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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야기

묵시록적 비전에서 관찰과 경험의 지혜로― 예수와 바울의 자연신학 비교 분석/차정식 한일장신大

 Ⅰ. 문제를 보는 한 시각: 생태신학의 전제로서 고대 자연법

 

자연법 (ius naturale, lex naturalis)으로 통칭하는 개념은 그 범주와 진 폭이 꽤 넓고 복잡하다.

역사적으로 그 의미가 다양한 사상적 검토를 거 치면서 다채롭게 확산하고 변용되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까닭에 자연법이란 개념을 사용할 때 어느 시대, 어느 사상의 맥락에서, 어떤 학 인의 주장에 초점을 맞춘 자연법인지를 따져 그 맥락을 정조준하는 게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자연법은 자연의 질서에 내재한 본성에 기초하여 인간의 본성을 통찰하고 일련의 보편타당한 가치를 유추하여 설정한 법 의 체계로 정의된다.

다시 말해 자연법이란 “자연히 존재해 언제 어디서 나 유효한 보편적이고 불변하는 법칙”으로 자연의 본성에 입각한 인간의 보편타당한 양심을 중시하면서 인위적인 가치로 제정된 국가나 특정 공 동체의 실정법과 대립적인 관계에서 흔히 유통된다.

나아가 그 자연법사상의 태반에서 이른바 ‘자연신학’이 싹트고 발전했으며 상호 긴밀한 연동 관계를 이루어왔음을 알 수 있다.1)

이 글에서 사용하는 자연법의 개념은 고대 자연철학과 이후 아리스 토텔레스에 이르러 구체화한 범주에 한정하여 그것이 오늘날 생태신학적 근거로 유효한 자연신학의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보고자 한다.2)

가령 자 연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논제대로라면 자연법은 자연 만물의 유전을 통해 나타난 자연계 배후의 보편적인 로고스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자연 법의 아버지로 칭해지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적인 정의가 바람직하게 이루어지는 가장 이상적인 국가에서 그 정의의 실현 방식이 법의 형태를 띤다면 그것이 자연법이라고 하였고, 자연법이야말로 법 없이도 통치하 는 최상의 국가에 이르는 궁극 직전의 것으로 이해했다.

키케로나 세네 카 등의 스토아 사상가들도 우주 만물에 깃든 목적 지향적이고 합리적인 질서에 따라 살아가는 이성적 존재의 매개체를 자연법으로 인식하였다.3)

 

      1)  우리 말로는 ‘자연신학’이라고 통칭되지만 영어로는 natural theology와 theology of nature를 구별 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전자는 성서나 계시에 대한 전통신학적 관점을 배제하면서 종교적 전통에  대한 철학적 전제들, 이성을 통해 성취한 인간과 세계, 자연에 대한 과학적 발견을 토대로 추구하 는 신학 개념으로 이신론(Deism)과 연계되는 반면, 후자는 성서와 계시에 대한 전통신학의 축적 과 연구 방법을 기본값으로 존중하면서 자연계의 새로운 사실과 과학적 탐구 결과를 개입시켜 기 존의 신학 전통을 재해석하고 재구성하는 신학 개념으로 애써 구별한다. Austin Cline, “Natural The ology vs. Theology of Nature”(2019), https://www.learnreligions.com/natural-theology-vs-theol  ogy-of-nature-250966 [2024.10.10. 검색]. 그런가 하면, 이를 ‘자연신학’과 ‘자연의 신학’으로 번역 하여 전자를 “인간의 이성과 이를 기반으로 얻어진 자연 현상에 대한 법칙에 기초하여 신의 존재 를 논증한다”고 정의하고 후자를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의 관점에서 자연과 자연 현상 및 법칙에  대한 보편적 이해를 찾는다”고 이해하기도 하는데 이 두 범주의 호혜적 연구 방법이 긴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윤지훈, “자연신학 그리고/또는(and/or) 자연의 신학 - 두 신학의 호혜성에 대한 연구 의 가치와 필요성에 대한 고찰,” 「신학사상」 201 (2023), 87-126 참조. 이 논문에서는 이러한 최근  연구의 관점을 준용하여 자연신학이란 개념 속에 양자의 통찰을 포괄적으로 사용한다.

     2)  최근 이에 대한 국내외 논의가 활발한데 이 주제에 대한 연구로 다음의 자료를 참조할 것: 톰 라이 트/송일 옮김, 『역사와 종말론 - 예수 그리고 자연신학의 가능성』 (서울: IVP, 2022); 볼프하르트 판 넨베르크/박일준 옮김, 『자연신학』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2000); 이정배, 『기독교 자연신학』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5).

    3)  이상의 고전적 개념 정의는 근대 이후 자연법 사상의 태동과 발전 과정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https://www.learnreligions.com/natural-theology-vs-theology-of-nature-250966 [2024.10.10. 검 색] 참조. 

 

신약성서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은 이런 점을 참조하여 유대인의 성문법 인 토라와 무관하게 이방인들이 각자의 양심에 따라 선악을 분별하고 판 단할 수 있도록 하는 보편적인 내면의 원리를 자연법적 맥락에서 이해하 였다.4)

이런 범주의 자연법이 오늘날 인간세계의 현실에 비추어 제기하는 근원적인 문제는 자연 만물에 반영된 본래적 질서와 인간의 본성이 근본 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거나 이룰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인생살이가 고단해질 때 자연환경을 통해 위안을 얻고 그 부분적 아름다움을 예찬하 는 성향이 시공을 초월해 인류에게 잠재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자연 만물이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신적인 창조의 영광을 드러낸다고 신 학적인 후광을 덮어씌운다고 해서 지난 수천 년간 인간 문명이 자연환경 과 생태 질서를 향해 도발해온 온갖 파괴적인 행태가 저절로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전적인 타락’(total depravity)이란 개신교 교리를 앞 세워 인간의 원형적 죄성과 더불어 자연 만물도 덩달아 철저하게 오염되 어왔기에 아무런 희망의 불씨도 남아 있지 않고 오로지 ‘전적인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을 통해서야 자연 만물도 그 혜택을 함께 공유할 수 있다 는 신앙고백은 어떠한가.

이런 관점에 기대면 자연 만물의 아름다움을 향해 경탄하는 인간의 언어들은 한갓 죄책을 경감해보려는 변명의 제스 처나 심리적 위안이란 자가당착에 봉착하게 된다.

이와 연루된 무엇보다 심각한 교리신학적 문제는 이러한 관점이 성서에 입각한 창조신학과 거 리가 멀다는 사실이다.

타락 이후의 시점에도 자연 만물을 향한 예찬의 언어들이 풍성하게 성서의 시적인 행간을 채우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 아닌가.

가령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시선에도 인류가 이룩한 가장 화려 한 고대 문명의 한 산물인 ‘솔로몬의 모든 영광’을 훨씬 더 상회하는 자연 물의 미학적 덕성이 특출나게 보일 정도였다.5)

 

    4)  로마서에 나타난 바울의 자연신학적 통찰에 대해서는 David Coffey, “Natural knowledge of God:  reflections on Romans 1:18-32,” Theological Studies 31/4 (1970), 674-691.

    5)  이와 관련하여 마태복음 산상수훈의 예수는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지 생각하여 보라. […]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마 6:28-29)라고 말하였는 데 이에 대한 자세한 분석은 아래의 본론에서 제시될 것이다. 이 구절은 전반적으로 하나님의 창 조 섭리(divine providence)를 구원론적 맥락에 연관시켜 제자로서 추구해야 할 일상적 삶의 가치 와 자세를 조명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이 단락을 연구한 논문으로 Hans D.  Betz, “Cosmogony and Ethics in the Sermon on the Mount,” [idem], Essays on the Sermon on the Mount, tr. by L. L. Welborn (Philadelphia: Fortress, 1985), 89-123 참조.

 

요컨대, 고대의 자연법사상 중 한 갈래는 분명 인간의 본성이 비록 그 실존적 현주소가 엉망진창이라 할지라도 자연의 원형적 질서를 닮아 야 인간의 보편타당한 존재 가치를 이루기에 바람직하다는 당위적 갈망 을 깔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오늘날 자연 만물의 본래적 가치 와 극도로 유리된 채 적대적 관계로 서로 핍박하고 쟁투해온 인간의 본 성을 생태신학적 맥락에서 제대로 성찰하여 이 기후재앙의 시대에 그 지 향점을 재정립하는 하나의 계기를 제공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점에서 고 대 자연법사상을 생태신학적 근거로 삼을 만하다.

이렇듯 자연법사상은 기실 예수를 필두로 오래전부터 기독교 신학과의 친연성이 주목을 받아 오면서 그 상호 관계의 의미를 천착해왔다.6)

 

    6)  Jennifer A. Herdt, “Christianity and Natural Law and Natural Rights,” John Witte, Jr. & Rafael  Domingo, eds., The Oxford Handbook of Christianity and Law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23), 581-592 참조.  

 

다만 여기서 한 가지 해석학적 난점은 영어의 nature나 라틴어 natura, 혹은 희랍어 φύσις에 공히 담겨 있는 ‘자연’과 ‘본성’이란 개념을 동시에 담을 한글 어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글은 바울이 인 간의 본성과 구별되는 개념으로 κτίσις를 하나님의 창조세계로서 고통에 처한 자연 만물을 가리키는 맥락에서 사용하였고, 복음서의 예수가 그 일부를 나름 섬세하게 관찰하고 경험하며 남긴 몇 마디 말에 착근해보고 자 한다.

그 텍스트의 맥락적 논리를 근거로 그것이 함유하는 생태신학 적 상상력을 두 계통으로 나누어 분석하고 그 현재적 의미를 조명하면서 동시에 그 양자 간의 차이점과 한계를 평가해보고자 한다.  

 

Ⅱ. 예수의 두 가지 관찰과 경험적 지혜

 

1. 꽃과 새를 보라, 생각하여 보라(마 6:26-34)

 

산상수훈의 이 유명한 단락은 6:25ab에서 제안한 대로 ‘근심’이란 주 제를 전반적인 논증의 목표로 다룬다.

헬레니즘과 로마제국기에 대중적 으로 인기 있는 주제였던 ‘근심’의 문제는 정치·경제적 사회적 맥락뿐 아 니라 종교 및 철학의 토론 대상으로 종종 거론되었다.

그 당시의 다수 논 자들은 이유 없는 막연한 근심과 인간의 연약함으로 말미암는 근심 등의 족쇄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을 행복의 주된 조건으로 인식하곤 하였다.7)

 

     7)  근심의 유형과 종류, 그 원인 및 해법 등에 대해 헤시오드의 판도라 신화, 프로타고라스의 프로메 테우스 신화, 호라체, 세네카를 비롯한 스토아 사상가 등 다양한 영역에서 논의되었고 구약성서와  유대교 문헌에서도 동일한 주제가 폭넓게 다루어졌다. Hans D. Betz, The Sermon on the Mount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95), 462-65 참조. 근심과 마음의 평정에 대한 스토아적 해법을 제 공한 세네카는 그의 13번째 편지에서 이 주제를 심도 있게 다루었다. 그는 실제 사건의 현실 이상 으로 상상 속에 더 많은 고난을 가져오리라고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불운에 대한 과도한 집 착에 머물 때 근심이 발생한다고 보았다. 이에 대한 해법은 불가피한 운명에 초연한 무관심의 자 세로 순응하는 것이고, 불필요한 근심을 줄이고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 실제 당면한 위험과  상상 속에 부풀려진 과잉 부분의 차이를 잘 구별할 것을 조언하였다. 근심 문제의 원인과 처방에  대한 예수의 견해와는 꽤 다른 면을 볼 수 있다. Lucius Annaeus Seneca, Letters on Ethics: To Lu cilius, tr. by Margaret Graver & A. A. Long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17) 참조. 

 

이 서두의 핵심 주제가 유대교의 맥락에서 주로 지혜신학의 논제로 많이 거론되지만 결론부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라는 얼핏 지혜신학적 관심 과 거리가 먼 주제로 마무리된 점이 특기할 만하다.

게다가 이 단락은 자 연 만물을 지속적으로 경영하고 관리하는 신적인 ‘섭리’가 이면의 또 다 른 주제로 반영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예수의 이 설교 주제가 특별한 것 은 그가 당시 자연 만물의 존재에 대한 과격한 회의주의와 대결하는 인 식론적 관점에서 자연의 질서를 조명하는 방식으로 인간의 일상적 관심 사를 다루되 감각적 경험과 관찰을 토대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아울러, 생태환경적 배경이 이 본문의 배경으로 깔려 있어 그 지점의 신학적 통찰도 긴요한 맥점이다.8)

그 경험과 관찰은 첫째로 동물(새)과 인간을 비교하면서 음식을 얻는 현상을 주목하고, 둘째로 식물(백합화)과 인간의 비교를 통해 의복을 얻는 과정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보라”(ἐπιβλέπετε)라는 명령형 동사 는 고개를 들어 공중의 새로 시선을 쏘아 그 대상을 관찰하게 하고, 연이 어 고개를 아래로 내려 땅 위의 꽃을 바라보도록 유도함으로써 생각거리 를 제공한다.

이 동식물의 행태에 인간의 행태를 비유하는 데는 자연 속 의 창조질서 가운데 여러 피조물의 위계가 전제되어 있다.

동물과 식물 의 대표 존재로 새와 꽃이 아름다움의 기준으로 예시되고 있으나 인간은 최고 피조물로 암시된다.

동식물의 세계를 관찰하고 그 관찰을 통한 생 각의 축적된 경험 가운데 고대 철학자들은 동물의 어떤 행태를 연구하는 것이 합리적인 인간 행태의 바람직한 지향점을 연구하는 과학적인 방법 으로 도움이 된다고 인식하였다.9)

 

     8)  이 본문에 대한 동방정교의 생태신학적 관점으로 대표적 연구로 Ekaterini Tsalampouni, “‘Like the  Birds of the Sky and the Lilies of the Fields’: an Orthodox Eco-exegetical Reading of Matthew 6:  25-34 in an Age of Anxiety,” in A Testimony to the Nations. A Vigintennial Volume Offered to the Ecumenical Patriarch Bartholomew (Thessaloniki: Aristotle Univ. of Thessaloniki Press, 2011),  842-862 참조. 

     9)  Betz, The Sermon on the Mount, 473. 

 

그러한 비교 연구의 이유는 동물은 여 전히 자연 질서의 일부로 존재하지만 인간은 문명의 결과로 자연에서 소 외된 존재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 아래 고대인들은 문명 속의 인간이 그 풍습이나 관행에 따른 비합리적인 행동을 취하고 동물이 자연 의 본성에 따라 행동한다면 이성 없는 존재라는 동물에 대한 통상적 판 단이 그릇되고 오히려 실제로는 이성을 갖고 행동한다고 봐줄 수 있다는 관점을 취했다.

요컨대, 인간이 취해야 마땅한 적절한 윤리적 행동은 자연 현상에 대 한 면밀한 관찰로써 명확하게 드러나야 한다고 믿었기에 ‘보라’(ἐπιβλέπετε) 라는 명령형 동사는 관찰에 의한 경험적 진리야말로 하나님의 창조세계 를 인간 교육을 위한 학습의 장으로 보는 자연법의 생태신학적 관점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한글개역개정본에 ‘생각하여 보라’고 번 역된 또 다른 명령형 동사(καταμάθετε)는 세밀한 관찰을 통한 심화된 연구 와 학습을 함의하는 단어이다.

따라서 ‘보라’와 ‘생각하여 보라’라는 예수 의 언어는 새와 꽃이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근심하지 않는 이유에 대하여 경험적 지혜에 따른 자연신학적 추론을 제기한다.

새들의 먹이는 경작이 아닌 자연의 창고에서 나오기에 자연의 풍성함에 의존하고 또한 새들은 여러 복잡한 기획으로 미래를 통제하려는 과도한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는 것이다.

‘백합화를 보라’는 명령형의 표현도 마찬가지의 관찰과 경험 적 지혜를 유발한다.

길쌈과 수고를 통해 찬란한 아름다움의 대상으로 구전된 솔로몬 왕의 제복이 만들어진 기술 공정과 달리 이러한 인위적인 노력 없이 들판에 자연법을 따라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꽃 한 송이의 아 름다움은 고스란히 신적인 아름다움을 반영하면서 동물과 유사한 방식으 로 자신의 입을 것에 대한 근심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통찰로써 산상수훈의 예수는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반영된 자 연법의 이치를 따라 인간 상위의 그 존재론적 위계를 부인하지 않으면서 인간다운 삶의 방향과 방식에 대해, 인간 문명의 빛과 그림자에 부응하 여 동물과 식물을 포함하는 생태계의 교차적 학습과 깨달음이 어떻게 가 능한지 설파한다.

그 결과 하나님의 나라와 의라는 가치 지향에 있어 인 간이 문명에 도취하여 자연 만물의 세계에 나타난 삶의 지혜에 둔감해지 고 무엇이 더 중한지 망각함으로 오히려 특정 부분에서 열악한 존재로 전락할 수 있는 전복적 가능성을 암시한다.

아울러, 하나님의 창조세계 는 ‘전적인 타락’(total depravity)의 전통적 교리에 압도되기보다10) 하나님 의 신적 아름다움을 비추는 거울로써 꽃과 같은 자연 만물에 드러난 미적인 탁월함 가운데 여전히 만물을 새롭게 함으로 지속적인 창조 활동 (creatio continua)을 이어가는 신적 섭리가 현존함을 드러낸다.11)

 

    10)  본래 ‘전적인 타락’의 교리는 로마서 3:10-12, 5:12, 에베소서 2:1-3 등과 같은 바울서신의 일부 구 절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신적인 은혜와 무관하게 인간이 하나님을 접하거나 만날 수 없는 무능 력에 초점을 두고 창안되었으나 최근 그 문제점을 비판하는 저작들이 등장해 논리적인 맹점을  지적하고 있다. 특히 온라인 저작물인 Richard Wermske, Disputation: Total Depravity (Pragmat ic Journey, 2025); USASV Bible Studies, Debunking the Doctrine of Total Depravity, Spiritual In ability, and Autonomous Self (UASV Bible Studies official site, 2025) 참조. 

     11)  지속적인 창조(creatio continua)의 신학 사상은 고대 교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를 통해 처음  발화하였으나 이는 일찍이 요한계시록에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는 예수의 전언을 통해 그  신학적 암시를 제공하였다. 나아가 이 주제는 오늘날 과정신학, 자연과학의 다양한 이론과 맞물 려 신적인 창조에 대한 전통신학적 견해와 만물 진화의 상관관계를 조명하려는 시도로 이어지고  있다. Joseph Seckbach & Richard Gordon ed., Divine Action and Natural Selection: Science, Faith and Evolution (Singapre: World Scientific Publshing Company, 2008); John C. Polking horne, Science and Creation: The Search for Understanding (Conshohocken, PA: Templeton Press,  2006) 참조.   

 

2. 서편 구름과 남풍을 보고 천지 기상 분간하기(눅 12:54-56)

 

예수는 공생애의 기록 가운데 매우 드물게 기후에 대한 관심을 피력 한 바 있다.

누가복음에 실려 있는 예의 어록은 지혜어록으로 분류되지 만 전체 단락은 독립적인 전승 자료로 파악할 수 있다.

이전과 이후의 본 문은 예수의 지상 수훈과 파송 설교의 일부가 편집된 것으로 Q 자료를 그 출전으로 삼고 있지만, 예의 본문은 다른 복음서에 나오지 않는 누가 의 특수자료에 해당된다.

이것이 역사적 예수의 어록으로 소급되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시대의 흐름을 포착하지 못한 채 사회적 영적 퇴행 속에 전락할 위험에 놓인 초기 교회의 갈등 모티프들이 그 배후의 ‘삶의 자리’ 로 반영되어 있다는 양식비평적인 통찰은 제기된 바 있다.12)

 

    12)  Ezichi A. Ituma & Prince E. Peters, “The approach of conflict in Luke 12:49-59 through Form  Criticism and its application in Nigerian churches,” Verbum et Ecclesia 42/1 (2021), 1-6 참조. 

 

아울러, 이 본문들은 공통으로 ‘너희들’이라는 2인칭 복수를 대상으로 선포된 예언적 심판의 메시지이다.

전후의 두 문단은 제자들을 향한 것이지만 해당 본 문은 이 세대의 군중을 대상으로 그 ‘위선자’의 행태를 질타하면서 선포 된 것으로 서로 구별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의 본문을 종말론적 심 판의 예언으로 분류하기보다 지혜의 어록으로 분류하는 것은 예수가 그 위선자의 아둔한 행태를 기후 예측의 통상적 경험과 관찰의 기법에 빗대어 대조적으로 조명한 데 일단의 배경이 있어 보인다.13)

마태복음에 이와 유사한 어록이 엿보인다.

그러나 그 대상은 추상적 인 ‘군중’이 아니라 시대의 징후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바리새인과 사두 개인이라는 점에서 보다 구체적이다.

이 어록이 제시된 맥락도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여달라는 요청에 대한 응답으로 상 세하게 제시된다.

아울러 어록의 핵심 내용은 그 비교 대상이 기상에 대 한 관심이란 점 외에 그 구체적인 내용은 상이하다:

 

“너희가 저녁에 하늘 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 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마 16:2-3).

 

이에 비해 누가복음의 해당 어록은 하늘의 색감이나 아침과 저녁이란 그 시점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구체적으로 구름의 동향 과 바람의 향방, 그에 따라 기상과 기온의 예측을 적시할 정도로 자연 현 상에 대한 관찰과 경험적 지혜가 상세하다:

 

“너희가 구름이 서쪽에서 이 는 것을 보면 곧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고 남풍 이 부는 것을 보면 말하기를 심히 더우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니라. 외 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 간하지 못하느냐”(눅 12:54-56).

 

마태와 누가의 기후 예측의 샘플이 이렇 게 다른 것은 저자의 지역적 토양에 비추어 각기 예수의 어록을 상이하 게 각색한 결과일 수 있다.

가령, 누가의 기상 예측 사례로 제시한 남풍 과 서편 구름의 경우는 팔레스타인의 기후 현장과는 무관하고 오히려 지 중해 북쪽 해안이나 에게해 일대에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14)

 

     13)  물론 이 어록을 둘러싼 전체적인 맥락에 비춰 본문을 해석하면 그 성격을 도덕적 잠언으로 보기 보다 긴박한 종말론적 심판의 경고로 봐야 한다는 관점이 존재한다. 피츠마이어의 고찰에 의하 면 해당 본문(눅 12:54-56)은 12:49-59의 문맥 가운데 위치하며 이는 단순히 지혜의 어록이 아니 라 예수가 구약의 예언자적 전통을 환기시키면서 자신의 종말론적 의의를 알아채지 못하는 무능 력과 그로 인한 심판의 메시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J. A. Fitzmyer, The Gospel According to Luke X-XXIV, Anchor Bible 28A (Garden City, NT: Doubledy, 1985), 1004-1006 참조.

     14)  지역적 색채의 차이에 대한 이러한 기후 환경적 통찰은 타이센이 제기했는데 François Bovon,  Luke 2, tr. by Donald S. Deer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13), 256 참조.

 

당시 농경사회에서 기후에 대한 예측은 자연 현상을 토대로 관찰하여 터득한 대중적 지혜의 산물이었다.

그리하여 구름과 폭우/천둥의 상 관관계, 바람의 향방과 기온의 상호 연관성에 대한 정확한 인식은 농경 활동뿐 아니라 물론 일상의 삶을 영위하는 데 필수적인 경험적 지혜였 다.

특별히 바다를 항해하는 이들에게 기상에 대한 부실한 예측 정보는 그들의 안위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기에 관찰과 경험을 통해 축적된 이런 영역의 자연법적 원리는 긴요한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 대목에서 화자 예수는 천지의 기상을 분별하는 자연법의 경험적 지혜가 그들의 시대를 분별하여 미래를 예언하는 역사적·사회적 지 혜로 전이되지 못하는 한계를 탄식한다.

이처럼 기후와 시대가 상관되고 과거 또는 미래가 현재의 시점과 연결되어 자연법의 진리가 인간 문명의 지혜로 전이되지 못하는 한계를 적시한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평가의 척도는 그러한 문제를 노정하는 군중 을 향하여 예수가 ‘위선자들’(ὑποκριταί)이라고 칭했다는 사실이다.

이 어휘 는 본래 자신의 내면적 진실과 무관하게 연기 연출을 일삼는 연극배우 또는 그런 행위로써 자신의 속내를 기만적으로 꾸며 드러내는 자들이란 의미이다.15)

그렇다면 여기서 예수의 질타를 받는 대상자들은 기후의 동 향에 대한 예측은 물론 시대의 징조와 제반 현상, 그로부터 요청되는 언 행의 기준 등을 두루 잘 파악하고 있지만 그것을 사적인 이해관계로 인 해 말과 행동으로 드러내지 않거나 말로써만 그럴듯하게 드러내고 행동 으로 실천하지 않는 자가당착의 심리 상태나 행동 양태를 겨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요컨대, 특정 개인이나 그룹의 단순한 무지가 문제가 아니라 군중 전체의 잘못된 맹목이나 아집이 그 위선의 요체라는 것이다.16)

 

     15)  이 헬라어의 고전적 개념에 대해서는 Heinz Seesemann, “ὑποκριτής,” TDNT vol. 8, 559-569 참 조.

     16)  Ibid. 상기 소논문의 논평에 의하면 누가복음 12:54-56에서 예수는 이 ‘위선’의 비판을 바리새인 이 아니라 종말론적 ‘현재 시간’을 분별치 못하는 군중들에게 적용하며, 그들에게 위선의 요체는  단순히 ‘무지’(ignorance)가 아니라 ‘잘못된 맹목’(culpable blindness)이란 점을 부각시킨다. 

 

또는 자연 현상에는 적극적으로 정확하게 반응하면서 인간 사회의 시대적 현상에는 소극적으로 반응하거나 외면하는 이율배반적 괴리를 질타한 것으 로 파악된다.

그 연장선상에서 의미심장한 전제는 역사 속에 구현되는 인간 사회의 시대적 현상이 자연 현상의 일부로 통합적으로 인식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나아가 자연법적 생태신학이란 견지에서 신학과 인간학 이 결국 개별적인 관심사일 수 없다는 통찰도 그 저변에 깔려 있다.17)

 

     17)  이 점에서 보봉의 다음 논평은 매우 수긍할 만한 통찰이다: “누가의 그리스도는 마치 초자연적인  어떤 것이 자연에 강제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또 다른 세계로의 도피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가 제 안하는 것은 자연만큼 역사도 주의를 기울여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자연 현상에 정 확하게 반응하면서 당면한 (역사적) 사건에 수동적으로 늘어진다면 성서적 의미의 위선이라는  것이다.” Bovon, Luke 2, 255. 

 

그 러나 자연 현상과 그 징조에 대한 생태적인 지혜는 감각적으로 관찰하고 경험하면서 축적되는 것이지만 인간 사회와 시대적 징조는 겉으로 드러 나는 부분보다 감추어진 속내가 복잡하기 때문에 단순한 감각의 차원을 넘어 깊은 인지적 분별과 판단을 요구한다는 차이점도 엄연히 존재한다.

 

Ⅲ. 바울의 묵시록적 상상력과 새 창조 비전

 

1. 모든 피조물의 탄식과 그 이후(롬 8:18-25)

 

로마서는 갈라디아서에 이어 바울의 이신칭의 구원관을 대표하는 서 신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의가 역동적으로 발현된 결과를 제시한다.

이 땅에 죄악이 만연하였고 하나님의 의의 기준으로 죄인 아 닌 자가 없기에 스스로 그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인간에게 하나님의 의는 양면적으로 발현하였다.

먼저 부정적으로 발현하여 그 의 는 정죄와 심판의 기준을 제시하였고, 동시에 긍정적으로 발현하여 자비 와 구원의 출구로 기능하였다는 게 로마서 복음의 핵심이다.

이어지는 로마서 6-8장의 논의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매 개로 전개된 이신칭의의 구원은 죄와 사망으로부터의 해방, 율법으로부 터의 해방, 하나님과의 종말론적인 연합 등의 혜택을 베푸는 것으로 제 시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 대상이 종래의 언약 백성인 유대인뿐 아 니라 이방인에게도 적용되었다는 것인데, 로마서 8장의 상기 본문은 여 기서 더 확장하여 모든 피조물에까지 그 범위를 확장하여 이 구원론의 우주적 충만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특별하다.18) 로마서 8:18-25에 나오는 세세한 개념에 대한 해석은 각양각색으로 다양하게 포진한다.

가령, 피조물(κτίσις),19) ‘하나님의 아들들’(υἱοὶ τοῦ θεοῦ), ‘허탄한 것’(ματαιότης)으로 번역된 원문의 어휘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대상을 지칭하는지, 그 피조물이 우리와 “함께 신음한다”든지, “썩어짐의 종노릇”을 하고 있다거나 “허무함에 굴복”한다는 표현이 어떤 의미를 내 포하고 있는지 다양한 관점의 다채로운 해석이 가능하다.20)

이전에는 이 러한 개념들이 인간 중심의 구원론적 관점에서 그 의미망을 조율해왔으 나 생태신학적 관점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20세기 후반부터 이 구절은 이신칭의의 구원의 혜택이 단지 유대인/이방인의 배타적인 대립 구도를 넘어 뭇 피조물의 세계로 확대 적용된다는 맥락에서 창발적인 해석이 시 도되어왔다.21)

 

     18)  로마서 1-8장까지의 맥락에서 추출한 이러한 주제는 다음의 분석을 참조할 것: 차정식, 『성서주 석: 로마서』 1권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9)의 구조 분석 참조.

    19)  천세종, “로마서 8장 18-25절에 나타난 바울의 ‘창조’이해와 종말론적 구원,” 「장신논단」 45/2  (2013), 93-116에 의하면, 한글개역성경에 ‘피조물’이라 번역되는 이 어휘는 단순히 인간을 배제 한 자연 만물을 통칭한다기보다 인간을 포함하는 모든 피조세계 전반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개념 이라고 봐야 하며, 그 피조물이 공유하는 종말론적 신음과 해산의 고통도 우주적인 차원의 구속 을 위한 은유적인 표현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20)  이러한 개념들에 대한 연구와 논의의 요약으로 데이빗 호렐, 크리스토퍼 사우스게이트, 셰릴 헌 트/신현태 옮김, 『생태위기 상황에서 다시 읽는 바울 서신』 (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2023),  92-99 참조.

     21)  가령, 쥬엣은 바울의 이러한 표현이 “아담과 그 후손에 의한 환경파괴를 염두에 두고” 자연 세계 에 대한 인간의 학대 문제를 선지자적 통찰로 제시한 것으로 보았다. Rober Jewett, Romans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07), 513; [Idem], “The Corruption and Redemption of Creation:  Reading Rom 8:18-23 within the Imperial Context,” in Richard A. Horsley ed., Paul and Ro man Imperial Order (Harrisburg: Trinity Press International, 2004), 25-46 참조.

 

이 본문을 자연 만물의 공생적 창조질서란 견지에서 해석할 때 바울이 이 대목에서 사용하고 있는 표현들은 다분히 유대교의 묵 시문학적 토포스를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 공통된 학자들의 견해다.22)

그 저간의 함의는 인류의 첫 조상이 범한 불순종의 패역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죄악과 사망이 들어와 온 세상이 부패로 물들었으며, 그 안에 조화 를 이루며 살아야 할 피조물 간의 관계도 왜곡되고 타락하여 서로 물고 뜯으며 적대적인 관계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묵시문학적 세계관 속에서 피조 세계를 맡아 대리적 주체로 관리, 경영, 감독해야 할 청지기 로서 인간의 타락과 사망은 피조 세계 전반을 죄악으로 감염시켜 필연적 으로 그 존재 자체가 허무함과 부패의 실존 상황을 벗어날 수 없는 숙명 의 족쇄를 차게 되었다는 것인데, 그 대표적인 결과가 힘겨운 생계노동, 고난과 질병, 죽음 등이다.

그 억압의 상황이 하나님의 의가 부정적으로 발현된 정죄와 심판의 결과였다면 그로부터 구원의 메시지가 당도한 그 시점까지 인간과 “함께 신음하는” 기간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 구원받기를 갈망하는 과 도기라고 할 수 있다.

유대교 묵시문학의 맥락에서 그 ‘하나님의 아들들’ 은 일차적으로 천사들을 염두에 둔 기표라고 할 수 있다.23)

하나님의 의 가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긍정적으로 발현되어 자비와 구원의 혜택 이 마침내 피조 세계에도 미친 이후의 시점에서 이 문구의 확장된 지시 대상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양자로 입양되었고 이제 복음 선교의 선봉에 선 그리스도인으로 확대해 해석될 수 있다.24)

 

     22)  이 문단이 자리한 유대교 묵시문학적 배경에 대해서는 J. Louis Martyn, “The Apocalyptic Gos pel in Galatians and Romans,” Theological Issues in the Letters of Paul (Nashville: Abingdon  Press, 1997), 133-150 참조.       23)  부정적인 맥락에서 이 ‘하나님의 아들들’ 문구로써 천사들을 지칭하는 용례의 원조는 창세기  6:1-4에 나오는 거인족 네피림 설화이다. 이 흥미로운 주제의 전승사적 궤적에 관해서는 Jung Sik  Cha, “The Mythological Locus of ‘Nephilim’: A Biblical Origin of Dualism,” Korean Journal of Christian Studies 75/4 (2011), 21-41 참조.

      24)  데이빗 호렐, 크리스토퍼 사우스게이트, 셰릴 헌트/신현태 옮김, 『생태위기 상황에서 다시 읽는  바울 서신』, 112-113 참조.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하나님의 아들을’의 정체를 성화된 신자들의  공동체적 명칭으로 보거나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인간의 신적인 사명 내지 역할을 강조하는 맥 락에서 해석하기도 한다: Susan Eastman, “Whose Apocalypse?: The Identity of the Sons of God  in Romans 8:19,” JBL 121/2 (2002), 263-277; David-Ehab Elias, “Romans 8: A Discourse of Deification according to John Chrysostom,” Journal of Early Christian History 14/2 (2024), 66-89;  David Miller, “Romans 8:19-22, Genesis, and the Cosmic Fall,” (2018) at: https://www.acade  mia.edu/36577850/Romans_8_19_22_Genesis_and_the_Cosmic_Fall [2025.12.5. 검색]. 

 

그러므로 그들에의해 시작된 복음 전파가 유대인에서 이방인으로, 인간에서 모든 피조물 의 세계로 확장되기 시작한 시점에서는 뭇 피조물도 그 사망의 종노릇 하는 허무한 존재의미를 벗어나 구원의 소망이 발동했음을 암시한다.

그 러나 바울은 그 구원의 소망과 혜택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내포하는지 상 설하지 않는다.

나아가 인간의 타락이 여타의 피조물을 죄악과 부패로 오염시켰듯이, 이신칭의의 혜택 가운데 그 인간의 구원론적 회복만으로 피조물이 마치 저절로 회복될 수 있다는 종말론적 비전을 묵시문학의 토 포스로 암시할 뿐, 그 과정과 내용에 대한 신학적 사색이 그 이상 구체화 되지 않는다.

이러한 피조물에 대한 묵시록적 전망은 그 타락의 시작과 마찬가지 로 종말론적 구원 또한 철저히 인간의 실존 상황에 종속적이다. 죄악의 부패 상황이든, 구원의 희망 사항이든, 그 영향 관계 또한 인간에서 여타 의 피조 세계로 일방통행적이지 쌍방통행적이지 않다.

이는 오늘날 우리 가 발견하고 경험해온 인간과 생태환경 사이의 자연법적 질서와 어긋나 는 지점이다.

물론 이러한 묵시문학적 비전 속에는 인간도 아직 양자 됨 의 지위를 얻기 위해 속량을 기다리는 존재로 묘사되며 이신칭의로 말미 암은 구원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탄식의 ‘과도기’(interim period)에 처 해 있다.

그러니 당연하게 그 과도기적 한계에 직면한 여타의 피조물은 최초의 타락 이후와 종말론적 구원의 완성 사이에 끼여 아직 실현되지 않은 종말론적 소망 가운데 그 과도기의 탄식과 부패를 감내하는 것 외 에 별다른 존재론적 위상이나 생태 미학적 긍정성의 의미를 추출하기 어 렵다.

가령 예수가 들에 핀 백합화와 공중 나는 새에 대한 관찰을 통해 발견한 교훈, 즉 근심에서 자유로운 해방적 존재의 의미나 구름과 바람 의 현상과 관련해 축적된 경험이 만들어낸 일상적 지혜의 여유도 찾아보 기 어렵다.

우리가 여전히 아름다운 창조의 빛을 머금고 있는 자연물의  아름다움과 동떨어진 채 다만 이 시대/세대를 향한 음울한 투쟁적인 현 실의 부정성만 도드라질 뿐이다.

 

2. 만물의 화해와 갱신의 비전(골 1:15-20)

 

골로새서의 상기 본문은 고등기독론(high christology)의 극치를 보여 주는 사례로 만물을 그 대상으로 삼고 그리스도와의 종말론적인 연합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여기서 ‘만물’은 인간과 자연 만물 모 두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삼라만상을 통칭하는 우주론적 범주를 아우른 다.

이는 통상적으로 그레코-로마 종교와 유대교의 예전적 맥락에서 유 사하게 정형화한 사례를 탐지할 수 있는 초기 기독교의 찬송시로 그 양 식 범주가 분류되는데 시기적으로는 바울 이전 단계의 전승을 반영한 다.25)

그 양식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른 한편으로 헬레니즘 시기의 예전 적 문학적 스타일을 차용하여 기독론적 맥락에서 유대교 지혜문학의 전 통을 전유한 특징도 엿보인다.26)

아울러 그 신학적 주제의 범주는 신학 적으로 태초론과 종말론, 교회론과 선교론을 두루 포함한다.27)

 

     25)  이에 대한 대표적인 연구 논문으로 James M. Robinson, “A Formal Analysis of Colossians 1:15 20,” JBL 76/4 (1957), 270-287 참조.

    26)  Eduard Lohse, Colossians and Philemon: A Commentary on the Epistles to the Colossians and to Philemon, Hermeneia, tr. by William R. Poehlmann and Robert J. Karris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71), 47-59 참조.

    27)  기실 이 기독론적 찬송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자연 만물의 화해를 전망하는 원융일체의 우 주적 기독론에서 우주적 교회론으로 나아가는 신학적 근거를 제시한다. 서동수, “골로새서 1:13 20에 나타난 우주적 교회론,” 「신학논단」 87 (2017), 151-180 참조.

 

골로새서 는 바울의 후기서신으로 분류되는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학적 이해 는 물론 기독교 신앙의 다양한 주제를 바울 이후의 변화된 상황 속에 확 대 심화, 변용하는 역동적인 흐름을 보여주는 문서다.

이러한 문서상 특 징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본문의 주제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와 역할 을 범우주적 차원으로 확대하여 신학적 의미를 부여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기독론적 관점은 예수를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타이틀로 인식한 것이 다.

창세기 1:27-28의 기록대로 하나님은 최초의 인간을 당신의 신적 ‘형상’으로 지어냈으나 타락과 실낙원으로 실패를 초래했다.

그러나 마지 막 (완성된) 인간으로 내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신적인 형성으로 지 어낸 단순한 피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 그 자체로 제시된 것이 다.28)

 

     28)  창세기의 상기 본문과 골로새서의 해당 본문이 서로 긴밀하게 연계되어 ‘형상’(eikon) 모티프를  매개로 그 신학적 사유를 증폭시키고 있음은 여러 측면에서 확인된다. Grand Macaskil,  “Union(s) with Christ: Colossians 1:15-20,” Ex auditu 30 (2017), 92-107 참조.

 

그 특출한 구세주는 창조주의 창조 행위에 함께 가담하여 만물을 창 조하되, 그 안에 가득 찬 모든 것들의 창조에도 주체적으로 관여했다고 본다.

가령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 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즉, 창조의 원인과 목적을 그리스도 한 분 이 다 담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송영 문구를 저자는 그리스도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다”(골 1:17)라고 표현한 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는 물론 만물과의 관계에서도 ‘머리/근 본’이며 ‘으뜸’의 자리를 차지한다.

동시에 예수와 만물의 관계를 저자는 ‘충만’(πλήρωμα)의 관계이다.

그리스도가 만물의 으뜸이 되기 위해서는 그 안에 만물이 충만하게 거하는 것이 마땅하며, 이는 그리스도가 관여한 창조질서의 재구성을 위해서도 필요한 조건이다.

그 목적은 타락하여 어 그러진 만물의 무질서를 재정립하여 그리스도와 화목하게 하는 것이다.

저자는 그 방법으로 ‘십자가의 피’를 제시한다.

저자는 십자가의 피를 단순히 유대교의 제의적 모형 속에 제한하지 않고 또 이방인을 유대인과 화목하게 하여 그 배타적인 장벽을 허문다는 바울의 이전 신학적 논리로 국한하여 조명하지 않는다.

그 속량의 피는 단순히 개별적인 범주의 죄를 씻어 정결하게 회복하는 차원을 넘어 “땅 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포함하는 모든 만물을 그리스도와 화목하게 함으로 창조의 기본 질서인 ‘화평’을 온전히 이루어내는 데 궁극적인 지향점이 있다는 것이다.

십자가의 구원 신학이 이신칭의의 신 학에 기초한 로마서 8장 본문의 제안대로 모든 피조물을 포함하는 범우 주적인 차원으로 확대하여 해석된 셈이다.

매우 간결하게 응축된 이 그 리스도 중심적 자연사와 인류사의 운명과 향방은 창조주와 분리, 이탈된 인간과의 화해를 넘어 피조 세계의 만물을 다시 온전한 상태로 회복시켜 만물의 새 창조가 곧 구원과 직결되는 화평의 구원론을 보여준다.29)

 

     29)  이 지점에서 골로새서 본문에 나타난 모든 만물(τα πάντα)을 아우르는 화해의 구원론은 인간과 의 화해를 제시한 고린도전서 5:18-20에서 진일보한 신학적 관점으로 평가된다. 이 본문에 대한  생태신학적 해석의 관점이 주목되는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이다. 데이빗 호렐, 크리스토퍼 사우스 게이트, 셰릴 헌트, 『생태위기 상황에서 다시 읽는 바울서신』, 126-135 참조. 

 

이렇듯 다분히 도식적인 구도로 표현된 그리스도에 대한 송영적 선 언은 만물이 왜 다시 그리스도와 충만하게 연합하여 화목을 이루어야 하 는지, 그 신학적 전제가 만물의 타락과 무질서라면 그것은 어떤 연고로 생겨난 현실인지 구체적인 해명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리스도는 마치 무 조건적 ‘블랙홀’처럼 모든 문제를 자동으로 빨아들여 그 어긋난 것들을 해소하여 다시 질서를 매겨주는 만사형통의 자동장치처럼 묘사된다.

아 울러, 그 자신이 모든 존재를 향해 최종적인 판단과 권위의 유일한 절대 기준처럼 등극하여 모든 만물의 구성분자들은 그의 존재를 빛나게 하려 고 존재하는 기능적 소품처럼 인식될 우려도 없지 않다.

아울러, 딱히 묵 시록적인 음울한 분위기가 도드라진 것은 아니지만 이 만물의 내용에 대 해 자연 세계를 위시하여 별다른 상황 묘사가 없기에 구체적인 생명체로 서 실감이 나지 않는다.

게다가 인간도 만물의 일부로 인식되어 자연법 적인 맥락에서 유기체 관계로 전제되지만 주로 권세 있는 자들을 예로 제시함으로써 인간계의 실상이 추상화되는 맹점이 있다.

무엇보다 결핍 된 점은 자연 만물과 인간계 사이의 화해, 자연 만물 내부의 피조물 간 화해에 대한 관심이다.

이러한 신학적 비전의 추상성으로 인해 생태신학 적 맥락에서 볼 때 그리스도와 모든 만물이 화목하게 되어 종말론적으로연합한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것이 현재의 시점에서 어떤 선교적 실천적 과제를 부여하는지 모호하다.

 

Ⅳ. 공통점과 차이점 비교

 

예수의 생태주의적 감각에 기초한 자연법사상을 살펴보기 위한 사례 로 앞서 분석한 사례 외에도 복음서에 풍성하게 나오는 그의 자연 친화 적 비유와 경험, 농경 신학적 이미지 등도 그가 성장한 갈릴리의 자연환 경과 잇닿은 경험적 현장의 구성물이란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30)

 

    30)  정병진, 『예수의 비유와 농경신학』 (여수: 부크크, 2021) 참조.  

 

바울 또한 앞서 거론한 본문 외에도 “그[=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다”는 로마서 1:20이 그의 신학 배후에 자연법 사상의 영향을 검증하는 주요 증거로 조명받곤 했다.

여 기서도 분명히 대비되는 점은 예수의 경우는 철저히 경험적인 지혜와 통 찰이 그 자연 만물의 이해 저변에 깔려 있는 데 비해 바울의 경우는 심화 된 사유에 기반한 종교철학적 원리가 그 근간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이상의 분석을 통해 우리는 자연을 대하는 예수와 바울의 신학적 통 찰 가운데 몇 가지 공통점과 차이점을 추출해볼 수 있다.

   첫째, 예수와 바울은 모두 자연 만물을 하나님의 창조세계 안에서 신 적 섭리를 따라 인간과 공존하며 살아야 할 한 분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전제로 하고 있다.

동시에 ‘구원’이란 개념을 최대한 광의로 잡아 조명할 경우 동식물을 포함해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돌보는 은택을 힘입어 살아야 할 존재라는 점에서 구원받아야 마땅하고 구원받을 만한 대상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도 공통적인 인식의 기반으로 판단된다. 

   둘째, 그 구원이 우리가 통상적으로 인식하는 영혼의 구원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범주 내에서 타락하고 소멸할 운명의 족쇄를 벗어나 하나님 의 역동적인 은총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이른바 만물을 새롭게 하는 하나 님의 창조 갱신 방식과 결부되어 있다는 점도 두 인물 모두의 인식 가운 데 공통적이다.

   셋째, 그 구원의 방식이 고대 유대교의 묵시주의적 세계관 가운데 나 타나 자연 만물과 인간 역사 속으로 깊숙이 각인되었고 그 인식의 관점 과 표현의 방식이 고대 수준의 자연철학적 통찰과 신화적 언어의 자장을 맴돌고 있다는 점도 두 사람 모두 유사하게 발견된다.

이는 1세기 유대교 의 흐름 속에서 신학적 사유의 질료를 공급받았다는 공통 기반에서 연유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넷째, 유대교의 창조 이야기와 구원사적 전통을 기반으로 인간과 여 타 피조물의 등급에 따른 수직적 위계질서 또한 양자 간의 공통점으로 명확하게 드러난다.

예수는 인간이 공중의 새와 들판의 꽃을 통해 하나 님의 보편적 섭리와 은총의 현장을 발견하며 깨달을 수 있다는 교훈을 전달함으로 피조물 간의 교차적 배움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러나 전후 의 맥락을 살펴보면 그렇게 등급이 낮은 피조 생명도 창조주가 먹이고 입히는데 하물며 인간 생명, 특히 언약 백성의 생존은 얼마나 더 깊은 관 심을 기울이겠느냐는 데 논지의 초점이 놓인다.

바울 또한 인간 외에 여 타의 피조물이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죄악의 감염이 불가피했듯이, 그 가운데 썩어짐의 종노릇 하는 데서 해방되어 구원에 이르기 위해 인간과 함께 탄식하면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남을 갈망하는 의존적 존재로 묘사한다.

한편 자연 만물을 대하는 두 사람 사이의 생태론적 인식과 그 관점의 차이점도 엄연하다.

  첫째 예수는 당대인들의 구체적인 삶의 자리, 특히 먹고 입고 사는 일상적 현실에 초점을 맞춰 현재의 염려에서 해방되는 지혜를 제시하였고 그 매개수단으로 관찰과 경험을 중시하였다.

이에 비 해 바울은 유대교 전통의 묵시록적 토포스에 의지하여 현재 당면한 인간의 고난과 피조물의 탄식을 미래지향적이고 종말론적 비전 속에 포괄적 으로 수렴하여 다소 추상적인 비전 속에 보여주었다.

이는 바울이 유대 교 묵시문학의 전통에 의존하되 그리스도의 구원을 모든 피조물과 인간 의 배타적인 경계 넘어 대국적인 견지에서 설파한 점과 예수가 묵시주의 적 세계관을 전제로 하되 지혜문학의 신학적 전통을 현실에 접맥시켜 통 찰한 점의 차이로도 해석된다.

   둘째, 바울의 경우 동식물을 포함하는 피조 세계의 만물이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특별한 존재의 나타남에 전적으로 의존하여 그들의 구원 을 갈망하는 것과 달리, 예수의 경우는 자연의 본성에 따라 순응하여 살 아가는 동식물로부터 먹고 입는 것에 대한 염려에 매여 사는 인간이 배 울 수 있고 배워야 하는 교훈을 강조한 점이 구별된다.

다시 말해 바울의 경우 인간 외의 피조물이 인간과의 관계에서 인간의 죄로 말미암은 피해 자로 설정되고 인간은 가해자로서 그 인간의 구원으로 말미암는 수혜자 의 위치로 자리매김되는 데 비해, 예수의 경우는 자연 만물의 현상이든, 동식물의 생태적 행태든, 인간에게 나름의 교훈과 영향을 끼치는 시혜자 의 기능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는 것이다.

   마지막 셋째로 예수에게는 바람과 날씨 같은 자연 현상에 대한 경험 적 예상이 당대의 역사적 사회적 실존의 자리로 확대 적용되지 못하는 실천적 결핍이 비판의 대상이었다면, 바울에게는 하나님의 구원사나 섭 리적 계시, 나아가 인간의 회개와 각성, 자기 갱신 등에 이런 자연 현상 이 적극적인 매개 변수로 작용하지 못하는 점이 다르다.

바울에게 그 자 연 만물은 하나님의 창조란 관점에서 그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 성’을 투사함으로써(롬 1:20) 그 영광을 드러내며 변증하는 객관적 상관물 로서 그 존재 의미와 가치가 확인될 뿐이다.

 

 

Ⅴ. 제언: 생태기후 문제에 대한 성서해석학의 모형

 

생태환경 문제가 요즈음 기후문제로 확산되면서 ‘기후재앙’이란 말이 생겨날 정도로 이제 피부로 체감할 만한 위기의식이 고조되고 있다.

신 학 분야에서 ‘생태신학’이라는 말은 그 연원이 꽤 오래되었고 환경파괴와 오염이 심각해져 갈수록 점점 더 그 중요성이 강조되는 분위기이지만 태 생적으로 ‘신학적 담론’이란 범주에서 머무르는 경향성 때문에 딱히 문제 해결에 직접적으로 큰 힘을 보태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기 독교 신학계에서 생태문제와 관련하여 인식의 큰 관점은 다양하게 제기 되었는데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되어 왔다.31)

 

    31)  생태신학은 생태영성과 관련하여 다양한 주제로 주로 조직신학자들에 의해 탐구된 주제로 국내 에서도 근래 왕성한 연구와 논란이 제출되어왔다. 김도훈, 『생태신학과 생태영성』 (서울: 장로회 신학대학교출판부, 2009); 장도곤, 『예수 중심의 생태신학』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2).

 

   첫째, 주로 전통적 보수주의의 입장은 묵시록적인 종말 신앙에 치우 쳐 아무리 애쓰고 힘써 개선의 노력을 기울여도 그 근간에서 인간의 죄 성과 인류의 타락상이 지속되는 한 신적인 심판은 불가피하고 이와 함께 이 세상 만물도 불에 녹아버리듯 결국 다 소멸해버리리라는 비관주의적 인식이 강한 편이다.

그러니 환경생태 문제나 기후 위기에 에너지를 쏟 기보다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최우선의 선교적 과제라는 입장이 대두된다.

   둘째, 주로 진보적인 관점에서는 창조신학에 입각하여 하나님 이 인간에게 맡겨주신 자연 만물에 대한 돌봄의 청지기직 사명을 잘 살 려 최선을 다해 창조질서를 보호하고 보존하는 것이 그 본연의 역할에 합당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또한 하나님의 창조가 단 한 번으로 끝 난 게 아니라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은총 속에 지속적인 재창조가 이어 지기 때문에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창조주와의 언약적 파트너십의 관계 속에 생태환경 보전에 충실히 임하여 그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관점도 이런 계통이다.

전자의 관점에 서면 자연 만물과 생태 질서는 인간의 문명을 세우기 위해 정복하고 다스려야 할 종속 변수로 전락하기에 근대 이후 과학기술 문명이 자행해온 대로 발전 또는 개발이란 이름으로 환경파괴와 오염을 정당화하는 논리에 빠지기 쉽다.

반면 후자의 관점이 극단으로 흘러가 생태 근본주의의 방향으로 흐르다 보면 인류 문명 자체가 죄악시되고 자 연환경과 만물은 인간의 존재 가치와 대등하게, 또는 때로 피해 보상적 으로 우월한 위상에서 모든 개발 행위를 저당잡아버리는 방패막이로 작 용하기 쉽다.

그래서 ‘인간은 수육이나 물고기를 먹어서는 안 되고 채식 만을 해야 한다’는 식의 경직된 금욕주의 교리를 내세우기도 한다.

이 모 든 입장과 관점은 종종 하나님의 말씀이란 권위를 입은 성경의 특정 구 절을 인용, 참조하면서 정당화되기도 하고, 반대편의 주장을 비판하고 반박하는 논리를 양산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하게 인지해야 할 사안은 고대의 세계관을 반영하는 성경은 자연 만물에 대해서도 그 과학적 인식의 척도가 미진하거나 때로 너무 협소하여 오늘날 환경생태 문제 해결을 위한 중요한 기준으로 차용하기에는 여러모로 무리한 점이 있다는 것이다.

가령, 앞서 살펴본 대로, 바울이 묵시주의적 세계관에서 견인한 종말 론적 구원론이나 십자가의 피로 만물이 그리스도와 화해함으로 창조와 구원을 온전히 이루어낼 수 있다는 신학적 논리는 오늘날 복잡다단하게 얽히고설킨 생태환경 문제, 기후재난의 문제를 풀어내는 실천적 열쇠로 작용하기 어렵고 경우에 따라 매우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통 찰의 창발적 비전은 높이 평가할 수 있다. 모든 피조물이 인간의 한계적 운명과 공생적 인연으로 엮어져 있다는 유기체적 생명관과 구원론은 오 늘날 우리가 외면한 여타 피조물의 탄식에 귀 기울여 신적인 자비심을 확대 실천할 만한 근거를 제공한다.

만물과 그리스도의 화해 역시 무궁 한 신적인 창조 영역과 한정적인 피조 세계의 영역이 원융일체하여 샬롬 의 목표를 지향한다는 비전을 통해 오늘날 인간중심주의의 폐해를 성찰 하는 신학적 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에서 분명한 한 차정식 | 묵시록적 비전에서 관찰과 경험의 지혜로 - 예수와 바울의 자연신학 비교 분석 33 계도 통찰할 수 있어야 한다.

가령, 이즈음 인문 지성의 첨단 이론인 사 변적 실재론, 객체지향 존재론, 행위자연결망 이론 등에 의하면32) 창조 세계의 상관관계, 다시 말해 동식물은 물론 ‘사물’로서 피조물이 인간의 역사와 그 역사의 주체적 발전 과정에 작용하는 복합적 인과관계는 성서 의 단순 논리나 흑백의 윤리적인 기준으로 포착할 수 없는 혼종적 복잡 계이다.

이러한 인문학 첨단 담론의 도전 아래 오늘날 신학도 영향을 받 으면서 그 미래의 방향을 개척해 나가는 상황이다.33)

 

     32)  브뤼노 라투르, 그레이엄 하먼 등의 선구적 통찰과 함께 진척된 이러한 담론 가운데 기존의 창조 세계에 고정된 주체의 위계를 해체하면서 동식물은 물론 다양한 사물 또한 나름 주체적 역량을  가지고 외부의 자극에 이용당하고 동시에 저항하면서 다양한 사건에 관여함으로써 제 존재론적  위상을 드러낸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브뤼노 라투르/황희숙, 『젊은 과학의 전선: 테크노사 이언스와 행위자-연결망의 구축』 (서울: 이카넷, 2016); 부루노 라투르/홍성욱 옮김, 『인간·사물· 동맹-행위자 네트워크 이론과 테크노사이언스』 (서울: 이름, 2010); 그레이엄 하먼/김효진 옮김,  『사변적 실재론 입문』 (서울: 갈무리, 2023) 참조.

    33)  애덤 S. 밀러/안호성 옮김, 『사변적 존재론』 (서울: 갈무리, 2024); 전현식, 김은혜 등, 『생태 사물  신학』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22); 전철, “신, 인간, 사물 - 신의 창조와 사물의 진화,” 「신학사상」  200 (2023), 95-113 참조.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생태환경 문제에 대한 성서해석학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유대교/기독교가 물려준 묵시주의적 세계관과 종말 신앙의 부정적인 면모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거쳐 또 다른 지적인 세례가 필요 하다.

피조 만물이 신적인 영광을 드러내는 보조적 소품이란 인식과 하 나님/그리스도가 그 만물 위에 군림하며 호령하는 권위주의적인 주체라 는 관점을 넘어서는 게 급선무다.

그 대신 그 만물이 하나님의 신적인 충 만이 이루어지는 현장이며, 그 만물의 자연법 질서가 하나님의 창조 의 미를 반영하는 거울이라는 진일보한 관점이 긴요한 것이다.

이와 동시에 보통 자연 만물의 보편적 희생과 피해 사례를 강조하여 인간을 억압하거 나 주눅 들게 하는 생태 근본주의 관점도 지양하면서 우리는 다시 소박 한 예수의 관찰에 입각한 경험적 지혜로 주변의 자연계를 합리적으로 환 대할 필요가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우리에게는 잿더미 속에 꺼진 불씨가 아니라 여전 히 영롱하게 현존하는 불꽃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에 공감하는 감각적 영성이 요청된다.

그러한 자연 현상에 투사된 자연법의 질서가 오늘날 이 시대의 인간 사회를 통찰하는 지혜로 발현되고 이에 따라 담대하게 역사 발전의 크고 작은 현장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공동체의 지혜로 숙성하 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이는 바울신학의 묵시주의적 음울함과 이 세대 의 결핍된 지혜를 향한 예수의 탄식을 넘어 오늘날 생태환경 문제와 기 후위기 문제에 접근하는 성서해석학의 모형이 다다를 수 있는 최선의 목 표치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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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초록

성서신학은 생태환경에 대한 얼핏 모순되는 듯한 두 가지의 신학적 명제를 제시한다. 그 하나는 이 세상과 천지 만물은 그 죄악으로 인해 전 적으로 부패한 상태이며 이는 종국적으로 신적인 심판으로 소멸될 것이 며 그만큼 헛된 한시적인 존재라는 묵시주의적 종말의 비전이고, 또 다 른 하나는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 결과로 주어진 소중한 선물이며 따라서 그의 언약 백성은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창조주의 뜻을 따라 그것을 보 존하고 관리해야 할 청지기적 사명이 있다는 윤리적 책무이다. 이 논문 은 이와 같이 길항하는 두 가지의 명제 사이로 신약성서의 핵심 인물인 예수와 바울의 자연신학적 통찰을 분석적으로 예증하고 그 가운데 상호 비교를 통해 둘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평가하는 데 초점을 둔다. 그 평가의 준거는 이른바 ‘자연신학’이라 칭해지는 관점으로 고대 헬라철학, 특히 아리스토텔레스로 소급되는 이 신학적 유산이 예수와 바울의 서사 가운데 어떻게 성육하여 드러났는지 그 단면이라도 탐사하여 그 신학적 의미와, 나아가 오늘날 기후재난의 현실을 유념하여 그 실천적 교훈을 챙겨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희소한 사례일망정 분석의 대상으로 마태복 음 6:26-34, 누가복음 12:54-56, 로마서 8:19-23, 골로새서 1:15-20 을 주요 텍스트로 소환하여 다루게 될 것이다.

주제어 예수, 바울, 자연신학, 묵시록적 비전, 경험적 지혜, 기후위기, 마태복음 6:26-34, 누가복음 12:54-56, 로마서 8:19-23, 골로새서 1:15-20

 

Abstract

From Apocalyptic Constraint to Experiential Insight — Rethinking Natural Theology in the Case of Jesus and Paul Jung Sik Cha Professor( Hanil University & Presbyterian Theological Seminary )

Biblical theology presents two seemingly contradictory theological claims regarding the ecological environment. One asserts that the world and all creation, corrupted by sin, are destined for divine judgment and ultimate destruction — an apocalyptic vision that renders creation a fleeting and vain existence. The other affirms that creation is a precious gift resulting from God’s creative act, and thus, His covenant people bear a moral responsibility to preserve and steward it in accordance with the Creator’s will to renew all things. This study focuses on analyzing and exemplifying the natural theological insights of Jesus and Paul — central figures of the New Testament — within the tension between these two claims. T hrough comparative evaluation, it explores their shared convictions and distinctive emphases. The framework for this evaluation is the perspective of “natural theology,” a theological legacy rooted in ancient Greek philosophy, particularly Aristotle, and seeks to examine how this tradition is embodied in the narratives of Jesus and Paul. Furthermore, the study aims to draw theological meaning and practical lessons in light of today’s climate crisis. To this end, it will engage key biblical texts — Matthew 6:26–34, Luke 12:54–56, Romans 8:19–23, and Colossians 1:15–20 — as rare but significant examples for analysis.

 

Key Word :Jesus, Paul, natural theology, apocalyptic vision, experiential wisdom, climate crisis, Matthew 6:26-34, Luke 12:54-56, Romans 8:19-23, Colossians 1:15-20

 

논문 접수일: 2025년 12월 5일      논문 수정일: 2025년 12월 15일    논문 게재 확정일: 2025년 12월 20일 

 神學思想 211집 · 2025 겨울 

묵시록적 비전에서 관찰과 경험의 지혜로 - 예수와 바울의 자연신학 비교 분석.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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