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는 말
‘극우 개신교’라는 말이 학계와 언론을 비롯하여 대한민국 여기저기 서 다루어진 것이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니지만, 지난 12.3 내란 이후 이 말은 그 어떤 때보다 뜨거운 말이 되었다.
대다수 개신교인에게는 모욕 적이고 낯 뜨거운 말이고 ― 왜냐하면, 개신교인들 다수는 극우와 거리 가 멀기 때문에 ―, 상당히 많은 사람에게는 개신교 전체의 이미지를 떠 올릴 때면 조롱거리로 사용하기 좋은 핫한 아이템이다 ― 그래서, 대다수 개신교인의 낯이 더 뜨거워질 수밖에 없다.
이 타오르는 뜨거움의 근 원에는 개신교와 극우 사이의 끈끈한 관계가 오늘날 개신교의 정체성 자 체를 설명하는 그러한 관계라는 전제적인 이해가 있다. 물론, 개신교인 전체가 극우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극우 파시즘의 계보가 기독 교의 역사 자체에 내장되어 있다는 논지를 펼치는 신학 내부의 주장이 이미 있다.1)
이 주장에 따르면, 종교적 파시즘은 극우 친화적이며 극우를 숙주로 해서 기독교의 역사를 따라 성장해 왔다.
그렇다면, 정말 극우인 파시스트, 또는 파시스트인 극우가 문제인 가?
이 질문에는 추가로 해결해야 할 의문들이 따라온다.
첫째, 극우와 파시즘의 정의 문제다.
둘째, 얼마나 많은 한국 개신교인이 극우이거나 파시스트이며, 이들의 특성은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극우와 파시즘의 연관 특성은 무엇이며, 이 연관성을 밝히는 일이 드러내는 의미와 대안 은 무엇인가?
이 연구는 이러한 의문에 답하고자 설문에 대한 통계분석, 그리고 이 분석에서 얻어지는 의미에 대한 신학적 성찰을 시도한다.
이 시도를 위해 세 개의 부연을 덧붙일 수 있다.
첫째, 이 연구는 ‘극 우 개신교’라는 말이 개신교 전체를 손쉽게 판단하는 말로 남용되는 사태 를 경계하지만, 이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한국 개신교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비판적 성찰2)은 꼭 필요하다는 의식에서 출발한다.3)
1) 박종균, “극우 파시즘의 유령이 한국 개신교회를 배회하고 있다,” 「기독교사회윤리」 62 (2025), 83 118 참조.
2) 20세기 중반 나치즘과 파시즘을 겪은 후 서구의 교회들은 이들 전체주의의 파괴적 도전 앞에서 교 회의 사회적 책임을 통감하여 “책임사회”라는 개념을 발전시킨 바 있다(한강희, “세계교회협의회의 ‘책임사회’ 개념화에 있어서 평신도의 재발견: 제2차 세계교회협의회 에반스턴 총회(1954년)에서 논의 된 평신도 담론의 에큐메니칼 선교신학적 이해,” 「신학사상」 177 (2017), 237-273 참조). 이들 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논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독일 교계 지도자들이 나치 범 죄에 책임을 다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나치에 동참했음을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늦었지 만 탈나치화 운동을 전개한 사실이 있다(김기련, “히틀러의 유대인 정책과 고백교회의 투쟁,” 「신학 사상」 169 (2015), 165-166 참조). 한국 개신교의 스스로에 대한 비판적 성찰은 새로운 전진을 위해 필수적이다.
3) 정용택은 한국 개신교의 여러 교단과 일군의 신학자들이 개신교와 극우를 분리해서 사유하고자 하는 노력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이러한 노력이 상당 부분 타당하지만, “극우 개신교를 ‘일부’나 ‘예 외’로 환원하려는 시도”(정용택, “한국 극우 개신교의 절멸주의적 혐오 정치에 대한 기독교사회윤리적 비판,” 「신학과 사회」 39/2 (2025), 281.)는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경계의 목소리가 일리 있는 것이라는 사실은 대중적인 차원에서 이분법적으로 소비되는 기사를 통해 확인된다. 예를 들어, “기독교가 극우 온상? 조사해 보니 ‘오해’였네”라는 제목의 국민일보 기사는 개신교와 극우의 단절을 자극적으로 강조함으로써 이 기사에 원자료를 제공한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의 “2025년 주요 사회 현안에 대한 개신교인 인식조사” 내용을 심각하게 왜곡한다.원자료에서는 극 우 개신교의 정치적 준동 원인을 다각도에서 통계적으로 분석함으로써 한국 개신교의 구조적 문 제를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개신교와 극우를 이분법적으로 선긋기하는 기사는 한국 개신교 를 건설적으로 성찰하여 더 나은 방향으로 성숙해 나갈 수 있는 길을 차단하고, 비판적인 대중들 의 시선을 설문 결과가 엉터리인지 아닌지 하는 엉뚱한 문제로 돌려서 공론장 형성의 계기마저 훼 손한다: 박용미, “기독교가 극우 온상? 조사해 보니 ‘오해’였네,” https://v.daum.net/v/2025091114 1649724, [2025.11.27.] 참조.
하여, 이 연구는 한국 개신교 내부에 형성되어 있는 특정 정치적·정서적 조건을 실증 적으로 드러내고, 이 두 조건의 결합이 공동선과 민주주의의 가치에 어 떤 균열을 내는지 성찰한다.
둘째, 오늘의 극우는 대놓고 독재를 추구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민 주주의의 외형은 유지한 채 권위주의적 해결책을 욕망하는 문화-정동의 양식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극우’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후기 자본주의 체 제 속에서 파시즘이 어떻게 대중적 감각, 시장 숭배, 혐오 정동, 감시 기 술의 승인과 결합하는지를 함께 볼 필요가 있다.
이 연구는 이 점을 고려 해서 한국 개신교 내 극우와 파시즘의 관계를 실증적으로 밝힌다.
셋째, 개신교의 극우 문제는 단지 정치 성향의 문제만이 아니라, “신 의 이름으로 권위주의, 시장 절대주의, 혐오와 배제를 정당화할 위험”과 관련된 신학적 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연구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또 하나의 지점은 한국 개신교가 신정정치적 상상력을 강화하는 양상이 다.
종교적 파시즘의 가능성은 바로 여기에서 발생한다.
Ⅱ. 통계조사4)의 준비: 개념적 정의에서 조작적 정의로
4) 본 연구는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하여 수행한 “2025년 주요 사회 현안에 대한 개신교인 인식조사”(이하, ‘인식조사’)의 설문 결과와 기초통계(한국리서치, 「2025년 주 요 사회 현안에 대한 개신교인 인식조사 교차분석표」, 2025년 8월) 및 본 연구에 필요한 통계분석을 ㈜한국리서치에 별도 의뢰하여 얻은 통계분석 자료를 사용한다. 설문조사는 2025년 8월 14일부 터 22일까지(8일간) 컴퓨터를 이용한 웹조사(CAWI, Computer Assisted Web Interview) 방법으로 진행되었고, 전국 개신교인 2,376명을 대상으로 하였다. 개신교인 표본을 추출하여 할당하기 위 해서는 다음의 방법을 사용하였다. 한국리서치의 마스터 샘플 패널(Master Sample Pannel) 내 1만 명을 설문하여 그중에서 개신교인이라고 응답한 2,365명을 표본으로 삼고, 2025년 7월 행정안전 부 주민등록 통계 기준으로 지역별, 성별, 연령별 기준 비례 할당으로 무작위 추출하여 가중치를 둠으로써 2,376명이라는 최종 표본을 얻었다표본의 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1.0%p(개신교인 대상 결과값에 대해서는 ±2.0%p)다.
한국 개신교인을 대상으로 ‘극우’와 ‘파시즘’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이 들 각각의 개념적 정의로부터 조작적 정의를 끌어낼 필요가 있다.
‘조작 적 정의’란 통계적 연구를 위해 어떤 개념을 어떻게 측정하고 관찰할지를 구체적으로 풀어 쓴 정의를 말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추상적인 개념을 관 찰이 가능한 변수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 과정이 쉽지는 않다.
우선, ‘극우’와 ‘파시즘’의 개념적 정의가 이론에 따라 다양하게 존재하기에 이 중 어떤 개념적 정의를 선택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그 후, 선택된 개념의 특성을 바탕으로 그 개념을 자료화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측정할 지를 정하는 조작적 정의를 내려야 한다. 따라서, 조작적 정의를 통해 만들어지는 자료들은 보편적 자료가 아 니다.
어떤 이론에 귀속된 개념적 정의가 선택되고, 이를 바탕으로 조작 적 정의가 만들어져서 설문 문항이 설계되는 것이기에, 여기에서 얻어지 는 자료는 특정 이론에 따른 자료일 수밖에 없다.
이 외에도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하는 통계분석의 시간적 한계가 있다.
설문은 마치 사진을 찍 는 것과 같아서 특정한 기간의 순간을 포착한다.
분석은 이러한 한계 내 에서 제한적인 정보를 주는 것이므로, 이 통계분석을 사용하는 경우 이 에 대한 고려가 충분히 반영되어야 한다.
이 연구도 마찬가지로, 2025년 8월 14일~22일 기간 한국 개신교인의 특정 양상을 중심으로 한다.
또 한, 통계조사연구는 양적 조사이기에 양적 조사가 갖는 일반적인 한계가 있기도 하다.
이 연구에서는 ‘극우’를 ‘파시즘’의 양상을 살피기 위한 독립변인5)으 로 설정했다.
5) 통계분석에서는 변수를 일반적으로 ‘독립변인’과 ‘종속변인’으로 구분한다. ‘독립변인’이란 다른 것 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가정하는 원인 변수를 말한다. 반대로, ‘종속변인’이란 독립변인의 변화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가정하는 결과 변수를 말한다.
‘극우’는 ‘극단주의’(extremism)와 ‘우파’(right-wing)의 두 개 념이 결합한 말이다.
따라서, 이 두 개념의 여부에 따라 4개 그룹으로 나 눌 수 있다.
‘극단주의+우파’(극우), ‘극단주의+비우파’, ‘비극단주의+우 파’, ‘비극단주의+비우파’.
이 4개의 그룹에 따라 ‘파시즘’의 정도, 특성 등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살피려는 것이다.
1. 독립변인: ‘극우’의 조작적 정의
이 연구에 사용된 ‘극우’의 조작적 정의는 최영준 연구팀의 연구보고 서 “수면 위로 떠오른 극우: 한국 사회 극우의 현주소”(2025.05)에서 가져 온 것이다.
‘극우’에 대한 최영준의 조작적 정의를 사용하는 이유는 이들 의 설문 결과와 이 연구에서 사용하고 있는 인식조사의 설문 결과를 직 접 비교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이다.
최영준 연구팀은 2025년 5월 한국 인을 대상으로 설문을 시행하였고, 이 인식조사는 2025년 8월 한국의 개 신교인만을 대상으로 설문을 시행하였다.
이 둘의 결과를 비교함으로써 한국 개신교인의 ‘극우’를 비교 판단할 수 있다.6)
6) 이 연구의 주제는 개신교 내 극우와 파시즘을 통계분석하는 것이므로, 이 연구에서는 최영준 연구 팀의 결과와 직접 비교 분석하는 연구는 하지 않기로 한다.
최영준은 ‘극우’의 개념과 속성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체제의 기득권층에 대한 불신을 기반으로, 권위적 리더십과 급진적 인 수단을 통해 기존 질서를 재편하려는 정치적 정서를 의미하며, 이 들은 기득권에 대한 반감을 가지면서도 외국인과 같은 외부 집단에 대해 배타적이다.
또한, 불평등이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지고 자연스 럽다고 여기며, 약육강식 사고에 익숙하다.
동시에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가치도 중시한다. 한국의 맥락에서는 반공주의도 중요한 속성 이 된다.7)
이러한 개념적 정의를 측정할 수 있는 형식으로 재정의하기 위해, 그 는 ‘극우’를 ‘극’(far, extreme, populism)과 ‘우’(right, conservative)로 나누어 각각의 속성들을 분류하고 지표화할 수 있는 문항으로 표현하였다.
‘극’의 속성으로는 권위주의, 급진주의, 반엘리트주의(포퓰리즘)의 3가지 항목을, ‘우’의 속성으로는 토착주의, 보수주의, 반공주의, 사회다윈주의 의 4가지 항목을 뽑아서 문항으로 만들었다.
‘극우’를 ‘극’과 ‘우’로 분류해서 지표화하는 방식은 ‘극’과 ‘우’를 개별 적으로 측정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세밀하고 폭넓은 분석을 가능케 한다.
‘극’과 ‘우’ 모두 높으면 ‘극우’, ‘극’은 높지만 ‘우’는 낮으면 ‘극’, ‘우’ 는 높지만 ‘극’은 낮으면 ‘우’, ‘극’과 ‘우’ 모두 낮으면 ‘그 외’로 나눌 수 있 다.
그 결과 ‘극우’는 442명으로 21.3%, ‘극’은 473명으로 22.7%, ‘우’는 328명으로 15.8%, ‘그 외’는 835명으로 40.2%를 각각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8)
7) 최영준, “수면 위로 떠오른 극우: 한국 사회 극우의 현주소,” 「한국리서치 주간리포트: 여론 속의 여론」 331-1 (2025), 5.
8) 이 비율은 ‘파시즘’과의 관련성을 통계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파시즘’ 문항 중에서 하나라도 “모름” 으로 응답한 표본을 결측값으로 제외한 후 성별, 연령별, 지역별 가중치(2025년 07월 말 행정안전 부 발표 주민등록 인구 기준)를 적용해서 나온 비율이다.
이 네 그룹의 ‘파시즘’ 성향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상대적으 로 살피면 극우 개신교의 특성을 세밀하게 분석할 수 있다.
2. 종속변인: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의 조작적 정의
대개 파시즘은 권위주의적 국수주의(ultranationalism) 이데올로기를 뜻한다.
이 이데올로기는 고전적 파시즘과 네오파시즘으로 구분되곤 한다.
이 둘을 구분하는 기준은 권위주의 체제를 노골적으로 추구하는가에 있다.
고전적 파시즘은 독재를 명시적으로 추구하는 반면, 네오파시즘은 대개 민주주의의 외적 형식은 유지하면서도 “권위주의적 정신과 차별 기 제를 이어받”9)고자 한다.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은 네오파시즘의 이러한 성격을 공유하지만, 동시에 네오파시즘이 드러내지 못하는 자본주의 체 제의 변화 국면을 잘 드러내 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파시즘 개념이 다.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 이론이 주목하는 것은 신자유주의 체제 이후 의 변화 국면으로, 이 체제에 잘 적응한 서구사회에서 정치에서 일상으 로 스며든 파시즘을 고찰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의 파시즘 개념은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 성공적인(?) 자본주의 사회를 이룩한 한국 사회에도 충분히 적용할 만하다. 사실,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은 미켈 볼트 라스무센(Mikkel Bolt Ras mussen)이 오늘날 발흥하고 있는 파시즘을 칭한 말이다.
그는 이 파시즘 이 20세기 초에 유럽을 중심으로 득세했던 파시즘과 어떤 점에서 연속적 이고, 어떤 점에서 불연속적인지를 논한 바가 있다.10)
파시즘은 서구 근대국가의 형성 과정에서 산업자본주의가 무르익었 던, 그러나 동시에 광범위한 불황을 거듭했던 시기, 자본주의의 위기 속 에서 자본주의에 저항하던 세력에 저항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로 처음 탄 생했다고 할 수 있다.
이때만 해도 강력한 정부에 의한 국가 폭력과 권위 주의가, 즉 독재가 열광적인 대중의 환호를 받을 수 있었다.
이 국가는 본질적인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외부의 적을 설정하여 사회 통합을 꾀했다.
나치즘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은 자본주의의 위기 상황에서 권위주의적 해 결책을 모색하려 한다는11) 점에서 고전적 파시즘과 맥을 같이 한다.
9) 박성철, 『종교 중독과 기독교 파시즘: 기독교 근본주의에 대한 정치신학적 비판』 (서울: 새물결플러 스, 2021), 144.
10) 미켈 볼트 라스무센/김시원 옮김,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 (파주: 한울아카데미, 2024).
11) Ibid., 26.
따라서,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 역시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에 저항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이다. 이 파시즘은 고전적 파시즘처럼 본질적 민족주의에 호 소하지는 않지만, 외부의 적을 설정하여 사회 통합을 꾀한다는 점에서 고전적 파시즘의 연속선상에 있다. 하지만, 자본의 중심이 금융으로 넘어가고, 작은 정부가 미덕이 되는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 파시즘은 새롭게 전개된다. 개발된 국가들에 편 만한 저성장의 늪은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도 자본주의는 위기에 처해 있음을 계속해서 상기시킨다. 충분히 개발된 국가들의 저성장과 상관없 이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 세계 경제는 성장해 왔다. 하지만, “경제가 확 장되는 한, 좌파와 우파 정당은 번갈아 가며 국가 경제를 조정하고 자본 의 지배를 완화하거나 가속화했다.”12)
좌든 우든 경제 성장에 몰두하는 정당 정치는 “정치의 동공화”를 가져왔고, 정치는 “사업을 위한 기술 관 료의 통치”가 되고 말았다.13)
금융위기와 정치위기가 중첩되어 나타나 고, 노동계급의 혁명성이 개인의 자유로 대체되면서, 파시즘은 이제 단 지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것이 되었다. “대중은 파시즘을 원한 다.”14)
혁명의 가능성은 멀어지고 문화에 광범위하게 스며든 파시즘은 민주주의 사회에 뿌리내리면서 민주주의를 동공화한다.15)
12) Ibid., 61.
13) Ibid., 57-59.
14) Ibid., 105.
15) 이는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이 네오파시즘과 연속성이 있다는 점을 확인시킨다.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은 독재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형식적 틀 내에서 권위주의를 추구 한다는 점, 국가를 산업의 직접적 관리자가 아니라 간접적 관리자로 여 긴다는 점, 제국주의가 아닌 문화적 동질성을 강조하는 배타적 문화 민 족주의를 전개한다는 점 등에서 고전적 파시즘과 결을 달리한다.
덧붙여,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은 대중 동원을 통해서 권력을 강화하기보다는 현 대 기술력에 힘입은 감시와 통제를 통해 권력을 강화한다는 점에서도 고 전적 파시즘과 차별화된다.
이 모든 성격을 한 마디로 종합하자면, ‘후기자본주의 파시즘’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위기관리 메커니즘이다.
라스무센의 논의를 참고하여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 성향을 측정하기 위한 조작적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릴 수 있다.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은 민주주의의 내용을 공허화하고 형식적 민주주의 안에서 권위주의를 추구 하며, 신자유주의의 핵심인 시장 절대주의를 중심으로 자본주의를 숭배 하고, 문화적 배제와 혐오 정동을 통해 사회적 통합을 꾀하며, 현대 기술 을 기반으로 하는 감시와 통제, 알고리즘 권력을 수용한다.
이 연구에서는 라스무센의 정의에 기초한 조작적 정의에 덧붙여 종교적인 측면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
연구 대상이 개신교인, 특히 극우 개 신교인이기 때문이다.
사실, 파시즘이 종교와 결합할 경우, 종교를 정치 적으로 동원하며 권위주의를 신의 이름으로 정당화할 수 있다.16)
16)나치즘에서 경험했다시피, 파시즘 자체가 이미 정치적 종교라고 불릴 만큼 유사 종교의 특성을 갖는다는 점에서(박성철, 『종교 중독과 기독교 파시즘』, 146-148 참조), 또한, 후기 자본주의 파시 즘에서는 권력이 독재보다는 문화 민족주의의 형태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 은 언제든 종교적 민족주의와 결합할 수 있다.
이 점은 한국 상황에서 반드시 고려할 필요가 있는데, 12.3 내란 사태 이후 촉발 된 극우 개신교의 정치 세력화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 이 연구가 바로 이 러한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필수적인 분석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라스무센의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 개념에 기초한 조작적 정의에 다음과 같은 종교적 측면의 정의를 추가할 필요가 있다:
“종교적 파시즘은 종교가 정치에 개입하는 문제를 긍정하며, 이른바 신정정치적 요소를 국가주의 내지 민족주의와 결합시키고자 한다.”
이상과 같은 조작적 정의를 바탕으로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의 성격 을 6개 영역으로 나누고, 영역마다 2개의 설문 문항을 만들어 후기 자본 주의 파시즘 성향을 측정할 지표를 설계할 수 있다.
6개의 영역이란 ‘형 식적 민주주의 안의 권위주의’, ‘민주주의의 내용적 공허화’, ‘문화적 배제 와 혐오 정동’, ‘감시, 통제, 알고리즘 권력 수용’, ‘종교적 민족주의 및 정 치 동원’, ‘자본 숭배와 시장 절대주의’를 말한다.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 성향을 측정하기 위한 12개의 문항은 리커트 5점 척도를 적용해서 ‘전혀 그렇지 않다’에서 ‘매우 그렇다’에 이르기까지 1점에서 5점의 점수를 부여했다.17)
17) 설문의 선택지에는 ‘모름’도 포함했다. 12개 문항 중 한 문항에라도 ‘모름’에 체크한 경우의 표본 은 결측값으로 제외했다. 그 결과로 분석에 사용되는 표본의 수는 N=2,072명이다.
영역당 2개의 문항이 할당되어 있으 므로 각 영역의 점수는 2점에서 10점까지 분포할 수 있다.
총점은 12점 에서 60점까지 가능하다 각 문항의 점수가 4점 이상이면 그 문항에 해당 하는 파시즘 성향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을 고려해서 총점 구간을 5 개로 나누어 파시즘 성향을 진단하고 해석할 수 있도록 구간별 평가 기 준을 ‘표1’과 같이 마련하였다.
12~20점 구간은 ‘매우 낮음’, 21~30점 구 간은 ‘낮음’, 31~40점 구간은 ‘보통(잠재적 위험)’, 41~50점 구간은 ‘높음’, 51~60점 구간은 ‘매우 높음’으로 진단한다.
표1. 총점 기반 진단과 해석
총점 범위 진단 결과 해석
51~60점 매우 높음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 6영역 모두에서 적극적 동조. 반 대자 배제, 강력 통제, 종교적 정치 동원까지 정당화. 41~50점 높음 권위주의, 시장 절대주의, 문화적 배제 및 종교적 민족 주의가 분명. 민주 절차에 대한 피로·냉소가 강함.
31~40점 보통 ‘조건부 권위주의’와 ‘경제 성장 우선’ 정서를 공유. 문화 적 배제·감시 기술 등에 대해서도 상황에 따라 찬성.
(잠재적 위험)
21~30점 낮음 대체로 민주적 규범을 지지하지만, 특정 상황(안보·경 제)을 이유로 제한을 용인할 여지가 있음
12~20점 매우 낮음 권위주의, 시장 절대주의, 배제 정동 모두에서 거부 감이 뚜렷함. 민주주의 규범과 다원주의 가치 수용.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 성향 진단에 있어서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보통’이 중립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보통’에 해당하는 31~40 점 사이의 총점 구간에서는 6개 영역 중 최소 1개에서 최대 4개 영역이 ‘보통’ 이상의 값을 가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구간은 중간이나 중립 이 아니라 적어도 한 개 영역 이상에서 파시즘 성향을 나타낼 수 있는 잠 재적 위험 구간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12~20점 구간을 제외하고 나머 지 구간은 경우에 따라 1개 이상의 영역에서 파시즘 성향이 나타날 수 있 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각 총점 구간에 대한 해석을 ‘표1’과 같이 부여 하였다.
Ⅲ. 통계적 분석: 한국 개신교인의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
조작적 정의를 통해 설계한 ‘극우’ 측정 문항을 독립변인, ‘후기 자본 주의 파시즘’ 측정 문항을 종속변인으로 해서 통계분석을 시행한 결과를 차례대로 기술하고자 한다.
이 결과들을 종합하면 한국 개신교의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 지형도를 묘사할 수 있다.
표2. 그룹별 총점 (60점 만점, N=2,078명)
전체 극우 극 우 그 외
총점 평균 35.8점 39.7점 35.5점 36.6점 33.5점
우선,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 점수를 평가한다.
한국 개신교인 전체 가 30점대로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 성향이 ‘보통(잠재적 위험)’에 속한다.
그중에서도 ‘극우’의 총점은 39.7점으로 여타 그룹에 비해 가장 높게 나 타났다.
다음으로 높은 그룹은 ‘우’로 36.6점, 그다음은 ‘극’으로 35.5점, 가장 낮은 그룹은 33.5점의 ‘그 외’ 그룹이었다(표2 참조).
모든 그룹이 ‘보 통(잠재적 위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한국 개신교인은 평균적으로 잠 재적 위험 수준의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 성향이다.
다만, 그 와중에도 ‘극우’의 점수는 유의미하게 높게 나타났다.
그룹별로 총점의 구간 분포를 보면, 한국 개신교인은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 강도가 높은 편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표3’에서 보듯, 한 국 개신교인 전체의 26.2%(높음 22.7%, 매우 높음 3.5%)가 높은 파시즘 성 향을 보이며, 49.7%는 잠재적 위험이 있고, 24.1%(낮음 20.7%, 매우 낮음 3.4%)만이 낮은 파시즘 성향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극우’는 더욱 심 한데, 단 9.4%(낮음 8.1%, 매우 낮음 1.3%)만이 낮은 파시즘 성향이며, 47.2%는 잠재적 위험, 43.3%(높음 34.3%, 매우 높음 9.0%)는 높은 파시즘 성향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개신교인의 75.9%, 극우 개신교인 의 90.6%가 잠재적 위험 이상의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 성향이다.
표3. 그룹별 총점의 구간 분포 (N=2,078명) : 생략(첨부논문파일참조)
기반 분석을 통해 한국 개신교인의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 성향 에 관한 대략적인 윤곽을 잡았다면,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의 6개 영역을 차례로 검토함으로써 더욱 세밀한 이해를 할 수 있다.
영역별 점수는 최소 2점에서 최대 10점 사이에 형성된다.
따라서, 중 간값은 6점이며, 6점보다 높으면 해당 영역의 점수는 ‘보통(잠재적 위험)’ 보다 높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한국 개신교인 전체는 6개 영역 중 2개 영역에서 총점 평균이 6점 이상으로 특히 높은 파시즘 성향 을 보인다 ― ‘자본 숭배와 시장 절대주의’ 영역(평균 7.5점)과 ‘문화적 배 제와 혐오 정동’ 영역(평균 6.6점).
특히, ‘극우’와 ‘우’가 이 두 영역의 높은 평균을 주도한다.
‘극우’의 경우, ‘자본 숭배와 시장 절대주의’ 영역의 평균 점수는 7.9 점, ‘문화적 배제와 혐오 정동’ 영역의 평균 점수는 7.4점으로 이 두 영역 에서의 파시즘 강도가 크다.
특히, ‘극우’의 평균 점수는 6개 영역 모두에 서 개신교인 전체의 평균 점수보다 훨씬 높다(표4 참조).
따라서, ‘극우’야 말로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의 특성을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낸다는 사실 을 확인할 수 있다.
표4. 각 그룹의 영역별 평균 점수 (10점 만점) : 생략(첨부논문파일참조)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의 6개 영역별로 각 그룹의 평균 점수가 다르 게 나타나는데, 이 차이가 정말로 유의미한 차이인지 아닌지를 일원 배 치 분산분석(ANOVA)과 사후검정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위 ‘표4’의 ‘문화적 배제와 혐오 정동’ 영역에서 ‘극우’는 7.5점, ‘극’은 6.3점, ‘우’는 7.2점, ‘그 외’는 6.0점으로 확인되는데, 이 평균 점수들 사이의 차 이가 정말로 유의미한 차이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다.
ANOVA의 사후검정 결과를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극 우’의 파시즘 강도가 가장 높게 나타나는 영역: ‘민주주의의 내용적 공허 화’의 1개 영역.
② ‘극우+우’(개신교 내 우파 일반18))의 파시즘 강도가 가장 높게 나타나는 영역: ‘문화적 배제와 혐오 정동’, ‘종교적 민족주의 및 정 치 동원’, ‘자본 숭배와 시장 절대주의’의 3개 영역.
18) ‘극우’가 극단주의와 우파의 교집합이라면, ‘우’는 비극단주의와 우파의 교집합으로, 이 두 그룹을 합하면 극단주의 여부와 상관없는 한국 개신교인 내 우파 일반이 된다. 마찬가지로, ‘극우’와 ‘극’ 을 합하면 우파 여부와 상관없는 한국 개신교인 내 극단주의자 일반이 된다.
③ ‘극우+극’(개신교 내 극단주의자 일반)의 파시즘 강도가 가장 높게 나타나는 영역: ‘형식적 민 주주의 안의 권위주의’와 ‘감시, 통제, 알고리즘 권력 수용’의 2개 영역.
이제부터는 ‘극우’만 따로 떼어서 더 정밀하게 살펴보도록 하겠다.
‘극우’를 연령별로 나누어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 성향을 살펴보면, 극우 개신교의 특성을 또 다른 방향에서 이해할 수 있다(표5 참조).
‘형식적 민 주주의 안의 권위주의’와 ‘민주주의의 내용적 공허화’ 영역에서는 20~50 대의 파시즘 성향이, ‘문화적 배제와 혐오 정동’ 영역에서는 60대 이상의 파시즘 성향이, ‘감시, 통제, 알고리즘 권력 수용’ 영역에서는 30~50대, 70대 이상의 파시즘 성향이, ‘종교적 민족주의 및 정치 동원’과 ‘자본 숭 배와 시장 절대주의’ 영역에서는 50대 이상의 파시즘 성향이 다른 연령 대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표5. 극우의 영역별/연령별 점수 : 생략(첨부논문파일참조)
이러한 차이가 유의미한 차이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연령별 ‘극우’를 독립변인,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의 6개 영역을 종속변인으로 해서 일원 배치 분산분석을 시행하고 유의미한 차이가 있는 영역에 한해서 사후검 정을 시행하였다.
그 결과를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연령대 사 이에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는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 영역은 ‘자본 숭배와 시장 절대주의’가 유일하다.
특히, 70세 이상이 20~50대보다 유의미하 게 높다.
70세 이상과 유의미한 차이가 나지 않는 60대의 경우, 70세 이 상 다음으로 높으며, 특히 30~40대보다는 유의미하게 높다.
이제 마지막으로, 교회의 직분에 따른 ‘극우’와 ‘후기 자본주의 파시 즘’ 성향을 각각 살펴보도록 하자.
교회 직분에 따른 ‘극우’의 비율을 살 펴보면 목사/전도사/강도사의 30.6%가 ‘극우’에 속함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매우 이례적인 비율인데, 한국 개신교인 전체의 ‘극우’ 비율은 21.8%로, 이 비율에 비해 무려 8.8%p나 높기 때문이다.
목회자 그룹의 ‘극우’ 비율이 더할 나위 없이 높은 데 비해, 한국 개신교인 전체의 ‘극우’ 비율은 한국인 전체의 ‘극우’ 비율인 21.0%19)와 비교해서 유의미한 차이 가 없다.
19) 최영준, “수면 위로 떠오른 극우,” 6.
따라서, 극우의 정치적 집결이 개신교를 통해서 실현되어 지금에 이 르렀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 개신교가 얼마나 극우적인가를 묻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개신교의 극우 비율이 한국 사회 전반의 극우 비율 과 유의미한 차이가 없음에도 왜 개신교가 극우의 정치적 중심에 서게 되었는가를 물어야 한다.
하지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이 연구의 통계적 분석이 제시할 수 있는 결과의 범위를 넘어선다.
따라서, 설문조사 결과 에 대한 통계적 분석 외에 추가적인 해석학적 접근이 필요하다.
또한, 이 연구에서 목회자의 사례수가 55명에 불과해 더 심도 있는 통계적 분석은 불가능하다.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한 별도의 통계분석이 진행될 필요가 있다.
한편, 목회자 그룹의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 점수는 장로·권사 그룹과 는 크게 차이가 없으나 그 외 다른 신자들에 비해서는 유의미하게 높게 나타났다.
목사/전도사/강도사의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 총점 평균은 39.2점, 장로/권사는 38.0점으로 ‘높음’에 육박하는 ‘보통(잠재적 위험)’에 놓여 있다.
교회 직분을 독립변인, 총점을 종속변인으로 한 일원 배치 분산분석 은 교회 직분에 따른 총점 평균이 유의수준 0.05에서 유의미하게 차이가 남을 보여준다(유의확률 0.00).
이에 대한 사후검정은 목회자 그룹이 장로 와 권사 그룹과는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지 않으나, 안수/서리 집사 그룹 과 평신도 그룹과는 유의미한 차이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다시 말해, 목 회자 그룹은 집사 이하 평신도 그룹에 비해 높은 파시즘 성향을 보인다.
교회 직분에 따른 총점의 구간별 분포를 살펴보면, 각 교회 직분의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 총점이 어떤 질을 갖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목회 자 그룹은 단 10.0%만이 낮음에 해당하는 30점 이하의 구간에 분포한 다.
이는 목회자 그룹의 90.0%가 잠재적 위험 이상이라는 의미다.
게다 가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 성향이 없다고 할 수 있는 12~20점 구간은 0.0%다. 장로, 권사 그룹은 30점 이하의 비율이 11.5%, 집사 그룹은 18.3%, 평신도 그룹은 28.3%로 나타났다. 교회 전체는 20.5%다.
교회 에 실제로 다니고 있는 사람들의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 성향은 잠재적 위험까지 고려할 때 79.5%로 상당히 높다.
목회자 그룹은 더욱 극적으로 높아서 잠재적 위험 이상의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90%에 달한다. 따라서, 목회자 그룹의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 성 향은 다른 교인들과 비교해서 유의미하게 상당히 높고, 대부분은 잠재적 위험군 이상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Ⅳ. 지형도: 한국 개신교인의 극우와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
앞의 통계분석을 바탕으로 다음의 순서로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의 지형도를 묘사해 나가고자 한다.
먼저 한국 개신교인 전체의 후기 자본 주의 파시즘 지형도를 묘사한다.
그 후 이 지형도를 그룹별로 더욱 세분 하여 묘사한다. 마지막으로 ‘극우’의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 성향을 확대 하여 들여다본다.
이렇듯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을 중심축으로 해서 극우 개신교에 수렴해 감으로써 한국 개신교인 내에서 극우와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이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를 한국 개신교인 전체를 조망하는 가운 데 가늠하고자 한다.
1. 한국 개신교인의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 지형도
한국 개신교인의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 성향은 평균적으로 ‘잠재적 위험군’에 속한다.
하지만 ‘잠재적 위험’에서 ‘매우 높음’에 이르는 사람들 의 비율이 전체 한국 개신교인의 75.9%에 달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한국 개신교인의 절대다수에게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 성향이 있다고 볼 수 있 다.
그중에서 49.7%에 달하는 잠재적 위험군이 두텁게 형성되어 있고, 26.2%에 달하는 적지 않은 비율로 ‘높음’ 이상의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 성향이 있다.
한국 개신교인은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의 6개 특성 중 ‘자본 숭배와 시장 절대주의’(평균 7.5점), ‘문화적 배제와 혐오 정동’(평균 6.6점)의 2개 영역에서 보통 이상의 파시즘 성향을 보인다.
한국 개신교인은 전반적으 로 신자유주의 체제 이후 자본주의의 열렬한 지지 그룹이며, 혐오를 기 반으로 한 문화적 배타성을 그 어떤 파시즘 성향보다 강하게 갖는다.
따 라서 한국 개신교인은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이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위기관리 메커니즘이라는 라스무센의 정의를 성실하게 입증한다.
동시 에, 본질주의적 민족주의에서 문화 민족주의로의 이행이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에 내장되어 있다는 사실, 그것이 혐오 정동과 결합해서 외부의 적을 설정하고 내적 단결을 꾀하려는 집단 권력으로 작동한다는 사실 또 한 확인시킨다.
한국 개신교인은 전반적으로 시장사회의 성실한 ‘개인’ 이며, 특정한 경우에는 이러한 사회를 수호하려는 열망을 세력화할 가 능성이 높은 ‘집단’이다.
2. 그룹별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 지형도
무엇보다 4개의 그룹이 어떤 비율로 분포하는지부터 다시 상기할 필 요가 있다.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 성향을 측정할 수 있는 표본 2,078개 를 대상으로 할 때, ‘극우’ 21.3%, ‘극’ 22.7%, ‘우’ 15.8%, ‘그 외’ 40.2% 다.
차지하는 비중을 따지자면, ‘그 외’ > ‘극’ > ‘극우’ > ‘우’ 순으로, 한국 개신교인 중에서 가장 많은 그룹은 극단주의적이지도 않고 우파적이지도 않은 ‘그 외’ 그룹이다.
반면, ‘극우’는 한국 개신교인 5명 중 약 1명 정도 로, ‘그 외’의 절반 정도에 머문다.
한편, 극단주의는 ‘극우’와 ‘극’을 합한 그룹으로 44.0%에 달하고, 우파는 ‘극우’와 ‘우’를 합한 그룹으로 37.1% 에 달한다.
한국 개신교인은 극단주의 성향인 사람들이 가장 많고, 극단 적이지도 않고 우파적이지도 않은 사람들이 두 번째로 많다.
이러한 분 포는 극우 개신교인이 한국 개신교인의 주류가 아님을 시사한다.
이 점 을 고려해서 한국 개신교인의 그룹별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 특성을 살펴 야 한다.
그룹별 총점을 보면, ‘극우’ > {‘우’, ‘극’} > ‘그 외’ 순으로 파시즘 성향 이 상대적으로 낮아진다(표2 참조).
단, 이러한 차이는 잠재적 위험군 내 에서 일어난다.
하지만, 그룹별 총점의 구간 분포를 보면 이야기가 달라 진다(표3 참조).
‘극우’는 잠재적 위험 이상인 사람들의 비율이 90.1%에 달하고, ‘우’는 85.0%, ‘극’은 72.2%, ‘그 외’는 65.8%에 달한다.
전반적 으로 높은 파시즘 성향을 보이지만, ‘극우’는 90.1%로 압도적으로 극단적 인 파시즘 성향을 보인다.
‘잠재적 위험군’을 뺀 ‘높음’ 이상의 비율도 43.5%로 20%대를 넘지 않는 다른 그룹과 달리 높은 파시즘 성향을 지닌 사람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 진단 영역의 6개 특성이 그룹별로 어떻게 나 타나는지를 보면 각 그룹의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 성향에 관해서 세밀하 게 이해할 수 있다.
우선 인상적인 부분은 ‘자본 숭배와 시장 절대주의’ 영역에서는 모든 그룹이 7점대 이상의 높은 점수라는 사실이다.
거의 모 든 한국 개신교인이 신자유주의 이념을 강하게 지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우’와 ‘극우’가 다른 두 그룹과 달리 더 강하게 지지한다. ‘극 우’와 ‘우’는 ‘문화적 배제와 혐오 정동’ 영역에서도 다른 두 그룹과 유의 미하게 차이 나는 높은 점수가 나왔다.
이 영역에서는 ‘자본 숭배와 시장 절대주의’ 영역보다는 낮지만, 그래도 모든 그룹이 6점대 이상의 높은 점 수라는 점에서 한국 개신교인 전반의 도드라진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 특 성을 보여준다.
따라서, 한국 개신교인 전체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경도되어 있으며 문화적 배제와 혐오 정동이 강하다는 사실, 그리고 극우 개신교 그룹은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 진단 6개 영역 모두에서 중간값 이상으로 파시즘 성향이 강하다는 사실을 전제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첫째, 한국 개신교인 내 우파 일반(극우+우)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위기관리 메커니즘의 일환인 문화적 배제와 혐오를 주도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종교적 민족주의, 다시 말해 선민의식을 기반으로 하는 애국주의 성격이 강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정치적 집단행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둘째, 한국 개신교인 내 극단주의자 일반(극우+극)은 민주 주의의 형식 내에서 권위주의가 작동하는 것을 선호하면서 이를 위해서 라면 현대 기술과 결합한 감시와 통제도 수용하고자 한다.
셋째, 극우 개 신교는 개신교 내 우파 일반과 극단주의자 일반이 교차하는 ‘정점에서’ 이 둘의 성향을 모두 나타내는 교집합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넷 째, 극우 개신교는 우파 일반이나 극단주의자 일반과 공유하지 않는 자 기 그룹만의 강한 파시즘 특성 또한 갖는다.
이 그룹은 ‘민주주의의 내용 적 공허화’ 영역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아서 다른 그룹과 유의하게 구 별된다. ‘극우’는 다른 그룹보다 더 민주주의 제도의 실질적 무력화에 동 조하는 것이다.
3. 극우 개신교의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 지형도
이제 ‘극우’만을 따로 떼어서 더 세밀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이제까 지의 지형도에 의하면 한국 개신교 내 ‘극우’는 한국 개신교인의 전반적 으로 높은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 성향 위에서 더욱 도드라진 파시즘 성 향을 보인다.
특히 이 그룹은 ‘자본 숭배와 시장 절대주의’, ‘문화적 배제와 혐오 정 동’, ‘종교적 민족주의 및 정치 동원’의 세 영역에서 중간 점수인 6점보다 높은 점수가 나왔다.
한국 개신교인 전반의 두드러진 후기 자본주의 파 시즘 성향인 신자유주의 시스템에 대한 지지, 이를 지켜내기 위해 혐오 와 배제의 기제 사용에 덧붙여서, ‘극우’는 신정정치를 꿈꾸며 정치화하 고자 하는 열망도 다른 그룹에 비해 높은 것이다.
주목할 것은, ‘극우’는 민주주의의 형식적 틀 속에서 권위주의를 실 현하고자 하고, 민주주의의 실질적 내용은 공허하게 만들고자 하는 성 향을 다른 그룹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갖는다는 사실이다.
특히, 이 그룹에 속한 30~50대가 60대와 비교해서 더 강하게 민주주의의 실질 적 효력 정지를 추구한다.
다른 영역, 특히 ‘자본 숭배와 시장 절대주의’, ‘문화적 배제와 혐오 정동’, ‘종교적 민족주의 및 정치 동원’의 세 영역에 서는 70대 이상이 ‘극우’의 파시즘 특성을 이끌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극우’ 내 청장년층이 민주주의의 실질적 효력 정지를 추구한다는 점 신익상 | 극우 개신교와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 - 통계적 분석의 신학적 성찰 567 은 특이한 점이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 가치 추구에 조금 더 위협적인 것은 ‘극우’ 내 고령층이 아니라 30~50대 청장년층이다.
한편, ‘극우’에 속하는 20대 청년은 다른 연령대에 비하면 이렇다 할 도드라지는 파시즘 특성이 나타나지 않는다.
20대 극우 개신교인의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 성향은 극우 개신교인 전체의 일반적인 특성과 비슷하 거나 약간 낮은 수준이다.
이 결과는 “‘12·3’ 이후 극우 유튜버, 극우 단체 에서 청년 주체가 유의미한 세력으로 등장”20)하였다고 보고, 젊은 극우 단체들이 극우 개신교와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으리라고 추정하는21) 관점 에 대한 또 다른 추정 의견을 추가할 수 있게 한다.
20) 서복경, “‘12.3 내란’ 이후 한국 극우의 변화: 반체제화, 주류화, 청년 주체의 등장,” 「시민과세계」 46 (2025), 29.
21) Ibid., 30 참조.
적어도 이러한 새로 운 극우 청년 주체의 탄생이 한국 개신교 내 20대 극우 성향 청년들의 유 별난 파시즘 성향과 관련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새로운 극우 청년 주체는 극우 개신교 일반이 갖는 신정정치 민족국가 실현 열망과 이를 위해 정치에 참여하려는 의지와 관련된다고 추측할 수 있다.
Ⅴ. 신학적 해석: 무엇을 묻고, 어떻게 답해야 하는가?
이제 분명해진 것이 있다.
한국 개신교 내에서 ‘극우’와 ‘파시즘’이 연 접하여 ‘극우 파시즘’으로 표현될 때, 이 말이 함의하는 바는 평면적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한국 개신교인 대다수 또는 전부가 그대로 극우적인 파시스트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함에도, 한국 개신교 내 ‘극 우’가 ‘파시즘’과 갖는 친연성은 분명 존재한다.
이 친연성을 은유적으로 표현하자면, 한국 개신교의 ‘극우’는 비교적 높고 넓은 ‘파시즘’의 고원 위 더 우뚝 솟은 6개 봉우리에 걸쳐 있다.
특히, 이 파시즘의 봉우리들 가운 데서도 ‘자본 숭배와 시장 절대주의’와 ‘혐오와 배제’라는 아주 높은 봉우 리 두 개가 도드라진다.
따라서, ‘극우 파시즘’은 한국 개신교 내에서 다수일 수 없다.
‘극우’ 와 ‘파시즘’은 교집합의 차원에서 ‘극우 파시즘’을 형성하지 않는다. 오히 려, 깊이 파인 주름처럼 만난다.
‘파시즘’은 하나의 주름이다.
이 주름은 한국 개신교라는 얼굴 표면에 약 4분의 3 깊이로 주름골을 만들다가, ‘극 우 개신교’라는, 얼굴 표면의 21.8%를 덮은 반점에 이르러서는 약 10분 의 9 수준으로 더 깊이 파인 주름골을 만든다.
이 주름골은 비록 얼굴 전 체 중 일부에 집중되어 있지만, 그만큼 도드라져서 얼굴 전체를 노쇠하 게 만든다.
이제, 개신교가 극우의 온상이라는 문제의식 속에서 극우 개신교의 정치화를 성찰하려는 노력은 전환될 필요가 있다.
이 전환을 예비하는 하나의 사실은 한국 개신교의 극우 비율(21.8%)이 한국 사회의 극우 비율 (21.0%)과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극우가 정치 운동으 로 비화한 것은 특정 개신교 집단들을 통해서다.
‘특정 집단들’이라는 사 실이 전체 한국 개신교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특정 집단들’은 한국 개신교의 구조적 모순이 극대화되어 곪아 터진 상처의 흔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바뀌어야 한다.
“어떻게 한국의 극우는 개신 교를 통해서 정치화할 수 있었는가?”
이 질문은 한국 개신교 내 극우의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 성향 지형도를 통해 답변될 수 있다.
극우 개신교 라는 반점에 깊이 파인 파시즘의 주름골은 한국 개신교 전체에 퍼져 있 는 파시즘의 주름골들과 이어져 있어서 개신교의 극우가 어떻게 한국 개 신교의 구조적 양상을 타고 집단적인 정치 행동까지 도달할 수 있었는지 를 알려준다.
1. 물음: ‘평범한 파시즘’
한국 개신교 내 ‘극우 성향’ 그룹의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 강도가 질 적으로나 양적으로나 도드라지게 높다는 사실이 극우 개신교 문제를 한 국 개신교 내 일부 집단의 문제로 축소하지는 못한다.
그러기에는 잠재 적 위험 이상의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 성향이 한국 개신교 다수의 정서 다.
여섯 개 영역의 파시즘 특성 모두가 한국 개신교 내에서 ‘평범하다’.
특히, ‘자본 숭배와 시장 절대주의’는 너무도 압도적인 정서라서 한 국 개신교 내 ‘평범한 파시즘’을 대표적으로 주도한다.
이 정서가 어떻게 극우와 한국 개신교의 구조적 문제를 매개하는지를 김진호의 설명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글로벌한 시장에서 뼛속까지 소비자인 대중이 ‘욕망 하는 주체’와 ‘절망하는 주체’를 동시에 경험하는 분열증을 앓게 되고, “그런 대중의 일부가 극우주의적 행동”22)을 하게 된다고 말한다.
시장을 통해서 실현하고자 하는 자본의 무한 증식은 도박꾼의 좌절하는 욕망과 같다. 도달할 수 없기에 도달하고자 한다. 이 원환의 운동은 시장사회의 구조적 운동 자체인데, 그것이 좌절하는 욕망의 운동인 한 그 운동에 속 한 이들은 정체성 불안23)에 시달리게 될 수밖에 없다.
이 불안이 극우주 의로 전화하기도 하는 것이다.
자본 숭배를 실현하고자 하는 시장 절대 주의 체제가 극우주의의 구조적 토대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극우주의와 기독교 근본주의 신앙과의 연관성을 탐구한 배덕만은 트럼프주의가 미국 내 백인 노동자계급의 경제적 불안을 이용한다고 말하 면서, 이것이 어떻게 미국 내 근본주의 신앙과 결합해서 한국까지 전파 될 수 있었는가를 논한 바 있다.24)
22) 김진호, “전광훈과 K-극우의 재구성,” 「가톨릭 평론」 47 (2025), 35.
23) 욕망이 생명의 지속가능성을 실현하는 장치라는 점에서 시장에서 겪는 정체성 불안은 곧 생존 불안이기도 하다. 24) 배덕만, “트럼프, 근본주의, 그리고 한국교회,” 『한국교회, 어디로 가나?』 (서울: 야다북스, 2025) 60-61.
트럼프주의의 정치적 포퓰리즘이 미국 내 근본주의 신앙 세력과 접속해서 결합하고, 이로 인해 더욱 그로테 스크해 진 근본주의 신앙 세력은 다시 한국의 근본주의 신앙 세력과 접 속해서 트럼프주의를 전수한다는 것이다.
단적인 사례로, “미국의 정치 를 크리스천 보수주의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석하며 정보를 전달하는 플랫폼”25)인 국내 유튜브 채널 ‘빌드업코리아’가 있다.
25) Ibid., 88.
미국 ‘마가’(MAGA) 진영의 대표적 인사들을 강사로 초청하기도 하면서 트럼프주의와 결합한 미국 근본주의의 세례를 받은 이 채널은 기독교세계관, 자유시장경제, 한미동맹을 핵심 가치로 내세운다.
시장 절대주의를 중시하며 미국의 극 우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려 한다는 점에서 이 채널은 극우 개신교의 전형적인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 특성을 잘 보여준다.
‘자본 숭배와 시장 절대주의’가 극우 개신교의 미시적인 실천 방향을 결정하는 구조적인 틀 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따라서, 극우 개신교의 실질적인 구조적 토대는 하나의 딜레마다.
신 앙의 외부에 있는 것이 신앙의 내용을 형성한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 숭 배도 시장 절대주의도 기독교 신앙을 형성할 수 없는 이질적인 요소지 만, 이것이 극우 개신교, 나아가 한국 개신교 일반의 ‘평범한’ 구조적 기 초가 되어 있다.
한국 개신교의 ‘평범한 파시즘’을 주도하는 또 하나의 특성은 “혐오 와 배제”다.
뇌-신경학적 관점에서 볼 때 ‘혐오’는 썩은 음식, 감염, 기생 충 등 생명을 위협할 만한 낯선 대상을 회피하기 위한 중요한 기제다.
하 지만, 이 기제의 대상은 사회적 학습을 통해 사람이나 문화 등에까지 확 장되어 인종차별, 난민 혐오, 소수자 혐오 등 혐오에 기반하는 사회적 배 제를 유발하기도 한다.
따라서, 뇌 수준에서 볼 때, 사회적 배제는 원래 오염이나 감염을 예방하기 위한 신경회로가 사회적 대상에게 ‘잘못 연결’ 된 상태로 볼 수 있다. 강인철에 의하면, 미국의 보수개신교가 극우 개신교의 혐오 정치에 영향을 주었다.
“1990∼2000년대 미국식 영적 전쟁 이론들이 한국 개신 교인들에게 광범위하게 수용되었고 ‘신앙의 조국’을 모방하거나 숭배하 는 방식으로 정치화”26)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배제와 혐오의 정서가 한 국 개신교 전반에 학습되고 수용되면서 극우 개신교의 혐오 정치로 이어 졌다고 보는 설명으로서, 한국 개신교인의 상당수가 혐오와 배제의 파시즘 성향이 있으며, 극우 성향이 있는 개신교인은 더욱 그렇다는 통계적 결과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정용택은 혐오의 이념적 성향을 형성하는 기제로 이원론적 사고와 전쟁을 추구하는 사고를 지목하면서, 이러한 사고들이 단지 현대 이데올 로기 때문만이 아니라 개신교의 “묵시 종말론”(apocalyptic eschatology)에 서도 기원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 종말론은 선과 악을 극명하게 나누는 극단적인 이원론적 성격을 갖는데,27) 이러한 신학적 이원론이야말로 극우 개신교의 혐오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혐오는 단지 법률적 장치나 제도적 질서를 공격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인간 존재’ 자체를 완전히 절멸(extermination)하려 하기에 더욱 심각하다.28)
26) 강인철, “한국 개신교와 보수적 시민운동: 개신교 우파의 극우·혐오정치를 중심으로,” 「인문학연 구」 33 (2020), 3-30; 서복경, “‘12.3 내란’ 이후 한국 극우의 변화,” 5에서 재인용. 27) 장형철, “한국 개신교의 근본주의적 특성에 대한 종교 사회학적 고찰 - 형성과 발전을 중심으로,” 「신학사상」 184 (2019), 238 참조.
28) 정용택, “한국 극우 개신교의 절멸주의적 혐오 정치에 대한 기독교사회윤리적 비판,” 284-287.
더욱이, 혐오의 사회적 학습이 ‘신의 한수’, ‘트루스포럼’ 등과 같은 극우 유튜브 채널이나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한국교회연합(한교 연)과 같은 교계 조직을 통해서, 극우 개신교 대안학교를 통해서 이루어 지고 있다는 사실은 심히 우려스러운 일이다.29)
이러한 학습이 사회적 배제로 이어져 인간 존재의 절멸을 구체적이고 폭력적으로 실행하도록 추동할 개연성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지난 2025년 1월에 발생한 서울서 부지방법원 난동 사건은 이러한 개연성에 힘을 싣는다.
결국, 혐오와 배제는 한국 개신교 대다수의 정체성 불안 해소를 위한 ‘내적 동인’으로 극우 개신교의 폭력적 행동에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다 시 말해, ‘혐오와 배제’는 극우 개신교의 미시적인 실천을 이끄는 내적 동 인이다.
이 내적 동인 또한 극우 개신교에 국한하지 않고 한국 개신교인 전반의 정서에 깃들어 있다는 점에서 한국 개신교 내 ‘평범한 파시즘’의 중요 특성이 된다.
그렇다면, 극우 개신교의 내적 동인 또한 딜레마에 처한다.
이 역시 신앙 외부에 있는 것이 신앙의 내용을 형성한 것이기 때문이다.
신경학적 혐오의 오작동인 사회적 혐오와 배제는 기독교 신앙을 형성할 수 없 는 이질적인 요소이지만, 이것이 극우 개신교, 나아가 한국 개신교 일반 의 ‘평범한’ 내적 동인의 기초가 되어 있다.
‘자본 숭배와 시장 절대주의’라는 구조적 토대와 ‘혐오와 배제’라는 내적 동인의 결합 속에서 한국 개신교 일반의 은근한 후광을 받아 극우 개신교가 약진하고 있는 방향은 권위주의적인(형식적 민주주의 안의 권위주 의) 신정정치(종교적 민족주의 및 정치 동원)의 세계다.
하지만, 이 세계는 그 기원을 찾을 수 없는 허상으로서의 기독교다.
이택광의 논의는 이러한 주장에 힘을 싣는다.
그는 유교의 몰락 속에서 극우주의가 새롭게 선택한 이데올로기가 바로 기독교라고 주장한다.
기독교는 고도성장을 거듭해 온 자본주의와 결합하여 한국 사회 기득권의 자리에 입성했고, 한국 극우의 핵으로 거 듭났다는 것이다.30)
그렇다면, 그의 주장처럼 극우 개신교는 복음이 아 니라 세속 세계에서의 헤게모니 행사가 더 중요한, 그러나 복음으로 포 장된 목표에 도달하려는 집단일 수 있다.
“이들에게 민주주의는 혼돈인 것이고, 이런 관점에서 이들은 혼돈을 넘어서기 위해 냉전 시대의 질서 로 복귀해야 한다고 주장”31)한다.
29) Ibid., 293-294 참조; 서복경, “‘12.3 내란’ 이후 한국 극우의 변화,” 6 참조.
30) 이택광, “한국 극우주의의 원초적 신화,” 「기독교사상」 796 (2025), 32 참조.
31) Ibid.
그런데, 민주주의 사회에서 민주주의 가 혼돈이라면, 권위주의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질서가 아니라 혼돈이다. 민주주의를 타도하기 위한 혼돈 말이다.
이렇게 되면 극우 개신교는 혼돈을 타도하기 위해 혼돈을 조장하는 모순적 상황 에 놓이게 된다.
스스로의 실천이 스스로의 주장과 목표를 배반하는 그 런 상황 말이다.
따라서, 극우 개신교가 추구하는 신정정치는, 주장의 근 거 없이 세속 세계의 분열된 욕망을 뒤쫓는, 신이 없는 신정정치, 그래서 기원을 찾을 수 없는 허상으로서의 기독교로 귀결한다.32)
32) 신혜진은 한국의 극우가 탈식민하지 못한 피식민지성에 머물러 있어 그 주체성을 상실한 집단이 기에, 이들이 추구하는 목표 또한 해소된 주체성의 연장선상에서 하나의 신기루로 끝나버리고 만다고 지적한다: 신혜진, “한국개신교 보수주의와 극우주의 관계 고찰 - 계엄 사건을 통해 본 정 치세력화된 기독교에 대한 성찰,” 「기독교사회윤리」 62 (2025), 230-231 참조.
결국, 한국 개신교라는 얼굴의 깊은 주름과 극우 개신교라는 반점의 아주 더 깊은 주름은 그 얼굴 외부에 있는 이질적인 것을 욕망한 분열증 의 흔적으로서, 원래의 기독교 정신과는 상관없는 반기독교적인 기독교 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결정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이 반기독교적인 기독교의 ‘평범한 파시즘’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2. 응답: 구조로서의 민주주의와 내적 동인으로서의 메시아적인 삶
통계적 결과에서 확인한바, 극우 개신교보다 파시즘 개신교가 더 광 범위한 문제인 한편, 파시즘 개신교를 가장 강력하게 드러내는 그룹이 극우 개신교라는 두 가지 사실은 한국 개신교의 ‘평범한 파시즘’에 대한 대안 모색이 극우 개신교에 대한 대안 모색과 연동되는 동시에 더욱 구 조적이고 심층적이어야 함을 시사한다.
‘자본 숭배와 시장 절대주의’라는 구조적 특성에 대한 대안과 ‘혐오와 배제’라는 내적 동인 특성에 대한 대 안이 필요한 것이다.
구조적 문제의 핵심에는 소비지상주의와 결탁한 교회 내 권위주의가 있다.
이는 “교회의 구조를 어떻게 다시 설계할 것인가” 하는 대안 모색문제를 제기한다.
김재명은 부르디외의 장(field)과 하비투스(habitus) 개 념을 적용해서, 한국 개신교는 해방 이후 반공주의와 기복신앙을 중심으 로 한 독특한 하비투스를 형성해 왔고, 이 하비투스가 권력 장과의 긴밀 한 결탁 속에서 구조화되었다고 분석한다.
이어 그는 이러한 구조를 왕 권 의식(royal consciousness)과 예언자적 상상력이라는 두 하비투스의 긴 장 속에서 읽어낸다.33)
왕권 의식은 소비주의와 권위주의 권력이 결합한 전체주의적 상상력으로, 현존 질서를 ‘신의 질서’로 정당화하며 교회를 기득권 질서의 영적 호위대로 만든다.
반면 예언자적 상상력은 억압받는 자들의 고통을 기억하고, 기존 질서를 상대화하는 비판적·해방적 상상력 이다.
‘평범한 파시즘’은 이 두 하비투스 사이의 긴장이 해소된 자리, 곧 예언자적 상상력이 약화하고 왕권 의식만이 교회의 권력 장을 사실상 독 점한 결과로 읽을 수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대안은 예언자적 상상력이 다시 교회의 제도와 습관을 형성하는 힘이 되도록 구조를 재편하는 데 있을 것이다.
따라서, 교회의 권위구조를 민주화하고 공론장을 제도화해야 한다.
공동 설교, 회중 토론, 의사결정의 다원화 등 목회자의 권위를 분산시키 는 장치를 마련하고, 서로 다른 입장과 의견을 안전하게 논쟁할 수 있는 교회 내 공론장을 제도화해야 한다.34)
적어도 ‘평범한 파시즘’이 극우 개 신교를 강화하지 않도록 하려면, 이러한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대안은 그 어떤 대안35)보다도 우선할 필요가 있다.
33) 김재명, “한국개신교 하비투스의 형성과 변형: 극우 개신교의 부상과 하비투스의 재구성,” 「종교 와 문화」 48 (2025), 42-49 참조.
34) Ibid., 62-63 참조.
35) 물론, 개신교 보수주의와 극우주의의 결합이 정치, 종교, 폭력의 삼각 구조로 나타나고 있기에(신 혜진, “한국개신교 보수주의와 극우주의 관계 고찰,” 202-210 참조), 정교 관계를 민주주의의 규범 속으로 되돌리고 종교계는 공적 규범을 함께 나누는 시민 주체에 자리매김할 필요가 있다. 또한, “혐오의 물결이 교회라는 모세혈관을 타고 지역 곳곳으로 내려가 … 지역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까지 영향을 미치는”(최승현, “혐오의 물결을 모세혈관까지: 12·3 내란과 극우 개신교,” 「황해문화」 127 (2025), 21) 상황에서는 지역 단위에서의 인권·미디어 문해력, 그리고 교회와 시민사회의 협 업이 필요하다. 청년 남성이 진영 논리에 빠진 진보로부터 부당한 소외를 겪는 한편(한윤형, “극 우화된 청년 남성인가, 청년 남성의 극우화인가: 서부지법 폭동에 놀란 기성세대를 위한 지형도 설 명,” 「기독교사상」 796 (2025), 44-49 참조), 서로 연계된 극우 세력들에 의해서는 공략 대상이 되는 현실에서(서복경, “‘12·3 내란’ 이후 한국 극우의 변화,” 30), 취약성과 상호의존을 인식하는 영성 에 터한 청년[남성]에 대한 목회와 교육의 재구성이 필요할 수도 있다. 또는, 한국 사회에서 극우 의 토양이 굳건한 상황에서 이 토양을 갈아엎기 위해 적대의 정치를 용인과 타협의 정치로 바꾸 고 정치적 양극화에 편승하지 않는 언론의 변화가 교회의 범위를 넘어 사회적 차원에서 진행될 필요도 있다: 김희원, “극우를 키운 토양, 어떻게 갈아엎을 것인가,” 「관훈저널」 66/5 (2025), 7-8.
교회와 사회의 관계 설정이나 미시적 현장의 변화는 교회의 구조적 변화를 전제로 하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제도와 정책의 변화가 선행하지 않고서 미시적 실천과 거시적 목표가 효과적으로 상호작용하며 변용하기는 힘들다.
교회의 권위주의적인 체제 문제에 더하여, 목회자 그룹의 높은 극우 비율(30.6%)과 이보다 더 심각한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 성향(잠재적 위험 이상 90.0%)이 현실이다.
이 둘의 조합이라는 특정 조건에서 극우 파시즘 은 교회에 쉽게 접속하여 강력한 정치적 동원과 세력 형성을 매개로 폭 발력 있게 정치화할 수 있다.
따라서, 교회 권위구조의 민주화와 공론장 의 제도화가 그 어떤 대안보다 우선할 필요가 있다.
교회 권위구조의 민주화와 공론장의 제도화는 개신교의 프로테스탄 트 정신을 성숙하게 계승하는 측면이 있다.
개신교는 성직자의 과도한 권위에서 인민을 해방하고자 한 데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인민의 개념과 범위를 사려 깊게 개정해 가는 가운데 권력의 분산과 분산된 권력의 평 등한 관계망을 숙고하는 것은 위계적인 권위구조에 저항했던 개신교의 평등 정신, 성서 앞에서 만인은 평등하다는 오직 성서(sola scriptura)의 정신이 탈/재영토화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평범한 파시즘’의 구조적 토대가 가진 딜레마, 자본 숭배와 시장 절대주의라는 이질적인 것을 신 앙의 본질인 양 권위구조의 기초로 삼은 딜레마를 극복한다.
내적 동인 문제의 핵심에는 분열된 욕망에 기인하는 정체성 불안이 있다.
이것은 자본주의적 욕망의 신앙화, 곧 성장·경쟁·성공이라는 근대 자본주의의 규범이 신학적 언어로 재부호화(re-coding)되는 과정과 관련 된다.
다시 말해, 기복신앙이 개인적 욕망을 넘어 집단적 번영과 교회 성장의 이데올로기로 기능해 왔다는 것이다.36)
36) 김재명, “한국개신교 하비투스의 형성과 변형,” 48.
대형 성전 건축과 헌금, 성장주의 담론은 자본주의적 축적 논리를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상징 언어 로 옮겨 심고, 교회가 시장 경쟁의 논리를 영적 규범으로 승인하는 장이 되게 한다.
이는 ‘자본주의의 종교화’이자 ‘종교의 자본주의화’로, 인간의 욕망 자체를 신성화하는 구조다.
그런데, 앞서 논한 바 있듯 이 욕망은 성장주의 담론 안에서 절망하 는 욕망이라서, 욕망하는 주체가 정체성 불안에 처하게 한다.
이 불안은 이내 혐오와 배제의 정동으로 전화함으로써 가상의 적을 현실화하는 오 류 상황에 빠지게 된다.
혐오와 배제의 대상은 현실에 덧씌운 가상이기 에, 욕망을 신성화한 자본주의 종교는 그 근거를 찾기 어려운 허상의 종 교가 되고 만다.
따라서, 혐오와 배제라는, ‘평범한 파시즘’의 내적 동인 의 심연에 놓인 자본주의적 욕망을 돌이킬 성찰적 대안이 필요하다. 욕망의 전환은 욕망이 구성되는 서사와 상징 구조를 다른 방향으로 짜는 것이다.
민족주의·반공주의·시온주의와 결합하여 국가 발전과 자본 주의적 성공을 ‘신의 역사’로 의미화하는 극우 신화에 맞서, 시인 백무산 이 “정지의 힘”37)에서 노래하는 것처럼 “무엇을 하지 않을 자유”, “무엇 이 되지 않을 자유”를 ‘메시아적인 삶’으로 의미화해야 한다.
발전과 성 공 담론에 맞서 자유의 의미를 다시 묻고, 기독교의 출발이었던 ‘메시아 대망’을 오늘의 상황에서 살아내는 의미를 물어야 한다.
무엇보다, 메시아적인 것은 세계 내에서 경험하는 초월이기에 자기 자신과의 긴장에 놓인다.38)
37) 백무산, 『이렇게 한심한 시절의 아침에』 (파주: 창비, 2020), 58.
38) 신익상, “근본주의와 가난의 문제: 민중신학의 ‘민중’과 아감벤의 ‘잔여’를 연결하여,” 「신학연구」 68 (2016), 247.
이는 고린도전서 7장 29~31절에서 바울이 제시하는 ‘호스 메’(ὡς μὴ, ōs mē), ‘마치 ~이 아닌/없는 것처럼’의 삶을 사 는 것이다.
자본주의 세계에서 자본주의적 욕망과 신앙을 일치시키는 것 이 아니라, ‘마치 자본주의가 아닌 것처럼’ 자본주의를 살아내는 것이다.
이것은 욕망을 한껏 실현하는 자유가 아니라 욕망을 효력 정지시키는 자 유다.
이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을 자유는 기독교를 가능케 했던 예수의 삶 자체였다.
번영신학과 축복신학에서 무시한 메시아 신앙을 메시아적 인 삶으로 되살려야 한다.
Ⅵ. 나가는 말
한국 개신교인 전체가 이미 ‘자본 숭배와 시장 절대주의’와 ‘문화적 배제와 혐오 정동’ 영역에서 중간값을 뚜렷이 상회하는 파시즘 성향을 보 이며, 특히 극우 성향 개신교인은 여섯 영역 모두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나타내고 있음을 확인했다.
극우 개신교는 소수의 예외적 일탈이라기보 다 신자유주의 체제와 결합한 한국 개신교의 심층 정동과 상상력 속에서 길러진 하나의 농축된 증상에 가깝다.
통계적 결과는 “대다수는 괜찮다” 는 안도감이 아니라, 다수의 평범한 신앙이 이미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 의 언어와 감각을 얼마나 내면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여기서 문제의 핵심은 ‘신의 이름으로 무엇을 정당화하느냐’에 있다.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이 민주주의의 형식은 유지한 채 권위주의적 해결 책을 욕망하는 문화-정동의 양식이라면, 극우 개신교는 이 양식을 신정 정치적 상상력과 결합해 권위주의, 시장 절대주의, 혐오와 배제를 신의 뜻으로 승인하게 만드는 종교적 파시즘의 한 변종이다.
다시 말해, 오늘 한국의 극우 개신교 문제는 단순히 “정치 성향이 오른쪽에 치우친 교인 들”의 문제가 아니라, 신앙 자체가 민주주의의 동공화, 타자 배제, 시장 절대주의의 위기관리 메커니즘을 신성화하는 방식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는 데 있다.
우리는 이러한 구조와 이 구조를 견인하는 내적 동인을 끊어 내기 위 한 전환 방향을 제시했다.
권위주의 구조에서 민주주의 구조로, 분열된 욕망에서 욕망의 효력 정지로 전환해야 한다.
이러한 대안은 단순한 ‘도덕적 당위’가 아니라, 이 연구에서 드러난 실증적 현실에 대한 최소한의 응답이다.
통계는 한국 개신교 다수가 이미 ‘조건부 권위주의’와 ‘경제 성 장 우선’ 정서를 공유하며, 상황에 따라 감시 기술과 문화적 배제를 기꺼이 승인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신학은 더 이상 추상적인 교리 논쟁에 머물 수 없으며, 신앙이 어떤 정동과 정책 선택, 어떤 사 회적 상상력을 지지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교정하는 실천적 비판 이성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에 대한 물음은 곧 어떤 세계를 가능하 게 하는 신을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며, 여기서 극우 개신교와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은 우리가 거부해야 할 신과 세계 상상력의 집합적 이름이다.
동시에, 이 연구는 신학 연구 방법론 차원에서도 한 가지 과제를 제 기하고자 했다.
신학과 종교철학은 흔히 통계와 거리를 두지만, 이번 시 도는 통계적 분석이야말로 교회의 숨은 정동 구조와 권력 상상력을 가시 화하는 데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극우’와 ‘후기 자본주 의 파시즘’을 조작적으로 정의하고, 영역별 점수를 비교·분석함으로써 어 느 지점에서, 어떤 방식으로 신앙이 파시즘적 정동과 결탁하는지를 더 세밀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앞으로의 연구는 이러한 통계적·질적 방법 을 결합하여, 교단별·지역별·세대별 차이를 더 정교하게 분석하고, 실제 교회 현장에서 대안적 실천이 어떤 변화를 만들어 내는지 추적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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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초록
이 연구는 한국 개신교 신앙과 미컬 볼트 라스무센(Mikkel Bolt Ras mussen)이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이라고 부르는 현상의 얽힘을 신학적 으로 해석한다.
극우 개신교를 주변부의 병리로 취급하기보다는, 특정한 하나님·교회·이웃상이 어떻게 권위주의적 욕망, 시장 절대주의, 문화적 배제를 신성화하는지를 묻는다.
전국 단위의 한국 개신교인 설문 자료를 진단의 렌즈로 삼아, 이러한 정치적·정동적 경향이 신앙 외부에 있는 것 이 아니라 오히려 일상적 신앙, 교회 구조, 신학적 언어 속에 짜여 있음 을 보여준다.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이 연구는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이 한국 교 회의 권위주의적 구조와 그 혐오·배제의 역학을 떠받치는 내적 동력으로 기능한다고 주장한다.
이 파시즘은 신앙의 이름으로 위계적이고 불투명 한 교회 권력을 정당화하고, 취약한 타자에 대한 적대감을 일상적인 것 으로 정상화한다.
결론에서는 하나님, 교회, 민주주의, 경제 생활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이해를 재구성하기 위한 규범적 방향을 개괄함으로써, 후 기 자본주의 사회의 종교적 파시즘의 흐름에 대해 개신교 신앙이 그것을 강화하는 힘이 아니라 저항하는 힘이 될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
주제어 극우 개신교,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 평범한 파시즘, 메시아적 삶, 한국 개신교
Abstract
Extreme-Right Protestantism and Late Capitalist Fascism — A Theological Reflection on Statistical Analysis
Ick-Sang Shin( Associate Professor, Philosophy of Religion Graduate School of Theology Sungkonghoe University)
This article offers a Christian theological interpretation of the entanglement between Korean Protestant faith and what Mikkel Bolt Rasmussen calls “late capitalist fascism.” Rather than treating extreme-right Protestantism as a marginal pathology, it asks how particular images of God, church, and neighbor serve to sacralize authoritarian desire, market absolutism, and cultural exclusion. Using nationwide survey data on Korean Protestants as a diagnostic lens, the article shows that these political and affective tendencies are not external to faith, but are instead woven into everyday piety, ecclesial structures, and theological language. On this basis, the article argues that late capitalist fascism functions as an internal driving force behind the authoritarian structures of the Korean church and its dynamics of hatred and exclusion. It legitimizes hierarchical and opaque church power and normalizes hostility toward vulnerable others in the name of faith. In conclusion, the article sketches normative directions for reconfiguring Christian understandings of God, church, democracy, and economic life, thereby exploring how Protestant faith might become a force of resistance, rather than reinforcement, with respect to religious fascist currents in late capitalist society.
Key Word : extreme-right Protestantism, late capitalist fascism, ordinary fascism, messianic life, Korean Protestantism
논문접수일: 2025년 11월 30일 논문수정일: 2025년 12월 11일 논문게재확정일: 2025년 12월 20일
神學思想 211집 · 2025 겨울
연구논문 DOI: 10.35858/sinhak.2025..21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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