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쟁군사이야기

[스크랩] Re:타란토 해전

타란토 해전

 

출처 : http://blog.naver.com/mirejet/110044670005

 

독일과 함께 연합국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한 이탈리아는 9월에 연합국의 북아프리카의 식민지이던 리비아와 이집트, 10월에는 발칸반도의 알바니아를 지나 그리스로 침공했다. 하지만 이탈리아군은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였으며 독일의 침공과 맞물려 성급하게 군을 움직였다.

 

타란토는 이오니아 해의 타란토 만에 위치한 이탈리아의 도시로 중요한 군항이 있었기에 이탈리아 해군의 일대 거점이었다. 영국해군은 제 2 차 세계대전 개전 전부터 항공모함의 함재기로 타란토 군항에 정박한 이탈리아 함대를 공격할 것을 생각했다. 1939년 개전시 지중해의 영국해군 항공모함은 알렉산드리아 항의 <이글>과 지브롤터의 <아크 로얄> 2척이었다.

 

1940년 9월, 알렉산드리아의 지중해함대에는 신형 항공모함 <일러스토리우스>가 도착해 항공전력이 강화되자 영국군은 말타 섬에서 타란토 군항의 항공정찰을 행해 정세를 파악했는데 이를 토대로 리스터 소장은 구체적인 내용을 입안했다. 작전명은 <저지먼트 작전>이라 명명되어 항공모함 <이글>과 <일러스토리우스>의 함재기 30~40기를 가지고 10월 21일에 실행하기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훈련중에 <일러스토리우스>에서 일어난 화재로 작전은 11월 11일로 연기되었다. 그런데 이번엔 작전개시 2일전에 <이글>이 선체고장을 일으켜 작전참가 자체가 불가능해져버렸다. 이 때문에 <저지먼트>작전은 <일러스토리우스> 1척만으로 이루어지게 되어 <이글>로부터 소드피쉬 5대가 <일러스토리우스>에 배속되었다.

 

1940년 11월 6일, <일러스토리우스>는 전함 <워스핏>, <발리언트>, <말라야>, <라미레즈>등과 함께 알렉산드리아를 출발했다. 이 함대는 우선 말타까지 MW 3선단을 호위했다. 11월 10일에 말타 서쪽해역에선 지브롤터에서 파견된 전함 <버햄>등과 합류했다. 11월 11일 18시, <일러스토리우스>는 순양함 4척과 구축함 4척을 데리고 타란토로 향했다.

 

11일, 21시에 타란토 남쪽 약 272km에서 <일러스토리우스>는 공격대를 발진시켰다. 공격대는 소드피쉬 뇌격기 12대로 제 1진 12대와 제 2진 9대였다. 22시 58분, 제 1진이 타란토 군항의 상공에 도착했다. 제 1진은 2기가 조명탄, 4기가 폭탄, 남은 6기가 어뢰를 장착한 상태였다. 먼저 조명탄이 투하되는 것과 함께 폭탄이 떨어졌고 이어서 어뢰가 낙하했다.

 

이 공습으로 이탈리아 함대의 전함 <콘테 디 카보르>에 어뢰 1발, 전함 <릿토리오>에 어뢰 2발이 명중했다. 약 1시간 후엔 제 2진(2대 조명, 2대 폭탄, 5대 어뢰)이 타란토에 도착했다. 제 2진의 공격은 전함 <릿토리오>와 <카이오 둘리오>에 각각 어뢰 1발씩을 명중시켰다. 그 외엔 중순양함<트렌토>와 구축함<리베치오>에 폭탄을 명중시켰지만 모두 불발탄이었다.

 

어뢰를 맞은 전함 3척은 항만에 좌초되었는데 <릿토리오>는 1941년 3월, <카이오 둘리오>는 1941년 5월까지 한시적인 항해불능상태에 빠졌다. 그러나 <콘테 디 카보르>는 종전까지 수리가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영국의 공격대는 2대 만을 상실했는데 첫번째는 제 1진에서 <콘테 디 카보르>에 어뢰공격을 성공시킨 기체로 어뢰투하 후 구축함<플루미네>에게 격추당했다. 두번째는 제 2진의 소드피쉬로 중순양함<골리치아>에 의해 격추당했다.

 

이탈리아 해군은 개전 전부터 적극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는데 이 공습을 받고는 더욱 소극적이 되어버려 주력함들을 모두 나폴리로 이동시켰다. 그 때문에 이탈리아 함대가 영국선단을 공격하기 위해선 메시나 해역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메시나 해역은 말타 섬에서 뜬 영국정찰기의 초계범위 내에 있었기에 영국군은 이탈리아 함대가 이오니아 해로 나가기 전에 탐지할 수 있어 동향파악이 휠씬 쉬워졌다.

 

또 이탈리아의 전함 3척을 파괴시킴으로 영국해군은 자군의 전함을 지중해에서 빼내 영국해협과 발트해에서 독일 해군을 상대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반년 후에 일어난 비스마르크 해전에서 적지않은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해군의 발이 묶여 지원이 어려워진 이탈리아군은 알바니아에서 그리스군에 의해 진군을 저지당해 압박을 받게 되었고 리비아에선 영국군이 12월에 도로 공격해 들어가는 형상이 되어버려 이탈리아군으로선 진퇴양난에 빠져버렸다. 

 

영국뿐만 아니라 이 공습은 이탈리아를 포함한 각국의 항공만능론(항공주병론)을 더욱 부추기는 형세가 되어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습, 말레이 해전에서와 같이 대함거포주의(大艦巨砲主義)에서의 인식전환을 불러왔다. 또 일본해군은 진주만 공습의 실시에 앞서 이 타란토 공습을 연구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실제로 타란토는 수심이 약 12m 정도로 진주만과 같이 수심이 얕은 만이었기 때문에 영국해군의 작전을 일본은 그대로 본따 왔지만 항공기술부가 어뢰의 명중률을 높이기 위해 자이로 기법을 운용하여 공중자세를 안정시키고 심도를 대폭으로 줄인 초심도어뢰의 개발에 성공함으로 이에 항공대의 강도높은 훈련으로 수심 10미터 이하에서도 어뢰공격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이탈리아 반도의 중요 군항들.

타란토의 공습으로 인해 이탈리아 함대는 서북쪽의 나폴리로 이동했다.

 타란토 공습작전상황도

 

타란토 공습을 행한 영국 항공모함 <일러스토리우스>.

출처 : 한일역사연구
글쓴이 : 정암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