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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야기

하나님, 악 그리고 고난 ― 잉골프 달페르트의 악의 해석학과 새로운 정치신학과의 대화1/박제연.궤테大

Ⅰ. 서론

 

악과 고난의 문제는 언제나 신학적·철학적 성찰의 중심 주제였다. 인간은 설명할 수 없는 고통 과 불의를 마주할 때마다 하나님의 존재와 선하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던진다.

동시에 악 의 기원과 존재 이유에 대해 사유하면서 기존의 기독교적 하나님 이해와의 모순을 마주하면서도, 끊 임없이 악의 극복이라는 주제에 대해 신학적으로 논의해왔다2.

특히 그리스도인들에게 질병, 자연재 해, 장기화 된 전쟁, 구조적 불의 등은 전통적인 신정론(Theodizee)3의 틀 안에서는 해결될 수 없는 도전으로 다가온다.

 

     1 본 논문은 2025년 Rebekka A. Klein 교수님의 지도하에 독일의 Goethe-Universität Frankfurt am Main에 제출된 박사학위 논문 “Gott, Böses und Leiden: Ingolf Dalferths Hermeneutik des Bösen und die Neue Politische Theologie im Gespräch”을 중심으로 수정·보완한 것이며, 학위 논문의 전반적인 내용을 다루되, 특히 국내에 비교적 많이 소개 되지 않은 Ingolf Dalferth의 신학에 큰 비중을 두어 본 논문에서 다루고자 했 다. 이는 제67차 조직신학회 신진학자학술발표회 및 신년하례회에서 발표를 위해 작성되었다. 또한 본 논문에서 다루는 개념들 중 원어 표기가 필요할 경우, 원문 그대로 독일어를 사용하였다.

      2 최종호, “악의 문제와 그 극복을 위한 신학적 고찰”, 「한국조직신학논총」28 (2010): 281-283을 참고하라.

      3‘신정론’(théodicée)이라는 용어는 1697년 철학자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가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그가 이 용어를 심도있게 지속적으로 다루지는 않지만, ‘하나님(theos)의 정의(díke)’를 옹 호하려는 맥락에서 활용한다. 그에게 현재 이 세계는 “가능한 세계들 중 최고의 세계”이다. 즉 그에 따르면, 선 한 하나님은 수많은 세계를 가능하게 하실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현재를 가장 최고로 지으셨고, 따라서 그 안 에서 발생하는 악의 현실 역시 이 최고의 세계에 일부로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사유는 실질적인 악 의 경험에서 출발했다기보다는 선한 하나님이라면 가장 선하고, 최고의 세계를 만들었으리라는 논리적 자명함에 근거하고 있다. 그는 악의 종류를 도덕적 악(malum morale: 인간의 의도적 범죄), 자연 악(malum physicum: 자연재해, 신체적 정신적 고통), 형이상학적 악(malum metaphysicum: 피조물의 근원적인 불완전성, 유한성 자체)으로 구분한다. 그러나 이후 1755년에 리스본 대지진이 일어나며 견고하게 이어져왔던 선하고 전능한 하나 님에 대한 근본적인 의심과 회의가 유럽 내에 팽배하게 되었다. 일각에서는 이 사건을 중세적 신 중심의 사고에 서 벗어나 계몽주의가 싹트게 만든 경험적 원인이라고 보기도 한다. 철학과 기독교 신학 내에 수많은 신정론에 대한 논의들이 있었고, 독일의 프리드리히 헤르마니(Friedrich Hermanni)는 라이프니츠의 입장에서 새롭게 오 늘날의 신정론 논의를 이어가고자 한다. 신정론과 관련된 더욱 자세한 국내 논의는 박영식,『고난과 하나님의 전 능: 신정론의 물음과 신학적 답변』(서울: 동연, 2019); 손호현, 『악의 이유들: 기독교 신정론』(서울: 동연, 2023) 등을 참고하라. 

 

이러한 상황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은 고통받는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줄 수 있 지만, 역설적으로 무분별한 신학적 개념들을 통해 그들의 고난을 외면하거나 심지어 강화하는 역할 을 하기도 한다.

예컨대 고통을 ‘하나님의 심판’이나 ‘영적 성숙을 위한 시험’으로 성급하게 해석할 경우, 이는 고난의 당사자들에게 전능하고 선하다고 여겨지는 하나님에 대한 깊은 분노와 절망 을 오히려 증폭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악의 경험으로 가득한 세계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은 어떻게 지속될 수 있는가?

악의 문제를 단순히 교리적이거나 심지어 폭력적인 해석으로 환원하지 않고, 언 어적으로도 실천적으로도 책임 있는 방식으로 다룰 수 있는 신학적 관점은 무엇인가?

전통적인 신정론은 악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전능성과 선하심을 정당화하려고 시도해 왔 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들은 반복해서 해결 불가능한 모순에 부딪혀 왔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악을 독립적인 실재로 보지 않고 선의 결핍(privatio boni)으로 이해했으며, 라이프니츠는 하나님의 섭리 를 옹호하기 위해 ‘가능한 최선의 세계’라는 개념을 발전시켰다4.

그러나 이러한 합리적 설명 모 형들은 고통받는 이들의 실제 경험과는 거리가 멀며, 악의 문제를 그 실존적 깊이에서 파악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5.

잉골프 달페르트는 바로 이와 같은 고정된 신정론의 틀을 비판하며, 악의 문제를 과연 형이상학적 도식 안에서 의미 있게 이해할 수 있는지 자체를 문제 삼는다.

그는 대신 악을 해 석학적이며 언어분석적인 관점에서 다룰 것을 제안하면서, 악의 실체적 존재 여부라는 형이상학적 질문에서,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경험하고 의미화하는가 라는 해석학적 문제로 초점을 전환한다. 즉 핵심적인 질문은 악이 왜 존재하는가가 아니라, 악의 경험 한가운데서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을 향한 삶의 방향을 유지할 수 있는가이다.

이 관점은 악에 대한 논의를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차 원에서, 실천적이고 실존적인 삶의 지향으로 이동시킨다.

그리스도교 신학은 악을 지적으로 설명하 는 데 그쳐서는 안 되며, 고통과 불의의 경험 속에서도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 머물 수 있는 길을 제시해야 한다.

달페르트는 이를 “하나님을 향한 삶의 정향(Lebensorientierung an Gott)”6 이라 부르며, 이러한 정향은 하나님의 전능성에 대한 추상적 이해가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형성하는가에 의해 드러난다.

 

    4 박영범, “신정론과 하나님의 고난: 신정론 문제의 응답으로써 하나님 고난이 주는 의미”, 「한국조직신학논총」33 (2012): 248-250을 참고하라.

    5 토마스 G. 롱/장혜영 옮김, 『고통과 씨름하다: 악, 고난, 신앙의 위기에 대한 기독교적 성찰』(서울: 새물결플러스, 2014), 38-46을 참고하라.

    6 Ingolf Dalferth, Malum: Theologische Hermeneutik des Bösen (Tübingen: Mohr Siebeck, 2010), 519-547을 참고하라. 여기서 그가 철학적 담론에서 주로 사용되었던“Orientierung”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신학 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을 향한 정향(Orientierung)으로 다루는지 자세히 다루고 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향해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달페르트는 그것이 고난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아니라, 인간이 악과의 대면 속에서 자신의 신앙을 계속해서 성찰하 고 실천적으로 형성해 가는 과정이라고 본다.

이때 기도는 단순히 하나님의 개입을 요청하는 행위가 아니라, 신뢰와 희망 안에서 하나님을 향해 자신을 열어 두는 실존적 태도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악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위기의 순간에도 인간을 지탱하는 신앙의 태도를 형성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삶의 지향은 개인적인 차원에 머물지 않고 공동체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리스도 교 공동체는 고통받는 이들과 동행하며, 그들의 경험을 성급한 답변이나 교리적 설명으로 덮지 않고 더 큰 의미의 맥락 속에 위치시키도록 돕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는 곧 그리스도교 신앙이 현실 로부터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현존이 추상적 이론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경험 속에서 드러 나는 적극적인 현실 대면임을 뜻한다.

그러나 달페르트의 관점이 과연 모든 도전에 충분히 응답할 수 있는가?

비판자들은 그의 해석학 적 접근이 악을 다루는 데 있어 언어적 민감성을 제공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고통받는 이들의 트라 우마를 충분히 다루지 못한다고 지적할 수 있다. 악을 주로 언어적 해석의 문제로만 다룰 경우, 깊 은 고통의 경험을 지닌 이들에게는 그 고통을 상대화하거나 심지어 경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위 험이 있다.

더 나아가, 달페르트의 접근이 사회적·정치적 맥락 속에서 어떻게 실제로 작동할 수 있 는지 역시 명확하지 않다.

그는 공적 신학 담론의 필요성을 강조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구체적인 실 천으로 전환될 수 있는지에 대한 제안은 제공하지 않는다.

이러한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는, 그리스 도인의 사회적·윤리적 책임을 명시적으로 다루는 신학적 접근들과의 결합이 필요하다.

바로 이 지 점에서 도로테 죌레, 위르겐 몰트만, 요한 밥티스트 메츠의 신학이 중요해진다.

이 세 신학자는 달페르트와 함께 고전적 신정론에 대한 비판을 공유하며, 그리스도교 신앙이 하 나님의 전능성에 대한 사변적 논쟁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고난의 구체적 현실에 응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위르겐 몰트만의 ‘고난받는 하나님’ 개념은 신적 권능 이해에 대한 급진적 전환을 제시 한다. 하나님은 멀리 떨어진 무감각한 주권자가 아니라, 삼위일체적 하나님으로서 예수의 십자가 고 난 속에서 고통받는 이들과 연대하는 분이다.

도로테 죌레는 해방신학적·페미니스트적 관점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이 사회적 불의와 구조적 고통에 맞서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신앙 은 단순한 내면적 경건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사회적 불의에 대한 공적 저항과 실천으로 표현되어 야 한다. 요한 밥티스트 메츠는 ‘기억의 신학’(memoria passionis)을 통해, 희생자들의 고난이 망 각되지 않고 신앙 공동체의 집단적 기억 속에 보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달페르트의 악에 대한 신학적 사유는 하나님, 악, 고난이라는 신학적 개념들을 분석적으로 재검 토하게 하여, 이러한 개념들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부터 야기되는 부정적인 효과를 줄이는 데 기여한 다. 또한 악으로 경험되는 삶의 의미 상실이라는 사건 가운데서 신앙의 언어를 잃어버린 사람들에 게,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새로운 시선과 신앙적 언어를 가질 수 있게 한다. 반면 죌레, 몰트만, 메츠는 그리스도인들이 고난에 대해 실질적인 연대적 실천으로 응답해야 할 책임을 강조한다. 이 두 관점의 종합은 악을 단순한 신학적 사변이나 순수한 사회적 현실로 환원하지 않고, 신학적으로 성찰 되면서 동시에 실천적으로 맞서야 할 도전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본 논문은 바로 이러한 방 향에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악 앞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이 추상적인 언어유희나 맹목적인 행동 주의에 빠지지 않고 보존될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

종교 언어에 대한 분석과 신앙의 윤리적·정치 적 차원을 함께 포괄함으로써, 이 연구는 세계의 고난에 대해 언어적으로도 실천적으로도 무관심하 지 않은 신학에 기여하고자 한다. 따라서 본 논문은 잉골프 달페르트의 신학을 출발점으로 삼아 정치신학과의 대화를 통해, 역동적 이며 언어에 민감하고 동시에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하나님 이해가 어떻게 형성될 수 있는지를 탐구 한다.

또한 본 연구는 하나님 이해와 악의 문제가 이미 첨예하게 얽혀 있는 한국 개신교의 맥락 속 에서, 이 논의를 신학적으로 새롭게 갱신하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곧, 달페르트의 입장을 죌레, 몰트만, 메츠의 정치신학과 비교하며, 마지막으로 한국 신학의 맥락 속에서 하나의 신학적 관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Ⅱ. 잉골프 달페르트의 악의 해석학

 

1. 생애와 신학

 

잉골프 달페르트는 독일의 개신교 조직신학자이자 종교철학자로, 현대 독일 신학에서 언어, 해 석, 경험의 문제를 중심으로 신학을 재구성해 온 신학적 해석학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신학뿐 아니라 철학 특히 칸트, 언어분석철학 등을 함께 연구하였으며, 이러한 학문적 배경 속에서 신학을 고정된 교리 체계가 아니라 해석의 과정으로 이해한다. 달페르트에게 신학은 정답을 제시하는 학문 이 아니라, 인간이 경험하는 현실을 하나님 앞에서 새롭게 해석하도록 돕는 작업이다. 그의 신학은 전통적인 형이상학적 신 개념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언어와 경험의 조건에 대한 철저한 성찰 위에 서 있다. 특히 그는 신학이 고통과 악의 현실 앞에서 지나치게 설명적이거나 합리화하는 언어로 나 아갈 때, 오히려 신앙과 인간 경험 사이의 긴장을 은폐하게 된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그 가 악과 고난의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도 결정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2. 삶의 모든 의미를 파괴하는 사건으로서의 악

 

달페르트의 악 이해에서 결정적으로 주목해야 할 점은, 그가 악의 문제를 단순히 악(Böse)이 아 니라 라틴어 malum7의 문제로 다룬다는 사실이다.

독일어의 일상 언어에서 Böse는 흔히 도덕적 판단 의 범주 안에서 이해되며, 선과 악의 대립 구조 속에서 파악된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는 악을 윤리 적 평가나 행위의 결함 문제로 환원할 위험을 내포한다.

달페르트는 이러한 환원을 비판하며8, 악을 보다 근본적인 신학적 차원에서 사유하고자 한다. 즉 그에게 악은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 사건이자, 근본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신앙에 반하는 도전으로 볼 수 있다.

달페르트가 말하는 malum은 도덕적 판단 이전의 차원, 곧 인간의 삶 전체를 무너뜨리는 경험의 차원을 가리킨다9.

 

     7 라틴어 malum은 도덕적 악뿐 아니라 고통, 불행, 재난, 결핍 등 악의 모든 차원을 포괄하는 폭넓은 개념으로, 자연적 악·도덕적 악·형이상학적 악을 모두 포함한다. Dalferth는 독일어 Böse가 의지나 도덕적 책임과 같은 협 소한 선입견을 불러일으켜 악을 행위 중심으로만 이해하게 만들 수 있다고 보고, 이러한 제한을 피하기 위해 malum이라는 비도덕화된 일반 개념을 의도적으로 사용한다. 이를 통해 그는 악을 도덕적 범주를 넘어선 현실 적 경험(Widerfahrnis, 당한 일)의 차원에서 파악하고, 인간이 실제로 겪는 의미 파괴와 고통의 구조를 해석학 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신학적 여지를 확보한다.

    8 달페르트는 임마누엘 칸트(Immanel Kant)의 사유를 전적으로 거부하기보다 비판적 수용을 한다. 그는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 전적으로 파악할 수 없는 인식적 한계를 인정한다는 점에서는 칸트와 접점을 가지지만, 악을 주 로 의지의 도덕성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칸트적 접근을 근본적으로 문제 삼는다. 칸트가 정언명령을 통해 인간이 타인을 목적 그 자체로 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국 악과 선을 인간 의지의 선의·악의로 환원할 수 있다는 전제를 함축한다. 그러나 Dalferth는 악한 의지가 선한 결과를 낳기도 하고, 선한 의지가 악한 결과 를 초래하기도 하는 실제적 경험들을 강조함으로써, 악을 의지의 결함으로만 환원하는 도덕철학적 모델이 충분 하지 않음을 드러낸다. 따라서 그는 악의 문제를 인간 의지의 성찰을 넘어서는, 더 근원적이고 해석학적인 신학 적 차원에서 규명하려고 한다.

    9 Ibid., 15-17을 참고하라. 

 

Malum은 단순히 ‘나 쁜 것’이나 ‘잘못된 행위’가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던 세계의 의미 구조가 붕괴되는 사건이다.

이 점에서 malum은 윤리적 범주라기보다 실존적·신학적 범주에 속한다.

인간은 malum을 경험할 때, 어떤 규범 위반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더 이상 이해 가능하지 않게 되었다는 근본적인 상실 을 경험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달페르트는 악을 형이상학적 실체나 독립적인 존재로 이해하는 모든 시도를 거부한다.

악은 그 자체로 인식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며, 언제나 매개된 방식으로만 드러난다.

즉 악은 현상학적이고, 관계적이며, 경험을 통해서만 파악된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달 페르트는 의도적으로 das Böse가 아니라 Böses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독일어 정관사(das)가 붙은 ‘das Böse’는 악을 하나의 고정된 실체로 상정하는 인상을 주지만, 달페르트가 이해하는 악은 그 러한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에게 악은 독립적인 대상이 아니라, 무엇인가가 특정한 상황 속에서 누군가에게 악으로 경험되고 판단된 결과이다.

따라서 “악의 문제에서 결정적인 것은 무엇(was)이 악인가가 아니라, 누가(wer), 어떤 맥락에서(in welchem Zusammenhang), 무엇(etwas)을 악으로(als böse) 경험하는가이다”10.

즉 그에게 악의 문제는 단수형으로 악에 대한 문제(das Problem des Bösen)가 아니라, 경험적이며 다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악한 경험들에 대한 수많은 문제들(viele Probleme der bösen Erfahrungen)이다11.

달페르트는 이 점에서 악의 현실성을 분명히 인정한다.

악은 단순한 주관적 느낌이나 환상이 아니라, 실제로 인간의 삶을 파괴하고, 의미를 붕괴 시키며, 삶의 방향과 지향을 상실하게 만드는 현실적 경험이다.

이러한 악의 경험이 가장 깊고 구체적으로 발생하는 장소가 바로 고난이다. 그러나 달페르트는 고난(Leiden)과 악(Böses)을 동일시하지 않는다12.

그는 고난과 악을 구별해야 한다고 보면서도, 이 둘을 서로 분리할 수 없는 사유의 연쇄로 이해한다.

모든 고난이 곧바로 악의 경험으로 이어지는 것 은 아니며, 고난 그 자체가 항상 악으로 인식되는 것도 아니다.

악은 그것이 경험되지 않는 곳에서도 ‘경험될’ 수 있으며, 경험된 것을 악으로 판단 하는 행위는 때로 당사자들이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악 을 고난으로 제한해서는 안 되며, 고난을 곧바로 악이라고 불러서도 안 된다. 오히려 고 난은 보다 신중하게 ‘악이 경험되는 장소(Ort der Erfahrung von Bösem)’, 곧 어떤 일 이 인간에게 일어날 때 그것이 악으로 경험될 수 있는 자리로 규정되어야 한다.

고난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malum (악)인 것이 아니라—적어도 항상, 모든 사람에게, 어디서나, 어떤 경우에나 그런 것은 아니다—고난을 통해 악이 경험될 수 있으며, 실제로 대부분 그 렇게 경험된다.13

 

     10 Ingolf Dalferth, Das Böse: Essay über die Denkform des Unbegreiflichen (Tübingen: Mohr Siebeck, 2010), 19.

     11 Dalferth, Malum, 9 이하를 참고하라.

    12 Dalferth, Leiden und Böses: Vom schwierigen Umgang mit Widersinnigem (Leipzig: Evangelische Verlagsanstalt, 2006), 28-35를 참고하라.

    13 Ibid., 28-30. 

 

어떤 고난은 삶의 일부로 통합될 수 있지만, 다른 고난은 인간의 삶 전체를 무너뜨리는 malum의 경험으로 전이된다.

달페르트는 여기서 두 가지 서로 다른 경험 방식을 구별한다. 하나는 고난 자체 를 악으로 경험하는 경우이며, 다른 하나는 고난 속에서 악을 경험하는 경우이다. 이 구별은 단순한 언어적 정교함이 아니라 신학적으로 결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고난 속에서 악을 경험하는 순간, 인간은 단지 고통을 겪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 삶의 의미 구조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자 체가 근본적으로 흔들리는 상황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고난에 대한 질문은 필연적으로 악에 대한 성찰로 나아가며, 다시 하나님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달페르트에게 고난과 악에 대한 담론의 목적은 그 원인을 설명하거나 제거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그 의 관심은 고난이라는 경험의 자리에서 악이 어떻게 현실로 드러나는지를 이해하고, 바로 그 자리에 서 하나님에 대한 질문이 어떻게 새롭게 제기되는지를 성찰하는 데 있다14.

 

      14 Ingolf Dalferth, “Warum widerfährt bösen Menschen Gutes?, in: Heiko Schluz (Hg.), Das Böse – die Scham – das Opfer: Drei religiöse Kernphänomene in philosophisch-theologischer Perspektive Leipzig (Leipzig: Evangelische Verlagsanstalt, 2023): 62-64. 

 

고난은 악을 경험하는 장 소이며, 동시에 하나님에 대한 질문이 가장 급진적으로 발생하는 자리이다.

 

3. 하나님의 현존(Gegenwart)과 임재(Präsenz)

 

달페르트의 악의 해석학에서 또 하나의 핵심은 하나님의 현존에 대한 개념적 구별이다. 그는 하 나님의 현존(Gegenwart)과 임재(Präsenz)를 동일시하지 않으며, 이 둘을 구별함으로써 고난 속에서 경험되는 하나님의 ‘부재’를 신학적으로 재해석한다.

이 구별은 악의 경험을 곧바로 하나님의 부 재나 무능으로 환원하지 않기 위한 중요한 신학적 장치이다.

달페르트에게 하나님의 현존(Gegenwart Gottes)은 존재론적 차원15의 개념으로, 인간의 삶과 세계가 성립될 수 있는 근본 조건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현존의 다양한 양태들을 구별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현존에 대해 말하는 신학적 언어 의 고유한 과제가 된다. 하나님과 현존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현존과 동 일하지 않으며, 현존은 하나님의 자기-현현(Selbstvergegenwärtigung)의 결과이다.16”

 

     15 이때 존재론적이라는 표현은 기존의 형이상학적 존재론의 입장에서 하나님을 이해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 히려 달페르트는 고정된 실체로서의 형이상학적 하나님 이해를 비판한다. 그에게 하나님은 언제나 사건(특히 사랑 의 사건)으로서, 현재하는 모든 것에 현존하는 분이며, 그 모든 것을 현재하게 하는 가능성과 현실성의 근거이다. 또한 현존이라는 표현은 달페르트에게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적 관계 개념 속에서 다뤄지는 것이 아니다. 그럴 경우 하나님은 인간의 시간 개념 안에 갇히게 된다. 따라서 하나님의 현존은 인간이 시간 속에서 스스로를 정향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하는 근본조건으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현존 없이 인간은 스스로를 이 세 계 가운데 과거, 현재, 미래 안에서 이해할 수 없다.

    16 Dalferth, Deus Praesens: Gottes Gegenwart und christlicher Glaube (Tübingen: Mohr Siebeck, 2021), 105. 

  

하나님의 현 존(Gegenwart)은 인간의 인식이나 경험 너머에 있는 것으로, 세계와 인간의 현실을 가능하게 하는 궁극적 조건이다.

인간이 무엇을 느끼거나 인식하든지와 무관하게, 하나님의 현존(Gegenwart)은 결 코 사라지지 않는다.

반면 하나님의 임재(Präsenz Gottes)는 인간의 경험과 인식의 차원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현존 을 의미한다.

이는 인간이 하나님을 삶의 의미와 방향의 근거로 경험하는 방식이다.

고난의 상황에 서 문제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현존(Gegenwart)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Präsenz)가 더 이상 경험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달페르트가 말하는 하나님의 자기 암흑화(Selbstverdunklung Gottes)는 바로 이 임재(Präsenz)의 상실을 가리킨다.

이러한 구별은 달페르트의 하나님 경험 개념 과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그는 하나님이 인간의 감각적 지각(Wahrnehmung)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은 어떤 대상처럼‘보이거나 느껴지는’방식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이를 부정할 때 하나님을 피조세계의 일부로 국한지어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게 될 위험이 있다.

오히려 하나님에 대한 경험(Erfahrung Gottes)은 인간이 세계와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이 변화되는 사건으로 나타난 다. 하나님은 경험의 대상이 아니라, 경험의 지평을 형성하는 분이다.

이 구별을 통해 달페르트는 인간이 하나님을 경험한다는 것을 부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언어와 경험으로 하나 님을 모두 다 알고, 표현할 수 있다는 오류를 경계하고자 한다. 즉 하나님은 인간의 언어로 표현된 ‘하나님’이라는 단어 자체에 국한되는 분이 아니다.

만약 가능한 경험의 대상이란 ‘창조된 것들’-즉 피조물- 뿐이라면, 하나님은 경험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창조주이시지 피조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창조가 모든 ‘경 험 가능한 것’(Erfahrbares)의 총체라면, 창조주는 경험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경험 과 경험 가능한 것의 가능 조건 그 자체이다.

이러한 전제에서 볼 때, ‘하나님의 경 험’(Erfahrung Gottes)은 더 이상 ‘하나님에 대한 경험’(genetivus objectivus)으로 이해될 수 없고, 오히려 하나님의 현존 안에서 자신과 모든 존재를 경험하는 하나의 방식 으로만 이해될 수 있다.

즉 경험 가능한 것의 지평 안에서 하나님은 ‘숨겨진 분’이시 다.

그러나 경험 가능한 모든 것을 하나님의 지평 안에서 경험하는 자는, 자신과 모든 것 을 창조로서 경험하게 된다.

따라서 결정적인 문제는 하나님을 지각의 ‘대상’(Objekt) 으로 이해할 것인가, 아니면 ‘주체’(Subjekt)로 이해할 것인가 - 즉 그분을 유신론적으 로 혹은 비유신론적으로 이해할 것인가- 가 아니다.

‘하나님의 현존 앞에서 자신을 이해 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물음이다.17

악과 고난의 경험 속에서 인간은 바로 이 해석의 지평을 상실하게 된다.

하나님은 여전히 현존 (Gegenwart)으로서 인간의 삶을 지탱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더 이상 하나님을 삶의 방향과 의미의 근거로 경험하지 못한다.

이때 인간이 경험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기 암흑화이며, 이는 신앙 의 부재가 아니라 신앙이 가장 급진적인 방식으로 시험받는 지점이다.

달페르트에게 신앙은 하나님 을 인식하거나 소유하는 능력이 아니라, 인식과 경험이 붕괴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해 열려 있는 삶의 태도이다.

따라서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Präsenz)를 경험하지 못하는 상황은 신앙의 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신앙이 설명과 확신 없이 지속되어야 하는 극단적인 조건을 드러낸다.

왜냐 하면 기독교인에게 하나님의 현존은 단순히 인간이 지각한다는 의미 너머에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 라는 구체적인 대상을 근거로 하기 때문이다.

즉 그분의 삶, 죽음, 부활을 통해서만 기독교적 하나 님의 현존에 대해 제대로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18.

 

“부활은 하나님의 행위이며, 바로 그 사실로 인 해 십자가 위에도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숨은 현존을 드러낸다.19”

 

     17 Dalferth, Gegenwart (2021), 182.

     18 Ibid., 108 참고하라.

     19 Ibid., 108. 

 

이 점에서 그의 악의 해석학은 신 정론적 해답 대신, 신앙의 구조 자체를 다시 묻도록 요구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달페르트가 제시하는 핵심 개념이 바로 Orientierung an Gott, 곧 하나님께로 향한 삶의 정향이다.

달페르트에게 신앙은 하나님의 현존을 확실하게 경험하거나 인식하는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Präsenz)가 경험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 열어 두는 태도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향한 삶의 정향(Orientierung an Gott)은 신앙이 모든 것을 이해하 거나 설명할 수 있는 능력에 근거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해 불가능성과 의미 붕괴의 현실 속에서 지 속되는 신앙의 구조를 가리킨다.

달페르트는 이 개념을 통해, 악과 고난의 경험이 곧바로 무신론이 나 신앙의 포기로 귀결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거부한다. 오히려 달페르트는 인간이 고난의 경험 중 하나님의 부재를 경험하는 것을 통해 “사랑하는 자와 사랑받는 자의 변증법”20이 현존과 부재의 변 증법을 심화시키는 사유로 발전한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분, 인간은 사랑받 는 자라는 관계성 안에서 하나님이 항상 사랑의 사건으로 현존하신다21.

하나님은 이 사랑 안에서 현 존하시지만, 결코 사랑받는 자 안에 완전히 녹아들지 않으며, 바로 이 자신의 사랑 행위로 인해 사 랑받는 자와 구별된다22.

따라서 하나님의 임재(Präsenz)가 은폐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현존 (Gegenwart)은 여전히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근본 조건으로 남아 있으며, 신앙은 바로 이 간극 속에 서 형성된다23.

이러한 하나님 정향성은 결코 내면적 태도나 개인적 신앙에만 머무르지 않는다24.

 

     20 Ibid., 143.

     21 Ibid., 143.

     22 하나님의 현존을 사랑의 사건으로 이해하는 달페르트의 신학적 입장은 에버하르트 융엘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23 Ibid., 105.

     24 Ingolf Dalferth, “Was Gott ist, bestimme ich!: Theologie im Zeitalter der ‘Cafeteria-Religion’”, Theologiesche Literaturzeitung 121/5 (1996), 415-430. 

 

달 페르트에게서 하나님 앞에 선 인간(Coram Deo)으로서의 삶은 언제나 세계와 타자 앞에서의 삶을 포 함한다.

하나님께로 향한 삶의 방향은 동시에 인간이 세계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타자에게 어떻 게 응답해야 하는가라는 윤리적·실천적 질문을 동반한다.

그러나 달페르트는 이러한 책임의 요청을 구체적인 행위 규범이나 정치적 실천으로 직접 전개하기보다는, 신앙의 방향성과 구조 차원에서 신 중하게 열어 둔다.

 

4. 한계

 

이러한 달페르트의 신학적 접근이 지닌 한계는, 고난의 현실 앞에서 신앙이 언어적 성찰에 머무 르지 않고 어떤 방식으로 책임과 연대의 실천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다시 묻게 한다는 점이다.

다 시 말해 악의 기원보다는 해석에 초점을 맞춘 그의 신학적 접근이 고난받는 이들에게 구체적 현실 속에서 어떠한 사회적·역사적 실천으로 형상화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신중하게 남겨 져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본 연구는 새로운 정치신학자들이 제시하는 고난받는 이들에 대한 책임 과 연대의 신학을 달페르트의 논의와 대화시키고자 한다.

 

Ⅲ. 새로운 정치신학: 도로테 죌레, 위르겐 몰트만, 요한 밥티스트 메츠

 

앞선 논의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달페르트의 악의 해석학은 악과 고난의 현실 앞에서 신학이 성 급하게 의미를 부여하거나 하나님을 변호하려는 언어로 나아가는 것을 비판하며, 그 한가운데서도 하나님께로 향한 삶의 정향(Orientierung an Gott)이 가능함을 사유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신학은 고난받는 이들의 구체적 현실 속에서 신앙이 어떠한 사회적·역사적 책임과 실천으로 형상화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취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달페르트의 해석학적 접근은 또 다 른 신학적 대화를 요청한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본 연구는 새로운 정치신학자들25로 불리는 도로테 죌레, 위르겐 몰트만, 요한 밥티스트 메츠의 신학을 함께 고찰한다.

 

     25 본 논문에서 사용하는 ‘새로운 정치신학’이라는 표현은, 20세기 독일의 법학자이자 정치사상가인 카를 슈미 트(Carl Schmitt, 1888–1985)가 제시한 정치신학 개념과의 명확한 구별을 전제한다. 슈미트에게 정치신학은 근대 국가 이론의 핵심 개념들이 세속화된 신학 개념이라는 진단에 기초하며, 주권, 결정, 예외 상태와 같은 정치적 범 주를 신학적 구조와의 유비 속에서 해명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그의 정치신학은 신학적 개념을 통해 정치 권력과 질서의 정당성을 분석하고, 궁극적으로는 주권적 결정의 구조를 드러내는 데 초점을 둔다. 반면, 도로테 죌레, 위르 겐 몰트만, 요한 밥티스트 메츠로 대표되는 새로운 정치신학은 제2차 세계대전과 아우슈비츠 이후의 역사적 단절을 신학적 출발점으로 삼으며, 정치 권력의 신학적 정당화나 주권 이론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들의 정치신학은 오 히려 권력과 질서의 신학화를 비판하며, 정치적·사회적 현실 속에서 발생하는 고난과 불의 앞에서 신앙이 어떤 책 임을 져야 하는지를 묻는다. 따라서 새로운 정치신학은 슈미트적 의미의 정치신학과 달리, 주권과 결정의 신학이 아니라, 기억, 연대, 책임의 신학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는 정치적 개념을 신학적으로 해석하는 작업이 아니라, 고난의 현실이 신학적 언어와 실천을 어떻게 비판적으로 중단시키고 재구성하는지를 묻는 신학이다. 바로 이 점에 서 ‘새로운’ 정치신학은 권력의 신학이 아니라, 고난받는 이들을 중심에 둔 비판적·해방적 신학으로 자리매김된다. 

 

이들은 서로 다른 신학적 배경과 방법론을 지니고 있지만, 악과 고난의 현실을 단순한 신학적 문제로 다루지 않고, 역사적 사 건과 사회적 책임의 맥락 속에서 사유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특히 이들의 신학은 고난을 개인의 신앙 문제로 환원하지 않고, 신앙 공동체와 사회 전체가 응답해야 할 현실로 이해한다는 점 에서 특징적이다.

본 연구가 이들을 ‘달페르트의 대안’이 아니라 ‘대화의 상대’로 설정하는 이 유는 분명하다. 새로운 정치신학은 달페르트가 경계했던 신학적 단순화나 도덕주의로 회귀하지 않으 면서도, 그의 해석학적 신학이 열어 둔 책임의 질문을 보다 구체적인 역사적·사회적 차원으로 확장 한다.

다시 말해, 이들의 신학은 하나님께로 향한 삶의 방향이 세계 안에서 어떠한 형태의 연대와 책임으로 드러나야 하는지를 묻는다.

 

1. 생애와 신학26

 

      26 세 명의 정치신학자들 각각의 생애와 신학을 개별적으로 상세히 소개하는 작업은 지면상의 이유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대신 본 장에서는 고난을 중심으로 이들의 신학적 문제의식이 만나는 접점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고 자 한다. 

 

죌레, 몰트만, 메츠는 모두 제 2차 세계대전과 아우슈비츠 이후의 역사적 현실을 신학적 사유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이들에게 악과 고난은 이론적으로 설명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신학이 반드시 응답해야 할 현실이었다.

특히 아우슈비츠 이후, 하나님에 대한 신학적 언어가 이전과 동일한 방식 으로 유지될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이들의 신학을 형성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새로운 정치신학은 전통적인 형이상학적 신 개념이나 개인적 경건 중심의 신앙 이해를 비판한다.

하나님은 고난의 현실과 무관하게 초월적 완전성 속에 머무는 분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고통받는 이들과 관 계 맺는 분으로 사유된다. 따라서 신앙은 더 이상 개인의 내적 확신이나 구원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 고, 사회적 불의와 고난의 현실 앞에서 어떠한 태도를 취하는가라는 질문으로 확장된다.

이 점에서 새로운 정치신학은 달페르트의 악의 해석학과 중요한 접점을 형성한다.

두 신학 모두 악과 고난의 현실을 성급하게 설명하거나 정당화하는 신학을 비판하며, 신앙의 언어가 현실을 왜곡하지 않도록 경계한다.

그러나 동시에 정치신학자들은 달페르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신앙이 고난의 현실 앞에서 침묵하거나 해석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신앙은 기억하고, 연대하며, 책임지는 실 천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2. 고난에 대한 연대와 책임의 신학

 

새로운 정치신학자들로 분류되는 죌레, 몰트만, 메츠의 신학은 공통적으로 고난의 현실을 신앙의 주변부가 아니라 중심부에 위치시킨다.

이들에게 고난은 신학적으로 설명되거나 영적으로 승화되어 야 할 대상이 아니라, 신앙이 반드시 응답해야 할 역사적·사회적 현실이다.

따라서 이들의 신학은 악과 고난을 개인의 내적 경험이나 신앙 시험의 문제로 환원하지 않고, 사회적·구조적 차원의 불 의, 착취, 억압의 현실 속에서 사유한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악은 더 이상 형이상학적 개념이 나 추상적인 도덕 범주로 이해되지 않는다.

새로운 정치신학은 바로 이 지점에서, 고난을 개인의 책 임이나 도덕적 실패로 돌리는 신학적 언어를 비판하며, 신앙이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도록 요구 한다.

고난은 더 이상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라는 질문으로만 다루어지지 않으며, “이 고난 의 현실 앞에서 신앙은 무엇을 요구받는가”라는 실천적 물음을 동반한다.

죌레의 신학은 이러한 정치신학적 문제의식을 여성신학과 해방신학의 관점에서 급진적으로 전개 한다.

죌레는 가부장적이고 전능주의적인 하나님 이해가 고난의 현실을 신학적으로 정당화하고, 사 회적 억압 구조를 유지하는 데 기여해 왔다고 비판한다27.

그녀에게 하나님은 고난을 허용하거나 명 령하는 초월적 통치자가 아니라,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 고통을 겪으며 그들의 해방을 요청하는 분이 다. 이러한 하나님 이해는 신앙을 개인적 경건이나 내면적 위로에 머물게 하지 않고, 불의한 구조에 맞서 고난받는 이들과 연대하고 저항하는 삶의 방식으로 이끈다28.

몰트만 역시 고난의 문제를 사회 정치적 차원에서 사유한다. 그의 십자가 신학은 하나님이 고난의 현실 바깥에서 이를 관조하는 분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고난을 겪으시는 분임을 강조한다.

몰트만에게 십자가는 개인 구원의 상징에 머무르지 않고, 고난의 현실 속으로 들어오신 하나님의 연대 선언으로 이해된 다29.

이러한 이해는 신앙을 역사와 사회로부터 분리시키지 않으며, 오히려 신앙이 사회적 책임과 정 치적 감수성을 지닐 것을 요청한다.

메츠의 정치신학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고난의 현실을 신학의 중 심에 두지만, 신정론 자체를 단순히 폐기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는 신정론이 전통적으로 제기해 온 질문을 유지한 채, 그 질문을 역사적 고난의 기억과 결합시킨다30.

 

   27 Dorothee Sölle, Leiden, Gesammelte Werke 4: Die Wahrheit macht euch frei (Freiburg: Herder, 2023), 45-49. 죌레의 단행본 Leiden은 1973년에 발간되었으나, 본 논문에서는 해당 내용을 죌레의 전집에서 인 용하였음을 밝힌다.

   28 Dorothee Sölle, Wählt das Leben, Gesammlte Werke 5: Wählt das Leben (Freiburg: Herder, 2023), 239-243. 죌레의 단행본 Wählt das Leben은 1980년에 발간되었으나, 본 논문에서는 해당 내용을 죌레의 전집에서 인용하였음을 밝힌다.

   29 Jürgen Moltmann, Der gekreuzigte Gott: Das Kreuz Christi als Grund und Kritik christlicher Theologie, Jürgen Moltmann Werke – Sonderausgabe 2 (Gütersloh, Gütersloher Verlaghaus, 2016), 263-267. 몰트만의 단행본 Der Gekreuzigte Gott은 1972년에 발간되었으나, 본 논문에서는 해당 내용을 몰트만 의 특별판에서 인용하였음을 밝힌다.

   30 Johann Baptist Metz, Memoria passionis: Ein provozierendes Gedächtnis in pluralistischer Gesellschaft, Johann Baptist Metz Gesammelte Schriften Band 4 (Freiburg im Breisau, Herder, 2017), 19-23. 메츠의 단행본 Memoria passionis는 2006년에 발간되었으나, 본 논문에서는 해당 내용을 메츠의 전집에 서 인용하였음을 밝힌다. 

 

 

메츠가 강조하는 ‘위험한 기억’(gefährliche Erinnerung)은 고난의 역사를 망각하거나 종교적으로 봉합하려는 모든 시도를 비 판한다.

이 기억은 과거의 고난을 현재의 삶 속으로 끌어와, 오늘의 사회와 교회를 비판적으로 성찰 하게 만드는 힘을 지닌다.

이러한 새로운 정치신학의 문제의식은 프랑크푸르트 비판이론31의 영향 속에서 더욱 분명한 형태 를 갖는다.

 

    31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1920년대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괴테대학교에서 시작된 비판적 사상 흐름이다. 이들은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가 겪은 혼란과 파시즘의 등장을 보며, 기존의 진보와 이성에 대한 믿음이 왜 붕괴되었 는지를 묻기 시작했다. 사회가 불공정해진 원인을 단순한 경제 문제로 환원하지 않고, 그 구조 자체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변화시키려 했다. 사상적 출발점은 칼 마르크스(Karl Marx)였지만, 경제뿐 아니라 문화, 정치, 인간의 의 식과 심리까지 함께 분석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막스 호르크하이머(Max Horkheimer)와 테오도어 아도르노 (Theodor W. Adorno)가 있다. 그들은 이성과 과학이 인간을 해방하기보다는 오히려 관리와 통제의 도구로 작동 하는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특히 대중문화가 즐거움을 제공하면서도 사람들의 비판적 사고를 약화시키는 현상 에 주목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문화산업’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며, 왜 사람들이 체제에 순응하게 되는지를 분석 했다. 또한 많은 이들이 권위주의와 독재에 저항하지 못하고 따르게 되는 사회적·심리적 조건을 깊이 탐구했다. 프 랑크푸르트 학파의 사유는 철학, 사회학, 심리학을 아우르며 현실 사회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였다. 그럼에 도 이들은 인간이 더 자유롭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갈 가능성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죌레, 몰트만, 메츠의 신학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지만, 공통적으로 사회적 현실 을 비판 없이 수용하는 인식 태도를 거부하며, 고난과 불의가 구조적으로 재생산되는 조건을 성찰하 고자 한다는 점에서 비판이론과 중요한 접점을 형성한다.

프랑크푸르트 학파가 지배적 사회 질서와 이데올로기가 인간의 고통을 정상화하거나 은폐하는 방식을 비판해 왔다면, 새로운 정치신학 역시 신학적 언어와 종교적 의미 부여가 고난의 현실을 정당화하거나 무력화하는 데 사용될 수 있음을 경 계한다.

이러한 비판적 태도는 특히 메츠의 정치신학에서 두드러진다.

그는 비판이론의 역사 인식에 영향을 받아, 고난의 기억이 진보의 서사나 화해의 언어 속에서 소거되는 것을 강하게 비판한다.

메 츠가 말하는 ‘위험한 기억’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예수께서 고난받는 이들과 연대하며 보여주 신 변혁적인 삶에 대한 기억이자, 고통을 야기하는 현재의 사회 질서와 신앙 실천을 비판적으로 중 단시키는 힘을 지닌 기억이다.

이 기억은 사회와 교회가 고난을 망각함으로써 유지해 온 안정과 질 서를 근본적으로 흔든다.

죌레와 몰트만의 신학에서도 이러한 비판이론적 문제의식은 각기 다른 방 식으로 작동한다.

죌레는 가부장적 권력 구조와 종교적 언어가 결합하여 억압을 정당화하는 메커니 즘을 비판하며, 신학이 이러한 구조를 비판적으로 해체하지 않을 경우 해방의 가능성을 상실한다고 본다.

몰트만 역시 사회적 불의와 고난을 개인의 신앙 문제로 축소시키는 신학을 비판하면서, 종말 론적 희망이 현재의 역사와 사회를 변혁하는 힘으로 작동해야 함을 강조한다.

이처럼 새로운 정치신학자들의 논의는 악을 개인의 악행이나 추상적 개념으로 환원하지 않고, 사 회적·구조적 불의의 현실 속에서 이해한다는 점에서 공통된 방향성을 지닌다.

이들의 신학에서 하 나님에 대한 신앙은 고난의 현실을 초월하거나 설명하는 태도가 아니라,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 머물 며 그 현실에 책임 있게 응답하는 삶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 지점에서 새로운 정치신학은 달페르트 의 악의 해석학과 중요한 긴장 관계를 형성한다.

달페르트가 악과 고난의 현실 앞에서 신학적 언어 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해석의 신중함을 강조했다면, 정치신학자들은 그러한 신중함이 침묵이나 무력함으로 전이되지 않도록 신앙의 사회적·역사적 책임을 전면에 제시한다.

다시 말해, 새로운 정 치신학은 달페르트가 열어 둔 책임의 질문을 사회적 구조와 역사적 현실 속에서 보다 분명하게 구체 화한다.

 

3. 한계

 

새로운 정치신학은 악과 고난의 현실을 개인의 신앙 문제로 축소하지 않고, 사회적·역사적 책임 의 문제로 확장함으로써 중요한 신학적 기여를 이룬다.

고난을 구조적 불의와 억압의 맥락 속에서 사유하고, 신앙을 연대와 실천의 요청으로 이해하는 이들의 신학은, 악의 현실 앞에서 침묵하거나 성급하게 의미를 부여해 온 전통적 신학의 한계를 비판적으로 드러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정치신학적 접근 역시 몇 가지 신학적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 새로운 정치신학은 신앙의 실천 적 차원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신학이 도덕적 요구나 정치적 과제로 환원될 위험을 지닌다32.

 

      32 Günter Thomas, “Der Triumph des Homo Faber. Kritische Beobachtungen zu Dorothee Sölle”, Herder-Korrespondenz, vol. 77/4 (2023): 19-21. 

 

고난받 는 이들에 대한 연대와 책임이 신앙의 핵심으로 강조될수록, 신앙은 점차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 는 윤리적 명령의 언어로 압축될 수 있다.

  둘째, 정치신학은 사회적 불의와 억압 구조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신학이 특정한 이념이나 정치적 프로그램과 과도하게 결합될 가능성을 안고 있다.

특히 고난의 현실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개입하려는 열망은, 신학적 언어가 상황에 따라 도구화되거나 단 순화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때 하나님에 대한 신학적 사유는 비판의 기준이 되기보다는, 이 미 설정된 정치적 판단을 뒷받침하는 수단으로 기능할 위험이 있다.

 

Ⅳ. 결론: 해석과 실천의 균형을 이루는 신학을 위하여

 

본 연구는 악과 고난의 현실 앞에서 기독교 신앙이 어떻게 하나님을 말할 수 있으며, 그러한 신 앙이 오늘의 세계 속에서 어떤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하였다.

이 질문은 단순한 이론적 문제가 아니라, 고난의 현실 속에서 신앙이 여전히 의미 있고 지속 가능할 수 있는가라는 실 존적 요청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본 연구는 달페르트의 악의 해석학과 죌 레, 몰트만, 메츠로 대표되는 새로운 정치신학을 대화의 관계 속에서 고찰하였다.

달페르트의 신학 은 악을 malum의 경험으로 이해함으로써, 악을 설명하거나 객체화하려는 신정론적 사고를 비판하고, 고난의 현실을 훼손하지 않는 신학적 언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의 해석학은 하나님의 현존 (Gegenwart)과 임재(Präsenz)의 구별을 통해, 고난 속에서도 신앙이 설명이나 확신 없이 하나님께로 삶의 방향을 열어 둘 수 있음을 사유하게 한다.

반면 새로운 정치신학은 악과 고난을 개인의 신앙 문제로 환원하지 않고, 사회적·구조적 불의와 억압의 현실 속에서 이해한다.

이들에게 신앙은 고난 을 해석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고난받는 이들과의 연대와 책임으로 드러나야 하는 삶의 형태이다.

이들의 신학은 신학적 언어가 고난을 미화하거나 정당화하는 기능으로 전락할 위험을 비판하며, 메 츠가 말하는 ‘위험한 기억’을 통해 신앙과 사회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게 하는 힘을 강조한다.

그러 나 새로운 정치신학 역시 신앙이 윤리적 요구나 정치적 과제로만 환원될 위험을 내포하며, 달페르트 의 해석학은 이러한 위험을 견제하는 중요한 신학적 자원을 제공한다. 이 지점에서 분명해지는 것 은, 악과 고난 앞에서 책임 있는 신학을 위해 해석학적 성찰과 정치적·윤리적 실천 사이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정치신학이 강조하는 저항과 연대의 실천과, 달페르트가 제시하는 악의 해석학 은 서로 배타적인 선택지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긴장 관계 속에서 함께 사유되어야 한다. 달페르 트의 해석학적 입장은 자칫 신앙을 개인의 내면적 영역으로 축소시키는 접근으로 오해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는 신앙의 사유화를 비판하며, 기독교가 공적 공간에서 다시 자신의 목소리를 회복 해야 함을 분명히 강조한다.

그에게 신앙은 개인의 구원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현존에 대한 경험 에서 비롯되어 자기 자신과 세계를 새롭게 이해하는 삶의 방향성이다. 이러한 하나님 정향성은 필연 적으로 고난받는 이들과의 연대와 책임을 포함한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는 서구 신학을 단순히 수용하는 작업에 머무르지 않고, 비서구적 맥락에서 한국 개신교의 현실을 성찰하고 그와 대화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오늘날 한국 사회가 바라보는 개 신교회의 이미지가 극우화된 종교로 되어버린 듯한 씁씁한 현실 앞에서, 근본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기독교적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성찰없는 신앙은 맹목적이고, 실천없는 신학 은 공허하게 들릴 수 있다.

따라서 배타적이고 협소한 하나님 이해를 넘어, 악과 고난의 현실 앞에 서 성급한 해답 대신 책임 있는 언어를 선택하고, 고난받는 이들과 연대하는 교회를 사유하는 데 이 연구가 하나의 신학적 기여가 되기를 바란다.

이러한 논의는 완결된 답변이 아니라, 악과 고난 앞에 서 하나님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계속해서 신학적으로 성찰하도록 초대하는 출발점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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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찬1] 김효석/ 한남大

 

박제연 박사님(이하 발표자)의 발표문은 독일의 조직신학자이자 종교철학자인 달페르트의 악의 해석학 과 죌레, 몰트만, 메츠의 새로운 정치신학 간의 대화를 통해 악과 고난의 문제에 대한 “역동적이며 언어 에 민감하고 동시에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1 신학적 관점을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발 표자께서 잘 소개해 주셨듯이, 달페르트는 해석학적이며 언어 분석적인 관점에서 악의 문제에 접근하면 서 여러 가지 중요하고 새로운 통찰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는 악을 Böse가 아닌 malum의 문제, 즉 “도덕적 판단 이전의 차원, 곧 인간의 삶 전체를 무너뜨리는 경험의 차원”의 문제로 다루며, “보다 근본 적인 신학적 차원에서 사유하고자” 합니다. 달페르트는 악의 문제에 접근함에 있어서 “악의 실체적 존 재 여부라는 형이상학적 질문에서,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경험하고 의미화하는가 라는 해석학적 문제 로 초점을 전환”합니다.

다시 말해 악의 문제를 “악이 왜 존재하는가”라는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문 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삶의 정향”의 문제, 즉 “악의 경험 한가운데서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을 향 한 삶의 방향을 유지할 수 있는가”라는 실천적이고 실존적인 문제로 접근합니다.

특히 “악의 문제에서 결정적인 것은 무엇이 악인가가 아니라, 누가, 어떤 맥락에서, 무엇을 악으로 경험하는가이다”라는 그의 주장은 달페르트 특유의 분석적 사고를 잘 보여줍니다.

발표자께서는 달페르트의 악의 해석학이 구체적 현실에서의 사회적·역사적 실천의 차원을 충분히 다 루지 않음을 한계로 지적하며 이 부분에 있어서 죌레, 몰트만, 메츠의 정치신학이 좋은 대화 상대가 될 수 있음을 제안합니다.

더 나아가 단순히 정치신학이 달페르트의 해석학을 보완하는 차원이 아니라, 양 자 간의 대화가 해석학적 성찰과 정치적·윤리적 실천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고, 하나님 정향성과 저항과 연대의 실천을 함께 아우르는 책임 있는 신학으로 이끄는 상호보완적인 대화가 될 수 있음을 제안합니 다.

사실 달페르트가 저의 지도교수이시긴 하지만, 부끄럽게도 저는 그의 사상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합니 다.

박사 과정 동안 다른 학자들에 대해서는 선생님과 함께 공부했지만, 정작 선생님 자신의 사상에 관 해서는 공부할 기회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리고 달페르트의 주요 저서 중 영어로 쓰여지거나 번역된 것 들이 일부 있긴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은 독일어로만 되어있다는 점도 저에게는 큰 진입장벽이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우리 선생님은 도대체 뭐 하시는 분인가?”라는 궁금증이 있었는데, 이렇게 발표자께서 달 페르트에 대한 학위 논문을 쓰셨다니 정말 반갑고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그래서 이 논찬의 시간을 발 표자의 논문을 평가하기보다는 달페르트의 사상에 대한 저의 궁금증을 발표자를 통해서 해소하기 위한 기회로 활용해 보고자 합니다. 1. 먼저 신진학자 발표회인 만큼, 발표자께서 이 학위 논문을 작성하시게 된 배경을 이야기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왜 악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는지, 또한 한국이나 미국에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달 페르트의 사상에 관심을 가지게 되신 계기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1 논찬문의 모든 인용문은 발표문의 인용임.

 

2. 악의 문제에 대한 달페르트의 논의를 읽으며 한편으로 많은 부분 공감이 되면서도, 다른 한편 제 안 에 계속해서 드는 질문은 “어떻게?” “어떻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악으로 인해 세계의 의미 구조가 붕괴되고 자신의 삶 전체가 무너진 사람이, 어떻게 여전히 신뢰와 희망 안에서 하나님을 향해 자신을 열어 둘 수 있을까?

끔찍한 악(horrendous evil)을 경험하여 신앙의 언어를 잃어버린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향한 삶의 정향을 유지할 수 있을까?

실제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 것 인가? 기도를 열심히 함으로?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묵상함으로? 공동체의 도움을 통해서?

사실 악의 문제로 인해 모든 의미 구조가 붕괴된 상태에서는 저러한 신앙적 행위들이 다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텐데,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도 “자신의 신앙을 계속해서 성찰하고 실천적으로 형성해 가는” 것이 가능할까? 전적인 하나님의 주도권과 은혜에 의해서만 가능할까? 달페르트는 이에 대해 뭐라고 답하는 지 궁금합니다. 물론 “사회적 불의와 고난을 개인의 신앙 문제로 축소”해서는 안 되겠지만, 악을 경험한 한 개인에게는 이 문제가 그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3. 하나님의 현존과 임재의 구분 관련하여, 달페르트는 “창조주는 경험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경험 과 경험 가능한 것의 가능 조건 그 자체이다.

‘하나님의 경험’은 더 이상 ‘하나님에 대한 경험’으로 이해 될 수 없고, 오히려 하나님의 현존 안에서 자신과 모든 존재를 경험하는 하나의 방식으로만 이해될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현존 관련해서는 맞는 말이지만, 신자들에게는 여전히 하나님의 임 재의 차원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 하나님이 “세계와 인간의 현실을 가능하게 하는 궁극적 조건”이고 “경험의 지평을 형성하는 분”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신자들에게 하나님은 경험과 체 험의 대상, 즉 사랑과 경외의 대상이며, 예배의 대상,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기도 합니다. 발표자께서 “하나님은 경험의 대상이 아니라, 경험의 지평을 형성하는 분”이라는 달페르트의 주장이 “인간이 하나 님을 경험한다는 것을 부정하기 위한 것”은 아니라고 하셨지만, 아무래도 발표문의 논의가 하나님의 현 존 위주로 진행되다 보니, 달페르트가 임재 차원의 하나님에 대해서 추가로 어떻게 설명하는지 궁금합 니다. 달페르트의 신학에서 현존 차원의 하나님(경험의 지평)과 임재 차원의 하나님(경험의 대상)은 어떻 게 조화 내지 종합되고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4. 발표자께서 “고난 자체를 악으로 경험하는 경우”와 “고난 속에서 악을 경험하는 경우”의 구별이 신 학적으로 결정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하셨는데, 이 두 경우의 차이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으 실까요? 가능하다면 예를 들어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5. 발표자께서 달페르트의 신학과 정치신학의 대화를 통해 한국 개신교의 맥락 속에서 하나님과 악의 문제에 대한 논의를 신학적으로 새롭게 갱신하는 데 기여하고자 하신다고 하셨는데, 발표문에서는 이 한국의 맥락이 결론의 마지막 단락에서만 잠깐 언급되고 충분히 다뤄지지 않아 아쉽게 생각합니다. 한 국 개신교의 맥락 속에서 “하나님 이해와 악의 문제가 이미 첨예하게 얽혀” 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 지, 마지막에 언급하신 한국 개신교의 극우화 문제가 어떻게 악의 문제와 연관되는지, 발표자께서 파악 하고 계신 한국 개신교의 문제는 어떤 것이며, 발표자의 논문이 이 문제에 어떻게 공헌할 수 있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저의 선생님의 사상을 소개해 주시는 귀한 연구에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앞으로 종교언어, 기독론, 해석학, 가능태의 우선성 등 달페르트의 다른 주요 사상들에 관 해서도 연구와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또한 다른 귀한 연구를 통해서도 한국 신학계에 크게 기여해 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발표문을 읽고 논찬을 준비하며 그동안 구매만 하고 책장에 처박아두었던 Malum을 꺼내서 읽어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오늘 집에 가서 달페르트 교수님께 오랜만에 이메일을 드려야겠 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기회를 제공해 주신 박제연 박사님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제67차 신진학자 학술발표회자료 (2026. 1.17)(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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