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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군사이야기

과달카날 전투 (46) - 일본군의 제 3차 공세 (4) /blog.naver.com/imkcs0425/60112583991


46. 일본군의 제 3 차 공세 (4) - 육군의 활약

10 월 24 일 저녁부터 일선에서 들어오는 보고를 종합해 본 제 1/7 대대장 풀러 중령은 자신의 대대를 공격하는 일본군이 적의 주공이라고 판단하고 , 25 일 새벽 1 시 30 분에 반데그리프트 소장에게 즉시 예비대 파견을 요청했다.
반데그리프트 장군은 사단예비대인 제 3/2 대대 대신 인접한 제 164 보병연대의 예비대인 제 3/164 대대를 제 1/7 대대의 방어선에 급파했다.

( 일본군의 제 3 차 공세 상황도)

제 3/164 대대장 로버트 홀 중령은 명령을 받자 즉시 야영지를 떠나 약 1,600m 떨어진 제 1/7 대대의 방어선을 향하여 출발했다.
출발한지 30 분 후인 새벽 2시경에 제 3/164 대대는 제 1/7 대대와 제 164 연대 사이의 전투지경선 부근 후방에 침투한 일본군 1 개 중대 병력을 만나 재빨리 포위한 다음 섬멸했다.
이들은 일본제 29 연대장 후루미야 쇼지 대좌가 이끌던 제 29 연대 제 7 중대였다. 후루미야 대좌는 미군 방어선을 돌파하여 넓은 초원 지대로 들어섰다.
비가 억수처럼 쏟아지는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 지형에 익숙하지 못한 후루미야 대좌는 자신이 비행장을 점령한 줄 알고 즉시 비행장을 점령했다는 암호인 ' 반자이 !' 를 타전했고 , 코컴보나에 있던 제 17 군 사령관 햐쿠다케 중장은 제대로 확인해 보지도 않고 이 소식을 라바울로 전했다.
라바울에서는 지체하지 않고 이 소식을 도쿄의 대본영에 알렸고 , 대본영에서는 즉시 일왕에게 알려서 다음날 아침에 일왕 히로히토가 대본영에 수고했다고 치하하는 촌극을 빚었다. 희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헨더슨 비행장 점령에 고무된 라바울에서는 25 일 새벽에 보도반원들을 태운 1 식 육상공격기 2 대를 제로기 4 대의 호위 하에 헨더슨 비행장으로 파견했다.
헨더슨 비행장에 착륙하려던 선두의 1 식 육상 공격기가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리고 급상승하는 순간 해병대의 대공포화가 불을 뿜었다.
선두의 1 식 육상공격기는 그대로 불길에 휩싸이면서 추락했고 , 나머지 1 대의 1 식 육상공격기와 제로기들은 허둥지둥 라바울로 도망쳤다. 그러나 비행장을 점령했다던 후루미야 대좌와 제 7 중대는 잠시 후제 3/164 대대에게 포위되어 연대장 후루미야 대좌를 비롯한 전원이 사살되었다.
이후로도 제 3/164 대대는 제 1/7 대대본부로 가는 도중에 계속하여 방어선 후방에 침투한 일본군과 조우하여 소탕하면서 전진했다.
캄캄한 밤에 미끈거리는 진흙길을 걸어오면서 중간중간에 일본군들과 교전하느라고 제 3/164 대대는 거의 분대 단위로 조각조각 나뉘어서 2시 30 분부터 1 시간에 걸쳐 제 1/7 대대 본부에 도착하기 시작했다.
제 3/164 대대의 도착을 학수고대하던 풀러 중령은 도착하는 병력들을 소대나 중대 단위로 정열할 시간이 없었다.  육군병사들은 도착하는 대로 거의 분대 단위로 대대본부에 탄약을 가지러 온 해병대원들을 따라가서 필요한 곳으로 투입되었다.
깜깜한 어둠 때문에 육군병사들은 앞선 병사의 손을 잡고 해병대원의 뒤를 따라가서 개인호에 투입되었다. 제 3/164 대대의의 증원은 절묘한 시점에 이루어졌다.
일본군의 공격은 2시 30 분부터 바야흐로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으며 , 1 개 소대의 일본군이 방어선을 돌파하여 박격포호 2 곳을 점령하기도 했다.
그러나 , 제 3/164 대대의 도착으로 병력의 여유가 생긴 제 1/7 대대는 앞에서 몰려오는 일본군을 막는 임무를 육군병사들에게 맡겨놓고 병력을 집결시켜 반격을 실시 , 박격포호를 점령한 1 개 소대 병력의 일본군들을 몰살시켜 버렸다.
해병대원들은 곧 자신과 같은 개인호에 투입된 육군병사의 화력이 월등하다는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볼트액션방식의 스프링필드 소총을 가진 해병대원은 침묵 ( 조준) - 탕 ! - 철컥 !( 노리쇠장전 ) - 다시 침묵 - 탕 ! 하는 식으로 사격했다.
그러나 반자동 개런드 소총을 가진 육군병사들은 침묵 - 탕 ! 탕 ! 탕 ! 탕 ! 탕 ! 탕 ! 탕 ! 탕 ! - 팅 ~( 클립 배출) -철컥 !( 새 클립 장전 ) - 침묵 - 다시 탕 ! 탕 ! 탕 ! 탕 ! 탕 ! 탕 ! 탕 ! 탕 ! 하고 사격했다.

( 미군의 M1 Garand 소총.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http://blog.naver.com/mirejet/110069305885 )

개런드 소총의 뛰어난 성능을 눈으로 확인한 해병대원들은 기회가 닿는대로 개런드 소총을 손에 넣으려고 혈안이 되었다. 곧 과달카날의 육군병사들은 전사한 자신의 동료들로부터 개런드 소총을 수거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해병대원들이 얼마나 빨리 가져가 버리는지 수거할 수가 없었다. 제 3/164 대대는 4 정의 30 구경 수냉식 기관총을 보유한 H 중대의 1 개 기관총 섹션 , 37mm 대전차포 4 문을 보유한 대전차 소대 , 그리고 화기중대인 M 중대 소속의 81mm 박격포 4 문도 같이 데리고 왔다.
밤새 M 중대의 81mm 박격포 4 문은 1,200 발의 포탄을 발사했다. 제 3/164 대대의 증원으로 제 1/7 대대의 방어선은 사실상 철벽이 되었고 , 일본군의 공격력은 3시 30 분부터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했다.
25 일 오전 7시에 마루야마 중장은 부대를 재편성하기 위하여 공격 중지 명령을 내렸다. 일본군 주공은 반데그리프트 소장의 예상과 달리 정글을 멀리 행군하여 미군 방어선의 가장 약한 부분을 들이치는데 성공했다.
그 결과 제 1/7 대대는 1 개 연대가 넘는 일본군의 정예 병력들을 상대로 싸워야 했으나 , 막강한 지원화력을 등에 업고 기관총의 엄청난 화력을 집중함으로써 병력의 열세를 딛고 일본군의 돌격을 막아내는데 성공했다. 이날 전투에서 제 1/7 대대가 발사한 기관총탄은 총 26,000 발에 달했다고 한다.
또한 , 절묘한 순간에 육군제 3/164 대대가 도착함으로써 압도적인 병력의 우세를 보이던 일본군의 공세를 막아내는데 성공했다. 이렇게 하여 과달카날에서 처음으로 실시된 해병대와 육군의 합동작전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실패로 끝난 24 일밤 - 25 일 새벽 사이의 공격에서 일본군의 전사자는 제 1/7 대대의 잠정집계만으로도 1,000 명이 넘었다. 제 1/7 대대의 인명피해는 전사 및 실종 31 명 , 부상 30 명이었다.