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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안보국방

다카이치 내각 탄생과 일본 정치: 평가 및 대일 외교 상의 함의(25-10-28)/윤석정.외교안보연구소

10월 21일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자민당 총재가 104대 일본 총리로 선출되었다. 되돌아보면 10월 4일 다카이치의 자민당 총재 등극부터 자민당·공명당 연립(이하 자·공 연립)의 해체, 자민당·유신회 연립 (이하 자·유 연립)의 탄생, 다카이치 총재의 총리 선출까지 일본 정치는 유례없는 대변화를 경험하였다.

이에 대해 본고는 자민당 총재선부터 다카이치 내각의 탄생까지 현재 진행 중인 일본 정치의 주요 국면을 고찰하고, 한국 대일 외교상의 함의를 논한다.

 

1. 자민당 총재선의 의미: 자민당의 우클릭과 아베 노선의 복권

 

2024년 10월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내각 출범과 함께 자민당은 연이은 국정 선거 패배로 소수 여당으로 전락했고, 2012년 정권을 되찾은 이후 최대의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

이러한 가운데 10월 4일 개최된 자민당 총재선은 자민당의 재건 방향, 즉, 자민당이 자신들의 우위체제를 재구축하기 위해 정책·이념상의 좌표축을 어디에 둘지 가늠할 수 있는 자리였다.

따라서 다카이치가 자민당 총재로 선출된 것은 자민당이 당 재건을 위한 정책·이념상의 좌표 축을 오른쪽으로 이동시켰다는 점을 말해준다.

이는 경제 정책상으로는 적극 재정과 금융 완화, 외교안보에서는 중국 견제를 위한 방위력 증강 및 미일 동맹 강화, 이념적으로는 헌법 개정, 보수적 국가관을 지향하는 쪽으로 자민당의 좌표축이 이동한다는 것을 말한다.

다카이치 총재 선출은 자민당의 좌표축 이동의 상징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자민당이 우클릭을 선택한 이유는 우파적 성향 보수들의 지지를 되찾기 위함이다.

자민당 내부의 시각에 따르면, 두 차례 연속 국정선거에서 패배한 가장 큰 이유는 우파적 성향의 보수들이 자민당 지지층에서 대거 이탈했기 때문이다.

2012년에 자민당이 여당으로 복귀한 이후 자민당은 국정선거의 비례대표에서 대략 30% 수준(약 1,700만~2,000만표)의 득표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작년 10월의 중의원 선거부터 1458만표의 26.7%로 하락하기 시작하더니 올해 7월의 참의원 선거는 1281만표의 21.6%로 대폭 하락했다.

리버럴 성향의 입헌 민주당이 하락세라는 점을 감안하면 자민당 이탈표의 대부분은 신흥 세력인 국민 민주당, 참정당으로 향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에 대해 아베 내각 당시 내각관방참여였던 다니구치 도모히코(谷口智彦)는 “자민당의 참의원 선거 패배는 리버럴화되는 자민당에 보수층이 반대를 표했기 때문”이라면서, “자민당의 고정 지지층이 다른 정당에 기댈 곳을 찾았다”고 주장한다.

다니구치를 비롯한 우파 보수들에 따르면, 온건 보수인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정권, 반 아베 정치 경력의 이시바 정권 기간 동안 자민당이 보수 정당으로서 표방해야 할 가치관과 정책을 상실했고 그 결과 자민당을 줄곧 지지해오던 암반(岩盤) 보수층이 이탈했다는 것이다.

사실 자민당 내 우파적 성향의 보수들이 추구하는 바는 아베 시대의 정책, 이념 노선과 다를 바 없다.

그리고 다카이치는 아베 노선의 계승자로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져왔다.

즉, 다카이치의 자민당 총재 등극은 아베 노선의 복권을 통해 자민당 우위체제를 재구축하겠다는 정치 동력의 산물이다.

다카이치라는 일본의 신총리가 새로움보다는 익숙함으로 다가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 다카이치 총리의 정권 운영: 아베 시대의 경험 활용과 관저주도의 통치 체제 구축

 

다카이치 총리의 정권 운영 구상에서도 아베 시대의 기시감이 든다. 자민당의 상황을 보면 다카이치 총리는 당의 부총재로 아소 다로(麻生太郎) 전 총리를 임명했다.

이번 총재선에서 아소는 자신의 파벌 의원을 비롯해 다카이치 지지 세력을 규합하며, 다카이치의 총재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번 임명은 총재 당선에 대한 보은 인사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소 부총재는 아베 시대에 부총리를 지내며 아베 1강의 통치 구조를 뒷받침한 인물이다.

아소의 자민당 부총재 임명은 아베 시대의 경험을 높이 산 인사이기도 하다.

또한 자민당 간사장 대행으 로 복귀한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또한 요주의 인물이다.

현재 하기우다는 통일교 문제, 정치자금 스캔들에 연루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카이치 총리가 하기우다에게 자민당 간사장 대행을 맡긴 이유는 그가 아베 전 총리의 최측근 중 한명이자 구 아베파의 간부였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아소 부총재와 하기우다 간사장 대행 모두 이시바 정권 시절 비주류에 속해있었으나, 다카이치 내각의 탄생과 함께 당내 주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자민당의 인사와 함께 다카이치 내각의 출범에 맞춰 관저 관료가 대거 교체되고 있다는 점 또한 주목을 요한다.

다카이치 총리의 관저 관료 인선을 보면 아베 관저와의 유사점이 눈에 띤다.

다카이치 총리는 자신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할 인물로 이이다 유지(飯田祐二) 전 경산성사무관을 정무비서관에, 츠유키 야스히로(露木康浩) 전 경찰청 장관을 관방부장관으로 임명했다.

경산성 출신의 이마이 다카야(今井尚哉) 정무 비서관, 경찰청 출신의 스기타 가즈히로(杉田和博) 관방부장관 조합으로 관저를 운영했던 아베 정권과 비슷한 포진이다.

여기서 이마이는 내각 참여라는 고문역으로 아베 관저에 이어 다카이치 관저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이 같은 유사점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아베 시대와 같이 관저 주도의 통치 구조를 구축하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카이치 관저의 국가안전보장국장은 이치가와 게이치(市川恵一) 전 내각관방부보가 임명되었다.

다카이치 총리는 전임인 오카노 마사타카(岡野正敬) 국장이 취임한지 1년도 되지 않았는데, 외교안보 사령탑의 교체를 강행했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파격 기용을 해서까지 이치가와를 임명한 의도일 것이다.

이치가와는 1989년 외무성에 입부한 이후 북미국장, 총합외교정책국장을 역임했으며, 무엇보다 아베 정권이 제시한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구상의 수립에 막대한 역할을 했다.

이치가와의 기용에는 미일 동맹을 중심으로 군사 안보적 역할을 확대하고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함께 규칙 만들기에 적극 나서는 아베 시대의 외교 노선을 계승한다는 다카이치 총리의 구상이 반영되어 있다.

10월 24일 다카이치 총리는 첫 소신표명연설에서 “세계의 한 가운데서 자랑스럽게 피어나는 일본 외교를 되찾겠다”고 외쳤다.

‘세계의 한 가운데서 자랑스럽게 피어나는 일본’은 생전에 아베 총리가 자주 사용하던 구호였다.

다카이치 총리의 연설은 아베 시대 외교 관료들의 보좌를 받으며 관저 주도의 대외 정책을 추진할 것임을 시사한다.

 

3. 자·유 연립 정권과 미완의 국회 과반 확보

 

다카이치의 자민당 총재 선출 이후 일본 정치는 연립 정권의 틀을 두고 큰 변화를 겪었다.

먼저 10월 3일 자민당과 공명당의 연립이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두 당은 1999년 10월에 연립을 맺은 이후 야당 시대까지 포함해 26년 간 연립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다카이치 총재 선 4 출 이후 기업, 단체 헌금의 규제 강화를 두고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면서 결별하게 되었다. 공명당의 연립 이탈로 다카이치 총재의 총리 선출이 불확실해지는 국면이 있었으나, 자민당은 유신회를 새로운 연립 파트너로 삼으며 다카이치 총재는 우여곡절 끝에 총리로 선출되었다. 자·유 연립의 특징으로 자·공 연립보다 오른쪽에 정책 및 이념축을 두는 연립 정권이라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10월 20일 체결된 자민당과 유신회 간의 연립합의문서는 자·공 연립이었으면 담기 어려운 내용들이 담겨있다.

문서 서문에는 “국가관을 공유하고 대립을 넘어 안정된 정권을 만들어 국난을 돌파하고 일본 재기를 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전후 가장 엄중하고 복잡한 안보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일본 열도를 강하고 부유하게 만들어 자랑스러운 ‘자립 국가’로 향하는 내정 및 대외 정책을 추진한다”고 되어있다.

이어서 “경제 대책의 신속한 실현에 이어 헌법개정, 안보 개혁, 사회보장 개혁, 통치기구 개혁 등 일본 사회의 발전을 위한 구조 개혁 추진에 대해 합의에 이르렀다“고 되어 있다.

자민당의 연립 파트너가 공명당에서 유신회로 바뀌면서 다카이치 자민당이 정책과 이념의 축을 오른쪽에 두기 수월해졌다고 할 수 있다.

자민당과 유신회의 합의문서는 국가안보전략 등 안보 문서의 조기 개정, 방위장비이전의 규제 완화 등도 담겨있다.

그간 공명당은 평화주의와 대중주의를 표방하면서 외교안보 분야에서 자민당의 움직임을 제약해왔다.

이제 공명당 대신 유신회가 자민당의 연립 상대가 되면서 다가이치 정권의 안보 정책은 한층 신속하게 추진될 것이라는 전망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안보 문서 조기 개정, 방위장비이전의 규제 완화와 같은 안보 정책은 자칫하면 여론은 물론이고 야당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결국 다카이치 정권의 안보 정책이 신속하게 추진될지 여부는 국회 내 과반수를 확보하여 안정적인 정치권력의 틀을 창출할 수 있을지 여부에 달려있다.

현재 중의원에서 자민당은 196석, 유신회는 35석으로, 과반의 233석에 2석 부족하다.

그리고 참의원에서도 자민당 101석, 유신회 19석으로 5석이 더 있어야 과반 125석에 도달한다. 안보뿐만 아니라 다카이치 내각이 여러 정책을 실현해나가기 위해서는 일부 야당의 협력을 얻어야 한다.

앞서 다카이치 내각은 아베 시대와 같은 관저 주도를 모색하고 있다고 언급했는데, 이를 실현하는데 여소야대의 국회 상황은 상당한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자·유 연립이 얼마나 견고한지 현재로서는 분명하지 않다. 자·유 연립은 다카이치 내각에 장관을 두지 않는 ‘각외협력’ 형태를 취하고 있다.

유신은 자신들의 정책이 실현되지 않고 자민당이 지지율 저하에 빠질 경우를 대비해 연립에서 물러날 여지를 남겨두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자·유 연립이 향후 국정 선거에서 보조를 맞출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지난 중의원 선거를 기준으로 전국 289개의 선거구에서 자민당과 유신회 후보가 겹치는 곳은 155개에 달했다.

이는 두 당 간의 선거구 조정이 쉽지 않을 것이며, 상당수의 선거구에서 경쟁 관계에 놓일 것임을 말해준다.

또한 자민당과 유신회 간에는 선거 협력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공명당은 창가학회 중심의 강력한 조직표를 활용하여 ‘선거구는 자민, 비례구는 공명’ 방 식으로 협력해왔다.

반면에 유신회는 오사카(大阪) 등 긴키(近畿) 지역 외 뚜렷한 고정지지 세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1)

 

    1) 일각의 조사에 따르면, 공명당의 조직표 지원이 없다면 자민당이 적게는 20명에서 많게는 50명까지 의석수를 잃는다고 한다.

 

다카이치 총재의 자민당은 총리 선출, 국회 내 다수파 확보를 위해 유신회와 손을 잡았지만 협력의 수준은 느슨하다.

다카이치 내각은 유신회와의 연립으로 일정 수준의 안정성을 확보했지만 불확실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4. 평가 및 대일 외교상의 함의

 

현재 다카이치 내각은 높은 지지율을 보이면서 순조로운 출발을 보이고 있다.

일본경제신문이 텔레비도쿄와 실시한 여론조사(조사기간: 10.24~26)에서 다카이치 내각의 지지율은 74%를 기록했다.

이는 역대 내각 2위에 해당하는 수치로 9월의 이시바 내각 지지율이 37%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총리 교체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민당이 이시바 총리에서 다카이치 총리를 당의 새로운 간판으로 내세우면서 이른바 ‘유사 정권 교체’ 효과가 일어난 것이다.

조금 더 길게 보면 탈 아베 시대의 혼란 끝에 아베 시대의 방식이 재등장하고 있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아베 전 총리에 의한 8년간의 장기 집권이 종결된 이후 자민당은 확고한 정치 리더십과 당내 거버넌스를 확립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다카이치 내각은 아베 정권의 정책 노선을 계승하고, 관저 주도 통치 체제의 복원을 시도하고 있다.

아베 정권이라는 낡은 것은 사라졌지만 그 낡은 것이 유사정권교체라는 새로움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일본 및 자민당 정치의 현 주소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베 시대 때와는 달리 현재 자민당은 소수 여당이고 유신회와의 연립 협력은 아직 공고한 수준이 아니다.

이렇게 확연히 달라진 국내 정치적 조건 속에 다카이치 내각이 얼마나 적응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는 다카이치 총리가 아베 노선과 통치 구조를 주어진 현실에 맞게 얼마나 수정, 보완해나갈지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의 대일 외교에 대한 함의를 제시하자면, 아베 노선을 계승한 유사정권교체의 다카이치 내각은 분명 이시바 내각과는 다른 기조의 일본 정부이다.

특히 과거사 문제라는 한일 간의 근본적인 갈등 요인을 감안했을 때 다카이치 총리 및 내각 주류의 역사관과 국가관은 자칫하면 한일 관계를 악화시키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2.0, 북중러 연대의 강화 등 아베 시대와는 달리 일본의 대외 전략에서 한일 협력이 중요해지고 있다.

이와 함께 한국의 이재명 정부가 국익중심의 실용외교 기조 아래 대일 관계에서 셔틀 외교를 재개, 양국 협력의 기반을 구축해 놓았다.

즉, 다카이치 내각 또한 한국과의 관계를 중요시해야 하는 상황에 있다.

다카이치 총리가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한일 관계의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한국의 대일 외교는 양국 협력의 전략적 환 경이 조성되었으며, 양국은 자유 무역 질서의 유지, 공통의 사회 문제 해결, 지방 도시 교류 등 협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많다는 점을 주요 명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물론 다카이치 내각의 역사관은 분명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협력의 이익을 고려하면 한국 대일 외교에서 경계심이 실질 정책을 압도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카이치 내각이 관저 주도의 통치를 모색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일본 정부와의 고위급 소통 라인을 적극 구축, 활용하는 것 또한 중요한 과제가 될 수 있다.

이와 함께 당국자 간의 전략 대화, 1.5 트랙 대화, 의원 외교 등 협력을 구체화하고 갈등을 관리할 수 있는 소통 채널을 중층적으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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