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일본군의 제 3 차 공세 (3) - 제 1/7 대대의 선전
코컴보나에서 남하한 일본군의 주공은 교두보를 멀리 둘러서 행군했기 때문에 해병대의 정찰대가 찾아내지 못했고 , 무성한 정글 속을 행군했기 때문에 공중정찰로도 발견할 수 없었다.
해병대가 교두보의 남쪽에서 일본군의 주공을 발견한 것은 10 월 24 일이었다.
10 월 24 일 오후에 제 1/7 대대의 초병이 풀밭 입구에서 피투성이 능선을 유심히 관찰하는 일본군 장교를 발견했고 , 정찰 저격팀이 룽가 계곡에서 밥짓는 연기를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제 1/7 대대장 풀러 중령은 곧 일본군의 대규모 공격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당시 제 1/7 대대의 방어선은 교두보 전체에서 가장 병력이 적게 배치되어 있었다.
제 3/7 대대는 마타니카우 방어선에 투입되어 있었고 , 10 월 23 일에는 연대예비대였던 하네켄 중령의 제 2/7 대대마저 마타니카우 방어선을 보강하기 위하여 떠나버렸다.
따라서 , 원래 1 개 연대가 지켜야 할 2,300m 길이의 방어선을 제 1/7 대대 혼자 지키게 되었다.
사단의 유일한 예비대인 제 3/2 대대는 헨더슨 비행장 북쪽에 주둔하고 있었다.
풀러 중령은 연속적인 방어선을 구성할 병력이 모자란다고 생각하고 , 방어의 중점을 철저히 기관총에 의존하기로 결정했다.
즉 1 - 2정의 기관총이 거치된 기관총호를 중심으로 소총수들이 개인호를 파고 기관총을 방어하는데 전념하는 방식이었다.
기관총 거점 사이의 거리는 보통 40 - 50m 정도였고 , 그 사이의 공간은 사실상 비어 있었다.
제 1/7 대대는 육군과 맞닿은 동쪽에 A 중대 , 중앙에 C 중대 , 그리고 제 1 연대의 방어선과 맞닿는 서쪽에 B 중대를 배치했다.
대규모의 병력이 한꺼번에 돌격하기 가장 좋은 지형을 방어하던 A 중대에는 제 1/7 대대의 화기중대인 D 중대 소속 37mm 대전차포 3 문이 추가로 배치되었다.
제 1/7 대대의 81mm 박격포 4 문은 어느 중대라도 화력지원을 해줄 수 있는 위치에 자리잡고 있었고 , 유사시에는 105mm 곡사포를 장비한 제 4/11 대대의 화력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방어선 자체는 D 중대의 30 구경 M1917A1 수냉식 기관총 24 정이 핵심으로서 이 기관총들은 8정씩 각 중대에 배치되었다.
제 1/7 대대는 기관총좌 정면에 사계청소를 실시하고 돌격하는 적들이 기관총 앞으로 뛰어들도록 교묘하게 철조망을 설치했다.
철조망에는 건드리면 터지도록 최대한 많은 조명탄들을 달아 놓았다.
풀러 중령은 각 기관총호와 대대본부를 통신선으로 연결하여 자신과 휘하 부대와의 교신내용을 각 기관총호에서 동시에 들을 수 있도록 조치했다.
한편 정글 속을 진군하던 일본군 주공에서는 공격을 눈 앞에 두고 우익대 지휘관인 가와구치 소장이 파면되는 일이 일어났다.
정글 속을 행군하면서 라바울에서 보내온 공중정찰사진을 살펴본 가와구치 장군은 미군의 남쪽 방어선이 피의 능선 전투 당시보다 훨씬 더 강력해졌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강력한 화력지원 없이 이 방어선에 돌격하는 것은 자살행위라고 생각하고 동쪽으로 더 나아가서 공격하자고 계속 주장하다가 10 월 23 일에 제 2사단장 마루야마 중장에 의하여 해임되고 말았다.
후임자는 쇼지 도시나리 대좌였는데 과달카날에 최근에 도착하여 지리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갑자기 우익대의 지휘를 맡게 되었다.
가와구치 소장의 해임은 대단히 이례적이고 너무 성급한 결정으로 당시 제 17 군사령관 햐쿠다케 중장은 가와구치 소장의 해임사실도 몰랐다고 한다.
1942 년 10 월 24 일 밤은 억수같이 퍼붓는 비 때문에 칠흙같이 어두웠다.
오후 9시 30 분에 제 1/7 대대의 전방 관측소에서 랠프 브릭스 하사가 풀러 중령에게 유선전화로 대규모의 일본군이 제 1/7 대대 방어선 쪽으로 이동 중이라고 보고해 왔다.
곧 일본군과 관측병들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졌다.
전방 관측소에서 제 1/7 대대의 방어선으로 통하는 북쪽은 이미 일본군이 꽉 들어차 있었으므로 브릭스 하사는 부하들에게 즉시 동쪽으로 철수하라고 명령했다.
총 46 명의 관측병들 중 4 명이 전사했고 , 나머지는 모두 무사히 육군의 방어선에 도달했다.
25 일 새벽 0시 30 분 , 일본군 주력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좌익대인 제 29 연대의 3개 대대는 A/1/7 중대와 육군제 2/164 대대의 접경 지점을 향하여 돌격했다.
제 1/230 및제 3/230 대대와 제 3/124 대대로 이루어진 우익대는 원래 좌익대인 제 29 연대와 나란히 우측에서 돌격해야 했으나 , 가와구치 장군의 후임으로 새로 우익대를 맡은 쇼지 대좌가 칠흙같이 어두운 밤에 낯선 정글 속에서 헤매다가 그만 예정시간까지 돌격선에 도달하지못했다.
따라서 우익대는 좌익대의 뒤를 따라서 돌격했다.
정글을 행군하면서 야포와 박격포를 모두 버린 일본군은 전원 착검한 상태로 기관총의 엄호 사격 하에 수류탄을 던지면서 돌격해 왔다.
해병대는 엄청난 화력으로 응수했다.
A 중대가 위치한 방어선은 언덕 위인데다가 멀리까지 초원이 펼쳐져 있어서 시야가 좋았기 때문에 22 일에 제 7 연대의 방어선을 시찰했던 반데그리프트 장군은 이곳을 기관총의 천국이라고 불렀다.
게다가 풀러 중령은 대규모 병력이 돌격하기에 가장 좋은 A 중대 정면에 화기중대인 D 중대의 37mm 대전차포 4 문중 3 문을 몰아서 배치하고 , 81mm 박격포들도 대부분 이곳을 가장 주시하고 있었다.
일본군의 돌격은 정말 맹렬한 기세로 15분간 지속되었으나 , 완전히 노출된 안덕을 뛰어올라가면서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기관총탄과 소총탄 , 그리고 81mm 박격포탄과 2km 후방에서 쏘아대는 105mm 곡사포탄을 얻어맞았다.
특히 산탄을 장전한 37mm 대전차포의 위력은 대단했다.
우익대가 돌격을 하지 않음으로써 여유가 생긴 동쪽의 제 2/164 대대도 일본군의 우익을 향해 37mm 대전차포를 비롯하여 기관총탄과 소총탄을 우박같이 쏟아 부었다.
제 1/7 대대와 육군제 2/164 대대의 방어선에서 동시에 쏟아지는 어마어마한 화력에 직면한 일본군의 돌격은 엄청난 희생자를 남기고 결국 실패했다.
( 일본군의 제 3 차 공세 상황도)
첫번째 돌격에 실패한 일본군은 이번에는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B/1/7 중대의 정면으로 돌격했다. B 중대의 정면은 정글이 울창하고 지형이 평탄하여 상대적으로 기관총이 위력을 발휘하기가 어려웠다. 일본군이 철조망에 접촉하자 매달아놓은 조명탄이 터지면서 B 중대의 전면에 일본군의 모습이 떠올랐다.
곧 해병대의 기관총이 불을 뿜으면서 일본군의 선두를 순식간에 전멸시켰으나 일본군은 끝도 없이 몰려왔다.
B 중대에 파견된 기관총 섹션을 지휘하던 D 중대 소속의 존 바실론 병장은 두번째 돌격에서 자신의 기관총 분대 중 약 40m 떨어진 곳에 위치했던 제 2기관총 분대로부터 기어온 라 포인트 일병에게서 제 2 기관총 분대의 기관총 2 정이 모두 고장을 일으켰다는 보고를 받았다.
바실론 병장은 부하 2 명과 함께 41kg 에 달하는 수냉식 기관총을 손으로 들고 제 2기관총분대로 향했다.
이때 단열장갑을 잃어버린 바실론 병장은 그 뜨거운 기관총을 맨손으로 들었고 , 덕분에 손에 3 도 화상을 입었다. 바실론 병장은 제 2기관총 분대까지 불과 40m 를 가는 동안 8 명의 일본군과 마주쳤고 기관총을 손에 든 채로 발사하여 모두 사살했다.
제 2 기관총분대에 도착한 바실론 병장은 자신이 들고 온 기관총은 부하에게 넘겨주고 고장난 제 2 분대의 기관총들을 확인했다.
제 2기관총분대는 적의 수류탄 공격을 받았으며 기관총 1 정은 완전히 망가졌으나 , 다른 1 정은 기계적 고장을 일으킨 것 같았다.
바실론 병장은 오랜 경험과 기관총의 구조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깜깜한 밤에 사방에서 수류탄과 총탄이 날아다니는 정신없는 곳에서 불과 몇 십초만에 도구라고는 끝이 뾰족한 총알 하나 만을 가지고 총열과 노리쇠 사이의 공간을 조절하는 복잡하고 섬세한 작업을 성공시켰다.
기관총을 다시 발사가능 상태로 만든 바실론 병장은 달려드는 일본군들을 사정없이 사살했다.
이후 바실론 병장은 총탄이 떨어지자 몇 번이나 대대본부로 가서 기관총탄을 가져왔다.
전선에서 대대본부와의 거리는 불과 90m 에 지나지 않았으나 그 지역에는 기관총좌 사이의 간격을 빠져나오는데 성공한 일본군이 득실거렸기 때문에 매우 위험했으며 , 실제로 총탄을 운반하던 바실론 병장은 몇 번이나 손에 든 권총으로 도중에 마주친 일본군들을 사살했다.
( 존 바실론 병장)USMC sgt John Basilone
한번은 기관총 사격 도중에 부하의 고함소릴 듣고 뒤돌아서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일본군을 권총으로 사살하기도 했다.
바실론 병장은 권총 사격시 주로 일본군의 얼굴을 쏘았는데 깜깜해서 일본군의 눈알이나 이빨만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침이 되어 마침내 일본군이 물러갔을 때 바실론 병장이 지휘하던 제 2기관총분대 부근에만 38 구의 일본군 시체가 쓰러져 있었다.
바실론 병장은 이날의 무공으로 명예훈장을 받았으며 , 영웅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당시 대중매체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아 단번에 미국에서 대단한 유명인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