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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군사이야기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7/blog.daum.net/bluros

수 양제는 양현감의 반란군을 진압하는데 성공하였으나 두 차례에 걸친 대원정으로 인한 민생의 어려움과 반란군이 일부 잔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양제는 두 차례의 고구려 원정이 실패함으로써 크게 수치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고구려 원정에만 관심을 쏟아 양도와 강남에 각각 10만군의 반란군이 세력을 떨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614년 2월에 고구려 원정론을 내놓았다.


3차 전쟁의 작전계획 역시 수륙협공작전을 전개하였으나, 1·2차전과는 달리 요동성 점령에 중점을 두어 해군이 평양으로 직접 공격하지 않고 우선 요동반도에 상륙하여 육군 작전을 지원한 후 평양을 공격토록 하였다. 수의 육군은 동원정비에 시간을 허비하여 요하를 건너기도 전에 여름 장마철을 맞이하였다. 예상치 못한 장마로 인해 평양에 대한 협공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양제는 회군을 결심하고 그 명분을 찾고 있었다. 사실 고구려 측에서도 해마다 수군을 맞이하여 전 국력을 기울여 싸우다 보니 지쳐있었다. 양제가 3차 원정에 나서자 고구려는 사자를 보내 국왕의 입조를 조건으로 망명해 있던 곡사정을 수나라로 되돌려 보냈다. 이에 양제가 크게 기뻐하며 고구려의 화해요청을 받아들이게 되어 수나라 군대는 회군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