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본 논문은 갈라디아서 2:11-14에 기록된 이른바 ‘안디옥 사건’을 중 심으로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회의’와의 관련성을 고찰하며, 그 사 건이 지닌 신학적 및 공동체적 의미를 탐구한다.
초기 교회가 직면했던 이방인 할례 문제와 그 해결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 예루살렘 회의는, 이 방 그리스도인들에게 할례를 강요하지 않는 대신 소위 ‘사도금령’이라 불 리는 최소한의 요구를 제시한 사건이었다.
본 연구는 이러한 예루살렘 회의의 결의가 실제로 안디옥 교회에 어떻게 적용되었는지를 살피고, 그 과정에서 드러난 베드로의 태도 변화를 통해 어떤 신학적 긴장과 공동체 적 갈등이 발생했는지를 분석한다.
논의는 먼저 예루살렘 회의와 안디옥 사건의 연대기적 순서 및 상호관련성을 검토하고, 사도행전 15장에 기록된 예루살렘 회의가 갈라디아 서 2장의 서술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살핀다.
이어서 베드로가 이방인 과의 식탁 교제를 중단하게 된 배경, 당시 안디옥 교회 공동체 안에서 유 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형성된 구조적 긴장과 갈등, 그리고 이에 대한 바 울의 신학적 비판을 고찰한다.
특히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못한 베드로의 문제와 그로 인해 이방인들에게 ‘유대인이 될 것’을 강요 하는 상황을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본문이 내포하는 복음과 율법, 그리 고 공동체의 삶 사이의 복잡한 긴장 관계를 규명한다.
Ⅱ. 안디옥 사건 이해의 전제 사항
1. 안디옥 사건은 예루살렘 회의 이후에 발생했다
갈라디아서 2:11-14의 안디옥 사건은 앞선 2:1-10과 연관하여 이해 해야 한다.
2:1-10은 바울과 예루살렘 사도들 간의 회담을 기록하고 있 는데, 일부 학자들은 예루살렘 회의와 안디옥 사건의 순서가 뒤바뀌었다 고 주장한다.1)
1) 갈 2:11-14가 2:1-10보다 우선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로는 다음과 같다: J. Munck, Paul and the Salvation of Mankind (London: SCM, 1959), 100-103; G. Lüdemann, Paul, Apostle to the Gen tiles: Studies in Chronology (Philadelphia: Fortress, 1984), 75-77. 이러한 갈 2:11-14의 우선설에 대 한 소개는 다음을 참고하라: R. Alan Cole, Galatians: An Introduction and Commentary (Notting ham, England: Inter-Varsity Pres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08), 115; Frank J. Mat era, Galatians (Collegeville, MN: Liturgical Press, 2007), 88; Douglas J. Moo, Galatians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13), 141-142; Timothy George, Galatians (Nashville, TN: B&H, 1994), 168-169; Thomas R. Schreiner, Galatians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0), 139.
그들의 논거에 따르면, 만약 예루살렘 회의 이후 안디옥 사건이 발생했다면, 이방인과의 교제를 지지하던 베드로가 갑자기 태도 를 번복한 사실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따라서 오히려 안디옥 사건이 먼저 일어나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루살렘 회의가 열렸으며, 바 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의도적으로 사건 순서를 수정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인물의 태도 변화에 나타나는 불일치를 근거로 본문 의 사건 순서를 재조정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일 부는 베드로의 일관되지 못한 태도를 그의 성격적 특성으로 해석하기도 한다.2)
필자는 갈라디아서 본문이 제시하는 사건 전개를 존중한다.
예루 살렘 회의와 안디옥 사건은 이미 초기 교회 내에서 널리 알려진 사실이 었을 것이며,3) 만일 바울이 자신의 논지를 위해 사건 순서를 인위적으로 바꾸었다면, 이는 갈라디아서의 신뢰성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베츠(Hans Dieter Betz)는 안디옥 사건이 예루살렘 합의를 전제로 하 며, 두 사건은 서로 맥락적으로 연결해 해석될 수 있다고 본다.4)
조지 (Timothy George)는 안디옥 사건의 정확한 연대적 위치를 확정하지 않으 면서도, 바울이 이를 2:1-10의 후일담처럼 제시하고 있다고 설명한다.5)
롱에네커(Richard N. Longenecker)는 안디옥 사건이 2:1-10 이후에 일어 난 것으로 보는 편이 자연스럽다고 주장하며,6) 메이트라(Frank J. Mat era)는 두 사건의 순서를 바꾸어 이해하는 것은 불필요한 문제를 야기하 기 때문에 바울의 연대기적 배열 자체를 존중하는 해석이 더욱 타당하다 고 평가한다.7)
따라서 본 논문은 갈라디아서의 전개 방식을 존중하여, 예루살렘 회의가 먼저 열렸고 그 후에 안디옥 사건이 발생했다고 가정한 다.8)
2) 베드로의 입장에 대한 불일치를 그의 과거의 행적이나 성격적 측면에서 설명하는 학자들로는 다 음을 참고하라: Oscar Cullmann, Peter: Disciple, Apostle, Martyr (Waco, TX: Baylor University Press, 2011), 50-53; Leon Morris, Galatians: Paul’s Charter of Christian Freedom (Downers Grove, IL: IVP Academic, 1996), 79.
3) L. Ann Jervis, Galatians (Grand Rapids, MI: Baker Books, 2011), 61.
4) Hans Dieter Betz/번역실 옮김, 『갈라디아서』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7), 246-247.
5) George, Galatians, 168-169.
6) Richard N. Longenecker/이덕신 옮김, 『갈라디아서』 (서울: 솔로몬, 2003), 273.
7) Matera, Galatians, 87-89.
8) 이외에도 갈라디아서의 자연적인 내용의 흐름을 지지하는 학자들로는 다음을 참고하라: James D. G. Dunn, The Epistle to the Galatians (Peabody, MA: Hendrickson, 1993), 116; F. F. Bruce, The Epistle to the Galatians: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Grand Rapids, MI: Eerdmans, 1982), 128; Ben Witherington III, Grace in Galatia: A Commentary on St Paul’s Letter to the Galatians (Grand Rapids, MI: W.B. Eerdmans Pub. Co., 1998), 149; Moo, Galatians, 142, 145; Schreiner, Galatians, 143-144.
이러한 전제 위에서 안디옥 사건을 해석해 나갈 것이다.
2. 갈라디아서 2:1-10은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회의를 반영한다
갈라디아서의 서술 흐름에 따르면 안디옥 사건은 예루살렘 회의 이 후에 발생한다.
그렇다면 갈라디아서 2:1-10의 예루살렘 회의는 사도행 전의 어느 본문과 대응하는가?
전통적으로는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회의와9) 동일시되어 왔으나, 최근 다수의 학자들은 갈라디아서 2장의 회 의를 사도행전 11장의 예루살렘 회합과 같은 사건으로 본다.10)
그 근거로 는, 첫째, 갈라디아서 2장에는 사도행전 15장의 사도금령이 전혀 언급되 지 않는다는 점,
둘째, 갈라디아서 2장에서 강조되는 ‘구호금 전달’이 사 도행전 11장에 나타난다는 점,
셋째, 바울의 두 번째 예루살렘 방문 횟수 가 두 본문에서 일치한다는 점이 제시된다.
이 견해에 따르면 갈라디아 서 2장의 회의는 사도행전 11장의 회합에 해당하며, 그 직후 안디옥 사건 이 일어나고, 이후에 사도행전 15장의 두 번째 예루살렘 회의가 열렸으 며, 갈라디아서가 바로 그 두 번째 회의 이전에 기록되었다는 것이다.11)
9) 사도행전 15장이 묘사하는 예루살렘 회의에 대한 포괄적 이해를 위해서는 다음을 참고하라: 유상 현, “예루살렘 사도회의(행 15:1-21),” 『바울의 제1차 선교여행』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2), 187 230.
10) Witherington, Grace in Galatia, 148-149; Schreiner, Galatians, 139; Moo, Galatians, 141; Lon genecker, 『갈라디아서』, 283; George, Galatians, 169; Bruce, The Epistle to the Galatians, 129 130.
11) George, Galatians, 170.
그러나 갈라디아서 2장의 예루살렘 회의를 사도행전 11장과 동일시 하는 방식은 여러 한계를 가진다.
사도행전 11장은 안디옥 교회의 이방인 할례 문제를 다루지 않으며, 오히려 회합 이후 후반부(11:19 이하)에 안디 옥 교회가 처음 등장한다.
또한 이방 선교 여행은 사도행전 13장에서 처 음 언급된다.
갈라디아서 2장에서는 안디옥 교회의 바울과 바나바, 예루살렘 교회의 야고보, 베드로, 요한이 함께 등장하지만, 사도행전 11장에 는 예루살렘 교인들과 베드로만 나타난다.
더 나아가 바울의 두 번째 예 루살렘 방문을 사도행전 11장과 동일시할 경우, 사도행전 9장과 11장 사 이에 14년이라는 긴 간격을 설정해야 하는 문제가 따른다.12)
이런 이유 로 필자는 전통적인 해석, 곧 갈라디아서 2장의 예루살렘 회의가 사도행 전 15장의 예루살렘 회의와 동일하다는 견해를 지지한다. 그 근거는 다 음과 같다.
첫째, 두 회의는 공통적으로 이방인 할례 문제를 다룬다.
둘 째, 참석 인물들이 바울, 바나바, 야고보, 베드로로 동일하다.
셋째, 갈라 디아서 2장이 야고보를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적 인물로 묘사하는 점은 사도행전 15장에서 야고보가 회의를 주재하고 최종 판단을 내린다는 사 실과 일치한다.
마지막으로, 두 본문 모두 이방인에게 할례를 요구하지 않기로 결정한다는 점에서 공통된다.13)
문제는 사도행전 15장이 이방인에게 할례를 요구하지 않을 뿐 아니 라, 동시에 사도금령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갈라디아서 2장에서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에게서 아무런 추가적 제안을 받지 않았 다고 밝힌다(2:6).
이 불일치를 해결하기 위해 피츠마이어(Joseph A. Fitzmyer)는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회의가 사실상 두 개의 별도 회의 를 통합한 것이라고 주장한다.14)
그의 설명에 따르면, 첫 번째 회의는 할 례 문제를 다루었고 이는 갈라디아서 2장의 회의와 동일하며, 두 번째 회의는 이방인과의 식탁 교제를 다루었고 그 사이에 안디옥 사건이 발생 했다는 것이다.15)
12) 유상현, 『바울의 제1차 선교여행』, 259-260.
13) 갈 2장의 예루살렘 회의가 행 11장이 아닌 15장과 병행을 이룬다는 것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 으로는 다음을 참고하라: Ibid., 257-263.
14) Cf. Joseph A. Fitzmyer, The Acts of the Apostles (New York: Doubleday, 1997).
15) Fitzmyer, The Acts of the Apostles, 552-554.
이 가설은 갈라디아서 2장에서 사도금령이 언급되지 않는 문제를 일정 부분 해명하지만, 사도행전 저자가 두 회의를 하나로 묶었다는 설정은 지나치게 가설적이다.
더구나 두 회의 사이에 안디옥 사건을 배치하는 도식은 사도행전 11장과 15장 사이에 안디옥 사건을 두 는 구조의 변형에 그치며, 결정적으로 사도행전 15장의 회의 결과를 전 제하지 않고는 안디옥 사건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그렇다면 사도행전 15장의 사도금령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갈 라디아서 2장의 예루살렘 회의에서는 사도금령이 전혀 언급되지 않는 것 인가?
이와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샤를르 뻬로(Charles Perrot)의 견해가 있다.
뻬로는 이방 그리스도인들에게 할례를 요구하지 않기로 한 결정과 사도금령이 서로 다른 성질의 것이 아니라, 갈라디아서 2장에도 사도금 령이 전제되어 있다고 주장한다.16)
그는 사도행전 15장의 사도금령이 이 스라엘 백성과 함께 거주하던 외국인들에게 요구되었던 레위기 17-18장 규정과 유사한 것으로 보고, 이 사도금령이 이방 그리스도인들을 유대 그리스도인 공동체 안으로 통합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대인 들과 같이 이방 그리스도인들을 특정 그룹으로 인식하도록 하며, 사회적 관점에서는 새로운 유형으로 구별하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한다.17)
16) Charles Perrot/백운철 옮김,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 사항,” 『가톨릭 신학과 사상』 32 (2000), 151 164, 특히 162-164. 17) Ibid., 155-156, 158.
다시 말해, 사도금령의 제정은 이방 그리스도인들의 독특한 지위와 위치를 그 대로 인정하는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갈라디아서 2장에서 발표 된 복음 선교의 분담, 곧 베드로가 할례 받은 자에게, 바울이 할례 받지 않은 자에게 복음을 전하기로 한 결정은, 사도금령을 통해 이방 그리스 도인들의 존재가 공식적으로 인준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필자 역시 뻬 로의 이 견해에 동의하며, 갈라디아서 2장의 예루살렘 회의 역시 사도금 령을 전제로 한 합의에 해당한다고 판단한다. 결과적으로 안디옥 사건은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회의 결과, 곧 할례 거부와 사도금령 적용이 합의된 직후 그 합의의 적용을 둘러싸고 실제로 발생한 갈등으로 이해할 수 있다.
3. 예루살렘 회의는 중도적 유대 그리스도인들의 중재로 귀결되었다
갈라디아서 2:11-14의 안디옥 사건에 영향을 준 갈라디아서 2:1-10 과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회의는 어떻게 발생했고, 어떻게 결론 났 는가?
사도행전은 “유대에서 온 몇몇 사람들”이 안디옥 교회의 그리스도 인들에게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고 가르 쳐 바울과 바나바와 충돌했다고 기록한다(15:1-2).
이에 두 사람은 예루 살렘으로 가서 사도들과 장로들과 함께 회의에 참여한다(15:4).
회의에서 “바리새파 출신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이방인에게 할례를 요구했으나, 베드로는 고넬료 가정과의 교제를 예로 들어 할례를 강요할 수 없다고 반박한다(15:7-11).
바나바와 바울은 이방인들이 체험한 기적들을 보고한 다(15:12).
최종적으로 회의 주재자 야고보는 할례를 강요하지 않고 대신 최소한의 사도금령을 요구하기로 결정한다(15:13-21).
그것은 우상에게 바친 음식, 음행, 목매어 죽인 것, 피를 멀리하는 것이다(15:20).18)
그러나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회의는 단순히 표면적으로만 이해 해서는 안 된다.
피상적인 이해는 갈라디아서 2:11-14의 안디옥 사건 원 인을 오해하게 하고 여러 가설이 연쇄적으로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회의 참석자들을 단순히 ‘이방인 할례 찬반’으로 나누는 이분법 도 문제다.
예루살렘 회의에서는 이방인 할례 거부를 결정한 야고보의 입 장이 있었던 반면, 안디옥 사건에서는 “야고보의 사람들”(τινας ἀπὸ Ἰακώβου) 때문에 베드로가 이방인과의 교제를 중단한다(갈 2:12).
이처럼 야고보 내 부에서도 상반된 입장이 존재했기에 ‘야고보의 사람들’의 정체에 대한 논 의가 촉발됐다.19)
18) 사도금령의 성격에 대한 자세한 논의로는 다음을 참고하라: 유상현, 『바울의 제1차 선교여행』, 240-243, 252-256; Justin Taylor, “The Jerusalem Decrees (Acts 15.20, 29 and 21.25) and the In cident at Antioch (Gal 2.11-14),” New Testament Studies 46 (2001), 372-380.
19) ‘야고보의 사람들’이 누구인가에 대하여 학자들은 그 의견들을 달리하고 있다. 한 부류는 그들이 공식적인 야고보의 대표자들로서 파송되었다고 본다(Longenecker, 『갈라디아서』, 286; J. L. Mar tyn, Galatians: A New Translation and Introduction with Commentary [New York: Doubleday, 1997], 233; Eckhard J. Schnabel, Early Christian Mission: Jesus and the Twelve [Leicester, England: Apollos, 2004], 1003-1004; Matera, Galatians, 89). 또 다른 부류는 그들이 야고보를 대표하고 있 다고 주장만 했을 뿐 실상은 야고보의 입장과는 다른 자들이었다고 본다(P. Barnett, Jesus and the Rise of Early Christianity: A History of New Testament Time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1999], 285-286). 또 다른 부류는 그들이 비-유대주의자들이었다고 본다(Witherington, Grace in Galatia, 155). 그리고 이외에도 그들이 누구였는지는 알 수 없다는 불가지론의 부류도 있다(Sam K. Williams, Galatians [Nashville, TN: Abingdon Press, 1997], 59). 이러한 여러 입장들에 대한 보 다 자세한 논의로는 다음을 참고하라: Moo, Galatians, 147.
나아가, 예루살렘 회의가 다룬 ‘이방인’을 단순한 인종적 범주로 볼 수 있는지도 검토가 필요하다.
유대인들은 같은 이방인이 라도 ‘하나님 경외자’와 그렇지 않은 자에 대해 현저히 다르게 대했기 때 문이다.20)
20) ‘하나님 경외자’에 대한 포괄적 이해를 위해서 다음을 참고하라: 유상현, “하나님 경외자,” 『바울 의 제1차 선교여행』, 97-117.
본 글은 안디옥 사건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 예루살렘 회의를 입체 적으로 해석한다.
먼저 예루살렘 회의에 참석한 유대 그리스도인들을 보 수적, 진보적, 중도적 세 부류로 세분한다.
보수적 부류는 할례를 강력히 주장하며, 안디옥 교회에서 할례를 요구한 “유대의 몇몇 사람들”(행 15:1), 예루살렘 회의에서 할례를 요구한 “바리새파 출신 유대 그리스도 인들”(행 15:5), 디도에게 할례를 강요한 “거짓 형제들”(갈 2:4)이 해당한 다.
진보적 부류에는 바울, 바나바, 그리고 이방인과 교제하며 할례를 반 대한 베드로가 포함된다(행 11:4-17; 15:7-11).
중도적 부류는 야고보와 같 은 인물로,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입장을 중재하며 교회 분열을 막기 위 해 이방인 할례는 거부하되 사도금령을 제안하여 양쪽을 만족시키려 했 다(행 15:13-21).
다음으로 예루살렘 회의에서 논의된 ‘이방인’의 정체성을 규명할 필요 가 있다. 기
존에는 단순히 유대인이 아닌 모든 사람을 이방인으로 보았고, 그들에 대한 할례 요구 여부로 논의가 되었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본 글은 논의 대상이 모든 비유대인이 아닌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 출신에 한 정되었다고 본다.
이는 베드로가 고넬료를 하나님 경외자 이방인으로 예 로 들며 연설한 점에서 확인된다(행 10:1-2).
즉, 예루살렘 회의는 기존 유 대교에 우호적인 하나님 경외자 이방인만을 논의 대상으로 포함했다.
또 한 야고보가 제안한 사도금령은 레위기 17-18장에 나오는 이스라엘과 함 께 사는 ‘게르’(gēr) 규정과 유사하다.21)
따라서 예루살렘 회의 참석자들도 모든 이방인이 아니라 하나님 경외자 이방인만을 논의하였고, 할례 대신 사도금령을 제시할 수 있었다. 사도금령은 이미 경외자 이방인에게 친숙 한 규범이었기 때문이다.
본 글은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회의 내용과 결과를 바탕으로 갈 라디아서 2:11-14의 안디옥 사건을 이해한다.
안디옥 사건은 예루살렘 회의에서 경외자 출신 이방 그리스도인에게 할례 대신 사도금령 준수를 결의한 결과가 이방 교회에 적용되는 과정에서, 베드로가 이방인과의 교 제를 철회하고 바울이 그를 책망한 사건이다.
기존 이해가 대부분 사도 금령 제정을 무시하거나 후대 사건으로 간주하며 안디옥 사건의 불일치 를 다른 가설로 설명하는 데 반해, 본 글은 사도금령을 온전히 적용할 때 안디옥 사건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음을 주장한다.
Ⅲ. 안디옥 사건의 이해
1. 안디옥 사건은 베드로의 잘못으로 발생하였다(갈 2:11)
갈라디아서 2:11은 안디옥 사건의 개요를 보여준다:
“그런데 게바가 안디옥에 왔을 때 잘못한 일이 있어서, 나는 얼굴을 맞대고 그를 나무랐 습니다”(Ὅτε δὲ ἦλθεν Κηφᾶς εἰς Ἀντιόχειαν, κατὰ πρόσωπον αὐτῷ ἀντέστην, ὅτι κατεγνωσμένος ἦν).
이는 베드로가 안디옥 교회에서 잘못을 저질렀고, 바울 이 직접 그를 공개적으로 책망한 사건임을 뜻한다.
베드로가 안디옥에 21) Perrot,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 사항,” 153-154. 288 神學思想 211집 · 2025 겨울 온 시점은 갈라디아서 2:1-10의 예루살렘 회의 이후로 추정된다.22)
그는 예루살렘 회의 결정에 따라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안디옥에 간 것으로 보인다(갈 2:7-8). 당시 안디옥은 로마 제국 내 세 번째로 큰 도시 였고, 약 6만 5천 명의 유대인 디아스포라가 거주하는 중요한 중심지였 다.23)
따라서 베드로의 안디옥행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다면 베드로 는 안디옥 교회에서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가? 우선, 바울이 11절에서 사용한 몇몇 주요 용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 다.
바울은 베드로가 안디옥에 왔을 때 “잘못한 일이 있었 다”(κατεγνωσμένος ἦν)고 했다. 여기서 동사 καταγινώσκω는 ‘책망하다’, ‘비 난하다’는 뜻이다.24)
즉, 베드로가 비난받을 행동을 했기에 바울이 직접 만나 책망한 것이다.
어떤 학자는 이 단어에 ‘유죄 판결을 내리다’는 법적 의미가 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만일 이 뜻이 맞다면, 베드로의 행위는 단순 비난을 넘어 법정 유죄 판결에 준해 심각했기에 바울이 공개적으로 강하게 책망한 셈이다.
위의 의견을 존중한다면 베드로는 누구에게 유죄 선고를 받은 것인 가? 세 가지 해석이 있다.
첫째, 베드로가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자책한 경우다.25) κατεγνωσμένος가 이미 완료된 행동을 의미한다면,26) 바울의 책망 이전에 베드로가 스스로 유죄를 인식한 상태다. 하지만 이 경우 이미 뉘우친 베드로를 공개적으로 책망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
둘째, 베드로가 외부 인물, 특히 바울에게 유죄 선고를 받은 경우다.27)
22) Witherington, Grace in Galatia, 149.
23) Ibid., 150; Schreiner, Galatians, 138; Schnabel, Early Christian Mission, 784-785; George, Ga latians, 170.
24) καταγινώσκω는 다음의 문헌들 안에서 ‘책망하다’의 의미로 사용된다: 신 25:1; Sir. 14:2; 19:5; 갈 2:11; 요일 3:20, 21; 또한 잠 28:11. Cf. Moo, Galatians, 145.
25) Williams, Galatians, 58; Donald Guthrie, Galatians (Grand Rapids, MI: Eerdmans, 1973), 84; M. C. de Boer, Galatians: A Commentary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2011), 131; E. de W. Burton,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Epistle to the Galatians (Edinburgh: T & T Clark, 1921), 103; Bruce, The Epistle to the Galatians, 129.
26) Jervis, Galatians, 61.
27) Peter Oakes, Galatians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15), 78. 이외에도 cf. Moo, Galatians, 145.
κατεγνωσμένος를 행동이 아닌 상태의 측면에서 현재 상태로 보고 바울이 책망할 정당한 근거로 해석하는 것이다.28)
하지만 바울이 베드로를 공식적으로 정죄할 권한이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셋째, κατεγνωσμένος를 ‘신 적 수동태’로 보아, 베드로가 하나님으로부터 유죄 판결을 받은 상태라는 해석이다.29)
바울은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이미 하나님께 정죄받은 베 드로를 책망했다고 보는 것이다.
필자는 이 해석에 무게를 둔다.
다음으로 “얼굴을 마주보고 그를 나무랐다”(κατὰ πρόσωπον αὐτῷ ἀντέστην)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바울이 베드로를 직접 대면 해 공개적으로 책망했다는 뜻이다.
위더링톤(Ben Witherington III)은 이 표현이 고대 지중해의 ‘명예-수치’ 문화의 맥락을 담고 있다고 본다.30)
즉, 바울의 책망은 개인 간 대립을 넘어서 베드로의 ‘명예’를 공개적으로 도전해 그 체면을 떨어뜨리는 일종의 명예 게임이라는 것이다.
다만 이 게임의 결과가 반드시 바울의 승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한다.31)
28) Witherington, Grace in Galatia, 152.
29) Ulrich Wilckens, “ὑποκρίνομαι,” in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 vol. 8, ed. G. Friedrich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1972), 568, n.51; Witherington, Grace in Gala tia, 151-152; Williams, Galatians, 58; Schreiner, Galatians, 139; Longenecker, 『갈라디아서』, 285; Scot McKnight, Galatians (Grand Rapids, MI: Zondervan, 1995), 100-101.
30) Witherington, Grace in Galatia, 151-152.
31) G. Walter Hansen, Galatians (Downers Grove, IL: IVP Academic, 1994), 66.
이것은 베드로에게, 그의 행동을 재고하도록 이끄는, 수치를 주는 대 담한 행동이었다.
이런 종류의 행동은 이들 중 한 쪽, 혹은 서로에게 ‘수모를 당하는’ 것을 야기했을 수 있다.
만일 베드로가 그 도전에 반 응하지 않는다면, 그는 체면을 잃게 된다.
바울이 베드로보다 하위였 다는 것이 안디옥 교회의 견해가 아니었다면 말이다.
그 경우, 베드로는 그 도전을, 그의 위엄을 손상시키지 않는 것으로 무시할 수 있 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바울이 수치를 당했을 것이다. 만일 베드 로가 부정적으로 반응했고, 그의 동류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이를 인 정했다면, 바울은 또한 안디옥에서 체면을 잃었을 것이다.
바울의 부 분에 대한 이러한 행동은 어떤 경우든 도박이었다.32)
하지만 바울의 책망을 단순한 ‘명예-수치 게임’으로만 볼 수 있을까?
베드로는 자신이나 바울이 아니라 하나님께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바울 은 그 판단을 대리해 책망했다.
따라서 바울은 베드로로부터 빼앗을 명 예가 없고, 베드로는 이미 하나님께 정죄받아 체면을 잃은 상태다.
따라 서 하나님께 정죄받은 베드로와 그를 책망하는 바울은 명예 경쟁자가 아 니라,33) ‘후원자-수혜자’ 관계에 더 가깝다.34)
32) Witherington, Grace in Galatia, 151.
33) Cf. Bruce J. Malina and Jerome H. Neyrey, “Honor and Shame in Luke-Acts: Pivotal Values of the Mediterranean World,” The Social World of Luke-Acts: Models for Interpretation, ed. Jerome H. Neyrey (Peabody, MA: Hendrickson Publishers, 1991), 25-65.
34) Cf. Halver Moxnes, “Patron-Client Relations and the New Community in Luke-Acts,” The So cial World of Luke-Acts: Models for Interpretation, 241-268.
바울은 명예 경쟁자가 아 니라 후원자와 수혜자 사이에서 축복과 책망을 중개하는 중재자의 역할 을 한다.
구체적으로 말해, 베드로는 예루살렘 회의에서 하나님이 내린 결정을 거부했으며, 바울은 하나님을 대신해 은혜가 아닌 책망을 전한 것이다.
그렇다면 베드로는 안디옥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잘못을 저질렀 는가?
2. 베드로는 이방 그리스도인과의 식사를 철회했다(갈 2:12-13)
1) 이방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2:11에서 안디옥 사건의 개요를 제시한 뒤, 12절 부터 구체적 상황을 설명한다:
“그것은 게바가, 야고보에게서 몇몇 사람 이 오기 전에는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하다가, 그들이 오니, 할례 받은 자 들을 두려워하여 그 자리를 떠나 물러난 일입니다”(πρὸ τοῦ γὰρ ἐλθεῖν τινας ἀπὸ Ἰακώβου μετὰ τῶν ἐθνῶν συνήσθιεν· ὅτε δὲ ἦλθον, ὑπέστελλεν καὶ ἀφώριζεν ἑαυτὸν φοβούμενος τοὺς ἐκ περιτομῆς).
다시 말해, 베드로의 잘못은 이방 신자들과35) 함께 식사하다가 야고보의 사람들이 도착하자 그들을 두려워하여 식사 자리를 떠난 데 있었다.
그런데 단순한 자리 이동이 왜 문제가 되었는지 를 이해하려면, 베드로가 이방인과 함께한 식사의 성격을 조금 더 면밀 히 살펴야 한다.
바울은 야고보의 사람들이 안디옥에 오기 전, 베드로가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하고 있었다”(μετὰ τῶν ἐθνῶν συνήσθιεν)고 기록한다
. 여기서 ‘함께 먹다’를 의미하는 동사 συνεσθίω의 미완료형 συνήσθιεν은 베드로가 한두 번이 아니라 일정한 기간 동안 반복적이고 습관적으로 이방인 신자들과 식사했음을 나타낸다.36)
35) Witherington, Grace in Galatia, 152.
36) Ibid., 149, 152; Schreiner, Galatians, 139; Morris, Galatians, 79; Moo, Galatians, 146; Matera, Galatians, 85, 89; Longenecker, 『갈라디아서』, 286; Jervis, Galatians, 62-63; Betz, 『갈라디아서』, 247-248.
나아가 뒤이어 다른 유대인 신자들도 베드로의 행동을 따라 이방인 신자들과의 식사를 중단했다는 사실은, 안디옥 교회 가 본래부터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식사하는 공동체였으며, 베드로 역 시 도착 후 주저함 없이 그 식탁 교제에 참여했음을 보여준다.37)
37) Moo, Galatians, 143.
베드로가 안디옥에서 일정 기간 꾸준히 이방 신자들과 식사할 수 있 었던 배경에는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이 자리한다.
그 회의에서는 하나님 경외자 출신 이방 신자들에게 할례를 강요하지 않고, 대신 네 가지 사도 금령을 지킬 것을 요구하는 합의가 내려졌다.
이 결정은 공식 서신을 통 해 각 이방 교회로 전달되었고(행 15:23-29), 바울과 바나바도 안디옥에 서 이를 실행하였다.
그 결과 안디옥의 이방 신자들, 특히 다수의 경외자 출신 신자들은 이 금령을 충실히 준수했으며, 그로 인해 유대인과 이방인 신자들은 큰 갈등 없이 함께 식사를 나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을 배경으로 한 이 식사는 어떤 성격 의 식사였을까?
학자들은 주로 두 견해를 제시해왔다. 하나는 이 식사를 ‘주의 만찬’으로 보아, 베드로의 이탈을 성만찬 공동체 안에서의 분리로 이해하는 해석이다.38)
다른 하나는 본문에 성만찬이나 예배적 맥락이 직 접 언급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단순한 일상 식사로 보는 해석이다.39)
그 러나 유대 전통에서 일상 식사조차 빵의 축사와 나눔 등 성만찬의 요소 를 지니고 있었음을 고려할 때,40) 필자는 베드로가 안디옥에서 이방인들 과 나눈 식사가 성만찬적 성격과 일상 식사적 성격을 동시에 포함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41)
그렇다면 그 식탁은 율법적으로 정결한 식사였 을까, 아니면 율법을 넘어서는 행위였을까?
전통적으로 많은 학자들은 베드로가 이방인과 함께한 식탁 교제를 율법 위반으로 간주해왔다.42)
따라서 베드로는 예루살렘에서 온 야고보 의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자리에서 물러났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제임스 던(James D. G. Dunn)은 다른 설명을 내놓는다.43)
38) George, Galatians, 173-174; Cole, Galatians, 116-117; Morris, Galatians, 76-77; Matera, Gala tians, 89. 39) Burton, Galatians, 73, 104; Moo, Galatians, 142; Jervis, Galatians, 62-63.
40) Joachim Jeremias, New Testament Theology: The Proclamation of Jesus (London: SCM, 1971), 115; Dunn, The Epistle to the Galatians, 117-118.
41) Cf. Bruce, The Epistle to the Galatians, 129; Hansen, Galatians, 62; Gordon D. Fee, Galatians: A Pentecostal Commentary (Blandford Forum, Dorset, UK: Deo Publishing, 2007), 72-73.
42) Cf. Schreiner, Galatians, 139-140; McKnight, Galatians, 103.
43) Dunn, The Epistle to the Galatians, 121. 이외에도 다음을 참고하라: Schreiner, Galatians, 141 142; Moo, Galatians, 146; Matera, Galatians, 89.
그는, 야고보의 사람 들이 오기 전 베드로가 나눈 식사는 율법 음식 규정을 충실히 지킨 것이 었으나, 유대적 경계를 더욱 엄격히 강조하는 야고보의 사람들이 압력을 행사함으로써 베드로가 위축되었다고 주장한다.
즉, 베드로는 이미 정결 규정을 지킨 식탁에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더 강경한 유대적 경건 기 준을 내세운 이들의 시선에 압도되어 물러났다는 해석이다.
우선 베드로의 식사가 본질적으로 비율법적이었다는 전통적 견해는 재검토가 필요하다.
안디옥 사건은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과 긴밀히 연결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회의는 경외자 출신 이방 신자들에게 할례를 면 제하고 사도금령을 요구했으며, 실제로 안디옥 이방 신자들은 이 규정을 충실히 준수하였다.
따라서 그들이 율법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음식을 고 집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필자는 베드로가 이방 신자들과 함께한 식사가 사도금령을 따른 식사였고, 특히 율법에 친숙한 경외자 출신 신자들과 함께 한 것이었기에, 이를 단순히 비율법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동시에 던의 해석, 즉 베드로의 식사가 ‘덜 율법적’이고 야 고보의 사람들이 ‘더 율법적’인 식사를 강요했다는 주장 역시 수용하기 어렵다.
야고보 자신이 사도금령 제정의 핵심적 인물이었음을 고려하면, 그가 이를 넘어선 강경한 기준을 새롭게 내세웠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 이다.
2) 야고보의 사람들, 할례 받은 사람들
예루살렘 회의 결정 후, 베드로는 안디옥에 와서 이방 그리스도인들 과 식탁을 함께하며 교제했다.
이 교제는 하나님 경외자 출신 이방인들 이 사도금령을 준수하는 가운데 이루어져, 기본적으로 율법에 부합하는 식사였으며, 예루살렘 회의의 결의에 따라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문 제가 없었다. 그러나 어느 날 유대인 대표인 베드로가 이방인과의 식탁 교제에서 물러났다. 바울은 이를, 야고보로부터 온 몇몇 사람들 때문이 라고 기록한다: “그것은 게바가, 야고보에게서 몇몇 사람이 오기 전에는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하다가, 그들이 오니, 할례 받은 자들을 두려워하 여 그 자리를 떠나 물러난 일입니다”(갈 2:12). 그렇다면, ‘야고보의 사람 들’은 누구인가? 그리고 베드로가 두려워한 “할례 받은 사람들”(τοὺς ἐκ 294 神學思想 211집 · 2025 겨울 περιτομῆς)은44) 또 누구인가? 베드로를 이방인과의 식탁 교제로부터 물러나게 한 ‘야고보의 사람 들’에 관해서는 학계에 두 가지 주요 견해가 있다. 첫째, 야고보의 사람 들이 베드로가 두려워한 ‘할례 받은 사람들’과 동일하다는 입장이다. 이 들은 예루살렘 내 율법 준수에 엄격한 유대 그리스도인들로, 베드로에게 더 엄격한 율법 준수를 요구한 집단이다.45)
콜(R. Alan Cole)은 이들을 야 고보의 “우익 바리새인 그룹”이라 부르며,46) 조지는 “팔레스타인 운동 내 극보수파의 열성 구성원”으로 평가한다.47)
저비스(L. Ann Jervis)는 이들 을 “무서운 그룹”이라 하며, 베드로가 두려워한 할례 받은 사람들은 이 그룹 내 “더 작은 하부 집단”으로 추정한다.48)
이 견해는 야고보의 사람 들이 열성적인 율법 준수자였기에 베드로가 그들의 시선을 의식하여 이 방인과의 식탁 교제에서 물러났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이 견해에는 두 가지 비판이 있다.
첫째, 야고보 자신은 엄격 한 유대주의자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는 예루살렘 회의에서 할례를 ‘짐’(βάρος)으로 여기며(행 15:28), 이방인에게 할례를 강요하지 않기로 결 의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야고보와 달리 그가 파송한 이들이 율 법주의자라고 보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다.49)
둘째, 베드로의 태도이 다.50)
44) Schreiner, Galatians, 143. 이외에도 cf. Longenecker, 『갈라디아서』, 287.
45) Burton, Galatians, 107; Matera, Galatians, 86; Martyn, Galatians, 236-240; Philip Graham Ryken, Galatians (Phillipsburg, N.J.: P&R Pub., 2005), 56; Fee, Galatians, 74; M. Bird, The Saving Righteousness of God: Studies on Paul, Justification, and the New Perspective (Waynesboro, GA: Paternoster, 2007), 125-126; Betz, 『갈라디아서』, 252.
46) Cole, Galatians, 117-118.
47) George, Galatians, 175-176. 48) Jervis, Galatians, 62, 64.
49) Witherington, Grace in Galatia, 155; Moo, Galatians, 147; Matera, Galatians, 85, 89.
50) Morris, Galatians, 79; Longenecker, 『갈라디아서』, 288; Hansen, Galatians, 63.
그는 사도행전 11장과 15장에서도 예루살렘 내 할례파 유대인들의 반대에 굴하지 않고, 고넬료 가정의 신적 체험을 근거로 이방인 복음을 담대히 변호했다(행 11:4-17; 15:7-11).
이런 베드로가 안디옥에서 갑자기 엄격한 유대인들을 두려워해 식탁 교제에서 물러났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에 따라 두 번째 그룹의 학자들은 ‘야고보의 사람들’과 ‘할례 받은 자들’을 별개의 집단으로 본다.51)
이들에 따르면 야고보의 사람들은 유대 그리스도인이지만, 베드로가 두려워한 ‘할례 받은 자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닌 젤롯 성향의 엄격한 율법주의 유대인이었다.52)
당시 팔레스타인에 서는 로마 제국의 압제 속에서 강경한 율법주의 운동이 유대인과 이방인 의 교류를 차단하고 이방인을 유대교로 개종시키려는 방향으로 예루살렘 중심으로 확산되었다.53)
이 운동은 결국 66-70년의 유대-로마 전쟁으 로 이어졌다.
이 상황에서 야고보의 사람들은 안디옥에 온 베드로가 이 방인과 교제하는 사실이 예루살렘에 알려지면, 강경 율법주의로 예루살 렘 교회가 곤란해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54)
결과적으로 베드로는 예루 살렘 교회를 위협할 수 있는 젤롯 성향의 율법주의 유대인을 의식해 이 방인과의 식탁 교제를 포기했다고 해석된다.55)
두 번째 입장은 일견 설득력이 있다.
‘야고보의 사람들’과 ‘할례 받은 자들’을 분리함으로써 야고보의 예루살렘 회의 공식 입장과 그가 파송한 이들의 입장이 충돌하지 않으며,56) 베드로가 두려워한 대상도 교회 내부 유대인이 아닌 교회 밖 강경파 유대인으로 설명된다.57)
51) Witherington, Grace in Galatia, 154; Bruce, The Epistle to the Galatians, 131; McKnight, Gala tians, 104; Morris, Galatians, 79; Williams, Galatians, 59; Moo, Galatians, 147-148; Charles B. Cousar/천방욱 옮김, 『갈라디아서』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2004), 76-77.
52) R. Jewett, “The Agitators and the Galatian Congregation,” New Testament Studies 17 (1970-71), 198-212; Bruce, The Epistle to the Galatians, 130-131; Witherington, Galatians, 154-156; Lon genecker, 『갈라디아서』, 288.
53) R. Jewett, “The Agitators and the Galatian Congregation,” 205. 다음도 참고하라: Witherington, Grace in Galatia, 154-155; Moo, Galatians, 148-149; Hansen, Galatians, 63.
54) Cf. Witherington, Grace in Galatia, 160; Hansen, Galatians, 63-64.
55) Longenecker, 『갈라디아서』, 289.
56) Schreiner, Galatians, 140.
57) Ibid., 144; McKnight, Galatians, 104.
그러나 두 견해 모두 베드로가 비합법적인 이방인 교제에서 외부의 율법 준수 압력에 굴복해 물러났다는 점을 전제한다.
이 논의는 예루살렘 회의 결정, 특히 하 나님 경외자 이방 신자들에게 요구된 네 가지 사도금령을 충분히 다루지 않는다.
예루살렘 회의 결의와 안디옥 사건을 분리하여, 베드로가 식탁 교제에서 물러난 진짜 이유를 놓치고 있다는 점에서 재해석이 필요하다.
만약 사도금령이 안디옥 교회에 적용되어 하나님 경외자 출신의 신자들 이 이를 준수했고, 유대인과 이방인이 합법적인 교제를 나누고 있었다 면, 베드로가 식탁 교제에서 물러난 본질적 이유는 달리 해석될 수 있다.
3) 자리를 떠나 물러나다
본 논문은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을 배경으로 안디옥 사건을 해석한 다.
회의에서 사도들은 하나님 경외자 출신 이방 신자들에게 할례를 요 구하지 않고, 대신 네 가지 사도금령을 준수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 결과 안디옥 교회의 하나님 경외자 출신 이방인들은 할례 없이도 온전한 그리 스도인으로 인정받아 유대인 신자들과 자유롭게 교제할 수 있었다.
유대 인 신자들 또한 사도금령을 지키는 이방인과 거리낌 없이 함께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예루살렘 회의를 주도한 베드로 역시 안디옥에 와 서 유대인과 함께 이방인과 식탁 교제에 참여했는데, 이는 회의의 결의 정신에 부합하는 행위였다.
그런데 바울이 말하는 ‘야고보의 사람들’은 누구인가?
바울은 이들을 실명하지 않고 야고보와 연관된 인물로 암시한다.
그들은 야고보의 대표 자로서 그의 의중을 안디옥 교회에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던 것으로 보인 다.58)
58) Cf. Witherington, Grace in Galatia, 152; Schreiner, Galatians, 140; Moo, Galatians, 147; Han sen, Galatians, 62-63; Cole, Galatians, 117-118; Betz, 『갈라디아서』, 249-250.
야고보는 예루살렘 회의에서 보수적 유대인과 진보적 유대인 사이 의 중재자였고, 이방인에게 할례를 강제하지 않는 대신 사도금령 준수를 결의하였다.
따라서 야고보의 사람들은 안디옥 교회가 이 결의를 충실히 지키는지 확인하기 위해 파견된 사절단으로 이해할 수 있다.59)
문제는 이들의 도착 이후, 왜 베드로가 그들을 두려워하며 이방인과의 식탁 교 제를 중단했느냐는 점이다.60)
이에 대해 필자는 새로운 시각을 제안한다.
안디옥 교회가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에는 대체로 동의하지만,61) 이방인을 ‘하나님 경외자 출신’과 ‘비경외자 출신’으로 구분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
59) Cf. Morris, Galatians, 78.
60) 본 글의 논의와는 별개의 의견을 소개한다. Yoon은 갈 2:12의 ἦλθον을 ἦλθεν으로 읽을 것을 제 안하면서, 베드로가 이방인과의 식사를 철회한 것은 야고보의 사람들의 안디옥 도착 때문이 아 니라 그들의 존재와는 상관없이 이미 베드로의 심중에 계획된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즉 베드로 의 식탁 교제 철수는 미리 계획된 것이었기에 바울에게서 가혹한 비난을 받았다는 것이다. Cf. David I. Yoon, “The Antioch Incident and a Textual Varient: ‘ΗΛΘΟΝ’ or ‘ΗΛΘΕΝ’ in Gala tians 2:12,” Expository Times 125 (2014), 432-439.
61) Longenecker, 『갈라디아서』, 284-285.
초기 안디옥 교회의 이방인 대부분은 하나님 경외자였으나, 일부는 비경외자 출신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중요한 차이는 사도금령 준수 여부이다.
예 루살렘 회의의 결의는 하나님 경외자에게만 해당했으며, 비경외자 출신 이방인은 논의 대상에서 사실상 제외되었다.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설교 한 경우도 그가 하나님 경외자였기에 가능했고, 사도금령은 율법에 익숙 한 경외자 범주 안에서만 적용될 수 있었다.
그러나 안디옥 교회에 비경외자 출신 이방인이 점차 유입되면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였다.
베드로는 안디옥에서 일정 기간 하나님 경외자 이방인과 식탁을 나 누었고, 이후 비경외자 출신 이방인까지 점차 이 교제에 포함되었다.
초 기에는 베드로가 이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으나, 야고보의 사람들이 도 착하자 상황을 달리 보게 된다.
사도금령을 지키지 않는 이방인과 식탁 을 함께하는 사실이 예루살렘에 알려질 경우, 보수적 유대인들이 결의를 무효화하고 다시 이방인 할례를 주장할 근거를 얻게 될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도금령을 무시하는 비경외자 출신 일부가 경외자 출신의 이 방인 무리 속에서 유대인 신자와 식탁에 참여하는 모습은 예루살렘 회의 합의를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었다.
바로 이 점이 베드로에게 두려움이 되었고, 그는 야고보의 사람들, 곧 할례 받은 자들을 의식하여 이방인과 의 교제에서 물러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결국 베드로는 야고보의 사람들이 안디옥에 오기 직전, 예루살렘 회 의 결의가 무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급하게 이방인과의 식탁 교제를 중 단하였다.
하나님 경외자 출신이든 비경외자 출신이든 모든 이방인과의 식탁 교제를 철회한 것이다.
이를 설명하는 두 동사는 그의 결정의 성격 을 잘 드러낸다.62)
‘물러나다’를 뜻하는 ὑποστέλλω는 군대의 후퇴를 의미 하는 군사 용어로,63) 베드로의 행위가 전략적 후퇴였음을 보여준다.
‘떠 나다, 분리하다’를 뜻하는 ἀφορίζω는 유대교의 전문 용어로,64) 부정한 자 와의 제의적 분리를 가리키며, 이는 사도금령을 지키지 않는 이방인과의 물리적 단절을 뜻한다.
62) 베드로가 이방인과의 식사로부터 물러난 행동이 점진적인 것이었는지(Matera, Galatians, 86, 90; George, Galatians, 176), 아니면 갑작스런 것이었는지는(Schreiner, Galatians, 143에서 그 가능성 을 소개함) 동사의 미완료 시제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그 철회가 점진적이든 갑작스러운 것이든 ὑποστέλλω와 ἀφορίζω의 의미를 고려할 때 베드로의 행동은 전 격적인 것이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63) Witherington, Grace in Galatia, 154; Ryken, Galatians, 57; Betz, 『갈라디아서』, 250.
64) Betz, 『갈라디아서』, 250-251; Witherington, Grace in Galatia, 154.
이처럼 베드로는 모든 이방인과의 교제를 철회함 으로써 사도금령을 지키지 않는 비경외자 출신 이방인과의 교제를 원천 적으로 차단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예루살렘 회의 결정을 보존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의 이런 선택은 안디옥 공동체에 또 다른 갈등을 불러왔 고, 결국 바울은 바로 이 점을 이유로 베드로를 공개적으로 책망하였다.
4) 함께 위선을 행하다
갈라디아서 2:13은 베드로의 행동이 끼친 영향을 보여준다:
“나머지 유대인들도 그와 함께 위선을 행했고, 바나바까지 그들의 위선에 끌려갔 습니다”(καὶ συνυπεκρίθησαν αὐτῷ [καὶ] οἱ λοιποὶ Ἰουδαῖοι, ὥστε καὶ Βαρναβᾶς συναπήχθη αὐτῶν τῇ ὑποκρίσει).
이는 안디옥 교회의 다른 유대인들도65) 베드로를 따라 이방인과의 식탁 교제를 중단했고, 바나바도 함께 동참했음을 뜻한다.66)
65) 다음의 학자들은 ‘그 나머지 유대인들’을 안디옥 교회의 유대 그리스도인들이었다고 확신한다: Morris, Galatians, 79-80; Matera, Galatians, 86; Longenecker, 『갈라디아서』, 290; Jervis, Gala tians, 64.
이 사건을 통해 베드로가 당시 안디옥 교회에서 가진 상징적 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유대 그리스도교의 중요한 기둥인 베드로의 행 동이 의도와 상관없이 큰 파장을 일으킨 것이다.
특히 접두사 συν-과 동 사 ὑποκρίνομαι가 결합해 ‘위선에 동참하다’는 뜻을 지니는 동사 συνυποκρίνομαι는 신약성서에서 갈라디아서 2:13에서만 사용되기에 그 함의를 면밀히 살필 필요가 있다. 학자들은 동사 συνυποκρίνομαι의 의미를 크게 두 가지로 해석한다.
첫째, ‘위선에 동참하다’의 해석은67) 이 단어가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배 우가 가면을 쓰고 연기하는 모습을 묘사한 데 기반한다.68)
이에 따르면 베드로와 유대인 신자들은 속마음과 달리 야고보의 사람들의 압력 때문 에 이방인과의 식탁 교제에서 물러난 척하는 가식적인 행동을 한 것이 다.69)
. 66) Hansen, Galatians, 64.
67) Ibid.
68) Witherington, Grace in Galatia, 156-157; Williams, Galatians, 58; Morris, Galatians, 79-80; Moo, Galatians, 149; McKnight, Galatians, 105; George, Galatians, 177.
69) Matera, Galatians, 86.
이들은 야고보의 사람들이 떠난 뒤 바울이 안디옥에 머무를 때 베 드로가 다시 식탁 교제를 회복했다고 본다.
이 해석은 베드로의 입장 변 화 가능성과 갈라디아서와 사도행전에서 바울과 베드로 간 신학적 충돌 이 명확하지 않은 점을 근거로 제시한다.
하지만 만약 베드로와 유대인 신자들이 단지 일시적으로 거짓으로 식탁 교제를 회피하고 곧 회복했다 면, 바울이 그를 공개적으로 강하게 책망한 점을 설명하기 어렵다.
또한 베드로가 진정 회개했다면 당대 안디옥 교회 신자들이 누구를 지지했을 지도 의문이다.
둘째, 일부 학자들은 베드로와 유대인 신자들의 이방인과의 식탁 교제 철회를 ‘배교에 동참하다’로 해석한다.70)
동사 συνυποκρίνομαι는 원래 그리스 연극 용어이나, 시간이 지나면서 유대교 문헌에서 다른 종교로 돌아선 배교자를 비판할 때 확장 사용되었다.71)
70) Ryken, Galatians, 58; McKnight, Galatians, 105-106; Longenecker, 『갈라디아서』, 290-291; Cousar, 『갈라디아서』, 78.
71) 본 글의 논의와는 별개의 의견을 소개한다. Kahl은 베드로가 이방인과의 식사를 철회한 것은 단 순히 유대교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로마 황제에 대한 숭배로 회귀한 배교와 같다고 주장한다. 당 시 유대교는 이미 로마제국과 결탁한 상태였기에, 베드로의 그러한 행동은 비밀리에 시민 종교 와 질서에 복종하는 것이었고, 이는 우상숭배적 행동이었다는 것이다. Cf. Brigitte Kahl, Gala tians Re-Imagined: Reading with the Eyes of the Vanquished (Minneapolis, MN: Fortress Press, 2010), 279.
이 맥락에서 바울은 베드 로와 유대인 신자들의 식사 거부를 하나님께 대한 배신, 즉 신앙 배교로 보고 엄중히 비판한 것으로 해석된다.
만약 식탁 교제 거부가 진정한 배 교 행위라면, 바울이 베드로를 공개적으로 강하게 책망한 이유도 분명해 진다.
하지만 단순한 식사 거부가 어떻게 ‘배교’의 수준에 이르는 잘못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의문이 남는다.
필자는 예루살렘 회의의 합의를 전제로 안디옥 사건을 재해석할 것 을 제안한다.
예루살렘 회의 결과, 안디옥 교회의 하나님 경외자 출신 이 방인들은 사도금령을 철저히 지키며 유대인과 자유롭게 식탁 교제를 나 누었다.
베드로도 경외자 출신 신자들과 함께 식사했으나, 야고보의 사 람들이 안디옥에 와서 회의 결과 준수를 점검한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 때 이방인 중 사도금령을 지키지 않는 비경외자 출신이 유입된 사실을 알게 된 베드로는, 회의 합의가 흔들릴까 염려해 이방인과의 식사를 전 면 거부했고, 다른 유대인 신자들도 이에 동참했다.
바나바 역시 사도금 령이 위태로워질까 우려해 베드로의 행동에 동참했다.
이상의 논의가 안디옥 사건의 배후 그림이다.
즉, 베드로와 바나바, 그리고 다른 유대인 신자들은 예루살렘 회의 결의를 지키려는 선한 의도 로 이방인과의 식탁 교제에서 물러난 것이다.
이들의 결정은 공동체 합 의를 보전하고 신앙 분열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그렇다면 왜 바울은 이 행동을 단순한 실수나 인간적 약점이 아니라 심각한 잘못으로 보고 공개 적으로 책망했을까? .
3. 바울은 할례를 강요하는 베드로를 책망했다(갈 2:14)
1) 복음의 진리를 따라 똑바로 걷지 않다
갈라디아서 2:14는 바울이 베드로를 공개적으로 책망하는 장면을 인 용하여 소개한다.
우선 그 인용이 언급되기 전에 안디옥 사건에 대한 바 울의 초점이 진술된다(갈 2:14a):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똑바 로 걷지 않는 것을 보고, 모든 사람 앞에서 게바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 다”(ἀλλ᾽ ὅτε εἶδον ὅτι οὐκ ὀρθοποδοῦσιν πρὸς τὴν ἀλήθειαν τοῦ εὐαγγελίου, εἶπον τῷ Κηφᾷ ἔμπροσθεν πάντων).
이 구절은 바울이 안디옥 교회 한복판에서 베드로 에게 공개적으로 말하는 장면을 드러내며, 베드로와 유대 신자들의 변화 가 신학 및 공동체적 문제를 야기한다고 바울이 평가함을 보여준다.
즉, 베드로와 안디옥 유대 신자들이 복음의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 태도를 취 했다고 비판한 것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복음의 진리’(ἡ ἀλήθεια τοῦ εὐαγγελίου)라는 표현이다.
이 어구는 신약 전체에서 갈라디아서에만 두 차례 등장하는데, 한 차례 는 안디옥 사건을 다룬 갈라디아서 2:14에서, 다른 한 차례는 예루살렘 회의를 설명하는 갈라디아서 2:5에서이다.72)
72) 한대희는 예루살렘 회의와 안디옥 사건의 두 상반된 분위기 속에서 그 핵심 축은 갈 2:5와 2:14에 등장하는 “복음의 진리”에 관한 문제라고 설명한다. Cf. 한대희, “안디옥 사건을 중심으로 다시 보는 갈라디아서 2장,” 「신학사상」 183 (2018/겨울), 389-418.
예루살렘 회의와 안디옥 사 건 문맥에서만 반복되는 이 독특한 용례는 두 사건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드러낸다.
던 역시 예루살렘 회의와 안디옥 사건의 밀접한 관련 성을 강조한다.
바울이 2:5에서 사용했던 동일한 구절(‘복음의 진리’)의 재등장은 다음 을 충분히 나타내준다.
즉 바울은 그 쟁점을 예루살렘의 합의의 면에 서 보았음을 그리고 그는 그 합의를, 이방인이 유대화되는 것 없이, 아브라함의 축복에 참여하는 것으로 확증하는 동시에, 복음의 실체 를 자유와 신뢰로 보호하는 합의로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73)
갈라디아서 2:5에서 ἡ ἀλήθεια τοῦ εὐαγγελίου는 어떤 맥락에서 쓰였 는가?
갈라디아서 2:1-10은 사도행전 15장과 함께 예루살렘 회의에 관 한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본문은 보수적 유대인들이 안디옥에서 온 디 도에게 할례를 강요한 사건을 소개한다.
바울은 이들을 ‘거짓 형제들’(οἱ ψευδάδελφοι)이라 칭하며, 자신과 일행이 끝까지 그 요구에 굴복하지 않았 음을 강조한다(갈 2:3-4).
그리고 그 이유가 ‘복음의 진리’를 지키기 위함 이었다고 밝힌다(갈 2:5).
이로써 갈라디아서 2:5와 2:14를 비교할 때, 바 울은 거짓 형제들이 할례를 강요한 예루살렘 상황과, 베드로가 이방인들 과의 식탁 교제에서 물러난 안디옥 상황을 동일한 맥락에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74)
즉, 베드로와 유대인 신자들이 이방인과의 식탁 교제를 중 단한 행위 역시 결국 할례를 강요하는 것과 다름없는 행위라고 간주한 것이다.
바울 자신은 예루살렘에서 복음의 진리를 굳건히 지켰으나, 안 디옥에서 베드로는 복음의 진리에 따라 똑바로 걷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똑바로 걷지 못했다”(οὐκ ὀρθοποδοῦσιν)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
똑바로 걷다’로 번역된 동사 ὀρθοποδέω는 본래 인간 신체와 관련된 의료 용어에서 비롯되었으며, ‘절뚝거리다’의 반대 개념인 정상적이고 바르게 걷는 행위를 의미한다.75)
73) Dunn, The Epistle to the Galatians, 127. 바울이 언급한 “복음의 진리”는 그가 주로 율법과 관련 하여 언급하는 자유와 연결된다. 바울의 자유 개념에 관해서는 다음을 참고하라: 장양미, “바울 의 자유 개념의 정치신학적 재건을 향하여,” 「신학사상」 196 (2022/봄), 39-7미0.
74) Schreiner, Galatians, 146; Oakes, Galatians, 77; Betz, 『갈라디아서』, 256; Moo, Galatians, 150.
75) Witherington, Grace in Galatia, 157; Longenecker, 『갈라디아서』, 292-293; George, Galatians, 178.
그러나 학자들은 이를 ‘전진하다’, ‘바르게 행동하다’, ‘올바른 길로 나아가다’, ‘한 목표를 향해 곧게 나아가다’ 등으로 의 미를 확장해 해석한다.76)
특히 베츠는 ὀρθοποδέω가 도덕을 넘어 종교적 정통성을 나타내는 용어로 본다.77)
76) Witherington, Grace in Galatia, 157; Moo, Galatians, 149-150; Matera, Galatians, 86.
77) Betz, 『갈라디아서』, 255-256.
그에 따르면 베드로가 복음의 진리를 따라 똑바로 걷지 못했다는 것은 그리스도교의 정통성을 벗어난 행동임 을 뜻한다.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정통’과 ‘이단’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았 지만, 바울이 베드로를 공개적으로 엄중히 책망한 점과 갈라디아서 2:12 의 ἀφορίζω가 종교적 배교 의미를 포함하는 점을 고려하면, ὀρθοποδέω 역 시 단순한 도덕 행위를 넘어서 종교적 정통성 문제를 내포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바울은 베드로와 유대인 신자들이 복음의 진리에서 벗 어난 행동을 했다고 엄격히 책망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망의 구체적 내용은 무엇인가?
2) 유대인처럼 살지 않고 이방인처럼 살다
바울이 베드로를 직접 책망하며 한 말은 다음과 같다(갈 2:14bα):
“당 신은 유대인이면서도 유대인처럼 살지 않고, 이방인처럼 살고 있습니 다”(εἰ σὺ Ἰουδαῖος ὑπάρχων ἐθνικῶς καὶ οὐχὶ Ἰουδαϊκῶς ζῇς).
이 짧은 문장, 특히 조 건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신약 전체에서 단 한 번만 등장하 는 용어 Ἰουδαϊκῶς(유대인처럼)와 ἐθνικῶς(이방인처럼)가 함께 쓰였기 때문 이다.
문제는 이 표현들이 단순 번역은 가능하나, 실제 의미가 무엇인지 를 둘러싸고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있다는 점이다.
첫 번째 해석은 두 단어를 율법 준수 여부로 구분한다.78)
78) Ibid., 257.
곧, 율법을 온전히 지키는 것이 ‘유대인처럼’ 사는 것이며,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은 ‘이방인처럼’ 사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해석은 본문의 시제 문제와 맞지 않는다.
바울은 현재 시제 동사(ὑπάρχων, ζῇς)를 사용하여 베드 로가 그 시점에 ‘이방인처럼 살고 있다’고 진술한다.
그런데 실제 상황은 베드로가 과거에는 이방인과 식탁 교제를 하다가, 지금은 철회한 상황이 므로 단순히 과거와 현재의 대조로 설명하기 어렵다.
이 한계를 넘어서는 두 번째 견해는 ἐθνικῶς가 율법 전체를 포기하는 의미가 아니라, 보다 느슨한 준수를 가리킨다고 본다.
예컨대 던은 갈라 디아서 2:14의 논쟁을 ‘유대인과 이방인의 갈등’이 아니라, ‘유대인 내부 에서 율법 준수의 정도를 둘러싼 논쟁’으로 해석한다.79)
따라서 ἐθνικῶς 는 엄격한 기준에서 보면 불완전한 준수, 곧 약간 자유로운 태도를 가리 킨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해석 역시 ὑπάρχων과 ζῇς의 현재 시제의 사용 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고, 조건절과 결과절 사이의 극적 대조가 희석 되는 약점을 가진다.
세 번째 해석은 음식법 준수 여부만을 기준으로 삼는다.80)
즉, 음식 규례를 지키면 Ἰουδαϊκῶς, 지키지 않으면 ἐθνικῶς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시제 문제를 설명하지 못한다.
이에 따라 네 번째 견해가 제시되는 데, 이 견해는 음식 규정 자체를 제외한 나머지를 기준으로 한다.81)
79) Dunn, The Epistle to the Galatians, 127-128; cf. Moo, Galatians, 150-151.
80) Schreiner, Galatians, 142; Matera, Galatians, 87; Longenecker, 『갈라디아서』, 294; cf. Moo, Galatians, 146.
81) Williams, Galatians, 59-60.
곧 베드로가 현재 ‘이방인처럼 산다’는 표현은 음식 규정과 무관하게 전반적 삶의 태도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현재 시제 사용을 어느 정 도 설명할 수 있지만, 음식법을 논외로 두면서 율법 준수를 기준으로 삼 는 것은 논리적 타당성이 떨어진다.
이 외에도 ὑπάρχων과 ζῇς를 단순히 특정 시점의 행동이 아니라 베드로의 일반적 습관이나 태도로 이해하는 시도도 존재하고,82) 나아가 ζάω라는 동사를 단순히 ‘살다’를 넘어 ‘신앙적 존재 방식’ 혹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83)
82) Schreiner, Galatians, 147.
83) David A. deSilva, Global Readings: A Sri Lankan commentary on Paul’s Letter to the Galatians (Eugene, OR: Cascade, 2011), 109-110; cf. Oakes, Galatians, 79. 이외에도 다음을 참고하라: Schreiner, Galatians, 147.
그럼에도 불구하고, Ἰουδαϊκῶς와 ἐθνικῶς의 정확한 의미는 여전히 다의적이고 모호하다. 필자는 이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제안하고자 한다. 신약성서 안에서 단 한 번만 사용되는 Ἰουδαϊκῶς와 ἐθνικῶς의 의미에 대하여, 그 기준을 ‘이방인에게 할례를 강요하는가, 강요하지 않는가’로 판가름하는 것이다.
예루살렘 회의의 핵심 쟁점은 바로 이 문제였으며, 회의는 이방인에게 할례를 강요하지 않고 대신 사도금령을 지키는 것으로 합의하였다.
그러 나 안디옥에서 베드로는 사도금령을 지키지 않는 비경외자 출신 이방인 들과 교제하다가 논란이 커지자 모든 이방인과의 식탁 교제를 철회했다.
하지만 바울은 당시 안디옥 교회의 이방 그리스도인들 중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경외자 출신의 이방 그리스도인들의 혼란함을 목격했다.
그 경외자 출신의 이방 그리스도인들은 베드로의 식탁 교제 철회로 인하 여, 자신들이 지키고 있던 사도금령이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데 불 충분한 조건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즉 베드로의 행동은 경외자 출신의 이방 그리스도인들이 기존의 예루살렘 회의의 결의 사항을 불충 분하다고 여기고, 결국 할례를 받아서 온전한 유대인이 되어야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될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게 한 데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베드로의 행동은 결국 경외자 출신의 이방 그리스도인들에게 오히려 할례를 강요하는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베드로는 결코 할례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할례를 반대하는 유대 그리스도인으로서 예루살렘의 회의 결과가 무산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왜냐하면 베드 로는 이방 그리스도인들에게 할례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의 바울 과 의견을 같이 했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러한 베드로의 본래 입장을 상 기시킨다. 즉 베드로는 유대인이지만 Ἰουδαϊκῶς, 곧 이방인에게 ‘할례를 강요하는 삶의 방식’을 취하지 않고, 오히려 ἐθνικῶς, 곧 이방인에게 ‘할례를 강요하지 않는 삶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것은 비록 현재 이방 그 리스도인들과의 식탁 교제를 철회했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베드로가 의도 하는 신학적 입장이다.
하지만 그러한 베드로의 본래 입장과 의도와는 달리 안디옥 교회에 야기된 결과는 정반대의 상황이었다.
오히려 이방 그리스도인들은 베드로의 행동으로 인해서, 기존의 사도금령이 충분치 못하다고 여기게 된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다른 모든 유대 그리스도 인들과 바나바마저 베드로의 행동에 동참함으로써, 경외자 출신의 이방 그리스도인들은 다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사도금령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그리고 할례를 받아 온전한 유대인이 되어야 한다. 결국 이러한 상황적 결과에 대하여 바울은 분노했다.84)
84) 바울의 분노를 비롯해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이 표현하는 감정을 파토스(pathos)를 중심으로 살펴 본 다음의 논문을 참고하라: 이서영, “바울의 감정,” 「신학사상」 194 (2021/가을), 279-319.
3) 유대인이 될 것을 강요하다
바울의 베드로 책망 중 조건절은 베드로의 당시 신학적 입장을 상기 시킨다.
비록 베드로가 이방인과의 식탁 교제에서 물러났으나, 그의 신 학은 여전히 할례 강요를 거부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그의 의도와는 달리, 그 행위는 공동체 안에서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하였다.
바울은 결과절에서 이를 지적한다(갈 2:14bβ):
“어찌하여 이방인더러 유대인이 되라고 강요합니까”(πῶς τὰ ἔθνη ἀναγκάζεις ἰουδαΐζειν).
곧, 안디옥 교회에서 베드로의 행동은 결과적으로 이방인에게 유대인이 되라고 강요하는 메시 지를 전달한 셈이다.
이것이 바울이 그를 공개적으로 책망한 핵심 이유 였다.
그렇다면 유대인이 되라고 강요하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Ἰουδαΐζω의 부정사 형태 ἰουδαΐζειν에 대해 학자들은 두 가지 견해를 제시한다.
신약에서 단 한 번만 쓰이는 이 동사에 대해,
첫째, ‘유대 관습 을 따르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입장이다.
이 해석에 따르면 정결법이나 음식법과 같은 일상적 관습은 포함되지만, 할례는 해당되지 않는다.
이 러한 관점에서 보면 베드로의 식탁 교제 철회는 곧 유대 식사법을 존중 한다는 선언이며,85) 이방인이 유대인과 교제하려면 유대 식사 규정을 따 라야 한다는 무언의 요구로 읽힌다.86)
그러나 이 해석은 베드로의 의도 에 지나치게 무게를 두어, 안디옥 사건 전체가 낳은 공동체적 효과를 충 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설령 그런 의도가 있더라도, 바울은 안디옥 교회 에서 나타난 결과, 즉 베드로 행동이 초래한 현상에 주목해 책망한 것이 다.
둘째 해석은 ‘완전히 유대인이 된다’는 의미로, 즉 율법 준수와 더불 어 할례까지 포함하는 포괄적 의미로 본다.87)
이 해석을 지지하는 학자 들에 따르면, 베드로는 직접적으로 할례를 요구하지 않았지만, 식탁 교 제 회피로 인해 이방인으로 하여금 할례를 받고서야 온전한 그리스도인 이 될 수 있다는 압박을 가한 셈이 된다.88)
이들은 특히 Ἰουδαΐζω가 신약 에서는 단 한 번 나오지만, 칠십인역(LXX)과 요세푸스 저작에서도 ‘개종 과 할례’라는 의미로 쓰였음을 강조한다.
예컨대, 에스더기 8:17은 “많은 이방인이 유다 사람을 두려워해 유다 사람이 되기도 하였다(ιουδάιζον)”고 말하는데, 이는 곧 당시 이방인들이 실제로 할례를 받고 유대인으로 개 종했음을 의미한다.89)
85) Morris, Galatians, 82.
86) Dunn, The Epistle to the Galatians, 129; Cole, Galatians, 119.
87) Witherington, Grace in Galatia, 159; Longenecker, 『갈라디아서』, 294-295.
88) Moo, Galatians, 151; McKnight, Galatians, 107; Dunn, Jesus, Paul, and the Law, 149-150; Ma tera, Galatians, 87; Hansen, Galatians, 66-67; Cole, Galatians, 119-120; Betz, 『갈라디아서』, 258-259.
89) Schreiner, Galatians, 147.
요세푸스 역시 이 동사를 동일한 맥락에서 사용한 다(J.W. 2.454; Ant. 13.257-258).
따라서 안디옥 사건을 이해할 때는 베드로의 의도보다 바울의 관점 에 주목해야 한다.
비록 베드로가 의도적으로 할례를 요구한 것은 아니 었지만, 실제로 안디옥의 경외자 출신 이방 신자들은 ‘할례를 받아야만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바울은 이러한 현실 을 목격하고, 이 현상이 복음을 심각하게 훼손한다는 문제 의식을 드러 낸 것이다.
따라서 바울에게서 Ἰουδαΐζω는 암묵적으로 이방인에게 할례 를 요구하는 강압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동사 ἀναγκάζω(강요하다)도 검토되어야 한다.
바울은 베드로가 이방 인에게 할례를 받아 완전한 유대인이 되라고 강요했다고 지적한다.
갈라 디아서 2:14에서의 ἀναγκάζω의 사용은 의도적이다.90)
동일한 동사가 갈 라디아서 2:4에서도 사용되는데, 이 구절에서 디도는 거짓 형제들에 의 해 할례를 강요당했으나 바울과 바나바는 굴복하지 않았다.
바울은 이 사실을 복음 진리를 수호한 사례로 제시했다.
이처럼 갈라디아서 2:14의 베드로의 행위와 갈라디아서 2:4의 거짓 형제의 행위가 동일 동사로 연 결되는 것은, 두 행동의 본질이 다르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 다.91)
이어 갈라디아서 6:12에서도 이 동사는 사용되며,92) 그 문맥은 갈 라디아 교회 반대자들이 이방인에게 할례를 강제하는 장면이다. 그렇다면 그 강요는 단순한 도덕적 압박일까, 아니면 실질적 강제일 까?
다수 학자들은 베드로가 직접 할례를 요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도덕적 압박’으로 이해한다.93)
그러나 맥나이트(Scot McKnight)는 갈라디아 서 2:14의 ἀναγκάζω가 단순 권고를 넘어 강력한 강제성을 띤다고 본 다.94)
그는 특히 갈라디아서 6:12에서 이 단어가 διώκω(박해하다)와 병행 되는 용례에 주목하여, 이 용어가 심리적이고 사회적인 차원을 넘어 물 리적 강제를 함축한다고 본다.95)
90) Witherington, Grace in Galatia, 159; Martyn, Galatians, 235; Dunn, Jesus, Paul, and the Law: Studies in Mark and Galatians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1990), 129-130; Betz, 『갈라 디아서』, 258.
91) Schreiner, Galatians, 147; George, Galatians, 180.
92) Oakes, Galatians, 80.
93) McKnight, Galatians, 106.
94) Ibid., 106-107.
95) 유대인들이 이방인에게 강요했던 할례라는 물리적 요구는 유대 역사 안에서 여러 국면들을 갖는 다. 이방인들이 유대교로 개종했던 사실에 대한 폭넓은 논의로는 다음을 참고하라: S. McKnight, A Light Among the Gentiles: Jewish Missionary Activity During the Second Temple Period (Min neapolis: Fortress, 1991), esp. 68, 79-82.
물론 베드로가 실제로 이방인에게 물리적 강압을 가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바울의 시각에서 볼 때, 식탁 교제를 거부하는 베드로의 행위는 이방인에게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압 박을 가하며, 이는 심리 및 사회적 차원에서 사실상 ‘물리적 강제’와 유사 한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이러한 논의는 예루살렘 회의와 긴밀히 연결된다. 회의에서는 중도 적 유대인들의 중재로 하나님 경외자 출신 이방인에게 할례를 요구하지 않고, 대신 사도금령을 지키도록 합의하였다.
베드로는 이에 따라 안디 옥에서 이방인과 자유롭게 식탁 교제를 이어갔다.
그러나 비경외자 출신 의 몇몇 이방인이 식탁에 합류하고, 동시에 예루살렘에서 야고보의 사람 들이 회의 결과를 점검하기 위해 안디옥을 방문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베드로는 모든 이방인과의 식탁 교제를 중단했다.
이는 예루살렘 합의를 무너뜨리지 않으려는 신중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경 외자 출신의 신자들은 깊은 혼란과 상처를 입었다.
그들에게 베드로의 태도는 ‘사도금령만으로는 부족하며, 결국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잘못된 메시지로 다가왔고, 심리적 강제를 넘어 공동체적 억압으로 체감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목격한 바울은 주저하지 않고, 모든 사람 앞에서 베드로 를 철저하고 공개적으로 책망했던 것이다.
Ⅳ. 결론
본 글은 갈라디아서 2:11-14의 이른바 안디옥 사건을, 그 이전에 있 었던 예루살렘 회의의 결의 사항을 전제하고 해석한 것이다.
특히 예루 겨울 살렘 회의의 사도금령이 실제로 안디옥 교회에 적용된 상황을 배경으로 삼아, 베드로의 의도하지 않은 행동과 그로 인한 파장, 그리고 이에 대한 바울의 공개적 책망을 조명하였다.
요컨대 이 본문은 예루살렘 회의에서 합의된 복음의 원칙과 공동체적 약속이 현실의 삶과 공동체 안에서 어떻 게 긴장과 논쟁, 그리고 극복의 과정을 거치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 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문을 해석하면, 베드로의 행동은 비록 의도하지 않았으나 결과적으로 안디옥 교회의 이방 신자들에게 율법적 부담을 지우는 효과를 낳았고, 바울은 이를 복음의 본질을 위협하는 문 제로 인식하여 강력히 대응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지금까지의 논의 에 기초할 때, 갈라디아서 2:11-14는 다음과 같이 새롭게 해석할 수 있 다.
예루살렘 회의는 하나님 경외자 출신의 이방 그리스도인들에게 할례 를 강요해야 하는지를 논제로 개최되었습니다.
그 결과 중도적 유대 그리스도인들의 중재로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강요하지 않고 대신 최 소한의 사도금령을 요구하기로 했습니다. 따라서 안디옥 교회에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교제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도착한 베드로 역시 그런 교제에 동참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야고보의 사 람들이 회의 결의 사항의 준수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안디옥에 도착 했을 때, 베드로는 그들을 두려워했습니다. 그가 교제하던 이방인들 가운데 사도금령을 지키지 않는 비경외자 출신 이방인들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베드로는 모든 이방인과의 교제를 전면적 으로 중단했고, 다른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바나바까지도 그 행동에 동참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예루살렘 회의 결과가 무산되는 것을 막 기 위해 이런 결정을 내렸으나, 그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경외자 출신 이방 그리스도인들은 오히려 사도금령만으로는 온전한 그리스 도인이 될 수 없으며, 결국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여, 당신은 이방인에게 할례를 강요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결국은 그들에게 할례를 강요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 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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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초록
본 논문은 갈라디아서 2:11-14의 안디옥 사건을 사도행전 15장의 예 루살렘 회의와의 연속선상에서 고찰하며, 초기 교회가 직면한 이방인 문 제와 그 속에서 발생한 신학적, 공동체적 갈등을 면밀히 분석한다. 먼저 예루살렘 회의에서 합의된 사도금령의 성격과 그 실제적 효력이 안디옥 교회 안에 어떻게 적용되었는지를 살피며, 그 배경에서 베드로가 이방인 과의 식탁 교제를 중단하게 된 동기를 탐구한다. 이어 그의 행동이 의도 와 달리 이방 신자들, 특히 하나님 경외자 출신의 이방 신자들에게 암묵 적으로 율법적 준수를 강요하는 결과를 낳았음을 밝히고, 이로 인해 교 회 내에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발생했음을 논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바울이 취한 공개적 책망은 단순한 개인적 충돌이 아니라 복음의 진리와 공동체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신학적 대응으로 이해된다.
주제어 안디옥 사건, 예루살렘 회의, 갈라디아서 2:11-14, 사도금령, 바울의 책망
Abstract
What Did Peter Do Wrong? — A Study Centered on Galatians 2:11-14
Wookyoung Lee( Assistant Professor, New Testament Studies Hansei University)
This paper examines the Antioch incident in Galatians 2:11-14 in continuity with the Jerusalem Council in Acts 15, offering a detailed analysis of the Gentile issue facing the early church and the theological and communal conflicts that emerged from it. It first investigates the nature of the apostolic decree agreed upon at the Jerusalem Council and its practical implementation within the Antioch church, while exploring the motivation behind Peter’s withdrawal from table fellowship with Gentile believers. The study then demonstrates that Peter’s actions, contrary to his intention, implicitly imposed legal observance upon Gentile Christians — particularly those from God-fearer backgrounds — and thus generated significant tensions between Jewish and Gentile members within the community. Within this context, Paul’s public rebuke is interpreted not as a mere personal confrontation but as a theological response aimed at defending the truth of the gospel and preserving the identity of the Christian community.
Key Word : Antioch Incident, Jerusalem Council, Galatians 2:11-14, Apostolic Decree, Paul’s Rebuke
논문접수일: 2025년 8월 31일 논문수정일: 2025년 9월 24일 논문게재확정일: 2025년 12월 20일 312
神學思想 211집 · 2025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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