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리얼리즘을 넘어서
Ⅱ. 이데올로기 ㆍ 형식 ㆍ 심리
Ⅲ. 리얼리즘의 유연성을 위하여
Ⅳ. 효용론의 위상
Ⅴ. 포스트리얼리즘의 선구
Ⅰ. 리얼리즘을 넘어서
리얼리즘을 넘어서(1995)는 이선영(1930-2021) 교수의 연세대 재직 시절 마지막 저서로 알려져 있다.
정년을 앞둔 노학자, 그것도 평생을 리얼리즘 문학 연구와 비평에 투신해온 연구자의 마지막 저서의 제목치 고는 다소 문제적이다. 그는 어째서 리얼리즘을 넘어서고자 했던 것인 가.
그리고 리얼리즘을 넘어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의 비평론은 아마도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밝혀질지도 모르겠다.
우선 그와 같은 제목을 선택하게 된 배경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뒤돌아보건대 과거 나 자신이 문학을 지나치게 사회적 관계에서만 보려 고 하는 경향이 강했던 반면, 그것을 개인적 산물이라는 측면에서 보는 것 에 대해서는 소홀히 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그동안 내 문학 공부의 입장이라는 것이 문학의 이 두 가지 측면 가운데 개인적 측면보다는 집단의 측면을 일방적으로 중시해온 셈이다.1)
1) 이선영, 「책 머리에」, 리얼리즘을 넘어서, 민음사, 1995, 7쪽.
말하자면 그 제목은 문학 연구와 비평에 대한 일종의 ‘자기반성’의 뜻 을 담고 있다는 뜻이다.
그 내용은 과거 문학 연구의 편향성에 대한 반 성을 포함한다.
즉, 그동안 자신의 연구가 문학의 사회적, 집단적 측면 에만 주목하였고, 그에 따라 개인적 측면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부 족했다는 고백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사회에서 개인으로 문학 연구의 범위를 확장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른바 거시적 연구에만 한정하지 않고 미시적 연구까지 내려가서 살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때 사회에서 개인으로, 거시적 지평에서 미시적 지평 으로 연구의 시야를 넓힌다는 것이 일종의 ‘전향 선언’처럼 읽힐 것을 우려한 것처럼 보인다.
서둘러 이렇게 덧붙이고 있다.
자신의 주장이 “집단이나 사회적 관계를 배제하고 그 개인과의 관계만을 주목하자는 것이 아니”(같은 쪽)라고 말이다.
다만 이제부터 “문학의 이 두 가지 측 면”의 “상호관련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비평 방법을 구체적으로 거론하면서 재진술된다.
그 에 따르면, 과거의 리얼리즘적 비평 방법은 “이데올로기 분석 중심”이었다는 것이다.
그 반대편에는 “심리 분석”이나 “형식 분석 중심의 방법”이 있어서, 리얼리즘적 비평과 대립하였다.
‘이데올로기’ 중심의 비평 방법 은 ‘심리’와 ‘형식’ 중심의 비평 방법과 더불어 비평의 양극단 지점에 머 물러 있었던 것이다.
그의 ‘자기반성’은 이데올로기 비평에만 머물지 않 고 심리와 형식에 대한 관심을 포함할 가능성을 담고 있다.
이렇게 ‘이 데올로기’, ‘심리’, ‘형식’의 지평을 모두 고려하는 비평이 ‘새로운 비평’이 고, 그것이 곧 ‘리얼리즘을 넘어서’의 지점을 가리킨다.
Ⅱ. 이데올로기 ㆍ 형식 ㆍ 심리
그렇다면 언제부터 이선영은 ‘리얼리즘을 넘어서’는 비평 방법의 필 요성을 생각했던 것인가?
리얼리즘을 넘어서에는 그와 관련된 다음 과 같은 진술이 포함되어 있다.
2년 전에 필자는 우리 문학의 연구 방법, 특히 종래의 민족문학적 내지 리 얼리즘적 방법에 이제 새로운 변화가 요청되고 있음을 말한 바 있다. 그러 나 그 변화는 기본적으로 리얼리즘적이고 변증법적인 시각을 견지해야 하 며, 그럼으로써 이 시대에 뜻있는 방법론의 진전이 가능하다고 하였다. 그 것은 그런 시각이야말로 이를테면 민족 내지 인류의 문제를 올바른 연구의 차원에서 끌어안을 수 있으며 그런 시각 자체 속에 이와 모순 대립되는 여 타의 방법까지도 변형・수용하여 더욱 유익한 방법론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2)
2) 이선영, 「한국문학 연구의 새 지평」, 리얼리즘을 넘어서, 민음사, 1995, 127쪽. 6
이 글(「한국문학 연구의 새 지평」, 1995)에서 언급된 “2년 전” 논문이 란 「리얼리즘과 한국 장편소설-새로운 연구방법의 시도」(1992)를 가리킨다.
그 논문은 논문의 부제가 말해주듯 리얼리즘 연구 방법에 ‘새로움’ 을 도입하자는 취지를 담은 글이다.
1992년 직전부터 그는 ‘리얼리즘을 넘어서는’ 새로운 비평 및 연구 방법의 필요를 절감했다는 것이다.
그리 고 그러한 입장은 적어도 리얼리즘을 넘어서가 발간되는 1995년 시점 까지 이어진다.
인용문에 따르면, ‘새로움’의 요구는 개인적 각성의 경험이 아니었다.
그 무렵에는 “종래의 민족문학적 내지 리얼리즘적 방법에 이제 새로운 변화가 요청되고 있”다는 인식이 널리 팽배했던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이 글(「한국문학 연구의 새 지평」, 1995)의 최초 발표 지면을 확인할 필 요가 있다.
사실 이 글은 본래 민족문학사연구소3)에서 기획한 저서 민 족문학과 근대성(1995)을 위해 기조적 성격의 논문으로 작성된 것이 다. 저서의 제목은 당시 ‘근대성’ 논의가 연구자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지 던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사회주의권의 몰락 이후 1990년대부터 포스 트모더니즘이 ‘탈근대’ 담론과 더불어 확산되었고, 그에 맞서 민족문학 진영에서는 ‘근대성’을 발본적으로 재검토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4)
3) 진보적 문학 연구 단체인 민족문학사연구소는 이선영과 임형택을 공동대표로 하여 1990년 4월 연세대학교 알렌관에서 창립 총회를 개최하였다.
4) 근대성 담론은 1990년대라는 시대의 대표적인 자의식을 구성하게 된다: 황정아, 「근 대성의 판타지아 – 1990년대 한국문학의 근대성 담론」, 개념과 소통 제25호, 한림 과학원, 2020, 117-145쪽 참조.
그 런 의미에서 민족문학과 근대성의 기조 논문에 해당하는 이선영의 글은 민족문학 진영 전체의 고민을 대변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자기 반성’이란 것도 순전히 개인적 고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집단적 각성 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와 관련된 추가적 진술은 다음과 같다.
원칙 없는 절충주의에서가 아니라 발전을 위한 유연성의 차원에서 볼 때, 우리는 그동안 문학・예술의 리얼리즘이나 모더니즘에 대해서 너무 협소 하고 경직된 시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한다. 엄연히 존재하 는 모더니즘 내지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실체와 그 긍정적인 이용 가능성을 무시하거나, 급속한 변화와 다양성을 지닌 현실에 대해서도 최선의 원근법과 전체적 파악을 단념할 수는 없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다.5)
인용문에서 “우리의 입장”이 누구의 목소리인지는 분명하다.
민족문 학사연구소를 중심으로 하는 민족문학 진영 전체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는 생각이 반영된 까닭이다.
그래서 이 글은 선언문을 연상시키는 단호 한 어조로 서술되어 있다.
당시만 해도 리얼리즘과 모더니즘(혹은 포스 트모더니즘)을 일종의 진영의 논리에 근거하여 대립적인 세력으로 이해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던 것이다.
이른바 사회주 의권의 몰락, 탈근대성 담론의 확산,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의 약진 등으로 민족문학=리얼리즘 진영은 ‘강요된 화해’의 압력을 받게 되었다.6)
5) 이선영, 「한국문학 연구의 새 지평」, 리얼리즘을 넘어서, 민음사, 1995, 117쪽.
6) 1990년대 중반부터 등장한 문학동네의 문학주의와 당시 유행했던 근대문학의 종 언(가라타니 고진) 담론은 사실상 ‘민족문학의 종언’을 재촉하고 있었다. 따라서 “1990년대 초반 최원식, 이선영, 백낙청이 공유한 민족문학론의 긴급한 과제 중 하나 가 모더니즘의 재인식”일 수밖에 없었다: 이철호, 「해금 이후 90년대 학술장의 변동 – 근대성 담론의 전유와 그 궤적」, 구보학보 제19호, 구보학회, 2018, 18쪽.
인용문 에서처럼 “발전을 위한 유연성의 차원”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때 유연성이란 “리얼리즘이나 모더니즘에 대해서 너무 협소하고 경직 된 시각”을 폐기하고,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이용 가능성”을 고려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다만 “현실”에 대한 “원근법 과 전체적 파악”은 포기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말하자면, 모더니즘 진영에 대해서 개방적 태도를 취하되, 리얼리즘 의 원칙을 최대한 고수한다는 ‘모순된’ 입장이 도출된 것이다.
이러한 관 점을 처음 드러낸 것이 1992년의 논문 「리얼리즘과 한국 장편소설-새로운 연구방법의 시도」이다.
이 논문에서 그는 리얼리즘적 연구방법과 “모 순 대립되는 여타의 방법까지도 변형・수용하여 더욱 유익한 방법론으 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는 기대를 보여주었으며,
그러한 믿음은 리 얼리즘을 넘어서의 발간 시점까지 이어졌다. 앞서 보았듯, 그 중심 키 워드는 ‘이데올로기’와 ‘형식, 심리’로 집약된다.
Ⅲ. 리얼리즘의 유연성을 위하여
이때 그에게 새로운 연구방법의 가능성을 보여준 이론가가 바로 프 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이다.
이선영은 1992년의 논문에서 제임 슨의 정치적 무의식(1981)을 거론하고 있는데, 거기에서 그는 새로운 연구방법의 모델을 발견한다.
미국의 마르크스주의 문학이론가 제임슨 은 국내에는 이미 마르크스주의와 형식(1971)7)의 저자로 소개된 바가 있으나, 정치적 무의식은 아직 번역되지 않았던 때였다.8)
1990년대의 이선영이 제임슨의 작업에 끌렸던 데에는 이유가 없는 것 이 아니다.9)
7) 국내에는 변증법적 문학이론의 전개(1984)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8) 정치적 무의식은 2015년이 되어서야 뒤늦게 번역되었다. 이선영은 당시 일역본 (1989)을 참조했다고 밝히고 있다.
9) 이는 그의 연구년 기간과도 관련되어 있다. 그는 마지막 연구년을 미국 인디애나주 립대학에서 보냈는데, 그 시기에 제임슨의 저서를 접했을 가능성이 있다.
무엇보다도 제임슨의 이론적 작업은 당시 이선영이 지향하 고자 했던 “발전을 위한 유연성의 차원”에 정확히 어울리는 행보를 보이 고 있었던 까닭이다.
국내에 소개된 저서(마르크스주의와 형식)만 보 더라도 그의 관심은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달리 ‘형식’에 집중되어 있었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마르크스주의는 ‘내용’에 치 중하고, ‘형식’은 마르크스주의와 대립하는 진영10)의 관심사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제임슨은 마르크스주의자의 관점에서 ‘형식’을 논할 수 있는 가 능성을 모색했던 것이다.11)
이른바 ‘형식의 이데올로기(ideology of form)’12) 를 탐구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형식 탐구의 안내자들 중에는 (그의 저서의 제목에서처럼) 정신분석학적 접근법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이로써 ‘이데올로기’를 포기 하지 않으면서도 ‘형식’과 ‘심리(=무의식)’를 포함하고자 했던 이선영은 제임슨의 작업을 통해 소망충족의 가능성을 얻게 된다.
또한 제임슨의 정치적 무의식은 프로이트의 개인적 무의식을 계급적 무의식의 관점 에서 다시-쓰기한 결과이기도 한데, 이는 개인과 사회(계급)를 재결합시 키고자 했던 이선영의 관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아울러 제임슨은 모더니즘(혹은 포스트모더니즘) 작품을 리얼리즘 비평의 입장에서 다 시-쓰기할 수 있는 모범적 사례를 보여준다는 장점도 있다.13)
10) 영미 신비평, 프랑스 구조주의, 러시아 형식주의 등에 치중된, 형식 중심의 연구자들 을 가리킨다.
11) 제임슨은 이후 자신의 작업이 “사회적 형식의 시학(The Poetics of Social Forms)”이라 는 제목의 큰 기획 아래 진행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프레드릭 제임슨, 임경규 역,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후기 자본주의의 문화논리, 문학과지성사, 2022, 31쪽.
12) 프레드릭 제임슨, 이경덕・서강목 역, 정치적 무의식, 민음사, 2015, 123쪽.
13) 그 대표적인 사례는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후기 자본주의의 문화논리(1992)에서 입증된다.
이선영의 1992년 논문은 우선 정치적 무의식의 핵심적 방법론을 압 축적으로 소개하고, 그것을 작품 분석에 적용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핵심적 방법론이란 문학 텍스트를 재해석하기(다시-읽기/다시-쓰기) 위 한 3가지 의미론적 지평을 가리킨다.
그것은 순서대로 정치적(제1), 사 회적(제2), 역사적(제3) 지평으로 요약되는 것으로, 1지평에서 3지평까 지 동심원을 그리면서 점차 확대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렇게 문학 텍스트를 특정한 지평이라는 콘텍스트 위에서 다시-읽기(쓰기)를 수행하면, 문학 텍스트의 형식이 억압/노출하는 ‘정치적 무의식’을 읽어낼 수 있다 는 것이다.
이는 종래의 반영론적 관점을 ‘넘어서기’를 요구한다.
특히 토대/상부 구조의 ‘상동성’과 그 연장선상에 있는 ‘표현적 인과성’을 비판하고, 상부 구조의 ‘상대적 자율성’을 옹호하는 알튀세르의 관점을 수용해야 한다.
제임슨은 알튀세르를 따라 문화, 경제, 정치, 사회 등이 위계 없는 대등 한 구조적 관계망에 따라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문학/ 예술의 상대적 자율성의 구조 분석에서 정신분석학의 유용성을 재확인 한다.
그가 특별히 주목하는 현상은 진리를 ‘환상’으로 대체하는 종교적・신화적 표현 형식이다.
이러한 종교적・신화적인 ‘형식의 변장술’을 ‘문학의 형식’이 계승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때 그는 프로이트를 따라 서 종교적・신화적 제의 형식이 소망 성취의 방식임을 확인하지만, 신화비평을 통해 그것이 개인적 소망이 아니라 집단적 소망의 ‘상상적 해 결’이라는 것으로 보완한다.
이 과정에서 그의 ‘제1지평’에서 문학 텍스트를 다시-읽는 방식이 결 정된다.
그것은 문학 텍스트를 ‘사회적 모순의 미학적(상상적) 해결의 형식’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미학(혹은 미적 형식)은 그 자체로 이데올로기적인 행위이며, ‘상징적 행위’ 14)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형식의 이데올로기’를 분석하는 제1지평을 구성한다.
현실적으로는 해결 불가능한 사회적 모순을 상상적으로, 형식적으로 ‘해결’의 가능성 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미적 형식(서사 형식을 포함)은 그 자체로 이데 올로기적 수행이라 할 수 있다.
이 제1지평에 대해서 이선영은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14)
알튀세르는 라캉이 구별했던 상상계와 상징계를 구별하지 않고 통합적으로 이해하였으므로, ‘상상적 행위’와 ‘상징적 행위’는 동일한 맥락에서 같이 쓰일 수 있다.
문학작품을 정치사의 지평에 두고 해석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개별 작품을 개인의 상징 행위로, 역사적・이념적 잠 재 텍스트를 고쳐 쓴 것으로 보고 읽는 것이다.
작품이란 정치와 사회를 비 유한 이야기, 특히 그런 현실적인 모순을 상징적으로 해결한 이야기라고 생각하여 그것을 해석하는 것이다.
문학 작품을 이와 같이 상징 행위로 읽으려고 할 때 수미일관성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은 작품을 모순에 대한 해결로서 파악하는 것이다.
이 모순의 개념은 리얼리즘 비평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것으로서 나머지는 두 지평에 있어서도 형태만 다를 뿐 여 전히 중심적인 자리에 놓인다.15)
15) 이선영, 「리얼리즘과 한국 장편소설」, 리얼리즘을 넘어서-한국문학 연구의 새 지평, 1995, 민음사, 24-25쪽.
여기에서 이선영은 문학 작품이 “상징 행위”라는 점을 크게 강조하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 문학 텍스트를 바라보는 관점이 크게 바뀔 필요가 있다는 데에 있다.
상징 행위는 텍스트와 잠재 텍스트(sub-text) 사이의 관계를 통해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선영에 따르면, 잠재 텍스 트는 “작품이 말하고 있지 않은 것”, 따라서 “씌어 있지 않은 것”인데, 이는 “아무래도 침묵시킨다든가 억누른다든가 해야 하는 것”, 말하자면 “작품 자체가 안고 있는 <무의식>”과 같은 것(22쪽)이다.
따라서 문학 텍 스트에서 발견되는 “상징 행위”는 잠재 텍스트와 텍스트 사이에서 벌어 지는 증상에 근접하게 된다.
문학 텍스트를 “상징 행위”로 간주하게 되면, 문학 연구자는 문학 텍 스트에 반영된 현실을 직접적으로 고찰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게 된다.
현실(혹은 현실원칙)은 텍스트의 무의식인 잠재 텍스트를 형성하 는 과정으로만 ‘상징적으로’ 작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은 텍스트에 직접적으로 반영되는 것이 아니라 잠재 텍스트 형성이라는 우회로를 통 해서만 간접적으로 그 흔적을 남기게 될 것이다.
따라서 잠재 텍스트와 텍스트 사이에서 벌어지는 “상징 행위”만 분석하더라도 현실 세계의 정 치적 작동 원리를 해명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잠재 텍스트를 고려하지 않고 텍스트와 현실을 직접적 으로 연결하는 반영론적 비평 방법은 자동적으로 폐기된다.
현실은 잠 재 텍스트를 통해서만 텍스트에 개입할 수 있으며, 반대의 경우도 마찬 가지이다.
텍스트는 직접적으로(즉, 진짜 행위를 통해서)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잠재 텍스트와의 관계를 통해서만(즉, 상징 행위를 통해서만) 현실에 개입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이선영은 망설임 을 경험하게 된다.
잠재 텍스트의 기능이 작품 형성의 의미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이글턴에 앞서 제임슨이 이미 논한 바 있거니와, 제임슨은 특히 잠재 텍스트의 차원과 외적 현실의 차원 가운데 한쪽만을 편중하는 종래 비평가들의 태도를 비판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우선 문학 작품 혹은 문학 텍스트는 상 징 행위로 읽혀야 하며, 이 상징 행위란 양면성을 지닌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 상징 행위는 이를테면 상징적 차원에서의 이야기이긴 하 지만 어디까지나 진짜 실제의 행위로 파악되어야 한다.16)
16) 이선영, 「리얼리즘과 한국 장편소설」, 리얼리즘을 넘어서-한국문학 연구의 새 지평, 1995, 민음사, 22쪽.
텍스트는 겉보기에 잠재 텍스트라는 ‘내적 차원’과 현실이라는 ‘외적 차원’ 사이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의식이 무의식(쾌락원칙)과 현실(현 실원칙) 사이에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일종의 착시 현 상에 불과하다.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현실은 잠재 텍스트를 형성하는 방식으로만, 오직 그 순간에만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잠재적 텍스 트에 대한 “상징 행위”가 곧 “진짜 실제의 행위”이기도 한 것이다.
이선영은 “잠재 텍스트의 차원”과 “외적 현실의 차원”을 구별 하고, “한쪽만을 편중하는” “태도”를 비판하고 있다.
현실을 잠재 텍스트 (=무의식)로 환원해 버리는 정신분석학의 폭력을 경계하는 것이다.
무 의식이 개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현실에 대한 “진짜 실제의 행위”의 가능 성을 여전히 유지하고 싶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텍스트와 현실 사이의 “진짜 실제” 관계가 존재한다고 믿고 싶었던 것이다.
이는 이선영의 ‘리 얼리즘을 넘어서’에서도 여전히 넘어서지 못하게 하는 리얼리즘의 견고 한 뿌리를 재확인하게 만든다.
그것은 앞서 보았듯 “현실에 대해서도 최 선의 원근법과 전체적 파악을 단념할 수는 없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 라는 진술이 잘 말해 준다.
현실에 대한 원근법적 지점이 있고, 그리고 그 지점에서만 전체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은 결코 넘어설 수 없는 리얼 리즘의 발판이라고 본 것이다.
그렇다면 ‘리얼리즘을 넘어서’라는 제목의 의미는 분명해 보인다.
시 대 변화에 발맞추어 리얼리즘적 비평에 유연성을 도입하고, 그 적용의 범위를 확장하되, 결코 리얼리즘의 근본적 토대는 버리지 않겠다는 것 이다.
리얼리즘 자체가 극복의 대상인 것이 아니라, 리얼리즘의 확장에 방해가 되는 주변적 요소에서 변화를 모색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겉 보기에 그것은 이데올로기 비판에 형식이나 심리를 추가하는 ‘덧셈의 방식’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상 형식과 심리의 도입은 리얼리즘 적 비평 자체를 변형하면서 결국은 ‘빼기의 방식’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 다.
리얼리즘적 비평이 더이상 동일성을 유지하지 못하게끔 토대를 뒤 흔들어 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리얼리즘의 유연성을 위해서 ‘차이’를 도 입하지만, 그것은 리얼리즘의 ‘동일성’에 치명상을 입힐 것이며, 그 상처 에 대한 저항력을 통해서 ‘새로운’ 리얼리즘 비평의 가능성은 열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선영은 두려움 속에서 그 차이가 들어올 수 있게끔 그 입구를 천천히 개방하고 있었던 것이다.
Ⅳ. 효용론의 위상
이처럼 리얼리즘에 유연성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사실 그의 박사학위 청구논문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그는 교수 시절 뒤늦 게 박사학위를 취득하게 되는데, 그 시점이 1981년이다.17)
건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수여받은 박사학위논문의 제목은 「한국 근대문학 비평 연 구-그 초창기를 중심으로」인데, 이는 나중에 한국 근대문학비평사 연 구(1989)18)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재출간되었다.
이는 일종의 박사학 위논문 모음집의 형식으로 1910년대(이선영), 1920년대(김영민), 1930년 대(최유찬, 강은교)의 비평사를 정리한 기념비적인 저서이기도 하다.
1981년은 제임슨의 정치적 무의식이 출간된 해였지만, 이선영은 그 로부터 10년 뒤에야 제임슨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의 학위논문은 ‘한말 에서 1910년대’에 이르는 이른바 근대이행기를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이 는 제임슨이 제3지평에서 주목한 현상과 관련된다.
제임슨은 제3지평의 연구 대상을 일종의 “문화혁명(cultural revolution)”19)이라고 했는데, 이는 체제변화의 징후를 포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17) 이선영은 1980년부터 1984년까지 약 4년간 해직 교수의 수모를 겪었다. 그 기간에 박사논문 작업이 이루어진 것이다. 해직 과정에 대한 이선영 자신의 회고로는 서은 주, 「실천하는 문인, 성찰하는 학인의 자취 – 국문학자 이선영의 삶과 학문」, 동방 학지 제153권,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11, 418-420쪽 참조.
18) 이선영・강은교・최유찬・김영민 공저, 한국 근대 문학 비평사 연구, 세계, 1989.
19) 이는 중국의 ‘문화혁명’을 모델로 만들어진 개념이다: 프레드릭 제임슨, 정치적 무 의식: 사회적으로 상징적인 행위로서의 서사, 민음사, 2015, 119쪽.
그의 제3지평은 다양한 생 산양식들이 역사적으로 공존하는 순간에 주목하는 것으로, 생산양식들의 적대적 성격이 가시화되며, 그들 간의 모순이 정치, 사회, 역사적 삶의 한 가운데를 움직이는 모습을 포착하게 만든다.
이는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라는 모순적 공존 상태(공시성)에서 체제 변화의 동력(통시성)을 읽어내 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렇게 역사성을 배제하는 구조주의의 공시성에 역사성을 도입하여 리얼리즘적 방법의 고유성을 유지하게 된다.
이선영의 박사학위논문에서는 전통과 근대가 공존한다.
양자의 대립 은 구한말의 문학론에서도 1910년대의 비평론에서도 반복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두 시기에 걸쳐 전통과 근대의 관계는 반복되지만, 그것 이 ‘공시성’ 허용의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이 당시에 이선영은 구조주의 의 공시적 접근법을 노골적으로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시비평가 내지 구조주의자들은 의식이나 사고와 같은 작품의 내용보 다 구조・시스템・기호표현과 같은 작품의 형태에 치중한다. 그들은 인간 에게 절대적인 가치나 주체적인 가치가 있다고 보지 않으며, 인간을 다만 하나의 객체로 연구의 대상으로 볼 뿐이다. …(중략)… 이상에서 우리는 문 학사 기술이 문학형태의 변천에 치중하는 방법이나 문학비평이 문학의 형 식과 구조에만 집착하는 공시비평적(구조주의적 혹은 분석주의적) 방법 이 결국 비인간주의적이고 소극적이며 비관적인 세계관과 연결되어 있음 을 살펴보았다.20)
20) 이선영 외, 한국 근대 문학 비평사 연구, 1989, 세계, 14쪽.
비판의 초점은 구조주의가 “형식과 구조에만 집착하는” 방법이라서 “의식이나 사고와 같은 작품의 내용”에 무관심하다는 데에 있다. 그러한 성격은 “내용”의 출처인 인간에게서 “절대적 가치나 주체적 가치”를 박 탈한다는 데서 기인한다.
이렇게 “형식과 구조” 앞에서 주체성이 박탈된 인간은 한낱 “소극적”인 존재일 것이며, 통시성이 배제됨으로써 전망 부 재의 “비관적인 세계관”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구조주의의 “비인간주 의”에 맞서는 모습에서 이선영이 인간 주체의 능동성과 역사의 긍정적 전망을 중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구조주의적, 형식 주의적 비평에 대해서 관용을 베푸는 “유연성”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이 논문에는 적대적 관점에서 비롯된 이론적 갈등이 노골화되어 있다.
따라서 구조주의의 공시적 접근법 대신에 그는 역사주의적 접근법을 내세운다.
이것은 모든 비평문을 “진보적 사관”(11쪽)에 근거하여 평가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당시의 비평문에 대해서 그것이 “역사의 발 전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를 따지고자 했던 것이다. 이렇게 되면 모든 개별 비평문은 “한국문학사의 전체 테두리 속”에서 그 위치를 배정 받게 된다.
여기에는 고전적인 토대/상부구조의 도식이 작동하기 마련 이다.
물론 구한말에서 1910년대까지는 아직 자본주의 경제 형태가 충 분히 확립되지 않아 ‘토대’로서 확실히 기능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그는 1890년대를 ‘근대의 기점’으로 규정함으로써 그 시 기가 이미 자본주의 경제 형태의 범위에 포섭된다고 보고, 그 시기부터 ‘근대문학’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다만 자본주의 경제 형태가 ‘토대’ 로서 확고하게 자리잡지 못했으므로, 이 시기는 전근대(=전통)와 근대 가 각축하며 공존하는 단계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진보적 사관”은 단순히 전통을 버리고 근대를 앞당기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근대화는 제국주의를 동반하는 외래적 요소인 까닭에 무조건적 긍정의 대상일 수는 없는 까닭이다.
오히려 그는 전통 과의 관계가 “한국 문학비평사의 주체적 흐름”(25쪽)을 보장한다고 생각 한다.
그래서 근대문학의 성취에 있어서 ‘전통의 몫’을 할당할 이유가 충 분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내재적 발전론의 동력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선영의 비평사 연구에서는 전통 내부에서 ‘차이’를 읽 어내는 일이 중요해진 것이다.
전통에서 근대화의 ‘내재적’ 동력이 발견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의 전통론은 주자학에서 실학으로, 위정척사 파에서 개신유학파로 일정한 목적지를 향해서 전진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알튀세르가 ‘표현적 인과성’이라 비판했던 목적론의 관점이기도 한 것으로, 이는 당시 민족문학 진영이 두루 공유했던 세계관이기도 하다.
그러한 사고에서의 변화는 그로부터 10년 후에나 찾아오게 된다.
그 것이 앞서 살펴보았던 1992년의 논문이다.
그의 비평론 연구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변증법적 세계관’을 들 수 있 다.
문학론과 비평론에서 모두 대립물의 모순적 관계와 그 해소를 통한 전진이라는 관점이 관철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고는 모든 방면에 서 이분법적 대립물을 발견한다는 특징이 있다. 앞서 보았던 전통과 근 대의 대립, 위정척사파와 개화파의 대립, 역사주의와 반역사주의의 대 립은 그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다음 진술은 그 일부를 보여준다.
가) 19세기 말엽, 특히 1870년대 이래 구한말의 초기 사상은 위정척사사 상과 개화사상으로 양분되었고, 개화사상은 다시 개량적 개화사상과 변법 적 개화사상으로 분화되었던 것이다.21)
나) 임오군란 이전까지의 개화론자는 이른바 온건파와 급진파의 구별이 없었다.
그런데 임오군란을 계기로 그들은 유교적 가치관에서 서양의 기술 만 수용해야 한다는 온건개화파와, 그 기술수용과 아울러 서구적 가치관도 수용해야 한다는 급진개화파의 둘로 나뉘었다.22)
21) 이선영 외, 한국 근대문학 비평사 연구, 1989, 세계, 30쪽.
22) 이선영 외, 한국 근대문학 비평사 연구, 1989, 세계, 37쪽.
분류의 원칙과 명칭은 각각 다를지라도, 여기에서도 세계는 양분의 양분을 거듭하는 방식으로 끊임없이 분화하면서 발전한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변증법적 지도 그리기를 통해서만 전체가 조망된다는 인식이 깔 려있다.
그러나 이분법적 분류에 따른 가지치기는 ‘공시적’, 정적(靜的) 분석표 작성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의 목적은 ‘변증법적 종합’이 문 학사에서 실현되는 과정을 추적하는 것이다.
따라서 변증법적 종합을 지 향하기 위해서는 이분법적 대립물들 사이에서 치열한 각축과 투쟁의 장 면이 연출되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우세종이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변증법적 전개방식은 1910년대 문학론을 서술하는 부 분에서 흔들리게 된다.
그 이유를 도입부의 진술을 통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도입부는 이렇다.
1910년대의 무단통치 기간에 있어서의 한국 문학 비평론들은 대체로 효 용론적인 것과 상징주의적인 것 혹은 유미주의적인 것으로 분류된다.
그 가 운데 먼저효용론을 보면 그것은 전통적인 것과 서구적인 것 그리고 그 둘의 절충적인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이 세 효용론은 서로 균형있게 발 전한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서구적인 것이 다른 두 가지 즉 전통적인 것과 절충적인 것에 비해서 훨씬 우위에 놓인다.
그 밖에도 뒤에서 언급하게 될 상징주의적 혹은 유미주의적 문학론 역시 서구적 경향이 농후하다.23)
23) 이선영 외, 한국 근대문학 비평사 연구, 1989, 세계, 73쪽.
구한말에서 시작된 전통과 근대의 이분법은 1910년대에서도 반복된다.
다만, 구한말에는 전통과 근대의 이분법 전체를 지배하는 문학론으로 ‘효 용론’을 제시한 바 있다.
그래서 구한말의 문학론은 전통적 효용론과 서 구적 효용론으로 양분될 수 있었다.
그러나 1910년대에는 더이상 효용론 이 전통과 근대 전체를 지배하지 못하게 된다.
효용론의 안티테제로 상징 주의 혹은 유미주의가 대두하였기 때문이다.
효용론의 지배를 받는 전통 적 효용론과 서구적 효용론의 구별은 여전히 유효할 수 있지만, 효용론의 안티테제(상징주의와 유미주의)에서 ‘전통적인 것’은 소멸하고, ‘서구적인 것’만 남게 되는 것이다.
‘서구적인 것’의 우세는 효용론에서도 관철되어 ‘서구적 효용론’이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게 된다.
결국 1910년대를 지배하 는 비평론은 ‘효용론’이 아니라 ‘서구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서구적) 효 용론과 (서구적) 상징/유미주의가 새로운 대립물로 대두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구한말의 문학론을 지배하던 효용론의 퇴조는 1910년대에 이 르러 전통의 약세와 (서구적) 근대의 강세라는 결과를 낳게 된다.
효용론이 주로 전통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에 효용론의 퇴조와 전통의 약세는 필연적 인과율로 묶여 있는 것이다.
그 결과 1910년대부터는 더 이상 전통과 근대의 이분법이 지배적 대립물이 될 수 없었다.
전통의 약세는 서구적 근대의 약진으로 나타났고, 결국에는 서구적 효용론과 서구적 상징/유미주의가 새로운 대립물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양자를 지배하는 것은 이제 ‘서구적인 것’이 된다. 구한말의 문학론을 지 배하던 ‘효용론’은 ‘서구적인 것’의 하위 항목으로 축소된 것이다.
이렇게 각 시대를 지배하는 우세종의 교체는 어떤 의미에서 알튀세 르의 ‘구조적 인과성’에 근접한 이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잠 시 제임슨의 알튀세르 해석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제임슨은 헤겔(‘표현 적 인과성’)과 알튀세르(‘구조적 인과성’)를 대립시키는 통속적 해석에 반대하면서, 헤겔과 알튀세르의 공동의 적이 ‘무반성적 직접성’에 있음 을 환기하는 다음과 같은 진술을 남기고 있다.
이는 알튀세르적인 구조적 인과성 개념의 철학적 추동력이 타격하고 있 는 것은 매개 개념 자체보다는 변증법 전통이 무반성적 직접성이라고 부를 법한 것이며, 그럴 경우 알튀세르의 진정한 논쟁 표적은 헤겔이 공격하려 는 대상과 다르지 않다.
헤겔의 전 저작이 조급한 직접성과 무반성적인 통 일성 확립에 대한 하나의 긴 비판이기 때문이다.
풀어서 말하자면 알튀세 르의 구조는, 모든마르크스주의자가 그러하듯 필수적으로 사회구성체 내 의 모든 요소들 사이에 존재하는 상호관련성을 주장한다.
다만 그는 표현 적 인과성이 그렇게 하고 있다고 이해한 것처럼 요소들 간의 궁극적인 동일 성을 통해서가 아니라, 요소들 간의 구조적 차이와 서로 간의 거리를 인정 하면서 요소들의 상호 관련성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차이 란 상호 관련 없는 다양성의 정태적인 목록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관계적 개념으로 이해된다.24)
24) 프레드릭 제임슨, 정치적 무의식: 사회적으로 상징적인 행위로서의 서사, 민음사, 2015, 49쪽.
앞선 논의에 따르면, 전통과 근대 사이의 모순적, 대립적 관계는 구한 말과 1910년대에서 동일하게 반복될 것이지만, 각각의 시대는 지배적 우세종을 교체하는 방식으로 차이를 생산하게 된다.
이렇게 매 시대마 다 지배적 우세종을 다르게 결정하는 것은 구성요소들 간의 상호관련성 이 시대의 성격을 결정하는 동력원으로 기능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 러 요소들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효용론’의 위상이다.
구한말에서 문학론 전체를 지배하는 우세종이었던 효용론이 1910년대에 접어들면 서구적인 것의 하위 항목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처럼 효용론의 위상은 시대마다 달라지긴 하지만, 완전히 소멸하는 것은 아니며, 매 시대마다 다른 방식으로 대립물을 상대하는 모습을 보인다.
여기에서 잠깐 우리는 이선영의 박사학위논문에서는 ‘리얼리즘’이 언 급되지 않았음을 상기해야 한다.
구한말과 1910년대 당시에는 아직 리 얼리즘이라고 할 만한 문학론이나 비평론이 생성되기 이전이었음을 감 안해야 한다.
그러나, 논문에서는 직접 말하지 못했을 것이지만, 구한말 과 1910년대를 관통하고 있는 ‘효용론’이야말로 넓은 의미에서 리얼리즘 의 전신이라고 할 만하다.
그렇게 되면 한국문학비평사에서 리얼리즘은 근대에 수입된 외래종이 아니라 전통에 뿌리를 두는 것으로 읽힐 가능 성을 얻게 된다. 1910년대에 이르러 ‘상징/유미주의’가 대세를 이루게 되 지만, 1920년대와 30년대에 리얼리즘은 다시 그 이름으로 호명되며 본 격적인 성장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이는 리얼리즘의 발전사에서 ‘전통의 몫’을 발견하고자 했던 이선영의 ‘정치적 무의식’이 증상으로 드 러난 것이라 할 수 있다.
Ⅴ. 포스트리얼리즘의 선구
이제 우리는 ‘리얼리즘을 넘어서’가 의미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것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읽힌다.
첫째로, 1990년대 당시 이선영은 리얼리즘이 더 이상 최종적 문학론/ 비평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는 리얼리즘의 적수였던 모더니즘(혹은 포스트모더니즘)과 새로운 종합의 가능성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 왔다는 생각일 것이다.
그 새로운 종합의 지점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굳게 닫혔던 리얼리즘의 한쪽 문을 슬며시 열어보려 한 것이다.
리얼리즘의 윤곽은 다시 혼돈에 휩싸일 것이지만, 과감하게 그 길로 들어서려 했을지도 모른다.
이때 리얼리즘은 극복의 대상이 된다.
넘어선다는 것은 극복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해석은 리얼리즘이 변증법적 지양의 단계에 돌입했다고 보 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리얼리즘의 본질은 그대로 유지하되 주변적 구성요소들에서 변화를 주면서 새로운 도약의 단계를 예비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리얼리즘과 적대적 관계에 있는 모더니즘(혹은 포스트모더니즘)으로부터 새로운 도약의 에너지를 흡수할 필요가 있었 다.
그렇다면 그는 시대의 변화에 맞춰 더욱 강력한 리얼리즘으로 재탄 생할 것을 기약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이선영의 ‘리얼리즘을 넘어서’는 그가 ‘리얼리즘 이후’와 ‘더 강한 리얼리즘’ 사이에 서 있다는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25)
25) 마치 포스트휴머니즘이 ‘휴머니즘 이후’와 ‘더 강한 휴머니즘’(트랜스휴머니즘)의 사 이에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것이 어느 쪽이든 현재의 리얼리즘이 최종적 단계는 아니라는 인식은 변증법에 충 실한 그의 연구자로서의 삶에 일관성을 부여한다.
그의 리얼리즘 이론 은 항상 ‘과정 중’에 있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포스 트리얼리즘의 선구자인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1. 기본자료
이선영, 「한국 근대문학 비평 연구: 그 초창기를 중심으로」, 건국대 박사학위논문, 1981. 이선영, 리얼리즘을 넘어서-한국문학 연구의 새 지평, 1995, 민음사. 이선영·강은교·최유찬·김영민, 한국 근대문학 비평사 연구, 1989, 세계.
2. 논문과 단행본
민족문학사연구소, 민족문학과 근대성, 문학과지성사, 1995. 서은주, 「실천하는 문인, 성찰하는 학인의 자취 – 국문학자 이선영의 삶과 학문」, 동방 학지 제153권,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11, 375-431쪽. 이철호, 「해금 이후 90년대 학술장의 변동 – 근대성 담론의 전유와 그 궤적」, 구보학보 제19호, 구보학회, 2018, 9-37쪽. 황정아, 「근대성의 판타지아 – 1990년대 한국문학의 근대성 담론」, 개념과 소통 제25 호, 한림과학원, 2020, 117-145쪽. 프레드릭 제임슨, 변증법적 문학이론의 전개, 여홍상·김영희 역, 창작과비평사, 1984. 프레드릭 제임슨, 정치적 무의식: 사회적으로 상징적인 행위로서의 서사, 이경덕·서 강목 역, 민음사, 2015. 프레드릭 제임슨,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후기자본주의 문화 논리, 임경규 역, 문학과 지성사, 2022. 이선영의 비평론 연구 77
❚국문요약
이 글은 1980-90년대 이선영의 비평론을 살피고 있다.
해직 교수 시절 (1980-1984) 뒤늦게 박사학위 논문을 수여받았을 때 그의 나이는 50을 넘기고 있었다.
박사논문의 대상은 구한말에서 1910년대까지 ‘문학비평 의 역사’로서, 특히 ‘효용론’이 그 중심을 차지한다.
아직 리얼리즘이라 는 개념이 등장하기 이전이었으므로, 박사논문은 효용론의 역사를 통해 리얼리즘 이론의 내재적 발생 과정을 추적한 것이다.
리얼리즘은 비록 근대적 개념이지만 그 정신은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 써 그의 비평론이 내재적 발전론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논문은 제자들의 후속 연구에 힘입어 한국 근대문학 비평사 연구 (1989)라는 결실을 이루게 된다.
1990년대는 이선영의 리얼리즘 비평 및 연구에서 큰 변화가 발생한 시점이다.
이는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포스트 담론의 약진이라는 문화적 격변기에 대한 노학자의 반응이기도 하다.
1990년대 초반 연구년 기간 에 그는 프레드릭 제임슨의 정치적 무의식(1981)을 탐독하게 된다.
그 리고 그가 제임슨에서 발견한 것은 마르크시즘과 형식주의(구조주의) 로 양분된 한국 비평계의 한계를 넘어설 가능성이었다.
제임슨을 따라 서 그는 한국소설의 형식에 내재하는 이데올로기적, 심리적 의미를 탐 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취지가 정년 무렵에 발간된 리얼리즘을 넘 어서(1995)라는 제목에 담겨 있다.
그의 글은 민족문학과 근대성(민족문학사연구소, 1995)에도 실림으로써 리얼리즘 비평의 외연 확장을 노리는 진보적 소장학자들의 모범이 되었다.
이처럼 그의 비평론은 리얼리즘 개념이 성립되기 이전의 한국비평에서 리얼리즘의 가능성을 발굴하고, 리얼리즘 개념이 위기를 맞았을 때 외연 확장을 시도하는 방향으로 진행된 것이다.
이로써 그는 경직된 리 얼리즘 비평이 아니라 시대와 함께 호흡하는 유연한 리얼리즘 비평가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가히 포스트리얼리즘의 선구라 할 만하다.
핵심어 : 이선영, 비평론, 프레드릭 제임슨, 정치적 무의식, 리얼리즘, 포스트리얼리즘
❚Abstract
A Study on Lee Sun-young’s Criticism -A Pioneer of Post-Realism
Oh, Moon-seok
This article examines Lee Sun-young’s criticism in the 1980s and 1990s. When he was belatedly awarded a doctoral dissertation during his time as a professor of dismissal (1980-1984), he was over 50 years old. The subject of the doctoral thesis is the ‘History of Literature Criticism’ from the end of the Korean Empire to the 1910s, and in particular, the theory of utility is at the center. Since the concept of realism had not yet emerged, the doctoral dissertation traced the intrinsic generation process of the theory of realism through the history of utility. Although realism is a modern concept, its spirit is rooted in tradition. From this, it can be seen that his criticism is an extension of the theory of intrinsic development. Thanks to the follow-up research of his disciples, this thesis came to fruition as The history of criticism of modern Korean literature(1989). The 1990s was the time when major changes occurred in Lee Sun-young's critique and research of realism. This is also the reaction of a scholar of old age to the cultural upheaval of the fall of the socialist bloc and the advancement of post-discourse. During the research period in the early 1990s, he became to devour Frederick Jameson’s Political Unconsciousness (1981). And what he discovered in Jameson was the possibility of exceeding the limits of the Korean critical world, which was divided into Marcism and formalism (structuralism). Following Jameson, he began to explore the ideological and psychological implications inherent in the form of Korean fiction. Its purpose is contained in the title Beyond Realism(1995), which was published at the retirement age. His writings were also published in National Literature and Modernity (The Institute of National Literature History, 1995), setting an example for progressive young scholars seeking to expand realism criticism. In this way, his criticism progressed in the direction of discovering the possibility of realism in Korean criticism before the concept of realism was established and attempting to expand it when the concept of realism faced a crisis. In this way, he showed the side of a flexib le realism critic who breathes with the times, not a rigid realism critic.
Key-words : Lee Sun-young, Criticism, Frederick Jameson, Political Unconsciousness, Realism, Post-Realism
2024년 9월 8일 접수 2024년 9월 27일 심사 2024년 10월 6일 게재확정
현대문학의 연구 8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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