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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야기

바울(서신)과 도마(복음)는 영지사상을 공유하였는가?/정승우.연세大미래캠퍼스

 

Ⅰ. 서언

 

바울서신(편지)과 도마복음(어록집)의 존재는 원시 기독교 공동체가 문학적 장르에 있어서나, 신학적 사고에 있어 무척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1945년 나그함마디에서 발견된 콥 틱어 도마복음서는 정경복음서와 전혀 다른 형태의 장르와 신학적 내용 을 보여준다.1)

 

     1)  문헌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도마복음의 그리스어 사본은, 2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옥시 린쿠스에서 발견된 것들이다. 1945년 나그함마디에서 발견된 도마복음 사본은, 다양한 전승과 편 집과정을 거치면서 4세기 경에 콥틱어로 번역된 것으로 추정된다. 영지주의적 색채는 2세기 경에  가미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가장 이른 시기의 도마전승은 영지주의 색채보다는 유대적 지혜전승의  색채가 강하게 나타난다. 이는 Q와의 비교를 통해 파악할 수 있다. Robert W. Funk, Roy W.  Hoover and The Jesus Seminar, The Five Gospels (New YorK: HarperCoolins, 1997), 470-532. 

 

이는 원시 기독교 그룹들이 예수에 관한 매우 다양한 해석 의 전망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약문헌 중 가장 이른 시기 에 형성된 바울서신들은 여러가지 우여곡절을 통해 정경의 위치를 점유하게 되었지만, 도마복음은 그렇지 못했다.

4세기 초기 기독교의 주류세 력은 로마제국의 위계구조를 내면화하면서, 자신들의 권위에 위협이 되 는 영지주의 기독교 문헌을 역사에서 소거시켜 버렸다.

그러나 2세기에 활동한 마르시온이나 발렌티누스와 같은 인물은 바울의 편지를 자신들의 사상적 근간으로 간주했다.

가령 이들은 바울의 다메셋 사건이나 삼층천 의 신비체험(고후 12:1-4)을 영지(靈智, Gnosis)에 관한 내적 깨달음으로 이해했다.

바울과 영지주의(Gnosticism)와의 관련성은 신약학계의 오래된 논쟁 중에 하나였다.2)

가령 월킨스(U. Wilckens)와 슈미탈스(W. Schmithals)는 갈라디아서에 등장하는 대적자들의 정체를 유대적 영지주의자로 간주한 다.3)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바울은 반(反)영지주의적 인물이다.

한편 페이겔스(E. Pagles)는 바울과 영지주의의 친연성을 제기한다.4)

그녀에 따 르면 바울을 반(反)영지주의자로 간주하는 것은 2세기 기독교 교부들의 주장에 의한 것일 뿐, 바울은 이와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2세기에 활동 한 영지주의자, 마르시온(Marcion, ?-160)과 발렌티누스(Valentinus, 100 175)는 자신들을 바울의 계승자로 자처했다.5)

 

    2)  영지주의에 관해서는 Karen L. King, What Is Gnosticism?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2003), 5-19. 

    3)  Walter Schmithals, Paul & the Gnostics (Nashville: Abingdon Press, 1972), 13-64. 

    4)  Elaine Pagels, The Gnostic Paul (Harrisburg: Trinity Press International, 1992), 1-10. 

    5)  발렌티누스에 대해서는, Nicola Denzey Lewis, Introduction to “Gnosticism” (Oxford: Oxford Uni versity Press, 2013), 63-71을 참조하라.  

 

이들은 바울의 편지를 중 심으로 초기 기독교를 재편하려고 했다.

사실 바울의 7개 친서 속에서는 영지주의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찾아 보기 힘들다.

그가 공격한 주된 대상은 할례와 음식법, 그리고 율법 준수를 이방 기독교인들에게 강요했 던 보수적 유대 기독교인들이었다.

영지주의에 관한 비판은 바울 사후에 작성된 목회 서신이나, 베드로 후서, 그리고 요한일서와 같은 2세기에 형성된 일반서신에서 비로소 강하게 나타난다.

흥미로운 점은 바울의 편지들이 영지주의적으로 곡해될 소지를 우려한 목소리가 베드로 후서 3장 16절에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 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 라.”

 

이 구절은 2세기 영지주의자들의 활동이 초기 기독교 공동체 내부 에서 활발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마르시온이나 발렌티누스는 2세기 중반 로마교회 내에서 상당한 영 향력을 발휘한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바울의 편지를 중심으로, 유대교의 그림자에서 완전히 벗어난 기독교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확보하고자 했 다.

가령, 마르시온은 10개의 바울서신과 누가복음만으로 히브리 성서에 대응하는 기독교의 경전체제를 수립하고자 하였다.

한편 바울의 제자로 자처했던 테우다스에게 비밀 가르침을 전수 받았다는 발렌티누스는, 바 울의 서신들을 문자적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영적인 상징으로 해석했다.

그는 바울이 고린도 전서에서 언급한 지혜(sophia)는 소피아의 미스테리 아(myteria)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2세기 기독교 영지주의 자들이 바울에게 열광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과연 바울과 도마복음은 영지사상을 공유하고 있었던 것일까?

이 글은 이러한 질문에 대해 개연성 있는 답변을 찾아보는데 그 목적 이 있다.6)

 

    6)  이 논문에서 영지주의(Gnosticism)는 2세기 이후에 그레코-로만 세계에서 형성된 일종의 종교적  사유체계를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할 것이다. 영지주의는 고대 지중해 지역에서 형성된 종교적, 철 학적 사조로, 인간의 구원은 신적 지식(영지, Gnosis)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영지주의는  대체로 2세기부터 4세기 사이에 발전했으며, 물질 세계를 악한 것으로 보고, 구원은 신성한 지식 (영지)을 깨닫고 물질적 제약에서 벗어날 때 이루어진다고 강조한다. 속사도 시대에 기독교 영지 주의는 주류교회에 가장 큰 위협이 되었다. 가령, 제2 바울서신이나 목회서신, 그리고 요한서신에 서 이들을 경계하고 있다. 한편 영지사상(Gnostic thought)은 영지주의와 유사한 개념을 가리키지 만, 보다 광범위하게 영지주의와 그와 유사한 사상들, 그리고 영적 지식에 대한 관념을 포괄하는  철학적, 종교적 사고를 의미한다. 이는 기독교 영지주의뿐만 아니라 그리스 철학, 중동의 신비주 의 전통, 이슬람의 수피즘 등에서도 발견되는 사상적 특징이다. 한편 영지(Gnosis)는 그리스어에 서 유래한 단어로, ‘지식’, ‘깨달음’, 또는 ‘직관적 이해’를 의미한다. 영지주의와 영지사상에서 영지 는 단순한 이성적 지식이 아닌, 신적 실재에 대한 직접적인 인식과 깨달음을 가리킨다. 또한 인간 이 신과의 합일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영적 지혜이자, 물질 세계를 넘어선 궁극적인 진리를 인식 하는 경험을 의미하기도 한다. 요약하자면, 영지주의는 특정한 종교적 체계를 의미하고, 영지사상 은 그와 유사한 다른 사상들을 포함한 넓은 개념이며, 영지는 그들에서 다루어지는 핵심적인 지식  혹은 깨달음을 가리킨다. 이 글에서는 ‘영지’를 영지주의나 영지사상과는 무관한 영적 깨달음을 의 미하는 가치 중립적인 단어로 사용한다. 조재형, 『초기 그리스도교와 영지주의』 (서울: 동연,  2020), 43쪽 이하를 참조하라.

 

이를 위해 특별히 바울서신과 도마복음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개략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바울서신은 신약성서에 편입된 문서 중에 서 가장 일찍 기록된 문서들이다. 바울의 친필 편지들은 대략 50년 경에 쓰여졌다.

이 때문에 바울의 편지 속에는 초기 예수전승을 암시하고 반 영하는 구절들이 다수 발견된다.

예를들어 유대교의 정결법을 공박하는 로마서 14장 14절은, 마태복음 23장 25-26절과 누가복음 11장 39-41절 에 등장하는 예수의 로기온과 동일한 내용이다.

또한 바울은 자신이 예 수전승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고린도 전서 11장 23에서 다음과 같이 진 술한다.

 

“내가 여러분에게 전해 준 것은 주님으로부터 전해 받은 것입니 다”(Ἐγὼ γὰρ παρέλαβον ἀπὸ τοῦ κυρίου, ὃ καὶ παρέδωκα ὑμῖν).

 

도마복음 역시 40-50년 사이에 형성된 초기 예수 전승을 다수 포함하고 있다.

특별히 역사적 예수의 것으로 간주할 수 있는 아포리즘 형태의 지혜전승이 다수 발견 된다(도마 31, 32, 35, 45, 48, 54, 68, 86, 93, 94, 101, etc).7)

 

    7)  나그함마디에서 발견된 콥틱어 도마복음은 한 명의 저자에 의해서 단기간에 쓰여진 문헌이 아니 라, 오랜 세월을 거쳐 다양한 편집자들에 의해 형성된 축적물이다. 가장 이른 층위는 (유대) 지혜 문학적 성격이 강한 아포리즘 형태의 로기온이고, 이 위에 점진적으로 영지사상이 가미되었을 것 이다. 학자들의 다양한 견해를 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도마복음의 편집  층위는 크게 구전 형태의 초기 전통(oral tradition), 첫 번째 편집(initial redaction), 후기 편집(later  redaction), 그리고 최종 편집(final redaction)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편집은 예수의 말씀을 기 록한 초기 문서로, 대개 시리아어 또는 헬라어로 작성되었을 것이다. 이 단계에서는 구술 전통에 서 전해졌던 예수의 말씀을 보다 체계적으로 기록하기 위한 편집이 이루어진다. 주로 내면적인 지 혜와 영적 깨달음과 관련된 짧은 비유와 격언 형식이 주로 수집된다. 후기 편집 단계에서는 더욱  구조화된 형식과 교리적인 해석이 추가된다. 즉 예수의 로기온에 대한 해석이 추가되고, 이를 더  신학적으로 정리하고 깊이를 더한다. 그리고 예수의 로기온들이 영지주의적 관점에서 밀접하게  연결되도록 편집된다. 가령, 예수의 말씀에서 비물질적인 세계와 영혼의 구속에 대한 강조가 더욱  뚜렷해진다. 또한 구원을 위한 지식(영지)이 예수의 핵심 교훈으로 등장한다. 최종 편집 단계에서  114개의 말씀으로 구성된 체계적인 목록 형태를 취하게 되며, 각 로기온은 독립적인 교훈으로 존 재하면서도 전체적으로 예수의 가르침으로 한데 묶이게 된다. 이 단계에서는 영지주의적 해석이  더욱 강화된다. 예를 들어, 예수의 내적 지혜를 강조하는 동시에, 그 지혜가 인간 존재와 신과의  합일을 이루기 위한 경로로 제시된다. 도마복음의 형성 과정에 대해서는 다음 책들을 참조하라.  April D. DeConick, Recovering the Original Gospel of Thomas: A History of the Gospel and its Growth (Edinburgh: T&T Clark, 2005); April D. DeConick, Mysticism and the Gospel of Thomas  (Berlin: De Gruyter, 2008); Stephen J. Patterson, Hans-Gebhard Bethge, James M. Robinson, The Fifth Gospel: The Gospel of Thomas Comes of Age (Edinburgh T&T Clark, 2006); Uwe-Karsten  Plisch, Papyrus Oxyrhynchus 654 (Stuttgart: Deutsche Bibelgesellschaft, 2023); Uwe-Karsten  Plisch, Papyrus Oxyrhynchus 655 (Stuttgart: Deutsche Bibelgesellschaft, 2023).  

 

비록 바울과 도마가 초기 예수 전승을 공유한 듯 보이지만, 이들의신학적 관점은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두드러 진다.

예를 들어, 바울은 칭의론을 통해 믿음(pistis)을 강조하지만, 도마는 깨달음(gnosis)을 강조 한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임박한 파루시아를 말하지만, 도마는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또한 바울이 강조하는 하나님의 의(righteness of God)에 관한 언급을 도마에서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차이점들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바울과 도마가 예 수전승을 나름의 관점에서 각각 재해석한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이들의 신학적 강조점과 그 차이를 수반한 역사적, 사회적 정황들은 무엇일까?

이러한 질문에 답변하기에 앞서 먼저 바울과 도마의 차이점들에 대해서 살펴보자.

 

Ⅱ. 장르적 차이

 

바울서신들은 당시 그레코-로만 사회에서 통용되던 일반적인 편지 양식을 차용하고 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양식을 확대하여 수신자 교회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자신의 신학적 주장과 윤리적 권고사항 을 길게 덧붙이고 있다. 이 때문에 바울서신은 무시간적이고 추상적인 신학논문이 아니라, 수신자 교회에 발생한 실제적 문제들에 대응하기 위 해 작성된 상황적 성격이 강한 문헌들이다. 예를 들어 갈라디아서는 유 대주의자들의 거짓복음에 흔들리는 교인들을 다 잡기 위해 쓴, 매우 급 박한 성격이 강한 편지이다. 그러나 2세기에 등장한 영지주의자들, 즉 마르시온이나 발렌티누스는 바울의 편지들 배후에 자리한 수신자 교회들 의 역사, 사회적 삶의 정황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들은 바울의 신학적 주 장과 윤리적 권면들을 영적 알레고리로만 이해하였다. 즉 문자적 해석을 지양하고 그 배후에 있는 영지주의적 의미를 추구하였던 것이다. 가령 166 神學思想 211집 · 2025 겨울 발렌티누스는 고린도 전서 2장 28절에 언급된 유대인과 이방인을 심적 기독교인(psychic Christians)과 영적 기독교인(pneumatic Christians)을 의 미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에 따르면, 영적인 기독교인들만이 바울이 문자 배후에 숨겨놓은 영적 지식(Gnosis)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8) 도마복음 역시 발렌티누스와 유사한 방식으로 예수의 로기온을 이해 해야만 “결코 죽음을 맛보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다(말씀 1). 도마복음 은 독자들에게 문자 배후의 의미를 깨달으라고 이야기한다. 마치 불교의 선문답처럼 문자(손가락)에 얽매이지 말고, 문자가 가리키는 ‘달’(영지)을 깨달으라고 말한다. 이 때문인지 도마복음은 영적인 알레고리로 가득하 다. 예를 들어, 도마복음 말씀 7에는 다음과 같은 예수의 말씀이 등장한 다. “사람에게 먹혀서 사람이 될 사자는 복되다. 그러나 사자에게 먹힐 사람은 저주받았다. 그 사자는 사람이 될 것이다.” 여기서 사자는 야수와 같은 인간의 욕망과 욕정을 뜻하는 알레고리라고 할 수 있다.9) 이처럼 도마의 예수는 알레고리를 동원한 가르침을 선포한다. 또한 도마복음에 소개된 114개의 예수 로기온들은 구체적인 상황설 정이나 문학적 컨텍스트가 없이 발화되고 있다. 외형적으로 문학적 일관 성이나 통일성이 있는 주제가 상실된 채, 다소 무질서하게 기록되어 있 다. 즉 상황적 배경이나 문맥적 고려 없이 파편적으로 나열된 느낌을 받 는다. 또한 예수의 수난 이야기(Passion story)를 중심으로 구성된 정경복 음서와는 달리, 도마복음은 수난과 부활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는다. 즉 정경복음서와 같은 서사적 구조가 일절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도마의 예수는 어떤 기독론적 타이틀이나, 종말론적 담론도 설파하지 않는다. 도마복음의 분위기는 서두에서 밝힌 것처럼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성격을 지니고 있다. 즉 비전(秘傳)의 특징을 지니고 있어서 문자적인 뜻보다는 8)  Elaine Pagels, The Gnostic Paul (Harrisburg: Trinity Press International, 1992), 6.  9)  김용옥, 『도마福音書硏究』 (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83), 59. 사자가 의미에 관한 최근 논의에 대 해서는, Andrew Crislip, “Lion and Human in Gospel of Thomas Logion 7,” JBL 126, no.3 (2007),  595-613을 참조하라. 정승우 | 바울(서신)과 도마(복음)는 영지사상을 공유하였는가? 167 은유적이고, 중의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외부자들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문서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예수의 쌍둥이(Didymos)로 자처한 유다 도마에게 비밀스럽게 전해진 도마복음의 문학적 장르는 무 엇이며10), 도마는 어디서 이러한 장르를 전용한 것일까? 로빈슨(J. M. Robinson)은 도마복음 같은 예수 어록집의 전통은, 잠 언이나 고대 이집트의 아멘에모페(Amenemope)와 같은 장르에 유래했다 고 주장한다.11) 로빈슨은 이러한 장르를 로고이 소폰(logoi sophōn)이라고 부르는데, 현자들의 어록집이라는 뜻이다. 1세기 후반에 형성된 12사도 의 가르침을 기록한 디다케(Didache)나, 파피아스(Papias)의 어록집도 이 러한 유형에 속하는 초기 기독교 문헌들이라 할 수 있다.12) 한편 도마복 음의 문학적 유형을 잠언이나, 전도서와 같은 지혜문학에서 찾으려는 학 자들이 있다. 가령 디코닉(April D. DeConick)은 도마복음의 초기 층위는 유대교의 지혜문학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13) 그러나 초기의 지혜문학적 내용에서 점차 영지주의적인 요소가 가미된다. 예를 들어 도마복음 말씀 2는 “너희가 너희 자신을 알게 될 때는 너희는 알려 질 것이다”라고 말한다. 또한 15에는 “너희가 여자에게서 태어나지 않은 사람을 보거든 땅에 엎드려 그에게 절하여라. 바로 그 사람이 너희 아버 지다”라는 말씀이 등장한다. 이러한 구절들은 문자적으로는 이해하기 힘 든 영적인 알레고리를 담고 있다. 고대 그레코-로만 사회에서는 현인이나 철학자들의 어록을 수집하 는 전통이 있었다. 가령 그노몰로기움(gnomologium) 불리우는 어록집은, 변화의 시대에 과거 현인들의 지혜를 보존하고 전승하려는 목적으로 기 10)  도마의 정체에 관한 논의는, 배철현, “도마복음서에 나타난 영지주의-‘몸’을 통해본 이원론을 중 심으로,” 「인문논총」 54(2005), 133-136을 참조하라.  11)  James M. Robinson, “LOGOI SOPHON: on the Gattung of Q,” Trajectories through Early Chris tianity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71), 71-113.  12)  Marvin Meyer, Secret Gospels (Harrisburg: Trinity Press International, 2003), 20. 13)  April D. DeConick, Recovering the Original Gospel of Thomas: A History of the Gospel and Its Growth (London: T&T Clark: Continuum International Publishing Group, 2005).  168 神學思想 211집 · 2025 겨울 록되었다. 가령, 에피큐러스의 『주요 가르침』이나 디오게네스 라에르티 우스의 『저명한 철학자들의 생애』는 현인이나 철학자들의 기억할 만한 지혜있는 말씀의 양식(format)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너 자신을 알라” 와 같은 간결한 가르침을 아포프테금스(apophthegms)이라고 하는데, 도 마복음 말씀 3은 이와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으로 매우 유사하다. “너희가 너희 자신을 알게 될 때 너희는 알려질 것이다.”14) 그레코-로만 시대에 유통되던 현인들의 어록집은, 단순히 과거의 지 혜를 보존하는 것을 넘어 스승들의 에토스(ethos)를 전달하고 그것을 체 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기록되고 유통되었다. 이런 전통에서 볼 때, 도마 복음은 강력한 영지주의적 에토스를 지닌 추종자들을 형성하고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록된 것으로 볼 수 있다.15) 도올 김용옥은 도마복음의 형성 배후에는 다음과 같은 실존적 삶의 자리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도마복음서의 가라사대 파편들이 이론적 체계나 주제적 연관성에 따 라 조직된 것이라고 생각 되지는 않는다. … 그냥 예수 말씀 파편들 의 아주 자의적인 모음(random collection)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당하 다. 바로 이러한 자의적 성격이야말로 초기집단이 예수 삶의 이야기 의 일관성을 통해서 형성하고자 했던 교리적 예수상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의미있었던 것은 오로 지 예수의 말씀일 뿐이었다. 나의 실존에 의미를 가져다주는 개개 말 씀 파편만이 그들에게는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초기집단의 성격을 파악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서 Q복음서나 도마복음서가 성립 할 수 있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 것이다.16)

 

   14)  송혜경 역주, 『신약 외경, 상권: 복음서』 (의정부: 한님성서연구소, 2011), 307. 앞으로 인용되는 도 마복음서 한글번역은 이 책을 따른다. 

   15)  버튼 맥/김덕순 옮김, 『잃어버린 복음서』 (서울: 한국기독교연구소, 1999), 260. 

   16)  김용옥, 『도올의 도마복음이야기 1』 (서울: 통나무, 2008), 264. 

 

김용옥은 도마복음의 형성 배후에는 소위 체계적인 기독론을 지닌 기독교 그룹들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도마복음의 성립 시기를 마가복음보다 이른 시기로 추정한다.

그러나 도올의 추정과는 달 리 도마는 초기 예수전승을 순수하게 수용하지 않았다.

도마는 예수의 로기온을 영지주의적으로 채색하고 있다.

가령, 도마복음 말씀 6은 마태 복음 6장 1-18절에 나타난 구제와 기도, 그리고 금식에 관한 예수의 말 씀을 영지주의적으로 변주하고 있다.

이 때문에 카젠(T. Kazen)은 도마복 음의 기본적 토대는 1세기 중후반에 형성되었으며, 2세기에 영지주의적 색채가 가미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17)

한편 타이센(G. Theissen)은 도마복음 배후에는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은 2세기 유대 기독교 분파들이 자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도마복음 말씀 12는, 야고보를 의인이라 칭하며 그의 지도력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18)

타이센은 도마복음과 같은 영지주의적 복음 서의 등장을 당시 정치, 사회적 환경과 연결시켜 이해한다.

즉 2세기 기 독교 영지주의의 등장은 로마제국의 기독교 박해가 야기한 정치, 사회적 분위기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19) 도마복음 말씀 68은 박해의 정황을 다음과 같이 암시한다.

 

“여러분이 미움과 박해를 받는다면 행복 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어디에서 박해를 받았든지 그곳을 찾지는 못 할 것입니다.”

 

이 구절은 박해와 순교라는 엄혹한 현실을 초탈하기 위한 방식으로 개인적인 내면화를 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20)

 

     17)  T. Kazen, “Sectrian Gospels for Some Christians? Intention and Mirror Reading in the Light of  Extra-canonical Texts,” NTS 51 (2005), 561-578. 도마복음의 기록연대에 관한 학자들의 논쟁에  대해서는 Nicholas Perrin, “Thomas: The Fifth Gospel?,” Journal of the Evangelical Theological Society 49, no.1 (2006)을 참조하라.            18)  게르트 타이센/박찬웅 · 민경식 옮김, 『기독교의 탄생: 예수 운동에서 종교로』 (서울: 기독교서회,  2009), 464, 469. 

    19)  Ibid, 428-429. 

    20) 2세기 순교에 대한 초기 교부들과 영지주의자들 간의 논쟁에 대해서는 일레인 페이젤/방건웅,  박희순 옮김, 『성서밖의 예수』 (서울: 정신세계사, 1989), 140-166을 참조하라. 

 

가령 가현설(假現設, Docetism)은 가혹한 역사를 영지주의 신화로 해소하기 위한 하나의 방식일 수 있다.21)

다시 말해 도마복음을 형성시킨 기독교 영지주의 분파들은 로마의 박해라는 현실적 고난을 영적인 방식으로 우회할 수 있 는 신학적 합리화의 한 사례로 이해될 수 있다.

페이겔스(E. Pagels)는 타이센과는 다른 방식으로 기독교 영지주의의 등장을 설명한다.

그녀는 기독교 영지주의의 등장의 주된 이유는, 로마 제국의 박해보다는 초대교회의 제도화에 대한 반발 때문으로 이해한다.

즉 영지에 대한 강조는, 주교들과 사제들에게 복종하는 것을 거부하는 신학적 정당화를 제공한다는 것이다.22)

가령 2세기 발렌티누스의 추종자 들은 교회의 어떤 서열구조도 거부하고 모든 참여자들의 평등을 보장하 였다.

가령, 도마복음 말씀 3은 샘에서 솟아 오르는 물을 마신 자는, 즉 영지를 깨달은 자들은 누구나 예수와 동일하게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페이젤스는 도마복음과 같은 문헌의 등장을 기독교 내부의 위계화 과정과 연관되어 있다고 본다.

그러나 한 두개의 특정한 정치, 사회적 요인으로 도마복음의 등장을 설명하기 보다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 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여하튼 도마복음은 원시 기독교 공동체들이 점 차 초기 예수운동의 급진적 에토스를 상실해가며, 로마제국의 가부장적 서열구조를 내면화 하는 것에 대한 반발로 등장한 문헌이라 할 수 있다.

도마복음은 한순간에 특정한 인물에 의해 쓰여진 문서라기 보다는, 다양한 전승과 편집과정을 지닌 문헌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그러나 도마복음의 초기 전승과정은 Q와 유사하게 역사적 예수의 급진적인 가르침들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23)

 

   21)  흥미로운 것은 도마복음은 영지주의의 가현설을 수용하지 않는다. 도마복음 말씀 28은 예수의  수육(incarnation)을 언급하고 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내가 설 곳을 세상으로 하 고, 육신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났습니다.”

   22)  페이젤, 『성서밖의 예수』, 92.

   23)  Risto Uro (ed.), Thomas At the Crossroads (Edinburgh: T & T Clark, 1998), 8-32.  

 

전통적인 지혜문학에 등장하는 관습적 인 지혜(conventional wisdom)를 전복시키는 예수의 급진적 윤리명령들이 도마복음의 초기 전승층을 구성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의 전복적인 지혜 (subversive wisdom)의 말씀들이 전승과정에서 점차 영지주의적 색채가 가미되었다고 볼 수 있다.24)

 

     24)  도마복음 말씀 10에서 예수는 세상에 불을 지르고 있다고 말한다. 이 말은 세상의 고정관념이나  전통적 질서를 전복하겠다는 말이다. 82절에서도 예수는 자신과 가까이 있는 자는 불과 가까이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공관복음서에서 예수는 자신의 가르침들을 대중들에게 공개적으로 선포한다.

때때로 예수의 메시야적 정체성에 관 해 비공개적인 분위기가 연출되지만(막 4:11-12 참조), 적대자들이 이를 빌미 삼아 공격을 할 정도로 예수는 자신의 정체성을 노출한다.

요한복 음의 경우는 한 걸음 더 낳아간다.

요한복음은 서두부터 예수의 신적 정 체성을 공개적으로 선포한다.

요한에 따르면, 예수는 로고스이며, 하나 님과 같은 분이다.

요한복음서도 간혹 종파적인 언어가 등장하지만, 그 정도에 있어서 도마복음과 비할 바가 아니다.

가령, 도마는 서두에서 자 신이 기록한 예수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이것은 살아 계신 예 수님께서 말씀하시고, 디디무스 유다 도마가 기록한 비밀의 말씀들이다. 그리고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이 말씀들의 해석(의미)을 찾은 사람은 죽 음을 맛보지 않을 것이다.”

 

또한 도마복음 말씀 62에서 예수는 다음과 같 이 말한다.

 

“나는 신비에 합〔당한〕 이들에게 〔내〕 신비를 말해 준다.”

 

이 러한 구절로부터 도마복음서가 정경복음서와는 사뭇 다른 비밀스러운 예 수의 가르침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바울의 편지들은 수신자 교회가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고, 수 신자 교회들에서 일어난 상황과 사건들이 비교적 명료하게 드러난다.

바 울은 이러한 상황들을 고려하여 예수사건의 지니는 신학적이며, 윤리적 의미를 교회들에 맞게 변주하고 있다.

다시 말해 바울은 그리스도 사건 의 의미를 수신자 교회들에게 필요한 윤리적 근거로써 재해석한다.

이런 점에서 바울은 서신이라는 장르를 이용하여, 로마제국 대도시들에 산재 해 있던 원기 기독교 공동체(ēkklēsia)를 운용하고 관리한다고 볼 수 있 다.

한편 도마는 당시 그레코-로만 세계의 대중들 사이에서 널리 유통되던 현자들의 어록집이라 할 수 있는 로고이 소폰이라는 장르를 차용하여 예수의 어록들을 수집한다.

도마는 114개의 예수 로기온을 소개한 후, 마 지막에 “프유앙겔리온 프카타 토마스”(gospel according to Thomas)라고 자신의 어록집을 명명한다.

이는 도마가 설화복음서(narrative gospels)의 저자들과 동일한 자의식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정경복음 서와 같은 권위를 자신의 어록집에 부여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도마복음은 예수의 로기온이 지닌 사회/역사적 삶의 정황(socio-histori cal Sitz-Im-Leben)을 탈색시킴으로써 예수의 가르침을 탈역사화 시키고 추상화시킨다.

 

Ⅲ. 신학적 차이

 

바울과 도마 사이에 존재하는 가장 큰 차이점은 예수에 관한 이해라 할 수 있다.25)

 

    25)  도마복음의 기독론(Christology)에 대해서는, Stevan Davies, “The Christology And Protology of  thw Gospel of Thomas,“ JBL 111/4 (1992), 674-679를 참조하라. 

 

바울은 도마와는 달리 예수의 가르침에 대해서 침묵한다.

바울서신에는 예수의 어록이나 하나님 나라의 비유,그리고 종말론적 담 론이 등장하지 않는다.

이에 비해 도마복음에서 예수는 영지와 관련된 비밀스러운 가르침을 소개하고 있다.

공관복음은 하나님 나라를 비유로 가르치는 예수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런데 도마와 상당히 많은 부분이 유사하다.

가령 말씀 8의 지혜로운 어부의 비유, 9의 씨뿌리는 장의 비유 나 20의 겨자씨 비유, 그리고 57의 가라지 비유, 64의 잔치비유, 65의 사악한 농부들의 비유, 76의 진주 상인의 비유 등이 그렇다.

그러나 도마 에는 공관복음서에 소개되는 하나님 나라의 비유들처럼 종말론적 색채가  드러나지 않는다.

도마는 공시적인 하나님 나라를 부정한다.

도마복음 말씀 3은 다음과 같이 외재화된 하나님 나라에 관한 생각들을 비판한다.

 

(하늘) 나라는 하늘에 있다’고 한다면, 하늘의 새들이 너희를 앞지를 것이다. … ‘것(하늘 나라)은 바다에 있다’고 한다면 물고기들이 너희 를 앞지를 것이다. 그러나 (하늘) 나라는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바 깥에 있다.” 이처럼 도마는 하나님 나라를 시공간적으로 실체화하려는 생각을 비 판한다. 도마에게 있어 하나님 나라의 발견은 진정한 자신을 깨닫는 것 과 관련이 있다. 도마복음 말씀 3과 67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너희가 너희 자신을 알게 될 때 너희는 알려질 것이다. 그리고 너희 가 살아 계신 아버지의 자녀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나 너 희 자신을 알지 못한다면 너희는 가난 속에 있으며 너희가 가난 자체 이다 (3) …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도 자기를 모르면 아무 것도 모르 는 사람입니다 (67).

 

도마복음 말씀 22에서도 예수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안과 밖, 위와 아래, 그리고 여성과 남성과 같은 모든 이분법적인 생각들 을 극복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러한 도마의 가르침은 분석심리학자 융 (G. K. Jṻng)의 개성화 과정과 매우 흡사하다.

개성화 과정이란 자아(ego)의 그림자를 극복하고 집단 무의식의 핵심에 잠겨 있는 진정한 자기(Self) 를 찾아가는 여정을 말한다.

도마가 말하는 하나님 나라는 이와 매우 유 사하다고 볼 수 있다.26)

 

    26)  웨인 G. 로린즈/이봉우 옮김, 『융과 성서』 (왜관: 분도출판사, 2002), 61-67을 참조하라.  

 

왜냐하면 도마는 하나님의 나라를, 시공적인 사 태와 무관한 인간내면의 변형된 의식과 관련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바울은 하나님 나라보다는 하나님의 의(the righteousness of God)에 초점을 맞춘다.

또한 바울은 예수 갈릴리 사역이나 예루살렘에서 의 마지막 일주일에 관해서 무관심하다.

정경복음서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기적 이야기나 수난 이야기, 그리고 부활 이야기가 등장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로부터 바울이 예수에 관한 정보를 전 혀 알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왜냐하면 바울은 수신자 교회들과 예수에 관한 기본적인 정보들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 령 바울은 예수에게 한 명 이상의 형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고 전 9:5), 그의 이름이 야고보라고 언급한다(갈 1:19; 2:9; 12:1; 고전 15:7).

또한 바울은 예수가 잡히던 밤에 제자들과 나눈 마지막 식탁교제를 알고 있었다(고전 11:23).27)

 

    27)  바울서신에 나타난 예수 전승에 대해서는 Victor Paul Furnish, Jesus According to Paul (Cam 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3), 19-39. 김세윤, 『예수와 바울』 (서울: 참말, 1993), 319 386을 참조하라.  

 

이처럼 바울은 예수에 관한 교회의 전승들을 알고 있었다(cf. 고전 7:10-11; 9:14; 11:23-25; 고후 12:8-9; 고전 14:37; 데전 4:15-17; 롬 12:14; 14:14; 13:7).

그러나 그는 과거에 고착된 예수 이해를 거부했다.

1세기 그레코-로만세계의 대도시들에서 바울이 만난 청중들은 역사 적 예수가 대면한 갈릴리 민중들과는 사뭇 달랐다.

유대교의 묵시사상적 틀 안에서 형성된 예수의 가르침과 그의 갈릴리 제자들의 증언은 이방인 들에게 분명 낯선 것이었다.

바울은 이방 청중들을 위해 예수의 언행보 다는 십자가와 부활사건이 지니는 보편적인 의미에 대해 천착한다.

바울 은 이방선교에 장애로 작용하는 모세율법과 유대교의 종교적 습속을 과 감히 상대화한다.

그는 자신의 유대적 유산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새 로운 환경에 맞게 재해석을 감행한다.

이 때문에 바울은 고린도 후서 6:16절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도마 또한 바울처럼 육신에 따라 예수를 이해하지 않는다.

그는 2세 기에 동부 시리아와 에데사 지역에 널리 퍼져 있던 영지주의적 전망에서 예수의 로기온들을 윤색한다.28)

 

  28)  도마복음의 저작시기와 장소에 대해서는, 송혜경 역주, 『신약 외경 상권: 복음서』 (한님성서연구 소, 2011), 157-160을 참조하라. 

 

이 때문에 공관복음서에서 자주 등장하 는 ‘다윗의 후손’과 같은 기독론적 타이틀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예 수의 메시야적 죽음을 암시하려는 수난예고도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공 관복음과 같은 예수의 탄생, 갈릴리 활동, 예루살렘에서의 수난, 그리고 부활 이야기와 같은 서사적 전개가 부재한다.

그리고 도마는 공관에 등 장하는 성육신 사상을 거부한다.

도마복음에는 초대 교회의 케리그마 (kerygma)가 나타나지 않는다.

즉 예수는 신앙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도마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주된 이미지는 비밀스러운 지혜를 가르치 는 현자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도마는 줄곧 독자들에게 예수를 ‘살아계 신 분’으로 설정한다(말씀 52, 91).

그리고 종결부분인 111에서 줄곧 숨겨 온 자신의 목소리를 노출시키며,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반문한다.

 

“예 수님께서 ‘자기 자신을 발견한 사람에게 이 세상은 합당하지 않다’고 말 씀하시는 것은 아닐까?”(Does not Jesus say, “Whoever has found oneself, of that person the world is not worthy).

 

도마에게 있어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도, 속죄양도, 종말론적 메시야도, 그리고 로고스도 아니다.

그는 단 지 사람들에게 자신의 내면과 영적 자아를 발견하도록 권면하고(70), 진 정한 안식으로 인도하는 영적 지혜교사로 설정된다(도마 말씀50, 51, 60, 90).

이처럼 도마복음에서, 예수는 말씀을 통해 즉각적으로 다가설 수 있 는 존재이다.

즉 예수는 참된 지혜의 연설자이자, 영지의 안내자로 등장 한다(38).

따라서 도마복음을 읽는 독자들은 공관과 같은 설화복음서에 서 느낄 수 있는 과거형 내러티브가 아니라, 독자들에게 직접 말씀하시 는 예수의 현존성을 느끼게 된다.

말씀 77은 이러한 예수의 편재성과 현 존성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나는 그(것)들 모두 위에 있는 빛이다. 나는 모든 것이다. 모든 것이 바로 내게서 나왔고 또 모든 것이 내게로 왔다. 나무를 쪼개 보아라. 내가 거기 있다. 돌을 들어 보아라. 거기서 나를 찾을 것이다.

 

한편 도마의 예수는 제자들과의 수수께끼와 같은 은밀한 대화를 통 해 자신에 관한 기존의 통념들을 수정하려고 한다.

가령 말씀 13에서 베 드로를 필두로 제자들은 예수의 정체에 대해 나름대로의 답변을 진행한 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누구와 비슷한지 빗대어 말해보아라.”

 

시몬 베드로가 그분께 말하였다.

 

“당신은 의로운 천사 와 비슷합니다.”

 

마태오는 그분께 말하였다.

 

“당신은 현명한 철학자 와 비슷합니다.”

 

토마가 그분께 말하였다.

 

“스승님, 당신이 누구와 비슷한지 제 입으로는 도저히 말 못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 셨다.

 

“나는 너의 스승이 아니다. 내가 직접 (크기를) 잰 샘에서 솟아 오르는 물을 네가 이미 마시고 취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토마) 를 데리고 물러나 세 가지 일을 일러 주셨다.

토마가 동료들에게 돌 아오자 그들이 그에게 물었다.

 

“예수님께서 자네에게 무슨 말씀을 하 셨나?”

 

토마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그분께서 내게 하신 말씀 가운데 하나라도 자네들에게 이야기하면, 자네들이 내게 돌을 집어 던질 것 일세.

그러나 그 돌들에서 불이 나와 자네들을 태워 버릴 것이네.”

 

이 대화는 공관복음서에 모두 등장하는 내용이다(마 16:13-28: 막 8:27-38: 눅 9:18-27).

공관복음은 베드로의 입을 통해 예수의 메시야적 정체성이 폭로된다.

그러나 도마는 공관복음에 나타난 기독론적 색채를 지우고 자신만의 해석을 덧붙이고 있다.

어찌보면 말씀 13은 예수의 말 씀에 관한 도마의 영지주의적 오마주(Gonstic hommage)라 할 수 있다.

이 말씀을 통해 도마는 공관복음의 예수이해를 교정하려고 한다.

즉 베드로의 우월성을 재고하게 하고, 숭배의 대상으로서의 예수 이미지를 해체한 다.

여기서 ‘취한다’는 말은 다른 의식 상태를 경험하는 것이며, ‘솟아 오 르는 샘물’을 마신다는 것은 영적 깨달음에 관한 메타포라고 할 수 있다.

즉 예수는 믿음의 대상으로서의 그리스도가 아니라, 신비한 물을 마시고 영적 깨달음에 도달한 현자(wise man)인 것이다.

이는 요한복음 4장에 등장하는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에서 예수가 언급하는 ‘영생하도록 솟 아나는 샘물’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나그함마디에서 발견된 『제8천과 제9천에 관한 대화』에서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나는 모든 권력을 뛰어넘는 권력의 기원을 발견하였는데, 그것은 시 작이 없는 것이다. 나는 생명으로 끓어 넘치는 물을 본다. 나는 마음 이다. 나는 보았다! 인간의 언어로는 이것을 드러낼 수 없다.29)

 

     29)  Richard Valantasis, The Gospel of Thomas (London: Routlege, 1997), 76. 1

 

도마복음은 깨달음을 얻은 자는 모두 예수와 동등하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예수의 메시야적 우월성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에 반해 공관복 음은 베드로의 입을 통해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발설한다.

또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이야기한 베드로가 다른 제자보다 우월한 것으로 암시된다.

그러나 도마복음은 예수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달 은 자는 베드로와 마태와 같은 제자들이 아니라, 도마라는 사실을 강조 한다. 이를 통해 도마는 베드로를 중심으로 한 사도계열의 위계적 질서 를 상대화 한다.

한편 요한복음서는 의도적으로 ‘예수가 사랑한 제자’를 부각시키기 위해 도마에 관한 부정적 진술들을 보도한다(요 11:16; 14:4; 20:24).

그러나 도마복음 말씀 13은 ‘의심 많은 제자’라는 사도계열의 도 마에 관한 폄훼와 부정적인 평가를 교정한다.

도마는 베드로와 마태의 대답을 능가하는 고백을 한 후, 예수에게 따로 3가지 비밀스러운 일을 전수받는다.

도마복음을 사용했던 나이센파(Nassens)는 이 3 가지 비밀을 세계의 근원과 관련된 지식이라고 이야기 했다.30)

이를 통해 다시 한 번 도마가 예수의 비밀스러운 가르침을 전해 받은 인물이라는 사실을 확 증해 준다.

도마복음은 예수의 정체와 관련하여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요한 과 같은 직계제자들 보다는, 도마나 살로메와 같은 부차적 인물들이 올 바른 이해를 지닌 인물들로 설정된다.31)

 

     30)  F. F. 브루스/진연섭, 『예수와 기독교 기원』 (서울: 컨콜디아사, 1989), 124-125.

     31)  살로메는 예수의 십자가 처형 현장에 마지막 순간까지 있었던 인물이며 (막 15:40), 막달라 마리 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죽은 예수를 위해 향료를 준비한 여성이었다 (막 16:1).  

 

가령 말씀 61에서 살로메가 예수 의 정체를 묻자.

그는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두 사람이 침상 위에서 쉴 것이다. 그런데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은 살 것이다.” 살로메가 말하였다. “당신은 누구시길래 하나이신 분에게서 나오신 이처럼 제 침상에 오르시고 제 식탁에서 드십니까?” 예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나누 임이 없으신 분에게서 나온 이다. 나는 내 아버지의 것들을 받았다.” … “나는 당신의 제자입니다.

 

이 구절의 앞부분에 등장하는 예수의 로기온은 마태복음 24장 40-42절과 누가복음 17장 34-35절과 유사하다.

공관복음서의 병행구 절들은 종말론적 맥락에서 예수의 로기온을 위치시킨다.

그러나 도마복 음 말씀 61은 어떠한 종말론적 뉘앙스도 풍기지 않고, 이 구절을 영지주 의적 분위기로 채색한다.

특별히 여성제자, 살로메를 통해 예수의 근원 적 정체성이 드러낸다.

살로메는 예수를 ‘하나이신 분에게서 나오신 분’ 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예수는 그녀의 말에 동조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 다.

 

“나는 나누임이 없으신 분에게서 나온 이다”(I am the one who exists in equality).

 

여기서 ‘나누임이 없는 분’이라는 의미는 평등한 분이라는 뜻이다.

흥미로운 점은 예수의 이 말씀이 살로메의 식탁교제를 배경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32)

 

    32)  살로메의 식탁교제에 대해서는, Kathleen E. Corley, “Salome and Jesus At Table in the Gospel  of Thomas,” Semeia 86(1999), 85-97을 참조하라. 

 

원시 기독교 공동체들은 인종과 성과 신분의 구분 없이 하나님의 평등한 자녀라는 자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가령 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 28절에서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 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고 선포한 다.

이 때문에 바울은 안디옥에서 이방인에 대한 무조건적 환대의 식탁 공동체를 운영했던 것이다 (갈 2:11-14).

살로메는 예수가 모든 분열과 대 립을 극복한 하나의 근원에서 오신 분으로 이해한다.

도마에 따르면 예 수는 이 세상의 모든 분별과 차별의 향연(symposium)을 하나님의 평등한 식탁교제(table fellowship)로 변화시킨 존재이다.

이러한 깨달음을 통해 살로메는 자신이 예수의 진정한 제자라는 자의식에 도달한다.

그러나 도 마는 공관과는 달리 예수의 유월절 만찬을 언급하지 않는다.

이에 비해 바울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적으로 의례화한 원시 크리스천 그룹 들의 성만찬 제정사를 이어 받는다(고전 11:23-25).

이런 점에서 도마복음은 바울서신과는 차별성을 지닌다.

왜냐하면 도마복음 배후에 어떤 체계적인 교리나 제도적 의례를 갖춘 집단을 상정하는 것은 개연성이 부족해 보이기 때문이다.

 

Ⅳ. 사상적 접점들

 

바울서신에는 초기 예수전승의 흔적이 나타나는데, 이는 도마복음이 수록하고 있는 초기 예수 로기온과 공통점을 지닌다.

나그함마디에서 발 견된 도마복음은 Q와 35%의 내용을 공유한다.

도마복음의 발견은 가설 로만 인정받던 Q의 존재 가능성을 높여주었다.

한편 바울은 자신의 수신 자 교회들과 초기 예수전승을 공유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가령, 고린도 전서 7장 12절은 바울이 이혼에 관한 예수의 말씀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또한 로마서 14장 14절은 도마복음 말씀 14와 정확히 상응하 는 내용이다.

이 구절들은 모두 유대교의 의례적인 음식법 준수를 비판 하고 있다.

이러한 점은 바울과 도마가 예수전승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 을 보여준다.

바울과 도마의 사상적 친근성은 여러 곳에서 확인이 된다.

예를 들어 고린도전서 2장에는 지식(gnosis), 지혜(sophia), 영(pneuma), 하나님의 신비(mysterion tou theou), 그리고 하나님의 깊이(ta batha tou thoeou) 같 은 용어들이 빈번하게 사용된다.

특별히 고린도 전서 2장 7절은 지혜(σοφ ία)의 비밀을 언급한다는 점에서 도마복음과 유사한 생각을 보여준다.

 

우리는 비밀로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합니다. 그것은, 하 나님께서 우리를 영광스럽게 하시려고, 영세 전에 미리 정하신 지혜 입니다(ἀλλὰ λαλοῦμεν θεοῦ σοφίαν ἐν μυστηρίῳ τὴν ἀποκεκρυμμένην, ἣν προώρισεν ὁ θεὸς πρὸ τῶν αἰώνων εἰς δόξαν ἡμῶν.).

 

특히 고린도 전서 2장 9절의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 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라는 구절은 도마복음 말씀 17과 상응한 다:

 

“내가 너희에게, 눈으로 본 적이 없고 귀로 들은 적이 없으며 손으로 만져본 적이 없고 사람의 마음에 떠오른 적도 없는 것을 주겠다.”

 

즉 바 울과 도마 모두 자신들이 비밀스러운 지혜의 전달자라는 자의식을 지니 고 있었다.33)

 

    33)  도마복음 17절과 고린도전서 2장 9절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Andrea Annese, “The Sources of the  Gospel of Thomas: Methodolgical Issues and the Case of Pauline Epistles,” ASE 35/2 (2018),  323-350을 참조하라.

 

한편, 바울은 고린도 후서 5장 4절에서 자신이 깨달은 것 중 하나를 이야기한다. 여기서 그는 육체를 장막에 비유하며, 이 장막을 벗고 새 옷 으로 덧입기를 사모한다고 말한다.

이 구절에서 바울은 육과 영을 대비 시키고 있는데, 이는 도마복음 말씀 29의 다음과 같은 말씀과 부합한다.

 

“만약 육이 영 때문에 생겨나게 되었다면 그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영이 몸 때문에 생겨났다면 그것은 더욱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나는 이 큰 부요함이 어떻게 이와 같은 궁핍 속에 나타났는지 놀라워할 따름이 다.”

 

또한 말씀 112는

“영혼에 의존해 있는 육체가 화가 있도다. 육체에 의존해 있는 영혼에 화가 있도다”

라고 말하며, 육체와 영혼을 대조시킨 다.

이처럼 바울과 도마는 육체와 영혼을 대립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영 지사상을 공유하고 있었다.34)

 

     34)  조재형, 『초기 그리스도교와 영지주의』 (서울: 동연, 2020), 256-264를 참조하라.  

 

바울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 혹은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이야기할 때, 그노시스(gnosis)라는 단어를 사용한다(고후 4:6; 빌 1:9; 3:8).

또한 바 울은 로마서 8장 3절에서 2세기 발렌티우스파의 가현설을 지지하는 것 처럼 보일 수 있는 주장들을 하고 있다.

로마서 8장 3절에는 바울은 예수 가 죄있는 ‘육신의 모양’(ἐν ὁμοιώματι)으로 이 세상에 왔다고 주장한다.

이 러한 바울의 주장은 예수가 육체를 지닌 것처럼 보였을 뿐(δοκέω)이라는 2세기 발렌티누스파에 의해 가현설로 이해될 소지가 충분했다.

한편 바울과 도마는 역사적 예수운동으로부터 기인한 방랑설교가들 의 급진적인 에토스를 공유하고 있다.

가령 도마복음 말씀 36에서 예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리고 저녁부터 아침까지 무엇을 입을까 염려 하지 말라”

고 말씀한다.

또한 55에는 혈연주의에서 초탈할 것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미워하지 않는 자는 내게 합당하 지 아니하느니라.”

이는 마가복음에 등장하는 무소유와 자발적 청빈을 강조하는 예수의 급진적 윤리명령과 매우 유사하다(막 10:28).

가령 타이 센은 이러한 예수의 급진적인 윤리적 에토스의 배후에는 로마제국의 정치/경제적 수탈에 의해 뿌리 뽑힌 팔레스타인 사회가 자리잡고 있다고 주장한다.35)

예를 들어 도마복음 말씀 42에 등장하는 “그냥 지나가라”(Be passersby)는 말씀은 공관복음에서 예수가 제자들에게 요청한 급진적 삶 의 기풍을 반영한다.36)

 

  35)  G. 타이센/김명수 옮김, 『원시그리스도교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 (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1986),  134-171.              36)  “그냥 지나가라”는 도마 42장의 말씀은, 불교의 반야심경의 마지막 주문인,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건너간 자여, 건너간 자여! 피안에 건너간 자여! 피안에 완전히 도달한 자여!)와 유사한  문제의식을 지닌다. 도올 김용옥, 『스무살 반야신경에 미치다』 (서울: 통나무, 2019), 238-239.  

 

또한 이 말씀은 세상사에 연연하지 말고 진정한 내적 자유를 얻으라는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 도마복음에는 이러한 주 제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21; 27; 56; 80; 110). 바울도 이와 유사한 생각 을 고린도 전서 7장 29- 31절에서 보여주고 있다.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제부터는 아내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처럼 하고, 우는 사람은 울지 않는 사람처럼하고, 기쁜 사람은 기쁘지 않은 사람처럼 하고, 무엇을 산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처럼 하고, 세 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처럼 하도록 하십시오. 이 세상의 형체는 사라집니다. 바울은 순례자적 삶을 위해 요청되는 것들을 희랍어의 호스 메(hōs me)용법을 통해서 강조한다. ‘호스 메’라는 말은 영어의 as if... not와 유 사한 것으로, ‘마치 무엇 무엇이 없는 것과 같이’를 뜻한다. 바울이 호스 메적 삶의 양식을 권면하고 있는 것은 세상의 소유적 삶의 양식에서 벗 어나 순례자적 삶의 방식이다.

고린도 후서 11장 23-28절은 예수의 급 진적 에토스를 선교과정에서 실행하며 겪었던 일들을 다음과 같이 격정 으로 토로한다.

 

나는 수고도 더 많이 하고, 감옥살이도 더 많이하고 매도 더 많이 맞 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습니다. 유대 사람들에게서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맞은 것이 다섯 번이요, 채찍으로 맞은것이 세 번이요, 돌로 맞은 것이 한 번이요,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이요, 밤낮 꼬박 하루를 망망한 바다를 떠다녔습니다. 자주 여행하는 동안에는, 강물의 위험 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 사람의 위험과 도시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의 위험을 당하였습니다. 수 고와 고역에 시달리고, 여러 번 밤을 지새우고, 주리고,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추위에 떨고, 헐 벗었습니다.

 

이러한 바울의 고백은 도마복음 말씀 86에 등장하는 예수의 처지와 유사하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 은 머리를 기대고 쉴 곳조차 없다.”

 

이 구절은 마태복음 8장 20절과 누가 복음 9장 58절에 기록된 말씀과 동일한 것이다.

이처럼 도마복음은 방랑 하는 카리스마적 설교자들의 예수전승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는 것은, 도마의 배후에 여전히 급진적인 에토스를 실천하려는 그룹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베드로전서도 이러한 급진적 삶의 양식을 보여준 다.

이 서신의 저자는 자신의 독자들을 ‘흩어진 나그네’(벧전 1:1)라고 규 정한다.

그리고 2장 11절에서 다음과 같이 권면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 욕을 제어하라.”

 

이러한 원시 기독교 공동체들의 나그네적 삶의 기풍을 타이센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원시 그리스도교의 카리스마를 지닌 방랑의 생활기풍은 열 두 사도나 그 외의 사도들에게 국한되어 있지 않았다. 바울과 바나바(사도 14:4, 14), 그리고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로마 16:7) 역시 사도이다. 디다케서(Didache)는 모든 사도들을 언급하고 있는데, 그들은 “복음소의 가르침에 따라” 방랑의 생활을 한다(디다 11:3-4), 열 둘이라는 제한된 칭호(예를 들면 누가 6:13; 계시 21:14)는 예수의 이름으로 선포하 는 방랑하는 사도들을 겨냥하고 있다(참조, 누가 21:8; 계시 2:2). 나아가 카리스마를 지닌 방랑자들은 사도뿐만 아니라 “주의 제자”로도 불 리우고 있다. 파피아스에서 그렇게 불리운다. 이 제자들은 추종자들과 또 다시 방랑하는 그리스도교인들을 갖고 있다.37)

 

     37)  타이센, 『원시그리스도교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 136-137. 

 

이처럼 대안적인 삶의 방식에 관한 급진적 에토스는, 도마복음을 산 출한 영지주의적 기독교인들 뿐만이 아니라, 1-2세를 통해 원시 기독교 공동체들이 사이에서 편만한 분위기였던 것 같다.

사실 원시기독교 공동체들이 봉착한 가장 시급한 문제는 유대교와의 관계설정 문제였다.

바울은 비판적 계승의 입장을 취하였고, 마르시온과 도마를 비롯한 영지주의 그룹들은 부정적 입장이었던 것 같다.

따라서 바울서신과 도마복음에는 유대적 삶의 방식과 유산에 대한 비판적 목소 리들이 공존한다.

예를 들어 도마복음 말씀 39과 102에서는 바리새인들 의 행동을 공박하고, 43은 유대인들의 위선을 비판한다.

그리고 52에서 는 히브리 성서의 예언자들을 ‘죽은자’로 규정하며 유대전통을 부정한다.

더욱이 말씀 53에서, 예수는 유대인들의 육체적 표지인 할례에 대해 다 음과 같은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의 제자들이 그에게 묻더라. “할례는 유익하나이까, 그렇지 않나이 까?” 예수가 그들에게 이르시되, “만약 그것이 유익하다면 그들의 어 미에게서부터 이미 할례되게 그들의 아비가 만들었으리라. 오히려 영혼의 진정한 할례는 모든 점에서 유익하니라.”

 

이처럼 도마의 예수는 할례의 의미를 상대화하고 있다.

그리고 육체 적인 할례보다 영혼의 할례가 더욱 중요하다고 말한다.

할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바울에게서도 발견된다.

바울은 로마서 2장 28-29절에 서 도마와 비슷한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 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 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의 조문에 있지 아 니한 것이라.”

 

이처럼 바울과 도마 모두 당시 유대인들의 종교적인 우월 성의 표지였던 할례를 해체하며 정신화한다.

그렇다면 사도계열 그룹들에 대한 바울과 도마의 입장과 태도는 어 떠했을까?

바울은 야고보와 베드로, 그리고 요한을 중심으로 한 예루살 렘 교회와 다소 소원한 관계였다.

율법과 이방인에 관한 급진적인 태도 때문에 바울은 자신의 주장을 이들에게 변호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었 다(갈 2:1-10; 행 15:1-21 참조).

바울은 고린도 전서 15장에서 부활목격자 명단을 말하고 있는데, 이 구절은 야고보와 베드로, 그리고 요한을 중심 으로 형성된 예루살렘의 예수 공동체의 위계구조를 은연 중에 암시하고 있다.38)

 

  38)  일레인 페이젤/방건웅 · 박희순 옮김, 『성서밖의 예수』 (서울: 정신세계사, 1989), 49.  

 

즉 부활을 목격한 예수의 직계제자들이 예루살렘 교회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것을 보여준다.

바울도 자신이 사도임을 주장하기 위해 부활목격자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마지막에 거론하고 있다.

바울은 안디옥 에서 유대교의 음식법으로 인한 이방인과의 식탁교제에서 모순적인 행동 을 보인 베드로를 공박한 적이 있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2장 12절에서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강요한 할례와 음식법, 안식일 준수와 같 은 유대적 관습에 대해 비판적인 모습을 보였다.

한편 도마복음 12절에서도 야고보를 언급하고 있으며, 13절에서는 베드로가 등장한다.

이들은 예수 사후 예루살렘 교회에서 유대 크리스천 들을 지도하였던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도마는 이들의 권위를 상대적으 로만 인정할 뿐, 참된 영지를 깨달은 자들로는 보지 않는다.

즉 도마는 야고보와 베드로를 영지에 관한 예수의 비전을 알지 못하는 인물들로 격 하시킨다.

이러한 묘사에서 야고보와 베드로를 중심으로 한 사도계열의  권위를 축소시키려는 도마의 의도를 감지할 수 있다.

한편 요한복음서는 예수의 부활을 의심하는 도마의 모습을 부정적으로 기록하고 있는데(요 20:24-29), 이는 도마에 관한 원시 기독교 그룹들의 부정적 인식이 존재 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39)

 

     39)  요한복음에 나타난 부정적 도마 이미지에 대해서는 Gregory J. Riley, Resurrection Reconsidered: T homas and John in Controversy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95), 81-83.   

 

도마복음은 이러한 생각들을 교정하고 있다.

이처럼 도마와 바울은 원시 기독교 그룹들 사이에서 주류세력이 아니었 다.

바울은 시리아 안디옥과 에베소를 거점으로 이방인들이 주축이 되는 새로운 그리스도 운동을 전개해 나갔으며, 도마는 시리아의 에데사를 기 반으로 하여 영지주의적 전망에서 예수의 말씀들을 새롭게 재구성해 나 갔던 것이다.

 

Ⅴ. 결론

 

바울을 반영지주의자로 혹은 친영지주의자로 규정하는 것은 적절하 지 않다.

그는 헬레니즘이 지배하던 시대에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 성장 했으며, 평생을 안디옥, 에베소, 고린도, 로마와 같은 1세기 그레코-로 만 사회의 대도시들에서 활동한 인물이었다.

이러한 다양한 환경 속에서 바울은 그 시대의 다채로운 영적지형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당 시에는 아직 정통이라 할만한 기독교 그룹들이 존재하지 않았고, 영지주 의적 기독교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이전이었다.

바울과 도마는 이러한 종교/문화적 환경을 공유했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

가령 바울과 도마 모 두 1-2세기 그레코-로만 사회에서 편만하였던 플라톤적 인간관, 스토아 적 자기 통제, 묵시사상의 내면화와 같은 유대-헬레니즘 문화가 양산한 종교적 언어의 영향권 속에서 활동했다.

이 때문에 바울서신과 도마복음 에는 다채로운 그레코-로만 세계의 사상적 접점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앞서 살펴본 대로, 신적 계시의 비밀, 지혜교사로서의 예수이해, 급진적 인 윤리적 에토스, 그리고 유대교에 대한 비판적 관점 등과 같은 유사성 이 존재한다.

이러한 유사성은 바울과 도마 모두가 초기 예수 운동들이 구전으로 공유하였던 예수 로기온들을 수용한 것에서 유래한다.

이들은 이러한 요소를 예수 전승의 틀 안에서 재구성했다고 볼 수 있다.

1세기 말, 기독교 공동체들은 로마의 정치적 억압과 신화적으로 포 장된 사회적 위계에 저항하면서 새로운 상징적 우주를 재구성하고자 시 도하였다.

바울과 도마 모두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인간의 구원을 현존하 는 세계와 다른 질서로 상상했으며, 회심과 공동체적 전환, 그리고 내면 적 깨달음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바울과 도마에는 현저한 차이점도 존재한다.

바울은 유대적 유산을 새롭게 변주하며 이방 환경에 적응하려는 1세기 중반 원시 그리 스도 운동의 사례를 보여준다.

그러나 바울은 믿음을 강조함으로써, 자기 안의 신성(하나님 나라)을 축소시켰다.

한편 도마는 자기 안의 신성을 깨달으라고 이야기한다.

비록 바울도 영지를 말하고는 있지만, 도마가 사용하는 의미와는 현저히 다르다.

바울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서 하나님의 義에 이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에 반해 도마는 참된 지 식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말씀 3, 5, 91, 109).

도마에게 있어 예수는 깨달 음의 모델일 뿐,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바울은 도마와는 달리 예 수의 어록보다는 십자가와 부활사건이 지니는 보편적 의미(하나님의 의)에 초점을 맞춘다.

또한 바울은 예수의 십자가 사건이 지니는 속량적 의미 를 강조한다.

그러나 도마에서는 십자가 신학이 발견되지 않는다.

이러 한 도마의 탈역사적 태도는 자칫 십자가 사건이 지니는 역사적 함의를 망실시킬 위험성이 존재한다.

기독교의 신앙의 핵심은 역사의 한복판에 서 고난받고 처형당한 갈릴리 목수의 억울함을 하나님이 신원하셨다는 것을 증언하는 것이다.

또한 도마복음은 자기희생에 관한 실천적 윤리가 부재하다.

이 때문에 도마복음은 정경복음서와 함께 상호보완적인 전망 에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유념해야 할 것은 도마복음을 이단이라는 시대착오적인 관점에서 보 아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도마복음은 이단과 정통이라는 기준이 생기기 이전에 형성된 원시 기독교의 소중한 문헌이다.

도마복음의 존재는 Q와 같은 어록집이 존재했을 개연성을 높여 주었으며, 정경복음서와 같은 설 화복음서 이외에도 다양한 장르의 복음서가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도마복음은 믿음을 강조한 바울식 기독교와는 다른 방식으로 구원 에 이르는 길을 보여준다.

즉 자기 안에 하나님 나라가 현재적으로 구족 (俱足)되어 있다는 사실(영지)을 깨닫는 것이다.

도마의 가르침은 바깥에 서 안으로 들어와 인간 영혼을 이해하려는 자연과학과는 정반대로, 존재 의 심층에 있는 진정한 자기(self)를 발견하고자 했던 인간 정신의 놀라운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도마의 예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던 것이 다.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내놓는다면 너희가 가진 그것이 너희를 구할 것 이다. 너희 안에 그것이 없다면, 너희 안에 없는 그것이 너희를 죽일 것 이다”(말씀 70).

 

이러한 도마의 가르침은 마치 동학의 해월 최시형이 기존의 종교를 향벽설위(向壁設位)로 규정하고, 새로운 신앙은 향아설위(向我 設位), 즉 내 안에 구족되어 있는 신성을 깨닫는 것이라고 말한 것과 유사 하다.

도마복음은 외형적인 종교제도와 교리보다는 자유로운 영성을 추구 하는 현대인들의 종교심에 부합한다.

한편 도마는 제도적 종교와는 달리 (영적)무지와 진정한 자아의 깨달음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선불교와의 접 점을 지닌다.40)

 

    40) 도마복음과 불교 간의 대화를 시도한 책으로는, 구자만, 『하나(one)의 진리, 예수의 가르침』 (서 울: 동연, 2020)을 참조하라. 노장을 비롯한 다종교적 관점에서 도마복음을 풀이한 책으로는, 오강남, 『살아계신 예수의 비밀의 말씀』 (서울: 김영사, 2022)을 추천한다.  

 

그리고 현대의 심층심리학과 도마복음은 매우 잘 어울린 다.

진정한 자아의 발견을 주장한 융이 『진리복음서』에서 자신의 이론적 실례를 발견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처럼 도마복음은 잊혀진 다채로운 기독교의 기원을 보여주는 소중한 역사적인 문헌인 동시에, 새로 운 기독교의 패러다임을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열려진 텍스트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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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초록

이 논문의 목적은 바울(서신)과 도마(복음)이 과연 영지사상을 공유하 였는가를 살피는데 있다.

지난 세기 바울과 영지주의와의 연관성은 바울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논쟁거리 중 하나였다.

2세기 기독교 영지주의자 였던 마르시온과 발렌티누스는 자신들을 바울의 계승자로 자처했다.

최 근 페이절스(E. Pagels)와 안네스(A. Annes)의 연구는 바울서신과 영지주 의의 연관성에 주목하기도 했다.

본 소고는 바울서신과 도마복음이 지닌 장르적, 신학적 차이를 먼저 살펴보고, 영지사상적 접점들을 찾아 볼 것 이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바울과 도마가 지닌 차이점과 공통점들이 당 대의 정치, 사회적 환경, 그리고 다양한 종교적 지형과 무관하지 않았음 을 밝힐 것이다.

그리고 도마복음이 지닌 역사적 가치와 현대적 의미를 생각해 볼 것이다. 

주제어 영지사상, 바울서신, 도마복음, 사상적 접점들, 그노시스

 

Abstract

Did the Letters of Paul and the Gospel of Thomas Share Gnostic ideas? A Criticial Investigation

Sung-Woo Chung( Associate Professor, New Testament Studies MIRAE Campus Yonsei University)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whether the Pauline epistles and the Gospel of Thomas share elements of Gnostic thought. Throughout the past century, the relationship between Paul and Gnosticism has remained a central issue in Pauline studies. Second-century Christian Gnostics such as Marcion and Valentinus claimed to be successors of Paul, and recent studies by scholars like Elaine Pagels and Andrea Annes have revisited the potential connections between Pauline theology and Gnostic ideas. This article first explores the literary and theological differences between the Pauline epistles and the Gospel of Thomas, and then identifies possible points of contact with Gnostic thought. T hrough this analysis, it is argued that the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between Paul and Thomas cannot be separated from the political, social, and religious contexts of their time. Finally, the study reflects on the historical significance and contemporary relevance of the Gospel of Thomas.

Key Word :   Gnostic thought, Pauline epistles, Gospel of Thomas, Ideological intersections, Gnosis

 

 

 논문접수일: 2025년 8월 5일 논문수정일: 2025년 9월 17일 논문게재확정일: 2025년 12월 20일 

神學思想 211집 · 2025 겨울

바울(서신)과 도마(복음)는 영지사상을 공유하였는가_ (1).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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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논문 DOI: 10.35858/sinhak.2025..21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