 수심과 수신의 확충과정 속에서 상호 보완적 관계를 가진다.
【주요어】 마왕퇴백서오행, 심성론, 사행, 천도, 인도
Abstract
The Meaning of ‘Tiandao’ and ‘Rendao’ through the Structure of Theory of Xin-Xing in the Mawangdui Silk Manuscripts Wuxing
Mihyun Seok
The purpose of this paper was to reconsider the meanings of ‘Tiandao(天道)’ and ‘Rendao(人道)’ through the structural analysis of the Theory of Xin-Xing(心 性) in the Mawangdui Silk Manuscripts Wuxing. The ‘Wuxing(五行)’ and ‘Sixing(四行)’ in the Wuxing pass through three stages to finally complete ‘Tiandao’ and ‘Rendao’. First, ‘Xingyunei(形於內)’ and ‘Buxingyunei(不形於 內)’ belong to the monism that have the same source, the Tiandao, and have an inner continuity. Therefore, ‘Dezhixing(德之行)’ is the internal flow(行) of perfecting the moral self(德), and it also includes the process of convergence in which the acts of moral practice of the ‘Sixing’ are re-internalized, so it is an aspect of ‘Xiuxin(修心)’. The ‘Xing(行)’ of the ‘Sixing’ is the moral practices in the process of perfecting ‘De(德)’, and are close r to the aspe ct of ‘Xiushe n(修身)’. If ‘De (德)’ implies the meaning of moral subjectivity on the spiritual aspects as the moral self, then ‘Shan(善)’ has the meaning of objectivity, which should be in line with the spiritual aspects of the moral self, and ultimately returns to De(德). In the end, Tiandao and Rendao correspond to a monism consisting of a super structure and a substructure. Tiandao, the superstructure, is “the moral emotion and moral law inherent in human beings, and the mental world as the basis and completion of the moral self autonomously and subjectively,” and Rendao, the substructure, is “the act of practicing morality, which is the outward expression of the moral emotion and moral law inherent in human beings through acquired efforts, and the physical aspect as an object that must conform the desires of the sense organs to morality. And it is not only the thought of Tian-Ren Heyi(天人合 一思想) in which Rendao boils down to Tiandao under the inner continuity of each other, but also have a complementary relationship in the process of expansion of Xiusin and Xiushen.
Subject Areas: Chinese Philosophy
Keywords: The Mawangdui Silk Manuscripts Wuxing, Theory of XinXing(心性), Sixing, Tiandao, Rendao
철학 제161집 2024년 11월
투고일 : 2024년 10월 13일 심사일 : 2024년 10월 22일 ~ 2024년 11월 17일 게재확정일 : 2024년 11월 18일
'철학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헤겔의 시원론(始原論)과 주희(朱熹)의 태극론(太極論)에 관한 비교연구-존재론적 관점의 차이를 중심으로-/권기환.경희대 (0) | 2024.11.25 |
---|---|
장자철학에서 ‘도’의 존재론적 지위/윤천근.안동대 (0) | 2024.11.25 |
논어에 나타난 ‘권도(權道)’의 논리 구조와 의미 -주희와 왕부지의 관점을 중심으로-/이철승.경희대 (0) | 2024.11.25 |
근대전환기 중국철학계의 연구 동향과 특징:유가철학과 마르크스주의철학의 관계를 중심으로/이철승.조선대 (0) | 2024.11.25 |
王夫之의 양명학 이해 및 비판에 관한 연구 /진성수.성균관대 (0) | 2024.1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