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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야기

필론과 요한복음의 공통 상징들 C. H. Dodd의 제안과 후속 연구들에 대한 비평적 분석/문우일.성결大

 

I. 시작하며

 

1953년에 찰스 도드(Charles H. Dodd)는 필론과 요한복음이 공유하는 상징 목록을 제안했고, 이 목록은 이후에 요한복음과 필론의 연관성을 탐구하는 출발점이 되어 일련의 후속 연구를 창출했다.1)

 

    1) Charles H. Dodd, The Interpretation of the Fourth Gospel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53), 54-73, 133-43. Dodd의 상징 목록을 연구 출발점으로 삼은 선행연구는 후술 하겠다 (David T. Runia)

 

그 결과, 필론이 어떤 방식으로든 요한복음 형성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늘고 있으며, 요한복음 해석에 필론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관련 연구들은 연구자 수가 적은 희소 분야에서 다양한 관점과 방법론을 방대한 고대 문헌에 적용하여 얻은 결과이므로, 연구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하기가 어려웠고, 그 중요성에 비하여 덜 주목받는 경향이 있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로서, 이 논문은 도드의 제안을 재평가하고, 이를 기반으로 발전한 주요 후속 연구를 선별하여 살펴봄으로써, 도드 이후에 요한복음과 필론의 관계에 관하여 어떤 용어, 주제, 사상, 전승론, 방법론, 관점 들이 제안되고 논의되었는지를 살펴보려 한다.

1994년에 루니아가 관련 연구 동향을 분석했으나, 루니아는 필론이 기독교계에 수용되는 경로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방대한 초대 기독교 문헌과 신약성서의 일부로서만 요한복음을 간략히 논했을 뿐이다.2)

더구나 이후에 발표된 연구들에 대한 후속 분석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이 논문은 최신 연구 흐름을 조망하려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먼저, 도드의 상징 목록을 개관하고, 이어서 도드에 대한 직접적인 학계의 반응과 간접적인 반응을 나누어 분석하겠다.

여기서 ‘간접적 반응’ 이란 도드를 단순하게 인용 또는 답습하거나 근거 없이 비난하지 않으면서 도드에 천착하기보다는 도드와는 구별되는 관점이나 방법론을 적용함으로써 차별화된 연구 결과를 도출한 사례들을 가리킨다.

직접적 반응 사례로는 찰스 바렛(Charles K. Barrett), 레이몬드 브라운(Raymond E. Brown), 토마스 토빈(Thomas H. Tobin), 데이비드 루니아(David T. Runia), 그레고리 스털링(Gregory Sterling)의 연구들을 순서대로 논하고, 간접 반응 사례로는 웨인 믹스(Wayne A. Meeks), 코레 푸글세스(Kåre Sigvald Fuglseth), 폴커 지거트(Folker Siegert), 페데르 보르겐 (Peder Borgen)을 논하겠다.3)

 

    2) David T. Runia, Philo in Early Christian Literature: A Survey III: Jewish Traditions in Early Christian Literature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94), 78-83.

    3) 상세 서지정보는 가독성을 위하여 본문에서 후술하겠다.

 

이 논문의 궁극적인 목적은 필론과 요한복음의 상관성에 관한 연구 동향을 분석하여 주요 연구 내용을 소개함으로써 향후 연구 방향을 모색하는 데 필요한 기초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다.

도드 이후에 출현한 관련 연구를 망라하여 소개하는 일이나, 필론이 실제로 요한복음에 영향을 끼쳤는지를 결정하는 일은, 이 연구의 범위를 벗어난다.

이 논문에서 사용한 그리스어 본문들은 필자가 사역(私譯)한 것이다.

그리스어 신약성서는 Nestle-Aland 28판 편집본을, 그리스어 필론 작품은 레오폴드 콘(Leopold Cohn)의 편집본을 사용했으며, 필론 작품들을 포함한 고대 문헌 약칭 표기는 SBL 기준을 따랐다.4)

 

       4) Barbara Aland et al. (eds.), Nestle-Aland Greek New Testament, 28th Edition (Berlin: Deutsche Bibelgesellschaft, 2012); Leopold Cohn et al. (eds.), Philonis Alexandrini opera quae supersunt, 7 vols. (Berlin: Typis et impensis G. Reimerii, 1896-1915); Patrick H. Alexander et al. (eds.), The SBL Handbook of Style for Ancient Near Eastern, Biblical, and Early Christian Studies (Peabody: Hendrickson Publishers, 1999).

 

II. 도드(C. H. Dodd)가 제안한 요한복음과 필론의 공통 상징들

 

1952년에 안쏘니 아가일(Anthony W. Argyle)은 요한복음과 필론이 공유하는 용어와 사상을 열거한 짧은 논문을 발표하며 다음과 같이 마무리했다.

 

“요한복음의 로고스와 필론의 로고스 개념의 연관성을 부인한다는 것은 네 번째 복음서 기자의 정신과 사고 이해에 필수적인 중요한 단서를 폐기하는 셈이다.”5)

 

이듬해 도드는 요한복음과 필론이 공유하는 상징 목록과 상징 기법을 상세히 분석한 성과를 발표함으로써 요한복음 해석사에 한 획을 그었다.

도드는 요한복음을 다양한 사상들과 대조한 후, 요한복음 언어가 헬레니즘 유대 전통 가운데 특히 필론에 가깝다고 제안했다.6)

 

    5) Anthony W. Argyle, “Philo and the Fourth Gospel,” Expository Times 63/10 (1952), 300-302.

    6) Dodd, Interpretation, 133.

 

요한복음의 형이상학적 상징 기법(symbolism)은 필론에 가깝고, 공관복음의 비유(parables)와 다르다는 것이다.

도드에게 비유는 실생활에 익숙한 소재들을 사용하여 청중이 이해하기 쉽고, 전체가 하나의 극적 진실을 지칭할 뿐, 각 구성요소는 독자적 의미를 갖지 않는다고 한다.

그 러나 상징(symbols)은 요한복음 전체 및 주변 사상과 교감하며 심오한 영적, 철학적, 신학적 함의를 창출하므로 일상적이지 않고, 청중이 이해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아울러 상징은 전체로서 유의미할 뿐만 아니라 그 구성요소도 유의미하다는 것이다.7)

도드는 필론과 요한복음이 공유하는 상징 어휘들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8)

 

  1. 빛(φῶς):

 

필론과 요한복음에서 ‘빛’은 “인간 및 세상에 대한 신의 관계를 상징한다.”9)

 

  2. 생수(ὕδωρ ζῶν)와 생수의 샘(πηγὴ ὕδατος ζῶντος):

 

“생명을 상징하는 물 개념은 오래된 것이고”, “유대 사상에서 위로부터 오는 물은 토라, 지혜, 성령을 뜻한다.”

“예레미야서 2:13은 하나님을 ‘생수의 샘’ (πηγὴ ὕδατος ζῶντος)이라고 정의하는데, 필론도 이 개념을 널리 활용한다.”10)

요한복음에도 ‘생수’와 ‘생수의 샘’ 개념이 모두 나온다.

즉, 예수가 주는 ‘생수’를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고, 그 속에서 영생하기까지 솟구치는 물의 샘이 되게 한다.”11)

 

  3. 목자(ποιμήν):

 

요한복음 당시에 신이 목자라는 심상(image)은 널리 알려졌다.

구약성서에서 “여호와 또는 그의 대리인(모세, 다윗 등)은 목자이고, 그 백성은 양떼”다.12)

요한복음은 ‘로고스’(예수)를 신(θεός) 과 목자라고 하는데,13) 필론도 유사한 상징을 사용하고, 자기 조상들 이 로고스를 활용하는 목자로서, 목자를 왕보다 명예롭게 여겼다고 자랑한다.

 

      7) Dodd, Interpretation, 134.

      8) Dodd, Interpretation, 278.

      9) 요 1:4-9; 3:19-21; 5:35; 8:12; 9:5; 11:9-10; 12:35-36, 46. Dodd가 제시하는 필론의 본문들은 다음과 같다: Somn. 1.75; Leg. 1.65; Migr. 1.40; Deus. 1.58; Praem. 1.45-46. Dodd, Interpreation, 55-56

     10) Dodd, Interpretation, 138.

     11) 요 4:14; 참조. 4:10-11; 6:35; 7:37. Dodd가 제시한 필론의 해당 본문은 다음과 같다: Leg. 1.303; Fug. 1.97, 197-99; Somn. 2.245. Dodd, Interpretation, 56.

     12) Dodd, Interpretation, 135.

     13) 요 10:2, 11, 12, 14, 16.

 

목자 일은 좋은 것이어서 왕들과 현자들과 완벽하게 정화된 혼들뿐 아니 라 만물의 통치자이신 하나님께도 적합하다. (중략)

하나님께서는 그들(만 물)을 위하여 참된 로고스와 맏아들을 세워 이 신성한 양 떼를 돌보신 다.14)

모세는 영과 모든 육의 하나님이신 주께서 이 회중을 감독할 사람을 택 하사 (중략) 주의 회당이 목자 없는 양떼와 같지 않게 하시기를 기도했 다. (중략)

올바른 이성(ὁ ὀρθὸς λόγος)이 우리 안에 있는 양떼를 버리고 떠나면, (중략)

비이성적이어서 방황하는 양떼는 (중략) 합리적이고 불멸 하는 삶에서 멀어지게 된다.15)

이 남자들(필론의 조상들)처럼 자신들이 목자들이기 때문에 가지는 통치 권과 힘에 대하여 이처럼 대단한 자부심으로 자랑한 이는 없었다.

그 일 (목양)은 참으로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자들에게 왕위보다 더욱 명 예로우며 … (중략) 나는 율법 수호자 모세를 존경하며, 그는 목양하는 일을 빛나는 일로 여기고 그 일을 자신에게 부과했다.16)

 

    14) Philo, Agr. 1.50-53; Dodd, Interpretation, 56.

    15) Philo, Post. 1.67-68; Dodd, Interpretation, 57.

    16) Philo, Sacr. 1.49-51.

 

4. 포도나무(ἄμπελος):

 

요한복음은 “그리스도를 포도나무, 아버지를 농부, 제자들을 가지”라고 한다.17)

 

   17) 요 15:1, 4, 5; Dodd, Interpretation, 136. 

 

신이 농부라는 심상은 당시 문화권에 퍼져 있었다.

예컨대, 여호와는 포도원에 극상품 포도나무(이스라엘 백성)를 심은 농부 이스라엘이고(사 5:1-7), 여호와는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와 열방을 몰아내고 심은” 농부와 같다(시 80:8; LXX 79:8).

또한 피타고라스는 신이 태초에 나무를 심었고 그것을 이식하고 분배하는 농부 같은 입법자라고 했으며, 플라톤은 창조주 데미우르고스가 세상에 우주 혼을 씨앗처럼 뿌렸다고 상상했다.

2세기 후반에 활동한 철학자 누메니우스(Numenius of Apamea)는 그러한 신농부 심상을 재활용했다.18)

또한 필론은 신을 농부에 빗대면서 ‘가지치기’를 동사 καθαίρειν으로 표현하는데(Somn. 2.64), 요한복음도 같은 동사로 ‘가지치기’를 표현한다(15:2).19)

 

5. 떡(ἄρτος)과 만나(μάννα):20)

 

유대 전통에서 떡은 종종 ‘토라’ 또는 ‘지혜’를 상징하고, 만나는 “묵시 문헌에서 메시아 시대의 축복을, 필론에서 로고스를 상징한다.”21) 요한복음에서도 로고스(예수)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요 사람이 먹으면 죽지 않게 하는 것이다”(6:50).

 

6.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영생:

 

필론과 요한복음에서 가장 복된 자는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고 보며, 영생의 길을 가는 자이다.

필론의 모세와 요한복음의 예수가 그러하다.

필론은 플라톤적 신-인 합일을 열망했고, 요한복음의 예수도 하나님과 하나 되기를 기도한다.22)

 

   18) Dodd, Interpretation, 137.

   19) Dodd는 설명하지 않았으나, 요 15:2의 καθαίρει는 1인칭 단수 직설법 현재형이 둘이다.

첫째, καθαίρω는 ‘깨끗하게 하다,’ ‘정화하다,’ ‘씻어내다,’ ‘정결하게 하다’ 는 뜻이다.

둘째, καθαιρέω는 ‘무너뜨리다,’ ‘제거하다,’ ‘제압하다,’ ‘파괴하다,’ ‘내 리다’는 뜻이다. 의미상 가지치기는 καθαιρέω에 가까우나, 여기서는 이례적으로 καθαίρω의 의미로 쓰였다. 왜냐하면 Dodd가 지적했듯이, 이어지는 3절에 καθαίρω 의 동족 형용사 καθαρός가 나오기 때문이다: “너희가 이미 깨끗한(καθαροί) 까닭 은 내가 너희에게 한 말(λόγος) 때문이다”(15:3).

   20) 떡: 요 6:5, 7, 9, 11, 13, 23, 26, 31-35, 41, 48, 50, 51, 58; 13:18; 21:9, 13; 만나: 요 6:31, 49.

   21) Dodd, Interpretation, 137-38. Dodd는 명시하지 않았으나, 만나를 로고스에 비유하 는 필론의 본문을 예시하면 다음과 같다: “소위 ‘만나’라고 불리는 신성한 음식으 로 혼에 자양분을 공급한 이들은 (중략) 그것을 갈고 반죽하여 숯불에 구운 떡을 만들었으며, 마음을 신뢰할 만하게 형성하기 위하여 어떻게 덕을 담은 하늘의 로고스를 갈고 닦는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Philo, Sacr. 1.86). 다음 본문들도 참조할 만하다: Philo, Leg. 2.86; 3.175; Det. 1.118; Her. 1.79, 191; Congr. 1.170.

    22) 요 5:39; 14:4-6; 17:3; Philo, Spec. 1.345; Somn. 1.41, 164; Det. 1.13; Ebr. 1.152; Fug. 1.78; Dodd, Interpretation, 58-60. 

 

  (5) 참(ἀληθινός):

 

도드는 필론과 요한복음이 참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것을 플라톤의 영향 때문이라고 보았다.

플라톤에게 “참 빛(φῶς ἀληθινόν)”은 “빛 자체(αὐτὸ τὸ φῶς)”로서,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κόσμος νοητός)”에 속하는 반면, 이 세상의 빛은 ‘참 빛’의 “복사품(μίμημα)” 내지 “상징(σύμβολον)”에 불과하다.23)

필론은 “참사람(ὁ ἀληθινὸς ἄνθρωπος),” “참 하나님(ὁ ἀληθινὸς θεός),” “참 생명(ἀληθινὴ ζωή)” 을 언급하고,24) 요한복음은 “참 빛,”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 “참 떡,” “참 포도나무,” “참 하나님”을 언급한다.25)

도드는 요한복음의 ‘하나님의 아들’과 ‘인자’가 필론의 ‘참사람’과 동일한 개념이라고 주장했다.

플라톤이 “정신세계(κόσμος νοητός)”와 “감각세계(κόσμος αἰσθητός)”를 구분하듯이 필론은 ‘원형적 사람(Archetypal Man)’(참 사람)과 몸을 가진 사람을 구분한다는 것이다.26)

 

    23) Dodd, Interpretation, 139-40.

    24) Philo, Det. 1.10; Fug. 1.131; Spec. 1.332; Legat. 1.366; Leg. 1.32, 35; 3:52.

    25) 요 1:9; 4:23; 6:32; 15:1; 17:3.

    26) Dodd, Interpretation, 279-80.

 

7. 표적(σημεῖον):

 

필론은 ‘정신세계의 영적 진리’를 ‘감각세계’에 계시하기 위하여 동사 σημαίνειν을 사용하고, 명사 σημεῖον과 σύμβολον을 동의어로 사용하는데,27) 요한복음도 σημεῖον과 σημαίνειν을 사용한다.28)

필론은 모세오경의 영적 진리를 계시하는 수단으로서 ‘표적’과 ‘상징’ 을 사용하고, 요한복음은 예수의 정체를 계시하는 수단으로서 ‘표적’ 을 사용한다.29)

 

    27) 필론은 현존하는 작품에서 σημαίνειν을 27회, σημεῖον을 79회, σύμβολον을 204회 사용한다.

    28) Σημεῖον: 요 2:11, 18, 23; 3:2; 4:48, 54; 6:2, 14, 26, 30; 7:31; 9:16; 10:41; 11:47; 12:18, 37; 20:30; σημαίνειν: 12:33; 18:32; 21:19.

   29) Dodd, Interpretation, 139.

 

8. 로고스:

 

도드에 따르면, 필론의 로고스는 히브리 전통의 ‘하나님 의 말씀’ 내지 토라뿐 아니라 헬레니즘의 하나님의 지혜, 능력, 의지, ‘우주 창조와 섭리의 이성적 원리’ 등을 함축하며, 하나님과 우주,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중재하는 모든 수단을 뜻한다.

이러한 “필론적 로고스 개념(Philonic conception of the Logos)”이 요한복음 서문(1:1-18)에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고 한다: ἐν ἀρχῇ ἦν ὁ λόγος: Opif. 1.24; ὁ λόγος ἦν πρὸς τὸν θεόν: Deus. 1.31; θεὸς ἦν ὁ λόγος: Somn. 1.229-30; πάντα δι᾽ αὐτοῦ ἐγένετο: Cher. 1.127; ἐν αὐτῷ ζωὴ ἦν: Post. 68-69; λόγος는 φῶς ἀλη- θινόν이다: Opif. 1.33 & Conf. 1.60-63; ὅσοι ἔλαβον αὐτόν, αὐτοῖς ἐξουσίαν ἔδωκεν τέκνα θεοῦ γενέσθαι: Conf. 1.145-147; θεὸν οὐδεὶς ἑώρακεν πώποτε· ὁ ὢν εἰς τὸν κόλπον τοῦ πατρὸς ἐκεῖνος ἐξηγήσατο: Conf. 1.97.30)

도드는 요한복음 서문 외에서도 필론적 “로고스 교리(Logos-doctrine)”가 전술한 ‘참(ἀληθινός)’이라는 수식어로 표현된다고 보았다.

다만, 도드는 신적 로고스가 인간(예수)으로 육화되고 인격화되었다는 요한복음의 사상은 필론과 차이가 있다고 보았다.31)

   

  30) 관련 본문 내용은 다음을 참조하라: Dodd, Interpretation, 276-77.

  31) Dodd, Interpretation, 60, 67-68.

 

III. 도드의 제안에 대한 직접적 반응

 

요한복음의 상징들 가운데 필론의 영향을 받은 것들이 있다는 도드의 제안에 대하여 학계는 크게 두 가지 반응을 보였다.

먼저, 직접 반응으로서, 도드의 제안을 부정하거나 긍정한 반응이 있었고, 판단을 유보하자는 반응도 있었다.

이와 달리, 간접 반응으로서, 도드의 제안에 직접 대응하지 않은 채, 도드와 다른 관점에서 필론과 요한복음을 대조 연구한 이들도 있었다.

이 단원에서는 직접 반응을 논하고, 다음 단원에서 간접 반응을 논하겠다.

 

1. 찰스 바렛(Charles K. Barrett)

 

바렛은 자신의 요한복음 주석서 재판(再版) ‘머리말’에서, 초판 원고를 마무리한 후에야 도드의 요한복음 해석서를 받게 되었다며 그 내용을 자신의 책에 넣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그러나 바렛은 초판 발행 당시에 이미 도드의 입장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것 같다.32)

바렛은 플라톤, 스토아철학, 필론 등이 부분적으로 요한복음에 영향을 끼쳤다고 보면서도 그 원인을 직접 접촉이 아닌 문화적 산물로 돌렸다.

당시에 플라톤의 고전철학은 헬레니즘화 되었고, 포시도니우스(Posidonius, BC 135-51년경)에 이르러서는 범신론적 스토아철학과 혼합되어 대중화되었다고 한다.33)

 

      32) Charles K. Barrett, The Gospel According to St. John: An Introduction with Commentary and Notes on the Greek Text, 1st ed. (London: SPCK, 1955; Reprinted in 1956), vii..

     33) Barrett, The Gospel According to St. John, 28-29.

 

이어서 히브리 사상과 융합하는 과정에서 신비주의 및 영지주의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지혜 문헌, 헤르마스 문헌, 필론 등이 히브리 신앙을 대중적 플라톤스토아 철학으로 재해석했다는 것이다.

대중적 플라톤 사상의 영향 때문에 요한복음이 ‘위’와 ‘아래’, 참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이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요한복음은 ‘로고스’를 언급하면서도 내재적 로고스 때문에 사람이 신의 자녀가 된다고 하지는 않으므로 스토아적 범신론과 다르다고 보았다.

또한 로고스가 우주 체계뿐 아니라 예수로 인격화된다는 점에서 요한의 로고스 사상은 스토아철학이나 필론과 다르다고 보았다.34)

     

     34) Barrett, The Gospel According to St. John, 29, 32-33. 

 

2. 레이몬드 브라운(Raymond E. Brown)

 

브라운은 도드를 언급하며, “필론과 요한복음은 같은 배경(구약성서와 지혜 문헌, 헬레니즘 유대교)을 공유할 뿐,” 둘은 “매우 다르다” 고 평가했다.

비록 요한복음이 필론처럼 플라톤이나 스토아적 요소들을 포함할지라도, 요한복음 저자(들)가 그 요소들을 헬레니즘 철학에서 직접 가져온 것은 아니라고 본 것이다.

팔레스타인은 BC 332년경부터 헬레니즘 영향권에 있었으므로 요한복음에 헬레니즘 요소가 스며 있을 뿐, 요한복음이 플라톤, 스토아철학, 필론 등을 직접 참조한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35)

브라운은 프랑수아 브론(François Braun)의 견해를 빌어, “필론이 없었더라도 요한복음은 현재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했다.36)

 

    35) Raymond E. Brown, The Gospel According to John (Garden City: Doubleday, 1966), xix-cxlvi, lvii-lvii.

    36) Brown, The Gospel According to John, lviii; François Braun, Jean le théologien et son évangile dans l'école d'Alexandrie (Paris: Gabalda, 1964), 2.298.   

 

3. 토마스 토빈(Thomas H. Tobin)

 

토빈은 요한복음과 필론의 유사성을 밝힌 도드를 격찬하며, 로고스 찬양시를 필론의 언어와 비교했다.37)

토빈은 본래의 찬양시를 요한복음 1:1-5, 10-12b, 14, 16으로 제한하는 브라운의 가설을 수용하는 한편, 요한복음이 필론보다 유대 지혜 문헌에 가깝다는 브라운의 입장은 거부했다.

제라르 로셰(Gerard Rochais)도 그 찬양시가 지혜 문헌에서 왔다고 보았는데, 토빈은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38)

 

   37) Thomas H. Tobin, “The Prologue of John and Hellenistic Jewish Speculation,” CBQ 52 (1990), 252-69, 253, 각주 3.

   38) Tobin, “The Prologue of John,” 253-55.

 

  첫째, 유대 지혜 문헌은 ‘지혜’ 대신 ‘로고스’를 찬양하지 않는다.

  둘째, 유대 지혜 문헌은 우주 창조에서 로고스의 역할을 διά 전치사구(δι᾽ αὐτοῦ, διὰ τοῦ λόγου, 요 1:3, 10)로 표현하지 않고, 여격(λόγῳ, Sib. Or. 3.20)으로 표현한다.

  셋째, 지혜 문헌은 지혜를 ‘하나님(θεός, 요 1:1)’ 내지 ‘독생자(μονογενής, 요 1:14)’라 하지 않고, 지혜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τέκνα θεοῦ, 요 1:12)’가 된다고도 하지 않는다.

  넷째, 지혜 문헌은 빛과 어둠을 대조하지 않고, 빛과 생명을 지혜와 동일시하지 않으며, 지혜를 빛보다 우위에 둔다.39)

  다섯째, 지혜 문헌은 지혜의 성육신을 주장하지 않는다.

토빈에 따르면, BC 2세기경부터 헬레니즘 유대교는 지혜 및 로고스로 세계와 인간 창조를 논하기 시작했고, 예수와 사도 시대에는 알렉산드리아의 필론이 스토아철학을 가미한 중플라톤 언어로 모세 율법(LXX)을 주해하며 요한복음과 유사한 로고스론을 주창했다.40)

요한복음처럼 필론도 로고스를 하나님과 세상의 중간자이자 창조 원리이고(Her. 1.188; Fug. 1.110), 만물의 시원이자 원형이며(Opif. 1.23-25), 하나님의 형상과 최측근으로서 ‘참 존재’라고 주장한다.

또한 로고스를 관사 없이 ‘신’이라 표현하고(Fug. 1.101; Somn. 1.228-230; 2.45), 로고스의 기능을 전치사 dia,로 묘사한다(Cher. 1.125-127).41) 게다가 필론도 요한복음처럼 창세기 1장 초입부에 기초하여 빛과 어둠을 나누고 빛을 생명과 연관시킨다(Opif. 1.31-34).42)

그러나 토빈은 요한복음이 필론의 영향을 직접 받았다고 단언하지 않고, 둘의 유사성을 헬레니즘 유대교의 산물로 돌린다.

둘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는 것이다.

예컨대, 필론은 로고스를 ‘독생자’라 하지 않고, ‘장자(πρωτόγονος)’라고 하며(Conf. 63, 146), ‘하나님의 자녀들(τέκνα θεοῦ)’ 대신에 ‘로고스의 아들들(υἱοί)’과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Conf. 1.147).43)

 

    39) 요 1:3, 10, 14; Wis. 6:12; 8:26; 7:29-30; Tobin, “The Prologue of John,” 254-55.

   40) 로고스와 지혜는 다음을 참조하라: Philo, Leg. 1.65; Her. 1.191; Somn. 2.242-45; Conf. 1.146; Tobin, “The Prologue of John,” 256-57.

   41) Tobin, “The Prologue of John,” 257-58.

   42) Tobin, “The Prologue of John,” 262-65. 

   43) Tobin, “The Prologue of John,” 261-63.

 

그러나 토빈은 필론이 창세기 1:27의 인간을 2:7의 인간과 구분하고, 전자를 ‘하늘의 인간’ 내지 ‘로고스’라 칭했다면서(Conf. 1.62, 146), 이런 전례가 요한복음의 로고스를 예수로 인격화하는 데 공헌했을지 모른다는 도드의 제안을 반박하지는 않는다.44)

 

    44) Tobin, “The Prologue of John,” 265-67.

 

4. 데이비드 루니아(David T. Runia)

 

루니아는 도드야말로 “요한복음과 필론의 관계를 가장 자세하고 예리하게 비평했다”고 평가하고, 도드의 연구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첫째, ‘요한복음과 필론은’(이하 ‘둘은’) 빛, 생수, 목자 등의 상징 기법을 공유한다.

 둘째, 둘은 “참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최고의 축복(영생) 으로 여기고 “예배, 믿음, 사랑”의 가치를 공유한다.

 셋째, 둘은 대부분의 로고스 교리를 공유하지만, 로고스가 인간(예수)으로 성육신한다는 개념은 요한복음에만 특유한 것이다.45) 전술했듯이, 토빈은 필론과 요한복음이 헬레니즘 유대교의 시대적 산물임을 강조했으나, 루니아는 보르겐이 팔레스타인 미드라시 전통을 강조했다고 언급한다.

보르겐은 요한복음의 “하늘의 만나”(6:31- 58), 로고스(1:1), “신성한 중재자”(1:18) 개념 등이 랍비 문헌에도 나온다는 사실을 밝혔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르겐은 요한복음과 필론이 각각 초기 랍비 문헌, 즉, “초기 메르카바 신비주의에서 유래한 하가다와 할라카 전통”을 도입했다고 주장했으나,46) 루니아는 필론이 랍비 문헌보다 먼저임을 믹스가 입증했다고 지적한다.

 

    45) Runia, Philo in Early Christian Literature, 78-80.

    46) Runia, Philo in Early Christian Literature, 81-82. 

 

믹스는 요한복음이 예수를 ‘신’으로 격상하게 된 원인을 밝혀줄 두 가지 단서가 필론 의 작품에 다음과 같이 나온다고 한다.

  첫째, 필론을 위시한 일부 헬레니즘 유대 전통은 “유대인이 용납하기 어려울 정도로 모세와 족장들을 준-신격화”했는데, 요한복음도 예수를 거의 하나님과 동일시한다.

  둘째, 요한복음에서 유대인들은 신성을 주장한 예수를 공격하는데, 필론도 인간에 불과한 로마 황제 가이우스가 자신을 신격화한다고 맹비난한다.47)

그리하여 페터 호프리흐터(Peter Hofricher)조차 필론의 로고스와 모세 개념이 “의심할 여지 없이” 요한복음의 로고스예수 개념 형성에 영향을 끼쳤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호프리흐터는, 제임스 마틴(James L. Martyn)의 ‘비르카트 하미님’ 가설에 기초하여, 필론을 따르는 예루살렘의 헬레니즘 유대 회당에서 요한공동체가 분리되어 나오는 정황이 요한복음에 담겨 있다고 주장했다.48)

 

    47) Wayne A. Meeks, The Prophet-King: Moses Traditions and the Johannine Christology, Supplements to Novum Testamentum 14 (Leiden: E. J. Brill, 1967), 32-99, 286-319; Peder Borgen, Bread from Heaven: an Exegetical Study of the Concept of Manna in the Gospel of John and the Writings of Philo, Supplements to Novum Testamentum 10 (Leiden: Brill, 1965), 5.

    48) Peter Hofrichter, In Anfang war der “Johannes-Prolog”: das urchristliche Logosbekenntnis, die Basis neutestamentlicher und gnostischer Theologie, Biblische Untersuchungen 17 (Regensburg: Pustet, 1986), 337-59; James L. Martyn, History & Theology in the Fourth Gospel (Nashville: Abingdon, 1979); Runia, Philo in Early Christian Literature, 82.

 

선행연구 소개를 마치며 루니아는 요한복음 1:1을 간략하게 분석한다.

이 본문은 창세기에 기초하여 관사 있는 θεός와 없는 θεός를 구분하고 후자를 창세 전부터 존재한 로고스예수에게 부여함으로써 하나님께 종속된 기독론을 펼치는데, 필론에도 유사 개념이 나온다는 것이다.

즉, 필론은 창세기 31:13을 주석하면서(Somn. 1.229) 관사 없는 θεός를 “가장 오래된 로고스(πρεσβύτατος λόγος)”에게 부여함으로써 로고스가 하나님께 종속됨을 표현한다.

이를 오리게네스(AD 185-253년경)와 헨헨도 발견했다면서, 루니아는 요한복음 연구에 필론과 오리게네스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

“첫째, 필론이 없었다면 우리는 요한복음의 사상과 배경을 훨씬 덜 알았을 것이다;

 둘째, 교부들의 요한복음 해석도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49)

 

    49) Runia, Philo in Early Christian Literature, 82-83. 

 

5. 그레고리 스털링(Gregory Sterling)

 

스털링은 도드의 주장을 지지하며, 오늘날 “넷째 복음서 연구 분야에서 필론의 연관성이 널리 인정된다”고 단언한다.

도드의 말대로, “넷째 복음서에 다른 배경 사상들이 개입했을지라도, 그것(요한복음) 이 필론으로 대표되는 헬레니즘 유대교 사상과 현저하게 유사한 일련의 사상을 전제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는 것이다.50)

스털링은 필론과 유사성을 보이는 요한복음 본문들 가운데 특별히 1:1-5는 구약성서 창조 기사뿐 아니라, “필론이 창조를 설명할 때 도입한 플라톤의 범주들(categories)과 놀랍도록 닮은 범주들”을 사용한다면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유일하신 하나님’을 “관사 있는 하나님(ὁ θεός)”으로 표현하고, 가장 오래된 ‘로고스’를 “관사 없는 하나님(θεός)” 으로 표현한다.51)

 둘째, 영원한 존재에 동사 εἶναι(ἦν)를 적용하고, 유한한 피조물에 동사 γίνεσθαι(ἐγένετο)를 적용한다.52)

 

      50) Gregory E. Sterling, “The Place of Philo of Alexandria in the Study of Christian Origins,” Philo und das Neue Testament: Wechselseitige Wahrnehmungen I, Internationales Symposium zum corpus Judaeo-Hellenisticum 1-4 Mai 2003, Eisenach/Jena, ed. by Ronald Deines and Karl-Wilhelm Niebuhr (Mohr Siebeck, 2004), 47; Dodd, Interpretation, 54.

     51) Sterling, “The Place of Philo of Alexandria,” 48; 요 1:1; Philo, Somn. 1.227-230.

     52) Sterling, “The Place of Philo of Alexandria,” 48-49; 요 1:1, 2, 3, 6, 9, 10, 14, 15, 17, 18; 8:24, 28, 58; 13:19; Philo, Opif. 1.12. 플라톤은 영원히 존재하는 정신세계(ὁ νοητὸς κόσμος)를 τὸ ὄν이라 하고, 창조되어 유한한 감각세계(ὁ αἰσθητὸς κόσμος) 를 τὸ γιγνόμενον이라 한다. Plato, Tim. 27d-28a.

 

 셋째, 창조 기사에서 로고스의 도구적 기능을 전치사 διά로 표현한다(δι᾽ αὐτοῦ, δι᾽ οὗ).53)

 넷째, 창조 기사에서 빛과 어둠을 언급하고 빛을 로고스와 동일시한다.54)

이러한 필론플라톤적 요소들은 요한복음 1:1-5가 필론을 통해 유입된 플라톤의 정신세계를 기독론에 응용한 결과라고 스털링은 제안했다.

유사한 플라톤적 요소들이 필론의 영향을 받은 에녹2서에도 나타난다는 것이다.

또한 아우구스티누스도 요한복음 1:1-5에서 플라톤의 흔적을 발견했으나, 그것이 필론을 통해 유입되었을 가능성을 상상하지 못했다고 한다.55)

 

    53) 필론은 창조의 도구를 전치사 διά로, 창조의 원인을 전치사 ὑπό로, 창조의 질료를 전치사 ἐκ로 표현하곤 하는데, 유사하게 요한복음도 1:3, 7, 10에서 διά를 사용하고 1:13에서 ἐκ를 사용하고, 14:21에서 ὑπό를 사용한다. Philo, Sacr. 1.8, 10; Spec. 1.81; Cher. 1.124; Sterling, “The Place of Philo of Alexandria,” 49-50.

    54) Sterling, “The Place of Philo of Alexandria,” 50; 요 1:1-9; Philo, Opif. 1.29-31.

    55) Sterling, “The Place of Philo of Alexandria,” 51. 

 

IV. 도드의 제안에 대한 간접적 반응

 

이 단원에서는 도드에 대한 입장을 직접 표명하지 않은 채, 필론과 요한복음의 관계를 연구한 성과들을 선별하여 분석한다.

특히, 도드와 다른 텍스트, 관점, 방법론 등을 사용하거나 도드의 연구 범위를 확장 내지 변경하여 다른 성과를 창출한 사례들을 우선 선별했다.

 

1. 웨인 믹스(Wayne A. Meeks)

 

도드가 요한복음과 필론이 공유하는 상징 어휘와 표현 기법을 추적했다면, 믹스는 필론의 모세와 요한복음의 예수가 공유하는 역할과 호칭으로 연구 방향을 돌렸다.

믹스는 세상에서 왕이 된 적이 없는 모세를 필론이 ‘왕’(βασιλεύς)’과 ‘선지자(προφήτης)’로 묘사하고, 요한복음도 세상에서 왕이 된 적이 없는 예수를 왕과 선지자로 묘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출처를 찾기 위하여, 믹스는 헬레니즘 철학 전통, 구약성서와 중간기 문헌, 필론의 작품들, 랍비 문헌, 사마리아 문헌, 만디아와 영지주의 문헌 등을 탐색하여 다음 사실을 제시했다.56)

 첫째, 왕을 제사장과 입법자, 목자로 묘사한 사례는 헬레니즘 철학 전통과 유대 전통에 모두 나타난다.57)

 둘째, 고대 그리스와 헬레니즘 철학 전통(특히 플라톤 전통)은 βασιλεύς라는 용어 자체를 거의 긍정적으로만 사용하고, 도시국가의 왕을 로고스를 겸비한 철학자와 지혜자로 묘사한다.58)

  필론도 모세를 그런 인물로 묘사하고, 요한복음은 예수를 로고스 자체와 동일시한다.

 셋째, 왕과 선지자가 결합된 호칭은 헬레니즘 철학 전통에는 생소하고, 이 조합이 등장하는 가장 이른 본문은 필론의 작품들이다.59)

  넷째, 필론은 모세를 왕, 제사장, 입법자, 목자, 로고스를 겸비한 철학자로 묘사할 뿐만 아니라, ‘선지자’와 ‘신,’ ‘하나님의 제자,’ ‘하나님의 가장 사랑받는 자’라고도 부르는데,60) 요한복음도 예수만을 ‘왕(βασιλεύς)’이라 부르고, 예수를 입법자 모세를 능가하는 자(1:17, 45), 모세의 법 대신 아버지께 받은 ‘새 계명을 주는 아들’(10:18; 13:34-35; 15:10-12), ‘선한 목자,’ ‘로고스 자체’(1:1), ‘그 선지자’(6:14; 7:40; 참조: 4:19, 44), ‘신’(1:1),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1:14, 18; 3:16, 18), 하나님이 품에 안고 사랑하는 아들(1:18; 3:35; 5:20) 등으로 묘사한다.

 

      56) Meeks, The Prophet-King, 100-31, 313-19. 57) Plato, Min. 321b-d; Philo, Prob. 1.31; Agr. 1.41; 삼하 5:2; 7:14; 대상 11:2; 겔 37:24; Erwin R. Goodenough, “The Political Philosophy of Hellenistic Kingship,” Yale Classical Studies 1 (1928), 55-102; “Kingship in Early Israel,” Journal of Biblical Literature, 48/3-4 (1929), 169-205.

    58) Plato, Resp. 473c-d, 543a; Meeks, The Prophet-King, 133.

    59) Meeks, The Prophet-King, 130.

    60) Philo, Abr. 1.5; Opif. 1.8; Mos. 1.158, 162, 167; 2.2-6, 187; Agr. 1.44; Praem. 1.53, 55; Somn. 2.83; Spec. 1.308; Decal. 1.40.

 

  다섯째, 필론의 모세선지자왕 개념은 필론 이후에 기록된 사마리아 문헌, 랍비 문헌, 헬레니즘 유대 문헌 등에 간헐적으로 나타나지만, 특별히 필론의 모세선지자왕이 요한복음의 예수선지자왕과 가장 유사하다.

게다가 필론의 작품들은 ‘선지자왕’ 개념이 등장하는 가장 이른 문헌이다.

  여섯째, 따라서 필론의 모세가 요한복음의 예수선지자왕의 가장 유력한 전거다.

이 개념을 필론이 창출했는지 아니면 차용했는지 분별할 자료는 불충분하다고 한다.61)

이어서 믹스는 요한복음에서 예수가 “모세의 제자들”과 대립하는 장면에 주목하여, 요한복음의 기록 정황을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첫째, 요한복음은 필론 방식의 모세 및 시내산 전통을 계승한 유대인들의 회당에서 기독교 공동체가 갈등하고 분리되어 나오는 과정에서 형성되었다.

  둘째, 모세의 제자들이 요한 공동체를 용납할 수 없었던 이유는 요한 공동체가 왕선지자신으로 격상된 모세의 신성을 뛰어넘는 예수의 신성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셋째, “요한 공동체는 유대인 공동체뿐만 아니라 그와 유사한 신앙을 가진 사마리아 공동체에서 온 구성원들도 포함한다.”62)

 

      61) Meeks, The Prophet-King, 129-31, 305.

      62) Meeks, The Prophet-King, 318-19. 

 

2. 코레 푸글세스(Kåre Sigvald Fuglseth)

 

푸글세스는 도드를 참조했으나, 상징 어휘 자체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요한 공동체의 성격을 사회학적 관점에서 규명하는 데 집중했다.

그는 예루살렘 성전이 멸망하기 전후에 형성된 유대 공동체들이 어떻게 성전 체계를 대체하고 공동체를 정비했는가를 규명하기 위하여, 성전과 성례전의 상징적 변용 방식을 코드 삼아, 요한 공동체와 필론의 회당 공동체, 그리고 쿰란 공동체의 사회적 정황을 분석했다.

이를 위하여 공동체 유형을 다음 세 가지로 분류했다:

  첫째, 성전 제도 자체를 부인하고 세상과 단절한 “종파 유형(sectarian model)”;

  둘째, 성전 제도를 고수하려는 “모체(Parent Body)” 유형;

 셋째, 사회 정황에 따라 성전 제도를 재해석하여 현실에 적응하고 종교로 발전해 가는 “신흥종교 유형(cultic model).”63)

푸글세스는 쿰란 공동체를 종파 유형으로, 필론 공동체를 모체 유형으로, 요한 공동체를 신흥종교 유형으로 평가했다.64)

그는 요한복음의 성전 척결 사화(2:13-22), 사마리아 여인 사화(4장), 초막절(7:37-44), 유월절(6장; 11:55, 13-19), 선한 목자와 양들의 범위(10장) 등을 분석한 후, 요한 공동체는 세상과 단절한 은둔형 종파가 아니라 외부인들(다른 양들)까지도 품으려는 진취적 신흥종교였다고 제안했다.

푸글세스는 요한복음이 내부인들끼리만 해독할 수 있는 암호로 가득하고, 요한 공동체는 내부 결속만을 다지는 종파라고 주장한 루이스 마틴(J. Louis Martyn)의 가설을 반박한 셈이다.65)

이 과정에서 푸글세스는 유대 절기 축제들을 탁월하게 분석했을 뿐만 아니라, 요한복음에만 등장하는 다양한 절기들이 필론의 작품들에서 심층 분석된다는 사실을 밝혔으나, 필론의 축제 주제와 요한복음의 관계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았다.66)

 

    63) Kåre Sigvald Fuglseth, Johannine Sectarianism in Perspective: A Sociological, Historical, and Comparative Analysis of Temple and Social Relationships in the Gospel of John, Philo, and Qumran (Leiden: Brill, 2005), 45-61. 이 논문은 Fuglseth의 관점을 반영하 여 ‘sect’를 ‘종파’로, ‘cult’를 ‘신흥종교’로 번역하여 사용한다.

   64) Fuglseth, Johannine Sectarianism, 353-74

   65) Fuglseth, Johannine Sectarianism, 117-249, 285-351; J. Louis Martyn, History and Theology in the Fourth Gospel (New York: Harper & Row, 1968), 56-66.

   66) Peder Borgen, The Gospel of John: More Light from Philo, Paul and Archaeology, Supplements to Novum Testamentum 154 (Leiden and Boston: Brill, 2014), 43-66. 564❙신약논단 제31권 제4호∙2024년 겨울

 

3. 폴커 지거트(Folker Siegert)

 

지거트는 연구 대상을 신약성서 문서들에까지 확장했고, 상징뿐 아니라 14개 범주에서 필론과의 연관성을 분석했다.67)

그는 필론의 사상이 신약성서 형성 이전부터 기독교 설교와 가르침에 구두로 활용되었으며, 그 증거가 신약성서라고 주장했다.

이를 토대로 그는 로마, 에베소, 고린도에서 작성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다섯 부류의 문서를 중심으로 연구 범위를 좁혀, 히브리서, 바울계 서신들(특히 고린도전서), 누가복음, 베드로전후서를 포함한 바울 학파 문헌, 요한복음 등을 집중해서 분석했다.68)

분석 결과, 필론의 영향은 마태복음을 제외한 신약성서 전반에서 포착되었고, 특히 히브리서와 요한복음에서 두드러졌다.69)

또한 신약성서는 대체로 “구술 공연(oral performance)을 보조하고, 스승의 신체적 부재를 대체할 목적으로 기록된 일종의 기억보조장치(aide-mémoire)”에 가까우나, 필론의 작품들은 본질적으로 “저작물(literature)”이라고 정의했다.70)

지거트는 필론의 영향력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기독교 사상가들이 ‘신학(theology)’이라 불리는 것을 발전시키고, 요한복음 사가가 ‘그 신학자(the theologian)’라는 호칭을 얻게 된 계기는 바로 필론의 사상을 수용한 덕분이다.”71)

 

    67) Folker Siegert, “Philo and the New Testament,” The Cambridge Companion to Philo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9), 176-77. 14개 범주는 후술한다.

    68) Siegert, “Philo and the New Testament,” 176.

   69) Siegert는 히브리서의 “오래된 사본 일부가 바울의 로마서와 함께 전승되었고” “클 레멘스 1서 36.2-5에서 인용된 점”, 그리고 “성전 파괴 암시가 없는 점” 등을 들어, 히브리서가 “AD 68년 이전에 로마에서 작성되었다”고 본다. 또한 요한복음은 이 레니우스와 에우세비우스의 기록에 기초하여 에베소에서 작성되었다고 본다. Siegert, “Philo and the New Testament,” 176-78, 195. 70) Siegert, “Philo and the New Testament,” 205.

   71) Siegert, “Philo and the New Testament,” 176.

 

지거트가 14개 범주에 따라 분석한 필론과 요한복음의 유사성은 다음과 같다.72)

 

가. 형식:

 

필론은 플라톤의 Timaeus의 서술체를, 요한복음은 Phaedo 와 Apology의 대화체를 선호했고, 필론과 요한복음은 전술한 도드가 제시한 상징어들을 사용했다.73)

 

나. 성경과 그 해석 방법들:

 

‘만나’와 ‘성전’을 알레고리로 설명하고, 창세기 1:1-2 및 2:2-3을 해석하고, “하강(descent) 모티프를 사용하여 성서해석을 신비 체험처럼 여겨지게 했다.”

 

다. 하나님 지식:

 

원형 로고스와 개별 로고스를 구분한다(요 1:1-3; 1:9-13).

 

라. 신적 명칭:

 

출애굽기(LXX) 3:14의 ἐγώ εἰμί를 사용한다.

 

마. 지혜와 토라:

 

안식일에도 쉬지 않으시는 하나님 개념을 선호한다.74)

 

바. 신성한 로고스:

 

하나님과 로고스를 모두 ‘신(θεός)’이라 표현하고 하나님께만 관사(ὁ)를 붙여 로고스와 차별화한다.

 

사. 창조와 이중성:

필론의 “절단하는 로고스(λόγος τομεύς)”와75) 유사 개념이 “창세기 1:1-5에 대한 미드라쉬 해석 본문인 요한복음 1:1-5” 에 나타난다.

 

아. 악과 죄, 은혜와 구원:

 

온전한 지각이나 영적 탄생으로 죄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76)

 

자. 인간과 영생:

 

필론은 인간이 ‘덕’을 통해 혼이 영생한다고 하고, 요한복음은 예수를 믿음으로써 인간이 영생한다고 한다.77)

 

   72) Siegert, “Philo and the New Testament,” 195-204.

   73) 요 16:13; Philo, Mos. 2.265.

   74) 요 5:9-18; 7:22-23; 9:14, 16; Philo, Cher. 1.87-93; Opif. 1.13; Leg. 1.3-6.

   75) Philo, Det. 1.110; Her. 1.130, 131, 140, 179, 215, 225.

   76) 요 3:1-17; Philo, Deo. 1.2-3.

   77) 요 3:16; Philo, Opif. 1.156; Leg. 3:52; Cher. 1.2-9. 566❙신약논단 제31권 제4호∙2024년 겨울

 

차. 출애굽과 유월절:

 

요한복음에서 예수는 “완전한” 유월절 양과 “새로운 유월절”인데, 필론도 “유월절(διαβατήρια) 양의 완전함”을 논한다(요 12:23-28; 출 12:5; Philo, Mos. 2.224-233; Spec. 1.253; 4.105).

 

카. 계시된 토라:

 

필론과 예수가 지지하는 ‘계시된 토라’를 예수의 적대자들은 반대한다.

 

타. 계명:

 

요한복음은 많은 계명을 사랑 계명으로 대체하여(13:34), 필론과 차이를 보인다.

 

파. 거룩한 장소들:

 

요한복음에서 성전은 척결 대상이지만(2:19), 필론에게는 그렇지 않다.

 

하. 종말론:

 

요한복음은 진리를 통한 자유를, 필론은 덕을 통한 자유를 추구한다.78)

 

     78) 요 8:33; Philo, Praem. 1.162-172.   

 

4. 페데르 보르겐 (Peder Borgen)

 

보르겐은 “요한복음과 필론이 구약을 사용하는 방식과 요한공동체 상황이 복음서에 반영된 방식에 더 유의할 필요가 있다”면서 도드와 차별화를 선언하고, 필론과 요한복음이 사용한 모세오경(LXX) 본문들을 예시적으로 선택하여 해석 방식을 분석했다.79)

 

      79) Borgen, The Gospel of John,

 

그는 창세기(LXX) 1:3에 ‘로고스’라는 명사가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 본문이 요한복음의 인격화된 로고스와 무관하다는 주장에 반박한다.

필론이 창세기 1:3을 주해하면서 로고스를, “하나님의 맏아들, 로고스, 대천사” 등으로 인격화하고, “시원(ἀρχή), 하나님의 ‘이름,’ 로고스, 그의 형상을 닮은 사람, 보는 자 이스라엘(ὁ ὁρῶν Ἰσραήλ)” 등으로 인격화하기 때문이다(Conf. 1.146).

필론은 지혜(σοφία)를 “창조주가 소유한 지식 (ἐπιστήμη)”으로 해석하므로(Ebr. 1.30-31), 이런 지혜 전통도 요한복음 서문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한다.80)

또한 요한복음의 안식일 치유 사화(5:1-18)는 하나님이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는 창세기(LXX 2:2-3) 전통과 상충한다면서, 유사한 안식일 논쟁이 필론(Leg. 1.5-6, 18; Migr. 1.91)과 ‘창세기 라바’ 30:6에도 나온다고 설명한다.81)

이어서 보르겐은 예수가 가버나움 회당에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에 관하여 질의응답 하는 본문(요 6:30-59)에 주목한다.

당시 회당에서 대담이 불가능했다고 주장한 바렛에 대하여,82) 랍비 문헌과 필론이 회당 대담을 보도한다고 반박한다.

특히 필론의 회당 관련 본문에는 요한복음(6:24, 26)에 사용된 ζητεῖν 동사와 같거나 유사한 다음 용어들이 풍부하게 등장한다는 것이다: ζητεῖν, ἐπιζητεῖν, λύειν, ἐπιλύ- εσθαι, διαλέγεσθαι.83)

 

    80) Borgen, The Gospel of John, 47.

    81) Borgen, The Gospel of John, 48.

    82) C. K. Barrett: 1978, 300(서지 정보).

    83) Borgen, The Gospel of John, 49; Philo, Contempl. 1.75, 79; Opif. 1.77; Leg. 1.33, 48, 91; 2.103; 3.60; Spec. 1.214.     

    84) Borgen, The Gospel of John, 50-51. 

 

아울러 보르겐은 요한복음 6:31-43의 질의응답 전개 과정이 출애굽기 12:1-2에 대한 랍비 해석(Mekilta on Exodus 12:1-2) 및 창세기(LXX) 17:16에 대한 필론의 해석(Mut. 1.141-144)과 유사하다면서, 그 전개 과정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① 구약 본문 인용(출 16:2; 요 6:31);

 ② 본문 해석(요 6:41; 참조: 35, 38절);

 ③ 해석에 대하여 의문이 일어나는 배경 설명(요 6:42);

 ④ 해석에 대한 의문 제기(요 6:41);

 ⑤ 제기된 의문에 대한 답변과 해결(요 6:43-58).84)

이 평행 본문에서 필론은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를 모세의 율법이 해석되는 안식일에 내려오는 하늘의 지혜와 동일시하는데, 로고스예수도 자신을 안식일에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과 동일시한다.

또한 요한복음 6:31-32에서 예수는 διδόναι 동사의 시제를 바꾸어 지나간 모세와 영존하시는 하나님의 주심을 대조하는데, 유사하게 필론도 시제를 바꾸거나, 동음이의어(同音異議語)나 동의이음어(同議異音語) 를 사용하거나, 단어를 빼거나 더하는 방식의 문헌학적 변용을 즐겨 사용한다고 한다(Det 1.47-48).

또한 구약 본문 조각들을 결합 또는 분리하고 반복 내지 병렬하면서 순차적으로 해석해 나가는 방식도 요한복음과 필론 모두에서 발견된다고 한다.85)

보르겐은 모세 율법의 외적 준수를 비판한 필론의 주장이 예수의 안식일 해석(요 5:1-18)을 지지할 뿐만 아니라, 필론이 신명기 13장을 해석하며 다신교를 수용한 자들에게 경고한 논조가 요한복음 16:2에서 반향 된다고 보았다.

또한 필론은 모세의 시내산 오름을 ‘두 번째 탄생’에 빗대었는데, 예수도 니고데모에게 위로부터 다시 태어나기를 권고했으며, 필론은 성전을 인격화했는데, 예수도 성전을 자신과 동일시했다고 통찰한다.86)

필론과 요한복음과 랍비 문헌이 많은 요소들을 공유한다는 사실을 예시적으로 입증하기를 마치며, 보르겐은 다시 도드를 언급한다. 도드는 요한복음의 상징 체계를 플라톤필론 체계로 이해했으나, 요한복음의 많은 상징들과 해석학적 방법론은 플라톤이 아닌 유대 전통에서 기원한 헬레니즘 유대 문헌에 더 가깝고, 그 전승의 정점에 필론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르겐은 요한복음이 필론을 직접 사용했다고 주장하기를 보류한 채, 요한복음이 헬레니즘 유대교라는 배경에서 필론과 간접적으로 교차했을 가능성만을 열어둔다.87)

 

    85) 요 6:31-58; Philo, Leg. 3:162-168; Borgen, The Gospel of John, 51-52.

    86) Borgen, The Gospel of John, 53-58.

    87) Borgen, The Gospel of John, 65.

 

V. 마무리하며

 

아가일은 요한복음에서 필론과 공명하는 상징어들을 다수 발견하여 요한복음이 필론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어서 도드는 아가일의 상징어 목록을 탁월하게 갱신하고, 그 상징 기법을 플라톤과 헬레니즘 관점에서 분석하여 공관복음의 비유 기법과 구분했다.

도드의 연구에 대하여, 바렛, 브라운, 루니아, 스털링은 직접 반응했다.

그러나 믹스, 푸글세스, 지거트, 보르겐은 도드와 다른 관점과 방법론을 택하여 도드의 연구를 계승·발전시켰다.

먼저, 브라운은 아가일과 도드의 제안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요한복음과 필론의 유사성을 공통 배경의 산물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바렛은 도드의 제안에 신중하게 반응하며, 요한복음과 필론이 공유하는 그리스 철학적 요소들이 헬레니즘화 된 대중 철학의 영향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유사하게 토빈도 요한복음과 필론의 직접 접촉 가능성을 보류한 채, 철학보다는 지혜 전통에 주목했다.

토빈은 BC 2 세기경에 헬레니즘 유대교 지혜 전통에서 지혜와 로고스가 창조 해석에 함께 도입되었다면서, 이를 필론이 탁월하게 발전시켰고, 그 맥락에서 요한복음이 나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도드의 상징 목록을 현저히 갱신했으나, 필론과 요한복음의 직접 영향을 주장하지는 않았다.

토빈이 헬레니즘 유대주의를 강조하자 루니아는 보르겐을 언급하며 필론과 요한복음이 미드라쉬 해석 방식도 공유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루니아는 랍비 문헌을 그 해석 방식의 원조로 여기지 않았고, 필론의 작품들이 랍비 문헌보다 이르다고 보았다.

탁월한 필론 연구자인 루니아는 필론, 요한복음, 오리게네스로 이어지는 사상의 맥락을 포착했고, 요한복음이 필론의 영향을 직접 받았다고 주장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루니아와 더불어 필론 연구계를 주도하는 스털링은 누구보다 강력하게 요한복음과 필론의 직접 영향설을 지지했다.

아쉽게도 스털링은 요한복음 전체를 필론 작품들과 상세히 대조하지는 않았으나, 로고스 찬양시에 사용된 몇 가지 명사와 동사에 대한 간략한 문헌분석만으로도 그가 플라톤과 필론의 언어와 사상에 얼마나 능통한가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아울러 도드를 직접 평가하지 않으면서도, 연구 범위와 관점, 방법론을 새롭게 설정하여 요한복음과 필론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참신한 통찰을 제시한 연구자들이 있었다.

믹스는 박사학위 논문 주제로 요한복음의 선지자왕 주제를 택하여, 이 개념이 출현하는 가장 이른 본문이 필론의 작품들임을 밝혔다.

그는 필론의 모세선지자왕과 요한복음의 예수선지자왕이 놀랍게 공명한다는 사실을 입증했을 뿐만 아니라, 요한복음에서 예수의 적대자들이 필론의 언어와 사상을 표출한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최초의 요한 공동체가 필론과 유사한 사상을 가진 헬레니즘 유대 회당에서 갈등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믹스 연구의 여파로, 요한 공동체의 성향 분석에 사회학적 방법론을 도입한 이들이 출현했다.

마틴은 종파 가설을 제기했고, 이를 푸글세스가 신흥종교 가설로 반박했다.

푸글세스는 공동체 분석 범주를 종파, 모체, 신흥종교로 나누어, 필론 작품들과 쿰람 문헌과 요한복음 분석에 적용했다.

그 결과, 쿰란 공동체는 종파 유형이고, 필론은 모체 유형이며, 요한 공동체는 외부인들과 세상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개선하려는 신흥종교 유형 공동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한편, 지거트는 필론의 영향성을 평가하는 14개 범주를 설정하여 신약성서에 적용함으로써, 필론의 언어와 사상이 가장 밀도 높게 포착되는 문서가 히브리서와 요한복음임을 입증했다.

지거트는 기독교와 요한복음을 소위 ‘신학’으로 채색한 이가 다름 아닌 필론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요한복음 사가가 필론을 읽었다고 주장하기를 보류했다.

유사하게 보르겐도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보르겐은 도드의 상징 목록을 요약한 후, 도드가 플라톤적이라고 주장한 어휘들이 랍비 문헌에도 등장하며, 랍비 문헌이 즐겨 사용하는 해석 방식이 필론과 요한복음에도 나타남을 보여주었다.

동시에 보르겐은 필론과 요한복음의 유사성이 랍비문헌과 요한복음의 유사성을 능가한다는 사실을 다양하게 입증했으나, 요한복음이 필론을 직접 사용했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요한복음과 필론의 관계에 대해서는 충분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요한복음의 일부 본문들만 예시적으로 분석하여 전체 본문에 대한 후속 분석이 절실한 상황이다.

또한 제한된 관점과 방법론만이 적용되었으므로, 새로운 관점과 해석학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참고문헌

<고대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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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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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

이 논문은 필론과 요한복음의 연관성에 관한 최신 연구 동향 분석으로서, 찰스 도드 부터 페데르 보르겐까지 이어진 제안을 논하기 위한 것이다.

1953년에 다드는 요한복 음과 필론이 공유하는 상징 어휘들과 상징 기법을 제시하며 두 전통의 연관성을 탐구 하는 연구 토대를 마련했다.

그의 연구는 요한복음이 필론으로 대표되는 헬레니즘 유대 전통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찰스 바렛, 레이몬드 브라운, 토마스 토빈, 데이비드 루니아, 그레고리 스털링 등이 그의 연구를 직접 평가하거나 확대 · 발전시키며 논의를 이어갔다.

브라운과 바렛은 필론과 요한복 음의 유사성을 공통 배경으로 돌렸으나, 루니아와 스털링은 필론의 직접 영향을 주장했 다.

한편, 웨인 믹스, 코레 푸글세스, 폴커 지거트, 페데르 보르겐 등은 도드의 연구를 참조하되, 도드에 천착하기보다는 다른 관점과 방법론을 도입하여 연구를 확장하고 보완했다.

예컨대, 믹스는 요한복음의 선지자왕 예수 개념이 필론의 선지자왕 모세 개념과 유사하면서도 그것과 충돌하고 대립하는 요소들을 포함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푸글세스는 도드와 달리 사회학적 방법론을 도입하여 요한 공동체와 필론의 종교 체계 를 비교 · 분석함으로써, 요한 공동체가 세상에서 소외된 종파였다는 루이스 마틴의 가 설에 반박했다.

즉, 필론의 사상 체계는 세상에 안주하려는 모체 유형이었다면, 요한 공동체는 기성 체계에 함몰되지 않고 세상을 향해 적극적으로 도약하려는 신흥종교 유형이었다는 것이다.

지거트는 필론의 언어와 사상이 요한복음과 히브리서에서 두드 러지게 나타난다고 주장했으며, 보르겐은 랍비 문헌과 필론, 요한복음 간의 해석학적 유사성을 입증했다.

 

주제어 요한복음, 알렉산드리아의 필론, 상징어, 찰스 다드, 페데르 보르겐

 

 Abstract

Symbols in Philo and the Fourth Gospel  Revisiting C. H. Dodd’s Proposal

Moon, Wooil (Sungkyul University, Adjunct Professor)

This paper examines recent trends in scholarship on the relationship between Philo and the Fourth Gospel, with a focus on contributions from Charles H. Dodd to Peder Borgen. In 1953, Dodd provided a foundational framework for exploring this connection by identifying shared symbolic terms and motifs between Philo and the Fourth Gospel. His work provoked significant academic interest by proposing the potential influence of the Hellenistic Jewish tradition, represented by Philo, on the Fourth Gospel. Subsequently, scholars such as Charles K. Barrett, Raymond E. Brown, Thomas H. Tobin, David T. Runia, and Gregory E. Sterling engaged with Dodd’s research, either critically evaluating or further developing his proposals. While Brown and Barrett attributed the parallels between Philo and the Fourth Gospel to their common cultural milieu, Runia and Sterling advocated for Philo’s direct influence on the Gospel. Other scholars, including Wayne A. Meeks, Kåre Sigvald Fuglseth, Folker Siegert, and Peder Borgen, expanded Dodd’s inquiry through alternative perspectives and methodologies. Meeks analyzed the prophet-king theme in the Fourth Gospel, drawing connections to Philo’s depiction of Moses. Fuglseth adopted a socio- logical framework to define the Johannine community as a cultic model. Siegert identified Philo’s language and concepts as particularly influential in the Fourth Gospel and the Epistle to the Hebrews, while Borgen highlighted interpretive parallels between rabbinic literature, Philo, and the Fourth Gospel.

 

Keywords The Fourth Gospel, Philo of Alexandria, symbols, Charles H. Dodd, Peder Borgen

 

신약논단 제31권 제4호∙2024년 겨울

투고일: 2024. 11. 22. 최종심사일: 2024. 12. 8. 게재확정일: 2024. 12. 8.

 

필론과 요한복음의 공통 상징들 - C. H. Dodd의 제안과 후속 연구들에 대한 비평적 분석.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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