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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군사이야기

자바해 해전(37)-엣솔 침몰/ http://blog.naver.com/imkcs0425/221186093390


37. 엣솔 침몰

1942년 3월 1일 오후 3시 50분에 항공모함 4척(아카기, 카가, 소류, 히류)을 기간으로 한 나구모 기동부대는 크리스마스섬 남동쪽 400km 해상에서 16노트의 속력으로 남하 하면서 페코스 공습을 마치고 돌아온 함재기를 수용하고 있었다.


그때 전투초계중이던 아카기의 제로기가 기동부대에서 30km 거리에서 엣솔을 발견하고 "마블헤드급 순양함 1척이 접근 중" 이라고 보고했다. 당시 일본군은 클렘슨급 구축 함을 역시 굴뚝 4개를 가진 오마하급 경순양함으로 오인하는 일이 흔했다.


클렘슨급 구축함 엣솔(DD-219).
https://en.wikipedia.org/wiki/USS_Edsall_(DD-219)


오마하급 경순양함 마블헤드(CL-12).
https://en.wikipedia.org/wiki/USS_Marblehead_(CL-12)


기동부대 사령관 나구모 주이치 중장은 자신의 항공모함에 적의 순양함이 그렇게 가까이 접근했다는 사실에 불쾌감을 드러내면서 제3전대와 제8전대로 이루어진 지원대의 지 휘관인 제3전대사령관 미카와 군이치 중장에게 즉시 처리하라고 명령했다. 미카와 중장의 명령에 따라 제3전대제1소대(히에이, 기리시마)와 아베 히로아키 소장의 제8전대 (도네, 치쿠마)가 엣솔을 잡으러 출격했다. 오후 3시 52분에 중순양함 치쿠마가 엣솔을 발견했다.


치쿠마가 발견했을 당시 엣솔은 고속으로 북상 중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당시 엣솔이 랭글리로부터 넘겨받은 제33추격비행대대의 조종사 32명을 내려주러 칠라찹을 향 하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3월 1일 오전 9시에 글래스포드 제독으로부터 모든 미국함정은 자바에서 탈출하라는 명령이 떨어졌고 엣솔도 수신했을 것이다. 따라서 엣솔은 칠라찹이 아니라 글래스포드 제독이 지정한 집결점을 향하여 남하하다가 나구모 기동부대를 만나자 반전하여 도망치던 중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오후 3시 53분부터 치쿠마가 21,500m 거리에서 20cm 주포로 사격을 시작하자 엣솔의 함장 조슈아 닉스 소령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구축함 1척이 전함 2척 및 중순양함 2 척과 싸워서 살아남을 수는 없었다. 문제는 속력을 이용하여 도망칠 수도 없다는 점이었다. 클렘슨급 구축함의 서류상 최고속력은 35노트였으나 엣솔은 건조된지 20년이 넘은 데다가 얼마 전에 얕은 바다에서 폭발한 폭뢰의 반향으로 프로펠러와 추진축에 피해를 입은 상태였다. 따라서 엣솔의 속력은 아무리 빨라도 30노트를 넘기지 못했는데 반하여 치쿠마와 도네의 속력은 30노트를 가볍게 넘겼다. 엣솔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최대한 피해를 면한 상태로 해가 질때까지 도망다니다가 어둠을 틈타 탈출하는 것이었다.


해가 질때까지 살아남기 위하여 닉스 소령이 택한 방법은 연막과 급격한 변침 및 변속이었다. 엣솔은 시의적절하게 연막을 사용하여 몸을 숨기면서 계속 침로를 바꾸어 마치 발 레리나처럼 어지럽게 해상을 돌아다녔다. 또한 최고속력으로 달리다가 갑자기 멈추었다가 다시 최고속력으로 달리는 식으로 계속 변침했다. 이러한 전술은 효과가 있었으며 만일 일본함재기들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엣솔은 어두워질 때까지 살아남아 탈출에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제3전대제1소대에서는 오후 4시 15분에 탄착관측을 위하여 95식수상정찰기 3대를 발함시켰다. 히에이는 16분부터 27,000m 거리에서 36cm 주포로 사격하여 협차에 성공 했으나 명중탄은 내지 못했다. 중순양함 도네는 오후 4시 45분부터 23,500m 거리에서 사격을 시작했다.


엣솔도 무력하게 도망다니지만은 않았다. 4인치 주포로 열심히 반격했으나 명중탄을 내지 못했다. 하지만 엣솔의 어뢰는 바짝 추격하던 치쿠마를 깜짝 놀라게 만들어 추격 기 세를 꺾었다. 이때쯤 미카와 중장은 상대가 순양함이 아니라 구축함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오기가 나서 더 열심히 추격했으나 아무런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이때까지 엣솔은 명중탄은 물론 지근탄도 맞지 않았다. 엣솔을 추격하면서 제3전대제1소대가 발사한 포탄은 36cm 포탄 298발, 15cm 포탄 132발이었으며 제8전대가 발사한 포탄은 20cm포탄 844발, 5인치 포탄 62발에 달한다.


하지만 이때 엣솔에게 치명적인 사태가 발생했다. 수상부대의 지지부진한 추격전을 지켜보던 나구모 중장이 함재기의 출격을 명했던 것이다. 오후 4시 30분에서 35분에 걸쳐 카가에서 8대, 소류와 히류에서 9대씩 총 26대의 99식함상폭격기가 250kg 짜리 폭탄을 1발씩 매달고 이함했다. 엣솔의 연막은 항공기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26대로부터 급 강하폭격을 당한 엣솔은 여러발의 명중탄과 지근탄을 맞아 화재가 발생하고 동력이 끊어졌다. 함장 닉스 소령은 퇴함명령을 내렸다.


이제 일본함정들이 접근하여 동력을 잃고 함미는 물속에 잠긴 채 무력하게 떠있는 엣솔에 집중 사격을 가하여 도네가 20cm 포탄 1발을 명중시켰다. 도네의 촬영기사가 이 광 경을 90초간 녹화했으며 나중에 일본군은 가장 극적인 장면을 뽑아내어 '영국함정 포프의 침몰' 이라는 제목으로 배포했다. 실제로 영국해군에는 포프란 함정이 없었으므로 이 는 일본군의 착각이었다. 이 착각때문에 엣솔이 포탄에 맞는 장면이 미국구축함 포프가 포탄에 맞는 장면으로 잘못 알려지게 되었다. 엣솔은 오후 5시 30분에 침몰했다.


엣솔이 포탄에 맞는 장면. https://en.wikipedia.org/wiki/USS_Edsall_(DD-219)

치쿠마는 엣솔의 침몰 현장에 도착하여 생존자 5명 이상을 구조했다. 이때 주변에 연합군 잠수함이 있다는 잘못된 경보를 받은 치쿠마는 구조를 중단하고 현장을 떠났으며 뒤 에 남겨진 조난자들은 모두 실종되었다. 구조된 생존자들은 치쿠마 함상에서는 정당한 대우을 받았으나 켄다리에 상륙하여 해군헌병대에 넘겨진 후 모두 참수되었다. 나구모 기동부대가 엣솔의 추격과정에서 보여준 추태를 덮으려고 생존자들을 서둘러 처형했다는 의혹이 있다.


그리하여 엣솔의 승조원과 탑승했던 조종사들은 모두 죽었으나 그들의 희생은 헛되지 않았다. 만일 엣솔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나구모 기동부대는 남진하여 페코스의 침몰 지 점에 도달했을 것이고 구조를 위하여 달려온 휘플과 마주쳤을 것이다. 엣솔을 추격하느라고 나구모 기동부대는 북쪽에 머물렀고 엣솔이 가라앉은 다음에는 페코스에 대해서 흥미를 잃어버렸다. 그 결과 휘플의 승조원과 페코스의 조난자 233명이 목숨을 건졌다. 페코스의 조난자들이 들었던 북서쪽의 폭음은 엣솔이 그들을 위하여 희생하는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