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Ⅱ. 히스테리 주체의 멜랑콜리
Ⅲ. 외상적
Ⅳ. 전도된 시선과 응시의 효과
Ⅴ. 상호적 환상 횡단의 과정
Ⅵ. 결론 도착 주체의 희생
Ⅰ. 서론
드라마는 동시대의 환상을 재현한다. 그러나 이 말은 드라마가 현실 과 상반된다는 뜻은 아니다. 라캉에 따르면 ‘환상’의 반대는 ‘현실’이 아 니다. 오히려 환상이 현실을 구성한다.
환상이 현실에서 추구할 욕망과 성취해야 할 대상을 지시하기 때문이다. 환상은 무의식적이고, 이 무의 식은 대타자와 연결돼 있다. 개인은 환상에 따라 살게 되며, 이것이 집 단화된 것이 이데올로기다. 환상과 이데올로기는 삶의 기준이 되고 개인의 정체성, 자아이상(ego-ideal)을 구성한다.
환상과 이데올로기를 따 르지 않으면 사회화에 실패한 사람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환상과 이데 올로기는 개인이 기꺼이 받아들여야 하는 일종의 규범으로 작동하는 것 이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1)는 이 지점에서 논의될 수 있다.
여주인공 ‘지 안’은 도청과 도촬로 상대를 위협하거나 남의 눈을 피해 절도도 일삼는 21세 청년이고 남주인공 ‘동훈’은 안정적 생활에 만족 못 한 채 방황하는 45세 중년이다.
둘 다 통상적으로 긍정적 인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나의 아저씨>는 중년 남성의 판타지를 재현했다는 비판을 받 기도 하고2) 드라마에서 제시되는 공간이 사회정치적 대안이 아니라 유 토피아적 공동체의 환상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 지적되기도 했다.3)
그 리고 이러한 비판은 모두 현실과 환상에 대한 이분법을 전제로 한다.
환상이야말로 현실을 구성한다는 라캉적 관점에서, 드라마가 환상을 재 현했다는 비판은, 드라마에서의 환상이 어떤 차원으로 재현되어야 하는 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질 수 있다.4)
1) 박해영 극본, 김원석 연출의 16부작 드라마. tvN에서 2018.3.21- 2018.5.17 방영. 2024 년 7월 현재 OTT 서비스 ‘티빙, 넷플릭스, 디즈니’에서 스트리밍 제공.
2) 구은정은 드라마의 배경이 동훈과 지안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이며, 이 공동체는 외부세계에서 상처받은 남성을 보호하는 여성의 증여로 채워진 레트로토피아적 공 동체를 표상한다고 말한 바 있다: 구은정, 「공동체 재현의 정치학: <나의 아저씨>의 레트로토피아 vs. <갯마을 차차차>의 퓨토피아」, 여성학연구 제32권 제1호, 부산 대학교 여성학연구소, 2022, 143-179쪽.
3) 김세준, 「공동체적 윤리에 대한 초월적 상상력 고찰: TV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대상 으로」, 스토리앤이미지텔링 제21호, 스토리앤이미지텔링연구소, 2021, 99-125쪽.
4) 인물의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나의 아저씨>를 논의한 논문은 이 드라마에 내재된 환상의 의의를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김공숙·조보라미·권두현·백현미의 논문 이 이에 해당된다. 이 논의들은 환상이 허구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대안, 혹은 대안적 현실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전제를 내포하고 있다. 김공숙은 ‘동훈’이 ‘지 안’이라는 아니마(anima)를 만나 개성화(individuation)에 이를 수 있었음을 논증한다 (김공숙,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 나타난 중년 남성의 개성화 과정」, 영상문화 콘텐츠연구 제24호, 동국대학교 영상문화콘텐츠연구원, 2021, 249-280쪽). 조보라미 는 지안이 ‘엿들음’을 통해 트라우마적 사건을 공감받고 자신에 대한 인지적 재구성 을 할 수 있었다고 논의한다(조보라미, 「텔레비전 드라마에 나타난 ‘엿듣기’의 의미와 효과 -<나의 아저씨>를 중심으로」, 겨레어문학 제71호, 겨레어문학회, 2023, 37-69 쪽). 권두현은 ‘정동적 신체’와 ‘윤리적 주체’가 만나 상호 변화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권두현, 「‘관계론적 존재론’의 정동학―<나의 아저씨> 안팎에서 벌어진 젠더정치의 기술적 차원에 관하여」, 한국극예술연구 제66호, 2019, 43-97쪽). 백현미는 공동체 차원에서 이 드라마를 ‘이후의 가족드라마’로 명명하고 상호돌봄과 상호의존의 양상 을 보여주었다고 논의한다(백현미, 「‘이후의 가족드라마’와 친밀의 정동―<나의 아저 씨>를 중심으로」, 한국극예술연구 제79호, 한국극예술학회, 2023, 89-119쪽).
환상의 의의는 환상의 횡단에서 찾아진다.
환상의 횡단은 환상의 억 압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환상과 가장 긴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며 그 환상의 잉여분, 상징적 결여의 효과를 향유하는 것이다.5)
현실과 환 상의 관계를 인지하고, 주체의 결핍과 그 결핍에서 발생하는 주이상스 를 향유하는 것이 환상 횡단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6)
이 환상 횡단을 통해서 주체는 자신의 순수 욕망을 탐색하는 윤리적 주체가 될 수 있고 이것이 진정한 주체화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7)
그렇다면, <나의 아저씨>의 ‘동훈’과 ‘지안’에게서는 환상의 횡단이 일 어났다고 볼 수 있을까.
이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두 인물의 정신구조에 대한 탐색이 전제돼야 할 것이다.8)
5) 슬라보예 지젝,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현우 외 역, 자음과모음, 2018, 31-32쪽.
6) 환상 가로지르기란 ‘환상의 베일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라는 부정성을 깨닫는 것이 다. 자신을 타자의 욕망 대상이 아닌,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깨달을 때, 즉 환상을 가로지를 때 진정한 주체가 된다: 슬라보예 지젝, 삐딱하게 보기, 김소연 외 역, 시각과 언어, 1995, 134-135쪽.
7) 김석, 「선의 윤리와 순수 욕망의 윤리」, 미학예술연구 제38호, 한국미학예술학회, 2013, 85-87쪽.
8) 이인표는 <나의 아저씨>를 정신분석학적 멜로드라마라고 논의한 다 있다. 다만, 이 인표는 인물의 성장과 성숙이 초자아에 기인한 것으로 보는데(이인표, 「<나의 아저 씨>(김원석, 2018)의 정신분석학적 멜로드라마론」, 한국융합인문학 제11권 제3호, 한국인문사회질학회, 2023, 7-30쪽) 이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으리라 판단된 다. <나의 아저씨>에서는 오히려 인물의 변화가 초자아를 벗어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정신구조에 따라 욕망과 환상, 증상 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9)
일반적으로 드라마에서 도착적 주체는 타자를 이용해 자신의 욕망을 관철시키는 캐릭터로 등장하고, 히스테리적 주체는 다른 사람에게 주목 받기를 원하고 나르시시즘이 강한 캐릭터로 나타난다.10)
9) 정신구조(심리구조)는 상상계에서 상징계로 진입할 때 겪게 되는 주체의 소외에서 비롯된다. 이때 주체는 도착증(perversion), 신경증(neurosis: 신경증엔 ‘강박증’과 ‘히 스테리증’이 속한다), 정신증(psychosis)의 심리구조를 갖게 된다(브루스 핑크, 라캉 과 정신의학, 맹정현 역, 민음사, 2002, 210, 303쪽). 이 논문에서는 <나의 아저씨>의 주요인물인 동훈과 지안의 증상과 정신구조 중심으로 논의하기 때문에 ‘히스테리증’ 과 ‘도착증’에 대해서만 살펴보기로 한다.
10) 도착적 인물과 히스테리적 인물이 등장한 드라마로는 (유현미 극본, 조 현탁·김도형 연출)을 들 수 있다. 입시 코디네이터인 ‘김주영’은 자신이 학부모와 학생의 욕망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 주고 그들을 통제하려 한다. 자신의 딸 또한 극단적으로 통제하려 하며 그것이 딸의 욕망이라고 오인한다. 이것은 자신 이 타자의 결핍을 채워줄 수 있다고 믿으며 역설적으로 그것으로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키려 하는 도착증적 태도라고 할 수 있다. ‘한서진’은 본명이 ‘곽미향’이며 상 류층 집단에서 주목받기 위해 출신을 속이고 거짓말을 한 인물이다. 그녀의 히스테 리적 욕망은 자신의 남편과 딸뿐만 아니라 다른 인물들과의 관계에서도 드러난다: 한귀은, 「TV드라마 에 나타난 욕망・응시・주체화」, 국어교육 제165호, 한국어교육학회, 2019, 299-329쪽.
특히 도착적 인물은 드라마에서 부정적 캐릭터나 악인형으로 종종 등장한다.
<나의 아저씨>에서도 이런 서로 다른 정신구조를 가진 인물이 등장하는데, 만 약 이 드라마에서 도착적 인물과 히스테리적 인물이 어떤 상호작용을 하는지를 논의할 수 있다면, 더 나아가 이 인물들의 상호작용이 주체화 와 어떤 관련성을 맺는지 밝혀낼 수 있다면, 드라마가 보여주는 환상의 의의를 드러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서 이 연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정신구조에 따라 인물이 갖는 증상에 주목한다면, 드라마와 현실의 관 계, 드라마가 시청자에게 주는 의의를 추론할 수 있으리라는 것도 이 연 구가 기대하는 파생적 효과이다.
이 논의를 위해 Ⅱ장과 Ⅲ장에서는 주인공 ‘동훈’과 ‘지안’의 정신구조 와 그에 따른 증상과 욕망을 먼저 알아볼 것이다.
그리고 인물의 증상과 욕망은 ‘시선’과 ‘응시’의 관계 속에서 더 잘 드러날 수 있으므로 Ⅳ장에 서는 이 드라마의 주요 모티프인 ‘도청’과 관련하여 시선과 응시의 문제 를 영상언어 또한 살펴보며 논의코자 한다.
그리고 이 논의를 통합하면 서 Ⅴ장에서는 두 인물에게 환상 횡단이 일어났는지, 일어났다면 어떤 양상인지를 고찰코자 한다. 이 논의는 드라마가 어떻게 ‘환상으로서의 현실’, ‘현실이라는 환상’을 의미있게 서사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제 기가 될 것이며 나아가 동시대 타자와의 관계를 어떻게 형성해갈 수 있 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Ⅱ. 히스테리 주체의 멜랑콜리
윤희: (…) 내가 별짓을 다 해도 나 때문에 행복해질 사람이 아니구나. 항 상 뭘잃어버린 사람 같았어. 뭘잃어버리긴 했는데 그게 뭔지, 뭘잃어버렸 는지 몰라서 막막해하는 사람 같았어. 그러다 체념한 거 같았어. ‘아, 잘못 왔구나, 여긴 내가 있을 세상이 아닌데.’ 그러면서도 여전히 가족에 대한 임 무는 성실하게 다하는 답답한 사람. (4화 S#58)11)
11) 신 표기는 대본집(박혜영, ≪나의 아저씨≫(박해영 대본집, 초판 에디션), 세계사, 2022)에 제시된 것을 따랐다.
윤희의 위 대사는 동훈의 증상을 다소 명징하게 보여준다.
‘뭘 잃어버 리긴 했는데 그게 뭔지, 뭘 잃어버렸는지 몰라서 막막해하는 것’은 멜랑 콜리의 전형적인 증상이다.
뭘 잃어버렸는지 모르는 것이 아니라, 잃어 버린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상실’ 속에 가두는 것이 멜랑콜리 이다.
자신이 소유하지 않았던 것을 상실했다는 환상 속에서 역설적으로 그것을 찾아 헤매는 것이 멜랑콜리인 것이다.12)
멜랑콜리커는 상실 을 상실할 수 없는 주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더해 동훈은 ‘행복해질 사람’이 아니며 그럼에도 ‘가족에 대한 임 무는 성실하게 다하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욕망을 묻지 않고 타자의 욕망에 시선이 향해 있고, 타자의 욕망을 통해서만 자신의 욕망을 이해 하는 것이다.
그는 자기 자신보다 가족의 욕망과 만족을 우선시한다.
가족만이 아니다. 그를 둘러싼 타자의 욕망이 그의 욕망이 된다. 그의 시선이 자주 향하는 가족사진은 그의 욕망과 환상을 나타낸다.
그는 가 족사진을 보면서 타자에 대한 자신의 위치를 지속적으로 환기한다.
가 족사진을 보고 있는 동훈은 포커스아웃되고 오히려 사진만이 선명하게 프레임을 채우고 있는 것도 동훈에게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상징 적으로 보여준다(4화, 스틸컷1)13). 스틸컷1
12) 슬라보예 지젝, 전체주의가 어쨌다구?, 한보희 역, 새물결, 2008, 220-221쪽.
13) 자료로 제시된 사진은 논문에 설명되는 해당 쇼트를 대표하는 스틸 이미지이다.
그러나 이 가족사진은 안정적인 상황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분열을 드러낸다.
사진에서는 동훈의 가족 상황이 안정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그는 아내 ‘윤희’와의 관계가 소원하다.
그에게 윤희는 매우 중요 한 존재 같지만, 그의 태도는 이중적이다.
동훈은 마치 윤희에게 만족을 주지 않음으로써 윤희가 자신을 욕망하게 하는 분열적인 태도를 보인다.
윤희가 동훈을 ‘사랑’하고 있다는 준영의 말은 윤희의 욕망을 드러낸 다.
동훈은 윤희가 밤늦게 일하는 것에 방해되지 않도록 배려하고 그녀 의 여러 요구 사항을 들어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윤희가 자신을 ‘일순 위’, ‘첫 번째’ 서열로 놓아야 한다는 간절한 바람에는 회의적인 태도를 보인다. 타자의 욕망을 충실하게 따르면서도 타자의 향유 도구가 되는 것을 거부하는 태도를 갖는 것이다.14)
14) 히스테리적 주체는 타자에게 만족을 주는 인물이 되지 않으려고 한다. 히스테리 주체는 타자의 향유의 대상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타자의 욕망을 불만족한 상 태로 유지시킨다. 히스테리 주체는 타자에게 쾌락을 주는 대상이 되기를, 타자의 향유의 원인이 되길 거부하는 것이다: 브루스 핑크, 라캉과 정신의학, 맹정현 역, 민음사, 2002, 226쪽.
이러한 태도는 끊임없이 회의하고 의심하는 동훈의 증상과도 연동된다.
송 과장: 이렇게 낡은 걸왜좋아하세요?
동훈: 나랑 같아. (…) 터를 잘못 잡았어. 그것도 나랑 같애. 나도 터를 잘 못 잡았어. 지구에 태어나는 게 아닌데. (4화 S#42) 동훈: 나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금이 가기 시작하면 못 견디고 무너지고. 나를 지탱하는 기둥인 줄알았던 것들이 사실은 내 진정한 내력이 아닌 것 같고. 다 아닌 것 같고. (8화 S#5)
지구는 자신이 태어날 곳이 아니라는 말은 그에게 만족과 안정이 없 다는 것을 드러낸다.
항상 ‘나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금이 가’고 ‘무너지 고’, ‘내 진정한 내력이 아닌 것’ 같다는 그의 말에는 사회가 부여한 정체 성에 대한 부정이 내포돼 있다.
그는 사회 이데올로기의 호명에 끊임없 이 실패하는 주체인 것이다.
라캉은 이데올로기 호명에 실패하는 주체로서의 히스테리증자를 설 정한다.
히스테리적 주체는 타자의 욕망에 의존한다.15)
스스로 타자의 욕망 대상이 되려 하는 것이다. 히스테리 주체는 환상을 통해 자신을 타자의 욕망 대상으로 위치시키고, 자신이 대상의 역할을 지속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불만족한 욕망에 대한 욕망’을 갖게 된다.16)
여기서 히스테리의 역설이 발생한다.
히스테리 주체는 타자의 욕망 대상이 되 고자 하지만, 그렇게 규정되고 나면 타자의 욕망 대상에 머무를 수 없 다.
타자의 욕망 대상이 되는 것을 욕망함에도 불구하고 타자가 부과한 자신의 상징적 정체성에 대해서는 ‘왜 나는 당신이 나라고 하는 그 무엇 인가’라는 의문을 반복적으로 제기함으로써 타자의 호명을 실패로 이끌 고 자신이 타자의 욕망 대상이 되는 것을 스스로 방해하는 것이다.17)
동훈은 자신의 사회적 정체성, 가족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고 정적으로 안착시키지 않는다.
그 때문에 회사 상사로부터 ‘좀 억울하게 생긴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고(2화), 가족에게도 항상 ‘신경 쓰이는’ 존재 가 된다(16화).
외적으로 이러한 동훈의 상태는 그가 단순히 고통 속에 있는 것으로만 보이지만, 상황이 바뀌더라도 그의 향유는 오히려 이런 불만족 상태에서만 비롯될 수 있을 뿐이다.18)
동훈은 만족을 모르지만, 바로 이 점이 그에게 향유를 선사하는 것이다.
향유란 의식적인 차원이 아닌 무의식의 차원에 속하는 것이고19) 히스테리 주체의 욕망은 상실 한 무언가에 대한 획득이 아닌 ‘욕망하는 욕망’ 그 자체에 있는 것이다.
15) 브루스 핑크, 라캉과 정신의학, 맹정현 역, 민음사, 2002, 210, 222, 303쪽.
16) 브루스 핑크, 라캉과 정신의학, 맹정현 역, 민음사, 2002, 217쪽.
17) 슬라보예 지젝 외, 성관계는 없다, 김영찬 외 역, 도서출판b, 2005, 200쪽.
18) 대단원에서 동훈이 상무로 진급한 후에도 그는 그 위치를 자신의 자리로 인식하지 않고 퇴사하는 점에서도 히스테리적인 정신 구조가 확인된다.
19) 주느비에브 모렐, 「여성의 질투」, 슬라보예 지젝 외, 성화, 김인경 역, 인간사랑, 2016, 241쪽.
히스테리 주체는 불평하면서도 과녁을 맞히지 않음으로써 무의식적인 만족을 얻는다.
끊임없이 결핍을 토로하면서 바로 그 결핍에서 만족을 얻는 것이다.20)
혹여 허구적 대타자로부터 답변을 얻었다 할지라도 히스테리 주체는 그 답변에 만족하지 못한다.21)
욕망을 성취한 것처럼 인 식되더라도 그 성취에도 안주하지 못하는데, 히스테리적 주체가 욕망하 는 것은 결핍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동훈은 지속적으로 불만족과 결핍 을 토로한다. 안정적인 지위에 확고한 사회적 정체성을 부여받은 상태 에서도 그는 결핍을 호소한다. “나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 내 진정한 내력이 아닌 것 같고. 다 아닌 것 같고”는 이런 동훈의 정신구조를 반영 한다. 동훈은 사회적 호명에 실패하고, 사회가 부여한 정체성에 대해 ‘내가 정말 그것인가’라는 의심을 하는 히스테리 주체인 것이다.22) 그는 자신을 부정하고 만족을 유예한다. 지안의 말대로 동훈은 “월 오 륙백을 벌어도 지겨워” 하고, “성실한 무기징역수처럼 꾸역꾸역” 살아가 며(4화) “현실이 지옥”(7화)이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동훈과 지안의 관계 가 주저와 머뭇거림으로 형성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동훈의 시선은 지 안에게 지속적으로 향하지만 그에게 만족은 오히려 만족을 유예하는 것 이므로 그녀에 대한 자신의 욕망 또한 성취시키지 않는다. 동훈이 지안 에게 지속적으로 시선을 주고, 그녀를 도와주면서도 그녀를 욕망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것은 그의 히스테리적인 측면과도 무관하지 않다. 지안은 분명 동훈의 욕망과 결핍을 자극하고, 욕망을 추구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는 점에서 동훈의 대상a(objet petit a)이지만 그는 그 대상a 에게서 만족을 얻지 못한다. 오히려 만족이 되지 않음으로 해서 그 대상 a를 지속적으로 욕망할 수 있게 된다. 지안은 지속적으로 동훈의 욕망 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23) 마찬가지로, 동훈은 지안의 대상a가 되지만, 20) 슬라보에 지젝, 성관계는 없다, 김영찬 외 역, 도서출판b, 2005, 262쪽. 21) 주느비에브 모렐, 「여성의 질투」, 슬라보예 지젝 외, 성화, 김인경 역, 인간사랑, 2016, 249쪽. 22) 슬라보예 지젝,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박정수 역, 인간사랑, 2004, 281-282쪽, 357쪽 ; 슬라보예 지젝,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 박정수 역, 그린비, 2009, 513-515쪽. 23) 욕망엔 대상이 없다. 대상a는 욕망의 원인이자 미끼이다: 권택영, 라캉, 장자, 태극 286 현대문학의 연구 84 지안에게 만족을 주지도 않는다. 지안에게 “나 그렇게까지 괜찮은 사람 아니야”(12화)라고 말하는 것도 지안에게 만족을 주지 않으려는 그의 무 의식적 증상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히스테리 주체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면면서도 동시에 타자 의 욕망의 대상으로 환원되는 것에 저항한다. 타자가 자신에게 정체성 을 부여할 수 있는 권위를 갖고 있기를 요구하면서도 그 권위를 제한하 고 싶어한다. 결국 히스테리 주체가 원하는 것은 자신에 의해 제약이 될 수 있는 어떤 주인이라 할 수 있다.24) 동훈의 친구 ‘상원(겸덕)’은 동훈에게 이런 지위에 있는 존재라고 볼 수 있다. 상원은 대학 졸업 후에 홀연 승려가 됐다. ‘승려’라는 위치로 인해 상원은 동훈에게 탈상징계적 존재가 된다. 동훈이 언급했듯 상원 은 대학입시에서 만점을 받은 인재였고 이 때문에 가족과 동네 전체로 부터 인정받는 존재였다. 상징계적으로 가장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이 승 려가 된 것이다.25) 이 점이 상원이 동훈에게는 더욱 중요한 타자로 기 능하게 한다. 동훈이 내적 갈등이 극심할 때 상원에게 문자를 하거나 결근하고 상원을 찾아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동훈: 나 하나 희생하면 인생 그런대로 흘러가겠다 생각했는데. (…) 겸덕: 더럽게 성실하게 사는데, 저놈이 이 세상에서 모범답안일 텐데, 막 판에 인생 더럽게 억울하겠다. (11화 S#37) ‘나 하나 희생하면 인생 그런대로 흘러가겠다 생각했는데’라는 말은 동 기, 민음사, 2003, 230쪽. 24) 레나타 살레클, 사랑과 증오의 도착들, 이성민 역, 도서출판b, 2003, 26쪽. 25) <나의 아저씨>에서 가장 히스테릭한 인물이 ‘상원’일 수도 있다. 그의 환상 횡단은 ‘상징적 자살’(symbolic suicide)까지 나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환상 횡단조차 끝난 것은 아니다. 드라마에서 ‘정희’와의 관계를 고려할 때 그 점이 더 드러난다. 상원은 동훈을 극단으로 심화시킨 캐릭터라고도 볼 수 있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 상호적 환상 횡단의 가능성 287 훈의 환상을 드러냄과 동시에 환상 횡단의 가능성 또한 암시한다. 윤희 와 준영의 관계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처음엔 이를 외부에 노출시키지 않으려 한다. 어머니와 형 ‘상훈’과 동생 ‘기훈’이 그에게 매우 중요한 타 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이 변화하고, 더욱이 지안의 개입으로 인 해 동훈에게는 자신이 놓인 상황이 더욱 절망적으로 다가오게 된다. 그 리고 이 절망이 동훈에게는 오히려 탈출구가 된다. 윤희와 준영의 관계, 준영이 회사에서 자신을 몰아내려 한다는 사실 등은 그가 환상을 횡단 하는 것을 더 가속화시키기 때문이다.
Ⅲ. 외상적 도착 주체의 희생
지안에겐 살인의 과거가 있다.
대상자는 지안과 조모에게 폭력을 가 한 사채업자였다. 그녀는 모친의 빚 때문에 사채업자로부터 폭력을 당 했고 그 때문에 당시 중학생이던 지안은 그를 살해하게 된 것이다. 지안 은 그 전후로도 지속적으로 불법적인 행동을 일삼게 된다. 그녀의 반사회적 행동은 트라우마로 인해 발생한 방어기제이거나 욕 망의 억압으로 인한 왜곡된 증상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안의 증상을 단순 히 병리적 차원에서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녀의 욕망과 증상을 살피 기 위해서는 지안의 유아기 상상계로부터 조명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지안은 유아의 거울단계를 제대로 거쳤다고 보기 어렵다. 유아가 거 울단계를 제대로 거치지 않으면 통합된 자아 이미지 형성에 어려움을 겪는다. 거울단계에서 상징계로 진입하게 하기 위해 전제되어야 할 것 은 통합된 자아 이미지, 이상적 자아상의 형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기반으로 상징계적 규범이 내면화되고 사회화가 가능해지는 것이다.26)
26) 자크 라캉, 세미나 11: 정신분석의 네 가지 근본개념, 맹정현 외 역, 새물결, 2008, 218-219, 389쪽.
지안에게는 이 단계가 결핍됐다고 볼 수 있다.
그녀에겐 상징계적 규범 을 내면화할 수 있는 환경이 충분히 조성되지 못했으며 농인인 조모로 인해 상징계 진입이 더 어려웠을 수도 있다.
어렸을 때부터 조모 대신 생계 유지를 위해 일탈적 행위에 노출된 것도 그녀가 타자와의 체계적 인 관계를 형성하는 것에 장애가 되고, 사채업자 살해는 지안이 상징계 로부터 단절되는 것에 결정적인 계기가 됐을 것이다.
회사의 부장인 동훈에게 ‘아저씨’라 하고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나 상사에게도 반말과 거친 행동을 보이며 회사 직원의 불륜 행각 등을 도촬하는 등의 행동은 그녀가 상징계의 규범에 잘 적응되어 있지 못하 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그녀에겐 대타자가 없어 보인다.
그리 고 바로 그 점이 그녀에게 더 강력한 대타자가 있다는 반증이 된다. 상 징계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옹립된 대타자는 지안에게는 오히려 비합리 적이고 부조리하다.
이러한 대타자는 그녀의 생존과 생계에 도움이 되 지 않는다.
지안에겐 봉양해야 할 거동이 불편한 농인 조모가 있으며 사채업자에게 갚아야 할 빚이 있다. 이런 상황은 그녀가 어떻게 행동하 고 판단하고 선택해야 하는지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기준이 된다는 점 에서 그녀의 대타자는 이런 상황과 관계가 있다.
그녀에게 대타자는 오 히려 자신이 죽인 사채업자와 사채업자의 아들 ‘광일’을 비롯한 불법 적·탈법적인 주체와 관련이 된다고 볼 수 있다.27)
27) 조르조 아감벤의 관점대로라면, 지안은 호모 사케르(homo sacer)이다. 지안은 사라 져도 아무런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며 이 세계에 포함되면서도 철저히 배제된(포 함된 배제), ‘예외상태’의 존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조르조 아감벤, 호모 사케르, 박진우 역, 새물결, 2008. 61쪽 참조). 지안과 같은 호모 사케르에게 대타자란 이 기존 시스템의 규범과 법칙일 수가 없다. 생존을 위해서 지안에겐 이 세계 내 포함된 존재와는 다른 대타자가 옹립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지안은 바로 그 대타자를 부인한다. 지안은 대타자를 옹립했지만, 그 대타자를 부인 하는 도착적 주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28)
28) 도착적 주체는 상징계적 법이 온전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거세를 부인하는 주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법의 도구가 돼 스스로 아버지의 이름으로 법을 선포한 다. 부권 기능이 온전치 않은 상태에서 자신이 또 다른 아버지가 돼 자신의 법을 선포하는 주체인 것이다. 라캉은 도착증은 거의 남성에 국한된다고 했고, 여성 동성 애 또한 이성애로 규정한 바 있다(브루스 핑크, 라캉과 정신의학, 맹정현 역, 민음 사, 2002, 299, 334-336쪽). 그리고 이 점은 라캉이 비판받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 논문 에서는 우선 라캉의 이러한 주장에 대한 판단은 유보한다. 도착증이 거의 남성에 한정된 것이라 해도, <나의 아저씨>와 같은 ‘창작된 드라마’에서 도착적 구조의 여성 인물을 논의하는 것을 라캉의 주장과 온전히 대립된다고 볼 수도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령, 장 주네의 <하녀들>의 ‘하녀들’을 도착적 주체나 마조히스트라는 관점에 서 논의되는 것은 여성(인물)이 도착적 구조를 가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논의이기도 하다(송민숙, 「장 주네의 <하녀들>에 나타난 마조히즘 연구」, 인문과학논총 제19 호, 순천향대교수학습개발센터, 2007, 137-148쪽 ; 김숙현, 「라캉의 정신분석으로 본 장 쥬네의 <하녀들>-하녀들의 도착과 윤리」, 한국연극학 제41호, 한국연극학회, 2010, 211-247쪽).
지안의 도착증적 정신구조는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정신구조였으리 라는 가정도 가능하다.
만약 그녀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며 끊임없이 회의하는 히스테리증이나, 대타자를 완벽하게 만족시키며 대타자의 기 대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강박증이 있었다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했을 수 있다.
그녀의 도착증은 역설적으로 그녀를 심각한 병리 상태로 빠지지 않게 한 증상이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도착적 정신구조로 지안을 재해석해 보자면, 그녀는 통상적 규범이 아니라 생계 유지와 조모를 보 살피기 위한 자신만의 법을 세워야 했고, 따라서 그녀의 불법 행위는 법 을 위반한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법’을 충실히 이행한 결과였던 것이다.
도청도 이런 맥락에 있다. 그녀에게 도청은 비윤리적인 행위가 아니다.
생존을 위해서는 준영에게서 돈을 받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동훈을 통제해야 하는데, 도청은 그녀가 취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안은 동훈의 행동을 필요할 경우 통제할 수 있으며 도청을 통해 자신의 의도대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음으로써 자기 자신 에 대한 이미지인 자아 또한 보존할 수 있게 된다.
도착 주체는 자신의 법을 세우면서 동시에 그것이 대타자의 법을 대 리하는 것으로 파악하기 때문에 죄의식이 발생하지 않는다.29)
지안이 동훈에게 전달됐던 ‘백화점 오천만 원 상품권’을 훔치면서 죄의식이 없 었던 것도 이와 관련된다.30)
광일과의 관계에서도 지안의 도착적 면모가 나타난다. 지안과 광일은 매우 닮았지만, 서로가 서로를 부인한다.
그리고 이 ‘부인’은 도착적 주 체의 본질이다.
광일을 부인하면서 지안이 광일에게서 벗어나지 않는 (못하는) 것은 그녀의 마조히스트적인 성향과도 관련이 있다.
그녀는 광일의 폭력을 감당하면서 광일의 아버지를 죽인 자신의 죄의식을 해소 한다.
마조히스트에게는 상징적인 거세를 대체할만한 처벌형식이 필요 한데 지안에게는 그것이 광일과의 관계에서 형성되는 것이다.31)
29) 도착증자는 도착적 동일시 속에서 스스로 욕망의 주체로 존재하면서 자기를 방어하 기 위해 부권적 기능을 대체할 만한 정언적 법을 필요로 하게 된다: 조엘 도르, 프로 이트·라깡 정신분석임상, 홍준기 역, 아난케, 2005, 197쪽.
30) 도착증자의 외설적 주이상스는 그가 행하는 것에 대해 자신은 죄가 없다고 인식하 는 데서 발생한다. 그는 단지 대타자의 의지를 수행한 것뿐이며, 자신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인식하면서 타인에게 고통을 가할 수 있다: 슬라보예 지젝,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 이성민 역, 도서출판b, 2007, 163-164쪽.
31) 라캉에게 있어서 도착증이 성적 관계에 한정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마조 히즘과 사디즘 또한 성적 관계에 제한되지 않는다. 마조히즘과 사디즘은 상징적인 거세와 관련이 된다. 마조히스트는 상징적 거세를 대체할 만한 어떤 것을 찾게 되는 데 이것은 마조히스트에게 유용한 처벌형식으로 기능하게 된다. 라캉이 말한 것처 럼 ‘거세의 이미지 자체에 의지하는 것은 마조히스트에게 불안을 극복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브루스 핑크, 라캉과 정신의학, 맹정현 역, 민음사, 2002, 326-328쪽.
역설적으로 지안의 도착적 욕망과 환상을 위해서는 광일이 필요한 셈 인데, 이런 차원에서 광일에게 판관의 역할을 부여하는 것도 지안 자신 이다.
지안의 ‘나는 그 애가 착했던 때를 기억해서 괴롭고, 그 애는 나를 좋아했던 때를 기억해서 괴롭다’(15화)는 말은 그 괴로움이 자신의 상징적 거세를 상쇄시켜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만약 그 괴로움이 없다면 심각한 죄의식 때문에 도착증은 정신증(정신병)이 될 수도 있기에, 지안 에게 광일과의 관계는 오히려 그녀로 하여금 정신증을 회피할 수 있게 했던 것이다.
광일과의 관계는 지안의 주이상스와도 관련된다.
자신을 괴롭히는 광 일에게 “나 좋아하지?”라고 반문하며 구타와 폭력을 감내하는 것은 지안 의 향유에 속한다.
그리고 이것은 광일의 주이상스이기도 하다.
광일은 어렸을 적 지안을 구타하는 아버지를 말리다 아버지에게 구타당했고, 다친 지안을 업고 지안의 집에 데려다주기도 했었다.
지안의 살인은 광 일의 죄의식을 거듭 자극하는 사건이 된다.
지안이 자신의 아버지를 죽 임으로써 광일이 자신의 아버지 살해 욕망을 직면함으로써 받게 된 트 라우마와, 아버지를 죽인 지안을 미워해야 한다는 도덕적 당위를 실현 시킬 수 없는 딜레마에 처하게 된 것이다.
그가 지안에 대한 과잉 분노 를 표출하는 것은 지안과 마찬가지로 죄의식을 상쇄시키는 무의식적 반 응이다.
지안이 광일에게서 벗어나지 않듯이(못 하듯이), 광일 또한 지 안에게서 벗어나지 않는(못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지안과 광일은 동일한 정신구조를 가졌다고 할 수 있다.
도착적 주체에게는 초자아가 강력한 기능을 하는데, 이때 초자아는 자 아가 순응할수록 더욱 잔인해진다.32)
32) 대니 노부스 편, 라캉 정신분석의 핵심 개념들, 문심정연 역, 문학과지성사, 2013, 40쪽.
광일의 태도가 더 험악하고 악랄 해지는 것은 그의 행위 자체가 더 험악하고 악랄해지기 때문이라는 동 어반복의 설명이 가능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안이 순응하고 그 폭력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의 초자아는 더 강력해지고 광일의 자아 또한 이 초자아에 순응하면서 그는 더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것이이다.
지안이 광일의 돈을 갚으면 갚을수록 광일은 더 광폭해지는 것도 이 때문이라 할 수 있다.33)
33) 라캉은 마조히즘과 사디즘을 다른 것으로 보지 않는다. ‘사도–마조히즘’이라는 용어 를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용어에는 사디즘은 마조히즘에 대한 부인에 불과할 뿐이라고 관점이 내재돼 있다(자크 라캉, 에크리, 홍준기 외 옮김, 새물결, 2019, 67, 119, 730-731쪽 참조). 지안이 광일과의 관계에서 외적으로는 마조히스트인 것 같 지만, 한편으로는 광일에게 끊임없이 고통을 주는 사디스트처럼 보이는 것도 이 때문 이다.
물론 둘 사이에 이루어지는 폭력은 광일의 아버지에 의해 폭력을 당한 유년 시절과 깊이 관여되어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확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주목되는 점은 이런 상황이 무의식적 측면에서 지안에게 만족을 준다 는 것에 있다. ‘돈을 갚으라’는 광일의 명령에 대해 순응하는 지안으로 인해 광일의 향유는 불가능해지고 이것은 광일에게 가장 큰 형벌로 작 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돈을 받는 주체인 광일은 돈을 받으면 받을수록 향유가 박탈되고, 지안은 폭력에 노출돼 돈을 갚을수록 향유 의 주체가 되는 역설이 도착적 주체의 상호간에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지안과 광일의 관계와 그들의 환상에 균열을 내는 것도 지안 과 동훈의 관계를 통해서이다. 그리고 이 관계의 형성과 환상의 균열에 는 도청이 매우 중요한 매개가 된다는 점에서, 이 ‘도청’에 대한 논의를 더 이어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Ⅳ. 전도된 시선과 응시의 효과
<나의 아저씨>의 공간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동훈의 직장이 있 는 도심과 동훈의 가족과 친구가 살고 있는 후계동, 그리고 그 도심과 후계동 사이에 망처럼 얽힌 지하철이 그것이다. 도심 도처에는 감시카 메라(cctv)가 있고 회사에는 24시간 보안요원이 배치돼 있다.
이 때문에 개인은 감시당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지만 정작 이런 시선(look)의 억압 때문에 시선의 사각지대인 ‘응시(gaze)’에 대한 인지는 하지 못하게 된다.34)
34) 시선과 응시가 일치하지 않고 분열된다. “너는 내가 너를 보는 곳에서 나를 응시하지 않”으며 나는 사물을 바라보지만 사물이 나를 응시하는 것을 나는 보지 못한다: 자크 라캉, 세미나 11: 정신분석의 네 가지 근본개념, 맹정현 외 역, 새물결, 2008, 143쪽, 162쪽.
동훈이 ‘누가 보지 않으면 괜찮다’(4화)고 말하는 것은 응시에 대한 인식의 부재와 관련이 있다.
시선에 노출되지만 않으면 그 행동이 나 사건이 없던 것과 같다고 위안 삼는 사이, 그 시선 너머의 또 다른 시선과 응시가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게 된다.
시선의 과잉이 응시 를 은폐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전력공급 차단기 에피소드이다.
지안은 백화점 상품권을 훔칠 때(1화), 그리고 ‘박동운’ 상무의 술에 약 을 타서 먹게 할 때 차단기를 내리는데(3화), 이는 차단기만 내리면 시 선을 가진 모든 주체들이 무력화된다.
시선의 주체였던 감시카메라도 보안요원도 회사 내의 권력자도 역능이 상실하게 되는데, 이로써 시선 의 허술함과 한계가 드러난다.
시선의 한계를 지닌 것은 지안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차단기를 내려 서 모든 시선을 통제했다고 믿었지만 결국 그녀의 행위는 모두 밝혀진 다.
동훈 또한 예외가 아닌데, 그는 감시카메라가 없는 곳을 통해 자신 의 사무실로 접근하려고만 했지, 그 시선과 무관하게 자신의 행동이 무 엇에 의해 노출되고 있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1회의 독특한 시점 쇼트(스틸컷2)는 인간의 이러한 시선의 한계를 압 축적으로 보여준다. 스틸컷2
위 장면은 사무실에 들어온 무당벌레 하나로 소동이 일어난 상황을 보여준다.
어안렌즈(초광각 렌즈)를 통해 촬영한 듯 보이는 이 장면은 무당벌레의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무당벌레의 시점으로 본 장면을 통 해 스스로를 시선의 주체로 여기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오만을 드러낸 다. 이 장면은 드라마의 첫 시퀀스라는 점에서 더 유의미하다. <나의 아 저씨>는 처음부터 시선의 한계를 노정하고 있는 것이다. 시선과 응시의 분열 측면에서 도청은 더욱 독특한 성격을 갖는다. 도 청이 타자에 대한 시선의 역할을 한다면, 시선의 주체는 지안이고 그 대 상은 동훈이지만, ‘응시’의 대상은 동훈에게 한정되지 않고 오히려 지안 에게 더 극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도청의 주체는 지안이지만, 지안 이 오히려 응시에 의해 더 노출되는 것이다.35)
35) 박혜영의 전작 <또 오해영>(박해영·위소영 극본, 송현욱·이종재 연출)에서도 우연 히 듣게 된 녹음된 말이 상대의 욕망뿐만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깨닫게 되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한다. 이 경우에도 녹음된 내용이 응시의 주체가 되고 그것을 듣는 이가 응시의 대상이 되는 전복이 발생한다.
응시는 실재계에 속한 것이므로 응시에 의해 노출되는 것은 그 ‘대상’ 뿐이다.
관건은 그 대상이 응시를 감지하는가 아닌가에 달려 있다. 응시 를 감지한다는 것은 자신을 지탱하던 환상을 가로질러 진실과 실재를 직 면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지안의 도착적 환상은 물론 고통스러운 것 이었지만 더 큰 고통을 회피하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그녀의 삶을 버티게 해주었다.
하지만 도청으로 인해 그것이 점점 더 불가능해지게 된다.
지 안은 도청으로 인해 누구(무엇)인가에 의해 들키고 그 때문에 기존의 환 상을 가로질러 낯설고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고 깨닫게 되는 것이다.
동훈: 경직된 인간들은 다 불쌍해. 살아온 날들을 말해주잖아. 상처받은 아 이들은 너무 일찍커버려. 그래서 불쌍해. 걔의 지난날들을 알기가 겁난다.
지안: 개새끼. (4화 S#41)
동훈이 회사 직원들에게 지안을 ‘불쌍하다’ 했을 때 도청으로 그것을 듣고 있는 지안에게서 “개새끼”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이런 반응은 자신 을 지탱하던 환상에 균열이 갔음을 의미한다.
자신은 타자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지, 타자에게 ‘불쌍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불쌍하다는 것은 자신이 타자를 조정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을 좌절시키고 자신 이 보호받아야 하는 취약한 대상이라는 실재를 직면하게 만든다.
역설적 으로 지안이 동훈을 도청했기 때문에 그녀는 응시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후로도 지안의 환상은 도청에 의해 점점 더 약화된다.
타자를 통제 해야만 하고, 통제할 수 있으며, 사회는 자신을 보호해주지 않으며, 스 스로 생존해야 한다는 지안의 환상이 도청에 의해 균열이 발생하는 것 이다.
자신이 ‘불쌍한 존재’라는 것(4화, 9화), “춥게 입고 다니는 이쁜 애”라는 것(7화), 자신이 저지른 살인은 불가피했다는 것(4화, 9화)을 비 로소 인지하게 된다.
여기에, 동훈이 지안에게 ‘착하다’고 하고 지안이 녹음된 그 말을 반복적으로 듣는 장면(5화)을 통해 그녀가 비로소 자신 의 환상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환상을 가로질러 응시의 대상으로서 자신을 가늠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드라마에서 도청의 의미는 도청을 통해 지안이 동훈을 알게 되었다는 것에 있는 것 이 아니라, 오히려 도청을 통해 지안이 자기 자신에 대한 시선의 한계를 벗어나게 되었다는 것에 있다.36)
흥미로운 점은 지안이 동훈을 도청했듯, 광일도 지안을 숨어서 따라 다니며 그녀를 관찰했다는 점이다(7화). 광일의 행동은 지안의 반복이 라고 할 수 있다. 이 반복은 ‘불쌍하다’는 말에서 두 사람이 동일한 반응 을 보이는 데서도 나타난다. 광일은 지안의 녹음 파일을 듣게 되는데 거기서 자신을 두고 지안이 불쌍하다고 할 때 분노한다(15화). 이 분노 또한 자신을 버티게 하던 환상에 균열이 일어나고 자신의 상처를 마주 치게 되었다는 방증이다.37)
이 또한 광일이 지안을 관찰하고 녹음된 도 청을 다 듣는 시선의 주체였지만, 결국 그 시선을 통해 응시의 대상이 되었음을 나타낸다. 시선을 넘어서는 응시가 존재한다는 것은 스텝프린팅(step-printing)에 의해서도 암시된다(4화)38).
36) 응시의 주체를 동훈 자체라고 할 수는 없다. 동훈에 의해 언어로 표현되지만, ‘시선’ 의 차원에서 동훈이 지안을 향해 한 말이 아니라 도청을 통해 지안이 들은 말이며, 따라서 동훈은 응시를 감지하게 만드는 매개자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37) 불쌍하다는 말에 분노하는 것은 ‘준영’도 마찬가지다. 윤희는 준영에게 “너 불쌍해. 대학 때부터 불쌍했어”라는 말을 하는데, 윤희와 헤어진 후 집에 돌아온 준영은 이 말을 떠올리며 당황과 분노의 표정을 짓는다(8화).
38) 스텝프린팅은 4화뿐 아니라 동훈과 지안이 술을 마시는 장면이나 동훈이 고통스러 워 하는 장면(스틸컷12 참조), 어린 지안이 폭력을 당하고 살인을 하는 장면(스틸컷7 참조) 등에서 자주 사용된다.
스틸컷3 스틸컷4
동훈과 기훈의 대화(스틸컷3)는 그 대화를 도청하고 있는 지안의 장면 (스틸컷4)과 교차편집된다.
그리고 보이스오버(voice-over)로 “성실한 무기징역수처럼 꾸역꾸역”이라는 지안의 말이 나온다(스틸컷3).
이 쇼트는 스텝프린팅을 통해 장면화되는데, 이러한 연출은 동훈을 바라보는 무언 가의 응시를 환기시킨다.
특히 동훈의 등 뒤에 놓인 창밖 시점의 카메라 는 이러한 점을 부각시킨다. 이때 동훈의 “누가 날 알아. 나도 걔를 좀 알 것 같고”라는 말은 도청을 당하고 있는 동훈이 지안을 알게 된다는 역설 또한 담고 있다. 지안이 도청을 통해 동훈의 상황을 들으면서 자신의 과거 사건이 떠오 르고 그 사건을 재해석하게 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이는 ‘시선’의 차원에서 ‘응시’로 넘어가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시선 과 응시의 분열은 역동적인 교차편집으로 더 심화된다(4화 S#68~S#80). 스틸컷5 스틸컷6 스틸컷7 스틸컷8 스틸컷9 스틸컷10 스틸컷11 스틸컷12 스틸컷13 4화의 S#68~S#80은 ‘빌라 건물주(강용우) 사무실’, ‘지안의 집’, ‘요순(동훈 모)의 집’, ‘도심의 거리’에서 일어나는 일로 교차편집돼 있다. 요약하 면, 동훈이 빌라 건물주 사무실에 들어와 가족에게 고통과 모욕을 준 사 실을 환기시키는 장면(스틸컷5), 가족이 몰랐기에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었던 자신의 과거(스틸컷6), 지안의 살인 과거(스틸컷7), 눈물 흘리는 지안의 얼굴(스틸컷8), 건물주가 동훈 가족을 찾아가 사과하는 장면(스 틸컷9), 도청하는 전화기 삽입 쇼트(스틸컷10), 망치로 불법 개증축 된 건물을 두드리는 동훈(스틸컷11), 그곳을 나와 거리를 헤매는 동훈(스틸 컷12), 그것을 듣고 있는 지안(스틸컷13)의 장면으로 구성돼 있다.
주목 할 부분은 동훈의 대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건물주의 사무실에서만 진행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듣고 있는 지안의 장면에서 보이스오버로도 제시된다는 점이다.
동훈: 나도 무릎꿇은 적 있어. 뺨도 맞고 욕도 먹고. 그 와중에도 다행이 다 싶은 건 우리 가족은 아무도 모른다는 거. 아무렇지 않은 척 저녁을 먹고 (…)내가 무슨 모욕을 당해도 우리 식구만 모르면 아무 일도 아니야. 근데 어떤 일이 있어도 식구가 보는 데서 그러면 안 돼. (…) 식구가 보는 데서 그 러면 그땐죽여도 이상할 게 없어. (4화 S#70~71)
특히 “식구가 보는 데서 그러면 그땐 죽여도 이상할 게 없어”라고 말 하는 부분에서 지안의 회상 쇼트가 내화면으로 제시되고 동훈의 목소리 는 보이스오버로 들린다.
이어서 지안의 눈물을 흘리는 쇼트가 함께 제 시되는데 이러한 장면의 중첩은 지안이 도청을 통해 오히려 자신의 상 처와 실재를 맞닥뜨린다는 점을 더 부각시킨다.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편집되면서 유사한 효과를 발생시키는 시퀀스 가 있다. 동훈과 광일의 싸움 장면에서다.
동훈이 광일을 찾아가 지안의 빚과 광일의 폭력에 대해 언급하는 과정에서 둘의 몸싸움이 일어나고 광일이 지안을 ‘살인자’라고 하자, 동훈은 “내 식구 패는 놈은 나도 죽여”(9화)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을 듣고 있던 지안은 오열하는데, 이 장면에서도 도청이 오히려 지안이 자신의 트라우마를 직시하게 한 응시 의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안은 도청을 통해 환상에 갇힌 자아가 아니라 응시에 의해 보여지는 대상이 되고, 대상으로서 자신을 비로소 인식할 수 있게 된다. 동훈은 지안을 보고 있지 않지만, 지안은 동훈에 의해 보여지고 있는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 시선과 응시의 역설은 한 사건을 중심으로 서로 다른 시간대와 공간 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상황을 마치 동시적 사건처럼 반복적으로 교차편 집하는 것을 통해 더 극적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이것은 각 사건과 상황 속 인물들을 시차적 관점에서 다시 보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하나의 시선으로 상황을 응결시키지 않고 그 사건이 어떻게 재해석되고 해체되 는가가 이 교차편집으로 암시되는 것이다. 도청은 결국 시선 주체의 전복으로 이어진다. 동훈은 자신의 전화기 가 도청됐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의 연락을 받지 않는 지안에게 그 전화기를 이용해 지안에게 메시지를 전하게 된다. 지안은 동훈의 메시 지를 들은 후 불안에 휩싸인다. 이 장면은 도청을 통해 지안이 응시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동훈의 직접적인 시선의 대상이 되었음을 보여준 다. 시선 주체의 전복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시선 주체의 전복은 지안의 환상 횡단을 더 적극적으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동시에 동훈 또한 지안이 자신을 도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괜찮은 사람, 좋은 사람’으로 판단한 것을 통해 자기 자신의 히스테리적 환상을 가로지르 게 된다.39)
39) 히스테리증자에게는 ‘인정’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레나타 살레클, 사랑과 증오의 도착들, 이성민 역, 도서출판b, 2003, 185쪽.
Ⅴ. 상호적 환상 횡단의 과정
지안의 환상은 자신의 선택과 행위가 자신을 지켜줄 거라는 믿음에 근거했다. 그녀에겐 자신만의 법체계가 필요했으며 자신의 법에 따라 불법적인 행위를 죄의식 없이 행할 수 있었다.
더불어, 그녀의 삶은 그 녀의 정신구조와 환상을 더욱 강화했다. 자신과 할머니의 삶이 자신의 행동으로 겨우 이루어질 수 있음이 점점 더 학습되어 갔던 것이다. 그녀 는 상징계적 법과 사회 안전망을 불신했으며 이 때문에 타자와의 관계 도 왜곡돼 있었다. 할머니가 무료지원으로 요양원에서 지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면서 동훈이 했던 “그런 것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었나?”(7화)라는 말은 지안 이 상징계의 사각지대에 있었음을 드러낸다.
사회 안전망에도 격차와 불평등이 있고, 지안은 자의적으로가 아니라 시스템에 의해 배제되었던 것이다. ‘왜 자꾸 태어나는지’ 푸념하는 지안의 말(8화)에서도 그녀가 사회로 부터 보호받지 못했음이 확인된다.
지안: (…) 왜 자꾸 태어나는 걸까? (8화 S#6)
지안: 난 이제 다시 태어나도 상관없어요. 또 태어날 수 있어. 괜찮아요. (14화 S#25)
왜 자꾸 태어나는지 회의하던 지안이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녀가 이 세계를 긍정하게 됐다는 의미이다. 이 세계를 긍정하게 됐다는 것은 이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법과 체계를 수용할 수 있게 됐다 는 의미이며, 이는 그녀가 비로소 상징계에 진입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동훈의 상무 진급 과정에서 시행됐던 지안의 인터뷰는 그녀가 동훈으로 인해 상징계에 진입할 수 있었음을 명시화한다.
지안: 무시, 천대에 익숙해져서 사람들한테 별로 기대하지도 않았고 인 정받으려고 좋은 소리 들으려고 애쓰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젠잘하고 싶어졌습니다. 제가 누군가를 좋아하는 게 어쩌면 지탄의 대상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전 오늘잘린다 해도 처음으로 사람 대접 받아 봤고 내가 괜찮 은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준 이 회사에, 박동훈 부장님에게 감사할 겁니다. 여기서 일했던 3개월이 21년 제 인생에서 가장 따뜻했습니 다. (12화 S#71)
지안의 상징계에 대한 긍정은 도착적 환상을 가로지르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지안이 동훈을 만나기 이전엔 상징계 내에서 생계를 유지하고 자신과 할머니를 지키기 위해 도착적 환상을 지속시켜야 했다면, 동훈 으로 인해 그 환상을 횡단하게 된 것이다.
동훈으로 인하여 지안에게 비로소 상징계적 인정욕망이 발생한 것도 주목된다.
인정욕망은 그 자 체로 대상을 관계와 사회, 상징계로 편입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지안의 환상 횡단은 상징계에 진입하는 과정을 동반한다는 점에서 일반 적인 환상 횡단과 패턴을 달리한다.
통상, 환상의 횡단은 상징계적 욕망 의 허무함을 깨닫는 것과 관계되지만, 지안의 경우에는 오히려 상징계 에 비로소 안착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만약 이 상징계로의 진입이 상징계적 욕망의 모방에 있다면 환상의 횡단이라고 할 수는 없 을 것이다.
지안의 상징계 진입이 환상의 횡단일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이 취약한 주체이며 상징계적 시스템과 공동체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새로운 깨달음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행동이 자신 탓이 아니며 불가피했던 행동이었다는 것, 자신의 행동이 자신과 할머니를 보호하기 위한 행동이었음을 인식하고 이 과정에서 자신의 욕망을 직면 하게 만든다.
자신의 트라우마를 이해하게 되고 자신의 취약함을 수용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그녀의 도착적 정신구조가 변화했다는 것을 의미하지 는 않는다.
특히 지안이 동훈을 위해 도피를 결정하고 마치 스스로 자기 삶을 박탈한 것처럼 보이는 장면에서는 지안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지만, 애초에 도청을 통해 ‘동훈’과 ‘동운’을 회사에서 쫓아낼 수 있 다고 스스로 믿으며 자신의 믿음을 준영에게도 갖게 한 것이 도착적 환 상이었던 것처럼, 같은 맥락에서 자신이 동훈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 고 믿는 것 또한 환상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40)
지안: 박동훈 건드리는 새끼들은 내가 다 죽여 버릴 거야. (14화 S#29)
준영: 잡히면 시작점을 불어야 되는 건데, 선배 인생 공개적으로 개망신 당하는 건데, 선배가 제일 무서워 하는 게 그건 거 걔가 아는데. 만에 하나 잡히더라도 불륜은 빼고 얘기하자고. (15화 S#1)
타자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는 믿음, 즉 자신의 희생으로 동훈이 행 복해질 수 있다고 믿은 것은 자신이 타자를 만족시킬 수 있다는 도착증 적 환상에 속한다.41)
40) 도착증자는 스스로 타자의 욕망 대상의 자리에 위치하고자 한다. 도착증은 자신의 행동이 대타자의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불가피한 것이며 타자를 만족에 이르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환상에 기반한다. 도착증자는 자신을 타자 속에 결여된 어떤 것으로 구성하려는 욕망을 갖는 것이다. 타자에게 고통을 가할 수도 있게 된 것 또한 도착증과 무관하지 않다: 브루스 핑크, 라캉의 주체, 이성민 역, 도서출판b, 2010, 304쪽.
41) 브루스 핑크, 라캉과 정신의학, 맹정현 역, 민음사, 2002, 334-336쪽.
그녀가 희생코자 하는 이유는 동훈을 위해서이지 만 동시에 이것이 자신에게 주이상스를 주기 때문이다.
이는 역으로 자 신의 주이상스를 위해 동훈이 필요하다는 것으로도 이해될 수 있다. 도 착적 주체는 대상a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려 하고 이것은 자신이 타자의 주이상스 도구라는 환상에 근거하기 때문이다.42)
여기서 지안의 변화가 도착증적 정신구조를 폐기하면서 일어나는 것 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할 수 있다.
오히려 그녀의 희생은 도착적인 자기 도구화이며43), 이를 통해 상처의 거래 또한 가능해진다.44)
상처의 거래 는 상처처럼 보이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치유 혹은 보상으로 작동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지안은 자신의 도피가 동훈을 위한 불가피한 행동이 라고 여기지만 그것은 그 자체로 지안 자신에게 치유이며 보상일 수 있 는 것이다.45)
42) 도착증적인 희생에서 주체는 자신을 고통받는 타자가 의지할 대상으로 만들면서, 자신은 타자를 위해 희생시킨다는 믿음 속에 놓인다: 자크 라캉, 세미나 11: 정신분 석의 네 가지 근본개념, 맹정현 외 역, 새물결, 2008, 163쪽
43) 슬라보예 지젝, 존 밀뱅크, 예수는 괴물이다, 배성민 역, 마티, 2013, 126쪽.
44) 슬라보예 지젝,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 이성민 역, 도서출판b, 2007, 377쪽.
45) 지안의 도피는 욕망의 폐쇄회로에서 벗어난 ‘충동’으로 볼 수도 있다. 여러 제약으로 인해 동훈을 ‘욕망’하는 것에 제동이 걸린 지안이 결국 욕망하는 주체로서 자신을 내려놓고 완전히 상징계에서 사라지는 일종의 ‘상징적 자살’을 선택한 것으로 해석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지안은 바로 이 때문에 지속적으로 동훈을 욕망하는 상태가 될 수 있는데, 이 반복적 욕망 자체에서 만족을 얻는 것이 ‘충동’이라 할 수 있다. ‘충동’의 차원에서 동훈의 행동도 설명할 수 있다. 동훈이 지안과의 관계 이후로 빌라 건물주를 찾아가거나 광일과 싸우는 등의 행위는 그에게 ‘가족’, ‘친구’ 등이 매우 중요한 타자였다는 점에서 이례적인 행동이다. 욕망과 달리 충동은 타자 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알렌카 주판치치, 실재의 윤리, 이성민 역, 도서출판b, 2004, 220-221쪽)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의 이런 일련의 행위는 충동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 화에서 지안의 “난 아저씨를 만나서 처음으로 살아 봤는데”라 는 말에서도 이 점이 드러난다.
동훈: 너, 나 살리려고 이 동네왔었나 보다. 다 죽어가는 나 살려 놓은 게 너야. 지안: 난 아저씨를 만나서 처음으로 살아 봤는데. (16화 S#63)
지안은 동훈으로 인해 비로소 “사람 대접 받아 봤고”(12화) 처음으로 “살아 봤다”(16화)고 말한다.
그 이전이 ‘삶’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는 것은 이전의 환상이 붕괴되었음을 의미한다.
지안에게 ‘삶’이 가능하 기 위해서는 동훈과의 환상이 유지돼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그녀는 ‘도피’할 수밖에 없었고 이 도피는 그녀에게 오히려 삶을 살게 만드는 치유이며 보상이 되었던 것이다.
문제가 해결되고 지안이 더 이상 도피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되었 을 때에도 동훈이 지안의 대상a로서의 지위가 유지되는데, 그 계기가 된 것이 ‘이별’이다.
지안: 생각만 해도 거지 같잖아요. 아저씨 볼까 싶어 이 동네배회하고 다 니는 거.
동훈: ….
지안: 죽었다 깨어나도 행복할 거라면서요. 나 없어도 행복한 사람 무슨 매력 있다고” (16화 S#63)
부산으로 떠나게 된 지안에게 동훈은 그 이유를 물어보는데, 지안의 “나 없어도 행복한 사람 무슨 매력 있다고”라는 말에서 그녀의 주이상스 를 확인할 수 있다.
이 말은 자신이 타자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는 지안의 도착적 환상을 암시하면서도 동훈이 진심으로 행복하면 좋겠다 는 바람을 함께 내포하고 있다.
그녀는 동훈을 볼까 싶어 동네를 배회한 것이 ‘생각만 해도 거지 같다’고 했지만, 그녀가 그렇게 배회했던 것은 고통을 감내하는 일이었다기보다는, 그 고통 자체가 주이상스였기 때문 이라고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그녀가 부산으로 떠나는 것 또한 그녀 에게는 주이상스가 될 수 있다.
“아저씨 소리 다 좋았어요. 다 좋았어요. 아저씨 말, 생각, 발소리, 다. 사람이 뭔지 처음 본 것 같았어요(15회)”에 서 알 수 있듯, 지안에게 동훈은 절대적 타자이며 그녀의 주이상스를 유발시키는 대상a라고 할 수 있다.
그녀의 떠남은 환상을 횡단한 그녀의 주이상스와 무관하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나아가서 동훈은 그녀가 만족시키고자 하는 대상이면서 그녀에게는 상징계의 대 표격이라는 점에서 대타자의 자리를 채우게 되는 존재가 된다.
상징계 에서 생존하기 위해 불법과 탈법이 과거 그녀의 대타자였다면 환상의 횡단으로 인해 동훈을 위시한 가치와 시스템이 그녀의 대타자로 변화하 게 된 것이다.46)
46) 대타자는 사회적 장에 걸쳐 있는 허구이자 상징적인 구조이다(마크 피셔, 자본주의 리얼리즘, 박진철 역, 리시올, 2018, 79쪽). 대타자는 특정 대상이 아니라 구조적 차원의 개념이므로 대타자의 변화가 정신구조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도 착적 주체에게 중요한 것은 대타자가 누구(무엇)인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대타자 를 만족시키려는 욕망에 있다.
환상 횡단은 동훈에게서도 일어난다.
동훈은 지안이 상징계에 진입할 수 있도록 출구를 열어 주었고, 이런 이타적 행위는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행위가 된다.
동훈이 지안과의 마주침 이전엔 욕망을 억압하고 타 자의 욕망에 기반하여 살았다면, 지안을 이해함으로 인해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자기 욕망을 이해하는 사람이 된다.
환상 가로지르기의 가능성에 가장 가까이 있는 주체가 히스테리증자 이기도 하다.
히스테리증자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다가 그것이 진짜 자신의 욕망인지 끊임없이 되묻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도착증자는 대타자를 부인하고 자신만의 법을 세워 항상 만족을 얻으려 하지만, 히스테 리증자는 (대)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다가 그것이 진실인가 끊임없이 질 문하면서 자신의 만족을 지연시킨다.
이런 방식으로 히스테리증자는 반 복적으로 환상을 가로지르며 또 다른 욕망으로 이동해 갈 수 있다.
이 과정이 반복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만족을 모르는 히스테리 자체의 속성 때문이며, 동시에 이는 환상 가로지르기가 온전히 종결되기 어렵 다는 점을 방증한다.
그러나 히스테리 주체인 동훈이 ‘행복해야겠다’고 말하는 것은 주목 해야 할 지점이라 할 수 있다.
동훈: 행복하자. (7화 S#75)
동훈: 고맙다. 고마워. 거지 같은 내 인생 다 듣고도 내 편 들어줘서 고마 워. 고마워. 나 이제 죽었다 깨어나도 행복해야겠다. (…) 내가 행복하게 사 는 걸 보여주지 못하면 넌 계속 나 때문에 마음 아파할 거고, 나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너 생각하면 나도 마음 아파 못 살 거고. 그러니까 봐. 어? 봐, 내가 어떻게 행복하게 사는지 꼭봐. 다 아무것도 아니야. 쪽팔린 거 인생 망가져 서 사람들이 뒤에서 수근거리는 거? 다 아무것도 아니야. 행복하게 살 수 있 어. 나 안 망가져. 행복할 거야. 행복할게. (15화 S#45)
동훈: 이제 진짜 행복하자. (16화 S#63)
7화에서 동훈이 지안에게 “행복하자”고 말하자 둘은 마주 보고 어색 한 웃음을 짓는데, 이것은 ‘행복’이라는 것이 그들에게 낯선 단어라는 점 을 방증한다.47)
47) 동훈이 지안에게 ‘행복하자’고 말했듯이 상원(겸덕)도 동훈에게 “행복하자, 친구야” 라고 말한 바 있다(11화). 그리고 상원의 이 말은 그의 환상 횡단과도 관련 있다. 상원은 ‘정희’와의 관계에서 고통과 죄의식을 느끼고 있었는데, 그것을 넘어서면서 자신과 타자의 행복을 기원할 수 있게 됐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랬던 동훈이 15화에서 ‘행복해야겠다, 행복할게’라고 말하는 것은 스스로의 행복을 욕망해서라기보다는 그것이 지안의 행복 이기 때문이다.
히스테리 정신구조의 측면에서 본다면 동훈에게는 자신 의 행복이 아니라 지안의 행복이 초점이므로 지안의 행복을 바라는 욕 망이 그에게는 향유될 수 있는 주이상스로 기능하게 되는 것이다.
히스 테리 주체인 동훈에게 행복이란 지안의 행복을 통해 반사되는 것이고 이는 단지 환상의 회복이나 결핍의 제거가 아니라 횡단의 의미를 갖는 다.
여전히 타자가 중심이 되는 히스테리적 태도이지만, 이 타자의 행복 이 진정한 자신의 행복이 될 수 있음을 수용하는 것은 이전의 동훈과는 대비되는 점이다.
이런 맥락에서 마지막 16화에서 ‘진짜 행복하자’는 말 은 7회와 다른 의미를 갖는다.
<나의 아저씨>는 이렇듯 ‘행복하자’는 말 이 어떻게 의미가 전이되는지를 보여주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둘은 ‘행복하자’ 했지만 그것은 지속적인 관계 유지를 의미하지 않는 다.
동훈은 아내 윤희와 이별했지만, 그것이 지안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 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지안과도 이별하는데, 그것은 지안과의 사이에 서 발생할 수 있는 환상을 횡단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중년 남자의 20대 여자와의 ‘사랑’이라는 환상은 상상계적이거나 상징계적인 것이다.
그것이 상상계적인 이유는 이 환상이 나르시시즘이나 통합된 자아상으 로서의 이상적 자아와 연계돼 있기 때문이고, 상징계적인 이유는 중년 남의 사랑이야말로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즐기라’는 초자아의 명 령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동훈은 이런 환상과 초자아의 이데올로 기를 추종하지 않는다.
둘은 환상과 이데올로기를 거스르는 절차로 헤 어짐을 택한다.
그러나 이것이 환상의 폐기는 아니다.
이별은 또 다른 환상을 위한 조건이 될 수 있고, 지안과 동훈은 전체를 향유하려 하지 않고 ‘전체-아님’(pas-toute)을 지향하며 결핍 자체를 향유하게 됐다고 할 수 있다.48)
48) ‘전체-아님’, 즉 비전체를 향한 여성적 향유는 전체를 욕망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윤리 적이다. ‘전체-아님’은 존재의 진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조운 콥젝, 여자가 없다고 상상해봐, 김소연 외 역, 도서출판b, 2015, 18-19쪽.
두 사람의 재회 장면 또한 이런 결핍의 향유, 부분으로서의 향유를 보 여준다. 둘의 재회는 우연히 이루어진다. 부산에 있던 지안이 서울로 오 게 됐지만, 지안은 동훈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동훈도 지안의 소식은 주변으로부터 들어 알고 있었지만 지안에게 연락은 취하지 않았다.
그 것은 각자를 대상a로서의 지위를 더 확고하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점은 16화 마지막 장면에서도 확인된다.
동훈: (E)지안, 편안함에 이르렀나?
지안: (E)네. (16화 S#84)
이 마지막 장면에서 동훈이 말한 ‘행복’의 의미 또한 드러난다.
그것은 ‘편안함에 이르는 것’이었던 셈이다. 결국 이 드라마의 키워드는 ‘지안 (至安)’이라는 이름에 있다. 행복은 편안함에 이르는 것이고, 편안함에 이른다는 것은 욕망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받아들이고 환상의 잉여를 향유하는 것에 있다. 자신의 증상을 받아들이는 것이 ‘지 안’이라는 측면에서 이 드라마의 대단원은 마치 정신분석의 종료에 비 견될 만하다. 증상의 발현에 이어 증상을 해석하고 결국 증상을 수용하 는 것이 정신분석 과정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대사가 제시되는 방식도 주목된다. 이 마지막 대사는 내화면에 서 인물에 의해 직접적으로 발화되지 않고 효과음(E)으로 제시된다.
동훈 이 직접 지안에게 “편안함에 이르렀나?”라고 묻는 것이 아니라 서로 뒤돌 아 헤어지면서 각자의 모습이 미디엄 숏, 바스트 숏으로 나타나면서 그 들의 말이 외화면에서 보이스오버로 제시되는 것이다(스틸컷14, 15).
스틸컷14 스틸컷15
이런 제시 방식은 둘의 욕망이 무엇인지 보여주면서 동시에 서로가 서로에게 매우 중요한 타자라는 것도 암시한다.
하지만, 이것이 둘의 온 전한 합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들은 이전의 환상을 가로 질러 새로운 환상을 구축해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훈의 질문인 ‘편안 함에 이르렀나?’라는 질문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그의 히스테리적 구조49)에서 나온 것이며, 지안의 대답은 그녀가 상징계적 규범과 관계 형성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는 점과 이에 대한 긍정적 대답이 동훈에게 만족을 줄 수 있다는 도착적 욕망과 무관하지 않다.
49) 슬라보예 지젝,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 이수련 옮김, 새물결, 2013, 296쪽.
동훈에게 지안이 대상a로서 유지되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녀가 욕망 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지안이 동훈에게 욕망 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지안의 인정은 동훈에게 중요해진다.
동훈 은 만족을 연기시킴으로써 주이상스는 지속될 수 있고, 동훈의 주저함 으로 인해 지안의 주이상스도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동훈과 지안을 둘러싸고 다른 인물들에게서도 변화를 찾아볼 수 있 다.
이런 변화는 후계동 사람들과 동훈 직장 동료에게서 모두 나타난다.
상훈: (지안에게) 고마워요. 덕분에 제 인생에 진짜 기똥찬 순간 박아 넣 었습니다. (…)
지안: 저한테도 기똥찬 순간이었어요. (…) 진짜로. (…) 꼭갚을게요.
제철: 뭘갚어…. 인생 그렇게 깔끔하게 사는 거 아녜요. (16화 S#50)
김 대리: 멋지다
이지안. (뺨 어루만지며) 걔한테 싸대기 맞은 게 영광이 야. (…)
송 과장: 아, 의리있는 기집애, 사내새끼 부끄러워지게 오지게 의리있네. (16화 S#61)
상훈은 여행 가려고 모아둔 비자금을 지안 할머니 장례식 비용으로 사용한다.
그리고 그것이 ‘인생에 진짜 기똥찬 순간’이라고 말한다.
지안 과 줄곧 갈등을 빚어왔던 김 대리도 동훈을 위한 지안의 행동에 감명을 받고 송과장은 이를 ‘의리’로 해석한다.
김 대리와 송 과장이 동훈과 함 께 퇴사한 것 또한 지안에게서 받은 감명과 전혀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다.
환상의 횡단은 단 하나의 지향점을 향해 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동훈은 상징계적 억압에서 벗어나 그 균열을 응시하는 것으로 환상을 가로지르고, 지안은 상징계에 진입하면서 자신이 취약하며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주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으로 환상을 가로지른다.
그리고 이 환상의 횡단은 둘의 이별과 재회 이후에도 지속된다. 결국 이 드라마 는 단 하나의 도덕적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적 관계에 의해 서 각자의 환상을 가로지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Ⅵ. 결론
지젝에 의하면 후기 자본주의 시장 주체는 도착적이고 민주주의 주체 는 히스테리적이다.
문제는 히스테리적 차원이 박탈되고 시장 관계의 도착적 양태만이 만연하게 되었다는 것에 있다.
지젝은 도착증에 사로 잡힌 주체를 히스테리화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도착 주체는 자신만의 법으로 항상 만족을 얻고, 타자를 만족시킬 수 있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결국 폭력적인 상황을 만든다.
반면, 히스테리 주체는 타자의 욕망의 대상이 되려고 하다가도 정작 자신이 그 대상의 자리에 올랐을 때는 회의하면서 또 다른 욕망과 환상을 추구한다. 히스테리 주체는 대 타자의 대답을 거절함으로써 주인의 권위를 위기에 빠뜨리고 기존의 상 드라마 <나의 아저씨>, 상호적 환상 횡단의 가능성 311 징적 질서에 균열을 낸다. 히스테리 주체는 대타자의 권위에 의존하면 서도 그 권위를 침해하며 동시에 대타자가 제대로 된 권위를 갖출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성 권위에 대한 히스테리 주체의 회의에 는 ‘진정한 아버지’에 대한 숨은 요청이 있고50), ‘진정한 아버지’에 대한 이러한 욕망은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과 반항을 이끌어내는 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지젝의 관점이다.51)
50) 슬라보예 지젝, 이성민 역, 까다로운 주체, 도서출판 b, 2005, 539쪽.
51) 슬라보예 지젝, 이성민 역, 까다로운 주체, 도서출판 b, 2005, 397쪽.
이 논증엔 함정이 있다.
우선, 대타자에 대한 거부를 위해서 히스테리 주체에게는 선제적으로 대타자 역할을 할 주체가 요구된다.
스스로 대 타자임을 자처하는 도착적 주체가 필요한 것이다. 또한 도착 주체를 히 스테리화 하는 것 또한 대안이 되기 어렵다.
도착과 히스테리가 정신 구조라는 전제에서 이는 거의 불가능하거나 윤리적이지도 않다.
도착 주체를 히스테리화 한다는 것 또한 도착적이 아니라고 보기 어렵다.
빤 한 결론 같지만, 이 세계를 위해서는 도착 주체와 히스테리 주체의 긴장 성 있는 공존이 필요하다.
<나의 아저씨>는 서로 다른 주체의 동시적 공존의 가능성을 보여준 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한 인간이 또 다른 인간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서로를 위해 희생할 수 있다는 믿음을 제공하지 않는다. 주체가 자신의 정신구조를 개조하지도 않는다.
<나의 아저씨>는 주체가 환상을 횡단 하면서 자신의 증상을 사랑하는 것이 최선일 수 있다는 것을 가늠케 해 준다.
예컨대, 동훈은 지안으로 인해 그의 히스테리적 정신구조가 변화 된 것이 아니다.
도리어 동훈은 히스테리적 구조로 말미암아 환상의 횡 단을 지속하고 자신의 진정한 욕망을 계속 탐색해나갈 수 있게 된다. 지안 또한 동훈을 통해 도착적 측면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그녀가 동훈 을 위해 도피를 선택한 것도, 이별을 결정한 것도 동훈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두 인물이 급진적이고 폭력적인 정신구조의 변화를 겪지 않고 주이상스를 향유하고 환상을 횡단해 나가는 것이 이 드라마에 내 재된 핍진성이자 현실적인 희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드라마는 환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그 환상이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횡단이 일어날 수 있음을, 그리고 이 환상이 현실을 재구성하고 결국 공동체적 현실이 되어 가는 양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드라마에는 논자들이 지적하듯 공동체에 대한 유토피아적 환상이 깃들어 있다.
주목할 점은 그 환상이 현실에 어떤 질문을 하고 있는가에 있을 것이다.
대안은, 현재 우리의 공동체 바깥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 라, 그 환상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파생되는 효과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논문은 정신분석학적 방법론의 치명적인 한계 인, 연구자 자신의 욕망이 투사되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드라마에 대한 연구자의 탈계급적 접근 방식은 그 자체로 정치적이며, 드라마 수용자의 다양한 이데올로기와 계급을 간과했다는 측면도 역시 연구자의 계급의식을 반영한 결과일 것이다.
따라서 이 논문은 연구자 의 한계와 함께 읽혀야 할 텍스트가 될 수밖에 없다.
더불어, 드라마에 등장한 두 인물의 정신구조를 도착증과 히스테리증 으로 대별한 것에도 무리한 적용과 일반화가 뒤따랐을 것이다.
그러나 지젝이 언급했듯 우리 사회를 이루고 있는 서로 상반된 정신구조를 가 진 두 주체의 마주침에서 오히려 가능성과 희망을 발견했다는 것에 이 논문의 의의를 두고자 한다.
❚참고문헌
1. 기본자료
박해영 극본, 김원석 연출, <나의 아저씨>(tvN 드라마), 2018. 박혜영, ≪나의 아저씨≫(박해영 대본집, 초판 에디션), 세계사, 2022.
2. 논문과 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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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요약
드라마 <나의 아저씨>, 상호적 환상 횡단의 가능성 한귀은 이 연구는 드라마가 환상을 재현한다는 비판을 재고하고 환상의 의의 를 정신분석학적으로 고찰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 는 도착증과 히스테리증의 이분법을 넘어 각 주체가 폭력적으로 그 정신 구조를 변화시키지 않고 오히려 상호작용을 통해 환상을 횡단하는 양상 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동시대적 의미를 갖는다. ‘동훈’은 상실을 상실할 수 없는 멜랑콜리커이며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 는 히스테리적 주체다. 그는 이데올로기 호명에 실패하며 타자가 부과한 자신의 상징적 정체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는다. 그는 만족을 유예시키 며 오히려 그 유예를 통해 주이상스를 획득한다. ‘지안’은 거울단계의 통합된 자아를 형성하지 못했으며 상징계에 온전 히 진입하지 못한 외상적 주체이다. 그녀는 대타자를 부인하며 불법 행위 를 통해 타자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도착적 주체이기도 하다. 그녀의 희생 행위조차 타자의 욕망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도착적 환상이며 ‘광일’ 과의 관계에서는 사도마조히즘적 경향도 보인다. 지안과 동훈의 마주침은 ‘도청’을 통해 더 역동성을 띠게 된다. 이 드라 마에서 도청은 단순히 ‘시선’의 차원이 아니라 ‘응시’의 의미를 갖는다. 도 청 대상인 동훈뿐 아니라 도청을 하는 주체인 지안이 오히려 응시의 대상 이 되는 전도가 일어나는 것이다. 응시를 감지한 동훈과 지안은 상호적 관 계 속에서 환상을 횡단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 환상의 횡단은 환상을 억압하거나 자신의 정신구조를 폐기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316 현대문학의 연구 84 그 환상이 주는 잉여, 상징적 결여의 효과를 향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의 아저씨>는 인물이 자신의 정신구조를 폐기하지 않고 오히려 거 기서 발생하는 증상을 향유하며 타자와 관계 맺는 이야기로서, 동시대 구 성원들에게 어떻게 환상과 증상을 수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미있는 문 제제기를 하는 텍스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핵심어 : 도착증, 히스테리증, 멜랑콜리, 외상, 희생, 시선, 응시, 환상 횡단
❚Abstract
Drama , Possibility of Mutual Traversing Fantasy
Han, Gwi-eun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reconsider the criticism that drama merely reproduces fantasy and, paradoxically, to examine the meaning of fantasy ps ychoanalytically. The drama “My Mis ter(나의 아저씨, Naui Ajeossi)” has contemporary significance in that it goes beyond the dichotomy between perversion and hysteria and shows how each subject does not violently change their mental structure, but rather traverses fantasy through interaction. ‘Dong-Hoon’ is a melancholiker who cannot lose his loss and a hysterical subject who desires the desires of others. He fails to call out ideology and also questions his own symbolic identity imposed by others. He postpones satisfaction and rather achieves jouissance through that postponement. ‘Ji-an’ is a traumatic subject who was unable to form an integrated mirror-stage self in infancy and could not fully enter the Symbolic order. She is also a perverse subject who denies the Other and believes that she can control others through illegal acts. Even her act of sacrifice is a perverted fantasy that she can satisfy the desires of others, and her relationship with ‘Gwang-il’ also shows sadomasochistic tendencies. The encounter between Ji-an and Dong-hoon becomes more dynamic through ‘eavesdropping.’ In this drama, eavesdropping has the meaning of ‘gaze’ rather than simply ‘look(eye)’. An inversion occurs in which not only Dong-hoon, the subject of eavesdropping, but also Jian, the subject of the eavesdropping, becomes the object of gaze. Dong-hoon and Ji-an, who sense the gaze, are able to traverse the fantasy in a mutual relationship. However, this travers ing of fantas y does not mean s uppres s ing fantas y or dis carding mental structures. Rather, it means enjoying the surplus of fantasy and the effect of symbolic lack. is a s tory about a character who does not dis card his own mental structure, but rather enjoys the symptoms that arise from it and forms relationships with others. It can be said to be a text that raises meaningful questions about how contemporary members can accept fantasy and symptoms.
Key-Words : Perversion, Hysteria, Melancholy, Trauma, Sacrifice, Look, Gaze, Traversing Fantasy
2024년 9월 8일에 접수되었으며, 2024년 9월 27일에 심사를 거쳐 2024년 10월 6일에 게재가 확정되었음
현대문학의 연구 8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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