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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야기

하나님의 불가고통성(Impassibility)1) 교리의 현대적 타당성 논증: James E. Dolezal의 “Strong Impassibility”를 중심으로/ 정병찬.한국침례신학大

 

Ⅰ. 서론

 

본 연구는 20세기 중반 이후 지속적으로 도전받고 있는 하나님의 불가 고통성(impassibility)을 그 주제로 하되, 현대 신학 논의에서 불가고통성 교리가 갖는 신학적 정당성의 핵심 근거들을 제시함으로써 이 교리가 현 대에도 여전히 성경적 및 신학적으로 타당한 교리임을 논증하는 데 목적 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하나님의 불가고통성 교리는 현대 신학계에서 전 례 없는 도전에 직면하였다. 가톨릭 신학자 토마스 웨이넌디(Thomas G. Weinandy)는 신적 불가고통성은 “하나님이 완전하게 사랑하신다는 것을 보장하기 위한 절대적 전제요 기본 원칙(prolegomena)”이라고 주장하며 전통적 불가고통성 교리를 옹호한다.2)

반면 전쟁의 참상을 직접 경험한 독일의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 1926-2024)은 홀로코스 트(Holocaust)의 극심한 고통을 신학적 성찰의 출발점으로 삼아 “고통당 할 수 없는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악마(demon)로 만드는 것”이라며 불가고통성 교리에 대해 근본적 문제를 제기하였다.3)

몰트만의 주장은 전쟁 세대의 실존적 경험에 바탕을 둔 강력한 수사적 호 소력을 지니고 있었다. 정교한 신학적 논증보다 감정적 호소가 더 큰 영향 력을 발휘하는 시대적 환경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트만의 입장에 동조 하였다.4)

 

  1) 영어 단어 ‘impassibility’는 한국어 신학 문헌에서 고통당할 수 없는 성질(‘고난불가능성,’ ‘무고 통성,’ ‘불가고통성’), 피동적일 수 없는 성질(‘무감동성,’ ‘불가침성,’ ‘비피동성’)을 나타내는 다양 한 용어들로 번역되어 사용되고 있다. 이 용어는 좁은 의미에서는 하나님이 고통당하실 수 없다는 뜻으로, 넓은 의미에서는 하나님이 외부 요인에 의해 감정적 변화를 겪지 않으신다는 부정신학적 (apophatic) 표현으로 이해될 수 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 즉 그리스도의 인간적 특성이 두드러지는 것과 대비하여 하나님의 신적 본성이 존재론적으로 고통 당할 수 없음을 변증하기 위해 ‘impassible’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본 연구는 이러한 역사적 맥 락을 존중하여 ‘불가고통성’을 기본 번역어로 채택하되, 현대 신학 논의가 주로 하나님의 감정과 외 부 요인에 의한 내적 변화의 문제를 다룬다는 점을 고려하여 맥락에 따라 ‘무감동성’을 병기하거나 사용한다. 구체적으로,   (1) 외부 자극에 의한 고통의 수동성을 논할 때는 ‘고통 불가한/고통 가능한’ (impassible/passible)으로, (2) 외부 요인에 의한 상태 변화(감동[感動], 즉 외부 영향을 받아들여 [내적으로] 움직임)를 논할 때는 ‘무감동한/유감동한’으로 번역한다. ‘무감동성’이란 ‘외부 자극을 감 수하여 움직이지 않음’을 뜻하며, 이는 ‘impassibility’의 어원인 라틴어 ‘파씨오’(passio, 겪다, 경험 하다)와 헬라어 ‘파토스’(pathos)의 의미를 정확히 반영한다. 특히 하나님의 사랑이 피조물의 행위나 특성에 반응하여 생기는 것인가를 논할 때는 후자의 번역이 신학적으로 더 정확한 뉘앙스를 전달한다. 

  

     2) Thomas G. Weinandy, Does God Suffer? (Notre Dame: University of Notre Dame Press, 2000), 163.

     3) Jürgen Moltmann, The Crucified God: The Cross of Christ as the Foundation and Criticism of Christian Theology, trans. R. A. Wilson and John Bowden (Minneapolis, MN: Fortress Press, 1993), 274. 몰트만의 원문 전체는 다음과 같다: “Any other answer would be blasphemy. There cannot be any other Christian answer to the question of this torment. To speak here of a God who could not suffer would make God a demon.”(그 어떤 다른 대답 도 신성모독이 될 것이다. 이 고통의 문제에 대해서는 다른 기독교적 대답이 있을 수 없다. 여기서 고통당할 수 없는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악마로 만드는 것이다)

    4) 고통 가능한(passible) 신관(神觀)의 현대적 확산에는 학술적 논증을 넘어선 시대적 정서가 작용하 고 있다. 20세기 초 영국의 신학자 버트런드 브라스넷(Bertrand R. Brasnett, 1893-1988)은 이미  “사람들은 고통이나 아픔으로부터 면제되어 고난받지 않는 하나님이 고난받는 인류에게는 거의 가 치 없는 하나님이라고 느끼고 있으며, 아마도 점점 더 그렇게 느낄 것이다”라고 예견했다(강조는 연 구자의 것이다). B. R. Brasnett, The Suffering of the Impassible God (London: SPCK, 1928), ix, Weinandy, Does God Suffer?, 3에서 재인용. 웨이넌디는 이러한 변화가 단순히 신학적 이론의 차원이 아님을 지적하면서, 현대 세대가 경험한 극심한 고난이 “그 고난을 목격했을 뿐만 아니라 실 제로 그 고난에 참여하신 하나님을 간절히 부르짖는 심리적 환경과 감정적 상태를” 만들어 냈다고 분석한다(강조는 연구자의 것이다). Weinandy, Does God Suf fer?, 5. 물론 몰트만의 ‘고통 가능한 신관’ 담론이 단순한 감정적 호소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교부들과 랍비들의 주장, 그리고 성경 신학적 근거들을 종합하여 자신의 논증을 나름의 일관성을 가지고 구축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불가고통성은 “1945년 이래로 전통적인 속성들 가운데 가장 도전받는 속성”이 되었다.5)

이처럼 현대 신학계에서 제기되는 도전들이 결코 가볍지 않은 상황에 서, 일면 반(反)직관적으로 보이는 불가고통성 교리는 과연 부정되고 폐 기되어야만 하는 교리인 것인가? 본 연구자는 이러한 현대적 도전들의 신 학적 진정성을 인정하면서도, 전통적 불가고통성 교리를 옹호하는 입장에 동조하여 왜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불가고통성이 여전히 긍정되어야 하 는지를 논증하고자 한다. 이를 위하여 우선적으로 하나님의 불가고통성 이 무엇인지, 그 정의를 정밀하게 규명한다. 이후 불가고통성 교리가 현대 에 이르러 도전받게 된 배경 및 주요 원인을 살피고, 마지막으로 현대 개 혁파 신학계 내에서 고전적 유신론(Classical Theism)의 형이상학적 토대 를 정교하게 복원하는 일에 주요 공헌을 한 인물인 제임스 돌레잘(James E. Dolezal)이 Divine Impassibility: Four Views of God’s Emotions and Suffering(2019)에 기고한 “Strong Impassibility” 논의를 중심으로 불가고 통성 교리가 긍정되어야 하는 핵심 논거 두 가지를 제시한다.6)

 

     5) Stephen R. Holmes, “하나님의 속성,” 󰡔현대신학 지형도: 조직신학 각 주제에 대한 현대적 개관󰡕 , eds. Kelly M. Kapic and Bruce L. McCormack, 박찬호 역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6), 119.

    6) 하나님의 감정과 고통에 관한 네 가지 견해의 기고자는 제임스 돌레잘(강한 불가고통성[Strong Impassibility]), 다니엘 카스텔로(Daniel Castelo; 조건적 불가고통성[Qualified Impassibility]), 존 페컴(John C. Peckam; 조건적 고통가능성[Qualified Passibility]) 그리고 토머스 제이 오어드 (Thomas Jay Oord; 강한 고통가능성[Strong Passibility])이다. 불가고통성을 지지하는 가운데 나 타나는 돌레잘과 카스텔로의 견해 차이는 신적 불가고통성과 신적 주권의 관계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돌레잘을 비롯해 역사적으로 불가고통성을 지지해 왔던 고전적 유신론자들은 하나님의 주권이 하나님의 불변성 및 불가고통성이라는 신적 본질로부터 필연적으로 기인한다고 보 는 반면, 카스텔로와 그에게 영향을 준 몰트만을 비롯한 현대의 조건적 불가고통성 지지자들은 하 나님이 주권적 자유 안에서 자신의 불가고통성을 제한하실 수 있고, 실제로 경륜 가운데서 제한하 셨다고 본다. 더불어 돌레잘의 불가고통성 견해를 수식하는 단어로 ‘Strong’이 붙은 이유는, 돌레 잘이 하나님의 단순성(divine simplicity)과 순수 현실태(pure actuality)와 같은 고전적 유신론의 주요한 형이상학적 개념을 신적 불가고통성 교리와 불가분 관계에 있는, 상당히 중요한 교리적 토 대로 여기고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돌레잘과 카스텔로가 보이는 견해 차의 근본 원인에 대한 상세 한 분석은 James E. Dolezal, All That Is in God: Evangelical Theology and the Challenge of Classical Christian Theism,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7), 2-35를 참고하라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불가고통성 교리가 현대 신학에서도 여전히 성경적 및 신학 적으로 타당한 교리임을 밝히고자 한다.

 

Ⅱ. 하나님의 불가고통성(무감동성)에 대한 정의

 

조엘 비키(Joel R. Beeke)는 자신의 조직신학 저서에서 무감동성 (impassibility) 교리에 관한 논의를 시작하며, “개혁신학에서 무감동성은 하나님의 하나의 별개 속성이 아니라, 정서(affection)와 관련된 창조주 의 불변성(immutability)”을 가리킨다고 말한다.7) 비키의 말을 달리 표현 하면, 무감동성은 정서의 측면에서 이해된 불변성이다. 불변성이 하나님 의 “존재와 완전함, 목적, 약속에” 있어서 변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라 면,8) 무감동성은 보다 구체적으로, 정서와 관련해 하나님이 변화를 겪지 않으심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불변성 과 무감동성 모두 부정의 방식(via negationis)으로 표현되는 하나님의 속 성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부정적 표현 방식은 하나님의 본질을 직접적으 로 규정하기보다는, 피조물적 한계로부터 하나님을 구별하는 기능을 수행 한다.9)

 

    . 7) Joel R. Beeke and Paul M. Smalley, Reformed Systematic Theology, Volume 1: Revelation and God (Wheaton, IL: Crossway, 2019), 840.

      8) Wayne Grudem, Systematic Theology: An Introduction to Biblical Doctrine, 2nd ed., 박세혁 역, 󰡔조직신학1󰡕 (서울: 복있는사람,2024), 297.

      9) “부정의 신학”(via negativa)에 대한 논의에서 최종원은 이것이 기독교 신학 체계 구축을 위해 활 용된 헬라 철학, 보다 구체적으로는 플라톤주의의 철학적 방법론 가운데 하나였다고 분석한다. 그 의 견해에 따르면, 기독교 신학의 체계적 형성은 헬라 철학적 토대 위에서 이루어졌으며, 이는 초 기 기독교가 부정신학이라는 철학적 접근법을 차용하여 신론을 발전시켰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최종원, 󰡔초대교회사 다시 읽기󰡕 (서울: 홍성사, 2018), 165; 크레이그 바르톨로뮤(Craig G. Bartholomew)는 플라톤주의의 “부정철학”(apophatic philosophy)을 가리켜 “하나님을 아는 일을 돕는 철학”이라고 평가한다. Craig G. Bartholomew and Michael W. Goheen, Christian Philosophy: A Systematic and Narrative Introduction, 신국원 역, 󰡔그리스도인을 위한 서양 철 학 이야기󰡕 (서울:IVP, 2019), 132. 

 

이는 하나님에 대한 인간 인식의 한계를 겸손히 인정하면서도 그분의 초월성을 보호하려는 신학적 의도를 반영한다. 요컨대 무감동성 개 념의 핵심은 하나님이 무정하거나 냉담하시다는 데 있지 않고, 오히려 피 조물인 인간과 달리 외부 상황이나 조건에 의해 정서적 동요를 겪지 않으 신다는 점에 있다. 이러한 선이해를 가지고 불가고통성(무감동성)에 대한 웨이넌디의 정 의를 살펴보자. 그는 전통적 불가고통성을 옹호하는 자신의 저서, Does God Suffer?(2000)에서 ‘하나님이 고통 가능하시다’(God is passible)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인간적 격정(passions)과 그러 한 격정의 효과를 부정하는 것”을 뜻한다고 하며, “그러한 격정”은 “어떤 식으로든 하나님으로서의 그분을 쇠약하게 하거나 무력하게 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10)

또한 다른 곳에서는 더욱 핵심적으로 무감 동성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무감동성이란, 하나님이 내적 감정 상태의 변화를 경험하지 않으신다고 말해지는 신적 속성인데, 이는 그 변화가 내 부로부터 하나님 자신에 의해 자유롭게 행해진 것이든 인간 존재 및 피조 질서와의 관계와 상호작용에 의해 야기된 것이든 마찬가지이다.”11)

 

     10) Weinandy, Does God Suffer?, 111.

     11) Thomas G. Weinandy, “Impassibility of God,” in New Catholic Encyclopedia, 2nd ed. (Washington, DC: Thomson/Gale, 2003), 7:357, James E. Dolezal, “Strong Impassibility,” in Divine Impassibility: Four Views of God’s Emotions and Suffering, eds. Robert J. Matz and A. Chadwick Thornhill (Downers Grove: InterVarsity Press, 2019), 13에서 재인용. 

 

앞선 두 정의 모두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차이점 및 불연속성을 드러내는 진술 이지만, ‘하나님은 인간과 달리 감정이 전혀 없으시다’라고 ‘적극적으로’ 말하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오히려 격정을 대함에 있어 차이가 있음을 지 적한다. 요컨대 하나님의 불가고통성(무감동성)은 하나님이 단순히 물리 적으로 고통당하실 수 없다는 차원을 넘어, 외부 상황이나 내부 결정에 의 해서도 감정 상태의 변화를 경험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신학적 개념이다. 이것이 역사적으로 이해되고 인정되어 온 신적 불가고통성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이다.

 

Ⅲ. 불가고통성(무감동성) 교리가 현대에 도전받는 이유

 

불가고통성(무감동성)에 대한 정의를 앞선 장에서 먼저 다룬 이유는 오늘날 무감동성 교리에 대한 도전 및 반대가 주로 이 교리에 대한 오해와 잘못된 이해로부터 기인하기 때문이다. 이는 일면 신적 불변성을 비(非) 활동성으로 이해하며 비판한 현대 신학자들의 모습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들은 아예 있지도 않았던 허수아비를 세워놓고서, 그 허수아비 를 쓰러뜨림으로써 기존의 견해를 논박했다고 주장한다. 역사신학자 리 처드 멀러(Richard A. Muller)는 현대 신학자들이 범하는 이러한 논리적 오류의 한 형태를 두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의 비피동[무감동]성 에 대한 교리를 마치 이 교리가 스토아주의 개념의 무비판적인 도입에 지 나지 않는 것처럼 비판하는 현대의 저자들은 이미 끝난 일을 다시 문제 삼 는 것이 아니라 아예 없던 일을 문제 삼고 있다.”12)

 

     12) Richard A. Muller, Post-Reformation Reformed Dogmatics, Vol. 3: The Divine Essence and Attributes, 김용훈 역, 󰡔하나님의 본질과 속성󰡕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4), 500. 현대 신학 계에서 무감동성 교리를 비판하는 자들이 취하는 논리 중 하나는 이 교리가 스토아주의의 무관심 한 신관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결과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에 대해서는 신중한 재검 토가 필요하다. 스토아 철학에서 ‘아파테이아’(apatheia)란 “세상의 염려로부터 자유로운 완전한 평온의 상태” 혹은 “외부의 어떤 것들로부터 결코 영향을 받지 않아 마음의 고요한 평정을 유지하 는 상태”를 가리켰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이런 “정신적·영적으로 완전한 초연함(detachment)” 및 “최고선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다양한 정신 수련법을 개발했다. 정제기, “역주,” 󰡔바울과 철학 의 거장들: 그리스-로마 맥락에서 바울 읽기󰡕 , eds. Joseph R. Dodson and David E. Briones, 정제기 역 (서울: 감은사, 2024), 322, 323. 이러한 스토아적 사고가 추구하는 기본적 태도는 오늘 날 우리가 사용하는 영단어 ‘apathy,’ 즉 ‘냉담함’이나 ‘무관심함’을 뜻하는 단어로부터 엿볼 수 있 는데, 제럴드 브레이(Gerald Bray)는 바로 이런 “냉소적인 의미” 때문에 학자들이 ‘아파테이아’ 개 념을 하나님을 설명하는 데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Gerald Bray, The Doctrine of God, 김재영 역, 󰡔신론󰡕 (서울: IVP, 1999), 115-16. 하지만 기독교 전통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무감동성은 이러한 스토아적 무관심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이 점을 명확히 보여주는  연구로 이병길의 논문을 들 수 있다. 그는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354-430)와 토마스 아퀴 나스(Thomas Aquinas, 약 1225-1274)가 이해한 무정념(apatheia) 개념을 분석하여, 기독교적 무정념이 몰트만이 비판하는 “감정의 결여”나 “사랑 없음”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의미임을 입증한 다. 이병길, “타자를 향한 완전한 사랑: 몰트만의 ‘무정념’ 하느님 비판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와 아퀴나스를 통한 재고찰” (석사학위논문, 성공회대학교 신학대학원, 2024), 46.

 

이런 맥락에서 불가고통성(무감동성) 교리를 가리켜 그것이 그리스 철학의 영향으로 형성된 교 리라고 하는 식의 주장은 명백히 재검토가 필요하다.13)

초대 교회 교부들 은 당시의 철학적 개념들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성경의 가르침 을 기준으로 유용한 요소들만 선별적으로 받아들여 활용하였다.14)

이는 마치 건축가가 기존 자재들을 사용하되, 자신의 설계도에 따라 새로운 건 물을 짓는 것과 같다. 따라서 불가고통성 교리는 헬라 철학의 무비판적 수 용이 아니라, 성경이 증언하는 하나님의 완전성과 초월성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신학적 도구로 발전된 것이다.15)

 

     13) 불가고통성과 관련하여 기독교 신학, 특히 신론이 헬라 철학으로 인해 사변화되었다는 테제에 대 한 논박으로는 정병찬, “Jürgen Moltmann의 하나님의 고통가능성에 대한 비평적 고찰: 신학적 전제와 방법론을 중심으로” (석사학위논문, 한국침례신학대학교, 2025), 21-34를 참고하라.

     14) 웨이넌디는 교부들의 신학 방법론을 분석한 후 중요한 결론에 도달한다. 그에 따르면 교부들이 당 시 철학의 용어와 개념들을 활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목적은 본질적으로 변증적이고 신학적이 었다고 평가한다. 즉 “성경의 계시가 철학의 가르침과 양립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이거나, “철학적 공격으로부터 기독교를 변증하기 위해서”이거나, “당면한 어떤 질문들에 대해 기독교가 철학적 답변보다 실제로 더 나은 답변을 제공해 준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웨 이넌디는 이를 근거로 교부들의 정체성을 다음과 같이 명확히 규정한다: “그들은 철학적 혁신가가 아니었다. 그들은 신학적 혁신가였으며, 그들의 혁신은 성경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 Weinandy, Does God Suffer?, 108. 이러한 분석은 교부들이 헬라 철학을 무분별하게 수용했다는 비판에 대 한 강력한 반박이 된다. 교부 신학의 철학적 배경에 대한 상세한 논의로는 Weinandy, Does God Suffer?, 69-112를 참고하라.

     15) Matthew Barrett, None Greater: The Undomesticated Attributes of God, 오현미 역, 󰡔무 한, 영원, 완전: 길들여지지 않은 하나님의 속성󰡕 (서울: 개혁된실천사, 2021), 191; Gerald Bray, The Attributes of God: An Introduction (Wheaton, IL: Crossway, 2021), 37; Stephen J. Wellum, Systematic Theology: From Canon to Concept, volume 1 (Brentwood, TN: B&H Academic, 2024), 613.

 

이를 단순한 철학적 차용 으로 치부하는 것은 초대 교회의 신학적 깊이와 성경적 충실성을 과소평 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불가고통성 교리가 현대에 들어서 하나님의 속성과 관련해 최대의 쟁점이 되고, 도전받게 된 주된 이유는 무엇인가?

웨이넌디는 고통당하실 수 없는(impassible) 하나님이 고통 가능한(passible) 하나님에 게 자리를 내준 이유가 다음과 같은 질문과 관련되어 있다고 말한다:

 

“극 심한 인간 고통의 현실 앞에서 전능하고 고통당할 수 없는(invulnerable) 하나님, 곧 세상의 창조주요 통치자의 존재가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 가?”16)

 

인간이 저지르는 끔찍한 악과 그로 인한 고통 앞에서 하나님의 정 당성을 변호해야 하는, 즉 신정론(theodicy)의 문제 앞에 현대인들 대다수 는 더 이상 고통당하시지 않는 하나님은 받아들여질 수 없고, 오로지 고통 가능한 하나님만이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제시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웨 이넌디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고통 가 능하시며, 따라서 고통당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만 이러한 질문에 대답 할 수 있다고 결론짓는다.”17)

홀로코스트 및 히로시마 사건 이후 전통적 신관(神觀)의 대안으로 떠오른 과정 사상(process thought)과 몰트만의 신관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받은 이유는 이천 년 역사 동안 견지 되어왔던 고통 불가한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버리고, 전적으로 고통 가능 한 하나님관을 제시하였기 때문이다.18)

 

     16) Weinandy, Does God Suffer?, 6.

     17) Weinandy, Does God Suffer?, 6.

     18) 일본에서도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경험한 후 하나님의 고통에 주목하는 신학이 등장했다. 기타 모리 가조(北森嘉蔵, 1916-1998)는 1946년 󰡔하나님의 아픔의 신학󰡕 (神の痛みの神学)을 발표하 여 몰트만보다 26년 앞서 하나님의 고통 신학을 정립했다. 그는 전쟁의 비극적 경험을 바탕으로 하 나님이 인간의 고통에 동참하신다는 “하나님의 아픔” 개념을 제시했으며, 이는 일본 문학(엔도 슈 사쿠[遠藤周作, 1923-1996]의 󰡔침묵󰡕 등)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그의 신학은 정통적삼위 일체론을 부정하는 등 비정통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어 개혁신학 관점에서 비판받았다. Kitamori Kazoh, Theology of the Pain of God: The First Original Theology From Japan, 이원재 역, � �하나님의 아픔의 신학󰡕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7); 이신열, “이근삼과 기타모리 가조의 기독 론 비교 연구: 그리스도의 고난을 중심으로,” 「조직신학연구」 47 (2024): 78-111 참조. 과정 사상 으로부터 비롯되는 과정 신학(process theology)과, 또한 전통적 신론을 대체하려는 열린 신론 (open theism)에 대한 비판적 평가로는 박태수, “과정신학의 신론과 열린신학의 신론 연구,” 「조 직신학연구」 33 (2019): 176-210을 참고하라.

 

한마디로 시대적 흐름이 신학적인 지형도를 바꾸어 버린 것이다. 더불어 고통 가능한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대중들 사이에서 별다른 어 려움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한 문화적 배경의 존재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바로 ‘감정’(emotion)이라는 어휘의 등장이다. 매튜 바렛(Matthew Barrett)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감정’(emotion)이란 말은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에게 낯선 말일 뿐만 아니 라, 이 말 자체가 아주 최근에 생겨난 말이기도 하다. 기독교 사상의 역사에 서 ‘격렬한 감정’(passions)은 ‘애정[정서]’(affections)과 대조되는 말로서, 전 자는 절대 하나님에게 적용해서는 안 되는 부정적 의미를 담고 있으며 만약 하나님께 적용했다가는 하나님과 피조물 간에 혼동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런 데 19세기 중반에 이 용어가 세속 심리학의 어휘로 대체되었다. 바로 ‘감정’ 이라는 단어이다.19)

역사적으로 ‘격정’과 ‘정서’란 단어가 구분되어 사용되었던 것과 달리 ‘감정’이라는 단어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온갖 심리적인 반응을 가리 키는 용어로 사용되게 되었다. 이러한 어휘의 대체 및 변화로 인하여 무 감동성(불가고통성)은 더 이상 하나님의 속성에 관하여 부정의 방식으로 표현되는 형이상학적 용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없는,” “냉담 한,” “무관심한” 등을 뜻하는 심리학 용어로 이해되게 된다.20)

웨인 그루뎀(Wayne Grudem)은 자신의 󰡔조직신학󰡕 초판(1994) 에서 하나님의 불변성을 강력하게 지지하면서도 “무감각[무감동]성” (impassibility) 교리에 대해서는 반대 견해를 표명하였는데, 그 이유를 자 세히 살펴보면 그가 무감동성이란 용어 자체를 심리학적 의미로만 받아 들이고, 그러한 이해 위에서 판단했기에 무감동성 교리를 반대한 것임을 알 수 있다.21)

 

   19) Barrett, 󰡔무한, 영원, 완전󰡕 , 212.

   20) Paul L. Gavrilyuk, “God’s Impassible Suffering in the Flesh: The Promise of Paradoxical Christology,” in Divine Impassibility and the Mystery of Human Suf fering, eds. James F. Keating and Thomas Joseph White (Grands Rapids: Eerdmans, 2009), 139.

   21) Wayne Grudem, Systematic Theology: An Introduction to Biblical Doctrine, 노진준 역, 󰡔조 직신학(상)󰡕 (서울: 은성출판사,1997), 227. 

 

그루뎀은 “하나님께서 전혀 감정을 가지고 계시지 않다는 생각은 성경의 다른 가르침과 상충된다”라고 하며, “그렇기 때문에 본인 은 이 책에서 하나님의 무감각[무감동]성을 주장하지” 않겠다고 말한다.22)

그러나 2020년 개정판 󰡔조직신학󰡕에서 그는 자신이 무감동성 교리에 대 한 입장을 긍정적으로 바꾸었음을 밝히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일 수난 불가능[무감동](impassible)이 ‘감정을 느낄 수 없음’을 의미한다 고 이해하면, 하나님의 수난 불가능[무감동]성에 대해 말하는 것은 옳지 않 다. 그러나 다른 의미의 수난 불가능[무감동]성이 있다(이 책의 초판에서는 실수로 이 다른 의미를 고찰하지 못했다). 수난 불가능[무감동]성은 ‘고통으 로부터 면제됨’ 또는 ‘해를 당할 수 없음’을 뜻할 수도 있다. 하나님의 존재는 그분 밖에 있는 어떤 것에 의해서도 변화되거나 해를 입을 수 없다.23)

그루뎀의 마지막 진술은 중요하다. 무감동성(불가고통성) 교리에 대해 오해했음을 인정하며 일부는 부정에서 긍정으로 입장을 바꾸기도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위 인용문의 마지막 진술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하나님 의 존재는 고통 가능한, 즉 외부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 있어야 하며, 따라 서 고통당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주장은 다음과 같은 진술로 이어진 다: “만일 하나님이 고통당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 그런 하나님은 사 랑을 하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다.”24)

 

     22) Grudem, 󰡔조직신학(상)󰡕 , 227.

     23) Grudem, 󰡔조직신학 1󰡕 , 300-01.

     24) Moltmann, The Crucified God, 230. 열린 신론의 대표적 주창자 클라크 피녹(Clark H. Pinnock, 1937-2010)을 비롯해 그레고리 보이드(Gregory A. Boyd)와 존 샌더스(John Sanders) 등 열린 신론 진영은 하나님의 고통 가능성을 옹호한다. 특히 피녹은 하나님의 고통 가능성을 사랑 과 결부시켜 논증했던 몰트만의 노고를 인정하며 다음과 같이 수사학적으로 묻는다: “하나님이 고 통을 느끼실 수 없다면 어떻게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고통을 당하셨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Clark H. Pinnock, “하나님 지식제한설,” 󰡔예정과 자유 의지: 예정과 자유의지에 대한 네 가지 관점󰡕 , eds. David Basinger and Randall Basinger, 이미 선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0), 233. 몰트만과 피녹의 진술에 따르면, 사랑에는 필수적으로 타 인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희생적 고통이 수반되기 때문에 고통을 겪지 않는 하나님은 사랑이실 수 없고, 사랑하실 수도 없다는 결론이 뒤따르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논증은 한 가지 “입증되지 않 은” 전제를 기반으로 하는데, 바로 인간의 사랑뿐 아니라 신적 사랑에도 고통이 수반된다는 전제이 다. Dennis W. Jowers, “The Theology of the Cross as Theology of the Trinity: A Critique of Jürgen Moltmann’s Staurocentric Trinitarianism,” Tyndale Bulletin 52 (2001): 254. 하 나님과 피조물 간의 존재론적 격차와 현(現)시대를 특징짓는 ‘타락’(Fall)이라는 요소를 고려할 때, 인간적 사랑의 양식을 일의적으로(univocal, 동일한 의미로) 하나님께 투영시키지 않도록 유의해 야 한다. 신적인 사랑과 인간적인 사랑의 양식이 보이는 존재론적 차이에 대한 더 깊은 논의로는 Weinandy, Does God Suffer?, 152-168을 참고하라. 

 

이처럼 불가고통성 교리를 반대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사랑을 고통 가능하고 피동적인 방식으 로 재정의하려고 한다. 요컨대 오늘날 불가고통성 교리가 도전받는 이유란 무엇인가? 시대와 문화가 그 어느 때보다 인간의 형상을 닮은 하나님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 이다.25)

우리가 피해자라면 하나님도 우리와 함께 피해자여야 하고, 우리 가 고통을 겪고 있다면 하나님도 고통을 겪고 있어야 하며, 우리가 괴로움 에 압도되면 하나님도 슬픔을 겪어 그것에 압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26)

과연 반대자들의 주장대로 하나님은 고통 가능하시며, 따라서 고통당하는 존재여야만 하는 것인가?

이에 대한 불가고통성 지지자들의 답변은 명확 하다. 신론에 있어 보편교회적(catholic) 전통을 따르는 개신교의 유서 깊 은 신앙고백들이 선언하듯이 “하나님은 겪음이 없으시다(God is without passions).”27) 이것이 핵심이다.

 

   25) 고통 가능한 신관의 주창자인 몰트만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십자가에 달린 인자 안에 계신 인간 적인 하나님(human God)”이라고 말한다. Moltmann, The Crucified God, 227. 강조는 연구자 의 것이다. 현대 신학 논의 전반에서 나타나는 고통 가능한 신관에 대한 비평으로는 박건빈, “그리 스도의 현재적 동정(sympathy): 신성의 무감동 교리에 대한 현대적 논의에 대한 비판적 탐구와 기 독론적 접근” (석사학위논문, 서울성경신학대학원대학교, 2022), 38-124를 참고하라. 몰트만의 고 통 가능한 신관에 대한 분석 및 비평으로는 정병찬, “Jürgen Moltmann의 하나님의 고통가능성에 대한 비평적 고찰,” 1-93을 참고하라.

    26) Barrett, 󰡔무한, 영원, 완전󰡕 , 198.

    27) Joel R. Beeke and Sinclair B. Ferguson, eds., Reformed Confessions Harmonized, 신호섭 역, 󰡔개혁주의 신앙고백의하모니󰡕 (서울:죠이북스,2023),23;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1647;2장 1항)뿐 아니라 영국 성공회의 39개조 신조(1556; 1조), 그리고 침례교 전통 내에서는 일반침례교의 정통 신조(1678; 1조)와 특수침례교의 제2차 런던 침례교 신앙고백(1689; 2장 1항) 역시도 동일한 어구를 포함하고 있다.  

 

 

 

여기에 모든 것이 달려있다.

 

Ⅳ. 불가고통성(무감동성) 교리가 긍정되어야 하는 두 가지 핵심 논거

 

하나님의 불가고통성(무감동성) 관련 담론은 단순하게 말해 하나님에 게 겪음이 있는가 없는가를 논의하고 설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실 로 이 간단해 보이는 사안에 신론(Doctrine of God)에 관한 모든 것이 달 려있다.

돌레잘은 무감동성(불가고통성) 교리가 갖는 중요성을 하나님의 존재 방식과 연결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의 유감동성(passibility) 또는 무감동성에 대한 논의는 근본적으로 신 적 현실태(divine actuality)에 대한 논의이다.

이 문제를 신적 현실태의 문 제로 축소함으로써, 지지자들과 반대자들은 하나님이 순수하고 단순한 존재 (being)이거나, 아니면 어떤 의미에서 되어가고 있으며(becoming) 따라서 자신의 존재를 빚지고 있는 어떤 원인에 종속되어 있다고 주장할 수밖에 없 게 된다.28)

하나님은 내부 혹은 외부로부터의 자극에 영향을 받아 무언가를 활성 화해야 하는 “수동적 잠재력”(passive potency)을 갖고 계신 분인가, 아니 면 더 이상 활성화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는 가장 역동적이고 완전한 “순수 현실태”(pure actuality)로 계신 분이신가?29)

 

    28) Dolezal, “Strong Impassibility,” 15.

    29) Dolezal, “Strong Impassibility,” 15. “순수 현실태”(actus purus)라는 명칭은 사물의 변화를 설 명하기 위해 ‘가능태’(potentiality)와 ‘현실태’(actuality)라는 구분을 도입했던 고대 그리스 철 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기원전 384-322)에게서 기원을 갖는 용어로서, 기독교적 맥락 에서 이는 “신적 불변성 교리에 대한 스콜라주의적 해설”에 있어 “핵심”이 되는 개념이 되었다. Richard A. Muller, “actus purus,” in Dictionary of Latin and Greek Theological Terms Drawn Principally from Protestant Scholastic Theology, 2nd ed. (Grand Rapids: Baker, 2017), 11. 돌레잘은 하나님을 ‘순수 현실태’로 부르기를 선호했던 아퀴나스의 논증을 빌려 순수 현실태 개념이 갖는 중대한 신학적 함의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토마스 아퀴나스]는 운 동 중인 모든 것(어떤 식으로든 변화하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넓은 의미의)은 그 운동에 대해 이전 에 수동적 잠재태 상태에 있었어야 하며, 따라서 자신 외부의 어떤 현실태적 근원에 의해 그 운동으로 움직여졌다고 주장한다.토마스가 말하듯이, ‘그 자체로 이미 현실태 상태에 있는 존재에 의 해서가 아니고서는 그 어떤 것도 잠재태에서 현실태로 이행될 수 없다.’ 이미 현실태로 존재하는 무언가에 의해서가 아니고서는 그 어떤 것도 현실화될 수 없다.나아가, ‘동일한 관점과 동일한 방 식에서 운동인(움직이는 자, mover)인 동시에 운동체(움직여지는 자, moved)인 것, 즉 자기 자신 을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잠재태를 현실태 상태로 이행(reduction)시키기 위해서는 이미 현 실태 상태에 있는 외부의 행위자가 요구된다.운동 상태에 있는 모든 것(즉, 이전에 수동적 잠재태 에 있었던 모든 것)은 타자에 의해 운동하게 되며, 토마스가 지적하듯이, ‘그것은 또 다른 타자에 의해’ 그렇게 된다. 그러나 이 운동인들의 연쇄는 무한히 계속될 수 없다.만약 그렇다면 제일 운동 인(first mover)이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고, 이는 곧 운동에 대한 궁극적인 충분한 이유가 없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제일 운동인은 필연적으로 타자에 의해 움직여지지 않으며, 모든 운동은 현실 태에 있는 어떤 운동인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그 제일 운동인은 반드시 순수 현실태(pure act)여 야만 한다.다시 말해서, 만물의 제일 원인(first cause)이신 하나님은 자신 안에 그리고 자신으로 부터 존재의 충만함을 소유하고 계시기 때문에 더 이상의 현실화(actualization)를 받아들일 여지 가 없는 존재여야만 한다.” Dolezal, All that is in God, 15-16.

 

이것이 신적 현실태와 관련해 무감동성 교리에 걸려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더불어 돌레잘은 신적 존재 방식뿐 아니라 신적 사랑(divine love)의 방식 또한 무감동성 교리와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주지시킨다:

 

“[유 감동/무감동성에 대한 논의는] 또한 하나님이 자신의 피조물을 무한하고 자유로우며 원인이 없는 사랑의 행위로 사랑하시거나, 아니면 유한하고 원인이 있으며 가변적인 사랑으로 사랑하신다고 말하도록 제약을 가한 다.”30)

 

     30) Dolezal, “Strong Impassibility,” 15. 

 

돌레잘은 무감동성 교리만이 신적 사랑의 풍요로움과 순전함을 유 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본 연구는 돌레잘이 제시한 두 범주에 따라 하나님의 불가고통성(무감동성)이 긍정되어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불가고통성 교리는 신적 존재의 충만함과 완 전성을 보호하기 위해 긍정되어야 한다.

  둘째, 불가고통성 교리는 신적 사 랑의 순전함과 충만함을 지키기 위해 긍정되어야 한다.

 

1. 신적 존재(divine being)의 충만함과 완전성을 보호하기 위해

 

‘겪음이 없으시고’(without passion)란 보편교회적 문구가 불가고통성 (무감동성)과 관련해 아주 중요한 교리적 표현이라면, 무엇보다 ‘겪음’ 혹 은 ‘격정(정념)’으로 번역되는 영어 단어 ‘패션’(passion)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패션’은 라틴어 ‘파씨오’(passio)에서 유래하였고, 이 라틴어 용어는 본질적으로 같은 의미인 헬라어 명사 ‘파토 스’(pathos)와 동사 ‘파스코’(pascho)에서 파생되었는데, 이 모든 용어는 기본적으로 “해를 입다, 고통을 겪다, [외부로부터 오는 것을] 경험하다”라 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31)

돌레잘은 저명한 가톨릭 철학자 베르나르드 뵐 너(Bernard Wuellner, 1904-1977)의 사전적 정의를 인용하는데, 뵐너에 따르면 “패션”이란 “어떠한 종류든 완전성이나 결핍을 받아들이는 것; 타 자에 의해 작용을 받는 상태로 간주되는 것; 작용을 받는 존재 안에서 일 어나는 변화의 수용; 잠재태에서 현실태로 이행하는 모든 과정”으로 정의 된다.32)

멀러는 “패션”을 가리켜 “능력 심리학(faculty psychology)에서, 구체 적으로 외부의 어떤 것에 의해 야기된 부정적인 감정들이나 정서적 상태 의 변화”라고 말한다.33)

앞서 언급한 사전적 정의들을 종합해 볼 때, 겪음 (passion)이란 어떤 원인적 행위자(causal agent)의 행동에 의해 영향을 받은 수동자(patient) 내에서 야기된 변화의 상태라고 정의할 수 있고, 나 아가 그로 인해 발생한 부정적인 감정적 실재를 격정(passion)이라고 부 를 수 있을 듯하다.34)

 

   31) Dolezal, “Strong Impassibility,” 1

   32) Bernard Wuellner, Dictionary of Scholastic Philosophy (Milwaukee: Bruce, 1956), 88–89, Dolezal, “Strong Impassibility,” 15-16에서 재인용.

   33) Muller, “Passiones,” 255. 케빈 드영(Kevin DeYoung)에 따르면, 능력 심리학은 인간의 “비물질 적인 자아가 내적으로 어떻게 작용하는지”와 관련이 있다. 이 심리학 이론에서 ‘능력’이란 “비물 질적인 부분”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이자, 구체적으로는 “영혼에서 특정 작업을 수행하는 어 떤 힘”으로 정의된다. 일반적으로 지성(intellect)과 의지(will) 등이 이에 해당하고, 개혁파 스콜 라주의 신학자들은 오늘날 감정으로 포괄되는 내적 상태의 범주를 “정서”(affections)와 “격정” (passions)이라는 보다 정교한 어휘를 사용하여 구분하였다. Kevin DeYoung, Daily Doctrine: A One-Year Guide to Systematic Theology, 전의우 역, 󰡔매일 교리󰡕 (서울: 생명의말씀사, 2025), 218-20.

    34) 동방 정교회 신학자 폴 가브릴루크(Paul L. Gavrilyuk)는 ‘패션’(passion)의 어원이 되는 ‘파토 스’(pathos)가 문맥에 따라 여러 의미로 사용되기 때문에 영어의 한 단어로 번역하기엔 한계가 있 다고 지적한다. Paul L. Gavrilyuk, The Suffering of the Impassible God: The Dialectics of Patristic Thought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4), 115. 이는 한국어도 마찬가지이 다. ‘패션’(passion)은 문맥에 따라 ‘겪음,’ ‘겪음으로 인함,’ ‘격정,’ ‘감성,’ ‘열정,’ ‘수난’ 등으로 번 역될 수 있고, 때로는 음역을 통해 사용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역사적인 계보에서 격정은 예컨대 “통제할 수 없는 분노나 어리석음” 등 대개 부정적인 감정으로 이해되어왔다.35)

앞서 바렛 이 지적하였듯 기독교 사상의 역사에서 격정은 절대 하나님에게 적용해 서는 안 되는 부정적 함의를 지닌 단어였다. 이것이 ‘겪음이 없으시고’란 신앙고백서 문구가 작성될 당시의 어휘론적 맥락이었다. 그렇다면 부정적인 의미가 아닌, 좋은 의미에서의 겪음이나 격정이라 면 어떤가?

예컨대 우리가 경험하는 유익한 겪음, 즉 우리를 더 나은 상태 로 만들어주는 겪음과 격정이 있듯이, 그러한 것들이 하나님께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인가? 이 점에서 돌레잘의 통찰이 유용한데, 돌레잘은 겪음 그 자체는 좋은 것일 수도 있고 나쁜 것일 수도 있음을 지적한다. “다른 이들 은 우리에게 기쁨이나 슬픔, 쾌락이나 고통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행동할 수 있다.”36)

그러면서 그는 “즐거운 겪음”(pleasant passions)에 대해 말하 기 위해 우리가 종종 “괴로움”(affliction)과 관련된 언어를 사용한다고 언 급하는데, 예컨대 이런 것이다.37)

우리말에서는 그 뉘앙스가 명확하지 않 지만, 영어 표현 중에서 “사랑에 빠졌다”라는 말은 “fall in love”로 표현되 고, “홀딱 반했다”라는 말은 “smitten by”로 표현된다. 심지어 한쪽만 사 랑하는 “짝사랑”에 대한 영어권 문화의 언어는 “crush”란 단어를 사용한 다.38)

 

    35) Michael S. Horton, The Christian Faith: A Systematic Theology for Pilgrims on the Way, 이용중 역, 󰡔언약적관점에서본개혁주의조직신학󰡕 (서울:부흥과개혁사,2012),245.

    36) Dolezal, “Strong Impassibility,” 16.

    37) Dolezal, “Strong Impassibility,” 16.

    38) Dolezal, “Strong Impassibility,” 16-17. 

 

돌레잘은 이를 설명하기 위해 흥미로운 예를 하나 드는데, 아내의 사랑스러움이 자신을 아내에게로 이끄는 효과적 원인(작용인, efficient cause)이 된다고 말한다. 돌레잘이 지적하듯이 연인의 사랑스러움이라는 외부적 요인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마음이 감동되고, 움직여지는 것은 강 렬한 경험이고, 즐거운 겪음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하나님도 어떤 면에서는 우리와 같이 외부적 요인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좋은 의미의 겪음을 지니시게 된다고 말해야 하는 것인가? 돌레잘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일 누군가가 사랑, 기쁨, 자비, 질투 등의 미덕(virtues)을 소유하되, 어떤 원인적 행위자의 작용에 의해 일어난 내면적인 정서적 변화를 겪지 않고 소 유한다면, 그 경우 이러한 미덕은 격정(passions)이 아닐 것이다. 이것이 곧 해당 미덕이 강렬함이나 생명력, 혹은 역동성을 상실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겪음으로 인하지 않은(passionless) 사랑, 기쁨, 자비, 질투를 말한다는 것은 단지 이러한 상태들이 외부의 작용인으로부터 현실태를 받아들임을 통해 주 체에게 임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일 뿐이다.39)

즉, 부정적인 의미든 좋은 의미에서이든 하나님에게 겪음이 있음을 부 정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에게 사랑, 기쁨, 자비, 질투 등이 없다는 것을 의 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만 앞서 말한 미덕들이 원인 작용의 결과로서 하 나님 안에서 야기된 것이 아님을 의미할 뿐이다.40)

원인 작용에 의한 모든 종류의 겪음은 수동자 내에 새로운 상태를 야기한다. 좋은 의미의 겪음이 라 하더라도 결국은 잠재태에서 현실태로 변하는 것이다.

형이상학적 용 어를 사용해 표현하자면, 겪음이란 다름 아닌 “우유성”(accident)에 해당 한다.41)

 

     39) Dolezal, “Strong Impassibility,” 17.

    40) 돌레잘은 기고문 후반부에서 ‘겪음으로 인하지 않은’ 미덕만이 궁극적인 의미에서 진정으로 무 한하고, 변하지 않으며, 자유로울 수 있다는 주장을 다룬다. 더 깊은 논의를 위해서는 Dolezal, “Strong Impassibility,” 28-32를 참고하라.

    41) Dolezal, “Strong Impassibility,” 16. 우유성이란 개념 역시 아리스토텔레스적 용어로서, 아리스 토텔레스는 하나의 사물이 “실체(substance)와 술어, 혹은 ‘우연’(accident)[이]라고 부른 것으로 구성되었다”라고 했다. R. C. Sproul, The Consequences of Ideas, 조계광 역, 󰡔R. C. 스프로울 의 서양 철학 이야기󰡕 (서울: 생명의말씀사, 2023), 52. “물(物) 자체”(the thing itself)와 “이를 설 명하는 성질[이에 대해 말해질 수 있는 것]”(what may be said about thing) 사이의 구분은 곧 본 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 사이의 구분으로 표현될 수 있다. DeYoung, 󰡔매일 교리󰡕 , 102. 예컨대 인간은 인간다움(humanity)을 지니고 있다. 그것이 인간의 실체이자 본질이다. 그러나 인간은 키가 크거나 작을 수 있고, 피부색이 희거나 검을 수 있으며, 지혜롭거나 어리석을 수도 있다. 이 모 든 것은 인간이라는 본질에 있어 부수적이고, 말해질 수 있는 것이며, 상기 예가 보여주듯이 가변 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프란키스쿠스 투레티누스(Francis Turretin, 1623-1687)는 하나님 안에는 결코 우연한 것이 존재할 수 없다고 했는데, 변화의 가능성을 지닌 우연성이 하나님의 불변 성 교리를 무효로 만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지혜로우시다’는 서술은 단순히 ‘하나님 이 지혜를 가지고 계신다’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혜 그 자체이시라’는 토대적 진리 위에서 이해되어야 한다.이러한 맥락에서 하나님에게 ‘겪음으로 인함’이 가능함을 인정하는 것은 곧 외부 작용인에 의해 그분이 더 지혜로워지거나 덜 지혜로워지실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Francis Turretin, Institutes of Elenctic Theology, Vol. 1, 박문재 외 역, 󰡔변증신학 강요 1󰡕 (서 울: 부흥과개혁사, 2017), 482. 

 

피조물의 행동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겪음을 경험하시는 유감동한(고통 가능한) 하나님은 순수 현실태로서의 존재 그 자체(being itself)가 아니라, 더 나은 현실태 혹은 더 나쁜 현실태가 될 수도 있는, 그저 되어가 는(becoming) 중에 있는 존재일 뿐이다. 본질(essence)로만 이루어진 단 순한 분이 아니라 우유성이 덧붙여진 복합적 존재일 수밖에 없다. 이 모든 논의를 뒷받침하는 성경적 논거로는 사도행전 14장 15절을 들 수 있다.42)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 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행 14:15).

‘겪음이 없으시고’라는 신앙 고백서 문구를 작성한 신학자들은 그 증거 본문으로 사도행전 14장 11 절과 15절을 제시했는데,43) 이는 당시 잉글랜드 표준성경이었던 킹제임 스 역본(King James Version)에 ‘like passion’(개역개정은 ‘같은 성정’) 이라는 어구가 나왔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42) Dolezal, “Strong Impassibility,” 20, 52

     43) Beeke and Ferguson, 󰡔개혁주의 신앙 고백의 하모니󰡕 , 23.

 

오늘날 대다수 영어 번 역본들은 KJV과 달리 헬라어 ‘호모이오파데스’(homoiopatheis)를 ‘like nature’(ESV, RSV) 혹은 ‘same nature’(NASB, HCSB, NKJV)로 번역하는 데, 번역이 다르다고 해서 그 의미가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호모이 오파데스’는 합성어로서 뒷부분 단어인 ‘파데스’(patheis)는 동사 ‘파스코’ (pascho)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그 기본적인 의미란 “외부로부터 들어온 무엇을 경험하다”이다.44)

개역개정은 사도행전 14장 15절의 ‘호모이오파데스’를 ‘같은 성정’이 라 번역했지만, 대한성서공회(Korean Bible Society)에서 최근 완역한 새 한글성경은 그 기본적 의미를 잘 살려 해당 단어를 ‘똑같은 경험’이라고 번역했다.45)

 

    44) Gerhard Kittel and Gerhard Friedrich, eds.,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 trans. Geoffrey W. Bromiley, 요단출판사 번역위원회 역, 󰡔신약성서 신학사전󰡕 (서울: 요단출판 사, 1986), 893.

    45) 구절 전문은 다음과 같다: “여러분! 왜 이런 일을 하십니까? 우리 자신들도 여러분과 똑같은 경험 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좋은 소식을 전하는 것은, 여러분이 이런 쓸데없는 일에서 떠나 살아계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것들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만드셨습니다.”(행 14:15) 강조는 연구자의 것이다. 새한글성경은 2021년 11월에 신약성경과 시편이 번역되어 먼저 출간되었고, 2024년 12월에 구약성경까지 번역되어 신 구약 완역본이 출간되었다. 새한글성경에 대해서는 대한성서공회 홈페이지(www.bskorea.or.kr) 를 참고하라.

 

‘호모이오파데스’는 신약성경에서 사도행전 14장 15절 외에 야고보서 5장 17절에서 한 번 더 사용되었는데, 야고보가 기도의 중요성 을 피력하며 구약시대의 엘리야도 우리와 같은 성정의 사람이었음을 지 적하는 대목이다.

개역개정은 앞선 사도행전의 말씀과 똑같이 ‘성정이 같 은’이라고 번역했지만, 새한글성경은 문맥과 원어의 기본적 의미를 잘 살 려 야고보서 5장 17절을 다음과 같이 번역했다:

“엘리야는 사람이었습니 다. 겪고 느끼는 것이 우리하고 같았습니다.”(새한글성경) 결국 인간의 성 정이란 무엇인가?

외부로부터 오는 것을 겪고 느끼는 경험으로 인하여 좋 든 나쁘든 가변적일 수밖에 없는 것, 다르게 말해 잠재태에서 현실태로 변 하게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인간의 성정이다. 바울은 그 점에 있어 자신을 숭배하려는 루스드라 사람들과 자신이 다를 바 없음을 명확히 한 것이고, 그 진술은 필연적으로 유감동한(고통 가능한) 존재는 예배할 대상이 못 된다는 사실을 함축하고 있다.

이 사실이 중요한 이유는 루스드라 기사에서 언급되는 거짓 신들 역 시 유감동한 존재로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사도행전 14장 11절 에서 루스드라 사람들은 바울이 행한 기적을 보고서 놀라 소리를 지르며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라고 말한다. 바나바 는 제우스라 칭함을 받고, 바울은 말하는 자라 하여 헤르메스로 칭함을 받 는다(행 14:12).

그리고 곧바로 이어지는 장면에서 시외 제우스 신당의 제 사장들은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바울과 바 나바에게 제사를 드리려고 한다(행 14:13). 루스드라 사람들이 보여준 이 러한 반응에 대해 대다수 주석가들은 그들이 예부터 그 지역에 전해져 내 려오던 전설을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하는데,46) 대중적인 스터디 바이블 한 권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우스와 헤르메스는 로마 세계에서 인기 있는 신이었다. 루스드라 사람들 은 이 신들이 자기네 도시에 왔었다고 주장했다.

전설에 따르면 늙은 부부 외에는 아무도 이들을 환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우스와 헤르메스는 나머지 사람을 모두 죽이고 늙은 부부에게 보답했다. 시민들은 바울과 바나바가 행 하는 기적을 보고는 이 신들이 다시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옛 이야기를 기억 한 그들은 즉시 바울과 바나바를 높이고 선물 공세를 폈다.47)

 

    46) Eckhard J. Schnabel, Acts, 정현 역, 󰡔강해로 푸는 사도행전󰡕 (서울: 도서출판 디모데, 2018), 642; Darrell L. Bock, Acts, 전용우 역, 󰡔BECNT 사도행전󰡕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9), 606; F. F. Bruce, The Book of the Acts, 김장복 역, 󰡔NICNT 사도행전󰡕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7), 361; John R. W. Stott, The Message of Acts, 정옥배 역, 󰡔사도행전 강해󰡕 (서울: IVP, 1992), 351-52; I. Howard Marshall, Acts: An Introduction and Commentary, 왕인성 역, 󰡔사도 행전󰡕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16), 380-81; John B. Polhill, Acts, The New American Commentary, ed. David S. Dockery (Nashville: B&H, 1992), 314.

     47) Tyndale House Publishers, NLT Life Application Study Bible, 3rd ed., 김명희 외 2인 역, 󰡔에 브리데이 스터디 바이블󰡕 (서울:한국성서유니온선교회,2021),2106-107.

 

루스드라 사람들에게 있어 제우스와 헤르메스는 유감동한 존재였음에 틀림이 없다. 그들의 선물 공세는 저주를 피하고 복을 받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고, 그 목표는 신들을 감동시켜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리스 종교학자들에 따르면, 그리스 신들은 인간의 행동으로 부터 영향을 받으며, 인간들처럼 변덕스럽고 자신의 감정조차 조절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다. 한순간에는 자기 힘을 과시하다가 그다음 순간에 는 무력하고 애처롭게 좌절하며 고뇌하는 모습을 보이는 이들이 그리스 신들이다.48)

바렛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들[그리스 신들]은 우리 인간과 많이 닮았다. 때로 이들은 인간에게 의존하기까지 한다. 자 신들의 행복을 완성하기 위해, 불만족을 해소하기 위해, 또는 자신의 정욕 을 충족시키기 위해 우리 인간을 필요로 한다.”49)

그러므로 인간에게 의존 하며 계속해 그 가운데 감정적 변화를 겪는 유감동한 존재를 숭배하는 것 이란 바울의 말에 따르면 “헛된 일”이다(행 14:15).

그러나 이러한 유감동한 존재인 인간 및 그리스 신들과 달리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바울은 이들과 대조되는 하나님을 가리켜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신” 분이라고 말한다(행 14:15).

만물을 지으신 하 나님은 만물에 존재를 부여하는 절대적 원천이시자 피조된 것 중 그 무엇 에도 의존치 않으시는 자충족적인(self-sufficient) 분이시다. 모든 만물은 하나님을 의존하여 존재하지만,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바울이 후에 사 도행전 17장에서 더욱 자세히 진술하듯, 하나님은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시다(행 17:25). 이러한 하나님 만을 예배하는 것이 참된 일이다.

만일 하나님의 불가고통성(무감동성)이 부정된다면, 돌레잘의 표현대로 하나님은 우상의 수준, 즉 고통 가능한(유 감동한) 존재로 강등될 것이고, 많은 신들 중 또 하나의 신을 추가하는 것 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50)

 

     48) Barrett, 󰡔무한, 영원, 완전󰡕 , 187-88; 조동선, “하나님의 불가고통성(the Impassibility of God),” 「뱁티스트」, 2024년 5-6월, 68.

     49) Barrett, 󰡔무한, 영원, 완전󰡕 , 188.

     50) Dolezal, “Strong Impassibility,” 52.

 

모든 ‘겪음’이 어떤 원인 작용에 의해 수동자 내 에서 야기되는 일종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하나님의 존재의 충만 함과 완전성을 보호하기 위해 불가고통성 교리는 반드시 긍정되어야 한 다. 하나님은 겪음이 없으시다, 즉 하나님은 고통당하실 수 없다고 말해야 한다.

 

2. 신적 사랑(divine love)의 순전함과 충만함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사랑에 있어서도 ‘겪음이 없으시다’라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 다.

돌레잘은 하나님의 사랑과 관련해 무감동성(불가고통성) 교리가 갖는 함의를 “하나님의 무감동한 사랑의 복음”(good news of God’s impassible love)이라는 소제목 하에 풀어가는데,51) 이는 “복음”(기쁜 소식)이라는 단 어에서 볼 수 있듯 부패한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무감동하지 않다 면, 그것은 죄인들에게 참으로 우울한 소식, 나아가 끔찍한 소식이 될 것 임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순전히 후히 베푸 는, 값없는 은혜의 사랑이 되려면 그 사랑은 반드시 겪음으로 인한 것이 아니어야 한다. 외부 요인에 의해 촉발되는 격정적인 사랑이 아니어야 한다. 돌레잘은 다시 한번 ‘겪음’(passion)의 의미에 집중한다: “겪음으로 인 한 모든 사랑(passionate love)은 사랑받는 대상 안에서 인식된 어떤 선을 향한 사랑하는 자(lover)의 움직임이다.”52) 위에서 들었던 연인의 사랑스 러움을 다시 예로 들어 보자. 연인에게서 발견된 선한 것(예컨대 도덕적 아름다움)이 사랑하는 이를 감동시킨다. 사랑하는 이는 연인에 대해 겪음 으로 인한 사랑을 경험하게 된다. 연인으로 인해 유발된 감정을 갖고 움직 이게 된다. 돌레잘에 따르면, 이러한 겪음으로 인한 사랑은 “자신에게 제 시된 선을 향한 의지적인 기울어짐이자 그것을 붙잡으려는 손길”이며, 수 동자는 “그 선에 의해 [잠재태에서] 현실태로 불려 나오게” 된다.53)

 

     51) Dolezal, “Strong Impassibility,” 28.

    52) Dolezal, “Strong Impassibility,” 29.

    53) Dolezal, “Strong Impassibility,” 29. 

 

그런데 인간의 지성, 감정, 의지 모두가 죄로 인해 부패해져 버렸다는 성경의 엄 중한 진단을 고려해 볼 때, 하나님에게 자신 안에 있는 선을 드러내 보여 그분으로 하여금 자신을 사랑하게끔 만들 수 있는 죄인이 어디 있겠는가? 만약 죄인의 도덕적 선함이 하나님 안에서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행위적주체가 된다면, 그렇게 수동적으로 야기된 하나님의 죄인을 향한 구원의 사랑은 전적인 은혜의 선물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자격 있는 자들에게 사 랑과 구원이 주어지는 것, 이것이 공로주의의 핵심이지 않은가.54)

돌레잘 은 하나님의 사랑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죄인을 향한 그분[하나님]의 구원하는 사랑이 겪음으로 인한 사랑이었다면, 구원은 전적으로 은혜에 의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 사랑은 상당 부분 죄인 안에 있는 어떤 선함에 기인하여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 죄인에게 손을 뻗어 그를 찾도록 강요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의 복음은 오직 죄 인을 향한 그분의 사랑이 겪음으로 인한 것이 아닌(without passion) 한에서 만 일관되게 유지될 수 있다.55)

 

    54) 일반적으로 개혁파 스콜라주의적 전통에서는 택함 받은 자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크게 “선의의 사랑”(love of benevolence)과 “만족의 사랑”(love of complacency)으로 구분하여 이해하였다. Mark Jones, Antinomianism: Reformed Theology’s Unwelcome Guest? (Phillipsburg, NJ: P&R Publishing, 2013), 81-96. 전자는 대상의 어떠함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고, 하나님의 내부 에서 외부로 향하는 타인 지향적이며 타인의 복리를 추구하는 사랑을 의미한다. 이 ‘선의의 사랑’ 의 측면에 따르면, 구원으로 예정된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전적으로 그분 스스로에게서 비 롯되는 것이지, 죄인이 하나님에게 영향을 줌으로써 야기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하나님 안에서 사랑을 불러일으킬 원인적 행위자가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하나님은 죄인이 앞으로 보이게 될 믿음 과 행위를 예견하고 그에 근거하여 그를 구원으로 택하시는 것이 아니다. 한편 후자인 ‘만족의 사 랑’은 대상의 아름다움, 즉 구원받은 신자가 보이는 경건과 순종의 아름다움을 인식하고 그것으로 부터 기쁨과 만족을 얻는 사랑을 의미한다. 신자의 순종은 공로주의적 자격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 라 오히려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내적 성향의 변화(중생 혹은 거듭남)에 따른 열매와 증거로 보아야 한다. 요한복음 14장 21절은 대표적으로 만족의 사랑을 함의하는 본문으로,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 는 자가 곧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이고, 그가 아버지 하나님께로부터 사랑을 받게 될 것을 말하는 데, 문맥은 신자가 구원받은 삶에서 나타내 보이는 순종의 측면을 말하는 것이지, 죄인이 도덕적 선행을 통해 구원을 획득하려는 의미에서의 공로주의적 이미지를 보이고 있지 않다. 따라서 만족 의 사랑은 하나님에게 영향을 주어 구원을 획득하겠다는 공로주의와는 완전히 다른 범주의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신자의 순종에 따른 하나님의 사랑은 그 순종이 중생 혹은 거듭남으로부터 비롯 된 구원의 증거라는 점에서 그 기원이 하나님께 있으므로, 이를 두고 하나님께 영향을 끼쳐 구원을 획득했다거나 사랑을 얻어 내었다고 말하는 것은 그릇된 종류의 추론이라 할 수 있다.

      55) Dolezal, “Strong Impassibility,” 29; 웨이넌디의 중요한 통찰 역시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는 하나 님이 무감동한(고통 불가한) 존재이심“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감동한 존 재로 계시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가운데서 그 목적의 순수함을 유지한 채” 완전하게 사 랑하실 수 있다고 말한다. Weinandy, Does God Suffer?, 160, 163. 또한 신적 무감동성(불가고통 성)을 옹호하는 현대 신학자 토머스 맥콜(Thomas H. McCall) 역시도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의 일 관성을 유지하려면 무감동성이 요구된다고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완전한 사랑은 무감동성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감동성을 요구한다. 감동성을 지닌(passible) 사랑은 순 간적인 열기에 휩싸인다.더 강렬해지거나 덜 강렬해질 수 있다. 강해질 수도 약해질 수도 있다. 무 감동성이란 정확히 이런 것들이 하나도 하나님께 해당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무감동성은 하나님 의 사랑이 절대적으로 불변하며 완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Thomas H. McCall, Forsaken: The Trinity and the Cross, and Why It Matters (Downers Grove , IL: IVP Academic, 2012), 70.

 

신약성경 에베소서 2장의 말씀이 이를 입증해 보여준다.56)

 

    56) Dolezal, “Strong Impassibility,” 30.

 

2장 4절 은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를 살리신 하나님의 사랑이 “큰 사랑”(the great love, ESV)이었다고 말한다. 큰 사랑이란 것이 어떤 종류의 사랑을 의미하 는 것이겠는가?

죄인들이 보이는 어떤 선에 영향을 받아 유발된 사랑, 즉 감동성을 지닌 사랑이라면 그것은 엄청난 사랑이 아니라 그저 당연한 사 랑이 되고 만다.

2장 4절의 앞부분은 하나님의 큰 사랑의 수혜를 입은 대 상들을 가리켜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들”(엡 2:1), “불순종의 아들들”(엡 2:2),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냈던 자들,”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엡 2:3) 이라고 표현하는데, 도대체 이들이 하나님 앞에서 보일 수 있는 선이란 것 이 무엇이 있겠는가.

설령 보였다 하더라도 그에 대한 보답으로 얻게 된 구원이라면, 그것을 어찌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에 따른 구원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감동성을 지닌 사랑은 필연적으로 신적 사랑의 순전함과 충 만함을 약화시킨다.

하나님의 구원에 담긴 한없이 풍성한 은혜의 성격을 박탈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이 진정 자유로우며 은혜의 성격을 유지 하려면 그 사랑은 무감동한 사랑이어야 하고, 그것이 곧 큰 사랑이고 엄청 난 사랑이다. 에베소서 2장 8절은 명확하게 이를 뒷받침해 보여준다.

“너 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 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큰 사랑에 따른 구원은 우리 에게서 “난 것”이 아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

누구도 그분 앞에서 자랑할 수 없다.

이처럼 신적 사랑의 순전함과 충만함을 지키기 위해서 하 나님의 불가고통성(무감동성) 교리는 반드시 긍정되어야 한다.

 

 

Ⅴ. 결론

 

시대와 문화는 불가고통성(무감동성) 교리의 폐기를 명백히 요구하는 듯 보이지만, 불가고통성 교리가 갖는 중대한 신학적 함의를 고려해 볼 때 하나님의 불가고통성은 여전히 성경적 및 신학적 타당성을 갖는다고 판 단된다.

본 연구는 불가고통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에 대한 정의와 불 가고통성 교리가 현대에 도전받는 이유에 대해 살펴본 후, 마지막으로 돌 레잘의 기고문을 중심으로 불가고통성 교리가 긍정되어야 하는 핵심 논 거 두 가지를 간략하게 제시하였다.

신적 불가고통성은 하나님의 존재의 완전성과 그분의 사랑의 충만함을 보장하는 중요한 성경적 교리로 평가 될 수 있다.

불가고통성 교리와 관련해 더 깊이 다뤄야 하는 주제들, 예컨대 성경 내에서 하나님의 감정 및 감정적 변화를 묘사하는 본문들에 대한 이해, 신 인동형론적 표현 및 유비적 언어의 사용, 불가고통성 교리와 위격적 주체 로서 신인이신 그리스도와의 관계,57) 불가고통성 교리의 실천적 함의 등 살펴야 할 과제들이 많이 남아있다.

 

     57) 이에 대한 상세한 논의는 별도 연구에서 다루어야겠지만, 기본적으로 ‘한 인격 안의 두 본성’이라 는 위격적 연합(hypostatic union)을 통해 육신을 취하신 성자가 인성에 따라 고통받으시면서 도 신성에 따라서는 고통당하시지 않는다는 칼케돈적 해결이 가능하다. 칼케돈 신조에 기반한 정 통 기독론은 “모든 행위의 주체이고, 모든 말씀의 화자이며, 모든 경험의 주체”를 두 인격체가 아 닌 하나의 인격적 주체이신 그리스도로 보기에 ‘그리스도가 고통을 받으셨다,’ ‘그리스도가 죽으 셨다’라고 말할 수 있다. Stephen J. Wellum, God the Son Incarnate: The Doctrine of Christ (Wheaton, IL: Crossway, 2016), 310. 성경은 위격이 아닌 본성의 차원에서 ‘그리스도의 인성’이 고통받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엄밀한 진술이 요구되거나 신론 및 기독론과 관련한 이단 적 사상을 논박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부득이 신적 본성과 인간적 본성이라는 형이상학적 용어를 사용함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신학적으로 엄밀한 의미에서 그리스도가 고통받고 죽으신 것은 ‘인 간적 본성을 취하신 분으로서’ 그런 것이지, ‘하나님으로서’ 고통받고 죽으신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추가적인 연구를 통해 다루어야겠지 만, 이 모든 주제에 앞서 우선적으로 신적 본성으로서의 불가고통성이 어 떤 의미를 지니고,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사랑을 이해하는데 불가고통 성 교리가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바르게 숙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 의 속성을 이해하는 것은 곧 신학의 일차적(primary) 대상인 하나님이 어 떤 분인지를 이해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마크 존스(Mark Jones)는 신론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 다:

 

“모든 참된 신학은 하나님께 의존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신학이 구축 되는 기초 원리이시다. … 신학의 다른 모든 주제(예를 들어 인간, 구원, 그리스도 등)는 신론에 의해 하나로 결속된다. 따라서 신학은 항상 어느 정도까지는 하나님 그분에 관한 연구로 남게 된다.”58)

 

    58) Mark Jones, God is: A Devotional Guide to the Attributes of God (Wheaton, IL: Crossway, 2017), 16. 

 

이러한 신론이 오늘 날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교리적 건축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면, 우리는 신론이라는 토 대를 바르고 견고하게 다질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불가고통성(무감동성) 에 관한 논쟁은 결코 지엽적인 사안이 아니다. 우리가 어떤 하나님을 섬 기고 따르느냐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 고통 가능한(감동성을 지닌) 하 나님은 적절한 예배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판단되며, 고통당하실 수 없는 하나님이야말로 진정한 예배를 받기에 더욱 합당한 분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불가고통성은 역사적 기독교가 견지해 온 신앙고백의 핵심이자, 오늘날에도 여전히 타당한 성경적 및 신학적 교리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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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초록]

본 연구는 20세기 중반 이후 지속적으로 도전받고 있는 하나님의 불가 고통성(impassibility)을 주제로, 현대 신학 논의에서 불가고통성 교리가 1) 영어 단어 ‘impassibility’는 한국어 신학 문헌에서 고통당할 수 없는 성질(‘고난불가능성,’ ‘무고 통성,’ ‘불가고통성’), 피동적일 수 없는 성질(‘무감동성,’ ‘불가침성,’ ‘비피동성’)을 나타내는 다양 한 용어들로 번역되어 사용되고 있다. 이 용어는 좁은 의미에서는 하나님이 고통당하실 수 없다는 뜻으로, 넓은 의미에서는 하나님이 외부 요인에 의해 감정적 변화를 겪지 않으신다는 부정신학적 (apophatic) 표현으로 이해될 수 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 즉 그리스도의 인간적 특성이 두드러지는 것과 대비하여 하나님의 신적 본성이 존재론적으로 고통 당할 수 없음을 변증하기 위해 ‘impassible’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본 연구는 이러한 역사적 맥 락을 존중하여 ‘불가고통성’을 기본 번역어로 채택하되, 현대 신학 논의가 주로 하나님의 감정과 외 부 요인에 의한 내적 변화의 문제를 다룬다는 점을 고려하여 맥락에 따라 ‘무감동성’을 병기하거나 사용한다. 구체적으로,   (1) 외부 자극에 의한 고통의 수동성을 논할 때는 ‘고통 불가한/고통 가능한’ (impassible/passible)으로,

 (2) 외부 요인에 의한 상태 변화(감동[感動], 즉 외부 영향을 받아들여 [내적으로] 움직임)를 논할 때는 ‘무감동한/유감동한’으로 번역한다. ‘무감동성’이란 ‘외부 자극을 감 수하여 움직이지 않음’을 뜻하며, 이는 ‘impassibility’의 어원인 라틴어 ‘파씨오’(passio, 겪다, 경험 하다)와 헬라어 ‘파토스’(pathos)의 의미를 정확히 반영한다. 특히 하나님의 사랑이 피조물의 행위나 특성에 반응하여 생기는 것인가를 논할 때는 후자의 번역이 신학적으로 더 정확한 뉘앙스를 전달한다. 

James E. Dolezal의 “Strong Impassibility”를 중심으로 갖는 신학적 정당성의 핵심 근거들을 제시하고, 이로써 오늘날에도 이 교 리가 여전히 타당한 교리임을 논증한다. 홀로코스트 같은 극심한 고통의 현실 앞에서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을 비롯한 현대 신학자들은 고통 가능한(passible) 하나님만이 신정론 문제에 적절한 답이 될 수 있다 고 주장하며 전통적 불가고통성 교리를 비판하였다. 본 연구는 이러한 현 대적 도전들의 신학적 진정성을 인정하면서도, 전통적 불가고통성 교리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왜 오늘날 신적 불가고통성이 여전히 긍정되어야 하 는지를 논증한다. 논증은 세 단계로 진행된다. 먼저 불가고통성 교리의 정확한 정의를 규명한다. 토마스 웨이넌디(Thomas G. Weinandy)에 따르면, 불가고통성 이란 하나님이 외부 혹은 내부 자극에 영향을 받아 감정적 변화를 겪지 않 으심을 의미하며, 이러한 정의는 하나님이 감정을 지니는 방식에서 피조 물과 근본적으로 다르시다는 것을 함의한다. 다음으로 불가고통성 교리 가 현대에 도전받는 이유를 분석한다. 주된 원인은 교리에 대한 오해, 스 토아주의적 무관심과의 혼동, 그리고 19세기 중반 이후 ‘감정’(emotion) 이라는 심리학적 용어의 등장으로 인한 개념적 혼란에 있다. 마지막으 로 고전적 유신론의 회복을 주도하는 제임스 돌레잘(James E. Dolezal)의 “Strong Impassibility” 논의를 중심으로 불가고통성 교리가 긍정되어야 하 는 두 가지 핵심 근거를 제시한다. 첫째, 신적 존재의 완전성 보호를 위해 서이다. 둘째, 신적 사랑의 순전함 보존을 위해서이다. 사도행전 14장과 에베소서 2장을 성경적 근거로 하여, 겪음이 없는(passionless) 사랑만이 참된 은혜가 될 수 있음을 논증한다. 결론적으로, 신적 불가고통성은 하나님의 완전성을 보장하는 중요한 성경적 교리이다. 이 교리는 역사적 기독교가 견지해 온 신앙고백의 핵심 이자 오늘날에도 여전히 타당한 신학적 진리로 평가된다.

[주제어: 불가고통성, 제임스 돌레잘, 무감동성, 고전적 유신론, 토마스 웨이넌디]

 

 

Abstract

Arguing for the Contemporary Validity of the Doctrine of Divine Impassibility: Focusing on James E. Dolezal’s “Strong Impassibility”

ByeongChan Jeong (Korea Baptist Theological University & Seminary)

This study examines the doctrine of divine impassibility, which has been continually challenged since the mid-twentieth century, presenting the core grounds for its theological legitimacy in contemporary theological discourse and thereby demonstrating that this doctrine remains valid today. In the face of extreme suffering such as the Holocaust, contemporary theologians including Jürgen Moltmann have criticized the traditional doctrine of impassibility, arguing that only a passible God can provide an adequate answer to the problem of theodicy. While acknowledging the theological earnestness of these contemporary challenges, this study argues from the position of defending the traditional doctrine of impassibility why divine impassibility should still be affirmed today. The argument proceeds in three stages. First, it establishes a precise definition of the doctrine of impassibility. According to Thomas G. Weinandy, impassibility means that God does not undergo emotional changes through being affected by external or internal stimuli, and this definition implies that God is fundamentally different from creatures in ames E. Dolezal의 “Strong Impassibility”를 중심으로 the manner of having emotions. Second, it analyzes the reasons why the doctrine of impassibility is challenged in the modern era. The primary causes lie in misunderstandings of the doctrine, confusion with Stoic apathy, and conceptual confusion arising from the emergence of the psychological term “emotion” since the mid-nineteenth century. Finally, focusing on James E. Dolezal’s discussion of “Strong Impassibility,” which spearheads the recovery of classical theism, it presents two core grounds for affirming the doctrine of impassibility. First, it is necessary for protecting the perfection of the divine being. Second, it is necessary for preserving the purity of divine love. Drawing on Acts 14 and Ephesians 2 as biblical grounds, it demonstrates that only passionless love can be true grace. In conclusion, divine impassibility is an important biblical doctrine that ensures God’s perfection. This doctrine is the core of the confession of faith that historical Christianity has maintained and is evaluated as a theological truth that remains valid today.

 

[Key words: impassibility, James Dolezal, apatheia, classical theism, Thomas Weinandy] 

 

 

논문 투고일: 2026.03.01. 게재 확정일: 2026.03.27. 

조직신학연구 제52권 (2026년)

 

KCI_FI003329444.pdf
2.39MB

 

 http://doi.org/10.31777/sst.52..202604.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