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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야기

고대 중국의 생식숭배와 神話 속 女神에 투사된 ‘母性’ 모티브(이인경/단국대)

❙국문초록❙
본 논문에서는 ‘母性(모성)’을 모티브로 한 여신형상에 주목하여 연구를 진행하였다. 여성의 이미지 중 ‘모
성’은 남성이 모방하거나 대신할 수 없는 여성고유의 특징으로 가장 대표적인 여성의 원형이라 할 수 있기 때
문이다.
우선 Ⅱ장에서는 선사시대의 여신상과 여신, 여성숭배를 살펴서 생물학적 속성을 바탕으로 한 ‘모성’ 모티브
가 문화에서 여성의 긍정적 이미지이며 여성의 주체의식의 핵심임을 이해해보았다. Ⅲ장에서는 ‘모성’ 모티브
가 투사된 중국신화 속 여신 이야기를 살펴보았다. 우주와 인류창조의 어머니 여신 女媧, 단편적이기는 하지
만 모성이 직접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부계사회의 산물인 感生神話 속 여신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高禖 제사에
서의 여신 이야기를 통해 모성 모티브가 어떻게 반영 되었는지를 살펴 이에 따른 여성의 긍정적 이미지를 이
해해보았다.


[주제어] 모성 모티브, 여신, 여성숭배, 생식, 모성신


❙목 차❙
Ⅰ. 들어가는 글
Ⅱ. 고대 중국의 생식숭배와
‘母性’ 모티브
Ⅲ. 신화 속 女神에 투사된 ‘母性’
모티브와 여성의 긍정적 이미지
Ⅳ. 나오는 글


Ⅰ. 들어가는 글
중국의 女神은 중국의 역사 이전 시기의 원시숭배, 원시종교 및 巫術文化의 번성을 명시한다.1) 여신의 모
습은 전 세계에 걸쳐 神像이나 神話 등을 통해 등장하였는데, 이런 신비한 숭배의 풍속은 선사시대 인류사회
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女神像은 선사시대 인류사회 발전 과정의 한 산물이다. 그것은 이 시기 인류사회의 혼인상태, 인지능력과
숭배 풍습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상징적 표상이기 때문이다. 신화 속 여신 역시 여성의 상징적 원형이 반영된
하나의 문화코드라 할 수 있기 때문에 여신 형상을 통해 우리는 다양한 여성성을 상상하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본 논문에서는 ‘母性’을 모티브로 한 여신형상에 주목하여 연구를 진행하고자 한다. 여성의 이미
지 중 모성 즉 ‘어머니’라는 형상은 남성이 모방하거나 대신할 수 없는 여성고유의 특징으로 가장 대표적인
여성의 원형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선사시대로부터 지금까지 모성은 남성과 구분되거나 능
가하는 여성의 힘이며 주체의식의 원천일 수 있었다. 하지만 여성문화의 본질이라 할 만한 모성의 여성원형
은 부계사회의 가부장적 통념아래 순종하고 종속되는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주체적 모성을 여성의 본질적 한
계로 규정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변화된 여성에 대한 인식은 신화에도 반영되어 능동적 독립적 형상
의 여신을 수동적 종속적 형상의 여신으로 전환시켰다. 현재까지 여신과 사회발전 과정을 다룬 많은 연구에
서는 바로 이 부분에 주목하여 주로 설명되었다.
신화는 분명 성스럽고 낭만적일 수만은 없는 사회의 어떤 이데올로기가 반영되기도 혹은 은폐되기도 하는
이야기이다.2) 많은 신화들이 가부장제 사회의 산물이고 거기에 명시적으로나 암묵적으로 특정한 가부장적
통념을 담기도 하고, 이데올로기를 은폐하여 특정집단에서 성스럽게 여겨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영향으로 인해 신화 속에서 男神과는 대비적으로 여신은 그 역할이 폄하되거나 부정적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또한 여신에 투사된 여성의 단편적인 속성일 뿐이다.
종족을 대표하며 혈연관계의 중심을 구체화 한 ‘姓’은 인간의 태어난 뿌리와 그 혈통의 계승을 드러내는
상징적 문자이다. 농업생산력의 증대, 사유제와 전쟁을 통해 남성은 막강한 힘을 얻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모계 ‒ 부계로 사회가 변천했음에도 불구하고 혈통관계의 중심을 상징하는 ‘姓’은 남성의 문자로 전환되지 않
았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혈통이 모계승계였음을 보여주는 흔적이며 부계사회로 전환 이후에도
변할 수 없었던 여성의 대표적 원형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분명 여성 이미지의 긍정적 요소라고 할 수 있
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하여 생물학적 속성에만 치중된 여성의 원형이라는 부정적 견해도 있지만 생물학적 남
성과는 다른 여성만의 속성에 대해 이해하고 이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면 현대사회에서 여성은 보다 적
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생활할 수 있을 것이며, 생명에 대한 경시가 팽배한 현재의 사회풍조에서 여성의 긍정
적 이미지를 부각시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1) 徐子峰, 「新石器時代中晩期中國“女神”問題略論」, ��遼寧師範大學學報��, 2005, 116쪽.
2) 차옥숭 외, ��동아시아 여신신화와 여성정체성��,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10, 18~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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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여성을 대표하는 ‘모성’ 모티브가 투사된 중국신화 속 여신을 통해 여성의 긍정적
이미지를 이해해보고자 한다. 특히 ‘모성’ 모티브와 관련된 여성 원형은 선사시대의 생식숭배와 밀접한 관계
가 있으며, 이것은 또한 중국문화의 한 일면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에 대해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Ⅱ장에서
는 모계 ‒ 부계로의 발전과정을 혼인형태 변화 등과 함께 살펴보고 이에 따른 여신과 여성숭배 전통을 알아보
도록 한다. 여신, 여성숭배는 선사시대 생식숭배 즉 生育의 주체였던 여성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기인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 씨족의 번성과 보존의 중심이었던 원시의 ‘어머니’가 그 원형이 되어 숭배되었음을 선사
시대의 여신상과 여신, 여성숭배를 살펴서 생물학적 속성을 바탕으로 한 ‘모성’ 모티브가 문화에서 여성의 긍
정적 이미지이며 여성의 주체의식의 핵심임을 이해해보고자 한다. Ⅲ장에서는 ‘모성’ 모티브가 투사된 중국신
화 속 여신 이야기를 살펴보고자 한다. 중국에는 다양한 직능과 형태의 여신들이 많이 있었지만 본 논문에서
는 주로 ‘모성’ 모티브가 투사된 여신 형상을 통해 연구를 진행하고자 한다. 우선 우주와 인류창조의 어머니
여신 女媧,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모성이 직접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부계사회의 산물인 感生神話의 여신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高禖 제사에서의 여신 이야기를 통해 모성 모티브가 어떻게 반영 되었는지를 살펴 이에
따른 여성의 긍정적 이미지를 이해해보고자 한다.
본 논문에서 신화 속 여신 이야기 중 소수민족의 신화를 참고하기는 하지만 주된 연구범위로 포함시키지
는 않으며, 각각 주제를 대표하는 여신을 선별하여 이를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하고자 한다.


Ⅱ. 고대 중국의 생식숭배와 ‘母性’ 모티브
1. 모계 ‒ 부계로의 발전과 여신, 여성숭배
(1) 모계 ‒ 부계로의 발전과 生育관념
구석기에서 신석기에 이르는 오랜 기간 동안 인류는 어머니를 중심으로 맺어진 모계 혈연공동체에서 아버
지에 대한 인식과 함께 야기된 부계 혈연공동체라는 과도기적 과정을 겪었다. 이와 같은 사회적 환경은 남녀
의 혼인관계를 비롯한 생활의 변화를 초래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로부터 야기된 남녀 兩性에 대한 인식은 문
자와 신화를 비롯한 다양한 문화에도 영향을 주었다.
고대 신화는 고대사회의 거울과 같다고 하였듯이 모계로부터 부계로의 전환은 여신숭배에서 남신숭배로의
변화를 이끌었다.3) 모계씨족사회의 형성은 고대의 사회문화적 배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모계란 혈통이
어머니를 중심으로 승계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어머니만을 분명히 알 수 있었던 생활환경과 밀접한


3) 謝麗芳, 「上古神話中的兩性崇拜」, ��呂梁敎育學院學報��, 第28卷: 第3期, 2011, 126쪽. 신화는 모계씨족사회에서 시작되어 부
계씨족사회에서 번성하였고, 노예제사회에서는 극성을 이루었다가 점차 쇠퇴해졌다. 이런 변화와 맞물려 신화의 양성숭배의
현상이 형성되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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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역사이전의 고대사회는 생산력이 지극히 낮고 사람들의 認知도 그다지 발달하지 못했
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고작 대자연의 일부로 인지하며 대자연의 질서와 동일하게 짐작하거나 인간에서
대자연의 모습을 짐작하는 생활을 하였다. 그래서 역사이전시기의 사람들은 생명이 있는 자연만물은 그것이
무엇이든 인간처럼 영혼이 있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당시 유물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인간에게는 없는 어떤 모종의 힘에 대한 경외심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이런 경외심은 어떤 신의 의지에
의해 주관되는 것이라는 생각과 맞물리면서 신에 대한 숭배로 드러나게 되었다. 토템숭배도 이와 같은 맥락
에서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신에 대한 원시적 숭배는 모계씨족사회 여신에 대한 숭배에도 영향을 끼
쳤을 것이라 여겨진다. 왜냐하면 모계씨족사회에서는 여성이 씨족의 주체였기 때문에 여성을 각종 자연을 운
용하는 신 곧 여신으로 숭배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옛날 태고시절에는 임금은 없었다. 그 백성들은 함께 모여 사는 군집생활을 하였고, 어머니는 알지
만 아버지는 알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친척, 형제, 부부와 남녀의 구별이 없었다.4)
여기서 ‘어머니는 알아도 아버지는 알지 못했다.’라 한 것은 여성이 그 공동체 사회의 주체이며 중심이었
음을 나타낸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남녀 양성관계와 생육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
문에, 여성은 생명의 주체로서 공동체인 씨족의 후대를 이어주는 숭배의 대상일 수밖에 없어서였다.5)
혼인의 발전과정에서 다른 씨족 간에 다수로 맺어지던 群婚이 배우자가 있는 군혼, 즉 對偶婚이 등장하게
되면서 남녀의 사회문화적 지위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여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모계로만
승계되던 혈통이 부계로 승계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는 점이다. 대우혼 시기는 모계에서 부계사회로의 과
도기적 시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원시농경 단계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농경생활이 시작되면서 생산력은 점차
증가되었고 이에 따라 남성의 노동력은 점차 중시되었다.6) 남성의 사회적 공헌이 나날이 증가하면서 대우혼
시기에 형성되기 시작한 父子관계는 모계사회를 동요시켰고, 이것은 모계에서 부계로 전환되는 계기를 이끌
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여성은 더 이상 神格이나 권위 있는 대상으로 존숭되는 것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이
라는 양성관계로 그 사회적 지위가 변화되었다. 사회생산력이 계속해서 늘어나게 되면서 사회생활의 중심도


4) 張雙棣 外 譯注, ��呂氏春秋譯注��, 長春: 吉林文史出版社, 1993. 「恃君覽」, “昔太古嘗無君矣, 其民聚生群處, 知母不知父, 無親
戚兄弟夫妻男女之別。”
5) 邢燕萍·李玉芬, 「中國古代女性社會地位變遷的漢字文化考察」, ��楚雄師範學院學報�� 第27卷: 第1期, 2012, 14~15쪽. 이 당시
원시민들은 의식이 미분화된 상태였으므로 대지가 만물을 生育시키듯이 여성도 대지처럼 신비로운 역량을 가지고 있는 것이
라 여겨 여성을 숭배했다고 한다.
6) 宋兆麟 저, 洪熹 역, ��生育神과 性巫術��, 東文選, 1998, 21쪽. 역사이전 시기 인간은 채집과 어업, 수렵에 종사하다가 점차
농업과 가축사육을 생각해내고 이를 실행하였다. 이 중 채집은 여성들이 주로 담당했으며 원시 농경 시기에는 여성들이 주로
농업을 담당하며 가축사육까지도 함께 역임하고 있었기 때문에 안정된 삶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밥 하고 옷감을 짜
는 일에 이르기까지 인류에게 안정된 衣食을 마련할 핵심원을 제공하였던 여성의 역할 때문에 어업과 수렵을 위주로 한 불안
정한 생산 활동 중심의 남성의 역할보다 경제적 중요도가 컸었다고 한다. 원시 농경은 본문에서 언급한 농경시기와는 차이가
있는데, 남성이 중심이 된 농경 시기는 발명된 도구나 기술에 의해 농사를 지으며 생산력을 급증시켰던 때로, 자연을 정복하
거나 발명을 주도하거나 적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모습으로 남성을 형상화했던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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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되기 시작하였다. 경외의 대상이기만 했던 자연으로부터 벗어나 자연을 인식하게 되고 다시 그것을 정복
하고자 하는 인식이 싹트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자연을 정복할 수 있는 힘을 숭배하게 되
었고, 그 힘의 중심에 있던 남성은 자연스럽게 남성신 혹은 영웅으로 숭배되었던 것이다. 이로부터 남성 영
웅이 창조되어 자연을 정복하거나 발명을 주도하거나 싸움에서 승리하는 형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신화의 중심내용과 인물에도 변화를 촉진시켜 남성중심의 신화가 점차 많아지게 되었다.7)
인류의 번성은 남녀의 交合과 여성의 생육에 의존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인간은 이런 생육의 진정
한 원인을 인식하지 못하였다. 생육과 관련된 남성의 역할을 인식하지 못하여 아이를 낳는 것이 여성에 의해
서만 실현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모계씨족사회에서 생육의 밖으로 밀려났던 남성의 존재는 아
버지를 인식하게 되는 과정을 통해 여성 특히 女陰과 관계있는 생육을 感生의 이미지로 발전시켰고, 이것은
다시 남녀 양성의 교합에 의한 생육관념으로 발전시켰다. 혈통은 모계에서 부계승계로 점차 변화되어 대우혼
은 원시 부계가정의 一夫一妻, 그리고 확고한 일부일처제를 기반으로 한 부계사회로 점차 발전하였다.8) 그러
니까 생육관념의 변화는 사회 권력의 중심이 점차 남성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
다. 이와 같은 사회의 변화는 생식에 대한 인식의 변화도 초래하였다. 男根숭배가 여음숭배를 대신하게 되었
고 이것은 다시 여성 조상에서 남성 조상에 대한 숭배로, 나아가 남신이 여신을 대신하는 문화적 변화를 견
인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2) 女神像과 女神 숭배
구석기 시대에는 흙으로 빚은 여성상을 우상으로 숭배하였다. 중국의 여성 숭배 기원에 대해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신석기 시대에 형성된 紅山文化의 유적과 유물에서는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9)
중국 遼寧省 喀左縣 東山嘴 홍산문화 유적지에서 제사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흙으로 빚어진 여성상이 발
견되었다. 또 遼寧省 홍산문화 유적에서 대규모의 女神廟가 발견되었다. 묘에서는 대량의 인물상 파편들이
남아있었는데 이 파편들은 여성의 특징을 뚜렷하게 나타내고 있었다고 한다. 특히 놀라운 것은 거의 사람크
기에 가까운 여신상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유적지의 특징으로 보아, 女神廟는 제사를 지내던 장소이고 여신
상은 제사의 주요대상이었다고 추측되었다.10) 이로부터 5천여 년 전 고대 중국에서는 여신 숭배현상이 이미


7) 夸父, 羿, 禹, 黃帝와 蚩尤 등의 남신이 이와 같은 예에 속한다.
8) 李學槿 主編, ��禮記正義��, 北京: 北京大學出版社, 1999. ��禮記·昏義��, “남자와 여자의 구별이 지어진 이후라야, 비로소 남
편과 아내 간에 바른 도리가 생기는 것이다. 남편과 아내 간에 바른 도리가 생기고 난 이후라야, 아버지와 자식 간에 친애
함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아버지와 자식 간에 친애함이 생겨난 이후라야, 임금과 신하가 각기 그 자리를 바르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혼례는 예의 근본이다.’라 말한다.(男女有別, 而後夫婦有義; 夫婦有義, 而後父子有親; 父子有親, 而
後君臣有正。故曰: 昏禮者, 禮之本也。)” 여기에서는 남녀의 분별을 통해 친자를 확인하고 이를 통해 국가가 완성된다고 하
였으니, 이것은 一夫一妻 혼인이 부계사회의 완성에 중요함을 설명한 것이라 하겠다.
9) 송정화, 「紅山文化의 신화·종교적 의미」, ��중국어문학지�� 16, 2004. 48~51쪽 참조. 지금까지의 발굴을 기초로 할 때 최초
여신상의 출현은 구석기 말기라 볼 수 있지만 제대로 구현된 여신상의 흔적은 아직까지 중국에서 발굴되지 않았고 단편적인
상징들만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에 기원전 3500년에서 2200년 무렵 內蒙古 赤峰市 동북쪽 교외 紅山에서 발원하였다는 신
석기 시대의 문화 유적지에서 발굴된 다양한 여신상과 그와 관련된 유물 등은 당시 여신 숭배와 여신에 관한 연구에 실질적
바탕이 된다고 할 수 있다.
10) 徐子峰, 앞의 논문, 116~117쪽. 여기에서 열거한 홍산 문화 유적지를 참고해 인용하였고, 이에 대한 설명도 첨가해 정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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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아주 이른 시기에는 여인의 생육 능력이 신성한 힘으로 여겨져 신이 관할하
고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를 찬미하고 감사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창조력 혹은 신의 가장
초기 개념에서 여성, 모성, 부녀, 聖母를 숭배하는 형식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11)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시
조 여신은 女媧이다.
여신 女媧는 이와 같은 속성을 그대로 형상화한 대표적인 大母神이다.
이에 대해 ��說文解字��에서는
媧는 예전의 신령스럽고 성스러운 여성으로, 만물을 만들어 내는 존재이다.12)
라 하였다. ‘만물을 만들어 내는 존재’라고 한 것은 어머니를 표상하는 여성의 전형을 말하는 것으로, 이런
여성원리는 하루에도 일흔 번씩 변하며 신들을 化生시켰다는 이야기에도 투사되어 있다.13) 고대 원시사회에
서 인류에게 가장 중요시 된 것은 생산이었기 때문에 그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힘 즉 생식을 찬미하고 숭배
하여 그 주체였던 여성을 숭배하였던 것이다. 이런 여성원리가 女媧 여신에게 그대로 투사되었기 때문에 ‘媧’
를 ‘神聖母’라고 풀이하였던 것이다. 이 외 西王母, 羲和, 常羲 등의 여신도 이와 같은 예에 속한다.14)
여신숭배는 독특한 종교 신앙의 하나로 간주되어진다. 심리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고대인들은 여성의 음
부를 통해 생명체가 탄생된다는 ‘女陰生育’ 기능에 대해 신비롭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또 개체의 지속과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인간은 ‘낳고 기르는(生育)’ 문제에 민감하여 이를 가장 중시하였다.15) 群婚制 시기에
태어난 아이들은 전적으로 어머니와 함께 생활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고대인들에게 있어 생육의 문제는 곧
어머니에게만 속한 것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說文解字��에서 ‘也’는 여성의 음부를 상징하는 글자라 하였다.16) 처음에는 여성을 대표하고 생육 기능을
상징하는 것으로 한정되었다. 하지만 고대인들은 생명 현상에 호기심을 갖고 있을지라도 그 현상을 제대로
이해할 길은 없었을 것이므로, 여음을 상징하는 물건은 신비한 의미를 띄기 시작하면서 점차 여성에 대한 흠
모의 심리가 형성되었을 것이다. 그 증거로는 여신의 음부 형태가 크게 강조되었던 구석기 시대의 유물을 들
수 있다. 존경과 흠모의 대상이었던 여성이 어느 정도 신비로운 의미를 띄게 되면 신의 품격을 부여받고 결
국 신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 이런 사회문화적 상황으로 인하여 생명과 존속의 주체였던 여성
였다.


11) 魏勒, ��性崇拜��, 中國靑年出版社, 1988, 41쪽.
12) 臧克和 外 校訂, ��說文解字新訂��, 北京: 中華書局, 2002. ��說文解字·女部��, “女媧, 古之神聖女, 化萬物者也。”
13) 楊帆 外 注譯, ��山海經��, 合肥: 安徽人民出版社, 1999, 415쪽. “열 명의 신이 있는데, 이름을 女媧의 배라고 한다.(有神十
人, 名曰女媧之腸, 化爲神。「大荒西經」)”에서 女媧의 배는 女媧의 배가 변하여 신이 되었다는 뜻이다.
14) 劉勤, ��性別文化視域下的神話敍事硏究之:女神論��, 北京: 中國社會科學出版社, 2013, 44~45쪽. 신화학자들은 여와를 비롯
한 위 본문의 여신들의 신격은 원시 대모신에서 비롯된 것이라 설명한다. 그리고 이런 대모신의 신성함은 ‘여성의 생식’을
기반으로 한 것이라 하였다.
15) 진스추앙 저, 안동준·김영수 역, ��도교와 여성��, 창해, 2005, 31~33쪽.
16) ��說文解字·へ部��, “也, 女陰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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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사람들은 神으로서 숭배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모계씨족사회 초기의 이와 같은 神格의 여성원리, 즉 여
신과 여성에 대한 숭배는 신화와 문자에 고스란히 투사되었다고 할 수 있다.


2. 생식숭배와 ‘母性’ 모티브, 그리고 女神의 기원
고대 여신에 대한 숭배는 여성생식에 대한 숭배에 기원한다. 이로부터 탄생된 신화 속 최초의 여신들은
모두 생식을 신격의 핵심으로 삼았다. 이런 생식여신들은 후대에도 결코 사라지지 않았으며 그 중 일부는 계
승되거나 발전되었다. 후대 생식여신들은 조상여신 즉 시조여신 부류로 치중되어 형상화되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신의 기원이 곧 여신의 탄생을 의미하는 것일까? 여신의 출현은 인류번성에 대한 숭배와 경외
그리고 생식 원인에 대한 신비감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보편적인 여신 형상 곧 인격화된
여신은 이후로 발전을 거듭하면서 형성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본 장에서 다루고 있는 생식 모티브와 여신
의 기원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고대의 생육관념의 발전과 여신 형상의 발전은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고
대의 生育觀에서는 최초 자연이 만물을 낳았다는 지극히 간단한 관념으로부터 시작된다. 이후 이런 관념은
신령한 感應 즉 토템과 여성에 의한 생육으로, 그리고 다시 남녀교합에 의한 생육으로 발전되었다.17) 특히
자연과 토템에 의한 생육 단계에서는 여성이 자녀를 낳아 기를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성이 어떻게 생
식할 수 있는지도, 그리고 그것이 남녀교합의 산물인지도 전혀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때의 여신은 아직
보편적 형상의 것은 아니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어떤 자연이든 동식물과 합체이든 간에 아직은 인격화가
된 신이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들의 특징은 분명 여성생식과 관계가 있다. 한 종족의 자손을
번성시키고자 하는 소망으로 여신의 모습을 특징화하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楚나라 巫山神女는 본래 姑
媱山의 䔄草였고, 여신 女媧는 어미 개구리의 뜻이었으며, 納西族의 여신 巴丁喇木은 청개구리와 어미 호랑
이의 뜻이었고 珞巴族과 漢族의 여신은 태양신이었다.18) 이와 같은 예를 통해 자연신이나 토템이 여신과 관
계있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둘 사이의 결합은 여성의 확대된 생식숭배에 기인한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어떤 자연물이 인류를 낳았다 한다면 인류의 기원신앙이 생육신앙과 결합된 것일 가능성이 있다
고 하였듯이 여기서의 결합 역시 생식숭배와 관련하여 여신과 결합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19)
사람의 인식이 발달됨에 따라 여신의 인격화된 형상은 필연적으로 등장하게 되었고 이와 함께 여성생식숭
배는 독립적인 형태로 등장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여성생식이 자연이나 동식물의 외형적 껍데기에 가려져
있다가 이를 벗어나니 숭배의 핵심으로 부각되었던 것이다.
이상의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신은 그 형상이 등장하면서부터 생식을 모티브로 한 모성적 여신 즉
‘어머니 여신’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화에도 바로 이와 같은 가장 원시적인 속성이 반영되었던 것이
17) 宋兆麟 저, 洪熹 역, 앞의 책, 379~393쪽.
18) 원시 상고시대에는 민족이나 지역에 따라 뱀, 개구리, 호랑이, 호로박, 곰, 물고기, 새 등을 토템으로 하였는데, 이것들은 모
두 다산과 풍요를 소망했던 생식숭배와 관련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여성생식과 여신의 특징으로 이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19) 宋兆麟 저, 洪熹 역, 앞의 책, 3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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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와 관련하여 리안 아이슬러(Riane Eisler, 1931~)는 ��성배와 칼��에서 고대 농경사회에서는 여신을 숭
배했으리라 추측할 수 있는데, 이와 관련된 여성의 신성화에 대한 중요한 증거를 농업 문명 발상지 세 곳 등
에서 찾았다고 하였다. 또 여기서 여성이란 땅과 마찬가지로 생물학적 특성상 출산을 하고 영양분을 공급하
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20)
전 세계에 분포된 구석기, 신석기 유적지에서는 대량의 나체 여신상들이 출토되었다. 나체 여신상의 실질
적 함의는 여성의 특징과 생육기능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 한다.21) 여신 숭배는 역사이전 인류의 생식과
관계가 있으므로 이런 현상은 구석기 말기로부터 신석기 시대 전체를 통해 살펴볼 수 있는 보편적이며 신비
한 원시종교현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나체여신상들은 풍만한 유방과 비대한 엉덩이 모습
을 하고 있고, 구석기의 도상의 경우에는 여성의 하체나 소머리 등의 동물의 머리 부분이 드러나 있기도 한
것이다.22)
이와 관련된 또 다른 증거를 漢字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여성 글자 ‘母’는 바로 원시의 여신상의 특징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母의 형상은 ‘균형을 잃을 정도로
커다란 한 쌍의 젖을 안고 꿇어앉은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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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母’의 자형
1. 甲骨文 2. 金文
이것은 곧 ‘젖을 먹임으로써 생명을 길러내는 생육의 존재’인 어머니의 형상으로, 자녀에게 수유하는 것이
최대의 가치 있는 일로 간주한 데서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자식을 기르기 위해 드러내 보인 젖의 형상
은 ��說文解字��에도 ‘자식을 안고’, ‘자식에게 젖을 먹이는’ 것으로 풀이되어 있다.
母는 다스리다의 뜻이다. 女의 뜻에 따른다. 자식을 안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혹은 자식
에게 젖을 먹이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23)
자식에게 젖을 먹이는 어머니의 모습은 태고로부터 계속되어 온 여성의 생물학적 속성과 관계된 것으로
자손을 낳고 기르는 생육은 여성의 특징이며 여성만의 힘으로 그 기능이 강조되어 문자에 투사된 것이라 할
20) 리안 아이슬러 저, 김경식 역, ��성배와 칼��, 비채, 2006, 68쪽.
21) 徐子峰, 앞의 논문, 117쪽.
22) 마르치아 엘리아데 저, 이은봉 역, ��종교형태론��, 한길사, 2002, 156쪽. 대기와 풍요의 신이 암소의 모습을 한 생식신으로
등장한 것은 중국 뿐 아니라 아프리카, 유럽 등지에서 광범위하게 발견된다고 하였다. 같은 책, 237쪽. 또 풍요에 대한 신
으로 특징지어지는 황소의 뿔은 대보신의 표장이며, 이것은 신석기 문화에서 도상이든 소 형태의 우상이든 간에 풍요의 대
여신이 현존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였다.
23) ��說文解字·女部��, “母, 牧也。從女, 象褱子之形。一曰象乳子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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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국의 생식숭배와 神話 속 女神에 투사된 ‘母性’ 모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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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있다. 여기에서 母를 ‘다스리다’라고 한 것은 씨족 내에 세대 간의 구분이 생긴 후 자신보다 항렬이 높은
여성을 보편적으로 母라 칭한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24)
여성의 생식적 기능이 母에 투사된 것처럼 여성생식숭배는 인격화 된 여신의 형상에도 반영되었다. 女媧,
西王母, 羲和와 常羲 등은 모두 생식 여신이다. 또 소수민족신화에 등장하는 여신들 역시 생식 여신으로 이
들의 신격 중 가장 중요한 것 역시 생식이었다. 물론 각 부족의 여신마다 숭배의 정도차이는 있고 이후 여신
들의 직능이 분화되거나 확대되었을지라도 그런 직능들은 모두 ‘생식’에서 파생되어 확장된 것이므로 생식 모
티브를 여신의 원형으로 하여야 할 것이다.
생육의 주체가 여성이라는 인식은 ‘비롯하다’는 뜻의 ‘始’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始는 甲骨文과 金文에서
태아의 머리가 아래로 향해 있는 ‘台’에 ‘女’가 덧붙여진 것으로,25) 許愼은 이것을 “始는 여자가 비롯하는 것”
이라 풀이하였다.26) 다시 말해 갑골문과 금문의 형상과 관련하여 보았을 때 임신은 생육의 주체였던 여성의
상징이며 그 여성으로부터 인류는 시작되었기 때문에 생식 모티브는 곧 여신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桂馥은 “始란 처음 태어난 것을 말한다.”고 하여 여성으로부터 인류가 처음 시작된 것임을 설명한 것이라
하였다.27) 아버지는 모르는 상태에서 어머니는 한 종족 공동체의 중심일 수밖에 없었으며, 생명과 관련된 모
든 시작은 생육의 주체인 여성으로만 상상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모계사회 초기 여성은 신격으로 숭배될
수 있었던 것이다. 요컨대 여성의 특징화하는 생육을 대표하는 ‘모성’은 여성을 숭배의 대상이 되게 하였고,
이것은 신화에 그대로 투사되어 어머니 여신으로 형상화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Ⅲ. 신화 속 女神에 투사된 ‘母性’ 모티브와 여성의 긍정적 이미지
1. 위대한 어머니 여신(大母神):우주와 인류의 어머니
고대사회는 여성과 자연의 생리적 주기를 동일시하였기 때문에 ��山海經��에서 여성 변신의 예가 많은 것이
라고 하였다.28) ��산해경�� 속 여신들 성별의 모호함은 상상계에서 원시적 여성 이미지를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신들 대부분은 자연과 친밀한 관계로부터 영원한 생명력과 창조라는 공통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중국의 여신들이 변형 과정을 거치면서도 남신에 배척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숭배 받을 수 있었
던 이유도 바로 이와 관계가 있을 것이다. 생육의 주체를 상징하는 모성 모티브와 陰의 역할을 강조하는 도
24) 維志成 저, 임진호 외 역, ��문자문화학��, 문현, 2011, 311쪽. 殷商 甲骨文에서도 어머니 항렬의 모든 여성들을 母라 칭했는
데, 이 때 이들은 母를 각 시대의 군주를 가리킨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25) 穀衍奎, ��漢字源流字典��, 北京: 華夏出版社, 2006, 154쪽. “태아가 뒤집어진 모습으로 곧 머리가 아래로 향해있는 태아의
모양이다. 임신한 것을 뜻한다.(胎兒形的倒形, 卽頭朝下的胎兒形, 表示懷胎之意。)”
26) ��說文解字·女部��, “始, 女之初也。”
27) 邢燕萍·李玉芬, 앞 논문, 15쪽 재인용. 桂馥, ��義證��, “始言初生也。”
28) 송정화, 「��산해경�� 신화의 여성 이미지 분석」, ��중어중문학회�� 29, 2001, 503~5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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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에서 여성적 원리의 가치를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하였기 때문이다.29)
뱀이 허물을 벗고 재생되듯이 뛰어난 변화 능력을 지닌 여신 女媧는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창조의 어머니
여신이다. 또 女媧는 생명창조와 관련된 이미지 뿐 아니라 세상을 구제해 재생시키고 풍요와 다산을 주관하
는 다양한 직능의 여신으로 형상화되기도 하였다. 이것은 죠셉 켐벨(Joseaaph Campbell, 1904~1987)이 선
사시대 여신숭배가 다신교이며 일신교라고 주장한 것과 관련이 있다. 여러 장소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형태의
여성숭배 상징물이나 형상들은 대부분 닮아있는데, 이것은 여신이 다양한 이름과 형태로 숭배 받았던 사실
때문이며 이런 의미에서 여신숭배가 다신교이며 일신교라 할 수 있다고 하였기 때문이다.30) 그러므로 다양한
이미지와 직능으로 숭배 받았던 女媧를 비롯한 다른 중국 여신들도 이와 비슷한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다음은 女媧라는 大母神이 만들어낸 우주창조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주 먼 옛날, 우주의 사방이 무너지고 온 세상은 땅들이 갈라지고 찢겨나가는 재난에 휩쓸렸다. 하
늘은 대지를 더 이상 덮을 수가 없었고, 땅도 만물을 더 이상 실을 수가 없었다. 땅속에서는 활활 타는
불길이 끊임없이 치솟았으며, 넘치는 강물과 홍수는 그칠 줄을 몰랐으며, 맹수들이 들끓어 여리고 힘없
는 백성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었다. 이에 女媧는 다섯 빛깔의 아름다운 돌을 다듬고 구워서 하늘의
터진 틈들을 기워, 뭇 별이 빛나는 아름다운 하늘을 만들었다. 그런 다음 홍수 속에 어슬렁거리는 커다
란 자라의 굵고 튼튼한 다리를 잘라서, 우주의 사방에 기둥을 세워 하늘을 떠받쳤다. 홍수의 주범인 검
은 용을 잡아 죽임으로써 범람하는 홍수로부터 온 세상을 구해 냈다. 홍수는 멎었으나 온 땅은 이미
늪지대로 변하여 도저히 사람들이 살 수 없었으므로, 女媧는 늪가에 우거진 갈대들을 배어다 땅위에
쌓아서 여기에 불을 질러, 그 재로써 대지를 말리고 대지를 소생시켰다. 이렇게 하여 푸르고 아름다운
하늘이 만들어지고, 우주의 사방의 질서도 바로잡혔으며, 홍수도 마르고, 천하도 평안해졌다. 사나운
짐승들은 죽어 없어졌고, 착한 백성들은 女媧의 덕으로 다시 살아났다. 마침내 사람들은 대지에 등을
대고 누워서, 드넓은 하늘을 품에 안을 수 있게 되었다.31)
이상의 이야기는 기존의 우주질서가 홍수라는 재난으로 인해서 混沌으로 휩쓸려 파괴되고, 그 파괴된 우
주의 질서를 다시 재건하는 과정을 그린 신화이다.32) 女媧의 우주창조 전말을 살펴보면 맨 처음, 女媧는 오
29) 진스추앙 저, 안동준·김영수 역, 앞의 책, 116~118쪽. 여성숭배가 도교 안에서 전면적으로 계승된 것은 그 밑바탕에 主陰
사상이 결정적인 작용을 하였다고 한다. 老子로 대표되는 도가학파 사상의 주된 원천은 ��歸藏��인데, 이것은 坤卦를 으뜸으
로 한다. 坤은 땅을 대표하며 이것은 곧 陰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陰은 우주적 관점에서 陽에 상대되는 여성성을 상징한
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歸藏��에서는 陰을 받드는 주음사상이 밑바탕에 깔려있다 할 수 있고, 이것은 도교학
파에 수용되어 한나라 이후 도교의 주요 이론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노자는 ��道德經��에서 그의 주된 사상인 ‘道’를 항상
모성의식과 같은 것으로 관련짓기도 하였다.
30) 리안 아이슬러 저, 김경식 역, 앞의 책, 67쪽 재인용.
31) 趙宗乙, ��淮南子譯注(二十二子詳注全譯)��, 哈尔滨: 黑龍江人民出版社, 2003. ��淮南子·覽冥訓��, “往古之時, 四極廢, 九州裂,
天不兼覆, 地不周載, 火爁焱而不滅, 水浩洋而不息, 猛獸食顓民, 鷙鳥攫老弱. 於是女媧鍊五色石以補蒼天, 斷鼇足以立四極,
殺黑龍以濟冀州, 積蘆灰以止淫水. 蒼天補, 四極立, 淫水止, 冀州平, 狡蟲死, 顓民生. 背方州, 抱圓天.”
32) 이런 유형의 창세신화를 홍수신화라 하는데, 홍수로부터 시작하는 지구상의 모든 신화는 女媧의 그것처럼 ‘죽음과 재생’이
라는 공통의 모티브를 지니고 있으며, 동시에 그것은 시작의 신화이기 때문에 신화의 세계에서는 이를 原型回歸的 창세신화
라 한다. 그러나 開闢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뜻에서 중국인들은 이를 ‘女媧補天’신화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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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국의 생식숭배와 神話 속 女神에 투사된 ‘母性’ 모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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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의 아름다운 돌들을 빚고 다듬어서 그것으로 하늘의 터진 틈을 기운다. 둘째, 女媧는 자라의 다리를 잘라
우주의 사방하늘을 떠받침으로써 안정적인 우주공간을 확보하게 되었다. 셋째, 女媧가 감행한 것은 黑龍의
살해였다. 혼돈의 우주질서를 원형으로 회복시키기 위한 果斷의 조치였다고 할 수 있다. 흑용이 지닌 ‘黑’은
어둠과 죽음의 이미지이다. 따라서 흑용의 신화는 긍정적 비전의 신화라기보다는 홍수와 같은 파괴성을 지닌
사나운 惡龍의 신화라 할 수 있다. 흑용으로 인해 지상은 혼돈과 공포와 죽음에 휩싸였다. 따라서 흑용의 살
해는 혼돈으로부터의 질서회복이라는 분명한 명제를 안고 있을 뿐 아니라 ‘살해가 곧 시작의 신화’라는 측면
에서, 그것은 우주어머니로서의 위력을 드러낸 지엄한 용단이었으며 창세의 顚末的 행위였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女媧는 갈대를 태워 그 재로써 대지를 소생시켜 놓는다. 갈대는 습지대에서 왕성하게 자라는 식
물이다. 女媧는 그 무성한 갈대를 쌓아 불을 지름으로써 물에 젖어 있던 음습한 대지를 건조시키고 죽었던
대지의 기능을 소생시키어 대지에 생명력을 불러 넣어줌으로써 인류가 새롭게 소생한 땅에서 혜택을 누리게
하였다. 이처럼 女媧는 중국인들 그 원초의 공간에 존재하고 있던 위대한 어머니였다. 그녀는 첫째 아름다운
별들이 총총한 푸른 하늘을 만들어 준 여유롭고 아름다운 어머니, 둘째 자라의 다리를 잘라 하늘과 땅의 질
서를 바로잡아 주고, 셋째 흑용을 죽여서 홍수를 막아주던 과감하고 적극적이며 無所不爲의 용감한 어머니,
넷째 갈대를 태워 대지에 생명을 불어넣어 기름지게 살려낸 지혜로운 어머니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여기에서 女媧는 양육자로서의 지혜와 용기를 보여준다. 그것은 혹은 관대하고 혹은 강인하고
혹은 엄격한 어머니로서의 면모이며 선과 악을 통합한 우주적 권능의 어머니 상이다. 그리고 이것은 고대 중
국인 집단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어머니에 대한 무언의 무의식의 투사이다. ��淮南子��에서 “빛나는 그 공적을
생각할 때, 위로는 구천에 통하고, 아래로는 황토에 이르며, 명성은 후세에 전하여지고, 광휘는 만물에 비추
인다.”33)라고 한 것은 중국인 자신들의 원시의 어머니 여신이며, 우주의 대모신인 女媧의 공적에 대하여 그
들 스스로가 내린 찬사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단편적 기록이기는 하지만, 인류근원에 대한 무의식도 女媧라는 여성원리에 의존하고 있다.
천지가 처음 열렸을 때, 아직 사람이 없었다. 女媧는 황토를 빚어 사람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
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빚어낸다는 것이 수월치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새끼줄을 진흙 속에 담갔다가 휙 들어올렸다. 뚝뚝 떨어지는 진흙들로 하여금 사람이 되게 하였던 것
이다.34)
창조의 신비를 지닌 女媧는 마침내 흙에 생명을 불어넣어서 온 세상의 사람을 만들어낸다. 흙으로 인간을
창조하였다는 모티브는 비단 중국에만 국한되었던 것은 아니다. 대지는 모성과 무한한 결실의 힘을 드러내는
하나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은 흙과 자궁 그리고 생식행위와 농경 작업
33) ��淮南子·覽冥訓��, “考其功烈, 上際九天, 下契黃壚, 名聲被後世, 光輝熏萬物.”
34) 李昉 等 編, ��太平御覽��, 臺北: 商務印書館, 1986. ��太平御覽�� 卷78引, 後漢, 應邵,��風俗通��, “俗說天地開闢, 未有人民, 女媧摶黃土作人, 劇務力不暇供, 乃引繩於泥中, 擧以爲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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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동일시하였다고 한다.35) 농경생활을 하던 사람들은 만물을 낳고 오곡을 싹 틔우는 대지를 생명을 낳고
기르는 여성의 생식능력과 동일시하였다. ��說文解字��에서 “흙은 땅이 만물을 토해 낳는 것이며, 二는 땅의
윗부분과 땅의 가운데 부분을 형상화 하였고, 丨은 사물이 나오는 모습이다.”라고 설명하였듯이,36) 땅이란
고대인에게 죽은 대상이 아니라 생명을 출현시키는 살아있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위에서 女媧가
흙으로 인간을 창조했다는 것은 남성에 의한 인간창조보다는 지극히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흥미를 끄는 부분은 女媧가 진흙 속에 새끼줄을 넣었다가 들어 올려 거기서 뚝뚝
떨어지는 진흙방울로 인간을 만들었다는 내용이다. 세계민족들의 인간창조는 일반적으로 한 사람 혹은 남녀
한 쌍을 만들어내는 내용인데 비하여, 女媧의 경우는 단지 몇 사람을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대량의 인간
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부분 역시 흙의 다산성과 여성의 다산성의 유대로 이해해볼 수 있지
않을까? 여성은 우주적 풍요의 중심과 결합되어 있어 풍요와 다산성에 영향을 미치고, 그것을 배분할 수 있
는 특권을 획득하게 되었다는 엘리아데(M. Eliade, 1907~1986)의 견해를 바탕으로 한다면 이것은 농경사회의
현저한 특징을 드러낸 것이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37) 그러므로 女媧에 의한 인간창조는 여성의 다산 ‒ 논밭
의 풍요, 그리고 어머니 여신에 의한 대량의 인간창조라는, 고대인들의 생명과 풍요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보여준 것이리라 짐작해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수수께끼 같은 우주와 인류를 창조한 위대한 어머니 여신은 과연 어떻게 존재할 수 있었을
까? 바로 이와 같은 의문을 屈原(B.C.340~B.C.278)도 가지고 있었기에 女媧에 대해 언급하기를 “등극해 帝
가 되었으니, 누가 그녀를 (그 자리로) 인도하여 숭상하였을까? 女媧는 형체가 있는데, 그녀는 도대체 누가
만들었나요?”라 하였던 것이다.38) 이에 대해 後漢의 학자 王逸(약89~약158)은 女媧는 人頭蛇身으로 하루에
도 일흔 번씩 스스로 변화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다른 이의 도움 없이 自生할 수 있는 존재라고 하였다.39) 이
것은��산해경��에서 “서북쪽 바다 밖, 대황야의 모퉁이에……열 명의 神이 있는데, 이들을 女媧의 창자라 부른
다. 女媧의 창자가 변하여 神이 되었기 때문이다.”라 한 것이나,40) “사람의 얼굴에 뱀의 몸을 하였으며, 하루
에도 일흔 번씩 조화를 부려 그 배 속에서 이 神들을 化生시킨 것이다.”라고 한 것과 유사한 내용이다.41)
이것들은 모두 대모신이라는 女媧의 신격을 말하는 내용이다. 女媧의 창자나 배로부터 열 명의 神들이 화
생되었다고 한 것은 생명의 창조자로서 女媧의 기능에 최고의 神性을 부여한 것이다. 다시 말해 女媧는 곧
인류의 창조자 이전에 이미 신들의 창조자로서, 신들 중 최고신이었다는 말이니 자생할 수 있는 존재, 즉 ‘신
성모’라 한 것이다. 결국 생육과 관계된 여성만의 권위와 특징은 남성이 모방하거나 대신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 대표적인 여성 원형인 모성을 대모신 女媧에게 반영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35) 마르치아 엘리아데 저, 이은봉 역, 앞의 책, 330쪽.
36) ��說文解字·土部�� “土, 地之吐生萬物者也。二象地之下、地之中, 丨物出形也。”
37) 마르치아 엘리아데 저, 이은봉 역, 앞의 책, 346쪽.
38) 金開誠 外, ��屈原集校注��, 北京: 中華書局, 1999. 「天問」, “登立爲帝, 孰道尙之? 女媧有體, 孰制匠之?”
39) 金開誠 外, ��屈原集校注��, 375쪽 재인용. 王逸說, “傳言女媧人頭蛇身, 一日七十化, 其體如此, 誰所制匠而圖之乎?”
40) ��山海經·大荒西經��, “西北海之外, 大荒之隅,……有神十人, 名曰女媧之腸, 化爲神.”
41) ��山海經·大荒西經�� “女媧,……人面蛇身, 一日中七十變, 其腹化爲此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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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여신들은 고대인들의 자연과의 투쟁에서 얻은 상상력으로부터 나왔고, 이로부터 우주와 인류의 기원
에 관한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생산과 풍요의 상징으로 생식숭배를 바탕으로 한 생육의 주
체였던 여성을 형상화한 여신은 최초의 신이였다고 하였던 것이다.42) 女媧는 만물을 만들어냈다고 하였으니
우주와 인간에 대한 창조도 여기에 포함된다 할 것이다. 그리고 이로부터 여성생식숭배의 흔적을 엿볼 수도
있다고 한다. 이것을 여성 음부가 갖는 자연적 기능에 대한 과장의 발로로 이해하여 여성의 중요한 작용과
여성이 누린 숭고한 권위를 은유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43) 그러므로 女媧의 우주와 인류창조신
화는 모계씨족사회의 발전 단계에서 전성기적 사유의 결정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2. 感生의 어머니 여신:신성한 인물의 어머니
感生神話는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의 과도기적 사회배경이 반영된 始祖母 여신의 이야기이다.44) 생육
의 문제를 오로지 여성생식과 관련된 것으로만 숭배하였던 모계사회 고대인들은 사회가 부계사회로 발전함
에 따라 새로운 인식의 정립과 국가 성립의 정당성을 근거로 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감생신화에서의 ‘신
성한 인물 ‒ 신성한 어머니’의 구조는 선사시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어머니 ‒ 자손’ 관계의 변형으로 볼 수
있다. 비록 정치적 목적으로 인물의 신성함을 부각시키기 위한 감생에 의한 탄생 이야기였다 할지라도 모자
관계에서 어머니는 여전히 존귀한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典籍에 묘사된 신성인물의 잉태과정에
대한 설명이 다소 불분명하지만 여기에는 고대 여성 생식숭배에 대한 관념은 분명하게 드러나 있어, 이것은
감생신화 구성의 주된 요건이 되었다. 따라서 감생신화는 어머니 혈통으로만 결정되었던 모계사회의 흔적이
라 할 수 있으며, 모계사회 생육의 주체였던 여성에 대한 숭배가 감생신화에서 모성 모티브로 재현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다음에서는 모성을 모티브로 한 어머니 여신에 대한 숭배가 재현된 감생신화를 통해
부계사회에서 수동적 모습으로 변형되었다는 여성의 폄하된 이미지를 재고해보도록 하겠다.
(1) 三皇五帝의 어머니
女媧 여신처럼 독립적 능력에 의해 자손을 생산한 것은 아니지만 감생신화에서의 어머니는 동식물이나 기
이한 사물 등에 의해 감응되어 자손을 생산하였다. 대부분의 감생신화는 부계사회 성립 이후에 만들어진 것
이지만 어머니로부터 태어나 자란다는 모자관계의 긴밀한 끈을 배제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탄생과정에 신비
로움을 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여성은 여전히 생육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남성의 생육 기능이 인식된 이
후에도 자손 생산과 여성의 특수한 연관성에는 변화가 없었던 것이다.
한자 ‘姓’의 造字 이유도 이와 비슷한 경우에 속한다. 姓은 씨족의 명칭이기도 하였던 토템이 발전된 것으
42) 葉舒憲, ��高唐神女與維納斯��, 北京: 中國社會科學出版社, 1997, 5쪽. 여기에서 저자는 만물을 창조한 신은 원래 天父인 남
신이 아니라 地母였던 여신이었으며, 天父관념 또한 地母관념보다 후대에 발생한 것임을 주장하였다.
43) 잔스츄앙 저, 안동준·김영수 역, 앞의 책, 40쪽.
44) 아버지가 배제되고 어머니가 異物에 感應되어 임신을 하고, 그로 인하여 신성한 아들을 출생하는 신화를 感生 혹은 感應神
話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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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이것은 한 부족의 시조모와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45) 姓에 대해 ��說文解字��에서는 “姓은 사람이 태
어난 바를 나타낸 것이다. 옛날의 신성모들은 하늘에 감응되어 자식을 낳았기 때문에 그들을 天子라 칭하였
다.”46)고 설명하였다. 먼저 姓이란 각자 혈통의 뿌리를 모름지기 낳아준 모계에서 찾도록 지적해주고 있는
문자이다. ‘어미는 알아도 아비는 알지 못하는’ 상황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또 사람이 ‘태어난 바’라 하
였으니, 이것은 姓이 그 혈족의 시조이며 그 시조모가 생활하는 곳이 姓으로 설명된 것이라 할 수 있다.
淸 朱駿聲의 ��說文通訓定聲��에는 姓에 관련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있다.
天子가 덕을 세울 때는 그 태어난 바를 따라서 姓을 받았다. 神農의 어머니는 姜水에서 살았고, 黃
帝의 어머니는 姬水에서 살았으며, 舜의 어머니는 姚墟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들은 어머니가 살았던 곳
의 연고를 따라서 그들의 姓을 삼은 것이다.47)
이처럼 아주 먼 옛날 백성들에게는 姓이 없었고, 다만 훌륭한 인물이 태어나면 낳아준 그 어머니의 연고를
찾아서 그것으로 姓을 삼았던 것이다. 결국 ‘姓’이라는 문자가 설명하는 내용은 인간의 근원이 여성이라는 사
실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사회 권력의 중심이 남성에게 옮겨갔을 때에도 여전히 姓으로 혈통을 나타냈
듯이 신성한 인물, 즉 남성 영웅들도 대부분 아버지는 배제된 채 어머니와 異物에 의한 감응으로 탄생하였다
고 한 것이다. 결국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혈통계승도 모계에서 부계로 변화하였지만 사유의 중심에는 생육의
주체 여성 즉 어머니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어머니의 부재는 곧 근원의 불분명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고대인들은 神力이 生殖力을 통해 전이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토템신이 모체에 들어가 생식 자
체가 이루어진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48) 그래서인지 고대의 신성 인물들의 어머니는 하나같이 感應에 의해
아들을 낳았다. 특히 感天의 자식들은 하늘의 자식이라 하여 天子라 하였다. 三皇과 五帝 역시 그렇게 태어
났다. 그러다보니 현실적으로 이들에게는 아버지가 없었다.
큰 발자국이 뇌택에 있어, 화서가 그것을 밟고 복희를 낳았다.49)
황제의 어머니 부보는 번개가 북두성을 휘감고 추성의 빛이 들판을 비추고 있는 것을 보고 이에 감
응하여 임신하였다.50)
요임금의 어머니 경도는 붉은 용과 혼인하고 이상과 결합하여 요를 낳았다.51)
45) 잔스츄앙 저, 안동준·김영수 역, 앞의 책, 51~52쪽.
46) ��說文解字·女部��, “姓, 人所生也。古之神聖母, 感天而生子, 故稱天子。”
47) (淸)朱駿聲, ��說文通訓定聲��, 北京: 中華書局, 1998. “天子建德, 因生以賜姓。按神農母居姜水, 黃帝母居姬水, 舜母居姚虛, 因
以爲姓。”
48) 劉勤, 「上古女神生殖主題流變當論」, ��靑海民族文化硏究�� 第19卷: 第3期, 2008, 98쪽.
49) ��太平御覽�� 卷78引, ��詩緯含神霧��, “大迹出雷澤, 華胥履之, 生宓犧。”
50) 嚴一萍 選集, ��竹書紀年(平津館叢書)��, 藝文印書館(影印). ��竹書紀年��, “黃帝母附寶, 見雷繞北斗, 樞星光照野, 感而孕。”
51) ��竹書紀年��, “堯母慶都與赤龍合婚, 合伊常, 堯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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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국의 생식숭배와 神話 속 女神에 투사된 ‘母性’ 모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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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는 베를 짜고 있다가 제비가 알을 떨어뜨리자 그것을 삼키고서 여수는 아들 대업을 낳았다.52)
위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어머니를 잉태케 한 대상들이 모두 남신이나 제왕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감생신
화에서 남신이나 제왕은 남성을 대표하는 상징이므로, 이들의 등장은 곧 신화를 정치적 신화로 변형시킨 것
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 단독의 생육은 아니지만 이상의 신화 속 감응의 이물들은 발자국, 빛, 용,
별, 알 등으로 모두 신비로운 분위기를 조성하는 형상으로 등장하였다. 신비로운 탄생을 조성한 이유의 배경
에는 분명 인물의 신성함을 부각시키기 위한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과장되고 신비로운 탄생에
서도 역시 배제할 수 없는 것이 ‘어머니 ‒ 아들’의 연관성이다. 감생에 의한 신성한 인물의 탄생은 곧 그 어머
니에 대한 신성함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므로, 이것은 시조의 어머니를 여신으로 존숭하는 것이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와 같은 감생신화는 남성 영웅의 신성함 뿐 아니라 모성 모티브를 근간으로 한 어머
니의 신성함도 함께 부각시키는 것이라 볼 수 있다.
(2) 殷나라 시조의 어머니 簡狄
이와 같은 신성한 어머니의 모성 모티브가 투사된 이야기는 商과 周나라 시조의 감생신화에 더욱 분명하
게 남아있다.
하늘이 제비에게 명하여 상나라 조상 낳게 하였네.53)
簡狄이 臺에 있으니, 제곡이 어찌 마땅하지 않았을까? 제비가 선물을 가지고 오니, 여인은 어찌 기
쁘지 않을까?54)
殷나라 시조 설의 어머니는 簡狄이다. 유융씨의 딸로 제곡의 次妃이다. 세 사람은 강에 목욕을 하러
나갔는데, 제비가 몸에서 알을 떨어뜨리는 것을 보았다. 簡狄이 그것을 주워서 입에 넣어 삼켰는데, 그
로 인해서 임신을 하게 되었고, 마침내 설을 낳았다.55)
위의 이야기들에서는 모두 殷의 시조 契의 탄생과정에서 모두 제비(玄鳥)를 매개로 하여 그의 어머니 簡
狄을 감응케 한 것이라 설명하고 있다. 또 簡狄의 임신은 제비 알과 관련이 있고 제비와 관련된 장소는 은폐
된 공간이 아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각각의 내용을 통합적으로 살펴보면 하늘을 대할 수 있는 비교적 넓은
공간에서 제비를 만났거나 강에서 목욕을 하러 갔다가 제비를 만났다.56) 그런 곳에서 제비 알로 인해 임신을
52) 司馬遷, ��史記��, 北京: 中華書局, 1999. ��史記·秦本紀��, “女修織, 玄鳥隕卵, 女修呑之, 生子大業。” 이에 대해 王逸은 “玄鳥
가 제비이다(玄鳥, 燕)”라고 하였다.(金開誠 外, ��屈原集校注��, 381쪽). 본 논문의 인용문에서는 왕일의 말에 따라 ‘玄鳥’를
‘제비’로 번역하였다.
53) ��詩經·商頌·玄鳥��, “天命玄鳥, 降而生商。”
54) 金開誠 外, ��屈原集校注��, 381쪽. “簡狄在臺, 嚳何宜? 玄鳥致貽, 女何喜?”.
55) ��史記·殷本紀��, “殷契, 母曰簡狄, 有娀氏之女, 爲帝嚳之次妃, 三人行浴, 見玄鳥墮其卵. 簡狄取呑之, 因孕生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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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 洋 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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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으므로 아들의 생부는 실제로 알 수가 없는 것이다.57) 簡狄의 남편을 帝嚳이라 명시하고는 있지만 契
잉태의 직접적인 요인은 분명 제비 알을 삼킴으로써 발생한 것이므로 제곡을 契의 아버지였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簡狄이 제비를 만났다고 짐작되는 공간은 집밖으로 짐작되기 때문에 이것은 남녀결합에
의한 임신이 아닌 아버지가 배제되고 어머니가 이물에 감응된 전형적인 감생신화라 할 수 있다.
물론 무엇인가에 감응되어 임신을 한다는 것이 생리학적으로는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감생신
화를 野合에 의한 감응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感’은 고대 성행위에 관한 은어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58)
따라서 감생이란 남녀가 ‘혼인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임신을 하여 자식을 낳는 것’을 가리킨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것은 고대 땅 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고매에서의 축제와 관련이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절에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위 이야기가 야합과 관련이 있는지의 여부가 아니다. 야합의 남녀결합에 의한
탄생이든 감생신화 속 신성한 인물 탄생의 강조이든 간에 위 이야기들은 모두 ‘아들 ‒ 어머니’의 관계를 분명
히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얼핏 보면 어머니의 역할이 생산이라는 틀에 한정된 채 영웅인 아들의 그림자로
만 존재하고 있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을 많은 자손을 생산하여 종족의 존속과 번성을 책임졌던
위대한 어머니라는 틀을 벗어나 영웅 契의 위대한 어머니 簡狄이라는 보다 선명해진 형상으로 생각해본다면
어떨까? 이럴 경우 ‘모성’ 하나로 어머니의 형상이 집중되어 그 모습을 부각시킬 수 있기 때문에 단순히 그
역할이 축소되어 영웅의 그림자로만 존재한다고는 볼 수 없는 것이다. 자식을 출산한 후 양육에 있어 특별한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혹은 여성의 지위가 전락한 부계사회의 기록이라고 해서 영웅의 어머니가 그저
그림자 역할에 불과한 존재라고 한다면 그것은 단편적인 이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림자적
존재로 폄하된 어머니의 형상은 부계사회의 종속적 수동적으로 묘사되었던 여성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에 근
거한 판단일 뿐 당시 여성에 관한 인식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59) 현대사회에서도
훌륭한 자식 곁에는 위대한 어머니가 존재한다. 이처럼 신성한 인물 곁에는 위대한 어머니가 존재하며 이들
어머니에 대해 비하한 기록도 별로 없다. 그러므로 감생신화 속 어머니 모습은 여성의 지위가 폄하된 증거가
아니라, 그저 생육의 주체인 여성 곧 모성이 투사된 한 종족의 원시모의 형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56) (淸)馬瑞辰 撰, ��毛詩傳箋通釋��, 北京: 中華書局, 2008, 1166~1167쪽. ��詩經·商頌·玄鳥��에서 이 부분에 연이어 “넓고 넓
은 殷 땅에 살게 하셨네(宅殷土芒芒)”라 하였는데, 이것은 은나라 땅 신을 모시는 社가 넓은 모양이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
한다.(��公羊傳��, “제후들이 땅 신에게 제사지냈다.(諸侯祭土)”, 何休 注. “토는 社이다.(土謂社也)”)
57) 金開誠 外, ��屈原集校注��, 381쪽. 왕일은 “玄鳥致貽, 女何喜?”에 대하여 설명하기를, “날아가던 제비가 그 알을 떨어뜨리니,
기뻐하며 그것을 삼켰다. 이로 인해 설을 낳았다.(有飛燕墮遺其卵, 喜而呑之, 因生契也)”라고 하였다.
58) 江曉原 저, 예문서원 노장철학분과 역, ��중국인의 性��, 예문서원, 1995, 95쪽. ��博物志��의 李尹의 탄생기록에서 ‘感’은 ‘孕’
과 짝을 이루어 열거한 것을 볼 수 있으며, 이것은 바로 성교를 뜻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하였다.
59) ��사기��에는 簡狄에게 제곡이라는 남편이 이미 있었고, 그것도 제곡의 둘째 부인이라 하였다. 이는 주민족의 시조모 姜嫄이
제곡의 첫째 부인으로 설정한 것과 관계된다. 이는 정복민족이었다는 주민족의 우월의식을 드러낸 것이다. 민족의 신화란
뒷사람들에 의해서 항상 이렇게 재편성되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역사문화는 주나라를 정통의 줄기로 하여 이어진 문화이다.
또 제곡도 사마천에 의해 五帝의 하나로 ��사기��에 올랐을 뿐인 전설의 인물이다. 그러므로 단편적인 이해로 감생의 어머니
여신을 폄하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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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국의 생식숭배와 神話 속 女神에 투사된 ‘母性’ 모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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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周나라 시조의 어머니 姜嫄
周나라 시조의 감생신화에서는 ‘帝’가 아버지로 등장한다. 그렇다면 이때의 ‘帝’는 제왕을 뜻하는 것으로,
위에서 언급하였던 직접적인 남녀결합에 의한 탄생을 신성화한 것일까? 우선 周의 시조 棄의 이야기를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1) 처음 백성을 낳으신 분은 姜嫄이라네. 어떻게 낳으셨는가, 정성껏 제사를 드려 아들 없는 재앙을
물리치시고, 帝의 엄지발가락 밟자 하늘의 은총이 내려 잉태하니 더욱 삼가며, 아이를 낳고 기르
시니 그분이 바로 시조인 후직이시네.60)
2) 주나라 후직의 이름은 棄다. 그 어머니는 유태씨의 딸로 姜嫄이라 하였다. 姜嫄은 帝嚳의 元妃이
다. 姜嫄은 들에 나갔다가 거인의 발자국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순간 놀라면서도 재미있을 것 같
아 그 발자국을 밟아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으므로 그것을 밟았는데, 발자국을 밟는 순간 갑자기
몸에 변화가 생겨 잉태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열두 달이 지나고서야 아기를 낳았으므로 불길한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이를 좁은 골목에 갖다버렸는데 지나가는 말과 소들이 모두
피하며 밟지 않고 지나갔다. 다시 숲에 옮겨 버렸는데, 때 마침 숲에는 사람이 많았으므로 다시
옮겨 개울 가운데의 얼음 위에 버렸다. 그랬더니 새들이 날아와 날개를 펴서 아기를 따뜻이 덮어
주기도 하고 아기 밑에 날개를 깔아서 보호해 주었다. 그를 본 姜嫄은 아무래도 신령스런 아이라
는 생각이 들었으므로, 마침내 거두어 기르게 되었는데, 애초에 버리려 했던 아이였기 때문에
‘棄’라 불렀다 한다.61)
棄의 어머니는 姜嫄이다. 棄의 출생과정 역시 契과 비슷하다. 1)과 2)의 두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들에 놀
러 나갔다가 거인의 발자국을 발견하고, 그 발자국에 이끌려 그것을 밟은 후 임신을 하였으므로 실질적인 아
들의 생부는 여전히 분명하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1)의 이야기에서는 처음 백성을 낳은 이가 姜嫄인데,
정성껏 제사를 드려 아들 점지를 빌고 帝의 엄지발가락을 밟자 임신하게 되어 후직을 낳았다고 하였다. 그렇
다면 여기서 제사를 드린 대상은 帝가 된다. 帝에게 치성을 드렸더니 姜嫄이 엄지발가락을 밟은 후 임신하게
된 것이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제비를 매개로 하여 태어난 契와는 달리 1)에서는 棄의 탄생과 관련하여 帝
로 그 모습을 직접 드러낸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때의 帝의 모습이 이후 姜嫄의 남편으로 변형된 것
이라고 한다.62) 聞一多(1899~1946)는 이에 대해 姜嫄이 上帝를 모시는 神主를 따라가며 춤을 추다가 “춤추
던 것을 멈추고 서로 손을 잡고 조용한 곳으로 갔는데, 이로 인해 임신하게 되었다”고 하였다.63) 이것은 위
60) ��詩經·大雅·生民��, “厥初生民, 時維姜嫄, 生民如何, 克禋克祀. 以弗無子, 履帝武敏歆, 攸介攸止, 載震載夙, 載生載育, 時維
后稷。”
61) ��史記·周本紀��, “周後稷, 名棄. 其母有邰氏女, 曰姜嫄。姜嫄爲帝嚳元妃。姜原出野, 見巨人跡, 心忻然說, 欲踐之. 踐之而身
動, 如孕者. 居期而生子, 以爲不祥, 棄之隘巷, 馬牛過者, 皆辟不踐. 徙置之林中, 適會山林多人. 遷之, 而棄渠中冰上, 飛鳥以
其翼覆薦之. 姜原以爲神, 遂收養長之, 初欲棄之, 因名曰棄。”
62) 劉勤, 앞의 책, 186쪽.
63) 朱自淸 外 編輯, ��聞一多全集一(民國叢書 第三編90)��, 上海書店(影印), 73쪽. “舞畢, 而相携止息於幽閒之處, 因而有孕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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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언급하였던 야합에 의한 남녀결합을 의미하는 것이며, 동시에 帝를 구체적인 남성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姜嫄과 구체적 형상의 아버지 사이에서 棄가 탄생하였다는 이와 같은 견해는 문일다 이후 많은
학자들이 공감하였다고 한다.64) 이와는 다른 견해도 있다. 馬瑞辰(1782~1853)은 姜嫄의 남편이 帝嚳이라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였다. ��周禮��등의 기록을 살펴보면 실제로 姜嫄은 남편 없이 자식을 낳았다고
전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65) 이와 같은 해석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여기에서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점은 周의 시조 棄 이야기의 목적이다. 시조의 신성함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그 탄생에 신비로운 분위기를
첨가하고자 하였을 것인데, 구체적인 아버지를 등장시킨다면 감생신화의 목적은 분명 퇴색될 수밖에 없기 때
문이다. 帝를 구체적 모습 상제로 등장시켰던 ��詩經��의 또 다른 기록에서는
3) 찬란히 빛나는 姜嫄께서는 그 덕에 조금도 티가 없어 상제께서 이에 돌보시니 재앙조차 당한 일
없네. 잉태하여 열 달이 되니 주의 시조 후직을 낳으셨네.66)
라 하였고, ��列女傳��에서는
4) 棄의 어머니 姜嫄은 태후의 딸이다. 요 임금 때에 길을 가다 거인의 발자국을 보고 호기심에 그
것을 밟았는데 집으로 돌아간 뒤 임신이 되었다. 점점 배가 불러오니 속으로 몹시 이상하게 여겨
복서로 점을 치고 하늘에 제사 지내며 제발 배속에 아기가 없기를 빌었다. 그러나 결국 아들을
낳게 되었다. 상서롭지 못하다고 여겨 그 아이를 버렸다.67)
고 하였다. 우선 3) 4)의 두 가지 이야기를 분석해보면 부계 가부장 사회에서 강조하였던 婦德이 드러나 있
음을 알 수 있다. “덕에 조금의 티가 없기에” 잉태한 것이고, 아버지도 없이 임신하였기에 “배속에 아기가 없
기를 빌었다”고 하였다. 또 3)에서는 임신 후 ‘열 달’이라고 하는 잉태기간까지 묘사하고 있어 부계사회 남녀
교합에 의한 생육과 잉태와 출산에 관한 분명한 인식이 나타나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야기가 존재한다
는 것은 당시 혼전 성관계가 자유롭고, 처녀의 정조관념이 아직은 확립되지 않았던 때였음을 짐작하게 하지
만 그 이면에는 이미 부계의 정립이 이루어지기 시작했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68) 자유로운 성관계와
64) 劉勤, 앞의 책, 186쪽.
65) (淸)馬瑞辰 撰, ��毛詩傳箋通釋��, 871쪽. “知姜嫄實相傳爲無夫而生子, 以姜嫄爲帝嚳妃者誤也。”
66) ��詩經·魯頌·閟宮��, “赫赫姜嫄, 其德不回. 上帝是依, 無災無害, 彌月不遲, 是生后稷。”
67) 劉向, 黃淸泉 註譯, ��新譯列女傳��, 三民書局, 1995. ��列女傳��, “棄母姜嫄者, 邰侯之母也。唐堯之時, 生見巨人迹, 好而履之,
歸而有娠, 浸以益大, 心怪惡之。卜筮禋祀, 以求無子, 終生子, 以爲不祥而棄之。”
68) ��史記·呂不韋列傳��, “여불위가 한단에서 아름답고 춤 잘 추는 여인과 함께 살았는데 그녀가 임신한 것을 알았다. 자초가
여불위의 집에 초대되어 술을 마시다 이 여인을 보고 마음에 들어 그녀를 달라고 하였다.……마침내 그 여인을 바쳤다. 그
여자는 자신이 임신하였음을 숨기다 출산일을 넘겨 아들 政을 낳았다.(呂不韋取邯鄲諸姬絶好善舞者與居, 知有身。子楚從不
韋飮, 見而說之, 因起爲壽, 請之。……乃遂獻其姬。姬自匿有身, 至大期時, 生子政。)” 여기서 여불위가 임신여부나 기간을 판
단하였다 했으니, 이것은 기존의 자유롭게 성관계를 하며 그 출산시기를 판단하지 못했던 시절과는 구별되는 것이고, 임신
을 숨겼다 했으니 이것은 여인의 정조관념을 중시여기기 시작했다는 것으로 파악된다. 춘추시대까지는 중춘절에 남녀의 광
란적 성축제가 존재했기 때문에 자유로운 성관계나 정조관념이 엄격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전국말기에 이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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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정조 등에 대해 인식하고 이것을 제한했다는 것은 곧 혈통을 부계로 정착시키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4)에서는 집 밖에서 이루어진 불분명한 잉태에 대한 두려움으로
배속 아이에 대한 죽음을 바란다 하였으니 이 역시 여성의 정조에 대한 인식과 제한이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위 3) 4)의 이야기와 관련하여 생각해보면 棄의 출생내력은 한 나라의 시조를 聖化하기 위한
감생적 신화구조를 취하고는 있지만 윤리 도덕적 관념이 그 바탕에 포함된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견해로만 棄의 이야기를 해석하게 된다면 周나라 시조 신화의 신성함을 부각시킬 수 있을까?
앞에서 말했듯이 감생에 의한 탄생은 그것이 야합에 의한 것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그 관건은 바로 ‘감생’ 그
자체여야 신성함이 두드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여성을 잉태케 하는 대상이 구체적인 남성이 아니
라 이물이거나 그것의 신비한 힘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열 달 만에 태어났다고 다행이라 여길 이유
도 없고, 이물에 의해 임신했다고 해서 상서롭지 않다고 여길 이유란 전혀 없는 것이다. 오히려 그런 제약으
로 규정한다면 그것 자체가 문명화된 사회의 흔적이요, 부계사회의 윤리 도덕관념이 반영된 것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위의 이야기들에서 감생과 직접 관련된 棄의 출생과정만을 조금은 다른 각도
로 바라본다면 周나라 건국신화라 할 수 있는 그들의 시조 신화가 본래 목적에 맞는 신성한 이야기로 재현될
수 있을 것이다.
감생신화의 대부분은 한 국가의 정통성 정립을 목적으로 그 시조에 관한 이야기를 聖化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많은 감생신화는 건국신화이며 시조신화의 모습을 하고 있다. 위에서 살펴 본 대표적 契과 棄의 감생
신화 역시 각각 殷과 周의 건국 시조에 관한 이야기로 시조들의 신성함을 부각시키기 위한 이야기들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시조들의 이야기의 경우 그 부모가 되는 인물 역시 범상치 않은 형상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
다. 이 역시 신성한 인물과 관련하여 그 神聖을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를 구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위에서 예시한 棄의 이야기들을 통합하여 다시 살펴본다면, 帝 혹은 上帝라고 하는 아버지가 등장했을 경
우와 그렇지 않을 경우로 구분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구체적인 아버지의 등장 없이 棄가 어머니와 이물, 즉 거인의 발자국에 의한 감응으로 태어났을 경우
이다. 위 예문 2)와 4)의 ��사기��와 ��열녀전��의 경우에는 ‘帝’에 대한 언급이 없다. 제곡의 아내였다는 말은
있지만 이에 대해 王逸은 ��楚辭·天問��에서 “姜嫄은 후직을 남편 없이 낳았기 때문에 얼음 위에 버린 것인
데, 새들이 날개를 덮어 棄를 따뜻하게 해주는 것을 보고 신령스럽다 여겨 다시 데려다 키운 것이다.”라 하였
다.69) 이것은 許愼(30~124)이 “聖人들은 모두 아버지 없이 하늘에 감응되어 태어난다.”고 한 것과 일치하는
견해이다.70) 이와 같은 견해들을 종합하면 시조들의 탄생은 일상의 남녀결합과 같지 않음을 설명하며 그들
의 신성함을 부각시킴으로써 새로운 세상이 정립되었음을 알리고자 하였던 감생신화의 의도를 그대로 받아
들인 것이라 볼 수 있다.
두 번째 帝라고 하는 아버지가 등장했을 경우인데 이 역시 단순히 남녀결합이 아니라 이물 혹은 영적 교
서는 임신을 전후로 한 이성적 판단이 생기면서 위의 문제들이 해결되기 시작했던 것 같다.
69) (淸)馬瑞辰 撰, ��毛詩傳箋通釋��, 872쪽. “姜嫄以后稷無父而生, 棄之於冰上, 有鳥以翼覆薦溫之, 以爲神, 乃取而養之。”
70) 劉勤, 앞의 책, 188쪽 재인용. 許愼, ��五經異義��, “聖人皆無父感天而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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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에 의한 감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문일다의 견해 이외에 棄는 아버지 帝와 어머니 姜嫄의
결합에 의해 태어난 것이므로 1)의 ��詩經·生民��의 이야기를 감생신화가 아니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71) 하
지만 이 또한 ��詩經·生民��의 원래 뜻이나 신화적 의도와 일치하지 않는 면이 있다. 棄의 아버지로 언급되고
있는 帝는 上帝 혹은 天帝라 볼 수 있으므로 姜嫄의 임신이 일상적인 남녀결합에 의한 것은 아님을 나타내기
때문이다.72) 또 棄의 탄생을 단군의 탄생과 비교하여 판단해본다면 上帝가 환웅과 유사한 형상으로 등장하
고 있음을 알 수 있다.
��三國遺事��에서는 여성으로 변한 웅녀가 혼인할 대상이 없어 신단수 아래에서 잉태하기를 빌었더니 환웅
이 잠시 변하여 그와 혼인해 아들을 낳았다고 하였다. 단군탄생과 관련된 이 이야기는 ‘神靈에 의한 여성 잉
태관’을 드러낸 것이라고 해석된다.73) 즉 하늘의 아들 환웅은 檀樹에 깃든 靈的 존재로서 농경 재배민에게
존숭의 대상이었으며, 여성원리인 동굴로부터 재생된 웅녀는 땅을 상징하는 어머니로서 이 둘의 결합으로 단
군이 탄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환웅은 잠시 변하여 웅녀와 혼인했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단
순한 성적결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원초적이며 일회적인 천지간의 결합을 재현한 것이라 볼 수 있기 때
문이다. 다시 말해 일상의 남녀결합이 아닌 靈으로서 웅녀를 임신케 했다는 의미인 것이다.74) 물론 단군신화
는 天神의 자손임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도 내포되어 있기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형상이 더욱 신성화된 구체
적 모습으로 묘사되었지만 단군 또한 일상의 남녀결합에 의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웅녀인 어머니가 영적 감
응으로 잉태된 것이므로 棄의 탄생과정과 감생의 모티브가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이들 감생신화를 통
해 건국의 시조인 棄와 단군은 그 신성함이 부각되었고, 이로 인해 그의 어머니인 姜嫄과 웅녀는 地母를 상
징하는 神聖母로서 추앙되었다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위 예문 2)와 4)의 경우에는 帝에 대한 언급이 없으며, 姜嫄이 제곡의 아내였다는 기록은 있
지만 제곡과 姜嫄 사이에서 棄가 태어난 것이라 보기에는 그 개연성이 부족하다. 특히 司馬遷(약B.C145~약
B.C.86)은 姜嫄이 “들에 나갔다가 거인의 발자국을 발견하였다”고 하였으니, 이를 두고 단순한 일상의 남녀
결합에 의한 탄생이라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요컨대 감생신화라는 본래의 의도를 생각하며 棄의 탄생 이야기를 정리해 본다면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볼
수 있을 것이다. 姜嫄은 제곡의 아내이다. 그녀는 들에 나갔다가 커다란 발자국을 발견하고 그것을 밟았더니
몸에 신령한 기운을 느꼈다. 이것은 천제의 신령한 기운이 姜嫄에게 투사된 것으로 그녀는 이에 감응되어 임
71) 이가원 감수, ��新譯 詩經��, 홍신문화사, 1994, 453쪽. 이것은 ��毛傳��에서의 견해를 반영한 것으로, 姜嫄이 제곡의 뒤를 따
라 郊禖의 사당에 제사를 지내고, 이를 하늘이 어여삐 여겨 아이를 점지한 것이라 해석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때의 帝는
제곡이라 여긴 것이다.
72) 위 「生民」의 이후 구절에 “上帝不寧”이라 하였고, 「閟宮」에서도 “上帝不依”라 하였으므로 여기에서 帝는 곧 上帝라 볼 수
있다는 것이다.((淸)馬瑞辰 撰, ��毛詩傳箋通釋��, 871쪽), 또 왕일은 ��楚辭·天問��의 “稷維元子, 帝何竺之?”에 대하여 풀이하
기를 “帝는 天帝이다(帝, 謂天帝也)”라고 하였다.(金開誠, ��屈原集校注 下��, 405쪽).
73) 황패강, ��한국신화의 연구��, 새문사, 2006, 94~102쪽.
74) 황패강, 위의 책, 217~224쪽. 이처럼 시조의 탄생과 관련하여 상제인 아버지가 영으로 어머니를 감응시키는 예는 주몽의
탄생신화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金蛙王이 柳花를 별궁에 유폐하자, 解慕漱가 햇빛을 비추었더니, 그로 인해 유화가 잉태했
다고 하였는데, 이 역시 하늘의 해모수가 靈으로 유화를 감응시킨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의 결합은 반복적인 것이
아닌 일회적인 것으로, 그들의 맺어짐 자체가 천지간의 결합이며 우주창생의 사실과 관련되는 것이라 고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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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국의 생식숭배와 神話 속 女神에 투사된 ‘母性’ 모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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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하였고 아들 棄를 낳았다.
다시 말해 이것은 제곡이라는 남편이 존재하지만 평범한 임신이 아닌 감생에 의한 것임을 강조한 것이고,
棄의 직접적인 아버지라 할 수 있는 帝 즉 上帝가 존재하지만 그가 직접 現身하여 맺어지는 결합이 아닌 남
성을 상징하는 발자국에 의한 감응이므로,75) 이로부터 태어나게 된 棄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신성한 인물임
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어머니 姜嫄으로부터 棄가 태어났다는 가장 중요한 연계성은 변함이 없
었지만 아버지 존재여부에 대한 기록이나 해석이 사회문화적 환경에 따라 엇갈렸던 것이다.
위 고찰을 통해 짐작할 수 있듯이 감생신화에서 아버지 존재의 등장 여부는 ‘감응’에 그다지 깊은 영향을
준다고 볼 수는 없다. 감생신화는 강한 생명의 기운이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며, 분명한 아버
지의 등장이 곧 어머니 존재의 배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帝라는 분명한 아버지의 등장은 생육에 대한 사람들
의 분명한 인식이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감응이라는 조건적 필요성을 배제할 수는 없었으므
로 감생신화를 크게 변형시키지는 못했던 것이다. 특히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아버지의 존재는 帝이든 다른
이물이든 간에 지극히 안정된 요건으로 신화의 이야기 속에 자리 잡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신성한 인물의 어
머니의 형상은 비교적 안정된 요건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감생신화 속 여성들은 모두 신령스
런 異物이나 기운에 의해 감응된 것이므로 그녀들은 자연히 神이 되어 제사를 받는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하
였다. 사회 권력의 중심이 남성 쪽으로 옮겨가고 있어도 姓氏는 여전히 어머니를 따랐던 것처럼 감생의 시조
모들은 종족의 여신으로 여전히 높은 지위를 유지하였기 때문이다.76) 그러므로 감생신화 속 시조모의 생육
이야기는 모성 모티브가 투사된 것이라 볼 수 있으며, 이것은 또한 고대 여성숭배 전통과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3. 高禖의 어머니 여신:혼인과 자식점지의 어머니
감생신화는 고대 중국의 高禖神에 대한 제사의 기록이며 찬송이기도 하였다. 위에서 이미 고찰하였듯이
��시경·생민��이나 ��시경·현조��의 기록들은 周와 殷나라 시조와 그들의 어머니인 姜嫄과 簡狄의 신성함을
함께 노래한 대표적인 찬송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는 봄철이면 넓은 들판에서 거행되었던 고
매 제사에 대하여 기록한 것이기도 하다.77) 따라서 이를 통해 高禖神에 대한 제사에는 자식점지를 기원하던
풍습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당시 高禖神에 대한 제사는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우선 ��禮記·月令��의 기록을 살펴보겠다.
75) 발은 원초적 에로티시즘으로, 프로이트는 발을 남근의 상징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거인의 커다란 발자국은 거대한 존재 곧
초월적인 힘에 대한 상징이며, 남성적 힘의 상징이기도 한 것이다.
76) 잔스추잉 저, 안동준·김영수 역, 앞의 책, 44쪽.
77) 李學勤 主編, ��禮記正義 上��, 474쪽. 「生民」 及 「玄鳥」 毛傳云: “姜嫄은 제를 따라 고매 신에게 제사를 올렸다(姜嫄從帝而
祠于郊禖。)”, 又云: “簡狄은 제를 따라 高禖神에게 아들 점지를 기원하였다(簡狄從帝而祈于郊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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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춘의 달. 이 달에 제비가 돌아왔다. 제비가 돌아오는 날에는 高禖神의 사당에 소와 양과 돼지의
세 가지 존귀한 희생을 바치는 의식을 행하였다. 여기에는 천자가 친히 참가하였고, 후비도 구빈들을
거느리고 천자를 따랐다. 이때 천자는 임신한 궁중 권속들을 위하여 예를 올리고, 高禖神 앞에서 그들
에게 활의 전대를 채워주고 화살을 나누어주며 아들 낳기를 기원하였다.78)
위 예문을 보면 고매의 제사는 천자가 궁중의 여자권속들을 이끌고 나와서 의식에 참여할 만큼 규모가 큰
의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79) 그리고 이런 성대한 의식을 통해 자식 점지를 기원했던 사실도 알 수 있다. 천
자는 소, 돼지 등의 희생물을 드리는 이 제사를 통해 궁중의 妃嬪 특히 임신한 비빈을 위한 의식도 같이 행
하였다. 특히 임신한 여성들에게 활과 화살을 나누어주는 것은 아들 생산을 축원하기 위한 것이었다.80) 농사
의 풍요와 더불어 훌륭한 아들점지를 빌기 위한 것이었다. 이외에도 고매 제사에 관련된 기록은 많다.81)
그런데 이 때 고매 제사에서는 도대체 어떤 신에게 제사를 드리며 아들 점지를 기원하였던 것일까? 우주
와 인간을 창조하였던 여신 女媧는 漢나라 이후 주로 혼인과 인류창조를 주관하는 여신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 때 많은 문헌에서 혼인을 주관한다는 그 중심에 女媧가 高禖神으로 숭배되었다는 기록을 살펴볼 수 있다.
인류의 창조모인 女媧가 땅 신의 사당주인이 되어, 고매로 받들어지게 된 것은 땅으로부터 생산되는 곡식뿐
아니라, 우주만물 그 생명 있는 모든 것의 생산과 풍요는 모두 ‘어머니땅
女媧’의 功力에 의한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周나라 민족은 女媧 대신 자신들의 시조모 姜嫄을 민족의 고매로 섬겼다고 한다.82)
高禖神 女媧에 대해 ��路史��에서는
혼인을 관장하고 행하여 모든 백성들의 혼인 제도를 관장하니 신매라 하였다. 중매의 역할을 맡았으
니 후에 나라가 생기자 고매 신으로 제사지내졌다.83)
高禖神으로 고대에 女媧에게 제사를 지냈다.84)
78) ��禮記·月令��, “是月(仲春之月)也, 玄鳥至。至之日, 以大牢祀于高禖. 天子親往。后妃帥九嬪御, 乃禮天子所御, 帶以弓韣, 授
以弓矢, 于高禖之前。”
79) 고매는 아들을 낳게 한다는 신 또는 그 제사도 포함한다. 그러므로 내용에 따라 ‘高禖神’과 ‘고매 제사’를 혼용하여 사용하
였다.
80) 李學勤 主編, ��禮記正義 上��, 475쪽. 당시 고매를 드릴 때에는 임신한 비빈들에게 神酒를 따라 올려 아들을 기원하게 하였
다고 한다. “天子所御, 謂今有娠者。于祀, 大祝酌酒, 飮于高禖之庭, 以神惠顯之也。帶以弓韣, 授以弓矢, 求男之祥也。”
81) (宋)範曄 撰, ��後漢書��, 臺北: 藝文印書館(影印), “중춘의 달, 성남에서 고매에게 제사 지내며, 많은 제물로서 高禖神에게 올
렸다(仲春之月, 入高禖祠于城南, 祀以特牲。)”, ��通典��, “北齊置高禖壇于南郊旁, ……每歲, 元鳥至之日, 皇帝親帥六宮祀靑帝
于壇, 以太嘷配而祀高禖之神以祈子……大唐月令, 亦以仲春元鳥至之日, 以太牢祀于高禖, 天子親往。” 이 외에도 민간의 고매
제사는 더욱 성행하였다고 한다. 오랜 기간동안 민간에는 명칭이 각각 다른 고매의 장소가 존재했으며, 그 중 어떤 것들은
지금까지도 전통적 행사로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劉勤, 앞의 논문, 99쪽 재인용)
82) (淸)馬瑞辰 撰, ��毛詩傳箋通釋��, 1139쪽. ��詩經·閟宮��에서 閟宮이 姜嫄을 모신 사당이라 하였다. ��傳��에서는 “先妣 姜嫄
의 사당이 周에 있는데 항상 닫혀 있었고 어떤 일도 없었다. 맹중자가 말하기를 ‘이것은 禖宮이다’(先妣姜嫄之廟在周, 常閉
而無事。孟仲子曰: 是禖宮也)”라 하였고, ��箋��에서는 “姜嫄신이 모셔진 곳으로, 이곳은 신궁이다(姜嫄神所依, 故曰神宮)”라
하였다. 때문에 閟宮은 姜嫄을 모신 사당이며 高禖神의 사당으로, 姜嫄은 고매에서 제사를 받는 대상이었다고 하였다.
83) 羅泌, ��路史(四部備要)��, 臺北: 臺灣中華書局. ��路史·後紀二��, “(女媧)……職婚姻, 通行媒, 以重萬民之制, 是曰神媒, 以其載
媒, 是以後世有國, 是祀爲皐媒之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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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국의 생식숭배와 神話 속 女神에 투사된 ‘母性’ 모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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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하였다. 위 내용에 따르자면 女媧는 중매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高禖神으로 받들어졌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아들을 점지해주는 ‘高禖’는 남녀 간의 혼인을 중매하는 중매인 ‘媒’와 같은 뜻이 된다. 다시 말해
高禖의 ‘禖’는 ‘媒’와 같은 중매의 뜻이니, 高禖란 ‘중매의 신’이란 뜻이다. 그러니까 女媧는 남녀의 만남을 주
선하여 혼인하고, 이를 통해 자식을 낳을 수 있도록 중개해 주는 역할을 하였다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女媧
는 왜 고매 신이 되어 사람들에게 숭배되었던 것일까? 또 女媧는 어떤 모습으로 사당에 모셔졌던 것일까?
우리는 이점에 대한 생각하기에 앞서 우선적으로 살펴보아야 할 것이 ��禮記·月令��에서 언급되었던 제사의
장소이다.
제비가 온다는 중춘의 달 거행되었던 고대 중국의 성대하였던 의식의 장소는 땅 신을 모시는 社에서 거행
되었다. 이때의 社란 땅과 관련된 신사 곧 땅 신 혹은 땅 신에 드리는 제사 혹은 땅 신을 모신 곳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땅의 귀신을 ‘地祇’라 하는데, 社는 이 지기를 제사의 대상으로 신격화시킨 것으로, 고대 중
국에서 이 ‘社’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85) 이처럼 토지는 고대 원시시대에 숭배 받는 대상으
로, 고대인들은 만물을 길러주고 일용할 것을 내려준 공덕에 대한 보답으로 땅에 대한 제사를 지냈던 것이
다. 그리고 땅에 대한 제사는 땅 신에 대한 제사로 발전하였다. 그래서 ��禮記·郊特牲��에서 社는 “땅에 제사
지내는 신령스러운 곳”이라 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대지나 대지의 신 社에서 제사를 지냈다는 것은 실제로
모두 여음, 여성, 모성의 신비로움에 대한 고대인들의 인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地’의 개념 역시 여성의 생식 기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설문해자��에서 地는 “가볍고 맑은 陽은 天이 되고, 무겁고 탁한 陰은 地가 되며, 만물이 늘어서는 바이
다.”86) 또 地 중 也는 “여음으로 상형이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고대에 토지는 地母라고 불렸으며, 오늘날까
지도 우리는 토지를 어머니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바로 고대의 토지·여음 숭배의 잔재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여음이 생명 순화 운동의 주체임을 상징하듯이 만물에 있어 대지 역시 여음과 동일한 선상에서 파악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대인들의 관념에는 토지가 여성처럼 만물을 토해내어 키울 수 있는 생식과 양육의
능력을 가진 존재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母, 地, 社는 기본적으로 서로 통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요컨대 만물 생산으로 중심으로 상징되는 땅(대지의 신)과 남성생식에 대한 인식이후 자손생산의 주체인
남녀결합을 주도하는 중매인으로 女媧를 상상하였다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지도 모른다고 할
수 있다. 땅에 대한 제사는 흙 ‒ 여성(자궁)과 생식행위 ‒ 농경 작업으로 동일시되는 농경의 원리로서, 농경민
족이었던 고대 중국인들도 이것을 재현하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고대인들의 대지에 대한 제사의 기록으로부
터 그들이 여성의 음부를 숭배한 자취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여성 음부에 대한 신비한 느낌은 아마도
84) ��路史·餘論��, “皐媒古祀女媧。”
85) 고대의 제왕들은 나라를 세우면 먼저 토지 곧 땅의 신을 위한 ‘社’를 세우고 제사를 올렸다. 토지가 없으면 국가를 세울 수
없고, 백성이 없으면 국가가 성립될 수 없다. 때문에 나라를 일으킨 고대의 군주들은 제일 먼저 자신의 영토에 대한 가호를
비는 ‘社’를 세우고, 아울러 백성의 번성을 위하여 곡식의 신 ‘稷’을 같이 모셨다. 이러다보니 사직은 국가의 절대 聖域이었으
므로, 왕들은 전쟁에서 얻은 포로를 이곳에서 제물로 바치기도 하였다. “社는 땅에 제사지내는 것으로, 음기를 주관한다. 왕
은 북쪽 담 아래에서 남쪽으로 향하고 서서 음에 대답하는 의식을 행하였다.(社祭土而主陰氣也. 君南鄕於北墉, 下, 答陰之義
也。)”(��禮記·郊特性��). 이 외 ��周禮·地官·大司徒��이나 ��莊子·逍遙遊�� 등에서도 社와 관련된 기록들을 살펴볼 수 있다.
86) ��說文解字��, “輕淸陽爲天, 重濁陰爲地。萬物所陳列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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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 洋 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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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숭배라는 형태를 생산해 낸 직접적이고 자연발생적인 이유였을 것이라 여겨진다.
농경생활을 하던 사람들은 만물을 낳고 오곡을 움트게 하는 땅을, 생명을 낳고 기르는 여성의 생식 능력과
동일시하였다. 모든 만물은 땅 속에서 싹이 터 나오기 때문에 땅은 원시인들에게 죽은 대상이 아니라 생명을
싹트게 하는 살아 숨 쉬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신석기 시대 임신한 듯한 나체 여신상은 이런 원시인들의 생
명과 풍요에 대한 소망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또 생산의 풍요한 땅의 원리로서 땅으로부터 나와 흙으로
인간을 창조하였다는 地母神 女媧가 이와 같은 생명의 탄생을 주관하는 신으로 숭배되어 제사의 대상이 되
었다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女媧는 사람을 최초로 만든 공적 때문에 남녀
를 맺어주는 高禖神이 되었고, 이로부터 중국인들은 高禖神 女媧에게 자손을 기원하는 제의를 드렸던 것이
다. 신석기 시대 여신상에게 자손과 생산의 풍요를 기원하였던 聖所는 이후 지모신을 모시는 성소 社에서 계
속되었다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모계적 유풍에서 비롯된 만물과 인간을 창조한 女媧의 신성함은 자손을 점
지하는 高禖神으로 변형되었지만 그 숭배에 근원에는 생명 창조와 관계된 여성숭배 사상이 여전히 계승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여신의 시대가 지나고 부계 가부장 질서에서 여성의 순종과 희생을 강요하였던 사
회적 배경에서도 여성의 신비로운 창조적 능력인 생육의 기능은 사람들의 머리에서 지울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女媧의 형상에 투사된 것이라 할 수 있다.
Ⅳ. 나오는 글
본 논문에서는 ‘母性’을 모티브로 한 여신형상에 주목하여 연구를 진행하였다. 여성의 이미지 중 ‘모성’은 남
성이 모방하거나 대신할 수 없는 여성고유의 특징으로 가장 대표적인 여성의 원형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Ⅱ장에서는 선사시대의 여신상과 여신, 여성숭배를 살펴서 생물학적 속성을 바탕으로 한 ‘모성’ 모티
브가 문화에서 여성의 긍정적 이미지이며 여성의 주체의식의 핵심임을 이해해보았다. Ⅲ장에서는 ‘모성’ 모티
브가 투사된 중국신화 속 여신 이야기를 살펴보았다.
우주와 인류창조의 어머니 여신 女媧,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모성이 직접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부계사회의
산물인 感生神話 속 여신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高禖 제사에서의 여신 이야기를 통해 모성 모티브가 어떻게
반영 되었는지를 살펴 이에 따른 여성의 긍정적 이미지를 이해해보았다.
大母神 女媧는 인류의 창조자 이전에 이미 신들의 창조자로서, 신들 중 최고신이었다는 말이니 자생할 수
있는 존재, 즉 ‘신성모’였다. 生育과 관계된 여성만의 권위와 특징은 남성이 모방하거나 대신할 수 없었기 때
문에 그 대표적인 여성 원형인 모성을 대모신 女媧에게 반영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三皇五帝를 비롯한 殷
周 시조의 탄생은 어머니 한 사람에 의한 것은 아니지만 어머니를 잉태케 한 대상들이 모두 남신이나 제왕
대신 異物에 의해 이루어졌다. 周의 시조 棄와 관련하여 帝라고 하는 구체적인 아버지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이 또한 단순히 남녀결합이 아니라 이물 혹은 영적 교감에 의한 감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感生神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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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의 과도기적 사회배경이 반영된 始祖母 여신의 이야기로, ‘어머니 ‒ 자손’의 관계
가 신화에서 ‘신성 인물 ‒ 신성 어머니’의 구조로 변형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감생신화는 모계사회 생
육의 주체였던 여성에 대한 숭배가 신화에서 모성 모티브로 재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주와 인간을 창조하였던 여신 女媧는 많은 문헌에서 高禖神으로 숭배되기도 하였다. 女媧는 사람을 최
초로 만든 공적 때문에 남녀를 맺어주는 高禖神이 되었고, 이로부터 중국인들은 高禖神 女媧에게 자손을 기
원하는 제사를 드렸던 것이다. 신석기 시대 여신상에게 자손과 생산의 풍요를 기원하였던 聖所는 이후 지모
신을 모시는 성소 社에서 계속되었다. 다시 말해 만물과 인간을 창조한 여신 女媧는 혼인을 주관하고 자손을
점지하는 高禖神으로 직능이 변형되었지만 그 숭배의 근원에는 생식과 관련된 모성 모티브가 신화를 통해
재현되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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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논문은 2014년 11월 27일에 투고되어,
2014년 12월 11일까지 편집위원회에서 심사위원을 선정하고,
2014년 12월 29일까지 심사위원이 심사하고,
2015년 1월 5일 편집위원회에서 게재가 결정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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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국의 생식숭배와 神話 속 女神에 투사된 ‘母性’ 모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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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Ancient China’s Procreation Worship and ‘Motherhood’ Motif Projected in Myth
87)Lee, Inkyung*
This study was conducted by focusing on the goddess figure with the motif of ‘motherhood’.
The reason is because among various images of women, ‘motherhood’ can be seen as the
representative archetype of women as unique feature of women that cannot be imitated or
replaced by men.
First of all, Chapter Ⅱ reviewed prehistoric times’ goddess image, goddess and women worship
to understand that the ‘motherhood’ motif based on biological attribute is a positive image of
women in culture and the core of sense of sovereignty of women. Chapter Ⅲ reviewed the
stories of goddess with the motif of ‘motherhood’ projected in Chinese myths.
The mother goddess 女媧 of the creation of universe and humankind, the goddesses in 感生神話
(a myth of a sacred figure born from a mysterious object) in which motherhood has been
expressed in fragment but directly and the goddess story of 高禖(sacred matchmaking) ancestral
rites were examined to review how the motherhood motif has been reflected to understand
according positive image of women.
[Key Words] motherhood motif, goddess, women worship, procreation, the maternity godd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