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나그함마디 코덱스 VII(NHC VII)은 셈의 풀이, 위대한 셋의 둘 째 논고, 베드로 묵시록, 실바노스의 가르침, 셋의 삼석비의 다섯 문헌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까지의 연구는 주로 각 문헌의 사 상사적 특징이나 문학적·편집적 형성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되 었으며, 그 결과 개별 텍스트에 대한 정밀한 분석이 축적되었다.1)
그 러나 이러한 연구는 코덱스 전체를 하나의 편집된 독서 단위로 보고, 그 안에서 반복되고 변주되는 구조적 연관성을 체계적으로 검토하는 데에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관심을 보여 왔다.
특히 코덱스 VII의 서두를 이루는 세 문헌, 곧 셈의 풀이, 위대 한 셋의 둘째 논고, 베드로 묵시록은 모두 구원자(또는 예수)의 정 체성을 둘러싼 ‘인식’의 문제를 중심 주제로 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사이에 나타나는 인식론적 연속성과 구조적 패턴은 개별 문헌 연구의 틀 안에서 부분적으로만 논의되었다.
기존 연구는 이 문헌들 을 각각 셋파 전통, 반(反)정통적 기독론, 묵시 문헌 등의 범주 안에서 조명해 왔으나, 이들이 하나의 코덱스 안에서 배열될 때 형성되는 담 론적 효과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주의를 기울여 왔다.2)
1) Birger A. Pearson, ed., Nag Hammadi Codex VII, NHMS 30 (Leiden: Brill, 1996), 특히 서론; John D. Turner, “Sethian Gnosticism: A Literary History,” Nag Hammadi, Gnosticism, and Early Christianity, ed. by Charles W. Hedrick and Robert Hodgson (Peabody: Hendrickson, 1986), 55-86.
2) Frederik Wisse, “NHC VII,1: The Paraphrase of Shem: Text, Translation, and Notes,” Nag Hammadi Codex VII, ed. by Pearson, 24-127; Gregory Riley, “NHC VII,2: The Second Treatise of the Great Seth,” Nag Hammadi Codex VII, ed. by Pearson, 129- 99; James Brashler, “NHC VII,3: Apocalypse of Peter,” Nag Hammadi Codex VII, ed. by Pearson, 218-47.
본 연구는 이러한 연구사적 상황에 주목하여, 나그함마디 코덱스 VII의 처음 세 문헌을 하나의 연속된 독서 단위로 읽는 가능성을 검토 한다.
이를 위해 본 논문은 개별 문헌의 사상적 독자성을 부정하기보 다는, 코덱스라는 편집 단위 안에서 이 텍스트들 사이에 반복되고 변 주되는 인식 패턴에 주목한다.
다시 말해 본 연구의 관심은 특정 문헌 이 무엇을 ‘가르치는가’라기보다, 이 문헌군이 예수(또는 구원자)의 정 체성을 둘러싼 인식과 오인의 관계를 어떻게 제시하고 있는지를 살펴 보는 데 있다.3)
이에 따라 본 논문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한다.
코덱스 VII의 처음 세 문헌에서 예수(또는 구원자)의 참된 정체성은 어떠한 방식으 로 인식 가능한 것으로 제시되는가?
또한 동일한 사건과 현현을 둘러 싸고 인식과 오인이 갈라지는 지점에서 이 문헌군은 어떤 인식 패턴 을 보여주는가?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본 연구는 코덱스 VII의 문헌 배열과 장르적 전환을 하나의 연속된 인식 서사로 읽는 코덱스 단위 접근을 취한다.
최근 나그함마디 문헌을 개별 텍스트의 집합이 아니라, 물질적·사회적 맥락 속에서 편집된 책 단위로 이해하려는 연 구 경향은 이러한 접근을 뒷받침한다.4)
3) Michel Roberge, The Paraphrase of Shem (NH VII,1): Introduction, Translation, and Commentary (Leiden: Brill, 2010), 66-72; Silvia Pellegrini, “Die zweite Logos des großen Seth,” Nag Hammadi Deutsch, ed. by Hans-Martin Schenke et al. (Berlin: de Gruyter, 2003), 569-90.
4) 최근 나그함마디 코덱스를 편집된 책 단위의 독서 대상으로 이해하려는 접근에 대해서는 Hugo Lundhaug and Lance Jenott, “Introduction: The Nag Hammadi Codices in Context,” The Nag Hammadi Codices and Late Antique Egypt (Leiden: Brill, 2018), 1-7; James E. Goehring, “The Material Encoding of Early Christian Division: Nag Hammadi Codex VII and the Ascetic Milieu in Upper Egypt,” The Nag Hammadi Codices and Late Antique Egypt (Leiden: Brill, 2018), 53-80을 보라.
이 질문을 검토하기 위해 본 논문은 ‘인식’(recognition), ‘오인’(mis- recognition), ‘분기’(bifurcation)라는 세 가지 분석 개념을 잠정적으로 제안한다.
이 개념들은 특정 학자의 이론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라기 보다, 코덱스 VII의 여러 문헌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인식 구조를 설명하기 위해 본 연구에서 설정한 분석 범주이다.
이러한 개념화는 영지주의 연구에서 논의되어 온 계시적 인식, 선택된 자의 인식 특권, 그리고 인식 가능한 자와 인식하지 못하는 자 사이의 구분에 관한 기 존 논의들을 참고하여 정식화된 것이다.5)
5) 참조. Einar Thomassen, The Spiritual Seed: The Church of the “Valentinians” (Leiden: Brill, 2006), 39-68; Nicola Denzey Lewis, Introduction to “Gnosticism”: Ancient Voices, Christian Worlds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3), 94-101.
여기서 ‘인식’은 예수의 참된 정체성을 파악하는 능력을 가리키며, 이는 인간의 자발적 추론이나 점진적 학습의 결과라기보다 계시를 통 해 부여되는 사건으로 서술된다.
반대로 ‘오인’은 예수를 육체적·현상 적 차원에 한정하여 파악하는 구조적 무능력을 의미하며, 이는 교정 가능한 오류라기보다 주체의 존재론적 조건에서 비롯되는 한계로 제 시된다.
마지막으로 ‘분기’는 동일한 계시 사건 앞에서 인식자와 오인 자가 서로 다른 인식 상태로 나뉘는 현상을 가리키며, 이때 계시는 새 로운 차이를 만들어내기보다 이미 전제된 차이를 드러내는 계기로 서 술된다.
이 세 개념은 분석의 출발점에서는 인식론적 범주이지만, 각 문헌 안에서는 우주론적·기독론적·묵시적 도식과 결합되어 작동한다. 이 러한 개념적 틀은 코덱스 VII의 여러 문헌에 나타나는 예수 인식 장면 들을 서로 연결하여 읽을 수 있게 하며, 동일한 계시 사건이 어떻게 서로 다른 인식 결과를 낳는지를 구조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분석 틀을 제공한다.
본 연구는 코덱스 VII의 처음 세 문헌에 분석 범위를 한 정하고, 각 문헌에서 핵심 구절을 선별하여 정밀한 텍스트 분석을 수 행한다. 바울 서신이나 교부 문헌과의 비교는 결론에서 간략히 언급 하되, 본격적인 대조 연구는 후속 과제로 남긴다.6)
6) Karen L. King, What Is Gnosticism?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2003), 특히 1-28; David Brakke, The Gnostics: Myth, Ritual, and Diversity in Early Christianity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2010), 특히 19-41.
이러한 제한을 전 제하면서도, 본 논문은 코덱스 VII을 예수를 믿도록 설득하는 텍스트 로 이해하기보다는, 인식 가능한 자와 인식 불가능한 자 사이의 경계 를 담론적으로 안정화하는 장치로 읽을 수 있는 해석 가능성을 제시 한다.
II. 선행 연구
1. 개별 문헌 연구의 축적과 범위
나그함마디 코덱스 VII에 수록된 개별 문헌들에 대해서는 지난 수 십 년간 의미 있는 연구 성과가 축적되어 왔다.
셈의 풀이에 관해서 는 로베르주(Michel Roberge)의 주석서가 이 문헌의 우주론적 체계와 인간론을 가장 포괄적으로 분석한 연구로 평가된다.
그는 빛·어둠·영 의 삼원 구조가 셋파 전통 안에서 어떻게 조직되는지를 정밀하게 논 증하였으며, 본문 해석의 주요 준거점을 제공하였다.
다만 그의 논의 는 셈의 풀이를 하나의 독립된 사상 체계로 다루는 데 주안점을 두 고 있어, 동일 코덱스에 수록된 다른 문헌들과의 구조적 연관성에 대 한 논의는 다소 제한적으로 제시된다.7)
7) Roberge, The Paraphrase of Shem, 66-72.
비세(Frederik Wisse) 역시 이 문헌을 기독교적 영향이 거의 없는 셋파 전통의 산물로 이해하면서, 문헌 간 관계보다는 개별 텍스트의 사상사적 계보에 분석의 초점을 두었다.8)
위대한 셋의 둘째 논고에 관한 연구는 라일리(Gregory Riley)의 번 역·주석을 통해 본문 확정과 기본 해석의 토대를 마련한 이후, 십자 가 서사의 성격을 둘러싼 논쟁으로 확장되었다.9)
펠레그리니(Silvia Pellegrini)는 이 문헌을 가현설적 기독론 전통 속에서 해석하며, 특히 십자가 위에서 웃는 구원자 모티프를 바실리데스 전승과의 전통사적 친연성 속에서 조명하였다.10)
반면 팽쇼(Louis Painchaud)는 이 문헌의 논쟁적 성격에 주목하여, ‘눈먼 자들’이라는 표현을 정통 기독교 집단 을 겨냥한 논박으로 이해하였다.11)
이러한 연구들은 위대한 셋의 기독론적 특수성과 반(反)정통적 논쟁성을 설득력 있게 해명하였으나, 이 문헌이 나그함마디 코덱스 VII 전체 안에서 수행하는 담론적 기능 이나 인식 구조상의 위치를 체계적으로 규명하는 데까지 논의를 확장 하지는 않았다.
베드로 묵시록에 대해서는 브래슐러(James Brashler)의 번역과 주 석이 본문 확정과 기본 해석의 기준을 제공하였고, 하벨라르(Henriette Havelaar)의 단행본 연구는 이 문헌의 기독론을 ‘두 몸 기독론’이라는 틀로 정식화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12)
8) Frederik Wisse, “NHC,1: The Paraphrase of Shem: Text, Translation, and Notes,” Nag Hammadi Codex VII, ed. by Birger A. Pearson (Leiden: Brill, 1996), 15-127.
9) Gregory Riley, “NHC,2: The Second Treatise of the Great Seth,” Nag Hammadi Codex VII, ed. by Pearson, 129-99.
10) Silvia Pellegrini, “Die zweite Logos des großen Seth,” Nag Hammadi Deutsch, ed. by Hans-Martin Schenke et al. (Berlin: de Gruyter, 2003), 569-90.
11) Louis Painchaud, Le deuxième traité du Grand Seth (NH VII,2): Texte établi et présenté, Bibliothèque Copte de Nag Hammadi, Section « Textes » 6 (Québec: Presses de l’Université Laval, 1982), 15-32.
12) James Brashler, “NHC VII,3: Apocalypse of Peter: Text, Translation, and Notes,” Nag Hammadi Codex VII, ed. by Pearson, 218-47; Henriette W. Havelaar, The Coptic Apocalypse of Peter (Nag Hammadi Codex VII,3), Texte und Untersuchungen 144 (Berlin: Akademie Verlag, 1999).
또한 킹(Karen L. King)은 이 문헌을 포함한 나그함마디 묵시 문헌들을 2-3세기 순교 담론과 의 긴장 속에서 읽으며, 고난을 신앙의 규범적 기준으로 절대화하는 흐름에 대한 비판적 응답으로 해석하였다.13)
13) Karen L. King, “Martyrdom and Its Discontents in the Tchacos Codex,” The Codex Judas Papers: Proceedings of the International Congress on the Tchacos Codex, ed. by April D. DeConick (Leiden: Brill, 2009), 23-42.
그러나 이러한 논의 역 시 베드로 묵시록을 주로 개별 문헌 차원에서 다루는 데 집중할 뿐, 이 문헌이 코덱스 VII의 다른 문헌들과 공유하는 인식 구조와 담론적 연속성을 분석의 중심에 두지는 않았다.
2. 코덱스 VII 단위 연구의 상대적 공백
코덱스 VII 전체에 관한 연구는 피어슨(Birger A. Pearson)의 편집본 출간을 통해 본문 확정과 기본 주석 작업의 토대를 확보하였다.14)
다 만 그의 서론은 코덱스의 편집 의도나 수록 문헌들 사이의 구조적 연 관성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며, 해석적 판단을 최소화한다.
터너(John D. Turner)와 펠레그리니 역시 코덱스 VII에 포 함된 일부 문헌들이 셋파 전통과의 연관성을 공유한다는 점을 지적하 였으나, 이러한 공통성이 어떠한 인식 구조나 담론적 패턴으로 조직 되는지에 대해서는 본격적으로 탐구하지 않았다.15)
14) Birger A. Pearson (ed.), Nag Hammadi Codex VII, Nag Hammadi Studies 30 (Leiden: Brill, 1996).
15) John D. Turner, “Sethian Gnosticism: A Literary History,” Nag Hammadi, Gnosticism, and Early Christianity, ed. by Charles W. Hedrick and Robert Hodgson (Peabody: Hendrickson, 1986), 55-86; Pellegrini, “Die zweite Logos des großen Seth,” 569-90.
토마센(Einar Thomassen)의 ‘영적 종자’(spiritual seed) 개념 분석은 발렌티누스 공동체의 집단 정체성과 사회적 자기 이해를 해명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하였으나, 그 논의의 초점은 주로 공동체 유형과 인간 분류에 놓여 있어, 코덱스 VII라는 편집 단위 자체의 특수성은 상대적 으로 전면화되지 않는다.16)
16) Thomassen, The Spiritual Seed, 특히 4-5장.
이처럼 기존 연구는 코덱스 VII에 수록된 문헌들을 사상사적 계보 나 교리적 전통 분류의 관점에서 조명하는 데에는 상당한 성과를 거 두었으나, 이 문헌군을 하나의 편집된 텍스트 집합으로 설정하고, 그 내부에서 작동하는 구조적·인식론적 연속성과 담론적 배치의 논리를 체계적으로 분석하려는 시도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다.
3. ‘영지주의’ 개념 재검토와 방법론적 전환, 그리고 국내 연구 지형
2000년대 이후 영지주의 연구는 범주론적 재검토라는 중요한 전환 을 경험했다.
윌리엄스(Michael A. Williams)는 ‘영지주의’라는 범주 자 체가 근대 학문 담론 속에서 구성된 분석 틀임을 비판하며, 이를 해체 하고 개별 텍스트의 담론적·문학적 특수성에 주목할 것을 촉구하였 다.17)
킹 역시 ‘영지주의’가 고대의 자명한 자기 정체성이라기보다 정 통성 구축 과정에서 형성된 이단학적 범주로 기능해 왔음을 지적하 며, 이 용어의 사용 자체를 문제화하였다.18)
17) Michael A. Williams, Rethinking “Gnosticism”: An Argument for Dismantling a Dubious Category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6), 특히 38-52.
18) Karen L. King, What Is Gnosticism?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2003), 특히 1-28.
브라케(David Brakke)는 ‘영지주의자들’이라는 집단의 실재를 전제하기보다 텍스트별·맥락별 분석의 필요성을 강조하였고, 루이스(Nicola Denzey Lewis) 또한 나그함마디 문헌을 단일한 범주로 환원하는 접근의 한계를 지적하며 사회 적·신학적 맥락의 복원을 제안하였다.19)
이러한 방법론적 전환은 코덱스 VII 연구에도 직접적인 함의를 지 닌다.
‘셋파 영지주의’라는 거대 범주 대신, 개별 문헌과 코덱스 단위 의 구조적 연관성에 주목하는 접근이 점차 요청되고 있다.
드코닉 (April D. DeConick)이 제안하듯, 셋파 전통은 단일한 운동이라기보다 다양한 텍스트 네트워크로 이해될 수 있으며, 코덱스 VII은 그러한 네 트워크가 특정한 방식으로 배열·구성된 하나의 사례로 읽힐 수 있 다.20)
국내 학계에서도 나그함마디 문헌을 주제로 한 연구는 점진적으로 축적되었다.
국내 연구는 주로 영지주의의 신론·기독론·구원론을 중심 으로 한 주제별 신학 논의나, 도마복음을 비롯한 개별 문헌에 대한 해석학적·신학적 분석에 집중해 왔다.21)
이러한 연구들은 나그함마 디 문헌이 지닌 사상적 급진성과 초기 기독교 사상사와의 긴장을 다 양한 각도에서 조명해 왔으며, 특히 도마복음을 중심으로 한 연구 는 국내 연구 지형에서 지속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왔다.22)
19) David Brakke, The Gnostics: Myth, Ritual, and Diversity in Early Christianity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2010), 특히 19-41; Lewis, Introduction, 94-101.
20) DeConick, The Gnostic New Age, 특히 3-4장.
21) 김용옥, 도마福音書硏究 (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83); 송혜경, “영지주의 종말론,” 가톨릭신학사상 74 (2014), 150-89; 송혜경, 영지주의자들의 성서 (의 정부: 한님성서연구소, 2022); 유승종, “영지주의의 구원관 연구,” 철학·사상·문 화 14 (2012), 214-33; 유태엽, “나그함마디 문헌을 통해 본 ‘기독교성’의 정체성에 대한 소고,” 신학논단 75 (2014), 99-131; 조병하, “초대교회(1-2세기) 이단 형성 의 역사와 정통 확립에 대한 연구,” 성경과 신학 72 (2014), 291-323; 조재형, “고대 영지 사상이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신론에 끼친 영향,” 신학연구 69 (2016), 87-110; “고대 영지 사상이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기독론에 끼친 영향,” 신학사상 178 (2017), 53-79; 초기 그리스도교와 영지주의 (서울: 동연, 2020).
22) 김용옥, 도올의 도마복음이야기 1 (서울: 통나무, 2008); 유병우, “가현설의 정의 와 그 의미에 대한 기호학적 분석,” 신약논단 22 (2015), 535-64; 유병우, “도마복음의 말씀 번호 매김에 관한 연구,” 신학사상 187 (2019), 79-119; 차정식, “도마 복음의 통전적 만유 신학 시론,” 한국기독교신학논총 132 (2024), 7-43; 문우일 (Moon Wooil), “The Descending and Ascending Theme in the Gospel of Thomas (NHC II,2),” 신학논단 90 (2017), 103-27; 정승우, “바울(서신)과 도마(복음)는 영지사상을 공유하였는가? 신학사상 211 (2025), 161-93.
그러나 이러한 성과의 축적에도 불구하고, 나그함마디 코덱스를 하 나의 편집된 문헌군으로 설정하고 그 내부의 구조적 연관성이나 담론 적·인식론적 논리를 분석하려는 시도는 국내 연구에서는 다소 제한 적으로 제시되었다.
특히 코덱스 VII에 수록된 문헌들을 상호 연관된 텍스트 집합으로 읽고, 그 편집 논리와 인식 구조를 체계적으로 고찰 한 한국어 연구는 아직 충분히 축적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본 연구는 이러한 연구사적 상황을 전제하면서, 개별 문헌의 내용 분석을 넘어 나그함마디 코덱스 VII의 처음 세 문헌이 공유하는 인식 론적 패턴을 규명하고자 한다. ‘인식/오인/분기’라는 분석 개념을 통 해, 이 문헌들이 단순한 편집적 병치가 아니라 구조적 연관성을 지닌 텍스트 집합으로 읽는 가능성을 탐구하며, 이 점에서 본 연구는 방법 론에 초점을 맞추어 기존 국내외 연구와 대화를 시도한다
III. 코덱스 VII의 인식 구조
1. 셈의 풀이: 우주론적 인식
셈의 풀이(NHC VII,1)는 코덱스 VII의 서두에서 예수라는 기독 교적 기표가 부재한 상태로 전개되는 원형적 계시 서사를 제시한다.
셈이 데르데케아스(Derdekeas)로부터 전수받는 계시는 빛·어둠·영으 로 구성된 삼원론적 우주 구조를 드러내며, 그 핵심에는 “빛은 어둠의 비천함을 알지만, 어둠은 빛을 알지 못한다”라는 근본적인 인식 비대 칭이 자리한다.
본 절은 셈의 상승 경험(1:1-21)과 빛/어둠의 인식 대조 (2:11-18)를 분석함으로써, 코덱스 VII 전체를 관통하는 인식 패턴이 우주론적 차원에서 어떻게 설정되는지를 검토한다.
이러한 인식 구조 는 이후 기독론적·묵시적 변주를 가능하게 하는 원형적 틀로 이해될 수 있다.
가. 문헌 개관
셈의 풀이는 셈이 “세계의 꼭대기”로 상승하여 우주의 근원적 질 서를 계시받는 서사로 구성되어 있다.
이 문헌은 예수에 대한 직접적 언급을 포함하지 않으며, 빛·어둠·영의 삼원 구조를 중심으로 우주 생성과 구원의 과정을 서술한다. 데르데케아스는 빛의 아들로서 셈에 게 계시를 전달하는 매개자로 등장하며, 그의 발화를 통해 우주론적 질서와 인식 가능성의 비대칭이 명시적으로 설정된다.
나. 인식의 기본 형식: 셈의 상승과 인식론적 탈피
[핵심 구절 1] 셈의 상승과 우주 구조 계시(NHC VII,1:1,1-21)23)
셈의 풀이 나지 않은 영(ἀγέννητον πνεῦμα)에 관한 의역, 데르데케아스가 나, 셈에게 위엄(μέγεθος)의 뜻에 따라 계시한 것. 나의 몸(σῶμα) 안에 있던 나의 사유가 나를 나의 족속(γενεά)24)으로부터 빼앗아갔다.
23) 한글 번역은 Wisse와 Roberge의 텍스트를 대조‧종합하여 제시하였으며, 한국어 표 현의 자연스러움을 위해 일부 조정하였다. 본문 인용은 기본적으로 Wisse의 콥트 어 텍스트와 번역을 따르되, 셈의 풀이의 우주론적 구조와 인식 도식에 대한 해석에서는 Roberge의 분석을 주된 참조점으로 삼는다.
24)γενεά는 혈연적 계보라기보다, 동일한 인식 지평을 공유하는 존재론적 집단을 가 리킨다. 셈이 ‘족속으로부터 빼앗긴다’라는 표현은 사회적 단절이 아니라, 공유된 154❙신약논단 제33권 제1호∙2026년 봄
그것이 창조(κτίσις)의 꼭대기로, 곧 온 거주 세계(οἰκουμένη)를 비추는 빛 가까이로 나를 데려갔다. 그곳에서 나는 어떠한 땅의 형상도 보지 못했으나, 오직 빛만이 있었다. 그리고 마치 잠든 것처럼 나의 사유는 어둠의 몸(σῶμα τοῦ σκότους)으로부터 분리되었다. 나는 한 음성이 내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셈이여, 네가 혼합되지 않은(ἀκέραιος) 힘(δύναμις)25)으로부터 왔고, 이 땅의 첫 번째 존재이므로, 내가 너에게 전하는 말을 듣고 이해하라(νοεῖν).”26) 셈의 풀이의 서두는 코덱스 VII에 나타나는 인식 구조의 가장 근 본적인 형태, 곧 우주론적 인식을 제시한다. 셈이 경험하는 것은 개별 사건에 대한 정보가 아니라, 세계 전체의 질서와 위계를 관통하는 구 조적 계시이다. 여기서 인식은 사실 인지의 축적이 아니라, 위치의 이 동과 존재 상태의 전환을 통해 성립하는 사건으로 규정된다. “나의 사유가 나를 나의 족속으로부터 빼앗아”라는 진술은 인식이 기존 공동체로부터의 분리를 전제하는 방식으로 서술되고 있음을 시 사한다. 사유는 셈의 몸 안에 있었으나, 바로 그 사유가 그를 “창조의 꼭대기”로 인도함으로써 그는 족속과 단절된다. 이 상승은 단순한 물 인식 구조로부터의 이탈을 의미한다. Turner, “Sethian Gnosticism,” 63-65. 25) ‘혼합되지 않은 힘’은 윤리적 순수성이나 금욕적 상태를 가리키지 않으며, 인식 가능성을 보장하는 존재론적 기원을 지시한다. 셈이 계시를 이해할 수 있는 근거 는 그의 행위가 아니라, 그가 속한 기원의 성격에 있다. Roberge, The Paraphrase of Shem, 70-72. 26) νοεῖν은 정보의 인식이나 추론 행위를 가리키기보다, 계시를 통해 우주 질서의 참된 구조를 파악하는 인식 행위를 의미한다. 이는 점진적 학습이나 해석의 결과 가 아니라, 특정 주체에게 부여되는 인식 능력의 발현으로 제시된다. Roberge, The Paraphrase of Shem, 66-72. 이형일_인식과 오인의 구조❙155 리적 이동이 아니라 인식론적 단절을 수반하는 사건으로서, 셈이 더 이상 족속이 공유하는 인식 지평 안에서 세계를 인식하지 않게 되었 음을 의미한다. “창조의 꼭대기” 곧 “온 거주 세계(οἰκουμένη)를 비추는 빛 가까이” 로 올라간다는 표현은 셈이 세계의 외부에서 온 세계를 관조하는 관 점에 놓였음을 의미한다. 이는 베드로 묵시록에서 베드로가 동일한 십자가 사건을 이중으로 보는 구조와 형식적으로 유사하지만, 셈의 풀이에서는 그 대상이 특정 사건이 아니라 우주 전체라는 점에서 더 근원적인 차원을 보여준다. 셈은 세계 안에 존재하면서도 동시에 세 계를 밖에서 바라보는 위치에 놓여 있다. “나의 사유는 어둠의 몸으로부터 분리되었다”라는 구절은 인식 주 체와 물질적 조건 사이의 단절을 더욱 분명히 한다. 사유는 한때 “어 둠의 몸”에 속해 있었으나, 계시를 통해 그로부터 분리된다. 이 분리 는 일시적 상태가 아니라 인식의 지속 조건이다. 셈은 여전히 몸을 지 니지만, 그의 인식은 더 이상 그 몸의 한계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데르데케아스의 발화“네가 혼합되지 않은(ἀκέραιος) 힘(δύναμις)으로부터 왔[으므로], 내가 너에게 전하는 말을 듣고 이해 하라”는 인식 능력의 근원을 시사한다. 셈이 우주 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이유는 학습이나 도덕적 성취에 있지 않고, 그가 “혼합되지 않은 힘”에서 기원했다는 존재론적 조건에 있다. 인식은 획득의 문제가 아 니라, 기원에 의해 가능성의 범위가 구조화된 것으로 제시된다. 반대 로 셈의 족속은 이 기원을 공유하지 않기에, 동일한 계시가 주어지더 라도 이해에 도달할 수 없다. 요컨대 셈의 풀이가 제시하는 우주론적 인식은 세 가지 요소를 결합한다. (1) 기존 공동체로부터의 분리, (2) 세계 외부의 관조적 위 치, (3) 기원에 의해 보장된 본질적 인식 능력. 이 세 요소의 결합을 156❙신약논단 제33권 제1호∙2026년 봄 통해 셈은 빛·어둠·영의 구조를 인식하며, 이러한 인식 형식은 이후 위대한 셋과 베드로 묵시록에서 각각 기독론적·묵시적 차원으 로 변주될 원형을 이룬다. [핵심 구절 2] 빛과 어둠의 인식 비대칭(NHC VII,1:2,10-28)27) 그러나 빛은 큰 능력을 지니고 있었기에, 어둠의 비천함과 그 무질서(ἀταξία)를 알고 있었다. 곧 그 뿌리가 곧지 않다는 것을. 어둠의 일그러짐(ἀνωμαλία)은 지각의 결여(ἀναίσθητος)였다.28) 그는 스스로 말하기를 “나 위에는 아무도 없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자기의 악(κακία)을 억제할 수 있는 동안에는 물 속에 덮여 머물러 있었다. 그러자 어둠이 요동하였다. 그리고 영(πνεῦμα)은 그 소리에 놀라 두려워하였다. 그는 스스로를 자신의 자리(τόπος)로 끌어올렸고, 거기서 크고 어두운 물을 보았다. 그리고 그는 역겨움을 느꼈다(σκιανίσεσθαι). 그리고 영의 사유가 아래를 향해 시선을 두었을 때, 그는 자신의 무한한 빛을 보았다. 그러나 그 악한 뿌리는 그것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았다(ἀμελεῖν).29)
27) 한글 번역은 Wisse와 Roberge의 해당 본문(NHC VII,1:2,10-28)을 대조‧종합하여 제시하였으며, 한국어 표현의 자연스러움을 위해 필자가 일부 조정하였다.
28) 어둠의 상태를 규정하는 ἀναίσθητος는 단순한 무지나 인지적 결핍이 아니라, 인식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구조적 상태를 가리킨다. 이는 윤리적 실패나 교정 가능한 오해의 문제가 아니라, 주체의 존재론적 조건에 의해 규정된 인식 불능을 표현하 는 용어로 이해되어야 한다. Wisse, “The Paraphrase of Shem,” 52-54.
29) 본문에서 어둠이 빛에 대해 ἀμελεῖν한다고 서술되는 것은, 빛을 인식하지 못한다 는 의미를 넘어 그 존재 자체에 대해 관심이나 지향을 갖지 않는 상태를 뜻한다. 이는 인식 불능이 단순한 인지 한계에 그치지 않고, 지향성의 결여로까지 심화된 상태임을 보여준다.이 무관심은 빛과 어둠 사이의 관계가 상호 오해가 아니라 일방적 인식과 일방적 무관심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드러낸다. Roberge, The Paraphrase of Shem, 101-103.
2,10-28은 셈의 풀이가 설정하는 인식 구조를 가장 명시적으로 진술 한다.
여기서 핵심은 인식의 비대칭성이다. 빛은 어둠을 “알고”(γινώ- σκειν의 의미 영역), 어둠의 비천함과 무질서를 식별할 수 있지만, 어 둠은 빛을 알지 못한다.
이 비대칭은 정보의 양이나 인식 주체의 노력 에서 비롯되지 않으며, 텍스트는 이를 어둠의 지각 결여(ἀναίσθητος)라 는 존재론적 상태로 규정한다.
특히 “어둠의 일그러짐은 지각의 결여였다”라는 진술은 오인을 윤 리적 실패나 판단 착오의 문제로 환원하지 않는다.
어둠은 잘못 판단 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에 놓여 있다.
따라서 “나 위에는 아무도 없다”라는 어둠의 선언은 교만한 자기 신격화라기 보다, 자기 인식의 구조적 폐쇄성에서 비롯된 독백에 가깝다.
이는 이 후 위대한 셋의 둘째 논고에서 권세자들이 예수를 오인하면서도 그 오인을 인식하지 못하는 구조와 정확히 평행을 이룬다.
이어지는 서술에서 중요한 점은 어둠이 빛의 무한함을 “보지 못하 는” 것이 아니라, 전혀 개의치 않는다(ἀμελεῖν)는 점이다.
이는 인식의 실패가 단순한 인지 불가능성에 그치지 않고, 관심·지향의 부재로까 지 심화된 상태임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빛과 어둠의 관계는 상호 오해나 경쟁적 인식이 아니라, 일방적 인식 가능성과 일방적 무관심 으로 구성된다.
이로써 셈의 풀이는 인식과 오인을 다음과 같은 구조로 고정한 다.
빛은 어둠을 포함하여 세계 전체를 인식할 수 있는 위치에 놓여 있지만, 어둠은 자신과 자신의 질서만을 유일한 실재로 간주하며, 그 밖의 실재에 대해서는 인식도 오인도 하지 않는다.
오인은 잘못된 앎이 아니라, 알 수 없음 자체가 구조화된 상태이다.30)
30) 이와 같이 오인을 윤리적 실패나 인지적 오류가 아니라 존재론적으로 규정된 인식 불가능성으로 이해하는 독법은 나그함마디 문헌 전반의 인간 분류 논의를 다룬 토마센의 분석과도 부분적으로 상응한다. Thomassen, The Spiritual Seed, 54-68, 특히 61 참조.
요컨대 셈의 풀이에서 설정되는 인식 비대칭의 원리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빛은 어둠을 알지만, 어둠은 빛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이 비대칭은 교정되거나 해소되지 않는 존재론적 조건으로 제 시된다.
이 원리는 이후 코덱스 VII의 다른 문헌들에서 새로 설명되기 보다, 각기 다른 서사 장치 속에서 반복·재현될 것이다.
다. 코덱스 VII에서의 위치
셈의 풀이는 코덱스 VII에 수록된 문헌들 가운데 예수가 명시적 으로 등장하지 않는 유일한 텍스트이다.
그러나 이러한 부재는 결핍 이 아니라, 코덱스 전체의 담론 전개를 준비하는 편집적 장치로 이해 될 수 있다.
코덱스 VII은 셈의 풀이를 통해 우주론적 차원의 인식 구조를 먼저 제시한 뒤, 이를 위대한 셋의 둘째 논고에서는 기독론 적 차원으로, 베드로 묵시록에서는 묵시적 차원으로 단계적으로 전 개한다.
이 과정에서 셈의 풀이에서 확립된 빛과 어둠의 인식 비대 칭은 예수와 권세자들, 그리고 베드로와 군중 사이의 관계로 반복·변 주되며, 코덱스 전체의 서사적·담론적 진행을 규정한다.
이 점에서 셈의 풀이는 코덱스 VII의 인식 구조를 우주론적 차원 에서 설정하는 기초 텍스트로 이해될 수 있다.
셈의 상승은 족속으로 부터의 분리를 통해 이루어지며, 이는 세계 내부의 공유된 인식 지평 을 이탈하여 빛·어둠·영의 구조가 드러나는 관찰 지점으로 이동하는 사건이다.
이러한 계시는 셈이 “혼합되지 않은 힘으로부터” 왔다는 존 재론적 조건에 근거하며, 인식 능력이 학습이나 선택의 산물이라기보다 기원에 의해 구조화된 가능성임을 시사한다.
이 과정에서 제시되는 인식 비대칭곧 “빛은 어둠을 알지만, 어둠 은 빛을 알지 못한다”는 관계은 우연적이거나 교정 가능한 상태가 아니라, 존재론적으로 구조화된 질서로 제시된다.
어둠의 무지는 “자 기 위에 아무도 없다는 환상”으로 규정되며, 이는 잘못된 판단이나 왜 곡된 인식이 아니라 인식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상태를 가리킨다.
따 라서 이 비대칭성은 윤리적 실패나 일시적 오해의 문제가 아니라, 우 주의 근본 질서에 속한 조건이다.
셈의 풀이에서 설정된 이 인식 패턴은 이후 위대한 셋의 둘째 논고에서 기독론적 차원으로, 베드로 묵시록에서는 묵시적 차원 으로 변주된다.
코덱스 VII에서 인식은 언제나 계시를 통해서만 가능 하며, 이 계시는 특정한 인식 주체에게만 부여된다.
그 결과 인식자와 오인자는 동일한 세계 안에 존재하면서도 동일한 인식 지평을 결코 공유하지 않는다. 이러한 분리는 일시적 국면이 아니라 지속되는 구 조로 제시된다.
이 점에서 셈의 풀이는 코덱스 VII 전체를 관통하는 인식 논리의 출발점이자 기준점이며, 이 인식 비대칭의 원리는 이후 문헌들에서 새로 설명되기보다 각기 다른 서사 장치 속에서 반복·재 현될 뿐이다.
2. 위대한 셋의 둘째 논고: 기독론적 오인
위대한 셋의 둘째 논고(NHC VII,2)는 십자가 사건을 오인의 서 사로 재구성한다.
예수의 1인칭 발화는 권세자들이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그들의 사람,” 곧 육체적 부분만을 처 형했을 뿐이라고 선언한다.
본 절은 십자가 장면(55,9-56,19)을 중심으 로, 권세자들의 오인이 텍스트가 구성하는 인식 구조 안에서 어떻게 필연적으로 발생하는지, 그리고 예수의 자기 계시적 발화가 왜 그들 에게 도달하지 못하는지를 분석한다.
앞서 셈의 풀이에서 확립된 인식 비대칭 구조인식은 빛에 속한 자에게만 가능하고, 어둠에 속 한 자에게는 구조적으로 봉쇄되어 있다는 원리는 이 문헌에서 십자 가 사건을 통해 기독론적으로 재현된다.
권세자들의 오인은 여기서 새로운 설명을 요구하는 문제가 아니라, 이미 주어진 존재론적 조건 이 역사적 사건 속에서 드러난 결과로 제시된다.
가. 셋파 기독론 개관
위대한 셋은 흔히 셋파 전통에 속하는 문헌으로 분류되며, 십자 가 서사를 중심으로 육체와 영의 위계적 구분에 기초한 기독론을 제 시한다.31)
31) Turner, “Sethian Gnosticism,” 55-86; Thomassen, The Spiritual Seed, 243-48; Birger A. Pearson, Ancient Gnosticism: Traditions and Literature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07), 134-40.
예수는 1인칭 화자로 등장하여 자신의 수난을 해석하며, 권 세자들이 자신을 죽였다고 믿는 것은 사실이나 실제로 처형된 것은 그들이 인식할 수 있었던 육체적 차원에 한정되었다고 주장한다.
이 때 예수의 발화는 육체의 실재를 단순히 부정하기보다, 육체와 실재 사이의 인식 불일치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나. 십자가와 오인: 본문 분석
[핵심 장면] 십자가 오인 서사(NHC VII,2:55,9-56,19)32)
32) 한글 번역은 Gregory Riley, “NHC VII,2: Second Treatise of the Great Seth,” Nag Hammadi Codex VII, ed. by Pearson, 129-99를 참고하였으며, 한국어 표현의 정확 성과 문맥상의 자연스러움을 위해 필자가 일부 수정하였다.
그리고 나는 사자들의 입안에 있었다. 그들이 나를 대적하여 꾸민 계책, 곧 그들의 기만(πλάνη)과33) 어리석음에 따라 나를 멸하려 했던 바에 대하여 말하자면, 나는 그들에게 굴복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전혀 고통을 당하지 않았다. 그곳에서 나를 벌한 자들, 곧 그들이 있었으나, 나는 견고한 실재 안에서 죽지 않았고, 오직 나타나는 것 안에서만 죽었다. 이는 내가 그들에 의해 수치를 당하지 않기 위함이었으니, 그들이 내 일부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게서 수치를 잘라냈으며, 그들의 손에 의해 내게 일어난 일로 인해 낙담하지도 않았다. 나는 두려움의 노예가 될 뻔했으나, 나는 오직 그들의 시야와 사고에 따라서만 타격을 입었다. 이는 그들에 관하여 어떤 말도 결코 발견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들이 생각한 나의 죽음은 그들의 오류(πλάνη)와 눈멂 안에서 그들에게 일어났다. 그들은 자기들의 사람 한 명을 자기들의 죽음에 못 박았다. 그들의 사고(ἔννοια)는34) 나를 보지 못했으니, 그들은 귀먹고 눈멀었기 때문이다.
33) πλάνη는 단순한 사실 오류나 일시적 착오라기보다, 올바른 인식 경로에서 구조적 으로 벗어난 상태를 의미한다. 코덱스 VII 문헌군에서 πλάνη는 교정 가능한 오해 의 단계가 아니라, 인식 주체의 조건에 의해 고정된 오인의 상태를 지시한다. 따라 서 πλάνη는 ‘잘못 앎’이라기보다 ‘다르게 구성된 인식 세계’ 자체를 가리키는 개념 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34) 본문에서 권세자들의 ἔννοια는 단순한 ‘생각’이나 ‘의견’이 아니라, 무엇이 보이고 무엇이 보이지 않는지를 사전에 규정하는 인식 범주를 뜻한다. 권세자들이 예수를 ‘보지 못한다’고 진술될 때, 이는 정보 부족이 아니라 그들의 ἔννοια 자체가 예수의 실재를 포착할 수 없도록 구성되어 있음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을 행함으로써 그들은 자기 자신들에 대해 심판을 수행하고 있었다. 나에 관하여 말하자면, 한편으로는 그들이 나를 보았다고 생각했고, 나를 벌했다고 여겼다. 그러나 다른 이, 곧 그들의 아버지가 쓸개와 식초를 마셨다. 그것은 내가 아니었다. 그들은 나를 갈대로 때렸고, 다른 이가 자기 어깨에 십자가를 지고 있었다. 그는 시몬이었다. 또 다른 이가 가시관을 썼다. 그러나 나는 권세자들(ἄρχοντες)의 모든 부와 그들의 오류와 기만의 후손(σπορά) 위 높은 곳에서 기뻐하고 있었으며, 그들의 무지를 보고 웃고 있었다.
이 십자가 서사는 코덱스 VII의 인식 구조가 기독론적 차원에서 어떻게 변주되어 작동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예수의 1인칭 발화는 십자가 사건 을 단순히 폭력의 결과로 설명하지 않고, 그것이 “그들의 기만(πλάνη) 과 어리석음” 안에서 발생한 사건임을 밝힘으로써, 권세자들의 오인 이 우연이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서술 된다.35)
35) Thomassen, The Spiritual Seed, 250-56; King, What Is Gnosticism?, 152-55.
권세자들은 예수를 붙잡고 처형했다고 믿지만, 그들의 사고(ἔννοια) 자체가 예수의 실재를 포착할 수 없도록 구성되어 있다.
이 때문에 텍 스트는 그들을 “귀먹고 눈먼 자들”로 규정하며, 오인을 인식 과정의 중간 단계로 제시하지 않는다.
권세자들의 인식은 처음부터 예수의 실재에 도달할 수 없도록 봉쇄되어 있으며, 그 결과 십자가 사건은 필 연적으로 오인의 형태로 발생한다.
특히 예수의 발화는 이 인식 불능의 구조를 반복적으로 가시화한 다.
권세자들은 예수를 “보았다고 생각했고” “벌했다고 여겼지만,” 실 제로는 오직 “나타나는 것”만을 대상으로 삼았을 뿐이다.
그들이 붙잡고 처형한 것은 예수의 실재가 아니라, 그들의 인식 범주 안에 포착 가능한 부분곧 육체적 현현이었다.
따라서 권세자들의 행위는 예 수를 향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예수의 실재에 아무런 영향 을 미치지 못한다.
예수의 선언“나는 전혀 고통을 당하지 않았다”, “나는 견고한 실 재 안에서 죽지 않았고 오직 나타나는 것 안에서만 죽었다”는 육체 와 영의 구분을 전제하지만, 이는 단순한 이원론으로 환원되기보다는, 육체와 실재 사이의 인식적 간극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 것들은 나의 일부”라는 표현은 고난받는 육체가 예수와 무관한 타자 가 아님을 인정하면서도, 그 육체가 예수의 본질을 구성하지 않음을 분명히 한다.
권세자들은 예수의 일부를 포착했으나, 그의 실재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시몬이 십자가를 지고 다른 이가 가시관을 썼다는 장면 역시 대리 수난의 문제라기보다 인식 실패의 서사적 표지로 기능한다.
권세자들 은 예수를 실제로 보았지만, 그들이 본 것은 예수의 육체적 형상에 한 정되었다.
이 이중성은 혼란의 결과가 아니라, 인식 구조의 본질적 한 계에서 비롯된다. 마지막에 제시되는 “웃는 예수”의 이미지는 이 오인의 구조를 극적 으로 대비시킨다.
이 웃음은 조롱이 아니라, 권세자들의 행위가 예수 의 실재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확증하 는 표지이다.
이는 베드로 묵시록에 등장하는 살아 있는 예수의 웃 음과 구조적으로 평행한 인식 논리를 보인다.36)
36) Painchaud, Le deuxième traité du Grand Seth, 15-32; Havelaar, The Coptic Apocalypse of Peter, 82-89; DeConick, The Gnostic New Age, 176-80.
위대한 셋 55,9-56,19에서 예수는 코덱스 VII 전체에서 유일하게 말하는 예수로 등장한다.
그러나 이 말함은 공적 담론이나 설득의 언어로 기능하지 않는다.
권세자들은 “귀먹고 눈멀었기”에 이 발화를 들 을 수 없으며, 지상의 군중은 십자가에 못 박힌 육체만을 인식한다.
말함은 발생하지만, 들림은 성립하지 않는다.
다. 인식과 오인의 근본적인 분기
위대한 셋이 제시하는 인식과 오인의 관계는 동일한 사건을 둘 러싼 분명한 인식의 갈림이다.
권세자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 다고 믿지만, 예수는 자신이 고통받지 않았음을 안다.
이 두 인식은 동일한 사건을 대상으로 하지만 서로 다른 이해를 보여주며, 본문은 그 차이가 어떤 발화로도 교정될 수 없는 것으로 서술한다.
예수의 말 은 권세자들에게 전달되지 않고, 권세자들의 행위 역시 예수의 실재 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로써 위대한 셋의 둘째 논고는 셈의 풀이에서 제시된 인식 구조를 십자가 사건과 연결하여 보여준다.
“그들은 귀먹고 눈멀었다” 는 진단은 권세자들의 오인이 우연한 실수나 도덕적 실패가 아니라, 예수를 올바르게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로 제시됨을 보여준다.
이 본 문에서 십자가는 단순히 구원의 사건이 아니라, 인식과 오인이 더 이 상 만날 수 없는 차이가 드러나는 장면으로 나타난다.
3. 베드로 묵시록: 묵시적 분기
베드로 묵시록(NHC VII,3)은 십자가 사건을 묵시적 이중 시각의 장면으로 제시한다.
베드로는 동일한 십자가 앞에서 서로 다른 두 장 면을 동시에 본다.
한편으로 그는 못 박히는 육체를 보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십자가 위에서 웃고 있는 살아 있는 예수를 본다.
본 절은 베드로의 이중 시각(81,3-82,3)과 이에 대한 예수의 해석 발화(82,3-26) 를 살펴봄으로써, 동일한 시공간 안에서 인식할 수 있는 자와 인식하 지 못하는 자 사이의 차이가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검토한다.
베드로 묵시록은 셈의 풀이에서 제시된 계시 중심의 인식 구조와 위대 한 셋에서 나타난 오인 논리를 함께 보여주며, 묵시적 인식이 특정 인물에게만 주어지는 것으로 서술된다는 점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가. 묵시 장르와 인식의 특권성
베드로 묵시록은 환상, 대화, 계시라는 묵시 장르의 전형적인 요 소들을 갖추고 있지만, 이 본문의 관심은 장르 형식 자체보다 십자가 사건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놓여 있다.
베드로는 예수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는 인물로 제시되며, 이를 통해 십자가 사건이 단순한 육체 적 고난의 이야기로 이해될 수 없음을 보게 된다.
이 문헌에서 십자가 의 의미는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정보라기보다, 계시를 통해서만 이 해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 결과 육체적 고난만을 중심으로 십 자가를 이해하는 해석은 묵시적 시각 밖에 머무는 오인의 형태로 제 시된다.
나. 이중 시각의 십자가: 본문 분석
[핵심 장면] 인식의 분기(NHC VII,3:81,3-82,3)37)
37) 한글 번역은 Brashler, “NHC VII,3: Apocalypse of Peter,” 218-47을 참고하였으며, 한국어 표현의 정확성과 문맥상의 자연스러움을 위해 필자가 일부 수정하였다.
그가 이 말들을 하고 난 뒤, 나는 그가 그들에 의해 붙잡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말하였다. “주님,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 것입니까? 그들이 붙잡는 이가 바로 당신 자신입니까?
그리고 당신이 나를 붙잡고 있는 것입니까?
십자가 위에서 기뻐하며 웃고 있는 이, 그는 누구입니까? 또 손과 발에 못을 박히는 이는 다른 사람입니까?” 구원자(σωτήρ)가 나에게 말하였다.
“네가 십자가 위에서 기뻐하며 웃고 있는 것을 보는 이, 그는 살아 있는 예수다.38)
그러나 그들이 손과 발에 못을 박고 있는 이는 그의 육체적 부분(σαρκικόν), 곧 대리물이다.39)
38) 베드로 묵시록에서 ‘살아 있는 예수’는 단순히 부활 이후의 생명 상태를 묘사하 는 표현이 아니다. 이 표현은 십자가 사건의 영향을 받지 않는 실재의 차원을 가리 키며, 고난받는 육체와 구별되는 존재론적 위상을 표시한다. 따라서 ‘살아 있는’이 라는 규정은 시간적 연속성의 주장이라기보다, 인식 가능한 실재가 어디에 속하는 지를 밝히는 표지로 이해되어야 한다. Havelaar, The Coptic Apocalypse of Peter, 82- 89; DeConick, The Gnostic New Age, 176-80 참조.
39) 베드로 묵시록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대상은 실재의 부재를 의미하는 허상이 아니라, 인식 가능한 차원에 한정된 현현으로 규정된다. 이 형상은 군중과 처형자 들이 포착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며, 이들이 살아 있는 예수의 실재에 도달하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인식론적 장치로 기능한다.
그들은 그의 형상 안에 있는 것을 수치스럽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너는 그를 보고, 나를 보라.” 그리고 내가 바라보았을 때 나는 말하였다.
“주님, 아무도 당신을 바라보고 있지 않습니다. 이곳을 떠나 도망칩시다.” 그러나 그가 나에게 말하였다.
“내가 이미 너에게 말하였다. 눈먼 자들을 그대로 두어라! 그리고 주목하여 보라, 그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것을. 이는(γάρ) 그들이 나의 종이 아니라 자기들의 영광의 아들을 수치스럽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경험하는 십자가 장면은 코덱스 VII의 인식 구조가 가장 분 명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는 동일한 사건을 두 장면으로 동시에 본다.
고난받는 육체와 그 위에서 웃고 있는 살아 있는 예수는 서로 다른 시간이나 장소에 속하지 않으며, 하나의 십자가 장면 안에 함께 나타난다.
이러한 이중 시각은 단순한 착시나 혼란이 아니라, 서로 다 른 인식의 차이가 이 장면에서 드러난 것으로 제시된다.
베드로의 질문“십자가 위에서 기뻐하며 웃고 있는 이는 누구입 니까?”는 그가 군중과 다른 무엇인가를 보고 있음을 자각하고 있음 을 보여준다.
그는 육체와 영적 실재를 선택적으로 구분하는 것이 아 니라, 동시에 파악한다.
예수의 응답은 이 분기를 확정한다.
살아 있는 예수와 육체적 부분(대리물)의 구분은 존재론적 위계의 설명이 아니 라, 그 구분을 인식할 수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에 설정된 경계를 드러낸다.
베드로는 계시를 통해 이 분기를 인식하지만, 군중 은 끝까지 육체만을 본다.
군중은 본문에 직접 등장하지 않지만, “그들이 손과 발에 못을 박고 있는 이”라는 표현을 통해 암시된다.
이들은 십자가 사건의 행위자이 지만, 그들의 인식은 가시적 차원에 한정된다.
이 점에서 베드로 묵 시록의 군중은 위대한 셋의 권세자들과 구조적으로 동일하다.
그 러나 결정적 차이가 있다.
위대한 셋에서는 오인이 1인칭 발화가 권세자들에게 전달되지 않는 방식으로 제시되는 반면, 베드로 묵시 록에서는 동일한 시공간 안에서 서로 다른 인식 세계가 동시에 작동 함으로써 이러한 분기가 시각적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그를 보고, 나를 보라”라는 예수의 말은 이 본문에서 인식 이 어떻게 제시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인식자는 사건의 한 차원만을 보는 존재가 아니라, 동일한 사건 안에서 서로 다른 차원을 동시에 보 도록 요청받는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다른 사람들과 쉽게 공유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본 것을 군중에게 그대로 전달할 수 없으며, 설명 역시 이 차이를 해소하지 못한다.
설명은 새로운 인식을 만들어내기보다는 이미 주어진 인식을 해석이 가능한 형태로 드러낼 뿐이다.
[묵시의 심화] 비가시적 공동체와 계시의 확증(82,4-26)40)
40) 한글 번역은 Brashler의 해당 본문(NHC VII,3:82,4-26)을 참고하였으며, 한국어 표 현의 정확성과 문맥상의 자연스러움을 위해 필자가 일부 수정하였다.
그리고(δέ) 나는 십자가 위에서 웃고 있던 바로 그와 닮은 누군가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그는 순수한 영(πνεῦμα)으로 <충만해> 있었고, 그는 구원자(σωτήρ)였다. 그리고(δέ) 그들 주위에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큰 빛이 있었고, 보이지 않는 천사들(ἄγγελοι)의 무리가 그들을 축복하고 있었다. 그리고(δέ) 이 영광을 드러내는 이가 계시되었을 때, 그를 본 이는 바로 나였다. 그리고(δέ) 그가 나에게 말하였다. “강해져라! 이는(γάρ) 이 신비들(μυστήρια)이 계시를 통해 너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곧,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은 이는 맏아들이며, 악령들(δαίμονες)의 거처이고, 그들이 거하는 흙의 그릇이며, 엘로힘에게 속한 것이요, 율법(νόμος) 아래 있는 십자가(σταυρός)에 속한 것이다.”
십자가 장면 이후에 이어지는 환상은 베드로에게만 허락된 인식이 단 순한 개인적 통찰이 아니라 동일한 인식을 공유하는 공동체의 존재를 전제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베드로는 십자가 위에서 웃고 있던 예수와 동일한 실재가 묵시적으로 현현하는 것을 보며, 형언할 수 없는 빛 과 보이지 않는 천사들의 무리를 인식한다.
본문은 “그를 본 이는 바 로 나였다”라는 자기 지시적 진술을 통해, 이 인식이 철저히 선택적이 며 공유 불가능함을 암시한다.
이어지는 예수의 발화“이 신비들이 계시를 통해 너에게 주어졌 다”는 인식의 근거를 분명히 한다.
계시는 인식 이후에 덧붙여지는 설명이 아니라,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선행 조건이다. 또한 십자가에 못 박힌 대상에 대한 병렬적 규정은, 그 대상이 참된 예수가 아니라 율법과 질서, 현상 세계에 속한 실재임을 강조한다.
군중과 권세자들 은 자신들의 인식 범주 안에서 의미를 구성하지만, 그 행위는 살아 있 는 예수의 실재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다. 소결: 묵시적 인식의 완성
베드로 묵시록은 코덱스 VII의 인식 구조를 묵시적 차원에서 완 성한다.
동일한 십자가 사건 앞에서 베드로는 육체와 영을 동시에 인 식하는 반면, 군중은 육체만을 본다.
본문은 이러한 차이를 교육이나 설득을 통해 교정될 수 있는 오해로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눈먼 자들을 그대로 두어라”라는 예수의 말씀은 이러한 인식의 차이가 텍 스트 내부에서 근본적인 구분으로 제시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로써 코덱스 VII의 초기 문헌군은 인식 구조의 단계적 심화를 보 여준다.
셈의 풀이가 인식의 우주론적 원리를 설정하고, 위대한 셋 이 그 원리가 기독론적 사건 속에서 오인으로 분기되는 방식을 제시 한다면, 베드로 묵시록은 동일한 사건 앞에서 인식자와 오인자의 세계가 시각적으로 분기되는 순간을 확증한다.
코덱스 VII은 이렇게 우주론적 원리가 계시적 사건을 거쳐 묵시적 현상으로 수렴되는 인식 론적 전개 질서를 완결한다.
IV. 결론
본 연구는 나그함마디 코덱스 VII의 처음 세 문헌셈의 풀이, 위대한 셋의 둘째 논고, 베드로 묵시록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인식 구조를 분석하였다. 분석 결과 이 문헌군은 예수(구원자)의 정체 성을 둘러싼 인식과 오인의 관계를 일정한 방식으로 제시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이러한 특징은 위대한 셋에서 특히 분명하게 나타나는 데, 이 문헌에서는 말해지지만 이해되지 않는 발화의 장면이 반복적 으로 제시된다.41
41) Painchaud, Le deuxième traité du Grand Seth, 15-32; Pellegrini, “Die zweite Logos des großen Seth,” 569-90.
<표 1>에서 정리한 바와 같이, 코덱스 VII의 인식 구조는 문헌 배열 을 따라 단계적으로 전개된다.
셈의 풀이에서는 사유의 상승을 통 해 우주적 차원의 인식 차이가 제시되고, 위대한 셋에서는 동일한 원리가 십자가 사건을 둘러싼 기독론적 오인의 형태로 나타나며, 베 드로 묵시록에서는 동일한 사건을 두고 인식할 수 있는 자와 인식하 지 못하는 자의 세계가 묵시적 이중 시각 속에서 시각적으로 드러난 다.
이러한 전개는 우연한 병치라기보다 코덱스 VII이 전제하는 인식 질서가 점차 분명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첫째, 코덱스 VII에서 인식은 본질적으로 계시적 사건으로 제시된 다.
셈의 풀이의 셈과 베드로 묵시록의 베드로가 얻게 되는 시각 은 인간의 자연적 이성이나 점진적 학습의 결과라기보다, 데르데케아 스와 예수라는 신적 매개자를 통해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것으로 나타 난다.
인식은 이해의 축적이라기보다 특정 인물에게 주어지는 계시의 결과로 제시된다.
둘째, 이러한 계시는 인식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주어지지 않 는다는 전제를 포함한다.
셈이 ‘혼합되지 않은 힘’에서 기원했기에 계 시를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과 달리, 위대한 셋의 권세자들과 베 드로 묵시록의 군중은 예수를 올바르게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에 놓 여 있다. 이 문헌들에서 오인은 도덕적 실패나 신앙적 불성실의 문제 가 아니라, 예수를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로 서술된다. 이로써 인식할 수 있는 자와 인식하지 못하는 자 사이에는 쉽게 해소될 수 없는 구 분이 형성된다.
셋째, 이러한 인식 질서는 동일한 사건을 둘러싼 인식의 갈림으로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위대한 셋에서 예수의 자기 계시적 발화는 이루어지지만 권세자들에게 이해되지 않으며, 베드로 묵시록에서 베드로는 동일한 십자가 앞에서 웃는 예수와 고난받는 육체를 동시에 보지만 군중은 끝까지 육체만을 본다.
말해짐과 이해됨, 시각과 인식 은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이러한 차이는 일시적인 오해가 아니라 코 덱스 VII이 보여주는 인식의 차이가 사건 속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장면으로 제시된다.
이러한 구조는 코덱스 VII의 기독론이 ‘고백’이라기보다 ‘앎’(gnōsis) 을 중심으로 전개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문헌군에서 예수의 자기 계시적 발화는 반복적으로 등장하지만, 그것이 공동체를 설득하거나 새로운 신앙을 형성하는 수행적 언어로 제시되지는 않는다.
발화는 이미 인식할 수 있는 자와 인식하지 못하는 자 사이에 형성된 구분을 다시 드러낼 뿐이다.
이 점에서 코덱스 VII의 기독론은 바울 서신에 나타나는 고백 중심의 기독론과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바울에게서 “예수는 주이시다”라는 고백은 공적으로 발화되고 반복됨으로써 공 동체를 형성하는 행위로 나타나지만, 코덱스 VII에서는 공동체가 계 시를 통해 주어진 인식 능력을 기준으로 이미 구분되어 있는 것으로 제시된다.42)
이러한 인식 구조는 2-3세기 기독교 내부의 순교 담론과의 긴장 속 에서도 이해될 수 있다.
위대한 셋과 베드로 묵시록은 십자가와 고난을 신앙의 정점으로 강조하는 해석과 일정한 거리를 두며, 고난 받는 육체를 인식의 중심이 아니라 오인의 영역에 두는 방식으로 서 술한다.
이러한 점에서 이 문헌들은 순교를 통해 신앙의 진정성이 드 러난다고 보는 해석과 다른 기독론적 이해를 보여주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43)
42) 최근 연구는 초기 기독교에서 pistis/fides가 개인의 내적 인지 상태를 가리키는 개념이 아니라, 공적으로 수행되는 충성과 신뢰의 태도로 기능했음을 점점 더 강 조하고 있다. 특히 Teresa Morgan, Roman Faith and Christian Faith, 489-504; Matthew W. Bates, Salvation by Allegiance Alone (Grand Rapids: Baker Academic, 2017), 3-9; Nijay K. Gupta, Paul and the Language of Faith (Grand Rapids: Eerdmans, 2020), 1-6을 보라.
43) King, “Martyrdom and Its Discontents in the Tchacos Codex,” 23-42, 특히 30-35; DeConick, The Gnostic New Age, 3-4장
더 나아가 코덱스 VII은 고백의 공유나 예전 참여를 통해 확장되는 공동체 모델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 문헌군에서 공 동체는 선택된 소수에게 주어진 인식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것으로 제 시된다.44)
44) Thomassen, The Spiritual Seed, 54-68, 특히 61.
요컨대 코덱스 VII은 예수를 믿도록 설득하는 텍스트라기보다, 동 일한 계시 사건 앞에서 인식할 수 있는 자와 인식하지 못하는 자 사 이의 구분을 형성하는 서술 구조를 보여준다.
본 논문은 이러한 인식 과 오인의 구조를 분석함으로써, 초기 기독교 담론 안에서 예수의 정 체성이 무엇을 믿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인식할 수 있는가의 문 제로 재구성되는 하나의 인식 중심 기독론 모델을 제시하였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는 몇 가지 한계를 지닌다.
코덱스 VII의 나머지 두 문헌을 분석에 포함하지 못했으며, 바울 서신 및 교부 문헌과의 비 교 역시 결론 수준에 머물렀다. 또한 역사적 편집 정황보다는 텍스트 구조 분석에 초점을 두었다.
앞으로의 연구에서는 코덱스 VII 전체의 편집 논리를 더 면밀하게 검토하고, 다른 나그함마디 코덱스들과의 비교를 통해 셋파 전통 내부의 다양성을 살펴보며, 이단학 문헌에서 인식과 오인 담론이 어떻게 논박되는지를 분석함으로써 이 논의를 확 장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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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논문은 나그함마디 코덱스 VII에 수록된 처음 세 문헌, 곧 셈의 풀이, 위대한 셋의 둘째 논고, 베드로 묵시록이 공유하는 인식 구조를 분석함으로써, 이 문헌군이 예수(구원자)의 정체성을 둘러싼 인식과 오인의 문제를 일정한 방식으로 구성하고 있 음을 살펴본다.
기존 연구가 주로 개별 문헌의 사상사적 특징이나 문학적 형성 과정에 집중해 온 데 비해, 본 연구는 코덱스를 하나의 편집된 독서 단위로 보고 문헌 사이에서 반복되고 변주되는 인식 패턴에 주목한다.
분석 결과 코덱스 VII에서 인식은 인간의 이성적 추론이나 점진적 학습의 결과라기보다, 계시를 통해 특정 인물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제시된다.
반대로 오인은 도덕적 실패나 신앙적 불성실의 문제라기보다, 예수를 올바르게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로 서술된다.
이러한 인식의 비대칭은 셈의 풀이에서 우주론적 차원에서 제시되고, 위대한 셋의 둘째 논고에서는 십자가 사건을 통해 기 독론적 대조로 나타나며, 베드로 묵시록에서는 동일한 사건을 둘러싼 이중 시각을 통해 서술적으로 드러난다. 본 논문은 이를 통해 코덱스 VII이 예수를 믿도록 설득하는 텍스트라기보다, 예수를 인식할 수 있는 자와 인식하지 못하는 자 사이의 구분을 형성 하는 서술 구조를 보여준다는 점을 제안하며, 초기 기독교 내부에서 나타난 하나의 인식 중심적 기독론 이해를 조명하고자 한다.
주제어 나그함마디 코덱스 VII, 셈의 풀이, 위대한 셋의 둘째 논고, 베드로 묵시록, 인식론적 구조
Abstract
The Structure of Recognition and Misrecognition: An Epistemological Christology in Nag Hammadi Codex VII Lee, Hyung Il (Independent Researcher)
This article examines the shared epistemic structure underlying the first three writings of Nag Hammadi Codex VII the Paraphrase of Shem, the Second Treatise of the Great Seth, and the Apocalypse of Peter. While previous studies have focused primarily on the theology or literary history of individual texts, this study approaches the codex as a deliberately arranged discursive unit and analyzes the recurring patterns of recognition and misrecognition across its opening sequence. The analysis shows that, in Codex VII, recog- nition is not the result of rational inquiry or progressive learning but a revelatory event granted selectively on the basis of ontological origin. Conversely, misrecognition is portrayed not as a moral or cognitive failure but as a structurally irreversible incapacity. This epistemic asymmetry is first articulated as a cosmological principle in the Paraphrase of Shem, transformed into a christological bifurcation through the crucifixion in the Great Seth, and visually confirmed as such through apocalyptic double vision in the Apocalypse of Peter. The article concludes that Codex VII does not function as a persuasive text designed to elicit belief. Rather, it operates as a discursive mechanism that stabilizes communal boundaries by distinguishing those capable of recognition from those who are not, thereby articulating a distinct epistemo- logical model of Christology within early Christianity.
Keywords Nag Hammadi Codex VII, Paraphrase of Shem, second treatise of the Great Seth, Apocalypse of Peter, epistemic structure
투고일: 2026. 01. 29. 최종심사일: 2026. 02. 27. 게재확정일: 2026. 03. 07
신약논단 제33권 제1호∙2026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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