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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야기

도덕실천동력 문제에서 본 주자 심론의 다층적 구조- 명대 주자학 연구를 위한 시론 - 김나윤.원광大

Ⅰ. 머리말

 

공자와 맹자의 유학은 인(仁)을 중심으로 한 인격의 완성을 궁극 목적으로하며, 이 과정에서 도덕성의 내재와 그에 따른 도덕실천을 인간의 존재론적 사실이자 이로부터 도출되는 의무로 간주한다.

공맹의 계승자들은 이 목적을 완수하기위한 다양한 이론틀을 제시하였다.

특히 송명의 유학자들은 특히 불교로부터의지적 자극을 말미암아 리기·심성론을 확립하고, 그와 정합적인 수양론을 제시하여 유가의 계승 발전을 도모하는 가운데 스스로를 도통(道統)의 계보에 자리매김하고자 하였다.

유가 정신의 본령을 고려해볼 때, 이 도통의 전승자들, 즉 도학자(道學者)들의 이론은 무엇보다 내재 도덕성과 이에 근거한 자연스러운 도덕 실천을 분명하게 설명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송명리학의 대표적 학자라 할수있는 주자의 경우, 집대성자라는 그 지위와 이론의 방대함, 우수함에도 불구하고당대와 후대 모두에 그의 이론에 대해, 특히 도덕 실천에 관한 그의 설명에 대해비판이 존재해왔다.

특히 명대에 이르러서는, 주자학에 대한 내부적 반성과 더불어 심학적 문제의식의 결합을 통한 주자학의 계승발전을 시도하는 경향이 주자학묵수주의보다 더욱 큰 학술적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이는 리기와 심성에 대한주자학의 이론이 공맹 유학이 지향했던 도덕의 문제를 충분히 해명해주지 못한다는인식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바꿔 말하자면, 주자학에는 공맹 유학의핵심 요소인 도덕 실천의 동력에 관한 설명이 부재하거나, 혹은 설명상의 어려움이라는 문제가 존재한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1)

필자를 비롯하여 이 지점에주목하는 학자들은 결국 도덕실천동력을 주자학 체계 안에서 어떻게 잘 설명할수있느냐가 유학 이론으로서 주자학이 직면한 도전이라고 본다.2)

 

        1) 현대신유가 모종삼(牟宗三)은 주자가 이 문제에 있어 결국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했으며, 유학 전통에서 별자(別者)가 된다고 주장한다.

        2) 고해파(高海波)의 「道德实践的动力问题以东亚的性理学为例」(道德与文明 第5期, 2019), 김나윤의 주자학의 意 개념에 관한 윤리학적 연구 : 도덕실천을 위한 동력의 탐색(중앙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22), 오주연의 주자학의 도덕실천동력에 관한 연구 : 주희의 진지와퇴계의 리자도를 중심으로(건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24) 등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탐색을 시도한 대표적인 연구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주자의 이론에 대한 상반된 입장이 존재하는 원인은 바로 그의 이론체계 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주자는 인식의 능력이 강조되는 지각심을 통해 도덕원리인 성리를 파악하는 심성론 체계를 확립했으며, 또한 격물이라는 공부를통해 이를 완성할 수 있다는 주지주의적 입장을 지지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양지(良知), 도심(道心), 사단(四端), 명덕(明德), 성의(誠意)처럼 도덕적 마음이나 도덕정감과 관련된 것으로 읽힐 수 있는 요소들 또한 자신의 체계 내에서 배제하지않았다.

이는 유가의 도덕 전통에 대한 주자 자신의 동의와 존중, 그리고 지적인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신념이 그의 사유 속에서 긴장 관계를 이루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논문에서는 주자의 마음 개념을 분석하여 도덕실천동력과 연계될 수 있는접점을 발굴하고자 한다. 동시에 주자의 체계가 가진 긴장감에서 해소되지 못하는 점 또한 밝혀 향후 명대 유학, 더 나아가 주자학의 전개 과정에서 계승과 비판의 방향성을 제공했음을 보이고자 한다.

주지하다시피 주자는 마음이 가진 다양한 작용과 표현의 양태들을 통해 총체적 존재로서의 마음의 함의를 제시하고있으며, 이 개념들 사이의 다층적 구조와 관계를 통해 본성으로서의 도덕성의 담지자인 인간과 현실에서 도덕실천을 해나가는 실천 주체로서의 인간을 조화롭게그려내고자 하였다. 주자는 도덕실천의 완성은 단지 인간의 주관적 감성인식에의거해서는 안되고, 정확한 인간 이해와 세계 이해에 기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는 세계와 인간의 다양한 측면에 대한 정확한 설명을 위해서는 개념의엄밀한 구분 또한 반드시 요구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필자는 주자의 이러한 인식에 기초하여, 그가 엄밀하게 구분된 개념들의 종합으로서 최종적으로 상정한도덕적 인간상을 검토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마음의 기능인 지각(知覺)과, 마음의두 가지 상태이자 성(性)과 밀접히 연관된 개념인 미발과 이발, 그리고 이발심의두 가지 양상인 도심과 인심의 중첩적이고 다층적 구조를 살펴봄으로써 도덕실천동력이 논의될 수 있는 가능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마음에 기반하여도덕 원리를 탐색하고 내면화하는 과정에서 리와 마음의 필연적 연관으로부터도출되는 도덕 동력을 암시했던 주자의 사유와 그 한계를 함께 고찰할 수 있을것이다.

 

Ⅱ. 마음과 지각 : 지각의 두 차원과 주자 도덕론의 관건

 

주지하다시피 주자의 이론에서 마음에 대한 대표적인 설명은 그것이 기(氣)의정상(精爽)이라는 것이고, 또 그것이 바로 지각(知覺)이라는 것이다.

이 두 가지문제는 후대 주자학자들에게서 논쟁의 주제가 되었고, 오늘날까지도 쟁점으로다루어지고 있다.3)

 

    3) 이 두 문제는 특히 조선성리학 내에서의 풍부한 논의의 바탕이 되었다. 또한 이 문제에 있어 오늘날 상반된 입장을 표명하는 대표적인 학자로는 이명휘(李明輝), 진래(陳來)가 있다. 

 

특히 마음의 본질이자 기능이 바로 지각이라는 이해는 주자학의도덕철학적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로 간주되어왔다.4)

또한 이 두 지점은 주자학의 마음 개념을 통해 도덕실천의 동력을 설명하는데 있어서도 관건이라 할 수 있다. 기는 마음의 활동성으로서 도덕실천을 직접이루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지각은 마음의 도덕적 활동 방식을 규정한다.

이 논문에서는 특히 후자, 즉 마음이 지각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주자학의 도덕실천동력 문제를 검토해보고자 한다.

마음에 대한 주자의 다양한 설명 가운데 지각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주자는“지각 있음을 마음[心]이라 한다”5)고 하였고, 또 “지각이 곧 마음의 덕(德)6)”이라고도 하였다.

이는 주자가 마음의 핵심을 지각으로 보았음을 확인할 수 있는 언급이다.

그는 또한 “마음은 사람의 지각이니, 몸을 주관하고 만물에 대응하는 것”7) 이라고 보아, 지각을 흔히들 생각하는 사고 영역, 인식[perception]의 영역에만한정하지 않았다.8)

이처럼 마음이 곧 지각이라는 주자의 정의는 그의 또 다른 명제인 “심통성정(心統性情)”에 따라 성(性)과 정(情), 그리고 감(感)이나 지(知), 의(意)와 같은 마음의 작용을 포함한 심성론의 다양한 개념들이 모두 지각과 관련을 맺는다는 의미로 확장된다.

대체로 성은 곧 마음의 리이며, 정은 곧 성의 쓰임이다.

지금 먼저 마음을 이야기함은 사람들로 하여금 성정을 총괄하는 핵심을 알게 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도리가간직되어 있는 곳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성을 먼저 말한다면 오히려 성 가운데 별개의 마음이 있는 것 같다.9)

 

   4) 명대에 이르러 양명학은 주자학의 심(心), 리(理) 구분에 근거한 격물(格物) 공부를 비판했으며 지각의 심이 아닌 본심(本心)으로서의 양지(良知)를 강조하여 도덕실천의 직접성을드러내고자 하였다. 또한 현대신유가 모종삼(牟宗三)은 그의 저서 心體與性體를 통해 송명유학의 계통을 나누고 정이와 주자의 계열이 기심(氣心)의 강조를 통한 심정리명(心靜理明)의 구도를 취함으로써 초월적인 리(理)와 후천적인 심(心)이 대립하는 가운데 ‘심이 리를 인지하고 리가 심을 초월적으로 이끄는 관계’를 설정함으로써 타율도덕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고 주장한다.(모종삼, 김기주 외 역, 심체와성체 1, 소명출판, 2012 참조)

    5) 朱子語類(이하 語類) 140-106: 有知覺謂之心.

    6) 語類 20-96: 知覺便是心之德.

    7) 朱子文集(이하 文集) 卷65, 「大禹謨」: 心者, 人之知覺, 主於身而應事物者也.

    8) 모종삼의 비판을 살펴보면, 정이와 주자같은 유가 전통의 별자(別子)들은 그들이 이해한인체(仁體), 심체(心體), 성체(性體), 도체(道體)를 실재론적이고 인식론적인 관점에서 大學의 개념들을 중심으로 재구성하였다. 이에 지선(至善)과 치지(致知), 격물(格物)은 존재원리와 인식의 주객대립 구도에서 이해되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전개 속에서 그들은 지식의문제와 덕을 완성하는 문제를 뒤섞어버리게 되었다.(모종삼, 김기주 외 역, 심체와성체 1, 소명출판, 2012 참조) 9) 語類 5-66: 蓋性卽心之理, 情卽性之用. 今先說一箇心, 便敎人識得箇情性底總腦, 敎人知得箇道理存著處. 若先說性, 卻似性中別有一箇心. 橫渠心統性情語極好. (이하 강조표시는 모두필자)

 

“성(性)은 곧 리(理)이고, 정(情)은 흘러나와 운용되는 곳이며, 심의 지각은 이 리를 갖추고 이 정을 행하는 것이다.”10)

 

성(性), 심(心), 정(情) 개념의 분리는 주자학의 큰 특징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유가의 선구자인 맹자(孟子)에게서 성, 심, 정, 재(才)는 다양한 이름으로 나뉘지만 동일한 내용을 가리키고 있는 반면, 주자학의 경우 성은 리(理), 즉 선 그 자체이지만 심과 정은 순수한 리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론적 차이를 갖는다.11)

주자의심과 정은 그 자체로 도덕성이자 선인 리는 아니며 리와 분명히 구분되는 존재론적 성격을 가진 무엇이다.

특히 마음은 이 장 서두에서 했던 두 가지 설명에 근거하여 선(善)의 가능성12)을 지니며, 그 가능성은 자기 자신과 선, 즉 리와의 필연적 연관13)으로부터 성립한다.

 

     10) 文集 卷55, 「答潘謙之」: 性卽是理, 情是流出運用處, 心之知覺卽所以具此理而行此情者也.

     11) 모종삼, 김기주 외 역, 심체와성체1, 소명출판, 2012 참조. 선행연구들은 이 지점을 지적하며 정이천, 주자의 학문을 맹자, 왕양명의 유학적 계보와 구분한다. 필자 역시 유학 이론의 분화를 살펴보는 데 있어 타당한 구분이라 생각된다.

     12) 주자의 체계에서 리는 오직 선(善)인 반면, 심과 정은 선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있다는 점에서 가능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13) 이것은 필자가 주자에게서 도덕실천동력이 설명될 수 있다고 보는 하나의 근거이다. 주지하다시피 주자에게서는 마음이 곧 리임, 즉 주체의 자기 동일성이자, “존재하는 것의 내적인 본질이 스스로를 현실성으로서 전개해 가면서 자기 자신을 확증해 가는 과정, 가능성이 현실성으로 전화하는 과정”(철학사전편찬위원회, 철학사전, 2009)으로서의 필연성을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주자에게 리(理)는 인간의 본성이자 마음의 본체[心之體], 즉 그것의 떨어질 수 없는 내적 본질이라는 점에서 동일성이 아닌 필연적 관계를 맺고 있다. 예컨대 다음의 원문에서 인(仁)과 심(心)의 관계가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주자 철학 전체를관통하는 ‘불상리불상잡(不相離不相雜)’의 관계이기도 하다. 주자가 말하는 체용일원(體用一源)과 현미무간(顯微無間) 역시 필연적 연관의 구도에서 설명될 수 있다. 語類 31-8: 仁與心本是一物. 被私欲一隔, 心便違仁去, 卻爲二物. 若私欲旣無, 則心與仁便不相違, 合成一物. 心猶鏡, 仁猶鏡之明. 鏡本來明, 被塵垢一蔽, 遂不明. 若塵垢一去, 則鏡明矣. 顔子三箇月之久無塵垢. 其餘人或日一次無塵垢, 少間又暗; 或月一次無塵垢, 二十九日暗, 亦不可知. 

 

즉, 주자는 마음이 리를 갖추고 정을 행하는 진정한도덕 주체가 될 수 있는 근거로 마음의 활동성과 리(理)와의 관계성 – 분리되지만 동시에 연계되는 - 을 말하는 것이다. 물었다.

 

“마음은 지각이고 성은 리인데, 마음과 리가 어떻게 하나로 관통할 수 있습니까?” (주자가) 답했다. “참으로 통하게 할 필요가 없으니, 본래 관통한다.”14)

 

   14) 語類 5-26: 問: “心是知覺, 性是理. 心與理如何得貫通爲一?” 曰: “不須去著實通, 本來貫通.”

 

물었다. “지각은 마음이 신령함이 진실로 이러한 것인데, (이는) 기가 그렇게 한것입니까?” (주자가) 말했다. “단지 기만은 아니니, 지각의 리가 먼저 존재한다. 리는 지각하지 못하고 기는 모여서 형체를 이루니 리와 기가 합하면 지각할 수 있다. … 물었다. “마음이 발한 것은 기가 아닙니까?” 말했다. “또한 다만 지각일 뿐이다.”15)

 

이처럼 주자는 마음과 성, 즉 지각과 리는 분명하게 구분되는 동시에 필연적으로 이어져 있다고 보았다. ‘본래(本來)’란 그것의 존재 조건을 말한다. 따라서심과 리를 그것이 가리키는 바에 착안하여 개념적으로 분리해서 이해하는 것 이상으로 심과 리를 동시적이고 종합적이지 않은, 서로 다른 사태로 분리하려는 시도는 주자의 의도로부터 거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주자는 마음에 대해 ‘기’로만 접근하려는 것을 경계한다. 물론 마음은 세계를 구성하는 두 인자(因子)인리기 가운데 기이지만, 주자는 그 기의 정상(精爽)한 것이 리(理)를 담고 있는 것을마음이라 규정한다.16)

주자에게 심성, 즉 지각과 리는 분리된 동시에 필연적으로결합되어 있다.17)

이처럼 마음이 성리를 담고 있으며 본래 그것과 관통한다는사실은 주자에게 부정될 수 없는 존재론적 사실이자 인간 완성의 조건이다. 그리고그것은 마음의 지각을 통해서 실현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지각의 두 층위에 대해 살펴보자. 먼저 그 첫 번째는 본래적기능 차원으로, 심 자체의 능력이자 작용으로서의 지각이다. 주자에 대한 강한비판자인 현대신유가 모종삼의 ‘인식심’ 규정은 바로 리와 심을 주객으로 분리하고리에 대한 심의 인식 작용 측면을 집중적으로 고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경험적 운용 차원으로 지각이다. 이는 현실적 존재자인 인간이 일상의 경험에서 지각을 운용하여 도덕실천을 이루어나가는 과정을 일컫는 것이다. 즉, 앞서말했던 심성론의 다양한 개념 중 지(知), 감(感), 정(情), 의(意) 등 인간의 인식 능력과 의식이 결합, 운용되면서 구체적 실천을 낳는 종합적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현실 인간의 인식과 실천을 아우르는 지각은 그 자신의 본성에 따라 경험의과정 중에 세계와 자기 자신에게 내재해 있는 원리와 떨어지지 않는다.18)

 

    15) 語類 5-24: 問: “知覺是心之靈固如此, 抑氣之爲邪?” 曰: “不專是氣, 是先有知覺之理. 理未知覺, 氣聚成形, 理與氣合, 便能知覺. … 問: “心之發處是氣否?” 曰: “也只是知覺.”

     16) 語類 100-44: ‘…心者, 性之郛郭.’ 康節這數句極好.

     17) 그리고 주자에게는 ‘리의 활동성’이란 인정되지 않는데, 그것은 마치 ‘선의 가변성’과 같이주자의 체계 내에서 형용모순이기 때문이다.

     18) 그러나 주자는 이것이 본성이 곧 지각이라는 말과는 다른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文集 卷74, 「玉山講義」: 却爲後世之言性者, 多雜佛老而言, 所以將性字作知覺心意看之(了), 非聖賢所說性字本指也. 

 

다만 지각이 선과 관계하는 방식은 그 자신이 ‘선 그 자체’인 것, 즉 본질적 필연성이아니라 ‘필연적 연관’이며, 이것은 곧 지각의 두 층위와도 깊이 관련이 있다.

즉, 지각이 선과 1) 필연적 연관을 갖는다는 사실과 2) 그러한 필연적 연관의 현실화가능성이라는 두 가지 각도에서 지각을 다룰 수 있다.

이와 같은 지각의 두 층위를 확인하기 위해 주자의 언급들을 살펴보자.

먼저적자지심과 대인지심에 대한 언급에서 지각에 관한 그의 견해를 확인할 수 있다.

 

대인은 알지 못하는 것이 없고 할 수 없는 것이 없다. 어린아이는 아는 것이 없고할 수 있는 것이 없다. … 대개 어린아이의 마음은 순일무위(純一無僞)하고, 대인의마음 역시도 순일무위하다. 그러나 어린아이는 지각이 없는 순일무위함이고, 대인은지각이 있는 순일무위함이다.19)

 

주자하다시피 적자지심과 대인지심은 그 순일무위를 보증하는 리(理)와 선(善) 이라는 차원에서 내용적으로 동일하지만, 전자는 성선(性善)의 증거 차원에서언급된, 기질과 환경의 제약을 받지 않은 본래의 순수성이 드러난 것을 가리키는것인 반면 후자는 경험 세계에서 수양공부라는 노력을 통해 달성되는 이상적 인격을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20)

 

    19) 語類 57-10: 大人無所不知, 無所不能, 赤子無所知, 無所能. … 蓋赤子之心, 純一無僞, 而大人之心, 亦純一無僞. 但赤子是無知覺底純一無僞, 大人是有知覺底純一無僞.

    20) 비록 적자지심은 본래적 순일무위를 드러내기 위해 사용되었지만, 이는 또한 이미 현상적 마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때문에 이천은 “赤子之心, 可以謂之和, 不可謂之中.”라고 하였고, 주자 또한 「已發未發說」에서 이를 인용하였다. 주자는 적자지심이라 하더라도 이미“마음이 유행하는 곳에 나아가 본 것이므로 곧바로 성이라고 할 수 없다(已是就心體流行處見, 故直謂之性則不可)”고 말한다 

 

그리고 주자는 그 차이가 바로 ‘지각’의유무에 있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주자는 ‘지각 있음’을 알지 못하는 것이 없고할수 없는 것이 없는 상태로, 반대로 ‘지각 없음’은 아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이 없는상태로 규정한다. 이로부터, 먼저 여기서 주자가 말하고 있는 지각이란 단지앎[知]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행위까지도 포괄하는 개념임을 알 수 있다. 또한지각 유무의 차이에서 말하는 지각은 경험 세계에서의 인간의 능동적이고 주체적인활동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갓난아이는 감각기관을 통한 감각자료의 수용이나 본능에 따른 활동은 할 수 있지만, 이를 활용한 사고나 판단, 더 나아가 도덕원리에 대한 존경이나, 강건한 의지의 결단과 그에 따른 활동은 할 수 없다. 대인의 마음이 지각 있는 순일무위함인 까닭은 그가 현상 세계에서 마주한 다양한경험 가운데 그의 본성을 깨닫고 제약을 극복하며 마침내 마음과 리의 일치를 이루어 낸 순일무위함이기 때문이다.

즉, 대인의 “지각이 있는 순일무위”란 지각을통해 실현한 순일무위, 지각을 통해 본래 상태와의 합일을 이루어 낸 순일무위를뜻한다. 그런데 경험 세계에서 다양한 지각 활동을 하는 성인(成人)이 곧 모두 대인은 아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지각 활동 유무로 구별되는 적자와 대인의 지각의차이 이외에도, 현상의 감각지각 활동을 갖추었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다른 이유에서 구분되는 일반 사람과 대인의 지각의 차이라는 두 가지 구도가 형성된다. 그렇다면 일반 사람의 지각과 대인의 지각은 어떻게 다른가? 이를 확인하기 위해 우리는 지각에 관한 주자의 가장 대표적인 주장으로 다시돌아가야 한다. 주자는 “지각 있음을 심(心)이라 한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혈기를 지닌 존재라면 누구나 심이 있고21), 그러한 심의 본래적 작용이 바로 지각이라는 점에서 지각은 없을 수 없다. 이는 앞서 살펴보았던 인식과 의식의 활동차원이 아닌 지각의 다른 특성에 관한 것이다. 또 주자는 아래와 같이 말하기도한다.

(마음이) 아직 발동하기 전에도 경(敬)이니, 진실로 이미 존양의 실질에 있어 주가되고, 마음이 이미 발동한 뒤에도 경이니, 또한 성찰하는 가운데에서도 항상 (이것을) 행한다. 존양할 때는 사려가 싹트지 않았지만 지각은 어둡지 않으니, 이것이 곧 고요함 속의 움직임으로 복괘(復卦)의 ‘천지의 마음을 본다’는 것이다.

그 성찰에 미쳐서는 사물이 뒤섞여 얽혀있으나 절도에서 어긋나지 않으니, 이것이 곧 움직임 속의고요함으로, 간괘(艮卦)의 ‘그 몸을 얻지 못하고 그 사람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22)

 

    21) 존재의 유적 구분에 따른 지각의 양상에 대해서는 다음의 언급들을 참고. 특히 초목이혈기와 지각을 갖느냐에 대해서는 語類와 文集에서의 언급이 상충한다. 文集 卷59, 「答余方叔(大猷)」: 天之生物, 有有血氣知覺者, 人獸是也; 有無血氣知覺而但有生氣者, 草木是也. … 草木枯槁, 則又幷與其知覺者而亡焉.; 語類 60-45: 又問: “人與鳥獸固有知覺, 但知覺有通塞, 草木亦有知覺否?” 曰: “亦有. 如一盆花, 得些水澆灌, 便敷榮; 若摧抑他, 便枯悴. 謂之無知覺, 可乎? 周茂叔窗前草不除去, 云‘與自家意思一般’, 便是有知覺. 只是鳥獸底知覺不如人底, 草木底知覺又不如鳥獸底. 又如大黃喫著便會瀉, 附子喫著便會熱. 只是他知覺只從這一路去.”

    22) 文集 卷32, 「答張欽夫」: 未發之前是敬也, 固已主乎存養之實 : 已發之際是敬也, 又常行於省察之間. 方其存也, 思慮未萌而知覺不昧, 是則靜中之動, 復之所以‘見天地之心’也. 及其察也, 事物紛糾而品節不差, 是則動中之靜, 艮之所以‘不獲其身, 不見其人’也.

 

주자는 마음의 발(發) - 필자는 이를 현상 세계에서의 마음의 활동이라 간주한다 - 을 기준으로 이전과 이후를 나누며, 양자를 관통하는 수양 공부로서 경(敬)을제시한다. 미발과 이발의 경은 존양과 성찰이라는 두 가지 활동 양상으로 표현된다. 또한 주자는 이어서, 마음의 미발 상태, 즉 감각 경험과 감각 자료를 전제로 하는 사려의 활동이 없는 상태라 하더라도 그 상태를 지각이 없는 것으로 볼수없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지각은 인간 존재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 이러한 각도에서 본다면 앞서 살펴보았던 적자지심, 대인지심 구분에서의 지각 유무는 적어도 인간 존재의 기본 조건으로서의 지각을 가리키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적자지심을 ‘지각이 없는 순일무위’로 설명할 때의 지각은 지각불매의지각과는 달리 설명되어야 할 것이다. 주자는 지각불매를 ‘고요함 속의 움직임’이자‘천지의 마음을 보는 것’으로 부연하는데, 고요함 속의 움직임이란 마음의 현상적활동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을 때 그 활동의 정적 상태 내에 잠재해 있는 지각의작용성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지각의 작용성은 바로 먼저 존재하는지각의 리로 말미암아 가능하다. 즉, 리기의 합으로서 지각이 가능하다.

이를‘천지의 마음’이라 하는 것도 지각의 작용성이 천지만물의 자연스러운 작용성에상응하는 까닭이라 볼 수 있다.

이처럼 지각불매의 지각, 고요함 속의 움직임이자천지의 마음인 지각은 적자와 대인의 분기점이 아니라 오히려 그 둘을 관통하고있는 동일성으로서의 지각으로, 이것이 바로 경험적 활동과 구별되는 ‘미발지각’ 이라고 할 수 있다.23)

이 미발지각은 단지 마음의 현상적 활동이 아직 일어나지않은 상태, 즉 경험과 시간 상에서의 심리/의식 상태의 고요한 때 – 활동없는지각 - 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지각의 활동이 가능한 근거로서의 작용성이자 동시에 성리(性理)와 “본래 관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예컨대 주자가 大學 傳 7장의 “마음이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24)는 구절에 대해 “지각하자마자 의리가 곧바로 여기에 있으나, 혼매해지면 곧 볼 수없다”25)고 덧붙인 것은, 지각과 성리의 본래 관통하는 성격, 필연적 연관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3) 한자경은 현대 한국의 미발지각 논쟁을 미발의 형이상자를 마음의 활동없는 성(리)로만간주하는 입장(문석윤), 미발을 오히려 경험적 의식으로 해명하는 입장(이승환), 미발이 경험적 의식일 수 없음을 강조하며 미발과 성의 동일성을 주장하는 입장(손영식), 그리고 본체로서와 공부로서의 미발의 종합을 통해 성리와 심기를 통일하려는 입장(이상돈)으로 정리하고 미발지각에 대한 본인의 견해를 “개별인간 안에 깃든 보편적 천지지심인 심층마음의 허령불매의 활동성”이라고 주장한다.(한자경, 「미발지각(未發知覺)이란 무엇인가? 현대한국에서의 미발 논쟁에 관한 고찰을 겸함」, 철학 123, 1쪽 참조) 신상후는 주자의 중화신설이 “인간의 마음을 ‘개체의 마음이면서도 개체의 차별성이 없는 공적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존재론적 근거를 제시한 이론”이며, 이러한 주장을 가능케 하는 개념으로서 주자의 ‘미발지각’이 바로 본원과 현실을 통일하는 주체로 이해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 (신상후, 「조선조 洛學의 未發心論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8 참조.)

    24) 大學: 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25) 語類 16-157: 知覺, 義理便在此; 才昏, 便不見了.

 

이런 지각의 본래적 조건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마음을도덕적이라 할 수 있으며, 이것이 적자와 대인, 일반 사람과 대인을 관통하는 인간 마음의 보편적 존재 양식이다.

그러나 미발지각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지각이고, 마음의 영역이기에 여전히성리 그 자체와 동일시 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왕양명의 심즉리와 이를 지지하는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주체 그 자체가 도덕원리와 동일시 되는 차원에서논의되는 도덕실천동력을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마음과 리의 합일을 통한 리의실현, 즉 활동성에 대한 인식과 도덕성에 대한 인식을 도덕실천의 주체인 인간의한마음으로 결합26)하고자 한 그의 철학적 시도에서 우리는 주체에 의한 도덕성의온전한 구현을 의욕하는 그의 인식을 발견할 수 있다.

다만 여전히 이 지각이어떻게 스스로의 주체적 활동을 통해 도덕실천동력을 드러내는지, 더 나아가 리와관통하는 본연의 상태를 현실에서 어떻게 실현해낼지는 설명되어야 할 과제로남아있다.27)

 

    26) 필자의 선행 연구에서는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심의 도덕적 성격을 리와는 구별되는 ‘실천적 도덕성’으로 규정하였다. 심은 리와 관계를 맺고 그것을 실현해나가는 존재라는 의미에서 ‘도덕적인 심’이다. 따라서 도덕적 의미를 제외한 텅 빈 인식심 또는 지각심으로만 그것을 규정할 수 없다. 주자의 심을 인식에 국한시키는 것은 그것이 포함하고 있을 도덕실천에의 동력을 포함하지 못하며, 동시에 그것이 공부를 통해 궁극적으로 심여리일에 도달함으로써 이룩하게 되는 자신의 필연성, 즉 실천적 도덕성의 의미와도 호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김나윤, 「주자학의 意 개념에 관한 윤리학적 연구 : 도덕실천을 위한 동력의 탐색」, 중앙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22, 55쪽; 155쪽 참조)

    27) 이를 위해서는 수양론의 검토가 필요하나, 도덕실천동력과 관련된 개념을 검토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본 논문의 범위를 넘어선 것이므로 다루지 않는다. 간략하게 언급하자면 미발과 이발을 관통하는 경(敬)의 해명이 주가 되어야 할 것이다. 마음의 인식적 기능을 강조하는 입장에서는 경(敬)을 아직 사물이 다가오기 전 마음의 상태를 허령하게 유지하여 인식 기능을 훌륭하게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공부로 규정한다. 본 논문에서 언급한 미발지각을 도덕동력과 연계시키기 위해서는 경이 가진 함양(涵養)의 의미가 강조되어야 할 것이나, 이를 주자의 체계와 어떻게 정합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가 남은 과제이다.

 

Ⅲ. 미발28): 마음과 성의 중첩

 

지각의 두 차원과 그에 담긴 복합적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 주자의 이론이중화구설에서 중화신설로 넘어가는 과정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주자는초기에 미발을 성(性), 즉 본체로, 이발을 심(心), 즉 작용으로 간주하던 관점에서미발의 의미를 확대하여 성과 심을 아우르는 것으로 전환한다. 아래에서는 신설시기의 주자의 미발 이발의 관념이 어떻게 앞서 다룬 지각과 도덕실천동력의문 28) 주자의 미발은 신설 내에서도 다양하게 쓰이고 있으며, 또한 다양한 용례의 정합성에 관한 여러 견해가 존재한다. 이 논문에서는 매우 한정적인 의미에서 마음의 작용성과 관련하여 미발을 살피고자 한다. 제에 연계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주지하다시피 중화구설과 신설은 심성과 수양이라는 유학의 핵심 문제를 관통하고 있다.

주자는 40세 이전 호남학의 영향으로 마음은 이발이고, 미발은 성이라는 성체심용(性體心用)의 입장을 표명하였으나29), 이것이 중용의 미발과 이발이라는 이름에 대한 잘못된 이해일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또한 일상에서 수행되어야 할 본령 공부를 간과하였음을 깨달았다.30)

이에 주자는 더 이상 마음을이발의 용(用)의 차원에 한정시키지 않고, 성정을 포괄하는 종합적 주체로서 재정의하였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심통성정(心統性情)이라는 명제를 통해 잘 드러나며, 이는 미발과 이발의 의미 전환을 통한 새로운 심성론 체계의 건립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주자학 연구자인 진래(陳來)는 중화신설에서의 미발·이발 개념이두가지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다고 정리하였다.31)

첫 번째는 심리 활동의 상이한단계로서의 구분이다. 주자는 사려가 아직 싹트지 않고 사물이 인간 인식에 다가오지 않았을 때를 미발로 규정하며, 이때는 “심체의 유행이 고요하면서 움직이지않는 상태이고, ‘천명지성(天命之性)’의 본래 모습이 갖춰져 있는 상태로 …중(中)이라 할 수 있다”32)고 말한다.

진래는 이를 시기(時期)에 따른 구분이라고말한다. 이것은 곧 시간 선 위에서의 심리 상태를 가리킨다고 해석될 수 있다. 이구분에 따르면 시기에 따라 구분된 마음이라 하더라도 모두 ‘마음의 작용’은 이미성립된 이후를 말하는 것이며, 미발이라는 것은 마음의 작용은 성립해있으나‘활동’은 없이 고요하고 움직이지 않는 상태라 이해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성정(性情) 의 체용(體用) 관계에 따른 구분이다.

이 구도에서는 미발은 성(性)이자 체(體)로, 이발은 정(情)이자 용(用)으로 간주한다.33)

 

    29) 文集 卷75, 「中和舊說序」: 聞張欽夫得衡山胡氏學, 則往從而問焉. … 一日喟然嘆曰, ‘人自嬰皃以至老死, 雖語黙動靜之不同, 然其大體莫非已發, 特其未發者, 爲未嘗發爾.’ 自此不復有疑, 以爲中庸之旨, 果不外乎此矣.

    30) 文集 卷67, 「已發未發說」: 中庸未發已發之義, 前此認得此心流行之體.… 乃知前日之說, 雖於心性之實未始有差, 而未發已發命名未當, 且於日用之際欠却本領一段工夫.

    31) 아래의 내용은 진래, 안재호 역, 송명성리학, 예문서원, 1997, 251쪽 참고.

    32) 관련하여 다음의 원문을 참조하라. 文集 卷67, 「已發未發說」: 右據此諸說, 皆以思慮未萌, 事物未至之時, 爲喜怒哀樂之未發. 當此之時, 卽是心體流行, 寂然不動之處, 而天命之性體段具焉. 以其無過不及, 不偏不倚, 故謂之中. 然已是就心體流行處見, 故直謂之性則不可.

   33) 語類 119-7: 心是包得這兩箇物事. 性是心之體, 情是心之用, 性是根, 情是那芽子. 

 

성은 발현되지 않은 본체이고 정은성이 발현된 결과이자 표현으로 의식의 현상적 범주에 속한다.

이는 주자의 심성론체제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방식이다. 그런데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 분석은 마음의 지각으로서의 미발이 갖는

또다른 하나의 의미는 도출해내지 못했다.

먼저 첫 번째로 지적하고 있듯이 미발은단지 심리 상태, 즉 의식이 있으나 아직 고요한 상태에 그치는 것만은 아니다. 필자는 이 해석이 심으로서의 미발 개념 안에서 하나의 측면, 마음의 활동성 여부에초점을 맞추어 이루어졌다고 본다. 미발을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는 상태[寂然不動之處]로 보는 관점은 마음을 성을 담지하고 있는 무언가라는 의미에서보다는외물이 다가오면 비추는 거울로 보는 관점에 상응한다. 즉, ‘아직’ 외물과의 접촉이 일어나지 않은 단계로서 미발을 상정하는 것이다. 이는 마음과 리가 가진 심구리(心具理)의 관계성 가운데서도 구분과 분리를 강조하는 입장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거울과 같은 역할이 주자의 마음 개념에서 특징적인 것이고, 또 심리 상태로서의 미발의 의미는 ‘적연부동’으로 충분히 설명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분석은 틀리지 않다. 그러나 주자가 언급하고 있듯 미발의 마음은 동시에 이미 ‘심체유행’이 시작되어 그 활동이 고요한 상태에서 천명지성의 체단이 갖추어진 상태이기도 하다. 즉, 마음은 늘 심구리로서 존재한다. 미발을 활동이 중지된 고요한심리 상태로만 간주하게 되면, 미발 상태에서의 성의 의미는 누락된다. 성은 마음에 그저 존재할 뿐 어떤 유의미함을 갖지 못하는 단절되고 고립적인 것이 될뿐이다. 성과 미발을 함께 말하는 두 번째 차원을 살펴보더라도 그것은 마음의 체용(體用)으로서, 즉 본질로서의 성과 이미 드러난 정을 가리키는 심성론의 체제에대한 설명일 뿐이다. 이 두 차원은 결국 미발로서의 ‘마음’과 미발로서의 ‘성’을분리하여 바라보고 있으므로, 여기에는 성의 담지자로서의 마음이라는 마음의본질적이고 본래적인 상태, 즉 그것이 미발지각으로서 갖는 의미에 대한 설명이없다. 이러한 의문과 분석에 대하여, 주자의 체계 내에서 심, 성, 정의 명확한 개념적구분을 상기해본다면 미발의 본질을 이처럼 성과 마음이 결합된 상태로 규정하고확보하는 것이 가능한지 되물어질 수 있겠다.

이런 문제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같이 말한다.

 

마음과 성은 저절로 분별이 된다. 신령스러운 것은 마음이고 실제적인 것은 성이다, 신령스러움은 곧 지각하는 것이다. … 성은 곧 그 이치이며, 마음은 곧 담아서쌓아두고 갖추어 싣고, 널리 펼쳐서 쓰는 것이다.34)

 

    34) 語類 16-51: 心與性自有分別. 靈底是心, 實底是性. 靈便是那知覺底. … 性便是那理, 心便是盛貯該載·敷施發用底. 

 

이지(履之)가 아직 발하기 이전의 마음과 성의 구별에 대하여 물었다. (주자가) 말했다.

 

“마음에는 체(體)와 용(用)이 있다. 아직 발하기 이전은 마음의 체이고, 이미도덕실천동력 문제에서 본발한 때에는 마음의 용이니 어찌 분명하게 고정하여 말할 수 있겠는가. 대체로 주재하고 운용하는 것이 마음이고, 성은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치이다. 성은 반드시 여기[마음]에 있는데, 주재하고 운용하는 데 이르면 오히려 마음에 달려있다. 정은 몇 갈래의 길이니, 이 길을 따라 그렇게 해 나가는 것 또한 마음이다.”35)

 

비록 주자가 성과 심, 정을 개념적으로 명확하게 구분하지만, 마음이란 것은신령하기에 사물을 구분하듯 그 발동의 전후를 칼로 자르듯 나누기 어려울뿐더러또한 반드시 ‘오로지 기(氣)’가 의미하는 물리적 · 경험적 토대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항상 성(性)을 그 안에 포함하고 정(情)을 드러내는 존재로서 움직이고 있음을지속적으로 환기시킨다. 즉 그가 성과 떨어질 수 없는 심의 본래 면모에 대해고요하여 움직이지 않는, 즉 ‘활동[發]이 없는’ 미발의 상태이자 동시에 천명지성의모습이 갖추어져 있는 ‘고요함 속의 움직임’의 상태라고 규정했다는 점은 심성분리와 심에 의한 리의 인식이라는 주된 견해에 비견하여 부차적이고 주변적인요소라고 비판될 여지가 있으나, 또 다른 시선에서 보자면 마음을 인간의 능동적주체성과 도덕성을 담보해주는 하나의 전체로 규정하고자 했던 시도라고 이해할수있다. 신설에 이르러 성정을 심의 체용으로 설명한 것, 그리고 심통성정(心統性情)을 주장한 것도 결국 마음이 원리와 그에 근거한 자신의 작용성, 그리고 구체적인 활동과 그 결과까지도 포괄하는 존재임을 의식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정리하자면, 주자가 중화구설에서 신설로 이행한 까닭은 이전의 ‘활동’에만주목하여 인간이 태어난 이후라면 어느 한 순간도 고요하면서 움직이지 않는상태에 있을 수 없기에 마음은 언제나 ‘이발’이라고 보던 관점36)에서, 마음이 활동과 동시에 “고요함 속의 움직임”인 ‘작용성’을 토대로 하고 있으며 그것은 자기자신인 지각과 자신의 원리의 결합에 의한 것임을 의식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있다.37)

 

   35) 語類 5-62: 履之問未發之前心性之別. 曰: “心有體用, 未發之前是心之體, 已發之際乃心之用, 如何指定說得! 蓋主宰運用底便是心, 性便是會恁地做底理. 性則一定在這裏, 到主宰運用卻在心. 情只是幾箇路子, 隨這路子恁地做去底, 卻又是心.”

    36) 文集 卷30, 「與張欽夫先生」, “人自有生, 卽有知識, 事物交來, 應接不暇, 念念遷革, 以至於死, 其間初無頃刻停息, 擧世皆然也. 然聖賢之言, 則有所謂“未發之中寂然不動”者, 夫豈以日用流行者爲已發, 而指夫暫而休息, 不與事接之際爲未發時耶?“

   37) 송대 신유학자들 가운데 특히 작용성을 강조했던 학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주자에게 중화구설의 ‘성체심용(性體心用)’이라는 구도를 제공했던 호굉(胡宏)이다. 성체심용이란 미발로서의 성과 이발로서의 심을 가리키며, 호굉에게 이발인 심은 바로 본체인 성의 작용성 그자체이다. 이러한 호굉의 본의는 주자에게서 소화되지 못했다.(안재호, 신유가철학 비판, 문사철, 2020, 351쪽 참조)

 

또한 마음과 성의 잠재적 중첩 상태로서의 미발은 최종적으로 그것의 활동안에서 자신의 작용성을 온전히 드러냄으로써 잠재성을 현실화한다.

바로 이때,미발이 발휘하는 작용성은 단순한 심리적 움직임이 아니라, 인간 마음 속에 내재한 도덕적 주체성으로 향하는 힘을 품고 있다. 이러한 힘이 구체적인 도덕적 의지와 판단으로 나타날 때, 그것은 곧 도심이라는 이름으로 현실 속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Ⅳ. 도심38) : 도덕적 마음의 실현

 

지금까지 지각과 미발의 해석 가능성을 검토함으로써 주자학 체계 내에서의도덕실천동력의 면모를 논하였다. 이 장에서는 도심(道心) 개념을 통해 성과 마음의 연계가 이발심으로서 현실화하는 주자학의 구도를 살펴보고자 한다. 도심은 尙書 「大禹謨」 편에 등장하는 것으로, 순(舜)이 우(禹)에게 전수한16 자 심결(心訣)39)의 주된 개념이다.

이 구절은 정이천과 주자 이전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으나, 정이천이 그에 대해 “인심은 사욕(私欲)이고 도심은 정심(正心)”40)이라고 주석한 이후 주자에게서도 심을 논하는 데 주요 개념이 되었다.41)

잘알려져 있듯이, 인심도심에 관한 주자의 견해는 그의 中庸章句 서문에서 확인해볼 수 있는데, 주자는 인심도심을 리와 기, 그리고 지각과 함께 다룸으로써그성격을 분명히 하고자 하였고 특히 도심을 인간이 도덕 행위를 실천하는 데 있어중요한 직접적인 힘42)으로 간주하였다.

 

    38) 그러나 앞서 다룬 개념들에 비해 도심(道心)과 인심(人心)이 주자에게서 갖는 철학적 비중은 약소하다는 평가도 있다. 또한 그의 인심도심설은 주자 당대에는 진지하게 토론된 적은 없었으며, 명대에 이르러서야 나흠순(羅欽順)에게서 다루어졌고, 또한 그가 제기한 이론(異論)으로 인해 조선성리학자들의 관심을 일으켰다는 것이다.(林月惠, 異曲同調―朱子學與朝鮮性理學, 臺大出版中心, 2010, 241쪽, 김결, 「도심(道心)의 탈본체화 - 주희의 도심인심론(道心人心論)을 중심으로 -」, 유학연구 30,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2019 참조 및 재인용.) 한편 인심도심 문제가 송대 학자들의 관심사였으며, 이를 성학(聖學)의 연원으로 여기거나 심술(心術)의 비전으로 평가해왔다는 견해도 존재한다.(전병욱, 「주자 인심도심론의궁극적 관심」, 유학연구 40,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2017 참조.)

    39) 尙書, 「大禹謨」: 人心惟威,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集厥中.

    40) 二程遺書 卷19: “人心”, 私欲也; “道心”, 正心也.

    41) 李明輝, 「朱子對於道心、人心的詮釋」, 蔡振豐 主編, 東亞朱子學的詮釋與發展(國立臺灣大學出版中心, 2009) 79쪽

    42) 語類 62-41: 道心則是義理之心, 可以爲人心之主宰, 而人心據以爲準者也. 

 

마음의 허령지각(虛靈知覺)은 하나일 뿐이니, 인심과 도심의 차이가 있다고 하는것은 그것이 어떤 경우에는 형기(形氣)의 사사로움으로부터 생겨나고, 혹은 성명(性命)의 바름으로부터 근원하기 때문인데, 이것은 지각한 것이 다른 것이다. … 사람은 형체를 가지고 있지 않음이 없으므로 훌륭한 사람이라도 인심이 없을 수 없고 또한이 성을 갖지 않음이 없으므로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도심이 없을 수 없다. 두 가지는마음에 뒤섞여 있어 다스릴 방법을 알지 못하면 위태로운 것은 더욱 위태로워지고은미한 것은 더욱 은미해져서 천리의 정당함[公]이 마침내 인욕의 사사로움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정(精)이란 두 가지의 사이를 살펴 섞이지 않게 하는 것이고, 일(一) 은 본심의 올바름을 지켜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조금도 끊어짐이 없이 도심으로 하여금 한 몸의 주재가 되도록 하고 인심으로 하여금 매번 명령을듣도록 하면 위태로운 것이 편안해지고 은미한 것이 드러나 움직임과 고요함,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자연히 지나침과 모자람의 잘못이 없을 것이다.43)

주지하다시피 마음의 기능은 지각이고, 그 특성을 주자는 허령(虛靈)이라고부른다. 먼저 신령하다[靈]는 것은 기(氣)적 특성으로 인해 감성적 · 물리적 제약을갖는 존재들과는 다른 역량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44)

 

    43) 中庸章句, 「序」: 蓋嘗論之. 心之虛靈知覺, 一而已矣, 而以爲有人心̖ 道心之異者, 則以其或生於形氣之私, 或原於性命之正, 而所以爲知覺者不同, … 然人莫不有是形, 故雖上智不能無人心, 亦莫不有是性, 故雖下愚不能無道心. 二者雜於方寸之間, 而不知所以治之, 則危者愈危, 微者愈微, 而天理之公卒無以勝夫人欲之私矣. 精則察夫二者之間而不雜也, 一則守其本心之正而不離也. 從事於斯, 無少閒斷, 必使道心常爲一身之主, 而人心每聽命焉, 則危者安̖ 微者著, 而動靜云爲自無過不及之差矣.

    44) 語類 18-58: 此心至靈, 細入毫芒纖芥之間, 便知便覺, 六合之大, 莫不在此. 又如古初去今是幾千萬年, 若此念才發, 便到那裏; 下面方來又不知是幾千萬年, 若此念才發, 便也到那裏. 這箇神明不測, 至虛至靈, 是甚次第 

 

그리고 비어있음[虛]이라는 마음의 특성은 리를 있는 그대로 비춰낼 수 있는 맑고 투명한 인식 가능성의 토대로 규정된다. 그런데 앞서 살펴보았듯이 여러 선행연구는 이러한 지각의특성에 착안하여 주자학이 도덕의 영역에서 인지적 주체만을 인정할 뿐이며, 이인식은 대상적 인식이라고 보아 심 자체의 도덕성을 탈각시키는 결론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허령이란 마음이 리 자체가 아니면서도 동시에 리와 하나일 수 있는근거로 해석될 수 있다. 비어있기에 선입견 없이 리를 그대로 자기 자신의 내용으로 삼을 수 있고, 영명하기에 무작위하는 리와 달리 리를 구현해낼 수 있다. 물론비어있기 때문에 리가 아닌 것이 투영되거나 담겨질 수도 있고, 또 그에 따라작위(作爲)의 방향성이 달라지기도 한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인간의 양면성에 대한포착으로서, 마음이 인심, 도심이라는 두 가지 양태로 드러나는 까닭이 된다. 또한 인심도심은 경험 세계에서의 활동에 따라 드러난 정(情)을 그 의식의 내용으로 삼되, 정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의식적인 분별과 선택이 개입된 마음의상태이다. 그러므로 마음은 항상 도덕적 긴장과 수양을 필요로 한다. 즉, 주자의인심도심론은 도덕을 성의 자연스러운 정현(呈顯)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의 자기수양을 통해 도달된 자기 근거를 갖춘 도덕적 의식상태로 간주하는 주체적 도덕이론으로 볼 수 있다.45)

이러한 도심은 바로 ‘천명지성의 체단을 갖춘 미발 상태’가 온전히 활동의상태로 드러난 것이다. 즉 도심은 이발이며, 다양한 이발의 양상 가운데서도 성(性) 이 표준이나 진정한 주재의 의미를 획득한 상태이다. 이것은 단지 리에 대한인식, 즉 리를 거울에 비춰낸 상태가 아니다. 도심으로서의 마음은 미발 상태에서갖추고 있었던 성리를 마음의 작용성을 통해 활동으로 그대로 드러내며, 원리와작용의 결합을 통해 실천의 힘을 갖추게 된 도덕적인 마음이다. 즉, 도심이야말로주자에게서 진정한 의미의 도덕실천의 주재자라 할 수 있다. 그대는 이제 항상 분별하고 선택하여 정밀하게 하고, 도심이 항상 내면에 주인처럼 있고 인심은 손님과 같도록 해야한다. 항상 이와 같도록 하여 끊어지지 않는다면‘그 중을 잡을 수 있다.’46)

이러한 설명에 따르자면 성명(性命)을 지각한 것으로서의 도심은 바로 자기근거인 리로부터 사태에 알맞은 정을 내어 실행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47)

도심은심리 상태로는 이발이지만 본성을 온전히 드러낸 것이라는 점에서 미발과 이발, 성과 심의 일치이자 종합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주자의 도덕철학이 온전히해명되지는 않는다. 하늘에 있는 것은 명(命)이고, 사람에게 부여된 것은 성(性)이며, 이미 발한 것은정(情)이다. 이는 그 맥락과 이치가 매우 실제적이어서, 분명하고 쉽게 깨달을 수 있다. 오직 마음은 허명(虛明)하고 통철(洞徹)하여 전자와 후자를 통괄하여 말할 뿐이다. 성에 초점을 맞추어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는” 곳이 마음이라고 할 수 있고, 정에 의거하여 “감응하여 마침내 통하는” 곳이 마음이라고 해도 된다. 그러므로맹자가 “그 마음을 다한 사람은 그 성을 안다”고 말했으니, 그 문의를 알 수 있다. … 이 마음을 완전히 밝힌다[曉]는 것은 그 성을 아는 데서 말미암는다.48)

 

   45) 이런 관점에서 인심도심, 특히 도심은 사단과 같은 마음의 즉각적 반응이 아니라 마음이지각을 바탕으로 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획득하는 의식상태라고 할 수 있으며, 인심도심론을 본체나 심성에 관한 이론이라기보다는 수양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 것으로 간주한다.(김결, 위의 논문; 김우형, 「주희 인심도심론의 윤리학적 성격에 관한 고찰 : 본체론 비판 및‘지각’론의 정립과 관련하여」, 동서철학연구 69, 한국동서철학회, 2013 참조.)

   46) 語類 你而今便須是常揀擇敎精, 使道心常常在裏面, 如箇主人, 人心如客樣. 常常如此無間斷, 則便能‘允執厥中’

   47) 전현희, 「주자의 인심도심설」, 한국철학논집 31, 한국철학사연구회, 2011 참조.

   48) 語類 5-59: 在天爲命, 稟於人爲性, 旣發爲情. 此其脈理甚實, 仍更分明易曉. 唯心乃虛明洞

이 구절은 마음의 미발과 이발, 그리고 원리와 작용을 모두 포괄하고 있다. 주자의 체계에서 마음이 현실에서 온전히 도덕적인 것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성리에 대한 앎이 필수적이다. 즉, 감이수통(感而遂通)의 도심을 온전히 설명하기위해서는 그것이 성리에 대한 앎[知性]과 갖는 관계가 해명되어야 한다. 그러므로우리는 격물(格物)로 되돌아가 그 의미를 밝히고 그것을 미발, 경, 도심과 함께정합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격물치지(格物致知)에 대한 주자의 중시가 도덕원리이자 표준인 리(理)에 대한 인지와 지각을 의미했다면, 도심의 강조는 지각을 통해획득된 심의 의식상태로써 도덕실천을 주관해나가는 주재자의 측면에 대한 긍정이라 할 수 있다. 양자의 정합적 해명은 이 두 요소를 주자학의 체계 안에서 실천력을 갖춘 도덕주체를 확립시키는 양 날개가 되도록 할 수 있다.

 

Ⅴ. 결론

 

이상에서 살펴본 지각(知覺), 미발(未發), 도심(道心) 각각 서로 다른 차원을지니면서도 궁극적으로는 도덕 ‘실천’과 관련된 주요 개념들이다. 지각은 성리의인식과 주재를 가능케 하는 마음의 작용을, 미발은 성과 마음이 중첩된 잠재적 상태를, 도심은 발동된 도덕적 마음을 통해 성이 현실에서 구현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주자의 체계 안에서 도덕적 행위가 어떻게 가능하며, 그 내적 원천이무엇인지에 대한 일관된 구도를 엿볼 수 있다. 주자와 이론적으로 대립했던 육상산(陸象山)이 심즉리(心卽理)와 “그 큰 것을 세우라[先立乎其大者]”는 간이(簡易) 한 주장으로 유가의 본연을 드러내고자 했던 반면, 주자는 심성의 개념과 구조를세분화함으로써 도덕성의 절대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현실적, 경험적 인간이 도덕실천을 위하여 심성의 가능성과 한계에 세밀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함을 강조하고자 하였다. 우리는 주자에게서 드러나는 이러한 개념 분화와 복잡성의 목적이그가 심성을 해체하여 고립적인 요소로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음이라는 인간주체의 다양한 면모를 설명함으로써 겹겹이 쌓인 인간의 행위를 – 도덕적 행위뿐만 아니라 비도덕적 행위까지도 – 설명하는 데 있음을 알아야 한다. 즉, 이러한 구도 속에서 마음과 리의 본래적 관통이라는 존재론적 조건을 일상 속 도덕행위로 구현하는 것이 바로 도덕실천이다. 미발 상태에서는 존양(存養)을 통해본래의 고요함 속 활동성을 지키고, 이발 상태에서는 성찰(省察)을 통해 발동된감정과 의지를 절도 있게 운용함으로써, 마음과 리의 필연적 연관이 현실 속에서완徹, 統前後而爲言耳. 據性上說“寂然不動”處是心, 亦得; 據情上說“感而遂通”處是心, 亦得. 故孟子說“盡其心者, 知其性也”, 文義可見. … 如云盡曉得此心者, 由知其性也. 결된다. 이 과정이 심통성정의 완성이자 미발, 이발의 일치이며, 도심으로 표현되고 주도되는 일상에서의 도덕자아이다. 이러한 점에서 중화신설 시기 이후 주자심론의 다층적 구조는 단지 형이상의 본체에 대한 인식자로서가 아니라 도덕실천의 지속적 동력을 지닌 주체에 대한 고려에서 성립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을 구성하는 내용들이 각각 도덕실천의 동력과 연결될수있는 요소를 지님과 동시에, 주자학이 전체적으로 완결된 도덕실천동력에 관한이론 체계로 성립되기에는 한계 또한 지니고 있다. 주자는 도덕적 마음을 논의하기 위한 요소들을 세밀히 설명하면서도, 실제 수양론의 차원에서는 ‘격물치지’라는 인식론적 · 주지주의적 방법을 도덕 완성의 핵심 경로로 중시하였다. 이로인해 실천동력에 관한 논의는 격물 중심의 학문론 속에서 충분히 확장되지 못했다. 이러한 불균형은 명대에 이르러 주자학 내부에서 비판과 반성을 촉발하였다. 일부 학자들은 주자의 주지주의적 경향이 도덕실천의 생동성과 직접성을 약화시킨다고 보고, 심의 자발성과 직각(直覺)을 중시하는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였다. 주자학의 계승자들, 그리고 왕양명과 같은 비판자들의 주자학에 대한 수정과 변용은, 주자학이 내포한 구조적 긴장을 드러내는 동시에 도덕실천동력에 관한 문제의식이 이후 유학 전개에 있어 지속적인 철학적 과제로 남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참고 문헌

尙書 大學 中庸章句 二程遺書 朱子文集 朱子語類 모종삼, 김기주 외 역, 심체와성체 1, 소명출판, 2012 안재호, 신유가철학 비판, 문사철, 2020 진래, 안재호 역, 송명성리학, 예문서원, 1997 철학사전편찬위원회, 철학사전, 중원문화 2009 김나윤, 「주자학의 意 개념에 관한 윤리학적 연구: 도덕실천을 위한 동력의 탐색」, 중앙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22 신상후, 「조선조 洛學의 未發心論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8 김결, 「도심(道心)의 탈본체화 - 주희의 도심인심론(道心人心論)을 중심으로 -」, 유학연구 30,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2019 김우형, 「주희 인심도심론의 윤리학적 성격에 관한 고찰 : 본체론 비판 및 ‘지각’론의 정립과 관련하여」, 동서철학연구 69, 한국동서철학회, 2013 전병욱, 「주자 인심도심론의 궁극적 관심」, 유학연구 40,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2017 전현희, 「주자의 인심도심설」, 한국철학논집 31, 한국철학사연구회, 2011 한자경, 「미발지각(未發知覺)이란 무엇인가? ‒현대 한국에서의 미발 논쟁에 관한 고찰을 겸함‒」, 철학 123, 한국철학회

 

 

[한글 요약]

본 논문은 주자 심론(心論)의 구조를 재해석하여, 그 내부에 잠재된 도덕실천동력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기존의 여러 연구들은 주자의 심론이 성리 인식에중점을 두고 전개되었으며, 수양론 또한 격물치지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그의 이론을 도덕실천에 관한 주지주의적 입장으로 간주해 왔다. 이러한 관점은 주자학이 도덕적 동력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제시하지 못한다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본 논문은 주자의 마음개념이 지각(知覺), 미발(未發), 도심(道心)이라는 다층적 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이 구조가성(性)과 심(心)의 연관을 통해 도덕실천의 동력을 함의하고 있음을 밝힌다. 첫째, 지각은 마음의 본질적 작용이자 성리(性理)와의 ‘본래적 관통’을 가능케 하는 기반으로서, 도덕적 판단과 행위의 가능조건을 형성한다. 둘째, 미발은 단순한 심리적 활동정지상태가 아니라 성과 마음이 중첩된 잠재적 작용성으로 이해되며, 도덕적 주체성의 내적 근거를 제공한다. 셋째, 도심은 이러한 잠재성이 현실적 활동으로 전환된 상태로, 성리의 표준을 바탕으로 행위를 주재하는 도덕적 마음이다. 본 논문은 이 세 요소가 주자학 체계 안에서 상호 연계적으로 작용하여 도덕 실천을 가능하게 하는 내적 근거를 구성한다는 점을 논증한다. 동시에 이러한 구조가 완결된 실천이론으로 정식화되지는 못했으며, 이러한 긴장이 명대 이후의 유학에서 다양한 비판과 계승을 촉발하는 사유적 토대가 되었음을 지적한다. 이와 같은 분석을 통해 본 논문은 주자학을 단순한 인식론적 체계로 축소하지 않고, 도덕 실천을 지향하는 유학적 주체의 형성논리로 재평가한다.

주제분야 : 동양철학, 유가철학, 주자학

주 제 어 : 도덕실천동력, 지각, 미발, 도심, 주재

 

[Abstract]

The Multilayered Structure of Zhu Xi’s Theory of Mind from the Perspective of Moral Motivation 

Kim, Na-Yun (Wonkwang Univ.) 

This study aims to reinterpret the structure of Zhu Xi’s theory of mind in order to uncover the potential grounds for moral motivation implicit within it. Previous scholarship has generally regarded Zhu Xi’s account of the mind as primarily oriented toward the cognitive apprehension of principle(li, 理), and has further interpreted his theory of self-cultivation—centered on the practice of gewu–zhizhi—as a form of intellectualism. On this basis, many researchers have argued that Zhu Xi’s system lacks an adequate explanation of the motivational force necessary for moral practice. In contrast, this paper argues that Zhu Xi articulates a threefold structure of the mind—perception(zhijue, 知覺), the state of weifa,(未發), and the moral mind(daoxin, 道心)—and that this structure, grounded in the dynamic relation between nature(xing, 性) and mind(xin, 心), implicitly contains the resources for moral motivation. First, perception is understood as the essential function of the mind, enabling an “original communion” with li and thus providing the fundamental conditions for moral judgment and action. Second, the state of non-arousal is not a mere psychological suspension but a latent dynamism in which nature and mind coexist, serving as the inner basis of moral subjectivity. Third, the moral mind represents the activation of this latent potential, governing conduct in accordance with the normative patterns of principle. The paper demonstrates that these three elements operate in an interconnected manner within Zhu Xi’s philosophical framework, thereby forming an internal foundation that makes moral practice possible. At the same time, it points out that Zhu Xi did not fully systematize this motivational structure into a complete theory of moral practice, and that this conceptual tension later stimulated both criticism and development in Ming-dynasty Confucianism. Through this analysis, the study reevaluates Zhu Xi’s thought not merely as an epistemological system, but as a theoretical account of the formation of the Confucian moral subject.

Key Words : moral motivation, mind—perception(知覺), weifa,(未發), moral mind (道心), governance(主宰)

 

투고일 : 2025년 12월 15일심사일 : 2026년 1월 15일게재결정일 : 2026년 1월 25일

철학논총 제123집ㆍ2026ㆍ제1권 

 

 

 

도덕실천동력 문제에서 본 주자 심론의 다층적 구조 - 명대 주자학 연구를 위한 시론 -.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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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dx.doi.org/10.20433/jnkpa.2026.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