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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야기

장자의 애도 - 동일시와 양가감정을 중심으로- /오일훈.율곡국학진흥원

<목차>

1. 들어가며

2. 장자의 동일시와 양가감정

3. 장자의 애도: 과정과 특징

4. 나오며: 장자의 기여와 과제 < 목 차 > 오일훈* ㅇ50)

 

 1. 들어가며

 

애도(mourning)는 인간 보편의 정동적 경험(affective experience)1)이자, 인 간 존재의 의미를 묻는 철학적 과제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나 시대적⋅사 회적 이상의 붕괴는 개인에게 깊은 심리적 균열을 남기며, 이는 슬픔⋅상실⋅기 억⋅회복이라는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된다.

서구의 정신분석학은 이러한 상실의 경험을 주로 심리적 기제로 설명해 왔다.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 1939)는 상실한 대상에 대한 리비도(libido)의 철회 여부를 기준으로 정상적 애 도와 병리적 우울증을 구분하였고,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2004)는 프 로이트의 애도론을 비판하면서 애도를 망각이 아닌 기억과 책임의 윤리적 문제로 재해석하였다. 애도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심리학적 차원에서 체계화한 인물이 바로 프로이트 이다.

그는 「애도와 우울증(Mourning and Melancholia)」2)에서 사랑하는 이의 죽음과 같은 상실의 경험을 애도와 우울증으로 구분하였다. 그에 따르면, 애도는 상실한 대상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현실성 검사(reality-testin g)3)를 통해 받아들이고, 그 대상에 투사된 리비도를 철회하여 새로운 대상으로 전이하는 정상적 과정으로 이해된다.

 

    1) 정동(情動, affect)은 감정(emotion), 기분(mood), 정서(feeling) 등과 구분되는 개념으로 개인이 경험하는 원초적 정서의 흐름을 가리키는데,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신체적·심리적 반응을 모두 포괄한다. 프로이트는 이를 무의식적 욕망이 의식의 층위로 드러날 때 나타나는 정서적 에너 지의 발현으로 이해하였다. Matsumoto, D., The Cambridge Dictionary of Psychology,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9, pp.19-20 참조.

    2) 이 논문은 1914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개최된 정신분석학회에서 처음 발표되었으며, 최종 원고는 1915년에 완성되었다. 이후 1917년 Internationale Zeitschrift für Ärztliche Psychoanalyse, 제4 권 6호에 수록되었다. 본고는 James Strachey가 1957년 편집⋅번역한 프로이트 전집인 The Standard Edition of the Complete Psychological Works of Sigmund Freud(이하 표준판)를 참고 하였다.

    3) 현실성 검사는 마음이 내적인 표상과 외적인 현실을 구분하고 그것이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심리적 과정을 의미한다. 프로이트는 1911년의 논문 Formulations Regarding the Two Principles of Mental Functioning에서 이 개념을 처음 제시하였다. 표준판 12권, 213-226쪽.

 

반대로 우울증은 리비도의 철회가 실패하 면서 발생하며, 상실한 대상과 자아가 무의식적으로 동일시됨으로써 자아 내부 의 갈등과 자기 공격성이 심화되는 병리적 상태로 설명된다. 프로이트의 분석은 애도와 우울증의 경계를 명확히 설정하고, 상실을 극복 가능한 심리적 과업으로 파악한다는 점에서 정신분석학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4)

그러나 이러한 이분법적 구도는 많은 비판을 불러일으켰다.5)

무엇보다 애도 를 상실의 종결 가능성으로 전제하는 발상 자체에 의문이 제기된다.

실제로 사랑 하는 대상의 흔적이 완전히 소멸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학자가 회의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애도는 종결적 사건이 아니라, 반복적이고 비선형적 인 정동 과정(affective process)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자크 데리다는 이러 한 점에 주목하여, 프로이트가 제시한 애도 개념이 망각을 전제로 한 목표지향적 작업(teleological work)으로 한정되어 있다고 비판하였다.6)

그에 따르면 참된 애도는 상실을 종결짓는 것이 아니라, 망각될 수 없는 타자의 타자성을 끝까지 기억하고 응답하는 윤리적 행위이다. 데리다는 완전한 애도는 불가능하며, 애도 의 본질은 오히려 불완전하고 지속적인 상태에 있다고 강조했다.7)

이와 같은 맥 락에서 데리다는 우울증적 잔여를 병리적 징후가 아니라, 애도의 본질적 조건으 로 이해한다.8)

 

    4) 프로이트가 제시한 애도와 우울증의 핵심적 차이는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고찰할 수 있다. 첫째, 애도는 상실된 의식적 대상(conscious object)과의 관계에서 비롯되지만, 우울증은 무의식적 대상 (unconscious object)과의 관계에서 발생한다. 둘째, 애도가 상실된 대상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면, 우울증은 자아의 형성과 구조화 과정과 긴밀히 연결된 나르시시즘(narcissism)과 밀접한 관련을 지 닌다. 셋째, 애도는 리비도의 철회와 재투자를 통해 비교적 자연스러운 회복을 가능하게 하지만, 우울증은 리비도를 투사할 새로운 대상을 찾지 못함으로써 발생한다. 그 결과 상실된 대상에 대한 양가감정이 자아 내부로 투사되고, 자아는 상실된 대상을 동일시하게 된다. 동일시된 자아는 다시 초자아(superego)의 기능을 대리하면서 자기 자신을 향한 사디즘적 공격성(sadistic aggression)을 발현하게 된다.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정신분석세미나팀, 페미니즘과 정신분석, 여성문화이론연구 소, 도서출판 여이연, 2003, 245-246쪽.

    5) 프로이트의 애도론에 비판적인 학자로는 데리다(Jacques Derrida)와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를 들 수 있다. 데리다는 프로이트의 애도는 망각을 전제로 한다는 점을 문제 삼으며, 그것이 결국 타자성을 말살하는 폭력적 행위라고 지적하였다. 한편, 크리스테바는 애도와 우울증을 언어적 주체 성의 해체 과정으로 해석함으로써, 우울증을 단순히 병리 현상으로 분류하는 기존의 관점을 비판하 였다. 두 사람은 모두 상실 이후의 주체성을 새롭게 하려는 시도 속에서 프로이트의 애도론을 비판 했지만, 동시에 그 이론을 자신들의 철학적 담론의 토대로 삼았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6) “Mourning is a kind of teleological work. Its goal is to resolve the loss by assimilating the lost object.” Jacques, D., Meomories for Paul de Man,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0, p.30.

    7) 데리다에게 있어 성공적인 애도란 본질적으로 ‘불완전한 애도(demi-deuil)’이다. Jacques, D., The Post Card: From Socrates to Freud and Beyond,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7, p.335.

    8) Jacques, D., The Work of Mourning,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17, p.55. 120 철학·사상·문화 제49호 

 

이처럼 프로이트와 데리다의 애도론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상실을 사유하지 만, 공통적으로 애도를 인간 정동의 핵심 문제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 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애도를 궁극적으로 상실을 극복하는 과정으로 규정한 데 비해, 데리다는 애도를 타자에 대한 무한한 책임의 윤리로 이해함으로써 각각 다 른 한계를 드러낸다.

전자의 경우 심리적 환원주의(psychological reductionism) 에 머물 위험이 있으며, 후자의 경우 무한한 긴장 속에서 고착될 수 있다는 문제 가 있다.

나아가 이들의 논의는 주체 내부의 심리적 조정이나 타자와의 관계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하여, 죽음을 존재론적⋅우주론적 차원에서 사유하는 또 다 른 가능성을 충분히 포착하지 못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장자(莊子)의 사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장자는 죽음을 단순히 개인적 감정의 문제로 한정하지 않고, 기(氣)의 취산(聚散)과 도(道)의 흐름 속에 위치시키며, 이를 절대적 단절이 아닌 존재론적 전환의 계기로 사유하 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장자의 죽음관은 심리학적 차원을 넘어 존재론적⋅우주 론적 차원에서 애도를 재구성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한다. 그는 상실을 개인적 정서의 문제로 축소하지 않고, 자연의 질서 속에 위치시킴으로써 독특한 철학적 지평을 열어 보인다.

따라서 장자의 사유는 프로이트적 모델의 심리적 환원성과 데리다적 모델의 무한한 긴장을 넘어서는 존재론이자 윤리적 차원에서 애도를 새 롭게 구성할 수 있는 제3의 가능성을 담고 있다.

본고는 프로이트와 데리다의 애도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장자의 죽음관을 통해 새로운 애도론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특히 프로이트가 제시한 ‘동일시’와 ‘양가감정’의 개념을 장자의 죽음관 속에서 재해석하며, 나 아가 데리다의 애도론과 비교함으로써 장자식 애도가 지니는 존재론적 함의를 규 명하고자 한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현대 사회의 상실 경험에 대한 실존적 대안 으로서 장자식 애도관의 의의를 제시할 것이다.

 

2. 장자의 동일시와 양가감정

 

프로이트는 애도의 실패, 즉 우울증을 상실된 대상과 자아의 ‘동일시 (identification)’ 및 그로부터 파생되는 애증의 ‘양가감정(ambivalence)’이 복 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발생하는 병리적 상태로 규정하였다.

‘동일시’는 자아 가 대상의 성질이나 속성을 내면화하여 자신과 동일시하는 무의식적 과정을 의미 하며, ‘양가감정’이란 동일한 대상에 대해 동시에 사랑과 증오라는 상반된 감정 을 품는 심리적 상태를 말한다.9)

프로이트의 관점에서 정상적인 애도는 상실한 대상에 대한 리비도를 철회하고, 그것을 새로운 대상에 재투자함으로써 심리적 안정성을 회복하는 과정이다.10)

그러나 데리다는 이러한 프로이트의 이분법적 이해를 비판하며, 애도를 망각 이 아니라 상실된 타자의 타자성을 보존하는 윤리적 실천이자 실존적인 경험으로 재해석하였다.11)

 

    9) 표준판 14권(1957), 237쪽.

   10) 우울증은 리비도의 철회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할 때 발생한다. 새로운 대상에게 리비도를 전이시키지 못한 개인은 상실한 대상과 자신을 무의식적 혹은 나르시시즘적 방식으로 ‘동일시’하게 되며, 이로 인해 대상 상실(object-loss)은 곧 자아 상실(ego-loss)로 전환된다. 더 나아가, 상실 한 대상에 대한 갈등은 ‘동일시’된 자아 내부의 갈등으로 변형되며, 이는 초자아(superego)와 ‘동 일시’된 자아 사이의 긴장으로 심화된다. 이 과정에서 자아는 상실된 대상에 대한 ‘양가감정 (ambivalence)’, 즉 사랑과 증오가 동시에 존재하는 심리적 상태에 놓이게 되며, 이는 자기애의 상실(disturbance of self-regard)과 자아의 빈곤(impoverishment of ego)으로 이어진다. 프로이 트는 이러한 ‘동일시’ 기제가 리비도의 발달 단계, 특히 구순기(oral stage) 혹은 식인기 (cannibalistic phase)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그는 「토템과 터부(Totem und Tabu)」에서 원시 사회의 부자 관계를 설명하며, 아들이 아버지를 잡아먹는 행위를 통해 아버지와 자신을 ‘동일 시’하는 심리 구조가 형성된다고 주장하였다. ‘동일시’에 대한 프로이트의 관점은 시간에 따라 다 소 변화하지만, 정신분석학의 맥락에서 ‘동일시’는 자아가 대상을 선택하고 자기 내부에 통합하는 핵심적인 메커니즘으로 간주된다. 표준판 14권(1957), 249쪽.

    11) Jacques, D., The Post Card: From Socrates to Freud and Beyond,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7, p.340. 

 

이러한 맥락에서 ‘동일시’와 ‘양가감정’은 반드시 극복해야 할 병리적 증상이 아니라, 상실에 대한 내적 응답이자 타자와의 관계를 지속하는 하 나의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

다만, 데리다 역시 자아와 타자의 경계를 엄격히 유지한다는 점에서, 상실을 존재론적 질서 속에 통합하려는 사유에는 이르지 못 한다.

장자의 죽음관은 이와 같은 현대적 논의에 깊은 철학적 성찰을 제공한다. 장자 의 상실에 대응하는 방식은 표면적으로는 프로이트가 병리적 실패로 간주했던 자 아와 상실한 대상의 ‘동일시’와 유사한 면모를 보인다.

그러나 장자의 경우 이는 병리적 현상이 아닌 존재론적 통찰로 승화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지닌 다.

더 나아가, 장자곳곳에서 드러나는 전국시대의 혼란한 사회 현실에 대한 장자의 비판적 성찰은 프로이트적 해석의 틀을 적용할 때, ‘양가감정’의 외화된 형태로 읽힐 수 있다.

장자의 애도를 보다 정밀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가 상실한 대상이 무엇이었는지를 고찰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삶 속에서 다양한 형태의 상실을 경 험하듯이, 장자 역시 삶의 여러 국면에서 소중한 대상을 잃는 체험을 했을 것이다.

장자에 드러나는 죽음관은 크게 두 가지 장면을 중심으로 표출된다.

하나 는 아내의 죽음이라는 개인적 상실의 체험이고, 다른 하나는 타자의 죽음을 매개 로 존재의 무상함을 사유하는 철학적 성찰이다.

이 두 맥락은 각각 장자가 경험 한 상실의 양상을 상징적으로 드러낼 뿐만 아니라, 동시에 그가 죽음과 애도를 어떻게 철학적으로 사유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특히, 아내의 죽 음을 다룬 「지락(至樂)」의 일화는 장자의 죽음관을 집약적으로 드러내며, 애도 에 대한 그의 독창적인 태도를 잘 보여준다.

 

장자의 아내가 죽어서, 혜자가 조문하러 갔더니 장자는 다리를 뻗고 철퍼덕 앉아 북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혜자가 말했다. “아내와 함께 살면서 자식까지 키우고 몸이 늙어왔는데, (아내가) 죽었는데도 곡을 하지 않는 것은 그 래도 괜찮으나, 게다가 동이를 두드리며 노래까지 하다니 너무 심하지 않은가?” 장자가 말했다. “그렇지 않다. 이 사람이 처음 죽었을 때에 난들 어찌 슬프지 않 았겠는가[我獨何能無慨然]! (그러나) 그 삶의 처음을 살펴보았더니 본래 삶이 없었고[無生], 삶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본래 형체도 없었고[無形], 형체가 없 었을 뿐만 아니라 본래 기조차 없었다[無氣]. 알 수 없는 아득한 혼돈의 상태[芒 笏] 속에 섞여 있다가 변화하여 기가 나타나고, 기가 변화하여 형체가 이루어지 고, 형체가 변하여 생명이 이루어졌다가, 지금 또 변화해서 죽음으로 갔으니, 이 것은 서로 봄⋅여름⋅가을⋅겨울의 사계절이 운행되는 것과 같다. 아내가 (천지 의) 큰 집에서 편안히 쉬고 있는데 내가 시끄럽게 떠들면서 (사람들을 따라) 울 어대는 것은 스스로 (천)명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여겼기에 그만두었다.”12)

 

     12) 「至樂」, “莊子妻死, 惠子弔之, 莊子則方箕踞鼓盆而歌. 惠子曰, 與人居, 長子老身, 死不哭亦 足矣, 又鼓盆而歌, 不亦甚乎? 莊子曰, 不然. 是其始死也, 我獨何能無慨然! 察其始而本無生. 非徒無生也, 而本無形. 非徒無形也, 而本無氣. 雜乎芒芴之間, 變而有氣, 氣變而有形, 形變 而有生, 今叉雙而之死, 是相與為春秋冬夏四時行也. 人且偃然寢於巨室, 而我嗷嗷然隨而哭 之, 自以為不通乎命, 故止也.” □ 오 일 훈—장자의 애도 123- 동일시와 양가감정을 중심으로 

 

장자의 아내 죽음에 대한 태도는 크게 두 측면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먼저, 사랑하는 대상의 상실에 뒤따르는 일반적인 정서적 반응의 표출이다.

장자 는 아내의 죽음을 접했을 때 곧바로 북을 치고 노래한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슬픔을 느끼고[慨然] 이를 드러냈다.

이러한 반응은 단순히 무정(無情)의 부정 이 아니라, 오히려 프로이트가 말한 ‘현실성 검사’의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사랑하던 대상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수용하는 태도이다.

이는 곧 애도의 출발점이자 상실을 실존적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의 초기 단계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슬픔의 정서적 표출은 애도의 필수적 요소로서, 죽은 대상과의 정동적 관계(affective relation)를 인정하고 그것을 수렴하려는 심리적 작용으로 해석될 수 있다.

본래 유가적 전통에서도 이러한 상실에 따른 정서의 표출은 매우 중시되었다.

공자는 논어(論語)에서 “상(喪)에 임하여 슬프지 않다면, 내가 어떻게 그 사 람을 보겠는가?”13)라고 하였고, 또 “상례는 잘 치르는 것보다 차라리 슬퍼해야 한다”14)고 하여 형식적 절차보다 정서적 반응을 우선시하였다.

 

     13) 「八佾」, “臨喪不哀, 吾何以觀之哉.”

     14) 「八佾」, “喪, 與其易也, 寧戚.” 

 

특히, 부모의 죽 음을 애도하는 삼년상(三年喪)은 죽은 이를 단기간에 망각하거나 곧바로 리비도 를 전이하는 방식이 아니라, 장기간의 슬픔과 기억을 통해 관계의 의미를 재구성 하고자 하는 사회적 의례의 실천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슬픔의 지속이 아니라, 상실을 공동체적 차원에서 기억하고 계승하는 과정이자, 개인적 정서와 사회적 의례가 결합된 독특한 애도 문화라 할 수 있다.

한편, 프로이트에 따르면 애도의 과업은 상실한 대상에 대한 리비도를 점차적 으로 철회하고, 그 에너지를 새로운 대상으로 재투사함으로써 심리적 균형을 회 복하는 데 있다.

이 관점에서, 상실한 대상을 계속 기억하거나 정동적으로 고착 되는 상태는 병리적 위험을 내포하며, 궁극적으로는 우울증으로 귀결될 수 있다.

따라서, 애도는 필연적으로 ‘잊는 것’ 또는 ‘넘어서는 것’과 연결되며, 상실의 정서에서 벗어나기 위한 일종의 심리적 기획으로 설정된다.

그러나 장자의 애도 는 이와 같은 시간 중심적 회복의 논리와는 일정한 거리를 둔다.

그는 초기의 슬픔을 표현한 뒤, 곧 존재의 기화(氣化)적 변화를 자각하며, 죽음을 또 하나의 자연적 전환으로 수용한다.

이러한 태도는 상실의 정서를 억누르거나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상실을 존재론적 통찰로 전환시키는 사유이다. 장자의 죽음관은 단 순한 감정의 배제나 초월이 아니라, 존재의 생성과 소멸 그 자체를 자연의 도 안으로 포섭하는 독창적인 형식이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장자가 아내의 죽음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내면의 정서적 전환이다.

그는 단순히 감정을 억제하거나 상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의 죽음을 계기로 존재 일반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사유로 나아간다.

이때 장자가 떠올리는 ‘기억’은 일상적 의미에서의 회상이나 감정적 추억에 머무르지 않는 다.

그것은 오히려 아내라는 구체적 존재를 매개로 드러나는 생명과 존재의 생 성·변화·소멸이라는 전일적 과정(holistic process)에 대한 성찰이며, 존재의 기 원을 묻는 형이상학적 탐구에 가까운 것이다.

혜자는 친구인 장자에게, 오랜 세월을 함께하며 자식을 낳고 노년을 함께한 아내의 죽음을 앞에 두고 북을 두드리며 노래하는 태도가 부당하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장자의 응답은 단순한 정당화가 아니라, 기화론(氣化論)에 기 반한 존재론적 설명이다.15)

장자의 기화론은 외편의 마지막 편인 「지북유(知北 遊)」에 상세히 보이는 사유로 만물은 기의 운동과 변화를 통해 생성 소멸한다는 세계관이다. 만물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는 자연의 흐름 속에서 존재하 며, 삶과 죽음 조차도 기의 취산에 불과할 뿐 특별한 구별이 없는 것이다.16)

 

     15) 장자의 기화를 음양설과 함께 우주론으로 확장하는 연구는 정세근, 「장자의 기화우주론」, 인문학 지15권, 충북대학교 인문학연구소, 1997 참조.

     16) 「知北遊」, “今已爲物也, 欲復歸根,不亦難乎! 其易也,其唯大人乎! 生也死之徒,死也生之始, 孰知其紀! 人之生, 氣之聚也. 聚則爲生, 散則爲死. 若死生爲徒, 吾又何患! 故萬物一也, 是其 所美者爲神奇, 其所惡者爲臭腐., 臭腐復化爲神奇, 神奇復化爲臭腐. 故曰, 通天下一氣耳, 聖人故貴一.” 

 

따 라서 인간은 이 변화의 필연성을 수용하고 그 흐름 속에서 살아가는 태도를 지향 하여야 한다는 것이 핵심적 주장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장자는 아내의 죽음을 통 해 존재의 본래적 상태를 성찰하고자 한다. 장자는 생명 이전의 상태, 즉 무생 (無生)·무형(無形)·무기(無氣)의 차원을 언급하며, 존재란 애초에 명확한 형태 가 없는 알 수 없는 혼돈[芒芴] 속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 혼돈의 상태 속에서 기가 생겨나고, 그것이 변하여 형체를 이루며, 다시 생명으로 전이되는 일련의 변화를 통해 구체적 존재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장자적 사유의 핵심은 삶과 죽음을 실체적이고 대립적인 두 개념으로 보지 않고, 단지 기의 취산이라는 자연스러운 운동의 국면으로 이해하는 데에 있 다.

다시 말해, 삶은 기의 응결이고 죽음은 기의 해산일 뿐이며, 이는 도의 질서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물의 순환적 변화에 지나지 않는다. 장자의 사유에서 ‘무 (無)’는 절대적 부재나 소멸이 아니라, 기가 분화되기 이전의 원초적 상태를 가 리키며, ‘유(有)’는 기가 일정하게 응집되어 형체와 생명을 형성하는 상태를 의 미한다.

이러한 기의 동적 구조는 장자 사유의 존재론을 구성하는 핵심 개념으로, 죽음을 실존의 단절이 아니라 하나의 흐름 속 변화로 해석하게 만든다.

결 국, 장자가 아내의 죽음을 통해 제시하고자 한 바는 개인적 슬픔의 극복이나 감 정적 절제에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그 상실을 통해 아내를 포함한 모든 존재의 탄생과 소멸, 곧 세계의 참모습을 철학적으로 사유하고자 한 것이다.

바 로 여기에 장자의 생사에 관한 철학적 성찰이 지닌 존재론적 깊이가 놓여 있다.

장자는 절대적인 경지에 이르지 못한 존재는 필연적으로 무언가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17)

 

    17) 장자에 보이는 ‘의존성(dependency)’의 문제는 「소요유」의 여러 우화와 「제물론」의 망량과 그 림자의 우화 속에 담겨 있는 유대(有待)와 무대(無待)의 논의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장자와 곽상의 의존성에 대한 비교연구는 오일훈, 「곽상의 독화설」, 도교문화연구제59집, 한국도교문 화학회, 2023, 44-51쪽 참조.

 

이러한 인식에 따르면, 인간은 언제나 세 상의 구성 요소들에 기대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며, 그러한 의존의 총합이 곧 ‘세상’이라는 실체를 형성한다.

이 점에서, 장자에게 세상은 단순한 배경적 현실이 아니라, 존재자가 관계 맺고 의미를 투사하는 리비도의 총체이기도 하다.

따라서 장자에게 세상에 대한 리비도를 철회한다는 것은 존재의 조건 자체를 부 정하는 것이며, 그것은 현실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특히, 전국시대의 정치적 혼란과 도덕적 붕괴 속에서 이상적인 세계를 꿈꾸던 사상가로서, 장자에게 현실 세계에 대한 리비도의 철회는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이때 철회되지 못한 리비도는 외부로 향하지 못하고 자아 내부로 회귀하며, 이는 장자의 내면에서 세상과 자아의 ‘동일시’로 나타났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장 자는 세상에 대한 실망이나 상실을 단순히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존재 전체와 자신의 동일성을 사유함으로써 이를 철학적으로 전환하였다.

이와 같은 ‘동일 시’의 사유는 장자의 기화론적 생사관의 형성에 있어 하나의 중요한 기초를 제공 했을 수 있으며, 이는 곧 장자의 애도가 그의 존재론적 사유의 전개에 기여했음 을 시사한다.

물론 이는 애도와 사상의 직접적인 시간적 인과성을 전제하는 것이 아니라, 정동적 경험이 철학적 사유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의미한다.

결국, 장자의 자아와 세계에 대한 ‘내면화’ 및 ‘동일시’는 ‘만물은 모두 하나’ 라는 존재론적 평등사상으로 귀결되며, 이는 곧 사랑하는 대상의 상실이 더 이상 절대적인 결핍이나 단절로 인식되지 않는 사유의 전환을 가능하게 한다.

다시 말 해, 상실은 상실이 아닌 것과 동일하며, 존재는 생과 사를 넘어서 지속된다는 관 점으로 귀속된다.

장자는 아내의 죽음을 처음에는 슬퍼했으나, 곧 그 감정을 우주적 질서에 대한 통찰로 승화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북을 두드리며 노래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을 비난하는 혜자에게 삶과 죽음이 사계절의 순환과 같이 단지 기의 변화일 뿐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는 슬픔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슬픔을 영원히 붙들 필요가 없음을 설파한 것이다.

장자 아내의 죽음에 관한 일화는 장자의 생사관이 지닌 철학적 핵심을 집약하 고 있다.

장자는 아내의 죽음을 단순히 감정적으로 수용하거나 억제하려 한 것이 아니라, 존재 일반에 대한 기화론적 통찰을 통해 죽음을 사유의 지평으로 끌어올 렸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장자의 태도는 사랑하는 대상의 상실을 부정하지 않고 인정하지만, 프로이트가 말하는 애도의 심리적 모델—즉 상실한 대상으로 부터 리비도를 철회하여 새로운 대상으로 전이시키는 과정—을 따르지 않는다.

오히려 장자는 삶과 죽음이 기의 모임과 흩어짐이라는 동일한 구조 속에 있음을 깨달음으로써, 리비도 철회의 필요 자체를 소멸시키는 사유를 보여준다.

요컨 대, 상실은 슬픔의 기제가 아니라 세계의 변화 속에 통합될 수 있는 하나의 질서 로 받아들여지며, 이로써 장자의 애도는 단절보다는 연속, 극복보다는 수용, 망 각보다는 통합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한편, 장자는 전국시대 유가⋅명가 사상과 모순으로 점철된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비판은 장자의 ‘동일시’된 자아 내 에서 표출되는 ‘양가감정’의 형태로 읽힐 수 있다. 프로이트적 관점에서 애도의 실패를 구성하는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인 ‘양가감정’은 리비도의 철회에 따른 심리적 긴장과 더불어 상실한 대상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억압되지 못하고 내면 에 잔류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상실한 대상 혹은 그 대상과 ‘동일시’된 자아에 대해 개인이 느끼는 이러한 상반된 감정은 종종 자기비판 혹은 자기비난의 형태 로 표출된다. 장자곳곳에서도 이러한 ‘양가감정’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장자가 직면한 사회 현실의 모순과 그에 대한 내적 반응이 심리학적 차원에 서 해석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즉, 장자의 사유는 단순한 철학적 담론을 넘어, 프로이트가 설명한 심리적 내적 갈등과 일정한 구조적 유사성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노담이 죽었을 때, 진일이 조문하러 가서 세 번 곡하고 나와 버렸다. (노담의) 제자가 말했다. “선생님의 친구가 아닙니까?” (진일이) 대답했다. “그렇다.” (제자가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그와 같이 조문해도 되는 것입니까?” (진일이 말했다.) “그렇다. 처음에 나는 그를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조금 전에 내가 들어가 조문하는데, 늙은 사람들은 자신의 자식이 죽은 듯 울었으며, 젊은 사람들은 마치 자신의 어미가 죽은 듯 울었다. 노담이 사람을 모이게 한 데에는 반드시 (위로하는) 말을 바라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위로하는) 말을 하게 하고, 곡하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곡하게 함이 있었을 것이 다. 이것은 천(天)을 버리고 정(情)에 어긋나는 것이니 그 (본래) 받은 것을 잊 어버린 것이다. 옛날에는 그것을 천을 버리는 형벌[遁天之刑]이라고 했다. (그 가) 때에 맞게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태어날 때였기 때문이고, 때에 맞게 세상을 떠난 것은 갈 때였기 때문이니, (태어나는 때를) 편안히 맞이하고 (죽는 때를) 편하게 따르면, 슬픔이나 즐거움이 (사람의 마음에) 들어갈 수 없다. 옛날에는 이것을 일러 거꾸로 매달린 형벌에서 벗어난 것[帝之縣解]’이라고 했다.”18)

 

   18) 「養生主」, “老聃死, 秦失弔之, 三號而出. 弟子曰, 非夫子之友邪? 曰, 然. 然則弔焉若此, 可 乎? 曰, 然. 始也吾以為其人也, 而今非也. 向吾入而弔焉, 有老者哭之, 如哭其子, 少者哭之, 如哭其母. 彼其所以會之, 必有不蘄言而言, 不蘄哭而哭者. 是遁天倍情, 忘其所受, 古者謂之 遁天之刑. 適來, 夫子時也. 適去, 夫子順也. 安時而處順, 哀樂不能入也, 古者謂是帝之縣解.”   

 

위의 일화에서 진일은 노담에 대해 기존에 가지고 있던 긍정적 인상을 수정하 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핵심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인위적인 호곡(號哭)에 대한 장자의 비판이다.

앞서 장자는 아내의 죽음에 대한 상실감을 진실한 슬픔으로 표 현하였으며, 사랑하는 대상의 상실에 따른 정서적 반응을 부정하거나 배제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노담의 장례에 모인 이들이 혈연적 연관성이 없음에도 불구 하고, 마치 자신의 부모나 자식을 잃은 듯이 곡하는 행위는 진정한 슬픔의 발로 가 아니라고 본 것이다.

장자에 따르면, 오히려 ‘천을 저버린 형벌’이자 ‘거꾸로 매달린 형벌’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위적이고 허위적인 의례에 불과한 것이다.

장자에게 있어 기의 취산은 사물의 자연스러운 변화이자 천명의 유행에 따른 필연적 과정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가 되면 태어나고, 죽을 때가 되면 죽으며, 이러한 순환은 단지 우주적 질서의 한 단면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삶과 죽음 에 슬픔이나 기쁨과 같은 가치판단을 개입시키는 것은 부적절하며, 절대적 숙명 에 순응하는 태도가 요구된다. 이 점에서, 사랑하는 대상의 죽음을 현실적으로 인정하고 슬픔을 표현하는 태도는 장자와 공자 모두에게 공통된 점이지만, 장자는 상례가 지나치게 인위적이고 허위적인 사회 관습임을 명확히 비판한다.

프로이트의 애도론에 따르면, 진일이 노담에 대해 품고 있던 호감을 수정하게 된 것은 노담이라는 대상에게 투자했던 리비도를 다른 대상으로 전이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아와 ‘동일시’하는 심리적 과정의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애증 의 병존에 따른 내적 갈등은 때로 슬픔을 병리적 증상으로 전환시키며, 이러한 병리적 슬픔은 슬퍼하는 이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의 상실에 책임이 있으며, 심지 어 스스로 그러한 상실을 원했다고 여기는 자기비난의 형태로 표출되기도 한다.

반면, 진일은 노담에 대한 실망감을 명확히 표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르시 시즘적 ‘동일시’에 빠지거나 ‘동일시’에 기반한 대체 대상에 대한 증오를 드러내 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는 노담에 대한 ‘양가감정’을 삶과 죽음이라는 자연스러 운 존재론적 과정에 대한 기억으로 승화시키는 태도를 보인다.

이는 앞서 논의한 장자의 죽음관과 밀접히 연관된다.

장자는 인간의 삶과 죽음을 기의 취산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이자, 천명의 유행에 불과한 것으로 이해하였다.

이러한 우주적 질서를 수용할 때, 삶과 죽음에 대한 가치판단은 무의미해지며, 삶의 국면에서는 삶을, 죽음의 국면에서는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태도가 바람직하다고 본 것 이다.

장자전편에 걸쳐 장자는 유가와 명가를 비롯한 당대의 다양한 사상과 사회 현실에 대해 일관된 비판적 시선을 견지한다.

그는 종종 공자(중니)의 입을 빌려 자신의 주장을 전달하지만, 공자를 전통적 의미의 성인으로 이상화하지는 않는 다.

이는 「덕충부」에 등장하는 올자(兀者)와 숙산무지(叔山無趾)의 일화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공자가 제자의 입장에 선 숙산무지에게 가르침을 전하려 하 나, 오히려 역으로 깨달음을 얻는 장면은 전통적 권위의 위계를 뒤집으며, 장자 가 권위적 ‘동일시’의 메커니즘을 전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인간세」에 서는 안회(顔回)와 섭공자고(葉公子高)에게 서로 상반된 권고를 함으로써, 도 덕적 의무와 충성의 의무가 충돌하는 장면을 연출한다.

공자가 안회에게는 위나 라에 가지 말라 권하면서도, 섭공자고에게는 제나라에 사신으로 가라고 권하는 태도는 단순한 상황적 차원의 조언이 아니라, 사회 현실 속에서 발생하는 모순과 긴장을 드러내는 서사적 장치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모순적 태도는 곧 장자의 사유가 사회적 관계와 역사적 현실을 자신과 ‘동일시’하면서도, 동시에 그 안에서 갈등과 긴장이라는 양가적 감정을 경험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다시 말해, 장자의 사유는 ‘동일시’와 ‘양가감정’을 억압하 거나 은폐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드러내고 사유의 자원으로 전환함으로써 현실 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가능하게 한다.

이는 앞서 살펴본 정신분석학적 구조—상 실을 둘러싼 ‘동일시’와 ‘양가감정’—가 장자의 서사 속에서 독특하게 변용된 사 례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해석을 종합해 보면, 장자는 자신이 이상으로 삼았던 세상의 상실에 대해 깊은 애도를 경험하였으며, 이 과정이 그의 철학적 사유의 전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유추할 수 있다.

장자는 꿈꾸던 이상 세계를 진심으로 사랑하였 으나, 시대적⋅현실적 제약 속에서 그것을 실현하지 못하고 결국 상실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장자는 이 상실 앞에서 단순히 현실을 체념하거나 프로이트적 의 미의 리비도 철회를 선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세상의 상실을 분명히 인정하 는 동시에, 그 애도의 정동을 그의 철학적 성찰의 원천으로 전환하고 나아가 자 신의 사유와 사상 체계 속에 승화시키는 독창적인 대응 방식을 보여주었다.

 

3. 장자의 애도: 과정과 특징

 

앞서 우리는 프로이트의 애도에서 우울증의 전제 조건으로 제시되는 ‘동일시’ 와 ‘양가감정’이 장자의 생사관에서 어떻게 긍정적으로 승화되는지를 살펴보았 다.

프로이트가 우울증을 위험한 현상으로 규정한 주된 이유는 우울증 환자들이 자아 내부의 갈등을 견디지 못하고 강한 자살 충동을 드러내기 때문이다.19)

 

    19) 표준판 14권(1957), 251쪽. 

 

실 제로 역사 속에서도 이상적 세계의 상실을 감당하지 못한 인물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동아시아의 전통에서 백이(伯夷)와 숙제(叔齊) 가 수양산(首陽山)에서 단식으로 죽음을 맞이한 일이나, 굴원(屈原)이 멱라강 (汨羅江)에 몸을 던진 사건은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나아가 프로이트 자신 또한 말년에 스스로 생애를 마감했다는 사실은, 그가 제기한 문제의 심각성 과 현실성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장자는 세상과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발생하는 ‘양가감정’을 단순 한 내적 갈등으로 머무르게 하지 않고, 자신의 철학적 사유 체계로 승화시켰다. 

애도는 사랑하는 대상을 상실한 모든 인간이 공통적으로 겪는 보편적 과정이다. 물론 애도에 실패하는 경우 개인은 우울감, 퇴행적 행동, 과도한 자기비난 등 부 정적인 심리적 결과를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장자의 경우, 프로이트가 규정한 애도의 실패가 반드시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상실의 경험 을 자신의 철학 체계를 구축하는 동력으로 전환하였다. 그렇다면, 장자의 애도는 어떠한 과정과 특징을 지니는가? 앞서 논의한 아내 의 죽음과 노담의 죽음에 대한 장자의 대응 방식을 중심으로, 우리는 장자의 애 도가 지닌 구체적 과정과 특징을 체계적으로 탐구할 수 있다. 먼저, 장자는 슬픔 이라는 정서적 감정을 명확히 승인하고 인정한다.

전통적으로 장자는 삶보다는 죽음을 중시한 인물로 평가되어 왔으나,20) 실제로 그는 상실에 대한 정서적 감 정을 결코 부정하지 않았다.

 

   20) 실제로 위진시기의 주석가들은 장자가 ‘삶보다는 죽음을 즐거워한다[樂死惡生]’고 평가하였다. 그러나 곽상은 「지락」 의 장자와 해골 간 대화에 대한 주석에서, 당시 장자의 생사관을 곡해한 기존 학설을 강력히 비판하였다. 곽상은 ‘齊’라는 개념을 통해 장자의 생사관에 대한 오해를 해소하고자 하였으며, 장자가 ‘生과 死를 동일한 것으로 보았다’는 해석을 부정하였다. 그에 따르면, ‘동일하 게 여긴다’는 ‘齊’는 ‘살아 있을 때는 삶을 편안하게 여기고, 죽었을 때는 죽음을 편안하게 여기는 것[生時安生, 死時安死]’을 의미한다. 즉, ‘齊’라는 입장에서 생사 문제를 바라보면, 인간은 생 을 영위하는 동안 그 삶에 만족하고, 생을 마감할 때는 죽음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만족하면 된다 는 것이다. 이는 생과 사가 동일한 것이기 때문에 생과 사에 대한 즐거움과 싫음의 태도가 무의미하 다는 뜻이 아니라, 각기 다른 삶의 과정(生과 死)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만족하는 태도가 생과 사를 ‘齊’하게 만든다는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오일훈, 「莊子序」 眞僞問題와 郭象의 莊子 編輯에 관한 고찰」, 도교문화연구제49집, 2018, 76쪽. 

 

「지락」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장자는 사랑하는 아 내의 죽음을 슬퍼하며, 그 대상이 더 이상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 명히 받아들였다. 그는 사랑하는 대상의 상실에 대한 정서적 반응을 억압하거나 은폐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를 자연스러운 인간적 반응으로 승인하였다. 장자는 아내의 죽음을 단순히 사유 속에서 초월하려 한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명확하게 슬픔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는 그가 슬픔이라는 정서를 인간에게 불가 피한 정동으로 수용했으며, 이를 부정하거나 억압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또 한, 노담의 장례 장면에서, 사람들이 지나치게 통곡하는 모습을 보고 진일이 실 망하는 장면에서도, 장자는 과도하고 형식적인 호곡을 비판할 뿐, 죽음 자체를 부정하거나 슬픔을 무가치하게 보지는 않았다. 그는 죽음을 천명의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받아들이되, 그 과정에서 인간의 감정이 지나치게 과장되거나 사회적 관습 속에서 왜곡되는 것을 경계했던 것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장자는 아내의 죽음 앞에서 “슬프지 않을 수 없었다[我獨 何能無慨然]”21)고 고백하며, 슬픔이라는 정서를 인간의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인정한다.

동시에 그는 타인의 죽음에 대해서도 정서 자체를 억압하기보다는, 그 것이 자연의 도리와 조화를 이루는 방식으로 표현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이러한 맥락은 장자가 슬픔을 억제하거나 부정한 것이 아니라, 자연의 도에 합당한 방식 으로 수용하고 조화시키려는 태도를 지녔다는 점을 지녔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 다고 할 것이다.

다음으로, 장자의 애도가 프로이트적 의미에서의 망각이 아니라, 오히려 기억 의 지속과 그 철학적 내면화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 이, 데리다는 프로이트의 애도론을 비판적으로 독해하면서, 애도가 과연 정상과 비정상, 성공과 실패라는 이분법으로 구분될 수 있는가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였다. 데리다의 관점에서 애도는 단순히 상실의 정동을 정리하는 심리적 과정으로 간주되기보다는, 타자의 부재를 감당하며 살아가는 주체가 짊어져야 할 윤리적 과제로 이해된다.

타자의 죽음은 단순히 외재적인 존재의 상실이 아니 라, 타자가 더 이상 우리 바깥에 있는 존재로서 유지될 수 없는 상황에서, 그 기억이 내면화의 방식으로 우리 안에 귀속되는 것을 의미한다. 데리다는 이 내면 화가 단순한 ‘동일시’가 아니라, 타자의 근본적인 타자성을 유지하려는 기억의 실천임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죽음은 타자의 타자성, 즉 타자가 우리 안에 내재 하면서도, 끝내 우리 바깥에 머무는 낯선 존재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드 러내는 사건으로 이해된다.22)

 

     21) 각주 12 참조.

     22) Jacques, D., The Post Card: From Socrates to Freud and Beyond,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7, p.34. 

 

이와 유사하게, 장자 역시 사랑하는 대상의 상실 앞에서 단순히 망각이나 회피 를 선택하지 않는다. 「지락」에서 그는 아내의 죽음을 받아들이면서도, 그 존재 를 기억하려는 태도를 분명히 드러냈다. 그러나 이 기억은 단지 개인적 정서의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존재 일반에 대한 철학적 성찰로 확장된다. 장자의 기억 은 아내라는 구체적인 타자의 상실을 계기로, 존재의 생성과 소멸, 곧 삶과 죽음 의 근원적 조건에 대한 성찰로 나아간다. 장자의 기화론적 생사관에서, 삶과 죽 음은 기의 취산이라는 자연적 과정의 일부일 뿐이며, 이러한 과정은 절대적 소멸이 아니라, 만물의 순환 속에서 이루어지는 변환의 한 국면에 불과하다. 따라서 장자에게 있어서 기억은 단순한 정서적 회상이나 대상을 복원하려는 심리적 작업 이 아니라, 존재론적 성찰의 토대이자 자연의 도를 체득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장자가 사랑하는 대상의 상실을 통해 환기시키는 기억은 감정의 복잡한 교착 상태나 주체 내부의 심리적 전이 과정으로 설명되기보다는, 존재의 근원에 대한 철학적 인식을 통해 드러난다. 프로이트에게 있어서 애도는 상실한 대상을 망각 하기 위한 심리적 조정 과정이며, 데리다에게 애도는 그 상실된 타자를 윤리적으 로 기억하고, 그 부재를 내면화함으로써 타자의 타자성을 보존하려는 윤리적 실 천이다. 반면 장자에게 기억은 단지 주체 내부로 대상을 끌어들이는 단순한 내면 화의 과정이 아니라, 상실된 존재를 통해 드러나는 존재 일반의 생성과 소멸, 즉 도의 흐름에 대한 체득이자 회귀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보면, 장자의 기억은 상실한 타자를 구체적 개인으로 재현 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그 타자를 통해 드러나는 존재 일반의 생사 구 조, 곧 생멸의 도식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려는 사유이다. 아내라는 구체적 대상의 죽음은 단지 사적 상실의 계기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의 생성과 소멸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이끌어내는 계기이며, 이는 장자가 ‘세상의 참모습’을 파악하는 데 있어 중대한 전환점으로 기능한다. 마지막으로, 장자는 자아와 타자의 경계를 해체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만물이 동일한 하나의 흐름에 귀속된다는 만물제동(萬物齊同)의 인식에 도달한다. 데 리다는 프로이트의 애도를 비판하면서, 정상적 애도와 병리적 우울증이라는 이 분법을 해체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해체의 과정 속에서도 타자의 타 자성, 즉 타자와 나 사이의 근본적인 이질성과 불가침의 거리감을 철저히 보존하 려는 태도를 유지하였다. 데리다에게 있어 타자는 결코 나와 동일한 존재가 될 수 없으며, 타자의 부재를 내면화하려는 애도는 바로 그 이질성의 긴장을 끌어안 는 윤리적 실천이다. 즉, 데리다가 제시한 애도의 윤리학은 상실된 타자의 부재 를 잊지 않고, 그 타자성을 끊임없이 보존하려는 무한한 책임의 태도를 강조한 다. 이는 애도를 단순한 심리적 회복이나 동일화의 과정으로 축소하지 않고, 타 자와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려는 윤리적 긴장을 담보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그러나 장자의 사유가 지향하는 바는 이와 다소 차원을 달리한다. 그는 타자의 □ 오 일 훈—장자의 애도 133- 동일시와 양가감정을 중심으로 이질성을 보존하기보다는, 자아와 타자라는 이원적 구분 자체를 초월하려 한다. 장자의 애도는 자아에 대한 동일성의 고집을 내려놓고, 존재 일반에 대한 집착을 해소하는 과정을 수반한다. 장자에게 있어서 슬픔은 집착의 산물이며, 그 집착의 근원은 자아의 고유성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장자의 사유 는 데리다적 애도와는 또 다른 지점을 지향한다. 장자는 자타의 구분, 즉 주체와 객체, 자아와 타자라는 이원적 대립 구조를 근본적으로 무화(無化)하는 방향으 로 나아간다. 이러한 인식은 장자 자신의 임종 일화를 통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죽음을 앞둔 장자는 장례식의 형식이나 추모의 의례를 거부하며, 자연 그 자체를 자신의 장례로 삼겠다고 선언한다. 그는 구름과 비, 바람과 천지가 자신에게 풍악을 울 려줄 것이며, 거기에 무엇을 더하겠느냐고 말한다. 이 장면은 생의 종말을 타자 들에 의한 기억의 대상이나 예속의 순간으로 보지 않고, 자연 그 자체와 융화되 는 존재론적 전환점으로 이해하는 장자의 사유를 함축하고 있다. 장자가 곧 죽으려하자 제자들이 후하게 장례를 치르고자 했다. 장자가 말했 다. “나는 하늘과 땅을 관과 곽으로 삼고, 해와 달을 한 쌍의 옥으로 삼고, 하늘 에 떠 있는 별을 온갖 옥으로 삼고, 만물을 저승길 가는 선물로 삼을 것이다. 나 의 장례에 필요한 도구는 완비되지 않았는가? 무엇을 더 보태겠는가!” 제자들이 말했다. “저희는 까마귀나 솔개가 (선생님의 시신을) 파먹을까 두렵습니다.” 장 자가 말했다. “(풍장을 하면) 하늘에서는 까마귀와 솔개의 먹이가 되고, (매장을 하면) 땅에서는 땅강아지와 개미의 먹이가 될 것인데, 저쪽 것을 빼앗아 이쪽에 다 주는 것은 아무래도 불공평하지 않은가! 공평하지 않은 것을 (억지로) 공평하 다고 하면 그 공평은 (참다운) 공평이 되지 못하고, 분명하지 않은 것을 (억지 로) 분명하다고 하면 그 분명함은 (참다운) 분명함이 되지 못한다. 눈은 다만 정 신의 부림을 당할 뿐이고, 그러면 정신이 이것을 명백하게 포착하는 것이다. 무 릇 눈이 정신을 이기지 못한 지가 오래되었는데, 그런데도 세상의 어리석은 자들 은 (눈이) 보는 것만을 의지하여 인위의 세계에 빠져들어 공적을 밖으로 드러내 려 하니, 또한 슬프지 아니한가!”23)

 

    23) 「列禦寇」, “莊子將死, 弟子欲厚葬之. 莊子曰, 吾以天地為棺槨, 以日月為連壁, 星辰為珠璣, 萬物為齎送. 吾葬具豈不備邪? 何以加此! 弟子曰, 吾恐烏鳶之食夫子也. 莊子曰, 在上為烏鳶 食, 在下為螻蟻食, 奪彼與此, 何其偏也! 以不平平, 其平也不平. 以不徵徵, 其徵也不徵. 明者 唯為之使, 神者徵之. 夫明之不勝神也久矣, 而愚者恃其所見入於人, 其功外也, 不亦悲乎!” 

 

장자는 타자의 죽음을 기억하거나 내면화하는 것을 넘어, 자아와 타자의 경계 자체를 해체하고, 만물이 서로 분별없이 하나로 돌아가는 도의 차원으로 나아간 다.

즉, 애도란 타자를 나의 내면으로 끌어들이는 기억의 형식이 아니라, 자아를 포함한 만물이 동등하게 도의 흐름 속에서 취산하는 존재로 수렴된다는 사유의 귀결이다.

이러한 장자의 입장은 애도라는 윤리적 형식조차 뛰어넘어, 존재 일반 에 대한 초월적 수용과 자연 순환에의 통합을 지향하는 철학적 지평을 보여준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는 인간을 ‘죽음을 향한 존재(Sein zum Tode)’로 규정했다.24)

이는 인간이 단순히 생물학적인 종말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필연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인식하고 그 죽음 을 의식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성찰할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인간은 죽음 을 인식함으로써 자신의 유한성을 자각하고, 이 유한성에 대한 불안을 계기로 하 여 보다 본래적인 삶에 충실할 수 있다.25)

다시 말해, 죽음의 예감은 인간으로 하여금 일상의 피상적인 삶을 벗어나, 자기 존재의 근원적 의미를 묻고 진정한 실존에 이르게 하는 계기가 된다.

이러한 하이데거의 실존론적 죽음 이해와는 다른 방식으로 장자는 자아와 타 자의 경계를 해체함으로써 삶과 죽음의 이분법 자체를 초월하고자 한다. 장자 철 학은 전체적으로 변화의 필연성, 분별의 상대성, 자연에의 순응이라는 핵심 사유 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장자는 인간이 만들어낸 인위적인 가치 판단과 구분을 근 본적으로 부정한다.

나와 너, 삶과 죽음, 선과 악, 내 것과 남의 것이라는 구별 들은 모두 절대적인 본질을 지니지 않으며, 시간적⋅상황적 조건에 따라 변하는 상대적 개념들일 뿐이다.

「제물론」에서 장자는 “저것은 곧 옳고 그름을 하나로 품은 것이고, 이것도 곧 옳고 그름을 하나로서 품은 것이다”26)라고 말함으로써, 모든 시비와 판단은 특정 입장에 근거한 상대적 분별에 불과함을 지적한다.

 

     24) Heidegger, M., Sein und Zeit, Max Niemeyer Verlag Tuebingen, 1967, p.234.

     25) 마르틴 하이데거, 이기상 번역, 「존재물음의 필연성, 구조 그리고 우위」, 존재와 시간, 까치, 1998 참조.

     26) 「齊物論」, “彼亦一是非, 此亦一是非.” 우리말 번역은 이권, 유병래, 정우진, 박원재, 장자중독-제물론, 궁리, 2024, 183쪽 참 조.

 

이러 한 상대주의적 인식은 자아와 타자의 구별 또한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임을 드러내며, 장자는 이를 통해 도의 차원에서는 모든 존재가 본래적으로 동 일한 흐름 속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상대라고 하는 것도 그 자체로 고정 된 것이 아니라 무한한 순환변화의 실제에 놓을 때, 단 하나의 절대 속에 수렴 된다는 것이다.27)

 

     27) 위의 책, 184쪽. 

 

이처럼 자아와 타자의 경계를 해체하는 것은 곧 존재의 차별 을 초월하고, 만물의 생멸과 변화 자체를 긍정하는 철학적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장자의 사유는 하이데거식 실존의 진정성 탐구와는 상이한 궤적을 그리지만, 공통적으로 죽음을 존재의 본질에 대한 사유의 계기로 삼는다는 점에서 상호 조 명될 수 있다.

하이데거가 죽음을 통해 실존의 본래적 구조를 드러내고자 했다 면, 장자는 죽음을 포함한 모든 변화와 분별을 도의 관점에서 평등하게 수용함으 로써 존재 일반의 해탈을 지향한다.

양자의 사유는 각각 서구 실존주의와 중국 도가철학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으나, 죽음을 존재론적 전환점으로 사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비교가 가능할 것이다.28)

 

     28) 장자는 이러한 사유를 단지 이론적·인식론적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실천적 수행론의 영역으로 확 장하였다. 이는 서양 철학에서 흔히 주체와 객체, 자아와 타자를 엄격히 구분하는 사고와는 분명히 구분되는 지점이다. 그는 자아와 타자의 경계를 해체하는 실천적 방법으로 ‘좌망(坐忘)’과 ‘심재 (心齋)’를 제시한다. 좌망은 육체적 감각과 지식의 작용을 초월하여 자아의 경계를 허무는 수행이 며, 심재는 자아 중심의 분별심을 비우고 타자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승인하는 존재 방식이다.

 

요컨대, 장자는 자아를 고정불변한 실체로 전제하는 인식을 비판하고, 자아와 타자의 이분법이 본래 인위적인 구성물임을 드러낸다. 이는 생과 사의 구분을 무 화시키는 생사관으로 이어지며, 존재 일반의 근본적 동일성을 긍정하는 사유로 귀결된다.

장자에 있어 자아의 해체는 단순한 인식론적 전회가 아니라, 자유로운 존재 방식으로 나아가기 위한 철학적 실천이며, 이는 곧 만물제동, 즉 모든 존재 가 본래적으로 하나임을 자각하는 데 이르게 한다.

이러한 경지는 타자와의 대립 이 소멸된 자유로운 존재 양태이며, 장자가 추구한 진정한 자유의 형상이라 할 수 있다.

 

4. 나오며: 장자의 기여와 과제

 

본고는 장자의 애도라는 주제로 프로이트와 데리다의 애도와의 비교를 통해 장자의 독자적인 사유 구조를 고찰하였다.

프로이트에게 있어서 애도는 상실한 대상에 대한 리비도의 철회와 그 철회의 성공 여부에 따라 정상과 병리를 구분하 는 과정이다. 애도의 실패는 리비도의 철회 대신 자아로의 전이를 유발하고, 이 과정에서 ‘동일시’ 및 ‘양가감정’이 발생하며, 이는 자기비하와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데리다는 이러한 프로이트의 이분법적 애도 이해를 비판하면서, 애도를 단절이 아닌 책임의 시작으로 보았고, 타자의 죽음을 기억하고 내면화하 는 행위를 통해 타자의 타자성을 유지하는 방식의 애도 개념을 제안하였다. 이에 반해 장자의 애도는 이러한 애도 개념들과는 다른 차원에서 작동한다. 장자는 사랑하는 대상의 죽음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슬픔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도, 그 상실을 단순히 극복하거나 망각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오히 려 그 상실을 통해 존재의 근원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도출하고, 그것을 삶의 사유로 승화시킨다. 특히, 그는 존재의 변화와 순환을 기의 취산이라는 기화론적 관점에서 이해함으로써, 죽음을 본질적 소멸로 보지 않고 도의 흐름 속에서의 전 환으로 파악한다. 이러한 점에서 장자의 애도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특징을 통해 요약될 수 있 다.    첫째, 장자는 사랑하는 대상의 상실에 수반되는 정서적 반응인 슬픔을 명확 히 승인하고 인정한다.

이는 형식화된 애도 의례에 대한 비판과 동시에, 인간의 자연적 감정을 긍정하는 철학적 태도를 보여준다.

  둘째, 장자의 애도는 프로이트 식 애도처럼 망각에 기초한 리비도의 철회가 아니라, 오히려 기억의 지속과 그 철학적 내면화에 기반한다.

장자는 상실을 통해 존재의 기원과 본질에 대한 통찰 을 얻고, 이를 기화론적 존재 이해로 확장시킨다.

  셋째, 장자는 애도를 통해 자 아와 타자의 경계를 해체함으로써, 모든 존재가 궁극적으로 하나의 동일한 흐름 속에 귀속된다는 만물제동의 인식에 도달한다.

이러한 자아의 해체와 경계의 무 화는 곧 장자가 말한 자유로운 존재 방식으로 귀결된다.

장자의 애도는 단순한 심리적 반응이나 정서적 치유 과정이 아니라, 상실을 철학적 사유의 계기로 전환하고, 자아를 도의 흐름 속에 위치시키는 존재론적 전 회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로써 장자는 죽음을 극복하거나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삶의 일부로 수용하며, 타자와의 대립을 넘어서는 자유의 철학을 제시한 것이다.

이러한 장자의 애도가 현대에 지닐 수 있는 철학적 의미는 다음과 같은 세 가 지 지점에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며, 오늘날의 상실 경험과 애도 문화에 중요한 사유의 전환점을 제시한다. 먼저, 정서의 승인이다.

이것은 감정의 억압이 아닌 슬픔의 수용을 의미한다.

현대 사회는 슬픔조차도 빠르게 치유하거나 극복해야 할 부정적 정서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장자는 아내의 죽음을 앞에  두고 슬픔이라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승인하고 표현했다. 그는 북을 두드리며 노 래하기 이전에,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한 내면의 슬픔을 충분히 통과했다.

이는 감정의 억압이 아닌 정서의 진정한 승인을 통해서만 애도가 시작될 수 있다는 점 을 시사하며, 현대의 감정 노동적 삶에서 개인이 겪는 애도와 슬픔의 시간을 긍 정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회복하게 한다.

다음으로 망각이 아닌 기억, 즉 타자를 잊지 않기 위한 철학적 내면화이다.

장자의 애도는 리비도의 철회와 망각이라는 프로이트식 처방이 아닌, 존재의 근 원에 대한 사유로 나아가는 기억의 지속이다.

이는 데리다의 애도와도 깊은 접점 을 형성한다.

장자에게 기억은 단순히 그리움의 정서적 반복이 아니라, 존재가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다시 시작하게 만드는 철학적 장치이다.

이것 은 현대인의 상실에 대한 태도도 이처럼 잊는 것이 아닌,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그리고 그 기억을 어떻게 철학적⋅윤리적 책임의 계기로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 게 한다. 마지막으로 자타의 해체, 즉 상호공존의 긍정과 모색이다.

오늘날의 자아는 개인주의와 경계 짓기의 논리 속에 갇혀 있으며, 타자와의 관계는 자기중심적 사 고로 인해 종종 왜곡되곤 한다.

그러나 장자는 자아와 타자의 경계를 해체하고, 모든 존재가 동일한 도의 흐름 안에 있음을 강조한다.

삶과 죽음, 나와 너, 인간 과 자연, 유와 무 등등 모두가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잠정적으로 구별되고 본질적으로 연속된 것으로 인식될 때, 비로소 애도는 단절의 고통이 아니라 관계 의 전환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관계성의 회복, 곧 타자를 경쟁이나 소유가 아닌 함께 흘러가는 존재로 인식하는 전환을 가능하게 할 것 이다.

오늘날 애도의 양상은 전통적 개인의 상실을 넘어, 전쟁·재난·팬데믹과 같은 집단적 비극이나 디지털 환경 속에서 반복적으로 갱신되는 상실 경험까지 확장되 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장자의 애도론은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장자가 강 조하는 슬픔의 승인과 기억의 내면화, 그리고 자타의 경계 해체를 통한 공존적 삶의 지향은 반복적이고 비선형적으로 전개되는 현대의 애도 과정에 새로운 해석 의 틀을 제공한다.

즉, 집단적 상실을 단순히 극복해야 할 병리로 보지 않고, 존재론적 사유와 관계의 회복을 가능케 하는 계기로 전환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다.

이는 사회적⋅문화적 연구의 차원에서도 장자의 사유가 여전히 생산적 의미 138 철학·사상·문화 제49호 를 지니며, 현대적 애도 문화를 성찰하는 데 중요한 철학적 자원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물론 본 연구는 몇 가지 한계를 지닌다.

  첫째, 장자텍스트 자체가 애도라는 개념을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기에, 비교철학적 해석을 통해 논지를 확장할 수밖 에 없었다.

  둘째, 프로이트와 데리다의 이론은 정신분석학과 해체철학이라는 고 유한 맥락에 속해 있어, 이를 장자의 사유와 접속하는 과정에서 해석적 간극이 발생할 수 있다.

 셋째, 본고는 철학적⋅사상사적 분석에 집중하였기에, 실제 애 도 경험의 문화적⋅사회적 맥락이나 심리학적 사례 연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 하였다. 그

러나 이러한 한계는 장자의 죽음관을 현대 애도론의 논의와 접속시키 려는 시도에서 불가피한 측면이며, 오히려 향후 학제적 연구를 통해 더욱 풍부하 게 보완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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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문】

본고는 프로이트와 데리다의 애도(mourning)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장자의 죽음관에서 발견되는 독자적인 애도의 구조를 규명하였다. 프로이트는 애도를 상실한 대상에 대한 리비도(libido)의 철회와 재투사의 과정으로 설명하며, 그 실패를 병리적 우울증(melancholia)으로 규정하였다. 데리다는 이러한 이분법적 구도를 비판하면서 애도를 타자의 부재를 기억하고 타자성을 보존하는 윤리적 실천으로 이해하였다. 이에 비해 장자는 애도를 망각이나 단순한 기억의 차원에서 파악하지 않고, 기화론(氣化論)적 세계관 속에서 존재의 생성과 소멸을 통합하는 철학적 사유로 확장하였다. 장자의 애도는 첫째, 상실에 따른 슬픔을 부정하지 않고 승인하며, 둘째, 망각이 아니라 기억의 지속을 통해 존재론적 성찰을 가능하게 하고, 셋째, 자아와 타자의 경계를 해체하여 만물제동(萬物齊同)의 자유에 도달한다는 특징을 지닌다. 이러한 사유는 애도를 단절이나 병리적 실패로 규정하지 않고, 존재론적 전환과 철학적 실천의 계기로 전환한다. 나아가 장자의 애도는 오늘날의 애도 문화와 상실의 경험에 새로운 사유의 지평을 제공한다. 특히, 감정의 승인, 기억의 내면적 철학화, 자타의 해체를 통한 상호공생의 관계 회복을 모색하는 철학적 대안이라는 중요한 시사점을 제시한다. 【주제어】 애도, 장자, 프로이트, 데리다, 동일시, 양가감정

 

 

Abstract

Zhuangzi’s Conception of Mourning-Identification and Ambivalence Beyond Freud and Derrida

Ilhoon Oh( Senior Research Fellow at Yulgok Institute of Korean Studies)

This study has critically examined Freud’s and Derrida’s theories of mourning, focusing on Zhuangzi’s view of death, and has sought to elucidate the unique structure of mourning embedded in his thought. Freud explained mourning as a process of withdrawing and reinvesting the libid.o from the lost object, while regarding its failure as pathological melancholia. Derrida, however, criticized this dichotomous framework and understood mourning as an ethical practice of remembering the absent other and preserving alterity. In contrast, Zhuangzi does not conceive of mourning in terms of forgetting or mere remembrance; rather, he expands it into a philosophical reflection that integrates the generation and extinction of beings within a cosmological vision of qi 氣-transformation. Zhuangzi’s notion of mourning is characterized, first, by acknowledging and affirming the sorrow that accompanies loss; second, by enabling ontological reflection through the persistence of memory rather than through forgetting; and third, by dissolving the boundary between self and other in order to attain the freedom of the equality of all things (wanwu qitong 萬物齊同). Such a perspective does not regard mourning as rupture or pathological failure, but transforms it into an occasion for ontological conversion and philosophical practice. Moreover, Zhuangzi’s conception of mourning provides a new horizon of thought for contemporary experiences of loss and mourning culture. In particular, it presents an important implication as a philosophical alternative that seeks the affirmation of emotions, the internal philosophization of memory, and the restoration of reciprocal coexistence through the dissolution of the boundary between self and other.

【Key words】 mourning, Zhuangzi, Freud, Derrida, identification, ambivalence * Senior Research Fellow at Yulgok Institute of Korean Studies

 

 

논문접수일: 2025.09.18. 논문심사기간: 2025.09.27.∼10.09. 게재확정일: 2025.10.13.

『철학·사상·문화』 제49호 2025.10. 117-140쪽

KCI_FI003259362 (1).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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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dx.doi.org/10.33639/ptc.2025..49.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