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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야기

박완서 소설에 나타난 ‘주술’과 ‘생존’의 문제(차미령/광주과학기술원)

1. 서론: 박완서 소설의 근대와 주술
2. 주술사와 위반자: 생존의 위협과 주술적 실천
3. 저주받은 자들과 생존: 애도의 양가성과 잠재된 죄의식
4. 결론: 젠더화된 생존과 주술


국문요약
이 연구는 박완서 소설에 나타난 주술의 양상을 생존의 문제와 결부
시켜 고찰한다. 소설에 나타난 주술은 한편으로는 미래의 불안을 생산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살아남고자 하는 인간의 희망을 투사한다. 그 불
안과 희망의 양가성이, 박완서 소설의 생존자가 갖는 의식의 핵심 중 하
나다. 이 문제를 이 논문에서는 두 가지 국면으로 나누어 살펴본다.
먼저 이 글은 도시의 흉년과 <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의 할머니
인물들을 중심으로, 공동체적 불안과 주술적 실천이 어떻게 교차하는지
를 분석함으로써, 상상적(혹은 현실적) 생존의 위협을 구성하고 극복하
는 논리를 탐구한다. 다음으로 이 연구에서는 나목, 목마른 계절,
「엄마의 말뚝」 연작,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등 자전적 성격의
소설들을 대상으로 하여, 오빠’의 상징적 의미를 주술을 매개로 ‘도출하
고, 그 변화 가운데 생존자가 갖는 죄의식의 문제를 검토한다.


* 이 논문은 2016년도 광주과학기술원의 재원인 GRI(GIST 연구원) 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 광주과학기술원 기초교육학부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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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소설에서 전쟁을 비롯한 근대의 문턱은 여성 생존자의 시선에
서 기록된다. 현실적 파국의 상황과 상상적 불안이 겹쳐지는 가운데, 소
설 속 인물들은 독존과 공존, 적의와 죄의식의 지평을 드러낸다. 주변적
질서의 한계와 아울러 살아남기 위해서, 혹은 살아남았기 때문에, 그들
의 행위에는 주술적 차원이 결합한다. 그러므로 그것의 다른 이름은 생
존의 불안과 희망이라 아니할 수 없다.


(주제어: 주술, 생존, 생존 심성, 위반, 양가성, 애도, 터부, 죄의식)


1. 서론: 박완서 소설의 근대와 주술
박완서의 <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과 도시의 흉년에 등장하는
할머니들은 민(民)의 생존과 관련하여 주술의 양가적 측면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구술/전승된 이야기 속에서, 이른바 속설과 미신의 신봉자인
할머니들은 공포의 화신으로 구현되기도 하고, 공존의 화신으로 조명되
기도 한다. 재래적 믿음이 타기당하는 근대의 문턱과 마주한 이 할머니
들에 대한 물음은, 박완서 소설에 나타난 전쟁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진
다. 전쟁의 생존자들은 그들에게 닥쳐온 비극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
가. 나아가 한국의 근대가 반복적으로 회수하고 있는 참척의 고통 속에
서, 박완서 소설이 읽어낸 주술적 염원의 기저에는 무엇이 있는가. 이
연구에서는 주술적인 코드를 매개로 하여 박완서 소설의 근대를 다시
사유하고자 한다.
박완서는 1970년대가 시작되던 해 불혹의 나이로 문단에 등장한다.
근대의 파고와 함께 시작된 작가의 생애시간은 한국 전쟁과 전후의 혼
돈을 거쳐,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 도시화·산업화의 시기를 통과하고 있


박완서 소설에 나타난 ‘주술’과 ‘생존’의 문제 / 차미령 85


었다. 이후 작가는 전쟁이 여전히 생생한 기억으로 동시대인의 마음을
장악하고 있으되(나목, 목마른 계절), 극심한 빈곤을 뒤로 하고 세
속 사회의 욕망들 역시 꿈틀거리기 시작(휘청거리는 오후, 도시의 흉
년)하던 한국 사회를 심도 있게 포착한다. 작가의 데뷔작 나목만 해
도, 모녀로 표상되는 신구세대의 갈등, 전쟁의 공포와 생존의 불안, 상품
시장과 재식민의 문제, 그리고 이를 재구성하는 도시 중산층 주부의 시
선 등이 복합적으로 교차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1931년생 박완서의 작품 활동이 1970년대에 시작되었다는
이 사실에는 단순한 연보적 기록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근대화 프로젝트
에서 대중에게 국가가 ‘저항의 대상’이기 이전에 ‘발전의 주체’로 여겨진
것,1) 대중의 참여와 동원의 메커니즘이 구축된 것,2) 이른바 ‘조국 근대
화’에 유례없는 동원과 참여가 가능했던 것은,3) 한국 근대성의 아이러니
로 지적된 “생존 프레임의 절대적 성격”을 상기하게 한다.4) 망국과 전쟁
의 고통은 ‘5천년 가난’의 극복이라는 수사와 함께, 냉전의 불안과 분단
의 억압과 더불어 끊임없이 재생되었다. 그러므로 이 시기 소설의 실상
을 탐구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한국 근대 생존주의의 역사적 형
성과 그 이면을 더듬어 가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그것이 단일한 실체일 수는 없을 것인데, 박완서 소설에서 살아


1) 황병주, 「박정희 시대의 국가와 ‘민중’」, 당대비평, 생각의 나무, 2000. 9.
2) 근대화 프로젝트에 대한 강압과 동의, 저항과 참여의 복합적인 지형도에 대해서는
논자마다 관점이 상이하다. 하지만 그 양면성(이중성)을 전제한다면, 광범위한 국민
(대중)의 동의 자체를 부인하기는 어렵다. 이에 대해서는, 조희연, 동원된 근대화,
후마니타스, 2010 및 임지현, 「대중독재의 지형도 그리기」, 대중독재: 강제와 동의
의 사이에서, 책세상, 2004 참조.
3) 최장집, 한국의 노동운동과 국가, 열음사, 1988, 11쪽.
4) 김홍중은 ‘생존주의’가 한국의 근대를 ‘생존을 위한 경주’로 구성하게 하는 역사적 규
정력을 갖고 중층적으로 작용했다고 파악한다. 「파우스트 콤플렉스: 아산 정주영을
통해 본 한국 자본주의의 마음」, 사회사상과 문화 18권 2호, 201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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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의 (무)의식은 대체로 한국전쟁을 기원으로 한다고 할 수 있으나,
여성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5) 이데올로기의 차원
이나 계몽적 도덕주의의 차원이 아니라, 여성으로 대표되는 실제적(역
사적) 삶의 차원에서 과거의 경험과 미래의 전략이 어떻게 협상되고 재
구성되는가에 대해서는 해명될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지금 이 글에
서 박완서 소설의 주술적 측면에 주목해 보는 까닭도, 주술이 궁극적으
로는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박완서 소설에서 주술이 주제적으로 탐구된 경우는 지금까지 축적된
연구 성과에 비하자면 매우 드문 편이다. 일반적으로 주술(呪術, magic)
은 “특정한 목적을 위해 초자연적 존재나 힘의 도움을 빌려 여러 가지
현상을 일으키려는 행위 또는 신앙체계”6)를 가리킨다. 인류학 초기의
거장 프레이저가 그의 저작에서 주술을 과학에 견주며 “주술의 치명적
결함”은 “인과적 연쇄를 지배하는 특수한 법칙의 성질을 전면적으로 잘
못 인식”하는 데 있다고 하거나, 주술과 종교를 진화적인 구도에서 이해


5) 그러므로 이 논문은 생존주의라는 문제틀에서 착안한 박완서 소설 연구(차미령, 「생
존과 수치: 1970년대 박완서 소설과 생존주의의 이면(1)」, 한국현대문학연구 47,
한국현대문학회, 2015.)에 연속된 작업 중 하나이다. 박완서 소설에서 생존의 문제성
에 대해서는 이미 연구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으며, 그 관점은 특히 한국전쟁을 배
경으로 한 소설들에서 두드러진다. 즉, 박완서 소설에서는 “먹을거리에 대한 집착”
(배상미, 「박완서 소설을 통해본 한국전쟁기 여성들의 갈망」, 여/성이론 24, 여이
연, 2011.)이 핵심적인 문제로 부상하는 등, “살아남기가 절대적인 과제, 새로운 가
치질서로 등극”(김양선, 「증언의 양식, 생존·성장의 서사 –박완서의 전쟁재현소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중심으로」, 한국문학이론과 비평 15, 한국문학이
론과비평학회, 2002.)하며, “전쟁은 여성을 생존의 주체”(김은하, 「애증 속의 공생, 우
울증적 모녀관계 –박완서의 나목론」, 여성과 사회 15, 한국여성연구소, 2004.)
로 거듭나게 한다.
6)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 황금가지 1권, 박규태 역, 을유문화사, 2005, 69쪽, 역주 13.
박규태에 따르면, ‘magic’이라는 용어는 사제 혹은 주술사를 나타내는 고대 페르시아
어 ‘magus’에서 유래한 말이다. 프레이저는 그러나, 주술을 미신과 동일시했으며, 초
자연적 존재나 힘의 요소는 종교와 연관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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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주술에서 종교로의 위대한 전향”을 거론하고 있는 것처럼 오랫동
안 주술은 과학의 미달태(사실이 아닌 ‘미신’)이거나 종교의 미달태(가
령, 무교가 아닌 ‘무속’)로 이해되어 왔다.7)
하지만 흥미롭게도 다른 한편으로 주술과 근대의 관계는, 그것이 처
음 주목되던 시점에서부터 이미 발전론이 전제된 이분법적 대립에 균열
이 일고 있기도 했다. 모든 사물은 “계산을 통해 지배될 수 있다”8)고
지적하며 근대를 ‘탈주술화’라는 개념으로 요약했던 베버가, 외적 재화
의 힘을 “쇠우리”에 비유하고 “정신 없는 전문인, 가슴 없는 향락인”을
비판하며 정신의 ‘재주술화’ 기획을 내비쳤던 것은 상징적이다.9) 또한
주술을 근대성 안에 있는, 지역적이고 지구적인 차원에서 근대 사회를
구성하는 한 요소로 접근한 최근의 연구 역시 시사하는 바가 없지 않
다.10) 그와 같은 맥락에서 보자면, 무교(무속)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
인 ‘역현(力顯, kratophany)’에 대한 다음과 같은 지적은 충분히 음미
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7)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 황금가지 1권, 박규태 역, 을유문화사, 2005, 150-173쪽.
짐작되다시피, 주술이 근대 이전 혹은 바깥이라는, 근대와의 대립지점에서 사유된 것
은 비단 그것이 극복되어야 할 대상으로 공격될 때만은 아니었다. 여기서 지금까지
한국문학 연구에서 주술이 논의되어 온 방향을 짧게 상기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예컨대, 서정주와 백석의 시나, 김동리와 황순원의 소설 등을 중심으로 주술
적 상상력을 탐사한 연구들은, 많은 부분 반근대적 정신이나 탈근대적 미학을 해명
하는 데 주력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한 가치판단이 어느 쪽으로 기
울어지건, ‘비합리성’, ‘원시성’, ‘토속성’, 혹은 ‘초월성’, ‘신비로움’, ‘민족 정서’만이 한
국의 근대와 주술이 접하는 유일한 실상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8) 막스 베버, 직업으로서의 학문, 전성우 역, 나남, 2006, 45-46쪽.
9) 막스 베버,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김덕영 역, 길, 2010, 365-367
쪽. 베버는 이 대목에서 “전혀 새로운 예언자들”의 부활을 조심스럽게 논하고 있다.
이에 대한 최근의 논평으로는 장진범, 「자본주의와 주술(화)의 관계: 막스 베버와 발
터 벤야민을 중심으로」, 진보평론 64, 2015 참조.
10) Brigit Meyer & Peter Pels, Magic and Modernity: Interfaces of Revelation and Concealment,
California: Stanford Univ. Press,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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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적 종교’와 ‘성현적 종교’에 이어 ‘역현적 종교’를 다루며, 정진홍
은 역현적 종교를 “삶의 실존적 한계 상황을 직면하면서 경험한 좌절과
무의미, 고통과 갈등 등을 극복할 뿐만 아니라 그 한계를 초월한다고 믿
어지는 어떤 절대적인 힘에 대한 의존과 희구, 그 힘에의 예속과 그 힘
의 위무를 통하여 현실적인 미완이나 부족, 한계나 좌절의 극복을 의도
하는 경험 내용을 지니는 종교양태”를 유형화한 것으로 파악한다.11) 이
때 주목해야 할 대목은 역현의 기저에 다른 종교적 양태와는 달리 ‘현실
적인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도’가 내재되어 있다는 지적이다. 다시
말해, 주술의 효과에 대한 믿음은, 추상적인 가치나 내세의 삶의 추구보
다는 현실지향적인 성격을 강하게 드러낸다.12) 지금 이 글에서 관심을
가지는 것은, 흔히 연상되어온 주술의 초월성이나 비현실성이 아니라,
바로 그 현실성이다. 주술을 합리성의 차원이 아니라, 한계에 도달한 인
간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한 하나의 방편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한
다면, 주술적 실천의 검토를 통해 우리는 인간이 직면한 문제와 그것이
낳는 불안과 공포, 혹은 그를 통해 드러나는 희망과 욕망의 내용에 대해
탐구할 가능성을 얻게 된다.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에서, 이 연구는 박완서 소설을 두 가지 국면으
로 나누어 살펴보려 한다. 먼저 도시의 흉년과 <그 살벌했던 날의 할
미꽃>의 할머니 캐릭터들을 중심으로, 공동체적 불안과 주술적 실천의
관계를 분석함으로써, 생존의 위협을 구성하는 논리와 극복하는 양상을


11) 정진홍, 종교문화의 이해, 청년사, 2000, 179쪽.
12) 권용란 「주술 개념 형성에 관한 연구: 근대 이후 서구를 중심으로」, 역사민속학
13, 한국역사민속학회, 2001, 84-85쪽. 권용란은 “주술은 현실에서 인간이 처한 삶의
문제나 고통들에 즉각적인 해결을 가져올 수 있다는 효과가 먼 미래가 아닌 지금 이
순간에 나타날 것을 기대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그러한 점에서 “주술행위는 사람들
의 욕구와 희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서술한다.
박완서 소설에 나타난 ‘주술’과 ‘생존’의 문제 / 차미령 89


탐구해 볼 것이다. 다음으로는, 나목, 목마른 계절, 「엄마의 말뚝」
연작,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등 자전적 성격의 소설에 주목하여,
그 주술적 요소를 탐구함으로써 생존자의 (무)의식을 추출해 보고자 한
다. 살아남기 위해서, 혹은 살아남았기 때문에, 소설 속 인간의 사고와
행위에는 주술적 차원이 결합한다. 이제 그들을 해원을 갈구하는 희생
자가 아닌 ‘생존자’로 다시 호명하여, 그가 역경 속에서 스스로의 생존을
어떻게 맥락화하는지를 검토해 보기로 한다.


2. 주술사와 위반자: 생존의 위협과 주술적 실천
박완서 소설에서 주술은 근대적 이성이 타파해야 할 그릇된 신념인
동시에, 근대가 폭력적으로 개시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편으로
그려진다. 주술의 이러한 양가적 측면을 잘 보여주는 박완서 소설 속 인
물이 바로 ‘할머니(노파)’이다.13) 이 장에서 검토해 볼 도시의 흉년과
<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에는 두 명씩 모두 네 명의 할머니가 등장한
다. 도시의 흉년의 할머니와 대고모할머니, <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
꽃>의 두 노파가 그들이다.
할머니도 이 경기, 경기……의 우렁찬 합창의 한 파트를 담당했던 것은 말할


13) 할머니는 노인이라는 점에서 전근대적 삶의 습속의 자장 아래 있으며(세대), 동시에
여성이라는 점에서 가정 공동체 내부의 일상적 현실에도 연루되어 있다(젠더). 바로
그런 연유로 흥미로운 장면들을 연출하는 인물군이지만, 박완서 소설 연구에서 후기
소설이 ‘노년성’을 중심으로 장르적(노년문학)으로 범주화되면서, 그 문제성이 시기
적으로 고정되고 있는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가부장적 억압의 표상이기도 하고, 역
설적 위반의 주체이기도 한 할머니들에 대해서 박완서 소설은 시기에 구애됨 없이
풍부한 생각거리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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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도 없다. 할머니는 주로 수빈이 명다리를 바친 무당집과 절을 번갈아 출입하면
서 경기, 경기, 경기……를 엄숙하게 기원했다.
할머니뿐 아니라 엄마의 친구들은 하나같이 점치기를 좋아하는 버릇들이 있어
서 어디 용한 점쟁이만 났다하면 우르르 불원천리 달려갔다. 입시철이 가까워지자
특히 학교점에 도사라는 점쟁이가 여기저기 나타나서 그녀들을 동분서주케 했다.
수빈이가 마침내 경기중학에 시험 보러 가는 날 아침 온 집안엔 귀기마저 감돌
았다. 무당이 가르쳐준 예방과 사위를 할머니가 엄숙하게 지휘했다. 그 사이사이
나무관세음을 웅얼거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14)
도시의 흉년에서 주술적 행위는 대개 가정 내의 여성의 일로, 다
분히 젠더화된 장치로써 소환된다. 근대적 공간과 전근대적 시간관을
결합시킨 제목이 말해주듯이, 소설의 많은 부분은 도시 중산층의 일상
을 구성하고 있는 불합리한 열정을 폭로하는 데 할애되고 있다. 가령,
소설에서 여성들이 주도하는 주술적 행위가 요구되는 국면 중 하나는,
당시의 교육열을 배경으로 수빈이 치열한 경쟁을 통과해야 할 때이다.
“경기, 경기, 경기……”라는 주문에서 엿보이듯이 이 장면의 주술적 코
드는, 일류중고의 입시 실패로 표상되는 계급의 불안을 형상화하는 동
시에 그 불안을 무마하는 장치로 도입된다. 할머니는 손자 수빈이 인생
의 관문을 통과할 때마다, 그리고 사사로운 일에 있어서도, “부적의 영
험”에 의지한다. “어디 용한 점쟁이만 났다하면 우르르 불원처리” 하는
점복(占卜)등의 행위는, 엄마와 엄마의 친구들 사이에서 만연해 있기도
하다.15)


14) 박완서, 도시의 흉년 (상): 박완서 소설전집 2, 세계사, 2011, 71쪽.
15) 박정희 정권 시기에, ‘새마을운동’을 ‘제 2차 미신타파운동’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다양한 형태의 마을신앙, 민간신앙, 민속신앙이 탄압받았으며, 특히 “도시주거지에서
굿을 비롯한 무속 의례는 거의 완벽하게 축출되었다.” (강인철, 저항과 투항- 군사
정권들과 종교, 한신대학교 출판부, 2013.)고 논의된 바 있다. 그러므로 굿과 점술
에 경도된 도시의 흉년 속 장면들은, 그럼에도 잔존해 있는 무속의 대중적 영향력
을 생각게 하는 한편, 그 비판적 묘사 속에 사회적인 계몽의 분위기가 용해되어 있음
박완서 소설에 나타난 ‘주술’과 ‘생존’의 문제 / 차미령 91


그리고 위 인용문에서도 드러나듯이, 소설 속 지씨 일가에서 행해지
는 주술적 행위의 핵심에는 누구보다 서술자 수연의 할머니가 있다. 할
머니는 굿이나 부적 등을 통해 자신이 기원하는 것을 성취하려 하기도
하고, 예견되는 재앙을 방어(除厄)하려 하기도 한다. 서술자 수연의 관
찰에 따르면 영험을 간절히 기구하고 신뢰하는 까닭에, 집안 전체에는
“귀기”가 돌고 종국에는 할머니 “그녀 자신이 무당이 돼버리고 만다.” 바
꿔 말해, 위기의 순간마다 필요한 힘을 호출하는 할머니는, 손녀 수연이
보기에는 집안의 주술사에 다름없다. 아울러 수연은 그런 할머니의 모
습에서 ‘사명감’, ‘엄숙함’, ‘존대함’ 등을 포착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할
머니는 그녀를 지배하고 있는 주술적 질서의 능동적 수행자로, 스스로
는 가족이라는 공동운명체의 안녕을 위하여 주술적 실천을 행한다고 믿
고 있다.
미래를 자신의 바람대로 성취하기 위한 할머니의 주술적 신념은 그러
나, 지씨 가족을 구속하는 불안과 공포의 근원이기도 하다. 비성년에서
성년으로의 이행기를 통과해야 할 남매의 애정은 ‘남매쌍둥이는 상피붙
는다(근친상간)’는 할머니의 믿음에 의해 부자연스럽게 위축된다. 소설
첫 장(章)의 제목은 ‘악몽’으로, 철저한 보호의 대상인 오빠 수빈 역시 그
악몽에서 예외일 수 없다. 이러한 억압 속에서 수빈이 자신의 불안과 맞
서 싸우는 방법은 “미신”을 검증하는 것이다. 주술을 (유사)종교가 아니
라 (유사)과학의 테두리에서 사고한다면, 그 유효성은 실제 결과로써 간
단히 판명될 것이다. 수빈은 나름의 조사 끝에 “상피붙은 남매쌍둥이는
한 건도 없었”다고 확인하지만, “불가항력적인 힘”이 두려워 매매를 통


이 추론된다. 이로써 짚이는 점은 주술에 대한 인식 자체가 양면적이라는 점인데, 이
를 가령 주술에 대한 박정희의 이중적 태도도 견주어 볼 수 있다. 강인철의 연구에
따르면, 박정희는 무속과 마을신앙을 억압하고 몰아내는 데 진력했지만, 주요한 정치
적 결정을 앞두고는 종종 점술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27쪽).
92 대중서사연구 제22권 3호


해 첫 성경험을 감행함으로써 저주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할머니가 예
고한 운명의 전조에 맞서 “액땜의 의식”을 의도하는 소설 속 또다른 인
물은 수연이다.
나는 어차피 불륜을 저지르게 돼 있다. 나는 애물이다. 불륜을 피할 수 없는
게 내 운명이다.
그렇지만 이건 상피붙는 건 아니다. 그것만으로도 어디냐? 아아, 조그만 불륜
으로 큰 불륜을 때울 수 있었으면!
나는 무슨 액땜의 의식처럼 불륜을 거행할 태세를 취했다.16)
호감을 품고 있었던 구주현이 아니라, 언니와 결혼을 앞둔 서재호에
게 자신을 방기하는 위의 대목에서 수연의 선택은 제액의 일환처럼 장
면화된다.17) 이러한 수연의 시도는 할머니의 저주를 되쓰기한 것에 가
까운데, 수연은 소설의 한 대목에서 스스로를 “격리당하는 전염병자”로
진술한다. 할머니가 “살이나 액”을 예방하기 위해, 지씨 일가로부터 가
장 먼저 차단해야 할 살아 있는 금기가 바로 수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할머니를 중심으로 한 이 중산층 가정의 주술적 면면이 “당장 엎어놓고


16) 박완서, 도시의 흉년 (상): 박완서 소설전집 2, 세계사, 2011, 343쪽.
17) 수연은 할머니의 살의에 맞서, 오히려 그 살의로 인해 “내 생명이 미치도록 사랑스럽
고 자랑스러워지는 것”(174쪽)을 느끼기도 하는데, 그녀가 생명을 확인하게끔 매혹하
는 인물이 구주현이다. 그러니 이 소설에서 수연이 생명을 발견하는 과정 역시 공평
하게 지적해 두어야겠다. 소설에서 인물에의 해방의 욕망 역시, 주술적 행위가 가진
미혹의 세계 속에서, 구주현의 봉산탈춤 등을 통해 모색된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그
녀는 구주현과 함께 추는 춤에서 해방감을 느끼며, 탈을 쓴 구주현의 춤사위를 도깨
비에 홀리는 것으로 부연한다. “저 탈에 무슨 주술이 걸려 있어 탈바가지만 뒤집어쓰
면 저절로 춤이 나오는 줄 았았거든”이라는 ‘나’의 말은, 주술적 환경에서 성장한 그
녀답게 구사하는 농담이지만, 그녀가 주술에서 공포, 불안, 금지의 측면 뿐 아니라,
해방적 기능을 탐색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러주는 것이기도 하다. 수연 아버지의 병
신춤이나 대학가의 탈춤 등, 소설의 ‘춤’의 의미에 대해서는 70년대 후반의 문화적 풍
경에 대한 탐구와 더불어 논의가 진전될 대목이다.
박완서 소설에 나타난 ‘주술’과 ‘생존’의 문제 / 차미령 93


질식사당하는 것은 어찌어찌 면”한 생존자 수연의 눈에 의해 포착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수연은 남매쌍둥이로 태어났지만, 근친상간의 속설
을 내세우는 할머니로 인해 엄마 품에서 버려졌으며, 다시 집으로 귀환
하기까지 이모의 손에서 양육되었다. 소설이 폭로하는 은폐된 사실 중
하나는 할머니의 주술적 세계가 ‘여아 살해’ 욕망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
실이다.18)
영감님은 기차를 타면 귀가 먹고, 전기불을 보면 청맹과니가 된다는 걸 믿는
것처럼 남매쌍둥이는 상피붙고, 남매쌍둥이를 낳은 부모는 누구나 그 자리에서
계집애를 엎어죽인다는 걸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그러니 이 노릇을 어쩌면 좋소?”
마나님도 여태껏 막연하던 두려움이 확실해지면서 구체적인 대책이 급해졌다.
그 대책이 아무리 모진 거라도 망설일 게 없다는 용기 같은 것도 생겼다.
“당장 가서 그 계집앨 엎어죽이든지 하라고 해, 당장.”19)
장편인 도시의 흉년에서 할머니와 대고모할머니의 과거사는, 결말
에 이르러 ‘파국’의 장(章)에서 삽입텍스트로 짤막하게 제시된다. 하지만
그녀들의 숨은 사연은, 수연의 가족사의 기원에 해당하는 이야기로써
전체 플롯의 주술적 코드를 완성한다. 전설적 상상력으로 충만한 삽입
텍스트에서, 박완서는 바로 그 운명의 주인공을 호출한다. 종가의 첫 손


18) 소설 속 남매 쌍둥이 속설과 오이디푸스 신화의 유사성(김은경, 「박완서 소설에 나타
난 가부장제 이데올로기 비판 양상-「도시의 흉년」을 중심으로」, 국어국문학 155,
국어국문학회, 2010)이나 그에 내재된 가부장제 여성 억압 규율(정혜경의 「1970년대
박완서 장편소설에 나타난 ‘양옥집’ 표상- 휘청거리는 오후와 도시의 흉년을 중
심으로」, 대중서사연구 17(1), 대중서사학회, 2011)은 지적된 바 있다. 그런데 소설
속 근친상간 모티프가, 오이디푸스신화에서 프로이트가 부친 살해 욕망을 읽어낸 것
과 상동적이라면, 남녀쌍둥이 속설이 감추고 있는 경악할 진실은, 남아 선호 사상이
라기보다는 여아 살해 욕망이다. 실제로 소설 속에서 대고모 할머니와 수연은, 태어
나자마자 가해진 살해의 위협 속에서 문자 그대로 생존한다.
19) 박완서, 도시의 흉년 (하): 박완서 소설전집 3, 세계사, 2011, 301쪽.
94 대중서사연구 제22권 3호


자가 남매쌍둥이로 태어나자 시부모는 여아를 죽일 것을 명했지만, 도
저히 딸을 죽일 수 없었던 며느리는 “친척집 개구멍받이(자식이 없는 집
에서 “삼신할머니”를 끌어들이기 위해 들이는 양녀)”로 딸을 몰래 들여
보내고 내내 죄책감에 괴로워한다. 대고모할머니는 놀랍게도, 자신과
수연의 할아버지가 바로 그 쌍둥이남매였다는 사실을 수연에게 알려준
다. 과거 할머니는 대고모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정사 장면을 목격했으며,
할아버지는 자신과 대고모할머니가 실은 남매였다는 사실을 알고 자살
한다.
충격적인 진실이 밝혀지면서 사랑하는 이를 상실한 두 여성(할머니,
대고모할머니)이 긴 시간을 경과한 후 드러낸 현재의 태도는, 과거의 실
패를 다시 반복하지 않으려 한다는 측면에서는 유사하다. 두 여성 모두,
‘개구멍받이’와 ‘민며느리’로, 일찍부터 혈연에서 분리되어 이식된 가계
의 노동을 담당하고 있었다는 배경도 공통적이다. 전근대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시점의 폐쇄적인 시골마을은, 그 마을이 집성촌이라는 사실이
일러주듯이 남성적 질서의 전일적 지배 아래 구성되었다. 그러나 사건
으로 인해 가족이 해체된 후, 두 할머니의 현재는 주술적 신념을 강화하
거나 반대로 그것을 부정하는 두 가지 상이한 태도를 함축하게 된다. 주
술적 실천의 근간이 되는 이데올로기 비판의 맥락에서 보자면, 작품의
주제의식이 후자에 기울어져 있음은 물론이다. 자신에게 닥친 비극을
운명으로 풀이했던 할머니와는 달리, 대고모할머니는 그것이 출생의 진
실, 다시 말해 ‘앎’으로부터 차단되었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폭로하고 있
기 때문이다.20) 따라서 소설은 결말에 이르러 맹목적으로 주술에 의지


20) 작가가 대고모할머니의 증언을 소설의 후반부에 이르러 삽입한 이유는 비교적 분명
해 보인다. 우발적인 사건으로 인해 집안사람들에게 근친상간의 의혹을 받고 궁지에
몰린 수연에게, 대고모할머니는 다음과 같이 환기한다. “어른들이 우리를 남매로만
키웠던들 우린 결코 그런 죄는 짓지 않았을 게야.”(박완서, 도시의 흉년 (하): 박완서
박완서 소설에 나타난 ‘주술’과 ‘생존’의 문제 / 차미령 95


하게 된 배경의 고통(할머니)에 주목하는 한편으로, 전체적인 플롯의 측
면에서 볼 때 탈마법화(대고모할머니)의 의도를 강하게 표방한다.
이에 비해, 생존의 위협과 주술적 실천 그리고 할머니라는 캐릭터로
구성되었으되, 좀더 흥미로운 양상을 보여주는 소설이 <그 살벌했던 날
의 할미꽃>이다. 씨족 마을이 외부 세계의 틈입과 함께 변화의 기로에
서게 된다는 설정은, 앞서 살펴본 도시의 흉년에서 두 할머니의 과거
배경과 흡사하다. 하지만 <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에서 두 가지 내화
를 논평하는 외화의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두 이야기 속 노파들의 공통
점이다. 주술의 축과 위반의 축을 분할하고 있는 도시의 흉년의 이야
기 구조와는 달리, <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은 이 경계를 모호하게 만
드는 지점에 집중한다.
소설 속 두 이야기는 “어느 친구한테 들은 실제로 있었던 노파들 이야
기”로 갈무리되는데, 먼저 첫 이야기에서 펼쳐지는 것은 달래마을 여성
들이 겪은 전쟁의 기억이다. 서술자의 중개에 따르면, 마을은 “달래봉
산제당에 모신 산신령의 영검”으로 인해 실전과 폭격 등의 직접적인 피
해는 입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명 피해가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다. 마을에서 “서로 모함하고 싶고 죽이고 싶은 충동”은 분교건물에
서 시작되는바, 분교건물의 주인은 국군과 인민군으로 바뀌다가 이제는
“양코배기”가 차지하게 된다.
소설의 도입부에서 암시된 주술적 세계관(‘산신령’)과 국가이데올로
기(‘분교건물’)에 이어, 마을 전체를 규율하는 실질적 규범으로서의 유교
적 (성)도덕이 부상하면서, 변동기의 공동체를 가로지르며 중첩/경합하
는 세 축은 완성된다. 미군들이 “양색시”를 찾는 기색이 포착된 순간, 전


소설전집 3, 세계사, 2011, 305쪽) 이 진술에는 저주를 믿고 그것을 피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바로 그 저주를 완성시켰다는 인식이 드러나 있다.
96 대중서사연구 제22권 3호


쟁으로 인해 여성만 남은 마을은 “공포의 도가니”로 변한다. 소설 속 여
성 공동체는 미군에 대한 경험적 지식을 축적하고 있지 않지만, 전쟁이
라는 현실적 재난의 상황 속에서 여성들의 불안은 극에 달한다. 남편이
의용군인 새댁이든, 약혼자가 국군에 있는 손녀든, “대들보”에 목을 매건
“우물”에 빠져 죽건 “너도 나도 죽겠다”고 나선 것이다. “남자는 대를 이
어야 하는 고로 여자보다 귀한 몸이고, 귀한 몸을 보다 안전하게 하는
게 여자들의 도리”였다는 진술에서 알 수 있듯이, ‘도리’에 관한 한 유교
적 신앙은 전쟁 중에도 굳건하다. 그 신앙을 위반하는 순간 “화냥년”으
로 지목되고 공동체에서 배제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남자들은 돼지를 잡고 여자들은 시루떡을 쪘다. 여자들의 일의 총지휘는 늘 이
제일 나이 많은 노파가 맡았더랬었다.
노파는 다달이 있는 부정중이거나, 간밤에 서방을 가까이한 젊은 계집들을 족
집게처럼 집어내어 멀리 물리치고 그 일을 했었다.
그때 노파는 앞으로 일 년간의 마을의 길흉화복이 오직 자기 한 몸에 달렸다는
듯이 몸 전체로 거역할 수 없는 위엄을 풍겼더랬었다.
지금 노파를 둘러싼 아낙네들은 그때와 똑같은 위엄으로 당돌하게 빛나는 노
파를 똑똑히 본다. 그리고 숙연해진다.21)
서술자작가는,
노파가 스스로 젊은 여성으로 변장하고 미군들의 집
결지로 가겠다고 선포하는 장면과 마을에서 산신제를 지내는 과거를 병
치시킨다. 과거, 소위 부정한 것들을 의식에서 제외시키는 등, 노파는
산신제를 준비하며 마을 여자들의 일을 총괄했다. 그리고 노파는 “마을
의 길흉화복이 오직 자기 한 몸에 달렸다는 듯” 행동했던 “그때와 똑같
은 위엄”으로, 자신이 미군들에게 가겠다고 말한다. 한편, 두 번째 이야


21) 박완서, <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 배반의 여름: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 2, 문학동
네, 1999, 292쪽.
박완서 소설에 나타난 ‘주술’과 ‘생존’의 문제 / 차미령 97


기에서도 또다른 노파가 행하는 결단이 제시된다. 역시 전쟁의 상황에
서, “적의 총알은 숫총각을 좋아한다”는 풍문이 돌아 부대가 불안에 물
든다. 김일병이 찾아간 마을, 제일 작고 초라한 집에서 그는 한 노파와
만난다. 노파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김일병이 “부대 내의 미신”을 토로
하자 노파는 근심에 휩싸인다.
“총각, 총각을 면하고 가고 싶잖우?”
“네?”
“미신이건 뜬소문이건 좋다는 거야 왜 못하우. 목숨은 중한 거라우. 더군다나
기다리는 아가씨까지 있다며.”
“그야 할수만 있다면야 왜 못하겠어요. 없으니까 못하죠.”
“할 수 있어. 내가 면하게 해주지.”
“네?”
김일병은 질겁을 한다.
“왜 그렇게 놀라우. 놀랄 거 없어요. 자아, 불을 끕시다. 난 아직 정정하다우.”22)
종합해 볼 때, 두 이야기는 두 가지 동일한 계기를 함축하고 있다. 우
선, 두 이야기 모두 위기국면을 유사하게 구성하고 있다. 노파의 화장한
얼굴이 마을 여자들을 섬뜩하게 하는 것(첫번째 이야기)이나, 노파의 제
안에 김일병이 질겁을 하는 것(두번째 이야기)을 보라. 탈성화된 존재로
오인되는 노인여성이 육체적 교섭의 대상이 되어, 일상적 풍속을 거스
르고 있다는 점은, 소설의 주술적 행위가 오히려 그 행위의 토대가 된
신념을 위반하는 행위로 전환하는 중요한 지점이다.23)


22) 박완서, <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 배반의 여름: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 2, 문학동
네, 1999, 299쪽.
23) 소설 속 노파의 화장과 육체에 대해서는 ‘그로테스크 바디’라는 측면에서 논의된 바
있다. 차미령, 「고통은 어떻게 문학이 되는가」, 대범한 밥상: 박완서 대표중단편선
(해설), 문학동네, 2014, 409-410쪽. 이 글의 초점과는 거리가 있지만 전쟁기 여성의
육체가 상상되는 방식을 비롯해서, 가부장적 상징/상상체계 안에서 여성의 서사가
98 대중서사연구 제22권 3호


그렇다면 어떻게 그러한 위반이 가능해졌는가가 살펴져야할 문제인
데, <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은 생존의 위협이 주술을 경유하면서 어
떤 형태로 재구성되는지를 확인하게 해준다. 주지하다시피, 첫 이야기
의 산신제는 특정한 목적을 위해 초자연적 존재의 힘을 빌리는 전형적
인 주술적 행위이다. 프레이저가 주술사를 단순히 개인을 넘어서서 공
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일종의 공무원’이라 본 이유는, 주술이 공동사회
전체의 안녕과 복리를 위해 행해지기 때문이었다.24) 아울러 이어지는
두 번째 이야기에서 노파는 김일병이 직면한 상상적 위협에서 자신의
아들의 처지를 읽어내고 있다. “저런, 내 아들도 숫총각일텐데. 아무렴
숫총각이고말고.”(298쪽) 멀리 떨어진 사람들 사이의 공감적 관계가 염
원으로 깊어지는 상황은 무엇보다 전쟁 상황에서이다.25) 입대한 아들과
노파 사이의 공감적 관계는, 생존의 위기에 노출된 다른 청년에게로 이


어떻게 접합하고 또 어떻게 이탈하는지에 대해서는 다른 자리에서 검토할 기회가 있
으리라 생각한다.
24)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 황금가지 1권, 박규태 역, 을유문화사, 2005, 132쪽. 소설
속 노파를 만신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그것을 참조하여 그녀의 행위를 탐구할 수는
있다. 가령, 로렐 켄달은 한국의 여성 만신들을 탐구하며, 그들이 여성임에도 수동적
인 영매가 아니라 완벽한 샤먼으로 인식된 것은 여성 만신이 행하는 일들이 가족이
나 마을의 사회적/도덕적 질서를 지지하는 것과 관련되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로렐 켄달, 무당, 여성, 신령들–1970년대 한국 여성의 의례적 실천, 김성례·김동
규 역, 일조각, 2016.) 그러므로 이 소설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공동체의 붕괴를 막기
위한 노파의 수행이 바로 그 질서의 위반에까지 이르는 데 있다.
25) 프레이저는 황금가지에서 집에 있는 친족들이 전쟁에 나간 사람들을 위해 기울이
는 다양한 노력들을 보고하며, 멀리 떨어진 사람이나 사물 사이에도 공감주술의 영
향력이 작용한다고 여기는 것이야말로 주술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프레이저가 기술
하는, 동종주술과 모방주술의 기본적인 원리는 ‘유사가 유사를 낳는’ 것이다. 예를 들
어, 적을 상해하거나 죽이고 싶을 때 적과 닮은 모형을 만들어 상해하거나 파괴하는
행위, 혹은 아이를 갖고 싶은 여자가 자식이 많은 남자를 초대하여 기도를 부탁하는
행위 등, 수많은 사례들은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결과를 모방하는 주술이다. 감염주술
과 더불어 프레이저는 모방주술을 공감주술로 분류한다.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 황
금가지 1권, 박규태 역, 을유문화사, 2005, 70-118쪽.
박완서 소설에 나타난 ‘주술’과 ‘생존’의 문제 / 차미령 99


입된다. 말하자면, 미신과 풍문이 형성한 상상적 불안 앞에서, 노파들은
한편으로는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과 미래세대에 대한 연민으로써, 다른
한편으로는 동종주술(모방주술)로써 재래적 질서에 대한 수행(/위반)을
감행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 장에서 살펴 본 도시의 흉년과 <그 살벌했던 할미꽃>
에서는, 현실적인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은 믿음을 중심으로 할머니
(노파)들의 세계는 구성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믿음에 충실하려
는 그녀들의 행위는, 다음 세대의 불신과 공포 혹은 경외를 낳으며, 이
성에 의해 자성되거나 혹은 주어진 도덕의 경계를 넘는 결과를 발생시
킨다. 박완서는 도시의 흉년과 <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을 통해 주
술이 뿌리내리고, 작동하고, 또 효과를 발생시키는 차원들을 탐구하고
있으며, 그 문제 구성의 중심에는 가족과 공동체의 생존이 걸려 있다.
그러면 이제 그 다음 세대, 어머니와 딸의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그 역
시 생존자 이야기이다.


3. 저주받은 자들과 생존: 애도의 양가성과 잠재된 죄의식
한국 전쟁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두 장편 나목과 목마른 계
절에서, 인물의 희망(피난, 은신)과 현실(잔류, 발각) 사이의 긴장은 흉
조에 의해 점화된다. 목마른 계절에서 “이제 곧 액신이 넘겨다 볼 차
례”라는 하진의 예감대로, 도강을 갈구하는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도민
증이 아니라 오빠의 관통상이다. “왔구나! 액신이”라는 탄식에 이어, 그
녀의 집을 방문한 이는 오발사고로 인한 오빠의 부상 소식을 가지고 온
다. 나목은 또 어떤가. 두 오빠의 은신처를 궁리하던 이경은 “심술궂
100 대중서사연구 제22권 3호
은 액신의 눈에 띌 것” 같아 오빠들의 거처와 숙부 부자의 거처를 바꾼
다. 액신을 의식한 그녀의 행동은 그러나 오빠들에게 참혹한 결과로 이
어진다.
이와 같이 나목과 목마른 계절에서 오빠(들)에게 일어날 사건은,
액신에 대한 동생의 예감과 함께 진술된다. 그리고 두 소설 모두에서 거
론된 “액신(厄神)”의 시선은 단순히 관습적 수사에 그치지 않아서, 그것
은 짧은 기대에 아랑곳없이, 인물의 마음속에 미래의 지평이 끊어져 있
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인물에게 그것은 자신이 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를 서술하는 하나의 설명 원리가 된다. 나목의 이경의 진술을
빌리면, “눈먼 악마”이자 “무자비한 액신”은 단지 그들 가족을 ‘먼저’ 발
견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녀가 자신의 가족을 액신이 희생자로 삼기 쉬
운 사람으로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들 가족이 공동체로부터 예외
적인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은 동일한 사태를 가리키고 있다.
소설에 따르면, 전쟁은 지옥을 세상에 선사한다. 하지만 지옥의 저주
가 그 재앙의 끝은 아니다. 목마른 계절에서 전쟁으로 파괴된 인적 없
는 도시에서, 하진은 자신의 가족들을 “지옥으로 가는 축에서조차 따돌
림을 당한 저주받은 족속”이라 규정한다. 인물이 자신의 가족을 저주받
은 자들로 생각하는 것은, 주술적 측면에서 터부(taboo)가 사회적 일탈
자에게 가하는 제재의 기능을 포괄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사고될 필요가
있다. 박완서 소설의 오빠(의 죽음)에 대해서 탐구되어야 할 지점이 바
로 여기다.
「엄마의 말뚝」 연작은 박완서 소설에서 오빠의 죽음이 서사화된 사례
들 중 하나다. 연작 중 「엄마의 말뚝 2」는 모성의 초자연적 힘에 대한
서술로 시작한다. “여지껏 우리 집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불상사는 하나
같이 내가 집을 비운 사이에 일어났다고 나는 믿고 있다.”26) 물론 서술


박완서 소설에 나타난 ‘주술’과 ‘생존’의 문제 / 차미령 101


자 ‘나’는 그러한 힘에 대한 가정이 실은 자신의 죄책감에서 기인하고 있
다는 생각을 동시에 갖고 있다. 하지만 ‘나’는 불길한 것의 감지 능력을
“영험”으로 서술하며, “어떤 초월적 힘의 작용”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폐
기하지는 않는다. 그런 그녀에게 있어 모성의 초월적 힘은, 자신이 목도
한 어머니의 모습과 결부되어 있다. 「엄마의 말뚝」 연작에서 어머니는
어떤 존재인가.
「엄마의 말뚝」 연작에서 ‘나’의 어머니는 아들과 딸을 무지로부터 해
방시키고자 한 사람이다. 아버지가 복통을 호소하자, 어머니와 할머니
가 달려간 곳은 무당집이었고, 무꾸리 후 굿날만 받아놓아도 차도가 있
을 거라는 무당의 말을 믿고 그녀들이 돌아왔을 때, 이미 아버지는 숨을
거둔 후였다. 의례적 구명과 의학적 치료를 대립시킨 이 삽화는, 로렐
켄달이 같은 현상을 두고 거론한 ‘이것 혹은 저것(either/or)’이라는 이분
법을 상기하게 한다.27) 켄달은 선교사들의 시기부터 박정희 시대의 농
촌개혁운동에 이르기까지 한국 지식인들이 ‘무당’과 ‘의사’를 비교해 왔
음을 환기하며, 무당은 미신의 영역에 속하며 자원을 낭비하는 존재로,
의사는 근대 영역에 속하며 치료를 담당하는 존재로 인식되었다고 지적
한다.28)


26) 박완서, 「엄마의 말뚝 2」, 엄마의 말뚝: 박완서 소설전집11, 세계사, 2012, 83쪽.
27) 로렐 켄달, 무당, 여성, 신령들–1970년대 한국 여성의 의례적 실천, 김성례·김동
규 역, 일조각, 2016, 8쪽.
28) 말하자면, 「엄마의 말뚝1」에서 가족사의 첫 비극은, 무당이 의술과 사제의 역할을
겸하고 있었던 미분화 사회의 불상사 중 하나로 소묘된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일련
의 실제적 주술 행위가 성인 남성 지식층을 배제하고 있다는 점을 짚어 두기로 하자.
가령, 할아버지는 “요년, 요 고얀년, 신식 공분지 뭔지 시킨다길래 대처로 내놓았더니
기껏 배웠다는 게 덕물산 무당의 작두춤이냐 뭐냐? 허어 해괴한 지고? 암만해도 집안
망신을 시키려고 계집앨 대처로 내놓았는가 부다.”(75쪽)라고 비난한다. 서술자 ‘나’
의 진술대로 손녀가 타는 스케이트를 무당의 작두춤으로 환원하는 할아버지의 “상상
력의 한계”를 말해주는 동시에, 지방의 식자층이 갖고 있는 무속에 대한 폄하 역시
102 대중서사연구 제22권 3호


「엄마의 말뚝 1」에서 이 사건은 어머니가 시골마을 박적골을 떠나 아
들과 딸을 “대처”로 이끈 결정적인 계기로 술회된다. 당시 마을 사람들
은 “집터 동티가 과연 무섭긴 무서운 거”라고 수군거렸지만, 정작 당사
자인 어머니는 “대처의 양의사”에게 보이면 쉽게 나았을 거라고 생각했
던 것이다. 주술을 미신으로 풀이하고 과학적 앎과 미신의 무지를 대립
시키면서, 「엄마의 말뚝 1」은 딸을 신여성으로 만들고자 하는 어머니의
집념을 딸의 시점에서 펼쳐 보인다.29) 그런데 「엄마의 말뚝 2」에서는
바로 그 어머니가 아들이 신령에게 절하고 얻어 온 산골을 먹고 부러진
뼈가 붙었다고 자신한다.
우리 보기엔 아직도 손목의 모양이 정상이 아니었지만 어머니의 설명에 의하
면 그곳에 산골이 모여서 뼈를 붙여주고 있기 때문이라는 거였다. 어머니는 완쾌
가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열흘 되던 날부터 다시 삯바느질을 시
작하셨고 그 솜씨는 전과 다름없이 빼어났다. 어머니는 또 산골 먹고 붙은 뼈가
얼마나 튼튼하다는 걸 과시하기 위해 우리 앞에서 무거운 걸 번쩍번쩍 들어 보이
길 즐기셨다. 영천시장에서 장작을 날마다 한두 단씩 사다 때는 버릇도 여전했다.
해동할 때까진 오빠가 그 일을 하겠다고 해도 어머니는 막무가내였다.
“걱정 말아. 야아. 또 넘어지게 되면 이 오른손으로 콱 짚으면 되니까. 내 오른
손목은 이제 예전과 달라 무쇠보다 더 튼튼한걸.”
이렇게 뽐내면서 보기 싫게 삐뚤어진 손목을 휘둘러 보였다.30)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한편, 무속 신앙의 역사만큼이나 기나긴 탄압과 배격의 역사
에 대해서는 이능화, 조선무속고-역사로 본 한국 무속」, 서영대 역주, 창비, 2008 참조.
29) 「엄마의 말뚝1」에서 ‘엄마’가 수용한 ‘신여성’ 역시 막스 베버식의 근대화 개념과는
반대로 물신화 경향을 띤 채 마술적인 힘을 지닌 것처럼 인식되었다는 지적은, 최경
희, 「「엄마의 말뚝 1」과 여성의 근대성」, 민족문학사연구 9(1), 민족문학사연구소,
1996 참조. 같은 작품을 ‘근대 번역’에 놓인 혼종성에 착안하여 접근한 연구로는 김미
현, 「박완서 소설의 근대 번역 양상- 「엄마의 말뚝 1」을 중심으로」, 현대문학이론연
구 47, 현대문학이론학회, 2011 참조.
30) 박완서, 「엄마의 말뚝 2」, 엄마의 말뚝 : 박완서 소설전집11, 세계사, 2012, 113-114쪽.
박완서 소설에 나타난 ‘주술’과 ‘생존’의 문제 / 차미령 103


과거 현저동 시절, 어머니가 추운 겨울날 눈에서 미끄러져 손목을 다
치게 되자, 오누이는 집에 들른 노파가 말해준 ‘산골’이라는 명약을 찾아
나선다. 오누이가 들어간 굴 속 후미진 곳에는 “신령님의 영정”이 기다
리고 있다. 그 영정 앞에서 무지와 미신에 현혹된 적 없었던 오빠가 “신
효한 약효”를 위해 머리를 조아린다. 다시 말해, ‘산골의 신화’는 오빠를
중심으로 구성된 엄마의 주술적 드라마이다. “사람이 바늘구멍만 한 구
원의 여지도 없는 곤경에 빠졌을 때 신화는 갑자기 우리 앞에 그 신비의
문을 활짝 열고 그곳의 주인이 되라고 유혹한다.”(109쪽)는 서술자의 진
술은 이 사태를 정확히 기술하고 있다. 말리노프스키를 참조하면, 해결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자신의 무능함을 깨달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유
일한 일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나의 상으로 만드는 것으로,31) 주술은
경험적 지식이 없는 사건과 마주한 인간의 감정적 출구를 그러한 형식
으로 생산한다.32)
산골을 먹어 뼈가 붙었을 리 없다는 것을 서술자 ‘나’는 안다. 하지만
비뚤어진 손을 보이며 그 손목이 무쇠보다 튼튼하다고 말할 때, 어머니
는 누구보다 행복하다. 현재 시점에서, 다리를 다친 후 의식이 희미해져
가는 어머니는 다시 “의술이 제 아무리 발달해도 뼈 부러진 덴 산골밖
31) 말리노프스키는 종교적 의례와 주술적 의례에서 심리적 차원의 동일성을 확인하고
있다. “종교가 죽음과 같은 삶의 위기 상황에서 발생하는 긴장이나 불안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라면, 주술은 경험적 혹은 과학적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실제 삶에서 닥치
는 어려움으로 인해 생겨난 감정적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
다.” 김용환, 말리노프스키의 문화인류학, 살림, 2004, 43쪽.
32) Bronislaw Malinowski, Magic, Science, and Religion, and Other Essays, Garden City,
N.Y.: Doubleday, 1954, p.81. (권용란, 「주술 개념 형성에 관한 연구: 근대 이후 서구
를 중심으로」, 역사민속학 13, 한국역사민속학회, 2001, 80쪽 재인용) 산골의 신화
뿐은 아니다. 예컨대, 이웃의 가정이 온전한 것을 견딜 수 없어 하며 ‘재난의 분배’가
있을 것이라 저주하는 나목의 나도, 인간의 감정 경험(experience of emotion)과 관
련된 주술의 기능적 측면의 한 자락을 보여준다.
104 대중서사연구 제22권 3호
에” 없다고 되풀이한다. 어머니의 (무)의식 속에서 “오빠의 산골”은 여전
히 과학을 능가하는 마법적 권능을 간직하고 있다. 초자연적 존재와의
관계가 살아 있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은유적 단서라는 점
에서,33) 주목할 것은 주술적 사물인 ‘산골’이 아니라 그것에 투영된 가
족, 보다 정확히 말해 오빠에 대한 어머니의 신앙이다.
그렇다면 역시 주술적 측면에서, 이러한 어머니의 시점을 딸(동생)의
시점과 나란히 살펴보면 어떨까. 「엄마의 말뚝 2」에서 산골 신화는 소설
의 정점에서 “불가사의한 괴력”과 함께 가장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반복
된다. 어머니의 소름끼치는 괴성과 원한의 울부짖음 속에서, ‘나’는 과거
로 돌아간다. 그러나 그 과거 속에는 기적이 아니라 “흉몽”처럼 돌아온
오빠가 있다. 알다시피, 「엄마의 말뚝 2」에서 다리에 총상을 입은 오빠
는 며칠 안에 사망한다. 오빠가 총상을 치료받는 모습은 목마른 계절
과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등에서도 유사하게 재현되는데, 목마
른 계절에서 서술자 하진은 총상을 일컬어 “악마가 파놓은 함정의 입
구”라고 진술한다.
관통된 구멍은 보송보송 깨끗한 채 악마가 파놓은 함정의 입구처럼 무한한 깊
이로 어둡게 뚫려 있었다.
혜순이 상처를 치료하는 동안 진이는 될 수 있는 대로 외면을 하고 생각까지도
딴 생각을 하려 애를 쓴다. 그녀는 아직도 그 상처가 열의 육체의 일부가 아닌
것처럼 치가 떨리게 싫었다. 그런 혐오의 순간을 예사롭게 넘기는 고통 또한 이
만저만이 아니었다. 또 하나 밤이 가고 아침이 오는 규칙적인 순환이 가져다준
사람들의 습관, 자고 깨면 먹어야만 한다는 문제는 한층 더 심각하고 두려웠다.34)
목마른 계절에서 가족의 일원인 ‘나’조차 혐오하며 고개를 돌리는
33) 로렐 켄달, 무당, 여성, 신령들–1970년대 한국 여성의 의례적 실천, 김성례·김동
규 역, 일조각, 2016, 20쪽.
34) 박완서, 목마른 계절, 세계사, 2012, 284-285쪽.
박완서 소설에 나타난 ‘주술’과 ‘생존’의 문제 / 차미령 105
육체의 구멍을 보라. 위 인용문에서 총상에 대한 혐오는 “자고 깨면 먹
어야만 한다는 문제”와 더불어 진술된다. 연명하기 위해서는 아무도, 가
족을 제외한 누구도, 오빠가 총상을 입었다는 사실을 알면 안 된다. 범
접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터부는 ‘신성한’, ‘축성된(geweiht)’과 ‘금지된’,
‘부정한’이라는 의미를 동시에 내포한다.35) 서술자 ‘나’가 오빠의 총상에
서 악마가 파놓은 “무한한 깊이”를 읽어낼 때, 그 구멍은 터부의 은유적
형상에 다름없다. 총상은 감춰져야 한다. 총상이 발각되면, 그 총상을
입은 자는 물론이고, 그와 함께 한 자들 또한 무사하지 못하리라. 모녀
에게 있어 숭배에 가까운 애정의 대상이었던 오빠는 전쟁과 함께 항상
적 불안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그는 한때 인민군이었다는 이유로, 또 반
대로 인민군에서 탈출했다는 이유로, 어느 곳에서나 금제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에서 “오빠는 깊이 병들
어 있었다.”36)라고 진술될 때, 그것은 명백히 육체적인 질환만을 뜻하지
않는다. 국군에 의해서도 인민군에 의해서도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운
오빠는 차츰 프레모 레비가 기술했던 무젤만의 형상에 가깝게 재현된
다.37) ‘나’의 가족들이 목격한 오빠의 상태성은 「엄마의 말뚝 2」, 그 산
35) 프로이트는 ‘터부’의 개념을 탐구하는 첫머리에서 반대말 ‘노아noa’를 거론한다. 터부
는 ‘보통의’, ‘누구에게나 접근이 가능한’이라는 의미를 지니는 ‘노아(noa)’와는 상반된
두 방향을 지향한다. 이하 이 지면에서 서술된 모든 프로이트의 논의는, 지그문트 프
로이트, 「토템과 타부」, 종교의 기원, 이윤기 역, 열린책들, 1997 참조.
36) 박완서,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박완서 소설전집 20, 세계사, 2012, 151쪽.
37) 프로이트가 폴라네시아어 ‘터부’와 동일한 단어로 지목했던 라틴어 ‘사케르(sacer)’를
아감벤은 예외상태에 처한 벌거벗은 생명을 뜻하기 위해 선택한다. ‘성스럽게 되다’
와 ‘저주를 받다’는 의미를 동시에 갖는 사케르는 ‘비오스’(특유한 삶의 양식)를 박탈
당하고 오직 ‘조에’(살아있음이라는 단순한 사실)만 있는 생명을 가리킨다. 그리고 아
감벤은 호모 사케르의 말미에서 프레모 레비가 기술한 ‘무젤만’에서 호모 사케르의
형상을 확인한다. 무슬림이라는 뜻의 무젤만은 본래 “굴욕감, 두려움 및 공포가 그에
게서 모든 의식과 모든 인격을 완전히 제거시킴으로써 결국 절대적인 무기력 상태에
이르게 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아감벤은 “한때 자신이 속해 있던 정치적 사
106 대중서사연구 제22권 3호
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에서 모두 유사하게 기술되고 있다. “다 망가진
정신”(「엄마의 말뚝 2」)으로 축약될 그의 상태성의 핵심은, 대타자(상징
적 질서)에 대한 신뢰를 모두 철회했다는 데 있다. “대한민국의 하늘”도
“인민공화국의 하늘”(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도 모두 믿을 수 없
는 공포에 잠식되었던 그는, 언어능력의 퇴화와 함께 서서히 인간적인
내용을 상실해 간다.
그리고 작가 박완서는 그러한 오빠의 이야기를 거듭 다시 썼다. 전쟁
의 시간대를 집중적으로 조명한 세 편의 장편소설에서, 내러티브의 한
가운데에는 오빠의 죽음이 있다. 나목, 목마른 계절은 70년대 초반
나란히 첫 발표되었고,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90년대에 이르
러서야 출간되었다. 그런데 그 죽음의 원인은 허구화 과정을 거치면서
모두 다르게 재구성된다. 첫 소설 나목에서 두 오빠는 행랑채에서 폭
격으로, 목마른 계절에서 오빠는 인민군 황소좌의 격발에 의해 사망
한다. 그런데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가 재현하는 오빠의 죽음의
과정은 사뭇 다르다. 오발사고로 관통상을 입은 것은 목마른 계절과
동일하지만, 인민군에 의해 죽은 것이 아니라, 후유증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사망에 이른다. 서술자는 진술한다. “그는 죽은 게 아니라 8개월
동안 서서히 사라져간 것이다.”(188쪽)
왜 그래야만 했을까. 반공이데올로기의 압력과 자기검열 측면에서의
논의는 이미 진전이 이루어진 바 있다.38) 그러나 이 글의 관점에서 보자
회적 맥락에서 배제되었을 뿐더러 생존 가치가 없는 유대인 생명체로서 조만간 죽게
될 운명”인 무젤만을 호모 사케르의 한 예로써 제시한다. 조르조 아감벤, 호모 사케
르, 박진우 역, 새물결, 2008. 주권자와 호모사케르의 역학 등에서 볼 때 이 논문과
는 짚는 맥락이 다르지만, 박완서 소설의 ‘오빠’를 호모 사케르를 모델로 분석한 또다
른 사례로는 조회경, 「박완서 소설에 나타난 ‘증언의 소명과 구원’에 관한 연구」, 우
리문학연구 38, 우리문학회, 2013 참조.
38) 기존의 연구들은 반공이데올로기의 억압을 이러한 다시쓰기의 원인으로 추론하고 있
박완서 소설에 나타난 ‘주술’과 ‘생존’의 문제 / 차미령 107
면, 작가의 다시 쓰기에는 그와는 또다른 실존적 차원이 개입되어 있다
고 판단된다. 예컨대, 프로이트가 ‘터부’와 ‘강박신경증’을 겹쳐 놓으며,
애도의 병리학적 형식 속에서 주목한 것은 감정적 양가성이다.39) 사랑
하는 이를 상실한 이의 죄책감의 이면에는 애정의 충동 뿐 아니라 적의
의 충동이 간직되어 있다. 따라서 죽음이 현실이 되었을 때, “죽음이라
고 하는 것이 반드시 불만스러운 것만은 아니었다는 것, 만일에 그럴만
한 힘이 있었다면 그 죽음을 재촉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무의식적 소
망”은 탄핵의 대상이 된다. 다시 말해, 죽은 이에게 실제로 태만했던 것
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 때문에 사랑하는 이가 죽은 것이 아닐
까를 질문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목과 목마른 계절에서 자전적 체험의 허구화 과정을 살펴보면,
그와 같은 의문의 존재를 가정해 보게 된다. 나목과 목마른 계절에
서는 동생이 오빠의 죽음에 직접적으로 연루된 것으로 서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목의 사망 사건은 폭격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지만, 소설
에서 참상의 원인으로 강조되는 것은 은신처를 바꾼 동생 이경의 행위
이다. 목마른 계절에서 인민군 황소좌로 하여금 오빠의 총상을 의심
케 한 결정적인 인물 역시 동생 하진으로 제시된다. 그렇게 본다면, 「부
처님 근처」에서 “곱게 못 죽은 원귀 탓”(「부처님 근처」)을 하는 어머니
의 굿과 딸이 거듭하는 소설 쓰기는, 그 형식은 다르다 할지라도 살아남
다. 대표적으로, 강진호, 「반공주의와 자전소설의 형식」, 국어국문학 133, 국어국
문학회, 2003 참조.
39) 친밀한 관계에서 교차하는 애정과 적의는 박완서의 모녀관계에서 가장 잘 관찰되지
만, 사자(死者)와 살아남은 자 역시 예외는 아니다. 가령, “정말로 억울한 것은 죽은
그들이 아니라 그 죽음을 목도해야 했던 나일지도 모른다”(「부처님 근처」)는 생각,
“내 안 깊은 오지 안에 오빠의 상처보다 훨씬 흉악하고 어두운 상처가 되어 서리서리
똬리 틀고 있을 것”(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이라는 생각 등은 박완서 소설에
서 적의와 함께 은연중 표출된다.
108 대중서사연구 제22권 3호
은 자의 죄의식이 투사된다는 점에서 공통적인 지반을 갖는다. 죽은 자
가 ‘원귀’가 되었다는 상상적 구성도, 그 죽음을 자신이 촉발했다는 상상
적 구성도, 적의(무의식적 소망)에 대한 죄의식에서 기원하기 때문이
다.40)
나목, 목마른 계절, 「엄마의 말뚝」 연작, 그 산이 정말 거기 있
었을까의 서술자인물들은
모두 살아남은 자들이다. 바꿔 말하면, 박
완서 소설에서 전쟁은 여성 생존자의 시선에서 기록된다. 전쟁의 상황
속에서 이 소설들은 생존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과제처럼 기술하고
있지만, 작가의 반복적인 쓰기는 그 이면의 죄의식을 추론하게 한다. 박
완서 소설의 기원으로서 한국전쟁을 거듭 사고하게 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것이 박완서 소설에 나타나는 생존에 대한 양가감정(살아야 한
다는 원초적 사실을 긍정하는 동시에, 그것만이 우선적 가치가 될 때의
혐오와 수치심)이 발원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와 <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에는 생
존이 어떻게 주술적인 차원과 결합하는가를 보여주는 또다른 장면들이
있다. 그 장면들을 간단히 살피는 것으로 이 장의 논의를 마무리하기로
하자.
“쉬어서 버리면 안 되지.”
엄마가 헛소리처럼 말하면서 팥죽을 가져오라고 손짓했다. 우리는 둘러앉아,
사랑하는 가족이 숨 끊어진 지 하루도 되기 전에 단지 썩을 것을 염려하여 내다
40) 산 사람이 고인에게 가지는 두 가지 감정(애착과 적의)은 사별과 동시에 나타난다.
프로이트는 「토템과 타부」에서 ‘강박성 자책’을 논의하며 다음과 같이 적는다. “이 강
력한 양가성은 사람들이 예상도 하지 못하던 가장 사랑하던 사람, 가장 사랑하던 관
계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위 본문에서 기술한 내용에서 후자가 무의식적 소망(만
족)을 꾸짖는 형태로 드러난다면, 사자에 대한 터부를 배경으로 하는 전자는 그 적의
의 담지자를 자신이 아니라 고인에게로 전이시키는 방어과정을 통해 추론된다.
박완서 소설에 나타난 ‘주술’과 ‘생존’의 문제 / 차미령 109
버린 인간들답게, 팥죽을 단지 쉴까 봐 아귀아귀 먹기 시작했다.41)
노파는 빠르게 위엄을 회복하고 우선 양코배기들이 부려놓은 짐 먼저 끌어들
이라고 이른다.
상자마다 먹을 것들이었다. 깡통에 무과수, 고기, 잼, 과일, 우유, 새콤하고도
달콤한 향기로운 가루, 반짝이는 은종이에 싼 초콜릿 사탕 젤리, 혼란한 그림이
있는 갑 속에 들은 파삭파삭한 과자, 쫄깃쫄깃한 과자……
노파와 여자들은 다만 황홀해서 숨도 크게 못 쉬었다.42)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에서 오빠를 매장하고 집에 돌아온 가
족을, 팥죽을 쑤어 놓은 숙모가 기다리고 있다. 서술자 ‘나’는 “배가 고픈
걸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고, “밥이 먹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고 진술한
다. 그러니, 단순히 먹는 것으로 결여를 대체한 것이 아니다. “예로부터
팥죽 먹는 건 흉이 아니라”는 숙모의 말이 일깨우는 것처럼, 저들의 식
사는 사자(死者)를 보내고, 그 사자의 분노를 모면하기 위해 치르는 의
식의 일환이다.43) 그 의식을 묘사하는 서술자작가는,
자신을 포함한
인물들을 냉정하게 바라본다. 산 자는 살아야 한다는 사실의 옆에는, 눈
앞의 먹을 것이나 사람의 육신이나 썩어서 없어진다는 생물학적 차원으
로 환원할 때의 비루함, 그 죄책감이 개입되어 있다. 그리고 이 죽음의
국면을 통과한 후에야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미군 PX로 대표
되는 시장을 본격적으로 탐사하기 시작한다. 새로운 주술적 매혹(재주
술화)에 대해서라면, 이 글에서 살펴보았던 <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
41) 박완서,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박완서 소설 전집 20, 세계사, 2012, 191쪽.
42) 박완서, <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 배반의 여름: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 2, 문학동
네, 1999, 292쪽.
43) 인류학이 기록하고 있는 다음의 오래된 관념을 상기하라. “영혼이 결정적으로 육체
를 떠나 실제로 죽음이 찾아오더라도,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은 죽어서도 가족
과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다. 그는 죽어서도 육체 주변에 머물러 있다. 죽은 사람들이
시신을 보살피는 것은 죽은 사람이 아직 존재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뤼시앙
레비브릘, 원시인의 정신 세계, 김종우 역, 나남, 2011, 98쪽.
110 대중서사연구 제22권 3호
의 한 장면으로 대신해도 좋을 것이다. 미군들의 폭소와 함께 노파가 의
도했던 희생 제의가 불발로 마무리 되는가 싶은 지점에서, 작가는 미군
들의 선물을 펼쳐 놓는다. 마치 신령님의 응답을 받은 것처럼, 이방의
구호물자에 황홀해하는 표정들은 이제 막 주술의 새로운 차원이 시작되
고 있음을 웅변한다. 그것은 앞으로 ‘달러’라는 “신기한 화폐”(도시의
흉년)가 부려 놓는 마법으로 구체화될 것인바, 박완서 소설의 ‘시장’과
‘화폐’의 문제에 대해서는 차후에 논의하고자 한다.44)
4. 결론: 젠더화된 생존과 주술
이 글은 박완서 소설에 나타난 주술적 양상을 생존의 문제와 결부시켜
고찰해 보고자 했다. 소설에 나타난 주술은 한편으로는 미래의 불안을
생산하고, 또다른 한편으로는 살아남고자 하는 인간의 희망을 투사한다.
그 불안과 희망의 양가성이, 박완서 소설의 생존자가 갖는 의식의 핵심
중 하나다. 이 문제를 이 글에서는 두 가지 국면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먼저 도시의 흉년과 <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의 ‘할머니(노파)’를
중심으로, 공동체적 불안과 주술적 실천이 어떻게 접속하는지를 분석함
으로써, 생존의 위협을 구성하고 극복하는 논리를 탐구해 보았다. 도시
의 흉년에서 주술적 행위의 핵심에는 할머니가 있으며, 그녀의 주술적
신념은 가족을 구속하는 불안과 공포의 근원이기도 하다. 소설이 폭로
하는 사실은 그 주술적 세계가 여아 살해 욕망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
44) 박완서 소설의 ‘시장’에 주목한 최신 연구로는 신수정, 「박완서 소설과 전시 여성 가
장의 미군 PX경험」, 인문과학연구논총 37(2), 명지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6 및
신샛별, 「박완서 소설에 나타난 ‘먹는 인간’의 의미-초기 장편소설을 중심으로」, 동국
대 석사학위논문, 2015 참조.
박완서 소설에 나타난 ‘주술’과 ‘생존’의 문제 / 차미령 111
로써, 전체적인 플롯으로 볼 때에는 탈주술화의 의도가 두드러진다.
할머니를 중심으로 파악할 때, 주술의 축과 위반의 축을 분할하고 있
는 도시의 흉년에 비해 <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은 좀더 흥미로운
양상을 보여준다. 소설에서, 주술적 세계관, 국가 이데올로기, 실질적 규
범으로서의 유교적 도덕은, 변동기의 공동체에서 인물의 행위를 관장하
며 중첩/경합하는 세 축이다. 위기국면을 유사하게 구성하고 있는 소설
속 두 이야기는, 생존의 위협이 주술을 경유하면서 어떻게 공존의 문제
로 재구성되는지를 확인하게 한다. 전쟁이라는 현실적 재난 상황과 미
신과 풍문에 의한 상상적 불안이 겹쳐지는 가운데, 소설 속 노파들의 주
술적 실천은 일상적 도덕을 넘어서는 공존의 지평을 드러낸다.
다음으로 이 연구에서는, 나목, 목마른 계절, 「엄마의 말뚝」 연
작,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등 자전적 성격의 소설들을 대상으로,
주술을 매개로 하여 생존자 의식을 탐구해 보았다. 이 계열의 소설들에
서, 인물에게 주술은 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를 서술하는 하나의
설명 원리이며, 그 주술적 드라마의 핵심에는 ‘오빠’가 있다. 어머니의
신앙의 대상이었던 그는 전쟁을 통과하면서 저주받은 자로 전락해 간다.
박완서 소설에서 자전적 체험의 허구화 과정을 살펴보면, 애도의 감
정적 양가성 속에서 생존자의 죄의식을 도출해 볼 수 있다. 오빠의 죽음
에 직접적 책임이 있는 존재로 서술자인물을
설정하는 등, 그 이면의
죄의식은 살아야 한다는 원초적 사실을 긍정하는 동시에, 성공적으로
생존한 자들에 대해 표출되는 적대감이 발원하는 지점으로 판단된다.
나목에서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에 이르기까지, 이 글에서
살펴본 모든 소설들의 인물들은 말하자면 살아남은 자들이다. 좀더 정
확히 말해, 박완서 소설에서 전쟁을 비롯한 근대의 문턱은 여성 생존자
의 시선에서 기록된다. 주변적 질서의 한계와 억압을 딛고 살아남기 위
112 대중서사연구 제22권 3호
해서, 혹은 그것을 안고 살아남았기 때문에, 그들의 행위에는 주술적 차
원이 결합한다. 그러므로 그것의 다른 이름은 생존의 불안과 희망이라
아니할 수 없다.
박완서 소설에 나타난 ‘주술’과 ‘생존’의 문제 / 차미령 113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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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___, 나목: 박완서 소설전집 1, 세계사, 2012.
______, 목마른 계절: 박완서 소설전집 2, 세계사, 2012.
______, 엄마의 말뚝: 박완서 소설전집 11 , 세계사, 2012.
______,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박완서 소설전집 20, 세계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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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소설에 나타난 ‘주술’과 ‘생존’의 문제 / 차미령 115
Abstract
The Problem of Magic and Survival in Park Wan-Seo’s Fictions
Cha, Mi-Ryeong(GIST)
This article attempts at rethinking the modernity of Park Wan-Seo’s fictions in
investigating the theme of magic. What underlies the magic aspirations present in her
fictions?
The first salient feature is the ambivalence of magic. For example, those old
women appearing in The Bad Year of the City and 「The Pasqueflower of the
Horrible Day」 show interestingly the ambivalent aspect of the magic related to the
survival of the people. Their world is constructed on the basis of the beliefs beyond
the reality tests and their practices faithful to those beliefs engender either mistrust
or awe for the next generations, in being criticized by the reason or in surpassing
the horizon of moral judgement.
The other issue worthy of being noted when we explore Park’s novels in terms
of magic is the relationship between war and survival. Magic represented in Naked
Tree and Thirsty Season functions as the narrative principle of explaining the
pains caused by the war. In this case, special attention should be paid to the death
of the brother. Viewed from this point of view, the magical dimension of Park’s
repetitive writing is closed intertwined with the sense of guilt. This latter leads to the
affirmation of ‘we should live’, and at the same time to the hatred against those who
survived with success.
(Key Words: magic, survival, survival mentality, transgression, ambivalence,
mourning, taboo, sense of guil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