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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야기

『성 바울』을 통해 본 알랭 바디우의 주체 이론/ 홍기숙.숭실대

I. 알랭 바디우의 『성 바울』

II. 바디우의 주체 이론

III. 보편주의의 창시자로서 성 바울

IV. 바울의 그리스도교적 주체

V. 맺으며 

 

 

 

I. 알랭 바디우의 『성 바울』

 

알랭 바디우의 책 『성 바울』은 1997년 출간 당시 많은 사람에게 놀라움 을 안겨다 주었다.

자신을 무신론자이며 유물론자로 소개하고 있는 그가, 아 니 한때는 강력한 마오주의자였고 지금도 공산주의를 주창하고 있는 그가, 어떤 의미에서는 기독교 신앙인보다 더 구체적으로 명확히 기독교의 교리와 사상을 다루고 있는 이 화제의 책을 쓴 것이다.

이 책은 바디우의 철학을 옹 호하는 진보주의 계열에 의해서는 물론이지만, 그 당시 프랑스 자국 내에서 뿐만 아니라 서구 유럽 가톨릭 진영 내에서도 적잖은 파장을 일으키며 폭넓 게 읽혔다.1

『성 바울』 서문에서 바디우는 하나의 중요한 전제로부터 시작한다.

우 선 바울은 바디우에게 20세기 초 레닌과 볼셰비키에 의해 이루어진 ‘투사’ 와 같은 유형의 인물로 그려진다.

다시 말하자면, 바디우가 바울을 다루는 목 적은 신앙이나 믿음의 차원에서, 즉 종교적 차원에서가 아니다.

좀 더 정확 히 그의 표현대로 따르자면, 그는 “신앙을 증언하기 위해서나 혹은 반대로 비신앙을(무신론을) 증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한 ‘주체’로서의 바울과 그의 텍스트에 관심이 있기에 이 글을 쓴다고 밝히고 있다.

바디우에 게 기독교인인 파스칼이나 키에르케고르가 철학적 관심의 주된 대상이 될 수 있었듯이, 바울도 오랜 시간 전부터 “말라르메, 칸토르, 아르키메데스, 플 라톤, 로베스피에르, 콘래드 등”과 더불어 바디우와 함께 해온 인물 중 하나 이다.2

 

     1)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바디우의 사유는 다수의 신학자에 의해 연구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음과 같은 논문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장왕식, 「공백의 존재론과 사건의 진리: 바디우 철학 평가와 신학적 뒤집기」, 허석헌, 「바디우의 사건 개념에 대한 신학적 해석」, 김학철, 고형상, 「알랭 바디우 철학의 신학적 수용-알랭 바디우의 『사도 바울』을 중심으로」, 김용규, 「주체와 윤리 적 지평: 바디우와 아감벤의 ‘바울론’을 중심으로」

    2) 이렇게 바디우가 바울을 자신의 철학 내 주요 인물로 다루고 있는 것은 철학사적 맥락에서 예외적 인 것이 아닌데, 예를 들어 헤겔이나 꽁트, 니체, 프로이트, 하이데거 및 장 프랑스와 리오따르에 이르기까지 바울은 철학적 사유함의 대상이 되어왔다고 바디우는 말한다. A. Badiou, St. Paul, (PUF, 1997), 6.  

 

바디우는 바울을 ‘사도’나 ‘성인’으로 보지 않는다.

바울은 바디우에게 “사건을 사유하는 자이며 시인이고 투사”일뿐이다.3

 

  3) A. Badiou, St. Paul, 3.

 

바디우는 바울을 자신의 철학에 가장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주체나 보편성 에 대한 이론을 대변해 주는 사상가로, 그것도 오늘날의 현대성을 담보하는 자로 사유하려 한다.

그러나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분명한 점은, 비록 바 디우가 바울의 텍스트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따라서 바울의 기독교를 명확 히 규명하려 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날카롭게 문제를 진단하고 있다 하더라 도, 그는 비기독교인이라는 점이다.

바디우의 논의는 그 내용이 아무리 신선 하고 풍부하다고 할지라도 그로서는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몇 개의 기독교 교리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예컨대 바디우에게 바울은 요한과는 달리 삼위 일체의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인물이며, 파스칼과 달리 바울의 예수 그 리스도는 아버지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중보자가 아니다. 바디 우에게 바울의 예수 그리스도, 그는 하나의 사건이며, 우리에게 도래하는 것 의 이름일 뿐이다.

그러나 비기독교인으로서 갖게 되는 이러저러한 비기독 교적 결론들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지 모르며, 그런 의미에서 놀라운 일도 아니다. 오히려 놀라운 것은, 비기독교인 철학자 바디우에 의해 기독교인인 입장에서도 특이하다고 할 만한 접근과 내용들이 풍요롭게 펼쳐지고 있다는 점이다. 바디우의 철학적 논의에 따라 바울과 그의 그리스도 사건에 대한 텍스트 들은 바디우식으로 놀랍게 각색된다.

그리고 바디우는 바울을 통해 거꾸로 이 시대의 지적 흐름과 문제들에 날카롭게 접근하며 바울의 현대성을 사유 한다.

바디우의 『성바울』은 크게 세 가지 주제에 따른 독해로 접근이 가능하 다.

 첫째는 ‘반철학’적 접근이다.

바디우는 1992-96년 ‘반철학’이라는 주제 로 강의를 진행했다.

그 세미나의 첫 번째 대상은 니체였으며, 비트겐슈타인, 라캉, 그리고 마지막 인물이 바울이었다.

이 세미나 중 비트겐슈타인과 바울 은 세미나와는 독립된 텍스트로 각각 출판되었으며, 4 이후 바디우의 모든 세 미나가 출판되었고 출판 중이다.5

 

     4) 국내 번역본으로는 다음과 같다. 알랭 바디우, 『사도바울』, 현성환 옮김, (새물결, 2008); 알랭 바디 우, 『비트겐슈타인의 반철학』, 박성훈, 박영진 옮김, (사월의 책, 2015)

    5) 현재 국내에는 이 세미나 시리즈 중 니체와 라캉만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알랭 바디우, 『알랭 바디 우 세미나. 자크 라캉』, 박영진 옮김, (문예출판사, 2023); 알랭 바디우, 『알랭 바디우 세미나. 프리 드리히 니체』, 박성훈 옮김, (문예출판사, 2023) 118 

 

즉, ‘반철학’이라는 주제로 『성바울』을 접 근함은 저자인 바디우의 본래 의도를 잘 살린 방법이 될 것이다.

두 번째 접 근 방법은 『성바울』 책 부제에서 볼 수 있듯이 ‘보편주의 창시자’로서 바울 을 읽는 것이다.

바디우의 진리 개념이 갖고 있는 특징 중 하나인 ‘보편성’이 어떻게 바디우의 바울에게서 읽힐 수 있는지 고찰하는 것도 적절한 접근 방 법이다.

 세 번째로는 바디우의 ‘주체 이론’이라는 주제에 맞춰 『성바울』을 독해하는 것이다.

바디우의 주체 이론의 사례를 『성바울』에서처럼 잘 보여 주고 있는 저술은 없다.

본 소고는 ‘주체 이론’이라는 문제에 무게 중심을 두 고 바디우의 바울을 독해 해보고자 한다. 물론 이 세 가지 주제는 상호 연결 되어 있으며, 따라서 독립시켜 사유하기보다는 상호 내적 긴밀성을 전제하 며 접근하는 것이 유용할 것이다.

우리는 바디우의 철학적 사유에 바탕을 둔 바울의 사상을 『성바울』이라 는 텍스트의 흐름대로 쫓아가면서, 바디우의 주체 이론과 관련지어 논의를 쟁점화시켜 살펴볼 것이다.

이 논의는

  첫째, 바디우의 사상이 바울의 기독교 적 교리와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펼쳐지는지 살펴보면서, 그 정당성에 대 하여 논할 것이다.

  둘째는 바울 텍스트에 대한 전통적 해석에 기반을 둔 기독 교적 시각에서 바디우식 해석에서 기인하는 한계와 의의를 논할 것이다. 이 는 한편으로는 보편주의 창시자 바울을,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주체 이론 의 선구자이며 그 자신 한 주체로서 ‘투사’인 바울을 다루게 될 것이다.

우선 논의의 편의를 위해 바울 텍스트 독해에 근거를 이루고 있는 바디우 철학 내‘주체 이론’을 간략히나마 정리해보자.

 

II. 바디우의 주체 이론

 

바디우의 주체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우선 그것과 구별 지어지는 바디우 의 존재에 대한 언급을 개괄 해보자.

바디우의 존재는 “일자(Un)는 없으며 순수 다수(multiple pur)만이 존재한다”6 라는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6) A. Badiou, L’être et l’êvénement, Méditation Un (Seuil, 1988), 31-40. 바디우에게서 ‘순수다수’는 ‘불안정한 다수(multiple inconsistant)’로서 ‘없음(vide)’을 의미하는 존 재의 다른 이름이다. 

 

이 는 바디우에게서 ‘자연적 상황’을 나타내는 존재 일반을 일컫는 말이다.

그 러나 자연적 상황 내에서의 존재는 일반적인 다수의 원칙만을 받아들일 뿐, ‘사건’의 원리인 ‘역사성’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바디우는 그의 주저 『존 재와 사건』에서 지적한다.

따라서 바디우가 주목하는 ‘사건’이란 그가 자연 적 상황이라고 말하는 수학적 존재론의 외부에 있는 첫 번째 개념이다.

자연 적 존재론에서의 다수가 절대적이고, 전체적이며 구조적 안정성을 갖는다 면, 그래서 현시(présentation)와 재현( représentation)의 균형을 갖는다면, 역 사성은 국소적이고 불안정하며 도래하는 것의 드러남을 가능하게 한다.

바 디우의 미래에 도래할 ‘동일자’로서의 ‘진리’가 엮어지게 되는 것도, 이러한 역사성을 특징으로 갖는 ‘사건’을 통해 이루어진다.

바디우는 자연적 존재론과 구별되는 ‘진리’와 ‘사건’을 주목하고 특별히 ‘주체’를 주장한다.

프랑스 현대철학의 주된 사유는 주체 개념을 폐기하고 진리를 초월적, 규범적 범주로서 규정하며 낡은 유물로 규정하는데, 바디우 는 그 사유의 한가운데서 진리, 주체를 주장하는 것이다.

물론 바디우는 근대 의 도구적 합리성에 근거를 둔 주체 개념이나 법적 주체와 같은 개념을 옹호 하는 것도 아니며, 어떠한 불변하는 초월적 범주로서의 진리 개념을 내세우지도 않는다.

그러나 ‘데카르트의 주체로부터의 출발’, ‘근대의 지속’을 공 개적으로 선언하는 바디우에게는 분명 숨겨진 의도가 있다.

바디우는 시대 적 새로운 뒤틀림으로 현시대에 날카롭게 개입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현 대철학의 주 된 논의의 열 매 라 할 수 있는 ‘다양성 (multiplicité)’, ‘차이( diffèrence)’, ‘다름(Autre)’이라는 사유는 분명 획기적 인 시대적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바디우는 이와 동일한 노선을 취하지 않는다.

바디우는 『파르메니데스』의 플라톤 철학을 바탕으로 ‘다름(autre)’ 은 ‘순수 다수(multiple pur)’의 이름이며, 따라서 ‘있음’의 일반적인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즉, 다름과 차이의 문제는 우리에게 새롭게 드러 나 그 중요성을 지녀야 할 특별한 가치의 대상이 아니라, 언제나 있어 왔던 ‘존재의 이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우리 주변 있음의 세계는 다양과 차이 로 가득 차 있다.

그것들은 바디우에게 ‘같음(Même)’이나 ‘동일성(identité)’ 이라는 사유보다 우선시되거나 우월하게 평가되어야 할 특별한 개념이 아 니다. 인간의 진정한 해방과 평등에 주목하며 자신이 사유해 온 길의 진리를 쫓아가고 있는 바디우의 주된 관심은 이러한 ‘있음’의 이름인 ‘다름’에 묶일 수 없다.

그는 줄곧 어떻게 진리의 다른 이름인 ‘같음’을 사유할 수 있는가 를 묻는다.

바디우에 의하면 존재의 이름인 ‘다름’에 무관심한 것은 ‘같음’ 을 말해주는 ‘동일성’인데, 동일성은 그의 보편적 특징으로 인해 ‘모두에게 전달된다’는 성격을 갖는다. 이 ‘모두에게 전달됨’이 바로 바디우에게서 ‘진 리’ 개념의 핵심이다.

보편성을 담지하는 ‘진리’는 따라서 ‘모두에게 전달된 다’.7

 

     7) A.Badiou, L’Ethique (Hatier, 1993), 19-28.

 

‘보편성(universalité )’, ‘단독성( singularité )’, ‘식별불가능성 (indiscernabilité)’으로 특징 지울 수 있는 바디우의 ‘진리’는 국소적(local)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는 ‘주체’에 의해 이루어진다. 말하자면 전체성(tout)을 담보하는 진리가 주관적이며 국소적인 주체에 의해 이루어지는 역설적 과정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진리와 주체를 가능하게 하는, ‘우연성 (hasard)’만을 자신의 유일한 질료로 삼는 ‘사건’은 항상 일어나는 것이 아니 라 (혹은 들뢰즈에게서처럼 존재의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매 우 드물고(rare) 따라서 ‘알 수 없음’에 기대게 된다.

바디우는 『존재와 사건』의 숙고 35에서 고전적 개념과의 단절을 통한 새 로운 주체 개념의 내용을 다음의 6가지로 요약한다.8

 첫째로 바디우는 주체는 실체가 아니라고 선언한다.

그것이 데카르트적 인 의식적 실체로서의 주체이든, 신체적 몸을 상정한 주체이든, 모든 주체의 실체성을 파면시킨다.

실체라는 말은 바디우적 사유에 따르면, 어떠한 상황 속에서 일자로 셈해진 다수를 가리키는 말이다. 유적 절차에 의해 이루어지 는 진리는 이러한 상황의 셈하기로부터 벗어난다.

즉 상황의 언어에 의해 설 명 가능한 현시 속에 드러나지 않는다. 따라서 유적 절차가 해소되는 상황 내 적인 식별불가능성은 주체가 실체적이라는 사실을 기각한다.

   둘째로, 주체는 공백(vide)의 지점(point)이 아니다.

바디우에게서 존재의 고유명인 공백은 비인간적이고 비주체적인 개념으로 주체의 이름이 될 수 없는 존재론적인 개념일 뿐이다.

예컨대 사르트르에게서처럼 의식적 대자 존재로서 ‘무’인 인간이 바디우의 주체가 될 수 없다.

혹은 라캉의 순수한 공 백 위에 위치 지워지는 주체 역시 바디우의 식의 주체가 될 수 없다.9

 

     8) A. Badiou, L’être et l’événement, 429-430. 이 부분은 홍기숙, 「알랭 바디우의 진리와 주체」,『현상학 과 현대철학』제 80집, (한국현상학회, 2019), 38-39에서 가져옴.

     9) 프랑스와 발은 ‘공백의 장소’를 다루는 바디우와 라캉의 지점이 결정적으로 둘을 가르는 불일치 를 야기한다고 한다. 라캉에게서는 하나의 시니피앙에서 다른 시니피앙으로 떨어지며 소멸해야 하 는 주체가 공백의 장소라면, 바디우에게서 공백은 주체를 존재에 봉합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A. Badiou, L’être et l’événement, 38. 

 

   셋째로, 주체는 경험의 의미로 조직화될 수 없다.

그러나 반면 칸트적 의 미의 선험적 주체로서의 초월론적 기능으로도 정의될 수 없다.

바디우의 논의에 의하면 경험이라는 것은 현시를 그 자체로 가리키는 말이다.

하지만 초 과수적(surnuméraire) 이름이 규정하는 사건적 초일자로부터 유래하는 유적 절차는 현시와 전혀 일치할 수 없다.

따라서 ‘진리’와 경험으로부터 오는 ‘의 미’를 구분해야 한다.

유적 절차는 상황의 후사건적인 진리를 생산하지만 이 진리는 식별불가능한 다수로서 어떠한 의미도 전달하지 않기 때문이다.

   넷째로, 바디우의 주체는 현시의 상수 혹은 불변적 요소(invariant)가 아 니다.

주체는 매우 드물다.

진리의 유적 절차가 상황을 가로질러 나타나는 만 큼 희귀하며(rare), 또한 특이(singulier)하다.

따라서 ‘주체가 존재한다’는 언 명은 우연적인(aléatoire) 것이며, 주체는 존재와 관련해 추이적(transitif)이지 않다.

   다섯째, 모든 주체는 규정지어질 수 있다.

사랑이 있는 곳에는 개별적 주 체, 과학이나 예술은 혼합된 주체, 정치는 집단적 주체들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필연적이지 않다.

어떠한 법칙도 주체가 있다고 명령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바디우에게서 주체는 결과가 아니다. 더욱이 원인이나 기 원도 아니다. 주체는 과정이다. 그래서 바디우에게 주체 개념은 주체화 (subjectivation)와 동급이다. 바디우의 주체는 유적 절차 속에서 국소적인 위 치를 지니며 상황에서 벗어난 짜임새를 자아낸다.

 

III. 보편주의의 창시자로서 성 바울

 

바디우의 ‘진리’, ‘주체’, ‘사건’ 등의 개념을 중심으로 『성 바울』이라는 책을 보게 되면 앞서 언급한 대로 바디우식으로 각색된 바울의 사상을 볼 수 있으며, 그럼에도 바디우가 바울의 텍스트 모두를 변형시킬 수 없었음도 확 인하게 된다.

바디우의 철학적 논의가 어렵지만 그의 논의에 따라 그가 주장 하는 바에 접근해 보자.

이중적 발견을 갖게 한다.

  첫째는 이 책을 통해 어려 운 바디우의 철학이 쉽게 그려지고 이해되며,

  둘째는 바디우의 성경 독해의 한계와 궁극적으로 자신 철학에 근거해 바울의 기독교 교리를 맞추려 하는 안타까움을 엿볼 수 있다.

 

1. 바울의 현대성

 

0바디우는 사복음서의 저자들과는 달리 바울이 자신의 서신서에서 예수 님의 개인적인 이야기에 대해, 즉 병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오병 이의 기적이나 파도를 잠잠하게 한 등의 어떤 기적 같은 내용을 결코 쓰고 있지 않음을 강조한다.

바울이 겨냥한 것은 이러한 믿을 수 없는 기적에 관한 이야기, 예로부터 어떤 주술사나 마술사에 의해 이루어졌을 법한 이야기들, 말하자면 그다지 새로울 게 없는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에 대한 하나의 진술이다. 바디우는 거듭 예수님에 대한 출생이나 가르침, 죽임 등에 대한 내용이 아닌 ‘부활’에 대한 진술로 바울의 이야기가 집약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사실 바울의 이 러한 의도는 바디우의 생각처럼 뻔하고 식상한 이야기에 대한 언급의 불필 요성을 느껴서가 아니라,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으 며, 그보다는 당시 긴박한 사안이 더 중요한 ‘서신’이 갖고 있는 특징 때문이 었을 것이다. 바디우는 바울의 현대성을 사유하며 이 시대를 진단하고 날카롭게 개 입한다.

바울의 ‘부활’의 기독교에 대한 충실함이 바디우에게 주체와 관련 된 명제와 (율)법과의 관계를 해명하게 해주며, 따라서 바디우의 ‘진리’, ‘주 체’, ‘사건’의 문제를 정확하게 그 안에서 규명할 수 있게 한다.

물론 비기독 교인인 바디우는 기독교가 지니는 우화적인 요소를 제거해야 함을 여러 차 례 강조함으로써 기독교라는 종교의 차원에서 벗어나 순수한 철학의 영역에 서 바울의 사상을 다루고자 함을 밝힌다.

바디우는 바디우식으로 요약된 바울의 일반적 방식 “만일 사건이 있고, 진리가 그 사건을 선언함과 또한 선언에 대한 충실함에 있다면”으로부터 두 가지 결론이 나온다고 말한다.

  첫째는 도래하는 것으로서, 후사건적인 “진리 란 단독적이다(elle est singulière)”이다.

그것은 구조적이지도 공리적이지도 않으며, 법적이지도 않다.

따라서 어떠한 일반성으로도 설명 불가능하다.

진 리의 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둘째로 선언으로부터 이루어지는 진리란 이 미 구성된 어떠한 부분 집합에 의해서도 지지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바디 우에게 진리란 전적으로 대각선적(diagonal)이며, 그렇지만 동시에 모두에게 제공되고 말 건네는 보편성을 갖는다.10

바디우는 바울의 글 모두 한 상황에의 개입을 보여주는 서한으로 바울이 제기하고 있는 모든 문제는 특정한 전략적 전술에 따라 지배, 배치되어 있다 고 말한다.

바디우는 다음의 네 가지 특징으로 바울의 현대성을 요약한다.11

 

      10) A. Badiou, St. Paul, 15.

      11) A. Badiou, St. Paul, 15-16. 

 

  첫째, 기독교적 주체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선언하는 사건보다 앞서 존재 하지 않는다.

따라서 유대 담론이나 그리스 담론으로 기독교적 주체는 설명 불가능하다.

  둘째, 진리는 전적으로 주체적이다. 진리는 사건에 대한 확신을 증명하는 선언에 속함으로 주관적이다.

  셋째, 선언에 대한 충실성은 결정적 인데, 왜냐하면 진리는 하나의 과정이지 계시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진리를 사유하기 위한 세 개념이 필요하다.

진리의 선언 한 가운데서 주 체를 명명하는 개념인 ‘믿음(확신, foi, conviction)’과 이 믿음을 충실하게 전 하는 것인 주체를 명명하는 개념인 ‘사랑(자애, amour, charité)’, 그리고 진 리의 과정을 온전히 수행하게 하는 주체를 명명하는 개념인 ‘소망(확실성, espérance, certitude)’이 그것이다.

이에 대한 내용은 본문 속에서 다시 언급 되고 다루어진다.

  넷째, 진리란 그 자체 상황의 상태, 예컨대 로마제국이라는 상태와는 무관하다.

바디우는 바울의 글을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만큼 부단한 현재성으로 더 잘 조명해주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비록 영화로 만들어지 지는 않았지만, 그의 시나리오에서는 기독교의 문제를 코뮌주의 문제로, 성 스러움의 문제를 투사의 문제로 교차시키고 있으며, 바디우가 보기에 파솔 리니의 목표는 “바울의 발언을 하나도 수정하지 않고 그를 동시대인으로 만 드는 것”이었다.

바울을 바로 여기, 오늘 우리 안에 온전한 것으로 상상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람이 파솔리니였다고 바디우는 말 한다.12

 

     12) A. Badiou, St. Paul, 38-39. 

 

이렇게 재정립된 바울의 이론은 바디우 자신이 말하는 진리와 주체 이론 을 가능하게 하는 이론이 되며, 따라서 현대성의 담론 영역으로 당당히 들어 오게 된다.

기독교적 주체는 부활의 사건 이전에 앞서 존재하지 않으며, 우연 적 사건에 종속되는 후사건적 특징을 가지며, 이전의 다른 담론으로는 설명 불가능한, 즉 백과사전적 지식으로는 설명 불가능한 진리에 충실한 주체로 규정된다.

 

2. 바울의 텍스트와 컨텍스트

 

바울은 잘 알려져 있듯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러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 예수님을 만나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한 사울이었다.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의 사울은 바리새인이었으며, 최고의 지식인이었고 로마 시민권을 가진 인물 로 예수님을 쫓는 자들을 처형하려는 열성으로 가득 찬 사람이었다.

예수님을 만난 충격적인 사건을 바울은 서한마다 고백하고 있다고 바디우는 말한 다.

신약의 3분의 2를 기록한 저자가 예수님의 제자도 아니며, 따라서 예수님 의 기적을 매 순간 목도했던 사람도 아니었다는 점은 바디우에게만 특이한 일은 아닐 것이다.

바울의 텍스트들은 2세기 말, 3세기 초에 뒤늦게 정전으로 묶어졌다고 바디우는 말한다.

그렇게 된 이유를 바디우는 네 가지로 본다.13

 

    13) A. Badiou, St. Paul, 34-38. 

 

  1) 『신약성서』의 어떤 내용보다 바울의 서한들이 일찍 작성되었다는 점 을 간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즉 바울의 서한들은 모두 상황 내로의 개입을 전제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주로 50-58년 사이에 작성되었으며, 그 중 『데살 로니가전서』(50년)는 아마도 4복음서 중 가장 먼저 씌어졌다는 『마가복음』 (70년)보다 20년이나 앞선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일찍부터 필사되어 사 람들에게 읽히고 있었던 바울의 서한들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2) 바울의 텍스트들이 없었다면 그리스도교의 메시지는 모호한 상태로 남겨져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요한복음(아마도 가장 늦게 90년경 씌어졌을 것이다)을 제외한 복음서들은 바울의 서한들과는 완전히 대조적인 예수님 의 공적들이나 생애의 예외적인 성격만을 강조하는 데 있다고 바디우는 말 한다.

반면 바울의 텍스트들은 이 모든 떠들썩한 이야기들은 제외하고 단 하 나의 지점으로 귀착되는데, 즉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께서, 즉 그리스도께 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그것이다. 또한 바울의 문체 는 간결하고 응축된 그러면서 강한 추진력과 박진감을 갖고 있어, 앙리보쇼 가 지적하듯 섹스피어의 긴 독백들을 연상시킨다고 말한다. 무엇보다도 바 울이 다루고 있는 문제의 논증과 제한의 힘, 그리고 사유의 본질적 핵심을 이 끌어내는 강한 힘은 어떠한 주관적 우유부단함이나 진리의 은폐도 찾아볼 수 없다고 바디우는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따라서 루터가 왜 바울의 서한만 이 계시의 의미가 있다고 보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고 바디우는 말한다. 

   3) 유대인들의 봉기가 시작(66년, 바울의 사후)된 후 예루살렘 성전은 70 년 티투스에 의해 파괴되고, 그로부터 유대인들의 ‘디아스포라’라는 본격적 인 흩어짐이 시작된다.

다시 말해 더 이상 예루살렘은 기독교의 중심지가 되 지 못하고 바울이 예견했던 대로 ‘로마’로 그리스도교의 진정한 수도가 옮 기게 되는 역사적인 사건들을 맞이하게 된다.

이러한 바울의 외침과 예견의 적중은 아마도 그의 저작들을 무시할 수 없었던 주된 이유가 되었을 것이라 고 바디우는 말한다. 이방인의 사도였던 바울이 결국은 로마에서 처형되고, 또한 그의 저서 중 『로마서』가 가장 발전된 논의와 견고한 틀을 가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4) 2세기 초 극단적인 바울주의의 분파인 마르키온이라는 이단의 출현 은 더욱더 올바른 바울, 말하자면 온건한 바울을 재정립해야 할 필요성을 갖 게 했다고 바디우는 말한다.

후에 마니교적 단초를 제공한 마르키온은 『구 약』과 『신약』을 단절하여 둘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신은 동일한 신이 아니라 고 주장한다. 즉 『구약』의 창조의 신은 어둡고 변덕스러운 악한 신이며, 『신 약』의 그리스도의 상징적 아버지는 선한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러 나 실제로 바울의 어떤 텍스트에서도 두 하나님 사이의 단절된 의미를 찾아 볼 수 없으며, 따라서 하나님의 유일성을 한순간도 의심하지 않고 있다고 바 디우는 지적한다.

어쨌든 이러한 위험한 이단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도 교부 들은 온건한 바울의 텍스트들을 정전에 넣어야 했다는 것이다.

 

IV. 바울의 기독교적 주체

 

1. 세 가지 담론

 

바디우는 바울이 살고 있었던 세계의 두 가지 정합적인 지적 형상을 지배하는 담론들의 체계를 분석한다.

즉 주된 담론으로 ‘그리스의 담론’과 ‘유대 담론’을 바디우는 꼽는다.

그렇다면 유대 담론과 그리스 담론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와 구별되는 바울의 ‘기독교(그리스도교)의 담론’의 특징은 무엇 인가?

유대 담론은 ‘예언자’적 주체의 형상에 따라 구성되는 것으로서 ‘표적’ 의 담론이라 할 수 있으며, 그리스 담론은 ‘현자’라는 주체의 형상으로 구성 되는 것으로서 ‘지혜’의 담론, 우주적 질서와 관련된 것으로 본질적으로 총 체성의 담론이라 할 수 있다.

이 둘은 바디우에 의하면 ‘아버지의 담론’이다.

그러나 오직 ‘아들의 담론’으로 제시되는 보편적인 담론인 기독교의 담론만 이 절대적으로 새로운 것이라는 확신과 더불어 역사 속으로 개입하게 된다.

이 역사 속으로의 개입은 니체의 말대로 “둘로 나뉜다”는 분열에 근거를 두 는 것으로, 두 지배담론과 단절을 가능하게 한다.

바디우의 바울은 예언자와 철학자와는 구별되는 ‘사도’로서의 주체 담론을 주장한다.

“사도가 되도록 부름을 받은” 바울은 ‘부활’의 진정한 의미인 ‘죽음을 이김’을 증언하는 자 이다.

또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부활은 끊임없이 우리의 부활 과 연결되고, 특수성에서 보편성으로 그리고 그 역으로 나아가는 승리의 메 시지이다.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 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고전 15:16-17)

 

사건은 이런 의미에서 은총이지 역사가 아니라고 바디우는 지적한다.

따 라서 사도란 이러한 은총의 가능성, 즉 복음(죽음을 이기고, 구원받을 수 있 다는 기쁜 소식)을 명명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사도의 담론은 사건에 의해 열려진 가능성에 대한 충실함으로 정의된다.

그리스 담론에서의 철학자는 영원한 진리를 탐구하고 안다고 여기며, 유대 담론의 주체인 예언자는 일어 날 일과 의미를 알지만, 사도로서 그리스도교 담론의 주체는 엄밀히 말해 아 무 것도 알지 못한다.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 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고전 8:2)”

 

그렇다면 사도는 어떻게 아는 가?

그는 믿음에 근거한 선언을 바탕으로 모든 앎의 사라짐을 전제함으로써 만 안다.

 

“지식도 폐하리라(고전 13:8)”

 

따라서 바울은 사도로서 복음을 전 할 때 자신의 지혜로 즉 말의 지혜로 하지 않았는데,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를 헛되이 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바디우는 여기서 부활의 사건 을 철학적 로고스나 기존의 유대적 지식에 의해서는 식별할 수 없음에 주목 한다.

말하자면 사건을 식별할 수 있게 해주는 현상인 언어를 막다른 골목에 이르게 하는 점을 지적하면서 바디우는 자신의 철학적 논의에 비추어 분석 한다.

이 세상의 지혜를 사용하지 않는 ‘십자가의 도’는 이성의 담론인 그리 스 담론에서는 ‘어리석음’이요, 하나님의 표적만을 구하는 유대 담론에서는 ‘거리낌(추문, 스캔들)’이다.

그러나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고전 1:19)”고 한 그리스도교의 담론은

“세 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고전1:28)”라는 ‘없음’에 근거하는 담론이다.

바디우는 위의 “있는 것들을 폐하기 위해 없는 것을 택하였다”는 논의로 부터 두 가지 특이한 내용을 이끈다.14

 

    14) A. Badiou, St. Paul, 50.

 

 첫째는 그리스도 사건은 “신은 존재의 신이 아니며 존재 그 자체도 아니다”라는 것을 입증해 준다고 말한다.

 둘째는 바울의 그리스도교는 너무 급진적이어서 파스칼마저도 당황스럽게 했 다고 한다.

첫 번째 내용은 그 논의의 맥락은 다르지만, “존재를 넘어서는 하 나님”이라는 레비나스의 철학적 사유에서도 엿볼 수 있다.

과연 바디우의 해석대로 존재의 신이거나 존재 그 자체를 벗어나는 하나님을 바울이 말하 고 있는 것일까?

없음을 들어 있음을 멸하시는 하나님이란 그 자체 “스스로 있는 자”로서의 하나님의 강함이 드러나는, 전능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물론 존재에 대한 물음을 어떻게 한정 짓느냐가 이 논의를 이끌어 가는 주된 해결의 열쇠가 되겠지만, 여전히 바디우식 논의는 석연치 않은 물 음으로 남는다.

바디우에게 하나님은 존재가 아닌 도래하는 것의 이름일 뿐 이다.

둘째의 결론은 바디우 자신의 철학적 사유에 대한 고집으로부터 기인 하는 파스칼에 대한 선입관과 비기독교인으로서 갖는 한계가 뒤섞여 있음 을 보게 한다.

바디우는 근본적으로 두 사람-둘 다 기독교인이면서 반철학자 이다-의 시각이 둘로 나누어진다고 말한다.15

 

    15) A. Badiou, St. Paul, 51-53.

 

  첫째, 파스칼에게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매개이지만, 바울에게서는 순수한 사건일 뿐이 다.

그리스도의 사건은 우리에게 율법에서 벗어나 자녀로서의 동등성을 갖 게 하는 보편성을 담는다.

말하자면 파스칼은 여전히 아버지의 율법주의에 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바디우의 논점인 파스칼이 예수 그리스도를 아버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매개로서 파악하려 했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그런 의미에서 근대의 매개적 사유가 파스칼의 철학 안에 녹아 있음도 적절 한 해석임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파스칼의 아들 하나님을 통해 아버 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은 바디우가 말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의 사 건과 다른 이야기를 하는 별개의 담론이 아니다.

비록 바디우가 파스칼과 달 리 바울의 그리스도의 사건을 현시대적 사유에 걸맞게 단절로 그리고 갑작 스런 도래로 묘사한다고 할지라도, 둘의 이야기는 같은 곳으로 향하고 있으 며 의문의 율법에 묶여 있기보다는 성령의 법에 이끌리고 있다고 본다.

  둘째, 파스칼은 우리의 비참함의 현실을 통해 더욱 하나님과 가까워지며 우리의 힘들고 어려운 모든 것을 위로하고 치료하시는 분이 예수님, 즉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고백한다.

이러한 내용으로부터 바디우는 바울과는 달리 파스칼 은 약하고, 어리석고, 없음이라는 그리스도교 담론을 아주 마지못해 받아들 인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우리의 연약함을 들어 강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을 말하고 있는 바울의 이야기가 “가난한 심령으로 의에 목마른 자는 복이 있 다”는 예수님의 산상수훈과 다른 것이 아니며,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 을 고백하는 것이 아닌가?

바디우는 이점을 간과하고 있다.

바디우는 이 세 가지 담론 외에도 네 번째 담론인 신비주의의 담론을 말 한다.16

 

  16) A. Badiou, St. Paul, 54.

 

이 점에 대한 설명에서 바디우는 라깡과 바울의 공통점을 지적한다.

 세 번째 하늘까지 갔다 온 바울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말로 표 현해서도 안 되는 경험을 했다고 고백한다.

마치 라깡의 ‘대문자 타자(대타 자)’로 환희의 절정에 이르는 신비주의적 담론은 이와 흡사한데, 바디우는 이를 지나치게 밀고 나가다 보면, 결국은 두 번째 담론인 유대 담론으로 빠지 게 된다고 정의한다. 

따라서 결국 바디우가 취하는 담론은 세 번째 담론인 알 수 없지만 명명해야 하는 부름을 받은 사도의 담론이다. 

과연 바디우의 생각 처럼 네 번째 담론을 기적의 담론을 추구하는 유대 담론과 같은 것으로 분석 하고 넘겨버릴 수 있는가?

그렇다면 『사도행전』 마가의 다락방에 임한 강한 성령의 불과 바람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물론 바디우는 『사도행전』과 『누가복음』의 저자인 누가를 매우 평가절하하고 있으므로 이 논의 전체를 무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성령의 은사를 설명하는 장에 서 바울이 이야기 하고 있는 “방언하기를 힘쓰되 예언하기를 더 사모하라” 는 말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유일하게 바울의 글들만이 우리들에게는 신비로울 수밖에 없는 성령의 일들을 계시의 형태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 다. 

 

2. 그리스도교적 주체의 분열

 

이 책의 다섯 번째 장에서 바디우는 자신의 중심 테제인 ‘주체의 분열’에 대해 바울의 논의를 근거로 펼친다.

네 가지 담론 중 세 번째 담론인 그리스 도교적 주체만이 바디우가 보는 바울 이론에 적합한 주체이다.

두 번째 담론 과 네 번째 담론은 폐지되어야 하는데, 그것들은 주체를 통일시키기 때문이 다.

그런데 이 그리스도교의 주체는 주체로 세워지는 동시에 분열을 겪는다.

즉,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8:6)”라는 두 갈래의 길에 접어들게 된다.

그리스도라는 사건에 충실함으로써 모든 주 체의 사유 내에 영향을 미치는 두 갈래의 길이 형성됨이 기독교적 주체의 본 질이라고 바디우는 말한다.

그리스 담론에서는 우주적 총체성이 대상이 되 며, 유대 담론에 있어서는 선민의 사상에 기반을 둔 신과의 예외적인 결연이 대상이 된다.

그러나 바울에게 그리스도의 사건은 율법에는 이질적인 것이 요, 모든 규정들 위로 넘치는 순수한 범람이요 은총이다.

유대인들은 표적들 을 찾고 기적들을 요청한다.

그리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고 질문을 던지 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선언한다고 말한다.

제자들밖에 모르는 그리스 담론은 생명이 시작되는 아들로서의 주체를 말하는 그리스도 담론에 대립한다.

그뿐만 아니라, 율법과 예속의 형상을 갖는 유대 담론 또한 신의 동역자로서 평등의 담론을 갖는 아들 담론과 대립한다.

바디우에 의하 면 바울에게 사건은 그리스도이다.

즉 “예수는 우리에게 보편적으로 도래 하는 것의 이름”이다.

이 장에서 바디우는 바울의 적수였으며 경쟁자인 니체를 함께 논한다.17

 

     17) A. Badiou, St. Paul, 64-66.

 

『안티크리스트』에서 그토록 난폭하게 니체가 바울을 비판했던 이유는 그가 적이기보다는 경쟁자였기 때문이다.

니체는 바울이 “삶의 중심을 삶이 아니라, 내세 즉 무에 두었고,” 그래서 “삶 중심에서 삶 그 자체를 박탈해버렸다 (『안티크리스트』 43절)”고 말하는데, 바디우는 바울이 이와는 정반대되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고 말한다.

바울에게 있어 삶이 죽음에 보복하는 것은, 바 로 지금 여기에서이며, 죽음의 사유인 육체를 따라 살지 않고 생명의 영에 따 라 긍정적으로 사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고 말이다.

율법 속에서 죽음이 왕 노 릇 했다면, 부활을 통해 생의 중심이 생에 자신의 자리를 잡게 해준 것이다.

따라서 순수한 사건은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했다는 것으로 환원될 수 있다고 바디우는 말한다.

이 사건이 은총이며 모든 것을 넘어서는 잉여물 이며, 순수한 증여이다.

주체는 실재의 시련을 견뎌내는 주체로서 사건의 은 총에 의해 구성된다.

이는 육체의 길에 대한 중단인 동시에 생명인 영의 길에 대한 단언이다.

요컨대, 바디우는 사건을 통한 단절이 주체를 항상 분열된 형 태로 구성하며, 바로 그러한 형식이 보편성을 담보한다고 주장한다.

 

3. 죽음과 부활의 반변증법 / 율법의 문제

 

바디우에게 바울에 근거한 그리스도의 죽음은 결코 변증법적으로 설명 될 수 없다.

한때는 헤겔에 능통한 헤겔주의자 바디우가 헤겔식 변증법에 강 한 반감을 갖게 된 것은 그의 저서 『주체 이론』 이후부터로 보인다.

바디우 는 『존재와 사건』 서문에 『주체 이론』에서 가졌던 자신의 철학적 한계를 밝 히고 있다.18

 

     18) A. Badiou, L’être et l’événement, 10. 

 

그중 변증법에 대한 견해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우리는 여기서 바디우가 현대철학의 큰 특징 중 하나인 반변증법적인 사유를 공유하고 있 음을 확인한다.

바디우에게 부정과 매개에 의한 사유 과정을 규정하는 변증 법적 방식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헤겔식 변증법적 사유 과정에 따르면, 부활이란 부정의 부정일 뿐이며, 죽음은 절대자의 자기-외화의 결정적인 시점이며, 고통과 죽음은 내재적인 구원의 기능을 지니 는 것이다.

그러나 바디우가 보기에 그리스도의 사건은 하나의 은총이며, 절 대자의 계기가 아니라 절대적 긍정이고, 우리에게 도래하는 것이다.

죽음을 간직하면서 부정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죽음을 삼켜버리고 폐지하는 것 이 중요한 것이라고 바디우는 지적한다.

따라서 바울에게 그리스도 사건은 ‘부활’뿐이라고 바디우는 말한다.

이 사건은 부정성을 근절시키고, 죽음 자 체로 환원될 수 없는 절대적 긍정을 이룬다.

바디우에게 부활은 죽음의 힘 밖 으로 갑자기 출현하는 것이지, 죽음을 부정함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 다.

바디우의 이러한 해석은 매우 설득력이 있어 보일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부활’에 대한 소망을 갖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에 이 어 바디우는 이렇게 말한다.

 

“부활한 자는 우리를 자녀 삼으며, 우리를 아들이라는 일반적 차원으 로 포섭한다. 바울에게 그리스도는 신과 동일하지 않다는 점과, 또한 어떠한 삼위일체 이론이나 실체론적인 이론도 그의 설교를 지지하고 있지 않음을 상기하는 것은 중요하다. … 바울의 사유는 부활안에서 육화를 파기시킨다.”19

 

     19) A. Badiou, St. Paul, 78. 

 

바디우는 실제로 바울을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말하지 않은 인물로 규 정하고, ‘부활’은 창조의 말씀 그 자체인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가 이 땅에 육 체를 입고 오심, 즉 육화가 사라지는 사건이라고 말한다.

바디우에게 바울의 그리스도는 사건일 뿐, 실체론적인 접근이 가능한 분이 아니다.

십자가에 매 달려 돌아가신 분은 신이 아니며, 무한자가 아니다.

이러한 바디우의 논의는그 철학적 맥락을 근거로 볼 때,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기독교의 신 앙 차원에서 결코 납득할 수 없는 논의로 신을 너무도 철학적으로 어쩌면 철 학을 넘어서 비존재로까지 규명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의문을 갖게 한다.

바디우는 이 죽음과 부활이라는 맥락에 이어 다음의 두 가지 테제로부터 율법과 죽음의 문제, 그리고 은총과 사건의 문제를 다룬다. 죽음에 이르러야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율법이라는 것이다.

율법의 모티브는 바울에게 죄 와 죽음의 모티브와 연결된다. “

 

1.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지 행위에 의한 것이 아니다.

 

2. 우리는 더 이상 율법 아래에 있지 않고, 은총 아래에 있다.”20

 

    20) A. Badiou, St. Paul, 79.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 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찌니라 …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 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각양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전에 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생명에 이르게 할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 도다.” (롬7: 6-10)

 

율법은 죄를 일으키는 욕망에 대상을 지정함으로써 욕망을 반복적 자율 성에 떠맡기게 했다고 바디우는 말한다.

즉 욕망은 위반의 형태로 자동성을 획득한다.

즉 욕심은 죄를 낳고 죄는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바울의 논의를 기 반으로 죄를 규정했던 율법은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

반면 은총과 사건은 그러한 죽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생명의 영에 이르게 한다. 

 

4. 믿음, 사랑, 소망

 

바디우는 바울의 텍스트를 근거로 믿음과 사랑, 소망이라는 중요한 기독 교 교리를 마무리한다.

보편적 힘으로서의 사랑은 선언에 의해 이루어진 믿 음을 바탕으로 충실한 주체에 견고함을 마련해주며, 후사건적인 진리를 세 계 내에 실현한다.

이러한 사랑은 문자적이지 않은 새로운 법을 명명한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롬13:8-10)”

 

바디우는 사랑이 사유를 힘으로 만든다고 말한다.

그리고 구원의 능력은 믿 음이 아니라 믿음으로부터 시작된 사랑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

즉 그리스 도 사건에 사랑과 그로 인한 충실성이 없다면 그러한 사건의 선언은 아무 소 용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바디우는 바울에게 즉각적 구원이란 없으며, 은 총 그 자체는 가능성에 대한 지시일 뿐이며 사랑에 의한 노력에 의해 가능하 게 된다고 강조한다.

결국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받는다는 기 독교의 교리는 사랑이라는 충성된 과정을 끝까지 이루어야만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바디우의 사유를 믿는다고 말하고 사랑하지 않는 기독교인 들을 향한 일침 정도로 이해한다면 우리에게 속사람을 강하게 할 명분을 주 는 유익한 영양분은 될 수 있을 것 같다.

‘소망’ 또한 바디우에게는 심판 날 을 의미하는 종말론에 의해 특징지어지기보다는 지속에 대한 명령, 끈기의 원칙으로 그려진다.

즉 믿음이란 진리에 대한 열림이고, 사랑은 그러한 과정 을 보편화하는 실제이며, 소망은 그러한 과정 안에서 갖는 확고한 준칙이라 는 것이다.

바디우의 이러한 논의는 결국 심판 날의 그날, 혹은 예수님 재림의 날이 라는 그날의 소망을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목적론이나 매개론을 부정 하며, 과정으로서의 충실함만이 진리를 만들어 나가며, 그 자체가 진리라는 바디우의 논리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축제의 날이며 영광의 날이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믿지 않은 비그리스도인들에게는 가혹한 심판의 날인 그날을 말씀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바디우에게는 아마도 당연한 결론일 것이다.

다음은 바디우가 바울의 텍스트를 근거로 세운 공리들이다.

 공리 1 : 모두에게 향한 일자가 있는데, 이는 (율)법이 아닌 사건으로부 터 기인한다.

 공리 2 : 율법적이지 않은(비법률적인) 우연성으로서의 사건만이 그 스 스로를 넘어서는 다수성을 도래하게 하며, 유한성을 넘어서는 가능 성을 갖게 한다.

 공리 3 : (율)법은 주체를 사유의 무능력으로 구성한다.

공리 4 : 구원의 문자, 즉 진리 절차의 문자적 형태란 존재하지 않는다.

 공리 5 : 주체는 자신에 의해 이루어지는 진리의 보편적 전달을 비문자 적인 법에 의해 수행한다.

 공리 6 : 진리에 능력을 주고 주체적 충실성을 결정하는 것은 사건에 의 해 형성된 스스로와의 관계가 모두에게 전달됨, 즉 보편성에 있지 관계 그 자체는 아니다.

 공리 7 : 진리의 주체적 과정은 이 진리에 대한 사랑과 동일한 것이다. 이 사랑의 전투적 실재는 진리를 구성하는 모두에게 전달된다. 보편 주의는 모든 진리의 전투적 차원을 그 물질성으로 갖는다.

 공리 8 : 주체의 지속성에 대한 문제는, 주체를 구성하며, 따라서 주 체와 실제로 연결되어 있는 진리의 일어남이 보편적이라는 사실 에 의해서만 유지된다.

보편성(universalité)이 존재하는 한에서만 단독성(singularité)은 존재한다. 그렇지 않다면 진리 밖의 개별성  (particulier)만이 존재할 뿐이다.21

 

    21) A. Badiou, St. Paul, 85-103. 

 

바디우에게 은총의 사건이 임하는 그날은 바울의 글에서처럼 갑자기 도 래한다.

“주의 날이 밤의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살 전5:2)”

 

V. 맺으며

 

지금까지 살펴본 바디우의 『성바울』은 앞서 언급한 대로 바디우의 철학 적 논의에 따라 바울의 기독교 교리를 재구성한 저서이다. 바디우의 진리, 주 체, 사건의 철학적 개념들이 바울의 그리스도를 만난 사건을 통해 주체로서 복음을 전하는 충실성과 기독교적 진리의 과정을 얼마나 그럴듯하게 그리고 있는지는 대해, 그리고 그 구체적인 논의들 예컨대 죽은 율법과 살아있는 복 음의 차이, 주체의 분열, 기독교적 주체의 진리로 향한 강제성을 가능하게 하 는 믿음, 소망, 사랑의 교리들에 대한 분석 등은 일반 기독교인들의 시각에서 도 찬사를 아끼지 않게 한다.

또한 바울의 사상을 현시대의 새로운 논점에 의 해 재구성했다는 철학적, 신학적 의의도 충분히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글 중간마다 언급했던 비신앙인으로써의 한계, 즉 삼위일체를 부정한다거나 종말론적 신앙관을 부인하는 문제 등은 기독교 교리에 서서 잘 분별하여 살 펴보아야 할 것이다.

궁 극 적으로 바디우에게서 주체는 대상 없 는 주체로 주체화 (subjectivation)와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바 디우에게 있어 주체는 개념이나 공리로 주어지기보다는 이론으로 규정된 다.22

 

     22) A. Badiou, Le Séminaire: Theorie axiomatique du Sujet 1996-1998, (Fayard, 2019), 29. 

 

자신이 뛰어든 그곳이 진리의 장소인지 명확한 확신을 가질 수는 없지 만, 사후적 진리 과정에 충실히 하고자 하는 주체는 자신을 추동하는 강한 힘 (강제성, 촉성, forçage)에 이끌리며 진리를 완성해 나간다. 바디우에게 그리 고 바디우에 의해 그려지는 바울에게 진리란 사후에나 소급하여 검증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주님 앞에 섰을 때 “충성된 종”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 다. 이러한 주체의 현상에 관한 기술은 결국 주체의 식별불가능성에 의해 막 막한 그 상황을 극복할 수 없는 수동적인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수동성은 동시에 앞서 말한 강제하는 힘으로 사랑하게 하고 소망을 그 힘으로 갖게 하는 능동적 입장을 갖는다.

즉 바디우의 주체 개념은 주체의 자발적 능동성과 소극적 수동성이 동시에 주어지는 이론이 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논의는 한편으로 볼 때, 사후 검증가능성과 식별불가 능성, 그리고 결정불가능성에 의해 적극적인 대안을 갖기 어려워 보이는 난 점을 갖는다.

소위 철학자적 혹은 지식인적인 양심에 호소하며 그러한 진리 에의 선포, 즉 “진리는 아직 이 시대에 요청되고 있다”고 당위적으로 외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다른 한편, 바디우의 주체 이 론은 수학자 코헨에 기대여 말하고 있는 강제성(forçage)으로 능동적 힘을 추 동하는 그 근거를 갖게 되는데, 이를 굳이 기독교적 시각에서 비유해 말해 보 자면, 보혜사 성령님의 도우심과 중보하심으로 즉, 하나님의 ‘열심’으로 결 국 그날을 이루게 하실 줄 안다.

바디우의 생각처럼 그날은 도둑처럼 오겠지만, 그러나 바디우의 생각과 는 달리, 바울은 깨어있는 자들에게 그날은 결코 도둑처럼 오지 않는다고 덧 붙인다.

무화과나무가 시절을 쫓아 열매를 맺는 때를 알 수 있듯이 신랑이 오 는 그날의 혼인 잔치는 기름이 준비된 다섯 처녀에게는 결코 도둑처럼 오지않는다.

바디우의 바울과 바울의 텍스트를 통한 보편주의와 진리, 주체에 대한 접 근은 바디우의 독특한 철학적 논점에 근거하여 분석되고 있으며, 그러한 바디우의 논변에 바탕을 둔 이 시대를 관통하는 몇 가지 특이한 논점들은 우리 의 시선을 그냥 지나치게 하지 않는다.

‘차이’와 ‘다름’만이 주장되고 있는 현대 사유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선언하고 명명해야 하는 ‘진리’가 있다는 그의 주장은 옳음과 윤리가 사라지고 있는 이때 아 직도 대안을 찾고 있는 우리에게 강하게 다가오는 메시지임은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참고문헌

블레즈 파스칼, 『팡세』, 김형길 옮김,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1996. 프리드리히 니체, 『안티크리스트』,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13. 알랭 바디우, 『사도바울』, 현성환 옮김, 새물결, 2008. _______, 『알랭 바디우 세미나. 자크 라캉』, 박영진 옮김, 문예출판사, 2023. _______, 『알랭 바디우 세미나. 프리드리히 니체』, 박성훈 옮김, 문예출판사, 2023. 홍기숙, 「알랭 바디우의 진리와 주체」,『현상학과 현대철학』 제 80집, 한국현 상학회, 2019. Pascal. B., Pensées, Ed. Gallimard, 2004 Badiou. A., L’Etre et l’événement, Seuil, 1988. _______, Manifeste pour la philosophie, Seuil, 1989. _______, Conditions, Seuil, 1992. _______, L’Ethique, Essai sur la conscience du Mal, Hatier, 1993. _______, St Paul, La fondation de l’universalisme, Puf, 1997. _______, Le Séminaire: Theorie axiomatique du Sujet 1996-1998, Fayard, 2019.

 

초 록

본 논문은 알랭 바디우의 저술 『성 바울』을 중심으로 바디우 철학의 중 심 주제인 주체 이론을 살펴보고 있다. 바디우의 주체는 진리와 사건이라는 두 중심 개념과 함께 사유해야 하는 것으로, 바울의 텍스트를 통해 바디우는 진리의 보편성인 “모두에게 전달된다”는 주제와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 이 후 그리스도교에 충실한 주체의 모습, 그러나 분열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주 체의 모습을 분석하고 있다. 이러한 바디우의 바울 독해는 바울을 동시대성 으로 사유하려는 따라서 바울의 현대성을 통해 현실의 문제를 역으로 진단 하고 그 대안을 찾으려는 그의 예리한 시대적 개입이 전제되어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바디우는 바울을 무엇보다 ‘반철학자’로 규정한다. 또한 바울은 바디우에게 보편주의의 창시자이며, 그의 그리스도교를 위한 주체적 행위는 ‘투사’로서 조명된다. 매 순간 개입의 위급함을 보여주는 바울의 서신들은 투사로서 전략적 치밀함을 보여주는 것이요, 셰익스피어에 비유되는 서시들 이다. 그러나 본 논문은 바디우의 바울 텍스트 분석을 통한 주장의 내용을 밝 히는 것은 물론, 그리스도교인의 시각에서 비신앙인으로서 바디우가 바울의 텍스트를 분석하는데 갖게 되는 한계와 문제점도 짚어보고자 한다.

키워드 : 알랭 바디우, 성 바울, 주체, 사건, 진리

 

Abstract 

Alain Badiou’s Theory of the Subject through Saint Paul

Hong, Ki-Sook(Soong-sil Univ.)

This paper examines Alain Badiou’s theory of the subject, a central theme in his philosophy, with a focus on his work Saint Paul: The Foundation of Universalism. Badiou’s concept of the subject must be understood in conjunction with the two key notions of truth and event. Through Paul’s texts, Badiou analyzes the universality of truth, encapsulated in the idea that it is “addressed to all,” as well as the figure of the faithful subject to Christianity following the event of Christ’s resurrection. However, he also explores the subject’s inevitable confrontation with division. Badiou’s interpretation of Paul reflects his intent to think of Paul in contemporaneity, diagnosing modern issues through Paul’s relevance and seeking alternatives in response. Badiou primarily defines Paul as an “antiphilosopher.” Additionally, Paul is seen by Badiou as the founder of universalism, with his subjective actions for Christianity illuminated as those of a “militant.” Paul’s epistles, demonstrating the urgency of intervention at every moment, reveal strategic precision as a militant and are likened to Shakespearean prologues. However, this paper not only elucidates the claims arising from Badiou’s analysis of Pauline texts but also aims to address the limitations and problems that emerge from Badiou’s approach as a non-believer analyzing Paul’s texts from a nonChristian perspective.

key words : Alain Badiou, St. Paul, subject, event, thruth

 

 

논문투고일: 2024.11.30 논문심사일: 2024.12.15 게재확정일: 2024.12.20

「기독교철학」 제41호

KCI_FI003155895.pdf
0.74MB

 

 https://doi.org/10.23291/jcp.2024..4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