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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

그랬으면 좋겠네 / 이시하

애인이 빨리 늙어 소처럼 느리고 순해지면 좋겠네

빨리 늙은  애인이 느지막이 일어나 찬 없는 밥을

우물우물 먹고 나서 산수유 꽃 피었드만, 그거나

보러 가지, 그랬으면 좋겠네 사람구경도 참 쏠쏠하구먼, 

천천히 걷지 뭐, 그랬으면 좋겠네 강 언덕에 시름도

없이 앉아서는 노을빛이 퍽 곱구먼, 그랬으면 좋겠네

주름진 내 손을 슬쩍 당기며 거 참, 달빛 한 번

은근하네, 그랬으면 좋겠네


  애인이 빨리 늙어 꾀병 같은 몸사랑은 그만두고

마음사랑이나 한껏 했으면 좋겠네 산수유 그늘 아래

누워 서로의 흰 머리칼이나 뽑아주면 좋겠네 

성근 머리칼에 풀꽃송이 두엇 꽂아놓고 킥킥거렸으면

좋겠네 빨리 늙은 애인이 허허 웃으며 주름진 이마나

긁적거리면 좋겠네 아직두 철부지 소녀 같다고

거짓 농이나 던져주면 좋겠네 한세상 흐릿흐릿

늙어가는 게 싫지는 않냐 물으면 흥, 흥, 콧방귀나

뀌었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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