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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야기

AI 기술은 어떻게 우상으로 변할 수 있는가?: 존재론적 기술비판과 개혁신학의 기능적 우상론/윤형철.총신大

 

I. 들어가는 말

 

현대는 기술의 시대이다.

지난 한 세기 동안 기술은 국가와 사회의 구 조뿐 아니라 개인의 생활 방식과 사고·행동 양식, 타인과 관계를 맺는 방 식까지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왔다.

근대 이후 세계사의 주요 동력들이 기 술을 중심으로 얽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기술은 불가역적인 흐 름으로 인간과 세계를 밀어붙여 왔다. 기술 발전의 속도는 혁명적이고 가속적이다.

1차 산업혁명(기계혁명) 에서 2차 산업혁명(전기혁명)까지는 100년 이상이 소요되었고, 3차 산업 혁명(IT 혁명)에 이르기까지 다시 한 세기가 필요했다.

그러나 4차 산업혁 명, 곧 지능정보혁명에 도달하는 데에는 불과 수십 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우리는 한 사람의 생애 안에서 ‘혁명’이라 불릴 변화를 반복적으로 경험하 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급변은 우리를 언제나 기대와 두려움이 교차 하는 문턱에 세운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문턱 중 하나인 ‘AI 대전환’ 앞에 서 있다.

AI는 전례 없이 급진적이고 전환적인 기술이다. AI는 이미 가정과 시 장, 식당과 극장 등 일상의 곳곳에 스며들었고, 산업 전반을 재정의하며 교육과 학문, 언론과 정치, 목회와 신앙의 지형까지 새롭게 재편하고 있 다.

생성형 AI(Generative AI)의 등장은 AI를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의사 소통의 주체처럼 경험하게 했고, 범용 AI(General AI, AGI), 자율형/에이 전트 AI(Autonomous/Agentic AI), 피지컬 AI(Physical AI)로의 발전과 확 장은 가히 파격적이다.

공상과학소설 속에나 있던 기계가 현실로 소환되 어 일상 속에서 인간과 대화하고 조언하고 제안을 건네는 실체(entity)로 경험되고 있다.

AI의 파격은 이것이 ‘응용 기술’의 차원을 훌쩍 뛰어넘어 인간의 삶의 조건과 방식, 그리고 인간이 세계와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을 규정함 으로써 인간됨과 인간다움 자체를 재구성하고 있다는 데 있다.1)

 

    1) 인간됨과 인간다움의 조건을 첨단기술을 통해 기술적으로 재구성하려는 시도 중 하나가 포스트휴머 니즘이다. 기술을 통해 인간 향상을 도모하는 이런 기술 유토피아적 시도는 시간·공간·관계라는 언약적 질서를 훼손하는 세계관적 전환이라는 점에서 신학적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이에 대해 서, 윤형철,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인간됨과 인간다움의 조건에 관한 단상: 포스트휴머니즘 인간론 에 대한 기독교 신학의 답변,” 「조직신학연구」 37 (2021): 26-91을 참고하라. 

 

지금, 이 순간에도 AI는 인간 삶의 필수적 맥락을 형성하고 개인과 공동체의 삶을 규정하는 ‘거대하고 초인간적인 차원의 구조’로 발전하고 있다. AI 기술의 무한 질주 앞에서, 정치와 법, 윤리와 시민사회는 최소한의 규제 장치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으며 공적 담론 역시 주로 기술의 활용 가능성, 위험 관리, 공정성과 책임성 같은 실천적·규범적 문제에 집중해 왔다.

교회와 신학의 담론 역시 AI를 신학교육이나 목회 현장에서 ‘어떻게 활용할 것인 가’라는 실천적 질문에 주로 머무른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한 논의들에는 더 근본적인 질문이 빠져 있다.

‘AI 기술이 인간에 게 어떤 삶과 기회를 가능케 하거나 폐기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선행해서, 혹은 그 질문의 저변에 깔려야 하는 ‘이 기술이 인간과 사회를 어떤 존재 로 드러내는가’라는 존재론적·인간론적 물음이 그것이다.

이러한 문제 의식에서 출발한 본 논문은 AI 기술과 인간 존재의 관계를 철학과 신학의 학제 간 연구(interdisciplinary study) 방식으로 사유하고자 한다.2)

이를 위해 본 논문은 먼저 현대 기술을 도구적 수단이 아니라 인간과 세계를 규정하는 존재론적·인식론적 질서로 통찰한 철학적 기술비판 전통, 곧 하이데거, 프랑크푸르트학파, 벤야민의 사유에 주목한다.3)

 

     2) 본 논문이 취하는 철학과 신학의 학제 간 접근은 철학을 신학의 외적 기초나 규범으로 설정하지 않 는다. 이 점에서 철학의 역할을 인식론적 토대 제공이 아니라 개념적 혼란을 진단하고 해소하는 ‘치 료적 기능’으로 이해한 Nancy Murphy의 통찰은 본 논문의 방법론적 전제를 대변해준다. Murphy 에 따르면 신학과 과학(또는 철학) 사이의 대화에서 핵심 쟁점은 개별 학문의 내용보다 인간과 세계 를 이해하는 데 사용되는 개념적 그림과 은유 자체에 있으며, 철학의 과제는 이러한 그릇된 인식 그 림(misleading picture)에서 비롯된 가짜 문제를 드러내는 데 있다. 본 논문 역시 기술과 AI를 둘러 싼 논쟁을 단순한 찬반이나 윤리적 규범의 문제로 환원하지 않고, 기술이 인간과 세계를 어떤 방식 으로 드러내느냐는 존재론적·인식론적 차원에서 재구성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접근을 공유한다. Nancy Murphy, “On The Role of Philosophy in Theology-Science Dialogue,” Theology and Science 1/1 (2003): 79-93.

     3) 생성형 AI가 인간의 창조행위와 번영에 미치는 영향을 철학적·신학적으로 분석한 최근의 연구로 Jonathan Lipps가 있다. Lipps는 마르틴 하이데거, 자크 엘룰, 알버트 보그만의 기술비판을 원용 하여 Gen AI를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재구성하는 기술 질서로 이해한다. 이 는 본 논문의 문제의식 및 기술분석과 중첩되는 지점이다. 다만 그의 논의가 주로 인간 번영과 창조 행위의 윤리적·신학적 함의에 초점을 둔다면, 본 논문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도, 기술이 인간 인식과 존재 이해를 어떻게 우상적 질서로 재편하는지를 존재론적, 인식론적 차원에서 분석한 다. Jonathan Lipps, “Philosophical and Theological Implications of Generative AI Use for Human Flourishing” (MA capstone project, Regent College, 2024). 

 

철학적 기술론의 원조 격인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99-1976)는 기술의 본질을 탈은폐의 양식이자 인간을 몰아세우는 게슈텔(Ge-stell)로 규 정함으로써 기술 담론을 인간 존재 이해의 문제로 전환했다.

막스 호르크하이머(Max Horkheimer, 1895-1973)와 헤르베르트 마르쿠제(Herbert Marcuse, 1898-1979)로 대변되는 프랑크푸르트학파는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성찰을 사회문화적 차원으로 확장하여, 기술 합리성이 인간의 욕망과 의식 속에 내면화됨으로써 비판적 초월성을 상실한 인간을 형성한다 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비판은 ‘기술이 어떻게 인간의 경험과 사 회적 삶을 재구성하는지’에 대한 분석에서 상대적으로 추상적인 한계를 지닌다.

이 지점에서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의 아우라개념은 기술복제가 인간의 단회성, 현존성, 그리고 관계적 거리를 어떻게 붕괴시키는지를 사유할 수 있는 중요한 매개를 제공한다.

AI-데이터 사회 로의 전환이 기술복제의 전면화라고 볼 때, 벤야민의 매체미학적 통찰은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기술비판의 공백을 메우며 인간 경험의 차원으로 심화시키는 논의로의 길을 열어 준다.

논문의 후반부에서는 이러한 철학적 기술비판을 신학적 우상비판으 로 전환한다. 세속적 비판이론에 머무는 기존의 기술비판과 달리,4) 본 논문은 개혁신학의 우상비판 전통―특히 칼빈과 바빙크―을 통해 기술 합리성이 수행하는 유사종교적 기능을 신학적으로 규명한다.

개혁신학에서 우상 비판은 외적 숭배 대상을 제거하라는 윤리적 요청이 아니라, 하나님 인식이 인간에 의해 통제 가능한 체제로 고정되는 인식론적·영적 왜곡 에 대한 근본적 비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AI 기술은 신과 동일시하지 않 으면서도 신적 기능을 비인격적이고 비책임적인 방식으로 수행하는 기능적 우상(functional idol)으로 규정할 수 있다.

본 논문의 목적은 하이데거와 프랑크푸르트학파, 벤야민에 이르는 철 학적 기술비판을 개혁신학의 우상론과 접목하여, AI 기술을 ‘기능적 우상 질서’로 해석할 수 있는 통합적 틀을 제시하는 데 있다.

이를 바탕으로 AI 시대의 인간 존재와 삶에 대한 논의를 기존의 윤리적이고 도구적인 담론 을 넘어 존재론적이고 신학적인 분별의 차원으로 확장하고자 한다.

기술 의 발전이 인간의 한계를 지워갈수록, 역설적으로 인간이 ‘누구 앞에 선 주체’인가를 묻는 신학적 질문은 더욱 선명해져야 하며, 본 논문은 바로 그 지점에서 AI 시대를 향한 신학적 응답을 시도할 것이다. 4)

신학에서 우상에 대한 비판은 대부분, 그리고 당연하게, 교리사적 맥락에서 다뤄져 왔고 이를 통해 윤리적·목회적 요청을 도출하는 어법이었다. 일부 현대 신학자들은 기술을 현대의 우상으로 규정 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논의는 종종 기술을 외적 대상이나 윤리적 위험으로 단순화하는 경향을 보인 다.

이런 흐름과 달리, 본 연구는 신학적 우상 비판을 현대 기술 체계에 대한 비판과 접목하여 인식 론적 내면화의 측면에서 고찰하려고 한다.

 

II. 철학적 기술비판: 마르틴 하이데거, 프랑크푸르트학파, 발터 벤야민

 

1.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기술론

 

1) 기술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

 

하이데거는 󰡔기술에 대한 물음』5)에서 “기술의 본질은 기술적인 것이 아니다(Das Wesen der Technik ist nichts Technisches)”라는 화두를 던 지며 존재론적 기술 사유를 시작한다.6)

이 명제는 기술을 가치중립적 수 단이나 인간이 통제하는 도구로 여기는 통상적 이해를 근본적으로 전복 한다.7)

그렇다면 하이데거는 기술의 본질이 무엇이라고 말하고자 하는 가?

하이데거에 따르면, 고대의 기술 개념인 테크네(τέχνη)는 어떤 것 을 “밖으로 끌어내어 앞에 내놓는(Her-vor-bringen)” 포이에시스(ποί ησις), 곧 제작이나 생성의 사건이었다.8)

 

     5) Martin Heidegger, Die Frage nach der Technik, in Vorträge und Aufsätze (Pfullingen: Günther Neske, 1954), GA 7. 이 원고는 1953년 11월 19일에 뮌헨에서 열린 ‘기술 시대의 예술’ 시리즈 강연의 일부로 발표된 강연 글로서 하이데거 기술론의 정본으로 여겨진다. 한편 후기 하이 데거의 사유에서 기술(Technik)은 ‘전향(Kehre)을 강제하는 역사적 극한 상황’으로 기술되는데, 이 는 1949년에 발표된 「Die Kehre」에서 전개된다. 이 두 편의 글은 하이데거 전집(Gesamtausgabe, GA)의 제7권 『강연과 논문(Vorträge und Aufsätze)』과 제79권: 『브레멘과 프라이부르크 강연 (Bremer und Freiburger Vorträge)』에 포함되어 있다. 본 연구는 두 편의 글을 함께 묶어서 Die Technik und die Kehre (기술과 전향)이란 제목으로 출판한 저작과 번역서를 인용한다. Martin Heidegger, Die Technik und die Kehre (1962), 이기상 역, 『기술과 전향』 (서울: 서광사, 1993). 이기상의 번역서는 독일어 원문과 번역을 병기한 대역 편집을 사용하였다. 이 논문에서 독일어 원문 은 병기된 자료를 사용하되, 한글 번역은 필요에 따라 이기상의 번역을 인용하거나 필자의 번역을 사용할 것이다.

    6) Heidegger, 『기술과 전향』, 14. (필자의 강조). 원문은 “So ist denn auch das Wesen der Technik ganz und gar nichts Technisches”이다. 이 표현은 하이데거가 쓴 명제를 명료하게 축 약한 것이다.

    7) Heidegger, 『기술과 전향』, 17-21.

    8) Heidegger, 『기술과 전향』, 30-31.

 

여기서 핵심은 만드는 행위나 수단 자체가 아니라, 존재자9)가 드러나는 탈은폐(Entbergung)의 방 식에 있다.

“기술은 탈은폐의 한 양식이다(Technik ist eine Weise des Entbergens).”10)

이 지점에서 하이데거 기술철학의 존재론적 전환이 드러 난다.

하이데거는 은폐된 존재자를 탈은폐하여 망각의 베일을 벗겨내는 것을 진리(ἀλήθεια)라고 부른다.11)

진리를 ‘정합’이나 ‘판정’이 아니 라, 은폐가 걷히는 사건으로 파악하는 이 구상은 서구 형이상학에 대 한 그의 비판과 맞물려 있다.

그는 전통 형이상학이 궁극적인 존재(이데 아, 제일원인, 하나님, 이성 등)를 추구하는 데 몰두하는 동안, 정작 사 물이 인간에게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망각했다고 보고, 이를 ‘존재 망각 (Seinsvergessenheit)’이라고 불렀다.12)

돌, 나무, 인간, 제도 등 실제로 있 는 ‘존재자(Seiende)’와 ‘있음’으로 이해되고 경험되고 말해질 수 있게 하 는 의미 지평으로서의 ‘존재(Sein)’는 엄연히 구별해야 하는 ‘존재론적 차 이’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형이상학은 둘의 근본적 차이를 섞어버 림으로써 “이 차이가 속해 있는 시간적 실존으로서의 인간 존재의 본질을 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13)

 

     9) 하이데거에게 존재자(Seienes)는 주변에 있는 꽃, 돌, 책상, 인간 등 ‘있는 것들’ 전체를 가리킨다.

    10) Heidegger, 『기술과 전향』, 34-35. (필자의 강조)

    11) 그리스어 알레테이아(ἀλήθεια)는 부정 접두어 ἀ에 ‘망각’이나 ‘숨김’을 뜻하는 λήθε가 결합한 단 어이다. 하이데거는 이 어원에서 영감을 얻어 진리를 ‘탈은폐’라고 칭한다.

     12) 존재 망각, 존재와 존재자의 차이 등의 개념은 1930년을 전후로 사상적 형태를 갖춘 하이데거의 전 기 저술에서 등장한다. Martin Heidegger, Die Grundprobleme der Phänomenologie (1927), 이기상 역, 『현상학의 근본문제들』 (서울: 문예출판사, 1994); Einführung in die Metaphysik (1935), 최동희 역,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 (서울: 서문당, 1999)를 참고하라.

     13) 신상희, 『하이데거와 신』 (서울: 철학과현실사, 2007), 130. 

 

이에 반해 하이데거는 존재와 존재자를 엄격 히 구별하는 ‘존재론적 차이’를 강조하며, 존재를 고정된 의미나 계측 가 능한 질서로 환원하는 존재 망각을 극복하는 사유를 시도한다.

‘기술의 본질은 기술적인 것이 아니다’라는 하이데거 기술철학의 기본 명제는 바로 존재-존재자 구별을 기술 문제에 응용하고 심화한 것이다.

기술은 인간이 세계에서 만나는 존재자들―폭포와 강, 산과 나무, 동식물과 인간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드러나는가를 규정한다는 점에서 단순히 기술적인 게 아니다.

 

2) 게슈텔로서의 기술

 

하이데거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의 수공업 기술의 탈은폐 방식인 포이에시스는 현대에 들어 전혀 다른 형태로 변형되었다.

그는 현대 기술의 탈은폐 방식을 ‘게슈텔’(Ge-stell, 몰아세움 또는 닦달함)이라고 부른다.

 

“현 대 기술의 본질은 게슈텔 안에 자리하고 있다(Das Wesen der modernen Technik beruht im Ge-stell).”14)

 

하이데거의 정의에 의하면, 게슈텔이란 “인간을 세우는, 즉 몰아세우 는 ‘세움’의 집체”를 가리키는데 이는 “실제적인 것을 주문의 방식에 따라 ‘부품(Bestand)’으로 탈은폐하도록 촉구하는 것”이다.15)

 

     14) Heidegger, 『기술과 전향』, 68. (필자의 강조). ‘세우다’는 의미의 동사 ‘stellen’에 ‘모으다’는 뜻의 접두사 ‘Ge-’를 붙여 만드는 이 용어는 현대 기술이 자연을 단순히 기능적으로 사용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인간이 원하는 대로 ‘배치하기 위해 몰아세운다’라는 점을 강조한다.

      15) Heidegger, 『기술과 전향』, 54. “Ge-stell heißt das Versammelnde jenes Stellens, das den Menschen stellt, d. h. herausfordert, das Wirkliche in der Weise des Bestellens als Bestand zu entbergen.” (필자의 번역). 

 

현대의 첨단 기술 은 자연에 숨겨진 에너지를 채굴하고, 변형하고, 저장하고, 분배하고, 전 환하는 과정을 통해 자연을 ‘자원’으로 규정하고 재구성한다.

그 결과 자 연과 사물은 그 자체의 고유한 존재 방식이 아니라, 획일적이고 기능적인 방식, 곧 에너지원, 원료, 창고, 관광과 휴양의 대상 등으로서의 ‘자원’으 로만 드러난다.

하이데거는 유명한 라인강의 사례를 통해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기술 시대 이전에 라인강은 그 자체로 고유한 존재감을 지닌 대상으로 - 예컨대 횔덜린(Hölderlin)의 시에서 - 경외감의 대상이자 신성한 풍경으로 드러 날 수 있었다.

인간은 라인강의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그로 인해 라인강은 ‘풍경’이나 ‘고향’이라는 진리로 탈은폐되었다.

그러나 현대 기술이 도입된 뒤 라인강은 수력발전소가 전기 에너지를 생산하 기 위한 ‘자원’으로서만 탈은폐된다.

강은 더는 강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발전소의 요구에 맞추어 재구성된 방식으로 존재한다.16)

이렇듯 게슈텔은 존재자의 본질 방식을 이전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규 정한다.

즉, 존재자들은 현대사회의 요청에 따라 언제든지 부품으로 신속 하게 탈은폐되어 공급되고 소비될 수 있게 존립하게 된 것이다.

이런 변형 은 자연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게슈텔은 인간의 인식 자체를 규정하는 거 대한 틀이기에 인간 또한 그 강압적 질서에 포섭된 존재자일 뿐이다.17)

 

    16) Heidegger, 『기술과 전향』, 43.

    17) Heidegger, 『기술과 전향』, 65.   

 

기 술시대의 인간도 세계를 해석하는 주체라는 자신의 환상과 달리, 계산· 관리·최적화의 과정에 편입된 기능적 요소 - 산업자원, 노동력, 인적자원 - 로 재구성된 부품일 뿐이다.

 

3) 위험(Gefahr)과 전향(Kehre)

 

게슈텔로서의 기술이 위험한 까닭은 그것이 인간이 만들고 선택하고 통제하는 장치가 아니라, 하이데거가 ‘역운’(Geschick)이라 부른 역사적 운명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18)

 

“탈은폐의 역운은 어떠한 방식에서든 필 연적으로 위험하다(Das Geschick der Entbergung ist als solches in jeder seiner Weisen und darum notwendig Gefahr).”19)

 

     18) Heidegger, 『기술과 전향』, 65-67. 후기 하이데거에게 존재는 시간적이고 역사적인 현존재 (Dasein)에게 자신을 개시하며 그때마다 역사적인 시대를 여는 것으로 나타난다. 박찬국은 이를 “하이데거에게 존재는 자신을 그때마다 다르게 보내는 역사적인 운명(Geschick)으로 존재한다.… 시간은 존재에서 비롯되고 시간과 시간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존재로부터 이해되고 의미를 갖 게 된다.”라고 해설한다. 박찬국, 『하이데거 읽기』 (서울: 세창미디어, 2014), 187-188.

      19) Heidegger, 『기술과 전향』, 65. 저자의 강조 

 

 

왜냐하면, 역운으로서 기술시대는 인간이 통제할 수 없지만 인간 삶의 필수적 맥락을 형성하고 인간의 이해와 삶을 근본적으로 조건 짓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 거대하고 초인간적인 차원의 역사적 질서에 보내질 뿐이다.

하이데거가 보기에 기술의 진정한 위험은 기술적 재앙이나 윤리적 오 용 자체에 있지 않다. 더 근본적인 위험은 그것이 일으키는 ‘존재의 망각’ 에 도사린다.20)

즉, 게슈텔은 인간을 탈은폐의 다른 모든 가능성이 차단되 는 세계로 몰아간다. 모든 존재자를 ‘부품’으로만 보는 시각이 압도적으로 지배하게 되면, 존재 자체의 신비와 다의성을 경험하게 하는 다른 모든 방 식은 비효율적이거나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되어 사라질 수밖에 없다.

세 계가 오직 하나의 방식, 즉 기술적·계산적·효율적 방식으로만 드러나게 될 때, 존재 이해의 다른 가능성 자체가 봉쇄되는 것이다. 이 인식론적 단 일화는 기술적 파괴보다 더 치명적이며, 특히 위험이 위험으로 인식되지 않을 때 그 폐해는 극대화된다.

하이데거의 경고는, 인간은 자신이 기술의 흐름에 밀려 ‘도구’나 ‘부품’ 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한 채 오히려 자신이 기술을 지배하는 주 체라고 믿는 자기기만의 역설에서 정점에 이른다.

그가 게슈텔의 불가항 력을 인정하라고 조언하는 것은 바로 이 역설을 깨뜨리기 위해서이다.

그 래야만, ‘기술’이라는 역운에 철저히 지배당하는 존재임에도 스스로가 기 술을 지배하는 주체라고 믿는 오만이 꺾일 수 있고, 그래야만, 역설적으로 자신이 부품으로 전락했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는 가장 큰 위험을 피할 가 능성이 열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이데거의 사유는 위험의 진단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후 기 사유에서 “존재의 망각이 존재의 본질의 참됨에로 오는” 전향(Kehre) 을 말하며 희망의 가능성을 모색한다.21)

 

     20) 하이데거는 현대인의 가장 치명적인 질병이 ‘존재 망각’이라고 봤다. 현대인이 맹목적인 지배욕과 탐욕에 사로잡힌 것도 존재 망각에 의한 존재 상실에서 비롯되는 공허감과 불안의 결과라고 그는 분석한다. 후기 하이데거 철학은 서양의 역사에서 어떻게 존재 망각이 진행되었는지를 성찰하여 현대인의 지배욕과 우상숭배와 자기기만을 극복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박찬국, 『하이데거 읽기』, 205-206.

     21) Heidegger, 『기술과 전향』, 113.

 

하이데거의 전향은 기계를 부수 고 기술을 거부하는 러다이트(Luddite) 운동을 의미하지 않는다.

설령 특 정한 기술을 부수더라도 인간의 내면이 ‘효율성’과 ‘지배’라는 기술적 역운에 잠식되고 있는 한, 인간은 또 다른 형태의 기술적 틀을 만들어낼 것 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단순히 관점의 변경이나 사유의 전환도 아니 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기술(게슈텔)로 인해 존재 자체가 완전히 은폐될 위험이 극에 달할 때, 그 위험 자체가 전향의 기회이고 구원의 힘이 될 수 있다.22)

“위험이 있는 곳에는 그러나 구원의 힘도 함께 자라네(Wo aber Gefahr ist, wächst Das Rettende auch)”라는 시구처럼,23) ‘필연적으로 위 험한’ 기술은 존재 망각의 극점이지만 동시에 존재가 다른 방식으로 자신 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한계 상황으로 작용하며, 바로 이 지점에서 전향의 가능성이 열린다는 것이다.24)

이 전향은 번개의 섬광처럼 매개 없이 갑자기 일어나기에, 하이데거는 이를 “존재하고 있는 것에로의 일별(Einblick in das was ist)”이라고 부른 다.25)

비록 전향이 인간의 노력만으로 성취될 수 없더라도, 최소한 전향의 틈은 인간이 게슈텔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자신이 그 거대한 역운 속에 갇 혀있음을 자각하는 데서 열린다.

그러한 자각은 비록 기술적 장치를 사용 하더라도 그것이 인간의 내면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거리를 두는 초연한 태도와도 연관된다. 또한 기술의 사고틀이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라 역운 의 ‘하나의’ 방식임을 깨닫고, 탈은폐의 다양하고 다각적인 방식 - 하이데 거가 특별히 강조한 예술적 사유26) - 을 회복하도록 촉구한다.

하이데거가 ‘에라이그니스(Ereignis)’27)라고 부른 ‘전향 이후의 사유 지평’은, 게슈텔 속에서 부품으로 전락했던 사물이 그 자체의 고유함을 되찾 는 사건이며, 존재가 인간을 일방적으로 몰아세우는 게슈텔 관계가 종결 되고 인간과 존재가 서로에게 고유해지고 귀속되는 지평을 가리킨다.

 

     22) Heidegger, 『기술과 전향』, 115.

     23) Heidegger, 『기술과 전향』, 96-97, 114-115. 24) Heidegger, 『기술과 전향』, 111-113.

     25) Heidegger, 『기술과 전향』, 122-123.

     26) Heidegger, 『기술과 전향』, 99.

     27) Heidegger, 『기술과 전향』, 130-131. 하이데거 철학의 중심개념 중 하나인 Ereignis는 어원 상 사건이나 행사를 뜻하지만, 그보다 훨씬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의미를 거느리고 있다. 하이데 거의 한글 번역서에서 이 용어는 ‘사건’(event)이나 ‘일어남’/‘생기’(occurring) 또는 ‘고유화’ (appropriation)나 ‘전유’(appropriating) 등으로 소개되고 있다. 사건이나 생기와 같은 번역이 ‘존재가 일어나는 역동성’을 강조한다면, 고유화나 전유는 사물의 고유함과 인간과 존재의 상호귀속을 부각한다. 

 

2. 기술비판의 사회문화이론으로의 확장: 프랑크푸르트학파28)

 

하이데거가 기술을 게슈텔이라는 인식의 틀로 해명했다면, 프랑크푸 르트학파는 그 틀이 사회적 합리성으로 제도화되어 개인의 의식과 욕망을 조직하는 방식을 분석한다.

특히 호르크하이머와 마르쿠제는 기술을 사 회 전체를 관통하는 합리성의 원리로 파악함으로써,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기술비판을 자본주의와 대중문화에 대한 사회문화적 비판으로 전환한다.

 

1) 막스 호르크하이머의 도구적 이성 비판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실질적인 수장이었던 막스 호르크하이머는 하이 데거의 게슈텔 개념을 사회적·역사적 차원에서 구체화한다.

그는 󰡔도구 적 이성 비판󰡕에서 근대 이후 인간의 이성이 진리와 선을 탐구하고 분별 하는 ‘가치-목적적’ 기능을 상실하고, 수단과 효율을 극대화하는 ‘기술적’ 기능으로 축소되었다고 비판한다.29)

호르크하이머에 따르면, 서구 지성사의 결정적 전환은 ‘객관적 이성’ 에서 ‘주관적 이성’으로의 전이에서 일어났다.30)

 

     28) 프랑크푸르트학파(Frankfurter Schule)는 192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교에 설립된 사회연구 소(Institut für Sozialforschung)를 중심으로 형성된 비판적 사회철학 전통이다. 이들은 근대 이 성과 계몽이 해방이 아니라 지배의 형태로 전환된 과정을 분석하여 도구적 이성, 문화산업, 기술사 회 비판을 도출했으며, 이를 통해 자본주의 근대의 사회·문화적 억압 구조를 해명하고자 했다. 제 1세대는 막스 호르크하이머, 테오도어 W. 아도르노,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등으로 대표되며, 주로 기술적 합리성과 문화산업을 중심으로 근대 사회의 지배 논리를 비판했다. 이후 위르겐 하버마스 를 중심으로 하는 후속세대는 의사소통 이성, 공론장, 규범적 합리성의 가능성을 모색하며 비판이론을 재정식화했다.

     29) Max Horkheimer, Zur Kritik der Instrumentellen Vernunft (1967), 박구용 역, 『도구적 이성 비판』 (서울: 문예출판사, 2006).

     30) Horkheimer, 『도구적 이성 비판』, 17. 

 

객관적 이성이 존재와 세 계의 질서, 선과 목적을 사유하던 능력이었다면, 주관적 이성은 목적 자체 를 묻지 않은 채 주어진 목표를 가장 효율적으로 달성하는 계산 능력이다.

서양 지성사는 오랫동안 ‘객관적 이성의 역사’였는데, 근대에 와서 이성은 “자신의 고유한 객관적 내용을 폐기하는 경향”을 드러내고 점차 주관화되 었고 형식화되었다.31)

자율을 포기하고 도구로 전락한 이성은 사회적 과 정으로 종속되었고, 그 과정에서 합리성은 더 이상 진리나 정의의 기준이 아니라 지배와 조작의 도구가 된 것이다.32)

도구적 이성으로의 전이는 사유를 탈인간화하여 지배 질서에 구조화 하고, 예술을 비롯한 인간 활동에서 비롯된 모든 생산물을 상품으로 사물 화한다.

호르크하이머에 따르면, “한때는 객관적 이성을 통해, 권위적 종 교를 통해, 또는 형이상학을 통해 수행되었던 기능들이 익명의 경제적 장 치가 움직이는 메커니즘의 사물화를 통해 수행된다.”33)

도구적 이성은 기 술과 결합하여 자연과 인간을 지배 가능한 대상으로 전환하며, 이에 따라 인간은 사물화의 사회적 과정으로서의 지배 질서에 자신을 순응시키고 합리화한다.34)

 

    31) Horkheimer, 『도구적 이성 비판』, 26-29.

    32) Horkheimer, 『도구적 이성 비판』, 40-41.

    33) Horkheimer, 『도구적 이성 비판』, 65.

    34) Horkheimer, 『도구적 이성 비판』, 215. 

 

도구적 이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인간의 고유성과 개별성 은 몰락하고, 개인은 현대의 기술문명에 기능적으로 반응하는 단순한 세 포 혹은 부품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 지점에서 하이데거가 존재론적 으로 분석한 ‘탈은폐의 단일화’는 호르크하이머에게서 ‘합리성의 사회적 형태’로 구현된다.

호르크하이머의 분석에서 기술은 특정 영역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사고 양식과 가치 판단을 규정하는 기준이 된다.

이러한 도구적 이성의 구조는 오늘날 AI 기술을 통해 더욱 강력하게 형 성되고 있다.

인간이 자연과 사물을 기계처럼 다룬 결과, 인간 자신의 몸 과 사고마저 도구적 이성의 극단적 형태인 알고리즘과 데이터 처리의 질 서에 종속시키고 내면화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AI-데이터 사회는 디지털 화된 도구적 이성이 전면화한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회에서 인간의 이성은 고유한 의미를 산출하는 능력으로 존중받기보다, 예측과 최적화를 위한 자원으로 환원되어 최종적으로 빅데이터로 흡수된다.

이런 세계에 서 모든 것을 규정하는 단 하나의 척도는 ‘유용성과 효율’이며, 이것이야 말로 하이데거가 게슈텔의 위험으로 경고한 ‘단일한 탈은폐의 방식’이다.

 

2) 헤르베르트 마르쿠제의 기술적 합리성과 일차원적 인간

 

프랑크푸르트학파 가운데 기술사회를 가장 급진적으로 비판한 인물은 헤르베르트 마르쿠제이다.

호르크하이머가 도구적 이성이 사회적 합리성 으로 제도화되는 과정을 해명했다면, 마르쿠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러 한 지배가 왜, 그리고 어떻게, 개인의 욕망과 의식 내부에서 자발적으로 수용되고 재생산되는지를 문제 삼는다.

다시 말해서, 호르크하이머의 분 석이 주로 생산 관계의 사회화와 이성 개념의 변질이라는 구조적 차원에 머물렀다면, 마르쿠제는 자아 형성의 심층, 곧 욕망과 의식의 차원으로 비 판의 초점을 이동시킨다.35)

마르쿠제는 󰡔일차원적 인간󰡕에서 도구적 이성이 외적 강제가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의식 내부로 어떻게 침투하고 내면화되는지를 치밀하게 분석함으로써, 현대 산업사회의 지배 메커니즘을 한층 더 급진적으로 해 부한다.36)

 

     35) 문성훈, “호르크하이머: 자유와 이성의 실현을 위한 사회 비판,” in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테제들』, 연구모임 사회비판과대안 편 (서울: 사월의책, 2012), 35-39.

     36) Herbert Marcuse, One-Dimensional Man: Studies in the Ideology of Advanced Industrial Society (1964), 박병진 역, 『일차원적 인간: 선진 산업사회의 이데올로기 연구』 (서울: 한마음사, 2009).

 

그의 기본명제는 고도로 발달한 산업사회가 기술을 매개로 인 간을 규제하며, 그 결과 ‘일차원적 인간’과 ‘일차원적 사회’를 산출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기술화한 자본주의 사회는 단순히 기술을 활용하는 사 회가 아니라, “기술의 개념과 구조 안에서 작용하는 하나의 지배체제”이며, 그 기술적 방법 자체가 사회 전반을 억압적인 전체주의적 방향으로 조 직하는 경향을 지닌다.37)

마르쿠제가 이러한 사회적 통제의 보편적 형태를 지칭하기 위해 사용 하는 핵심 개념은 ‘기술적 합리성(technological rationality)’이다.

기술적 합리성은 단순히 효율성의 논리가 아니라, “더 좋은 지배를 위한 전체주 의적인 정치성의 매체”로 기능한다.38)

그에 따르면, 공장 자동화, 수명 연 장, 생활 수준의 향상과 같은 고도산업사회의 편리성과 생산성은 기술적 합리성이라는 명분 아래 인간지배를 정당화한다.39)

이 과정에서 전근대 사회에서의 주인과 노예, 영주와 농노 사이의 인격적 종속관계는 점차 해 체되고, 그 자리를 경제법칙이나 시장과 같은 “사물의 객관적 질서”에 대 한 비인격적인 종속관계가 대체한다.40)

 

    

 

이런 기술적 합리성에 의한 지배 관계는 타율적이 아니라 자발적인 특징을 지닌다. 비약적으로 증대된 생 산성이 가져다준 높은 생활 수준이 “가장 파괴적이고 억압적인 특징까지 정당화하고 면책하는 정신과 행동 패턴”, 곧 체제 순응주의를 낳기 때문 이다.41)

 

   37) Marcuse, 『일차원적 인간』, 42, 49, 54. 마르쿠제는 휴머니즘적 마르크스주의를 기반으로 진정한 인간 해방을 지향하는 정치적 급진주의자였지만, 1930년대 망명 이후 그가 직접 경험한 미국 사회 의 현실은 그의 이상과 크게 괴리되어 있었다. 1964년에 출간된 『일차원적 인간』에서 그가 비판하 는 ‘선진산업사회’(advanced industrial society)는 고도 산업화, 대량소비사회, 복지국가적 안정, 이념적 갈등의 약화, 노동계급의 체제 통합, 기술적 합리성의 전면화라는 조건을 가장 전형적으로 충족한 1960년대 미국 사회에 대한 비관적 시대 인식이 집약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38) Marcuse, 『일차원적 인간』, 65.

    39) Marcuse, 『일차원적 인간』, 132-133.

    40) Marcuse, 『일차원적 인간』, 195. 41) Marcuse, 『일차원적 인간』, 197. 

 

여기서 마르쿠제의 비판적 시선은 외적 억압을 넘어 인간의 욕망과 의 식 내부로 향한다.

도대체 왜 사람들은 자신들의 자유와 자율을 억압하고 물상화하는 기술적 합리성을 용납하는가? 그 이유는 기술이 가져다준 편 리와 풍요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기술 덕분에 선진산업사회는 해방을 지 향하는 인간의 욕구를 효과적으로 억제하면서도 풍요로운 사회의 억압적이고 파괴적인 기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풍요로운 기술사회에서 개 인은 자신을 하나의 상품으로 인식하며, 자신의 정체성과 만족을 TV, 세 탁기, 자동차, 하이파이 스테레오, 복층 주택과 가전제품과 같은 소비재 속에서 찾는다 그 결과 선진산업사회에서 인간은 진정한 개인이 될 자유 를 박탈당하고, 기술적으로 가장 발전한 사회가 오히려 가장 심각한 억압 을 은폐하는 역설이 발생한다. 선진산업사회의 상품과 서비스, 정보와 오락에 깊이 젖어 든 사람들 은 특정하게 형성된 태도와 습관, 반응 양식을 보이는데, 마르쿠제는 이를 “일차원적인 사고와 행동 패턴”이라고 부른다.42)

생산성과 효율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 곧 일차원적 사회에서 사람들의 비판적 의식은 점차 소멸 하고 체제 순응적 태도가 만연하게 되는데, 여기에 적응하고 순응한 인간 이 바로 ‘일차원적 인간’이다. 이 사회에서는 효율성과 생산성만이 유일한 가치로 인정되며, 비판적이거나 저항적인 태도는 비효율적인 것으로 배 제된다. 그 결과 인간은 기술 질서를 비판적으로 초월할 수 있는 상상력을 상실하고, 주어진 현실을 유일한 가능성으로 받아들이게 된다.43)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선진산업사회의 기술적 지배가 외적 강제에만 의존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일차원적 인간의 거짓된 욕구는 사회적 이해관계, 정치, 대중매체의 조직적 조장을 통해 개인에게 주입되 지만, 동시에 그것이 개인 자신의 욕구로 내면화되어 자발적으로 재생산 된다.44)

 

    42) Marcuse, 『일차원적 인간』, 59.

    43) 이러한 마르쿠제의 진단에 대해, 『일차원적 인간』이 현대 대중을 자아나 내적 삶이 철저히 통제된 존재로 단정함으로써 엘리트주의적 경멸을 투사한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대중이 대중문 화, 소비주의, 배금주의에 점점 더 깊이 매몰되고 창조적 활동이나 사회 변혁에 관한 관심에서 멀 어지는 오늘날의 현실을 고려할 때, 마르쿠제의 분석은 오히려 그의 비판자들보다 더 설득력 있 게 다가온다. 이 논쟁에 대한 개괄로는, Stuart Jeffries, Grand Hotel Abyss: The Lives of the Frankfurt School, 강수영 역,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삶과 죽음: 21세기 비판이론』 (고양: 인간사 랑, 2019), 436-437을 참조하라.

     44) Marcuse, 『일차원적 인간』, 56-57.

 

기술의 지배는 ‘강제되는 것’이기보다 오히려 ‘원해지는 것’의 형 태로 작동한다.45)

마르쿠제에게 인간의 욕망과 의식 내부로 내면화된 기 술적 합리성이 촉진하는 일차원적 사회로의 진전은 사람들이 억압적 질 서로의 종속을 오히려 원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같은 역설적 현 실이다.

기술적 합리성이 지배하는 선진산업사회는 합리적인 것과 비합 리적인 것, 의미와 무의미, 현실과 가상이 뒤섞이고 전도되는 “추잡한 융 합”이 일어나는 세계라고, 그는 묘사한다.46)

 

     45) 이 점에서 오늘날 플랫폼 권력의 작동방식은 마르쿠제의 분석을 생생하게 재현한다. 2024년 8월 미국 연방법원은 전 세계 검색 및 플랫폼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한 구글에 대해 독점 기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대해 구글 측은 항소하면서, “사람들이 강요당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원해서 구글을 이용한다는 사실을 외면했다”라는 점을 핵심 논거로 제시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기 술적 지배가 자발적 선택의 형식을 취한다는 점에서 마르쿠제의 통찰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김은 성, “구글 ‘다들 스스로 원해서 구글 쓰는 것’…미 법원 반독점 판결에 항소,” 「경향신문」, 2026년 1월 17일. https://n.news.naver.com/article/032/0003422097 (2026.1.17. 접속).

     46) Marcuse, 『일차원적 인간』, 301-302. 이러한 묘사에는 자본주의 생산양식 자체를 비판하는 마르 쿠제의 급진적 비판의식이 농축되어 있으며, 그 급진성 때문에 그는 종종 기술과 문명 자체에 적대 적인 반문명적 저항자나 급진주의 운동의 대변자로 오해받기도 한다. 손철성, “마르쿠제: 일차원적 사회, 유토피아적 상상력, 인간 해방,” in 연구모임 사회비판과대안 편,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테제 들』 (서울: 사월의책, 2012), 168-69. 

 

바로 이 지점에서 마르쿠제의 기술사회 비판은 다음 장에서 다룰 신학 적 우상 비판과의 중요한 접점을 형성한다.

우상이 초월적 실재를 대체하 거나 가시화된 사물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라면, 마르쿠제가 분 석한 기술적 합리성은 현대사회에서 기능적·세속적 형태로 재구성된 우 상이라 할 수 있다.

특히 AI 기술이 인간의 욕망, 합리성, 더 나은 삶의 기 준을 규정하는 규범적 권위로 작동할 때, 기술은 인간이 신뢰하고 의존하 며 삶의 의미를 위탁하는 기계적 우상으로 전화(轉化)될 위험을 내포한 다.

인간의 욕망은 기술의 지배에 저항하기보다 자발적으로 종속하고 헌 신하는 행태를 낳을 수 있다.

설령 인간이 기술을 숭배한다고 자각하지 않 더라도, 기술이 제공하는 효율성과 안전, 풍요와 편리를 통해 자신의 불안 과 결핍이 해소된다는 효능감에 취한다면 기술 질서에 대한 근본적인 질 문은 자기 안에서 차단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일차원적 사회의 기술적 합리성은, 초월을 상실한 시대에 인간의 욕망과 상상력을 조작하는 가장 강력한 우상적 질서로 탈바꿈할 수 있다.

 

3. 기술복제와 인간성의 변형: 발터 벤야민의 ‘아우라의 붕괴’

 

프랑크푸르트학파는 기술이 인간 존재와 사회를 재구성하는 메커니즘 임을 비판적으로 드러냈다.

그러나 그들의 분석은 여전히 존엄이나 현존 과 같은 인간 경험의 질적 차원을 충분히 해명하지 못하였다.

이런 이론적 공백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매체미학의 선구자인 발터 벤야민의 󰡔기술복 제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전개된 통찰이 요청된다.47)

 

    47) Walter Benjamin, Das Kunstwerk im Zeitalter seiner technischen Reproduzierbarkeit (1935/36), 최성만 역,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사진의 작은 역사 외』 (서울: 길, 2007). 

 

이 고전적인 텍스트 에서 벤야민은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기술비판을 인간 경험과 지각의 변 형이라는 인간론적 차원으로 매개할 수 있는 독보적인 사유를 제시한다.

 

1) 아우라(Aura)의 개념: 단회성, 거리, 현존

 

벤야민의 테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아우라(Aura)’ 개념을 파악 해야 한다.

그는 아우라를 “공간과 시간으로 짜인 특이한 직물로서, 아무리 가까이 있더라도 멀리 떨어져 있는 어떤 것의 일회적인 현상”이라고 정의한다.48)

이 정의에 따르면 아우라는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첫째, 시간적·공간적 현존성(지금-여기);

  둘째, 소유나 조작 또는 소비로 환원 되지 않는 간극(間隙)으로서의 거리;

  셋째, 반복 불가능한 유일성, 곧 단회 성이다.

아우라는 사물이 지닌 대체 불가능한 고유성과 신성함, 그리고 거 기에 깃든 존재감을 가리킨다.

이런 의미에서 예술작품의 아우라는 진품이 지닌 “그것 자체로서 다른 어떤 것일 수 없는 정체성”이다.49)

 

    48) Benjamin,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50.

    49) Benjamin,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45.

 

벤야민에 따르면, 예술작품의 아우라는 신상이나 벽화의 형태로 주 술적·종교적 의식과 결합하면서 은밀성, 진지함, 엄격성을 지니고 있었 다.50)

 

    50) Benjamin,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50. 

 

이러한 의례적 전통은 시간 속에서 축적된 의미의 층위라는 점에서, 예술작품의 아우라는 그것이 특정한 장소와 역사, 의례적 맥락 속에 ‘놓여 있음’으로 창출된다.

이 점에서 벤야민의 아우라 개념은 하이데거가 말한 존재자의 ‘그 자체로의 드러남’과 상응한다.

아우라의 존재적 고유성으로 인해, 아우라가 유지되는 사물은 즉각적 소비나 기능적 활용으로 환원되 기 어렵다.

벤야민은 아우라 개념을 미적 범주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아우라는 인 간과 사물,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대상화되기 이전에 유지하던 ‘긴장 과 존중의 구조’ 자체를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아우라는 세계가 전면적으로 가용성과 지배의 질서에 포섭되기 이전, 타자가 타자로서 머물 수 있었 던 관계의 조건을 드러낸다.

 

2) 기술복제의 본질: 사물의 복제가 아닌 지각의 재구성

 

예술작품의 아우라적 존재 방식은 사진이나 영화와 같은 20세기 초반 의 기술복제 매체의 대중화와 함께 근본적인 변화를 맞이한다. 벤야민이 말하는 기술복제(technische Reproduzierbarkeit)란 기계적·기술적 수단 에 의해 원본과 동일한 복제물을 무한히 생산할 수 있는 조건을 의미한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예술작품은 그것이 놓여 있던 의례적 맥락에서 분리 되면서 그것이 지녔던 제의 가치가 전시 가치로, 진지함이 유희로, 엄격함 이 비구속성으로, 그리고 만남(Gegenüber)51)이 접근/조작 가능성으로 급 격히 전환된다.52)

 

     51) 독일어 Gegenüber는 일상적으로는 ‘마주함’, ‘맞은편에 있음’을 뜻하지만, 벤야민의 맥락에서는 가깝지만 도달 불가능한 ‘거리’에서 나와 관계를 맺지만 결코 나에게 흡수되지 않는 타자로 서 있 는 관계, 즉 아우라적 만남을 의미한다.

    52) Benjamin,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53-58. 

 

결국 기술복제는 예술의 일회적이고 영원한 가치, 즉 아우라를 박탈하 고 해체한다.53)

벤야민은 사진과 영화를 기술복제의 대표적인 사례로 제 시하지만, 그중에서도 영화가 수행하는 아우라 탈각의 효과가 훨씬 더 급 진적이라고 평가한다.

사진은 예술작품이라는 결과를 복제하는 데 그치 지만, 영화는 예술의 생산과정 전체를 기술적으로 조직하고 복제하기 때 문이다.54)

영화배우는 자신의 인격 전체를 투입하지만, ‘지금-여기’와 결 부된 고유한 인격의 아우라는 포기한 채 연기해야 한다. 영화 속에서 인간 의 아우라는 소거되어 더는 발견되지 않는다.55)

중요한 점은 기술복제의 본질이 예술작품을 단순히 ‘복사’한다는 데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기술복제는 인간의 근원적인 욕구를 만족시킨다.

벤야민은 두 가지 욕구를 지적한다. 하나는, 사물을 자신에게 가능한 한 “가까이 끌어오려는” 욕구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주어진 것의 일회성을 그것의 복제를 수용함으로써 극복하려는” 욕구이다.56)

이는 사물뿐만 아 니라 작가나 배우, 지도층과 같은 권위적 인물이 지닌 거리(특권적 위치) 를 붕괴시켜 ‘나도 그 자리에 설 수 있다’라는 참여와 재현의 욕구와도 연 관된다.

기술복제는 아우라가 부여하던 거리와 특권을 해체함으로써 그 러한 욕구의 충족이 가능케 한다. 즉, 인쇄술이 독자와 작가 사이의 거리 를 허물어 누구나 언제든지 필자가 될 가능성을 열어 주었듯이, 영화 역 시 누구나 화면에 등장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 것이다.57)

더 나아가, “예 술작품의 기술적 복제 가능성은 예술 자체의 가치뿐만 아니라, 예술의 기 능과 예술을 대하는 대중의 감응 방식도 변화시켰다.”58)

 

     53) Benjamin,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62.

     54) Benjamin,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65.

     55) Benjamin,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69. 이런 의미에서 벤야민은 영화가 기술복제의 예술인 반면, 연극은 아우라의 예술이라고 대조한다.

    56) Benjamin,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50.

    57) Benjamin,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76.

    58) Benjamin,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80.

 

아우라를 지닌 예술이 집중과 긴장을 요구한다면, 기술복제의 산물인 영상매체는 정신분산(유희)과 습관적인 익숙함 속에서 지각된다.59)

그런 점에서 복제기술의 가장 결정적인 영향은 ‘지각의 구조와 방식 자체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60)

벤야민은 이를 다음과 같이 정식화한다.

비교적 큰 규모의 역사적 시공간 내부에서 인간 집단들의 전 존재방식과 더 불어 그들의 지각의 종류와 방식도 변화한다.

인간의 지각이 조직되는 종류 와 방식 - 즉 인간의 지각이 조직화되는 매체 - 은 자연적으로뿐만 아니라 역 사적으로 조건 지어져 있다.61)

 

  59) 박물관에서 명화를 대면하는 태도와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태도의 차이를 떠올려보라. 오늘날 디지털 기술은 예술을 넘어 삶의 거의 모든 요소를 ‘밈’(meme)으로 전환하여 놀이와 여가, 심지어 조롱의 대상으로까지 전환한다.

   60) Benjamin,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92.

   61) Benjamin,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48.

 

현대는 인간이 세계를 자연적 시각으로 인식하지 않고 매체를 통해 바 라보는 시대이다.

매체는 실제 세계에 대한 재현이자 복제이기에, 그 자체 로 인간의 인식방식과 지각구조 전반에 영향을 미치며, 더 나아가 인간의 본질 이해 자체를 변화시킨다.

 

3) 아우라의 붕괴

 

벤야민의 핵심 테제인 ‘아우라의 붕괴’는 기술복제의 발달로 현대인의 지각 매체에서 일어나고 있는 핵심적 변화를 가리키는 표지이다.62)

 

      62) Benjamin,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49. 

 

그는 사진과 영화의 기술복제가 단회성과 거리를 제거함으로써 예술의 아우라 를 붕괴시킬 뿐 아니라, 인식과 지각구조를 변화시켜 ‘인간의 아우라’마저 붕괴시킨다고 논증한다.

백여 년 전의 이 사유는 오늘날을 예견한 예언자 적 통찰로 읽힌다.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AI 기술은 인간의 아우라를 박탈하는 궁극의 기술복제라 할 수 있다.

아우라는 시간과 공간, 신체와 정신이 함께 짜여 형성되는 ‘현전성(presence)의 직물’이다.

따라서 인간의 아우라는 고유 한 주체성과 자율성에서 비롯되고, 신체와 시공간 속에서 현전하는 실존, 그리고 인간 아닌 것들과의 구별을 통해 규정된다.

그러나 인간의 사고와 감정과 추론 능력을 복제하고 학습한 AI가 인간이 자신의 삶과 타인과 하 나님과 세계를 대하는 매체로 작용하면서 그 인식과 참여의 방식을 근본 적으로 재구성한다.

이러한 인간 아우라의 붕괴는 ‘게슈텔의 인간론적 효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이데거의 게슈텔이 존재자의 기능적 가용성을 조직한다면, 기술 복제는 대상의 즉각적 접근 가능성을 형성한다.

호르크하이머가 비판한 도구적 효율 중심의 이성은 인간을 고유한 의미를 지닌 존재가 아니라 교 환 가능한 기능으로 환원함으로써 인간의 아우라를 제거한다.

마르쿠제 가 말한 일차원적 인간은 기술적 합리성에 포섭되어 거리와 저항을 경험 하지 못하는 인간이며, 이를 벤야민의 언어로 말하면 ‘아우라를 상실한 인간’이다.

AI-데이터 사회로의 전환은 벤야민이 사유한 기술적 복제 가능성이 가 장 보편적이고 급진적인 방식으로 실현될 역사적 조건을 충족하고 있다.

20세기 내내 축소되어 온 인간의 아우라는 AI 기술의 부상과 함께 급격 한 소멸의 위기에 처해 있다.

한때 기계가 결코 모방할 수 없다고 여겨진 영역―체스와 바둑, 예술과 글쓰기, 언어와 상상력―마저 도장 깨기 당하 듯 하나씩 AI에 의해 무너지고 있다.

AI 의존도가 높아지고 디지털 플랫폼 과 알고리즘이 강화될수록, 인간의 자율성이라는 아우라는 점점 흐릿해 진다. 인간 지능을 복제한 AI가 자율화될수록, 이를 사용하는 인간에게서 기억력과 판단력의 퇴화효과(degeneration effect)가 나타나고 기계에 더 의존적인 된다는 ‘자동화의 역설’은 아우라 상실의 현상적 결과이다.63)

 

    63) Nicholas Carr, The Glass Cage: How Our Computers Are Changing Us, 이지원 역, 『유리 감 옥: 생각을 통제하는 거대한 힘』 (서울: 한국경제신문, 2014), 112-113, 322.

 

언젠가 인간과 기계를 구분하기 위해 고안된 튜링 테스트(Turing Test)에서 ‘인간 아닌 것’으로 판정되는 존재가 우리 자신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기술복제로 인해 단회성과 거리, 현존을 매개로 형성되던 인간의 관계 구조 자체가 해체되는 아우라 붕괴의 테제는 기술비판을 신학적 우상비판으로 이행하게 하는 결정적인 통로를 연다.

AI 기술은 점진적이면서도 급진적인 방식으로 인간의 의존과 신뢰, 의미와 가치 부여의 방식과 방향 을 기술적 매개로 이동시키고 있다.

이러한 변화가 초월자를 향해 열려 있 던 인간의 궁극적 지향이 가시적이고 조작 가능한 대상들로 대체되는 과 정이라고 이해한다면, 기술비판은 필연적으로 우상비판으로 전환될 수밖 에 없다.

 

III. 신학적 우상 비판: 존 칼빈과 헤르만 바빙크의 통찰64)

 

개혁신학의 우상비판은 단순히 외적 숭배 대상을 제거하라는 윤리적 요청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과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 자체가 어 떻게 왜곡되는지를 해부하는 신학적이자 존재론적 비판이다. 이하에서는 칼빈과 바빙크의 우상비판을 통해, 현대의 기술 질서 - 특히 AI 기술 - 가 수행하는 유사종교적 기능과 그 안에 내포된 우상성을 비판적으로 검토 하고자 한다.65)

 

   64) 개혁신학 전통에서 기술의 우상성을 규명하려는 현대 기술철학 담론과 유사한 예로 에흐베르트 슈우르만(Egbert Schuurman, 1937-)을 들 수 있다. 기술철학의 권위자인 슈우르만은 헤르만 도여 베르트(Herman Dooyeweerd)의 양상 철학을 기술 분야에 적용하여 기술지상주의(Technicism) 를 비판하였다. 그는 현대 기술이 약속된 구원의 자유를 가져다주는 대신 오히려 인간을 노예로 만들고 사회를 타락시킬 것이라는 예언자적 비판과 경고를 던졌다. 본고의 논의는 이러한 개혁신 학적 기술비판의 흐름 위에서 AI를 기능적 우상의 관점으로 재조명하려는 시도이다. 이에 대해서 Egbert Schuurman, Faith and Hope in Technology. trans. John Vriend (Toronto, Canada: Clements Pub, 2003)를 참고하라.

    65) 본 논문은 개혁신학의 우상론을 체계적으로 재구성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칼빈과 바빙크를 중심으 로, 현대 기술사회 비판에 적용 가능한 신학적 통찰을 선별적으로 논의하는 것으로 연구의 범위를 한정한다. 

 

1. 칼빈의 우상비판: 타락한 인간의 인식론적 왜곡으로서의 우상

 

1) 계시의 보편적 실재성

 

칼빈은 󰡔기독교강요󰡕 제1권 3장에서 하나님을 알 만한 지식을 위한 일 반계시의 보편성을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진술한다:

 

“우리가 논쟁의 여지 가 없다고 전제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 안에, 그리고 실로 자연적 본능처 럼, 신성에 대한 의식이 내재해 있다는 사실이다.”66)

 

칼빈에 따르면, 하나 님을 알만한 지식의 내적·외적 조건은 이미 인간과 창조질서의 구조 속 에 갖추어져 있다.

외적 요소로는 하나님이 지으시고 지속적으로 통치하 시는 세계, 곧 ‘우주의 구조’(mundi fabrica)가 있으며, 내적 요소로는 하 나님이 모든 인간에게 주신 ‘신성에 대한 의식’(sensus divinitatis), ‘종교 의 씨앗’(semen religionis), 그리고 ‘양심’(conscientia)이 있다.67)

이러한 논의를 통해 칼빈은 계시의 실재성을 강하게 옹호한다.

 

하나님은 자신을 숨기신 채 인간을 방치하지 않으시며, 무지를 핑계치 못하도록 “자기의 신적 능력에 관한 어떤 지성을 모두에게 친히 넣어 주셨다.”68)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부인하거나 거부하는 것은 창조의 질서에 어긋”난 다고 그는 단언한다.69)

이러한 계시의 명백한 실재성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하나님을 아는 모든 지식을 할 수 있는 한 떨어내 버리고,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그에게 드리는 예배를 변질시키려고 노력”한다.70)

 

     66) John Calvin, 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 in libros quatuor nunc primum digesta, certisque distincta capitibus, ad aptissimam methodum: aucta etiam tam magna accessione ut propemodum opus novum haberi possit (Genevae: Robert I. Estienne, 1559), 문병호 역, 『기독교 강요』 (서울: 생명의말씀사, 2020), 1권 3장 1항. 이후부터는 몇 권, 몇 장, 몇 항을 숫자로 표기한다(예. 『기독교 강요』, 1.3.1.).

    67) 『기독교 강요』에서 외적 요소인 우주의 구조에 관해서는 1.5.1-3, 내적 요소인 신성에 대한 의식, 종교의 씨앗, 그리고 양심에 관해서는 1.3.1-2에 언급된다.

    68) Calvin, 『기독교 강요』, 1.3.1, 180.

    69) Calvin, 『기독교 강요』, 1.3.2, 183. 1.3.2의 표제.

    70) Calvin, 『기독교 강요』, 1.3.2, 184. 

 

하나님은 창조세계와 인간의 내면 질서에 “자기의 영광을 드러내는 확실한 표지를 아주 명확하고 뚜 렷하게 새기셔서” 누구도 무지를 변명하지 못하게 하셨지만, 인간은 이를 왜곡한다.71)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드러내는 거울이며 표징이지만, 무엇보다도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 하는 “최고의 거울”, “웅변가”, “소우주”이다.72)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하 나님이 부여하신 탁월함을 추악함으로 변질시킨다.

우주와 인간 안에 풍 부한 신성의 표징들을 짓눌러 “하나님을 명확히 알도록 그들의 마음을 비 추고 있는 그것을 스스로 폐기”한다.73)

 

        71) Calvin, 『기독교 강요』, 1.5.1, 198.

        72) Calvin, 『기독교 강요』, 1.5.1; 1.5.3.

        73) Calvin, 『기독교 강요』, 1.5.4, 203. 

 

따라서 문제의 원인은 계시의 오류나 부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계시 를 수용하는 인간의 조건 자체에 있다.

칼빈의 우상비판은 바로 이 인식론 적 진단 위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2) 인식의 왜곡으로서의 우상

 

칼빈은 󰡔기독교강요󰡕 제1권 제11장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가시적 형상 으로 표현하려는 모든 시도를 하나님의 초월성과 영광을 훼손하는 우상 숭배로 규정한다.

이 장 전체에서 우상의 제조와 숭배가 단순한 외적 종교 행위가 아니라, 인간의 인식 구조 자체의 왜곡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임이 반복적으로 논증된다.

칼빈의 우상비판에서 가장 결정적인 진술은 다음과 같다:

 

“이로부터 분명해지는 것은, 인간의 마음 자체가, 말하자면, 항상 우상을 만들어내는 공장이라는 사실이다.”74)

 

    74) “Unde colligere licet, hominis ingenium perpetuam, ut ita loquar, esse idolorum fabricam” (필자의 강조, 필자의 번역). John Calvin, 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 (1559), eds. Peter Barth and Wilhelm Niesel, Ioannis Calvini Opera Selecta, vol. 1 (Munich: Kaiser Verlag, 1926–1955), 1.11.8, 96. 

 

 

즉 인간의 마음이 교만과 무모함에 빠져서

“그 자체의 이해력”을 따라 우상을 만들고 그것을 숭배한다는 것이다.75)

또한 제11장 8항의 표제 - “우상들의 기원은 마음에 품은 것을 표현하고 그 형 상을 믿는 데 있음” - 가 보여주듯,76) 칼빈은 우상의 기원을 인간 마음의 인지적·상상적 활동에서 찾는다.

즉, 인간은 하나님을 초월적 타자이자 영원한 영광 가운데 계신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이 이해하고 통제 할 수 있는 형태로 재구성하려는 그릇된 성향을 본성적으로 지닌다.

이때 우상은 비가시적인 하나님을 가시적 형상으로 단순히 대체한 모방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초월성을 제거하고 그 행위를 예측할 수 있게 만들어 인 간 질서 안에 포섭하려는 타락한 인식 구조의 산물이다.

칼빈 우상비판의 인식론적 성격은 특별계시로서 성경의 필요성을 설 명하기 위해 사용한 ‘안경(spectacula)’ 비유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인식의 혼돈과 무지에 빠진 인간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가득한 “가장 아름다운 책”을 읽기 위해 안경이 필요하다.77) 성경이라는 안경을 통해 우 리 마음에 흩어져 있는 혼란스러운 하나님 지식이 올바르게 정돈되고, 우 리의 우둔함을 깨달으며, 참되신 하나님을 분명하게 인식하게 된다.78)

 

     75) Calvin, 『기독교 강요』, 1.11.8, 292.

     76) Calvin, 『기독교 강요』, 1.11.8, 293.

     77) Calvin, 『기독교 강요』, 1.6.1, 226-227.

     78) Calvin, 『기독교 강요』, 1.6.1, 227.

 

이 안경으로서의 성경은 새로운 정보를 추가하는 보조 장치가 아니라, 이미 주어진 계시가 혼돈과 무지, 곧 우상으로 전도되지 않도록 재구조화 하는 규범적 장치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왜곡은 곧 인간 자신의 왜곡 이다.

인간의 형상성으로 인해 무엇을 인식의 대상으로 삼고 어떤 매체를 통해 세계를 인식하느냐에 따라 그 존재 양식 자체가 형성된다. 이 점에서 성경은 인지력과 생명력도 없는 우상의 본질이 우상숭배자의 인식과 존 재에 반영되어 영적 둔감함을 형성한다는 사실을 정언한다(신 4:28).

이는 우상이 단순한 외적 대상물이 아니라 인식 구조를 왜곡하는 질서임을 시사한다.

필연적으로 우상숭배자는 영적 어둠에 갇히고, 현실 인식이 왜곡 되며, 하나님의 임재와 사역에 무지해진다.

우상의 가장 치명적인 해악은 하나님과 창조세계에 대한 왜곡된 허상을 인간의 마음에 주입함으로써 진리 인식을 왜곡한다는 데 있다.79)

 

    79) 윤형철, “우상의 또 다른 얼굴, 이데올로기: 이데올로기의 우상화와 우상적 기능에 대한 비판,” 「생 명과 말씀」 28/3 (2020), 191-194.

 

이런 의미에서 칼빈의 우상비판은 타 락한 인간의 인식에 대한 교정을 위한 신학적 작업이자, 하나님 형상으로 서 인간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한 신학적 요청이라고 할 수 있다.

 

2. 바빙크의 우상비판: 인간이 스스로 신격화한 우상

 

1) 계시의 매개적 인식 구조

 

비기독교 철학에서 인간의 인식은 자율적 이성에 기초한다. 앞서 살펴 본 하이데거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기술비판 역시 기술의 발달이 자율적 이고 주체적인 인간의 인지 능력을 변질시킨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그러나 기독교 신학에서 진리와 현실에 대한 인식은 인간의 자율적 이성 이 아니라 초월적 계시에 기반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개혁주의 신학은 하나님의 존재와 계시, 그리고 인간의 인식 가능성을 전제한다. 바빙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 전체와 그 모든 부분들이 하나님의 속성들을 드러내는 하나의 계시라고 진술함으로써,80) 계시가 하나님과 인 간의 인식 사이를 매개하는 원리임을 분명히 한다.

계시의 인식은 외적인 원리와 내적 원리를 동시에 포함한다.

“하나님의 자기 계시는 인간 밖에, 인간 앞에, 인간 곁에 멈추어서는 안되고, 반드시 인간 자신의 내면까지 이르러야 한다.”81)

 

      80) Herman Bavinck, Gereformeerde Dogmatiek, vol. 1, 박태현 역, 『개혁교의학 1』 (서울: 부흥 과개혁사, 2011), 121.        81) Bavinck, 『개혁교의학 1』, 303. 

 

하나님은 본질적 기초원리로서 자신을 외적 인식의 기 초원리인 계시를 통해 알리시며, 인간은 성령의 조명이라는 내적 인식의 

기초원리를 통해 그 계시를 인식한다. 다시 말해, 계시는 인간에게 직접적 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매개적으로 인식되며,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 신학은 “내면적 모사의 신학”이다.82)

바빙크는 계시의 매개적 성격을 다음 과 같이 분명하게 진술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자연이나 은혜에 ‘직접적’ 계시란 없다. 하나님은 피조물로 부터 취한 것이든 자유롭게 선택한 것이든 간에 항상 방편을 사용하여 인간 에게 자신을 계시한다.…심지어 하나님이 성령으로 인간 의식에 내적으로 자신을 계시하는 곳에서조차, 이러한 계시는 항상 유기적으로, 따라서 방편 의 사용을 통해 일어난다.83) 이러한 이유로 바빙크는 종교와 신지식이 인간 본성에 자연적이고 필 연적으로 내재해 있다는 본유관념론을 비판한다. 플라톤적 범신론이든, 데카르트에서 칸트에 이르는 근대 합리주의 철학이든, 모든 형태의 본유 관념론은 인간을 세계로부터 분리된 존재로 설정함으로써 인간이 자기 정신으로부터 순수한 지식을 산출할 수 있다고 전제한다. 그 결과 매개적 계시는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된다.84) 이에 반해, 기독교적 관점에서 피조 물인 인간은 “사물들이 존재한 후에, 그리고 그 사물들이 존재하기 때문 에 사물들을 알며,” 가시적인 것으로부터 비가시적인 것으로, 세상으로부 터 하나님께로 나아간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신지식은 간접적 계시 를 통해 획득되고 유비적 성격을 지닌다.”85)

 

     82) Bavinck, 『개혁교의학 1』, 304.

     83) Bavinck, 『개혁교의학 1』, 424-425. 바빙크가 강조한 계시의 매개적 인식 구조를, 헤리뜨 베르까 우어(G. C. Berkouwer, 1903-1996)는 계시가 “성령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 움직이는 인간성이라 는 프리즘을 통해(through the prism of humanity travelling the Spirit’s paths)” 우리에게 도 달한다고 비유적으로 설명한다. G. C. Berkouwer, Holy Scripture. trans. J. B. Rogers (Grand Rapids, Mich: Wm. B. Eerdmans, 1975), 134.

    84) Herman Bavinck, Gereformeerde Dogmatiek, vol. 2, 박태현 역, 『개혁교의학 2』 (서울: 부흥 과개혁사, 2011), 78.

    85) Bavinck, 『개혁교의학 2』, 80. 

 

바빙크의 통찰은 본 논의에 최소한 세 가지 함의를 제공한다.

  첫째, 하 나님과 세계에 대한 인간의 지식이 간접적이고 매개적인 방식으로 형성 된다는 사실은 인식에서 매체의 중요성을 환기한다.

  둘째, 기독교 신학의 관점에서 게슈텔이나 기술적 합리성에 대한 비판은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존재와 계시에 대한 인식 왜곡에 대한 비판, 곧 우상비판으로 이어져야 한 다.

  셋째, 하나님, 계시, 성령의 조명이라는 인식의 세 기초원리는 모두 하 나님으로부터 비롯되기에, 인식의 왜곡을 낳는 우상의 힘을 해체하고 인 간 본질을 회복하는 능력 역시 오직 하나님께 속한다. 이는 기독교 신학만 이 비관적인 기술비판의 한계를 넘어,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인간의 참된 아우라 회복을 전망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2) 우상화의 본질: 신격화

 

바빙크의 우상비판은 칼빈의 통찰을 계승하면서도 근대 이후의 역사 적 맥락을 적극적으로 반영한다.

그는 고대의 다신론에서 로마교 가톨릭, 근대 합리주의 철학, 현대의 심리학에 이르기까지 모든 비기독교적 사상 을 관통하는 공통된 특징을 인간(신비주의, 진화론), 자연이나 세계(범신 론), 혹은 물질(유물론)의 ‘신격화’라고 지적한다.86)

결국 타락의 극치인 우상숭배는 세계관적 혼돈이다. 신격화를 특징으로 하는 모든 형태의 우 상숭배에서 “인간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서 있지 못하기에, 세상과도 올바른 관계를 갖지 못한다.”87)

 

    86) Bavinck, 『개혁교의학 2』, 103, 232, 378, 520, 541.

    87) Bavinck, 『개혁교의학 2』, 550.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질 때 불신앙은 무 지와 미신으로 이어지고, 자연이나 세상과의 관계가 왜곡될 때 물질주의 와 신비주의가 교차하며 인간을 비인간화한다.

우상숭배는 언제나 인간의 허망해진 욕구와 결부되어 있다. 바빙크에 따르면 “가장 넓은 의미에서 우상숭배는 가까이 있는 신에 대한 인간의 욕 구에서 발생한다.”88)

일반적인 종교는, 비록 성속을 구분하더라도, 거룩한 장소와 시간 그리고 거룩한 형상을 삶의 한가운데에 제공함으로써 ‘가까 이 있는 신’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킨다.

무당과 점쟁이, 점술과 주술, 부적 과 신물 등은 인간의 유한성과 삶의 불확실함이 낳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려는 종교적 욕구의 산물이다.

바빙크에 따르면, 기독교 밖의 종교들은 하 나님과 하나님의 계시에서 종교적 만족을 찾지 못한 인간들이 만들어낸 ‘자기 종교’이고, 그중 “미신은 참된 종교의 타락한 형태”이다.89)

이러한 현상은 타락으로 인한 인간 의식의 근본적 왜곡과 긴밀히 연 결된다. 인간이 죄로 인해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을 상실할 때, 그 공백 을 스스로 만든 형상이나 개념으로 채우려는 인식론적 전도가 발생한다.

따라서 우상숭배는 인간의 내면적이고 종교적인 욕구를 우상에 투영하는 과정이며, 참된 인식의 기초인 하나님의 계시를 인간의 사유가 기능적으 로 대체한 결과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상은 역사 속에서 사라진 적이 없 다.

근대 이후 보편적 진리를 인간 인식의 범주 안으로 끌어내리려는 인식 론적 왜곡은 범신론이나 유물론과 같은 보다 ‘세련된’ 형태의 우상숭배를 만들었을 뿐이다. 바빙크의 분석은 현대의 기술 질서를 비판하는 데에 중요한 개념적 가 능성을 제공한다.

우상은 반드시 ‘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 않아도 된 다. 우상은 하나님의 자리를 기능적으로 대체하는 모든 질서일 수 있다. 그것은 합리적인 철학일 수도 있고, 신비적 종교의 외형을 띨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인간은 계시의 방편조차도 “가까이 있는 신에 대한 인간의 욕 구”를 충족하는 수단으로 변질시킬 수 있다.90)

 

    88) Bavinck, 『개혁교의학 1』, 445. (필자의 강조).

    89) Bavinck, 『개혁교의학 1』, 446.

    90) Bavinck, 『개혁교의학 1』, 445. 

 

이 점에서 우상이란 하나님 이 아닌데도 하나님처럼 의존하고 신뢰하는, 인간이 스스로 신격화한 무 엇이다.

 

3. AI 기술의 기능적 우상화 비판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칼빈과 바빙크가 말하는 우상의 핵심은 하나 님을 노골적으로 대체하는 ‘다른 신’의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리를 기능적으로 점유하는 거짓된 질서에 있다. 우상은 하나님을 실제로 제거 할 수 없다.

신적 임재와 역사를 왜곡된 방식으로 ‘복제’함으로써 하나님 과 계시를 불필요한 것으로 만들 뿐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AI 기술이 수 행하는 기능은 우상비판의 대상이 된다.

오늘날 포괄적으로 적용되는 AI 기술은 중립적 도구의 수준을 넘어, 사실과 의미에 대한 최종 판단자처럼 기능하는 경향을 보인다.

인간은 AI 를 신이라고 부르지 않지만, 사실상 AI는 신적 기능을 비인격적 방식으 로 수행한다.

곧 신적 전지성을 데이터의 총합으로 대체하고, 신적 섭리 를 예측과 위험 관리의 문제로 환원하며, 하나님 앞에 선 인간의 언약적 결단을 알고리즘 내부의 선택으로 축소한다. 이때 AI 기술은 기능적 우상 (functional idol)으로 신격화될 위험에 노출된다.91)

 

     91) 전대경도 인공지능이 단순한 기술 현상이 아니라 구원과 영생 그리고 초월과 같은 신적 기능을 수 행하려는 유사종교적 상상력을 매개할 수 있음을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본 논 문이 제시하는 AI 기술의 우상화 개념과 접점을 이루지만, 전대경의 논의가 주로 윤리적·종말론 적 경고에 초점을 둔다면, 본 논문은 기술이 인간의 인식 구조와 존재 이해를 어떻게 재구성하는지 를 존재론적·인식론적 차원에서 분석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지닌다. 전대경, “인본주의에서 초 인본주의로 옮겨가는 다문화적 다지능 시대: 자연지능과 인공지능이 공존하는 다가오는 다문화에 대한 복음주의의 응답,” 「조직신학연구」 30 (2018): 44-83. 

 

AI 기술이 사회 전반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AI-매개 사회(AI-mediated society)는 하이데거가 말한 게슈텔처럼 세계를 전적으로 관리 가능한 대 상으로 전락시키는 총체적 질서로 작동할 수 있다. 동시에 그것은 현대 사 회에 플랫폼의 방식으로 내재화되고 구조화된 우상적 체계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질서 안에서 인간은 하나님마저 예측 가능한 데이터로 환원함으 로써 불확실성과 타자성을 제거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 초월적이며 전적 타자이신 하나님을 인간의 품 안에 가두어 통제할 수 있는 ‘가까이있는 신’으로 만들려는,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시도는 기능적 우상의 도움 으로 가능해 보이는 착시를 낳고, 사람들은 그것에 매혹된다.

AI 기술이 기능적 우상으로 작동될 때, 본질적 변화를 겪는 존재는 다 름 아닌 인간이다.

기술 시대의 인간은 스스로 의미를 해석하고 응답하는 주체라기보다 이미 의미화된 데이터로 호출된다.

인간은 더 이상 하나님 과 그분이 지으신 세계 앞에서 묻고 답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격 이 아니라, 분석과 최적화의 대상, 곧 ‘아우라가 탈각된 복제품’으로 이해 된다.92)

 

    92) 현대 기술 담론이 기술 발전을 인간 능력의 확장으로 이해하는 경향을 비판한 신학자로 독일의 조 직신학자이자 종교철학자인 잉고 달페르트(I. U. Dalferth, 1948-)를 들 수 있다. 달페르트는 관 계적 하나님 형상론을 통해 인간을 능력이나 기능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름(Anrede)에 대한 응답 (Antwort)으로 규정함으로써, 기술이 인간을 데이터·기능·최적화 대상으로 환원하는 경향에 신학적으로 중요한 비판적 대안을 제시한다. 이러한 관계적·수동적 인간 이해는 AI 기술이 인간 의 정체성과 책임을 대체하려는 경향을 비판하는 본 논문의 문제의식과 공명한다. 이에 대해서, 이 상은, “기술혁명시대에 돌아보는 하나님의 형상론: 달페르트의 인간론 고찰,” 「조직신학연구」 31 (2019): 218-247을 보라.

 

벤야민의 아우라 개념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인간 이해는 단순 한 기능적 축소를 넘어 인간의 대체 불가성, 현존성, 관계적 거리의 붕괴 를 의미한다.

AI 매체를 통해 인간은 서로를 ‘지금 여기서 말을 거는 타자’ 가 아니라, 이미 분석되고 데이터화된 대상으로 경험하며, 또한 자신도 그 렇게 경험된다.

이는 인간이 윤리적으로 타락하여 존엄을 상실했다는 뜻 이 아니라, 서로를 인격적 타자로서 존엄을 지닌 존재로 인식할 수 없게 만드는 기술적 지각 구조가 형성되었음을 의미한다.

신학적 우상비판이 특히 예리하게 제기하는 질문은 ‘권위의 문제’이 다. 전통적 신학에서 권위는 말씀하시는 하나님과 응답하는 인간 사이의 언약적 상호성 안에서 성립한다.

그러나 AI 기술이 권위를 획득할 때, 그 권위는 본질적으로 비인격적이며 책임을 귀속시킬 주체를 상실할 수밖에 없다.

판단이 자동화되고 예측 가능성이 규범으로 작동할수록 정작 책임 은 비인격화되고 언약적 상호성이 설 자리는 사라진다. 알고리즘 사회에 서 AI는 계산·분류·예측의 권력이 되고, 이 기계적 권위는 질문을 허용 하지 않는다.

알고리즘의 결정은 ‘왜 그런가?’라는 질문을 허용하지 않고 ‘결과가 그렇다’라는 방식으로 제시될 뿐이다.

이는 하이데거가 말한 질문 자체의 소멸이자 마르쿠제가 경고한 비판적 초월성의 상실이며, 신학적으 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응답하는 언약적 인간 이해의 해체이다. AI 우상의 또 다른 문제는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구분과 경계를 흐 리게 만든다는 데 있다. 예컨대, 생성형 AI는 창조를 기능으로 환원함으로 써 인간의 창조적 아우라를 붕괴시킬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님께만 속하는 ‘창조’ 개념 자체를 재정의한다. 이때 기술은 단순한 모방을 넘어 창조를 대체하는 우상적 상상력을 형성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AI 시대로의 전환 국면에서 기술비판은 단순한 윤리 적 경고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신학적 우상비판의 현대적 형태로 전환되 어야 한다.

핵심 질문은 ‘기술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가 아니라, ‘기술이 인간과 세계를 어떤 존재로 드러내며 그 드러냄이 어떤 권위구조를 형성 하는가’이다.

개혁신학의 우상 비판은 기술 질서가 절대화되는 순간 그것 이 하나님도 인간도 아닌 어떤 ‘제3의 권위’로 신격화될 수 있음을 경고하 고, 그 우상성이 외적 실체가 아니라 인식·존재·예배의 구조적 왜곡에 은닉돼 있음을 폭로한다.

AI 기술이 신을 대체하지 않으면서도 유일한 현 실로 고착될 때, 하나님의 전지전능함과 섭리를 대체하는 강력한 매체적 질서로 타락할 수 있음을 식별하고 이에 저항하는 것이야말로, 개혁신학 에 요청되는 공공신학적 책임이라 할 수 있다.93)

 

     93) 이런 우상숭배의 대안으로서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구체적 내용과 구속사적 의미를 상술하는 것은 개혁주의적 우상비판을 완성하기 위해 필수적인 작업이다. 그러나 본고의 주된 목적은 AI 기술이 현대인의 인식 지평에서 어떻게 기능적 우상의 질서로 고착되는지를 존재론적으로 분석하고 그 위 험을 폭로하는 데 집중되어 있으므로, 계시의 구체적 풍성함에 관한 교의학적 서술은 향후 별도의 후속 연구 과제로 남겨두고자 한다. 

 

IV. 나가는 말

 

본 논문은 기존의 AI 기술 담론이 활용방식이나 규범적 통제와 같은 실천적 문제에 집중해 온 한계를 지적하고, 그보다 선행해야 할 질문, 곧 ‘AI 기술이 인간을 어떤 존재로 드러내는가’라는 존재론적 물음에서 논의를 출발했다.

하이데거 - 프랑크푸르트학파 - 벤야민으로 이어지는 철학적 기술비판의 계보를 통해, AI 기술은 중립적 도구를 넘어 존재자를 드러내 는 단일한 탈은폐 양식, 곧 게슈텔이라는 초인간적이고 거대한 플랫폼적 질서로 작용할 수 있음을 살펴보았다.

이 과정에서 AI 기술은 도구적 이성 의 환상과 기술적 합리성의 명분 아래 인간의 욕망을 충족하며 의식 속에 내면화되며, 결국 고유하고 존엄한 인간성의 아우라가 붕괴되는 비극으로 귀결될 수 있음 또한 고찰하였다.

이러한 철학적 분석 위에서, 개혁신학의 우상비판 전통은 AI 기술이 수 행하는 기술우상의 실체를 식별하는 결정적인 해석의 틀을 제공한다.

신 학적 우상비판은 AI 기술을 단순히 세속적 현상으로 치부하여 관심 밖에 두거나, 그것을 악마화하여 원천적으로 거부하는 태도와 구별된다.

AI 기 술은 인간의 통제 아래 있는 중립적인 도구가 아닐 위험이 크지만, 그렇다 고 그 자체로 신을 자처하는 절대악도 아니기 때문이다.

개혁신학의 우상 비판은 기술이 우상으로 신격화되는 비극이 그것이 궁극적 권위처럼 기 능하는 순간, 곧 하나님의 자리를 기능적으로 점유하고 인간의 질문과 응 답, 책임의 구조를 잠식하는 지점에서 발생함을 경고한다.

그리고 기능적 우상화라는 문제의 뿌리는 AI 기술이라는 외부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교 만한 죄성에 있음을 지적한다.

개혁신학은 언제나 이러한 우상적 전도(顚倒)를 식별하고 폭로하는 증 언적 사명을 감당해 왔다.

교회의 소명은 어떤 것도 하나님 위에 서는 궁 극적 권위가 될 수 없음을 고백하고 증언하는 데 있다.

AI 기술이 인간을 완전히 설명할 수 있다거나 기술적 판단이 인간의 책임을 대체할 수 있다 는 명시적 또는 암묵적 전제는, 어떤 의미에서도 신학적으로 수용될 수 없 다.

개혁신학의 관점에서 인간은 과거의 알고리듬에 의해 예측되고 환원 되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응답하며 언약적 관계와 종말론적 시간 안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규정되는 존재이다.

따라서 교회는 이러한 인 간 이해를 신학적 언어와 교리뿐 아니라, 예배와 교육, 공동체적 삶과 사 회적 실천 전반에서 끊임없이 되울림으로써, AI-플랫폼의 기술 질서와 그 질서가 제시하는 인간 이해가 결코 궁극적 현실이 아님을 드러내야 한다.

결국 AI 기술의 시대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항상 우리 앞에 있는 오래된 질문을 더욱 날카롭게 다시 제 기한다. 무엇이 인간의 최종 근거이며, 누구의 말씀이 인간과 역사를 규정 하는 마지막 판정인가.

기술은 인간의 미래를 예측하고 관리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인간과 역사의 완성은 하나님의 주권적 언약에 속해 있다.

설령 AI가 놀라운 정도로 정밀하고 포괄적인 계산과 전망을 수행할 수 있다 하 더라도, ‘그것’은 인간 존재의 마지막 의미를 말할 수는 없다.

만물의 알파 와 오메가는 오직 그리스도이시며, 인간 존재와 역사의 종결에 대한 최종 적인 말씀(the Final Word)은, 어떤 알고리즘도 아니라, 부활하신 ‘그분’께 속해 있다.

이 신앙고백 위에서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는”(갈 5:24)

철저한 자기 부인이야말로, AI라는 강력한 기술 우상의 질서에 매몰되지 않고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인간 존재의 참된 근거와 위상을 지켜내기 위한 가장 근본적이며 실천적인 저항이 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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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초록]

현대의 AI 담론의 지평은 기술의 효용이나 윤리적·제도적 규제라는 제한된 범위에 정체되어 있다. 본고는 이보다 선행해야 할 물음, 곧 ‘AI 기 술은 인간과 세계를 어떤 존재로 드러내는가’라는 근원적인 존재론적 물 음에 천착한다. 먼저 하이데거, 프랑크푸르트학파, 발터 벤야민으로 이어지는 철학적 기술비판의 통찰을 통해, 현대 기술이 단순한 도구를 넘어 인간 인식과 경 험의 조건을 규정하는 ‘탈은폐의 질서(게슈텔)’이자, 인간을 기능적 자원 으로 환원하여 주체적 인격성이 상실되는 ‘아우라의 붕괴’를 초래하는 체 계임을 분석한다. 이어지는 신학적 고찰에서는 칼빈과 바빙크의 우상론 을 바탕으로 AI 기술이 수행하는 유사 종교적 우상성을 폭로한다. 개혁신 학적 관점에서 우상은 인식 구조의 왜곡에서 비롯된 ‘기능성 질서’이다.

 AI는 전지성, 판단, 질서 부여와 같은 신적 속성을 비인격적으로 수행하며 인간을 언약적 주체에서 ‘최적화된 데이터’로 전락시키는 ‘기능적 우상’으 로 작동할 위험을 지닌다. AI가 하나님과 계시를 대체하는 강력한 매개 질서로 고착될 때, 하나 님과 피조물, 현실과 가상, 인간과 인간 아닌 것의 경계는 무너지고 인간 의 존재론적 위기는 심화한다. 본 논문은 AI 비판의 지평을 신학적 분별의 차원으로 확장함으로써, AI 기술이 보편화되고 절대화되는 시대에 교회와 신학이 감당해야 할 예언자적 책임을 촉구하고자 한다.

[주제어: 인공지능, 철학적 기술비판, 게슈텔, 아우라의 붕괴, 개혁신학적 우상비판, 기능적 우상]

 

 

Abstract

How Can AI Technology Turn into an Idol? : An Ontological Critique of Technology and a Reformed Theological Account of Functional Idolatry

Hyung Chul Yoon (Chongshin Theological Seminary, Professor)

The contemporary discourse on artificial intelligence(AI) remains largely confined within a limited scope, focusing on technological utility or ethical and institutional regulation. This article delves into a more fundamental, ontological inquiry that precedes these concerns: “How does AI technology reveal the being of humans and the world?” First, drawing on the insights of philosophical critiques of technology from Martin Heidegger and the Frankfurt School to Walter Benjamin, this study analyzes how modern technology operates beyond a mere tool as an ‘order of revealing’(Ge-stell) that defines the conditions of human cognition and experience. It further examines how this system reduces humans to functional resources, leading to the ‘decay of aura’ - the loss of subjective personhood. Subsequently, the theological investigation builds on the theories of idolatry from John Calvin and Herman Bavinck to expose the quasi-religious idolatry inherent in AI technology. From a Reformed perspective, an idol is a ‘functional order’ resulting from a distortion in the cognitive structure. AI risks acting as a ‘functional idol’ by impersonally performing divine attributes - such as omniscience, judgment, and the imposition of order - thereby reducing humans from covenantal agents to ‘optimized data.’ When AI becomes entrenched as a powerful mediating order that substitutes for God and revelation, the boundaries between Creator and creature, reality and virtuality, and the human and the non-human collapse, exacerbating a profound ontological crisis. By expanding the horizon of AI critique to the level of theological discernment, this article seeks to emphasize the prophetic responsibility that the church and theology must uphold in an era where AI technology is increasingly normalized and absolutized.

 

[Key words: Artificial Intelligence(AI), Ontological Critique of Technology, Ge-stell, Decay of Aura, Reformed Critique of Idolatry, Functional Idol] 

 

 

 

논문 투고일: 2026.01.24. 게재 확정일: 2026.03.27.

조직신학연구 제52권(2026)

 

조직신학연구 52권26년4월30일발행 출판본전체.pdf
4.68MB

 http://doi.org/10.31777/sst.52..202604.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