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약>
미국 트럼프행정부는 민간 스테이블코인을 정책적으로 육성할 것임을 천명하고 있다.
그러나 민 간에 의한 스테이블코인 발행 허용은 국가가 독점력을 가져야 할 통화창출권을 민간에게 넘겨주는 것으로 심각한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
실제로 민간에게 통화창출이라는 특권이 주어질 경우 통화 량이 큰 폭으로 늘어나고, 늘어난 통화를 매개로 과도한 부채가 집적되는 결과를 피하기 어렵다.
이 는 예금통화 창출의 특권이 부여된 현대 은행제도에 의해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 할 때, 미국의 스테이블코인 육성책을 무조건적으로 따라갈 필요는 없으며, 극히 신중한 접근을 취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내 용>
최근 미국에서 트럼프행정부가 출범한 이후, 스테이블코인(stable coin)1) 시장을 적극 육성할 것이 라는 신호를 지속적으로 발신하고 있다.2)
1) 이 글에서는 편의상 ‘스테이블코인’과 ‘코인’이라는 용어를 번갈아 사용한다. 따라서 이하에서 코인이라는 표현이 나오면 스테이블 코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2) 예를 들어, 올해 1월 23일 발표된 대통령 행정조치(presidential action) 및 3월 7일 백악관에서 개최된 Crypto Summit 등을 참고하기 바란다.
달러표시 스테이블코인이 활성화될 경우 미 국채에 대한 수요 를 늘리고, 동시에 미 달러화의 기축통화 지위를 강화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러한 미국의 움직임에 힘입어, 국내에서도 스테이블코인 육성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 글에서는 스테 이블코인 도입이 경제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정책적 시사점을 제시한다.
1.스테이블코인 발행과 통화량 변화
미국 의회에 제출되어 있는 스테이블코인 관련 주요 법안3)에 따르면, 향후 달러(USD) 표시 스테이 블코인 발행업자는 코인 발행액 전부를 현금, 미국 국채, 은행 요구불예금 등 안전자산(safe asset) 으로만 보유해야 한다.4)
3) 대표적으로 지난 2월 4일 상원에서 발의된 GENIUS Act (Guiding and Establishing National Innovation for U.S. Stablecoins of 2025)를 들 수 있다. https://www.congress.gov/119/bills/s394/BILLS-119s394is.pdf
4) 여기서 현금과 요구불예금은 당연히 미 달러화 및 미 달러표시 예금을 뜻한다. 한편, 현금에는 연준(Federal Reserve)에 예치된 준비금도 포함된다
이러한 준비자산 규제는, 코인 소지자가 요구할 때 코인 면에 표시된 금액을 신속히 현금으로 반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스테이블코인 법안이 통과되어 준비자산 규제가 시행되면, 코인 발행업자는 안전자산 중에서 미국 국채를 선호할 개연성이 높다.
고객에게 받은 현금을 그대로 보유하거나 금리가 0%에 가까운 은행의 요구불예금에 가입하는 대신, 수익률이 높은 국채를 보유함으로써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스테이블코인이 발행될 때 통화량은 어떻게 될까. 이를 살펴보기 위해 코인 발행업자가 현금을 받고 준비자산으로 국채를 매입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코인을 발행하고 업자가 받은 현금은 국채 매도자의 손으로 넘어간다.
현금의 보유자가 코인 매입자에서 국채 매도자로 바뀌었을 뿐, 코인 발행 전과 비교해 시중에 유통되는 현금의 총량에는 변화가 없다.
그러나 코인업자가 현금을 받고 국채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스테이블코인이 새롭게 발행되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전액 안전자산으로 뒷받침되며, 따라서 네트워크 상에서 재 화를 사거나 채무를 상환하는 데 마치 현금처럼 사용될 개연성이 크다.
스테이블코인이 사실상 통화로 서의 지위를 획득하는 것이다. 결국 스테이블코인이 발행될 경우, 현금 통화량에는 변화가 없지만 코 인량이 늘어나면서 전체 통화량이 증가한다. 그리고 통화량 증가분은 코인 발행량과 동일하다.5)
5) 고객이 현금이 아닌 은행 예금을 코인 발행업자의 계좌로 이체하는 경우에도 논의의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만약 코인업자가 코인 발행으로 받은 현금을 그대로 보관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 경우 시중에 유 통되는 현금의 총량이 줄어든다. 대신 줄어든 현금만큼 코인 발행량이 늘어난다. 늘어난 코인이 줄어 든 현금을 정확히 대체하는 것이다.
그 결과 전체 통화량에는 변화가 없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사 실은, 코인 발행업자가 현금을 받은 후 이를 그대로 보관하지 않고 다른 자산(국채)을 매입하기 때문에 통화량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한편, 스테이블코인의 총량은 코인업자에게 유입되는 자금량에 철저하게 의존적이다. 당연한 말이 다.
이러한 점에서 ‘코인발행량=f(자금유입량)’의 관계가 성립한다(<그림 2> 참고).
<그림1그림2 그림3 그림4> 생략:첨부 논문파일참조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은 반전된다. 코인 발행량이 점차 늘어나고, 동시에 코인에 대한 대중 의 수용성이 높아짐에 따라 스테이블코인은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깊숙이 침투한다. 이때쯤이면 스테 이블코인과 현금의 차이는 사라진다. 이럴 경우 코인 발행업자는 이전처럼 유입된 현금에 의존해 국채 를 매입하는 것이 아니라, 국채를 매입하고 그 대가로 코인을 발행해서 지급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스 테이블코인 자체가 현금과 완전한 등가물로 수용됨에 따라, 국채 매도자는 현금이 아닌 코인을 받고도 기꺼이 국채를 넘겨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코인업자는 자금유입이 없는 상태에서도 국채를 매 입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준비자산으로 국채를 보유하면 상당한 수익이 발생한다. 2025년 3 월 중순 현재 미국 국채수익률은 4%대 중반에서 형성되고 있다.6)
6) 3개월 만기의 국채수익률이다. 이는 향후 스테이블코인 법제화가 이루어질 경우, 만기 91일 이내의 국채만 준비자산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반영한 것이다.
반면, 발행한 코인에 대해서는 이자 를 지급하지 않는다.
그리고 물리적 실체가 없는 전자적 코인의 발행이라는 점에서 코인 발행에 소요 되는 여타 비용도 0에 수렴한다.
코인 발행액 전체가 이익으로 직결되는 구조다. 특히나 코인 발행 초기와 달리 이제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코인을 거리낌 없이 수용한다.
사정이 이렇다면 코인업자의 행동을 예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자금유입을 기다릴 필요 없이 가능한 많은 코인 을 허공에서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낸 코인을 넘겨주고 국채를 대거 매입한다.
이것이 코 인업자에게는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 물론, 유입된 자금에 의존해 코인을 발행하고 국채를 매입하는 부분도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그림 3>의 A).
그러나 코인업자의 유인을 고려할 때, 자금유입 없이 발행되는 코인의 양이 훨씬 많을 것임은 불문가지다(<그림 3>의 B). 결론적으로 스테이블코인의 사용이 보편화된 시점에서는, 자금유입에 얽 매이지 않는 코인 발행이 급증하고 이에 수반하여 통화량이 큰 폭으로 늘어나는 상황을 피해 가기 어 렵다고 하겠다.
2,시뇨리지: 코인 발행업자의 이익
중세 왕이나 봉건영주(sovereign)는 주화를 독점적으로 제조함으로써 막대한 차익을 누렸다.
예를 들어 0.1파운드의 금과 0.9파운드의 구리를 사용해 주화를 제작하고는, 그 표면에 금화1파운드라고 기재한다.
그리고 모든 상거래, 금전거래, 세금납부 시에 자신이 만든 금화만을 사용하도록 강제한다.
이제 왕과 영주는 자신이 만든 1파운드짜리 금화를 내주고 실제 가치가 금1파운드에 달하는 물건 을 구입한다.
주화 제작을 독점한 탓에 앉은 자리에서 막대한 이익을 거두는 셈이다. 이러한 주조차익 을 시뇨리지(seigniorage)라고 한다.
주조차익은 당연히 주화 제작을 독점한 왕 혹은 통치자인 세뇨르 (seigneur)의 몫으로, 시뇨리지라는 말은 여기에서 비롯됐다.
스테이블코인은 정부 혹은 중앙은행이 발행한 현금처럼 유통되어 통화로서의 지위를 획득한다.
그 렇다면 코인 발행업자는 통화를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은 것과 진배없다.
그리고 통화창출권을 가진 현대의 코인업자가 누리는 시뇨리지는 중세 왕이나 봉건영주를 훨씬 능가한다.
실물에 기반한 주 조과정 없이 전자신호로 코인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통화창출에 따른 비용이 거의 수반되지 않기 때 문이다.
결국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용하는 것은 민간 코인업자에게 통화창출이라는 특권을 부여함 으로써 막대한 시뇨리지를 누리게 하는 것과 다름 없다.
그런데 스테이블코인 발행업자 말고도 통화창출 특권을 가진 곳이 또 있다.
바로 은행이다.
흔히 은 행은 먼저 예금을 받고 이 예금을 재원으로 대출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대부 분의 예금은 고객의 자금유입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대출을 통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림 4>).
실제로 우리가 은행에 가서 대출을 받을 때, 은행 창구직원은 우리 명의의 예금계좌를 띄운 모니 터에 대출금액을 기록하고 엔터키를 칠 뿐이다. 그리고 그 순간 대출금액만큼 예금액이 새롭게 생겨 난다.
이러한 점에서 은행이 예금으로 받은 돈을 대출한다는 생각은 은행제도를 잘못 이해하는 것 (misconception)이다.7)
대출을 통해 허공에서 예금을 창출해낸다는 점이야말로 현대 은행제도의 정 수에 해당한다.
자금유입이 없는 상태에서 은행은 어떻게 대출을 통해 예금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오늘날 우리는 재화나 서비스를 사고 팔면서 거의 대부분 현금 대신 은행예금을 주고받는다.
은행예금이 통화의 지위 를 확보한 것이다.
은행예금을 예금통화라고 부르는 동시에 통화량(money supply) 통계에 포함시키 는 이유다.
은행예금이 통화로서 널리 수용된다면, 대출받는 사람은 은행으로부터 현금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예금계좌에 대출금에 해당하는 숫자가 찍히는 것으로 충분히 만족한다.
대출로 생겨난 은행예금을 다른 사람 계좌로 이동시키는 것만으로 자신이 필요한 재화를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은행예금이 갖는 통화로서의 속성, 즉 통화성(moneyness)이야말로 대출을 통해 허공에서 예 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원천으로 작용한다.8)
7) McLeay, M., Radia, A., Thomas, R., 2014, Money creation in the modern economy, Quarterly Bulletin (2014 Q1), Bank of England; Werner, R., 2014, Can banks individually create money out of nothing? — The theories and the empirical evidence, International Review of Financial Analysis 36
8) 신보성, 2024, 『부채로 만든 세상』, 이콘.
그리고 은행이 대출로 예금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앞서 설 명한 스테이블코인 업자가 국채를 매입하면서 코인을 만들어내는 과정과 정확히 동일하다.
기업이 생산활동을 위해 자산을 매입하려면 먼저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저축이 부족한 가계도 소 비를 위해서는 먼저 차입을 해야 한다.
즉, 투자나 소비를 하려면 반드시 자금조달이 선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은행과 스테이블코인 발행업자는 예외다. 이들은 각각 대출(자산)을 통해 예금(부채)을 만들어 내고, 국채(자산)를 매입하고는 그 대가로 코인(부채)을 만들어 지급한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누구든 자신의 부채가 통화로서 유통되기만 한다면, 그 사람은 자금유입 없이도 자산을 매입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즉각적인 이익이 발생 한다.
이것이 바로 통화를 창출하는 자만이 누리는 특권, 즉 시뇨리지다.
3,민간 통화창출의 폐해
대부분의 기업은 이익을 만들어내기 위해 지난한 연구개발과 고된 생산 및 판매 노력을 경주한다.
이에 반해 통화창출을 통해 얻는 이익인 시뇨리지는 너무나 손쉽게 얻어진다.
이처럼 손쉬운 이익이 가능해지면, 통화창출이라는 특권을 부여받은 주체는 끊임없이 통화를 만들어내려는 강력한 유인을 가진다. 그리고 이는 역사적으로 이미 검증되었다.
실제로, 예금통화 창출의 특권을 부여받은 은행이 대출을 끊임없이 늘린 결과, 거의 모든 나라에서 민간 부채는 매년 역사적 고점을 경신하고 있다. 전 세계 경제가 과도한 부채에 짓눌린 현실은 현대 은 행제도를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그리고 부채의 과도한 집적은 주기적 금융위기, 만성적 저성장, 경제 및 정치의 양극화 등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한다.9)
민간 스테이블코인 발행업자의 등장은, 은행 말고도 통화창출권을 가진 민간업자가 추가로 생겨남 을 의미한다.
당연히 은행과 코인업자 간의 시뇨리지 창출 경쟁이 격화되면서 통화량은 큰 폭으로 늘 어나게 될 것이다.10)
9) 신보성, 앞의 책.
10) GENIUS 법안 등 그 동안 제출된 입법안에 따르면, 향후 은행도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도록 허용될 것이 확실시된다. 이 러한 사정은 EU에서 스테이블코인을 규율하는 MiCA 규제 (Regulation on Markets in Crypto-Assets)의 경우도 마찬가지 다. 그런데 이는 은행이 예금통화에 더해 코인통화까지 만들어낼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향후 은행이 경제 내에서 갖는 지 배력은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늘어난 통화를 매개로 부채양산이 가속화됨은 물론이다. 민간에 대한 통화창출권 부여는 윤리적으로도 옳지 않다.
과거 통화로 사용되었던 곡물, 금, 은 등 의 재화는 오늘날 통화로 쓰이지 않는다.
대신 사용가치가 없는 지폐나 전자신호가 법에 의해 강제로 통화(fiat money)로 수용된다.
그 결과 사용가치가 있는 재화는 생산적인 경제 활동에 투입되어 추가 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게 되었다.
사용가치 있는 재화를 통화로 쓰지 않음으로써 사회 전체적 으로 비용절감이라는 편익이 발생하는 것이다.11)
11) Herman, D., 1980, The economic thought of Frederick Soddy, History of Political Economy 12(4)
이러한 편익이야말로 시뇨리지가 갖는 진정한 의미 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사회가 누리는 비용 절감이라는 편익은 법(사회적 약속)에 의한 강제력, 그리고 사용가치가 없는 통화를 기꺼이 가치 있는 것으로 수용하는 사회적 신뢰 덕분에 가능한 것이다.12)
결국 시뇨리지 는 국가 공동체의 구성원이 함께 어우러져 만들어낸 것이며, 따라서 시뇨리지는 온전히 전 국민에게 귀속되어야 마땅하다. 민간 통화창출권 부여는, 시뇨리지의 상당부분13)을 전체 국민이 아닌 소수의 은 행과 코인업자에게 넘겨주는, 극히 불합리할 뿐 아니라 정의롭지도 않은 것이다.
12) 법에 의해 지정된 통화라고 하더라도, 사회적 신뢰가 수반되지 않을 경우 통화로서의 지위를 상실한다. 통화남발로 만성적 인플 레이션을 겪는 국가의 국민들이 자국통화를 기피하는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13)연준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은 본원통화(base money)의 독점적 공급자다. 그리고 본원통화 공급에 의해 중앙은행의 이익이 발생하는데, 이렇게 생겨난 이익은 전부 재정에 귀속된다. 이러한 점에서 적어도 본원통화 발행에 따른 시뇨리지는 전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체 통화량에서 본원통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오늘날 대부분 의 시뇨리지는 막대한 예금통화를 창출하는 소수의 민간 은행 몫이다.
4.스테이블코인 허용에 신중을 기해야
미국 입장에서 달러패권 유지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과제다.
달러가 전 세계 기축통화로 수용됨에 따라 미국이 누리는 엄청난 시뇨리지를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그러나 트럼프행정부 의 주장대로 달러표시 스테이블코인이 활성화된다고 해서 달러패권이 공고해질지는 의문이다.
지난 몇 년 간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는 당파를 뛰어넘어 지속적으로 강화되어 왔다.
트럼프행정부 에 의한 극단적 고립주의 선언은 이러한 움직임의 연속선상에 있다.
그런데 고립주의 채택은 미 달러 화의 기축통화 지위에 균열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그 동안 미 달러화가 기축통화로 수용된 데는 미국의 군사력 제공이 큰 역할을 담당했다. 미국이 제 공하는 군사력이라는 우산 덕분에, 전 세계에 걸쳐 안전하고 자유로운 교역 통로가 구축되었기 때문이 다.
그리고 전 세계 나머지 국가는 그 대가로 미 달러를 교역을 위한 통화, 즉 기축통화로 수용한 것이 다. 그러나 관세정책 및 리쇼어링(reshoring) 압박을 동원해 미국 스스로 자유무역의 통로를 차단하는 한편, 자유무역을 위한 인프라에 해당하는 군사력 제공까지 걷어내고 있다.
다른 나라들이 미 달러화 를 기축통화로 인정할 명분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달러표시 스테이블코인이 대량으로 발행될 경우, 미 달러 통화량이 늘어나는 효과를 가져오면서 달러가치가 하락할 수 있다.
그 리고 달러가치 하락은 트럼프행정부의 고립주의와 결합되면서 기축통화로서의 달러 지위 약화를 가속 화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처럼 미국의 스테이블코인 육성책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지 여부는 매우 불투명하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미국의 움직임에 동반하여 우리나라에서도 스테이블코인을 정책적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전술한 바와 같이 스테이블코인 발행 허용은 통화량 증가로 이어져 상 당한 부작용을 가져올 개연성이 크다.
그리고 이러한 부작용은 민간에게 통화창출이라는 특권을 제공 하는 데 따르는 필연적 결과다. 한 나라의 통화는 헌법적 지위를 갖는 것으로 해당 국가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통화의 창출 및 이 와 관련한 인프라는 사법, 국방, 치안 등과 마찬가지로 주권국가가 독점적으로 제공해야 하는 공적 서 비스에 해당한다는 것이다.14)
이러한 점에서 통화창출권을 민간에게 부여하는 데는 극히 신중한 접근 이 필요하다.
기술적 변화를 제도로 수용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동시에 기술 이면에 숨어 있는 경제적 원리와 그 영향을 간과해서도 안 된다.
스테이블코인이라는 기술은 새롭지만, 이와 관련한 경제원리는 오래된 것이다.15)
14) Desan, C., 2015, Making Money: Coin, Currency, and the Coming of Capitalism, Oxford University Press; Huber, J., 2017, Sovereign Money: Beyond Reserve Banking, Palgrave Macmillan.
15) 이 표현은 다음의 문장을 참고한 것이다. “While the technology underlying cryptocurrencies is new, the economics is centuries old.” in Gorton, G., Zhang, J., 2023, Taming Wildcat Stablecoins, University of Chicago Law Review 90(3).
스테이블코인의 허용은 무(ex nihilo)에서 통화를 창출하는, 또 다른 은행제도를 만 드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움직임을 무조건적으로 따라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는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에 맞는 처방을 내려야 하며, 설령 제도적 기틀 마련이 불가피할 경 우에도 세심한 준비와 속도조절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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