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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야기

토착화신학의 상호문화적 전개 가능성 모색/신용식.부산장신大

 I. 서론: 다문화적 생활세계 속에서 한국적인 것의 의미

 

본연구는세계화현실속에서한국의문화적, 사상적특수성에기반 을 둔 한국적 문화신학으로서의 토착화신학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오늘날 다문화적 생활세계속에서 요구되는 토착화신학의 새로운방향성을 모색하려는 시도이다.

토착화신학이 곧 한국적 문화신학이다.

그렇 기에 이연구는과거 토착화신학연구자들의 노고속에 잠재된 채로 남아 있던 토착문화 및 사상의 상호문화적 파편들을 다시금 조명하려는시도 이다.

과거토착화신학연구자들이그토록토착적인문화와사상과신학적으로고군분투했던것은 그자체가 선교적 과제 였기때문이다.

이들의 학문적투쟁은 오늘의 한국적 신학에도 여전히 이어받아 발전 시켜야 하는 중요한 과업이다.

토착화신학의관점에서복음과문화의상관관계를염두에두자면, 신학은근원적으로상황적이며해석학적이다.

일찍이 이 복음과 문화의 상관관계를자 신의신학의 체계로삼았던 폴틸리히(Paul Tillich, 1886~ 1965)는그의 신학을 위한 방법론으로 상관관계를 활용하였다.

이는 비단 하나님과 인간/피조물이라는수직적구조뿐아니라, 문화와종교라는수평적구조를 모두 함축하는 방법론이다. 1)

 

    1) 이글은필자가앞서발표했던두연구의후속작업이다. 하나는신용식, “문화신학의 해석학적과제에대한고찰: 폴틸리히의문화신학과김광식의토착화신학의비교연 구,” 「한국조직신학논총」 62 (2021): 73-116이며, 또다른하나는신용식, “폴틸리히 의문화신학에대한상호문화적비판: 베른하르트발덴휄스의타자현상학을중심으 로,” 「한국조직신학논총」 71 (2023): 95-137이다. 특히, 두번째글은2023년4월22일, 한국조직신학자전국대회(주제: 생명과신학)에서발표한“폴틸리히의문화신학에 대한 상호문화적 비판: 베른하르트 발덴휄스의 타자 현상학을 중심으로”를 수정 및보완한것이다. 필자는틸리히의상관관계방법이문화신학에있어서는일관되게 그리고유효하게견지되지못한채, 유형론적인구조안에서폐쇄적으로작동되고 있었기에, 상관관계적신학이본래지향하는바를완성할수있는상호문화적관점을 발덴휄스를 통해 보완하고자 했다. 본논문은폴틸리히의문화신학이상호문화적으로확장되었을경우를가정함으로 써그간이행된한국의토착화신학을비판적으로검토하고, 이토착화신학이다시금 문화신학적과제로, 더나아가상호문화적으로다루어져야하는학문적당위성과 그과제를다루고자한다. 위자료집은한국조직신학회홈페이지(http://ksst.kr/sym posium_book/6885 * 2024년 8월 2일 접속)에서 확인 가능하다. 

 

신학은 근본적으로 문화 및생활세계의 지평을 간과한 채로 이행될 수없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복음이 문화속으로 의미부여될 수 없다면, 복음은 힘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복음과 문화는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복음은 문화가 아니며, 반대로 문화역시도 복음일수 없다.

이둘은 철저 히 내용과 형식의 상관관계 속에서 올바로 이해될 수 있다.2)

위와같은의미에서복음은필히문화를통해서현상하고, 문화와 더불어해석되어야한다.

이러한해석학적관심에서한국신학안에서 1960년대에만개한것이토착화신학이다.3)

 

    2) 아래에서살펴보겠지만, 윤성범의경우에도 복음과문화, 복음과재래 종교를, 더 나아가 여러 종교와 기독교를 혼합하는 것은 결국 기독교의 복음 진리를 파괴할 뿐이라고강조하고있다. 더나아가그는토착화신학이재래종교를연구하는이유가 그것과기독교의혼합이아니라, 양자를분명히구분하여올바른복음이해의토대를 확보하기위함이라고주장한다. 이에대해서는윤성범, “복음의토착화에대한전이 해,” 「기독교사상」 66 (1963): 28-35, 특히 31-32를 보라. 이와 관련하여 한 심사자는 Kathryn Tanner의 탈근대적 문화신학을 근거로 복음 자체가하나의문화적혼종성(Hybridity)의표현임을주지하면서, 본연구의문화신 학이지나치게폴틸리히의영향아래있다고평가했다. 아마도심사자는틸리히를 근대적문화신학에, Tanner를탈근대적문화신학에대입시켜, 틸리히의논의가Tanne r에비해닫힌구조를지니고있다고평가한듯하다. 하지만필자는틸리히연구자로 서 복음과 문화의 상관성을 염두에 두면서, 문화의 본래적 속성이 혼종성이라는 것과복음이혼종적이라는교묘한주장을구분하는것이신학의시작이라고본다. 그리고복음이문화를통해서구성되는것이라고이해되어서도안된다. 에드문드 후설(Edmund Husserl)의 현상학을 적용해서 설명하자면, 현상이 의식 내적으로 구성된다고하여 본질(곧복음)이(문화로써) 현상하는것을 그 본질자체가 구성적 의식활동의 산물일 뿐이라고오해해서는 안되는것과 같은이치이다. 복음이문화 를통해현상하는것이지, 복음자체가 문화라거나 문화의 혼종적변혁의산물이라고 이해될수는없다. 복음과문화는내용과형식, 본질과현상의관계로이해되는것이 더 타당하다. K. Tanner의 문화신학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와 그것의 구성주의적 특징에대해서는이은주, “캐트린테너의자기-비판적문화론,” 「한국조직신학논총 」 33(2012): 421-453, 특히 428-432를 참고할 것.

    3) 토착화신학의역사적발전을기반으로그단계를분류하자면, 1세대 토착화 신학은 윤성범(1916~1980)과 유동식(1922~2022)으로, 2세대 토착화 신학은 김광식(1939~), 이정배(1955~) 그리고 그 나름의 한국적신학을 모색했던 김흡영(1949~)과 허호익 으로구분될수있다. 이1세대와 2세대라는 잠정적구분은 변선환아키브· 동서신학 연구소 편, 제3세대 토착화신학 (서울: 복있는사람, 2010)에서 등장하였다. 이 글에서 주로 거론될 이들의 연구는 다음과 같다: 윤성범, “환인, 환웅, 환검은 곧 하나님이다,”「사상계」(1963. 05.); 윤성범, “단군신화는 Vestigium Trinitatis이 다,”「기독교사상」(1963. 09.); 김광식,선교와토착화(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7 5); 김광식,토착화와해석학 (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87); 이정배,한국개신교전위토착신학연구(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3); 이정배,토착화와 세계화(서울: 한들출판사, 2007); 김흡영,도의신학I (서울: 다산글방, 2000); 김흡영,도 의신학II (서울: 동연출판사, 2012); 허호익,단군신화와기독교 (서울: 대한기독 교서회, 2003); 허호익,천지인신학 (서울: 동연출판사, 2020); 허호익,한국문화 와 천지인 조화론 (서울: 동연출판사, 2020). 그 밖의 다양한 한국신학을 둘러싼 담론을제시하고논의를전개했던과거학자들의글은분량상최소한으로언급할 것이다. 그리고이 연구는과거토착화신학의면모자체를검토하는 것이아니라, 그핵심적관심과방법론을명확히도려내고이를비판적으로계승할수있는상호문 화신학으로서의 토착화신학의 가능성과 과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이른바 토착화신학은 소위  한국적인 신학을 구현하기위한 그간의 노력들이 배어있는결정체이며, 복음을한국적으로이해하고해석하는과제를통칭한다.

1세대토착화 신학중에서 윤성범은 단군신화와 유교에 기초하여 복음을 해석하였고, 유동식은 풍류라는 한국사상의원 류에 기초해서전개했다.

더나아가 2세대 중에서 김광식은 언행일치 개념을 통해 서양과 분명한 차이를 보이는 동양적 사유체계로 토착화신학의 원리를모색했다면, 이정배는 동학의 개벽사상을 통해 소위 개벽적기독교를제시했다.

그밖에도 김흡 영은전통적인 로고스중심신학과 실천중심의신학 으로양분되어왔던 신학사를비판적으로조명하면서, 이둘을뛰어넘는 유교적시각을 “도 의신학”으로구체화하기도했다. 

허호익은 단군신화안에 흐르는 천지 인조화사상을 한국신학의 전개원리로 모색하고자 했다.

이러한토착화 신학의 다양한 시도들은 한국적인 그 무엇 혹은 한국적 정체성을 담지하 는 문화적사상적기저를 모색하면서 한국적 신학을 주창하려는시도들 이었다.

하지만불현듯필자는‘과연이세계화시대에한국적인신학이가능 한가?

만일가능하다면, 그것은한국적인특수성을발굴하는작업으로 부터시작되어야할까?’라는의문을가졌다.

한국역사속에서발견되는 단군신화, 유교, 풍류, 동학 등 역시도 한국인들의 삶의태도4)에 기반 하여구성되고발전된결과물이다.

 

   4) 여기에서“태도”(Einstellung, attitude)라함은현상학및현상학적사회학의배경에 서개인이사회세계안에서문화적으로습득한실천양식을통칭한다. 특히현상학 적사회학자알프레드슈츠(Alfred Schütz)에따르면, 한사회는이미그나름의체계 와그체계에대한지식및관련규범이전제되어있는데, 그관련규범들은그사회 구성원들이적합하다고여기는것들에상관관계적으로의미부여되고반성된결과 물들이다. 슈츠는바로특정사회체계내에서의의미선택체계를“레시피”(Rezept) 라고불렀으며, 이것이본논문에서“삶의태도”라는개념이의미하는바이다. 슈츠 의“레시피”에대한논의는Alfred Schütz & Thomas Luckmann, Strukturen der Leben swelt (Konstanz: UVK, 2017), 44를 보라. 

 

이것들역시도하나의문화적형식일 뿐이다.

우리의토착화신학담론은이것들보다더심층적으로, 한국인들 의삶의태도에대한분석으로까지들어가야하지않을까?

세계화로인해 문화적다양성이우리삶의일반적조건으로자리한상황속에서우리에 게요구되는문화신학적과제는신학의상호문화역량을강화하는것이 다.

상호문화역량은상호문화적해석을통하여우리의문화적기저를 확보하는 역동성을 뜻한다.

만일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은한국적특수성이세계적인보편문화적현상에유의미한 지평을선사할때에만가능하다.

하지만상호문화적관점에서보자면, 우리의문화적특수성이아니라, 타문화와소통할수있는사이의공간으 로서의문화적중첩을다루어야한다.

토착화신학담론은 양적합리성과 동양적합리성을 구분짓는이분화를 넘어서야 한다.

그리고이둘을 포괄할 수 있는 중첩과 유비에 기초한 합리성을 모색하고, 한국 문화 및사상의특수성이보편적인세계화된생활세계와중첩될수있는사이 영역으로기능할수있음도논증해야한다.

이를위해서는토착화신학이 상호문화적인 지평을 확보하고 있음이 비판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당초 연구는 한국적인 그 무엇으로부터 복음의 문화적 현상들을 해석하는과제로서토착화신학을다루는것이었으나, 앞선문제들에 대한고민으로이논문의방향이크게바뀌었다.

토착화신학은한국토착 적사상과이념자체에천착할것이아니라, 한국인들의삶속에전래되고 내재된삶의태도로돌아들어가는작업이필요하다.

이를위해우선적으로 토착화신학 앞에 놓인 학문적딜레마와 토착화신학의 문화신학적 성과와 한계를 정리할것이다(II).

이어서오늘날토착화신학이추구해 야하는한국인들의 삶의 태도에 대한 분석의 근거와 요소들을 분석할 것이다(III).

 

II. 문화신학으로서의 토착화신학의 딜레마와 그 과제

 

1. 한국 문화 안에 자리한 한국적 정체성? 그리고 토착화신학의 딜레마

 

토착화신학은한국적인것을다루어야하지만, 그토착적인것이 낯설게느껴지기까지하는 세계화된오늘날의 다문화적생활세계속에 서다시금 우리의 문화와사상을 재조명해야하는 학문적딜레마에 놓여 있다.

그러므로우리에게가장핵심적인질문은지금우리의사회-문화 적현실은어떠한가이다.

일찌감치 이찬석은 필자가 고민하고있는바로 그 지점을 아래와 같이 지적한 바 있다.

 

세계화의 물결은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확대되어질 것이고, 한국교회의해외선교적열정을계속되고있다. 이와더불어한국의 전통문화보다는 기독교문화에 더 친숙함을 느끼는 ‘기독교적 한국 인’은계속적으로증가될것이다. 이러한21세기의상황에서복음과 문화를 분리하고, 대립적으로 이해하는 파종, 발효, 접목의 비유는 적합성이 상실되어지고 있다.5)

 

이는한국적신학을시도하려는이라면누구나느낄법한학문적 당혹감이다.

이런딜레마앞에서토착화신학이직면하는가장도발적인 질문은과연한국적인그무엇이존재하는가이다. 6)

 

     5) 이찬석“토착화신학의모델들에대한비판적고찰,” 「한국조직신학논총」 27(2010), 134.

     6) 사실한국적정체성및한국의문화적정체성을다루는선행연구들은아주방대하다. 본연구의주제와직접적으로관련하여서언급하자면다음의연구들이눈여겨볼만 하다: 신현준, “한국문화와한국인의정체성에관한몇갈래의사고들,” 「문학과사회」 13/3 (2000): 1316-1323; 김종만· 김은기, “가치관을통해본한국인의문화적정체성: 유교와무교를중심으로,”「신학과사회」 34/3 (2020): 193-235; 이기동, “한국문화의 형성원리와 그 표현형식,” 「한국사 시민강좌」 40 (2004): 21-39; 김봉렬 · 심광현, “한국문화의정체성을말하다,” 「문화과학」 42 (2005): 296-317; 공유식, “세계화와 한국문화: 문화적 폐쇄성 극복,” 「계간 사상」 24(1995): 193-215; 김수정 · 김수아, “집단적도적주의에토스: 혼종적케이팝의한국적문화정체성,” 「언론과사회」 23/3 (2015): 5-52; 송준, “세계화대응전략과지역문화의중요성,” 「한국민속학」 58 (2013): 203-234; 오지섭, “세계화시대한국문화의정체성: 한국중교의 조화와 공존적 특성 을 중심으로,” 「인간연구」 14 (2008): 7-33; 임형백, “한국인의 정체성의 다문화적 요소: 역사-인류학적 해석,” 「다문화와 평화」 4/2 (2010): 10-43; 조병준 · 고정은, “다문화시대한국인의국민정체성고찰,” 「언어와문화」 9/13 (2013): 301-327; 차하 순, “문화를통해본세계,” 「계간사상」 52 (2002): 74-94; 허영식· 정창화, “한국의 정체성 재정립을 위한 간문화적 접근방안,” OUGHTOPIA: The Journal of Social Paradigm Studies 27/2 (2012): 239-265; 현택수, “문화의 세계화 담론과 문화정체 성,” 「문화정책논총」 13 (2001): 1-25; 현택수, “문화의세계화와한국문화의정체성: 비언어극 <난타>의 사례 연구를 중심으로,” 「한국학연구」 20 (2004): 175-199. 

 

사실 이러한 질문은 과거의 것을 부정하는 허무주의적, 해체주의적주장 이라기 보다는 한국 역사를 관통하는 한국인들의 현실을 대하는 태도에 초점을 맞추고있다.

그렇기에 특정사상적 유산으로 정체성논의 들을 환원하는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가령 탁석산은한국적 인것은 없으며, 단지 시대마다 실용주 의적태도로 현세적행복을 추구했을뿐이라고, 심지어 종교도 이념도 모두 현세주의적인 토대위에서 토착화되었다고말한다.7)

 

     7) 탁석산,한국인은무엇으로사는가? (서울: 창비, 2008), 63. 물론그는샤머니즘을 그후보로거론한바있다. 하지만문제는이샤머니즘이 한국적인 것의 원형이라기 보다, 한국인들의 삶의 태도에 맞았기 때문에 한국적인 것이 되었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탁석산, 한국의 정체성 (서울: 책세상, 2020), 112-113을 참고할 것.

 

그리고 호미 바바의 혼종성담론을 통해 최근 한국문화의 창조성을 혼종성이라고 분석했던 문소영의 연구 역시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8)

 

     8) 문소영, 혼종의 나라(서울: 은행나무, 2024). 

 

우리는오늘날 한류의내부에한국적인그무엇혹은그원류가있다고, 특정드라마의 국제적흥행이한국적인것의흥행으로보고자하지만, 문소영은이러한 일반적상응관계에 제동을 걸고서, 한국의 문화적역량은 낯선 것을 익숙 하게 버무리는 것에 있다고 지적한다.

실용주의적 현세주의 혹은 창조적 혼종성에 특화된 한국문화라는 견해들은 일면 타당한 듯 보이지만, 달리 보면 참으로 허무하기 짝이 없는이야기처럼들리기까지한다.

그럼에도위와같은허무주의적으로 들리기까지하는논의들이중요한것은한국적인그무엇이아니라, 한국 적인 삶의 태도를 모색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한국적인 그 무엇이 있다없다하는이야기들의긴장속에서도여전히우리는한국적인그 무엇, 곧그러한삶의태도를찾고자하는노력을지속할수밖에없다.

그러한노력을통해서우리시대에요구되는신학적진술의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적인그무엇의정형화된대상및이념하나를도출하기란거의 불가능에가깝지만, 한국의 역사경험과 그경험기저에 자리한 집단기억 은 분명 존재한다.

그래서 “국민이 가지는 정체성은집단적인 역사적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형성되고변화한다”고했다. 9)

 

    9) 이숙종외, 뺷2020 한국인의정체성: 지난15년간변화의궤적뺸 (서울: 동아시아연구 원), 15. 통상적으로국민정체성모델은민족적-혈통적모델과시민적-영토적모델 로나뉜다. 우리나라의경우에는전자의모델을, 미국과같은다문화국가의경우에 는후자의모델을따른다. 하지만최근우리나라가다문화사회로접어들면서이러한 국민정체성모델이혼재되는양상을보이고있다. 한마디로우리나라는“의식적으 로는시민형이지만, 정서적으로또는감정적으로는여전히종족형에머물러있다” 고볼수 있다. 이에대해서는조병준 · 고정은, “다문화시대 한국인의 국민정체성 고찰,” (2013): 309-314를 보라(인용 부분은 314를 참고). 그리고역사와집단기억그리고그것이사회적태도형성에미치는영향에대해서는 일찍이알라이다아스만(Alaida Assmann)은, 역사과기억(Memory)의상관관계에 입각해서, 과거의 역사적 기억 및 집단지억은 단순히 보존된기억(remembered)이 아니라 회상적기억(memorized)임을구분하였다. 그렇기에 과거의 것이 실체로서 고정불변하게존재하는것이아니라, 물론“학습을통해서획득될수는있으나, 오로 지내면화와참여의식을통해서만“우리”라는정체성이창조” 된다는것이다. 결국 “우리”라는사회적정체성은특정사회속에서의사회적태도를형성한다고볼수 있다. 이에대해서는Alaida Assmann, “Transformations between History and Memorey,” Social Research 75/1 (2008), 52; Alaida Assmann, “Re-framing memory. Betwee n individual and collective forms of constructing the past,” Karin Tilmans, Frank van Vree and Jay Winter eds., Performing the Past. Memory, History, and Identity in Modern Europe (Amsterdam: Amsterdam University Press, 2010), 37-38을참고할 것.

 

한국적정체성과 집단기억을처리하는태도는깊은연관성이있다.

토착화신학이관심을 가져야하는것은이집단기억을처리하는태도의영역에있어야한다.

과거토착화신학역시 이작업과 무관하지않지만, 구체적으로경험을 처리하는방식에있어서 충분히 전개하기보다는 과거전통에서 한국적 실재를 도출하는 이론적이고 원리적 분석에 관심을 두었다.

 

2. 토착화신학의 문화신학적 의미와 한계: 유형론적 환원주의에 대 한 비판적 고찰

 

토착화신학은과거의한국적인것에서복음의해석을위한소재를 찾는작업이었다.

이러한해석학적작업을위해서토착화신학자들은 한국적인것의정체를규명하는데에많은노력을기울여왔다.

물론우리 의것으로복음을해석하는것은모든토착화신학자들의궁극적인목표 이기도하거니와과거한국적사상속에복음의해석을위한귀한보화가 숨어있다는 연구의 대전제는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하지만그간의토착화신학은이러한한국적인것을형성해왔던 한국적인 삶의태도에 대한 근원적모색에있어서는충분히전개하지못했 다.

토착화신학은종교-문화적유비에서신학적해석의토대를마련하 거나, 우리의전통적사유체계를통해복음을해석하고자했다.

하지만  이는동시에복음의종교-문화적 아프리오리로 의 환원(1)과 복음해석 의 사유체계로의 환원(2)이라는 한계를 안고있다.

이를종합하자면, 그 것은복음의해석을위해과거의종교-문화적, 철학적범주로돌아가는 것이다.

여기에는이미급변하는우리시대의문화적현실과의경험적 비대칭이라는실제적어려움이충분히고려되고있지않다.

이는토착화 신학이지닌구조적한계일수도있다.

우리는이한계들을분명히함으로 써오늘날토착화신학의새로운전개를위한돌파구를함께모색해보아 야 할 것이다.

 

1) 한국신화와 복음의 해석학적 유비?: 유형론적 환원주의 1 ― 윤성범의 단군신화 담론

 

우선복음의문화적해석을위한전이해를깊이파헤친시도들을 살펴보아야한다.

토착화신학의근본적인생각은“복음의동양적이해” 의문제를환기했던 유동식의글 “도와 로고스”(「기독교사상」 1959년 3월)에서시작되었으며, 10) 구체적인“토착화” 개념은1961년12월, 기독 교사상지에 장병일이 “단군신화에대한신학적이해―창조설화의토착 화소고”라는제목으로글을발표하면서등장했다.11)

 

    10) 유동식, “도와 로고스 ― 복음의 동양적 이해를 위한 소고,” 「기독교사상」 (1959. 3): 54-59, 특히55. 유동식의작업은복음을우리한국적맥락에적합하게번역하 는 것과다르지 않다. 반면, 전경연은 복음에 문화적으로, 곧민족고유의맥락을 덧입히는것은복음에대한왜곡을불러일으킨다고보았다. 이둘의논쟁은복음 과 상황 및 문화의 상관성을 둘러싸고 있었지만, 다소 명확한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다.

     11) 토착화및토착화신학자체의역사를거칠게요약하자면, 문화적맥락과 해석학적 구조를 중시하는 복음에 대한 이해와 성서에 드러난 그리스도 중심적인 복음이해로 구분이 가능하다.전자는 유동식과 윤성범이 천착했던부분이라면, 후자는전경연과 박봉랑의 주된 관심거리였다. 이 토착화신학의 역사및 발전에 대한 간략한 소개는 김광식, “한국 토착화신학 형성사,” 「기독교사상」 35/6 (1991): 7-17, 특히10-14; 이상규, “1960년대 한국교회의토착화 논쟁,” 「고신신학」 (2002 봄): 221-245, 특히 228-232를 참고할 것. 그리고 한국 신학 전반의 성장 및 변천 속에서의 토착화신학의 자리는 유동식,뺷한국신학의 광맥뺸 (서울: 다산글방, 2003)을 참고할 것. 

 

그리고 단군신화에 대한 신학적해석을 둘러싼 윤성범과 박봉랑의 논쟁은 유동식과 전경 연의논쟁보다 구체적이면서도 치열한공방이오갔다. 12)

 

    12) 윤성범과 박봉랑의 논쟁을 담고 있는 글로는 우선 윤성범, “환인, 환웅, 환검은 곧 하나님이다,” 「사상계」 (1963. 5.); 윤성범, “단군신화는 ‘Vestigium Trinitatis’이 다,” 「기독교사상」 (1963. 9.): 14-18; 박봉랑, “기독교토착화와단군신화– 윤성범 교수의 소론과 관련하여, 삼위일체 해석의 신학적 문제를 중심으로,” 「사상계」 (1963. 7.); 박봉랑, “성서는 기독교 계시의 유일한 소스 ― 윤성범 박사의 대답에 답함,” 「사상계」 (1963. 10.)이다(단, 현재사상계글들은인터넷DB에업로드되어 있지 않음). 그리고 윤성범과 박봉랑의 논쟁에 대한 일목요연한 정리는 박영규, “단군이해를통한한국적신학의모색,” 「고조선단군학」 제2호(2004): 117-121을 참고할 것.   

 

본격적인토착 화신학의방법론을둘러싼논쟁이라고볼수있다.

여기에서는윤성범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윤성범은복음의 토착화의 전이해 자체를중시했는데, “환인, 환웅, 환검은 곧 하나님이다”와“단군신화는‘Vestigium Trinitatis’이다”라는 글을통해서우리문화속에서기독교신학의영향의파편들을찾고자 노력했다.

그에게있어서토착화라는것은일종의종교적-문화적아프 리오리를이해하고재래종교와기독교복음의만남을의미했다.

그의 연구방법론은 종교학적이고 언어학적이면서, 동시에 토속문화등에 관한 연구를 병행하는 것이었다.

그의 과업은 한국의 토속문화와 종교 속에서 기독교적인 요소를 찾고자하는데서시작되었다.

그는단군이야기가종교성을지닌신화라고하였다.

신화의양식을 빌어 종교적내용을  담고있기에 해석학적시도가 불가피하다고 여겼다.

그는기독교의삼위 일체교리가동방교회를 통해서 샤머니즘적인 한국전통으로유입되면서 단군설화로 집약되었다고봄으로써 단군신화와기독교의삼위일체 의유비를조명하였다.13) 

 

     13) 그는 “환인, 환웅, 환검은 곧 하나님이다”에서 이러한 단군신화의 삼위일체적 구성의 기원을 4세기 내지는 5세기로 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견해처럼 동방교회의영향을받아단군신화가구성되었겠는가를역사학적관점에서되묻 지 않을수 없다. 그의 주장처럼가설일뿐이다. 이에대해서는 아래의 각주 19를 참고할 것. 최근 허호익의 뺷천지인 신학뺸도 이들의 유형론적 시도의 궤도 안에 자리하고 있다고 볼 수있다. 그의작업 역시일종의 신학적 해석을위한 문화적, 역사적 발견(Heuristik)의 일종인 것이다. 단군신화가 지닌 신학적 의미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허호익, 뺷단군신화와 기독교뺸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3)를 참고할 것. 하지만 허호익은 윤성범보다 더 심층적으로 단군신화를연구했는데, 단순히 삼위일체와의 유비적 해설에 머물지 않고, 한국적인 세계관인 “삼태극” (하늘, 땅, 인간)으로 논의를 심화했다는 점에서 탁월한 안목을 선보인 바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허호익은 이미 1세대 토착화신학자 윤성범의 유형론적 환원주 의를뛰어넘었다고볼수있다. 이에대해서는허호익, 뺷천지인신학뺸 (2020), 57-62 을참고할것. 그는삼태극이 한국적지층이라는점을 단군신화와 더불어다음과 같이설명한다: “단군신화의천지인조화론은고대와삼국 시대에삼신신앙으로 전승되었고, 조선조 유교의 천지인 삼재론과 근세 천도교의 삼경론으로 이어졌 다(154). [중략] 삼태극문양이삼신신이라는신호의형태로전승된것이단군신화 이다(155).” 이 인용문은 허호익,뺷한국 문화와 천지인 조화론뺸 (2020), 154-155를 보라. 이와유사하게 김흡영은 하나님, 우주그리고 인간의조화 곧 삼태극을 모델링하 여 소위 “도의 신학”(Theo-Dao)을 주창함으로써 신-인학을 위한 한국적 성찰의 극치를보여준바있다. 이에대해서는김흡영, “생명, 생태, 신학: 신, 우주, 인간(삼태 극)의묘합(도의신학),” 「한국기독교신학논총」 13(2004): 181-211, 특히192-198을 참고할 것. 여기에서 김흡영은 유교적 인간상과 전통적 그리스도의 두 본성을 종합적으로다음과같이요약한다: “예수는다름아닌하늘땅사람의참길을따라 살신성인하여 참삶을 산 참사람, 하늘땅사람의 참어울림, 곧 그리스도이다. [...]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땅사람의 참길, 신우주인간적 도(Christ as the Theanthropocosmic Tao)라고 할 수 있다”(195).

 

그는“외래의것이라도그것이한국에들어와서우리의풍토에서독특한성격을띠고나타”나기에복음이해의문제는 결국우리의것에대한올바른이해와깊은관련이있음을강조했다.14)

다음과 같이 자신의 가설을 강조하였다.

 

나의견해곧단군설화는기독교삼위일체교리가동방교회를통해 서 동북 시베리아의 샤마니즘(무당교)의 세계에 들어오게 되고, 이 것이다시한국에들어와서그뚜렷한모습으로정착되어버린것이 아닌가라는 가설이다.15)

만일삼위일체교리가이와같이한국에와서낙착된것이라면여기 에는중요한문제가일어나게된다.

달리말하면이러한교리가한국 에와떨어질때에어떠한영향이있었겠느냐를생각해보면더분명 해질것이다.

우리는천주교나개신교가한국에들어오기전에벌써 훌륭한‘하나님’ 개념을가지고있었다는것하나만가지고도굉장한 사실이아닐수없는것이다. [중략] 만일단군설화가진정한의미의 삼위일체론의 잔해(vestigium trinitatis)라면 우리 기독교는 잃었던 부모를 찾은 기쁨과 흡사한 느낌을 가지게 될 것이다.16)

 

      14) 윤성범, “단군신화는 ‘Vestigium Trinitatis’이다”(1963), 15.

      15) 앞의 논문, 16.

      16) 앞의 논문, 17.

 

그에게단군신화는삼위일체교리의토착화된결과물이며, 수용미학의결정체이다.

그의작업은이렇듯종교학과역사적접근을통하여 우리의역사와전통속에배어있는복음의자취를발견하는작업이다.

그렇기에그는복음을담을수있는한국적전통이라는그릇을면밀히 다루고자했던것이다. 17)

 

     17) 앞의 논문, 18을 참고할 것. 

 

하지만그의작업의역사적근거를확인하기란 여간어려운일이아니기에, 박봉랑박사의비판처럼그의주장을가설을 넘어상상이라고치부해버릴수도있다.

하지만윤성범의연구가보여 주는바, 복음을수용하는문화적토양을준비하는것역시신학적과업이 아닐 수 없다.

박봉랑은“기독교토착화와단군신화”, “성서는기독교계시의유일 한소스”라는글에서 계시를떠나 피조물적 구조 그자체내에서 존재론 적유비를 찾을 수없다고 주장하였다.

즉, 계시를떠나서단군신화를 종교적-문화적아프리오리로보는것은곧단군신화가기독교삼위일체 하나님인식의필수적인요소라는것을의미한다.

성서는비록이스라엘 역사를포함하고있지만구약과신약은예수그리스도의유일한계시와 서로관련성을지니고있다.

그러므로하나님에관한지식과해석은예수 그리스도의지식과해석에, 이것은더나아가곧성서의본문과그것의 이해와해석과밀접한관련성을지니고있다는것이다.

즉, 하나님존재 양태에 대한 인식은 성서 외적인 것에서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에윤성범의토착화신학은“복음의내용이한국문화의순수형 식과결부되어야만된다”고강조한바, 복음이문화적형식을통해현상 할수있도록‘한국문화의본질적인내용과형식을올바로찾아놓는 작업’으로이해한다.18)

 

     18) 윤성범, “한국재발견에 대한 단상,” 「기독교사상」 (1963. 3.), 20. 

 

그의토착화신학은기독교의영향을받았음에 도, 우리가인지하지못한토속문화를조명함으로써, 오히려토속문화를 통해복음을이해하고해석할수있음을보여주는 한국적해석학적 신학의원류 라고볼 수있다.

그는그영향을논증하기위해종교학, 역사학 등의 학제적 연구를 병행하였다.

만일그의주장처럼단군신화가 삼위일체교리의 토착화된 결과물 이라고한다면, 우리의 신학적분석은 과연 우리의 어떠한풍토가 삼위일체교리를 단군신화의형식으로 구현되었는지를 숙고해 보는 것으로 나아가야할것이다.

윤성범의논의는한국문화에의기독교교리의영향 사를추적함으로써 양자의유비적관계를조명하는데에천착한나머지, 어떻게 이를 토착화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윤성범이촉발시킨삼위일체로부터단군신화가형성되었다는가 설, 더나아가결과적으로단군신화를통해서삼위일체가쉬이이해되고 해석될수있다는그의작업은 원인과 결과만적 시되고, 수용의 근간에 대한분석이결여되어있다.

단지, 단군신화와삼위일체를유비적으로 병치시킴으로써 전자를통해후자를해석해야함을제시한것이일종의 유형론적환원주의라고평가한다면이는지나친평가인가?

이러한복음 에대한이해와해석을형식적유사성으로환원시키는것은충분히해석 학적으로확장되지않은채로여전히유형론적비교에 머물위험이있다.

그럼에도불구하고윤성범의단군신화담론의핵심은역사적가설 을소개하는것으로만족하기보다복음을통해서우리문화를해석할수있다는신학적해석학그자체를전개하는것이었다.

그에게는복음과 문화의긴밀한상관관계가새로운문화를창발하는역동성그자체이다.

윤성범의단군신화담론이기독교신학으로부터비롯되었다는가설은 이둘사이의구조적유비및유사성을조명함으로써설정되었다.

이에 대한역사학적증명은그리순탄치는않다. 19)

 

  19) 이필영은, 단군신화와고대시베리아샤머니즘과의관련성을주장하는윤성범의 가설과는 달리, 단군신화의기원 문제를 두고서북아시아 전역에 널리퍼져있던 천신신앙과 관련되어 있다고 본다. 특히 고대 무속, 곧 이무제천(以巫祭天)의 전통 속에서 천신을 숭배하던 종교-문화적 토대 위에서 고조선이 건립되었다고 주장한다. 반면, 북방의샤머니즘은하늘숭배가문화와정치의규합으로이어지 지않았다. 하지만조선인의경우는하늘숭배(拜天)가모든이들을혈연의식으로 한데묶는정치적교섭으로이어졌을뿐아니라, 문화적동질성형성을위한종교 적 배경으로 기능했다. 최남선, 안백산, 이능화 등의 연구가 이를 뒷받침하는데, 이들의연구에대한소개및평가는특히이필영, “단군신화인식의제문제– 학사 를 중심으로,” 「한국고대사연구」 제9권 (1996): 21-22; 김성환, “단군신화의 기원 과 고구려의 전승,” 「고조선단군학」 제3호 (2000): 119-120을 참고할 것. 그리고 최근에 최광식의연구에따르면, 단군신화에반영된천강신화(天降神話)는이미 고조선 당시부터 전해졌을 것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서는 김성환, “단군, 신화에 서 역사로,”「동북아역사논총」 제76호 (2022), 118을 참고하라. 그리고 북방의 샤 머니즘과구별되는조선인의 무속의 특징에대해서는아래III.2에서추가로논의 될것이다. 이들의논의들을종합해보면, 단군신화의역사적기원의문제는명확 한 하나의 답변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본래낯선복음 과익숙한문화사이의간극을유비를통해서메우려는접근은필요불가 결한것이다. 필자는이유형론적작업자체가그릇되었다고비판하려는 것이아니다.

오히려이러한유형론적작업은그시대의학문적요청이었 을뿐우리시대의학문적과제는과거 토착화신학의 것과 다를수밖에 없음을이야기하고자한다.

한마디로 유형론적 환원주의의오류를 범했 던 과거 토착화신학은 낯섦과 익숙함을 처리하는방식에있어, 더나아가 익숙함 속에서 낯섦을 토착화할 수 있었던 방식 및 삶의 태도에 대한 분석으로까지 논의를 확장하지 않았다.

 

2) 한국적 사유체계를 통한 복음의 해석학?: 유형론적 환원주의 2 ― 김광식

 

두 번째의 과오는 지나치게 서양과 동양을 사유체계를 기반으로 양분함으로써이둘사이의상호교류및제3의관점의창발을원천봉쇄 한것이다.

동양이라고 동양적인가, 반대로 서양이라고 서양적일수만 있을까?

동양과서양이라는 지리적구분을 뒤로하고 이것을 합리성의 다른두가지체계로 구분하려는 유형론적 시각역시 원천적한계를 내포 한다.

이러한 동-서양의 이원론적 유형론은흥미롭고, 일목요연하게정 리되는측면이많지만, 오리엔탈리즘과 옥시덴탈리즘이라는 이념적시 각을 고착화할위험을 내포하고있다.

세계화시대에우리는이러한유형 론적 시각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러한측면에서종래의토착화신학담론은 토착적인것을 시간적 인 과거의 것에 국한하여 이해하고자 했다. 

그러다 보니 동방의 것은 서방의 것과 더 나아가 한국적인 것 역시 서방의 것과 달라야 한다는 이념적전제에매몰된측면이적잖다. 20)

 

       20) 가령, 김광식과김흡영은공히죄론으로집약되어버린그리스도이해를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김흡영은 원죄론이 극단적으로 적용되어 한국 사회를 유지해오던의리및이웃에대한신뢰를무너뜨리는파괴자역할을했다고지적 하기도했다. 김흡영, 뺷도의신학I뺸 (서울: 다산글방, 2000), 23. 물론, 그의이러한 지적은 한국 기독교가 실패한 원죄론에 대한 재해석을 다시금 조명해야 한다는 교의학적 과제를 전제한것이다. 전통적인 공동체의식과의조화 속에서 그리스도의 구원을 새로이 해석하는작업이 중요하다는것이다.이에대해서는김흡영, 도의 신학 II(서울: 동연출판사, 2012), 28를 참고할 것.

 

 

예를들어김광식은서양과 동양의 사유체계의 근본적인차이점에 기초해서 동양적 탈소외적동기로부 터 복음을 해석함으로써 토착화신학의 이행주체에 대한 논의를 환기시 켰다.

그는윤성범의‘성의신학’을재해석함으로써한국의역사, 문화적 맥락속에서복음의의미가무엇인가를해명하는것이한국토착화신학 의과제라고여겼다.

그의토착화신학담론에따르면,21) “지극히작은 것이나마우리자신의모습을신학적으로찾아보자는것”이토착화신학 의중심이다. 22)

 

     21) 일전에 필자는 김광식의 토착화신학을 틸리히의 문화신학과 비교한 바 있다. 신용식, “문화신학의해석학적과제에대한고찰: 폴틸리히의문화신학과김광식 의 토착화신학의 비교 연구,” (2021. 3.): 73-116을 보라.

    22) 김광식, “토착화신학의 해석학적 국면에 대한 연구,” 「성곡논총 」 16집 (1985), 177. 또한김광식은토착화신학이한국신학안에서도지나칠정도로혐오의대상 이 된다고 할 정도로 토착화신학에 대한 문화신학적 고찰이 신학의 주변부로 밀려났음을 토로한 바 있다. 이에 대해서는 김광식, “토착화신학에서 본 문화신 학,” 「한국문화신학회 논문집: 한국 종교문화와 그리스도」 제1집 (1996): 11-23, 특히 12-15를 보라. 그는 여기에서 토착화신학에 대한 혐오의 이유를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는토착화신학이복음을 왜곡한다는 오해이며, 둘째는토 착화신학은 급변하는 사회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이유이며, 끝으로 세 번째 는 교파주의적으로 토착화신학에 대한 일방적인 무관심과 비판을 하는 태도가 그 이유이다. 그는 토착화신학의 신학적 근거를 모색하고자, 칼 바르트의 “신인 학”(Theanthropologie) 표현을빌려, 신학은본시하나님과인간의상관관계로부 터 출발하기에 “신학이 곧 문화신학”이라고 강조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김광식, “토착화신학에서본문화신학,” (1996), 21을보라. 그리고그는칼바르트의“신인 학”이라는 표현의 출처 및 의미에 대해 상술하지는 않는다. 바르트의 이 표현은 Karl Barth/신준호 역, 뺷개신교신학 입문뺸 (서울: 복있는 사람, 2014), 18을 보라. 바르트는‘인간의정신, 실존, 정신적능력을주요대상으로삼고서하나님을부차 적인 항목으로 취급하는’ “인간학적 신학”(Anthropotheologie)과는 반대로, “신 인학”(Theanthropologie)은 ‘인간의 실존과 관계하시며, 믿음을 일깨우시고, 정신적 활동을 요청’하시는 하나님에게 관심을 가진다고 보았다. 이에 대해서는 Barth, 앞의 책, 13-14를 보라. 한 마디로 인간의 실존, 역사, 문화, 정신 등에서 활동하시고요청하시는하나님의행위에관심을가져야하는신학은인간실존의 거시적 틀거리인 문화 안에서의 하나님의 행위를 진술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신인학으로서의 신학은 문화신학과 진배없다는 김광식의설명은 타당하다

 

하지만물론서방과동방의사유체계는분명차이를보이기는하나,23) 동양적 사유와서양적사유를 질적으로구분짓는것은 오늘날크게유의미해보이지않는다.

탈서양화라는연구의목표가과연 오늘날한국신학을전개함에있어얼마나적절하며유의미하게관철될 수있을지도의문이다.

그에게 서양의것을 분석적사유에 동양의것을 조화전개적사유에 등치시킨것은 단지 토착화신학의 우선적과제로서 탈서양화를이야기하기위한 전제조건으로서 기능하는 듯하다.

그는 서양적인것과는 다른동양적인것을 대조적으로 조명하는데에 연구의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24)

 

     23) 이를 심리학적으로 깊이 분석한 대표적인 연구로는 Richard E. Nisbett/최인철 역, 뺷생각의 지도. 동양과 서양,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뺸 (파주: 김영사, 2004)이 대표적이다.

     24) 김흡영은 토착화와 해석학 에서 보여준 김광식의 토착화신학을 위한 해석학적 시도는결국, 해석을위한 모델을 한국사상내부가아니라, 독일사상에서찾고자 했기에 스스로 독일 신학의 아류가 되어버린 토착화신학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결국 한국적인 해석학적 신학을 위해서 한국및 동양적해석학이아니라, 독일의 해석학으로의 환원을 비판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김흡영, 도의 신학 II(2012), 133을보라. 물론“신토불이” 및 불이론적 사유체계를 직접적으로 분석했 던 김광식의 작업들에 대해서는 김흡영의 비판은 적용될 수 없다. 

 

자칫 이러한 유형론적 비교는 구체적인 현실을 담지하지 못하고 이념적인측면에머무를수있다.

실제로오늘날우리에게동양적인것이 더낯설지않은가?

이에 한국신학은 한국적인 그것을 특징화할것인가, 아니면 보편문화적인것과 한국적인 것의 중첩을 한국적으로 해석해야 하는가를질문해야한다.

이는단순히 서양적 방법론과 동양적 방법론에 얽매일필요가없음을뜻한다. 25)

 

      25) 그래서 김흡영은, 물론 유교라는 동양철학을 가지고 설명하고 있기는 하지만, 서양과 동양의 이분법을 넘어 성경이 진술하는 하나님의 길(道)을 우리의방식으로 구성적으로(constructive) 설명해야 하는 것이 신학의 과제라고 했다. 김흡영, 도의 신학 II (2012), 132-137을 보라. 

 

중요한것은 문화신학으로서의 토착화 신학은 우리의 과거문화의흔적을가지고 복음을 해석하고자했는데, 앞서문제시된바, 오늘날에는 이러한시도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화 속에서의 우리의 생활세계와 그 맥락은 결코 과거 토착적인 것에 얽매이지 않는다.

 

3. 소결

 

지금까지의논의를종합적으로고찰하자면, 토착화라는것은 맥락과 진리의 변증법적인 해석에서부터 출발한다.

오늘날의 토착화신학 작업들 역시도 이 두 조류사이의 그 어딘가이다.

하지만 과거 1세대 토착화 신학의 맥락과 시대적 과제와 지금 우리의 것은 같을 수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대주의와 민족주의의 양극단을 지양하면서, 과거 한국의 역사 및문화는 이미 타국과 타문화를 우리의 것으로  흡수할수있는 문화의 창조성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 문화적 창조성이 발현될 수  있었던 의식과 실천의기저가 무엇인지에 집중해야한다.

바로그러한 창조성을 담고 있는 삶의태도를 조명할때에 한국적신학의 한 퍼즐을 확보할수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상호문화역량을 담지하 우리의 삶의태도는 단순히  우리의 것에 대한 소유권 주장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 시대의 다양한 생활세계들과도함께호흡할수있고기여할수있는가치관이다.

그러므로우리의 눈은 그러한 상호문화역량을 통해서 이미 토착화된 과거의 가시적, 비가시적 결과물에 초점을 맞추기보다그역량이담지하는삶의 태도에 집중해야 한다.

 

III. 토착화신학의 상호문화적 전개를 위한 과제

 

토착화는 외적인것을 흡수하여 열매를 맺는과정이다.

그렇기에 우리는단순히 문화적 현상자체를 획일하게 유형화하거나 비교분석하 는것을 넘어 타문화와 호흡하고, 그것을수용하는일련의 창조적과정을 유념해야한다.

그래서 공유식은 우리의 것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일종의 민족주의적인 문화적폐쇄성에 머무르면 안된다고강조한 바 있다. 26)

 

    26) 공유식, “세계화와 한국문화”(1995): 210-211. 오늘날 한류를 민족주의적으로 활 용하는 다양한 모습들이 조명되고 있는 바, 이러한 충고는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실제로 한류는 김대중 정부 시절, 1999년에 “문화산업발전 5개년 계획”을 수립함으로써 정부 주도로 시행된 장기간의 문화산업의 결과물이다. 문재인 정 부에 들어서는 문체부 산하에 ‘한류지원협력과’를 신설함으로써 한류를 전적으 로 지원하기에 이르렀다. 이동연에 따르면, 오늘날의 한류열풍은 국가주도형 문화정책에 따른“문화민족주의”의한 형태이다. 하지만 동시에 한류의 팬덤문화는 탈국가적 형태를 띄고 있기에 단순히 문화민족주의에 머무른다고 볼 수 없기도 하다. 그래서한류의 생산은 문화민족주의적 배경을 지니지만, 소비에 있어서는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운 문화자본주의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있다. 결과적으 로 한류에 있어서 문화민족주의는 문화자본주의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이동연, “한류는 문화민족주의의 산물인가?,” 「황해문화」 (2022, 여름): 56-75, 특히 60-68, 74-75를 참고할 것. 

 

과거 토착화 신학자들이 이행한 바 기억된 한국적인 실체를발굴 하는것에그치지않고, 그 기억을 작동시키는 한국적인 태도의 윤곽을 확인할 수 있다면, 오늘날의 한국적 신학이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해 볼수있을것이다. 

한국적인 삶의태도에서 신학을 이행 할때에야 비로소 한국신학이 될 수있으며, 그러한 신학은 세계에 유의미한 논의점을 제시할 수있을 것이다.

물론 이 한국적인 삶의태도 역시 유동적이며, 잠정적 일뿐이다.

또한연구를 거듭하면할수록 다채로운 삶의 태도를 도출해 낼수있겠으나, 아래에서는역사속에 살아 숨쉬었지만 오늘날 주변부로  밀려나 있는 듯보이는 삶의태도를 낯섦에 대한 판단중지와 현세주의적 초월로 구분하여 분석하고자 한다.

 

1. 낯섦에 대한 판단중지로서의 “쿰다”: 낯섦의 익숙함으로의 근원적 환원불가능성

 

문화신학이 복음의 문화적해석을 시도하고자한다면 문화신학은 상호문화적지평으로 확장 되어야 마땅하다.27)

 

    27) 문화신학은 문화적 현상이라는 단면을 부각시킨다면, 상호문화신학은 문화가 현상하게 되는 창조적과정 자체를 부각시킨다. 오늘날 신학내에서 상호문화신학(Interkulturelle Theologie)이라는 개념은 선교학의 새로운 용어로 사용된다. 조직신학적 관점에서 중요한 지점은 선교학으로서의 상호문화신학이 지향하는 신학의 상호문화적 전개가 뜻하는바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상호문화주의 및 상호문화성에 대한 개념적 설명이 요구된다. 이는 오늘날 문화연구에서 파생된개념이다. 기존의 문화연구는 특정문화의 영역혹은 문화적 표식등 고정 불변하고 관찰 가능한 대상으로서 문화를 다루었지만, 오늘날 문화연구에 있어서는 문화는 말 그대로 문화적 다양성을 그 특징으로 하기에 동질적인그무엇을  실재론적으로제시하는것이근원적으로어렵다는사실에서출발한다. 그렇기에 문화연구는문화자체가아니라, 문화적다양성곧 그안에서 각기 다양한세계와 지평들이 뒤섞여있으면서 새로운 가치를 형성하는 과정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오늘날에는이러한문화적 다양성속에서도 보편적가치를 형성하는 일련의과정을 중시하는 것이 “상호문화주의”(Interkulturalismus)라고 불린다. 그리고 문화적 다양성속에서 이러한 보편적가치를 형성하는 문화자체의 속성을“상호문화 성”(Interkulturalität)이라고 부른다. 이 개념들에 대해서는 Martin AbdallahPreteille/장안업 역, 유럽의 상호문화교육 (서울: 한울아카데미, 2010), 27을 참고할 것.

 

이것이 상호문화신학이  지니는문제의식이다.

이를위해서는문화적특수성이아니라그특수성을 형성하는보편적 삶의태도로의 관점의전환이 필요하다.

이 보편적이라는 것은 인류에게 공통된 그 무엇을 지칭하는 것이아니라 오로지 판단 중지를 통해서 경험될 수있는 공동의 영역을  지칭한다.

중첩되어있지 만, 자연적 태도로는 결코 인지될 수없는 공동의 영역인 보편적인 부분을 조명함으로써 동질성을 구성했던 과거의  경험을 살펴보자.

현상학적 관점에서보면, 타자로부터 비롯된 다름을 나의익숙함으로 환원하지 않아야한다.

보편적인 영역들은 공동의 영역이다.

이는문화적 획일화 와는다르다.

오히려 편적인 영역을 통해서 서로다름을 인정하고 오해의싹을 제거하는것이 우리의 우선적 과제일 것이다.

이를 위해 서로에 대한 오해를 해석하는 것, 다름에 대한 근원적 이해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필요하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실례를 제주의 타자수용의 태도에서 발견할수있다.

하지만 이는그렇다고 제주의 타자수용태도가 한국인들의 전형이라고 말하고자 함이 아니라, 그것 안에서 한국적인 상호문화적 태도를 모색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을 뿐이다.

제주도에는외지인이 제주에 적응하기까지 인위적무관심을 가지는문화가있다.

그것을 제주토속어로 “쿰다”라고한다.28)

쿰다는“품 안으로 끌어 안는다”는것을 의미한다.29)

쿰다는 타자에대한 적대와 환대 이외의 제3의 태도및 반응이다.

이는외지인과 도민을 편가르기 하는것이아니라, 인위적인 무관심으로기다려주는것이다.

김준표는 타자에 대한‘적극적 환대없이 무관심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타자를 받아들이는제주도민들의 나름의 타자수용의 과정’이곧 쿰다라고했다.30)

그렇기에 쿰다는 일방적인 개입대신, 시간을 두고서 외지인과 도민사이의긴장을 해소하는 문화해석학적이고 사회적인 장치인 것이 다.

형식적으로는 일종의 무관심이지만, 내용적으로는“관심의유예”이 다.

낯섦에 대한 불쾌감이나 이에 대한 면역반응을 표출하는 것이아니라, 관심의 유예로서 무관심을 내비치는것이 제주의“쿰다”이다. 31)

 

    28) 이제주의“쿰다”를다룬직접적인연구는김준표박사의연구가유일하다: 김준표, “다문화 사회의 정체성 트러블과 제주의 쿰다 문화,” 「현상과인식」 44/4(2020): 207-227; 김준표, “적대와 환대를 넘어서는무관심의 포용, 쿰다,” 「다문화사회와 교육연구」 12(2022): 51-69. 김준표의 연구에 따르면, “쿰다”라는 표현은 제주어 사전에서만 등장할 뿐 오늘날 쓰임이 없다. 다만 이 쿰다에 반대말처럼 들리는 ‘드르싸다’(> ‘두루쌍 내불라’ = 적당히 싸서 밖에 둔다 = 가만히 내버려둔다)는 오늘날에도사용되고있다고한다. 쿰다및 드르쿰다(= 적당히품다)라는제주도 방언이 오늘날 사용되고 있지 않은 이유는 모르겠으나, 오늘날 사라져가는 제주어“쿰다”는다름 아닌 외지인을 품는 제주특유의 방식을 상징한다고 볼수있다. 이용어에 대한 사전적, 문화사적 의미에 대해서는 김준표, “다문화사회의 정체성 트러블과 제주의 쿰다 문화,” (2020): 219-220을 보라.

    29) 김준표, “적대와 환대를 넘어서는 무관심의 포용, 쿰다,” (2022), 61.

    30) 김준표, “다문화 사회의 정체성 트러블과 제주의 쿰다 문화,” (2020), 219.

    31) 김준표, “적대와 환대를 넘어서는 무관심의 포용, 쿰다,” (2022): 58-61.

 

이런 사회적 태도가 제주토박이들에게는 전형적인 태도라고한다.

그래서 “외지인들은 본래 자신의 문화에 기반을 둔 정체성을 포기하지않고 새로운 터전인 제주문화의 정체성과 함께 선택적으로  표현하며 살아갈수 있다”고 한다.32)

이를 외부자의 시선으로 폐쇄적이라고 비판할 수는 있겠으나, 이는 제주도민들의 역사적 경험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제주는 외지인에 대한 적극적관심보다는그들이 적응하기까지 환대나 적대적인 태도를 의식적으로중지한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제주도민들은 문화적 이질성에 대해서 불편해하지 않는다고한다.

타자가 이웃이 되는 시간적 간극에 대해서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들의 입장에서 낯설기만한 이웃의  삶의 태도에 대해서 적극적판단을 유보함으로써 그들이 참된 이웃이 되기까지기다려준다고한다.

어찌보면 이러한 제주의 쿰다문화는 낯섦과 익숙함의 질적인차이를 충실히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낯섦은 본질적 으로 익숙함으로환원불가한 영역의 것이다.33)

 

    32) 김준표, “다문화 사회의 정체성 트러블과 제주의 쿰다 문화,” (2020), 222.

    33) 우리는 이 낯섦과 익숙함의 변증법적 관계를 베른하르트 발덴휄스의 타자현상학 에서 발견할 수 있다. 발덴휄스는 타자가 근원적으로 접근불가한 존재임에도 자아의 영역으로 환원하고자 한 것이 에드문트 후설 현상학의 구조적 한계라고 비판했다. 이에대해서는 신용식, “폴틸리히의 문화신학에대한 상호문화적비판: 베른하르트 발덴휄스의 타자 현상학을 중심으로,” (2023): 113-116을 참고하라. 

 

그래서 낯섦은(제주라 는) 공동영역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그에 걸맞게 찾아가는 창조적과정을 의미하게 된다.

이를 신학적으로 확장해 보자.

신학은 익숙함에서 낯섦을 논증하는 것이아니라, 낯섦 경험을 통해서 익숙함을 새로운 낯섦의 방식으로 재조 명하는작업이다.

하나님 경험은 결코 익숙함에서비롯되지않는다.

그 경험은 오히려 익숙함을 철저히 해체하고, 전적으로 새로운 방식으로  그 익숙함을 대하도록 하는 종말론적 경험이다.

복음은 본질적으로 낯선 것이다.

이낯섦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적절한 방법은 타자경험을 통해 나의 세계를 보다 더 낯설게 들여다보는 것이다.

복음과 상황은 본래 일치도상응도아닌, Asymmetrie 관계이다.

그래서 천병석은“문화현상 속에 내재된 시대경험이나 사유경험이 주제화 되었지, 이러한 관점들이 드러나는 신앙경험의 지평은 소홀히 취급”되었다고34) 그간의 토착화 신학의 한계를 정리하면서 토착화 신학은 결코 문화적 상이함을 신학적 낯섦과 혼동해서는 안된다고 밝힌 바있다.

 

    34) 천병석, “토착화신학의 근본문제,” 「신학사상」 122 (2003), 164. 

 

이는앞선 쿰다문화와 맞닥뜨 려진다.

낯섦을 굳이 익숙함으로 환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간 토착화 신학은 동양적 특수성을 조명하는방식으로 낯선 복음을 설명하고자했다.

토착화신학은 한국의 문화적 특수성부분에 많은 관심이있었 으며, 이는 유의미한 결과를 가져왔음은 부인할 수없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이를 넘어서는 공동영역으로 관점의 전환이 요구된다.

 

2. 현세주의적 초월: 타자 및 타문화 경험의 현세주의적 태도에 대한 종교적, 역사적 고찰

 

앞에서는생활세계의상호문화적관점에서인간의근원적자기이 해는익숙함이아니라, 낯섦임을제주의“쿰다”문화를통해살펴보았다. 그렇다면복음은언제나상황을익숙함이라는폐쇄적체계로부터우리 를해방시킨다고이해해볼수있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복음이 복음인 이유는우리의 세계에게 구체적이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주기 때문이 다.

복음이 선사하는 구원은 실제적이며 현세적이다.

물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현세주의적 태도를 견지하지않는 문화권은 없다고 볼  수있지 만, 과거 다른 동아시아국가에 비해 한국고대국가들 안에서 타문화를 수용하는방식으로서 현세주의적이고 실용주의적인 태도가 단연두드 러진다.

한국적

종교성에는존재론적인 의미의 초월및 피안적 지향은 찾아보기어렵다.

초월 역시 현세주의적으로 내재화되어있을뿐이다.

그리고 역사속에서도 이러한 현세주의적 태도는 실제 삶의 자리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긴장과 문제를 해결하는데에 효율적으로 작동했다.

피안적 구원을 추구했던 한국기독교의 신앙 역시도 신앙인 개인의 고난을신앙적으로 해명하기 위한 신학적장치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우리의 피안적신앙도 충분히 현세적이라고 볼 수있다.

이에 이러한 현세주의적 인 삶의 태도를 종교적, 역사적지층을 간략히 살펴봄으로써 확인하고자 한다.

 

1) 현세주의적 태도의 종교적-초월적 지평: 선맥과 풍류

 

우선, 종교성을기준으로한국적 삶의 태도를 통시적으로 다룬 연구 들을살펴보면, 한국인들의 종교성을 기반으로한 현실판단의 윤곽을 다소간 확보할 수있을 것이다.

한국에 토착화된 모든종교는 현세주의적 이라는데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이 현세주의적 태도의 연원을 모색하 는 작업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35)

 

   35) 한국고유의 현세주의적 태도를 떠받드는 한국적 고유성에 대한 다양한 시각들은 허호익, 한국 문화와 천지인 조화론 (2020), 148-152를 참고할 것.

 

심광현은“흥”과“한”을 한국의 문화적 정체성이라고표현한바있 다.

그간 한국적 정체성을“한”에서 찾고자 했던 시도들을 비판하면서, 오히려“흥”에 기반하여 한을 다룬 것이 우리문화의 특징이라는것이다.

결국 우리문화의 기저가 흥이라는것이 그의 주장의핵심이다.36)

흥과 한의 변증법을 한국의 역사속에서 확인하는 작업은 간단하지 않지만, 그의 주장을 무시할 수도 없다.

실제 지금까지도 이 흥과 한의모습은 한국문화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분석은 이 흥과 한의 종교적 지층을 충분히 설명해주지 못했다.

김종만과 김은기는 샤머니즘(무교)이 한국인들의 문화적 정체성의 원류라고보았다. 37)

이주장은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일찍이 유동식은 1980년대에 풍류(風流)신학을 전개하기전, 1960년대와1970년대에는무교를 집중적으로 연구한 바있다.38)

 

    36) 김봉렬 · 심광현,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말하다,” (2005), 309를 참고할 것.

    37) 김종만, 김은기, “가치관을 통해 본 한국인의 문화적 정체성,” (2020), 211. 그리고 이기동은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래문화는 국민의 기질이나 자연적 풍토 그리고 그때그때의 역사적 조건과 시대 상황의 제약을 일정 정도 받으면서 토착화의 과정을 밟았다”고 주장하면서, 그 토착화의 기저에 자리하는 한국인의 기질 및 심성을 샤머니즘의 전통에서 찾고자했다. 그는 민족적 주체성에 입각해서 과거 한국사와 한국문화사는 전통을 계승함과 동시에 외래문화를 창조적으로 수용하 여 토착화했음을보여준다고강조했다. 한국의 전통문화역시“끊임없이 외래문 화를 흡수, 소화하면서 이에 생명을 불어” 넣은 결과물인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기동, “한국문화의 형성원리와 그 표현형식,” (2004), 38을 참고할 것.

     38) 한국종교적영성으로서의 무교에 대한연구들로는유동식, 한국종교와기독교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판 1965/2판 2001), 특히 13-34; 유동식, 한국무교의 역사와구조 (서울: 연세대학교출판부, 1975); 유동식, “무교와 한국문화,” 「기독 교사상」 (2023. 1.): 138-149 등이있다. 풍류신학을 구성하던 시기의 글로는 유동 식, “풍류신학,” 「신학사상」 41 (1983): 432-441; 유동식, “한국의 문화와 신학사 상,” 「기독교사상」 47 (1984): 718-734이 대표적이다.

 

그는 유형론적 작업에 머물지 않고, 한국적 종교성 및 한국적 삶의 원류를 찾는 문화사적 분석을 이행했 다.

그는무교란―오늘날무당(샤만)의 굿에 초점을 맞춘 무속과는 분명 구분되어야한다― 한국사상과 문화의 원형으로서“천지의 주재신인 하느님과 인간이 하나가 됨으로써 신의능력에 힘입어 인간의 꿈을실현” 하는것이라고설명했다. 39)

무교에 대한 연구에서 한 발자국 더 심화하여 유동식은 풍류도에 대한 연구를 진척시켰다.

그는 무교가 추구하고자 했던 신인합일이 삶 전반으로 확장되는과정을 풍류도에서 찾고자 했다.

그에 따르면 풍류도는 유교, 불교, 도교를 포괄하는초월적이면서도 근원적인 뿌리종교이다. 40)

그는 삼국을 통일했던 신라의 풍류도안에 이미 천지인의 포함삼교의 원리가 내재한다고 본 것이다. 41)

 

    39) 유동식, “무교와 한국문화,” (2023), 140. 그리고 유동식 ․ 이주연, “토착화신학의 선구자유동식․ 한국신학의원로를찾아서2,” 「기독교사상」 453 (1996): 137-155, 특히 147-148을 참고할 것.

    40) 유동식, “풍류신학,” (1983), 433.

    41) 유동식, “한국의 문화와 신학사상,” (1984), 720: “화랑이란 풍류도를 몸에 지닌 주체적인 청년 지도자들이었다. 그들은 당시 흩어져서 서로 대립하고 있던 고구려, 백제, 신라등 삼국을 하나로 통일함으로써 한국민족문화 형성의 터전을 만들 었던 것이다. 그들의 훈련을 위한 교과과정은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는 도의로써 서로 몸을 닦는것이니 이는 뭇사람들에 접해 그들을 교화할 덕을 얻기 위함이었다. 둘째는 노래와 춤으로써 서로 즐기는 것이니 이는 풍류를 몸에 익히 는 것이었다. 셋째는 명산대천을 찾아 노니는 것이니 이것은 그곳에 임재하신 하느님과 교제 하기 위한 것이었다.” 여기에서 세번째가 “한”에상응하며, 두번째 가 “삶”에 그리고 마지막 첫 번째가 “멋”에 상응한다고 볼 수 있다.

 

그에 따르면 풍류도는 포월적 사상이며, 민중을 교화하여 사람의 도리를 하도록 하는것이 었다.

이러한 풍류의 삶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한”(종교), 주어진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신명나게 사는 “멋”(예술) 그리고 살아 숨쉬는  인간이 사회속에서 새롭게 무엇을 창조하는“삶”(생활)을 통해서 이루 어진다.

그는 한국신학의광맥에서 이러한 한-삶-멋의 조화적 체계를 아버지-성령-아들의삼위일체 신앙적 체계뿐아니라, 한국신학의 세흐 름(근본주의, 진보적사회참여의 신학, 문화적자유주의신학)을 분석하는데에도 활용하였다.

그에게 신학의 목표는 구체적인 우리의 삶속에서 이 한-삶-멋이 실현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최근 이호재의 종교학적 연구는, 무교에서 풍류도를 논의하고자했 던 유동식과는 반대로, 이 풍류적 체계를 정초시키는 “선맥”(仙脈)이 있음을 심층적으로 다루었다. 42)

그는“선맥”이 곧 한국의 독특한 종교성 이며, 문화적 정체성의 원류임을 논증하고자 했다.

선맥은 무교와는 달리 풍류도안에 흐르는 종교성이다.

이호재는 무교에서 풍류도를 도출했던 유동식이 무교와 풍류도의 종교적체계를 혼동했다고본다.43)

그에 따르면, 한국의 종교성에는선맥(풍류)과무맥(巫脈)이혼재되어있다. 

이 둘은 공통적으로 신과의 합일을 추구하며 현세적이지만, 무교와는 달리 풍류는 삶의 구체적인 변화를 수반한다. 44)

 

    42) 이호재는 풍류도가 화랑도를 통해 실현되었지만, 풍류도가 곧 화랑도인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종교적 심성인 풍류가 문화적으로 현상한 것이 신라화랑도 였던것이다. 이에 대해서 이호재, 선맥과 풍류해석학으로본 한국종교와 한국교회(서울: 동연출판사, 2022), 61을 보라.

   43) 이호재, 앞의 책, 220과 348의 각주 14를 보라.

   44) 이호재, 앞의책, 347-378: “무교성이 강조될 때는 한국종교의 역사는 수동적이며, 기복적이고 피안적 신앙이 강조되었지만, 풍류성이 강조될 때는 한국 종교의 역사는 능동적이며, 실천적이고, 차안적 신앙으로 해석된다”(378). 그리고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선맥의 풍류성은 무맥의 무교성을 포용하는 종교성이지만, 무맥의 무교성은 선맥의 풍류성을 포착하지 못한다”고 보았다(49). 

 

이호재의 연구를 종합하자면, 결국 선맥을 통해 파악될 수있는 한국인들의 문화적 정체성 및 삶에 대한 태도로서의 현세주의는 신인합일이라는 초월적 지평을지니고있지만, 그 하나됨이 문화와 삶속에서 구현될 때에야 비로소 현실 변혁이 일어난다고 본다.

 

2) 현세주의적 태도의 역사 ․ 사회적-내재적 지평: 통일신라와 조선 후기 융합적 세계관

 

한국인들의 삶의 태도로서의 현세주의는 종교적 측면을 지니고있 음이 위에서 논의되었다.

이제 그것의 역사적, 사회적, 내재적측면을 살펴보아야한다.

선맥적 원리에서 실현되는 현세주의는 실제 삶속에서 화합과 융합을 만들어 낸다.

이를 담지하는 사상이나 실제 역사적 실현과정등을 살펴봄으로써 한국의 현세주의적 태도가 신학적으로 유의미함을 예증할 수있다면, 이 현세주의적 태도에 대한 구체적 근거를 어느 정도는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앞에서 잠시 언급된 통일신라의 사례를 살펴보자.

통일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에 비하여 융합적 세계관이 탁월했다고 평가된다.

9세기에 접어들어 신라는 중국(당시당나라)에 대한 문화적 열등감에서벗어나 문화민족으로서의 주체의식을 고취시키고자 동인의식(東人意識) 을 강조했다. 45)

 

     45) 한국철학사연구회편, 한국철학사상사(서울: 심산, 2003), 69. 민족이라는개념의 역사와 그 민족주의 담론의 근대적 출발점을 염두에 둔다면, 이러한 민족을 둘러싼 다양한 논의들의 혼란스러움은 더욱 가중된다. 가령, 신채호와 함석헌의 경우 민족의 정신을 넓은 만주를 호령했던 고구려에서 찾고자 했다. 이에 대해서는 이정배, 토착화와 세계화 (2007), 특히 41을 보라. 이정배의 정리에 따르면, 대외항쟁에서 민족적 정체성을 지켰다는 것에 입각하며, 신채호와 함석헌은 고 구려는각별하게취급했지만, 신라삼국통일에 대해서는 미온적이거나 부정적으 로 대했다. 하지만이정배는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하고 있지않다. 대신 이를 충실히설명해줄만한 연구는 이종욱, 상처받은신라: 그안에한국인정체성의 원점이있다(서울: 서강대학교출판부, 2016)이다. 여기에서 이종욱은 신채호의 한국독립사학이 민족적 정체성의 원류를 왜곡했다고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신채호는 역사를 민족독립이라는 정치적 욕망을 실현키 위한 사상적 기폭재로 활용하고자 했기에 부득불 당나라와 손을 잡고 고구려와 백제를 몰아낸 신라를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종욱, 앞의 책, 95-96, 234을 보라. 그리고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신편 한국사9권에서는 통일 신라에 들어서야 비로소 “생명력있는 민족국가 건설의 기반”(73)이형성되었다고 말했다. 삼국은“혈통, 언어, 습관이 비슷”(74)했으며, “동일종족, 동일민족적 특성을 공유했지만 장구한 세월 동안 분리되어 성장”(71)했다. 그럼에도 신라는 정치적으로는 고구려와 백제를 흡수 및 통합했을 뿐 아니라, 한강 이남과 가야 지역을 병합함으로써 자주적인 국력 신장을 위해 노력하였으며, 사회-문화적으로는 유교와 불교를 통해 문화적 동질성을 형성할 수있었다. 한마디로 통일신라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한 국가의 같은 영역 안에서 같은 문화를 향유하게 된 국민으로 정착함에 따라 참으로 민족공동체가 이루어진 것”(74)이다. 인용문구 는 한국사9권, 71-74를 보라. 

 

비록 당과의 연합을 통해서 통일국가를 건설하기는했지만, 신라입장에서는백제와 고구려 유민들을 통합해야하는문화-사회 적과제를 완수해야만 했다.

이를 위해서 백제와 고구려 유민들에게 관직을 수여하는 전략뿐아니라, 그들이 서로 인종적, 문화적, 언어적으로 동질적이라는 점을부각시켜야만 했다.

물론 이러한 민족적 동질성을 내세운 전략이 통일신라초기부터 시행된 것은 아니었지만, 삼국간의 갈등이 대립으로치닫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자기보존의 방편”으로써 삼국의 공통된 종교인 불교가 활용되었다. 46)

 

    46) 한국사9권, 65, 70.

 

그뿐 아니라 민족적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유학의 가르침 역시도 적극 활용하였다.

한마디로 통일신라는 내적인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서 유교와 불교를 적극적으로  융합했던것이다.

대표적인 인물중 하나가 유불선 이전의 고유한 종교로서의 풍류도와“화”(和)에 기반을 둔 원융회통을 강조했던 통일신라말 무렵

최치원(857~?)이다.47)

유학자였던 그는 유교와 불교의 공통된지 점을 “인”(仁), 곧 “사람됨”에 있음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 바 있다:

 

“여래(如來, 역자: 부처)와 주공(周公) · 공자(孔子)는 출발은 비록 다르지만 마지막에는 하나로 돌아가는 것으로 서로 이치를 같이하 는것이다. 양자를겸수하지못하는것은 두가지를 다 받아 들이지 못 하기 때문이다. 심약(沈約)이 이르기를 공자는 단서를 열었으며 석 가는그 극치를 다 하였으니 그 위대함을 아는 자(양자를겸수한 자) 라야 비로소 지도(至道: 극치)를 말할 수 있다.” _ 최치원, “쌍계사진감선사대공탑비(雙谿寺眞鑑禪師大空塔碑),”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 上 (1919), 67쪽48)

 

     47) 한국철학사연구회편, 한국철학사상사 (서울: 심산, 2003), 71. 물론 최치원 이전, 통일신라 초기에 이미 원효(617~686년)의 화쟁사상이 원융회통의 정신을 전개 한바있다. 하지만 유동식의 논의를 확장하여 설명을 덧붙이자면, 최치원의 포함 삼교는, 원효와는 달리, 유교의 이상인‘본질적 인간으로 돌아가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이에 대해서는 유동식, “한국의 문화와 신학사상,” (1984), 720을 참고할 것.

     48) 한국사11권, 174에서 재인용.

 

최치원에게 있어 유교와 불교는 득도를 위한 방법상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당시 사회적 혼란을 해결할 수있는 융합적 세계관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뿐 아니라 그는 유교와 불교, 더나아가 도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교적 세계관들이 실제 삶속에서 인간됨을 실현하는 데에 기여해야 된다고 보았다.49)

이러한 융합적이며 현세적인 세계관은 조선후기에 들어서면서 학 문, 정치, 종교등 실로 다양한 분야에서 등장한다.

학문분야에서 두드러진 융합현상은 실학(實學)을 통한 성리학과 현실의조화이다.

17세기를 넘어서면서 조선후기의 성리학은 그 이전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조선 초기의 성리학은 학문적인 체계에 있어서나 그 사유의 깊이에 있어서나 다소 부족한 측면이 강했다.

반면 실학은 유학의 근본정신을 배제한 채로 실사구시만을 지향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리학의 근본이상을 현실 속에서 실현하는데에 천착했다. 50)

급변하는 시대현실에 대응하기위한 실학의 내적인 원리는 결국 인간다운 삶의 실현이며, 이 이상은 조선의 유학정신을 관통하는것이었다.

실학이 추구하고자 했던 현실적 대동사회의 건설이라는 관심은 18세기에 신분제의 영향력이 누그러지면서 본격적인 민중사회가 시작된 이후에도51) 그리고 19세기에 제국주의에 저항하는맥락에서 근대민족주의 및 근대교육운동이 일어난 그 시기에도52) 여전히 유효했다.

 

    49) 앞의 책, 175을 보라. 이런 맥락에서 최치원은 이렇게 이야기 했다: “인심은 곧 불심이며, 부처의 뜻과 유교의 인은 통하는 법이다”(최치원,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비鳳巖寺智證大師寂照塔碑>,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 上, 88쪽). 이 인용구는 앞의 책, 175.

    50) 한국철학사연구회 편, 한국철학사상사(서울: 심산, 2003), 323.

    51) 한국사 36권, 1, 21-25를 보라.

    52) 한국사45권, 13-27을보라. 이러한격변기에 서양의 침략앞에서 “민족적 위기 와 전근대 사회의 체제적 위기”라는 이중적 위기에 노출된 19세기 중엽의 조선 후기에 등장한 세 가지주요 사상이 개화사상, 동학사상 그리고 위정척사사상이 었다(이에 대해서는 한국사 37권, 91-92를 참고할 것). 오경석, 유홍기 그리고 박규수로 대표되는 개화사상은 실학사상을 이어받아, 자주부강한 조선이 되기 위해서 필히 대외통상이 실행되어야함을 강조했다면(한국사, 37권, 119), 동학과 위정척사사상은 서양으로 인해 조선의 민족적 위기가 도래했다고 보았다. 동학 역시도 개화기의 사상적창발과 불가분의 관계를 지니고있지만, 19세기말 조선의 사회경제적위기는 결코 조선의 힘만으로 극복될 수없는 시장체제였다. 이러한 배경속에서 일본과 청 및 구미열강들과의 불평등조약이 체결된것이다. 특히 소작농민층은 급변하는 시장경제체제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들의 ‘잉여생산물 조차도 외국 상인들과 지주층들에게 빼앗기기 일쑤였다’(한국사 39, 269-271). 그리고 위정척사운동은 성리학, 주자학에 대한 이해 없이는 온전히 파악될 수 없다고했다(한국사38권, 199~).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 무엇이 척결되어야 되는 것인지를 판단하는 시금석은 유학의 원리에서 비롯되기 때문이었다.  

 

위와 같은 특징을 분명히 확인해 볼 수있는 대표적인 인물이 19세기 초반의 실학자 정약용(1762~1836)이다.

그는 기존의 성리학의 이기론이 인간실존의 내면을 충실히 반영하지 못한다고여겨 성리학의 형이상학적 질서를 뒤집어 버린다.

그는 다음과 같이 성리학적 체계에 대한 실학적 패러다임 전환을 명시했다:

“기는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고, 리는 의존적이고 부속적인 것이다. 의존적이고 부속적인 것은 자립적 존재에 의존하고 부속하게 마련 이다. 그러므로, 기가 발현하면 그에 따라 곧바로 리가 있게 된다.” _ “중용강의보,” 여유당전서 제2책53)

 

    53) 고려대민족문화연구원한국사상연구소편, 자료와해설. 한국의철학사상 (서 울: 예문서원, 2001), 724의 번역문을 인용함.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인, 의, 예, 지의 명칭은 일의 실천이후에 성 립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행위가 있고 나서 그에 대해 ‘인  하다’고 부르는 것이며, 사람을 사랑하기 전에는 ‘인’이라는 이름이 성립하지않는다.

[중략] 어찌인, 의, 예, 지라는네가지알맹이가복 숭아씨나은행씨처럼사람의마음속에또렷하게들어있을것인가?” _ “맹자요의,” 여유당전서제2책54)

“발현하기 이전에 리가 먼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발현할 때에는 기가 그에 앞서게 마련인 것이다. 율곡의 말은 바로 이 점을 근거로 한다.” _ “서암강학기,” 여유당전서 제1책55)

 

    54) 앞의 책, 725의 번역문을 인용함.

    55) 앞의 책, 727의 번역문을 인용함. 

 

정약용은 성리학적 사유체계를 넘나들 수있는 역량을 소유했기에 성리학의 핵심을 비틀 수있는 학문적 대담성을 표출할 수있었다. 성리학적 사유체계속에서는 만물의 원리요 도덕법칙인“이”(理)와 구체적인 사물을 이루는 존재론적인 바탕을“기”(氣)라고 보았으며, 이둘을 구분 했다.

하지만 정약용은 “이”와“기”의 형이상학적인 우열 및 선후관계에 천착하지않고, 구체적인 우리의 경험세계로부터 설명하고자 했다. 그에게 물리적인 현실을 포괄하는“기” 없이는 그 어떠한“이”에 대한 논의도 유의미하지 않은 것이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이”는 필히“기”를 통해 경험되고, 현상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실리와 실사구시를 중시하는 실학이 성리학적 체계와 불가분의 관계를 유지하고있으면서도 성리학과 분명한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바로 이 실제성이다.

정약용이 현실판단의 구성요소는 성리학으로부터 전달받았음에도, 그 현실판단의 원리모색에 있어서는 탈성리학을 과감하게 시도할 수있었던 이유는 성리학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다.56)

 

    56) 정약용과 마찬가지로, 19세기 말 실학자 최한기(1803~1877) 역시 탈성리학적 패러다임 전환을 보인다. 그도 “기”의 우선성을 강조했던 정약용과 유사하게, ‘천지만물의 생성근원이기의 조화에 있기에 자연과 인간사회 및 개인의 삶속에서 이 기의 조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여겼다. 이에 대해서는 한국철학사연구회 편, 한국철학사상사 (2003), 367을 참고할 것. 

 

이를 보다 더 포괄적이고 유연한 관점에서 본다면, 실학에서야 비로소 성리학적 원리의 실제적 구현이 이루어졌다고도 이해될 수있을것이다.

이념적인 것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삶의 세계속에서 그것이 구현되도록 현실을 바꾸어 나가려는 창조적이고 개혁적인 시도를19세기 실학사상에서 엿 볼수있다.

이는 결코 서양의 자연과학과 같지 않다.

오히려 자연을 통해 이치가 현상할 수있는 구조를 개인과 사회를 통해 구현하는 것이 실학의 궁극적인 목표였던 것이다.

실학은“이”를 반영하지 못하는 “기”의 현상에 대한 비판이면서, “기”를 통해 구현되지 못하는 “이”의 추상적 상태 모두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3. 소결

 

지금까지 과거 토착화 신학의 유형론적 환원주의의 한계를 극복할 수있는 길이 이미 타인 및타 문화를 다루었던 한국인들의 삶의 태도에 잠재되어 있음을 상술했다.

우선 본 연구에서는 낯섦을 익숙함으로 환원 하지않는 태도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자 제주의 “쿰다” 문화를 조명했 다.

물론 ‘과연 한국적인 것이 존재하는가?’ 혹은 ‘제주의 쿰다 역시도 한국적이라고 말할 수있는가?’ 등의 반론이 제기될 수있다.

하지만 본 연구는 제주의 쿰다가 한국적 태도의 전형이라고 일반화할 수없지만, 낯섦을 다루는 한국인들의 적절한 한 방식을 거기에서 발견해 볼 수있음을 적시하고자 했을 뿐이다.

낯섦을 다루는 태도는 오늘날 문화연구에서 아주 핵심적이다.

폐쇄적 문화담론은 모든 문화적 현상을 익숙한세계로 환원하여, 더 이상 새롭고 창조적인 진술이 불가능한 구조를 뜻한다.

문화신학 역시 예외가 될 수없다.

고정불변한 진술체계를 가지고 다양한 문화를 분석하고 판단하는 것이아니라, 나를 판단하시는하나님의 현실 판단으로부터 나의  진술체계를 낯설게 조명하는 것이 문화신학의 첫 과제일 것이다.

또한 토착화 신학이 문화신학으로서 보다 더 구체적인 우리의 현실 담론과 맥을 함께 해야만함이 논의 되었다.

이를 두고 본 연구는 한국적인 현실담론의 태도를 현세주의라고 표현하였다.

실제 역사속에서 파악되는 삶의 현세적인 태도는 종교와 역사적 경험에서도 두드러진다.

종교적으로는 천지인의 조화를 초월의 영역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현실속에서추구하고자 한 것이

두드러진다(선맥과풍류).

그리고 역사-사회적으로는 통일신라말기의 포용적 유학과 조선후기의 실학에서 실례를 확인해 보았다.

삼국시대에 불교가 전래되었지만, 통일신라는 민족적 동질 성을 고취시키고 삼국의 정치적 갈등을 치유하고자 유교를 기반으로 불교사상을 융합하였다.

조선후기에는 격변하는 국제정세속에서도  조선을 지탱해 왔던 성리학적 질서를 파기하지않으면서, 이를 전적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속에서 적용하고자 실학이 등장했다.

우리는 이러한 역사적 사례들에서 상호문화역량의 결정체를 확인해 볼 수있다.

우리 선조들은 이미 시대 질문에 대한 창조적답변을 추구하고자 다양한사상 이나 사유체계들을 유연하게 종합했다고 볼 수 있다.

 

IV. 결론 및 제언: 문화신학적 토착화신학에서 상호문화적 토착화신학으로

 

토착화신학은 과거의 것에서 복음의 해석을 위한 요소를 끄집어내 는 해석학적 작업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한국적인 그 무엇의 실체를 뽑아 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수 없다.

그럼에도 한국적인 그 무엇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사실이 우리 앞에 놓인 학문적 딜레마라고 했다.

본 연구는 이러한 딜레마속에서 과거 토착화 신학은 유형론적 환원 주의에 머무른 측면이 적잖았다고 평가했다.

그것은 과거 토착화신학이 전통적으로 한국적인 그 무엇에서 복음의 해석을 위한 탁월한 번역장치를 발굴하는것 에 천착했기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평가는 과거토착 화신학의1~2세대신학자들의 작업을 평가절하 하는것 이아니라, 그들의 신학적 작업은 당시의

시대질문에 대한 역동적인 대응이었음을 전제 하고있다.

오늘의 한국신학을 모색하는 모든시도는 그들이 마련해둔 토대위에서 진행되고있다.

하지만 복음의 해석을 위해서 복음을 전통의 영역으로 환원시킨것 자체는 방법론적 한계를 내포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시대와 학문의 조류가 변화함에 따른 관점의 전환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그래서 본 연구는 토착화신학의 확장(!)을 위해서는 상호문화적 관점을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한마디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상호문 화역량, 곧 우리 앞에 펼쳐지는 각기 다양한 문화적요소들과 나의 문화적 기저가 창조적으로 만나 새로운 가치와 해석의 방법들을 만들어내는 창조적역동성이다.

복음의 낯섦과 문화적 익숙함의 만남을 상호문화적 해석학을 통해 해명 하는과제가 궁극적으로 토착화신학이 지향해야하 는것이다. 이미 서두에 상호문화적해석학은 긴장과 충돌의 기원인 문화적 차이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그 중첩의 영역을 다양하게 해석하는 지평적차이를 조명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글에서 상호문화적만남을 통한 융합적세계의 출현을 위한 해석학적 안목은 이미 우리나라의 다양한 삶의 태도속에 자리함을 살펴 보았다.

이러한 창조적 역동성이 과거 한국인들의 삶의 태도에서 발견되고 있음을 신학적으로 조명하고, 더 나아가 우리시대의 다양한 의제(경제적불평등, 기후위기, 인공지능, 미래담론, 생명공학등)들에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는 것까지가 우리 시대토착화신학이 해야할일이다.

토착화 신학을 이행함에 있어 유교, 무속, 동학, 풍류, 언행일치등의 논의들은 우리의 삶의 태도로 돌아 들어가기 작업의 한 방편일뿐이다.

만약 필요하다면, 김광식이 지적한것처럼 여러 오해와 혐오의 대상이 된채 방치되어있는 “토착화신학”이라는 용어도 과감하게 다른 것으로 대체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필자는 본 연구를 통하여 토착화신학이 우리 것에대한 그리고 우리 것에 기초한 신학적해석의 수준을 넘어서 복음이 각기 다양한 문화적 토양에서 어떻게 드러나고 해석될 수있는지에 대한 해석학적 모범으로 활용될 수있음을 논하고자했다.

그렇기에 이연구는 토착화신학의 역사적연원과 학문적 논쟁의적절성 및타당성을 직접적으로 건드리지 않고, 이전의 토착화신학이보여준 해석학적 신학의정수가 다시금 문화신학 의 지평에서 어떻게 제고될 수 있는 지를 다루었을 뿐이다.

필자는 본 연구를 토대로 다시금 토착화신학에 대한 신학적논의가 일기를 그리고 토착화신학이 다양한 신학적논의에 과감히 적용될수있는 한국교회 및 세계교회의 신앙적 성찰의 촉매제가 되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서는 이정배의 바람처럼 토착화를 넘어서는 토착화신학이 필요하다. 57)

 

    57) 이정배, 토착화와 세계화 (2007), 45를 보라. 

 

다양한 한국적 사유태도로부터 토착화 신학의 구체적인 전개는 추후연구 과제로 남기고자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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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초록

토착화신학의 상호문화적 전개 가능성 모색 본 연구는 세계화 현실 속에서 한국의 문화적, 사상적 특수성에 기반을 둔 한국적 문화신학으로서의 토착화신학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오늘 날 다문화적 생활세계 속에서 요구되는 토착화신학의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하려는시도이다.

하지만언제나토착화신학은‘과연한국적인것이 있는가?’

그리고 ‘과연 한국적인 신학은 가능한가?’라는 딜레마 앞에 서 있다.

그래서 토착화신학은 한국 토착적 사상과 이념 자체에 천착할 것 이 아니라, 한국인들의 삶 속에 전래되고 내재된 삶의 태도로 돌아 들어 가는 작업이 필요하다(I).

그래서 II장에서는 과거 토착화신학의 문화신학적 의의와 그 한계를 분 석했다.

본 연구는 과거 토착화신학이 유형론적 환원주의에 머무른 측 면이 적잖았다고 평가했다.

그렇기에 오늘날에는 토착화신학의 확장을 위해서 상호문화적 관점을 확보되어야 한다.

III장에서는 상호문화적 관점을 확보한 토착화신학의 전개를 위해서 염두에 두어야만 하는 상호문화적인 한국적 삶의 태도의

실례를 분석했다.

현상학적 의미로는 낯섦에 대한 판단중지로서 제주의 “쿰다”문화를 다 루었으며(III.1),

종교적 의미로는 선맥과 풍류를(III.2.1) 그리고 역사적 의미로는 통일신라와 조선 후기 실학의 융합적 세계관(III.2.2)을 다루 었다. 그간의 토착화신학은 주로 사상적 실체에서 신학적 담론의 근거를 확보 하고자 했다면, 본 연구는 문화, 종교, 역사 속에서 다채롭게 관찰되는 한국적 삶의 태도에서 그 근거를 모색하고자 했다. 

 

주제어  ‖ 토착화신학, 상호문화적(성), 문화신학, 판단중지, 삶의 태도

 

Abstract

Exploring the possibility of intercultural development of the Indigenous Theology

Shin, Yong-Shik(Dr. Theol. Lecturer, Busan Presbyterian University Gimhae, Korea)

This study is an attempt to critically examine the indigenous theology as a Korean theology of culture which is based on Korea's cultural and ideological characteristics in the globalized reality, and to explore a new direction for the indigenous theology in multicultural Life-World. However, the indigenous theology always faces the dilemma of ‘Is there something Korean?’ and ‘Is Korean theology possible?’ So, the indigenous theology needs to return to the attitude of life that has been passed down and embedded in the lives of Koreans rather than focusing on the indigenous Korean ideas and ideologies themselves(I). Therefore, in Chapter II, the significance of the traditional indigenous theology as theology of culture and its limitations were analyzed. This study evaluated that in the past, the indigenous theology had few aspects that remained in typological reductionism. Therefore, to- 264 day, an intercultural perspective must be secured for the expansion(!) of the indigenous theology. In Chapter III, the following examples of intercultural Korean attitudes are analyzed, which must be kept in mind for the development of the indigenous theology: it dealt with Jeju's “Kumda” culture as a suspension of judgment(Epoche) on the Strange in the phenomenological sense(III.1), with “Seon-Mac”(仙脈) and “Pung- Ryu”(風流) in the religious sense (III.2.1), with convergent and synthetic worldviews in the United Silla Era and with “Silhak”(實學) in the late Joseon Dynasty in the historical sense(III.2.2). Until now, indigenous theology had sought to secure the basis for theological discourse mainly in ideological realities, but this study sought to find the basis for the Korean attitudes of life observed in various ways in culture, religion, and history.

Keywords ‖  the indigenous theology, intercultural(interculturality), theology of culture, epoche, attitude of life ∙

 

 

투고접수일: 2024년 11월 01일 ∙ 심사(수정)일: 2024년 11월 17일 ∙ 게재확정일: 2024년 11월 26일

한국조직신학논총 제7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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