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나이 여자 스물다섯
교회첨탑처럼 나이가 높은 유부남을 사랑한다고 고백했더니
어머니는 질 질 질 내머리를 끌고 겨울 혹한의 우물가로 나가셨습니다
말은 얼어붙은채 두려운 침묵만이 흘러 마치 어둠이 부러질 듯 굳었습니다
어머니는 눈을 감은 채 하나하나 옷을 벗으시더니 150미터 지하 물을
두레박으로 빠르게 길어 올려 머리 위에서부터 부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의 젖꼭지가 고드름이 되어 얼어 빛났습니다
어머니의 머리가 도봉산처럼 삐쭉삐쭉 일어서 절벽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다음 얼어 타질 듯한 미끈거리는 오른손을 치켜들고
어머니 스스로의 몸에 채찍을 날리기 시작했지요
예리한 채찍은 금세 어머니의 어깨와 허벅지에 붉은 지렁이 기어가고
다시 온몸에 핏물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피까지 기절했을까 피까지 멍들어 푸르렀습니다
오직 나의 벌은 그런 어머니를 바라보는 일이었습니다
그 순간 나는 수천 번 짐승처럼 울며 뒹굴었지만
숨 넘어가는 어머니를 등 돌리며 포도송이 같은 아이를 안고 있는
그 남자를 향해 걸어갔습니다
그 이후로 내 생애 해는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로 어머니는 딸의 해가 떠오르기를 기도하다가 생을 마쳤습니다
- 시집 『어머니 그삐뚤삐뚤한 글씨』(문학수첩,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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