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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군사이야기

과달카날 전투 (40) - 포격 (The Bombardment) /blog.naver.com/imkcs0425/60111947355



40. 포격 ( The Bombardment)

교두보의 해병대가 일본군의 150mm 곡사포 때문에 골치를 썩이고 있던 1942 년 10 월 13 일 , 과달카날 섬의 북쪽에서는 150mm 곡사포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커다란 시련을 해병대에게 안겨줄 세력이 남하하고 있었다.
바로 전함 공고와 하루나로 이루어진 구리타 다케오 중장의 제 3전대였다.
14 인치 주포 각 8 문씩을 장비한 공고와 하루나는 바야흐로 교두보의 미해병대원들에게 난생 처음 겪어보는 무시무시한 포격을 가하여 헨더슨 비행장을 무력화시킴으로써 과달카날로 향하고 있는 일본수송선단의 안전을 보장할 예정이었다.

( 일본전함 공고.戰艦 콘고(金剛)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http://blog.naver.com/mirejet/110035361061)

제 3전대는 경순양함 이스즈와 구축함 5척으로 이루어진 제 31 수뢰전대의 호위를 받으면서 자정을 막 넘긴 14 일 새벽에 아이언바텀사운드에 도착했다. 구축함 4 척으로 이루어진 제 15구축대가 별도로 제 3전대의 외곽을 방어했다.
곧 수상정찰기가 헨더슨 비행장 상공에 도달하여 조명탄을 투하하자 헨더슨 비행장의 모습이 정찰기 조종사와 지상의 언덕에 포진한 관측병의 눈에 환하게 드러났다.
1942 년 10 월 14 일 오전 1 시 37 분 , 일본전함의 14 인치 주포들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첫 일제사격은 소이탄으로 헨더슨 비행장 너머 야자농원에 떨어지면서 커다란 오렌지색 불꽃을 일으켰다.
공고와 하루나는 정찰기와 지상 관측병의 보고를 받아서 탄착을 수정해가며 2시 30 분까지 53 분 동안 868 발의 14 인치 포탄과 48 발의 6 인치 포탄을 헨더슨 비행장에 쏟아부었다.
공고가 삼식탄 104 발 , 철갑탄 331 발등 435 발의 14 인치 포탄과 6 인치 포탄 27 발을 발사했고 , 하루나가 영식탄 189 발과 철갑탄 294 발등 14 인치 포탄 433 발과 6 인치 포탄 21 발을 발사했다.
삼식탄은 구형의 영식탄을 개량하여 전함의 주포를 사용하여 대공사격을 하기 위하여 개발된 일종의 소이탄으로 대공용으로는 사실상 실패했으나 오히려 비행장같은 지상포격 용도로는 비교적 성공적이었다.

( 삼식탄. 사진은 야마토의 18 인치용 삼식탄이다.)

14 인치 주포를 사용한 전함의 포격은 이제까지 기껏해야 8 인치 주포가 한계인 순양함이나 구축함의 포격과는 완전히 격이 달랐다.
멀리서 일제사격의 불빛이 번쩍이고 나면 잠시 후 14 인치 주포탄이 마치 지하철이 역사에 들어오는 것 같은 커다란 소리를 내며 다가와서는 지금까지 해병대원들이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어마어마한 폭발음을 내면서 터졌다.
폭발의 위력도 대단하여 100m 이상 먼 곳에 떨어져도 폭발의 충격파로 위가 뒤틀리는 느낌이 들면서 숨이 턱턱 막히고 땅은 금방이라도 무너질듯이 흔들렸다.
해병대원들은 참호 속에 웅크린 채 악몽같은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과달카날에 상륙하자마자 일본해군의 뜨거운 (?) 환영을 받게 된 제 164 보병연대의 병사들은 과달카날에서는 밤마다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가 하고 절망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포탄에 맞아 부러진 야자나무들이 마치 이쑤시개처럼 하늘을 날고 건물들은 무너졌으며 항공유가 불타 오르면서 헨더슨 비행장 주변은 대낮처럼 환해졌다.
일본해군 승무원들은 이 광경을 지켜보면서 환호성을 질렀다.
포탄 중 1 발은 해병제 1 사단의 포병대장인 발레 준장의 지휘소를 직격했으나 발레 준장은 이미 지휘소를 떠나 부근의 참호 속에 들어가 있어서 무사했다.
해안에 배치된 5 인치 해안포가 탐조등을 비추면서 포격을 가했으나 아무 소용없는 일이었다.
일본전함들은 5 인치 해안포의 사정거리 바깥에 있었다.
툴라기 섬에서 잠을 자고 있던 앨런 몽고메리 중령은 포격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었다.
일본함정이 헨더슨 비행장을 포격 중임을 알게된 그는 즉시 휘하의 고속정장 4 명을 불러 모아 출격을 명했다. 두려움을 모르는 한창 나이의 중위들인 정장들은 곧 고속정들을 이끌고 출격했으나 얼마 후 일본구축함들의 초계선에 걸렸다.
고속정들은 일본구축함에게 쫓기면서 전함들에게 어뢰를 발사했으나 고속정의 윈시적인 조준장치로는 대단히 근접하여 발사하지 않는 한 어뢰를 명중시키기가 어려웠다.
결국 어뢰정들은 모두 무사히 일본구축함의추격을 벗어났지만 , 어뢰는 1 발도 명중하지 않았다. 그러나 고속정들의 분투는 구리다 제독으로 하여금 그만 철수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어차피 헨더슨 비행장에는 충분히 피해를 주었다고 생각한 구리다 제독은 오전 2시 30 분에 철수명령을 내리고 , 29 노트의 속력으로 신속하게 북상하여 철수했다.
전함의 포격을 뒤집어 쓴 헨더슨 비행장의 피해는 상당했다.
활주로에는 달표면처럼 구멍이 숭숭 뚫렸고 , 사단통신소를 비롯한 수많은 건물들이 무너지거나 불에 타 버렸다.
90 대에 달하던 칵터스 항공대의 항공기들은 와일드캣 29 대 , 돈틀레스 7 대 , P- 39 전투기 2 대 , P-400 전투기 4 대등 42 대만이 살아남았고 , 안 그래도 부족하던 항공유 재고가 정상적인 작전이 불가능한 수준으로까지 떨어졌다.
제 141 해병정찰폭격비행대대장 고든 벨 소령을 위시하여 미군 41 명이 사망했고 , 100 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 일본전함의 직격탄을 맞아 완전히 부서진 사단통신소.
1942 년 10 월 14 일 아침에 찍은 사진이다.)

일본전함들의 포격은 해병대의 사기를 상당히 떨어뜨렸다. 해병대원들은 거듭되는 지상전투의 승리와 뒤이은 에스퍼란스 해전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위협적인 공격을 가해오는 일본군의 물량이 무한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으며 , 앞으로 이런 식의 공격에 계속 버틸 수는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반데그리프트 소장은 강인하고 용감한 고참병들마저 속절없이 무너져서 흐느끼는 모습을 보고 전함의 포격이 해병대의 사기에 얼마나 큰 악영향을 끼치는지 절감했다.
일본전함의 포격이 병사들의 뇌리에 얼마나 깊이 박혔던지 이후 전쟁이 끝날 때까지 과달카날 참전자 사이에서는 이날의 포격을 고유명사화하여 그냥 '포격'( The Bombardment) 이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