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대승불교(Mahāyāna)는 개인의 깨달음에 머무르지 않고, 모든 중생의 해탈을 추구 하며 이를 보살(Bodhisattva) 수행의 중심 과제로 삼는다. 이러한 대승불교의 많은 사 상들은 용수(龍樹, Nāgārjuna, 150~250년경 C.E)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1)
1) 가지야마 유이치 저, 김성철 역 2024, 98; 가츠라 쇼류・고시마 기요타카 저, 배경아 역 2018, 383-84; 나카무 라 하지메 저, 이재호 역 1993, 11-12; 야지마 요우기치 저, 송인숙 역, 1992, 4-8; 瓜生津隆眞 1995, 6.
그의 저서 중 론(中論, Madhyamaka-śāstra)은 ‘중도(中道, madhya)’의 관점에서 실체론적 사고2)를 논 박하고, 연기(緣起, pratītysamutpāda)의 본래 의미를 무자성(無自性, asvabhāva)의 관점 에서 팔불(八不)3)로써 되찾고자 한 작품이다.
즉 모든 것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 그 것은 하나의 극단이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 그것은 또 다른 극단 이다. 이 양극단을 버리는 중도를 말한다.
그러나 이 중도는 단순한 절충이 아니라, 존 재와 비존재라는 양극단을 초월하는 인식론적 전환을 요구하는 고도의 사유 체계이 다.
공(空)에 대한 철저한 이해를 전제로 하기에, 자비를 중심으로 한 대승불교와 대조 적이고 본질적으로 난해함을 내포하고 있어 그 이해에는 일정한 한계가 따르는 것으 로 보인다.
이에 『중론』 제26장 「관십이인연품」에 대한 깔루파하나(Kalupahana)의 해석은 주목 할 만하다.
그는 이 장이 단지 소승불교의 교리 분석에 그친다는 일부 견해에 전적으 로 반대하며, 오히려 이 장이 붓다가 설한 속박(bondage)과 자유(freedom)4)의 의미를 가장 긍정적이고 철학적으로 드러낸 부분임을 강조한다.5)
실제로 용수는 제17장에서 이미 윤리적 삶이 인격적 변화를 어떻게 유도하는지를 상세히 설명한 바 있으며, ‘선 한 삶’을 논의할 때 업(karma)이라는 개념 대신 법(dharma)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 써 윤리적 실천을 존재론적 맥락 속에서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6)
이는 윤리의 핵 심 주제인 결정론과 자유의지7)의 문제 역시 심층적인 분석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 서, 용수의 중도와 윤리 사유가 충분한 철학적 토대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이론 적 의미를 지닌다.
2) 실체론적 사고는 세계와 존재를 독립적이고 고정된 실체로 보는 철학적 태도를 의미한다.
3) 팔불은 불생・불멸(不生・不滅, anirodha・anutpāda), 불상・부단(不常・不斷, aśāśvata・aheda), 불일・불이(不一・不 異, aneka・anāna), 불래・불거(不來・不去, anagama・agama)이다.
4) 깔루파하나 저, 박인성 역 1994, 469. 계박과 혜탈로 번역.
5) Kalupahana 1986, 370.
6) Kalupahana 1986, 90-91.
7) 프란츠 M. 부케티츠 저, 원석영 역 2009, 26-54 참조. 결정론과 자유의지는 철학·신학·과학 등 여러분야와 함께 논쟁을 이어온 개념으로, 인간의 행위와 선택이 필연적인 인과적 법칙에 의해 결정되는지, 아니면 자 율적인 선택이 가능한지를 탐구하는 핵심 주제이다. 결정론(Determinism)은 인간의 모든 행위가 과거 상 태와 물리적 법칙에 의해 필연적으로 결정된다는 입장이며 이에 반해 자유의지(Free Will)는 인간이 외부 의 인과법칙에서 벗어나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다고 본다. 이러한 논쟁 속에서 양립 가능성 (Compatibilism)은 결정론과 자유의지가 동시에 성립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불교 철학과 서양 윤리는 각기 다른 사상적 전통 속에서 발전해 왔지만, 현대 에 들어 두 사조 간의 교차점에 대한 관심이 점점 증대하고 있다. 특히, 서구 철학에서 지속적으로 논의되어 온 윤리적 문제와 자유의지·결정론 논쟁을 불교적 통찰을 통 해 재조명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에 불교를 독자적이고 정교한 철학적 체 계로 이해하기 위해 보다 구체적이고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라이 언 컬노우(Ryan Curnow)는 불교 철학에 대한 해석이 서구 중심주의적 오리엔탈리즘 (Orientalism)에 기반한 오해와 왜곡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음을 우려한다.8)
8) Curnow 2022, 91-99.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의 불교 철학에 대한 비판적 해석이 오해가 아 니라 서구 중심주의적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에 기반하고 있음을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특히, 불교 의 공과 무아 개념이 서구적 관점에서 허무주의(虛無主義, Nihilism)로 오해되는 경향 은 그 철학적 깊이를 제대로 조명하지 못하게 할 위험이 있다. 이러한 인식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불교 사상을 보다 정교하게 해석하고, 그것이 서구 철학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거나 차별성을 가지는지를 심도 있게 탐구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불교 철학이 현대적 철학 논의에서 지닌 의미를 보다 분명하게 드러내어 새로운 시각을 제 시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따라서 용수의 중도적 관점을 바탕으로 결정론과 자유 의지에 대한 일방적인 해답을 구하기보다는, 양자 간 논쟁이 이루어지는 접점의 지점 을 분석하고 그 논의를 확장함으로써, 윤리와 인간 행위에 대한 보다 포괄적이고 심도 있는 이해를 모색하고자 한다.
Ⅱ. 中論의 「관십이인연품」과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관계
연기법이 붓다가 깨달은 진리이자, 세계의 성립을 인과적으로 설명하는 이론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지만, 12연기의 해석에는 다양한 견해가 존재해왔다. 부파불교 시대 부터 찰나연기설, 연박연기설, 원속연기설 등 네 가지 해석이 전해지며, 이후 삼세양중 인과설로 발전하여 태생학적 연기관으로 확장되었다. 이러한 다양한 해석은 연기설이 불교 교리의 핵심이기 때문으로 이해된다.9)
9) 이중표 1991, 181-82.
대승불교에서는 기존의 모든 현상을 상호 관계 속에서 설명하여 12연기를 심화한다.
용수 역시 12연기를 말하고 있다.
하지만 중론의 제26장 「관십이인연품」은 왜 소 승 불교의 12연기를, 앞서 제1장에서 제25장까지와 다르게 긍정의 부분을 담아 부가 적으로 설명하고 있는지, 그리고 12연기에서의 연기는 무엇인지10)에 대해 여전히 논의 중이다.
10) 김성철(2021, 135-36)은 12연기의 진정한 의미를 되살리려는 취지라 해석하며, 남수영(2012, 133-85)은 팔불연기가 중론의 연기이며 12연기와 상호의존의 연기는 세속제로서 설했으며, 팔불 연기는 승의제로서 설한다.
우동필(2016, 207-24)은 용수의 연기는 상관상의적 관계, 팔불연기, 관십이인연품에 방점이 있는 것 으로 나뉜다고 보며, 가지야마 유이치(梶山雄一, 정호영 역 1989, 72)는 용수의 연기법은 특정한 연기의 형 태와 관계없이, 단지 자성(自性)을 전제로 할 경우 연기가 성립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나카무라 하지메(中村元, 이재호 역 1993, 111-12)는 용수의 12연기 개념은 제1장에서 25장까지의 연기와 같 은 맥락이며, 독자들이 이를 충분히 이해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가필드(Gar f ield 1995, 335–36)는 이 장은 긍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12연기의 공성을 강조할 필요 없이 연기법 자체 가 공성을 증명함을 전제로 하며, 해탈의 도구로 활용하는 방법을 직접적으로 설명한다고 말한다.이나다 (Inada 1970, 160)는 소승의 관점에서 12연기를 분석하며, 고통의 근원이 무명에 있음을 강조하고, 이를 공 과 연기의 교리로 새롭게 조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깔루파하나(Kalupahana 1986, 370)는 붓다의 속박과 자유에 대한 가르침을 가장 긍정적으로 해석한다. 시더리츠와 카츠라(Siderits, and Katsura 2013, 307–8)는 용수가 “붓다께서 법을 가르치지 않으셨다”는 주장에 대한 바사바누(Vasubandhu)의 반론을 소개하며, 이 를 받아들일 경우 12연기와 윤회의 인과성이 부정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명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제26장에서는 긍정의 부분을 담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로 보인다.11)
1~9게송은 12연기의 표준적인 설명과 이것이 어떻게 고 통을 초래하는지에 대한 긍정적인 서술이며, 10~12게송에서는 고통의 소멸이 가능한 과정에 대한 내용을 다룬다.
그러나 용수가 중론에서 주장한 연기는 단순히 12연기 를 긍정적 체계로만 이해하는 데에 국한되지 않는다.
제3장 8게송에서 이미 그는 “보 여지는 대상과 보는 작용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식(識) 등의 네 가지(식·촉·수·애)도 존 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취(집착) 등은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는가?”12)라고 말한다.
따라 서 『중론』 제26장에서 말하는 12연기의 긍정(속박)이, 제1장부터 제25장까지 일관되게 드러나는 무자성13)의 연기와 불이14), 그리고 이제15)라는 핵심 개념들과 어떤 접점에서 소멸(자유)로 나아가는지를 살펴보는 일은, 『중론』 전체의 사상적 통일성을 파악하는 데 핵심적인 과제가 된다.
11) 나카무라 하지메(中村元, 이재호 역 1993, 134)는 제1장에서 제25장까지 나오는 연기는 완전한 논리인 상의 성의 연기이며, 제26장에서 처음으로 소승의 이른바 ‘12인연’을 설명하고 있으며 시간적 생기의 전후관계 를 보이는 것으로 간주된다고 설명한다.
12) MK 3.8: draṣṭavyadarśanābhāvād vijñānādicatuṣṭayam | nāstīty upādā nādīni bhaviṣyanti punaḥkatham ||; 中論 卷1, 「3 觀六情品」(T. 30, 6b9-10): 見可見無故. 識等四法無. 四取等諸緣. 云何當得 有.
13) 야지마 요우기치 저, 송인숙 역 1992, 204-7 참조. 어떤 사물이나 개념도 고유한 본질(svabhāva, 自性)을 가 지지 않는다는 뜻이며, 존재란 본래 정해진 실체 없이 상호 의존적으로 형성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14) 나카무라 하지메 저, 이재호 역 1993, 157-59 참조. 모든 대립적 개념들이 본질적으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동일한 연기적 과정 속에 있음을 뜻한다.
15) 나카무라 하지메 저, 이재호 역 1993, 136-37 참조. 용수는 ‘이제(二諦)’를 통해 세계를 두 층위에서 이해한 다. 세제연기(世諦緣起)는 ‘세속제(世俗諦)에서의 연기(緣起)’를 뜻한다. 즉,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경 험적 세계에서 인과법칙과 연기법이 작용하는 방식이며, 제일의제(第一義諦)는 궁극적인 진리(眞理, Ulti mate Truth)를 뜻하며, 우리가 말이나 개념으로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는 진여(眞如)의 세계를 가리킨다.
특히 12연기 구조 속에 의지적 구성요소로서 ‘행(行)’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은,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문제를 해석하는 데 있어 중대한 철학적 쟁점 으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깔루파하나(Kalupahana)는 용수의 철학을 허무주의로 보지 않고, 업과 재생을 포함한 도덕적 책임과 윤리적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자기 수양과 타인에 대 한 이로움을 중시하며, 중도 철학을 바탕으로 깨달음의 실천적 의미를 부각시켰다.16)
용수의 공사상은 단순한 형이상학적 논의에 머무르지 않고, 윤리적 실천과 긴밀히 연 결된 사유 체계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중도철학과 불교 윤리에 주목한 연구자들은17) 그의 철학이 도덕적 실천과 어떠한 방식으로 조화를 이루는지를 탐색하며, 이를 통해 불교 윤리학의 현대적 의의를 새롭게 조명하고자 한다. 윤리적 담론에서 핵심적인 문 제로 간주되는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쟁점은, 용수의 공사상과 철학적으로 접합될 수 있는 중요한 탐구 주제로 주목된다.
이와 관련한 연구는 해외 학계18)를 중심으로 일정 부분 진전되어 왔으나, 국내19)에서는 본격적인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6) Kalupahana 1986, 90-93.
17) 우류즈 다카마사(瓜生津隆真 1986, 264–364)는 공의 논리 구조를 통해 보살행과 윤리 실천을 설명하며 불 교 윤리의 철학적 기반을 심화한다. 비스와스(Biswas 2018, 39–43)는 부정적 변증법을 윤리 실천을 위한 사유 정화의 과정으로 해석한다. 피니건(Finnigan 2015, 765–85)은 중도철학이 도덕 판단을 메타윤리적 관 점에서 정당화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가필드(Garfield 2016, 1–6)는 불교 윤리를 고통 감소를 목표로 하는 실천적 접근으로 이해하며, 공과 연기를 그 핵심 원리로 본다. 매개러티(McGarrity 2015, 1082–1111)는 자 아 개념을 윤리 실천의 도구로 해석하며, 수행자의 심리적 상태까지 포괄하여 논의한다. 스테피엔(Stepien 2020, 201–48)은 공이 보편적 도덕성을 가능하게 하는 기반이 되며, 비자아적 윤리 태도의 중요성을 강조 한다. 웨스터호프(Westerhoff 2007, 312–17)는 불교 윤리 담론을 업과 자비, 공과 무아, 윤회와 열반의 관계 로 구분하여 중관 윤리의 체계화를 시도한다.
18) 카루소(Caruso 2020, 476–90)는 불교가 자유의지를 단정적으로 부정하기보다는 회의적인 입장을 취한다고 본다. 그는 인간의 행위가 통제 불가능한 요인들에 의해 결정되며, 도덕적 책임은 미래 지향적으로 사회 적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필드(Garfield 1995, 342–52)는 불교가 자유의지 그 자체보다 무지를 제거하는 과정을 중시한다고 말하며, 이 과정이 윤리적 선택 가능성을 열어주고 자유의지 개념과 도 결합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굿맨(Goodman 2002, 359–72)은 불교가 강한 결정론적 입장을 취한다고 보 며, 업이 과거의 행위에 따라 미래를 결정짓는다고 해석하여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견해로 연결된다고 주 장한다. 자바노(Javanaud 2018, 773–803)는 업과 연기 이론의 긴장 속에서 자유의지와 결정론 사이의 문제 가 발생한다고 보고, 『중론』이 이에 대해 확정적 해답을 제시하기보다는 상대적 진리를 강조한다고 설명 한다. 레페티(Repetti 2012, 132–60)는 불교 명상을 통해 자기 통제를 강화할 수 있으며, 이는 자아의 유무 와 관계없이 자유의지가 일정 수준 존재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불교적 소프트 양립론’의 가능성을 보여준 다고 분석한다.
19) 최근 몇몇 연구들이 불교와 결정론과 자유의지에 접근하고 있다. 이필원 외 4인(2021)은 자유의지와 관련 된 다양한 방면의 논의를 다루며, 이진경(2016)은 불교 사상 속 자유와 의지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해석한 다. 박재현(2017)은 선불교의 관점에서 자유의지를 고찰하고 있으며, 강병균은 자유의지의 존재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 비판적으로 논의한다(『법보신문』 게재).
향후 이 문제는 단순한 형이상학적 논쟁을 넘어서, 인간의 자율성과 책임, 나아가 윤리적 삶의 가능성에 대한 실천적 성찰을 요청하는 과제가 될 것이다. 특히 불교적 맥락에서 자유의지와 결정론의 상호작용은 해탈을 지향하는 수행의 과정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존재와 행위에 대한 보다 깊은 통찰을 요구하는 철학적 과제로서 그 의의가 크다. Ⅲ. 12연기에 내재된 결정론과 자유의지
1. 12연기와 결정론
결정론은 모든 사건이나 현상이 일정한 인과 법칙에 따라 필연적으로 발생하며, 우 연이나 자유로운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보는 철학적 입장이다.
이와 유사하게, 용수 의 「관십이인연품」에서도 12가지 현상이 원인과 조건에 의존하여 발생한다는 긍정적 인 내용의 게송이 있다. 모든 현상은 상호 의존적이며, 그 변화와 변형은 이러한 법칙 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에서 결정론과 불교의 12연기는 깊은 유사성을 지니고 있는 것 으로 보인다.
12연기설은 중생들의 삶의 방식에서 나타나는 오온(五蘊)의 구조라고 할 수 있다.20)
용수의 「관십이인연품」에서도 생은 곧 오온의 모습임을 말한다. 다섯 가지 온(skandha)이 존재(bhava)를 이루고, 존재로부터 출생(jāti)이 발생한다. 출생 으로 인해 노화와 죽음, 고통, 슬픔, 탄식 등이 발생한다.21)
20) 이중표 1991, 220.
21) MK 26.8: pañca skandhāḥ sa ca bhavo bhavājjātiḥ pravartate | jarāmaraṇaduhkhādi śokāḥsapa ridevanāḥ ||; 中
중요한 점은, 오온이 실체적인 ‘자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다섯 가지 요소가 결합하여 ‘나’ 라는 개념을 형성할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오온은 영원한 실체가 아니라, 인연과 조건에 의해 생겨나고 소멸하는 연기의 산물이다.22)
이러한 관점에서 12연기는 오온을 바탕으로 중생이 ‘나’라는 존재로 형성되는 과정과 그 소멸의 원리를 연기법으로 설명 하고 있다. 연기법의 이러한 본질은 결정론적 개념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으며, 변화 가능성과 유연성을 포함한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반대로, 연기 법을 완전한 결정론(Strict Determinism)으로 해석하는 견해도 존재한다. 즉, ‘모든 현 상이 연기에 의해 성립한다면, 인간의 행위 역시 필연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 냐?’는 철학적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23)
이러한 논의는 자유의지와 결정론의 관계를 규명하는 데 있어 중요한 의문을 던진다. 이와 유사하게, 1859년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종의 기원 출판 이후, 그의 진화론은 결정론적 세계관을 지지하는 강력 한 논거로 작용했다. 진화는 단순히 생명체가 복잡한 형태로 변화하는 과정일 뿐, 필 연적으로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한다는 보장은 없다.24)
현대에 이르러 일부 과학자들 은 유전자 및 환경적 요인이 인간 행동을 결정짓는다고 주장하며, 자유의지는 환상에 불과하다는 결론에 이르기도 한다. 그러나 과학 역시 생명체를 가능하게 하는 근본적 인 특성인 창발현상(emergence)25)을 온전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22) 이중표 1991, 172.
23) Meyers 2010, 24-25. 24) Hands, 김상조 역 2022, 396.
25) 창발 혹은 떠오름 현상이란 하위 계층에는 없는 특성이나 행동이 상위 계층(전체 구조)에서 자발적으로 돌 연히 출연하는 현상이다. 또한 불시에 솟아나는 특징을 창발성(emergence)라고도 부른다. 자기조직화 현 상, 복잡계 과학과 관련이 깊다. 우희종(2009)은 “창발 현상에 의한 개체고유성이야말로 철저히 주위와의 열려있음 덕분에 가능하다”고 보며, 이를 ‘열려있음’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양형진(2016)은 개체 간 존 재 방식이 하위 존재들 사이의 상호투영과 상호침투, 즉 상입(mutual penetration)이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용수는 연기법을, 서로 자성이 있는 것들이 의존하고 상호작용하는 개념으로 오해 하는 데 대해, ‘공’과 ‘연기’가 동의어임을 밝힘으로써 모든 존재와 개념이 본질적으로 자성이 없다는 점을 설명한다.
이에 용수는 제22장 「관여래품」에는 다음과 같은 게송 을 말한다. (여래는) 오온이 아니고 오온과 다른 것이 아니며 그 분(여래) 속에 오온이 있는 것도 아 니고 그것들(오온) 속에 그분이 있는 것도 아니며 여래가 오온을 갖는 것도 아닌데 이런 가운데 어느 것이 여래이겠느냐? 26)
불타(여래)가 오온에 의존[取]한다면 자성(自性)으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자성(自性)으로서 존재하지 않는 것, 그것이 어떻게 타성(他性)으로서 (존재하겠는가)? 27)
오온은 각기 다른 모든 현상을 가리키며, 그 본질은 무자성임을 밝힌다. 여래가 오 온과 동일하다면, 물질적·심리적 요소들의 단순한 결합이 깨달음을 성취한 존재로 인 정되는 오류를 낳게 된다. 반면, 여래가 오온과 완전히 분리된 존재라면, 연기법을 위 배하고 실체적 존재로 여겨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여래가 어떠한 실체적 본질을 갖고 있지 않으며, 단순한 존재론적 구분으로 설명될 수 없다는 점이다. 오온을 떠나 실체 적 존재로서 여래를 상정할 수 없고, 여래가 오온을 초월한 개별적 실체로 존재할 수 도 없음을 논증한다. 오온과 여래가 각각 실체적 존재로 확정되지 않는다면, 그로부터 비롯된 타성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주장 또한 성립될 수 없다. 연기의 원리에 따라 존재하는 모든 것이 본질적으로 자성을 지니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만약 여래가 오온에 의존하여 존재한다면, 이는 곧 독립적인 자성이 없음을 의미한다. 자성 이 없는 존재는 스스로 독립적 실체로 성립할 수 없으며, 또한 타성에 의해 존재한다 고 볼 수도 없다. 즉, 존재는 오직 상호 의존적 관계 속에서만 성립될 수 있으며, 고정 된 본질을 부여할 수 없다는 것이 연기법을 설명하는 중도 사상의 핵심이다. 다음은 연기법의 핵심적인 개념을 설명하는 초기경전의 구절이다. 중도에 대해 말하자면,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태어났기 때문에 저것이 태어난다’고 하였다. 이는 무명(無明)으로 인해 행(行)이 생기고, 그로 인해 생, 노, 병, 사, 우, 비, 노, 고통이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또한,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고, 이것이 멸하 면 저것도 멸한다’고 하였다.28)
26) MK 22.1: skandhā na nānyaḥ skandhebhyo nāsmin skandhā na teṣu saḥ | tathāgataḥ skandhavānna katamo ’tra tathāgataḥ ||; 中論 卷4, 「22 觀如來品」(T. 30, 29c10-11): 非陰不離陰. 此彼不相在. 如來不有 陰. 何處有如來.
27) MK 22.2: draṣṭavyadarśanābhāvād vijñānādicatuṣṭayam | nāstīty upādā nādīni bhaviṣyanti punaḥkatham ||; 中論 卷4, 「22 觀如來品」(T. 30, 30a5-6): 陰合有如來. 則無有自性. 若無有自性. 云何因 他有.
28) 雜阿含經 卷10 (T2, 67a4-7): 說於中道. 所謂此有故彼有. 此生故彼生. 謂緣無明有行. 乃至生. 老. 病. 死. 憂. 悲. 惱. 苦集. 所謂此無故彼無. 此滅故彼滅.
연기란 각각의 존재가 고유한 법칙을 내재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현상은 외부의 조건과 연관되어 나타나며 그 자체로 독립적인 본질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 이다. 불교의 연기법을 구성하는 핵심 개념인 idappaccayatā, paticcasamuppāda, paccaya, nidāna, sambhava, upanissā, paṭicaya는 원인과 조건의 상호작용을 통 해 결과가 발생하는 과정을 다양한 측면에서 드러내며, 연기의 이론적·실천적 이해 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idappaccayatā라는 개념은 모든 존재가 서로 연관되 어 있고, 서로 의존하는 상태에서 발생한다고 말하며 paticcasamuppāda는 조건에 의한 발생, 또는 연기, paccaya는 조건, 또는 원인, nidāna는 연결, 원인, 또는 시작, sambhava는 발생, 또는 생성, upanissā 연기의 개념은 고정된 이론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조건적 발생을 설명하는 하나의 틀이라고 볼 수 있다. 연기는 특정한 방식으 로만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2지(二支), 3지(三支), 5지(五支), 9지(九支), 10지(十支), 12지 (十二支) 등 여러 형태로 제시되며, 이는 각각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될 수 있다. 즉, 연기는 고통의 원인을 탐구하는 방법으로서, 정형화된 개념이 아니라 조건과 맥락 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유연한 설명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29)
또한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다’는 표현에서 ‘이것’은 단순히 하나의 대상을 의미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존재나 개념이 서로 의존하며 동시에 존재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때 대명사 ‘idaṃ’이 반복적으로 사용되며 두 개념 간의 상호 연관성을 강조한 다.
이는 ‘각각 모두’ 또는 ‘모두 함께’라는 의미를 전달하고, 각 요소들이 분리되지 않 고 동시에 일어난다는 것을 나타낸다.
특히, saṃ 접두사가 붙은 명사나 동사는 법의 발생이 분리되지 않고 함께 일어난다는 점을 강조하며, 여러 조건이 동시에 발생하여 함께 작용한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이는 시간적 인과 관계로 설명할 수 없고, 각각의 법들이 함께 일어나는 고통의 발생을 표현한다고 할 수 있다.30)
수 있다. 이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과정이 수행의 핵심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같지도 다르지도 않은 전체가 존재하며, 그것이 일어나는 순간 저것도 동시에 함께 일어난다. 연기를 보면 법을 보고, 법을 보면 연기를 본다.31)
29) 김홍미 2010, 2-5.
30) 우동필 2016, 221.
31) 中阿含經 卷7, 「3 舍梨子相應品」(T 1, 467a9-10): 若見緣起. 便見法. 若見便見.
연기법은 법과 밀접하게 연결되며, 위의 표현은 연기법이 진리로서의 법칙과 동일 하게 작용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중론의 12연기의 ‘연기법칙’은 고정된 원인과 결과가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또한, 결정되지 않은 상태를 말하는 것 도 아니다. 오히려, 이분법적인 양극단에 빠지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연 기라는 개념 자체도 무자성 속에 있으며, 결국 개념에 불과하기 때문이라고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2. 12연기와 자유의지
용수의 「관십이인연품」에서 6-7 게송은 집착하는 자와 집착하지 않는 자를 대조하 고, 10-11 게송에서는 무지한 자와 지혜로운 자가 서로 다른 선택을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는 인간 존재의 자유의지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여지가 있음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다. 느낌(vedanā)을 조건으로 갈애(tṛṣṇā)가 발생하며, 느낌을 위해 욕망이 일어난다. 욕망하 는 자는 네 가지 종류의 집착(upādāna)을 취한다. 집착(upādāna)이 있을 때 존재(bhava) 가 집착하는 자로부터 발생한다. 만약 집착이 없다면 해탈할 것이며, 존재(윤회)는 존재하 지 않을 것이다.32)
32) MK 26.6-7: raṣṭavyadarśanābhāvād vijñānādicatuṣṭayam | tṛṣyamāṇa upādānamupādatte ca turvidham || upādāne sati bhava upādātuḥ pravartate | syāddhi yadyanupādāno mucyeta na bhaved bhavaḥ ||; 中論 卷4, 「26 觀十二因緣品」(T. 30, 36b28-29): 因愛有四取. 因取故有有. 若取者不取. 卽解脫 無有.
위의 6-7게송에 따르면, 용수는 집착을 버릴 때 해탈에 이를 수 있음을 설명한다. 욕망을 초월하면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나 해탈을 경험할 수 있지만, 인간은 외부 자극 에 대한 감정적 반응으로 인해 쾌락, 고통, 무감각을 경험하고, 이로 인해 욕망이 일어 난다. 우리는 불쾌한 것을 피하고 유쾌한 것을 더욱 갈망하며, 이러한 욕망이 점차 집 착으로 발전한다.
집착은 대상과 집착하는 자 사이에 강한 정체성을 형성하며, 결국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만든다. 이러한 윤회의 고리인 욕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브론윈 피니건(Bronwyn Finnigan) 는 보살 계율의 정당성과 실천 가능성을 중도의 관점에서 분석하며 그들이 체계적인윤리 이론을 제시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윤리적 실천을 강조한다고 한다.33)
윤리적 실천으로서 욕망을 제어하고 무명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불교 수행의 중요한 부분은 욕망과 집착을 버리고 그대로의 진리를 보는 것이다. 욕망과 집착을 버린다는 것은 오온 자체를 부정하거나 제거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 는다. 오온은 ‘나’라는 집착이 개입되지 않은 존재의 기본 구성 요소들이며, 문제의 대 상은 이러한 오온에 ‘나’라는 집착이 더해진 상태인 오취온이다. 그중 행(行, saṅkhāra) 은 오온 가운데 하나로, ‘형성 작용’ 또는 ‘행위의 집합’을 의미하며, 우리의 정신적·도덕 적 상태를 형성하는 모든 의지적 작용(업, karma)을 포함한다. 이 의지적 작용에 집착 이 개입할 경우, 행은 단순한 오온의 구성 요소를 넘어 오취온의 일부가 되며, 윤회의 연속성을 가능하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즉, 집착과 욕망, 그리고 선한 행위 를 촉진하는 마음 모두 행온에 속하며, 이는 우리의 정신 작용과 도덕적 형성력을 아 우르는 방대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마음의 작용들은 서로 얽혀 거대한 사슬 처럼 형성되며, 인간은 이를 ‘나의 마음’이라 여기지만, 정작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마음은 매 순간 선택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하 지만 이 선택하는 마음은 본래 좋거나 나쁜 경험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것은 단지 대 상의 반영에 불과하다. 용수는 그의 핵심 사상으로 불이를 언급한다. 불이는 이원적 분별을 초월하여 존재의 본질이 고정된 실체가 아님을 밝히는 개념으로, 문자 그대로 ‘둘이 아니다’는 뜻이다. 우리의 마음은 본래 둘로 나뉜 적이 없지만, 현실 속에서 인간 은 끊임없이 분별하고 양면을 나누어 선택하며 욕망을 일으키고 집착을 만든다.
그러 나 이는 모두 반영된 착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용수는 모든 현상이 무자성임을 강조 하며, 무자성의 반영 역시 실체가 있다고도, 혹은 없다고도 할 수 없음을 설파한다.
왜 냐하면 ‘있다’ 혹은 ‘없다’라고 분별하는 마음조차도 결국 무자성에 귀속되기 때문이다.
다음은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에서 12연기에 대한 대해 다음과 같이 설한다. 선남자여, 그리하여 12인연은 불출불멸, 불상불단, 비일비이, 불래불거, 비인비과이다.34)
33) Halliday 2011, 221-31.
34) 大般涅槃經 卷27, 「11 師子吼菩薩品」 (T12, 524a11-12): 善男子. 以是義故. 十二因緣. 不出不滅. 不常不斷. 非一非二. 不來不去. 非因非果.
또한 존바수밀보살소집론(尊婆須蜜菩薩所集論)에서도 십이연기를 부정한다.
혹은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십이연기는 십이연기법이다. 혹은 십이연기법은 십이 연기가 아니다. 일어나는 것들은 공적(空寂)의 법(法)이다.35)
용수는 오온을 ‘나’라고 착각하고 이에 욕망과 집착을 더함으로써 고통의 삶을 반복 하게 되는 12연기의 구조를 분석하며, 이를 ‘희론적멸(戱論寂滅)’의 경지로 이끌고자 한 다.
그는 태어남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영원한 것도 영원하지 않은 것도 아니라고 말 한다. 그것은 고정된 실체도 아니며, 전혀 다른 것도 아니다.
시간과 공간 역시 자성을 지니지 않으므로, 실질적으로 ‘오는 것’도 ‘가는 것’도 성립하지 않는다. 이러한 무자성 의 관점에서 보면, 원인과 결과라는 구분 또한 궁극적으로는 성립되지 않는다. 따라서 용수가 12연기를 설하는 의도는 단순히 인과의 법칙을 강조하려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그는 ‘나’라는 집착에서 비롯된 의지적 작용으로서의 행온 또한 무자성의 반영이라는 점을 드러냄으로써, 연기법 자체가 불이의 논리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을 밝히고 무자성의 통찰을 통해 집착을 해체하고, 해탈로 나아가는 중도의 실천적 길을 제시하는 철학적 토대로 보인다.
용수의 불이 개념에 따르면, 선과 악 또한 본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생각 과 분별에서 비롯된 개념에 불과하다.
그러나 용수가 말하는 윤리적 실천은 단순히 외 적인 도덕 규범을 따르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선과 악에 대한 분별과 그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 마음의 번뇌36)를 제거함으로써 진리를 알아차려 가는 내적인 자유를 얻기 위한 실천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번뇌에서 자유로워져, 진리와 자비를 온전히 이해하는 지혜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며 이것이 진정한 자유의지37)라 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35) 尊婆須蜜菩薩所集論 卷2,(T28, 736a25-27): 惑作是說. 若十二緣起. 是十二緣起法耶. 惑十二緣起法. 彼非 十二緣起諸起空寂法.
36) 골드(Gold 2021, 1–4)는 정신적 결함(kleśa)에 관한 설명으로 다루면서 특히, 욕망(rāga), 혐오(dveṣa), 무지 (moha)가 번뇌를 이루는 주요 요소로 제시된다.
이 번뇌들은 사람들의 자아와 관련된 왜곡된 내러티브에 서 비롯되며, 번뇌를 통해 사람은 자신을 안정된 실체로 고착하게 된다. 번뇌는 기본적으로 ‘자아’의 잘못 된 이해에서 기인하며, 이를 통해 사람들이 욕망, 혐오, 착각을 지속적으로 경험하게 되고, 이는 그들의 도 덕적 행동을 왜곡하게 만든다. 번뇌는 심리적으로 불쾌하게 경험되지만, 이들의 본질은 정신을 왜곡하고 혼란스럽게 만든다는 점에 있다. 번뇌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자기 인식과 도덕적 행동을 통해 이를 극복해 야 한다고 강조한다.
37) 볼코바(Volkova 2024, 113)는 불교 경전에서 서양 철학처럼 자유의지라는 개념이 명확히 제시되지는 않지 만, ‘자기 통제(self-control)’, ‘선택의 가능성’, ‘윤리적 책임’ 등의 개념을 논의하는 방식 속에 자유의지에 대 한 중요한 시사점이 내포되어 있다고 분석한다.
12연기설의 유전문과 환멸문은 단순히 이론에 그치지 않고 실천을 통해 그 의미가 깊어진다. 결국, 12연기는 붓다의 진리를 실천을 통해 체득하는 중요한 원리를 담고 있다. 다음은 두 번째로 자유의지의 요소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게송이다. 무지한 자는 윤회의 뿌리가 되는 업을 조성한다. 따라서 그는 행위의 주체가 된다. 그러 나 지혜로운 자는 실상의 통찰을 통해 업을 조성하지 않는다.38)
무지는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고통의 근본 원인으로, 무명이라고도 불린다. 무지한 자는 실상을 알지 못하고 행위의 주체로 의도적 행동으로 윤회의 순환에 갇히게 된다. 종카파(Tsongkhapa)는 무지란 단순한 사물의 실상에 대한 통찰이 결여된 상태가 아니 다. 그것은 단순한 부재가 아니라, 진정한 앎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서, 그것을 완전히 반대하는 것이다. 무지는 사람과 현상을 실체적 존재로 고착하여 집착하는 것이다.39)
즉, 용수의 무자성과 불이의 개념 안에는 본래부터 실체적 자아도 없고, 지혜로운 자 아도 없다. 다만 자성이 없기에 둘이 아님을 이해하는 것이 곧 지혜라고 말할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혜는 무명에 기반하여 형성된 실체적 자아에 대한 집착과, 그로부 터 비롯된 행과 사유의 방식으로는 쉽게 도달하기 어려워 보인다. 『중론』에서는 식과 명색의 상호의존적 관계를 통해 이 점을 드러낸다.40) 업41)의 조건에 의해 확립된 의식 은 다시 명색을 부여하며, 명색은 또다시 식을 조건지음으로써 윤회의 구조를 강화한 다.
38) MK 26.10-11: saṃsāramūlān saṃskārānavidvān saṃskarotyataḥ | avidvān kārakastasmānna vid vāṃstattvadarśanāt || avidvān kārakastasmānna vidvāṃstattvadarśanāt | avidyāyā nirodhastu jñānenāsyaiva bhāvanāt ||; 中論 卷4, 「26 觀十二因緣品」(T. 30, 36c6): 是謂爲生死. 諸行之根本. 無明者 所造. 智者所不爲. 이것을 생사하는 제행의 근본이라고 한다. 어리석은 자가 짓는 것이지만 지혜로운 자 가 하는 것은 아니다.
39) Tsongkhapa, Garfield & Samten 2006, 536.
40) “의식(vijñāna)이 업의 조건(saṃskārapratyaya)을 기반으로 정착한다. 그리고 의식이 정착한 후에는 명색 (nāmarūpa)이 부여된다.” 우동필(2016)은 니까야를 통해 볼 때 「관십이인연품」에는 식과 명색 부분에 식의 중첩되었음을 지적한다.
41) Finnigan 2022. 일부 현대 철학자들은 업 개념을 초자연적 윤회와 분리하고, 심리적·행동적 습관의 형성 과정으로 해석하려 한다. 예를 들어, 선한 행동이 반복되면 선한 성향이 강화되고, 악한 행동이 반복되면 악한 성향이 강화되는 방식으로 업을 설명하는 시도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은 전통 불교의 ‘업의 결 과로서의 보상과 처벌(응보론적 요소)’을 제거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어 논쟁이 존재한다.
이처럼 무명에 의해 덮인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는 또 다른 무명의 업을 생성 하며, 끊임없는 윤회의 순환을 지속시킨다. 선행은 분명히 번뇌를 감소시키는 기능을 가지지만, ‘선’이라는 개념에 대한 집착과 그 선한 행위를 실현하는 ‘실재하는 나’에 대한 고착은 또 다른 업의 원인이 된다. 즉, 선행조차도 오온의 반복된 체험을 통해 ‘나’ 라는 자아의식을 강화하며, 윤회의 고리를 더욱 공고히 하는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 다. 이러한 자아에 대한 습관화된 집착은 결국 지혜의 획득을 방해하는 결정적 요인으 로 작용한다. 이에 바수반두는 인간이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도덕적 책임에 대해 직접적 으로 언급하지 않지만, 그의 이론은 자기 통제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그 는 인간이 어떻게 선택의 자유를 기르고 발휘할 수 있는지 설명하며, 의도가 특정한 대상이나 목적을 향한 마음의 움직임이라고 본다. 이는 의식적 반성과 숙고를 통해 통 제될 수 있으며, 단순한 욕망에 의한 행동은 자유의지와는 거리가 멀다고 본다. 또한, 자기 통제는 단순한 숙고의 결과가 아니라, 습관화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설명한다. 즉, 잘 훈련된 개인은 습관의 결과로 통제를 이루게 된다고 한다.
열반은 모든 조건과 인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로서, 이를 통해 개인은 더 이상 과거 업의 영향에서 벗어나 게 된다.42)
이상에서 위에서 6-7게송과 10-11게송은 자유의지를 자아의 독립적인 자유로 이해 하기보다는, 수행을 통해 조건을 통찰하고 내적인 자유를 실현해 가는 과정으로 설명 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다만, 자유의지의 존재 여부에 대해 명시적으로 논증하고 있 지는 않다. 대신, 수행을 통해 인과적 조건에 대한 통찰을 증득함으로써, 보다 지혜롭 고 해탈에 이르는 방향으로 선택하고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하는 데에 강조점을 둔다. 블라다 A. 볼코바(Vlada A. Volkova) 역시 불교에서 지혜와 자비가 행위 선택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이러한 선택이 궁극적인 자유로 나아가는 길이 된다고 본다.
그녀는 이것이 자기 해방(self-liberation)과 깊이 연결되어 있으며, 수행을 통해 욕망과 집착을 줄여가는 과정이 자유에 이르는 데 중요하다고 설명한다.43)
42) Meyers 2010, 252-54.
43) Volkova 2024, 115-17.
불교에서 열반은 모든 조건과 인과를 초월한 상태를 의미하며, 이를 통해 개인은 업의 영향에서 벗어나 궁극적인 자기 해방에 이르게 된다. 불교에서는 지혜와 자비를 바탕으로 한 행위의 선택이야말로 참된 자유로 나아가는 길이며, 이는 고통의 해방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수행은 단순히 도덕적 정화를 넘어, 존재를 규정짓는 인과적 조건들에 대한 통찰을 가능케 하고, 보다 지혜로운 선택을 반복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내면의 습관을 함양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수행은 윤회의 순환으로부터 벗어 나는 해탈의 지평을 열어줄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유의지실현에까지 나아가게 한다. 이는 내적인 자유의 성취이자, 자기 통찰과 번뇌의 소멸을 통해 도달하는 실존적 해방의 여정이라 할 수 있다.
3. 결정론과 자유의지 양립 가능성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양립 가능성에 대한 논의는 종종 이분법적 사고에 갇혀 있으 며, 이러한 이분법적 접근은 진리의 본질을 왜곡할 위험이 있다.
서양 철학 전통에서 도 이와 같은 사고방식은 물질과 정신의 관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물질과 정신 은 오랫동안 대립적인 개념으로 간주되어 왔고, 이 둘의 조화 가능성은 자주 부정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는 실재의 복합적인 상호작용과 관계성을 간과하 게 만들며, 세계를 보다 통합적인 시각에서 이해하는 데 장애가 된다.
이에 용수는 세속제(saṃvṛti-satya)와 제일의 진리(paramārtha-satya)라는 이중 진리 의 관점을 제시한다. 무자성의 관점에서 본다면, 결정되어 있는 듯 보이는 세계와 자 유롭게 의지를 발휘하는 주체의 가능성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는 우리가 처한 조건적 세계를 이해하고, 그 안에서 자유를 실현할 수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붓다들의 교법은 이제에 근거를 둔다.
세간에서 행해지는 진리와 승의로서의 진리이다. 이 두 가지 진리의 구별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붓다의 가르침에 있는 심오한 진리를 알지 못한다.44)
44) MK 24.8-9: dve satye samupāśritya buddhānāṃ dharmadeśanā | lokasaṃvṛtisatyaṃ ca satyaṃ ca paramārthataḥ || ye ’nayorna vijānanti vibhāgaṃ satyayordvayoḥ | te tattvaṃ na vijānanti gam bhīraṃ buddhaśāsane ||; 中論 卷10, 「24 觀四諦品」(T. 30, 670b9-12): 諸佛衣二諦. 爲衆生說法. 一以世 俗諦. 二第一義諦, 若人不能知. 分別於二諦. 則於深佛法. 不知眞實義.
세속제는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현실의 진리로, 변화와 인과를 포함하며 인간 존재와 경험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반면, 제일의 진리는 공의 원리를 드 러내며, 모든 현상이 본질적으로 무자성이며 상호 의존적이라는 깊은 통찰을 제공한 다. 이 두 진리는 분리될 수 없는 관계에 있으며, 세속제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제일의 진리를 깨닫기 어렵고, 제일의 진리를 깨닫지 않고서는 열반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이 용수의 핵심적인 가르침이다. 용수는 두 가지 진리, 세속의 진리와 제일의 진리가 상 호 보완적으로 작용하며, 그 둘이 서로를 완성하는 관계에 있다고 본다. 세속제는 우리가 현실 세계에서 경험하는 삶의 진리이며, 공은 그 이면에 있는 근본적인 진리로, 이 두 진리의 통합적 이해가 열반에 이르는 길임을 알려준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용수는 물질과 물질의 변화, 그리고 생각에서 일어나는 집착이 모두 세속제에 속한다 고 본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것들은 모두 무자성의 연기에 의해 성립하는 것이며, 그것을 진정한 진리라고 설명한다.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문제 또한 세속제와 진제의 관점에서 재조명될 수 있다. 결정 론은 모든 사건이 원인과 결과에 의해 필연적으로 결정된다고 주장하며, 이는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인과의 법칙을 반영한다. 세속제의 관점에서는 물질과 정신에서 경험하는 원인과 결과를 고정된 실체로 받아들이며, 이는 인간의 행 위를 제약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용수의 진제의 관점에서는 결정론적 세계 또한 무자성이며, 자유의지 또한 공하다는 점에서 결국 둘 다 세속제에 속한다. 결정론과 자유의지는 서로 배타적인 개념이 아니라, 진리의 궁극적 성질을 깨닫는 과정 속에서 서로를 해체하는 관계에 있다. 모든 존재가 무자성이므로, 결정된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자유의지처럼 보이는 것도 결국 진제에 의해 가능하다. 따라서, 진리를 있는 그대로 통찰하는 것은 결정론적 세계 속에서도 궁극적 자유를 실현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곧, 속제와 진제가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 것이 자유의 길이며, 인과의 필연성 속에서도 궁극적 자유가 가능하다는 불교적 통찰을 드러낸다.
Ⅵ. 결론
용수의 중론 제26장 「관십이인연품」을 중심으로, 12연기를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현대적 철학 논쟁의 맥락에서 분석하였다. 용수가 전개한 연기법은, 모든 존재가 고정 된 자성을 지니지 않으며 상호 의존적으로 발생하고 변화한다는 철학적 입장을 담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전통적인 물질주의적 결정론이나 인과 법칙 중심의 세계관에 비 판적 시각을 제공하는 동시에, 조건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한 자유로운 윤리적 실천 의 가능성을 여는 중요한 사유적 전환점을 제시한다.
용수가 제시한 십이연기의 핵심은 무자성에 기반한 연기법이다.
모든 현상과 존재, 그리고 원인과 조건은 자성이라는 고정된 본질을 지니지 않으며, 오직 상호 의존적 관 계 속에서만 성립한다.
존재에는 항구적 실체가 없기에, 어떤 것도 고정적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며, 동시에 전적으로 결정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연기의 논리는 절대적 원 인이나 결과를 전제하지 않으며, 조건적 상호작용을 통해 현상이 발생한다는 점을 강 조한다.
따라서 인과의 필연성과 고정된 결과를 전제하는 관점인 결정론과는 본질적 으로 구별된다.
용수의 연기법은 원인과 결과를 고정된 실체로 간주하지 않고, 인과를 유동적이고 개방적인 구조로 파악할 수 있다.
또한 「관십이인연품」에는 단순히 존재론적 구조를 해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집착으 로부터 벗어나려는 의지 또는 지혜를 통해 해탈에 이르려는 실천적 방향성이 드러나 는 게송들이 포함되어 있다.
용수가 설하는 십이연기는 자유의지의 유무의 설명보다 윤리적 실천을 내포한 실천적 진리로 해석될 수 있다.
특히, 의지적 작용인 ‘행’은 ‘나’ 라는 집착과 결합될 때 업의 지속을 초래하며 윤회의 순환을 강화하는 요인이 된다.
이에 무명을 야기하는 번뇌의 구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반복적이고 습관화된 윤리 적 실천을 통해 실체적 자아에 대한 집착을 극복할 것을 제안한다.
이러한 실천은 단 순한 인과적 사슬의 거부가 아니라, 조건에 대한 통찰을 통해 ‘나’라는 자아의 허구성 을 드러내고, 존재의 양극단 자체가 본래 실재하지 않음을 자각하는 데 목적이 있다.
결국, 용수가 말하는 자유는 독립된 자아의 능력으로서의 자유의지가 아니라, 실체적 자아라는 근본적 착각에서 벗어나 연기의 진실을 통찰함으로써 실현되는 해방의 과정이다.
지금--여기의 조건적 실재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그에 대한 집착을 버리 는 순간이 곧 해탈이며, 그 지점에서 진정한 자유가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약호 및 참고문헌│
원전
MK : Mūlamadhyamakakārikāh of Nagarjuna, edited by J. W. De Jong, Adyar Library and Research Centre, Mdras 1977. 中阿含經 (T1) � �雜阿含經 (T2) 中論 (T30) 大般涅槃經 (T12) 尊婆須蜜菩薩所集論 (T28)
논문, 저서류
가지야마 유이치 외 저, 정호영 역. 1989. 공의 논리. 서울: 민족사. 가지야마 유이치, 김성철 역. 2024. 공 공부. 김성철 역. 김영사. 가츠라 쇼류·고시마 기요타카 저, 배경아 역. 2018. 중론: 용수의 사상·저술·생애의 모든 것. 서울: 불광출판사. 강병균. 2019a. 「자유의지와 무지」. 법보신문(2019.11.25). . 2019b. 「자유의지와 결정 근거」. 법보신문(2019.12.3). . 2019c. 「자유의지와 구속」. 법보신문(2019.12.11.). . 2022. 망상의 향연. 김영사. 김성철 역주. 2021. 중론 개정본. 도서출판 오타쿠. 김홍미. 2010. 「十二緣起 전개 과정 연구 - 解脫智(ñāṇa) 기술을 중심으로」. 동국대학교 대학원 박사 학위 논문. 깔루파하나 저, 박인성 역. 1994. 나가르주나. 서울: 장경각. 나카무라 하지메 저, 이재호 역. 1993. 용수의 삶과 사상: 중론을 통해 해명한 반야공의 철학과 원 리. 서울: 불교시대사. 남수영. 2012. 「용수의 연기설 재검토 및 중도적 이해」. 불교학연구 32: 129-190. 루이스 포이만·제임스 피저 저, 류지한, 조현아, 김상돈 역. 2010. 윤리학: 옳고 그름의 발견. 도서 출판 울력. 중론(中論)에 나타난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윤리적 고찰 - 「관십이인연품」을 중심으로 - _27 박재현. 2017. 「운명과 자유의지를 보는 선의 시선」. 선학 제48호: 259-285. 박찬욱 기획, 한자경 편집, 이필원 외 지음. 2021. 의지, 자유로운가 속박되어 있는가. 서울: 운주 사. 앨프리드 R. 밀리 저, 이풍실 역. 2022. 자유의지와 과학: 현대 과학이 자유의지가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한 이유. 필로소픽. 야지마 요우기치 저, 송인숙 역. 1992. 空의철학 - 절대부정·절대긍정. 서울: 대원정사. 양형진. 2016. 「진화하는 세계에 나타나는 상입의 창발적인 연기과정과 시공간적 연기 구조」. 불교 학보 77: 305-330. 우동필. 2016. 「니까야로 본 중론의 십이연기 - 관십이연기품을 중심으로」. 불교학연구 49: 199 231. 우희종. 2009. 「진화론적 시각과 불교의 연기적 관점의 만남」. 종교문화연구 13. 한신대학교 한신 인문학연구소: 47-85. 이중표. 1991. 아함의 중도체계. 불광출판사. 이진경. 2016. 불교를 철학하다. 서울: 한겨레출판. 최용철. 2004. 자유의지와 결정론의 철학적 논쟁. 간디서원. 프란츠 M. 부케티츠 저, 원석영 역. 2009. 자유의지, 그 환상의 진화: 우리에게 자유의지는 없 다?. 열음사. 핸즈 저, 김상조 역. 2022. 코스오사피엔스. 소미 미디어. 瓜生津隆眞. 1995. 空の思想と菩薩道. 東京: 春秋社. Biswas, Kuheli. 2018. “Is Nāgārjuna a Philosophical Sadist?” Philosophy and the Life-World 20: 39-45. Caruso, Gregg D. 2020. “Buddhism, Free Will, and Punishment: Taking Buddhist Ethics Seriously.” Zygon: Journal of Religion and Science 55 (2): 474-496. Curnow, Ryan. 2021. “Hegel’s Projected Nihilism: A Study of Orientalized Buddhism.” An International Undergraduate Philosophy Journal 14: 91-100. Finnigan, Bronwyn. 2015. “ Madhyamaka Buddhist Meta-Ethics: The Justifiatory Grounds of Moral Judgments.” Philosophy East and West 65 (3): 765-785. . 2022. “ Karma, Moral Responsibility, and Buddhist Ethics.” Edited by Manuel Vargas and John M. Doris. Oxford University Press: 7-23. Garfield, Jay. 1995. The Fundamental Wisdom of the Middle Way: Nāgārjuna’s Mūlamad hyamakakārikā.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Gold, Jonathan C. 2021. “ Wholesome Mind Ethics: A Buddhist Paradigm.” The Journal of Value Inquiry 55: 1-18. Goodman, Charles. 2002. “ Resentment and Reality: Buddhism and Moral Responsibility.” American Philosophical Quarterly 39 (4): 359-372. Halliday, Keith. 2011. Moonshadows. Oxford University Press. Inada, Kenneth K. 1970. Nagarjuna: A Translation of his Mulamadhyamakakarika with an Introductory Essay. Tokyo: The Hokuseido Press. Kalupahana, David J. 1986. Nāgārjuna: The Philosophy of the Middle Way. Albany: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Javanaud, Katie. 2018. “ Reformulating the Buddhist Free Will Problem: Why There Can Be No Definitive Solution.” Journal of Indian Philosophy 46: 773-803. McGarrity, Leah. 2015. “ Mādhyamikas on the Moral Benefits of a Self: Buddhist Ethics and Personhood.” Philosophy East & West 65 (4). Meyers, Karin L. 2010. “ Freedom and Self-Control: Free Will in South Asian Buddhism.” PhD diss., University of Chicago: 1082-1118. Repetti, Rick. 2012. “ Buddhist Reductionism and Free Will: Paleo-compatibilism.” Journal of Buddhist Ethics 19: 33-95. Siderits, Mark, and Shoryii Katsura. 2013. Nagarjuna’s Middle Way. Wisdom Publications. Stepien, Rafal K. 2020. Buddhism Between Religion and Philosophy: Nāgārjuna and the Ethics of Emptiness. Oxford University Press. Tsongkhapa. 2006. Ocean of Reasoning: A Great Commentary on Nagarjuna’s Mulamad hyamakakarika. Edited by Garfield, Jay and Samten, N. Oxford University Press. Volkova, Vlada A. 2024. “ The Problems of Free Will and Moral Responsibility in Buddhist Ethics.” Rund Philosophy Journal 28 (1): 109-119. Westerhoff, Jan. 2007. Nagarjuna’s Madhyamaka: A Philosophical Investigation. University of Durham.
국문 초록
이 논문은 용수(龍樹)의 중론(中論) 제26장 「관십이인연품(觀十二因緣品)」을 중 심으로, 불교의 핵심 개념인 12연기(十二緣起)와 결정론 및 자유의지의 논의 사이 에 존재할 수 있는 사유의 접점을 모색하고자 한다.
용수의 12연기는 모든 존재와 현상이 특정한 원인과 조건에 의존하여 발생하고 변화한다는 사실을 밝힌다. 이는 외견상 결정론적 성격을 띠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이러한 존재와 법칙을 고정된 실체로 간주하지 않고, 무자성(無自性)의 관 점에서 이해한다. 즉, 연기법은 개별 사물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 호 의존적인 관계 속에서 성립된다고 설명하며, 모든 현상이 본질적으로 실체성을 갖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따라서 연기법은 필연적 인과 관계 속에서도 특정 한 결과로 고정될 수 없는 변용성과 전체성을 내포하며, 외견상 결정된 듯 보이지 만 자성이 없기에 결정하는 주체나 결정되는 객체로 간주될 수 있는 고정된 실체 는 존재하지 않는다.
제26장의 게송은 12연기의 과정에서 집착은 윤회와 고통의 지속을 초래하지 만, 이러한 집착에서 벗어나 지혜를 얻는 자는 윤회의 굴레를 초월할 수 있음을 제시한다.
이는 자유의지가 개입될 여지를 시사하는 듯하지만, 용수의 불이(不二) 사상에 따르면, 집착과 그 원인인 욕망은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양극단 적 분별 속에서 형성된 허상에 불과하다.
따라서 집착을 제거하고 지혜를 증장하 는 과정에서 우리는 연기의 진리를 있는 그대로 깨닫게 되며, 윤회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다만, 무명 속에서 형성된 존재가 스스로 무명의 작용에서 벗어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설령 선한 행위를 실천할지라도, ‘나’라는 고정된 자아에 대한 집착을 유지하는 한, 그러한 행위조차 새로운 욕망과 집착을 초래하여 윤회의 흐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이에 반복적인 선행을 실천함으로써 선행조차 ‘나’라는 집착에서 벗어나 행해질 수 있도록 습관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
결국, 용수의 게송은 자유의지의 존재 여부에 대해 명시적으 로 언급하지 않지만, 자아에 대한 집착이 본질적으로 허상임을 통찰함으로써, 진 정한 자유로 나아가는 실천적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는 자아의 경계를 넘어 선 해탈의 상태에서 궁극적인 자유를 실현하는 것을 지향하는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용수의 연기법은 물질적 변화와 인과 법칙이 지배하는 세계 속에 서도, 인간이 윤리적 실천을 통해 궁극적 자유에 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 다.
그는 세속적 진리와 궁극적 진리의 관계를 통해, 현상 세계의 인과성과 윤리 적 실천이 무자성의 본질 안에서 통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외견상 결정론적으로 보이는 현실조차도 실상은 무자성의 법칙 아래에서 유동적으로 전 개되며, 이는 속제와 진제가 이원적으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불이(不二)의 통찰 속 에서 하나의 진리로 포섭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주제어 : 중론, 12연기, 무자성, 결정론, 자유의지
│Abstract│
An Ethical Inquiry into Determinism and Free Will in the Mūlamadhyamakakārikā : Focused on Chapter 26 “Examination of the Twelve Links” Ha, Je Min (Ven. Beop Yeon) (PhD Candidate, Department of Buddhist Studies, Dongguk University) This paper explores the possible points of intersection between the Buddhist concept of the twelve links of dependent origination (十二緣起, dvādaśāṅga-pratītyasamutpāda) -- as presented in Chapter 26, “Examination of the Twelve Conditions” (Pratītyasamutpādaparīkṣā), of Nāgārjuna’s Mūlamadhyamakakārikā -- and contemporary philosophical debates on determinism and free will. Nāgārjuna’s exposition of dependent origination elucidates that all phenomena arise and change as conditioned by specific causes and conditions. While this may appear to carry deterministic implications, Nāgārjuna’s thought fundamentally rejects the notion of inherent existence (svabhāva), thereby denying any fixed or self-subsisting entities within causal relations. According to this framework, phenomena are not independently existent but arise interdependently, and are thus marked by ontological fluidity and transformation. The absence of intrinsic identity in both agents and events challenges the very basis of conventional determinism. In Chapter 26, Nāgārjuna describes how upādāna (attachment) perpetuates saṃsāra and suffering, yet also implies that one may transcend this 30_ 불교학 리뷰 vol.37 cycle through the cultivation of wisdom. While this may seem to leave room for a notion of free will, Nāgārjuna’s philosophy of non-duality (advaya) reveals that both attachment and its origin -- desire -- are illusory constructs arising from dichotomous conceptualization. Thus, the path to liberation involves dismantling these fabrications and directly realizing the truth of dependent origination. However, overcoming avidyā (ignorance) from within its own conditioned framework is profoundly difficult. Even morally wholesome actions may reinforce saṃsāra if they are grounded in the attachment to a fixed self. Therefore, this study suggests a repetitive cultivation of virtuous actions, aimed at breaking the habitual identification with a reified self. Although Nāgārjuna does not explicitly affirm or deny the existence of free will, his deconstruction of the self and affirmation of the emptiness of all phenomena can be interpreted as a pathway toward a radically redefined notion of freedom. This freedom is not grounded in autonomous agency but in the transcendence of self-bound identity and the realization of ultimate liberation (nirvāṇa). In conclusion, Nāgārjuna’s doctrine of dependent origination offers a unique philosophical model in which the law of causality and ethical practice are integrated within the framework of emptiness. His articulation of the two truths -- conventional (saṃvṛti-satya) and ultimate (paramārtha-sa tya) -- demonstrates how seemingly deterministic reality unfolds freely within the logic of śūnyatā. This implies that determinism and freedom are not mutually exclusive but may converge within the non-dual insight into the nature of reality.
Keywords : Mūlamadhyamakakārikā, twelve links of dependent origination, emptiness (無自性, asvabhāva), determinism, free will.
2025년 3월 16일 투고 2025년 4월 6일 심사완료 2025년 4월 9일 게재확정
불교학 리뷰 vol.37
https://doi.org/10.29213/crbs..37.20250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