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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야기

“원대한 마음과 겸손은 양립가능한가?”*(손은실/장로회신대)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과 그리스도교 신앙의 충돌을 둘러싼
13세기 파리대학가의 논쟁-1)


【요약문】원대한 마음과 겸손의 양립가능성 여부는 1277년 전후로 파리대학
가에서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문제이다. 본고는 1270년대에 이 문제를
다룬 가장 대표적인 세 학자, 즉 토마스 아퀴나스, 시제 브라방, 보나벤투라의
원전을 엄밀하게 분석하여 13세기 파리대학이라는 구체적인 공간에서 그리스
도인 신학자와 철학자들이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그리스도교 신앙이 충돌하
는 문제에 직면하여 각각 어떤 입장을 취했는지를 밝힌다.
신학자였던 토마스와 보나벤투라와 달리 철학자였던 시제는 아리스토텔레
스의 철학을 거의 전적으로 추종하여 겸손을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의 한 개
념과 동일시하고 원대한 마음과 양립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이로 인해 겸손
에 관한 그의 주장은 1277년 단죄목록 제171조항의 표적이 되었다. 반면에 보
나벤투라는 겸손에 관한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에 비추어 아리스토텔레스의 원
대한 마음을 노골적으로 비판하였다. 이 두 사람과 다른 제 3의 길을 선택한 토
마스 아퀴나스는 성서의 관점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을 연결시키는 시도를
함으로써 겸손과 원대한 마음이 양립 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 이 논문은 2010년 정부재원(교육과학기술부 인문사회연구역량강화사업비)으로 한국연
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10-32A-A00050).
4 논문


Ⅰ. 들어가는 말
1277년 3월 7일 파리의 주교 에티엔 탕피에는 ‘라틴 아베로에스주의’1)
혹은 ‘이단적 아리스토텔레스주의’2)의 혐의를 받은 219개 조항을 단죄했
다. 이것은 중세의 가장 광범위하고 중요한 단죄 사건이었다. 이 ‘1277년의
단죄’는 13세기에 거의 모든 저작이 라틴어로 번역되어 서방 그리스도교
세계에 알려진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그리스도교 신앙의 만남으로 야기
된 갈등의 정점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219개 조항으로 구성된 단죄목록 가운데 제171조항3)은 1277년 전후로
파리대학에서 가장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윤리학적 주제 가운데 하나
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다뤄
진 ‘원대한 마음(μεγαλοψυχία)’4)과 그리스도교의 겸손 개념은 양립가능한
가라는 문제다. 13세기 파리대학의 저명한 교수들이었던 토마스 아퀴나스
(1224/5-1274), 보나벤투라(c.1217-1274), 시제 브라방(Siger de Brabant,
c. 1241-1284)은 모두 비슷한 시기, 즉 1270년대에 이 문제를 다루었다.
본고는 이들의 텍스트를 분석함으로써 13세기 파리대학이라는 구체적


1) ‘라틴아베로에스주의’는 중세 라틴세계에서 아베로에스의 아리스토텔레스 주석을 추
종하였던 인문학부 교수들(magistri artium)의 철학유파를 지칭한다. 중세철학사 기술
에서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킨 이 용어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은 다음 논문을 참조하
라. 손은실, 「보에티우스 다치아의 ?최고선에 관하여? -13세기의 신학적 행복론과 철
학적 행복론의 충돌?」, ?철학사상?, 41(2011), 308, n.2.
2) F. Van Steenberghen, La philosophie du XIIIe siècle, Louvain, Paris, 1991(2e
édition), 357-358.
3) “겸손이라는 것이 누군가가 자신이 가진 것을 과시하지 않고, 자신을 과소평가하고 낮
추는 것인 한, 겸손은 덕이 아니다. - 만약 이것이 ‘겸손은 덕도 아니고, 덕스러운 행위
도 아니다’라고 이해된다면 오류이다.”[“Quod humilitas, prout quis non ostentat ea
que habet, set uilipendit et humiliat se, non est uirtus. - Error, si intelligatur : nec
uirtus, nec actus uirtuosus.”] Chartularium Universitatis Parisiensis, t. I, Articuli
condemnati a Stephano Episcopo parisiensi anno 1277, a. 171.
4) μεγαλοψυχία에 대한 역어 ‘원대한 마음’은 곧 출간될 예정인 ?니코마코스 윤리학?,
강상진, 김재홍, 이창우 번역 2판에서 채택한 것이다. 이미 출간된 1판에서는 ‘포부가
큰 것’으로 번역하고 있다. 미출간 번역문 일부를 사용할 수 있도록 기꺼이 허락해 주
신 역자들께 감사드린다.
“원대한 마음과 겸손은 양립가능한가?” 5


인 공간에서 그리스도인 신학자들과 철학자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그리스도교의 신앙이 충돌하는 문제에 직면하여 각각 어떤 입장을 취했는
지 살펴보고자 한다.
토마스 아퀴나스, 보나벤투라, 시제 브라방이 각각 겸손과 원대한 마음
을 다룬 텍스트들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에 앞서 이들의 논의의 바탕에 놓
여 있는 그리스도교의 겸손 개념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원대한 마음을 차례
대로 간략하게 살펴보자.


Ⅱ. 논문의 핵심 개념에 관한 예비적 고찰
1. 그리스도교의 겸손
“겸손은 그리스도교 가르침의 거의 전부이다.”5) 중세 라틴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장이다. 그런데 그
리스도교의 겸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려면 그 일차적인 전거인 성서에
서 어떤 의미로 사용되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먼저 구약 성서에서 겸손은 가난이라는 구체적인 경험과 연결되어 있다.
히브리어에서 ‘겸손한’의 의미로 사용되는 두 개의 형용사 ‘ani’와 ‘anaw’
는 동일한 어근 ‘anah’에서 나온다. ‘anah’는‘압제하다’라는 의미의 동사
다. 이 단어에서 파생된 두 개의 형용사 ‘ani’와 ‘anaw’는 ‘가난한’혹은 ‘구
부러진’을 의미하며 사회적인 조건과 상태를 표현한다. 이런 의미로부터
‘겸손한’이라는 의미가 파생되었다.6)
신약에서도 겸손(ταπείνωσις)은 구약에서처럼 가난과 연결되어 있지만,
신약에 나타난 겸손의 전형은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게서 배워라.”7)라


5) Augustinus, De sancta virginitate, 31, PL 40, 413, CSEL 41.
6) The Hebrew and Aramaic Lexicon of the Old Testament II, Leiden, New York, Köln,
1995, 855-858 ; P. Adnès, “Humilité”, in: Dictionnaire de spiritualité VII/1, c.
1142-1148.
7) 마태복음 11: 29.
6 논문


고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에서 발견된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중세
시대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교부인 아우구스티누스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겸손의 스승’(magister humilitatis)8) 혹은 ‘겸손의 박사’(doctor humilitatis)
라는 호칭을 붙이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겸손의 박사 그리스도는 첫째로
‘자신을 비우시고 종의 형상을 취하셨다...(빌2: 7-8)”9) 그는 구유에서 십자
가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의 삶 전체가 겸손을 가르치셨다고 주장한다.10)
이러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설명은 그리스도가 보여준 겸손은 자기를 비
우고 낮추는 것에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는 이러한 겸손이 그리스도
교의 고유한 덕이라고 주장하고 그리스도교 신앙을 모르는 고전 저자들의
책이 탁월한 도덕적 계명을 포함할 수는 있지만, 에피쿠로스, 스토아, 플라
톤과 같은 철학자들에게서 겸손을 찾는 것은 헛되다고 말한다.11) 그 이유
는 자신을 비우고 낮추어 인간이 되신 하나님의 사랑에서 기인하는 겸손을
인간의 지성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2. 아리스토텔레스의 원대한 마음
아리스토텔레스는 원대한 마음(μεγαλοψυχία)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가장 큰 일들을 할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실제로도 그런 사람”12)이라
고 말한다. 모름지기 탁월성은 두 가지 악덕, 즉 모자람과 지나침을 피하고
중용을 따르는 데 있다. ‘원대한 마음을 가진 사람(μεγαλόψυχος)’은 ‘허영
심을 가진 사람(χαῦνος)’-자신이 큰일을 할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사람-과 ‘소심한 사람(μικρόψυχος)’-자신이 실제로
할 수 있는 것보다 작은 것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의 지나침과 모자
람을 피하고 중용을 취한 사람이다.


8) Augustinus, Tractatus in Joannis Evangelium, 59, 1.
9) Augustinus, De sancta virginitate, PL 40, c. 413.
10) D.J. Macqueen, “Pride in St. Augustine’s Thought”, Recherches augustiniennes
IX(1973), 280-281.
11) En 2 in Ps. 31, PL 36, 270b; Contra Julianum IV, 3, Dictionnaire de spiritualité
VII/1, 1153에서 재인용.
12) Ethica Nicomachea(이하에서는 EN으로 약칭)1123b16-17.
“원대한 마음과 겸손은 양립가능한가?” 7


그런데 원대한 마음과 관련되는 큰일은 외적인 좋음 가운데 가장 큰 것
인 명예와 주로 관련된다. 그러니까 ‘원대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무엇보
다도 명예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며, 실제로도 그런 가
치를 가진 사람이다.”13) 그런데 “명예는 탁월성에 대한 상이며 탁월한 사
람들에게 수여되는 것이다.”14) 그러므로 원대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모든
덕을 완전하게 최고로 소유해야 한다.15) 이런 도덕적 탁월성과 함께 좋은
운을 곁들여 가진 사람은 더 많은 명예를 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과 좋은 가문에서 태어난 사람들도 명예를
받을 만한 사람들로 평가되기 때문이다.16) 이 대목에서 우리는 원대한 마
음이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에 유행한 귀족주의 윤리의 결정체라고 불리는
이유를 엿볼 수 있다.
요컨대 원대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도덕적 탁월성과 좋은 운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우월성에 대한 자의식을 가지고, 자신이 명예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이다.17)
이와 같은 의미를 가진 원대한 마음이 중세 그리스도 세계에 소개되었을
때 자기를 비워 종의 형상을 취하시고 죽기까지 복종한 예수 그리스도를 겸
손의 모델로 여기는 그리스도교의 겸손의 덕과 충돌을 일으켰을 것임을 쉽
게 짐작할 수 있다.18)
실제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원대한 마음이 중세 그리스도교 세계에 소개
되었을 때, 작지 않은 갈등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면 이러한 중세의 반응을
살펴볼 수 있는 대표적인 텍스트들을 분석해보자.


13) EN 1123b22-23.
14) EN 1123b35.
15) EN 1124a1-2, 27-29.
16) EN 1124a21-26.
17) EN 1123b24-25.
18) 아리스토텔레스의 ‘원대한 마음’은 현대에도 적지 않은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그 주
된 원인 가운데 하나는 원대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가장 뛰어난 덕을 가진 사람들로서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묘사에 그치지 않고, ‘도덕적 행운’을 가진 사람으로 그려
지기 때문이다. 출생환경이 좋은 사람은 존경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J. Casey, Pagan Virtue. An Essay in Ethics, Oxford: Clarendon Press,
1990, 199-203; B. Williams, Moral Luck, Cambridge, 1981, 20-40.
8 논문


Ⅲ. 원대한 마음과 겸손의 양립가능성 문제와
관련된 13세기 파리대학 교수들의 텍스트 분석
본고에서 다루기로 한 세 인물은 동일한 문제를 다루지만, 서로 접근 방
법이 다르다. 그 가운데 가장 먼저 1271년과 1272년 사이에 본고의 주제와
관련된 글을 쓴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적 관점에서 겸손과 원대한 마음을
다루지만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 개념을 많이 사용한다. 반면에 보나벤투
라는 성서와 교부들의 글을 근거로 겸손을 다루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원대
한 마음은 비판의 대상으로서 다룬다. 마지막으로 시제는 두 개념을 모두
아리스토텔레스에 의존하여 설명한다.
이 논문의 주제에 관해 가장 체계적으로 다루고 가장 많은 분량의 글을
남긴 토마스 아퀴나스의 원전을 제일 먼저 분석하고, 이어서 그의 저작의
영향을 받은 시제 브라방을 토마스와 체계적으로 비교하면서 다루며, 마지
막으로 이 둘과 다른 독자적인 접근법을 가진 보나벤투라를 다루는 것이 이
들의 입장을 이해하는데 가장 좋은 순서일 것이다.


1.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에 나타난 원대한 마음과 겸손
?신학대전?에서 원대한 마음과 겸손은 도덕의 특수한 문제에 할애된 부
분인 2부의 2부에서 다뤄진다. 차례대로 분석해 보도록 하자.


(1) 원대한 마음(ST II-II, 129)
토마스가 원대한 마음을 다루는 텍스트는 ?니토마코스 윤리학 주석?과 ?신학대전?이다. 전자에서 이 덕을 다루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후
자에서 이 덕을 다루는 것은 의문을 자아낸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아리
스토텔레스의 원대한 마음은 그리스도교 신앙과 충돌하는 내용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토마스는 이 덕을 자신의 신학적
윤리학 체계 안에 과연 어떤 방식으로 수용할까?


“원대한 마음과 겸손은 양립가능한가?” 9


?신학대전?에서 원대한 마음을 다룬 곳은 2부의 2부 129문이다. 129문
1절은 원대한 마음이 명예에 관한 덕인가 아닌가라는 질문을 다룬다. 이 질
문에 토마스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인용하며 원대한 마음의 대상이 명예라
고 대답한다. 하지만 덕 있는 사람들은 명예를 탐해서가 아니라, 명예를 피
하는 것에서 찬양을 받는 것이 아닌가? 토마스는 이런 반론을 모르지 않으
며, 이 반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변한다.


명예를 얻기 위해서 어떤 부적절한 일도 하지 않는 방식으로 그리고 명예를
지나치게 평가하지 않는 방식으로 명예를 멸시하는 사람들은 칭송받을 만
하다. 하지만 누군가가 명예의 값어치가 있는 일을 하는 것에 마음을 쓰지
않는 방식으로 명예를 멸시한다면, 이것은 비난받을 일이다. 그래서 원대
한 마음은 이런 방식, 즉 명예를 받을 만한 것을 하려고 노력하는 방식으로
명예에 관련되는 것이지, 인간적인 명예를 위대한 것으로 평가한다는 점에
서 명예에 관련되는 것은 아니다.19)


이 답변에서 토마스는 명예를 추구하는 것과 명예를 받을만한 일을 하려
고 노력하는 것을 구분하고 원대한 마음은 후자의 방식으로 명예와 관련된
다고 역설하고 인간적인 명예를 높이 평가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
런데 이런 설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원대한 마음에 대한 설명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명예를 “외적인 좋음 가
운데서 가장 큰 것”이라고 규정하기 때문이다.20) 여기서 우리는 토마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원대한 마음을 자신의 신학적 윤리학의 체계 안에 수용
하지만 신학적 관점에서 수정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원대한 마음을 그리스도교 윤리학 체계 안에
수용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그것은 원대한 마음에


19) ST II-II, 129, 1, ad3. “illi qui contemnunt honores hoc modo quod pro eis adipiscendis
nihil inconveniens faciunt, nec eos nimis appretiantur, laudabiles sunt. Si quis autem
hoc modo contemneret honores quod non curaret facere ea quae sunt digna honore,
hoc vituperabile esset. Et hoc modo magnanimitas est circa honorem, ut videlicet
studeat facere ea quae sunt honore digna, non tamen sic ut pro magno aestimet
humanum honorem.”
20) EN 1123b20.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외적인 좋음’
10 논문


서 그리스도교 겸손 개념과 가장 충돌하는 것으로 보이는 내용, 즉 원대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을 경시한다는 것이다. 토마스는 이 점을 잘
알고 있었고 직접적으로 이 문제를 거론한다. “원대한 마음은 겸손에 대립
된다. 왜냐하면 윤리학 4권에서 말하는 것처럼, 원대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위대한 것에 걸맞다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을 경시한다. 따라서 원
대한 마음은 덕이 아니다.”21) 이 반론에 대해 그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관점
에서 해결을 제시한다.
우선 그는 사람 안에는 하나님의 선물인 위대성이 있고, 타락한 인간에
게서 유래하는 비참함이 있다고 밝히고 다음과 같이 반론을 해결한다. 원대
한 마음이 타인을 경시하는 것은 타인 안에 있는 하나님의 선물이 아닌 인
간적 결함에 대해서다. 만약 원대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다른 사람 안에 있
는 인간적 결함을 높이 평가한다면 그것은 부적절한 일일 것이다.22)
이와 같이 토마스는 겸손과 충돌하는 것으로 보이는 원대한 마음을 제대
로 이해하면 충돌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자신의 신학적 윤리학 체계
안에 하나의 윤리적 덕으로 수용한다.


(2) 겸손(ST II-II, 161)
토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 주석?에서는 겸손에 대해 다루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겸손의 덕을 다루지 않기에 당연한 일이다. 반면에 ?신
학대전?에서는 물론 겸손의 덕을 다루며, 구체적으로 2부의 2부 161문에
서 여섯 개의 절에서 여섯 가지 질문을 다룬다. 이 가운데서 특히 아리스토
텔레스 윤리학의 개념을 사용하여 겸손을 설명하는 1절, 3절, 4절을 분석하


21) ST II-II, 129, 3, obj. 4. 인용된 아리스토텔레스 구절은 EN. 1123 b 2, 1124 b 29.
22) ST II-II, 129, 3, ad4. “원대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타인을 경시한다”는 구절을 토마스
는 ?니코마코스 윤리학 주석?에서는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풀이한다. 덕이 없는 사
람들이 무차별적으로 타인을 경시하는 것과 달리 원대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정당하
게 악한 사람을 경시하고, 덕이 있는 사람을 칭송한다. Sententia Ethic., lib. 4 l. 9.
“magnanimus iuste contemnit scilicet malos, et vere glorificat scilicet bonos, sed
multi, scilicet qui carent virtute, contemnunt et glorificant indifferenter qualitercumque
contingit, contemnendo scilicet interdum bonos, et glorificando malos.”
“원대한 마음과 겸손은 양립가능한가?” 11


겠다. 그 가운데서도 1절을 자세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이 부분은 다음에
다룰 시제 브라방이 많이 차용하기 때문에 두 사람의 입장을 비교하는데 매
우 중요하다.


① “겸손은 덕인가?”(ST II-II, 161, 1)
토마스는 가장 먼저 “겸손은 덕인가”라는 질문을 다룬다. 이 질문에 답
하기 위해 중세대학의 토론형식을 따라 먼저 겸손이 덕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는 다섯 가지 근거를 제시한다. 그 가운데 마지막 세 개 즉 반론23) 3부
터 5는 모두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기초한 논거며, 모두 시제가 그대로 차
용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세 가지 반론만 차례대로 살펴보고, 반론에 대한
답변은 아래에서 시제의 답변과 함께 다룰 것이다.


반론 3 : 어떤 덕도 다른 덕에 대립되지 않는다. 하지만 겸손은 원대한 마음
의 덕에 대립되는 것으로 보인다. 원대한 마음은 큰 것을 지향하지만, 겸손
은 큰 것을 피하는 것이니까. 그러므로 겸손은 덕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24)
반론 4 : 자연학 7권에서 말하는 것처럼, 덕은 완전한 것의 성향이다. 그러
나 겸손은 불완전한 사람들의 성향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겸손은 덕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25)


반론 5 : 모든 도덕적 덕은 윤리학 2권이 말하는 것처럼, 행위 혹은 정념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겸손은 철학자가 정념에 관한 덕 가운데 열거하지 않
고, 행위에 관한 정의의 덕 안에도 포함시키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것은 덕
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26)


이 반론들은 그리스도교의 겸손과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의 덕 개념 간
의 충돌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23) 여기서 반론은 ?신학대전?의 각 절을 구성하는 한 요소이며, 문제에 대한 정답과 반대
되는 입장의 논거를 지칭한다. 중세대학의 토론 형식을 사용한 ?신학대전? 각 절의 구
조에 대해서는 다음 책을 참고하라.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 자연과 은총에 관한
주요문제들?, 손은실, 박형국 옮김, 두란노 아카데미, 2011, 46-48.
24) ST II-II, 161, 1, obj. 3.
25) ST II-II, 161, 1, obj. 4.
26) ST II-II, 161, 1, obj. 5.
12 논문


이 반론들을 제시한 후에 토마스는 겸손이 덕임을 논증하기 위해 먼저
이 반론들과 반대되는 입장의 권위에 의한 근거27)를 성서에서 가지고 온
다. 성모 마리아의 찬가에 나오는 구절-“그분께서 자신의 여종의 비천함
(humilitatem28))을 돌아보셨다”-과 그리스도의 말씀-“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humilis) 나에게서 배우라”-이 그것이다.29) 그리스도와 그의 어
머니를 겸손의 모델로 제시함으로써, 겸손이 덕임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토마스의 겸손 개념은 일차적으로 성서에 근거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겸손이 덕임을 이성적으로 논증하는 부분에서 그는 겸손을 성서
의 고유한 개념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원대한 마음에 견주어 설명한다. 구
체적으로 그는 겸손과 원대한 마음 둘 다 어려운 선에 대한 욕구와 관련되
는 덕으로 설명한다. 즉 겸손이 “과도하게 높이 있는 선으로 향하지 않도록
마음을 절제시키고 억제하는 덕”이라면, 원대한 마음은 “절망에 맞서 마음
을 강화시켜주고, 바른 이성에 따라 큰 선을 따르도록 마음을 움직이는
덕”30)이다.
하지만 겸손에 대한 이런 이해는 토마스의 겸손 이해의 절반만 보여준
다. 아래에서 시제의 텍스트와 함께 살펴 볼 반론에 대한 답변에서 우리는
토마스가 겸손을 일차적으로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관련된 덕이라
고 설명하는 것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27) 이 논거는 Sed contra에 나온다. ?신학대전?의 구조에 대해서는 각주 24를 참조하라.
28) 겸손을 의미하는 humilitas의 대격형태이다. 여기서 함께 나오는 겸손의 형용사형
humilis는 ‘겸손한’이라고 번역한데 반해, 마리아의 표현에서 ‘비천함’이라고 번역한
이유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회적 조건과 결부된 성서의 겸손 개념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29) 누가복음 1장 48절; 마태복음 11장 29절.
30) ST II-II, 161, 1, c. “[...] Et ideo circa appetitum boni ardui necessaria est duplex
virtus. Una quidem quae temperet et refrenet animum, ne immoderate tendat in
excelsa, et hoc pertinet ad virtutem humilitatis. Alia vero quae firmat animum contra
desperationem, et impellit ipsum ad prosecutionem magnorum secundum rationem
rectam, et haec est magnanimitas. Et sic patet quod humilitas est quaedam virtus.”
“원대한 마음과 겸손은 양립가능한가?” 13


② “사람은 겸손에 의해 자신을 모든 이 아래에 놓아야 하는가?”(ST
II-II, 161, 3)
토마스는 이 질문에 대해 성서의 한 구절, 즉 빌립보서 2장 3절, 즉 “겸손
하게 서로 [상대방을] 자신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고”라는 말씀에 기초하
여 긍정적으로 대답한다. 하지만 과연 겸손한 사람은 자신을 모든 사람 아
래 놓아야 하는 것일까? 토마스도 물론 이런 반문을 제기한다. “겸손은 진
리의 편에 위치해야지 거짓의 편에 위치해서는 안 된다”라는 아우구티누스
의 문장을 인용하면서 겸손에 의해 자신을 위선적으로 모든 이 아래 놓는
것의 문제점을 지적한다.31)
그렇다면 겸손한 사람은 어떻게 위선적이지 않으면서 자신을 모든 이 아
래에 놓을 수 있다는 말일까? 이에 대해 토마스는 다음과 같이 답변한다.
“만약 우리가 이웃 안에 있는 하나님에 속하는 것을 우리 안에 있는 우리의
고유한 것보다 선호하면, 우리는 거짓에 떨어지지 않을 수 있다.”32) 이 말
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토마스가 사람 안에서 두 가지를 구분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에게 속한 것과 사람에게 속한 것이 그것이다.
결함에 해당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인간에게 속하고, 구원과 완전함에 해당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속한다. [...] 그런데 겸손은 이미 말한 것처
럼 고유하게는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인간이 하나님께 돌리는 존경과 관련
된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든지 자기 자신인 한에 있어서 이웃 안에 있는
하나님에게 속한 것에 관해서는 어떤 이웃에게든지 자신을 그 이웃 아래 놓
아야 한다.33)


31) ST II-II, 161, 3, obj.2.
32) ST II-II, 161, 3, ad2. “si nos praeferamus id quod est Dei in proximo, ei quod est
proprium in nobis, non possumus incurrere falsitatem.”
33) ST II-II, 161, 3, c. “Hominis autem est quidquid pertinet ad defectum, sed Dei est
quidquid pertinet ad salutem et perfectionem, ... Humilitas autem, sicut dictum est,
proprie respicit reverentiam qua homo Deo subiicitur. Et ideo quilibet homo,
secundum id quod suum est, debet se cuilibet proximo subiicere quantum ad id quod
est Dei in ipso.”
14 논문


이 문장은 겸손을 통해 사람이 모든 사람 아래에 자신을 놓아야 한다는
토마스의 주장의 의미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사람이 무조건적으로
자신을 모든 사람 아래 두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속하는 것을
모든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에게 속한 것 아래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③ “겸손은 절도(moderatio) 혹은 절제(temperantia)의 한 부분인가?”
(ST II-II, 161, 4)
이 질문에서 토마스는 겸손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절제와 키케로의 절도
개념과 연결시키고자 시도하였다. 먼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절제
(temperantia)는 정념의 충동을 제지하고 억제하는 것과 관련된다. 따라서
어떤 정념의 충동을 제지하고 억제하는 것이거나 행동을 절제하는 모든 덕
은 절제의 부분에 속한다. 그런데 겸손은 위대한 것으로 향하는 정신의 움
직임인 희망의 움직임을 억제한다. 따라서 겸손은 절제의 한 부분이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명예와 관련하여 원대한 마음을 가진 사람과
달리 자신의 한도에 따라 작은 것으로 향하는 사람을 ‘절제하는 사람
(temperatus)’34)이라고 불렀다. 토마스는 이 절제하는 사람을 ‘겸손한 사람
(humilis)’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말하며, 겸손을 절제의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35) 여기에 덧붙여 그는 겸손이 키케로가 말하는 일종의
‘정신의 절도(moderatio spiritus)’36) 외에 다름 아니라고 주장한다.


34) EN 1123 b 5.
35) ST II-II, 161, 4, c. “Et ideo omnes virtutes refrenantes sive reprimentes impetus
aliquarum affectionum, vel actiones moderantes, ponuntur partes temperantiae.
Sicut autem mansuetudo reprimit motum irae, ita etiam humilitas reprimit motum
spei, qui est motus spiritus in magna tendentis. Et ideo, sicut mansuetudo ponitur
pars temperantiae, ita etiam humilitas. Unde et philosophus, in IV Ethic., eum qui
tendit in parva secundum suum modum, dicit non esse magnanimum, sed
temperatum, quem nos humilem dicere possumus. Et inter alias partes temperantiae,
ratione superius dicta, continetur sub modestia, prout Tullius de ea loquitur,
inquantum scilicet humilitas nihil est aliud quam quaedam moderatio spiritus.”
36) 키케로의 절도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신학대전? 라틴어 텍스트와 불어 번역에 키
케로 저작의 근거로 다음 전거를 제시하고 있다. Reth. II, 54.
“원대한 마음과 겸손은 양립가능한가?” 15


이와 같이 겸손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절제와 연결시킨 토마스의 시도는
시제 브라방의 겸손 이해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러면 시제가 겸손과
원대한 마음을 어떻게 다루는지 토마스의 입장과 비교하면서 살펴보자.


2. 시제 브라방의 ?도덕문제? 1문에 나타난 원대한 마음과
겸손(토마스 아퀴나스와의 비교)
시제는 1273년경 도덕 문제를 다루면서 제1문에서 “겸손은 덕인가?”라
는 문제를 다루었다.37) 철학자인 그가 도덕 문제를 다루면서 겸손을 다루
는 것부터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왜냐하면 그가 그토록 추종하였던 철학자,
당대에 철학자의 대명사로 불리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에서 겸손은
하나의 덕으로 제시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가 겸손을 철학적 윤리
에서 다루는 이유는 고띠에38)의 말처럼 겸손한 사람(humilis)을 아리스토
텔레스 윤리학의 절제하는 사람(temperatus)과 연결시킨 토마스의 영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39)
도덕 문제 1문에서 시제는 중세 대학 토론 문제의 형식을 따라 겸손은 덕
이라는 자신의 답변을 제시하기 전에 그와 반대되는 입장, 즉 겸손은 덕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한다. 그가 제시한 네 가지 반론 가운
데 세 가지는 앞서 말한 것처럼 토마스 아퀴나스가 제기한 반론과 내용이
동일하다. 세 반론은 모두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에 근거하고 있다.
이것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시제와 토마스의 반론과 반론에 대한 답변
을 나란히 소개하고 두 학자의 답변을 비교 분석해 보자.
37) Quaestiones morales, q. 1. Utrum humilitas sit virtus, in: Ecrits de logique, de
morale et de physique, ed. B. Bazan, Louvain, Paris, 1974, 98-99.
38) R.-A. Gauthier, Magnanimité: l’idéal de la grandeur dans la philosophie païenne et
dans la théologie chrétienne, Paris: J. Vrin, 1951, 475-480.
39) 시제에 대한 고전적 연구를 남긴 반 스텐베르겐은 시제가 토마스 저작을 이용하며, 시
제에 대한 토마스의 영향은 매우 잘 감지된다고 주장했다. F. V. Steenberghen, Maitre
Siger de Brabant, Louvain, Paris, 1977, 396.
16 논문
토마스 아퀴나스 시제 브라방




“어떤 덕도 다른 덕에 대립되지 않는
다. 하지만 겸손은 원대한 마음의 덕에
대립되는 것으로 보인다. 원대한 마음
은 위대한 것을 지향하지만, 겸손은 위
대한 것을 피하는 것이니까. 그러므로
겸손은 덕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40)
(겸손은 덕이 아니다.) “왜냐하면 겸
손은 위대한 것을 지향하는 원대한
마음과 같은 덕에 대립되기 때문이
다. 그런데 겸손은 위대한 것을 피
한다.”41)


“겸손은 욕구가 바른 이성을 넘어서 있
는 큰 것으로 향하지 않도록 욕구를
억제한다. 반면에 원대한 마음은 마음
이 바른 이성에 따라 큰 것을 지향하
도록 움직인다. 그러므로 원대한 마음
은 겸손에 대립하지 않고, 둘 다 바른
이성에 따르는 것이라는 점에서 두 덕
이 수렴한다는 것은 분명하다.”42)
“때때로 덜 어려운 것을 요구하는
것이 적합할 때는 욕구를 억제하기
위해 겸손의 덕이 필요하다. 때때로
어려운 것을 욕구하는 것이 적합할
때는 욕구를 밀고나기 위해 원대한
마음이 필요하다.”43)




“자연학 7권에서 말하는 것처럼, 덕은
완전한 것의 성향이다. 그러나 겸손은
불완전한 사람들의 성향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겸손은 덕이 아닌 것으로 보
인다.”44)
“자연학 7권45)에 나오는 아리스토
텔레스의 말에 따르면, 덕은 최선을
향한 완전한 것의 성향이다. 그러므
로 덕은 완전한 자들(perfectorum)
에게 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겸손은
불완전한 사람들(imperfectorum)에
게 속하는 것이다.”46)


이 답변은 길기 때문에 요약한다. 완전
함은 두 가지 방식으로 말해진다. 하나
는 단적으로 완전한 것으로 그 안에
어떤 결함도 발견되지 않는 완전함이
다. 이 경우 오직 신만이 완전하다. 다
른 하나는 어떤 점에 있어서 완전하다
고 말해지는 것으로 덕이 있는 사람은
이런 방식으로 완전하다. 하지만 그의
완전함은 하나님과 비교하면 결함이 발
견된다. 이 두 번째 방식으로 겸손은
어떤 사람에게나 적합할 수 있다.47)
“겸손은 덕이고 원대한 마음도 덕이
다. 하지만 원대한 마음은 겸손 혹
은 명예에 대한 절제보다 더 완전
한 덕이다. 왜냐하면 아리스토텔레
스가 윤리학 4권 원대한 마음에 관
한 장에서 이것을 쓰고 있기 때문
이다. 그러나 겸손은 비록 원대한
마음처럼 그렇게 완전한 사람들에게
속하는 것은 아니지만, 불완전한 사
람들에게 속하는 것은 아니다.”48)




“모든 도덕적 덕은 윤리학 2권이 말하
는 것처럼, 행위 혹은 정념에 관한 것
이다. 그러나 겸손은 철학자가 정념에
관한 덕 가운데 열거하지 않고, 행위에
관한 정의의 덕 안에도 포함시키지 않
는다. 그러므로 그것은 덕이 아닌 것으
로 보인다.”49)
“겸손이 도덕적 덕이라면 행위에 관
한 것이거나 정념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겸손은 어느 것에도 포함되
지 않는다. 윤리학 책을 검토하는
사람에게 분명하듯이.50)
(1) 토마스 아퀴나스와 시제의 반론들과 그에 대한 답변들
“원대한 마음과 겸손은 양립가능한가?” 17


“철학자는 덕을 시민생활과 관련해서
다루려고 의도했다. 시민 생활에 있어
서 한 사람의 다른 사람에 대한 종속
은 법의 질서에 따라 규정된다. 따라서
이것은 법률적 정의 아래 포함된다. 그
런데 겸손은 특수한 덕이라는 점에 있
어서, 무엇보다 특히 인간의 신에 대한
종속과 관련이 있고, 그리고 신 때문에
심지어 다른 사람에게도 자신을 낮춤으
로써 종속시키는 것과 관련이 있다.”51)
“겸손은 명예에 관한 욕구와 관련된
감정적 욕구의 정념에 관한 것이
다.”52)
40) “nulla virtus opponitur alii virtuti. Sed humilitas videtur opponi virtuti magnanimitatis,
quae tendit in magna, humilitas autem ipsa refugit. Ergo videtur quod humilitas non
sit virtus.” ST II-II, 161, 1, obj. 3.
41) “nam [humilitas] opponitur virtuti ut magnanimitati, quae tendit ad magna,
humilitas autem refugit magna.” Quaestiones morales, q. 1, lign. 7-8. 바로 위의 각주
42에 나오는 토마스의 반론과 여기 인용한 시제의 반론을 라틴어로 보면 둘 사이의 유
사성을 더 뚜렷이 확인할 수 있다.
42) “humilitas reprimit appetitum, ne tendat in magna praeter rationem rectam.
Magnanimitas autem animum ad magna impellit secundum rationem rectam. Unde
patet quod magnanimitas non opponitur humilitati, sed conveniunt in hoc quod
utraque est secundum rationem rectam.” ST II-II, 161, 1, ad3.
43) Quaestiones morales, q. 1. lign. 37-42.
44) “virtus est dispositio perfecti, ut dicitur in VII Physic. Sed humilitas videtur esse
imperfectorum, unde et Deo non convenit humiliari, qui nulli subiici potest. Ergo
videtur quod humilitas non sit virtus.” ST II-II, 161, 1, obj. 4.
45) Physica 247a 1-5.
46) Quaestiones morales, q. 1. lign. 9-10.
47) “perfectum dicitur aliquid dupliciter. Uno modo, simpliciter, in quo scilicet nullus
defectus invenitur, nec secundum suam naturam, nec per respectum ad aliquid aliud.
Et sic solus Deus est perfectus, cui secundum naturam divinam non competit
humilitas, sed solum secundum naturam assumptam. Alio modo potest dici aliquid
perfectum secundum quid, puta secundum suam naturam, vel secundum statum aut
tempus. Et hoc modo homo virtuosus est perfectus. Cuius tamen perfectio in
comparatione ad Deum deficiens invenitur, secundum illud Isaiae XL, omnes
gentes, quasi non sint, sic sunt coram eo. Et sic cuilibet homini potest convenire
humilitas.” ST II-II, 161, 1, ad4.
48) “perfectior virtus est magnanimitas quam humilitas sive temperantia circa honorem.
Sic enim notat eam Aristoteles in quarto Ethicorum, capitulo de magnaimitatae. Non
tamen est humilitas imperfectorum, licet non sit tam perfectorum sicut
magnanimitas.” Quaestiones morales, q. 1. lign. 44-47.
49) “omnis virtus moralis est circa actiones vel passiones, ut dicitur in II Ethic. Sed
18 논문
(2) 토마스와 시제의 답변 비교 분석
시제가 제기한 세 가지 반론은 토마스와 내용뿐만 아니라 순서까지 동일
하다. 하지만 반론에 대한 답변에서는 첫째 반론에 대한 답변을 제외하고
두 사람이 갈라진다.
두 번째 반론에 대한 두 사람의 답변을 비교해 보자. 겸손이 불완전한 사
람들에게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덕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반론을 반박하기
위해 시제는 우선 겸손과 원대한 마음을 둘 다 명예와 관련된 덕이라고 해
석한다. 철학의 한계 안에서 덕에 관한 논의를 전개하는 시제는 겸손을 아
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명예에 관한 절제(temperantia)’와 동일시한다. 그는
계속 아리스토텔레스를 인용하면서 원대한 마음과 겸손을 비교하여 전자
가 후자보다 더 완전한 덕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두 덕 간에 서열을 매기는
것은 두 덕을 소유하는 사람들의 서열화로 귀결된다. 즉 보다 완전한 사람
들과 덜 완전한 사람들이 그것이다. 이를 통해 겸손은 덜 완전한 사람들의
덕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겸손은 불완전한 사람에게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덕이 아니라는 반론을 반박한다. 이러한 시제의 겸손 이해는 겸손을 단지
덜 완전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덕이라고 보는 그리스도교적
겸손 이해와 충돌한다. 하지만 시제는 이런 충돌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리스
토텔레스의 윤리학을 추종한다.
반면에 토마스는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의 덕 개념의 틀이 그리스도교
의 겸손 개념에 잘 부합하지 않을 때 아리스토텔레스 덕 개념을 그리스도교
humilitas non connumeratur a philosopho inter virtutes quae sunt circa passiones,
nec etiam continetur sub iustitia, quae est circa actiones. Ergo videtur quod non sit
virtus.”ST II-II, 161, 1, obj. 5.
50) Quaestiones morales, q. 1. lign. 12-14.
51) “philosophus intendebat agere de virtutibus secundum quod ordinantur ad vitam
civilem, in qua subiectio unius hominis ad alterum secundum legis ordinem
determinatur, et ideo continetur sub iustitia legali. Humilitas autem, secundum quod
est specialis virtus, praecipue respicit subiectionem hominis ad Deum, propter quem
etiam aliis humiliando se subiicit.” ST II-II, 161, 1, ad5.
52) Quaestiones morales, q. 1. lign. 49-50.
“원대한 마음과 겸손은 양립가능한가?” 19
신앙의 관점에서 수정하는 것을 보여준다. 즉 완전한 것의 성향이라는 아리
스토텔레스의 덕 개념을 신 앞에서 모든 인간은 불완전하다는 신앙의 관점
에서 상대적으로 완전한 것의 성향으로 수정한다. 이를 통해 겸손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는 덕이라고 주장하며, 겸손을 불완전한 사람들에게
귀속시키며 덕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반론을 반박한다.
셋째 반론을 해결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두 사람은 차이를 드러낸다. 두
사람은 모두 겸손이 덕이 아니라는 주장의 근거로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
에서 도덕적 덕은 행위나 정념에 관한 것인데, 아리스토텔레스는 겸손을 이
두 가지 가운데 어디에도 포함시키지 않았음을 내세운다. 시제는 이 반론에
대해 겸손은 명예욕과 관련된 정념에 관한 덕이라고 답변한다. 반면에 토마
스는 왜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에서 겸손이 덕 목록에 포함되지 않았는지
를 설명한다. 그 이유는 그의 윤리학은 시민생활과 관련된 덕을 다루기 때
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겸손은 신에 대한 인간의 종속과 관련된 특수한
덕이라고 밝히며 겸손은 덕이 아니라는 반론을 반박한다.
이와 같은 반론에 대한 답변에서 우리는 두 사람의 겸손 이해에 차이가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러면 두 사람이 겸손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좀 더 자
세히 살펴보자.
(3) 토마스와 시제의 겸손 개념
시제는 겸손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덕 목록에는 포함되지 않았음을 지적
한다. 하지만 그는 겸손을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명예에 관한 절제
(temperantia circa honorem)와 동일시한다.53) 겸손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규정하기 전에 그는 먼저 겸손이라는 단어의 오용을 지적한다.
이름은 매우 쉽게 응용되기 때문에 우리는 겸손이라는 이름을 그 의미에 있
어서 우리 안에 있는 덕을 보여주지 않는 어떤 것에 대해 사용한다. 가령 어
떤 이가 자신 안에 있는 것보다 더 작은 선을 보여줄 때, 우리는 때때로 그가
겸손하다고 말한다. 그것은 겸손이라는 이름을 변형한 것이다. 그러나 겸
53) Quaestiones morales, q. 1. lign. 44-45.
20 논문
손 자체는 그 이름을 확장하지 않을 때 덕을 나타내는 이름이다.54)
시제는 이 인용문에서 “자신 안에 있는 것보다 더 작은 선을 보여주는
것”은 겸손의 변형으로서 덕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주장은 바로
1277년 단죄 목록의 171 조항의 표적이 되었다.55) 그러면 시제는 겸손이라
는 단어가 덕을 나타내는 이름으로 사용될 때의 의미를 어떻게 규정할까?
시제의 말을 들어보자.
어려운 선의 욕구와 어렵기 때문에 도피하는 것과 관련하여, 두 가지 덕,
즉 겸손과 원대한 마음이 있다. 즉 원대한 마음은 바른 이성에 따라 어려운
것으로 나아가게 하고, 겸손은 바른 이성을 넘어서는 위대한 것으로 향하지
않도록 혹은 바른 이성에 따라 위대하고 너무 어려운 것을 피하도록 욕구를
억제하는 것이다.56)
요컨대 시제에 따르면, 덕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겸손은 바른 이성에 따라
이성을 넘어서는 지나치게 어려운 것을 피하도록 욕구를 억제하는 것을 의
미한다. 토마스도 겸손의 이런 의미를 인정한다. 하지만 그는 이와 다른 차
원의 겸손의 의미도 말한다.
토마스는 겸손이 덕이 아니라는 반론들을 반박하는 과정에서 겸손에 대
한 두 가지 이해를 보여 주었다. 한편으로 그는 자연 이성의 차원에서 겸손
을 설명한다. 이 경우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덕 윤리의 틀 속에서 겸손은
54) “cum nomina valde de facili accomodentur, bene possumus uti nomine humilitatis
ad aliquid tale quod in illa significatione non praetenderet nobis virtutem; ut
videlicet cum aliquis praetendit minora bona de se quam in eo sint, dicimus eum
aliquando esse humilem, et hoc transmutando nomen humilitatis. Sed ipsa himilitas,
non extendendo nomen eius, nomen virtutis est;...”, Quaestiones morales, q. 1. lign.
18-23.
55) R. Hissette, Enquête sur les 219 articles condamnés à Paris le 7 mars 1277,
Louvain, Paris, 1977, 302; D. Piché, La condamnaiton parisienne de 1277, Paris: J.
Vrin, 1999, 278.
56) Quaestiones morales, q. 1. lign. 32-36. “circa appetitum boni ardui et fugam ipsius
quia arduum, sunt duae virtutes, scilicet humilitas et magnaimitas; idest quod
magnanimitas impellit ad ardua secundum rectam rationem et humilitas reprimit
appetitum, ne tendat in magna extra rectam rationem, seu ut fugiat magna et nimis
ardua secundum rectam rationem.”
“원대한 마음과 겸손은 양립가능한가?” 21
바른 이성에 따라 지나치게 큰 것을 지향하지 않도록 욕구를 억제하는 것이
라고 정의한다. 다른 한편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관점에서 겸손은 무엇보
다 인간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도 자신을 낮추
어서 순종하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면 이 두 가지 겸손 개념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은총은 자연을 제거하지 않고 완성한다”57)는 토마스의 신학 공리에 비
추어 보면, 이성적 차원에서 이해되는 겸손 개념은 신앙적 차원의 겸손 개
념에 의해 제거되지 않고 완성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시제는 겸손을 오직 이성적 차원에서 논의함으로써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의 틀을 충실히 추종하는 데 머물러 있는 반면, 토마스는 아리스토텔레
스의 개념의 틀을 신학 안에 수용하지만, 그리스도교 신앙의 차원을 통해
보완한다. 두 사람의 겸손에 대한 상이한 이해는 겸손과 원대한 마음의 대
립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도 나타난다.
(4) 겸손과 원대한 마음은 대립되지 않는가? 토마스와 시제의 답변 비교
원대한 마음은 위대한 것을 지향하지만, 겸손은 위대한 것을 피하는 것
이므로 둘이 대립된다는 주장에 대해 시제와 토마스는 표현만 약간 다를 뿐
같은 대답을 한다. 즉 겸손은 욕구가 바른 이성을 넘어서 있는 위대한 것으
로 향하지 않도록 욕구를 억제하는 반면에 원대한 마음은 마음이 바른 이성
에 따라 위대한 것을 지향하도록 움직인다. 따라서 둘은 대립하지 않고, 둘
다 바른 이성에 따르는 것이라는 점에서 수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토마스는 시제와 달리 겸손을 단순히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예에
관련된 욕구의 절제와 동일시하지 않는다. 그는 이것도 겸손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지만, 겸손은 보다 고유하게는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순종과 관련된
덕으로 본다. 이런 그리스도교 신앙의 관점에서 겸손과 원대한 마음이 대립
57) “Gratia non tollit naturam sed perficit.” Sent. II, d. 9, q. 1, a. 8, arg. 3; ST I, 1, 8, ad
2, etc. 스콜라 신학의 격언이었던 이 신학 공리에 대한 참고 문헌은 또렐이 잘 정리하
고 있다. J.-P. Torrell, Saint Thomas d’Aquin, maître spirituel, Initiation 2, Fribourg
(Suisse): Éditions universitaires, Paris: Cerf, 1996, p. 302, n. 2.
22 논문
하지 않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토마스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자신의 힘을 신뢰하면서 보다 위대한 것으로 향하는 것은 겸손에 대립된
다. 하지만 누군가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신뢰하면서 보다 위대한 것으로 향
하는 것은 겸손에 대립되지 않는다. 특히 누군가가 겸손하게 하나님께 자신
을 낮출수록 하나님 앞에서 높여지기 때문이다.58)
이 답변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토마스가 아리스
토텔레스의 원대한 마음과 그리스도교의 고유한 겸손 사이의 대립을 의식
하고 있다는 것이다. 원대한 마음은 인용문에서 겸손과 대립되는 것으로 말
해지는 “자신의 힘을 신뢰하면서 보다 위대한 것으로 향하는 것”과 다른 것
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이 대립을 피하기 위해 원대한 마음에 그
리스도교의 세례를 주어서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위대한
것을 추구하는 것으로 규정한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결국 토마스가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 개념을 많이 차용하
지만, 그렇다고 그리스도교의 겸손 이해를 상실한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3. 보나벤투라의 ?창조의 6일 강론? 및 ?복음적 완전에 관한
토론문제?에 나타난 원대한 마음과 겸손
보나벤투라가 본고의 주제를 다루는 주된 저작은 ?창조의 6일 강론?이
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겸손은 지나가면서 언급하는 것에 그친다. 그가 겸
손을 다루는 주된 텍스트 가운데 하나는 ?복음적 완전에 관한 토론문제? 1
문이다. 이 두 저작을 차례대로 살펴보자.
(1) ?창조의 6일 강론?59)에 나타난 원대한 마음
58) “tendere in aliqua maiora ex propriarum virium confidentia, humilitati contrariatur.
Sed quod aliquis ex confidentia divini auxilii in maiora tendat, hoc non est contra
humilitatem, praesertim cum ex hoc aliquis magis apud Deum exaltetur quod ei se
magis per humilitatem subiicit.” ST II-II, 161, 2, ad2.
59) Collationes in Hexaemeron, in: S. Bonaventurae opera omnia, Quaracchi, 1891, t. V.
“원대한 마음과 겸손은 양립가능한가?” 23
1270년 전후로 소위 ‘라틴 아베로에스주의’ 위기가 파리대학에서 심화
되자 보나벤투라는 1273년 봄에 교수와 학생들을 잘못된 가르침에서 돌아
서게 하고 그리스도교의 지혜로 인도하기 위해 강론을 시작했다. 이것이 그
의 유명한 ?창조의 6일 강론?(Collationes in Hexaemeron)이다.60) 이 강론
에서 그는 아베로에스 주석을 추종한 당대의 과격한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에 대해 격렬한 비판을 시도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도 비판적 검토
의 대상으로 삼는다. 스물 세 개의 강론으로 구성된 이 강론 중 다섯 번째
강론에서 보나벤투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니토마코스 윤리학?에서 다뤄
진 12개의 덕을 검토한다. 그 가운데서 짧은 한 문단에서 원대한 마음을 다
룬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여섯 번째 중용은 원대한 마음이다. 그것은 위대한 것을 높이 평가하고 비
천한 것을 경멸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겸손은 겉보기의 위대한 것을 경
멸하고 작아 보이지만 진정으로 위대한 것을 높이 평가한다. 철학자는 원대
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명예를 욕구한다고 말한다. 그가 뭐라고 말하든, 그
것이 영원한 것에 대한 명예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진리의 가르
침이 아니다.61)
보나벤투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원대한 마음’과 그리스도교의 겸손의
대상을 대비시킨다. 전자의 대상이 명예라면, 후자의 대상은 진정으로 위대
한 것이다. 문맥에서 진정으로 위대한 것은 세속적 명예가 아닌 영원한 것
에 대한 명예라는 것이 유추된다. 이런 대비를 통해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원대한 마음이 영원한 것에 대한 명예에 관한 것이 아닌 한 진리의 가르침
에 위배된다고 단호하게 비판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이 강론에서 그가 겸
손에 대해 따로 설명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겸손에 대한 보
나벤투라의 이해를 보기 위해서는 그가 이 문제를 다루는 다른 저작을 검토
해야 한다.
60) J.-G. Bougerol, Introduction à saint Bonaventure, Paris : Vrin, 1988, p. 236-236.
61) Collationes in Hexaemeron V, 10, 355.
24 논문
(2) ?복음적 완전에 관한 토론문제?62)
이 토론 문제는 보나벤투라가 1255년에 작성한 것이다. 그 배경은 1252
년부터 파리대학에서 발생한 교구 소속 재속사제들로 구성된 재속 교수들
(secular masters)과 탁발 수도사(mendicants) 출신의 교수들 간의 갈등에
있다. 보나벤투라는 탁발 수도사들의 수도적 삶의방식에 대한 재속 교수들
의 공격에 대항하기 위해 이 토론문제를 다뤘다.63)
이 토론문제 제1문에서 그는 겸손을 그 행위에 관하여 다룬다.64) 여기서
그는 “그리스도를 위해 자기 자신을 낮추는 것(vilificare)이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속하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그는 모두 성서와 교부 텍스트에
서 인용한 무려 25개의 근거를 제시한 다음에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완전의 총체는 겸손에 있다. 겸손의 행위는 외적으로
그리고 내적으로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65)
이 텍스트에서 우리는 보나벤투라가 겸손을 다룰 때 동시대의 토마스와
시제와 큰 차이를 보여줌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그가 겸손을 아리스토
텔레스의 덕 개념을 사용하여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덕(virtus)
개념 대신에 완전함(perfectio)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겸손을 그 행위에 관
해 다루는 것이 특징이다. 보나벤투라는 왜 이런 선택을 했으며, 그 의미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차후의 연구과제로 남겨둔다.
62) Quaestiones disputatae de perfectione evangelica, S. Bonaventurae opera omnia,
Quaracchi, 1891, t. V, 117-198.
63) J.-G. Bougerol, Introduction à saint Bonaventure, Paris : Vrin, 1988, p. 209-211.
64) De humilitate quoad actum ipsius.
65) “summa totius christianae perfectionis in humilitate consistit, cuius actus est
exterior et interior vilificatio sui.”Quaestiones disputatae de perfectione evangelica,
S. Bonaventurae opera omnia, Quaracchi, 1891, t. V, 120.
“원대한 마음과 겸손은 양립가능한가?” 25
Ⅳ. 나가는 말
지금까지 1277년 전후로 파리대학가에서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원대한 마음(μεγαλοψυχία)과 그리스도교의 겸손 개념
의 양립가능성 여부 문제를 다루는 가장 대표적인 텍스트들을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13세기 파리대학의 교수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그리스
도교의 신앙이 충돌하는 문제에 직면하여 어떤 입장들을 취했는지 발견할
수 있었다.
토마스나 보나벤투라와 같은 신학자와 달리 철학자였던 시제는 아리스
토텔레스의 철학을 거의 전적으로 추종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즉, 그는
그리스도교의 겸손 이해에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겸손을 아리스토
텔레스의 명예에 관한 절제와 동일시했다. 이를 통해 겸손과 원대한 마음이
양립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이로 인해 겸손에 관한 그의 입장은 1277년
단죄목록 171조항의 표적이 되었다.
반면에 보나벤투라는 그리스도교의 겸손과 인간적 명예를 대상으로 하
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원대한 마음을 대립시키고, 원대한 마음을 진리의 가
르침이 아니라며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겸손을 다룰 때도 다른 두 사
람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의 덕 개념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것은 그가 겸손
을 아우구스티누스처럼 그리스도교의 고유한 개념으로 이해한 것을 보여
준다. 또한 이것은 이성을 초월하는 신앙 문제에 관하여 철학을 사용하는
것을 포도주를 물로 변화시키는 ‘최악의 기적(pessimum miraculum)’66)이
라고 불렀던 자신의 입장에 충실했음을 보여준다.
이 두 사람과는 다른 제 3의 길을 선택한 토마스 아퀴나스는 성서의 관점
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을 연결시키려는 시도를 통해 겸손과 ‘원대한 마
음’이 양립 가능함을 주장하였다. 다시 말해 그는 “은총은 자연을 제거하지
않고 완성한다.”는 자신의 신학공리를 적용하여 그리스도교 신앙의 관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을 제거하지 않고 완성한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시
66) Bonaventura, Collationes in Hexaemeron, XIX, 14, S. Bonaventurae Opera Omnia,
Quaracchi, 1891, t. V, 422.
26 논문
도했다. 하지만 이렇게 상이한 두 전통을 연결시키고자 한 그의 시도는 과
연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될 수 있을까?
유대-그리스도교 계시와 그리스 철학 전통의 양립가능성 여부는 중세 철
학 해석의 영원한 질문으로 남아 있다.
투 고 일: 2014. 02. 14.
심사완료일: 2014. 02. 17.
게재확정일: 2014. 02. 18.
손은실
장로회신학대학교, 학술연구교수
“원대한 마음과 겸손은 양립가능한가?”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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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 n. 2.
“원대한 마음과 겸손은 양립가능한가?” 29
ABSTRACT
“Is Magnanimity Compatible with Humility?”:
Thirteenth Century Disputations at Paris University regarding the Conflict
between Aristotle's Ethics and Christian Faith
Son, Eunsil
“Is magnanimity compatible with humility?” This is a question that
caused violent disputations during the thirteenth century at Paris
University regarding the conflict between Aristotle’s magnanimity and
Christian humility.
This paper analyses relevant texts written by three professors of Paris
University: Thomas Aquinas, Siger of Brabant, and Bonaventure. It
elucidates the respective positions taken by each author faced with the
conflict between Aristotelian philosophy and Christian faith.
Siger of Brabant, who almost entirely followed Aristotle's philosophy,
identified humility with the Aristotelian virtue of temperance by arguing
that humility is compatible with magnanimity. His opinion about
humility became a target of the condemnation of 1277. Contrary to
Siger, Bonaventure openly criticized Aristotelian magnanimity in light
of Christian humility. Thomas Aquinas’ position differed with Siger of
Brabant and Bonaventure by trying to connect the Christian humility
and Aristotelian magnanimity. Through this, he argued that the two
virtues are compatible.
30 논문
Keywords: Magnanimity, Humility, Aristotle, Thomas Aquinas, Siger
of Brabant, Bonaventure, Latin Averroism, Condemnation
of 12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