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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야기

[스크랩] 율곡의 사단칠정설

율곡의 사단칠정설

율곡의 사단칠정설은 氣發理乘一途說로 집약되어 표현된다. 이는 퇴계의 호발설의 전제위에서
제기된 것으로, 그에 대한 반론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율곡은 주로 理氣의 특성과 관계에 중심을
두고 호발설을 비판하면서, 선악의 문제는 결국 기질의 변화에 따라 나타나는 것으로 기질을
잘 다스릴 때 인간의 선한 본성이 드러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율곡은 退·高의 사칠논쟁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견해를 밝히고 있다.


내가 江陵에 있을 때 奇明彦과 退溪의 四端·七情을 논한 글을 보니, 退溪는 四端은 理에서 發하고
七情은 氣에서 發하는 것으로 생각하였고, 明彦은 四端·七情이 원래 二情이 아니고 七情中에
理에서 發한 것이 四端이 될 뿐이라고 생각하였다. 往復한 萬餘言이 마침내 서로 합하지 못하였으니
나로 말하면 明彦의 理論이 나의 뜻과 꼭 맞는다. 대개 性中에는 仁義禮智信이 있고 情中에는
喜怒哀樂愛惡欲이 있으니 이와 같을 뿐이다. 五常 밖에 다른 性이 없고 七情 밖에 다른 情이 없다.
七情中에 人欲이 섞이지 않고 粹然하게 天理에서 나온 것이 四端이다.) 栗全, 卷 14, 論心性情


여기에서 율곡은 고봉의 理氣兩發 내지 共發에도 불구하고 理氣之妙의 입장에서 퇴계설에
반대하고 고봉설에 동의하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율곡도 역시 四端과 本然之性은 선한 것이며 또한 선의 근거라는 전제 위에서 그의 이론을 전개해
나가는데, 즉 四端의 발로로부터 인간은 본래적으로 선한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
내는 맹자의 본래의 목적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는 것이다. 다만 율곡은 사단과 칠정의 관계에
있어서 '七情包四端'을 주장한다. 왜냐하면 七情이란 인간의 전체적인 情을 의미하는 것이며,
四端이란 그 중에서 선한 정만을 지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율곡은 칠정만이 아니라
사단도 氣가 발하여 理가 타는 것이라 주장한다. 이는 "四端理乘而氣隨之 七情氣發而乘之"를
주장한 퇴계의 互發說을 부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가.

첫째, 이기설의 입장에서 기발일도의 근거를 氣의 有爲성에 두고 있다. 理氣는 그 특성에 있어
理의 무형.무위하며, 氣는 유형.유위한 것이다. 율곡은 "이른바 氣發理乘이란 氣가 理보다 앞선
다는 것이 아니라 氣는 유위하고 理는 무위하므로 그 말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라
하여 理의 무위성과 氣의 유위성으로 인해 기발일도만이 가능함을 밝히고 있다.

둘째, 理氣의 관계를 중심으로 보았을 때, 理氣는 원불상리(元不相離)한 까닭에 호유발용(互有發用)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발하는 것은 氣요, 발하는 소이되는 것이 理이므로, 氣가 아니면 발할
수 없고 理가 아니면 발할 근거가 없게 되어 선후도 離合도 없으므로 호발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셋째, 율곡은 태극과 음양의 관계에 있어서도 理氣의 관계와 같다고 주장한다. '太極動而生陽,
靜而生陰'이란 동정 가운데 태극지리가 乘하고 있음을 말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 태극이 음양에
선재하여 있어 태극이 동한 후에 양이 생겨나고 정한 후에 음이 생겨난다고 보는 것은 잘못된
견해라고 주장한다.

넷째, 사단과 칠정의 관계는 '七情包四端'으로 사단이란 칠정 중의 善一邊만을 가리켜 말한
것에 불과하다. 이렇게 情에 두가지 用이 있을 수 없으므로 理發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섯째, 우주의 본체는 理氣二元으로 되어 있는데, 理氣는 不相離, 不相雜한 것으로 '一而二
二而一'인 관계로 구성되어 있다. 사람은 이러한 천지의 理를 받아 性으로 삼고, 천지의 氣를
나누어 형체를 가지게 된 까닭에 五心의 用은 곧 천지의 化이다. 그런데 천지의 化에는 二本이
있을 수 없으므로 오심의 발도 二原이 없다는 것이다.

여섯째, 반드시 느낀 바가 있어야 동하는 것이요 느끼는 바는 모두 외물인 것인데, 퇴계의 호발설은
四端을 중심으로부터 발하는 것이라 하고 칠정을 외물에 감하여 발하는 것이라하여 잘못된 주장을
하고 있다. 율곡은 四端이나 七情이나 그 느끼는 바는 모두 外感이며, 감촉이란 이미 동정의 氣라고
주장하며 感하는 것 없이 發한다는 것은 마음의 병일 뿐이라고까지 말하면서 互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역설한다.

일곱째, 인심도심의 경우를 보더라도, 인심도심은 모두 理發 후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혹원혹생이 모두 氣發이 아닌 것이 없다는 것이다. ) 이 일곱까지 근거는 「율곡의 사단칠정론」
『사단칠정론』(서광사) p100-102.

이러한 율곡의 氣의 有爲性을 근거로 한 氣發一途說의 목적은 理의 근원성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단지 천부적으로 소유한 인간의 선한 본성이 스스로에 의해 가려지고 있으며, 이는 또 스스로에
의해 開現될 수 있다는 그의 인간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즉 인간 스스로 능히 道心을 확충하고
人心의 과불급을 절제하여 形色으로 하여금 각기 그 법칙에 맞도록 행동하게 한다면 일상의 생활
그대로가 모두 性命의 본연이 아님이 없게 된다. 율곡은 誠을 통한 인간 氣質의 변화를 중요시
하였는데 이것의 근거로 제시되는 것이 그의 사칠론에서의 '기발일도설'인 것이다. 기질의
변화를 위해서는 기질이란 가변적인 것임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에 따르면 비록 사람
마다 淸濁粹駁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氣의 올바른 것과 통하는 것을 얻어 生하였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므로, 유위적인 氣를 잘 분석하고 살펴 氣의 본연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면 인간이 본연의
선성을 회복하여 천지와 합덕하는 天人合一의 경지에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연 현상과 더불어 인간의 심성까지를 기발일도의 원리로 고수함으로써 인간의 자율적인
능력을 天과 동등하게 끌어 올리게 된다. 즉 율곡은 기발일도의 논리로서 인간의 능동성과 자율성,
다시 말해 인간이 만물과 다른 영장인 근거를 밝힘으로써 인간 본래의 선한 본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그리하여 현실적인 선의 실현을 가능하게 하고자 하는 유학 본래의 목적을 해결하려는 것
이었다. 이렇게 율곡은 어떻게 하면 현실적으로 선악이 혼재한 인간이 궁극적으로 天人合一의
경지에까지 도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이론적인 근거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겠다.

출처 : 동양철학 나눔터 - 동인문화원 강의실
글쓴이 : 권경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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