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욕근치(殆辱近恥)
임고행즉(林皐幸卽):
욕됨에 이르면 수치가 가까우니
산수(山水)로 나아감도 바람직하리.
양소견기(兩疏見機)
해조수핍(解組誰逼):
소광(疏廣)과 소수(疏受)는 기회를 보아
인끈 풀고 돌아가니 누가 핍박하리요.
전한(前漢) 선제(宣帝) 때
두 소씨(疏氏), 즉 소광(疏廣)과
소수(疏受)가 있었습니다.
소광이 태자태부(太子太傅)가 되고
그의 조카 소수는
소부(少傅)가 되어 숙부와 조카가
매일 아침 태자를 따라 조정에 들어가
천자를 알현하고 태자의 스승이 되니
가문의 영광이었습니다.
얼마후 소광이 소수에게 말하기를
"내가 들으니 족한 것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 줄을 알면 위태롭지 않다 했으니,
공(功)이 이루어지면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리이다.
어찌 고향으로 돌아가 노후를 보내며
천수를 다 하는 것만 같겠느냐?"
마침내 두 사람이 사직을 청하니
고향 사람들의 환대 속에 귀향하여
둘은 천명을 다하고 여생을 마칩니다.
창세기는 말합니다.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창세기6:12-13)
인간의 포악함과 부패함도
끝없는 욕심과 교만의 산물입니다.
개인이나 사회나 국가나
과욕과 교만은 재앙을 부릅니다.
과감히 버리고
물러서야 할 때도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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