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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겨울 공화국의 소설 읽기 -이선영의 1960~70년대 당대비평을 중심으로-/서은주.용인大

 Ⅰ. 연구와 비평의 경계에서

Ⅱ. 소외와 참여 -실존주의, 허무주의, 소외

Ⅲ. 상황의 문학 -역사의식, ‘저변층’, 현실 참여

Ⅳ. 작가와 현실 -개인과 사회, 리얼리즘

Ⅴ. ‘1970년대 리얼리즘론자’라는 정체성

 

Ⅰ. 연구와 비평의 경계에서

 

회강(晦岡) 이선영(李善榮)의 문단 입성은 당시의 분위기로 볼 때 매 우 늦은 감이 있다.1)

 

      1) 이선영(1930~2021)은 진주사범학교(1951),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1955)를 졸업하 고 경기여고·숙명여고의 교사생활을 거쳐 1965년에 같은 대학에서 석사학위(「한국 문학의 근대화와 러시아문학」)를 받고 1966년부터 연세대학교 교양학부에서 강의를 시작하였다. 이후 교양학부 전임강사(1970)·조교수(1974)를 거쳐 1977년에 국어국 문학과로 자리를 옮긴다. 1982년에 건국대학교에서 박사학위(「한국 근대문학비평 연구: 그 초창기를 중심으로」)를 받았다. 1984년 복직한 후 1995년에 정년퇴임하였 다. 한편, 1966년 현대문학에 첫 펑론 「아웃사이더의 반항」을 발표한다. 1970년대 에 활발한 평론활동을 펼쳤고, 1977년에 현대문학상을 수상하였다. 1974년부터 자유 실천문인협회 간사로 활동하였고, ‘지식인 134인 시국선언’에 서명한 일로 1980년에해직되었다.1984년 복직해 1995년 퇴임하기까지 여러 권의 문학교재를 저술·편역 하였고, 한국근대문학 연구서를 발간하였다.특히 10여년에 걸쳐 1895~1999: 한국 문학논저 유형병 총목록(1~7)을 발간하여 문학사회학의 한 흐름을 선도하였다.민 족문학작가회의 이사, 민족문학사연구소공동대표를 맡아 진보적 문학 활동에 적극 적으로 참여하였고, 퇴임 후에도 제자들과의 연구모임인 ‘문학과사상연구회’를 통해 꾸준한 연구활동을 이어 나갔다. 

 

그는 1965년에 이광수문학을 대상으로 한 비교문학적 연구(「한국문학의 근대화와 러시아문학」)로 연세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후, 1966년에 조연현의 추천을 받아 현대문학에 「아웃사 이더의 반항」이라는 첫 평론을 발표한다.

사실 현대문학에 「도덕과 미학」으로 한 번 더 추천을 받아 등단을 완료한 것은 1969년 2월 무렵이 었으니 본격적으로 평론활동을 전개한 시기는 1960년대 말부터 1970년 대로, 그의 나이 40대였다.2)

 

     2) 당시 주요 잡지의 추천 시스템을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현대문학의 경우 는 2~3차례의 추천을 받아 등단을 완료하는 관행이 있었다. 다만 대개는 시차를 크 게 두지 않고 바로 이어서 추천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렇게 보면 3년 가까 운 시차를 두었다는 것은 드문 사례이다.

 

당시는 20대 초중반에 대개 문학 활동을 시 작하는 분위기여서 문단에서 이미 중견으로 자리 잡고 있었던 소위 ‘55 년대 비평가’ 그룹으로도, 4·19 때 대학을 다닌 ‘65년대 비평가’(신세대) 그룹으로도 묶이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1970년에 연세대학교 교양학부 전임강사가 됨으로써 대학이라는 제도적 권위의 후광을 받을 수 있었던 점을 간과할 수는 없지만, 스스로 밝혔듯이 “주요 잡지 중심의 인적 네 트워크라든가 문학권력이라든가 하는 것” 없이 꾸준히 신문과 잡지에 글을 썼다는 사실은 당시의 문단 풍토를 감안할 때 이례적이라 하겠다.

이선영은 등단 매체였던 현대문학지에 1974년 7월부터 1976년 8월 까지 <이 달의 화제>라는 일종의 리뷰·월평란에 간헐적으로 글을 쓴 다.

이 잡지에는 <비평(평론)>이라는 고정란이 있었지만 여기에 이선영 의 글이 실린 적은 추천작 두 편 외에는 없다.

두 번째 평론집인 상황 의 문학으로 1977년 ‘현대문학 신인문학상’을 받았지만, 이 시기를 회고하는 인터뷰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특별히 현대문학 그룹의 일 원이라는 소속감은 없었던 듯하다.3)

1970년대 몇 차례 글을 썼던 매체 는 창작과비평, 문학과지성인데, 상황 인식, 역사의식, 참여, 효용 론 등에 경사되었던 그의 비평 성향을 고려하면, 그를 창비의 비평가로 보는 것은 무리가 아닌 듯도 하다.4)

 

     3) 서은주, 「실천하는 문인, 성찰하는 학인의 자취: 국문학자 이선영의 삶과 학문」, 동 방학지 제153권,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11, 411-414쪽.

     4) 손유경, 「현장과 육체: 창작과비평의 민중지향성 분석」, 현대문학의 연구 제56 호, 한국문학연구학회, 2015, 57쪽. 

 

훗날 창비가 주관했던 만해문학상 을 수상하였고, 창비가 주도한 이런저런 문학 내외 활동에 참여하면서 인적 교류가 있었던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엄밀히 들여다보면 1970년대 창비에 실었던 글들은 모두 소설 창작집이나 문학관련 저작의 리뷰들뿐이다.

당대의 주요 쟁점을 다룬 비중 있는 비평이나 좌담에 이 선영의 이름을 찾기는 어렵다.

따라서 1970년대 이선영의 비평 활동을 창비 비평가 그룹으로 묶어 창비 특유의 정체성과 동질화 시키는 접근 은 재고할 여지가 있다.

이선영은 1974년 11월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주도의 ‘101인 선언’에 이 름을 올리며 간사 역할을 수행한 데 이어, 같은 해 12월 교수 34인의 ‘교 수자율권선언’에도 참여한다.

‘순수·참여’ 논쟁에서 늘 ‘참여’의 편에 섰 던 이선영은, 김지하가 감옥에 가고 백낙청과 김병걸이 대학에서 쫓겨나 는 현실 공간에서 말 그대로 지식인의 가장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행위라 할 수 있는 ‘선언’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1974년 1월을 죽음이라 부르자” 라는 김지하 시의 한 구절대로 1974년 벽두부터 긴급조치가 발효되었고, 바야흐로 ‘겨울공화국’의 시공간이 본격적으로 열렸다.

이선영은 이 시기 가택연금 정도의 수모에 그쳤지만, 이러한 ‘참여’의 연장선상에서 1980년 5월의 시국선언에 또 다시 이름을 올림으로써 4년간의 교수직 해직이라는 크나큰 ‘처벌’을 받는다.

이선영 스스로 문단 친구라고 밝혔던 김병걸, 김우종, 남정현 등이 모두 ‘겨울공화국’의 대표적 상흔을 지닌 문인들이 라는 사실도 공교롭다.5)

요컨대 1970년대 이선영의 ‘현실참여’는 언뜻 돌 출된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엄혹한 상황으로 만나게 된 진보적 학자· 문인들과의 교류와, 비평 활동으로 서서히 만들어진 리얼리즘론자로서 의 의식적 산물이라고 보는 것이 사실에 부합할 것이다.

이선영은 한국문학연구자였지만, 석사논문에서 이광수와 톨스토이의 문학을 비교문학적 견지에서 다루었다.

무엇보다 일본어세대의 이점을 활용해, 톨스토이로 대표되는 러시아문학이 이광수에 영향을 미치는 매 개항으로서 일본문학의 존재를 중요하게 포착했다는 점도 평가할 만하 다.

뿐만 아니라 누구보다 서구 문학이론의 시각과 방법론에 관심이 많 았고, 비평방법론이나 문예사조사 등의 교재 편찬을 통해 후학들의 연 구에 길잡이가 되었다.

특히 월북작가들에 대한 금기를 선도적으로 깨 고, 한국문학사의 지형에서 ‘민족문학론’의 자리를 확장하는 데 크게 기 여한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또한 연구 말년에 진행한, 에스카르피적 ‘문 학사회학’의 계보에 놓일 만한 방대한 유형화 작업은 열악했던 초기 디 지털 환경을 생각하면 경이롭기까지 하다.6)

무엇보다 리얼리즘이라는 방법론에 대한 이론화와 적용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졌으며, 리얼리즘의 경직화를 경계하며 그 유연성을 견지하고자 노력했다.

1990년대 초반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이라는 이분법적 경계의 해체가 주창되는 시기에 그의 시각은 새롭게 생명력을 부여받았고, 이선영은 리얼리즘의 새로운 지평을 지속적으로 탐구해 나간다.7)

 

    5) 서은주, 「실천하는 문인, 성찰하는 학인의 자취: 국문학자 이선영의 삶과 학문」, 동 방학지 제153권,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11, 413쪽.

    6) 서은주, 「1970년대 문학사회학의 담론 지형」, 현대문학의 연구 제45호, 한국문학연 구학회, 2011, 485쪽; 이재연·정유경, 「국문학 내 문학사회학과 멀리서 읽기: 새로운 검열 연구를 위한 길마중」, 대동문화연구 제111호, 대동문화연구원, 2020, 295-337쪽.

     7) 1990년대 학술장에서는 리얼리즘에 대한 협소한 시각의 극복, 모더니즘에 대한 새로 운 의미 부여가 화두로 부상했다. 이와 관련해서 이철호, 「해금 이후 90년대 학술장의 변동 – 근대성 담론의 전유와 그 궤적」, 구보학보 제19호, 구보학회, 2018, 9-37쪽 참조. 

 

이렇게 많은 성과 속에서 이 글은 이선영의 초기 문학세계를 살펴보 는 것으로 만족하고자 한다.

그 하나의 방법으로 1960~70년대 당대 소 설을 대상으로 한 비평에 초점을 맞추고, 이 시기 발간된 평론집 세 권 을 시간 순서로 배치해 추적하는 방식을 취했다.

일제 강점기 소설을 다룬 글은 거의 제외시켰는데, 이는 동시대의 문학 현장과 이선영의 상 호작용에 보다 집중하려는 취지 때문이다.

사실 세 권의 평론집에는 학 술적 글쓰기와 비평적 글쓰기의 경계를 넘나드는 글이 여럿 존재한다.

학술 연구와 현장 비평을 동시에 수행하면서 그 경계를 넘나들었던 초 기의 글을 검토하는 작업은, 동시대적 문학 현장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그의 문학적 시각과 지향이 어떻게 발아, 전개되는지를 살펴보는 과정 이 될 것이다.

 

Ⅱ. 소외와 참여 – 실존주의, 허무주의, 소외

 

1971년 출간된 첫 평론집 소외와 참여는 이선영의 문학의식이 처음 에 어떤 모습으로 발현되었는지를 짐작하게 해주는 저작이라 관심을 요 한다.

이광수 관련 석사논문, 그 외 일제 강점기 작가들의 작품론을 제 외하면, 이 책의 당대비평을 관통하는 지배적 키워드는 허무주의, 실존 주의, 그리고 소외로 요약된다.8)

 

    8) 이선영, 소외와 참여, 연세대학교출판부, 1971. 이 책에는 등단 이후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발표된 8편의 글이 실려 있다. 이 가운데 석사논문 「춘원의 비교문학적 고찰」과 함께, 「현대소설과 인간소외」와 「<광염소나타>의 발상형식」(국어국문학 제46권, 1969.12)은 각주를 붙여 소논문의 형식으로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6편의 글 가운데 명백하게 평론적인 성격을 가진 다른 글에도 참고문헌을 붙여 놓았 다는 점이 이채롭다.

 

1966년 현대문학의 등단작 「아웃사이더의 반항」에서는 손창섭과 장용학의 작품을, 「현대소설과 인간소외」 에서는 손창섭과 이호철의 문학을, 「한국문학과 허무의식」에서는 김동 리, 이상, 손창섭, 김승옥의 소설을 분석하고 있다.

1950년대 전후문학 의 성격을 대표하는 실존주의가 이선영 비평의 첫 관심 주제였다는 점 에서 다소 철지난 문제의식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앞에서 도 언급했듯이 이선영은 세대적으로 ‘55년대 비평가 그룹’에 가깝고, 따 라서 청년기의 문학적 관심을 고려하면 이해되는 바가 있다.

뿐만 아니 라 1967년 10월 12일 ‘세계문화자유회의 한국본부’의 주최로 <작가와 사 회>라는 제목의 원탁토론이 있었는데, 여기서 1950년대 실존주의론에 서 발화된 ‘참여 논쟁’이 다시 부상하는 일이 있었다.

남정현의 ‘분지 필 화사건’도 이 문제를 다시 쟁점화 시키는 데 기폭제가 되었는데, 김붕구 가 제기한 “앙가주망이 곧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이데올로기”라는 주장 은 한국인의 레드콤플렉스를 자극하며 여러 문인들의 열띤 찬반 표명으 로 이어졌다.9)

 

     9) 이 원탁토론의 주제발표자는 불문학자 김붕구였고, 토론자로 김승옥, 남정현, 서기 원, 선우휘, 이근삼, 임중빈, 홍사중이 나섰다. 엄혹한 냉전시기에 작가의 사회적 참여를,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이데올로기를 표명하는 것이라고 낙인을 찍은 셈이 다. 이호철은 이를 “폭론(暴論)”이라 규정했다. 박태순, 민족문학작가회의 문예운 동 30년사Ⅰ, 작가회의 출판부, 2004, 39-43쪽. 

 

이처럼 1960년대 후반 ‘앙가주망 논쟁’ 혹은 ‘순수·참여 논쟁’이 주요 쟁점으로 부상한 근저에는 실존주의의 문제의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선영이 첫 평론집 제목에 ‘참여’를 넣은 것이나, 여러 글 에서 소설 속 인물들의 ‘소외’로부터 끊임없이 ‘저항’을 읽어내고 ‘현실’ 과 접맥시키려한 점에서 첫 평론집의 관심사는 매우 ‘동시대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웃사이더의 반항: 손창섭과 장용학을 중심으로」에서는, 손창섭과 장용학의 소설 속 인물들을, 현실에의 부정과 반항을 보여주는 ‘아웃사이더’로 명명한다.

손창섭 소설의 인물들은 “금력이나 권력만을 믿는 ‘속 한’(俗漢)에 맞서는 아웃사이더의 ‘극히 시니컬한 조소’”( 「고독한 영웅」) 를 드러내고, “변태적인” 행동으로 “낡은 인습과 부조리한 현실세계에 반 항”(「신의 희작」)한다는 것이다.

이 글에 의하면, 아웃사이더가 지닌 절 망은 “사회의 부패성을 투철하게 의식하고, 거기에 소속되는 것에 반항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생겨난다.10)

장용학의 「역사가 보이는 풍경」 의 주인공 기오도 “사회의 악순환”을 방패삼아 기존 권위에 굴복할 것을 종용받지만 “부패에는 반항이 있을 뿐”이라며 비판적 태도를 견지한다.

손창섭이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것으로 아웃사이더를 재현했다면, 장용 학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아웃사이더를 창조했다고 그 차이를 설명한 다.

까뮈가 “반항을 가장 중요한 실존 개념”으로 규정한 것처럼, 아웃사 이더의 존재 의미도 반항에서 찾는다.

문제는 이 글의 귀결 부분인데, 반항의 원인을 현대문명의 병증과 연결시키면서도 문제해결의 방향성 은 다소 혼란스럽다. 이런 과학과 합리로서 환경의 개선도 우리의 뜻과 같이 성취될 수 없으며, 설령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그것이 인간을 완벽하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도리어 과학의 발달은 인간의 가치를 기계의 노예로 전락시키고 있다.

결 국 인간의 완벽은 그런 외적 조건이 아니라 내적 의지와 자신의 노력 여하 에 달린 것이다.

환경의 개선이나 물질문명의 발달만이 인간을 완벽하게 해줄 것으로 기대하는 유물사상에 대하여 아웃사이더가 반항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11)

 

   10) 이선영, 「아웃사이더의 반항: 손창섭과 장용학을 중심으로」, 소외와 참여, 연세대 학교출판부, 1971, 39쪽.

    11) 이선영, 「아웃사이더의 반항: 손창섭과 장용학을 중심으로」, 소외와 참여, 연세대 학교출판부, 1971, 55쪽. 

 

손창섭 소설의 아웃사이더가 반항하고 저항한 외부 세계, 즉 사회가 문제의 진원지인데, 그것의 변화를 우선순위에 두지 않고 ‘내적 의지’의 강조로 귀결시키는 것은 공허하다.

무엇을 향한 ‘내적 의지’인지도 되물 어야 할 것이다.

이 글이 지닌 논지의 혼란을 이선영도 인지하고 있었고, 훗날 이 시기 실존주의에 접근하는 자신의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고 술회 한 바 있다.12)

 

     12) 서은주, 「실천하는 문인, 성찰하는 학인의 자취: 국문학자 이선영의 삶과 학문」, 동 방학지 제153집, 2011, 412쪽. 이선영은 자신의 첫 평론에서 사르트르가 아니라 까 뮈의 실존주의 입장을 취했다고 말하며, 실존주의를 가능하게 했던 당시의 역사적· 현실적 조건을 탐구하고 “단독자로서의 체험에만 맡기지 말고 참다운 공동체적 체 험으로” 이어지는 길을 모색하지 못한 점을 아쉬워했다: 서은주, 「실천하는 문인, 성찰하는 학인의 자취: 국문학자 이선영의 삶과 학문」, 동방학지 제153권, 연세대 학교 국학연구원, 2011, 412쪽.

 

사실 한국에 수용된 실존주의 담론은 서구 이론의 피상 적·추수적 성향을 반영하는 대표적 사례로 언급되지만, 한국전쟁이라 는 참혹한 체험이야말로 전후문학을 실존주의로 이끈 강력한 자생적 요 인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또한 실존주의가 흔히 모더니즘 계열로 유 형화되는 경향이 있는데, 손창섭의 사례에서 보듯이 냉소나 모멸, 광기 로 저항하는 인물의 실존은, 그 자체가 개인을 둘러싼 억압적 상황을 드 러내고 현실의 부정성을 폭로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비판적 리얼리즘으 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어쩌면 전후문학에 내장한 실존주의적 저항정 신이 4·19로 이어졌고, 5·16을 거쳐 1960년대 중반 한일협정을 겪으면 서 그 저항의 방향성을 좀 더 구체적으로 모색하게 된 것이라 하겠다.

실존 개념과 더불어 이선영은 이 시기 한국의 담론장에 중요한 주제 로 자리 잡은 소외 개념을 본격적으로 작품 분석에 적용한다.

「현대소 설과 인간 소외: 50년대 손창섭과 60년대 이호철의 경우」(1971)는 두 작 가의 소설을 대상으로 소외의 양상을 비교·분석한 글이다.

이 글에서 이선영은 사르트르의 소외론을 적극적으로 옹호한다.

그는 먼저 파펜하임의 소외론에 의거해 한국사회도 미약하게나마 게마인샤프트에서 게 젤샤프트로 이행한다는 점을 논의의 출발로 삼는다.

또한 병든 집단이 나 사회인줄 알면서도 저항하지 못하는 순응적·동조적 태도를 소외로 인식하는 프롬의 논의를 의미있게 부각시킨다

. 특히, 마르크스주의의 사물화 개념을 비판적으로 독해하고, 소외를 극복할 수 있는 인간의 주 체성을 신뢰했던 사르트르의 논의에 가장 강조점을 둔다.

사르트르는 “소외의 극복은 단순한 사회제도나 과학기술이나 생산력이나 어떤 타인 에 의해서가 아니라 항상 타인과 더불어 그 상황을 변화시켜가는 나 자 신에 의해서” 가능해진다고 말한다.

즉, 소외가 인간을 부정하지만, 소 외를 계기로 주체화가 가능(「변증법적 이성비판」)하다는 것이다.

이 지 점에서 이선영은 “실존주의 작가들이 타인이나 다른 사물에 동조·맹종 하는 태도를 거부하고 인격으로서의 자기주체성을 강조하는 것은 소외 에 대한 인간의 주체적 노력을 강조하는 사르트르의 주장과 상통한다” 고 해석한다.13)

실존주의와 소외로부터 ‘현실’과 ‘참여’의 개념을 의식적 으로 내세우는 태도는, 1960년대 후반을 지나 1970년대로 접어든 시점 에서 이선영의 의식적 지향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짐작케 한다.

그런데 서구문학을 대상으로 형성된 이러한 논리는, 당시 한국의 작 품에서 만족할 만한 사례를 얻지 못했다.

이선영은 손창섭 소설에 그려 진 소외의 형상에서 프롬의 “광기의 사람”을 읽어내지만, 그것이 사회심 리학적 수준으로 심화하지는 못했다고 평가한다.

「공휴일」에서 그려낸 인물의 권태증·타인에 대한 무관심·혈연에 대한 회의·광기의 양상 이 “캐리커처된 희극의 성격”에 머물고 있다는 점을 그 근거로 내세운 다.14)

 

     13) 이선영, 「현대소설과 인간소외」, 소외와 참여, 연세대학교출판부, 1971, 13쪽.

    14) 이선영, 「현대소설과 인간소외」, 소외와 참여, 연세대학교출판부, 1971, 34쪽. 

 

마찬가지로 이호철의 「고여있는 바닥」 연작도 “소외의 현상화라 기보다 속물성의 한국적 구체화”라고 한계를 짓고, 그의 소설에서 소외는 감각적·감정적으로 그려졌다고 규정한다.

초기 이선영의 평론 역시 도 서구작품을 비교·분석의 준거로 삼는다는 점에서 많은 동시대 평론 가들과 대동소이하다.

「아웃사이더의 반항」에서도 까뮈나 말로와 같은 실존주의 작가들의 작품들이 평가의 기준이 되는데, 여기서는 체홉과 도스토옙스키, 까뮈 등이 소환되어 손창섭·이호철과 우열의 구도로 배 치된다.

이는 서구문학을 세계문학의 ‘보편성’으로 인식하고 교양주의의 목록을 만들어갔던 세대의 공통적 특징이라 볼 수 있지만, 작품이 처한 시간적·공간적 거리와, 이로 인한 사회·문화적 차이를 충분히 고려하 지 못한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장르나 서사 차원에서 이질적인 작품을 일대일로 대응시키는 방식은 초기 평론의 분명한 한계로 지적받 아야 할 것이다.

한편, 「한국문학과 허무의식」에서는 한국 현대문학 60년을 결산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한국문학에 두드러지는 “허무적 여러 양상”에 대한 객 관적이고 냉정한 비판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소설의 주제 확충과 진 실한 전통의 확립”을 위해 허무의식에 대한 검토와 반성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취지를 내세우며, 이상, 김동리, 손창섭, 김승옥의 문학을 대상 으로 한국 현대 소설의 허무주의적 경향을 유형화한다.15)

 

     15) 이선영, 「한국문학과 허무의식」, 소외와 참여, 연세대학교출판부, 1971, 100-101쪽. 

 

‘허무의 수용’ 과 ‘현실의 부정’으로 크게 나누고, 전자에는 김동리, 김승옥을, 후자에 이상, 손창섭을 배치한다.

이들 가운데 가장 이질적인 것으로 김동리의 문학을 꼽으며, “현대문명의 병폐나 모순을 척결하고 고발하는 데 적극 적인 관심이나 뚜렷한 업적이 없”음을 지적한다.

그런데 이상 문학을 “현실의 부정”으로, 손창섭을 “생활의 신음”으로 규정한 것은 큰 무리가 없지만, 김승옥의 문학을 “상황의 수용”으로 규정하는 것은 쉽게 납득하 기 어렵다.

예를 들어 「서울 1964년 겨울」에서 ‘안’이라는 인물이 자살하는 결말을 두고, 작가가 등장인물을 죽음으로 끝맺는 것은 “부정적 상황 을 그대로 수용”하는 태도라고 해석한다.

‘죽음’이라는 선택이야말로 현 실의 부정성과 소외의 극한상황을 우회적으로 고발하는, 무기력하지만 현실에 대한 가장 강력한 저항의 소설적 장치라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 다.

그럼에도 이 글은 김동리와 같은 허무주의적 경향이 ‘한국적인 것’으 로 정체화 되어 문학적 권위를 얻어가는 상황에 비판적 태도를 분명하 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 밖에, 「한국문학과 현실」은 최남선과 이광수로부터 60여년의 한국 근대문학의 변모과정을 간단하게 개괄하는 글로, 1960년대에 이르러 시 민문학론과 소시민논쟁의 부상이, 문학 혹은 작가가 ‘현실을 어떻게 대 (對)할 것인가’라는 문제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여기서는 육당과 춘원의 계몽적 아마추어리즘. 동인과 요한 등의 유미주의적 프 로페셔널리즘. 상섭·빙허의 자연주의 내지 사실주의, 한용운의 민족과 종교를 융합한 상징적 서정시의 세계, 팔봉, 회월 등의 계급주의, 상 허·효석·황순원의 회고주의 내지 서정주의, 이무영·박영준의 농민문 학 내지 윤리적 현실 반항, 이상의 심리주의, 김동리·서정주의 토속적 신비주의, 그리고 1950년대의 관념적 니힐리즘 및 1960년대의 자아의식 적 트리비얼리즘 등으로 문학사적 지형을 나눈다.

인상적인 지점은, 이 광수의 초기 문학이 미숙성이라는 결함에도 불구하고 “항일과 계몽”을 내세워 “독자에게 호소력을 유지”했다면, 김동인의 유미주의 문학에는 “참된 현실이 부재”하기 때문에 독자에게 호소력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판단하는 대목이다.16)

 

     16) 이선영, 「한국문학과 현실」, 소외와 참여, 연세대학교출판부, 1971, 135-136쪽. 

 

독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중요하게 보는 수용론적 관점을 고려하고, 문학의 효용성에 더 강조점을 두는 이선영의 비평적 시각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런데 현대문학 추천 완료 평론인 「도덕과 미학」(1969.3)에서는 이광수의 도덕적 주장과 김동인의 기교 주의 미학을 대비하면서, “주제와 형식의 상호의존적 관계”를 강조한다.

즉 도덕과 미학의 불화를 청산해야지만 “위대한 문학작품”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17)

 

     17) 이선영, 「도덕과 미학」, 소외와 참여, 연세대학교출판부, 1971, 76-77쪽. 

 

이분법적 구분과 이 둘의 상승적 융합이라는, 이선영 의 평론에 반복적으로 활용되는 방법론의 단초를 확인할 수 있다.

이선영의 초기 글들은 연구자로서의 정체성과 평론가로서의 정체성 이 혼재되어, 연구논문도 평론처럼, 평론도 논문처럼 쓰는 경향을 보인 다.

어쩌면 현대문학이라는 분과학문의 학술적 글쓰기가 아직 체계화되 지 못했기 때문에 그 경계가 모호했던 상황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특정 개념이나 문학이론을 작품 분석의 방법론적 틀로 세우려 는 지향이 강하게 작동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문학연구자로서는 매 우 중요한 전제이자 태도라고 할 수 있지만, 비교적 주의·주장이 선명 해서 첨예한 논쟁에 뛰어들 수 있었던 당대 주요 비평가들의 현장대응력과는 차이가 있다.

또한 몇몇의 글에서 확인하였듯이, 분류 및 구분을 통해 유형화하거나 큰 틀에서 한국문학사의 지형을 그리고자 하는 ‘체 계화의 욕망’도 분명하게 읽을 수 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이선영 은 분류와 체계화가 중요한 미덕이 되는 문학연구의 학술적 방법을 개 별 평론 작업에도 자주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Ⅲ. 상황의 문학 – 역사의식, ‘저변층’, 현실 참여

 

1976년에 발간된 상황의 문학은, 박정희 정권의 체제 강화가 학술장 과 문학(화)장을 광범위하게 뒤덮어 그야말로 ‘감시와 처벌’이 노골화 되 었던 시간을 배경으로 한다.

이 시기 이선영은 경향신문을 비롯한 일간지에 합평이나 월평을 게재했고, 무엇보다 계간 창작과비평과 문 학과지성에 몇 편의 글을 쓰는데, 이것들이 상황의 문학에 주요 목 차를 구성한다.

뿐만 아니라 ‘역사주의’, ‘분석주의’, ‘구조주의’, ‘사실주 의’라는 비평 개념을 이론화하면서, 이를 기반으로 일제강점기 대표 작 가들의 작가론을 꾸준히 썼고, 문학전집의 작품해설이나 작가론 형식의 글을 주로 발표했다.

각주를 붙인 논문 형식의 글과 평론이 여전히 혼재 된 구성이지만, 첫 평론집을 관통하는 실존주의의 키워드로부터는 확연 히 벗어나 권위주의 체제에 대한 의식적 대응이 전면에 드러난다.

상황의 문학의 첫 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비평에 있어서의 역사주 의와 분석주의」에서는 텍스트 중심의 분석주의 비평보다 경제적·사회 적·역사적 상황의식에 입각한 비평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1950년대부 터 1970년대 초에 이르는 한국문학비평을 역사적 비평과 비역사적 비평 으로 구분하고, 전자에 참여·시민·리얼리즘 비평을, 후자에 순수·소 시민·분석비평을 배치한다.

오랫동안 진행된 두 진영 사이의 논쟁은 아전인수 식의 감정적 비난에 가까웠다고 비판하고, ‘신비평’과 역사주 의 비평의 이론적 배경과 그 역사적 전개과정을 설명한다.

나아가 한국 에서 두 비평이 어떤 가능성과 한계를 지니는지를 검토하고, 당대 한국 문학에 필요한 비평방법을 모색하고자 한다.

먼저 “있어야할 문학의 질 서나 형태”를 강조한 T.S. 엘리어트, 언어의 구조와 색감에 관심을 둔 I. A. 리처드의 이론을 소개하는데, 신비평가들은 “모든 작품에 일관하는 ‘공통의 요소’, ‘보편의 원리’를 추구”하려 한다고 요약한다.18)

 

    18) 이선영, 「비평에 있어서의 역사주의와 분석주의」, 상황의 문학, 민음사, 1976, 15쪽.

 

반면, 테느 로부터 개화한 역사주의를 설명하면서 문학을 결정짓는 종족·환경· 시대의 3요소와, “예술작품의 생산이란 한 시대를 특징짓고 있는 재능 과 요구의 합성력”이라는 테느의 명제를 제시한다.

그 다음에는 테느의  3요소에 ‘경제’를 추가한 19세기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관점을 소개한다.

이선영은 마르크스주의의 사회관·역사관에는 찬동할 수 없음을 전제 하고, 역사발전의 문맥 속에서 문학을 이해하려 한 그들의 관점만은 높 이 산다.

자본주의 사회의 변혁은 그 사회의 지도계급인 부르주아의 선의나 양심 에 기대할 것이 못 되고, 오히려 그 사회에서 부당하게 압박되며, 착취되고 있는 노동자 계급, 즉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실천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그의 사회·역사관을 우리는 수긍할 수 없다.

그러나 그가 문학예 술을 편협하게 사회적·역사적 상황과 유리시켜 생각하지 아니하고, 그것 을 상황 속에서 파악하는 역사적 비평태도를 취한 점은 우리의 주목에 값한 다는 말이다.19)

 

    19) 이선영, 「비평에 있어서의 역사주의와 분석주의」, 상황의 문학, 민음사, 1976, 17쪽. 

 

프롤레타리아 혁명론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관점과 시각으로서의 마 르크스주의 비평은 참조할 만하다는 태도는, 냉전체제 아래서 비판적 리얼리즘을 최고치의 가능성으로 생각했던 이선영의 문학관을 우회적 으로 드러낸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이러한 문학적 태도는 흔히 1970년대 리얼리즘론자들의 대체적인 성향이기도 한데, 이는 이후 1980 년대 민중문학·노동문학론과 구분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같은 글에서 이선영은 한국에 있어서 역사적 비평의 대표적 사례로 김우종의 「문학기능론」(현대문학, 1960.8), 김병걸의 「순수와 결별」(현 대문학, 1960.10), 백낙청의 「새로운 창작과 비평의 태도」(창작과비 평, 1966년 창간호)를 꼽고는, 이 글들이 문인들에게는 자극과 충격을, 일반 독자들에게는 공감과 감명을 주었다고 말한다.

또한 분석비평과 역사적 비평의 방법적 차이를 검토하기 위해 이상섭의 「심리주의 비평의 방법: 그 한국적 활용을 위한 개관」(지성, 1972년 신년호)과 염무웅의 「농촌현실과 오늘의 문학: 박경수 작 「동토(凍土)」에 관련하여」(창작 과비평, 1970년 가을호)를 비교·검토한다.

여기에서는 비평의 체계화 와 과학화에 기여한 분석 비평의 성과와 함께 역사적 비평이 지니는 현 실 영향력을 인정하는, 절충적 차원에서 논의를 봉합한다.

그럼에도 결 론에서는 객관적 현실의 어려움과 분단 상황의 비극성을 부각시켜 “시 대와 사회, 나라와 겨레가 당면하고 있는 중요한 문제의 범위에까지 논 의를 확대하는 비평”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는 방식으로 역사적 비평 에 힘을 싣고 있다.20)

1960~70년대 한국문학의 지형도 그리기는 첫 평론집에 이어 이 책에 서도 이어진다.

「사실주의와 기교주의: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한국문학」에서는 1960년대 중엽에서 1970년대에 이르는 신인의 소설을 대상으로 ‘시민적 리얼리즘’, ‘내성적 기교주의’로 나눠 유형화한다.

이 둘 을 나누는 이분법적 기준은 이념/감성, 체험/언어, 참여/순수, 시민의식/ 소시민의식, 교훈/유희, 내용/형식 등이다.21) 전자에는 신상웅·이문 구·방영웅·황석영을, 후자에는 김승옥·이청준·박태순·최인호를 배 치한다.

1960년대의 시민적 리얼리즘 계열은 주로 전쟁의 상흔, 현실의 비판, 역사의 반성을 주제화하여 “참된 민주주의 이념 구현에의 의지”를 보여주었다고 평가한다.22)

 

     20) 이선영, 「비평에 있어서의 역사주의와 분석주의」, 상황의 문학, 민음사, 1976, 24쪽.

     21) 이선영, 「사실주의와 기교주의: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한국문학」, 상황의 문학, 민음사, 1976, 206쪽.

     22) 이선영, 「사실주의와 기교주의: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한국문학」, 상황의 문학, 민음사, 1976, 216쪽.

 

내성적 기교주의를 설명하면서는, 그 계열의 선배로 최인훈을 언급하는데 보기에 따라 “시민의식적인 리얼리스트”로 평가된다고 덧붙인다.

사실 박태순을 이 계열에 배치한 것도 논란의 여 지가 있는데, 이는 근본적으로 리얼리즘/모더니즘이라는 이분법적 도식 을 구체적인 작품이나 작가에 적용할 때, 모호하거나 경계 짓기 어려운지점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상황의 문학에는 1970년대 전반기에 창작과비평에 발표한 4편의 글이 수록되는데,23) 그 가운데 「저변층생활의 진실: 조선작의 소설집 영 자의 전성시대」(1974)는 ‘민중’, ‘젠더’ 차원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문 제적 글이다.

이 글에서 이선영은 조선작의 「지사총(志士塚)」(1971)과 「영자의 전성시대」(1973), 「성벽」(1973)을 집중적으로 분석하면서, “소 외된 저변층의 생활”을 다룬 조선작의 “사회비평적” 시선을 높게 평가한 다.24)

나아가 소설 속 ‘저변층’ 인물들의 범법행위나 비윤리성, 거친 언 어 표현과 폭력성에 대해서도 매우 관용적이다.

조씨가 제시한 사회의 저변층이란 창녀, 개 도둑, 자전거 도둑, 색시 장사, 전과자……와 같은, 사회통념상 윤리적으로 타락한 군상들이거나, 기껏 해 서 철공소 용접공, 목욕탕 때 미는 사람과 같이 사회에서 대체로 천시되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가난하고 무지하며, 얼핏 보기에 쌍스럽고 추악한 불량배요, 타락자이다.

이 무지막지한 타락자들 의 생활을 주저 없이 그려나가는 작자의 넉살 좋은 뱃심에 접하여, 우리는 일시 아연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물들에 차차 익숙해지며, 우리 는 어느새 이들의 따뜻하고 아름다운 마음씨를 느끼고 불행한 그들을 대하 는 이 작가의 부드러운 눈길과 부조리한 사회현실에 대한 비관의 태도를 알 게 된다.25)

 

   23) 창비에 실린 네 편 가운데, 두 편은 한국문학관련 당대 주요 저작의 리뷰( 「비평사 연구의 제문제: 김윤식의 근대한국문학연구 및 한국근대문예비평사 연구에 대 하여」(1972), 「비평의 관점과 성과: 김병걸의 문학과 사회의식, 신동욱의 한국현대 비평사, 유종호의 문학과 현실에 대하여」(1976))이고 나머지 두 편은 소설창작집에 관한 리뷰이다. 소설창작집에 관한 리뷰인 「인정·허망·자유: 소설집 탈·강·까 치방에 관하여」(1976)는 요약·열거로 일관하고 있는 글이다. 따라서 유의미한 지점 을 발견하기 어려워 이 글에서는 논외로 한다.

    24) 이선영, 「저변층생활의 진실: 조선작의 소설집 영자의 전성시대」, 상황의 문학, 민음사, 1976, 113쪽.

   25) 이선영, 「저변층생활의 진실: 조선작의 소설집 영자의 전성시대」, 상황의 문학, 민음사, 1976, 113-114쪽.

 

쌍말, 욕설, 은어, 야유의 대담한 활용, 의뭉스러운 의도의 반어적 표현, 철저한 생활언어의 구사 등에 이르는 표현의 새로움, 즉 안이한 전통적 표 현방식에 대한 도전적 모험이 감행되고 있다.

구성에 있어서도 독자의 예 상을 적절히 반전시키는 재능을 보여주지만. 제1인칭의 시점은 화술을 자 연스럽고 실감 있게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이리하여, 그의 소설들 은 비천한 삶의 실상을 적나라하고 박력 있게 묘파함으로써, 사회 부조리 를 바르게 투시 비판하는 안목과 소설방법을 새롭게 개척하려는 자세를 보 여준다.26)

 

      26) 이선영, 「저변층생활의 진실: 조선작의 소설집 영자의 전성시대」, 상황의 문학, 민음사, 1976, 114쪽. 

 

이선영은 용접공과 창녀의 관계를 낙관적으로 그린 「지사총」의 작 가의식에 회의를 표명하며 “그런 식으로는 그들의 소외된 인간적 삶이 충분히 극복되기 어렵”다고 서술한다.

그러나 때 미는 남자와 창녀의 관 계를 비극적으로 그린 「영자의 전성시대」는 “비극의 원인을 사회적 불 합리와 연관”시켜 충분히 설득력 있게 재현했다고 보고, “숨 막히는 부 조리의 상황에 대한 작가의 사회비판적 분노”를 읽을 수 있다며 높이 평가한다.

또한 「성벽」은, “더럽고 추잡하며 헐벗은 인간들로 우글거리 는 동네”를 근대화라는 미명 아래 ‘성벽’으로 가리려는 정치권력의 폭력 성을 재현했다고 평가한다.

일반적으로 도시화, 근대화란 ‘문화적 시민’ 의 범주에 미달하는 ‘비천한’ 존재들을 비가시적 존재로 은폐하거나 배 제시키는 과정을 수반한다.

특히 박정희 체제의 경제개발 아래 비루한 ‘저변층’의 삶은 아무렇지도 않게 유린되었고, 그들에 대한 이러한 폭력 도 은폐되거나 혹은 정당화된다.

이선영도 이러한 근대의 폭력성을 인 식하면서, 조선작의 소설들이 “가난하고 무지하고 추잡한 사람들의 생 활”을 “조금도 은폐함이 없이 발가숭이로 노출”시키지만 그들을 “자상하고 따뜻하게” 재현했다고 본 것이다.27)

 

    27) 이선영, 「저변층생활의 진실: 조선작의 소설집 영자의 전성시대」, 상황의 문학, 민음사, 1976, 115-117쪽. 28) 손유경, 「현장과 육체: 창작과비평의 민중지향성 분석」, 현대문학의 연구 제56 호, 한국문학연구학회, 2015, 56-57쪽. 

 

이와 관련해 손유경은 1970년대 창작과비평의 ‘민중지향성’을 검토 하는 글에서, “염무웅, 백낙청, 이선영, 구중서, 신경림 등 대표적 민중문 학론자들은 사투리(토속어)나 비속어를 잘 구사하는 인물이 등장하는 작품을 한 목소리로 상찬”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조선작 소설에 대한 이 선영의 평가를 분석하며, “사회 최저층 사람들에 의한 풍성한 쌍말과 성 행위”의 이면에는 “따뜻한 인간의 체온과 분별력 있는 비판의 태도”가 숨어 있다고 서술한 부분을 문제 삼는다.

손유경은 “이선영에 따르면 “쌍스러운 표면의 근저”를 잘 들여다보면 거기에 깔린 최하층 민중(필자 강조)들의 “따뜻하고 아름다운 마음씨”를 느낄 수 있다”고 서술한다.

그 런데 여기서 먼저 지적할 점은 이선영의 이 글에서는 ‘민중’이라는 용어 가 없다는 사실이다.

이어 손유경은 “가난과 폭력의 현장에 고도의 윤리 의식과 민중정신이 깔려 있다는 논의”는 “창녀에게 성녀의 얼굴을 보여 달라는 주문, 힘들어도 건강해야 한다는 요구, 상처받은 자가 결국 치유 해야 한다는 이중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 아닌가?”28)라고 질문함으로써, 우회적 방식으로 이선영의 조선작론을 비판하고 있다.

물론 방영웅, 이문구, 황석영 등을 부각시키면서 1970년대 역사학계의 민중담론에 ‘육 체’를 부여하려했던 창비 문학진영의 ‘민중지향성’은 그 의도성의 과잉 으로 인해 비판의 여지가 있다.

그런 점에서 손유경의 논지에 공감하면 서도, 이선영이 그 그룹으로 묶이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 또한 재현의 폭력성 문제와 관련해 젠더적 차원의 비판은 어디까지 가능한지에 대해 서는 의문이 남는다.

무엇보다, 「영자의 전성시대」는 영화의 성공으로  대중소설이라는 이미지가 강했고, 조선작 역시 대중소설가라는 딱지가 붙어 창비 평론가들이 적극적으로 옹호한 작가가 아니었다.

이선영 역 시도 창비 그룹의 민중문학론자로 분류하기에는 그 근거가 무척 빈약하 다.

1970년대 창비에 게재한 이선영의 글은 대개가 문학연구서나 창작 집의 리뷰 형식의 글로, 당대의 논쟁적 주제를 다루거나, 창비의 정체성 과 관련된 주요 좌담에 참여한 적이 없다.

또한 ‘저변층’이라는 범박한 용어를 사용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적어도 창비의 이 글에서 ‘민중’이 라는 용어의 ‘언표화’가 없었다는 사실이다.29)

 

    29) 이선영의 당대소설평에서 ‘민중’이라는 용어는 「신문소설의 문제점」(1975)이라는 글 에서 처음 확인할 수 있다. 황석영의 장길산을 두고 “단순히 역사적 사건을 늘어 놓거나 과거의 풍속도를 그리는 데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더 나아가 역사의 본질을 그”렸다는 점에서 “민중문학의 차원을 획득”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선영, 「신문소설의 문제점」, 상황의 문학, 민음사, 1976, 202-203쪽.

 

「저변층생활의 진실: 조 선작의 소설집 영자의 전성시대」에 나타난 이선영의 상찬은, 평소 그 의 비평 문법으로 볼 때도 확실히 과잉되었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한 편의 글이 진영의 대변자로 분류되는 과잉도 역시 무리한 것임을 확 인해두고자 한다.

물론 1970년대 중반의 이선영은 분명 체제비판이나 주체적 역사의식 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경향을 보인다.

「작가와 참여의식」 (1974)에서는 사르트르의 앙가주망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작가의 양심 적인 현실 참여를 독려한다.

작가가 “현실의 정치나 체제에 대하여 일정 한 주의·주장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상식’인데, “이런 상식이 상식 으로 통하지 못하는 사회, 인간의 삶이 부당한 힘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 는 상황”을 개탄한다.

특히 박정희 정치 체제 하에서 언어의 혼란과 타 락이 증대되었다고 비판하면서 그 예시로 ‘국민총화’, ‘민족안보’를 든다. “그것이 한편에서는 ’유신헌법’의 수호나 현체제의 유지를 지시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유신헌법’의 개정과 현체제의 변혁을 지시”한다는 것이다.30)

이는 특정한 정치권력이 ‘국가’와 ‘민족’ 개념을 탈취적으로 전 유하는 행위에 대한 비판이라 하겠다.

이러한 체체 비판적 의식은 역사의식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로 이어져 「작가와 역사의식」에서는 김정한, 하근찬, 서기원, 한문영의 소설을 대 상으로 과거와 현재의 일본을 어떻게 재현하고 있는지를 검토한다.

역 사의식을 가진 작가들은 “자기민족의 과오를 과소평가하지 않는 동시에 그 공적 또한 과대평가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당시 일제강점기를 배 경으로 하는 소설이 많이 창작되는 현상은, 극복되어야 할 것이 극복되 지 못하는 상황의 반복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또한 “한일 국교 이후 일본재벌과 왜색문화의 무원칙한 침투, 미·소, 미·중공의 화해 움직임 과 남북한의 회담, 한국의 비상사태 선언 및 계엄령 선포”도 배경이 된 다고 적고 있다.31)

 

    30) 이선영, 「작가와 참여의식」, 상황의 문학, 민음사, 1976, 195-197쪽.

    31) 이선영, 「작가와 역사의식」, 상황의 문학, 민음사, 1976, 186쪽. 

 

이러한 역사의식의 강조는, 경제적·문화적 차원을 넘어 전방위적으로 일본의 영향력이 증대되는 1970년대의 현실 상황을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김정한의 「수라도」(1969), 「어둠 속에서」(1970) 는 “식민지 치하의 민족적 고통과 수치가 무엇인지를 똑똑하게 일깨워” 주었고, 서기원의 「마록열전5」(1972)나 한문영의 「후예」(1972)는 일제 강점기뿐만 아니라 한일국교 정상화 이후의 친일과 현실타협을 비판적 으로 조명하였다고 평가한다.

특히 하근찬은 일제 식민주의의 경제적 수탈(「족제비」)과 정치권력의 잔인함(「일본도」)을 현실에 뜻깊게 연결 시킴으로써, 문학을 통한 역사적 체험이 현재의 삶에 타산지석이 되는 좋은 사례를 보여주었다고 평가한다.

그 외에 문학과지성에 발표한 세 편의 글 가운데, 두 편은 이제하와 강용준·정을병의 소설 창작집 리뷰이고, 하나는 「비평과 학문」이라는 주제로 신동욱의 한국현대문학론, 김학동의 한국문학의 비교문학적 연구, 임중빈의 부정의 문학에 대한 서평이다.

먼저, 「비평과 학문」 을 일별해 보면, 비평적 글쓰기에 가까운 것을 부정의 문학(신동빈)으 로, 학문적 글쓰기에 가까운 것을 한국문학의 비교문학적 연구(김학 동)로 배치하고 신동욱의 한국현대문학론을 그 중간 자리에 위치시 킨다.

오늘날에도 문학에서의 ‘연구’와 ‘비평’의 경계가 명확하다고 할 수 없는데, 이 글에서 이선영은 “사실의 객관적인 규명에 역점을 두는 ‘학문’이나 ‘연구’”에 비해서, ‘비평’은 “작품의 우열평가를 주된 임무”로 삼는다고 본다.32)

‘우열을 가리는 평가’를 비평의 주요 임무라는 말은 논란의 소지가 있지만, 비평가들이 각자의 문학관에 기반해 가치평가의 영역을 확보하는 행위를 강조하려는 의도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리뷰 「새로운 수사학과 진실성의 문제: 이제하 창작집 초식」 에서는 이제하 문학의 개성으로,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약화시키는 특 유의 서사적 방법을 ‘꿈의 현실’로 명명하면서, 특히 「초식」을 ‘한국문학 의 한 성과’로 평가하며 그 실험정신을 높이 사고 있다.33)

현실의 문제 를 다루면서도 “극도로 추상적이며 몽환적인 세계”로 그리거나 “현실보 다 언어의 허구성에 더 긴장감을 주”는 기법을 긍정적으로 본 것이다.

또 다른 리뷰 「검진과 고발: 강용준의 광인일기와 정을병의 선민(選 民)의 거리 외」에서는, 두 작가 모두 부조리한 현실의 병리에 민감하다 는 공통점 위에, 병증을 검진하는 태도와 방식에서 차이를 지닌다고 설 명한다.

글의 성격 때문인지, “차분한 음성”의 검진과 “거친 목소리의 고 발”이라는 차이를 전제한 것 외에는 주로 소설 내용을 요약하는 방식에 그치고 있어 특징을 발견하기 어렵다.34)

 

    32) 이선영, 「비평과 학문」, 상황의 문학, 민음사, 1976, 144쪽.

    33) 이선영, 「새로운 수사학과 진실성의 문제: 이제하 창작집 초식」, 상황의 문학, 민음사, 1976, 11쪽.

    34) 이선영, 「검진과 고발-강용준의 광인일기와 정을병의 選民의 거리 외」, 상황의 문학, 민음사, 1976, 119쪽. 

 

그 외에도 상황의 문학에 수록되지 않은 이 시기 소설평이 꽤 많이 존재하는데, 대개는 현대문학이나 경향신문 등에 게재된 짧은 소 설평들이다.

대개의 비평이 잡지나 신문의 청탁에 의해 이루어지고, 작 품 발표나 책 출간에 연동되어 리뷰가 진행되기 때문에 비평가에게 대 상을 취사선택할 권한은 없다.35)

 

    35) 이선영은 ‘이 달의 화제’ 란을 1974년 7월부터 1976년 9월까지 맡아 매 달 2편에서 많게는 6~7편에 이르는 소설을 대상으로 리뷰를 했다. 짧은 분량과 내용 소개 형식 의 글이라 평론집에는 이 글들 가운데 한 편도 수록하지 않았다. 

 

따라서 월평 등에서 이선영이 다룬 소 설의 스펙트럼은 넓고, 경향성 또한 말 그대로 산포되어 있다.

물론 그 글들 가운데에서도 특정한 관점 아래 특정 작품을 취사선택할 수도 있 었겠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상황의 문학에는 한 편의 글도 수록하 지 않았다.

이는 이선영이 생각하는 비평적 글쓰기의 표준이 무엇인지 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 아닌가 싶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상황의 문 학은 1970년대 중반 무렵의 이선영이 더 강조하거나 집중하는 대상과 문제의식을 분명하게 드러내고자 기획된 평론집이라 할 것이다.

작가의 현실 참여나 역사의식의 강조, 하층계급을 재현한 작품에의 관심 증대, 보다 구체화된 체제비판적 발언 등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시각이나 논 조에서 분명하고 급격한 변화를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하지만 자유실천 문인협의회에의 합류와 ‘101인 선언’은 체제비판적 지식인으로서 구체 적이고 실천적인 ‘참여’를 했다는 점에서 그의 문학적 위치와 지향을 결 정지었다고 볼 수 있다.

 

Ⅳ. 작가와 현실 – 개인과 사회, 리얼리즘

 

1979년 1월에 발간된 작가와 현실은 주로 1977년에서 1978년에 발표 된 글 가운데 9편을 골라 묶은 문고판 책으로, 수록된 글의 제목에서 ‘리 얼리즘’이나 ‘민족문학’이라는 용어가 눈에 띈다.

첫 머리에 있는 「리얼 리즘이란 무엇인가」는 서구에서의 리얼리즘 개념의 역사를 간략하게 서술한 글로, 이 시기 이선영의 학문적 관심사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민족문학’ 개념은 당대 소설 분석에 사용된 것은 아니며, 신채호의 민족사관을 다룬 글과 백낙청의 저서 민족문학과 세계문학의 리뷰에 서 언급한 것에 그치고 있다.

이 장에서는 한용운의 시, 신채호의 소설, 김소월과 이상화의 시를 다룬 3편의 글을 제외하고, 앞에서 언급한 두 편의 비평을 먼저 검토한 후, 나머지 당대 소설비평을 중심으로 이선영 의 문제의식의 변화나 특징을 추적해본다.

「리얼리즘이란 무엇인가」에서 이선영은 객관적 리얼리즘, 주관적 리 얼리즘, 심리적 리얼리즘, 소박한 리얼리즘, 비판적 리얼리즘, 낙관적 리얼리즘, 사회주의 리얼리즘 등 수십 가지에 이르는 리얼리즘의 다양 한 존재 형태를 나열하면서 이점이 바로 “리얼리즘의 의미가 만성적으 로 불안정”함을 보여준다고 말한다.36)

 

    36) 이선영, 「리얼리즘이란 무엇인가」, 작가와 현실, 평민사, 1979, 12쪽. 

 

사실 이선영의 이러한 접근법은 의미가 있다고 보는데, 리얼리즘론의 경직화와 도식화에 대처할 수 있 을 뿐만 아니라 리얼리즘의 존재 양태 자체가 변화무쌍한 역사성을 갖 는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이글에서 이선영은, 발자크의 사 례를 들어 19세기 부르주아 사회의 비인간적인 본질을 폭로한 비판적 리얼리즘의 역할을 높이 평가한다.

발자크가 인간희극을 통해 19세기 프랑스의 일상과 사회생활을 기록함으로써 사회사가(家) 내지 과학사가 (家)로 불렸고, 보수적인 세계관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현실적이고 비판 적인” 리얼리스트가 될 수 있었던 점을 강조한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대해서는 20세기의 한 경향이라고 언급하는 것으로 그치는데, 냉전기  한국사회에서 최선의 문학적 방법으로서 이선영은 ‘비판적 리얼리즘’에 주목한 것이라 하겠다.

사실 이선영은 리얼리즘이나 민족문학 혹은 민중문학을 주도한 이론 가였다기보다, 당대의 담론장과 문학장을 성실히 관찰하고 학습하면서, 때로 의문을 가지기도 하면서 스스로의 지향성을 발견해나가는 측에 가 깝다고 할 수 있다.

「민족문학론과 인간적 충실성: 백낙청 평론집 민족 문학과 세계문학에 대하여」에서 당대의 진보담론을 주도했던 백낙청 을 향해 던진 질문에서 이선영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다.

이선영에 의하 면, 백낙청의 비평은 자신을 포함해 1960년대 문학의 성과와 한계를 반 성적으로 성찰함으로써 초기 실학파의 전통에 부정적이었던 견해를 수 정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민족문학론’으로 나아가는 도정에 서있게 되 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백낙청 비평의 핵심적인 견해와 연관 해 현대 지식의 매판성을 비판하는 본질적 근거가 무엇인지, ‘민중의 식’·‘역사의식’의 본질은 어떤 것인지, 백낙청이 말하는 ‘진리’의 정체는 무엇인지를 질문한다는 것이다.37)

 

    37) 이선영, 「민족문학론과 인간적 충실성: 백낙청 평론집 민족문학과 세계문학에 대 하여」, 작가와 현실, 평민사, 1979, 128-129쪽. 

 

물론 이선영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백낙청의 글에서 찾아나가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질문의 성격 상 그 답이란 쉽게 찾아질 수 있는 게 아니다.

백낙청이 참조한 톨스토 이, 한용운, D.H. 로렌스를 경유해 얻은 결론에는 ‘본마음’, ‘양심’, ‘사랑’, ‘예술의 마음’와 같은 매우 정서적이고 모호한 것들로 가득 차 있다.

다 소 비약을 감수하자면, 그만큼 중산층 지식인 스스로가 자신의 계급성 을 초과해 ‘민중문학론’을 개념화하고 그것에 공감하는 수준으로까지 나아가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백낙청을 향한 이선영의 질문은 어쩌면 자신에게 회귀하는 것이라 하겠다.

해직 시기와도 맞물 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선영은 현장비평과 거리를 두게 되는데, 비평가들의 세대 교체도 하나의 요인이겠지만 창작주체의 계급성이 문 제가 되고 더 급진적인 ‘민중문학’, ‘노동문학’으로 전화하게 되는 1980년 대 문학장의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 시기 이선영의 소설 비평에서 눈에 띄는 점은 ‘무엇을’, ‘어떻게’ 그 리느냐의 문제에서 결코 전자에만 경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책에 실린 두 편의 최인훈 작품론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으며, 1970년대 후반 신문지상에 발표한 작품론에서도 조세희나 윤흥길 등 흔히 모더니즘 계 열로 묶는 작가들의 소설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이고 있는 데서도 이 를 확인할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선영은 1960~70년대 한국문학의 지형도를 그리는 글에서 ‘시민적 리얼리즘’과 ‘내성적 기교주의’로 나누 고 최인훈을 후자의 앞 자리에 위치시키면서도 “보기에 따라” ‘시민적 리얼리스트’로 묶을 수 있다고 서술 한 바 있다.38) 「지식인의 의식구조」 에서, 최인훈의 서유기는 작가 자신이 담고자 하는 내용에 부합하는 적절한 형식을 효과적으로 선택한 작품이라고 분석한다.

물리적 시간이 나 외적 체험을 최소화하면서 심리적 시간이나 내적 체험을 최대화시킨 구성이야말로 관념에 치중하는 작가가 찾아낸 최적의 반사실주의 기법 이라는 것이다.39)

 

     38) 이선영, 「사실주의와 기교주의: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한국문학」, 소외와 참여, 연세대학교출판부, 1971.         39) 이선영, 「지식인의 의식구조」, 작가와 현실, 평민사, 1979, 108쪽. 

 

또한 이순신·이광수·조봉암 등을 소환해 그들의 역 사관을 장황하게 표명하게 하는, 지식 혹은 담론 과잉의 형식을 취하면 서도 어떤 특정한 진리를 강요하지 않는 미덕을 지녔다고 본다.

“글을 쓴다는 것은 문학과 세계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 가능성을 제시하기 위 해 헤매는 것”이라는 최인훈의 말을 소개하면서, 독고준의 의식과 행동 이야말로 그런 세계관의 적절한 재현이라 말한다.

그럼에도 최인훈 소 설을 관통하는 현실 부정이 “현실의 본질적인 불모성이나 역사 행위의 근본적 무의미성을 전제하는 것”이라면 공감하기 어렵다고 선을 긋는 다.40)

최인훈이 허무주의적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고 단정하지는 않으 면서도 그렇게 해석될 위험성을 짚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서유기 분석에서 조선시대,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과 1960년대의 현실을 맥락 화하는 최인훈 특유의 역사의식을 상세하게 분석하고 긍정적으로 평가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선영이 리얼리즘이라는 문학 방법을 편협하게 적용하거나 배타적으로 도구화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앞서 조선작의 소설비평에서 확인했듯이 이선영은 ‘저변층’·하 층민 내지 ‘민중’의 재현 양상에 지속적인 관심을 두었다.

사실주의에 충 실한 이문구의 장한몽은 “한 지식인의 자아 회복”이라는 기본 서사 아 래 공동묘지의 이장을 둘러싼 현장 인부들과, 금전적 이애를 둘러싼 다 양한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재현한 소설이다.

이선영은 이문구가 최하 층 사람들의 삶을 매우 적나라하게 묘사하여 그들의 삶을 아름답게만 꾸미려하지 하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가식 없는 적나라한 표현의 사례 는, 현장 인부들이 “아기무덤 속에서 나온 저금통의 동전을 사취하고, 유골을 돌맹이나 장작개비처럼 함부로 다루고 뒤늦게 찾아온 연고자에 게 술값 담배값을 갈취하고, 혹은 애인에게 줄 선물비용 마련을 위해 유 해의 두 발을 잘라 모으”는 행위들로 제시된다.41)

 

     40) 이선영, 「지식인의 의식구조」, 작가와 현실, 평민사, 1979, 115-116쪽.

     41) 이선영, 「현실과 상상의 문제: 장한몽과 서유기를 중심으로」, 작가와 현실, 평민사, 1979, 40-41쪽. 

 

이문구는 이들의 거 칠고 본능적인 행위를, 소설적 맥락 속에서 그 행위의 배경을 이해시키 고 납득시키는 방식으로 처리함으로써 하층민의 부정성이 다르게 해석 될 여지를 만들어 놓았다.

이선영은 바로 이 점을 부각시켜 “가난하지만 건강한 서민생활의 덕성”을 보여준다고 해석한다.

그러면서도 하층민의 사투리·속어·비어·은어의 사용을 무조건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성 강화라는 장점과 함께 의사소통을 방해할 정도로 난삽하거나 거부 감을 주는 거친 표현은 분명한 단점이라고 지적한다.

유사한 시각에서 황석영의 장길산에 대해, “민중적 생활과 감정을 집약적으로 드러”냈 고 “우리말에 대한 깊은 애정과 능숙한 언어 구사력. 풍부한 속담, 속어 의 활용”을 보여준 수작으로 평가한다.

신문 월평에서 「객지」 등의 단편 을 높게 평가했던 이선영은, 「한국소설과 역사의식-토지와 장길산 을 중심으로」에서는 “민중을 주체로 올바른 역사의식”을 드러냈다는 점 을 특히 강조한다.

토지의 경우는 다양한 신분과 계급을 기반으로 동 학혁명이나 의병운동을 긍정한 역사의식을 높이 산다.42)

특이하게도 전근대를 배경으로 한 장길산을 두고서는 이선영도 주저하지 않고 ‘민중’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는 점이 눈에 띈다.

마지막으로 창작과비평 1978년 가을호에 발표한 「소설에 있어서의 사회와 개인: 근간 장편소설을 읽고」에서는 인간의 사회적 존재방식에 대한 리얼리즘적 자세를 강조하며, 사회와 작가와의 관계 고려를 위해 문학의 사회학적 연구방법에 주목한다.

여기서 L. 골드만의 “문학적 창 조의 참다운 주제는 실로 사회적 집단이며 단독의 개인이 아니다”(소설 사회학을 위하여)라는 명제에 근거해 작품 창조가 “개인적 창조자의 수 준에 머물지 않고 집단의 수준에 위치해야 한다”고 덧붙인다.43)

 

    42) 이선영, 「한국소설과 역사의식: 토지와 장길산을 중심으로」, 작가와 현실, 평 민사, 1979, 55쪽.

    43) 이선영, 「소설에 있어서의 사회와 개인-근간 장편소설을 읽고」, 작가와 현실, 평민 사, 1979, 77쪽. 

 

이런 시 각에서 당시 발간된 여러 장편들을 다루는데, 그 가운데 이호철의 겨울의 긴 계곡과 박영한의 머나먼 쏭바강에 대한 평가가 눈에 띈다.

겨 울의 긴 계곡은, 7·4공동성명이 발표된 날에 함께 술을 마신 이북출신 4~5명 가운데 한 사람이 새벽에 변사체로 발견된 사건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함께 한 사람들은 혹시라도 자신이 연루되어 북한에서의 과 거 행적이 노출될까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다.

이선영은 “경직된 사회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분단시대를 사는 실향민의 회상과 향수, 고민과 체 념”이 소설 전편에 깔려 있고, 이들의 “내면적인 불안이나 공포는 실상 개인의 과오 때문이라기보다 분단시대의 왜곡된 사회현실에 주로 기인” 한 것이라 설명한다.44)

개인과 사회의 불가분의 관계가 얼마나 개인의 삶을 폭력적으로 장악하고 있는지를 역설하고 있다.

한편 박영한의 머나먼 쏭바강은 베트남참전 군인의 체험을 다룬 소설로, 특별한 경험에 대한 소상하고 정직한 기록이 뛰어난 문학작품이 되었다고 평가한다.

“개인과 집단, 부분과 전체에 대한 이해와 그 상호관계에 대한 통찰”이 있고, 전쟁으로 돈을 벌려는 자들이나 한국군대의 병리적 일면이 리얼 하게 묘사되었다고 본다.

무엇보다 “목적 없는 전쟁을 쥐고 흔드는 거대 한 손”, “그 무수한 연약한 쥐들에게 송곳니와 양식을 동시에 공급해주 고, 찢겨나갈 때까지 떼 싸움을 시키는 사육자의 털복숭이 거대한 손” 같은 비유로 베트남전쟁에서의 미국의 “부정의한 역할”에 대해 거침없 는 증오와 비판을 드러낸 점을 높이 평가한다.45)

 

    44) 이선영, 「소설에 있어서의 사회와 개인-근간 장편소설을 읽고」, 작가와 현실, 평민 사, 1979, 84-85쪽.

    45) 이선영, 「소설에 있어서의 사회와 개인-근간 장편소설을 읽고」, 작가와 현실, 평민 사, 1979, 88-90쪽. 

 

냉전 체제 하의 국제 질서 및 그 권력의 각축까지도 하찮은 개인의 삶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는 이 소설의 안목을 이선영은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최대한 현실에 육박하고, 왜곡 없이 관찰하고, 그것을 드러낼 가장 효과적인 표현 방법 들을 고안하여 형상화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1970년대 이선영 비평이 추구한 리얼리즘의 이상형이었다 하겠다. 

 

Ⅴ. ‘리얼리즘론자’라는 정체성

 

실존주의 문학의 아웃사이더적 반항에 매료된 이선영 비평의 출발은, 이후 소외와 참여, 역사의식과 리얼리즘에의 관심으로 발전·확장된다.

학술적 글쓰기에 영향 받은 그의 비평적 글쓰기는 작품 분석에서 개념 의 엄격한 적용으로 표출되었고, 한국문학사의 지형을 구획하고, 문학 적 경향의 계보를 그리는 데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의 비평적 글쓰기는 시각의 날카로움이나 용어 사용 에서의 참신함이 부족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는 물론 개인의 기질적 성향에서 기인하는 것이겠지만, 석사학위를 받은 후에 평론 활동을 시 작하였고, 세 권의 평론집이 모두 40대에 출간되었다는 생애사적 조건 도 영향을 미쳤으리라 짐작한다.

이선영은 자신의 초기 문학활동을 언급하는 자리에서 스스로를 ‘1970 년대 리얼리즘론자’로 칭했다.

1980~90년대 사회적·문화적 환경, 대학 교수로서의 당시의 문학교육과 연구의 성향 등에 근거해보면 우리에게 는 ‘민족문학론자’가 더 익숙하지만, 커다란 역사의 파고를 거친 21세기 오늘의 시점에서 돌이켜 보면 ‘리얼리즘론자’로 이선영 문학의 정체성 을 드러내는 것이 더 온당해 보인다.

이선영이 문학에 입문하던 시기에 는 텍스트 중심의 신비평 내지 구조주의적 방법이 새로운 학문적 경향 으로 부상하였고, 이선영 역시도 1950년대 최재서의 영문학 강의를 통 해 신비평에 매혹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예술성을 지니면서도 인간 의 삶에 기여하는 문학이라는 소박한 생각”이 지난한 그의 문학활동을 지탱시키는 바탕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46)

 

     46) 서은주, 「실천하는 문인, 성찰하는 학인의 자취: 국문학자 이선영의 삶과 학문」, 동 방학지 제153집, 2011, 415쪽.    

 

그의 비평에 면면히 이어지는 경향이기도 한데, 그는 리얼리즘이 편협하게 재단되고 정의되어 작품에 적용되는 것에 늘 저항했다.

1990년 대 중반 ‘민족문학과 근대성’이라는 제하의 심포지엄에서, 그동안 민족 문학 진영이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이라는 이분법적 도식으로 편협한 시 각에 갇혀 있었다는 자기반성이 이루지는 자리에 최원식과 함께 이선영 도 있었다.

사실 리얼리즘은 정의하기가 까다롭기로 악명 높은 용어이 다.

어떤 용어 앞에 수십 개의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다양한 형태가 존 재하기 때문이다.

앞에서 살펴본 이선영의 1960~70년대 비평 도처에 이 러한 문제의식이 깔려 있으며, 그가 리얼리즘의 도식화에 누구보다 일 찍이, 그리고 지속적으로 저항했다는 사실은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1. 기본자료

이선영, 소외와 참여, 연세대학교출판부, 1971. ______, 상황의 문학, 민음사, 1976. ______, 작가와 현실, 평민사, 1979. ______, 한국문학의 사회학, 태학사, 1993. ______, 리얼리즘을 넘어서: 한국문학 연구의 새 지평, 민음사, 1995. 서은주, 「실천하는 문인, 성찰하는 학인의 자취: 국문학자 이선영의 삶과 학문」, 동방학 지 제153권,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11, 375-431쪽.

2. 논문과 단행본

서은주, 「1970년대 문학사회학의 담론 지형」, 현대문학의 연구 제45호, 한국문학연구 학회, 2011, 475-511쪽. 손유경, 「현장과 육체: 창작과비평의 민중지향성 분석」, 현대문학의 연구 제56호, 한국 문학연구학회, 2015. 37-70쪽. 이재연·정유경, 「국문학 내 문학사회학과 멀리서 읽기: 새로운 검열 연구를 위한 길마 중」, 대동문화연구 제111호, 대동문화연구원, 2020, 295-337쪽. 이철호, 「해금 이후 90년대 학술장의 변동 – 근대성 담론의 전유와 그 궤적」, 구보학보 제19호, 구보학회, 2018, 9-37쪽. 박태순, 민족문학작가회의 문예운동 30년사Ⅰ, 작가회의 출판부, 2004. 유영주 지음, 이형진·정기인 옮김, 겨울 공화국의 작가들: 박정희 시대 한국문학의 저 항, 소명출판, 2023. 136 

 

국문요약

 이 글은 이선영의 문학연구와 비평활동을 정리·평가하는 작업의 일환 으로, 1960~70년대 당대 소설을 대상으로 한 비평에 초점을 맞춰 이 시기 에 발간된 세 권의 평론집을 시간 순서로 배치해 추적하는 방식을 취했 다.

학술 연구와 현장 비평을 동시에 수행하면서 그 경계를 넘나들었던 초기의 글을 검토하는 작업은, 동시대적 문학 현장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그의 문학적 시각과 지향이 어떻게 발아, 전개되는지를 살펴보는 과정이 되었다.

실존주의 문학의 아웃사이더적 반항에 매료된 이선영 비평의 출발은, 이후 소외와 참여, 역사의식과 리얼리즘에의 관심으로 발전·확장된다.

학술적 글쓰기에 영향 받은 그의 비평적 글쓰기는 작품 분석에서 개념의 엄격한 적용으로 표출되었고, 한국문학사의 지형을 구획하고, 문학적 경 향의 계보를 그리는 데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선영은 인간의 삶에 기여하는 문학이라는 효용론적 관점을 바탕으로 리얼리즘 방법론을 선택했지만, 리얼리즘이 편협하게 재단되고 정의되어 작품에 적용되는 것에 늘 저항했다.

유연한 리얼리즘론을 견지했던 그는 1990년대 초반 민족문학 진영 내부에서 이루어진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경계 해체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이선영의 1960~70년대 비평 도처에 리얼리즘의 도식화에 대한 저항이 자리잡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핵심어 : 이선영, 리얼리즘, 실존주의, 소외, 참여, 역사의식, 민족문학, 민중문학 

 

 

❚Abstract

Reading Novels of the Winter Republic -Focusing on Lee Seon-young’s Contemporary Criticism of the 1960s and 1970s- Seo, Eun-ju(

As part of the work to organize and evaluate Lee Seon-young’s literary research and critical activities, this article focuses on criticism of contemporary novels in the 1960s and 1970s. I took the method of tracking the three volumes of reviews published during this period by placing them in chronological order. He crossed the boundary between academic research and field criticism simultaneously. Examining his early writings will be a process of examining how his literary perspective and orientation germinate and develop through interaction with the contemporary literary scene. Lee Seon-young’s criticism began with his fascination with the outsider-like rebellion of existentialist literature, and later developed and expanded into interests in alienation and participation, historical consciousness, and realism. His critical writing, influenced by academic writing, was expressed through rigorous application of concepts in the analys is of works . Lee Seon-young chose a realist methodology based on the utility perspective that literature contributes to human life. However, he always resisted having realism narrowly cut and defined and applied to his analysis of works. He maintained a flexible theory of realism and actively participated in the dismantling of the boundaries between realism and modernism within the national literature camp in the early 1990s. Resistance to the schematization of  realism can be seen throughout Lee Seon-young’s criticism of the 1960s and 1970s.

 

Key-Words : Lee Seon-young, Realism, Existentialism, Alienation, Participation, Historical Consciousness, National Literature, Minjung Munhak(People’s Literature)

 

 2024년 9월 8일  접수   2024년 9월 27일 심사    2024년 10월 6일 게재확정

 현대문학의 연구 84권

 

KCI_FI003135080.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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