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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군사이야기

과달카날 전투 (36) - 에스퍼란스 해전 (1) /blog.naver.com/imkcs0425/60111614705



36. 에스퍼란스 해전 (1) - 증원경쟁

[에스퍼란스곶은 과달카날섬 북서쪽끝(화살표시)에 있으며. 에스퍼란스 해전을 "제2사보섬해전" 이라고도 한다]


일본육군제 4 연대가 해병대의 공격을 받아 큰 피해를 입고 마타니카우 지역에서 밀려난 1942 년 10 월 9 일 자정 무렵에 일본제 17 군 사령관 햐쿠다케 하루요시 중장을 태운 일본경순양함 다츠다와 구축함 5 척으로 이루어진 도쿄 특급이 교두보 서쪽의 코컴보나에 도착했다.
햐쿠다케 중장은 제 17 군사령부 , 신호부대 , 수송부대 및 의무대 요원 400 명과 함께 상륙했다.
마이즈루 제 4 해군육전대원 600 명도 같이 상륙했다.
당시 일본군은 구축함 1 척당 약 150 명의 병력을 수송했는데 9 월 말부터 매일 5- 6척의 구축함이 과달카날에 도착 함으로써 10 월 15 일이 되자 햐쿠다케 중장 휘하에 약 20,000 명의 병력이 집결했다.
반면 남태평양해역군사령관 곰리 제독은 제 7 해병연대의 증원 이후로는 과달카날에 대한 구체적인 병력증원계획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남태평양해역군의 육군사령관 하몬 장군이 과달카날에 추가로 육군 1 개 연대를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 곰리 제독은 이미 실효성이 없어진 은데니 상륙작전 계획만 만지작거리면서 도무지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과달카날을 시찰하고 다시 누메아로 돌아온 니미츠 제독은 망설이던 곰리 제독에게 누메아에 주둔 중인 아메리칼 사단 병력 중에서 1 개 보병연대를 즉시 과달카날에 파견하고 , 별도로 수상함대를 내보내어 일본군의 도쿄 특급을 저지하라고 명령하고는 진주만으로 돌아갔다.
이 명령에 따라 제 164 보병연대 2,850 명 , 항공요원 210 명 , 그리고 해병대 보충병 85 명과 보급품을 만재한 수송함 맥콜리와 자일린이 구축함 3척 및 구축함을 개조한 기뢰부설함 3 척의 호위를 받으면서 10 월 9 일에 누메아를 출항했다.
수송선단의 전방에는 중순양함 2척 ( 샌프란시스코 , 솔트레이크시티 ), 경순양함 2 척 ( 보이스 , 헬레나 ), 구축함 5 척 ( 파렌홀트 , 뷰캐넌 , 래피 , 던칸 , 맥칼라 ) 으로 이루어진 노먼 스코트 소장의 제 64 기동부대가 항진하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에 승좌한 스코트 제독은 곰리 제독으로부터 일본군의 함정 및 주정들을 탐색하여 격멸함으로써 수송선단의 안전을 보호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었다.

( 제 64 기동부대 사령관 노먼 스코트 소장 )

제 64 기동부대는 지난 3 주일간 거의 매일 밤마다 야전훈련을 강도높게 실시해왔다. 이제 스코트 제독은 일본해군을 상대로 그동안 갈고닦은 야전능력을 보여주겠다고 결심했다.
한편 일본군은 병력은 구축함을 이용하여 수송할 수 있었으나 , 중화기류와 대량의 보급품을 수송하기위해서는 아무래도 수송선이 필요했다.
따라서 , 일본군들은 수송선의 안전에 가장 큰 위협이 되는 헨더슨 비행장을 무력화시키기 위하여 10 월 11 일부터 대규모의 공습과 더불어 야간함포사격을 가할 계획을 세웠다. 제 25 항공전대는 10 월 11 일에 35 대의 1 식 육상 공격기와 30 대의 제로기를 보내어 헨더슨 비행장을 폭격했다.
그러나 , 헨더슨 비행장은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으며 , 칵터스 항공대의 와일드캣들은 반격을 가하여 1 식 육상공격기 8 대와 제로기 4 대를 격추했다. 와일드캣은 2 대가 격추되었다.
11 일 오전에 사운더즈 대령의 제 11 폭격비행전대 소속 B - 17 중폭격기 1 대가 슬롯을 따라 남하하는 일본함대를 발견했다. 중순양함 3 척 ( 아오바 , 기누가사 , 후루다카 ) 과 구축함 2 척 ( 하츠유키 , 후부키 ) 로 이루어진 고토 아리토모 소장의 포 격부대였다.

( 고토 아리토모 제독.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http://blog.naver.com/mirejet/110045539166 )

포격부대의 후방에서는 수상기모함 2척 ( 닛신 , 치토세 ) 과 호위를 맡은 구축함 6 척 ( 아키즈키 , 아사구모 , 나츠구모 , 야마구모 , 무라구모 , 시라유키 ) 으로 이루어진 조시마 다카지 소장의 증원부대가 뒤따르고 있었다.
수송임무를 맡은 닛신과 치토세는 육군병력 728 명을 비롯하여 산포 2 문 , 150mm 곡사포 4 문과 견인용 트랙터 4 대 , 대공포 1 문 , 상륙주정 6 척과 함께 탄약 , 의약품 및 기타 보급품들을 만재하고 있었다. 고토 제독의 포격부대는 오후 4 시에도 발견되었으며 , 오후 6시 10 분에 발견되었을 때에는 사보 섬 서방 약 160km 지점에 도달해 있었다.
낮동안 일본정찰기의 행동반경 밖에 머무르던 제 64 기동부대는 오후 4 시가 되자 29 노트의 속력으로 급히 북상하 여 사보 섬 서방해역에 잠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