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친일문학 연구의 동향과 태백산맥 읽기의 방법
Ⅱ. 구성상의 문제와 소설사적 퇴행
Ⅲ. 조선(인) 절망론과 조선 미개 사회론
Ⅳ. 태백산맥의 평가 문제
Ⅰ. 친일문학 연구의 동향과 태백산맥 읽기의 방법
본 연구는 김사량의 장편소설 태백산맥1)에 대한 실증적이고 객관 적인 텍스트 분석을 기초로 하여 주제효과2)를 해석하고, 당대에 어떤 의미를 띠었을지 추론함으로써 이 소설이 보이는 친일문학적인 성격을 명확히 하는 데 목적을 둔다.
1) 태백산맥은 국민문학에 1943년 2월부터 4월까지 그리고 6월부터 10월까지 총 8회 연재되었다. 여기에서는 김재용·곽형덕 편, 김사량, 작품과 연구 4(역락, 2014)에 실린 서은혜의 번역본을 사용했다. 필요 시에는 국민문학 연재본을 참조 하였다.
2) ‘주제효과’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일반적으로 소설이 드러내는 내용적 효과는 다양하고 복합적이다. 주동인물과 반동인물의 상반되는 지향만 봐도 그것들이 내용 효과에서 나름의 몫을 각각 가진다는 점이 명확하다. 따라서 소설의 내용 효과를 ‘하나의 주제’로 말할 수는 없다. 작품을 하나의 구조화된 전체로 보는 입장에서, 소설의 내용 효과를 전반적으로 지칭할 때는 ‘주제효과’라는 개념을 사용 하고, 그러한 주제효과를 이루는 개별적인 내용들을 가리킬 때는 ‘주제’를 사용한다 (‘구조화된 전체’와 구조의 ‘효과’ 개념에 대해서는 Fredric Jameson, The Political Unconscious -Narrative as a Socially Symbolic Act, METHUEN, 1981, pp.23-58, 특히 pp.24-5, pp.41쪽 참조).
근래의 일제 말기 문학 연구에서는 ‘친일문학’이라는 용어 자체를 잘 쓰지 않는 상황을 고려해서, 이 연구의 목적을 ‘친일문학적인 성격의 규 명’에 둔 이유를 먼저 밝혀 둔다.
주지하듯이 일제 말기 문학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의 시초는 임종국의 친일문학론(1966)이다.
그의 노작에 의해서, 한국 근대문학의 공백기 로 여겨졌던 1940년대 전반의 ‘암흑기’에도 활발한 문학 활동이 있었으 며 그 작품의 대부분이 친일문학이라는 사실이 공식화되었다.
주목할 점은 그의 뒤를 잇는 연구가 한동안 이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에 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일어로 쓰인 당대 작품들을 구해서 검토하기가 상당 기간 쉽지 않았다는 환경적인 조건이 하나고, 임종국의 연구가 워 낙 방대하고 결론이 선명해서 이를 넘어설 방법론적 통로를 찾기가 어 려웠던 것이 다른 하나다.
후자에 대해서는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
임종국은 친일문학을 “주체적 조건을 상실한 맹목적 사대주의적인 일 본 예찬과 추종을 내용으로 하는 문학”으로 규정한다.3)
3) 임종국, 친일문학론(1966) 증보판 2쇄, 민족문제연구소, 2003, 19쪽.
좀 더 구체적으 로는, 지나사변[중일전쟁] 전후에 싹튼 전쟁문학으로부터 총후 의식을 강조한 애국문학, 1940년대 전반의 국민문학과 결전문학의 대부분이 친 일문학이라고 지적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작가가 아니라 작품에 초점이 맞추어져서, 예를 들어 민족주의자의 작품도 친일문학일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이다(20쪽).
그런데 친일문학론에서는 문학 작품의 친일 여부 및 그 정도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이 없다.
‘그런 문학에 관해서 그 양상과 본질, 이념과 활동 상황 등의 전부를 규명함으로써 목적을 삼 는다’ 했는데, 친일적인 양상을 작품에서 어떻게 찾아내어 일반화, 이론 화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은 부재했던 까닭이다.
사정이 이렇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친일 여부를 자명한 것으로 판단하게 하는 민족주의가 친일문학론의 저변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사정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반세기 가까이 지난 2000년대 들어서인 데, 변화의 갈래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김윤식이 주창한 ‘이중어 글쓰기 (공간)’ 개념이고 다른 하나는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의 국문학계식 전 유이다.4)
이 둘은 이론 차원에서 볼 때 엄연히 다른 것이지만, 일제 말 기의 문학을 평가하는 맥락에서 볼 때 그 결과는 매우 흡사해져서 현재 에 이르고 있다.
김윤식의 논의는 두 가지에 방점을 찍는다.
하나는 이인직에서 일제 말기까지 이중어 글쓰기가 전개되면서 ‘활사실’과 보편성 즉 특수 지향 성과 보편 지향성의 균형을 잡아 온 것으로 한국 근대문학사를 정리하 면서 한국 근대문학사는 한일 문학의 관련 양상과 무관할 수 없다고 주 장하는 것이다.5)
4) ‘국문학계식 전유’라 함은 탈근대론이 민족문학론을 대체할 ‘새로운 급진주의 기획’ 으로 1990년대에 받아들여졌다가 이후 퇴행을 노정하여 정치적 보수주의와 공존하 게 된 상황을 가리킨다. 탈근대론 수용의 이러한 변화와 문제에 대해서는 하정일,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의 민족과 민족주의 –조관자와 김철의 글을 중심으로」, 창 작과비평 제35호, 창비, 2007 참조.
5) 김윤식, 「이중어 글쓰기의 역사성」, 일제 말기 한국 작가의 일본어 글쓰기론, 서울 대학교출판부, 2003 참조.
다른 하나는 조선어학회 사건(1942.10) 이후 한국문학 이 식민지 체제에 편입되었다고 하면서 그때부터 한국의 국민국가의 언 어가 기능 정지 상태에 빠져 종래의 문학과는 변별되는 ‘글쓰기 공간’이 창출되었다는 것이다.
이 공간에서 쓰인 한국어는 ‘한국 국민국가의 언어’가 아닌 중성적인 것으로서 일본어와 마찬가지라고 본다.6)
김윤식은 ‘이중어 글쓰기’라는 큰 범주의 설정이 한국 근대문학사의 갱신에 기여 하리라 희망했지만,7) 이러한 의도와는 달리 ‘이중어 글쓰기’와 관련된 근래의 논의들은 여러 방면의 해외 이론들과 섞이면서 사실상 임종국의 친일문학론을 해체하는 양상을 띠어 왔다.
새로운 세기에 들어 친일문학 연구가 크게 부흥할 때 큰 역할을 한 또 하나의 이론이 탈근대론 곧 포스트콜로니얼리즘론이다.
1991년에 번 역된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1978)의 파고가 지나간 뒤, 2002년에 호미 바바의 문화의 위치(1994)가 소개되고, 1990년대 중반 에서 2000년대 중반까지 이경훈, 김재용 등에 의해 일본어로 쓰인 친일 문학 작품들이 번역된 위에, 식민지 근대화론이 확산하면서 친일문학 연구가 새로운 방식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앞서 말한 바 친일문학론을 지양하는 길이, 민족주의를 넘어서거나 우회할 수 있는 통로로 식민지 근대화론과 포스트콜로니얼리즘 등이 활용되면서 활짝 열린 셈 이다.8)
김철은 민족주의가 종교화되어 파시즘처럼 기능한다고까지 주 장하면서 기존의 민족주의적인 연구들과 각을 세웠으며,9) 김재용은 ‘친 일과 반일’이라는 이분법을 넘어서는 문제틀로 ‘협력과 저항’을 내세우 면서 일제 말기 문학의 내부를 갈라서 보는 방법을 통해 과거 친일문학 이라고 규정됐던 작품 중 일부를 전향적으로 읽어내는 작업을 제창했 다.10)
6) 김윤식·남송우, 「일제 말 한국 작가의 이중어 글쓰기 들여다보기」, 오늘의 문예비 평 제56호, 2005, 19-20쪽.
7) 김윤식·남송우, 「일제 말 한국 작가의 이중어 글쓰기 들여다보기」, 오늘의 문예비 평 제56호, 2005, 20쪽.
8) 이 시기에 임종국의 친일문학론을 두고 그것 자체가 자신이 비판하는 국가주의에 빠져 있다는 식의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김철, 김재용, 강상희 등이 ‘친일문학과 친일문학 비판이 동시에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라고 탈근대적 관점에서 문 제를 제기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 제기는 탈근대라는 문제의식을 앞세워서 임종국 이 결론에서 말하고 있는 ‘국민문학’이 근대문학의 일반적인 형식인 민족문학으로서의 국민문학을 가리킨다는 점을 간과한 잘못이다. 이에 대해서는 김명인, 「친일문학 재론 –두 개의 강박을 넘어서」, 한국근대문학연구 제17호, 한국근대문학회, 2008, 2절 참조.
9) 김철, ‘국민’이라는 노예 –한국 문학의 기억과 망각, 삼인, 2005.
이후 표면적으로 확인되는 친일 속의 저항의 계기나 다른 지향성 에 주목하여 사실상 친일문학의 경계를 흐리고 축소하는 식으로 재정립 하는 논의들이 지속되었다.11)
이상 두 갈래의 연구 성과들은 민족주의를 철 지난 것으로 간주하면 서 사실상 친일문학의 친일성, 반민족성에 대한 경계와 비판을 완화하 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확산하는 데는 작품을 치밀하게 분석하기보다는 ‘이중어 글쓰기’라는 구도나 서구의 포스트콜로니얼리 즘 이론을 앞세우는 문제도 작용하고 있다.12)
10) 김재용, 협력과 저항 –일제말 사회와 문학, 소명출판, 2004.
11) 사실상 친일문학 작품의 수를 줄이는 결과를 낳아 온 국문학계의 이러한 연구 동향 은, 제국의 식민 지배가 낳은 문제를 ‘식민지의 독립 이후’까지를 대상으로 하여 보 다 폭넓게 그리고 세밀하게 천착하려는 포스트콜로니얼리즘 이론의 기본적인 취지 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포스트콜로니얼리즘론을 원용해 온 친일문학 연구의 문제 를 이 맥락에서 비판한 경우로 방민호의 일제 말기 한국문학의 담론과 텍스트(예 옥, 2011)의 6-9, 63쪽을 참조할 수 있다.
12) 문학 연구 대상인 작품의 실증적인 분석은 약화된 채 이론을 앞세워 작품을 재단하 는 이론 중심주의, 서구중심주의적인 연구 동향의 문제에 대해서는 박상준, 「방법론 주의와 서구중심주의 너머, 역사와 공공 지식인의 길 –인문학의 위기, 국문학 연구 의 반성과 과제」, 우리말글 제95권, 우리말글학회, 2022, 371-391쪽 참조.
사정이 이러한 까닭에 친일문학에 대한 향후의 연구를 생산적으로 발 전시키기 위해서는 작품 외적인 면에서 논의를 진전시키는 것보다 작품 에 좀 더 주목하는 일이 필요하다.
작품이 어떻게 쓰여 있는가를 객관적 으로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언제나 문학 연구의 기본이자 출발점이다.
친일문학 연구도 예외일 수 없다.
임종국의 연구도 2,000년대 이래의 연 구들도 모두 소홀히 한 이 문제를 지양할 때 친일문학의 정의나 범주 설정에 있어서 보다 객관적이고 학술적인 수준의 성취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이 글에서는, 소설 작품의 배경 설정과 인물 구성 및 서사 구성, 서술 전략상의 제반 특징이 어떻게 마련되어 있는지를 규명하고 그에 따라 구현되는 작품의 주제효과 차원에서 일제 가 주창한 시국책들이 드러나거나 우리 역사에 대한 일본 제국의 식민 주의적인 왜곡이 드러날 때 친일문학이라고 규정한다.
작품의 주제효과 로 친일적인 내용이 부각되어 있는가를 친일문학 규정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13)
13) 소설의 분석과 해석에 대한 이러한 연구 방식에 대해서는 박상준, 「한국 근대소설 연구 방법론 시고」, 1920년대 문학과 염상섭, 역락, 2000 참조.
협력 속의 저항의 계기도 바로 이러한 작업 속에서 검토되어야 마땅 하다.
예를 들어 조선적인 것이 보인다고 해서 곧장 그 의미를 부각하는 데로 치닫는 것이 아니라, 한편으로는 그것이 작품의 전체적인 주제효 과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따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조선적인 것이 일본 제국 내의 지방적인 것으로 간주되게 하는 당시의 기제들을 간과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소설작품의 해석과 평가는 그 작품이 형상화 대상 으로 삼는 현실과 그 작품이 발표되어 읽히는 상황 두 가지와 분리되어 수행될 수 없다.
일제 식민 지배 당국에 의해 목표와 방향이 설정되고 그에 따라 모든 것이 제약된 국민문학으로서의 친일문학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이상을 무시하지 않는다면 친일문학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민족주의 가 죽은 개처럼 무시되는 것은 문제라 하겠다.
‘민족이란 상상의 공동체’ 라는 주제를 표어화해서, 민족을 인간의 실천이 전개되는 정치사회의 장으로부터 상상의 영역으로 비실제화하는 것은, 일제의 식민 지배가 궁극적으로 이루려 한 것이 우리 민족의 말살이었다는 엄연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받아들이기 어렵다.
민족주의에 맹목이어서 사태를 제대 로 보지 못하는 것 예컨대 친일문학의 경계에 있는 작품에 내재된 민족 주의적인 희구의 계기 곧 협력 속의 진정한 저항을 간과한다면 그것이 문제이지, 민족주의 자체가 문제일 수는 없다.
민족주의에 전적으로 기 대어 작품의 실제를 보지 않고 단순히 재단하는 문제는 지양되어야 하 지만 그것이 곧 민족주의의 폐기로 이어져도 되는지 숙고할 필요가 있 다.
근래 이루어진 친일문학 연구의 문제 하나는, 민족주의 자체를 폐기 한 자리에서 주체의 내면에 대한 정치한 이해와 결과물에 대한 해석의 강조점을 달리하는 식으로, 역사적으로 친일로 규정될 수밖에 없는 경 우에도 친일 여부 규정을 애매하게 만드는 방식을 더러 보인다는 사실 이다.
태백산맥에 대한 기존 연구들에서도 이러한 문제가 확인된다.14)
이 소설을 하나의 전체인 작품으로 분석하고 발표 시의 상황과의 관련 성까지 검토하여 평가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보이는 내용 요소들만을 따 로 뽑아 강조해 내는 독법이 적지 않게 쌓여 온 것이다.
이를 지양하기 위해 이 글은 태백산맥에 대한 실증적, 객관적인 텍스트 분석 결과를 분량에 구애받지 않고 상세히 개진한다.15)
14) 친일문학론의 동향과 문제를 검토한 이 절의 맥락을 고려해서 태백산맥에 대한 선행 연구들을 이 자리에서 일별하지는 않는다. 이하의 작품 논의에서 맥락상 필요 한 경우에 언급하는 방식으로 갈음한다.
15)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한 경우로 서영인의 식민주의와 타자성의 위치(소명출판, 2015)를 들 수 있다. 서영인은 “태백산맥에 대한 고평은 엄밀히 말하자면 다소 과장되어 있는 셈”(157쪽)이라고 평가하면서 기존 연구들이 내용 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 화전민에 대한 시선, 낙토 찾기의 기원 등에 대해 텍스트 분석에 기초하여 이론을 펼치고 있다(155-179쪽 참조). 전체적인 작품 분석을 통한 주제효과 전반에 대한 검토는 아니지만 텍스트 차원에서 근거를 갖춘 설득력 있는 문제 제기이다.
Ⅱ. 구성상의 문제와 소설사적 퇴행
태백산맥의 인물 구성은 장편소설로서는 단순한 편이다. 이 소설에 서는 인물의 선악 구도가 선명한데 이에 따라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다.
긍정적인 인물군에는 주인공 윤천일과 그의 두 아들 형제 일동과 월 동이 있다.
형제와 만나 행동을 함께 하는 차랑생과, 그들 셋의 지향을 긍정하고 북돋워 주는 월정사의 노승이 한패가 된다.
투쟁 의지에 휩싸 여 월동에 동조하고 윤천일이 위기에 빠졌을 때 돕는 길만과, 어느 경우 든 윤천일에 의지하고 동조하는 일부 부락민들 곧 봉이, 이쁜이와 추상 원 노인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부정적인 인물군의 대표는 윤천일 삼부자와 대립하는 동학파 일당[連 中]인 분교소 상사와 그의 하수인 사내들, 상사의 사주를 받아 윤천일을 사지로 몰아넣는 양구 관아의 포졸들을 들 수 있다.
여기에 분교소에 매여 있는 마대연, 성용삼 등과, 산에 불을 놓지 못하게 한 윤천일에게 반기를 드는 몇몇 부락민들 곧 배천석, 득보네, 박 선달, 이 노인 등이 더해진다.
선악의 이분법 바깥에는, 이쁜이의 아비인 허 서방이 있는데 그는 분 교소의 일원이었다가 마음을 바꿔 윤천일에 헌신하고자 하는 변화를 보 인다.
부차적 인물군에는, 긍정적인 인물로 김옥균과 일본의 주한 공사 및 선진 지식인들, 윤천일의 모친과 아내를 추가할 수 있고, 부정적인 인물로는 도피 중인 윤씨 일가를 체포하려 한 포졸들과 임오군란, 갑신 정변 당시 윤천일을 위협한 인물들, 윤씨 일가가 끊임없이 비판하는 당 대 조선의 위정자들, 양반계급 등을 거론할 수 있다.
태백산맥의 인물 구성이 보이는 이분법적 선악 구도는 작품 속의 현실 맥락과 인물들의 행동에 의해서보다는 서술자의 규정에 의해 마련 되어 있다.
백성을 수탈하는 사교 집단이나 관적이 악한 것이야 작품내 세계에서 자명하지만, 생존을 위해 산에 불을 놓으며 윤천일에 맞서 는 화전민을 그 자체로 부정적으로 보기는 어렵다.
임오군란의 ‘난병(亂 兵)’이나 갑신정변을 패퇴시킨 사대당 또한 이 소설에서처럼 적의 세력 으로 단순히 규정될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이분법적 으로 악의 세력으로 간주되는 것은, 주인공인 윤천일과 핵심적인 주요 인물인 윤일동 등과 서술자 사이에 거리가 확보되어 있지 않은 데 따른 것이다.
서술자가 이들과 같은 입장을 취하면서 이들에 맞서는 인물군 은 물론이요 이들을 따르지 않는 인물들 또한 부정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윤천일과 일동 등이 비판 대상으로 놓는 당대 조선의 위정자들과 백성 또한 같은 방식으로 부정적인 인물로 설정된다.
사실상 작가-서술 자-주인공이 일치되는 하나의 목소리가 작품을 지배하고 있어서 전근대 의 영웅소설과 다를 바가 없는 이분법적인 구도가 선명해졌다.
사정이 이러해서 윤천일을 위시한 주요 긍정적인 인물들의 지향이 태백산맥의 주제효과 구현에 크게 작용하게 된다. 논의를 종합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서사 구성을 먼저 정리한다.
태백산맥은 11개 절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 서사는 시공간 배경 설 정과 주된 사건의 전개상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뉜다.
셋째와 넷째 부분 은 스토리 시간상 이중 서사에 해당한다. 아래에 보인 대로, 해당 부분 의 서술시[쪽 수]와 시간 설정을 밝히고 주요 사건들의 전개 양상을 정 리했다.16)
16) 이 외에 서사 구성상의 특징 두 가지를 따로 표시했다. 이중 서사 부분에서 시간이 서로 맞지 않는 것을 동학 일당의 호랑바위골 습격을 기점([D])으로 전후 날짜를 기입하여 밝혔고, 태백산맥의 또 한 가지 특징인 주요 우연들을 밑줄로 표시했다.
첫 부분[1절(11~26). 15쪽: 1882~1884년 겨울. 1886년 봄 시점] - 윤천일 의 과거 행적: 윤천일이 임오군란을 겪으면서 깨달은 바가 있어 급진당에 가입하고 갑신정변에 참여했다가 실패 후, 도망치는 중에 아내를 잃고 태백산맥 속 배나무골에 두 아들 일동, 월동과 들어와 겨울을 난다(1절).
둘째 부분[2절(26~45). 19쪽: 1885년 봄~늦가을. 1886년 봄 시점] - 윤천 일의 각성과 지향: 세상에 대한 복수심에 사로잡혀 있던 윤천일이 폭풍우 뒤에 우연히 산신령을 만나 각성한 끝에, 배나무골 부락민이 화전민의 삶을 버릴 수 있는 ‘안주의 땅’을 찾으라고 아들 형제를 떠나보낸다.
포교 당의 횡포, 산신령에 의지하는 윤천일의 모습, 기다림에 지친 부락민의 동요가 전개된다(2절).
셋째 부분[3절(45~60), 4절(61~81), 5절(81~97), 6절(97~116), 9절(162~178). 87쪽: 1886년 봄의 7~8일] - 배나무골에서의 분교소 동학 패와의 갈등: 봉이 는 아버지가 자신을 포교당에 넘길까 봐 걱정하는데, 봉수는 서울로 가겠다 며 집을 떠난다(3절). 부락민 일부가 윤에 반기를 들어 서로 작별을 결정 하나 기러기 사건으로 분위기가 전환되고, 전전날 분교소 동학 도적 떼의 습격[D]을 받은 호랑바위골 사람들이 별안간 나타나서[D+2], 윤천일이 동 지를 규합하며 동학에 대한 투쟁을 결의한다(4절).
다음날[D+3] 길만이 와서 싸우러 나가자 하나 무산되고, 마교당 패거리와 성용삼, 마대연 등 이 사라진 것을 알고 윤천일이 절망에 빠졌다가 아리랑 소리를 듣는다(5 절).
아가씨들이 아리랑을 부르며 울고 웃는다.
화살 맞은 기러기를 잡아 서, 윤천일과 처녀들이 즐겁게 돌아온다(6절).
부락을 떠나[D+3] 포교당으 로 간 마대연과 성용삼 등에게 분교소 상사가 명을 내린다. 이틀 뒤[D+5] 절망에 빠져 자살할 곳을 찾던 윤천일이 마음을 바꿔 산신 제단으로 가다 가 우연히 기척을 듣고 상사가 보낸 포졸들을 맞아 싸운다.
포졸을 물리 치다 부상당한 그가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9절).
넷째 부분[7절(116~146), 8절(147~162). 46쪽: 1885년 늦가을~1886년 봄] - 형제의 복지 찾기 여정: 길을 떠난 지 한 달여에 형제가 조선의 절망적인 현실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차랑생을 만나 동행하던 형제가 노승을 만나 월정사에서 겨울을 보낸다.
노승의 ‘이상한 격려’에 월동이 감격하고 일동 은 그에게 가르침을 구한다.
노승에게서 ‘복지(福地)’를 점지받은 뒤 귀향 길에 오른다(7절). 늑대의 습격으로 차랑생이 죽은 후 호랑바위골에 도착 하여 봉수를 만났을 때, 분교소 동학 도적 떼가 습격하자[D] 형제가 무찌 른다(8절).
다섯째 부분[10절(179~196), 11절(196~216). 38쪽: 1886년 봄의 보름] - 형 제의 윤천일 구원과 복지 이주: 강물에 떠내려오던 윤천일을[D+6], 부락 으로 돌아오던 형제가[D+1] 발견하고 구원하여 귀향한다.
복지를 찾은 기 념으로 산신에게 제사를 치른다(10절).
이틀 뒤 이주를 시작하여 다음 날 호랑바위골 주민 일부가 합세하고 월동 일행은 서울로 떠난다.
11일 후 월동은 서울에, 부락민 일행은 복지 건너편 정상에 도착한다.
윤천일이 신에게 기도하고 주위 지형에 이름을 붙인 뒤 사망한다(11절).
위의 정리는 전체 스토리와 이를 이루는 세부 스토리라인들을 대상으 로 하여 말 그대로 서사 구성 양상을 밝힌 것이다.
소설 일반이 그렇듯 이 이것만으로 텍스트가 채워지지는 않는다.
스토리의 전개를 잠시 세 우고 서술되는 내용 요소들이 있는 법인데, 태백산맥의 경우는 당대 ‘조선의 상황’ 및 ‘향후 방책’과 관련한 인물들의 생각, 대화 및 서술자의 설명, 논평 등이 내용 요소의 큰 비중을 차지한다.
조선의 상황과 관련 해서는 ‘조선 멸망론’이라 할 비관적인 인식이 거의 전부이고, 향후 방책 으로 묶일 수 있는 내용은 ‘일본에의 협력’과 ‘복지(福地) 찾기’의 두 가 지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특징적인 것은 이러한 내용들 대부분이 언표 자체로서뿐 아니라 작품 속에서의 의미 기능 그리고 작품이 읽히는 맥 락 모든 면을 고려할 때 결과적으로 친일적이라는 사실이다.
이를 ‘친일 적 내용 요소’라 할 텐데, 대표적인 경우들을 따로 추려 정리하면 다음 과 같다.
먼저 ‘조선 멸망론’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첫째 부분 1절의 경우 스토 리는 간략히 묘사되는 반면 전체에 걸쳐 ‘조선에는 미래가 없다’는 윤천 일의 생각이 길게 개진된다.
셋째 부분 6절에서는 아가씨들의 이야기에 이어 서술자가 정부와 지방 관아의 가렴주구를 강조한다.
넷째 부분 7 절의 형제간 대화에서는, 일동이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조선의 미래를 완전히 부정하는 절망적인 진단을 내리고 신흥 일본과의 협력 외에는 방도가 없다는 주장을 펼친다.
이에 대해 월동이 다른 생각을 제시하나 일동과 서술자에 의해 젊은 치기로 간주된다.
월동 또한 조선 위정자의 행태가 절망적이라는 데는 동의한다.
형제의 대화는 121~131쪽에 걸쳐 10쪽 분량의 서술시를 차지한다.17)
이에 더해서, 월정사 노승이 ‘이상한 격려’로서 일본 지식인과 힘을 합쳐 동아시아의 환난에 대처해야 한다 고 주장한다(140~3. 4쪽). 향후 방책으로서 ‘복지 찾기’가 내용 요소로서 제시되는 부분은 드물 다.
둘째 부분 2절에서 윤천일과 일동을 통해 ‘시대와 정치를 떠난 생활 향상’에 대한 지향이 부각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소설의 말미에서 윤 천일이 신에게 기원하는 것을 이에 추가할 수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이 스토리의 경개와 서술시의 비중을 차지하는 내용 요소를 정리하면 태백산맥이 지향하는 바가 ‘조선 멸망론’에 있다는 사실이 명확해진다.
적어도, 적지 않은 선행 연구들처럼 유토피아 지향적인 작 품으로 읽기는 어렵게 된다.18)
17) 이에 따라 ‘복지 찾기’ 스토리의 의미가 가려진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18) 이런 이유로 이 글은, 태백산맥을 유토피아 찾기 서사로 보고 논의를 전개하는 이경재의 연구(「김사량의 태백산맥에 나타난 유토피아적 성격 고찰」, 현대소설연 구 제91호, 한국현대소설학회, 2023, 453-492쪽)나 이희원의 연구(「일제 말기 김사량 소설의 공간 형상화 전략 연구」, 한국민족문화 제77호,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 연구소, 2020, 201-232쪽), 곽형덕의 저서(김사량과 일제 말 식민지 문학, 소명출판, 2017)등과 거리를 둔다. 세 편 모두 그렇게 봐야 하는 ‘텍스트 차원의 근거’를 제시하 지 않은 채 논의를 전개하는데, 이 글의 서사 구성 정리만으로도 그렇지 않다는 점이 확인된다. 형제의 복지(福地) 찾기와 부락민의 이주 스토리라인은 7절과 11절에만 국한되어 있으며 그 속에서도 복지 지향 관련 서사 및 서술은 일부에 불과하다. 복지 찾기가 의미 없는 것은 당연히 아니지만 그것이 태백산맥의 중심적인 주제 효과일 수는 없다.
태백산맥의 지향성, 주제효과에 대해 서는 다음 절에서 논하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서사 구성상의 특징을 좀 더 살펴 둔다. 태백산맥의 중심 서사를 먼저 확인한다.
스토리라인들 중에서 무엇이 가장 우세한가를 따질 때 출발은 전체 스토리에서 차지하는 비중일 수밖에 없다.
이런 면에서 절 자체의 분량이 31쪽으로 가장 긴 7절이 주 목되지만 위에 밝혔듯이 그 중 절반이 시국에 대한 인물들의 견해로 채 워져 있다. 따라서 서술시의 비중상 태백산맥의 중심 스토리라인은 윤천일의 아들 형제가 떠난 뒤에 배나무골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담고 있는 셋째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단순히 서술 분량 때문도 아니다.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사건이 이 부분을 관통하고 있다.
셋째 부분의 중심 사건은 분교소 동학 패와 윤천일의 갈등을 핵으로 한다.19)
19) 다른 갈등으로 형제를 기다리며 화전을 놓지 못하는 상태에서 생기는 일부 부락민 과 윤천일 사이의 갈등이 보이지만 4절의 일부(64-70쪽)에 해당될 뿐이다.
분교소 동학 패가 봉이네 가족을 핍박하고 있고(3절), 그들에 쫓긴 호랑바위골 피난민이 배나무골에 합류하면서 윤천일이 동학을 타 파할 투쟁을 결심했으며(4절), 그들이 부락민 신도를 불러냄으로써 윤 천일이 극심한 갈등과 절망에 빠지게 했고(5절) 끝내는 포졸과 신도를 풀어 그에게 치명적인 부상을 입히힌다(9절). 동학 분교소 패의 스토리 라인은 이에 그치지도 않는다.
두 사건이 더해진다.
첫째는, 넷째 부분 에 속하는 8절에서 직접 그려지는 그들의 호랑바위골 습격이다.
이 사 건은 태백산맥의 이중서사를 연결하는 기능도 하여 서사 구성상 중 요하다.
둘째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윤천일의 구원으로서 다섯째 부 분 10절에서 전개된다.
요컨대 태백산맥 전체의 주된 스토리라인은 동학 분교소 패가 관 련된 사건들이다.
여기에서 동학에 대한 (역사에 비추어 왜곡된) 비판 과 부정이 이 소설의 주제효과 중 하나로 부상한다.
태백산맥의 서사 구성이 보이는 주된 특징은 여러 가지 문제를 보 인다는 데 있다.
첫째는 이중 서사 구조를 취하면서 시간상으로 착오를 보였다는 사실이다.
배나무골에서의 이야기와 형제들의 여정 이야기에서 공통되는 사 건은 동학 분교소 패의 호랑바위골 습격 사건이다. 이 사건이 벌어진 날을 ‘D’로 놓으면, 셋째 부분에서 보이는 바 윤천일이 치명상을 입은 것은 ‘D+5’일째이고 다음 날에 아들 형제에 의해 구원되니 그것은 ‘D+6’ 일의 일이다.
그런데 넷째 부분 형제의 서사를 보면, 그들이 도적 떼를 무찌르고(‘D’) 다음 날 아침에 호랑바위골을 출발해서 배나무골로 돌아 오다가 우연히 아버지를 본 것이니 이는 ‘D+1’일째의 일이다.
주인공 윤 천일의 생사가 걸린 하나의 사건이 이렇게 이중서사 구도에서 5일의 시 차가 나게 되어 있다.20)
20) 일동 형제가 무찌른 도적 떼가 바로 분교소 패라는 사실은 “사실 그 분교소의 상사는 부하들과 교도 성용삼, 마대연과 함께 급히 달려온 포졸들을 배나무골로 보낸 뒤 자신은 남은 부하들을 끌고 직접 말을 채찍질해 가며 호랑바위골을 습격한 것이었 다”(186쪽)라는 서술자의 말에서 확인된다. 이 기술은 상사가 성용삼을 만난 이틀 뒤가 아니라 당일에 포졸들이 왔다고 읽히는데 그 결과 포졸과 윤천일의 싸움 또한 같은 날에 벌어졌다 해도(여기에는 두 가지 가정이 필요하다. 분교소 장면에서 윤천 일 이야기로 넘어올 때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날 오후”(170쪽)라 한 것을 작가의 실수라 쳐야 하고, 분교소와 배나무골이 험한 길로 칠십 리 떨어져 있는데(162쪽) 이를 성용삼과 마대연이 하루의 새벽에서 오후 사이에 왕복했다고 즉 반나절 정도 에 56km를 움직였다고 봐야 한다) 형제 서사와의 시차는 3일이 된다. 셋째 부분만 보더라도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다. 성용삼과 마대연이 배나무골을 떠나 상사를 만 난 날을 ‘d’라 하면, 그 전날(‘d-1’) 호랑바위골 사람들이 배나무골에 들이닥쳤는데 그들이 상사가 지휘하는 도적 떼의 습격을 받은 것은 이틀 전이니 ‘d-3’이 된다. 이는 상사가 호랑바위골을 습격한 3일 뒤에 성용삼과 마대연, 포졸을 만났다는 것이어서, 시간여행을 한 것이 아닌 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래저래 말이 안 된다.
이는 현대 장편소설로서는 치명적인 구성상의 잘못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태백산맥에는 이러한 잘못, 작가의 구상 차원에서의 오류에 기 인한다고 보이는 문제들이 더 있다.
서사 구성상의 둘째 문제로, 형제들의 복지 찾기 여정의 기간이 혼란 스럽게 되어 있는 점을 들 수 있다.
윤천일 삼부자가 배나무골에 들어온 것이 갑신정변 직후인 1884년 겨울이고 서술 시점 현재는 ‘두 번째 봄’(15쪽)을 맞은 1886년의 춘삼월인데, 아들 형제를 떠나 보낸 것은 작 년(1885년) 가을도 끝날 무렵 혹은 늦가을이다(35, 57, 58쪽).
그런데 귀 갓길에 오른 형제가 호랑바위골을 발견하는 장면에서는 뜬금없이, 형제 가 산에 들어온 지 6년 만에 인가를 봤다는 진술이 나온다(153쪽).
전체 적인 사건 기술을 고려할 때 말이 안 되는 구절로서 이는 작가의 실수라 해야 할 것이다.21)
형제와 봉수가 만났을 때, 봉수가 자신이 집을 떠난 지 10여 개월 혹은 일 년이라 하는데(155쪽) 이것도 말이 안 된다.
월동 이가 겨울을 보내고 돌아온 뒤에 그와 함께 서울로 가겠다 하고는(60쪽) 그가 안 오자 올해 춘삼월에 집을 떠난 봉수이고, 일동 형제는 오대산에 서 봄빛을 보고 출발하여 호랑바위골에서 서로 만났으니, 봉수가 집을 떠난 것은 스토리상으로 볼 때 10개월은커녕 한두 달 전밖에 안 된다.
동학 분교소 패가 호랑바위골을 습격한 것이 형제들이 돌아오기로 예정 한 때(이즈음 봉수가 가출했다)로부터 한두 달22) 지나서이고 형제들은 바로 그 다음 날 부락으로 돌아왔으니 그렇다.
21) 이희원의 윗글에서는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 부락민들이 몇 년 동안이나 기 다렸다 하고 그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22) 서술 시점 현재에서 형제들이 예정보다 얼마나 늦어졌는지를 나타내는 구절 또한 ‘한 달’(35쪽) 혹은 ‘두 달여’(43, 93쪽)로 혼란스럽게 되어 있다.
여정 기간의 착오는 형제 들의 스토리 라인에서도 추가로 확인되나 생략한다.
형제들의 여정은 지리상으로도 문제를 보이는데 이것이 셋째 문제이 다.
형제는 배나무골을 떠나 한강을 넘어 동남쪽으로(41쪽) 계속 갔는데 한 달이 지나서 차랑생을 만났을 때 그들은 고성과 인제 사이의 대암산 산간에 있다고 서술된다(137쪽).
이 자체가 문제다.
배나무골은 한강 서 북쪽에 있고 인제는 물론이요 대암산과 고성 모두 한강 북동쪽에 있으 므로, 그들이 동남쪽으로 출발하여 한강을 건너서 대암산에 갈 수는 없 다.
귀로 여정도 문제다.
한강의 동남쪽에 있는 오대산 월정사에서 출발 했으니 서북쪽으로 방향을 잡아 돌아와야 한다.
그런데 형제는 북쪽으 로 계속 가다가 물을 찾아서 결국 호랑바위골에 이르는 길에 들어선다 (150~3쪽). 호랑바위골을 출발해서는 강기슭에 이르러 계속 동쪽으로 나아가다가 윤천일을 발견했으니(183쪽), 호랑바위골이 한강에서 배나 무골보다 서쪽에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는 형제의 귀로가 동북쪽으 로 이루어졌다는 것이어서, 지리적으로 서북쪽이어야 하는 사실에 맞지 않는다.
구성상의 넷째 문제는 일동의 아내가 청군에 의해 폭행을 당하고 참 살된 사건이, 처음에는 임오군란 중의 사건으로 서술자에 의해 기술되 었다가(25쪽: 국민문학, 1943.2, 115쪽) 뒤에서 일동이 회상할 때는 갑 신정변으로 말해지는 착오이고(129쪽: 국민문학, 1943.8, 73쪽), 다섯 째는 윤천일이 아들 형제에게 무술을 가르치는 기간이 모호한 문제이다 (37~8쪽).
배나무골에 들어왔다가 형제가 떠나는 사이의 기간이 겨울에 서 늦가을로 만 1년이 안 되는데, 그동안 배워서 “두 아들은 아버지의 신묘한 무술을 따라잡을 정도가 되었다”(38쪽)는 것은 현실성이 약하다.
끝으로 우연의 문제를 들지 않을 수 없다. 위의 정리 밑줄 부분에서 확인되듯이 태백산맥은 서사의 중요 국면에서 거리낌 없이 우연을 구사하고 있다.
윤천일의 경우는 인생의 굴곡 전부가 우연에 의해 흘러 간다.
홀연히 나타난 산신령을 통해 인생의 지향을 바꾸는 것에서부터, 부락민들과의 분열이 기러기 떼의 우연한 출현으로 무마되고, 곧이어 호랑바위골 사람들이 우연히 배나무골로 들이닥쳐 동학 타파라는 새로 운 목표를 갖게 되며, 그에 따른 갈등 또한 길만의 급작스러운 혼절로 회피되는 것, 자신을 죽이러 온 포졸들을 우연히 발견하여 싸움에 대비 하고, 치명상을 입어 죽게 되었을 때는 아들 형제에게 발견되어 목숨을 이어가는 것까지, 그야말로 절처봉생(絶處逢生)의 우연의 연속이라 하 지 않을 수 없다.
형제들의 여정도 별로 처지지 않는다.
길을 헤매며 고생을 하다 차랑생을 만나 힘을 얻고 후에는 늑대 떼를 만나 그를 잃은 것은 큰 우연이 아니나, 월정사 노승을 만나 겨울을 나면서 복지까지 점 지받게 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우연이다. 귀로에서 봉수를 만난 것도 우연이다.
그 직후 분교소 동학 떼의 습격이 있어 물리치고, 배나무골에 다 와서 아비를 구한 것 또한 구성이나 주제효과 면에서 중요한 우연에 해당한다.
우연은 모든 소설에서 발견되는 것인데 태백산맥은 서사 전개의 현실성에 전혀 구애받지 않는 방식으로 중심인물들의 행적에 수많은 우 연을 구사한다는 점에서 특징적이고 문제적이다.
이러한 양상은 고소설 과 그것을 이은 신소설의 우연 구사 수준에 다름 아닌 까닭이다.23)
23) 소설 서사에서 사용되는 우연의 종류와 고소설과 신소설, 리얼리즘소설, 모더니즘소 설, 대중소설별 우연 구사 방식의 차이 및 의미에 대해서는 박상준, 형성기 한국 근대소설 텍스트의 시학 –우연의 문제를 중심으로, 소명출판, 2016, 1, 8, 10장 참조.
태 백산맥의 우연은 소설미학적으로 질이 낮고 지나치게 남용되며, 인물 구성에서 보이는 선악의 이분법 및 내용상 강하게 드러나는 민간신앙과 더해짐으로써, 소설사나 소설 미학적으로 볼 때 태백산맥을 고소설, 신소설 수준으로 퇴행시키고 있다.
서사 구성상의 문제로 무려 여섯 가지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태백산맥은 구성상 태작에 해당한다.
1943년 2월부터 10월까지 긴 기 간 연재한 작품인데 이러한 문제들이 노정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구상 단계에서든 집필 과정에서든 구성의 치밀함을 방해한 성급함이 있었을 터이다.
이 소설의 주제효과를 강하 게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 그것이 구성의 문제를 돌보지 않게 한 것이라 고 추정된다.
다음 절에서 살펴본다.
Ⅲ. 조선(인) 절망론과 조선 미개 사회론
태백산맥이 발하는 주제효과는 윤천일과 아들 형제가 이루는 스토 리라인에서 잘 드러난다.
2절 허두의 인물 구성에서 밝혔듯이 이들과 서술자는 서술적 거리를 부여받지 않는 같은 편으로서 선악의 이분법에 서 선을 담당하는데, 그만큼 이들의 생각과 행동이 직접적으로 주제효 과의 중심을 이루게 된다.
그 중에서도 단연 주인공 윤천일이 주목된다.
앞의 서사 구성 정리에서 확인되었듯이 이 소설의 주된 갈등과 그에 따 라 전개되는 중심 스토리라인이 모두 그의 것이기 때문이다.
윤천일의 행동을 이끄는 요인은 복합적이다. 플롯에 따라 제시되는 순서대로 꼽자면,
조선 현실의 발전 가능성에 대한 절대적인 부정과 그 에 따른 맹목적인 분노가 하나고, 그런 자신을 바꾸게 한 산신에 대한 숭배가 다른 하나이며, 산신을 통해 깨우친 바 비참한 부락민을 위해 노 력하는 것이 또 다른 하나이다.
마지막 항은 다시 부락민을 위해 아들 형제로 하여금 안주의 땅을 찾게 하는 것과, 부락민을 괴롭히는 동학 패 와 맞서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서로 연결되어 있는 이런 요인들에 따라 윤천일이 이 소설의 주요 사건들을 담당해 나가면서 태백산맥의 주 제효과가 구현된다.
이 중 가장 중요한 요인은 첫째 항 곧 조선에 대한 절망론이다.
연결고리의 시작으로서 이것이 다른 요인들을 이끌어 내는 한편, 일동과 노승 등 주요 인물들과 공유되면서 한층 강해지고 좀 더 진전된(!) 의미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요컨대 태백산맥의 가장 우세한 주제효과는 조선 절망론이다.
이를 먼저 정리해 본다.
전 육군 중교(中校: 중장) 윤천일의 현실 인식과 그에 따른 조선 절망 론은 서술자에 의해 작품 초반에 다음처럼 제시된다.
나날이 기울어가는 사직의 운명은 이미 그와 같은 몇명의 강개한 지사 들의 피를 가지고는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곳까지 와 있는 것이다. 잇따 라 벌어지는 국난에는 아랑곳없이 또다시 사대당의 권신들은 조정을 가득 채우고 전횡을 일삼을 것이다.
백관의 출척(黜陟)은 여전히 금화의 수뢰에 지배되고 지방 관가는 또 주구(誅求)에 열을 올리리라. 왕궁 안에서는 연희 와 기도와 굿이 조석의 행사가 될 것이다. 그리고 민씨 일족 사대당은 이제 오로지 복수의 정치로써 상하 분연할 것이며, 급진당의 잔당들과 그 처자 권속을 잡아들이느라 혈안이 되어 있을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이 나라에 구 원은 없다. 절망과 반역과 자포자기, 그것들이 온전히 그의 마음을 차지하 고 말았다. (21~2쪽)
여기에서 선명하게 확인되듯이 윤천일의 현실 인식은 상대의 향후 활 동에 대한 추정으로 이루어지다가 ‘더 이상 이 나라에 구원은 없다’는 단정으로 수렴된다.
조선의 미래를 부정하는 전면적인 절망론이다. 윤 천일이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은 임오군란을 겪으면서이다.
군란을 일 으킨 ‘난병’이 비적이 된 데 책임을 느껴 소장파 급진당에 가입하고 이 나라는 혼자 일어설 힘이 없기에 “신흥 일본과 함께 나아갈 때 비로소 이 나라에 여명이 있는 것”을 깨닫고 ‘재탄생’했다가 갑신정변의 실패로 완전히 실의에 빠진 것이다(24~5쪽).
윤천일은 자신의 생각을 월동에게도 강제한다.
자신과는 달리 나라를 위해 생사를 걸고 싸우는 일을 희망하는 월동에게 “폐허에서 꽃을 보고 전원에서 노래를 듣는 날은 저주받은 이 강산에 영원히 오지 않을 거 야!”(23쪽)라고 하는 것이다.
현실 참여적인 개선의 가능성이 조선에는 없다는 그의 생각이 얼마나 강렬하고 지속적인지는, 마침내 월동이 제 뜻대로 부락민 무리를 떠날 때 죽음을 앞두고 있으면서도 들것에서 일 어나 그에게 활을 쏘는 데서(213쪽) 확인된다.
윤천일의 조선 현실에 대한 절망을 드러내는 위 인용 구절의 특징은 서술자의 말과 윤천일의 생각이 하나로 섞여 있다는 점이다.
절망론에서 이 둘이 보이는 결합 상태는 월동의 지향을 꺾고 폄하하는 데서 계속 확인된다.
윤천일은 월동의 생각을 ‘어려서 꿈을 꾸는 것’으로 폄하하고 (23쪽), 서술자는 ‘서울에서 월동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교수대뿐’이라는 현실 판단 위에서 그의 지향이 ‘젊은이의 회한이자 미련과 동경’에 불과 하다고 깍아내리며(26쪽) 일동과 월동의 대화 끝에서는 월동의 생각이 ‘직접 자신의 몸으로 험난한 현실에 부딪쳐 보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듯한 젊음’에 기인하는 것으로 규정한다(131쪽).
주인공 윤천일과 서술자가 조선 절망론을 단정적으로 공유하는 만큼, 이 문제에 대한 재고의 여지 혹은 소설적 탐구의 가능성이 태백산맥 에서는 원천적으로 배제되어 있다.
이러한 특성은, 이 같은 생각 곧 조 선의 미래에 대한 전면적인 절망이 태백산맥 전체 서사의 2/3에 이르 기까지 주요 인물들에 의해 위정자들의 악행과 백성의 무능을 대상으로 하여 지속적으로 토로되는 상황의 원인이자 결과이다.
그만큼 조선 절 망론은 태백산맥의 대표적인 주제가 된다.
조선의 발전 가능성, 독립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며 직접적으로 역설하는 인물은 윤천일의 첫째 아들 일동이다.
형제의 대화에서 그는 월동에게 “현실은 지금 어쩔 수 없는 곳까지 가 버렸고 역사는 붕괴하기 시작했다. (중략) 역사도 시대도 현실도 요컨대 노력하는 우리들의 머 리 위를 저 멀리 초월하여 제 갈 길을 갈 뿐이란다. 아니, 이미 갈 데까 지 가 버린 거야. 우리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그거야말로 당랑지부(螳螂之斧)에 불과한 거지”(125쪽)라 하고 “모든 면에서 멸망의 물결은 눈에 띄게 시시각각 퍼져가고 있어”라면서 정치도 정신세계도, 지배계급도 모두 문제이며 “모든 민초들은 신음과 절망 속에 빠져 있어” 서 “온 나라와 온 민족이 예속되거나 자멸하거나 하는 수밖에 없”다고 (126쪽) 한다.
그의 이러한 진단은 자신이 ‘큰 계획’을 세우고 ‘유사시에 일제히 일어나기 위해’ 뜻있는 청년들을 모으려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지만 사람들이 지역감정을 갖고 자신을 대했을 뿐이었다(128~9쪽)는 경 험을 통해 소설 내에서 근거를 부여받고 있다.
이 위에서 그는 민중이 매우 우매하고 단견이며 발밑 이익에만 눈이 어두워, 머리 위에 쏟아지 는 멸망의 불빛, 발밑에서 무너져가는 파멸의 둑을 생각하지 못하므로 이 강토, 이 민족에는 구원이 없다고 단정한다(129쪽).
조선의 백성들에 대한 절망은 중심인물들에 의해 널리 공유된다.
일 동과는 길을 달리하는 월동도 “지저분하고 무기력한, 그러면서 교활하 고 정말 한심한 민족이 되어 버렸어요”라며 조선 민족에 대한 일동의 절망적인 진단에 동의한다(127쪽).
차랑생 또한 “결국 우덜은 멍청하고 얼간이 같은 국민이여. 한 푼의 가치도 없지. 이런 것들을 대상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응게”(134쪽)라 하여 같은 입장을 취한다.
태백산 맥의 이러한 인식은 윤씨 삼부자가 맞닥뜨린 화전민 부락의 상황과 화 전민들의 비참한 삶에 의해서도 한층 강화된다.24)
24) ‘열여섯 집, 일흔세 명’이 사는 배나무골은 ‘새 둥지처럼 초라한 오두막들’이 있는 척박한 땅, 고단한 삶의 장소이다(12쪽). ‘유랑과 방화모경(放火冒耕)’이 숙명인 화 전민은 자연에 대한 ‘반역의 무리’로서 ‘아귀도의 삶’을 벗어날 수 없는 존재라고 서 술자에 의해 규정된다(12~3쪽). 더 나아가 윤천일에 의해서는 ‘대지를 모독하는 존 재’(215쪽)이자 ‘세상의 파괴자’(26쪽)이자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 만큼 참담한 삶’을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로 간주된다(29쪽). 세상의 끝에 몰린 존재들이 자연으로부터 도 배척당할 지경에 이른 만큼 이대로는 이 땅에 아무런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김사 량의 화전민에 대한 인식에 대해서는 곽형덕의 김사량과 일제 말 식민지 문학, 앞의 책과 오태영의 「제국-식민지 체제의 생명정치, 비체의 표상들 –김사량의 문학 작품을 중심으로」, 동악어문학 제61호, 동악어문학회, 2013, 37-70쪽 참조.
태백산맥의 조선 절망론은 월정사 노승에 이르러 극에 달하고 한 단계 진전된다.
그는 ‘실로 열렬한 애국자이자 위대한 경세가’로서 속세 를 떠난 몸임에도 불구하고 정세에 대한 우려의 마음이 깊어서 시대를 개탄한 나머지 때로 눈물을 비치기도 하는 인물이다(139쪽)
. 그에 의하 면 당시야말로 ‘이 나라를 백 년이나 평안하게 할 것인지 멸망의 심연에 빠뜨릴 것인지가 달려 있는 때’이다(141쪽).
이러한 진단에 더해 그는 “지금이라도 이 나라 정부가 일본과 서로 손을 잡고 청국을 계몽하여 대동단결 동아시아의 환난에 대처하지 않으면 모두 함께 망할 따름이 네”(142쪽)라 하여, 일본과의 제휴야말로 조선이 망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노승에게까지 오면 조선과 조선 민족의 미래 가능성을 부정하 는 것이 일제에 의한 식민 지배의 필연성을 강조하고 정당화하는 데로 이어진다.
그런데 사실 이는 1절에서 임오군란 후 윤천일의 재탄생으로 이미 제시되었던 것이다(25쪽). 일본과의 병합 필요성을 조선 절망론을 근거로 하여 반복하여 강조한 셈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이러한 특징을 존중할 때, 조선에는 미래가 없으며 유일한 출구는 일본과 함께 하는 것이라는 ‘절망적인 조선의 일본 합병 의 필연성’이야말로 태백산맥의 제1 주제라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로써 태백산맥은, 일찍이 이인직이 혈의 누에서 제기한 바 있고 당시에 일제가 널리 주창한 이른바 대동아공영권론, 서양 세력에 맞서 는 대아시아주의를 노래하는 반열에 동참한다.
일제의 조선 식민화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일익을 담당함으로써 말이다.
이런 주제를 전면화한 태백산맥의 문제성은 이 소설의 서술 시점 이 갑신정변 직후인 1886년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더욱 두드러진다.
1880년대 중반을 배경으로 해서 조선 절망론을 펴는 것은, 우리나라가 갑신정변 전후에 보였던 역사를 완전히 부정하고 지우는, 일제 식민주 의 역사관에 의한 한국사의 왜곡과 폄하에 불과하다.
주지하는 대로 조 선과 대한제국(1897~1910) 그리고 그 백성과 국민은 독립 국가의 수 립25)과 근대화26)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25) 1894년의 갑오개혁과 동학농민운동에서 시작되어, 근대적 정치 혁명을 도모한 독립 협회(1896~1898)와 만민공동회(1898)를 위시하여, 대표적으로 헌정연구회(1905)에서 대한자강회(1906), 대한협회(1907~1910)로 이어지는 민중계몽운동들의 지속과, 국권 을 회복하고 공화정 수립을 목표로 교육과 계몽 산업 진흥에 더해 독립군을 양성하 기 위해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신민회(1907~1911)의 독립운동 등, 1890년대부터 합 병 직후 일제의 탄압과 무력에 의해 해체될 때까지 이어진 다양한 독립운동들의 실제가 이에 해당한다.
26) 태백산맥의 조선 절망론은 갑신정변 이전까지의 국제 관계 수립 및 근대 문물의 수용 노력 또한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다. 조선은 1876년 조일수호조규[강화도 조약] 와 그에 이은 통상장정 협정(1880) 이후 미국과 청(1882), 영국과 독일(1883), 이탈리 아와 러시아(1884) 등과 연이어 통상조약을 맺어 세계 질서 속에 편입되었다. 이를 통해서 갑신정변 이전까지만 봐도 청에 영선사(1881)를 보내 무기 제조술을 배우고, 일본에 세 차례 조사 시찰단[수신사, 신사유람단]을 파견하여 근대 문물을 접했으며 (1876~1881), 미국에 보빙사를 파견하여 근대 문물을 견문함과 더불어 독립국으로서 서양 국가와의 관계를 수립하였다(1883). 이러한 사실을 볼 때 갑신정변 직후의 조선 상황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길 외엔 멸망밖에 없었던 것이 아니라는 데 췌언을 가할 필요가 없다 하겠다.
결과가 일제의 침탈 에 의한 식민지로의 전락이라고 해서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이 무화될 수 없음은 당연한 바, 태백산맥이 1886년을 서술 시점으로 정한 상태 에서27) 조선 절망론을 전제하고 작품의 처처에서 반복적으로 한껏 강 조하는 것은, 일본의 조선 병합만이 대동아의 올바른 역사 과정이라는 작품 발표 당시 일제의 식민사관을 그대로 받아들여 국민문학, 친일문 학적인 특성을 강화하는 것일 뿐이다.28)
27) 태백산맥에 대한 선행 연구들 중에는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을 조선 말기가 아니 라 ‘구한말’로 보는 경우가 있다. ‘구한말’은 대한제국 시기(1897~1910)까지 포함하는 것이므로 그렇게 지칭해서는 안 된다. 이는 태백산맥의 역사적 성격에 대한 평가 와 관련해서 중요한 사안이다.
28) 태백산맥의 조선 절망론은 김사량이 1940년대에 갖고 있던 생각의 연장이라 할 수 있다. 동일한 생각이 1940년에 발표한 「朝鮮文化通信」(현지보고, 1940.9: 김재 용·곽형덕 편역, 김사량, 작품과 연구 2, 역락, 2009)에서 확인되는 까닭이다. 이 글의 첫 절에서 그는 “조선의 독자적인 문화의 모습을 규명하고, 그것을 훌륭하게 구축해서 또한 장래의 전망을 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동아의 문화협력이라고 하는 이념에도 합치하며, 전 일본 문화의 일익을 장식한다”(334쪽)는 논리로 ‘새롭게 대두 한 조선학 연구’를 긍정적으로 볼 것을 희망하며 자신의 문학 또한 그 일환이라는 점을 함축한다. 태백산맥과 같은 창작이야말로 조선적인 것을 그림으로써 일본 문화의 한 축 곧 일본 제국의 한 지방 문화가 된다는 말이다. 여기서 문제는, 조선의 문화와 문화인의 상황을 두고 “조선인은 무엇이든 젊다고 하는 한마디로 정리가 된다”(333쪽)라는 명언에서 확인되듯이, ‘조선학’을 수립할 바탕이 ‘신문화 30년의 전 통’밖에는 없다고 본다는 사실이다(329쪽).이는 일제에 병합되기 전의 조선에는 문 화라 할 전통이 전혀 없었다는 생각에 다름 아닌데, 태백산맥에 그려진 조선의 상황, 배나무골 부락민의 상태가 바로 이러한 인식의 결과라 하겠다.이로써 태백 산맥의 조선 절망론이 작품 연재 당시의 상황에 부응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김 사량이 품고 있던 역사 인식 곧 한민족의 문화유산의 가치를 전혀 인정하지 않고 구한말의 자주적 근대화를 위한 노력 일체를 완전히 무시하는 친일적인 역사 인식 의 연장선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조선 현실에 대한 윤천일의 절망은 너무도 전면적이어서 세상을 파괴 하는 맹목적인 복수로 분출한다.
폭풍우에 부락이 박살이 나다시피 된 상태 앞에서, 자신들이 산에 불을 지르고 숲을 태워 만들어 준 물의 군 세가 ‘악과 죄로 가득 찬 서울’로 진군하기를, ‘최후의 심판을 위해 총진 군’하기를 기원하며 ‘절망도 비탄도 보상을 받고 남음직한 통쾌함’을 느 끼기까지 하는 것이다(32쪽).
윤천일의 이러한 맹목적인 복수심은 ‘산신령’을 만나 꾸짖음과 가르 침을 받고(32~3쪽) 크게 바뀐다.
이 부분의 내용은 세 가지에 초점을 맞 춘다. 숲을 태우는 것을 자연을 해치는 ‘흉변’으로 간주하여 그에 분노한 산신들이 홍수를 일으킨다는 환경보호적이고 신화적이면서 동시에 정 책 부응적인 생각29)이 첫째고, 홍수의 피해가 ‘산사람들의 일족’ 곧 가 난한 백성에게 미친다는 점을 지적하는 사회적 문제의식이 둘째며, 따 라서 ‘정치를 떠나고 시대를 얻지 못할지라도 여전히 의연하게 생활해 나가야 한다’는 교훈이 셋째다.
29) 화전 경작의 문제에 대한 이러한 지적이 단순히 환경보호 차원에 그치지 않음은 그것이 일제의 화전민 정책에 부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제는 화전민을 ‘임정(林 政)상의 일대암(一大癌)’이자 ‘근절의 대상’으로 간주하고 지도와 교정, 이주 정책을 추진했는데(진싱화, 「김사량 ‘화전민’ 서사 연구」, 문창어문논집 제58호, 문창어문 학회, 2021, 92-95쪽 참조) 태백산맥은 이러한 정책을 지도, 교육하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에 따라 윤천일은 “시대를 잘못 만나고 운명이 등을 돌려 압정과 착취의 말발굽 아래 신음하는 창생이 신에게마저 버림을 받는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에 부락 남자들을 모아 제단을 이루고, 자신이 ‘불을 금하는 명’을 내릴 테니 죽을죄를 용서해 달라고 “산신 앞에 정성을 다 해 맹세”하면서 “안주할 땅을 계시하옵소서” 애원한다(34쪽). 그는 ‘자연 의 복수’와 ‘기아의 고통’에 더해 ‘사교 집단의 횡포’에 고통받는 가련한 부락민들의 상황을 보고 그들을 “어딘가 안주의 땅으로 이끌어 내야만 한다”고 더욱 굳게 결심하여(37~8쪽), 사냥감을 잡아 돌아오면 반드시 산신 앞에 공양하고 ‘안주의 땅’을 찾아 언제 떠나야 좋을지 알려 달라 고 소원을 빈다(38~9쪽). 마침내 제사 중 곰을 잡은 뒤 별똥별이 떨어지 는 것을 보고는 계시가 내렸다 하여 자신의 아들들에게 동남쪽으로 떠 나게 한다(39~41쪽). 여기에서 태백산맥의 다른 부차적인 주제 두 가지가 또렷해진다. 윤천일이 여기서 보였고 향후 지속하게 되는 산신 숭배의 서사가 드러 내는 것이 하나이고(이에 대해서는 후술한다), 형제들이 수행하는 안주 의 땅, 복지 찾기가 다른 하나이다. 안주의 땅 찾기, 복지 지향의 궁극적인 의의는, 길을 떠나기 직전의 일동의 생각에 대한 서술과 그의 연설을 통해서 한층 또렷해진다. 일동 은 삼국시대로부터 조선까지 이어져 온 분열상을 우리나라의 문제라 생 각하여, “고구려의 전투적인 성격, 신라의 진취적인 기상, 백제의 보수 적인 특징, 이것들이 핏줄을 통해 혼연일체가 되었을 때 비로소 조선인 에게도, 그 역사에도 빛나는 장래가 찾아올 것이다. 근대 민족으로서 새 로이 출발할 수 있는 자격도 주어진다”(42쪽)라고 믿는 ‘고매한 이상의 학도’이다. 그런 그가 “이 공동생활 속에서 진실로 새로운 조선인이 태 어나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반드시 안주의 땅을 찾아낼 것”이라 웅변 을 토하자, 윤천일이 감동하며 일동이 “뛰어난 경륜가이자 현명한 지도 자임이 틀림없었다” 생각하고 만족해 한다(42쪽). 이렇게 윤천일과 일동의 지향이 하나가 되면서 태백산맥에서 복지 166 현대문학의 연구 84 찾기가 갖는 의미가 뚜렷해진다. 당파나 지역색으로 분열하지 않고 서 로 화합하는 새로운 인간을 만드는 것이 그것이다. 궁극적으로 이를 목 적으로 해서 일동 형제는 길을 떠나고(7~8절), 윤천일은 부락민들이 흔 들리지 않게 노력한다(3~6절). 복지를 찾는 것 자체보다 새로운 인간의 창출 욕망이 앞서 있다는 사실이 주목된다. 2절에서 보였듯이 복지 찾 기 서사의 비중이 크지 않은 것도 여기에 관련된다. 새로운 인간의 창출이 복지 찾기의 목적이라는 점에서 두 가지가 추 론된다. 첫째는 기존의 백성들에게서는 희망을 볼 수 없다는 인식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는 점이다. ‘조선인 절망론’이라 할 이러한 내용이 조선 절망론의 일부로 계속 강조되어 왔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둘째 는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인간의 새로운 창출이 작품 바깥과 관련해서 는 ‘총후 국민의 연성’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상 을 고려하면 태백산맥을 낙토 찾기, 유토피아 지향의 소설로 읽는 방 식이란 당대의 현실을 얼마나 간과하는 것인지가 명확해진다. 형제가 돌아올 때까지 부락민들을 이끌려는 윤천일의 바람을 위협하 는 인물은 둘이다. 산에 불을 놓지 못하게 됨으로써 생계 걱정에 동요하 게 된 부락민 일부가 하나고, 부락민 수탈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윤천일 을 제거하려 하는 사교패 곧 동학파 분교소 일당이 다른 하나다. 이 둘 의 스토리 라인이 3~5절을 이루는데 이 과정에서 윤천일의 새로운 지향 성들이 부침하면서 태백산맥의 다른 주제들이 떠오른다. 윤천일이 보이는 지향성들은 다음과 같다. 호랑바위골 사람들이 도피 해 와서 동학 패의 습격을 알리자 그가 극도로 흥분하여 동학에 대한 투쟁을 선언하면서 사람들을 선동한 것이 하나고(78~9쪽),30) 정신을 차 30) 호랑바위골 부락민들은 동학 패의 습격을 받은 뒤 다음날에는 다시 ‘관적’의 공격을 받았는데(76쪽), 윤천일에게 관적을 상대할 생각은 안중에도 없다. 이를 통해서도 동학에 대한 태백산맥의 부정적인 인식이 확인된다. 김사량의 태백산맥이 보이는 친일문학적 성격 167 린 다음날에 싸우러 가겠다는 길만 일행을 만나서는 행동에 옮기지 못 한 채로 ‘동지들’을 훈련시키고 ‘신성한 화랑의 정신’을 교육하겠다고 결 심하는 것이 다른 하나요(83쪽), 분교소 상사의 사주로 자신을 죽이러 온 포졸들을 상대하면서 김옥균을 구하러 가겠다 하는 것이 또 다른 하 나다(175쪽). 이들 중 나름의 서사를 이어가는 것은 동학 패와의 갈등이 다. 동학 투쟁에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곧장 ‘동지들’로 명 명된 부락민들에 대한 훈련 및 화랑 정신 교육 생각은 단지 생각으로 그칠 뿐이고, 김옥균 운운은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채 복지를 찾아가는 것으로 아예 없던 일이 되고 말아서, 이들은 순간적인 지향 이상이 되지 못한다. 이에 따라 윤천일의 새로운 지향성 중에서 태백산맥의 주요 주제 로 부상하는 것은 동학 관련 스토리라인에 담긴 이 소설의 동학 인식이 된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왜곡에 근거한 ‘비판을 넘어선 비난’에 다름 아니다. 동학을 그렇게 다룸으로써 태백산맥은 동학 비난과 더불어, 조선 백성이 역사적인 주체로 일어설 가능성을 전혀 생각할 수 없게 하 는 ‘조선인 절망론’을 다시 강화한다. 태백산맥에 동학 비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술자의 말을 통해서, 최제우가 ‘성경신(誠敬信)의 진수’를 발견하여 민중을 이끌었다 하고(77 쪽), 그가 “천주(天主)의 조화를 존중하고 천도의 상법(常法)을 따르며 천명을 우러르고 천리에 합하여만 한다”는 가르침과 “세상을 구하고 백 성을 평안케 하며 간사한 권력을 제거해야만 한다”는 정치사상을 품었 다고 하는 것이다(78쪽). 그렇지만 위 구절은 구색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만큼, 2절에서 지적 했듯이 동학 도적 떼의 악행의 서사가 이 소설 전반에 걸쳐 있고, 도적 떼와 동일시하여 동학 패를 비방하는 언급이 등장인물, 서술자, 작가의 말을 통해 작품 전편에 펼쳐진다. 168 현대문학의 연구 84 동학 관련 스토리라인에서 동학은 화전민들을 직접적으로 위협하여 생명을 앗아가고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악의 화신으로 형상화된다. 분교 소 소장은 성용삼의 가산을 빼앗은 것도 모자라 그 딸 봉이를 취하고자 한다. 그가 이끈 ‘동학이라든가 하는 놈들’은 호랑바위골을 휩쓸어 “닥치 는 대로 약탈하고 여자들을 겁탈하구 남자들은 쳐죽이는 난리”(76쪽)를 벌이며, 급기야 윤천일을 죽이러 배나무골로 들어오기까지 한다. 태백산맥의 서술자는, ‘때는 어지럽고 폭정에 저항하는 민란이 각 지에서 발발’하는 와중에 “동학의 흐름을 이어받는다는 교도들은 이 민 란을 틈타 나쁜 짓을 하고 있었다”(77쪽)라고 하여 동학을 사실상 화적 과 동일시한다. 최제우의 가르침과 달리 ‘무뢰배’들이 “이 종교를 악용하 여 산간이나 벽촌으로 들어가 우매한 민중을 농락하고 너무나 무참하게 그 생활을 유린하였다”(78쪽)는 것이다. 이 구절들만 보면 최제우 및 동학과 ‘무뢰배’를 분리해서 생각할 여지 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성용삼과 같은 ‘가련한 촉수’의 심리를 민간신앙이 횡행하는 메커니즘으로 설명한 뒤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써 ‘무뢰배’가 동학을 사칭하는 것이 아니라 동학의 일파 라고 단정하는 것이다. 이 민중의 신앙에 의한 종교성과 민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정치성에 의 하여 동학은 그 산하에 수많은 무지한 교도들과 시국, 정치사회에 대한 불 평분자들을 모았고 그 기세는 점점 무시할 수 없게 커졌다. 그리하여 정부 의 탄압을 받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대적인 정치 활동은 겁 없이 전개되 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그 종교성을 이용하여 우매한 민중을 미혹하고 그 삶을 유린하던 일파가 산간과 농촌에도 마수를 뻗치게 되었다. (164쪽)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서술자는 ‘이러한 원시적인 신앙을 미끼로 민중 을 미혹하려는 동학파’(165쪽) 운운하여 동학 패와 민중을 분리하기까지 김사량의 태백산맥이 보이는 친일문학적 성격 169 한다. 동학에 대한 명확한 역사 왜곡을 확장하는 것이다. 등장인물들도 동학에 대한 왜곡, 비난에 동참한다. 월정사 노승은 동 학을 잘 이용하라는 취지에서긴 하지만 “동학당이야말로 지금 이 나라 에서 가장 큰 힘이야. 각지에서 날마다 일어나는 민란들, 그것도 모두 관부의 포악에 반항하는 난민들을 동학이 음지에서 지도하고 있는 것이 라네”(142쪽)라 하여 동학을 난민의 조종자로 규정한다. 노승이 말한 바 동학의 활용이라는 방책의 가능성조차, 호랑바위골에서 동학 분교소 소 장의 주검이 확인되었을 때 일동이 월동에게 “내가 말했었지. 동학이란 이런 놈들이라고. 꿈에도 함께 일을 할 생각은 말아”(162쪽)라고 말하게 됨으로써 자취를 감추게 된다. 일동에게 있어 동학도들은 ‘고상한 동학 의 이념을 저버린 뻔뻔스런 도적놈들’에 다름 아니다(186쪽). 이 맥락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단연 작가 김사량의 말이 작품에 등장 하는 장면이다. 형인 일동은 그 뻔뻔스런 민중 생활의 파괴라는 점에서 그들을 도저히 가만둘 수가 없었다. 더구나 호랑바위골에서 동학계 도적단의 악행을 목격 한 지금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거기서부터 두 형제가 동학을 보는 눈은 완 전히 갈라졌고 나아가 서로의 정치적 행로도 달라지게 된다. 이 일에 관해 서는 작자는 제2부에서 동학란을 중심으로 서서히 규명해 갈 생각이다. (164쪽) 태백산맥 2부에 대한 구상을 작가의 말로 제시한 것인데 형제의 상이 한 행적에 따라 그려질 동학이 어떠할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위에서 정리한 대로 동학이 태백산맥의 스토리에서 도적 떼 수준으로 형상 화되고 서술자에 의해 민중을 착취하는 악의 존재로 규정되었음을 고려 하면 2부에서 규명하겠다 한 ‘동학란’의 동학 또한 그렇게 다루어지리라 고 예상하지 않을 수 없다.31) 170 현대문학의 연구 84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태백산맥은 작품의 거의 전편에 걸쳐서 동 학을 비난한다. 동학에 대한 이와 같은 부정적인 형상화와 왜곡된 규정 은 단지 동학 비판에 그치지 않는다. 태백산맥이 상정하는 조선 백성 이란, 도적 떼에 불과한 동학 패에게 유린당하는 무력한 존재이자 동학 이 미끼로 던지는 원시적인 신앙에 유혹당하는 무지한 존재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태백산맥은 동학 패와 더불어 조선 백성들까 지 폄하한다. 복지 찾기 서사의 바탕에 있던 ‘조선인 절망론’은 이렇게 동학 도적 떼 서사에서도 강력하게 환기됨으로써 이 소설의 주요 주제 로 부상한다. 이렇게 동학과 민중을 분리하고 둘 모두를 폄하함으로써 태백산맥은 일제의 조선사 왜곡 작업에서도 일익을 담당하게 된다. 이제 앞에서 밀어두었던 부차적인 주제의 하나인 윤천일의 산신 숭배 서사에서 드러나는 주제효과를 살펴본다. 눈앞에 닥치는 상황에 따라 순간적인 지향성을 보인다는 점에서 갈팡 질팡하는 성격의 소유자라 할 윤천일에게서 일관되게 확인되는 것은 산 신 숭배이다. 이미 지적했듯이 윤천일이 각성하는 것 자체가 산신령에 의해서이고, 이후 계속된 기원 끝에 그는 아들들을 떠나보낼 수 있었다. 산신에 대한 윤천일의 의지는 자심하여 매사에 산신의 뜻을 구하고 이 런저런 변화들도 산신의 계시가 아닌가 생각하는 수준이다. 부락을 떠 나겠다는 사람들과의 작별을 선언한 후 기러기 떼를 보고는 ‘신의 계시’ 라도 받은 듯 중얼거리기도 하고(71~2쪽), 투쟁에 나서자고 자신을 찾아 온 길만이 쓰러진 것을 자신의 곤란을 해결해 준 ‘신의 계시’라 생각하 며(84쪽), 화살 맞은 기러기를 봉이가 잡아 둔 것을 보고는 ‘길한 징조’요 31) 곽형덕은 바다의 노래(매일신보, 1943.12.14~1944.10.4)에서는 보다 ‘종합적’인 동학 인식이 드러난다고 보는데(김사량과 일제 말 식민지 문학, 소명출판, 2017, 362-363쪽), 그의 진단이 맞다면 맞는 만큼 태백산맥의 동학 인식은 부정적인 것이 라 할 수 있다. 김사량의 태백산맥이 보이는 친일문학적 성격 171 ‘산신님의 계시’ 운운한다(114~5쪽). 심지어 그는, 형제의 소식이 없어 절망한 끝에 죽을 자리를 찾다가 살 도리를 차린 뒤에조차 자신의 계획 을 허락받고자 산신을 찾는다(171쪽). 형제의 귀환을 축하하는 자리에 서 산신에게 영원히 보호해 달라 기원하는 것은 물론이요(190쪽), 자기 가 쏜 화살에 월동이 맞지 않게 된 것을 ‘신의 뜻’으로 받아들이기도 한 다(213쪽). 주인공 윤천일이 보이는 위와 같은 주술적 신앙심에서 태백산맥의 중요한 특징 하나가 생겨난다. 현실성 탈각이 그것이다. 리얼리즘과 모 더니즘을 거쳐 온 한국 근대소설사에서 산신령이 등장하고 주인공이 서 사 전편에 걸쳐서 그를 숭배하는 설정은, 우연의 남용과 더불어, 현실 재현의 소설 문법을 크게 벗어나는 퇴행이다. 1880년대 중반의 조선을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이라 해도 시공간 배경이 그렇게 확고한 이상 이 러한 비현실적인 처리는 예외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현실성으로부 터 벗어나는 장르소설 코드라 보는 것도 당대 사회에 대한 비판이 실제 차원이어서 용이하지 않다. 이렇게 보면, 주제효과를 편히 드러내고 강 조하는 수단으로 산신령을 등장시키고 그에 대한 숭배를 전면화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태백산맥이 보이는 이런 양상은, 국민문학 시기에 조선인 작가들이 취했던 전략적인 글쓰기인 지방 문학의 한 가지 시도라고 볼 수도 있다. 내선일체가 강제되는 상황에서 작품 활동을 계속할 수 있던 한 가지 유 력한 방식이 조선을 일본의 한 지방으로 설정하여 지방으로서의 특징을 살리는 것이었다. 그 결과로 조선적인 것의 명맥을 유지하며 나름의 특 성을 갖출 수도 있고 가장 긍정적인 경우에는 피식민자의 저항의 계기 를 담기도 하여 암흑기 민족문학의 성과가 될 수도 있다. 물론 태백산 맥이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그와는 달리 태백산맥은 당대의 조선 사회를 미개한 상태, 문명 이 172 현대문학의 연구 84 전의 상태로 형상화하는 길을 취하고 있다. 그 결과가 바로 윤천일의 행태가 구축한 바 산신에 종속된, ‘민간신앙, 정령신앙이 지배하는 야만 세계’이다.32)
이러한 세계상은 동학이 사교, 마교의 무리로 왜곡된 채 윤천일을 곤경에 빠지게 하는 서사 구도에 의해 한층 강화된다. 안주의 땅, 낙원을 지향하는 것 또한 사회와 절연된 낙원을 추구한다는 바로 그 사실로 인해 (일동의 포부와는 달리) 조선인이 근대 민족으로 출발할 자격이 없는 민족이라는 낙인을 강화하는 데 기여할 뿐이다. 요컨대 ‘미 개 상태에서의 미개한 방식의 바람’이 중심인물들의 지향에 의해 확인 되는 태백산맥의 주제효과이다.33)
32) 이러한 요소는 김사량이 1941년에 같은 내용을 보강하면서 연이어 발표한 <山の神 神(산의 신들)>(文藝首都, 1941.7), <山の神神(산의 신들)>(文化朝鮮, 1941.9), <神神の宴>(日本の風俗(滿洲·朝鮮·臺灣 特輯, 1941.10)에서도 보이는데, 산신 과 성황신, 신령, 무녀, 굿, 점 등이 이어지는 이 소설이 ‘일본의 풍속’ 중 ‘조선이라는 지방’ 특집으로 간주되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태백산맥이 산신 숭배의 민간신앙을 표나게 설정한 것 또한 일본 제국 내의 ‘지방’문학적 성격을 드러내려는 작가 의도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미 밝혔듯이 그 결과는 부정적이지만 말이다. 물론 조선(인)을 미개한 것으로, 미래 전망을 기대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태로 그렸 다 해도 그것이 조선적 특성으로 제시될 수는 있다. 이런 견지에서 태백산맥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본다면, 조선의 ‘지방성’을 부정적인 면에서 강조하는 것이 ‘내선 동근론’, ‘내선일체론’ 등과는 거리를 두게 된다는 점에서,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에 추진해 온 동화 정책 곧 조선을 일본 내지와 동일하게 다루려는 포섭 정책을 거부하 고 그 이전 단계인 배제의 대상 즉 식민지로 남아 있고자 하는 바람의 표현으로 읽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악을 미루기 위해 차악을 선택하는 형국에 불과하여 높이 사 줄 만한 것이 못 된다. 태백산맥에 그려진 조선의 왜곡, 자민족 비하라는 사실이 그런 해석으로 지워지지는 않는 까닭이다. 일본 제국이 자신이 점령한 지역들, 역내에 편입된 지역들을 다루는 데 있어 적용한 기본적인 두 가지 정책인 포섭과 배제에 대해서는, 오구마 에이지, ‘국민’의 경계 –오키나와, 아이누, 타이완, 조선, 전성곤 옮김, 소명출판, 2023, 20-21쪽 참조.
33) 이렇게 1880년대 조선을 ‘미개’로 덮어씌움으로써 태백산맥은, 김사량이 ‘내지인 친구와 비평가’에게서 ‘지나치게 자학적이라는 말’을 듣는 ‘역효과’를 불러온 <천마> 의 실패한 지향(김사량, 「조선문화통신」, 현지보고, 1940.9: 김사량, 작품과 연구 2, 김재용·곽형덕 편역, 역락, 2009, 331쪽)을 과거로 확장하여 재차 실패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태백산맥의 이상과 같은 처리는 제국주의의 식민지 규정이 보이는 일반적인 특징 곧 식민지를 문명화 이전의 상황에 머물러 있는 야만 상 태로 규정하고 식민 지배를 통해서 문명 단계로 끌어올린다는 주장에 포섭된 결과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소설이 발표된 상황과 관련해서 말하자면, 이러한 주제효과는 결국 일동이 선망한 일본 사례(128쪽)를 따르는 것, 노승이 제안한 바 일본에 의한 근대화밖에는 달리 길이 없었 다는 식민사관에 귀착된다.
이렇게 태백산맥은, 윤천일의 산신 숭배 를 종축으로 하고, 굿판을 벌이는 왕궁이나 각종 사교(邪敎)와 마교(魔 敎)에 휘둘리는 백성들, 이들을 착취하는 동학계 도적단 등을 횡축으로 하여, 당대의 조선 사회와 조선인을 일제의 식민 지배를 통한 문명화가 필요한 미개 사회로 규정하는 방식으로 대동아공영권론에 편승하는 시 대적 의의를 획득한다.
지금까지의 검토를 통해 확인한 태백산맥의 주제효과를 위계에 따 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 소설의 대표적인 주제는 1880년대 조선에 미래는 없다는 ‘조선 절망론’이다.
이 주제는 한일병합의 필연성을 강력 히 환기함으로써 내선일체, 대동아공영권론의 홍보 효과를 띤다.
둘째 로 두드러지는 주제는 동학에 대한 왜곡과 비난이다. 여기에 ‘조선인 절 망론’이 수반된다.
그다음은 ‘조선 미개 사회론’이다. 태백산맥에는 산 신 숭배, 민간신앙이 횡행하고 사교가 판을 치는 양상이 한껏 강조되어, 설령 작가가 제국 내의 지방 문학을 지향했다 하더라도 그 결과는 제국 에 의해 문명개화의 길로 인도되어야 할 예정된 식민지, 내재적 역량 부 재의 야만 상태를 형상화한 것에 지나지 못하게 되었다.
이 외에 ‘복지 의 희구’와 그 서사의 근본으로 설정된 ‘새로운 인간의 창출’도 간과할 수 없는 주제 중의 하나인데, 앞에 정리한 보다 지배적인 주제들과 연동 되면서, 자체의 의미에 더해서 황국신민, 총후 국민의 연성을 환기한다.
전체적으로 보아 태백산맥은 이 소설이 연재되던 때에 일제가 표방 하고 강제했던 시책들 일반을 충실히 반영했다고 할 수 있다.34)
34) 이에 역행하는 것으로 읽힐 수도 있는 요소들 곧 새로운 사회에 대한 추구, 새로운 국민의 형성 구상, 당파를 뛰어넘는 화합에의 소망, 고통받는 약자에 대한 동정, 화전에 대한 경계, 아리랑과 같은 조선적인 것의 소개, 화랑의 임전무퇴를 강조하는 수련 등은 각각 따로 떼어내자면 떼어내어 긍정적으로 지적할 수도 있겠지만(이러 한 경우의 극단적인 예로 김학동, 재일 조선인 문학과 민족 –김사량, 김달수, 김석 범의 작품 세계, 국학자료원, 2009; 이자영, 「김사량의 태백산맥론 –작가의 민족의 식을 중심으로」, 일본문화연구 제34호, 동아시아일본학회, 2010, 391-410쪽을 들 수 있다), 그렇게만 처리하는 것은, 이들 모두가 앞에 말한 보다 뚜렷한 주제들을 나타내는 서사와 서술에 속해 있거나 연동되어 있는 사실을 무시한 채, 작품에서 평자가 보고 싶은 구절만을 주목하는 주관적인 작품 왜곡을 벗어나기 어렵다. 그보다는, 이러한 요소들이 하나의 전체인 작품 속에 놓인 채로 태백산맥이 발표 되고 읽히는 상황과 관련해서 함축하게 되는 바 일제 시책에의 부응 측면을 심각하 게 직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들 요소가 일제 말기의 담론장에서 친일적으로 왜곡 되어 있는 경우는 특히 문제적인데, 화랑의 상무 정신이 대표적인 예이다. 신채호가 민족문화의 원류로 강조한 화랑도의 상무 정신은 일제 말기에 와서 학병 지원을 권유 하는 언설의 단골 소재로 쓰였다(이에 대해서는, 서희원, 「한국 근대 유행가에 표상 된 ‘신라’」, 황종연 엮음, 신라의 발견, 동국대학교출판부, 2008, 170-171쪽 참조). 이를 생생하게 확인해 볼 수 있는 좋은 예가 학병 권유차 동경에 간 최남선과 이광수 가 나눈 대담이다(최남선·香山光郞·마해송, 「東京對談」(조선화보, 1944.1), 김윤 식 편역, 이광수의 일어 창작 및 산문선, 역락, 2007, 205-11쪽).
Ⅳ. 태백산맥의 평가 문제
김사량의 태백산맥이 처음 연재되었을 때 편집 후기에 해당하는 자리에서 김종한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김사량 씨의 태백산맥은, 6회로 나누어 연재해 가는 것으로 한다. 새 로운 조선의 동트기 전을, 빛과 그림자로 호화롭게 엮은 그림은 깊은 사색 의 끝에 이루어진 것이니만큼, 김사량 씨 자신에게도 획기적인 발포(發砲) 가 될 것이다. (국민문학, 1943.2, 168쪽)
김종한이 태백산맥을 두고 ‘획기적인 발포가 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깊은 사색의 끝에 이루어진 것’이라는 구절이 힌트가 된다. 김종한이 읽었을, 김사량이 작가로서 행 한 깊은 사색이 글로 나타난 데에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때 주목되 는 것이 다음과 같은 글이다.
내 자신도 역시 반도를 생각하며 우는 한 마리 작은 개구리에 지나지 않는 다고 생각하므로, 어떠한 개구리가 되어야만, 즉 어떠한 소리를 내야지만, 진정으로 그것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게다가 정말로 자신의 반도를 사랑하 는 길이 될까 하고 여러모로 괴로워하고 고민하고 있다. 하늘의 뜻에도 따 르고, 땅의 요구에도 부합하며, 그리고 반도 사람들을 위하는 것도 되며 시 대의 호흡에도 통할 수 있는 울음소리를 깨우쳐서, 나는 이제부터 한평생 고향을 생각하며 울음을 그치지 않으리라. 그것이 또한 더 나아가서는 일본과 동양을 향한 사랑, 세계를 향한 사랑 이라고도 생각한다.35)
35) 김사량, <故鄕お鳴く(고향을 운다)>, 甲鳥, 갑조서림, 1942.1.31: 김사량, 작품과 연구 2, 김재용·곽형덕 편역, 역락, 2009, 242-243쪽.
1942년 1월에 쓴 이 글에는 김사량 자신의 작가적 자의식과 지향이 짙게 드러나 있다.
조선 반도를 작품화하는 일은 어떻게 써도 내지인들 이 쓰는 일본 문학과 똑같을 수는 없다는 사실의 인식에서 그의 작가로 서의 고민이 시작되고 있다.
이러한 차이를 인정한 위에서, 반도 사람들 을 위하고 시대의 호흡에도 통하며 일본을 향한 사랑이 되는 작품을 쓰 겠다는 결심을 보이고 있다.
조선인을 반도 사람이라 칭하고, 이들을 위 하는 것이 동시에 일본을 사랑하는 것이 되려면, 조선인이 조선인이 아니라 일본인이어야 한다.
내선일체를 받아들인 위에서야 할 수 있는 말 이다. 이로써, 1942년의 김사량이 내선일체를 진지하게 작품화하려는 결심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이것이 과한 추론이 아님은 같은 해 4월에 쓴 글에서 확인된다.
소설집 고향의 발문을 통해 김사량은 다음처럼 말한다. 고향을 사랑하고 또한 그것을 살리는 방도로서, 나는 진작부터 주요한 테 마로 추구해온 방향에 따라서, 내적 진실성을 규명하려 했다.
내선의 일체 화는 진실로 이상적인 형태로 달성돼 가고 있다. 거기에는 더욱이 여러 가 지 곤란한 점을 내포하고 있지만, 절실한 과제이다.36)
일찍이 김재용이 ‘우회적 글쓰기’ 37)라고 지칭했던 바 고향에 주목해 온 자신의 창작 경향을 김사량은 ‘내적 진실성의 규명’으로 정리하고, 그 것이야말로 ‘이상적인 형태의 내선일체화’라고 주장하고 있다.
36) 김사량, ‘跋文’, 故鄕, 갑조서림, 1942.4: 김사량, 작품과 연구 2, 김재용·곽형덕 편역, 역락, 2009, 272쪽.
37) 김재용, 협력과 저항 –일제 말 사회와 문학, 소명출판, 2004, 2부 4장 참조.
문명으로 부터 떨어진 것으로 그려지는 조선, 지나친 자학이라고 평가되기도 할 만큼 비하적으로 형상화된 조선인 등으로 자신의 고향, 조선적인 것을 내지에 알려온 자신의 문학 세계가, 이상적인 형태로 내선일체를 달성 해 간 것이라는 자부심이 읽힌다.
곤란한 점을 내포한 절실한 과제라는 말에서는 진정성이 느껴지고, 타인에게 권하는 의욕까지 보인다.
작가만이 할 수 있는 이러한 진정은 태백산맥 연재 1회를 쓰기 1년 도 안 되는 시점에 토로된 것이다.
당시 조선 내 유일의 문학 매체인 국민문학을 꾸렸던 김종한이 이를 몰랐으리라고 추정하는 것은 자연 스럽지 않다.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알고 있었기에 저러한 장담을 공식화 했을 것이다.
태백산맥은 김종한의 기대에 얼마나 부응했을까. 상당히 부응했다 고 볼 수 있다.
‘내선일체화’를 달성하는 방식으로 고향 조선의 ‘내적 진 실성’을 그려낸 것이 고향에 실린 <벌레>, <향수>, <도둑놈>, <산의 신들> 등이었는데, 조선의 지방성을 이렇게 그리는 방식이 한층 강화된 결과가 바로 태백산맥의 배나무골인 까닭이다.
김사량이 언급한 ‘내 선일체’ 면에서는 이 글에서 검토한 대로 태백산맥이 하나의 매듭을 지은 셈이다.
사정이 이러해서 1942년 1월과 4월에 쓴 글의 자세가 태백산맥을 연재할 때도 이어졌다고 보는 것은 자연스럽다.
역시나 친일문학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바다의 노래를 이후 연재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더욱더 달리 생각할 여지가 없다.
태백산맥에서 노마만리로 이어 지는 양 태백산맥을 김사량의 이후 행적에 기대어 고평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요컨대 1940년대 초에 김사량이 생각했던 과거 조선은 태백산 맥이 보인 대로, 미개하고 발전 가능성이란 없어서 일본의 한 부분이 되어야만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예정된 식민지였다고 하겠다.
이러한 논의를 펼치는 것이 작가의 정신세계 자체가 친일이었음을 증 명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이 글이 검토하여 얻은 결론 곧 태백산맥 은 친일문학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당시 김사량의 작가적 자의식의 표 백이 부정하지 않으며 더 나아가 보증해 준다는 것을 확인해 두는 것일 뿐이다.
주지하듯이 김사량은 해방 후의 한 좌담회에서 이태준에 대응하여, 우리말을 쓸 수 없는 상황에서 일본어로 창작했더라도 ‘무엇을 어떻게 썼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38)
38) ‘봉황각의 좌담회’ 기록인데 김윤식의 임화 연구, 문학사상사, 1989, 576-577쪽을 참조했다.
일본어로 썼더라도 일제의 시 선에 맞서서 식민지 현실을 식민지 현실로 부각했다면 그것은 협력 속의 저항에 딱 부합하든 아니든 그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김사량의 작품 대부분이 이런 맥락에서 친일문학이 아니다.
그렇지만 태백산맥 (과 바다의 노래)만큼은, 이 글에서 상세히 확인한 대로, 1880년대의 조선 상황을 왜곡하고 동학을 위시하여 조선 백성을 비하하면서 한일병 합이 필연적이라는 식민사관을 강조하는 주제효과를 드러내고 있으므 로 친일문학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태백산맥을 친일문학으로 명시하지 않는 논의들이 공통으로 기대 는 대표적인 근거로 임종국의 평가를 볼 수 있다.
그는 친일문학을 쓴 기성작가 28인 중의 하나로 김사량을 다루면서도 ‘강한 로칼리즘에 비 해서 시국적 선동력은 미약’(207쪽)했다고 하였다.
태백산맥에 대해서 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맥맥히 흐르는 민족의식과 향토에 대한 애착심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것 뿐이다. 설익은 시국적 설교도 없거니와 어릿광대 같은 일본 정신의 선전 도 보이지 않는, 그렇기 때문에 이 장편은 비록日語로 써졌을망정 얼른 친 일 작품으로 단정하기가 어려운 작품이었다.39)
39) 임종국, 친일문학론(1966) 증보판 2쇄, 민족문제연구소, 2003, 203쪽.
‘얼른 친일 작품으로 단정하기 어려웠다’ 하였으니 친일문학이기는 하다는 말일 텐데, ‘설익은 시국적 설교’도 ‘일본 정신의 선전’도 없다 하 여 빤한 친일 소설은 아니라 하였다.
‘민족의식과 향토애’를 보여 준다는 데서는 친일문학이 아니라고도 읽힐 법하다.
그러나 28인 중의 하나로 다루면서 태백산맥을 작품 요약까지 하며 다루었다는 사실을 중시해 야 한다.
일단 친일문학으로 산정해 둔 것이다.
임종국이 태백산맥을 친일문학으로 보았느냐 여부에 대한 선행 연 구들의 입장을 정리하는 것은 생산적인 일이 아니다. 정작 중요한 문제 는 임종국이 태백산맥에 대해서 분석다운 분석을 행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민족의식과 향토애’를 어디서 어떻게 찾을 수 있을지 이 글은 알 수 없다.
이 글의 2~3절을 통해 길게 밝힌 대로 텍스트 분석을 상세 하게 진행한 결과 사실이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소설의 내용적 효과가 텍스트 문면에 쓰인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 한, 시국적 설교와 일본 정신의 선전이 없다 한 데도 동의하기 어렵다.
역시 이 글에서 밝힌 대로 태백산맥은 일제의 시책과 역사관을 문학적으 로 환기하는 내용을 형식을 희생하면서까지 갖추고 있는 까닭이다.
요 컨대 임종국 자신이 제시한 기준에 비추어 보더라도 태백산맥은 친 일문학에 해당한다.
이 글의 분석에 더해 바로 앞에서 확인한 김사량의 작가적 자의식까 지 함께 고려할 때, 태백산맥에 그려진 조선(인)이란 일본 제국주의자 의 조선(인) 인식을 그대로 따른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에드워드 사이드 식으로 표현하자면 태백산맥은 ‘조선의 조선화’를 수행한 작 품이다.
갑신정변 전후의 조선 상황을 일제 식민사관이 왜곡한 대로 형 상화하고 강조한 것이다. 친일문학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40)
‘(실제) 조선의 (일본이 그려낸) 조선화’가 비단 김사량이나 조선에 국 한하지 않고 식민지에서는 일반적으로 혹은 필연적으로 그러한 것이어 서 특기할 만하지 않다고 보는 입장도 가능할 수 있다.
민족문학 담론 자체를 식민주의의 산물로 보고, 민족주의 자체를 제국주의의 식민화에 의해 산출된 것으로 볼 때, 그러한 논리가 추상 차원에서 성립될 수 있 다.41)
40) 친일문학 규정 문제를 세밀하게 다룬 류보선의 분류 기준을 따를 경우, 태백산맥 은 ‘동양체제에 대한 관심을 보여 일본 중심의 대동아공영권론에 찬동하는’ 일 단계 친일문학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류보선, 「친일문학의 역사철학적 맥락」, 한국 근대문학연구 제4권 제1호, 한국근대문학회, 2003, 19-22쪽 참조.
41) 김철과 황종연이 이러한 논리를 보인 바 있는데, 김흥규가 이에 대해 설득력 있는 비판을 진행했다(김흥규, 「한국 근대문학 연구와 식민주의 -김철, 황종연의 담론틀 에 관한 비판적 검토」, 창작과비평 제38호, 창비, 2010).
그러나 주지하듯이 논리는 실제에 앞서지 않는다. 외국을 읽어 낸 논 리가 한국에 그대로 적용될 수도 없다. 굳이 이렇게 따지지 않더라도 여전히 문제가 있다. 특기할 만하지 않다는 식의 판단이 세계사가 보인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자는 것은 아니라면, 태백산맥의 경우처럼 일제 에 의해 만들어진 식민사관의 수용이 우리의 역사와 실제의 왜곡이라는 사실과, 바로 그런 한에서 반민족적이고 친일적이라는 평가는 엄정히 지켜져야 하는 까닭이다. 일제 말기 한국 문인의 친일은 어느 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듯이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일 수 없다. 좌파 지식인의 전향이 그렇듯이 친 일에 들어서는 일 또한 치열한 고투의 결과일 것이다.42)
42) 친일 문인의 대표격인 이광수조차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구속되는 갈림길에서 친 일적인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호테이 토시히로, 「일제말기 일본어 소설 연구」, 서울 대 석사학위논문, 1996, 90쪽). 개인 차원에서 볼 때 불가피한 측면이 분명히 있었던 것이다.
적어도 김사량 의 경우는 그렇다고 볼 필요가 있다. 그가 노마만리의 작가라는 사실 은 고려해야 마땅한 까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백산맥은 친일문 학이다. 노마만리의 작가이기 전에 김사량은 <故鄕お鳴く(고향을 운 다)>의 필자이고 소설집 고향의 발문을 쓴 작가이며 그 연장선상에 서, 이 글이 밝힌 대로 친일문학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태백산맥을 쓴 까닭이다. 이 작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선행 연구들이 이 작품에 선행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이 글의 견지에서 볼 때, 이 사실이 변할 수는 없다. 이러한 판단은 작가에 대한 매도가 아니다. 태백산맥에 대 한 평가일 뿐이다. 이러한 평가가 민족주의 담론에 갇혀 있는 것이라고 매도되어서도 곤 란하다. 이 글이 그 어떤 이론도 절대적인 것인 양 전제하지 않기 때문만이 아니라, 민족주의는 죽은 개가 아니며 죽은 개일 수도 없는 까닭이 다.
식민지 시대를 다루면서 민족주의를 넘어서야 한다고 말하는 식으 로 민족주의를 사실상 폐기하는 것은, 식민지를 식민지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식민 지배자의 입장에서, 오리엔탈리즘의 입장에서만 보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친일문학에 대한 민족주의적인 연구가 경계되어야 하는 것은 일도양단적인 단순 논리로 선규정을 내린 후에 작품의 실제 를 제대로 보지 않거나 작품의 의미 평가를 외삽적으로 할 때뿐이다.43)
43) 민족주의적인 친일문학 연구가 회피되고 위축된 또 하나의 이유는 ‘민족주의로는 제국주의에 맞설 수 없다. 제국주의야말로 민족주의가 발전한 것이기 때문이다’라 는 식의 단순 논리이다. 이는 무력에 실효 있게 맞서고 부딪치는 것은 무력이라는 자명한 사실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현실성이 전혀 없는 형식논리에 불과하다. 친일 문학 연구에서 필요한 것은 민족주의의 손쉬운 폐기가 아니라 민족주의에 대한 진 전된 이해이다.이를 이 글에서 다루는 것은 주제를 벗어나기도 하거니와 역량의 부족으로 기대하기 난망한 일이다.이와 관련해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발전시키 는 데 있어 참조할 만한 방안 하나를 생각해 보자는 제안으로 그친다.민족주의가 식민주의 사상 및 식민 지배자의 오리엔탈리즘에 현실적이고 정치적으로 맞서는 것이며 따라서 이 대립 관계에서의 기능을 살리는 방식으로 민족주의 연구가 계속 될 필요가 있다는 빠르타 짯떼르지의 민족주의 사상과 식민지 세계가 그 하나이 다: 이광수 역, 그린비, 2013, 83-96쪽.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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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요약
김사량의 태백산맥이 보이는 친일문학적 성격 박상준 일제 말기 김사량의 소설 세계는 조선적인 것을 살리는 방식으로 암 흑기 상황에 저항한 성과라고 두루 말해져 왔다. 친일문학이 아니라고 평가되어 온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전 소설들과 달리 태백산맥(1943) 은 친일 작품이다. 이 글은, 태백산맥이 보이는 인물 구성과 서사 구 성상의 특징을 면밀히 분석한 위에서, 한편으로는 서술자와 일체가 되 어 있는 주인공들의 지향을 다른 한편으로는 이 소설의 주된 스토리라 인들을 검토하였다. 그 과정에서 확인된 내용적 요소들을 정리하여 주 제효과를 해석하면서, 그러한 주제효과들이 이 소설이 연재되던 상황에 서 어떤 의미를 띨 수밖에 없는지를 추론하였다. 이를 통해 태백산맥이 친일문학적인 작품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태백산맥은 ‘조선 멸망론’, 동학의 왜곡과 비난, ‘조선인 절망론’, ‘조선 미개 사회론’ 등의 주제효과를 발하고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한일병합 이 필연적이라는 일제의 식민사관과 당시 일본 제국주의가 표방했던 대 동아공영권론을 주장하고, 일제가 식민지 조선에 강제했던 내선일체론, 황국신민화, 총후 국민 연성 등의 시책에 자연스럽게 부응했다.
핵심어 : 김사량, 태백산맥, 친일문학, 동학, 조선 비하, 지방성
❚Abstract
The Characteristics of Pro-Japanese Literature of Kim Sa-ryang’s Taebaeksanmaek[太白山脈]
Park, SangJoon
It has been said that Kim Sa-ryang’s novels of the late Japanese colonial period were a result of resisting the dark age by preserving things Korean. It has been evaluated as not being pro-Japanese literature. However, unlike his previous novels, Taebaeksanmaek[太白山脈](1943) is a pro-Japanese work. This article closely scrutinized the characteristics of the character structure and narrative structure of Taebaeksanmaek, and based on that result, examined the main storylines of the novel on the one hand, as well as the aspirations of the protagonists who are in unity with the narrator on the other. By organizing the contents confirmed in the previous work and interpreting the thematic effects, this article inferred the meanings that could not have been avoided in the circumstances of the late Japanese colonial period in which the novel was serialized. Through this, it was concluded that Taebaeksanmaek is a pro-Japanese literary work. Taebaeks anmaek has thematic effects s uch as the ‘theory of Joseon’s destruction’, the distortion and criticism of Donghak[東學], the ‘theory of Joseon’s despair’, and the ‘theory of Joseon’s underdeveloped society’. In this contexts, Taebaeksanmaek repeated the colonial view of history that the Japan-Korea annexation was inevitable and ‘the Greater East Asia Co-Prosperity Sphere’ theory advocated by Japanese imperialism at the time. It also naturally met the demands of the policies enforced by Japan in colonial Korea, such as the theory of the unification of Korea and Japan, imperialization of Koreans, and the national solidarity in the rear during wartime.
Key-Words : Kim Sa-ryang, Taebaeksanmaek[太白山脈], Pro-Japanese Literature, Donghak [東學], Disparagement of Joseon, Locality
2024년 9월 8일 접수 2024년 9월 27일 심사 2024년 10월 6일 게재확정
현대문학의 연구 8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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